신당역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지난해 10월 전주환을 스토킹 혐의로 고소하면서 신변 보호를 요청할 당시 경찰이 피해자를 상대로 작성한 ‘위험성 체크리스트’에서 위험 상태를 가장 낮은 단계로 판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 경찰이 조사한 피해자의 스토킹 범죄 위험도는 ‘위험성이 없음 또는 낮음’ 단계였다. 이는 위험성 판단 척도(높음-인정-없음 또는 낮음) 중 가장 낮은 단계다. 이에 대해 경찰은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체크리스트 항목을 점검한 결과, 위험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활용한 체크리스트 서식과 안내 지침을 보면, 피해자나 가족 구성원이 가해자로부터 폭행과 협박, 신체 제한, 성폭력을 당한 사실이 있는지를 가장 처음 묻게 돼 있다. 두 항목 모두 ‘없음’이거나 있더라도 반복될 우려가 낮은 경우, 또 협박만 한 경우엔 ‘위험성 없음 또는 낮음’으로 판단한다. 신당역 피해자 역시 물리적 위협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이같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는 2019년부터 전주환으로부터 350여 차례에 걸쳐 ‘만나 달라’는 등의 일방적 연락을 받고 불법 촬영물을 빌미로 협박까지 받던 중이었다. 위험성 체크리스트만으론 전주환의 범행 가능성을 걸러내지 못한 것.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의 이 의원은 “350여 차례 스토킹을 당한 피해자가 ‘위험성 없음 또는 낮다’고 나왔다는 것에서 이번 사건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본다”며 “가해자의 심리 등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 수시로 위험도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제대로 된 체크리스트와 메뉴얼에 따라 현장을 정확히 판단하는 게 우선”이라며 “판단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직권으로 취해질 필요가 있는 조치는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위험도 체크리스트는 지난해 7월 제주 중학생 피살 사건 이후 같은해 10월 14일 개정·보완됐고, 이번 신당역 사건 발생 하루 전인 지난 13일 경찰은 ‘안전조치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 계량화 연구’ 용역 과제를 발주했다고 이 의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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