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20대 남성이 자국 축구대표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을 공개적으로 기뻐하다가 보안군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메헤란 사마크(27)는 전날 이란 길란주 반다르 안잘리에서 이란 대표팀이 미국에 패한 데 대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기뻐하다 보안군에게 사살당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사마크는 미국과 경기에서 이란 축구대표팀이 패배한 후 보안군의 직접적인 표적이 돼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센터(CHRI) 역시 사마크가 이란 패배를 기념하던 도중 보안군에게 살해됐다고 전했다.
이날 미국전에 출전한 반다르 안잘리 출신 이란 미드필더 사에드 에자톨라히는 인스타그램에 유소년 축구팀에서 사마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내 어린 시절 친구, 어젯밤 쓰라린 패배 이후 들려온 네 사망 소식은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고 애도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쿠르드족 여성 마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후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촉발,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IHR에 따르면 보안군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18세 미만 미성년자 60명과 여성 29명을 포함, 최소 448명이 숨졌다.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이란인들은 자국팀의 월드컵 응원을 줄곧 거부해왔다. 이란 대표팀이 전날 오후 미국에 0대 1로 패해 조 3위로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이란 전역에선 패배를 기념하는 불꽃과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란 언론인 마시 알리네자드는 트위터를 통해 “이란은 축구에 상당히 열정적인 나라지만 이제 그들은 거리에 나와 미국전 패배를 축하하고 있다”고 했다. 한 테헤란 시민은 “이란의 승리는 이란 당국에 선물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기길 바랐다”고 가디언에 밝혔다.
시위 열기는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 현지에서도 이어졌다. 경기가 있던 도하 알투마마 스타디움 인근에는 전날 추가 보안 요원이 경기장 안팎에 배치돼 시위대 감시·감독에 나섰다.
후반전 초반 한 무리의 팬들이 ‘마사 아미니’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잠시 들어 올려 지지자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보안 요원은 종이를 회수했지만 그들을 관중석에서 퇴출하진 않았다.
이날 경기장 밖에서는 보안요원들과 시위대 간 대치 상황도 벌어졌다. 보안요원 3명이 반정부 시위 슬로건인 ‘여성, 생명, 자유’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남성을 땅바닥에 눕혀 제압했다. 다른 보안요원은 두 명과 옥신각신하며 이들 뒤를 쫓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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