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경기를 치렀던 엘나즈 레카비(33)의 가족 주택이 철거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3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북서주 잔잔주에 위치한 엘나즈 가족의 주택을 강제 철거했다. 이란 반정부 성향 매체인 이란와이어가 공개한 영상에는 엘나즈의 오빠 다부드 레카비(35)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파괴된 자택 앞에서 울부짖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다부드 역시 여동생처럼 국내외 수상 경력이 있는 클라이밍 선수다. 철거된 자택의 잔해 속에는 메달이 널브러져 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영상 촬영자는 “이게 이 나라에서 산 결과다. 메달을 따 국가에 안긴 챔피언한테 일어난 일”이라며 “국가의 이름을 드높였는데 국가는 (다부드에) 후추 스프레이를 뿌린 뒤 집을 부수고 떠났다”고 했다. 이란와이어는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란 경찰이 주택을 철거했으며 다부드는 미상의 ‘위반 사항’ 때문에 약 5000달러(약 651만 원)에 해당하는 과징금까지 부과받았다”고 했다.
앞서 엘나즈는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클라이밍 아시아선수권대회에 히잡을 쓰지 않고 출전했다. 당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로부터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 상황과 맞물리며 엘나즈의 신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경기 마지막날 돌연 연락이 끊겨 실종설이 제기됐지만 주한 이란대사관은 트위터를 통해 “서울에서 이란으로 (당초보다) 일찍 출발한 것”이라고 알렸다.
이란 당국은 영상과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엘나즈의 가족 집이 철거당한 건 맞지만, 이 집이 공식적인 건축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문제의 영상은 엘나즈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채 대회에 출전한 지난 10월 이전에 발생한 일이라고도 했다.
한편 엘나즈는 귀국한 후 이란 국영방송 인터뷰를 통해 “라커룸에서 대기하다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내 차례가 돌아왔다”며 “신발 등 장비를 챙기느라 바빠서 히잡을 깜빡 잊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라고 사과했다. AP통신과 BBC 등 외신은 당국이 엘나즈에 사과하지 않으면 가족 재산을 빼앗겠다고 위협했다며 강요에 의한 해명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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