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부활[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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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동은 반기업이라는 흑백논리 벗어나
노동자 권익 향상과 기업 발전 같이 가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아는 중소기업 사장이 회사에 노조가 생겼다고 울상을 지었다. 동종업계 최고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준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노조가 생기자 임금을 더 올려 달라며 파업 중이라는 것이다. “삭발투쟁에다 단식농성에다 강성 노조가 하는 행동은 다 따라 한다”며 “사업을 접고 싶다”고 했다. 일부 사업자들에게 노조는 ‘공포의 대상’이다.

주변에서 노조가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실제 수치로 나타났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발표를 보니 2018년 노조원 수가 233만1600여 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노조 조직률도 늘어나 11.8%, 근로자 100명 중 12명이 노조원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국민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했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오바마가 2015년 노동절에 한 유명한 연설이다. 과거 중산층이 두꺼웠던 미국은 레이건 정부 이후 노조가 쇠퇴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졌다. 오바마는 중산층 복원 방법의 하나로 노조 강화를 주장했었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노동자가 존중받으려면 노조가 필요하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칫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안 되고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 노조가 있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줄어들던 노조가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늘고 있다. 그래도 아직 노조 조직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덴마크와 스웨덴은 노조 조직률이 60%대다. 독일과 프랑스는 9∼17%지만 기업별 노조인 한국과 달리 산별노조 체제여서 산별 노사협상에서 타결된 임금과 처우가 대다수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유럽은 노동자의 권한이 한국보다 훨씬 강하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노조 활동에 대해 배운다고 한다. 독일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등 10여 개 유럽 선진국들이 공기업은 물론이고 민간 기업까지 이사회에 노동자 이사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들도 사회적으로 책임 있게 행동한다. 노동자 이사들은 노동자의 권리만 주장하지 않고 회사의 장래를 고민한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동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을 확립했다.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노동의 유연성을 노조가 받아들이고, 대신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회안전망 확대를 보장받았다. 이처럼 노동친화 정책은 반(反)기업이 아니라 노사 상생의 정책이다.

한국에서 노조는 양면의 얼굴을 가졌다. 헌법에 보장돼 있음에도 한편에선 여전히 노조를 불온시하고 탄압하는 분위기가 있다. 반면 일부 공기업과 대기업에서는 노조가 기득권 세력이 되어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정도다. 강한 노조가 있는 공기업 대기업 근로자들은 높은 임금과 두터운 복지, 정년이 보장된다. 반면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들은 낮은 임금과 불안한 신분에 시달린다. 이제 대기업과 공기업의 임금과 복지는 세계적으로 낮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 혜택을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까지 확산하면서 좋은 일자리가 더 늘어나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하다.

노조는 더 많아지고 노동자의 권리는 더 높아져야 한다. 다만 노조들도 그만큼 사회적 책임을 느꼈으면 한다. 기업들이 잘돼야 나눌 파이도 생긴다. 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노사가 함께 지혜를 모으면 좋겠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노동조합#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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