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킹크랩 시연을 봤다는 사실은 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 증거들, 즉 당일자 온라인 정보 보고, 킹크랩 시연 로그 기록, 이후 작성된 피드백 문서 등을 통해 특검이 상당 부분 증명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차문호)는 21일 법원 기자단에 배포한 A4용지 7쪽 분량의 ‘사건 재개 사유 및 향후 심리 방향’ 설명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여러 증거를 종합해 김경수 경남도지사(53)가 ‘킹크랩’(댓글 조작 자동화 프로그램) 초기 모델의 시연을 봤다고 결론 낸 것이다. 재판부가 핵심 쟁점 사안에 대한 판단을 선고 전에 내놓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재판부의 이런 판단에 대해 김 지사 측 변호인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2심도 “김 지사, 킹크랩 시연 봤다”고 인정
김 지사를 재판에 넘긴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구성한 댓글 조작 사건의 구조는 ‘2016년 11월 킹크랩 초기 모델 시연→12월 킹크랩 완성형 제작→본격적인 대선 여론 조작’이다. 이런 구조의 출발점이 킹크랩 초기 모델 시연인데 김 지사가 시연을 봤다는 사실이 여러 증거를 통해 입증된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동안 김 지사는 킹크랩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취지로 자신이 시연을 봤다는 특검 측 주장을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1심 재판부는 “김 지사가 보는 앞에서 킹크랩을 시연했다”는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51·수감 중)의 진술을 근거로 김 지사가 시연을 봤다고 판단했다. 또 시연 당일 킹크랩을 통해 네이버에 접속한 아이디 3개가 특정 뉴스 댓글에다 자동으로 공감, 비공감 클릭 작업을 실행한 점을 보면 누군가를 위해 킹크랩 시연이 이뤄졌다는 주장의 신빙성이 높다고 봤다.
21일 2심 재판부도 1심이 인정한 증거들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며 김 지사가 시연을 봤다는 특검의 주장은 입증됐다고 밝혔다. 온라인 정보 보고와 로그 기록 등 ‘비진술적 증거들’을 보면 김 지사가 2016년 11월 킹크랩 초기 모델 시연을 본 사실이 잠정적으로 증명됐다는 것이다.
○ 김경수-드루킹 공동정범 판단 남아
앞으로 재판부는 김 지사가 김 씨 등의 댓글 순위 조작 범죄에 가담한 공범인지를 가리는 데 심리를 집중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김 씨와 김 지사의 관계가 단순 지지자와 정치인 관계였는지,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공통된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긴밀한 관계였는지를 알 수 있는 관련자 진술이나 객관적 자료 등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지사 측 변호인은 재판 직후 “재판부가 심증을 제시했다고 해서 객관적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할 수는 없다. 오해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조금 더 추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진실의 힘을 믿고 이겨나가겠다”고 했다. 허 특검은 동아일보에 “(김 지사와 김 씨 등의) 공모 여부에 대해 주장과 입증을 더 하라는 과제를 받았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김 지사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두 차례나 연기된 것을 두고 재판장인 차 부장판사와 이 사건 주심인 김민기 판사가 의견 대립을 빚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판사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차 부장판사가 다음 달 중순 있을 법원 정기인사 대상이라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도 이를 의식한 듯 “사건을 재개함으로 인해 불필요한 추측과 우려를 드린 것에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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