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美와 ‘합의’ 아닌 ‘협의’ 표현… 철도연결 백악관 동의 못 구한듯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9일 03시 00분


한미, 한반도문제 온도차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충격에 대해 “그야말로 경제 전시 상황”이라며 대규모 국책사업, 소비 진작과 ‘한국판 뉴딜’ 등 대대적인 코로나19 대응책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3차 추경안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충격에 대해 “그야말로 경제 전시 상황”이라며 대규모 국책사업, 소비 진작과 ‘한국판 뉴딜’ 등 대대적인 코로나19 대응책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3차 추경안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아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본격화된 남북 관계 속도전을 두고 서울과 워싱턴의 호흡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와 백악관 모두 자국의 정치 상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는 데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첨예한 이슈도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 靑은 ‘속도전’ vs 워싱턴은 “보조 맞춰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8일 예고 없이 춘추관을 찾아 전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 나섰다. 이 관계자는 “남북 철도 연결 추진 사업과 관련해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왔다”며 “대북 개별 방문 역시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니며, 미국과 오래 협의해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동 방역 등에 대해서도 “인도주의적 사안이기 때문에 제재에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독자적인 남북 협력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를 거듭 밝힌 것이다.

남북 철도 연결의 경우 대북 제재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동의가 필수적이지만, 청와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철도 연결 등에 대해 협의했다는 건 미국의 동의를 얻었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단어 그 자체로 이해해 달라”며 ‘합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결국 대북 제재 위반과 관련해 미국과 논의했지만 백악관이 명확하게 긍정적인 시그널을 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제안에 대해 동아일보에 “남북 협력이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동맹인 한국과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노이 노딜’ 이후 비핵화 협상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남북 협력의 속도를 높여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의미다.

○ 北 변화 촉구에는 한미 공감대

백악관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청와대가 거듭 속도전 의사를 밝힌 것은 결국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겠다는 의도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가 남북 협력 사업에 대해 교감하고 있으니 북한만 호응한다면 곧바로 구체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코로나19 공동 방역, 국제평화지대 조성 등과 관련해 “아직 북한의 반응은 없지만 (북한이)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곧바로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희망적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 역시 “북한은 기회의 창이 열려 있는 동안 관여에 나서야 하며 역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도발을 그만둬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최근 함경남도 선덕 일대에 이동식발사대(TEL)를 배치하는 등 도발 징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 궤도를 이탈하지 말라”는 경고를 다시 한번 보낸 셈이다.

이런 백악관의 기류를 알고 있는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을 통해 백악관에 “교류 협력을 제안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복귀시켜 보겠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역시 이날 오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통화하고 남북 협력 사업 추진에 대해 논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 입장을) 비건 대표가 경청했고 부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 “남북 협력과 방위비 분담금은 별개”

이처럼 한미가 큰 틀에서는 공감하면서도 완벽하게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한미 방위비 협상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 실무협상단은 두 자릿수 인상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두 “이대로는 수용할 수 없다”며 퇴짜를 놓은 상황이다. 외교가에서는 “협상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있다.

이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가 백악관에 남북 협력 동의를 강하게 요청하지 않는 것은 자칫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의 발언권을 키워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남북 협력과 방위비 분담금은 별개의 문제’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이 방위비 협상 장기화로 무급 휴직 중인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에게 급여를 미리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 역시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 측 카드 하나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한기재 기자


#판문점 선언 2주년#문재인 대통령#남북 철도 연결#한미 방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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