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이래 단 한 번도 편안한 역할을 맡지 않은 배우. 곧 연기 경력 30년을 앞둔 베테랑 설경구(55)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인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프 삼은 정치인 ‘김운범’을 연기한다. 김대중 곁에는 그를 대선 후보로 만들고 결국 15대 대선의 승기를 거머쥐게 한 킹메이커 엄창록이 있었다. 그를 본뜬 인물 ‘서창대’ 역으로 배우 이선균이 합세했다.
1월 26일 개봉을 확정 지은 영화 ‘킹메이커’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불한당’)으로 설경구에게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선물한 변성현 감독의 신작이다. ‘불한당’에서 배우 임시완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가운데 피어나는 미묘한 브로맨스를 선보인 설경구. 이번에는 전쟁 같은 선거판의 플레이어이자 전략가 이선균과의 특별한 관계를 그린다.
설경구는 그동안 유독 굴곡 많은 생의 가면들을 써왔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 ‘김영호’, ‘불한당’의 스리피스 슈트핏에 어둠을 숨긴 조폭 ‘한재호’를 지나 이번엔 현대사의 입지전적인 인물 ‘김대중’이다. 왜일까. 스크린 밖 설경구는 결코 서창대처럼 전략적인 여우는 못 될 것 같은 인물이다. 오히려 ‘내 식대로’ ‘직관적으로’ 세상과 한껏 부딪치며 만든 파열음이야말로 선 굵은 배우 설경구가 연기를 지속하도록 이끈 힘처럼 보였다.
1월 26일 개봉을 확정 지은 영화 ‘킹메이커’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불한당’)으로 설경구에게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선물한 변성현 감독의 신작이다. ‘불한당’에서 배우 임시완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가운데 피어나는 미묘한 브로맨스를 선보인 설경구. 이번에는 전쟁 같은 선거판의 플레이어이자 전략가 이선균과의 특별한 관계를 그린다.
설경구는 그동안 유독 굴곡 많은 생의 가면들을 써왔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 ‘김영호’, ‘불한당’의 스리피스 슈트핏에 어둠을 숨긴 조폭 ‘한재호’를 지나 이번엔 현대사의 입지전적인 인물 ‘김대중’이다. 왜일까. 스크린 밖 설경구는 결코 서창대처럼 전략적인 여우는 못 될 것 같은 인물이다. 오히려 ‘내 식대로’ ‘직관적으로’ 세상과 한껏 부딪치며 만든 파열음이야말로 선 굵은 배우 설경구가 연기를 지속하도록 이끈 힘처럼 보였다.
‘김대중’을 연기한다는 것
‘불한당’ 이후 변성현 감독과 두 번째 협업입니다. 변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건가요.
‘불한당’을 같이하면서 신뢰가 많이 쌓였어요. ‘킹메이커’ 출연 제안도 정식으로 수락한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보니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그냥 변 감독에 대한 믿음이구나’ 싶었죠. 변 감독 이야기를 들으면 호기심이 일어요. ‘킹메이커’가 다루는 이야기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걸 하겠다고 하니까 이 사람이 하면 과연 어떻게 만들까 궁금했어요. 작품 성격이 달라지는 재미도 있죠. 직업은 영화감독 하나지만 어떻게 보면 매번 자기 전공을 바꾸듯 다른 소재를 발굴하고 깊이 몰입한다는 게 신기해요. 저도 ‘불한당’ 이후로 변 감독에게 “내 나이대 캐릭터가 있으면 무조건 나한테 먼저 줘야 한다”는 식으로 협박도 했어요(웃음).
어두운 누아르 세계를 다룬 전작과 완전히 다른 정치 드라마에 도전했습니다.
‘킹메이커’ 시나리오를 받은 건 ‘불한당’을 촬영할 때예요. 사실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변 감독이 “꼭 해줘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불한당’이나 집중하자”며 일부러 피했어요. 처음엔 캐릭터 이름이 김운범이 아니라 김대중이었어요. 미치겠더라고요. 굉장히 부담스러웠죠. 그 이름 석 자가 주는 하중이 엄청났어요. 그래서 제가 이름만은 제발 바꾸자고 제안한 거예요. 김운범으로 바꾸자마자 희한할 정도로 부담이 조금 덜어지더라고요.
실존 인물을 바탕에 두고 만든 배역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겠습니다.
김운범 배역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부담이 없을 수는 없었죠. 그래도 모사를 하면 안 된다는 철칙을 세우고 지키려고 했어요. 외적인 면을 비슷하게 만든다고 그 사람을 카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흉내를 내면 캐릭터가 어긋나버릴 수 있어요. 그래서 어디까지나 제 식대로 표현하려고 했죠. 전라도 사투리 공부는 꽤 했어요. 말투를 숙지할 때까지는 그분을 열심히 따라가려고 했지만, 대본 리딩을 하고 난 다음부터는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결과적으로 ‘닮아가되 똑같아지려는 욕심은 내지 말자’ ‘걷어내고 내 식대로 표현하자’는 두 가지 고민이 충돌했어요. 김운범은 그 접점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불한당’을 같이하면서 신뢰가 많이 쌓였어요. ‘킹메이커’ 출연 제안도 정식으로 수락한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보니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그냥 변 감독에 대한 믿음이구나’ 싶었죠. 변 감독 이야기를 들으면 호기심이 일어요. ‘킹메이커’가 다루는 이야기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걸 하겠다고 하니까 이 사람이 하면 과연 어떻게 만들까 궁금했어요. 작품 성격이 달라지는 재미도 있죠. 직업은 영화감독 하나지만 어떻게 보면 매번 자기 전공을 바꾸듯 다른 소재를 발굴하고 깊이 몰입한다는 게 신기해요. 저도 ‘불한당’ 이후로 변 감독에게 “내 나이대 캐릭터가 있으면 무조건 나한테 먼저 줘야 한다”는 식으로 협박도 했어요(웃음).
어두운 누아르 세계를 다룬 전작과 완전히 다른 정치 드라마에 도전했습니다.
‘킹메이커’ 시나리오를 받은 건 ‘불한당’을 촬영할 때예요. 사실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변 감독이 “꼭 해줘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불한당’이나 집중하자”며 일부러 피했어요. 처음엔 캐릭터 이름이 김운범이 아니라 김대중이었어요. 미치겠더라고요. 굉장히 부담스러웠죠. 그 이름 석 자가 주는 하중이 엄청났어요. 그래서 제가 이름만은 제발 바꾸자고 제안한 거예요. 김운범으로 바꾸자마자 희한할 정도로 부담이 조금 덜어지더라고요.
실존 인물을 바탕에 두고 만든 배역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겠습니다.
김운범 배역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부담이 없을 수는 없었죠. 그래도 모사를 하면 안 된다는 철칙을 세우고 지키려고 했어요. 외적인 면을 비슷하게 만든다고 그 사람을 카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흉내를 내면 캐릭터가 어긋나버릴 수 있어요. 그래서 어디까지나 제 식대로 표현하려고 했죠. 전라도 사투리 공부는 꽤 했어요. 말투를 숙지할 때까지는 그분을 열심히 따라가려고 했지만, 대본 리딩을 하고 난 다음부터는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결과적으로 ‘닮아가되 똑같아지려는 욕심은 내지 말자’ ‘걷어내고 내 식대로 표현하자’는 두 가지 고민이 충돌했어요. 김운범은 그 접점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실존 정치인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도 참고하셨나요.
다른 배우들은 특정 직업군의 역할이 주어지면 그 직업군의 인물을 만나보기도 해요. 제가 좀 유별난 걸 수도 있는데, 저는 그게 좀 안 되는 것 같아요. 영화 ‘공공의 적’을 할 때도 강력계 형사를 소개해준다고 하는 걸 거절했어요. 그 분들 이야기가 저한테 영향을 끼치는 게 오히려 별로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만들어가는 재미를 즐기는 타입이에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할수록 더 그런 욕심을 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고요.
극 중 정치인 김운범은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인물이고, 전략가 서창대는 다소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승산이 있는 전략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설경구에게 김운범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소탈하고 리더십이 강하면서 카리스마도 있는 인물이죠. 어떻게 보면 모든 자질을 다 갖춘 인물처럼 보이지만 저는 하나의 캐릭터가 그렇게 좋은 단어로만 표현되는 게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대선 후보라고 해서 “나는 큰사람이다” 하고 과시하기보다 그저 인간으로서의 김운범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가령 카리스마 있게 연설한 다음 장면에서 서창대가 그 연설을 흉내 내요. 그러면 또 김운범이 “(전라도 사투리로) 내가 언제 그랬다 그려 언제” 하면서 친구처럼 농을 하는 모습을 보이죠. 그러다가 다시 “자네 준비됐는가”라는 대사를 할 때는 뚝심 있는 정치인으로 돌아가요. 큰사람을 표현하려고 하기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 김운범에 접근하려고 했어요.
그 시절 선거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았나요.
대학 졸업 이후의 기억들은 있죠. 이른바 금품 선거나 관권 선거라고 하는 게 비일비재했어요. ‘킹메이커’에도 나오는 부분이지만 당시 정치가 지금에 비하면 자금도 부족하고 조직력도 약하니 ‘쪼잔한’ 선거 운동을 벌인 거죠. 상대 진영 이름으로 동네 사람들한테 선물을 했다가 “잘못 줬다”고 하면서 도로 뺏는 식으로 네거티브를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서창대의 모티프가 된 인물인 엄창록이 원래 ‘선거판의 여우’로 불리면서 이런 식의 교활한 전략을 썼다고 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일 수 있는데, 그 시대를 생각하면 ‘이런 방식이 통하던 때도 있었구나’ 싶은 거죠.
다른 배우들은 특정 직업군의 역할이 주어지면 그 직업군의 인물을 만나보기도 해요. 제가 좀 유별난 걸 수도 있는데, 저는 그게 좀 안 되는 것 같아요. 영화 ‘공공의 적’을 할 때도 강력계 형사를 소개해준다고 하는 걸 거절했어요. 그 분들 이야기가 저한테 영향을 끼치는 게 오히려 별로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만들어가는 재미를 즐기는 타입이에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할수록 더 그런 욕심을 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고요.
극 중 정치인 김운범은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인물이고, 전략가 서창대는 다소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승산이 있는 전략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설경구에게 김운범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소탈하고 리더십이 강하면서 카리스마도 있는 인물이죠. 어떻게 보면 모든 자질을 다 갖춘 인물처럼 보이지만 저는 하나의 캐릭터가 그렇게 좋은 단어로만 표현되는 게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대선 후보라고 해서 “나는 큰사람이다” 하고 과시하기보다 그저 인간으로서의 김운범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가령 카리스마 있게 연설한 다음 장면에서 서창대가 그 연설을 흉내 내요. 그러면 또 김운범이 “(전라도 사투리로) 내가 언제 그랬다 그려 언제” 하면서 친구처럼 농을 하는 모습을 보이죠. 그러다가 다시 “자네 준비됐는가”라는 대사를 할 때는 뚝심 있는 정치인으로 돌아가요. 큰사람을 표현하려고 하기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 김운범에 접근하려고 했어요.
그 시절 선거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았나요.
대학 졸업 이후의 기억들은 있죠. 이른바 금품 선거나 관권 선거라고 하는 게 비일비재했어요. ‘킹메이커’에도 나오는 부분이지만 당시 정치가 지금에 비하면 자금도 부족하고 조직력도 약하니 ‘쪼잔한’ 선거 운동을 벌인 거죠. 상대 진영 이름으로 동네 사람들한테 선물을 했다가 “잘못 줬다”고 하면서 도로 뺏는 식으로 네거티브를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서창대의 모티프가 된 인물인 엄창록이 원래 ‘선거판의 여우’로 불리면서 이런 식의 교활한 전략을 썼다고 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일 수 있는데, 그 시대를 생각하면 ‘이런 방식이 통하던 때도 있었구나’ 싶은 거죠.
“스타일보다 배우가 남는 영화 되길”
영화 ‘자산어보’에 이어 곧바로 맡은 작품의 상대역 이름이 ‘창대’였죠.
공교롭게도 ‘자산어보’의 창대는 ‘장창대’이고, ‘킹메이커’의 창대는 ‘서창대’예요. 그래서 제가 ‘자산어보’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꾸 “서창대” “서창대” 했어요(웃음). 계속 헷갈려서 이준익 감독님께 혼났어요. 서창대는 말 그대로 ‘킹메이커’죠.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폭넓은 감정 기복을 표현해야 하죠. 이선균 씨가 그 역할을 정말 잘해줬어요. 후배지만 굉장히 든든한 사람이죠.
배우로서 이선균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나요.
저는 감독님과 특정 장면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는 타입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선균 씨는 이 장면, 저 장면에 대해 굉장히 집요하게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3일 내내 방을 잡아놓고 같이 이야기를 할 만큼이요. 저라면 3일이 아니라 3시간도 못 버틸걸요. 집요하다 싶을 만큼의 욕심을 갖고 캐릭터를 분석하고 준비하는 배우로서의 모습이 참 부러웠죠.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렇게 절대 못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공교롭게도 ‘자산어보’의 창대는 ‘장창대’이고, ‘킹메이커’의 창대는 ‘서창대’예요. 그래서 제가 ‘자산어보’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꾸 “서창대” “서창대” 했어요(웃음). 계속 헷갈려서 이준익 감독님께 혼났어요. 서창대는 말 그대로 ‘킹메이커’죠.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폭넓은 감정 기복을 표현해야 하죠. 이선균 씨가 그 역할을 정말 잘해줬어요. 후배지만 굉장히 든든한 사람이죠.
배우로서 이선균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나요.
저는 감독님과 특정 장면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는 타입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선균 씨는 이 장면, 저 장면에 대해 굉장히 집요하게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3일 내내 방을 잡아놓고 같이 이야기를 할 만큼이요. 저라면 3일이 아니라 3시간도 못 버틸걸요. 집요하다 싶을 만큼의 욕심을 갖고 캐릭터를 분석하고 준비하는 배우로서의 모습이 참 부러웠죠.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렇게 절대 못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킹메이커’에는 두 주연 배우 외에도 유재명·조우진·박인환·윤경호 등 연기 내공이 높은 배우가 다수 참여했다. 유재명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티프 삼은 ‘김영호’를, 조우진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에서 따온 ‘이 실장’을 연기했다.
쟁쟁한 배우들의 협업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상대 진영에 있는 분들은 촬영장에서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웃음). 유재명 씨나 박인환 선배가 그랬죠. 제가 주로 만난 분은 제 참모진 역할을 한 분들이에요. 특히 윤경호 씨의 살신성인에 놀라기도 했어요. 영화 초반부에 벽에다 머리를 들이받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들리는 ‘쿵쿵’ 소리가 특수 음향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머리를 들이받아서 나는 소리거든요. 다음 장면을 자세히 보면 정말 머리에 혹이 막 생기고 있어요.
조우진 씨는 말할 것도 없죠. 어쩜 그렇게 얄밉도록 캐릭터를 소화하는지 ‘뱀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변성현 감독 하면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만든다는 평이 많은데, 정작 본인은 그 평가를 부담스러워해요. 현장에서도 “스타일리시해야 돼” 비슷한 말은 꺼낸 적도 없고요. 오히려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는 모습이었죠. 그래서 ‘킹메이커’가 스타일보다는 배우들 연기 보는 맛이 있는 영화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쟁쟁한 배우들의 협업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상대 진영에 있는 분들은 촬영장에서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웃음). 유재명 씨나 박인환 선배가 그랬죠. 제가 주로 만난 분은 제 참모진 역할을 한 분들이에요. 특히 윤경호 씨의 살신성인에 놀라기도 했어요. 영화 초반부에 벽에다 머리를 들이받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들리는 ‘쿵쿵’ 소리가 특수 음향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 머리를 들이받아서 나는 소리거든요. 다음 장면을 자세히 보면 정말 머리에 혹이 막 생기고 있어요.
조우진 씨는 말할 것도 없죠. 어쩜 그렇게 얄밉도록 캐릭터를 소화하는지 ‘뱀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변성현 감독 하면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만든다는 평이 많은데, 정작 본인은 그 평가를 부담스러워해요. 현장에서도 “스타일리시해야 돼” 비슷한 말은 꺼낸 적도 없고요. 오히려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는 모습이었죠. 그래서 ‘킹메이커’가 스타일보다는 배우들 연기 보는 맛이 있는 영화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매번 경험하지 못한 역할 찾는다”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입니다.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대학생 때 대학로에서 연극하며 개런티를 받기 시작한 지 곧 30년이 되네요.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죠. 좋은 분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4년간 연극을 했는데 ‘지하철 1호선’ 같은 경우 원년 멤버로 2년 정도 공연했으니 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죠.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화 중에는 ‘박하사탕’을 말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감정을 준 작품이거든요. 신인이기도 했고, 카메라 앞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어설픈 모습이나 떨리는 모습을 보였어요. 지금은 일부러 하려고 해도 표현할 수 없죠.
배우로서 만족감을 느끼고 계신가요.
행복할 때도 있고 참 난감할 때도 있어요. 희로애락이 다 있죠. 언젠가부터 촬영장에 있는 것이 제 삶의 전부처럼 돼버려서 그 안에서 모든 감정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뭔가 잘됐을 때는 아이처럼 좋아하다가 또 안 풀릴 때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롭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해결해줄 수 없고 결국 스스로 풀어야 하는 문제이니, 그럴 땐 정말 암담해요. 낭떠러지 앞에 떡하니 서 있는 듯한 기분. 굉장히 절망감에 휩싸이죠. ‘이 이상은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복합적인 마음이 들게끔 하는 장소가 촬영장이에요. 그래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면서 성취감이고 또 좌절이면서 슬픔이고 그래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행복 안에는 만감이 있어요.
그동안 편안한 역할을 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느낌입니다. 매번 새롭고, 굴곡 많은 캐릭터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나요.
‘박하사탕’을 찍은 이후로 막 소리를 지르고 우악스러운 캐릭터 제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공공의 적’에서 형사 역할을 하고 나니까 그 뒤로는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거친 형사 캐릭터가 들어왔죠. 이전 배역과 겹치는 역할 제안이 들어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잖아요. 그래도 저는 제 앞에 있는 선택지 가운데 여태 경험하지 못한 역할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캐릭터 변신을 한 것처럼 됐네요.
이제는 나이를 먹다 보니까 예전보다 선택의 폭이 많이 줄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반대로 젊을 때 하지 못했던 역할이 지금 오기도 하죠.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설경구는 “나는 캐릭터보다 이야기 자체에 먼저 동화되는 사람이라 참신한 이야기가 있으면 거기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버린다”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이다.
“어떤 역할이든 쉬운 건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최대한 어렵게 접근하고 고민을 많이 할수록 캐릭터의 밀도가 높아지지 않나’ 생각하면서 연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대학로에서 연극하며 개런티를 받기 시작한 지 곧 30년이 되네요.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죠. 좋은 분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4년간 연극을 했는데 ‘지하철 1호선’ 같은 경우 원년 멤버로 2년 정도 공연했으니 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죠.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화 중에는 ‘박하사탕’을 말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감정을 준 작품이거든요. 신인이기도 했고, 카메라 앞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어설픈 모습이나 떨리는 모습을 보였어요. 지금은 일부러 하려고 해도 표현할 수 없죠.
배우로서 만족감을 느끼고 계신가요.
행복할 때도 있고 참 난감할 때도 있어요. 희로애락이 다 있죠. 언젠가부터 촬영장에 있는 것이 제 삶의 전부처럼 돼버려서 그 안에서 모든 감정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뭔가 잘됐을 때는 아이처럼 좋아하다가 또 안 풀릴 때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롭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해결해줄 수 없고 결국 스스로 풀어야 하는 문제이니, 그럴 땐 정말 암담해요. 낭떠러지 앞에 떡하니 서 있는 듯한 기분. 굉장히 절망감에 휩싸이죠. ‘이 이상은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복합적인 마음이 들게끔 하는 장소가 촬영장이에요. 그래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면서 성취감이고 또 좌절이면서 슬픔이고 그래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행복 안에는 만감이 있어요.
그동안 편안한 역할을 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느낌입니다. 매번 새롭고, 굴곡 많은 캐릭터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나요.
‘박하사탕’을 찍은 이후로 막 소리를 지르고 우악스러운 캐릭터 제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공공의 적’에서 형사 역할을 하고 나니까 그 뒤로는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거친 형사 캐릭터가 들어왔죠. 이전 배역과 겹치는 역할 제안이 들어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잖아요. 그래도 저는 제 앞에 있는 선택지 가운데 여태 경험하지 못한 역할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캐릭터 변신을 한 것처럼 됐네요.
이제는 나이를 먹다 보니까 예전보다 선택의 폭이 많이 줄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반대로 젊을 때 하지 못했던 역할이 지금 오기도 하죠.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설경구는 “나는 캐릭터보다 이야기 자체에 먼저 동화되는 사람이라 참신한 이야기가 있으면 거기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버린다”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이다.
“어떤 역할이든 쉬운 건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최대한 어렵게 접근하고 고민을 많이 할수록 캐릭터의 밀도가 높아지지 않나’ 생각하면서 연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진한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 설경구의 작품들
‘박하사탕’(2000) / 이창동 감독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달리는 기차를 온 몸으로 받는 ‘영호’는 설경구가 만난 일생일대의 캐릭터다. 처음부터 결말이 제시되고, 이야기는 역순행으로 흘러간다. 민주화의 흔적이 지나간 자리에서 이성을 잃고 자멸해가는 한 남성의 비극적 생애를 포착한다.
‘공공의 적’(2002) / 강우석 감독
‘공공의 적 2’(2005)와 ‘강철중: 공공의적 1-1’(2008)로 이어진 시리즈가 부도덕한 형사 ‘강철중’의 인기를 입증한다. 민중의 지팡이는 공권력을 앞세워 폭력을 일삼고, 부와 명성을 거머쥔 범인은 내키는 대로 살인을 저지른다. 둘 중 누가 더 ‘공공의 적’에 가까운지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 변성현 감독
매번 ‘구겨진’ 역할만 맡았던 설경구를 제대로 ‘펴주고’ 싶었다는 변성현 감독의 말처럼, 매력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조폭 ‘한재호’가 태어났다. 불우한 과거로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한재호와 언더커버 조현수가 보여준 미묘한 감정선 덕에 ‘불한당원’이라는 팬덤 현상이 일었고 설경구는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을 얻었다.
사진제공 네이버영화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글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달리는 기차를 온 몸으로 받는 ‘영호’는 설경구가 만난 일생일대의 캐릭터다. 처음부터 결말이 제시되고, 이야기는 역순행으로 흘러간다. 민주화의 흔적이 지나간 자리에서 이성을 잃고 자멸해가는 한 남성의 비극적 생애를 포착한다.
‘공공의 적’(2002) / 강우석 감독
‘공공의 적 2’(2005)와 ‘강철중: 공공의적 1-1’(2008)로 이어진 시리즈가 부도덕한 형사 ‘강철중’의 인기를 입증한다. 민중의 지팡이는 공권력을 앞세워 폭력을 일삼고, 부와 명성을 거머쥔 범인은 내키는 대로 살인을 저지른다. 둘 중 누가 더 ‘공공의 적’에 가까운지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 변성현 감독
매번 ‘구겨진’ 역할만 맡았던 설경구를 제대로 ‘펴주고’ 싶었다는 변성현 감독의 말처럼, 매력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조폭 ‘한재호’가 태어났다. 불우한 과거로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한재호와 언더커버 조현수가 보여준 미묘한 감정선 덕에 ‘불한당원’이라는 팬덤 현상이 일었고 설경구는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을 얻었다.
사진제공 네이버영화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글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