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육십 먹어도 잘하면 상 주는 거예요. 공로상이 아니에요.”배우 이순재 씨는 지난 11일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올해 90세인 그는 연기 인생 70년 만에 첫 연기대상을 받았다. 이 씨는 “미국의 캐서린 햅번 같은할머니는 30대 때 한 번 타고 60(세) 이후에 세 번 탔다”며 “우리 같으면 전부 공로상(을 줬을 텐데)”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우 나이 든 배우들이 대체로 주연에서 밀려나 조연을 맡고 연말 시상식에서도 의례적으로 공로상 대상만 되어온 점을 꼬집은 것이다. 망백(望百)의 배우는 최근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아 분전했고 현역으로서 당당히 최고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그런 이 씨가 후배들의 진심 어린 축하 속에 품격 있는 일침을 날리는 모습은 여러 가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 48년 뒤 노인 반, 非노인 반… 세계서 가장 늙은 국가2025년은 대한민국 초고령사회 원년이다. 초고령사회란 인구 20% 이상이 노인인 사회를 뜻한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노인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2024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72년 고령 인구 비율이 47.7%까지 올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늙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1, 2위를 차지했다는 홍콩과 푸에르토리코는 하나의 나라라기보다 지역에 가까운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국가 순위로 한국이 1위라 볼 수 있다. 인구의 47.7%면 사실상 절반이다. 48년 뒤면 노인이 반, 노인 아닌 사람이 반인 사회가 된다는 뜻이다. 2000년대 중반, 아주 인상적인 공익광고가 있었는데 저출산이 계속되면 지하철의 노약자석이 사실상 일반석과 자리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 이미지가 신선하기도 하고 내용이 충격적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는데, 그 광고가 현실이 되는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이미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석이 만석임은 물론이고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어르신들이 일반 좌석까지 넘어가 앉아계신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초초’고령사회도 먼일이 아니다. ● 아직도 노인빈곤률 부동의 1위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늘어날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현재 15~64세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71.1%지만 2052년 51.4%까지 줄어든다. 생산가능인구 중심으로 짜인 현 산업 구조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인구(유소년인구+고령인구) 비율인 한국의 총부양비도 올해 42.5명에서 2072년에는 118.5명으로 거의 3배나 껑충 뛰어오를 것으로 예측됐다.노년층도 힘들어지긴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미 노인들이 가난한 나라다. 한국이 OECD 안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낯부끄러운 지표가 몇 개 있는데 노인빈곤률도 그중 하나다. 2020년 기준 40.4%로 무려 1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고령화한 일본의 노인빈곤률도 2020년 기준 20.0%로 한국의 절반이 안 된다. 하지만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2023년 공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노후에 받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지금도 47%에 불과해 OECD 권고치 대비 20%포인트 이상 낮다. OECD 국가 평균(58.0%)과 비교해도 11%포인트 적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고령화 속도라면 돈 낼 사람은 줄고 돈 받을 사람만 급격히 늘면서 기존 금액만큼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대로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면 어쩌면 한국은 그냥 노인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가난한 노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될지 모른다. ● “마땅한 일 없어 가방에 단추 붙이는 알바”대책은 노인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65세 이상 노인 취업자 수가 월평균 394만 명으로 1989년 집계 시작 이래 15~29세 청년(380만7000명)을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처음 집계를 시작한 1989년만 해도 청년 취업자가 노인보다 13배 많았다고 한다. 일하는 노인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는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열악하기까지 한 게 사실이다. 예전에 노인 일자리 관련 기사를 기획하며 어르신들을 여러분 만나 취재한 적이 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꽤 괜찮은 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전력이 있음에도 정년퇴직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식당, 경비, 용역 등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임원까지 역임한 분인데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핸드백에 단추 붙이는 알바를 하고 있다”는 퇴직자도 있었다. 정년을 늘리고 재고용 기회를 확대해 기존 직장이나 동종업계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각자의 특기를 살려 재취업, 창업할 수 있게 지원을 강화해야 하지만, 노사정 간에 겨우 물꼬를 텄던 정년 연장 논의는 물론이고 재고용, 재취업 지원 역시 정치에 막혀 공전 상태다. 연금 개혁은 여러 이해관계자가 다투면서 수십 년째 변죽만 울리고 있다. ● 서울시민 “노인, 70세는 넘어야” 사람들 생각은 바뀌었는데…배우 이순재 씨의 연기대상 수상은 그의 말처럼 노인이 ‘기여가 다 끝난 공로자’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다. 얼마 전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민 1000여 명에게 ‘노인의 연령 기준’을 물은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70세 이상, 75세 이상 등 최소 70세는 돼야 한다고 답한 사람이 응답자 10명 중 7명이나 됐다. 사람들의 생각은 진작에 바뀌었는데 제도와 시스템 변화는 언제쯤 그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필 초고령사회 원년에 벌어진 정치적 사태에 더욱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얼마 전 버스에서 겪은 일이다. 앞좌석에 앉은 노인 한 분이 뭔가 불편하신 듯 계속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곧 내리셔야 하는데 출구까지 빨리 걷지 못해 내릴 곳을 놓칠까 봐 불안하신 모양이었다. 결국 정차하기 전 일어나 출구로 향하시던 노인은 때마침 속도를 줄인 버스에 휘청이다가 그만 갖고 있던 지팡이로 앞에 있던 중년 여성의 머리를 세게 치고 말았다. 노인이 곧장 사과했지만 여성은 정말 많이 아팠는지 “어떻게 그렇게 때리실 수 있어요?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니에요?”하고 톡 쏘아붙였다. 멀리서 기사가 “어르신, 그러니까 그냥 앉아 계시라니까요. 제가 세워 드린다니까” 했다. 노인은 연방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더니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창밖으로 힐끔 더욱 굽어진 듯한 노인의 등을 지켜보는데 괜히 먹먹해졌다. 우리 아빠보다 5살쯤 많으실까. 노인의 버스 이용은 버거웠고, 곧 우리 아빠의 이용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니 남일 같지 않았다.● 고령운전 사고 늘자 쉽게 “운전 제한” 주장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뉴스가 고령 운전자의 사고 소식이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모두가 침통하던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목동깨비시장에서 한 운전자가 골목의 행인들을 치고 질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속보를 보자마자 ‘혹시 운전자가 고령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해 7월 9명을 죽음으로 내몬 서울 시청역 참사를 비롯해 최근 이런 차량 질주 사고의 운전자가 대체로 노인이었던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깨비시장 사고 운전자도 70대 중반의 노인으로 드러났다. 정말 고령일수록 사고를 많이 낼까? 고령 운전자의 사고는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9년 전체 교통사고의 14.5%였던 고령 운전자 사고 비율은 2023년 20.0%까지 올랐다. 그 수도 3만 3293건에서 3만 9641건으로 늘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니 당연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연령별 사고 증가율을 따져도 고령 운전자의 증가율이 높았다. 삼성화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의 추돌사고 증가율은 4년간 연평균 14.4%로 4%대에 불과한 20~50대를 크게 상회했다.이쯤 되면 가장 쉽게 나오는 이야기가 고령 운전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만 75세 이상 운전자는 3년에 한 번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고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데, 검사를 강화해서 통과하기 어렵게 하거나 자진해서 면허를 반납할 수 있게 독려하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운전이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면 제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앞서 본 노인을 떠올려 보면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운전을 못하게 하는 대신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충분할까?● 보행약자 배려 부족, ‘교통 사막’ 지역도 곳곳에네 번의 임신, 출산을 거치며 느낀 게 있다. 배가 부르고 몸이 무거워져 보니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른 배에 가려 발밑이 잘 보이지 않는데 지하철역마다 계단과 턱은 많아 늘 거북이걸음이었다. 버스들은 잘 기다려주지 않았고 만석일 때가 잦았다. 아이 손을 잡고 걸을 때면 횡단보도 신호는 왜 그리 짧은지. 초록색 불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벌써 차들이 정지선을 넘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지막엔 아이 손을 잡고 달리기 일쑤였다. 노인들은 내가 겪은 것과 같은 불편함과 위협을 매일 느낄 것이다. 많이 개선됐지만 우리 대중교통과 도로엔 여전히 보행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실제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요식행위로 만들어놓은 듯한 시설도 적지 않다. 몇 달 전 여러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에서 길 잃은 어르신을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하다 보니 그것만 따라 위로 올라오다 전혀 엉뚱한 곳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편의시설이 있긴 하지만 실제 보행 약자들이 이용하려면 한없이 걷거나 돌아야 했던 것이다. “역 안에서만 한 시간을 헤맸다”는 노인이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방 소도시나 시골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등 대도시는 불편해도 탈 대중교통이라도 있다. 하지만 지방엔 ‘교통 사막’인 지역이 적지 않다. 11년 전 육아휴직 중 지방 근무한 남편을 따라 3개월간 이런 교통 사막 지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버스는 30분~1시간 대기가 기본이었고 그나마 언제 올지 기약할 수도 없었다. 버스를 탄다고 원하는 목적지에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슈퍼라도 가려면 한참 걸어야 했다. 휴직 때라 여유가 있었다지만 소금 하나 사러 왕복 3시간씩 시간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 농사일 등 생업에 종사하는 노인들도 마찬가지일 터다. 이런 곳에선 별도 교통수단이 보완되지 않는 이상 차가 필요했다. ● 운전보조장치 등 노인 이동권 보장안 찾아야무작정 막고 제한할 일은 아니다. 노인들의 이동권은 건강과도 직결된다. 자주 활동하는 노인이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밖에 없다. 관련 연구는 무수히 많다. 2023년 보건사회연구원이 노인 99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노인’ 그룹의 건강이 가장 좋게 나타났다. 굳이 연구를 찾지 않더라도 활력에 차서 열심히 활동하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들어서면서 노인들의 건강 관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국민 5명 중 1명이 불행하거나 아프고 분노하는 사회는 여러 문제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노인들의 권리를 지키면서 안전도 지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노인의 운동, 인지기능을 보완하는 운전보조장치 도입이 한 방법이이다. 일본의 경우 비상자동제동장치, 페달조작오류·급발진 억제 장치, 차선이탈 경보 장치 등 보조장치를 단 ‘서포트카’를 구매할 때 보조금을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특정 연령 이상이 이런 장치를 단다고 하면 비용을 보전하는 식으로 보조장치 장착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도 보행 약자들을 위한 시설을 보강해야 한다. 노인들을 위한 이동 수단과 안내를 늘리고 편의시설, 좌석도 늘어나는 노인 수에 걸맞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고령 인구가 늘면 휠체어 등 보행보조기기를 이용하는 인구가 많아질 텐데 이들 이동방안도 감안해야 한다. 교통문화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해외 대학에서 근무하는 한 교수님이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던 경험을 공유한 적이 있다. 정차할 곳이 마땅찮아 잠시 도로변에 차를 붙이고 부모님을 내리는데, 뒤차들이 내내 클랙슨을 울리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고 한다.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도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버스는 빨리 떠나고, 조금만 느리거나 정차해도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진다. 이런 문화에서 노인들이 설 자리는 없다. ● 누구나 노인이 된다누구나 노인이 된다. 나의 아빠도 곧 그 버스의 노인처럼 거동이 불편해지실 테고, 나 역시 20년 남짓 남았을 뿐이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내 부모님뿐 아니라 나의 하루도 발이 묶일 것이다. 건강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이동권의 수명도 길어져야 한다. 그 다음 운전 제한을 논해야 제한도 실효성을 찾을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운전자 중 면허를 반납한 비율은 권고를 시작한 2019년 이래 내내 2%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아이들의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 요즘만큼 대답하기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 계엄이 정확히 뭐야?” “대통령은 왜 그걸 선포한 거야?” “탄핵은 또 뭐야?” 아이가 정치를 묻기 시작했다.답하는 게 고생스럽긴 해도 아이가 시사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 한편 기특하기도 하다. 놀라운 건 이런 게 비단 우리 아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이 말에 따르면 요즘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대통령, 계엄, 탄핵 등 요즘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단순히 소식만 나누는 게 아니라 누가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판단하기도 하고 서로 간에 토론도 한다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기자가 되기 전까지 정치 현안이나 시사 이슈에 대해 잘 모르는 소위 ‘정치 잘알못(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엔 애초 기자를 꿈꾸며 관련 학과와 모임을 거치고 학생회, 시민단체, 심지어 정당 활동을 하다가 들어온 이도 있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아마 1990년대 후반 이후 학교에 다닌 학생 대다수는 비슷할 것이다. 교실에서 정치 문제를 접하거나 관련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선생님 혹은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되짚어 봐도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왕조시대에도 나라님 흉은 봤다는데,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정치 이야기가 활발한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유독 교정만 청정지대다. 왜? 잘못 꺼냈다간 번거로운 일에 휘말리기 십상이었던 탓이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게 소위 ‘정치 편향적 발언’을 한 교사가 학부모나 아이의 신고로 시도교육청의 감사와 징계를 받았다는 뉴스다. 교사들은 교육자이자 공직자의 한 명으로서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다. 헌법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되어야 할 권리에 가까운 데 반해 교육기본법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지켜야’ 하는 의무다. 잘못해 이를 어겼다가는 누군가로부터 신고를 당하고 괜한 고생을 자초하게 된다. 물론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중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옳다고 가르치거나 더 나아가 진실을 왜곡하면 자질미달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저 정치적 소재를 화두 삼았다거나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특정한 입장이 피력된 것까지 정치 편향이라고 봐야 할까. 편향 사례라고 해서 보면 수업 중 특정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을 예시로 삼았다거나 특정 언론의 자료를 보여준 것에 불과할 때가 적지 않다. 잣대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학교에선 갈등과 충돌 없을 것만 가르치고, 교실에선 정치적, 시사적으로 예민한 소재들이 사라졌다.사실 굳이 학교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요즘 정치 이슈를 접할 수 있는 창구는 무궁무진하다. 우리 아이와 그 친구들도 TV, 휴대전화, 컴퓨터,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고 들었을 것이다. 요즘은 정치 이슈를 상세히 설명하는 SNS 영상과 채널도 많다. 그런데 이런 루트로 정치 이슈를 접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 편견이 생기기 쉽다는 점이다. 뉴스의 출처마다 성격이 다양한데 어떤 출처를 볼지 선택하는 데도 의사가 반영되고 더욱이 요즘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의 경우 알고리즘을 통해 비슷한 것만 골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곁엔 비슷한 콘텐츠만 보다가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도 있지 않나.어차피 어디나 편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그나마 정제된 공간인 학교에서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대면 교육장에선 쌍방 소통이 가능하기에 궁금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을 묻고 조율할 수도 있다.그리고 우리에겐 무엇보다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능력인 탓이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정치인까지 와르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광장정치는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측면에서 선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매우 후진적인 정치의 단면이다. 문제가 생기면 이해 당사자 간에 원만한 토론과 숙의, 사회 공감대 형성, 그리고 합의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첨예한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문제를 거리로 들고 나온다. 그리곤 각자 정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서로 대화하는 대신. 어릴 때부터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두고 토론하고 숙의해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했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매년 열리는 국정감사나 국회 현안질의를 지켜보면, 이런 일에 통달해 있어야 할 정치인들부터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볼 수 있다. 맥락에 닿지 않는 진행, 내 할 말만 하겠단 식의 질의, 답답하면 다짜고짜 내지르는 고성 등은 몇 년째 보기 민망할 정도다. 미국에서 잠시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 때문에 곤혹스러운 순간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곤혹스러웠던 시간을 꼽으라면 단연 발표나 토론 수업을 할 때였다. 그런 수업이 정말 잦았는데 이를테면 역사 시간에 자유무역주의자와 보호무역주의자로 나뉘어 토론을 해보는 식이었다. 당장 돌아가는 정치, 사회 현안과 관련한 토론들도 많았다. 어릴 땐 그 시간이 너무 무섭고 부담스러워서 도망치고 싶단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무척 부러운 수업 문화다. 우리 학생들은 그만큼 토론하고 고민하고 조율할 기회를 갖고 있을까. 한국에서 정치 논의는 자주 금기 취급된다. 비단 학교뿐 아니다. 기사 거리 탐색을 위해 종종 들르는 온라인 카페 중에 자칭 ‘클린 카페’라는 곳들이 있다. 정치적 이슈를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기에 정치 청정지역, 클린 카페라는 것이다. 정치가 더러운 것인가. 찬반이 첨예한 소재를 잘 다루지 못하는 탓에 서로 싸우고 비방해서 그렇지 정치 자체는 지저분한 것이 아니다. 세상만사가 정치다. 조율하고 합의해 가는 것.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의 핵심을 ‘중용’이라 하지 않았나. 불행한 사건으로나마 어린아이들이 현 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니 반가운 일이다. 교원 단체에 따르면 요즘 학교에서 정치 현안에 대해 묻고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관심 갖고 토론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나처럼 내내 정치라곤 모르고 살다가 스무 살 넘어서 갑자기 대선부터 맞닥뜨리는 그런 일은 겪지 않도록 말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일이고 또 한 번의 12월 사태를 막는 길이 될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정치 이슈가 모든 걸 집어삼키기 전인 이번 주 초까지만 해도 한 유명 배우의 사생활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간판 톱스타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욱 화제가 된 건 그가 ‘아빠로서 아이는 책임지지만 아이 엄마와 결혼하진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다. ‘비혼 출산’이라며 새로운 가족 트렌드에 대한 분석 기사들이 쏟아졌고, 급기야 국회의원들과 대통령까지 나서 사안을 언급하고 관련법을 내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며칠 뒤 그 배우가 한 영화제 단상에 나서 전 국민에 사과하고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공식 발표하는 모습은 일련의 사태에서 가장 하이라이트 같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게 국민들 앞에서 머리를 숙여야 할 일이었을까? 그의 개인사는 이토록 화제를 일으킬 만한 일이었나.● 사실 새로운 일도 아닌데…엄밀히 말하면 이 유명 배우의 사례는 흔히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비혼 출산과는 거리가 있다. 보통 비혼 출산이라 하면 자녀를 갖고 싶지만 결혼을 원치 않거나, 결혼제도 하에서는 도저히 뜻을 이룰 수 없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결혼 외 방법으로 자녀를 갖고 키우는 걸 뜻한다. 해외에서 정자 기증을 받고 혼인 배우자 없이 아이를 낳은 방송인 사유리 씨의 출산이 대표적인 예다. 즉 적극적으로 가족을 이루고 자녀를 갖고 싶은 이들이 비혼 출산을 하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룬다. 유럽과 미국 등 많은 선진국에선 이런 식의 가족 구성이 흔하다. 이들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팍스(PACS)’는 1999년 동성 커플을 법적 동반자로 인정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지금은 이용자의 90% 이상이 이성애자일 정도로 누구 할 것 없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결합 제도다. 결혼보다는 제한적이지만 팍스 구성원들은 가족으로서 법적 권리를 누린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불편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이성애자이고 가족으로 살 거라면 왜 굳이 결혼 대신 연대를 선택할까. 기존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졌던 법적 의무와 사회문화적인 속박, 억압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구보다 가부장제 부담이 크고 혼외출산은 기대하기 힘든 한국에서 비혼 가족 제도 도입은 초저출산을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의 하나로 꼽혀 왔다. 이를 볼 때 유명 배우의 사례는 비혼 가족을 염두에 둔 적극적 출산과는 거리가 멀다. 출산이 먼저 있었고 부모가 가족으로 살길 원치 않아서 둘 중 한 명이 아이를 맡아 키우게 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그냥 한부모 가족이 된 것이다. ● 한부모 등 법적 인정받은 가족조차 차별적 시선그렇다면 이 새롭지 않은 가족이 왜 전례 없는 일처럼 화제가 되었을까. 이런 가족조차 낯설 정도로 한국의 가족 문화가 여전히 획일적이고 폐쇄적이기 때문이다.지난 반세기 눈부신 변화와 성장을 이룬 한국이지만 가족 문화만큼은 기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일명 ‘정상 가족’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가 강한 사회다. 정상 가족이란 보통 비슷한 연배의 한국인 아빠와 주부 엄마, 그들의 생물학적 자녀 둘 혹은 하나로 구성된 핵가족으로, 많은 사람이 정상적이고 옳은 형태라 생각하는 가족이다. 이를 벗어난 가족은 법적으로 인정 받은 가족이라 해도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여겨진다. 한부모, 다문화, 입양 가족, 엄마가 일하고 아빠가 주부인 가족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들 수는 결코 적지 않다. 한부모 가족을 예로 들면 국내 이혼, 사별, 미혼 부모 등을 포함한 한부모 가구 수가 2022년 기준 149만 4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약 7%, 15가구 중 1가구에 이른다. 다문화 가구의 경우 2021년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1.7%(38만 5000가구), 가구원은 전체 가구원의 2.2%를 차지했다. 특히 출생아 중에선 100명 중 6명에 이르렀다. 광주, 대전에서 한 해 태어나는 전체 출생아에 맞먹는 수다. 결코 소수자라 보긴 어렵지만, 여전히 소수자로 인식되고 사회에선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외국에선 비혼 상태에서 연애하다 출산하고 아이를 부모 중 한 명이 키우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로 간주돼 온 게 사실이다. 이번 유명 배우 사례도 상대 여성이 당당히 아이를 낳고 키운다고 한 점에서 더 새롭게 인식됐을 것이다. ● 고령사회, 어르신 비혼 수요도 늘 것비혼 출산의 비율이 전체 출산의 5%도 안되는 나라는 한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 유럽 등에선 절반 이상이 비혼 출산으로 태어난다. 결혼을 해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모두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록 새로운 가족 형태는 아니었지만 유명 배우 사례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가족에 대해 얼마나 닫혀있고 편협한가 일깨운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배우가 국민 앞에서 사과하는 장면은 외국인들 눈에 매우 희한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상대 여성이나 아이에게 사과할 일이 있다면 모를까, 우리가 그 사과를 받을 일은 없다. 비혼 가족 제도는 흔히 생각하듯 자유분방한 요즘 젊은이들만을 위해 필요한 제도가 아니다. 고령사회로 갈수록 어르신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독신인 어르신은 물론 이혼, 사별로 혼자가 되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 다시 결혼하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비혼 가족 제도가 도입된다면 많은 어르신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여생의 동반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노인 빈곤률이 높고 노후에 연금 등 사회보장이 약한 사회에선 황혼 비혼 가족이 새로운 돌봄 대안도 될 수 있다.정치권에서 오래간만에 생활동반자법이나 비혼 출산, 동거 지원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는데, 정치 이슈 탓에 다시 묻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건 종북세력 척결이나 계엄 단죄가 아닌 10년, 20년 뒤 미래에 대한 준비다.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 들어선다. 출산율은 조금 오른대도 0.7명 대에 불과하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 없이 5년, 10년 내 큰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78)는 몰라도 “한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 한 그의 말을 들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약 20년 전 한 이 발언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유명 인사가 된 콜먼 교수는 아마도 근래 한국을 가장 자주 찾는 해외학자 중 한 명일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떨어지다 못해 0명대에 이르면서 그의 발언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국을 찾은 콜먼 교수를 12일 서울 동대문구 DDP 아트홀에서 만났다. 콜먼 교수는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이자 영국 내무부, 주택부, 환경부 특별 고문을 역임하고 인구 관련 8권의 책과 150편 이상의 논문을 저술한 인구학 분야 세계적 석학이다. 가장 먼저 그가 지난 세월 수없이 들어왔을 질문부터 던졌다. “한국이 정말 가장 먼저 소멸할까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팔순을 앞둔 노학자가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내가 오래전 했던 말은 ‘조건부’였어요. 한국이 낮은 출산율 경향을 이어가고 이민자도 별로 늘지 않는다면 수학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죠.” 그러나 콜먼 교수는 한국의 상황이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최근 몇 달간 한국에서 전년 동월 대비 출생아 수가 오르고 ‘아이 낳는다’는 청년이 늘었다긴 합니다. 좋은 신호일까요?“출산율이 상승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출생아 수는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고 지난해에는 합계출산율이 0.72명을 기록했습니다. 이건 분명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당신은 한국 저출산 원인으로 ‘압축적 근대화’를 지목해 왔습니다. 특히 전통적 가족 문화가 급격한 경제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남녀 격차가 벌어지고 육아가 여성에 집중된 점을 꾸준히 지적했는데요. “여성들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고용 안정성이 출산과 가정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건 이미 많은 사회과학 연구가 입증한 사실입니다.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장기 투자입니다. 15~20년간 지출과 시간을 묶이게 되는데 이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죠. 당연히 안정적인 고용 상태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고용이 안정적일 뿐 아니라 정책도 안정적이고 일관돼야 합니다. 프랑스가 높은 출산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프랑스 사람들 누구나, 대통령이 누가 되든 관계없이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 프랑스의 지원 정책은 갈수록 나아지고 있고요.”―그런데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선 가족과 자녀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도 많이 옅어진 것 같습니다.“그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서유럽이라고 그런 변화가 없는 건 아닙니다.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거든요. 한국과 프랑스의 가족관에 있어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저는 프랑스에서는 태어나는 아이의 절반이 혼외출산일 정도로 결혼 밖 가족이 많다는 점을 꼽을 겁니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50년대 그러니까 60, 70년 전 영국의 혼외출산율이 4~5% 정도였는데 지금 한국의 혼외출산율과 비슷합니다(※영국의 혼외출산율은 2022년 영국 통계청 기준 51.4%다).”―결혼해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 한국에서 출산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드는 건 사실입니다. 결혼은 단순한 형식을 넘어 많은 문화적 구속과 억압을 내포하니까요. “지금 서구에서 여성의 가족 내 지위와 인식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거나 여성이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식의 인식은 이제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여성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남성도 가장으로서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집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요즘 한국에선 부모조차도 하나의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잘 지원해야 한다는 부담이 전보다 더 커진 거죠.“그건 굉장히 흥미로운 지적이네요.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세계 모든 부모가 자녀로부터 보상을 얻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보통 그 보상이란 자녀를 키우며 느끼는 사랑, 즐거움 같은 것입니다. 물론 자녀가 부유하고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그게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보상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이 최우선적인 문제가 된 것 같군요. 그런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부모와 자녀를 동일시하는 전통적 가족관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시키고 싶어 하고, 이를 자신의 성공으로 여깁니다.“자녀의 성공이 가족과 부모의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건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부모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실패했을 때 그것이 부모의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한국에선) 자녀가 (가족의 성공을 보장하는) 일종의 ‘토큰(token)’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식을 벗어나는 게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모두가 상위 5% 대학에 가고 최고 직업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승리하지 못할 싸움에 에너지와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만난 한국 청년들은 “잘 키우지 못할 바에야 낳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명 ‘완벽한 부모 증후군’입니다. 이런 부담이 저출산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상위 5%를 향해 모두가 달리는 경쟁은 자멸적이고 무의미합니다. 교육과 성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줄이고 조금 덜 경쟁한다면 지금처럼 많은 에너지와 시간, 돈을 쓰지 않아도 될 텐데요.”―가능할까요?“매우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죠. 명문대학 입학 인원에 할당량을 부여하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이미 한국에서 일부 시행 중이지요? 오늘 아침 포럼에서도 누군가 언급했는데, 중앙 정부의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지역에 고급 일자리를 만들고 인구를 분산하면 주택 문제와 각종 비용 압박이 줄어들 겁니다. 다양한 취향과 선호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겠죠. 나는 자녀가 세 명입니다. 당신보다는 한 명이 적군요. 당신은 어떻게 네 명을 키우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다음에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군요.”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최근 모 언론사 기자가 회사 측을 상대로 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이 기자는 언론인 대상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면접 과정에서 회사 임원으로부터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길다는 지적을 받았고, 결국 최종적으로 휴직 공백 등을 이유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소식을 들은 노동조합과 사내 구성원들은 ‘육아휴직자 차별’이라며 즉각 회사에 항의했다. 하지만 사측은 ‘차별은 아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노동청까지 가게 된 것이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는 회사 측의 문제 발언이 명확했기 때문에 금방 해결이 되겠거니 했다. 누구도 아이 키우는 사람을 차별하는 게 ‘옳다’고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한 달여 지난한 싸움을 거쳐 결국 노동청 진정까지 가게 되는 걸 보면서 또 한 번 이런 문제의 해결이 어려움을 실감했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고용상의 불이익, 일명 ‘육아 페널티(차일드 페널티)’는 우리 사회에 적잖이 만연해 있지만, 이처럼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왜일까?● “일 못해서 그런 거야” 증명 어려운 육아 페널티첫째, 육아 페널티는 증명부터 어렵다. 사측이 ‘육아휴직’을 정확히 언급하며 차별의 티(!)를 내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잘 없다. 두 번 육아휴직 한 회사원 A 씨(39)는 동료들보다 수년 늦은 승진에 대해 상사에게 문의했을 때 이런 답을 들었다. “고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한 마디로 동료들보다 일을 못 했기에 승진도 늦다는 이야기였다. 평소 느끼기에 남들보다 좋은 성과를 내왔던 그라 납득할 수 없었지만,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걸지 않고선 증빙할 방법이 없었다. “내 탓이라고 딱 그래 버리니까 그때부터 말문이 턱 막히더라고요. 육아휴직 얘기를 했으면 어떻게든 들이받았을 텐데….” A 씨 말이다.설사 차별을 당한 게 맞다고 해도 그게 A 씨의 육아휴직 탓인지, 성별 탓인지, 심지어는 성격이나 외모 탓인지도 알기 어렵다. 인사에는 정말이지 무수히 많은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도 다양하다. ‘오래 쉰 탓인지 업무 성과가 좋지 않아서’ 또는 ‘너는 10년 일했고, 네 동기는 13년 일해서’ 승진을 못한 거라고 설명하면 대부분 대거리할 말이 없어진다. “네가 월등히 잘했다고 해 봐. 승진 못 했겠니? 휴직 탓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좀 더 정진해.” 결국 이런 소리를 듣고 끝나기 십상이다.● 유자녀 vs 무자녀…서로 다른 입장두 번째 이유는 좀 더 골치 아프다. 노노(勞勞) 간에도 입장 차가 있어 회사가 마냥 유자녀 직원을 두둔할 수 없다. 그러기엔 요즘 회사에 무자녀 직원도 많고 또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은 업무만 두고 객관적으로 평가받길 바라는 게 사실이다. 내가 ‘쎄빠지게’ 일하는 동안 집에서 예쁜 아기를 키우다 돌아온 동료가 나와 같은 평가를 받는 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둔 B 씨(40)도 인사 담당 직원에게 육아휴직 기간 경력 인정 관련 문의를 했다가 “육아휴직자와 비육아휴직자를 동일한 잣대에서 평가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 “어쨌거나 (B 씨가) 쉰 건 맞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실제 요즘 무자녀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유자녀 동료들이 누릴 수 있는 복지혜택이 점차 늘어나면서다. 요새 기업 HR 담당자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것 중 하나가 ‘왜 자녀 장학금은 있고 본인 장학금은 없느냐’ 같은 ‘유자녀 vs 무자녀’ 불만 충돌이다. 최근 육아휴직 급여와 기간이 늘고, 단축근로 범위가 확대되고, 각종 가족 지원도 커지면서 무자녀 직원들 가운데 이제는 되레 자신들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졌다. 이런 가운데 육아 페널티를 해소하자며 육아휴직자의 경력 인정 같은 이야기를 해봐야 흔쾌히 수용될 리 없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안 그래도 혼자라 서러운데 (유자녀 동료들은) 휴직도 누려, 일찍 들어가, 지원금 받아, 그러면서 일도 나만큼 한 걸로 인정받겠다니 그건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반 농담, 반 진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육아로 인한 불이익부터 명확히 해야앞선 두 가지 이유는 육아 페널티가 더 이상 못된 업주나 상사, 동료들 같은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람과 (인사)제도, 집단과 집단 간의 문제가 된 것이다. 과거 모성보호제도가 얼마 확산되지 않았을 때, 소수의 이용자와 소수의 억압자만 있었을 때는 각 개인에게 유자녀 직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정신 같은 것을 요구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두루뭉술하고 이상적인 말로 다수의 사람을 설득해서 육아 페널티를 없앨 순 없다. 제도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일단 차별은 없어야겠다. 누구든 업무능력과 무관하게,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처지로 인해 부당하게 차별받아선 안 된다. 그게 여성이든, 아빠든, 육아휴직자든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진 무엇이 육아휴직으로 인한 차별이고 어디까지가 공정한 차등인지 잣대가 모호했다. 사업장별로 상황도 천차만별이라 ‘2년까지 휴직은 동일평가, 2년 넘어가면 차등’ 이렇게 무 자르듯 하기도 어려웠다. 이러다 보니 근로감독하기도 쉽지 않았다. 부당해고, 육아휴직 미허용 같이 차별행위가 선명한 위반 행위와 달리 ‘부당 처우’는 적발해서 처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다. 정부가 꾸준한 사례 수집과 단속으로 전범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이 불이익하고 부당 처우인지 좀 더 명확한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다. 지금보다 정확한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근로자들도 보다 안심할 수 있고 기업도 불이익을 범하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육아가정뿐 아니라 모두가 누려야 할 워라밸그럼 무자녀 직원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게 아니냐고 걱정할 수 있다. 육아휴직과 단축근로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없앤다고 무자녀 직원이 피해를 입진 않는다. 둘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든 말든, 개인 사정이 있든 없든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 평가하는 건 ‘공정’한 게 아니라 그냥 ‘기계적 평등’일 뿐이다. 진짜 공정한 건 오히려 유자녀 직원들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 페널티’를 없앤다고 유자녀 직원에게만 ‘육아 인센티브’를 주는 건 조심해야겠다. 그런 건 직원 간에 위화감을 부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녀가 있든 없든 ‘워라밸’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모두가 누릴 수 있다면 딱히 서로를 질시할 필요가 없다. 육아휴직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부모나 친척 돌봄으로 불가피하게 휴직하거나 일찍 퇴근해야 한다면, 피치 못할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내야 한다면 쉬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돌봄휴직’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 미래엔 부모나 형제, 혼외반려자, 반려생물까지, 돌봐야 하는 대상이 확대될 수 있으니 말이다.육아 페널티는 역설적으로 유자녀와 무자녀까지 아우르는 범복지 시스템이 꾸려져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먼 길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가보면 된다. 지금부터.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이 보고 싶다, 그치?”벌써 몇 번째 아이들에게 되묻고 있었다. 둘째가 친구 생일 기념 ‘파자마 파티’를 한다며 생애 처음 외박한 날, 어쩐지 휑뎅그렁한 저녁 식탁을 보며 남은 아이들에게 계속 둘째 없으니 허전하다, 둘째 벌써 보고 싶다 되뇌었다. 고작 하룻밤 외박이고 아이가 넷에서 셋이 됐을 뿐인데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허전함’이라니. 넷인 삶에 적이 익숙해졌던가 보다. 많은 사람이 “넷을 키우다니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지내다 보면 ‘뉴노멀’에 익숙해지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 키우는 기쁨이 힘듦을 상쇄하고도 남아 힘들단 생각보단 행복하단 생각이 크다. 아마 부모들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각자의 사정과 생각이 다르기에 남에게 출산을 권하진 않지만, 육아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소식은 여러 의미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 “올해 출산율 반등할 것 같다”통계청에 따르면 8월 출생아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000명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런 증가세는 두 달째다. 2024년 8월 출생아 수는 2023년 8월에 비해 1124명(5.9%) 증가했다. 7월에도 1516명 늘어 12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최근 방문한 한 저출산 토론회에서 정부 측 자문역을 맡고 있는 한 전문가는 “올해 출산율이 반등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출생아 수뿐 아니라 미래 출산을 가늠할 수 있는 몇몇 지표들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공개한 결혼·출산·양육 및 정부 저출생 대책 인식 조사에서도 결혼과 출산 의향을 묻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3월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2000여 명 조사가 전 국민을 완벽히 대표했다고 하긴 어렵고 ‘의향이 있다’가 반드시 ‘한다’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기존에 늘 언론지상을 장식했던 ‘의향이 줄었다’는 설문조사 결과보다는 분명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저출산이 바닥을 찍은 걸까? 누구도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최근의 전환적인 분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동안 한국의 압도적(!)인 저출산 기록 행진엔 사회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육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사회 전반의 비관적 분위기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육아 부정적 인식 걷어내기 급선무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청년들과 육아 이야기를 해보면 예외없이 ‘무섭다’, ‘감히 엄두가 안 난다’ 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 육아는 물론 힘들고 어렵다. 그런데 무섭고 감히 엄두가 안 날 정도의 일일까. 이런 말은 (내 기준에선) 번지점프를 하거나 귀신의 집에 들어갈 때나 쓰는 말이다. 육아가 그런 일일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많은 청년이 육아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다.그만큼 육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하다는 뜻일 터다. 한양인구문제연구원 인구사회문화 연구센터가 올 6월부터 10월까지 10대 이상을 대상으로 결혼·출산·육아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단어를 설문조사했다. 결과는 행복, 감동이라는 단어를 꼽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의무, 스트레스, 고통이라는 단어를 꼽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육아에 대해선 행복, 감동보다 의무, 스트레스를 떠올린 사람이 더 많았다. 상위 4개 단어가 ‘아기’라는 중립적인 단어를 제외하면 모두 부정적이었다. 설문엔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말은 없었지만, 위험, 후회 같은 단어가 적잖이 꼽힌 걸 볼 때 두려움, 공포가 있었으면 그를 뽑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청년뿐 아니라 기혼자들과 이야기를 나눠 봐도 육아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만연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순간들이 분명 많았을 텐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라 하면 ‘힘들다’, ‘후배들에겐 낳지 말라 한다’, ‘아이는 최대한 늦게 가지는 게 좋다’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아이를 좋아하고 키우고 싶었던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으면 겁에 질릴 수밖에 없다. 앞서 7, 8월 출생아 수 증가는 그 선행지표인 혼인이 늘어난 영향도 큰데, 육아에 대한 공포가 만연할 시 향후 결혼이 늘더라도 출산은 그만큼 따라 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두려움 부추기는 “심각, 위기” 경고육아에 대한 인식이 왜 이렇게 부정 편향되었을까. 원인을 한두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다. 사회경제적인 어려움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이 키울 때 들어가는 품과 비용, 부모들의 ‘바이탈부터 멘탈까지 탈탈’ 털어가는 현실 고충 사례들은 아이 키우기 좋은 집 마련은커녕 취업조차 요원한 청년들에게 두려움을 심기 충분하다. 미디어 콘텐츠의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에게 ‘육아와 관련해 부정적인 모습을 주로 어디서 접하냐’고 물으면 TV, 뉴스, SNS 등 주로 미디어라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SNS에도 독박육아의 고충이나 아이 키우는 부모의 바쁜 일상을 다룬 콘텐츠가 많다. 반복된 저출산 위기 경고가 외려 역효과를 냈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과 각종 콘텐츠에서 심각하다, 위기다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저출산 인식을 고착화하고 젊은 세대로 하여금 육아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앞서 한양인구문제연구원 조사에서 ‘저출산 극복 관련 미디어’를 유형별로 나눠 선호도를 조사했는데 저출산 심각성을 강조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이들은 감성적 광고, 정보를 담은 공익광고를 본 사람들과 비교해 결혼·출산 의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청년들을 인터뷰했을 때도 “저출산 위기 경고가 지긋지긋하다”, “더 애를 낳지 말란 말로 들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안 낳아도 되지만 ‘못’ 낳는 사람 없게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개인의 선택이고 거기에 옳고 그른 것은 없다. 하지만 무서워서, 엄두가 안 나서,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아이를 ‘못’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건 문제가 있다. 지금 청년 중엔 그런 사람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나온 결혼·출산 의향과 출생아 수 증가 소식은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여러 제도적 보완과 함께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는 것이라면 거대한 초저출산의 추세에도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생대응수석도 23일 한 방송에 나와 “저출생 반전의 신호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진정 반전의 시작이 되려면 청년들에게 지속해서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넷 키우니 힘들겠다’가 아니라 ‘넷 키우니 행복하겠다’는 말을 듣는 날이 올까. 정부의 세심한 정책 운용을 기대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한국 시각 10일 오후 8시,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 문학상 발표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한국 작가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에 그저 누가 되는가, 호기심으로 지켜보다가 “South Korean author, Han Kang(한국인 작가, 한강)”이 호명되는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다른 상도 아니고 노벨 문학상을, 버나드 쇼와 펄 벅, 헤세, 헤밍웨이, 카뮈가 탄 그 상을 한국인 작가가, 한국 작품으로 수상하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감개무량했다. 수상 직후 공개된 노벨위원회와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는 ‘한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어릴 때부터 한국어로 된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소식이 한국 문학 독자들과 내 친구 작가들에게도 좋은 일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수상은 한국어와 한글로 작품활동을 하는 많은 작가, 그 독자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겼을 것이다. 마침 수상일은 한글날 바로 다음날이었다.● 노벨 문학상 탔지만…“학생 10명 중 2명 교과서도 이해 못 해”‘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 문ᄍᆞ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ᆞㅣ(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훈민정음 서문은 너무도 인상적이라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글 창제 목적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한글은 나라말을 오롯이 담기 위해 창제됐다. 세종과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머리를 맞댄 덕에 우리는 우리의 말은 물론 생각과 문화, 그 미세한 차이까지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그릇을 갖게 됐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같은 성찬도 이런 훌륭한 그릇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어 맞춤 제작이긴 하나 한글은 그 자체로도 매우 우수한 문자다. 음운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만들었기에 전 세계 문자 중 가장 많은 소리를 담을 수 있다고 한다. 한글의 독창적이고도 과학적인 창제 원리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글날만 되면 언론을 도배하는 건 외국어 잠식, 한글 뜻 모르는 아이들, 독서 인구 최저치 같은 우울한 소식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그런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 교원 5848명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을 조사했는데, 교원들 91.8%는 아이들의 문해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도움 없이는 교과서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이 전체 학생 중 21% 이상이라고 답한 교원은 절반(48.2%)에 달했다. 조사를 통해 수집된 문해력 부족 사례를 보면, 학생들은 시발(始發)점을 욕으로 알아듣고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이해했다고 한다. 두발 자유화 두발을 두 다리, 족보를 족발보쌈세트 줄임말로 안 아이도 있었다. ● 어른도 할 말 없어…절반 이상 1년에 책 한 권 안 봐인터넷에 떠도는 요즘 아이들 맞춤법 오류 사례를 보면 ‘이것 웃기려고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것들도 많다. 안 핵갈려요(안 헷갈려요). 권투를 빈다(건투를 빈다), 문안한 스타일(무난한 스타일), 골이따분한 성격(고리타분한 성격), 유종애미(유종의 미), 눈을 부랄이다(눈을 부라리다), 일해라 절해라 한다(이래라저래라 한다) 등. 놀라운 건 현직 교원에게 보여주었더니 요새 일기나 과제를 받아 보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문해력 저하는 그만큼 한글로 읽고 쓰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아이들만 뭐라 할 건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19세 이상 성인의 독서율도 4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57%, 즉 절반 이상은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온라인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어른들의 국어 수준도 만만찮음을 볼 수 있다. 금새(금세), 않된다(안 된다), 어떻해(어떡해) 같은 맞춤법, 띄어쓰기 오류는 물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래어로 점철된 문장(시크한 인상과 큐티한 복장), 비문, 비속어까지, 게시물 하나 걸러 하나씩 이런 글을 발견할 수 있다. ● ‘국어보다 영어’ 입사·채용 시험서도 홀대받는 국어‘나랏말ᄊᆞ미’ 이런 상황인데 우리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남의 나라말, 영어 교육에 내몰린다. 내 주변에도 자녀를 영유아 때부터 영어 사설 기관(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가 적지 않다. 한창 국어 단어와 표현을 왕성히 흡수해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영어 단어와 노랫말부터 배운다. 언젠가 지인들 모임에서 유치원생쯤 되는 아이에게 노래를 시켰더니 영어 동요를 불러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며 매일 영어 노래를 부른다는데, 다들 대단하다며 감탄했지만 솔직히 씁쓸했다. 저맘때쯤 한창 불러야 할 우리 동요에 담긴 한국말이 얼마나 예쁘고 아기자기한데…. 저 아이는 모르고 크는 게 아닐까.물론 국어를 등한시하고 영어 교육에 열 올리는 게 부모와 아이들 탓만은 아니다. 각종 입학, 채용 시험에서 영어가 변별력이 되다 보니 영어 사교육에 아니 몰릴 수 없다. 얼마 전 만난 한 외국인 취재원은 한국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에세이(글쓰기) 시험이 거의 없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거주해 본 그는 각국에서 입학, 채용 시험을 경험했는데 대부분 나라에서 에세이 시험이 있는 반면 한국에선 글쓰기 시험이 거의 없고 대체로 단편적인 지식이나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많았다는 것이다.이렇게 국어가 중히 쓰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국어를 공부할 이유가 없다.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꼭 필요한 스펙과 정보만 습득하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자기기를 통한 짧고 빠른 콘텐츠 소비까지 확산하면서 긴 호흡의 국어를 읽고 쓸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 한강의 수상에서 그치지 않기를노벨상 수상 소식 직후 각종 온라인 서점에서 한강의 소설이 동나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품귀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문학상 수상 소식을 계기로 한 명이라도 더 책을 읽고 한강 작가의 글 세계도 접할 수 있게 됐다니 기쁘다. 부디 이런 열기가 금세 사그라지지 않고 다른 K문학 작품으로, 또 다른 책으로 번져 나가길 빈다. 그게 한강 작가도 수상소감에서 바란 긍정적 선순환 아닐까. 우리가 이토록 기쁘고 뿌듯하게 맞이한 노벨 문학상 수상은 국어가 좀 더 소중하고 중요하게, 그리고 많이 쓰여야 또 나올 수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서울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필리핀 가사관리사 두 명이 무단이탈한 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생각보다 빠르긴 하지만 사실 무단이탈 사고는 예고된 일이었다. 가사관리사들의 임금이 제조업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 임금보다 낮게 책정되면서 “이럴 거면 다른 일하지 뭐 한다고 가사관리사 하겠느냐”거나 “차라리 불법체류자로 식당 일을 하는 게 더 낫겠다” 같은 회의적인 반응이 제도 도입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이탈자들이 정말 임금 불만으로 작정하고 무단이탈한 건지는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탈과 불만은 분명 또 불거질 것이다. ● 돌봄 부담 줄여? 12년째 부족한 아이돌봄 지원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은 육아 가정의 돌봄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 등 외국에서 돌봄 인력을 들여와 활용함으로써 육아 가정의 양육 비용 부담을 경감한다는 것이다. 맞벌이, 한부모 육아 가정 입장에서 돌봄 비용이 부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들이 없는 시간 쪼개 이모님 면접을 보고, 고심 끝에 모신 이모님이 그만두신다면 절망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멘탈이 탈탈 털려 ‘요샌 이모복(福)이 오복(五福)’이라며 탄식하는 이유는 돌봄이 그저 가격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줄어 두 명도 잘 낳지 않는 시대에 갈수록 더 금지옥엽이 되어갈 자녀를 위해 저렴한 돌봄을 들이고픈 부모가 앞으로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물론 돌봄 수요는 다양할 수 있다. 사정이 어려워서 저렴한 돌봄을 이용할 수밖에 없거나, 영어 등 목적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원하는 집도 분명 있는 게 사실이다. 후자라면 굳이 외국인 돌봄 인력을 저렴하게 만들어서 들여올 일은 아니다. 가사관리사의 다양성을 키우는 차원에서 현 가사관리사 시장에 외국인이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 될 일이다. 그럼 언어와 교육에 특화된 더 우수한 인력이 들어올 수 있다. 돌봄 비용이 부담인 가정을 위하는 것이라면 제발, 딴 거 하지 말고 이미 있는 제도부터 개선하시길 바란다. 어느덧 15년이 된 아이돌보미 지원사업은 여전히 인력, 지원 모두 충분치 않다. 아직도 돌보미가 부족해 줄을 서야 하는 지역, 시간대가 있고, 지원금도 예산 한정 탓에 특정 소득 이하 가정만 받을 수 있다.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부끄럽지만) ‘애국자’ 소리 듣는 아이 넷 엄마 기자도 지원 대상에 들지 못해 매달 월급의 60~70%를 아이돌보미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담당 부처에서 예산을 확대해달라고 계속 개선안을 올리고 있지만 잘리고 거부되길 수 차례다. 이래 놓고 갑자기 비싼 돌봄 탓을 하며 저렴한 외국인 돌보미를 들여오자니 당황스러울 뿐이다. 아이돌보미 예산 자를 때는 비싼 돌봄이 문제가 아니었던가.● 최저임금 차등, 장기적으로 국내외 인력 질 악화시킬 것 값싼 돌봄이 최저임금이란 벽에 가로막히자 정부와 서울시는 최저임금 차등화까지 들고 나왔다. 이건 정말이지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뒤집어엎는 일이다. 최저임금 차등화는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의 가장 큰 쟁점이자 노사 간 해묵은 갈등 사안이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특정 직군, 특정 국적부터 트고 볼 일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애써 증진한 가사관리인력의 권리와 위상은 또 어떤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측이 이유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가 국내 가사관리 인력의 지속적 감소, 고령화인데 가사관리 인력이 계속 줄고 고령화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처우가 열악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사관리사 하면 과거 ‘식모’나 ‘파출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중년의 지인들이 일자리를 찾을 때 아이돌보미 등 가사관리 일자리가 어떠냐고 추천하는데, ‘나이 들어서 왜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느냐’는 식의 부정적인 답을 받을 때가 많았다. 이런 인식은 그동안 가사관리 인력의 일도 일이지만 급여가 너무 낮았던 데서 기인한다. 이미 국내 민간업체 가사관리 인력의 상당수가 중국 동포로 채워지며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는 상황을 감안할 때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낮은 급여는 국내 가사관리 인력의 임금과 지위를 더 열악하게 끌어내릴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건 가사관리 인력 지원자를 더 줄어들게 할 것이고 인력 감소는 인력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 여성이 하던 무급 노동, 外여성이 싼값에…‘여성=육아’ 인식 강화 우려최근 가사관리사의 최저임금 차등화에 동의한다는 한 정치인이 쓴 칼럼을 읽었다. 우리나라 필리핀 가사도우미 임금은 홍콩의 3배다, 싱가포르에서도 필리핀 도우미가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함으로써 여성이 커리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시작을 도울 수 있는 변화다…. 가사관리사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철저히 우리 출생아 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역할만 풀어놓은 걸 보고 이것이 국민을 대표해 입법을 책임진 사람의 생각이라는 데 실망과 뜨악함을 금할 수 없었다. 돌봄 인력이 누구고 어떤 처우를 당하든 아이만 잘 낳아 기를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난 세월 많은 능력 있는 여성들을 가정으로 내몰았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지상목표를 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던 여성들이 개인의 꿈을 포기했고, 그들이 무급으로 봉사한 가사와 육아의 가치는 평가절하되었다. 작금의 여성들이 그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출산을 거부하고 있는데, 나라와 지자체는 ‘그럼 그 고된 일을 다른 여성에게 시킬게’라며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있다. 이게 모순적이라는 걸 정녕 그들은 모르는 걸까. 육아휴직자가 늘고 육아기 단축근로 이용자도 서서히 늘고 있다고 하지만 육아휴직 이용자 70%, 단축근로 이용자 90% 이상이 여성이다. 여전히 여성이 육아의 상당 부분을 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값싼 여성 인력에 육아를 전가한다는 발상은 언제든 힘든 상황이 오면 다시 엄마가 그 짐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 ● 다양한 선택지 좋지만 저렴하겐 안된다돌봄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것뿐인데 뭘 그리 예민하게 생각하냐고, 너무 앞선 걱정이니 일단 좀 지켜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주는 건 좋다. 대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겠다는 생각은 접어주길 바란다. 그런 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걸 최근의 이탈 사태가 보여주었다. 장기적으로 국내 돌봄 시장과 문화에 악영향이 될 가능성도 높다. 다행인 건 지금이 본사업이 아닌 시범사업 기간이라는 점이다. 부디 정부와 서울시가 빨리 문제를 깨달아주길 바랄 뿐이다. 저렴한 돌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재벌가와 결혼했다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 하지만 사실 주인공의 삶은 지옥 같다. 배우자와 그 가족들이 제멋대로 굴어도 대거리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고, 가족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제사까지 준비해도 돌아오는 건 당연한 일을 한다는 반응, 그리고 눈칫밥뿐이다. 결국 숨 막히는 결혼에서 벗어나고자 주인공은 이혼을 결심한다.’ 2024년 상반기 방영된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 줄거리 일부다. 제목과 줄거리를 보니 며느리 눈물 쏙 빼는 ‘시월드(시댁 혹은 시집살이)’ 드라마인가 싶지만, 아니다. 재벌가 자제가 여자, 평범한 배경의 신데렐라 주인공이 남자다. 즉 주인공을 괴롭힌 건 시집살이가 아니라 ‘처가살이’였다. 재벌가 결혼, 시한부 인생 등 뻔한 소재를 얽으면서도 이런 변주 덕에 드라마는 호평을 받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위의 처가살이라는 소재가 ‘변주’라는 건 현실에선 여전히 반대 상황이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명문대 사위들이 전을 부치고 제사 준비하는 모습이 화제였는데, 현실에서 며느리들은 명문대를 나오건 안 나오건 오랜 세월 전을 부쳐 왔다.2030, 여전히 “시집살이 두렵다”최근 젊은 2030 세대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결혼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시월드’를 꼽는 여성들이 여전히 많았다는 점이다. 30, 40대는 물론 20대 젊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성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유부남인 30대 아는 동생에게 인터뷰 이야기를 했더니 그도 의아하다는 얼굴로 이렇게 되받았다. “시집살이요? 언젯적 이야기예요? 우리 와이프는 엄마 집에 가면 우리 엄마가 차린 밥 먹고 설거지도 안 해요. 내가 다 하는데요?!” 이 지인의 말처럼 과거 같은 시집살이는 보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나 어릴 때만 해도 며느리를 새벽부터 밤까지 노예처럼 부리면서 따뜻한 말은커녕 하대와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뜨악한 시집살이 사례를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며느리는 전통 가족 안에서 그야말로 을(乙) 중에 ‘슈퍼 을’이었다. 오죽하면 ‘시집살이는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말까지 있었을까.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 이런 시집살이를 겪는, 혹은 겪을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을 잘 얻어먹기만 하고 오는 며느리 중 한 명이다. 엄마 통해 간접경험…“세상 빨리 안 바뀌어”그런데 젊은 여성들은 왜 아직도 시집살이를 두려워하는 걸까? 현재 20, 30대 여성 중엔 엄마나 주변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시집살이를 경험한 사람이 많다. 직접 겪진 않았어도 그 고충을 옆에서 지켜봤다. 24세 여성 A 씨는 명절, 제사 때마다 엄마와 함께 제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엄마가 음식을 엄청 많이 해야 했는데, 그거를 제가 다 옆에서 같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매년 명절만 오면 제가 다 두려울 정도였거든요.” A 씨는 본인이 결혼했을 때 그런 걸 요구하는 시댁을 만날까 무섭다고 했다.세상이 많이 바뀌었대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게 많다는 점도 이들이 든 이유다. 역시 24세인 또 다른 여성 B 씨는 친구 사례를 꺼냈다. “제 친구 남자 친구가 신발 같은 것도 자기가 안 빨고 그냥 베란다 놔두면 어머니가 알아서 빨아주시고, 밥도 차려놓으면 먹고 설거지도 안 한다고 했거든요. 어느날은 남자 친구가 ‘혹시 된장찌개 끓일 수 있냐’ 묻더라는 거예요. ‘밀키트 사 먹으면 된다’ 그러니까 자기는 그런 거 싫다고, 못 먹는다고, 직접 끓여달라 그러더래요. 그런 애들 아직 있는 거 보면 세상은 그렇게 빨리 안 바뀌는구나, 그런 생각 들죠.”결국 결혼하면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과거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 기대되던 전통적 역할에 어느 정도 종속될 거라는 게 젊은 여성들이 가진 두려움이었다. 명문대로 꼽히는 대학을 졸업한 29세 직장 여성 C 씨는 유년 시절 설거지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한데 그 이유가 서글프다. “우리 엄마, 아빠가 귀에 못이 박히게 한 얘기가 ‘어차피 시집 가면 만날 설거지할 텐데 지금부터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시부모님도 이런 생각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무리 나 혼자 거부한다고 되겠어요?”(C 씨)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차별과거와 비교할 때 사소하고, 어쩌면 시부모님이나 남편은 깨닫지도 못할, 무의식중에 나온 별 뜻 없는 행동을 차별이라 하고 시집살이로 부르는 건 과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다’는 게 여성들의 말이었다. “친구 중에 시댁 일로 싸우다가 결국엔 이혼한 친구가 하나 있어요. 결혼할 때 남편이랑 명절 공평하게 챙기기로 약속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명절 당일에는 무조건 남자 집에 가더라는 거예요. 친구가 그걸로 계속 뭐라고 하니까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남편은 이해를 못 하더라는 거죠.” 37세 여성 D 씨 말이다. “사실 차별이란 게 진짜 치사해 보여서 말하기도 어려운 것들이었거든요. 예를 들면 시댁에서 닭을 삶았는데 다리를 자기만 안 준다든가. 근데 그런 거 하나하나가 쌓이면 사소하지 않잖아요. 집안에서 며느리 위치를 보여주는 건데요. 막말로 여자들은 시댁에서 누워있는 것조차 불편한데. 사위는 ‘백년손님’이잖아요?”차별이 크냐, 작으냐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며느리의 지위에 대한 인식, 가부장제 문화, 남편이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불편하다는 게 여성들 말이었다. 그 때문에 닭다리를 안 주거나, 명절 당일은 늘 시댁이 우선순위인 게 결코 작고 사소한 차별로 치부될 수 없었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여성이 여전히 낮은 위치에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 때문이었다.美 ‘캣 레이디’ 논란…여성 전통 역할에 반발, 韓뿐만 아냐여성들의 이런 생각을 피해의식이나 과대망상으로 치부할 순 없다. 여권이 크게 신장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많은 성차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OECD 부동의 1위다.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 역시 11년째 꼴찌다. 부부 중 누군가 일을 포기해야 할 때 일을 포기하는 건 대체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생애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 여성이 전체 10명 중 4명에 이른다. 입사할 땐 분명 여자가 많았는데 시간이 흘러 중간 관리자쯤 가면 남자만 남는 직장이 허다하다. ‘여성은 이럴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기반해 알게 모르게 성별분업을 하고 있는 직장도 많다. 만화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여성은 대체로 서브 캐릭터다. 많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이런 차별이 강화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관련 설문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결혼과 출산에 부담을 느끼거나 이들을 기피하는 비율은 늘 남성보다 여성이 높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2024년 청년 인식 조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은 남녀 중 결혼 의향이 없고 나중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은 22.8%였는데, 남녀로 나눠 보면 남자 13.3%, 여자 33.7%로 여성이 2배 이상 많았다.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 역시 남녀 차이가 큰데 61.1%, 남자는 69.7%, 여자는 51.9%였다. 특히 25~29세 젊은 여성은 34.4%에 불과했다. 미국에서도 ‘캣 레이디(Cat Lady·아이 없는 독신 여성을 비하하는 말)’ 논란이 한창이다. 공화당 밴스 부통령 후보가 과거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통령 후보 등 일부 여성들을 두고 “고양이나 키우는 독신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나라의 미래까지 망친다”고 비판한 발언이 소환되면서다. 이로 인해 공화당에서 등을 돌린 여성이 적지 않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출산, 가사, 내조를 강요받으며 차별당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비단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올 추석엔 함께 전을 부치자여성들이 일방적으로 희생해 왔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남성들이 잘못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전통사회에서 남녀의 성 역할이 그러했고, 그로 인해 남성들도 피해를 봤다. 남성은 가장으로서 책무와 부담을 크게 지어 왔다. 다만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 남성보다는 여성이 결혼과 출산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더욱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출산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여성이다. 추석이다. 오래간만에 모인 가족들이 서로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터다. 혹 저출산이 문제라며 혀를 차고 있다면 지금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 설거지나 전 부치기를 돕는 건 어떨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년 기념식이 4일 오후 6시 고려대 CJ법학관에서 열린다. 식사 후 정년 기념 강연과 환송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회사 출근하자마자 아침 댓바람부터 펑펑 울었다. 이 나이에 혼나서? 어디가 아파서? 아니, 그날 조간에 나온 장기실종아동 송혜희 양(당시 17살)의 부친, 송길용 씨(71)의 부고 기사를 보고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 현수막의 주인공, 혜희 양의 아버지 송길용 씨가 지난 2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가끔 지나가다 전단지나 현수막을 보면 ‘아직도 못 찾았나 보다’하고 안타까워했을 뿐 자세한 사정은 몰랐는데, 부고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송길용 씨는 딸이 실종된 1999년부터 25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현수막 1만 장을 달고, 전단 1000만 장을 배포했다고 한다. 그간 이동 거리도 100만km에 달한다. 사망한 날도 칠순을 넘긴 아버지는 현수막을 달러 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애타게 찾던 딸을 결국 생전에 다시 보지 못하고, 경기 평택의 어느 도로 위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 현수막 1만 장, 전단 1000만 장…생업 접고 딸 찾아 25년송탄여고 2학년이던 길용 씨의 둘째 딸 혜희 양은 1999년 2월 13일 학교에 공부한다며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막차를 타고 내린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몸에서 술 냄새 나는 성인 남성이 혜희 양의 뒤를 따랐다는 목격자 진술이 있었지만 남성을 찾진 못했다. 당시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논과 밭뿐인 농로였고 CCTV도 없었다.“공부하고 올게요”하고 나간 막내딸, 엄마 몰래 쥐어 준 5000원에 엄지를 척 들어 올렸던 모습이 생생한데 행방불명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길용 씨는 생업을 뿌리치고 직접 딸을 찾아 나섰다. 1t 트럭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달고 전단을 돌렸다. 벌어놓은 돈은 모두 전단지와 현수막을 만드는 데 썼다. 당연히 남부럽지 않았던 가세는 기울었고 온갖 병도 생겼다. 현수막을 달다 떨어져 허리를 다쳤고 뇌경색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됐다. 보도에 따르면 아내인 혜희 씨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다 딸 실종 몇 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길용 씨도 한때 몹쓸 생각을 했다. 다리에서 뛰어내린 적도 있고 농약도 마셔봤다. 그렇지만 그의 곁에 있는 큰딸과, 어딘가 있을 둘째 딸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내가 찾으려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내 딸 찾아주겠냐.”(중앙일보 2019년 2월 13일) ● 수사 종결, 주변 만류에도 포기 않고 전국 돌았는데…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한시인들 편했을까.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자면서도 늘 딸 혜희 양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딸은 지금 밥이나 제대로 먹는지도 모르는데, 자신만 따뜻한 방에서 호의호식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덕에 딸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실종아동’이 됐다. 전단지를 나눠주면 “잘 알고 있으니 이 전단은 다른 사람 주라”고 독려하는 시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길용 씨 혼자 이뤄낸 일이다. 부정(父情)은 위대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딸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인들은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이 정도 찾아서 안 나오면 이 세상에 없는 거라고 매정한 말로 길용 씨를 단념시키려 했다. 경찰 수사도 2004년 종결됐고 납치 혹은 인신매매 공소시효도 2014년 끝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간은 딸을 배웅하던 1999년 2월 46살의 아빠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딸이 용돈을 모아 개통해 준 016 휴대전화 번호도 20년 가까이 바꾸지 않고 두었다고 한다. 언제 혜희가 전화를 걸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장기실종아동 1336명, 가정은 풍비박산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년 이상 장기실종아동이 1336명이고, 혜희 양 같은 20년 이상 장기실종아동도 1044명에 이른다. 2023년에만 2만 건 넘는 실종아동 신고 가운데 25건이 미해결로 남았다. 실종아동가정은 대부분 무너지고 만다. 부모는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거나 이혼하고, 함께 살더라도 아이를 찾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느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불화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에 따르면 장기실종 가족의 70~80%가 가정해체를 겪는다고 한다. 정부는 2005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사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실종경보 문자 △지문 등 사전등록 △유전자(DNA) 분석 △복합인지기술 활용 과거 사진 변환·대조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을 통해 장기실종아동이 성인이 되어 가족을 찾기도 한다. 최근에도 전남 여수에서 8살 때 가족을 잃어버렸던 남성이 재수사를 통해 57년 만에 가족을 찾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경찰 내 실종수사 인력과 예산이 태부족하고 제도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실종아동이 발생하면 1년간은 실종 지역 경찰서에서 수사하다 관할 지방청으로 이관하도록 돼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지방과 공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아동보호시설의 서류 관리가 부실해 아동 정보를 대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결국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가 직접 발 벗고 뛰어다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종아동관리 진일보해 혜희 씨 찾는 날 오기를한 아이와 한 가족의 인생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실종아동 사건은 최대한 예방하고 최선을 다해 수사해야 한다. 길용 씨도 수천, 수만 번 가슴을 쳤을 것이다. 그때 초동수사가 잘 됐더라면. 그때 그 수상한 남자를 찾을 수 있었더라면. 길용 씨가 딸을 찾아 헤맨 25년이 결코 훈훈한 미담으로만 끝나지 않길 바란다. 아직 1000명이 넘는 장기실종아동이 남아있다. 그들의 부모도 자식을 찾으러 가던 길에 허망하게 스러지도록 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길용 씨가 하늘에서 그렇게 바라던 딸을 만나지 못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실종아동 관리가 진일보해 이 땅 어디에선가 숨 쉬고 있던 혜희 씨를 기적적으로 찾아내길, 그래서 언니와 함께 아빠, 엄마의 묘소를 찾아 “늦게 와서 미안해요!”라고 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이제 우리가 혜희 씨를, 다른 1300여 명의 아이들을 찾을 시간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밥은 먹고 다니냐?”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명대사다. 요새 기자가 친정어머니께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다. 딸이 밥을 잘 챙겨 먹는지 물으시는 게 아니라 손주들 이야기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 손주 세 명이 점심은 잘 먹는지, 엄마가 챙기고 있는지 물으시는 건데, 기자가 “알아서 사 먹을 거예요” 하면 깊은 한숨을 쉬신 뒤 “내가 오늘도 가보마” 하신다. 친정은 차로 30분, 막히면 1시간 넘는 거리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이들 모두 학교 돌봄교실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2학년 때부터는 소수만 가능했고 3학년 때부터는 그마저도 안되게 되었다. 돌봄교실에 갈 수 없으니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집과 방과후, 학원 등을 오가다가 홀로 점심을 챙겨 먹어야 했다. 그동안은 엄마께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 대화를 나누다 무심코 이야기한 뒤론 내내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엄마께 감사한 한편으로 돌봄교실의 부재가 다시금 아쉽게 느껴졌다. 학교의 공백…학원·방과후로 누더기 깁듯 기울 수밖에사실 교내 돌봄을 이용하지 못하는 게 특히 아쉽고 답답할 때는 방학이 아니라 학기 중이다. 아이들 학교는 평소 너무 일찍 끝난다. 어린이집 다닐 때는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맡길 수 있었기에 아이 일정에 대해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니 귀가 시간은 오후 1, 2시로 당겨졌고 아이돌보미 선생님도 오후 5시가 돼야 출근하시기에 공백시간이 생겼다. 돌봄교실에 방과후학교를 이것저것 신청해서 누더기 깁듯 기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돌봄교실 혜택마저 사라진 것이다. 신청할 수 있는 방과후의 선택 폭도 줄어서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넣어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이렇게 기자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에 보내기 시작하는 부모가 많다. 정부와 여러 민간기관 조사에 따르면 영유아 때까지 10명 중 6명꼴이던 사교육 이용 아동이 초등학생이 되면 8~9명으로 훌쩍 증가한다고 한다. 물론 정말 교육을 위해 보내기도 하겠지만,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때울 겸 돌봄 목적으로 보내는 경우도 적잖다. 그렇게 하나둘 보내다 보면 비용 부담도 커진다. 민간 학원은 최소한으로 아이당 한두 개만 보내고 있는 우리집도 방과 후 교육비용으로 매달 상당한 돈을 쓰고 있다. 사실 돈보다 더 걱정인 건 아이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점이다. 방과 후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계속 이동해야 한다. 학원 차량을 태울 때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얼마 전에도 아이 학원차에서 안전벨트를 제대로 채우지 않는 걸 발견해 선생님께 슬며시 꼭 채워주십사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늘봄 확대한다지만 긴 공백 깁는 현실 그대로교육부는 최근 2학기부터 ‘늘봄학교’를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늘봄학교란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이 교내에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초등 대상 돌봄 체계로, 기존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의 확대·보완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초1을 우선 대상으로 1학기 전국 초교 절반에서 시행하기 시작했는데, 2학기부터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초 1, 2엔 성장, 발달에 맞는 프로그램을 연중 매일 2시간 무료 제공하고, 향후 초 3~6에는 기존 방과후교실보다 더 다양한 수업을 제공해 학교에서 책임지는 방과 후 시간을 늘리겠다고 한다. 좋은 소식이지만 한 편으로는 드는 생각은 ‘누더기는 그대로구나’다. 부모는 방과 후 기나긴 공백시간을 여전히 누더기 깁듯 기워야 하는데, 다만 이제 옷감이 공짜라거나 전보다 더 다양한 천을 쓸 수 있게 되는 정도랄까. 늘봄학교가 도입돼도 3~6학년인 우리 아이들 매 학기 방과 후 시간표 짜야 하는 일엔 변함이 없다. 학기 초마다 기자가 많은 시간을 들여 수행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네 아이의 방과 후(막내는 하원 후) 일정표를 짜는 것이다. 특히 방과 후 공백이 긴 초등학생 세 명이 복잡한데, 하교 직후부터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오시기까지 서너 시간의 시간 동안 어떤 방과후수업 혹은 학원에 가게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각자의 의사는 물론 시간, 동선, 동행 일정 등을 감안해야 하다 보니 난수표 짜는 것처럼 복잡하기 그지 없다. 학교 오후 3시까지 연장안, 6년 전 반대로 좌초그냥 학교 수업 시간을 늘리면 어떨까. 난수표 작업을 하느라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나면 늘 드는 생각이다. 늘봄학교 1, 2학년 일정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연중 매일 2시간 무료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데 사실상 학교 의무교육이 2시간 연장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주별로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미국의 학교는 대체로 오후 3시 전후 끝난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자율적인 클럽활동이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 아이들은 4~5시까지 학교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학교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 아빠의 퇴근 시각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현재 한국의 방과후, 돌봄, 늘봄학교 체제도 오후 늦게까지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지만 이건 학교 수업이 아니고 별도 서비스이기 때문에 비용이 들어간다. 관리주체도 학교가 아니다. 학교는 장소만 빌려줄 뿐이다. 한국에서 수업시간을 늘리자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됐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18년 정부와 교육 관련 기구에 초등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늘리는 내용의 안건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의 반대가 거셌고 일부 학부모들도 반발하면서 별달리 이야기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하고 좌초됐다. 당시 학부모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이가 학교에 너무 오래 있게 된다’, ‘사교육 시간만 뒤로 더 늘어날 것이다’ 등이다. 지금은 유효하지 않거나 극복 가능한 사유로 보인다. 최근 교육부가 실시한 늘봄학교 만족도 조사에서 학부모 80% 이상이 만족을 표했다고 한다. 양질의 교육과 돌봄 서비스만 있다면 초등학생들의 학교 체류를 늘리는 늘봄학교에 학부모 절대다수가 지지를 보냈다는 뜻이다. 방과후교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다양화하고 질을 높이면 사교육 대체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미 끝난 이야기?’ 다시 얘기해 볼 수 없을까물론 인력 충원과 각종 지원이 함께 해야 한다. 현재 교원으로 일만 늘리는 식이 되어선 누구도 달가울 리 없다. 교사들은 지금도 박봉에 보람도, 명예도 예전 같지 않은 환경에서 소신으로 임하고 있다. 교육부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학교 3시 방안에 대해 물어본다. 다들 ‘이미 끝난 이야기’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안타깝다. 하교와 부모 귀가 시각 사이의 공백을 계속 늘봄, 지자체, 기타 제도를 통해 메우면 비용도 배로 들고 관리도 복잡하다. 쉽게 말해 비효율적이다. 또 문제인 것은 학생 간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과후가 좋아진대도 방과후를 선택할 수 없는 아이, 방과후보다 더 좋은 사교육을 선택하는 아이가 갈릴 것이다. 당장 무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다시 이야기를 꺼내보면 좋겠다. 새로운 돌봄을 계속 구상하는 대신 현 공교육 안에서 해결해보는 방안을.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2024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다. 3일 현재 한국은 금메달 8개 등을 수확해 전체 순위 6위라는 높은 성적에 올라 있다. 올림픽 때면 TV에서 정말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만날 수 있다. 스포츠부와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덕에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를 예선부터 지켜봤다. 경기 결과나 결승전만 볼 때는 몰랐던 많은 종목 국내 최고 선수들의 분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대표단은 144명으로 그 종목은 22개나 된다. 축구, 배구 등 주요 구기종목이 출전에 실패한 걸 감안하면 전체 32개 종목의 거의 대부분에서 선수를 낸 셈이다. 이렇게 올림픽만 되면 여러 스포츠가 TV를 장식하는데 정작 우리 생활에선 이런 스포츠를 반의반도 볼 수 없다. 종목은 물론이거니와 운동하는 사람 자체가 적다. 특히 한창 잘 먹고 뛰어놀아야 할 성장기에 주기적으로 운동하거나 운동을 배우는 청소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방학인데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도 썰렁하다. ● 韓 청소년, 권장운동량 못 채운 비율 94% ‘세계 꼴찌’지난해 독일에 출장 갔을 때다. 취재처를 찾아가는 길에 비가 내려서 잠시 눈에 보이는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지도를 보니 청소년 체육시설이었다. 3월 말이었는데 방학인지, 학기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독일은 생활체육이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동네마다 자생적으로 생긴 스포츠클럽이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도 많다. 운동을 접할 기회가 잦다 보니 독일 주재원 가운데는 사오십 평생 안 해본 운동을 독일 가서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평일에 학생들로 붐비는 체육시설을 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반면 우리는 어떨까. 청소년 대상 체육시설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평일엔 청소년들로 북적대기 쉽지 않다. 남자아이들 중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친구들과 모여 자주 운동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일주일에 2~3회 30분 이상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청소년은 손에 꼽을 것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146개 국가 11∼17세 학생들의 운동량을 비교한 결과 권장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 비율이 한국에서 94%로 가장 높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일주일에 단 1회라도 30분 이상 운동하는 비율을 조사했는데(국민생활체육조사) 10대의 경우 그렇다고 답한 이가 47.9%에 불과했다.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 ● 학원, 숙제, 방학특강…운동할 때조차 ‘운동 학원’ 다녀야이유는 깊이 고민할 것도 없다. 우리 청소년들에겐 자유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들의 일과는 영어, 수학, 국어와 같은 교과 공부로 가득하다. 방과 후에도 대부분 이런 학원들에 다니는데 그 수업량이 어마어마하다. 버티고 버티다가 작년부터 첫째를 영어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받아오는 숙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험 봐서 들어간다는 대단한 학원도 아니고 그저 동네 초등학생 대상 일반 보습학원이건만 숙제량이 딱 봐도 하루에 다 하기 빠듯한 수준이었다. 숙제할 시간이 모자라 학교에서도 학원 숙제를 한다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방학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보통 방학이 되면 학원가에서 특강이나 보강을 개설하기 때문에 이런 걸 듣는 아이들이 많다. 지난주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퇴근 후 줄넘기를 하기로 했다. 퇴근이 늦어지는 바람에 약속보다 1시간가량 늦게 운동을 나갔는데 애들이 평소 가던 놀이터가 아니라 더 작은 놀이터로 가자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첫째가 말했다. “큰 놀이터는 지금부터 붐빈단 말이야.” 그때가 오후 8시 반이었는데, 아이들이 그제야 학원이 끝나 놀이터에 몰린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방학 중인 초등학생 아이들 귀가 시각이 40대 직장인 늦은 퇴근 시각과 비슷하다니. 다들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하면 함께 운동할 친구를 찾기도 어렵다. 결국 정기적으로 함께 할 사람을 찾아 운동하려면 운동도 학원을 등록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도 운동 학원에 다니고 있다. 마음 같아선 이것저것 아이들 하고프단 운동을 다 시키고 싶은데 학원이다 보니 원비 부담이 있어 그럴 수 없다.● 학교 체육수업 늘리려는 시도, 자주 반대에 부딪혀학교에서 체육활동을 많이 한다면 좋을 것이다. 미국에서 잠시 학교 다닐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체육수업도 수업이지만 방과 후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클럽활동이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스포츠클럽엔 들지 않았는데 탁구, 농구, 수영 등 종목별로 클럽이 있었다. 학교 시설도 잘되어 있었고 학교 스포츠팀 간에 대항전도 있어서 남녀 모두 선수가 많았다. 이렇게 학교에서 쌓은 경험은 일상으로 이어졌다. 성인이 돼서도 개인적으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다들 기초체력이 좋았다.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다시 미국에 갔을 때 운동 좀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달리기 수업 수강을 신청했는데, 얼마 안 가 수업 최고 ‘저질체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0분만 뛰어도 헉헉대는 나와 달리 미국 아이들은 20분을 거뜬히 뛰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내 신체활동을 늘리려는 시도는 늘 교원이나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최근에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초등학교 저학년의 체육활동을 늘리기 위해 1989년 ‘즐거운 생활’에 흡수된 체육교과를 35년 만에 분리할 계획을 밝혔지만 교원노조 등이 강력 반대하고 나서 국교위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한 용역연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선수뿐 아니라 일반 청소년도 운동의 혜택 누릴 수 있길취재원으로 만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초등학생인 아들 둘에게 어릴 때부터 운동을 가르쳤는데 그 이유가 첫째 체력 증진이고, 둘째 ‘건강한 경쟁’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진료받으러 오는 사람 중에 왜곡되고 지나친 경쟁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건강한 경쟁에 대해 일깨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스포츠만한 게 없더라는 거다.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단 말이 있듯이 운동은 단순히 몸만 건강하게 하는 게 아니다. 특히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스포츠는 투지와 끈기, 협동, 선의의 경쟁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영리한 사람이 운동도 잘 한다고, 스포츠의 전략과 수싸움은 두뇌 운동도 된다. 우리나라는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 무대에선 수위권 안에 드는 종목이 많은 스포츠 강국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 특히 청소년은 절반 이상 일주일에 단 1회도 운동을 하지 않는 나라다.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철저히 유리됐다. 엘리트 체육 양성에 들이는 노력만큼 국민 체육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과거 학교에 아이들이 많을 때는 교내 체육시설을 짓기도 어려웠고 다양한 체육수업을 진행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줄어드는 만큼 공간적 여유도 생겼고 교원들의 여력도 커졌다. 만약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원을 늘려 해소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체육활동 필요성을 적극 알리고 관련 시설도 확충했으면 한다. 우리 동네에는 몇 년 전 청소년 여가시설이 생겼는데, 학원 사이 자투리 시간에 몸 누일 곳 없던 아이들이 정말 잘 이용하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쉽지 않겠지만, 분명 시설이 생기면 활동이 늘어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청소년기에 경험한 운동의 기억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올림픽 선수들뿐 아니라 모든 청소년이 운동의 기쁨과 성취를 일찍이 경험할 수 있길 기원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저물녘 바닷가에 앉아 노을과 등대 불빛이 어우러진 자연 유화를 감상합니다. “하늘아, 바다야, 깜깜해지지 마.” ―강원 강릉 정동진에서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엄마가 된 이래로 보기 힘들어진 뉴스가 있는데 바로 어린아이들의 사망사건·사고 관련한 뉴스다. 특히 영아들의 사망 소식은 제목만 봐도 울컥한다. 그것이 부모에 의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그 작고 가녀린 아기들이 얼마나 크게 부모에게 의존하는지. 그런데 그 세상의 전부 같은 부모에게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는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글만 쓰는데도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런 안타까운 사건을 줄이고자 제정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19일부터 시행됐다. 자신이 낳은 아기들을 살해해 수년간 냉동 보관해 온 여성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여만이다. ● ‘냉동고 아기’ 사건 1년여만에…출생통보·보호출산제 시행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병원 출생기록은 있지만 정식으로 출생신고되지 않은 일명 ‘그림자 아이’, ‘유령 아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끔찍한 사건이 알려진 뒤 보건복지부가 출생아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이런 음지의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게 드러났다. 2015~2022년 사이에만 출생 미신고된 아이가 2123명이었고, 그중 약 300명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당초 복지부 발표 때는 249명이었는데 경찰 수사로 50여 명 추가됨).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서 이런 아이들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출생통보제는 쉽게 말해 병원에서 출산한 아이 정보가 지자체로 자동 통보되도록 한 제도다. 이제 분만 기관이 아동 출생 사실, 생모 성명, 출생 연월일시 등을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에 저장하면 이 정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거쳐 지자체로 전달된다. 지자체는 이 정보를 토대로 출산 한 달이 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에게 독촉 통지를 보낸다. 그래도 답이 없으면 지자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진행한다. 과거에는 이 신고를 부모에게만 의존했기 때문에 실수 혹은 고의로 출생신고가 누락되는 아이가 발생했다.출생통보제와 함께 시행된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산부들을 위한 제도다.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키우고 싶지 않아 출생신고를 꺼리는 임산부가 있다면 보호출산을 신청하고 가명과 관리번호(주민등록번호 대체)를 받아 아이를 낳으면 된다. 출산한 아이는 입양기관으로 보내진다.기껏 출생통보제를 만들어놓고 보호출산제로 ‘아이를 합법 유기’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태어날 아이 입장에서 뭐가 더 안전한지 따져 보면 답은 명확하다. 비밀로 아이를 낳을 기회를 터놓지 않으면, 자동 통보를 꺼리는 부모들은 분만 기관을 통하지 않고 사적으로 아이를 출산하려 할 것이다. 아이가 어떤 위험에 처할진 불 보듯 뻔하다. 일단 아이 생명은 살리고 보자는 게 보호출산제의 취지라 하겠다.● 부모의 위기=아동의 위기…부모에 ‘아이 키울 수 있다’ 청사진 보여줘야이번 제도 시행으로 출생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강화됐고 우리 출생등록제도는 진일보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 등록제도만 진보하고 위기 아동과 부모의 상황은 그대로라면, 부모들은 너도나도 보호출산제를 이용해 아이를 합법적으로 유기하려고만 할 것이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등록될 뿐 아니라 원가정에서 잘 자랄 수 있게 하려면 궁극적으로 부모의 위기가 해결돼야 한다. 아동의 위기는 결국 부모의 위기다. 위기에 처한 부모에게 “힘내세요~” 응원만 보낼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보와 혜택을 제시해야 한다. 위기 부모에 대한 보육, 의료, 취업 지원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당신의 위기를 이렇게 극복할 수 있다’고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위기 부모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임신 단계부터 이런 부모들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상담창구가 생긴다지만 안타깝게도 위기 부모들은 대부분 정보취약계층이라 상담의 존재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상담창구는 물론 지원책에 대한 효과적인 홍보, 탐색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 ‘외국인 아동, 미혼부’ 출생등록 여전한 사각지대이번을 계기로 우리 출생등록제도에서 더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출생통보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가 남았는데 바로 외국인 아동이다. 한국에선 외국인이 아이를 낳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현행법에 따라 오직 ‘국민’만 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자국 대사관 등에 가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당연히 미등록 출생아가 발견돼도 출생통보제에 따라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애초 외국인 신고제도가 없으니 말이다.초저출산으로 외국 인력 도입을 확대하고 이민청까지 만드는 마당에 외국인들의 출생신고를 언제까지고 막아둘 순 없다. 국내 외국 인구가 늘면 분명 국내 아동과 마찬가지로 사각지대도 생길 것이다. 실제 최근 불법체류 외국인이 유기한 중증장애아의 딱한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아기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그 어떠한 법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21대 국회에서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법이 발의되긴 했지만 국회 임기가 끝나며 폐기되었다.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출생신고 대상을 ‘미혼부’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재 출생신고는 생모와 그 생모의 법적 배우자만 할 수 있다. 생부라 해도 생모와 법률혼 상태가 아니면 출생신고가 불가하거나 무척 어렵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DNA 검사를 통해 생부인 것이 확인되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제도 개선 필요하다면 ‘아동 입장에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도 시행되면 또 출생신고제 관련 여러 보완할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예를 들어 ‘7일 이상’으로 규정된 보호출산 숙려기간을 더 늘려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논의를 거쳐 수정하면 된다. 다만 언제든 결정의 중심엔 아동이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동 전반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는가, 그 아동을 더 행복하게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것이 곧 더 옳은 방향이다. 모든 아이는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이기에 잘 지키고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어른들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제도가 순항해 이제 그 어떤 아기의 미래도 짓밟히지 않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으니 볼썽사나운 꼴을 보기 전에 그만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왜 아이들 유치원에 안 보내요?” 아이들 어릴 때 종종 받았던 질문이다. 나는 네 명의 아이들을 모두 만 5세(한국 나이 7살)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다. 다들 보육 분야 기자로서 특별한 이유나 신조가 있는 게 아닌가 지레짐작했지만 그런 대단한 건 전혀 없었고, 그저 그 어린이집의 교육 내용, 교사진, 우리 집과의 거리 등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말이 어린이집이지 교사진은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이었고, 특별활동으로 한글, 영어, 수학까지 배웠다. 그게 반드시 좋단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교사와 교육 모두 인근 유치원과 다를 게 없었다. 흔히 ‘어린이집은 보육, 유치원은 교육 위주’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데, 만 3~5세(한국 나이 5~7살) 교육과정은 누리과정으로 표준화된 지 오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모두 기본교육 내용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교사 역시 요새는 어린이집도 유아교육과 졸업자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활동 종류는 운영자의 재량이다. 지인의 아이가 다니던 기관은 유치원이었는데, 원장님이 돌봄과 놀이 위주 교육을 중시해 관련 특별활동이 많았다. 활동만 비교해 보면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보다 더 어린이집 같은 느낌이었다. ● ‘남북통일보다 어려워…’ 재원 두고 국고 vs 교부금 벌써 논쟁 이처럼 현장에선 이미 어린이집 유아반과 유치원의 질적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런데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전혀 다른 기관이라 지원금액, 그 금액의 출처, 관할법, 구성원의 법적 지위 등이 다 다르다. 어느 기관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한 지붕 두 제도’라는 이상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즉 유보통합이 여러 차례 시도됐다. 하지만 번번이 구체적인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산되길 반복했다. 오죽하면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유보통합’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번 정부도 지난해 추진단을 꾸리고 유아 기관 관리를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까진 야심 차게 통과시켰는데, 지난달 법 시행에 맞춰 나온 계획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가장 큰 숙제인 재원, 인력 통합의 구체적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제부터 만들어나가면 된다. 다만 할 일은 많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예산은 그 돈주머니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각자 안에서도 국가, 지자체, 교육청 등 출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앞으로 통합되면 어디가 어떤 예산을 맡을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더 골치 아픈 건 유보통합에 따라 향후 3년간 연간 2조~4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돈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함께 정해야 한다. 벌써 국고 지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사용 등을 두고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 교원 자격도 입장차 커…합의 어떻게 이끌어내느냐 관건 교원 자격 통일도 잘 알려졌다시피 어려운 문제다. 사실 미래 교원의 자격을 어떤 기준에 맞출지, 기존 교원들의 간격은 어떻게 좁힐지 계획을 짜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전문가들이 많은 분석과 시나리오를 내놨다. 어떻게 합의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사안마다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예를 들어 만 0~2세 영아 교원 자격을 만 3~5세와 통합하는 안은 유치원 교사들의 반발이 크다. 반대로 분리하는 건 만 0~2세 교사를 영아 전담으로 전락시킨다고 하여 보육교사 측에서 반발하고 있다. 이런 큰 틀부터 양측 최저학력기준, 이수 과정, 기존 보육교사의 보수교육까지 세부적으로 조율할 사안이 매우 많다. 인력뿐 아니라 재원도 결국 이해 당사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합의하게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정부의 강한 추진력이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이제 유보통합이 온전히 한 부처의 일로 넘어온 만큼 교육부가 전문가,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신속하게 팀을 꾸리고, 안을 짜고, 공론화하고, 각 당사자를 만나 설득해야 한다. ● 통합에 매몰되면 안돼…장애아 포함 모든 영유아 ‘동등한’ 돌봄 누려야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영유아기관의 통합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외형적 합체에 매몰되면 자칫 제일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지난달 27일에 발표된 ‘유보통합 실행계획 시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띈 내용이 있다. 5대 과제 중 마지막 과제의 끄트머리 한 단락으로 들어간 ‘특수교육 대상 영유아 통합지원’ 안이다. 장애 영유아들도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통합될 유아기관 내 특수학급, 특수교육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간다는 내용이다. 한국에 사는 영유아라면 누구든 어디서든 동등한 혜택을 누리게끔 한다는 게 유보통합의 취지다. 장애 영유아도 함께 돌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이 과제만큼 그 취지에 부합한 게 또 있을까. 장애 아동 부모인 지인이 있어 돌봄 기관을 찾는 데 애먹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척 마음이 아팠고, 그런 현실을 잘 몰랐던 기자로서 반성했었다. 특수교육 지원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다. ● 유보통합 아니라 유보‘개선’ 정서·심리 지원 강화도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앞으로 심리 전문가나 기관과 협약을 맺어 영유아는 물론 교사까지 정서심리 진료와 검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 한다. 요새 마음이 아픈 아이, 교사 소식이 적잖이 들리는 만큼 꼭 필요한 일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보통합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보통합이 시행되면) 저출산에 대한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다만 영화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를 잊지 말아야겠다. 결국 유치원, 어린이집 통합도 영유아 돌봄을 개선하자고 하는 것이다. 장애 아동, 정서심리 지원, 그리고 돌봄 시간 연장, 교원 인력 확충, 각종 시설 교체 등 이번 대책이 담은 다양한 ‘유보개선’책도 잘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출산 해소에 기여할 것이다. 유보통합 과정에서도 그 정당성을 놓치지 않고 잡고 가야만 구성원들과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합계출산율 1.0명.’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로 직접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본회의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힌 목표다. 이날 육아휴직급여 인상을 포함해 다양한 저출산 추가 대책이 발표됐다.불가능하다곤 안 하겠다. 그러나 목표 달성이 쉽진 않을 것 같다. 합계출산율은 2017년 1.05명을 마지막으로 0명대로 추락했고, 이후 소폭조차 반등한 적이 없다. 그 사이 정부의 노력이 없었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올해 출산율은 집계 이래 가장 낮은 0.6명대로 예측됐다. 내년부터 5년 내 출산율을 +0.4명가량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 ‘아이에게 미안해서…’ 청년들이 안 낳는 이유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근래 출산율 감소가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산 관련해 젊은 세대의 생각 자체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10여 년 전 기자가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결혼=출산’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요새 젊은 기혼자들 가운데 선뜻 애 낳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주변만 해도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거나 “배우자와 의견을 조율 중”이라는 이들이 대다수다. 주목할 점은 그 이유인데, ‘일이 바쁘다,’ ‘하고픈 게 많다’처럼 본인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자녀’에 초점을 맞춘 답이 많다는 점이다.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좋은 환경이 아니어서,’ ‘아이에게 미안해서’ 등. 처음에는 그저 하기 싫을 뿐이면서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하지만 몇 사람이 아니라 거의 모두 이렇게 답변하는 걸 보며 청년들 사이에 만연한 사고임을 알 수 있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완벽한 부모 신드롬’이라는 말로 이런 심리를 설명했다. 1982~1996년 밀레니얼 세대는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준비가 덜 되었거나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출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키우려는 마음이 커서 역설적으로 자녀를 키울 수 없게 되는 셈이었다. 실제 기자도 “잘 키우지 못할 바엔 낳지 않겠다”거나 “애 키울 능력이 없는데 애 낳는 건 죄” 식으로 말하는 청년들을 여럿 보았다.● 기후위기·AI위협까지 걱정…육아 혜택으로 마음 돌리기엔 역부족거시적이고 중장기적인 우려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두 딩크(DINK·Double Income and No Kids)족을 연달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기후변화, AI 확산 등을 언급하며 미래 세대가 처할 불확실성과 불안 때문에 출산을 포기했다”고 복붙(복사해 붙이기)처럼 이야기해 놀랐다. 이 역시 솔직히 처음엔 ‘진심일까?’란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후 젊은 무자녀 기혼자들을 인터뷰할 때도 종종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찾아보니 이미 서구에선 몇 년 전 ‘#No future, No children’ 같은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로 제법 보편적 사고였다.여전히 고개가 갸우뚱 기운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자녀를 잘 키우려면 안전한 사회와 깨끗한 환경이 필요하다. 그 범주에 집, 동네뿐 아니라 전 사회와 지구도 들어간다고. 내 아이가 자랄 사회와 지구의 미래가 비관적이라면? 열악한 환경에 처한 여느 생물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멈출 것이다. 이렇게 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이 육아기 지원이 좀 늘어난다고 출산을 결심할까? 내용 없는 ‘획기적 대책’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경천동지할 획기적 대책을 내지 않고선 마음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19일 대책이 발표되고 난 뒤 결혼 3년차, 딩크족을 자처하는 지인에게도 물어보았다. 그의 답은 역시나 “육아 지원이 강화되는 건 좋은 일인데요, 저는 여전히 안 낳을 것 같아요”였다. ● 1.0명 돼도 여전히 꼴찌…인구 감소 문제 여전정부도 다 생각한 게 있겠지, 출산율이 반등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다고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 워낙 0명대라는 수치가 주는 이미지가 강해서 우리는 늘 출산율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실제 출생아 수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23만 명. 그 아기들의 부모가 태어난 1980~1990년대에는 한 해 출생아 수가 60~80만 명이었고, 또 그들의 부모가 태어났던 1950~1960년대에는 무려 100만 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비교도 안 되게 적은 숫자다. 출생아의 감소는 곧 미래 부모의 감소를 뜻한다. 1980년대 합계출산율 2명대 벽이 무너진 이래로 매년 출생아는 부모보다 적게 태어났다. 즉 저출산은 계속 누적되었고 이제부터 부모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부모도 줄고 아이고 적게 태어나는, 이른바 저출산의 ‘더블링’이다. 부모가 100만 명일 땐 합계출산율이 0.6명이어도 출생아 수가 30만 명이지만, 부모가 60만 명이면 출산율이 1.0명으로 올라도 출생아 수는 똑같이 30만 명이다. 출산율이 오른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2030년 합계출산율 1.0명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인구 감소 속도를 조금 늦출 뿐 대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세계 꼴찌인 순위도 달라지지 않는다. 2021년 기준 우리에 뒤이은 합계출산율 최저 2, 3위 말타와 중국은 출산율이 각각 1.13명, 1.16명이었다. 1.0명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압도적 꼴찌에서 그냥 꼴찌가 되는 정도다. ● 극복뿐 아니라 ‘적응’을 논의해야 할 때그렇다고 19일 발표가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1.0명을 크게 괘념치 말란 이야기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 모두 소중한 우리의 국민이기에, 이들을 양질의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게 하는 육아 지원책은 여전히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일부에 한해선 출산유인책이 될 수도 있다. 다자녀 부모들끼리 하는 말이 있는데 “낳아본 사람이 더 낳는다”이다. 다자녀 부모 온라인커뮤니티에 가보면 자녀가 셋, 넷인데도 “하나 더 낳고 싶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출산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물론 한 명 낳고 더는 못 낳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만큼 하나 키워보니 예뻐서 둘째, 셋째를 생각하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의지가 있는 가정엔 출산지원책이 추가 출산의 유인이 될 수 있다. 실제 한 지인은 둘째를 고민하던 중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휴직 기간과 급여를 늘려주는 혜택(6+6 부모육아휴직제도)을 접하고 둘째를 가졌다고 한다. 육아 가정의 상황이 나아지면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수 있다. 많은 청년이 “우리 언니가,” “회사 선배가” 아이를 힘들게 키우는 걸 보고 출산을 꺼리게 됐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 출산율이 개선된대도 대세에 큰 변화는 없기에, 이제 저출산 ‘적응’책도 적극 회자하길 바란다. 고령화, 생산성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저서를 통해 지적했듯 고령, 여성 인력 활용을 높이고 산업별 재편성을 통해 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앞으로 새로 출범할 부처에서 저출산 극복뿐 아니라 적응 문제 등 인구 문제를 다각적으로 논의할 수 있길 기원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하지만 그게 제 진짜 반응이었죠.”한 국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 값(0.78명)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Korea is so screwed. Wow!)”라며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으로 화제가 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법대 명예교수(72)는 과거 자신의 인터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찐(眞) 리액션’은 그 어떤 저출산 기사, 논문보다 우리 사회에 더 큰 경종을 울렸다. 합계출산율 0명대란 이렇게 놀라야 하는 일이라고. 인터뷰는 유명한 ‘짤(meme)’이 되어 많은 언론에도 보도됐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걸 그는 알았을까.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 인생에서 한 번도 인터넷 밈이 돼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합계출산율 0.68명, “‘매우 매우’ 이례적”방한한 윌리엄스 교수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다소 호들갑스러운 반응과 달리 답변은 진지했고 태도에선 세련된 기품이 넘쳤다. 과거 인터뷰처럼 머리 잡는 동작을 재현해줄 수 있냐는 기자의 부탁에도 난감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저는 원래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걸요. 그땐 정말 크게 놀라서 그랬어요.”윌리엄스 교수는 노동법 전문가이자 오랫동안 일터 성차별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연구해온 저명한 사회학자다. 그의 할머니는 존스홉킨스의대 1호 여학생이었지만 결혼과 함께 자퇴해야 했고, 어머니는 지역 신문 기자였지만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자들이 대거 복귀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여성 노동과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출산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봐 온 그에게도 한국의 초저출산 상황은 머리를 부여잡을 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8명으로 예측된다. 윌리엄스 교수가 듣고 놀랐던 0.78명에서 0.1명 더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윌리엄스 교수는 “그토록 낮은 수치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매우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부사를 두 번이나 쓰며 강조했다. 그는 “전쟁이나 팬데믹 상황인 나라들에서나 그런 출산율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한국) 거시경제에도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돈독한 관계를 감안할 때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근로시간 유연성’ 강조한 정부 개편안에 “아이 일주일 얼려놓을 수 있나”노동 전문가인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 초저출산 문제 원인으로 단연 ‘가족 비친화적 일터’를 꼽았다. 특히 ‘장시간 노동’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OECD 평균 대비 2~2.5배 이상 많다”며 “노동시간이 매우 매우 길다”고 또 부사를 두 번이나 반복하며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일주일에 최대 52시간(주 52시간제)으로 규정된 제한을 풀어 근로시간을 월, 연 단위로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하겠다며 개편안을 내놨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좌초하긴 했지만, 정부는 제도의 틀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경직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면 ‘몰아서 69시간 일’할 수도 있는 대신 그만큼 ‘몰아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어서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도 득이라는 설명이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제도의 취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한 주는 길게, 다른 한 주는 적게 일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아니냐”며 “만약 (길게 일하는) 한 주 동안 애를 ‘얼려놓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그렇게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러나저러나 길게 일하면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육아 부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세계 최장 근로시간의 한국이 지금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논할 때는 아니라고 그는 지적했다. ● 가사 8배, 육아 6배 한국 여성, “출산? No Thanks!”그는 한국의 여성 노동 문제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0% 이상(종사자는 80%)을 차지하는 한국 기업 생태계의 특징을 언급하며 “대기업에선 (근로시간 단축 등 가족친화적 시스템 마련에)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엔 중소기업이 많고 대부분의 여성 역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문제”라며 아직 많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기에 열악한 상황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나마 대기업에서 많이 이용하는 육아휴직도 ‘아직 이용 시 눈치를 봐야 하는 점,’ ‘남성 이용률이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이 여전히 문제라고 짚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정말 놀라운 건 (한국) 여성들이 동료들에게 미안해 육아휴직을 못 간다는 것”이라며 “고용주가 돈을 아끼려 대체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혹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직한 여성은 불만에 찬 동료들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본 육아는 물론 자녀 교육, 물질적 성공까지, 한국 엄마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책임이 엄마들로 하여금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고 했다. “여성들은 자녀뿐 아니라 남편과 그 부모님까지 돌봐야 한다. …한국 여성은 남자보다 가사노동 8배, 육아 6배를 더 한다. …어느 순간 남자와 자신을 비교해본 여성은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출산과 육아) 더는 사양하겠어(No thanks)!’라고.”● 가족친화적 일터 없이는 ‘백약이 무효’윌리엄스 교수도 두 아이의 엄마다. 수많은 책과 논문을 쓰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건사했을까? 그는 “나는 아마도 미국에서 (일반 가정이) 유모를 둘 수 있던 유일한 시대에 산 사람일 것”이라며 “지금은 (미국에서도) 인건비가 비싸 꿈도 못 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최근 할머니가 됐다. 최근 태어난 손녀는 “생후 4개월 때부터 비싼 돈을 내고” 어린이집(childcare center)에 다닌다고 했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좋은 보육시스템을 가졌다. 정부가 보육과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해왔고 결국엔 결실을 맺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말했다. 하지만 무상보육·교육임에도 긴 근로시간, 치열한 경쟁, 교육 부담 등으로 인해 결국 추가로 돌봄과 교육비용이 들어간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결국 한국에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려면 일터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윌리엄스 교수는 강조했다. 그간 정부가 수많은 저출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가족친화적인 일터가 구축되지 않으면 정책의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쉽게 말해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이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37개 대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연구진과도 협업을 구상하는 중이다. “한국엔 이제 선택권이 없다. 당장 바꿔야 한다”며 “한국을 지금에 이르게 한 방법과 추진력이 지금 상황을 극복하게도 할 것이다.…분명히 출구는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어머, 애가 넷?! 세상에, 어떻게 키워?”얼마 전 퇴근길, 버스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여성 두 분의 대화에 귀가 솔깃해졌다. 회사 동료들인 것 같은데, 지인 중 아이 넷인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첫째가 중학생인데 사춘기고, 막내는 이제 6살이래.” “아니, 나는 하나도 버거운데. 그 엄마는 걔들을 다 어떻게 건사하지?”‘저도 애가 넷인데 잘 건사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모를 아이 넷 동지 이야기에 반가워 입이 근질근질하던 찰나 한 여성이 말했다. “근데 엄마도 힘들겠지만, 애들도 안됐다.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여럿이 얼마나 힘들 거야.” 그러자 다른 여성이 “그러게, 애들도 힘들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번듯하게, 남부럽잖게…“잘 키우지 못할 거면 안 낳는다”갑자기 퇴근길 경험이 떠오른 건 최근 저출산 관련해 진행한 인터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2040세대를 폭넓게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게 있었다. 아이를 (더) 낳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 의외로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젊은 친구들이라 본인의 경력이나 일, 자유시간에 관한 답이 먼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자녀 이야기를 먼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현재 지방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A 씨(31)는 “자녀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갖는다면 한 명만 갖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아이를 키운다면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번듯하게 키우고 싶은데 제 벌이로는 한 명이 적당할 것 같다”며 “둘, 셋을 키울 인프라는 꾸릴 자신이 없다”고 했다. B 씨(38)는 결혼 10년차지만 아이가 없다. 그는 “와이프가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했었다”며 “잘 키우지 못할 바에야 안 낳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B 씨 부부는 반려묘 두 마리를 오랫동안 키우고 있다. 앞으로도 아기는 갖지 않을 생각이다.이미 아이가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SNS스타이자 자수성가한 사업가 C 씨(39)는 3살 남아 한 명을 키우고 있다. 둘째는 원치 않는데, 이유가 ‘현재 자녀를 더 잘 키우고 싶어서’다. 그는 “아내가 애한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며 “육아에서 만족감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 둘 다 하나가 좋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높은 목표치에 애초 출산이 엄두가 안 난다거나 무섭다고 말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20대 여성은 “아이 키울 때 보내야 하는 기관, 들여야 하는 사교육비, 시간 이야기를 들으면 감히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도 “내가 기반을 잘 구축해서 아이에게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육아 자체보다 결과가 더 중요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답변에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던 건 아이와 육아 그 자체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내는지, 그 양육결과에 무게를 두는 듯한 뉘앙스 때문이다. 앞서 버스의 두 여성이 다자녀 가정을 안쓰럽게 보았던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을 거다. 잘 키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녀 수가 많은 집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 가구의 재화와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자녀가 많으면 더 쪼개어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녀를 많이 낳는 가구가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실제 인터뷰한 20대 여성 중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가 ‘가난해서 애 낳는 건 죄’라는 거다. 2세를 낳을 거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줘야지, 그런 것도 없이 둘, 셋 여럿 낳는 건 아이 인생을 망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물론 아이를 전혀 양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뒤 방기하거나 학대하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에서 낳은 아이들도 투자와 미래가치라는 프레임으로 우선 본다는 건 어쩐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함께 나누는 시간, 고민, 행복, 그 모든 것이 육아미국 현지 대학에서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는 D 씨(45, 여)는 원래 학위만 따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고민 끝에 남편, 초등학생 아이 둘과 함께 미국에 남기로 했다. 부부 모두 미국엔 전혀 연고가 없다. 이민은 순전히 자녀들 때문이었다. D 씨는 “한국에선 아이 키우면 ‘이거 해야 하고 저거 해야 하고’ 이런 게 너무 많더라”며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다들 아이를 특정 성공의 롤모델대로 만들어야 하는 태스크를 짊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민을 결정했다”고 했다. 아이를 풍족하게 키우거나 잘 키워 성공시켜 나쁠 건 없지만, 육아에서 무엇보다 중심이 되어야 할 건 아이와 부모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그런 육아의 과정이다. 그리고 아이를 갖느냐 안 갖느냐 선택에 있어서도 그런 것들이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네 아이에게 값비싼 교육과 옷, 집을 주진 못했지만, 매일 저녁, 주말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이 행복했고, 비록 부딪힐지언정 어떤 미래를 그릴지 함께 구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아이들 덕분에 울고 웃는 그 모든 시간이 육아였고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생각해 보면 잘 키운다는 것도, 꼭 번듯한 미래를 갖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