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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때 위나 대장 내시경을 받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의사가 혹시 병변을 놓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곤 한다.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하는데, 검사 대상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상황에서 의사가 피로감을 느낀다면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커진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웨이센은 의사들의 진단을 보조하는 인공지능(AI) 기기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의료 분야에는 엑스레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분석하는 데 AI가 먼저 활용됐다. 웨이센은 이런 분야와는 달리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판단해야 하는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CT 등의 경우에는 의사들이 촬영 화면을 두고 협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만, 위·대장 내시경은 내시경이 한 번 지나가는 짧은 시간에 의사 혼자서 병변을 바로 판단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경남 웨이센 대표이사(57)는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다가 내시경 검사 때 병변을 놓치는 비율이 21%나 된다는 논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료 현장의 고민을 해결하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일이었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의료진의 눈이 되는 AI 웨이센이 개발한 ‘웨이메드 엔도’는 위·대장 내시경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상 병변을 감지한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김지현 교수 연구팀과 협업해 개발했다. 기존의 모든 내시경 장비에 연결해 적용할 수 있다. 웨이센은 실시간 영상에서 병변을 감지하는 AI를 경량화해 네트워크 연결 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도록 개발했다. 김 대표는 “의료 현장에서는 네트워크 연결 상태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진단 보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AI 기능을 수행하는 온디바이스(에지) 형태로 개발했다”고 했다. 핵심 경쟁력은 실시간 동영상 분석 능력이다. 기존의 진단 보조 AI가 엑스레이나 CT 등 정지된 이미지를 분석했던 것과 달리 내시경의 동영상을 보며 사람은 놓칠 수도 있는 병변을 찾는 것이다. 내시경으로 검사를 진행하는 의료진의 눈은 굉장히 예민하다.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동영상에서 병변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런 특성 때문에 시간 지연 없이 병변을 찾아내고 추적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며 “1990년대 초반부터 컴퓨터 비전을 연구해 온 덕분에 실시간 동영상 처리의 기술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웨이센은 특히 AI를 병변 탐지와 유형 분석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복합 특성 분석 모델로 개발했다. 김 대표는 “AI 모델이 병변의 유형까지 분석해 내는 기술은 우리만의 차별점”이라고 했다. 웨이메드 엔도는 강릉아산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일산병원, 중앙보훈병원 등 30여 의료기관이 도입했다. 의료진의 피로도나 숙련도에 관계없이 일관된 성능을 제공하는 솔루션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목표다. 김 대표는 “의사가 내시경으로 검사를 할 때 AI도 같이 검사를 한다. 병변을 발견하면 알람을 통해 알려준다. 의사가 병변을 지나쳤더라도 그 자리로 바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병변 주변을 찍은 이미지도 보여 준다”고 했다. 김지현 연구팀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웨이메드 엔도는 조기 위암의 침범 깊이를 예측하는 성능(AUC 0.961)이 1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내시경 전문의(AUC 0.7368)보다 우수하다. AUC 값이 0.961이면, 무작위로 선택된 양성(암 병변)과 음성(비암 병변) 사례를 구분할 때 약 96.1%의 확률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AI 미도입 의료 분야부터 개척” 김 대표는 2019년 웨이센을 설립했다. 그는 KAIST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대에서 컴퓨터 비전을 전공한 정보기술(IT) 전문가다. 사회생활은 삼성전자와 모바일 오피스 솔루션 인프라웨어 등을 거치며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모바일 오피스로 성공을 거둔 인프라웨어에서 부사장을 지냈고, 인프라웨어가 인수합병한 인공지능 솔루션 개발기업 셀바스AI 대표이사로도 재직했다. 김 대표는 사업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시장 조사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그는 셀바스AI에서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AI를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가능성을 탐색했고,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와 메디컬 AI 분야가 유망하다고 판단했다. 김 대표는 “국내외에서 인공지능을 적용할 수 있는 여러 분야를 고민하면서, 우리나라의 양질의 의료 데이터와 관리 체계를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매우 유망한 분야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5000만 명 인구에 대한 의료 자료가 디지털화돼 축적돼 있어 AI 기술을 적용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AI로 글로벌 시장까지 진출하려면 양질의 데이터가 있는 의료 분야에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창업 당시에 AI 기반 의료 영상 분석 솔루션을 만드는 루닛 같은 회사는 흉부 엑스레이 분석 솔루션을 상용화하고 있었다”며 “의료진들과의 대화에서 내시경 검사 때 병변을 놓치는 것이 그들의 고민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실시간 의료 동영상 분석에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틈새 시장부터 공략해 신뢰를 얻은 뒤 다른 의료 분야로 시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중동-동남아 진출 확대”웨이센은 올해 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병원그룹 메가마인드와 웨이메드 엔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메가마인드는 사우디에서 11개의 종합병원을 운영 중인 큰 병원그룹이다. 이를 기반으로 중동의 다른 병원들로도 솔루션 확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실증 사업을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 대표는 “중동과 동남아는 한국의 의료 수준을 높이 평가하고 우리 기술에 관심이 많은 시장”이라며 “베트남과 태국 등은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중동은 의료 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해 AI 솔루션 도입에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웨이센은 내시경 분야를 넘어 AI 헬스케어 시장 전체의 선두 주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호흡기 건강 자가 점검 앱 ‘웨이메드 코프’가 초기 사업화 단계에 있다. 호흡기 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기침 소리를 관리하는 앱이다. 기침 소리를 분석해 병원을 찾아야 할 적절한 때를 놓치지 않도록 돕는 등의 기능이 있다. 공황장애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 시험 중에 있는데, 기존 약물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지행동 치료를 디지털화해 환자들이 병원을 자주 찾지 않고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개발 중이다. 식품 알레르기 디지털 치료제와 복부 초음파 진단 보조 솔루션, 폐암 진단용 초음파 내시경(EBUS) 솔루션 등도 개발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예방과 진단, 치료 등 의료 행위의 전 주기에 AI 기술을 결합해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는 메디테크 전문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시행을 앞두고 삼성증권은 24일 ‘바꾸는 게 답입니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달 말 시행되는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는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옮길 때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 그대로 이전할 수 있는 제도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계기로 증권사처럼 다양한 상품을 보유한 금융사로 자금이 활발하게 이동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퇴직연금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가입자를 위한 편리하면서도 전문적인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앞서 삼성증권은 업계 최초로 운용관리 수수료와 자산관리 수수료(펀드 보수 등은 있음)를 무료로 제공하는 ‘다이렉트 IRP’를 출시했다. 또 ‘3분 연금’ 서비스와 ‘mPOP’을 통한 ‘연금 S톡’ 서비스로 간편한 연금 관리를 지원한다. 아울러 경력 10년 이상의 프라이빗뱅커(PB)가 상주하는 연금센터에서 전문적인 연금 상담을 제공한다. 투자 성향 맞춤형 운용 방법과 연금 제도 전문 컨설팅도 제공한다. 이창훈 삼성증권 브랜드전략팀장은 “이번 캠페인은 퇴직연금 관리를 어려워하거나 방치하는 가입자에게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통해 연금 이전을 유도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실질적인 혜택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금융 파트너 입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증권은 연말까지 IRP 계좌에 100만 원 이상 순입금 시 최대 3만 원의 신세계 모바일 상품권을 지급한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인공지능(AI)의 눈부신 발전과 진화로 AI의 대중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개인들은 데이터센터의 서버에서 처리된 AI 결과물을 받아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PC와 휴대전화, 폐쇄회로(CC)TV, 가전제품 등 개별 전자기기에도 AI 반도체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전자기기도 정보를 현장에서 바로 처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AI 반도체의 탑재가 느는 것이다. 딥엑스는 전자기기에 탑재되는 AI 반도체 설계에서 앞서가는 스타트업이다. 에지(edge) AI 반도체로 불린다. 네트워크상에서 중앙의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데이터(현장)에 가까운 네트워크상의 가장자리(edge)에서 데이터를 처리한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딥엑스는 신경망처리장치(NPU)를 만든다. 엔비디아가 주력으로 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AI 알고리즘을 더 세분화해서 특정 AI 알고리즘을 고효율로 처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애플과 브로드컴 등 세계적인 기업에서 칩을 설계했던 김녹원 대표이사(46)가 2018년에 설립했다. 18일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우리가 지금은 와이파이(WiFi)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 듯이,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은 AI 반도체가 탑재된 전자기기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인류의 삶을 바꿀 기회에 참여하고 싶어 창업했다”고 했다.● “기존 GPU 100원이라면 우리는 5원”딥엑스의 제품군은 현재 크게 3종류(DX-M1, DX-V3, DX-H1)다. 딥엑스에 따르면 DX-M1 칩은 영상에서 특정 객체를 인식하는 AI 알고리즘등을 저전력, 저비용으로 처리하는 데 탁월하다. 배터리로 구동되는 기기에서도 작동한다. 25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 전시회에서 딥엑스는 최신 객체 인식 알고리즘을 구동함에도 불구하고 섭씨 35.5도까지만 올라 버터를 녹이지 않았다. 반면 비교 대상인 글로벌 AI 반도체 회사 칩은 60.7도까지 올랐다. 김 대표는 “보안용 CCTV나 공정 점검용 카메라 등 영상 정보를 처리하는 수많은 종류의 기기에 적용할 수 있다”며 “기존 GPU와 비교했을 때 가격과 전력 소모량이 2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칩 1개로 16개의 CCTV(채널)에서 오는 영상 정보를 초당 30프레임(FPS)의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삼성전자에서 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생산되는데, 양산 수율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단계라고 딥엑스는 밝혔다. DX-V3은 카메라와 3차원(3D) 센서 신호의 처리가 필요한 자율주행과 로봇에 시각을 제공하는 칩이다. TSMC에서 12nm 공정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DX-H1 칩은 AI 서버용으로 기존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GPU)에 비해 훨씬 적은 전력과 비용으로 고성능을 제공한다. 삼성전자에서 5nm 공정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고성능이면서 저전력, 저발열을 구현하는 데는 딥엑스의 설계 기술이 큰 몫을 했다. 딥엑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효 AI 연산 성능비(FPS/TOPS)와 전성비(FPS/W)를 내는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30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고, 70건 이상의 특허가 등록된 상태다. 각각 같은 연산 성능일 때 이미지 처리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과 같은 전력에서 최고의 연산 성능을 낼 수 있는 기술이다. 김 대표는 “세계 최고의 기업들에서 칩을 설계하면서 익힌 기술들이 녹아 있다”며 “특정 AI 알고리즘이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로 구동되는 부분과 하드웨어로 구동되는 부분을 최적화한 것”이라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 이론을 칩으로고려대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받은 김 대표는 한국전자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하다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미국에 전자 분야 최고들이 많다는데 얼마나 뛰어난 사람들이 있는지 직접 부딪쳐 보고 싶었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전기공학으로 박사 과정을 하던 중에 2008년 IBM 왓슨연구소에 방문 연구원으로 갔다가 창업의 계기가 되는 순간을 맞았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제프리 힌턴 교수가 2006년에 발표한 딥러닝 개념 소개 논문을 왓슨연구소에서 칩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던 것이다. 딥러닝이라는 용어는 이때는 쓰이지 않았다. 김 대표는 새로운 신경망 처리 구조설계를 고안해 중앙처리장치(CPU)를 이용했을 때보다100배 빠른 성능을 구현해 보였다. UCLA로 돌아가서도 연구를 계속해 세계 전기공학회 저널에 관련 논문도 게재했다. 김 대표는 “딥러닝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전인 2010년에 패턴이 존재하는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 상황을 예측하는 것의 가능성과 가치를 먼저 본 것”이라고 했다. 힌턴 교수는 AI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김 대표는 2011년부터 3년은 세계적인 통신기기 회사인 시스코시스템스에서 반도체를 설계했고, 2014∼2017년에는 애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아이폰 칩 프로세서 개발에 참여했다. 김 대표는 “애플을 나오려면 4년에 걸쳐 수익화할 수 있는 약 500만 달러의 주식 보너스를 포기해야 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NPU를 기반으로 한 칩이 세상 곳곳에 깔리는 미래가 보였고, 그 미래를 앞당길 수 있는 재능이 내게 있다면 그 재능을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창업을 실행했다”고 회상했다.● “수출 위한 유통 네트워크 한창 구축 중” 김 대표는 에지 AI 반도체의 미래를 그려보면 지금도 가슴이 뛰는 듯했다. 그는 “2011년 박사 학위를 받고 시스코시스템스에 근무할 때 본 자료에 이렇게 나와 있었다. 20년 전에는 전 세계에 50억 개의 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돼 있었는데, 2020년경에는 700억 개가 연결돼 있을 것이라는 자료였다. 실제로 그 정도가 연결돼 있다. 그렇게 많은 기기에 사람의 지능과 비슷한 AI 반도체가 탑재된다면, 그런 미래는 어떤 세상일 것 같은가.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AI 산업의 3대 트렌드인 자율화, 무인화, 개인화를 들면서 에지 AI 반도체의 필요성은 점점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자율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자율주행 자동차인데, 에지 AI 반도체로 통신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성능, 저전력의 성능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인체 정보가 담긴 정보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에만 머물러서 개인정보를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지 AI 반도체는 국내외 여러 기업 등에서 활용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의 반응이 좋아 요즘은 대륙별 글로벌 유통망 구축을 위한 출장으로 한창 바쁘다”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현지 법인을 두고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딥엑스는 스마트 시티와 감시 시스템, 스마트 팩토리 등 글로벌의 다양한 산업에서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인간보다 더 쿨(cool)한 인텔리전스’를 구현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에 쓰이는 에너지보다 더 적은 에너지로 더 나은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했다.성남=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스타트업들이 만든 기술이나 서비스는 사회적 인프라처럼 되곤 한다. 스타트업이 그런 서비스를 찾는 과정은 생물의 진화와 비슷하다. 환경에 적응하다가 만들어진다. 창업할 때는 생각지도 못했다가 축적한 데이터에서 새 가능성을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포티파이(40fy)는 불안과 우울을 겪는 개인들이 손쉽게 정신의학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비대면 서비스로 출발했다. 누군가 우울증 증상이 있다고 느끼더라도 병원 상담을 받으려면 2, 3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없애려 만든 서비스다. 이후 이들이 겪는 많은 문제가 회사나 기관에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조직 내의 개인이 더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조직의 성과까지 높일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도 만들었다. 조직 진단에 초점이 맞춰진 경영 컨설팅과 달리 개인이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포티파이는 이런 방식의 접근이 탈진증후군(번아웃)이나 우울 등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낸다고 여기고 있다. 정신의학과 의사인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이사(39)는 경영 컨설턴트 경력도 갖고 있다. 7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문 대표는 “새 서비스는 기업이나 기관 내 리더급 임직원의 자기 이해 바탕의 리더십 정립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의 건강이 조직원은 물론이고 조직의 성과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대상자 파악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에 공력 포티파이는 2023년 초부터 ‘업피플’ 서비스를 새로 내놨다. 조직의 중간관리자 이상이 각자의 강점을 발휘하는 리더십을 갖도록 해 건강하게 조직의 미션을 달성토록 돕는 게 목적이다. 35세의 연구개발팀 리더였던 A 씨는 업피플의 직무 건강 상태 분석에서 효능감 저하와 번아웃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출근할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리더십 다면진단에서 팀원들은 팀장이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고 팀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끈다고 했지만 여러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다 보니 명확한 의사결정을 미루고,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지시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는 퇴근을 미루며 혼자 일을 처리하느라 지쳐 있었다.포티파이는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대상자의 상태를 ‘측정’하고 ‘분석’한 뒤 ‘해결’한다. 자체 개발한 업피플 검사, 인사팀 인터뷰 및 내부 평가자료, 동료의 피드백, 대상자의 자가 진단과 비대면 상담을 통해 대상자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리고 변화시켜야 할 행동 또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이때 지금까지 축적한 2만여 사례를 바탕으로 만든 20가지 유형 중 하나를 찾아낸다. 다음은 근본 원인 파악 단계다. 대상자의 기저에 있는 생각, 신념이나 니즈를 파악한다. 개인이 속해 있는 조직 내의 요인까지 알아낸다. 포티파이는 리더가 어려움을 겪는 근본 원인을 200여 가지로 분류하고 관련 솔루션을 정립하고 있다. 문 대표는 “대상자 데이터 수집과 문제 정의, 근본 원인 파악 등의 단계는 기존의 여러 경영 컨설팅에서는 소홀히 됐던 부분”이라며 “2001년부터 서비스했던 개인의 우울과 불안을 다루는 ‘마인들링’ 서비스와 개인이 자기를 분석할 수 있도록 만든 ‘웨이마크’ 서비스를 통해 새롭게 구축한 포티파이만의 독자적인 능력”이라고 했다. 근본 원인이 파악되면 실무에 바로 적용 가능한 수준의 실행 과제로 대상자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3개월에 걸쳐 2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일대일로 점검하며 개선해 나간다. 이런 방식을 거친 A 씨는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관계 지향형’으로 파악됐고, 팀에 필요한 바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좋은 리더는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신뢰를 주는 사람이라는 내용으로 리더상도 재정립해 줬다. A 씨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꼴찌를 달리던 다면평가 결과는 최상위 수준으로 올랐다. 포티파이는 대부분의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대상자의 문제 유형에 맞는 전문 코치를 연결해서 진행한다. 국내 통신사와 주요 게임사, 헬스케어 분야 상장 스타트업 등 많은 기업들이 업피플 서비스를 이용했다. 문 대표는 “인사 담당자나 대상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어서 같은 기업이 대상자를 넓혀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마인들링’과 ‘웨이마크’ 2020년에 창업한 포티파이는 2021년 ‘마인들링’ 서비스를 내놓으며 온라인 심리치료 사업을 시작했다. 마인들링은 사용자가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온라인 프로그램이다. 사용자의 성격적 특성과 스트레스 원인을 평가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완벽주의, 자존감, 불안, 분노 등 심리적 문제별로도 솔루션이 제공된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했던 문 대표는 “멀리서 몇 시간을 들여서 온 환자들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5분이 채 되지 않아 안타까웠던 점이 창업의 씨앗이 됐다”고 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전달해 주고 싶은 다양한 심신 안정 방식 등을 유형별로 나눠 앱으로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는 “16만 명 정도가 사용하고, 유료 가입자도 2만 명 이상”이라며 “‘매일 버스에서 앱을 켜고 불안감을 달랜다’는 사용 후기를 볼 때 뿌듯하다”고 했다. 마인들링 서비스 다음으로 내놓은 것이 직장인 커리어 진단 서비스인 ‘웨이마크’다. 직장인들이 자신의 성향과 강점을 파악하고, 더 나은 커리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230문항의 심층 진단 검사로 성향과 강점을 파악할 수 있고, 온라인으로 전문가와 상담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개발된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상담은 전문가가 일일이 개입해야 하는 노동집약적인 형태여서 시간을 아껴 효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정신과 진료와 경영 컨설턴트 경험 결합 문 대표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공중보건과 경영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도 일했다. 업피플 서비스는 이런 그의 경험이 다 녹아 있는 서비스인 셈이다. 하지만 도전도 만만치 않다. 서비스 특성상 객관적으로 어느 서비스가 우수한지 수요자들이 구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코치들이 각각 다른 경험과 성향을 가지고 있어 일관된 코칭 효과를 내는 것도 과제다. 이 때문에 포티파이는 자체 개발한 진단과 코칭 프레임워크에 대한 내부 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문 대표는 “인공지능(AI) 결합을 통해 서비스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는 연구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업피플에 당분간 주력할 계획이다. 관리자가 건강하지 못하면 조직과 다른 구성원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타인을 관리하려면 타인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려면 자기 관리가 가능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자기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모두가 ‘나’다움을 건강하게 발휘하는 일터와 그런 일터들이 모인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창업의 길은 멀고 험한 길이다. 자금과 인력의 부족이 교묘하게 겹치며 창업가를 괴롭힌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자신만의 목표와 비전이 있어야 그나마 견딜 수 있다. 산업 안전용 라이다 센서를 국산화한 나노시스템즈의 창업 과정이 그랬다. 경북 경산시 경북테크노파크에 있는 나노시스템즈는 라이다(LiDAR) 센서를 2020년에 개발했다. 라이다 센서는 적외선 부근 파장의 레이저를 쏘아서 주변을 인식한다. 자율주행차량에 많이 쓰여 널리 알려졌다. 라이다 센서는 자동화 시스템의 눈과 같은 것이어서 쓰이는 곳이 많다. 철도나 지하철 역사 내의 철로 안전문(스크린 도어)에도 붙어 있고, 공장에서 제조 공정 중 위험한 곳이나 물품을 옮기는 모바일 로봇 등에도 쓰인다. 나노시스템즈는 자율주행차량용이 아닌 모바일 로봇이나 산업 안전용 라이다 센서를 개발했다. 나노시스템즈는 올해 매출액이 50억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영업이익은 3억∼4억 원이 될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한 지 11년째인 올해 처음 투자를 받았다. 창업과 동시에 투자를 받는 여느 스타트업과는 다른 행보다. 24일 경북테크노파크에 있는 나노시스템즈 사무실에서 만난 지창현 대표이사(50)는 “2013년에 창업해서 제품 개발에 7년이 걸렸다.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으니, 이제 투자를 받으며 회사도 알리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철도 승강장 안전문의 외산 센서 대체 나노시스템즈의 라이다 센서 중 매출 효자 품목은 철도 승강장 안전문에 쓰이는 라이다 센서다. 열차 출입문과 안전문 사이에 사람이 감지될 경우 안전문을 열어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한다. 외산 센서가 초기에 많이 설치됐지만 지금은 국철 구간을 중심으로 나노시스템즈의 제품이 많이 쓰이게 되었다. 지 대표는 “2D(2차원) 외산 센서는 원래 제조 공장 등에 쓰이던 센서로 아주 얇은 평면만 인식하는 데 비해 우리 제품은 평면뿐만 아니라 열차와 스크린 도어 사이의 수십 cm 공간도 인식할 수 있고 눈과 비, 고출력의 전자파 내성도 우수하다”고 했다. 나노시스템즈의 라이다 센서는 3차원(3D) 플래시 형태다. 카메라의 플래시처럼 레이저를 한꺼번에 넓은 면적으로 쏘아서 단번에 특정 장소를 파악한다. 센서의 전면부 상하좌우로 약 110도의 화각으로, 10m 정도의 거리까지 한꺼번에 인식한다.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사람의 형상을 감지한다. 라이다 센서는 멀리 인식하려면 기술적인 어려움이 커진다. 자율주행차량용은 100m 정도의 거리의 사람이나 물체를 인식한다. 지 대표는 “자율주행차량용 센서를 개발하는 곳은 조 단위의 투자를 받아 기술을 개발할 정도”라며 “자율주행차량뿐만 아니라 산업 안전 분야에도 쓰일 곳이 많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근거리(10m 이내)와 중거리(30m 이내)용 라이더 센서 국산화에 집중했다”고 소개했다. 라이다 센서를 만드는 곳은 물론 나노시스템즈만이 아니다. 지 대표는 “다중 변조 주파수 알고리즘을 개발해 30m 이내 거리에서는 오차를 ±1% 이내로 줄였고, 근거리와 중거리 인식을 단일 제품으로 구현한 것이 차별점”이라고 했다. 나노시스템즈는 이런 기술들을 적용해 철로 안전문 외에 실외 배송 로봇, 물류용 실내 모바일 로봇, 무인 골프 카트 센서 등을 개발해 공급 중이다. 라이다 센서와 열화상 센서를 결합해 이상체온 등을 감시하는 제품도 있다.● 주문 제작품 납품과 국책 과제로 버텨 지 대표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중견기업에서 컴퓨터 솔루션을 파는 기술영업을 담당했다. 그는 “영업을 하면서 독자적인 제품이 없으면 계약을 맺기 쉽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며 “미래 성장성이 큰 아이템을 선정하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던 중 기술 자문을 해 주시던 대학의 교수님으로부터 자율주행차량이 나오면 라이다 센서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고심 끝에 라이다 센서로 방향을 잡고 창업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자율주행차량 라이다 센서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근거리 및 중거리 라이다 센서 개발을 목표로 했다. 영업 활동을 하며 네트워크를 통해 철도 안전문 등에 쓰이는 라이다 센서를 해당 기관들에서는 국산으로 쓰고 싶은데, 만드는 곳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외산을 쓴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배경이 됐다. 지 대표는 “산업 안전용이나 모바일 로봇 등 수요가 확실해 보이는 곳들이 보였다”며 “내가 직접 가진 기술이 없으니 시장의 수요부터 알아보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게 된 셈”이라고 했다. 자본금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모은 자금 등으로 1억5000만 원가량을 댔다. 기술 개발을 위해 관련 분야를 전공한 대학원 학생을 고용하고, 대학원 등록금을 대 주면서 회사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했다. 지 대표는 “연구 인력 양성에 최선을 다했다. 제품을 팔 자신은 있었기에 센서만 제대로 만들자는 열망이 아주 컸다”고 했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외부의 연구 과제들 중 규모가 작더라도 할 만한 것들을 수행했다. 이런 실적을 조금씩 쌓아 제법 큰 국책 연구과제도 맡을 수 있었다. 라이다 기술로 경북 지역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용역을 병행하며 7년을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자본금이 바닥나고 제품 개발도 생각보다 지체되면서 창업 3년, 5년 즈음에 그만둘 생각도 났지만 시장의 수요가 명확해 보였고, 개발한 기술이 아까워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나노시스템즈는 한국전자기술연구원과 영남대 등 외부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도 했다. 라이다 센서를 개발하면서 6건의 국내 특허와 1건의 국제 특허, 그리고 상표권을 등록했다. 그는 창업 초기에 투자를 받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 대표는 “2010년대 중반에는 자율주행차 라이다 센서에만 너무 많은 관심이 쏠려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며 “조금씩 쌓아둔 기술력 덕분에 기술신보 등을 통해 10억 원이 넘는 대출을 받아 지금까지 버텼다”고 했다.● “인공지능(AI) 결합해 제조 공정 안전 높일 것”나노시스템즈는 현재 유명 대기업 제조공장의 모바일 로봇에 쓰이는 센서를 공급 중이고, 국내 협동로봇 개발 회사에도 제품을 납품하는 등 판매가 늘고 있다. 지 대표는 라이다 센서로 인식한 특정 공간에 대한 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처리해 산업 안전을 높이는 분야에도 진출을 시작했다. 그는 “제조 관행상 자동화 기계를 멈추지 않고 근로자들이 기계에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곳에 라이다 센서를 설치해 정확하게 사람만 인식해 기계를 비상 정지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며 “공장의 효율을 해치지 않고 안전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솔루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산업 안전용 로봇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할 계획도 구상 중이다. 탐지 거리를 늘리고, 위험 인지 행동에 대한 AI 기술을 쌓아 실내외를 가리지 않는 위험·재해용 라이다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경산=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충남 아산시 이순신빙상장·체육관에서는 21, 22일 ‘2024 충남도지사배 청소년-직장인 e스포츠 대회’가 열렸다. 충남 주민 2000여 명이 경기장을 찾아 e스포츠를 즐겼다. 행사를 주최한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은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e스포츠 전용 경기장도 짓는다. 진흥원은 충남의 도정 목표 중 하나인 게임 산업 육성에 앞장서는 기관이다. 올해 5월 취임한 김곡미 원장(사진)은 24일 “e스포츠 경기장은 타 시도의 리모델링과 달리 전국에서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신축하는 것”이라며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된 e스포츠가 충남도의 관광자원으로도 손색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진흥원은 정보문화산업 진흥을 위해 정보통신기술(ICT)과 콘텐츠 개발을 지원하는 곳이다. 실감 콘텐츠 제작이나 인공지능(AI) 개발, 게임과 웹툰 제작 등을 지원하고, 관련 스타트업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e스포츠 경기장 신축과 운영 명목으로 예산 450억 원을 확보한 상태다. 김 원장은 “설계는 공모를 통해 확정했고, 아산시 배방읍 부지에 올해 말에 착공할 계획”이라며 “신축으로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인 e스포츠 경기장은 수도권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다”고 했다. 충남 소재 대학과 손잡고 게임 인재를 키우고 e스포츠 구단 창설도 활성화한다. 청년들이 게임 관련 기업에 취업하거나 게임 회사를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한다. 게임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60대 이상 노년층을 위한 게임 클럽 활성화 계획도 그중 하나. 스크린골프나 온라인 장기, 바둑 등을 통해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농축산업을 영위하는 주민들을 위해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제작도 지원할 계획이다. 재미와 지식을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e스포츠 대회를 창설하고, 첫 대회를 내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연다고 올해 7월 발표했다.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것이라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게임은 언어나 문화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람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준다”며 “게임의 선한 영향력을 강화한다면 청소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콘텐츠가 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충남도와 진흥원은 게임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국가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민간이 조성하는 500억 원 규모의 모태 펀드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홍익대에서 광고홍보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 원장은 LG생활건강 수석디자이너와 연암대 교수로 재직하며 디자인, 마케팅 브랜드 개발, 경영관리 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휴대전화에 앱 하나를 설치하고 버튼 하나를 누르면 내 주변의 땅과 빌딩, 단독주택의 거래 이력이 한눈에 지도에 표시돼 나오는 서비스가 있다. 상업용 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는 디스코(DISCO·대표이사 배우순)가 제공하는 앱 서비스다. 디스코가 이 서비스를 내놓기 이전까지는 땅이나 빌딩, 상가, 창고나 공장 등의 거래 가격은 알기 힘들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 보더라도 가격이 나와 있는 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디스코는 2016년 말에 정부가 상업용 부동산과 토지 등의 거래에 관한 정보를 불완전하게 공개했을 때 재빨리 나섰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과 시각화 기술을 동원해 지번까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 불완전한 정보를 완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7년 초 누구라도 쉽고 빠르게 찾아볼 수 있도록 지도 위에 정확하게 표시해 공개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빌딩이나 토지, 공장, 상가 등을 거래하려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서라도 이용할 만한 서비스였는데, 디스코는 무료로 공개했다. 지금도 누구라도 앱이나 웹을 통해 전국의 모든 땅과 빌딩, 상가, 공장, 단독주택 등의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전형적인 주거용 부동산의 거래 정보에다 경매에 나와 있는 물건도 모두 나온다. 이번 추석 때 고향에 간 김에 고향과 그 인근의 땅은 얼마에 거래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재미도 있고, 부동산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도 있을 듯하다. 대도시에서 제법 돈을 모았다면 한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고향의 땅값이 만만해 보일 수도 있다. 추석을 10여 일 남겨 둔 이달 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 있는 디스코의 사무실에서 배우순 대표(42)를 만났다. 감정평가사로 감정평가 법인에서 일했던 그가 빌딩과 땅 거래 가격을 그냥 공개한 속내, 플랫폼 서비스에 가격 공개 외에 더해진 기능들, 궁극적으로 어떤 서비스로 나아갈 것인지 등에 대해 들었다. ● 감정평가사로 일하다가 느낀 불합리 배 대표는 2009년부터 2016년 초까지 감정평가사로 일했다. 대기업이 의뢰한 빌딩이나 토지, 공장 등에 대한 감정평가 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부동산 활용에 대한 컨설팅도 수행했다. 대기업은 감정평가법인을 통해 상업용 부동산 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지만 개인이나 작은 기업 단위로 내려오면 그렇지 못했다. 배 대표는 “2010년대 초 서울 강남에서 사무용 빌딩을 가격 비교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사는 사업가들을 종종 봤다”며 “상업용 부동산의 거래 정보를 투명하게 만들면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기회가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창업은 2016년 초에 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 정보 등을 제공하는 부동산 플랫폼들이 생기고 3∼4년이 지난 시점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사고파는 사람들의 정보 비대칭성을 없애 보자고 마음먹었다. 마침 정부가 그해 말 상업용 부동산 거래 정보도 공개하면서 서비스 개발이 빨라졌다. 하지만 정부가 공개하는 정보는 지번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도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들어가 보면 토지는 동 이름 정도만 나온다. 디스코는 이런 불완전한 정보를 기반으로 해당 토지의 거래 면적이나 용도 등 여러 정보를 결합해 정확한 지번을 찾아낸 뒤 앱과 웹에 정확한 위치로 정보를 제공한다. 정부가 공개한 2006년 이후의 모든 거래 정보를 볼 수 있다. ● “사이버 임장용으로 활용한다고들 들어” 대도시의 빌딩을 지나치면서 ‘저런 꼬마 빌딩은 얼마나 할까’를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제는 앱만 켜면 알 수 있다. 예컨대,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 인근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7층 일반상업지역에 있는 꼬마빌딩(대지 105㎡, 연면적 728㎡)이 작년 5월에 73억 원에 거래됐다는 정보가 나온다. 가격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층별로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긴 건축물 현황 등 다양한 관련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다른 스타트업과 협업해 지금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다면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는지 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까지 결합했다. 부동산에서는 현장을 살펴보는 임장을 중요시 여긴다. 특히 아파트처럼 어느 정도 표준화된 매물이 아닌 빌딩이나 토지, 상가, 공장 등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디스코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현장을 가 본 듯이 물건을 볼 수 있다. 배 대표는 “많은 공인중개사가 우리 앱이나 웹을 켜서 거리뷰를 보여주면서 해당 토지나 빌딩, 아파트나 단독주택 등을 고객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한 뒤 실제 현장을 방문하곤 한다고 듣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 정보를 실제 거리를 찍은 로드뷰 정보와 결합해 다세대 건물의 거래 정보나 매물 정보가 해당 부동산을 찍은 사진 위에 바로 표시되도록 해 편의성도 높였다.디스코 서비스를 위해 정부의 실거래가 정보는 물론이고 연속지적도, 토지이용계획, 개별주택가격, 공동주택가격, 법정구역, 법원경매, 건축별 대장, 개별공시지가, 상가업소 정보, 건물 배치도 등 다양한 데이터베이스(DB)를 사용한다.● 토지-빌딩-공장 거래를 아파트처럼 편리하게디스코는 올해부터 아주 조금씩 월별로 수익을 내고 있다. 배 대표는 “토지나 빌딩, 공장 등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공인중개사와의 협업에 집중하고 있다”며 “모든 공인중개사를 회원으로 받지 않고 지역별로 제한된 인원만 받아 그분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과 같이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할 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보를 탐색하고 선택하는 상품에서는 유통하고 중개하는 기관과 사람의 역할이 크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배 대표는 “그렇다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역적으로 대기하는 회원이 많은 곳은 기존 회원들에게 약속한 기간 이후에는 상황을 봐서 회원 수를 조금씩 증원한다”고 했다. 현재는 회원이 내는 수입이 주요 수입원인데, 여러 사업을 다각적으로 플랫폼에 접목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와 협업해 전국 각지에 프랜차이즈 매장을 낼 만한 상가를 찾아주고 점주까지 매칭해주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건물 관리 전문가나 세무사나 회계사를 소개해주는 비즈니스도 있다. 회원인 공인중개사의 일감이 늘어남에 따라 디스코도 수입을 늘리는 방식이다. 배 대표는 토지와 빌딩 가격을 사람들이 손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데는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가려져 있거나 가격이 갑자기 변동하는 상황은 판매자나 구매자뿐만 아니라 중개사 모두에게 좋지 않다”며 “토지나 빌딩, 상가, 창고, 공장 등의 거래도 아파트처럼 투명하고 편리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디스코의 목표”라고 했다.성남=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전기차 화재가 무섭다. 이달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가만히 세워져 있던 전기차에서 불이 났다. 아무런 충격이 없는 상태에서 불이 났고, 큰 불길이 5시간 이상 잡히지 않으면서 주변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83대는 열이나 그을음으로 인한 해를 입었다. 차 한 대에서 불이 시작됐을 뿐인데 화재 당시 출동한 소방인력은 170명이 넘었다. 고급 승용차인 벤츠 전기차에서 이런 불이 났다는 점에서 전기차 전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기차의 화재 발생빈도는 1만 대당 1.32대로 일반 차량의 1.86대에 비해 30% 정도 낮다. 하지만 불이 나면 몇 시간씩 계속 타는 특성 때문에 국민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리모빌리티(대표이사 이재환·46)는 전기차의 배터리 화재를 진압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2017년 전기차 첫 화재 이후 관련 화재가 계속 늘어나던 2022년에 설립된 회사다. 26일 대전 유성구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같은 기간 전기차 보급도 크게 늘었다. 운행 기간이 많아진 전기차가 늘어나면 화재는 더 문제가 될 소지가 커 그 해결법을 찾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 여러 문의 전화를 받았다. 최근 이 회사 제품이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로 조달청 혁신제품에 지정돼 문의가 늘었다고 했다. 제품은 개발 막바지 단계다. 시제품으로 올해 초부터 개념 실증(PoC)을 했고, 완제품은 연내에 내놓을 계획이다.● 배터리 주변 온도를 낮추는 게 관건 전기차 배터리에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좀처럼 꺼지지 않는 열 폭주 현상이 발생한다. 일반 분말소화기로 소화제를 뿌려도 배터리의 화염은 잠깐 밀렸다가 이내 다시 살아난다. 일반 차량 화재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소화제가 공기를 차단해도 소용이 없는 것은 열을 받은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산소와 함께 가연성 가스들이 나오며 타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은 질식소화덮개를 쓰기도 하는데, 이 또한 배터리의 불을 끄는 용도가 아니라 주변 차량이나 건물로 화염이나 연기가 번지는 것을 더디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동식 수조는 설치에 시간이 걸려 골든타임에는 적용하기 힘들고 재발화 방지용으로 많이 쓰인다. 배터리에 가해진 충격이나 불량 등으로 배터리 셀 일부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주변으로 열 폭주 현상이 전이된다. 이 대표는 “주변 셀로 열이 전달되지 못하게 빠르게 냉각액을 스며들게 해 온도를 낮추는 것이 전기차 화재 진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물을 차량 하부에 집중적으로 뿌리거나, 차 주변에 이동식 수조를 설치해 차를 담그는 것은 배터리 온도를 낮추려는 의도다. 그런데 문제는 배터리 겉면이 수증기나 먼지 등을 차단하기 위해 금속으로 밀봉돼 있다는 점이다. 국방과학연구소 출신의 권우근 리모빌리티 연구소장(68)은 “외부에서 소화제나 물을 뿌리는 방식보다 더 효과적으로 배터리 온도를 낮추기 위해 배터리 안으로 소화 약제를 직접 뿌리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했다. 리모빌리티가 만든 전기차 화재 진압 장치(포터블형)는 소화 약제를 담은 나지막한 카트처럼 생겼다. 불이 난 전기차 근처까지 끌고 가서 10여 m 정도의 거리에서 반자율주행으로 차량 앞쪽이나 뒤쪽으로 접근시킨다. 옆면으로는 연기나 화염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진압장치는 차량 밑바닥으로 기다란 연장 모듈을 전개시킨다. 차량 바닥으로 진입한 장치에는 합금 재질의 관통 분사 노즐이 달려 있다. 차량 밑바닥의 커버와 배터리 케이스를 뚫은 뒤 소화 약제를 배터리에 직접 고속 분사한다. 권 소장은 “처음에는 넓은 판형에서 9개 정도의 노즐이었지만 최종적으로 가느다란 사각형 모듈에 노즐 2개로 완성했다”며 “연구개발용 모델로 모형 전기차에 시험한 결과 배터리 주변 온도를 100∼150도 이하로 떨어뜨려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았다”고 했다. 전기차 충전소나 아파트 주차장 비치용으로 개발됐다. 소화 약제는 배터리 화재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전도성 강화액 계열을 선택했다.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서도 물보다 침투력이 좋아 더 빠르게 배터리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액체다. 권 소장은 “소방관들이 호스로 물을 뿌리다 배터리의 전류에 감전되는 경우가 있어 비전도성이 필요했고, 물보다 냉각 효과가 좋은 물질이 필요했다”고 했다.● 빠른 화재 감지 시스템도 연구 조달청에 혁신제품으로 등록된 제품은 차량으로 견인하는 규모가 좀 더 큰 소화장치다. 이 대표는 “포터블형이 전기차 1대용이라면 견인형은 2∼3대의 화재도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라고 했다. 향후에는 기존의 소방차량에 전기차 화재용 소화 약제와 이를 분사할 수 있는 장치를 결합한 전기차 전용 소방차량을 만들 계획이다. 리모빌리티는 작년 8월에 ‘전기차 배터리 화재 진압용 소화장치 및 시스템’의 특허를 등록했고, 올해 6월에는 ‘전기차 충전소의 화재 진압용 방염막’에 대한 특허도 등록했다. 충전 중인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위쪽에서 방염막이 펼쳐지고, 방염막 내부에서 소화액을 분사된다. 분사된 소화액을 방염막 내부에 가둬 수조를 형성, 전기차의 재발화도 막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자동으로 비상 상황을 감지하는 시스템도 연구 중이다. 주차장 바닥에 열감지 센서를 구비하고 영상감시 등과 결합해 전기차 화재를 조기에 감지하는 식이다. 이 대표는 “기존의 화재 감지 센서는 천장에 있어서 불이나 연기가 제법 발생해야 작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보다 빠르게 화재를 감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했다. 국립소방연구원의 지난해 전기차 화재 대응 가이드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의 화염 방향은 가스 분출 등으로 인해 수평 방향으로 빠르게 번진다. 전기차들이 나란히 서서 충전을 하던 중에 불이 난 사고를 분석해 봤더니 화재 차량에 화염이 보인 후 1분 15초 만에 바로 옆 차량으로 불이 번졌고, 세 번째 차량까지 번지는 데에도 모두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빠른 화재 감지가 필요한 배경이다.● 안전 분야 창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 이 대표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중심으로 공부한 뒤 산업체에서 다양한 연구 제조 기술을 경험했다. 2001년과 2004년 정보전산공학과 정보보호공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받고, 이후 여러 중소기업에서 ICT 솔루션을 개발했다. 리모빌리티 창업 직전에는 기업에서 특수차량 개발을 총괄하는 경험도 쌓았다. 2010년과 2015년에는 경영학석사와 공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이 대표는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다양한 센서 제품과 원격관제 솔루션, 특수차량을 개발한 경험이 전기차 화재 감지와 전기차 화재 진압 특수차 개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대표가 보유한 여러 건의 특허 중에는 전기차 충전기 내장형 사물인터넷(IoT) 융합 화재 진압 장치와 전기설비 소공간용 소화기도 있다. 화재 중 많은 경우가 전기차 충전기와 전력 배전반, 분전함 같은 좁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을 알고 그 안에서 온도 등을 감지해 자동으로 소화제를 분사하는 작은 소화기다. 2013년 사업화를 포기했다가 지금 리모빌리티에서 추가 특허를 확보하고 함께 사업화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전기차 화재를 관통형 노즐로 빠르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은 시작”이라며 “전기차 충전소의 자동 방염막 등 도시의 안전을 높일 수 있는 안전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올해 6월 2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퀀텀코리아 2024’ 전시회에서는 양자컴퓨팅 산업의 빠른 발전을 기대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발표가 있었다. 국내 양자컴퓨팅 알고리즘 개발 스타트업인 큐노바(대표이사 이준구)가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에 쓰일 수 있는 정확하고 빠른 양자 알고리즘(소프트웨어)을 세계에서 처음 시연한 것이다. 12일 대전 유성구 본사에서 KAIST 교수(전기 및 전자공학부)인 이준구 큐노바 대표이사(59)를 만났다. 그는 “순수하게 알고리즘만으로, 기존 양자컴퓨팅 자원의 1000분의 1만 가지고도 100배 더 정밀하게 화합물의 전자 분포를 오류 없이 계산해 낸 것”이라며 “지금 나오고 있는 불완전한 중간 규모의 양자컴퓨터로도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세계 최고 수준의 결과”라고 했다. 흔히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가 수십 년 걸릴 계산을 단 몇 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기로 묘사된다. 구글은 2019년 자사의 양자컴퓨터 ‘시카모어’가 양자 난수 생성과 검증에서 슈퍼컴퓨터보다 우위에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IBM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이고 핀란드의 IQM 같은 회사들은 개인이나 기업들이 상업적으로 접근 가능한 양자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 물류나 공급망 관리 같은 최적화 문제, 암호 해독 분야 등에서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효율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양자 상태인 큐비트를 기반으로 계산을 수행하기에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열이나 전자기장 등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민감해 잘못된 값을 내놓기도 한다. 큐노바는 양자컴퓨터의 불안정성을 알고리즘으로 극복해 양자컴퓨팅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화합물의 효능을 미리 계산해 예측 큐노바는 6월 말 전시회에서 핀란드 IQM사의 초전도 양자컴퓨터와 오스트리아 AQT사의 이온트랩 양자컴퓨터에 접속해 리튬황화물과 황화수소, 물분자, 암모니아 등의 전자 분포를 에너지 분석을 통해 이론값에 가깝게 계산해 냈다. 특정 화합물의 전자 구조는 해당 화합물의 화학적 성질과 반응성을 예측하는 데 중요하다. 특정 약물이 항원에 강력하게 접촉하는지 등을 예측함으로써 약물의 효능을 검증하는 식이다. 양자컴퓨팅에서 알고리즘의 역할은 중요하다. 첫 번째는 양자컴퓨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계산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역할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양자컴퓨터는 양자 상태인 큐비트의 오류를 물리적으로는 정확히 보정하지 못해 계산 도중 잘못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예컨대 1+3을 계산하는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계산한다고 했을 때 확률적으로 4가 아닌 다른 값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알고리즘의 보완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양자 상태의 큐비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양자적으로 반응하는 원자 단위의 물리적 상태를 모의하는 데 탁월한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기존 컴퓨터로 양자 상태의 물리 현장을 모의하려면 복잡한 계산식으로 많은 컴퓨팅 자원이 소모되지만 양자컴퓨터에서는 이를 훨씬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구현할 수 있다. 큐노바가 개발한 알고리즘에는 ‘인계 반복 변분 양자 고유값 해법’(HIVQE·Handover Iteration Variational Quantum Eigensolver)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정 화합물의 특성을 알려면 그 화합물 내 전자들이 분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에너지 상태를 찾아야 하는데, 그걸 찾는 알고리즘이다. 기존에 있는 방식(VQE)에 큐노바가 개발한 단순하지만 정확한 알고리즘이 결합됐다. 이 대표는 “지금 나와 있는 ‘노이즈가 있는 중간 규모 정도의 양자컴퓨터(NISQ)’를 신약이나 신소재 연구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이 곧 열릴 것”이라고 했다. 노이즈가 있다는 말은 계산 결과가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큐노바는 HIVQE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화합물의 전자구조를 해석하는 플랫폼(펄사·Pulsar)을 90% 정도 완성한 상태다.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에서 특정 화합물이 어떤 효능을 낼 것인지를 전자 분포를 직접 계산해 미리 알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기존에는 특정 화합물을 직접 만들어 효능을 알아냈다면 이제는 전자의 분포를 직접 계산하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새 물질을 합성하는 것이다. 큐노바는 펄사를 기반으로 현대자동차와 포스코홀딩스 등과 협업하기도 했다.● 근본부터 다른 신소재-신약 빠르게 발굴 큐노바는 신약 및 신소재 후보 물질을 빠르게 찾아주는 플랫폼(밀키 웨이·Milky Way)도 개발하고 있다. 이는 양자 기반 분자 조각 조합 신약개발법(양자 FBDD)을 기반으로 한다. 양자컴퓨팅을 활용해 분자의 전자 분포를 계산해 화합물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또 작은 분자 조각들이 표적 단백질과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분석해 유효한 약물 후보를 도출한다. 1억 개 이상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화합물을 정교하게 구별하고 선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의 일반 컴퓨팅으로는 풀지 못하는 양자 모델링 등을 통해 최우선 후보물질을 발굴토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 대표는 “현재 업계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후보 물질을 학습시키고 있지만 기존 약물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혁신적인 신약이나 신소재를 찾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밀키 웨이가 완성되면 분자 조각들의 다양한 효능에 대한 데이터로 훨씬 효과가 좋은 신약이나 신물질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기존 약물을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인 신약 개발이 많아질 것이다. 큐노바는 현재 밀키 웨이를 50∼60% 정도 구축한 상태다.● 2000년 초반 양자컴퓨팅과 인연 후 창업 이 대표는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로 양자 정보 및 통신 연구실도 운영하고 있다. 양자 보안 통신과 양자 기계 학습 등도 연구 분야다. 1995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제라드 무루 교수 연구센터에서 양자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일본 NEC가 미국에 세운 NEC연구소에 들어가서 당시 세계적으로 이론이 나오고 있던 양자컴퓨팅 연구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가 실제 양자컴퓨터가 개발되지 않아 관심을 접어 두었다가 큐비트 2∼3개짜리 양자컴퓨터가 출현하기 시작한 2012년경부터 다시 양자컴퓨팅 연구를 본격화했다. 큐노바는 2021년 교원창업으로 설립했다. 이후 토론토대의 양자 기술 기반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CDL 양자스트림 과정)을 완료했다. 양자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을 보육하는 곳으로는 유일한 곳이다. 큐노바는 50개 팀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0개 팀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양자 기술로 어떤 사업이 가능할지 검증을 받는 과정 중에 40개 팀은 사업성이 불분명해 포기한 것”이라며 “전 세계 양자 기술 기업이나 투자자들과 네트워킹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큐노바가 6월에 시연한 양자컴퓨터는 20큐비트 기반이다. 유효하게 작동하는 큐비트가 40∼60개 정도 되면 양자컴퓨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대표는 “내후년 정도면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며 “올해 말까지 60큐비트에서도 작동하는 펄사 플랫폼을 완성해 세계적인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바이오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실에서 빠뜨리지 않고 해야 하는 과정이 세포 배양이다. 연구 대상인 세포주를 배양해 개체 수를 늘려야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무균 상태에서 정교한 손놀림으로 세포를 다루고, 오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배양액을 공급하며 세포 수를 늘린다. 세포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 현미경으로 확인도 해야 한다. 필요한 세포를 보관하고 꺼내기 위해 영하 150도로 유지되는 초저온 냉동고도 수시로 다뤄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시에 있는 셀트리오(대표이사 찰리 던천)는 세포주 배양을 완전 자동화한 시스템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업화한 스타트업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및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제약업체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던천 대표이사(73)에게 제안해 회사를 공동 창업한 이는 김진오 로봇앤드디자인 회장(65)이다. 로봇공학 전문가인 김 회장은 셀트리오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최대 주주다. 지금도 끊임없이 로봇공학을 이용한 자동화 시스템 기술을 직접 개발한다. 세계 시장을 노리는 스타트업을 찾다가 셀트리오를 알게 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한국로봇산업협회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올해 로봇산업협회장에 당선됐다. 검은 배낭형 가방을 메고 나타난 그는 “일평생을 로봇공학에 몸담고 15년 전부터 바이오 실험실 장비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면서 축적된 연구 결과들이 이제 세상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24시간 연중무휴로 배양 가능 세포를 배양하는 실험실은 세포 배양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통상 99∼132㎥(약 30∼40평) 공간을 차지한다. 셀트리오의 세포 자동배양 시스템(로보셀)은 기능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가로 4m, 세로 3m, 높이 2.8m가량이다. 면적만 비교해 본다면 12㎡(약 3.6평)로 실험실 면적 10% 정도만 있어도 된다. 사람이 신경 쓰지 않아도 24시간 가동하면서 세포를 연중무휴 배양할 수 있다. 세포 배양에 관한 모든 과정이 소프트웨어에 기록돼 일관성 있는 실험 재현이나 더 효율적인 배양법 연구가 수월해지는 점도 이점이다. 로보셀은 세포주를 저장하는 초저온 냉동고, 세포를 여러 용기에 나눠 담는 액체 핸들러, 세포에 영양분을 보내는 배지 공급기 등을 비롯해 원심분리기, 세포 계수기 같은 여러 기능이 모두 독립적인 모듈(구성 요소)로 제작됐다. 김 회장은 “처음에는 적은 기능만 사용하다가 필요에 따라 다기능 대형 로보셀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고, 연구실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외부 솔루션과의 호환도 편리하다”고 했다. 로보셀은 내부 무균 공간에서 이송장치와 로봇팔이 움직여 플라스크와 웰플레이트(용기를 한꺼번에 많이 꽂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판) 등을 이리저리 옮긴다. 김 회장은 “로보셀같이 세포 배양 전체 과정을 자동화한 로보틱스 시스템은 우리가 처음”이라며 “미국의 글로벌 생명공학기업 ‘서모 피셔 사이언티픽’이 로보셀을 우리 대리점 자격으로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셀트리오의 또 다른 자동화 기기는 세포 초저온 냉동고 로보스토(Robostor)다. 영하 150도까지 온도를 떨어뜨려 세포를 보관하는 장치다. 사람이 일일이 세포가 담긴 무균 상태의 작은 유리병(바이알)을 냉동고에서 꺼내야 했던 것을 자동화했다. 수천∼수만 개 바이알 중에서 원하는 세포가 담긴 병을 실수 없이 꺼낸다. 사람은 냉동고가 열릴 때 발생하는 뿌연 증기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 다른 병을 꺼내는 실수를 할 수 있다. 또 냉동고에서 보관하던 병을 꺼내면 공기 중 습기 때문에 유리병에 성에가 끼곤 하는데 셀트리오는 공기 중 수증기를 모두 밀어낸 임시 공간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김 회장은 “초저온 냉동고는 로보셀에 연결되기도 하지만 별도로도 워낙 수요가 많아 독립 제품으로 분리해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적인 제약 기업들 잇단 주문” 자동 배양 시스템은 올해 처음 세계적인 제약 기업에 설치돼 사용 승인이 났다. 김 회장은 “주문을 받은 지 2년 정도 됐지만 최종 마무리 작업을 거쳐 글로벌 제약 기업이 최종적으로 제품을 승인했다는 점에서 올 초부터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셀트리오는 지난해 70만 달러(약 9억5000만 원)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200만 달러(약 300억7400만 원) 이상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동 배양 시스템 개발 소식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글로벌 제약 기업들 주문이 이어져 올해 목표치보다 더 많은 주문을 받아 둔 상태다. 김 회장은 “설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이 시스템은) 통상 20억∼40억 원에 판매가 되는데, 5대를 한꺼번에 주문할 예정인 고객도 있다”고 했다. NIH와 연매출 428억 달러(약 58조 원)에 달하는 서모 피셔 사이언티픽도 고객이다. 셀트리오가 최근 300만 달러 투자를 받은 것은 주문량 증가에 따른 생산과 서비스 역량 확충을 위해서다. 로보셀은 현재 로봇앤드디자인에서 하드웨어를 만들고, 미국 셀트리오는 로보셀을 가동하는 소프트웨어 바이오 플로를 고객 수요에 맞춰 최적화한 뒤 공급하고 있다. 로봇앤드디자인은 1999년에 설립된 로봇 및 자동화 장비 전문회사로 로봇 장비 수백 종을 개발해 제조자개발생산(ODM)이나 주문자위탁생산(OEM)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김 회장은 “생산량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 로봇공학계 최고 전문가들 의기투합 김 회장과 던천 대표이사는 한국과 미국의 로봇 전문가다. 두 사람 모두 30년 이상 로봇공학을 활용해 산업용 자동화 기기를 만들어 왔다. 미국 로봇 산업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조지프 엥걸버거 리더십 상을 두 사람 모두 받았다. 김 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고,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로보틱스 박사과정 첫 입학생으로 들어가 1992년 박사를 받았다. 1994년부터 4년 9개월간 삼성전자에서 초대 로봇 사업부장 및 초대 로봇 개발그룹장(부장)으로 일했다. 1999년부터 2021년까지는 광운대 로봇학부 교수로 지냈다. 2001∼2008년 정부의 로봇 관련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로봇앤드디자인 등을 통해 지금까지 반도체와 바이오, 의료 산업 분야에서 400여 개 로봇 및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했다. 던천 대표이사는 미국 퍼듀대에서 산업공학 학사, 서던일리노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자동화와 로봇공학 분야 전문 기업 어뎁트테크놀로지 창립 초기에 합류해 최고상업책임자로서 연 매출 1억 달러 달성과 성공적인 기업공개(IPO)에 역할을 했다. 셀트리오는 현재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세포 배양 자동화 시스템을 생산 공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할 계획이다. 또 세포 배양 과정에서 수집한 데이터 등으로 더 효율적인 배양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에 지능을 넣을 계획이다. 김 회장은 “셀트리오는 신약의 기초 연구개발부터 바이오 의약품 대량생산 같은 혁신을 도와 인류 질병 극복의 초석이 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석유 탐사는 세계의 ‘자원 무기화’까지 고려해 장기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동해에서 기름과 천연가스를 찾는 첫 시추가 올해 12월 시작될 예정이다. 내년부터 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더라도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어려운 도전을 앞뒀다. 기름과 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학문적 배경을 김기범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퇴적학·사진)로부터 들어봤다. ―동해 울릉분지 심해의 유망구조가 중남미 지역 가이아나 유전과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는데…. “1990년대 중반 브라질과 서아프리카 대륙주변부 심해에서 대량의 석유가 발견되면서, 당시까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수동형 대륙주변부(passive continental margin) 심해의 석유자원 부존 가능성이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수동형 대륙주변부란 판구조 운동에 의해 쪼개진 대륙지각의 가장자리로 대서양, 지중해, 인도양 주변에 주로 분포한다.2009년과 2010년 이스라엘은 지중해 동부 대륙주변부 심해에서 초대형 가스전을 발견했다. 세계적인 석유회사 엑손모빌도 2015년 가이아나 대륙주변부 심해에서 초대형 유전을 찾아냈다. 동해는 약 3000만 년 전 일본이 유라시아 대륙판에서 쪼개져 떨어져 나가며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 동해 가장자리는수동형 대륙주변부가 발달했다. 수심 2000m에 달하는 우리나라 동해 울릉분지 남부의 대륙주변부에는 총 두께 약 10km에 달하는 신생대 퇴적층이 형성돼 있다. 그 내부에는 기름과 가스를 품은 퇴적층이 있을 가능성이 기존 연구를 통해 점쳐진다. 동해 울릉분지의 구조 및 퇴적 환경은 대규모 심해 유전이 발견된 가이아나 북부 및 이스라엘 서부 대륙주변부 환경과 매우 흡사하다.” ―심해 석유탐사의 위험 요인은 무엇인가. “심해 석유탐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재검토되고 정립되기 시작한 비교적 최신 개념이다. 우리나라가 동해 심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에 들어서다. 최근 10년간 세계에서 발견된 5억 배럴 이상 유전 및 가스전 중 심해 비중은 약 60%에 달할 정도로 높다. 수심이 200m에서 3000m에 이르는 심해 환경에서는 해류의 힘을 철제 다리가 버틸 수 없다. 그래서 구조물을 부유시킨 상태에서 시추를 진행한다. 굴착기가 해저면에 고정돼 있지 않아 굴착기의 위치를 끊임없이 제어하며 시추해야 한다. 수준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또 예측하기 힘든 해양 기상 여건, 기술적 하자 등으로 인한 불의의 사고 위험 역시 상대적으로 더 높다.” ―탐사 시추 시 1공당 약 1000억 원이라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초대형 유전이 아니더라도 수조∼수십조 원의 수익이 발생할 유전 하나의 가치에 비하면 시추 비용 1000억 원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해양은 자원의 보고다. 과학과 경험을 통해 자원을 찾는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 올릴 필요가 있다.” ―국내 석유가스 개발 방향에 대한 의견은…. “2024년 기준 중국, 일본의 석유가스 시추 횟수는 한국 대비 일본이 약 11배, 중국은 약 700배나 된다. 국가의 경제 규모와 국토 면적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큰 격차다. 일본은 필수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국가적 책무임을 강조하며 자국 기업의 해외자원 개발을 독려한다. 중국은 석유가스전 탐사와 개발 등을 위해 국영 석유사나 다른 분야의 국영기업으로 구성된 신규 조직을 최근 설립했다. 중국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에너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을 장기 목표로 두고 있다. 탐사 시추 한 번에 국론이 분열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원이 무기로 작용하는 상황에 대비해 우리 앞바다에서 석유를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텃밭이라도 가꿔 보면 알게 된다. 농사는 날씨가 짓는다는 것을. 비가 한동안 오지 않으면 상추가 타들어 갈까 봐 애가 탄다. 반대로 장마철 비가 며칠 연속 내리면 병충해나 침수 피해를 걱정해야 한다. 야생동물의 존재도 알게 된다. 멧돼지나 새들은 애써 가꿔 놓은 고구마나 옥수수를 먼저 먹어 치우곤 한다. ‘농작물을 상품으로 키우려면 자연의 위험을 줄여 줄 장치가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을 활용하는 이유다. 경북 경산시에 본사를 둔 애그유니는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을 뛰어넘는 신개념 ‘식물공장’에서 농사짓는 시대를 열려는 스타트업이다. 연중 어디서나 어느 작물이든 경제적으로 기를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한다. 8월 말 그 중요한 시험대가 완성된다. 애그유니는 자사 기술을 집약한 3200㎡(약 970평) 규모 에어돔 식물공장을 경기 화성시에 짓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권미진 대표이사(32)는 “기둥 없이 넓은 재배 공간과 온도 및 습도를 작은 에너지로 관리하는 기술, 고부가가치 작물을 키울 수 있는 토양 기반의 수직 재배 시스템, 건강하게 자라게 할 작물별 재배법까지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식물공장 공급에 그치지 않고, 계약을 맺은 식물공장주들에게서 고품질의 작물을 사들여 유통까지 하는 것이 우리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에도 법인을 설립한 상태다.● 에어돔과 수직 재배 시스템, 작물별 재배법 화성에 조성 중인 식물공장은 가로 100m, 세로 32m, 최고 높이 17m의 거대한 반(半)원통형 에어돔 구조물이다. 식물공장 2개가 국제 규격 축구장(105m×68m)에 거의 꽉 찬다. 최고 높이는 아파트 6층(층고 2.8m 기준) 정도이고 기둥은 하나도 없다. 돔 재질은 반투명 특수필름으로 자연광 80%가량을 작물이 활용토록 해준다. 권 대표는 “기존 스포츠 시설로 활용되던 에어돔을 농업용으로 개발했다”며 “지열 등으로 온도와 습도를 최적으로 관리하는 공기 순환 기술, 자연광 활용을 위한 이중막 구조, 수증기 재활용 기술 등이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애그유니는 에어돔 구축에 필요한 기술 7개 특허를 확보했고, 4개는 출원했다. 무너지지는 않을까. 권 대표는 “에어돔 내부로 필요한 때만 최소의 공기를 넣어 구조물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기술”이라며 “외부 압력에도 유연하게 반응해 1m 쌓인 눈과 초속 60m 바람도 견뎌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보다 튼튼하다”고 했다. 이어 “2중으로 설치되는 필름은 칼로 베어도 잘 찢어지지 않으며, 일부 찢어져도 안전하게 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어돔에는 공기 필터실과 기계실 같은 유지 시설도 포함돼 있다. 애그유니에 따르면 깊이 70cm가 넘는 땅속 콘크리트 구조물과 결합된 특수필름이 해충의 침입을 막고, 에어 항균 필터는 곰팡이나 바이러스를 차단한다. 애그유니는 60일 공정으로 에어돔을 완성해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기둥이 없어 기존 농기계로 농사짓는 것도 가능하고 과수를 기를 수도 있다. 대량 생산을 위해 애그유니가 개발한 수직 재배 시스템을 넣을 수도 있다. 많은 스마트팜 기술이 수경 재배를 전제로 개발되는데, 수직 재배 시스템은 실내에서 키우는 작물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 토양 기반으로 개발했다. 수직 재배기에는 작물이 자라는 상자(모듈)가 담긴다. 작물 뿌리 부근에 물과 공기를 가압 공급하는 독자적 기술이 적용됐다. 권 대표는 “일반 노지 재배에 비해 뿌리 발달과 생육 속도는 약 30% 빠르고, 화학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병충해나 잡초가 잘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작물 재배 시스템도 5개의 특허권을 확보했고 11개 특허를 출원 중이다. 수직 재배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양액 정보 센서, 토양 정보 센서, 관수 제어기, 냉난방기를 비롯한 각종 센서 및 제어기와 연결된다. 애그유니는 통합관제실을 두고 국내외 여러 에어돔 농장을 관리할 계획이다.●“에어돔에서 생산한 농산물 판매까지 책임” 에어돔은 가장 작은 것이 3300m²(약 1000평) 가까운 규모다. 더 작게 지을 수는 없느냐는 문의를 받지만 권 대표는 경제성을 가질 수 있는 최소 단위라고 판단한다. 이는 에어돔을 기반으로 식물공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유통 체계까지 갖추려는 권 대표의 비전과도 연결돼 있다. 약 1000평 단위로 규모화와 표준화를 이루면 고품질 작물을 균일하게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애그유니는 에어돔으로 작물을 재배할 파트너를 찾고, 그들에게서 고품질의 식용 및 특용 작물을 매입해 판매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고 있다. 권 대표는 “농산물은 수요자가 있으면 절반은 성공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며 “두릅 등 몇몇 작물에 대해서는 이미 수요처를 확보해 단가를 협상하고 있다”고 했다. 애그유니는 경북 경산에서 약용 작물로 고가에 팔리는 대마 재배에 자사 기술을 적용해 성공하기도 했다. 두릅이나 와사비, 당귀, 백수오같이 고가에 팔리는 식용 및 약용 작물 20여 가지 재배법을 갖추고 계속 작물 종류를 늘리고 있다. 수직 재배 시스템을 두고 백수오나 당귀 등을 기를 경우 일반 비닐하우스에 비해 생산량을 7∼8배 늘릴 수 있다는 것. 연중 생산을 위한 재배 기술을 연구 중인 두릅의 경우 수직 5단으로 연간 3, 4모작이 가능해지면 에어돔 시설비를 2, 3년 내에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어돔 설치비는 3.3m²(약 1평)당 50만 원 선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권 대표는 “평당 시설비는 유리온실보다 조금 더 경제적이고, 에너지 비용 같은 운영비를 크게 아낄 수 있는 방식이다”라고 했다. 애그유니는 올해 4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에어돔 3개동 설치를 위한 유휴 부지를 확보한 상태로 미국에서도 사업을 벌인다. 한국 에어돔에서 생산한 작물 수출도 추진한다.●창업 이후 오랜 연구개발 권 대표는 대구가톨릭대에서 무역경영학 및 비즈니스영문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서 잠깐 일하다가 2019년 창업했다. 농산물 유통업을 하던 아버지 일을 잠깐 도운 것이 계기가 됐다. 권 대표는 “기후변화와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작물 생산 방식에 혁신이 필요해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전공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의 창업이라 여러 곳에서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 도전적인 질문을 많이 받았다. ‘농업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이공계열이 아닌데 실현할 수 있는지’ 등등. 권 대표는 오히려 더 큰 자극을 받았고, 더 힘줘서 얘기함으로써 조금씩 인정받은 것 같다고 했다. 덕분에 창업 이후 4년 정도는 현장을 직접 뛰면서 고객과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얻으며 연구개발에만 매달렸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대학원 푸드테크학과에도 진학해 공부했다. 주변의 도움도 많았다. 권 대표는 “전공자나 전문가가 자기 기술을 갖고 창업할 수도 있지만, 사업을 보는 마음의 크기로도 사업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투자는 2023년 3월에 처음으로 받았다. 글로벌 사업 등을 위해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나온 인력도 최근 영입했다. 권 대표는 “친환경, 고부가가치 농업의 대안이 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에어돔을 중심으로 관광과 체험 및 문화시설까지 갖춘 융복합단지를 만들어 농촌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요즘 승용차에는 후진 때 운전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전거가 갑자기 뒤쪽에 나타나면 긴급하게 정지하는 기능이 있다. 갑작스러운 ‘끽’ 소리와 함께 차가 정지하면 운전자가 놀라기도 하지만 충돌을 피한 걸 알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센서와 제어장치가 탄생시킨 안전장치의 좋은 사례다. 부산 수영구에 있는 무스마는 여러 센서와 통신시스템, 제어장치 등을 활용해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는 스타트업이다. 건설현장이나 조선소 같은 대형 사업장이 주요 대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5년 전인 2017년에 설립됐다. 센서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산업 현장 위험을 관리하는 스마트 안전 시장을 일찍 내다본 셈이다. 신성일 무스마 대표이사(40)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창업하게 됐다”며 “자율주행 선박을 연구하면서 얻은 센서와 통신 기술을 활용해 당시 사고가 빈번하던 타워크레인 충돌 방지 시스템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무스마는 현재 타워크레인 충돌 방지 시스템, 이동형 폐쇄회로(CC)TV를 비롯해 20여 가지 스마트 안전 설비로 산업 현장 안전을 개선 중이다. 넓은 작업장에 설치된 많은 센서와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 장거리 저전력 무선통신 관련 특허까지 보유하고 있다. ● 타워크레인 충돌 방지 규모가 큰 구조물을 움직이는 곳에서는 타워크레인이 빠지지 않고 설치된다. 타워크레인 여러 대가 동시에 가동되는 대형 사업장이 많다. 서로의 회전 반경이 겹칠 때 자칫하면 충돌 같은 대형 사고가 난다. 크레인이 운반하던 무거운 철 구조물이 떨어져 인명사고가 나고, 크레인 자체가 쓰러지기도 한다. 신 대표가 무스마를 창업한 2017년을 즈음해 타워크레인 사고가 잇달았다. 무스마의 원래 창업 아이템은 산업 현장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원격지에서 공장의 여러 센서 데이터와 동영상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도구였다. 대우조선해양을 찾았을 때 현장 관리자들이 타워크레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빨리 개발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신 대표는 “당장 요청을 했으니 시장 수요는 확실했고, 창업 자본금이 바닥을 보일 즈음이어서 사업 방향을 생산성보다는 안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밤낮없이 매달려 3개월 만에 타워크레인 충돌 방지 장치를 완성했다. 센서 2개와 통신장비를 설치해 관제실에서 관리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타워크레인의 정확한 좌표와 회전 각도를 측정해 충돌을 예방한다. 타워크레인끼리 가까워지면 경보음을 울리고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통보해 사고를 방지한다.● 임시 현장 안전도 높이는 이동형 CCTV 무스마의 스마트 안전 장비들은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자동화 기술이 결합된 형태다. 화재 및 가스 센서 등이 공사장 곳곳에 설치돼 있고, 저전력 장거리 통신망(LoRa)을 통해 관리를 담당하는 컴퓨터 서버로 관련 데이터가 수집된다. 조선소같이 드넓은 현장에서 제대로 센서들과 통신하려면 장거리 통신이 필요하다. 전자통신연구원(ETRI) 도움을 받아 통신 성능이 개선된 통신 시스템을 개발하고 특허도 받았다. 휴대전화 통신망 롱텀에볼루션(LTE)과도 결합해 동영상같이 수집된 데이터를 AI로 분석하고 사고를 예측한다. 무스마는 특정 사업장에서 필요로 하는 20여 가지 안전장치와 관리 시스템을 함께 공급한다. 건설 현장에서는 현장 상황에 따라 고정형 CCTV 설치가 어려운 곳이 많다. 이런 경우 작업자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나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따른 법적 판단에 필요한 증거자료 확보도 어렵게 된다. 무스마는 이동형 CCTV를 개발해 더 쉽게 위험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이동형 CCTV는 카메라 삼각대 같은 지지대 위에 노란 박스가 부착된 형태로 전기선이 없는 곳에도 설치가 가능한 배터리 장착식이다. AI 카메라는 작업자가 안전모를 벗는 것을 감지하면 스피커를 통해 ‘모자를 쓰라’고 자동으로 경고한다. 작업자에게 트럭 같은 물체가 안전거리 이내로 가까이 오면 스피커에서 큰 경고음이 나면서 동시에 경광등을 깜빡이며 주의하라고 알린다. 현장과 소통할 일이 있으면 휴대전화 앱을 통해 이동형 CCTV와 소통할 수도 있다.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 방지는 스마트 안전 장비 개발의 주요 목표가 된다. 땅속 깊은 곳에서 흙을 담아 올리는 클램셸(조개 껍데기처럼 두 부분으로 나뉘어 바닥이 벌어지는 이송용 대형 철제 상자) 협착 방지 시스템도 그렇게 개발됐다. 기존에는 작동자가 아래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클램셸을 내렸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클램셸에 사람이 깔려 다치거나 죽는다. 무스마는 상승과 하강 경로에 라이다(LiDAR) 센서 등을 설치해 사고를 예방한다. 건설현장에서는 작업자 낙상 사고가 특히 위험하다. 무스마는 근거리 데이터 통신기술 ‘비콘’을 활용해 작업자가 자신이 차고 있는 안전고리를 안전대에 걸어야 할 위치에서 걸지 않으면 경고음을 내는 장비도 개발했다.● 창업경진대회 함께 나간 멤버와 창업 신 대표는 영국 서리대에서 전기전자공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산업기술연구소에서 자율주행 선박을 비롯한 자동화 시스템을 연구했다. 창업 동기에 대해 “입사 전부터 창업에 대한 꿈이 있었다”며 “내 아이디어로 새로운 일을 만들고 사회에서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업해야 하는 이유를 아내와 셀 수도 없이 고민했다고도 했다. 당시에 창업 이유와 창업 이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메모에는 크고 작은 이유들이 각각 30가지 넘게 적혀 있었다. 2016년 회사 울타리 밖으로 나와 창업을 준비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부산’이라는 창업경진대회에서 베스트 비즈니스상을 받으며 비즈니스 모델 등에 대한 기본적인 검증을 받았다. 창업경진대회를 준비하며 팀을 꾸릴 때 공동창업자 진준호 최고기술책임자(CTO·39)를 만났다. 진 CTO는 부산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LG디스플레이 공정관리부에서 일했다. 신 대표는 이후 부산 ‘갈매기 소프트웨어 창업사관학교’에서 기본 창업 교육을 받았고, KAIST에서 기술경영학으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무스마는 사업이 성장해 가는 단계다. 현대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LG에너지솔루션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신 대표는 “해외시장 개척은 국내 대형 건설사의 해외 사업장 위주로 진출한 정도지만 곧 독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편인 선진 해외시장에서 아직 스마트 안전 시스템을 제공하는 곳이 드물어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신 대표는 “더 적은 비용으로 공사장이나 제조업체 안전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임대 형태로도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더 적은 비용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에 더 매진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안전하려면 비용이 든다. 시간과 정성은 물론이고 돈도 더 든다. 공정은 더뎌질 수 있다. 그 대신 누군가에게 ‘전부’인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부산=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반도체 칩에 대한 관심이 인류사에서 지금처럼 뜨거운 때가 있나 싶다. 인공지능(AI) 칩을 설계하는 엔비디아는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기업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자동차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맡는 칩, 모바일 기기를 구동하는 칩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테슬라 자율주행 칩 등 다양한 시스템반도체를 16년 동안 설계한 경험이 있는 전호연 대표(44)는 2022년 ‘잇다반도체’를 설립했다. 삼성전자 출신 동료 2명과 함께한 공동창업이다. 칩 설계 업무를 하면서 설계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한 도전이다. 경기 화성시 동탄역 인근 화성사이언스허브의 사무실에서 17일 만난 전 대표는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하려면 여러 부서와 엔지니어의 협업이 필요해 최소 1년은 걸린다. 우리는 그 시간을 1주일로 줄일 것이다”고 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 업무의 ‘보틀넥’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려면 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많은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칩의 기능과 성능 구현을 위한 시스템 지식, 최적으로 구동하려면 반도체 소재 등의 특성까지 반영해야 하기에 반도체 제조 공정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회로도는 선을 그어서 설계하지 않고 코딩으로 만드는데, 특정 기능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코딩 실력도 갖춰야 한다. 필요한 지식과 경험이 많아 여러 부서, 여러 전문가의 협업이 필수다. 전 대표는 “대학에서 반도체 설계를 배워도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회사에 입사하면 업무를 하면서 배워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예컨대 모든 반도체 구동에 필수적인 전력 관리 부분 설계는 대학에서는 거의 배우지 못한다”고 했다. 반도체 인력이 모자란다고 대학 정원을 늘려도 기대했던 것만큼 빠르게 국가의 반도체 설계 능력이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전 대표는 이를 반도체 설계 업무의 보틀넥(병목 현상)으로 봤다. 그는 “시스템반도체 회로 코딩 전에 여러 전문가가 협의하는 데만 연 단위 시간이 필요하다”며 “제작 공정에 필요한 배경 지식을 소프트웨어에 담아 자동화하면 이 시간을 거의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는 신도시 설계에 비유되곤 한다. 신도시에 상주할 인구에 맞춰 주택과 교통, 업무시설 등을 효율적인 위치와 동선을 고려해 설계하는 식이다. 잇다반도체는 신도시가 감당해야 할 기능에 대한 핵심적인 설계안만 있으면 인프라에 가까운 설비들은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설계해 준다. 신도시에 필요한 전력량과 전력망, 상하수도 용량과 배선 등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하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내재화한 것이다.●“드래그&드롭으로 칩 설계” 잇다반도체는 반도체 설계 전공자가 회사에 입사해서 시스템반도체를 최소의 인력으로 바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전 대표는 “반도체 설계 업무 경험이 있는 실무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좀 더 간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는 것이어서 더 창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했다. 잇다반도체의 솔루션은 사용자가 드래그&드롭 방식으로 자동화 소프트웨어 내에 지정된 아이콘을 끌어다 놓고 필요한 프로그램 모듈을 지정하기만 하면 된다. 기존 방식이라면 전문가들은 협의를 한 뒤 확정된 세부 사항을 문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문서화 작업도 자동으로 해준다. 잇다반도체는 설립 2년도 채 안 돼 파워(Power)시스템과 클록(Clock)시스템 설계 등을 자동화해 상용화했다. 파워시스템은 칩이 효율적으로 전력을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는 저전력 설계 기법이 적용되고, 칩 내부에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설계해야 한다. 클록시스템은 칩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칩 내부 모든 동작이 동기화돼 일어날 수 있도록 칩 동작 속도나 메모리 대역폭 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전 대표는 “파워와 클록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는 세계적으로 숫자가 줄고 있는 반면 AI의 확산으로 칩 전력 소비를 줄이는 설계 수요는 크게 늘고 있다”며 “파워와 클록시스템 설계 자동화만으로도 수천억 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글로벌테크 기업들은 성능(performance)뿐만 아니라 소비전력을 줄이기 위해 많은 인력과 돈을 들이고 있다고도 했다. 잇다반도체는 자동차용 자율주행 시스템반도체 등을 만드는 보스반도체에 자사 솔루션을 판매했고, 국내 유명 반도체 대기업들과도 공급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전 대표는 “우리 솔루션에는 공동창업자들이 그간 쌓아 둔 경험이 녹아 있어 그림으로 설계를 하면 최적의 반도체 구조가 나오도록 돼 있다”며 “단순히 설계 시간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효율 좋은 설계 구조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잇다반도체의 다음 계획은 파워시스템과 클록시스템을 포함해 총 10여 개 설계 부문을 자동화해 시스템반도체 노코딩 솔루션인 ‘SoC 캔버스’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칩의 결함을 테스트할 수 있는 체계(DFT·Design for Test)를 자동화하는 중이다. 설계된 칩의 결함을 자동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전문가가 매달려 칩 사양에 따라 일일이 코딩 작업을 해야 했다. 전 대표는 “어려운 부문인 파워와 클록시스템 설계 자동화를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나머지 8개 부문은 2∼3년 내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다. 잇다반도체는 칩 설계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인정 받아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초격차 스타트업 1000+’에 선정되기도 했다. ● 삼성전자 출신 3명이 공동창업 잇다반도체는 삼성전자에서 시스템반도체와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인력들이 나와 창업했다. 전 대표는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전자·컴퓨터 전공으로 학사를 받고, KAIST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개발 분야에서 16년간 경험을 쌓았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과 갤럭시폰 및 아이폰 칩 등의 파워시스템을 설계했다. 김아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KAIST에서 전자공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갤럭시폰의 파워시스템과 구글폰의 클록시스템 설계 등으로 10년 동안 경험을 쌓았다. 김인규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성균관대 반도체공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지적자산(IP) 및 시스템반도체 사양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등에서 8년간 일했다. 전 대표는 “테슬라나 구글의 칩 개발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테크 기업이 원하는 수준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창업 동기에 대해서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과정에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싶다는 생각과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겹쳤다”고 했다. 그는 “칩 설계는 매번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데 칩이 요구하는 사양이 달라질 때마다 비슷한 작업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하는 게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보였다”고 했다. 파워시스템을 설계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아 만약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취업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는 ‘마지노선’도 생각해 봤다고 했다. 창업을 위해 KAIST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전 대표는 “업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전문가들과도 소통하는데, 반도체 설계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우리 솔루션에 관심이 많았다”며 “미국 등으로 곧 진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성=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삼성증권이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로 유치한 투자금이 100가문 30조 원(2024년 5월 말 기준)을 넘겼다고 17일 밝혔다. 삼성증권이 2020년 6월 업계 최초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론칭한 지 4년 만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가문별 평균 자산은 3000억 원으로, 특히 올해 1월 슈퍼리치 고객 전담 조직인 ‘SNI 패밀리오피스센터’를 연 이후 5개월 동안에는 20가문 10조 원을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패밀리오피스 100가문은 전통 부유층이 50%, 스타트업 창업자 및 임직원 등 신흥 부유층이 20%, 지분 매각 오너가 30%다. 이 중 최근 들어 지분을 매각한 오너들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삼성증권은 분석했다. 자산 운용을 위해 직접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는 것보다 삼성증권과 같이 전문성 있는 기관에 자산을 위탁해 관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이 분석한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의 특징 3가지는 다음과 같다. △3개 이상의 자산군으로 분산한 포트폴리오 투자 △기관투자가급의 장기투자 수요 △투자 정보 및 투자와 연관된 전문지식의 수요 등이다. 기본적인 세무, 부동산 등 컨설팅 외에도 고도화된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투자 자산을 분석한 결과 주식 20%, 금융상품 67%, 현금 13%로 나타났다. 자산 중 40% 이상을 채권으로 구성해 안정성을 갖추고, 20%는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현금성 자산을 10% 이상 보유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전체 실질 자산 중 달러 자산 비중이 25.4%에 달한다. 슈퍼리치 고객들은 자산 배분에 있어 자산군뿐만 아니라 통화까지 분산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밀리오피스 고객의 장기투자를 위해 삼성증권의 엄격한 자기자본 투자 심의를 통과한 전용상품을 제공 중이다. 골드만삭스, 칼라일, MBK파트너스 등 글로벌 유명 운용사의 사모대체펀드를 국내에 독점 공급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과 동시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국내 우량 비상장 회사에 대한 투자와 투자은행(IB)과 연계된 사모대출 투자 등의 기회도 제공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만 상장사 구조화 상품에 1150억 원, 해외 인공지능(AI) 반도체 비상장기업 프로젝트 딜 710억 원, 글로벌 운용사 사모대체펀드 550억 원 등 2400억 원 이상의 패밀리오피스 전용 상품을 모집했다. 이 중 상장사 구조화 상품은 연 5%대 이상의 목표 수익을 추구하면서 주가 상승 시 초과 수익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됐다.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은 향후 가업 승계 및 가문의 자산 관리를 위해 금융과 세무 등에 대한 교육 수요가 컸다. 삼성증권은 세무와 부동산, 경제, 투자 기초와 심화 학습 커리큘럼을 구성해 일대일 맞춤형 자녀교육을 제공 중이다. 삼성증권 WM부문장 박경희 부사장은 “삼성증권은 2002년 국내 증권업 최초로 자산관리업을 시작한 이래 2010년 업계 최초 초부유층 전용 SNI 브랜드 론칭, 2020년 패밀리오피스 서비스 론칭 등 국내에서 초고액자산가 자산관리 서비스를 선도해 왔다”며 “더 많은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모실 수 있도록 글로벌 투자 서비스와 비재무적 서비스를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새로운 발견은 기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대구 군위군에 연구소를 두고 있는 ‘바이루트’는 수초(水草)인 개구리밥에서 그런 기회를 찾았다. 개구리밥의 단백질 함량이 콩보다 많고, 이틀이면 개체 수가 2배로 늘어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바이루트는 연구소로 사용 중인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속 실험실습장에서 부평초와 분개구리밥이라는 두 가지 개구리밥을 키우고 있다. 개구리가 물속에서 나올 때 얼굴에 붙이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개구리밥으로 불리지만 개구리는 개구리밥을 먹지 않고 곤충을 잡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개구리밥은 부평초다. 지름이 1cm 정도 되는 여러 장의 작고 둥근 잎과 뿌리를 가지고 물 위에 떠서 자란다. 강장(強壯)이나 발한(發汗), 이뇨(利尿), 해독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약재 원료로 쓰이고, 보습이나 염증 개선을 위한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분개구리밥은 지름이 1mm 정도밖에 안 되는 녹색 알갱이처럼 생겼다. 뿌리는 없다. 역시 물 위에 떠서 성장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불린다. 건조한 분개구리밥 기준으로 단백질 함량이 40%나 된다. 콩과 같은 양의 단백질을 얻는 데 물과 땅이 10분의 1만 있어도 된다. 지난달 21일 연구소에서 만난 허태욱 대표(35)는 “한약재를 취급하다 개구리밥의 영양 성분을 알게 됐다. 부평초나 분개구리밥을 국내에서 재배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속 가능한 단백질 원료 확보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세상에서 가장 작은 ‘채소’” 바이루트가 식품 원료로서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집중하는 식물은 분개구리밥이다. 분개구리밥은 김이나 파래 같은 엽상체 식물이다. 줄기와 잎, 뿌리 기관이 분화하지 않은 식물로 전체가 잎으로 작용하면서 물과 양분을 흡수하고 광합성을 한다. 식품공전(食品公典·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 제반 규정을 제시하는 고시)에 분개구리밥은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로 등재돼 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스타트업들도 단백질 원료나 식품으로 내놓고 있다. 이 업계에서는 물에서 나는 렌틸콩이라는 의미로 워터렌틸로도 부른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식재료로 쓰였다. 태국 북부에서는 카이남(khai-nam)이라고 부르는데, ‘물달걀’이라는 의미다. 연구소에서 갓 수확한 워터렌틸을 맛봤다. 상추 맛이 살짝 나는가 싶더니 풋사과 맛도 조금 났다. 전반적으로 맛이나 향은 약해서 채소지만 채소를 먹는다는 느낌은 적다. 식감은 사각거리는 편이다. 분개구리밥에는 전분도 40% 함유돼 있다. 필수아미노산도 고르게 분포한다. 바이루트 분석에 따르면 워터렌틸에는 근력 증강에 필요한 발린과 이소류신 함량이 대두(大豆)보다 많다. 허 대표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체 식량과 대체 단백질 가능성 덕분에 일본 아지노모토와 미국 켈로그 같은 세계 유수의 식품 기업과 세계적 벤처캐피털 구글벤처스 등이 관련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루트는 생산량이 적지만 워터렌틸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신선식품으로 공급하곤 한다. 허 대표는 “워터렌틸로 요리해 본 주부들이 맘카페에 ‘김밥이나 계란말이에 넣으니 야채를 먹기 싫어하는 아이가 거부감 없이 잘 먹었다’ ‘그냥 얹어 먹어도 되니 채소 섭취가 간편해졌다’ 같은 후기를 올리곤 한다”고 했다. 바이루트는 워터렌틸을 넣은 프로틴바도 만들어 판매 중이다. 허 대표는 식물성 단백질 원료로 분개구리밥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량생산 시설이 갖춰지고 분개구리밥 양식이 확산된다면 단백질이 풍부한 새 신선식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축산 사료용 콩 재배를 위한 산림 훼손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허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인류의 큰 문제인 식량 부족과 기후변화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식물성 단백질 대량생산 기술 바이루트는 분개구리밥 대량생산 기술과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뽑아내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대량생산을 위해 성장 속도를 기존의 2.7배 이상으로 높이는 법을 개발했다. 그동안은 48시간 정도에 개체 수가 2배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17시간 20분까지 줄인 상태다. 분개구리밥이나 부평초 모두 무성생식 한다. 식물 본체에서 ‘싹’이 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분리돼 번식한다. 허 대표는 “물 온도와 필요한 영양분, 수확 후 남겨 두는 개체 수 같은 여러 변수를 고려해 생육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데 성공했다”며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성장 속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고 했다. 분개구리밥 생육에 특화된 식물공장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사람의 손길이 적게 가도 되도록 물과 영양액이 자동으로 공급되고 수확도 자동화하며, 일정 주기마다 필요한 바닥 정비도 자동화할 계획이다. 수확한 분개구리밥에서 단백질을 추출하는 공정은 기존 용해식 공정보다 40%가량 간편해진 분리막 활용 방식을 개발했다. 기존 단백질 추출 공정 방식은 원료를 가라앉히고 원심분리와 전기분해를 거친 뒤 다시 침전, 원심분리, 막 추출 같은 공정을 거친다. 이어 식물이나 곡물을 특정 용매로 해서 여러 차례 녹이는 과정 등을 거친다. 반면 바이루트가 개발한 공정 방식은 원료를 가라앉힌 뒤 분리막 추출 공정만 거치면 된다. 허 대표는 “바이루트 기술고문 이성은 경북대 응용생명과학과 교수와 변홍식 계명대 화학공학과 명예교수의 도움으로 경제성을 갖춘 독자적인 단백질 추출 기술을 확보했다”며 “더 큰 용량에 적용하기 위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분개구리밥을 신선식품과 건조 분말, 분리 단백질 등으로 판매할 계획인 바이루트는 올해 투자를 받아 양산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부산의 유명 비건(채식) 레스토랑과는 워터렌틸 요리 개발 협약을 맺었고, 제빵 재료로 활용하려는 유명 카페들과 납품 협의도 진행 중이다. 부평초는 양식을 해서 프랑스 화장품 회사에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 개발에는 개구리밥의 짧은 생육 기간이 큰 도움이 됐다. 하루 정도면 1세대 성장이 끝나는 덕분에 다양한 환경이나 기술을 적용한 실험을 빠르게 시행할 수 있었다. 허 대표는 “농업 스타트업 중 작물을 키우는 경우 짧게는 수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데, 하루 단위로 실험 계획을 짤 수 있어 상대적으로 기술 개발 속도도 빨랐다”고 회상했다.●“한약재 유통하다 새로운 기회 발견” 허 대표는 중국 상하이 중의약대 중약학과를 졸업한 뒤 한약재를 유통하는 동우당제약 마케팅지원실장을 지냈다. 유통 품목 중에는 우리나라 연못에서 채취해 프랑스 화장품 회사에 납품하는 부평초가 있었다. 전국에서 부평초 채취를 전문으로 하는 단 한 사람에게 의뢰해 수출하고 있었는데 태풍 같은 천재지변 탓에 채취량이 없는 해도 있어 애로가 많았다. 허 대표는 “부평초를 직접 재배하면 어떨까 궁리하면서 생육 조건 등을 공부하다 분개구리밥까지 알게 된 것이 창업 계기였다”고 했다. 창업하면서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응용생명과학과 석사과정에도 진학해 수료한 상태다. 최고기술책임자는 박준성 이사가 맡고 있다. 경북대 원예학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스마트팜 식물 재배 및 천연물 나노 소재 연구를 하는 회사를 다니다 합류했다. 아직은 대량생산이 되지 않아 생산단가를 낮춰야 하는 과제가 바이루트에 남아 있다. 허 대표는 “콩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지만 필요한 토지와 물이 적어 지속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자본이 확충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여름이 온다. 푹푹 찌는 더위에 시달릴 날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그런 날, 퇴근해서 집 현관문을 열었는데 시원한 공기가 나를 맞아준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사물인터넷(IoT)이 확대되고 있다지만 에어컨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켜는 경우가 많다. 사용 연한이 길어서 오래전에 설치된 게 많고, 오피스텔이나 상가같이 에어컨이 대량 설치되는 건물에는 경제성 때문에 IoT 기능이 없는 에어컨이 많이 설치되고 있어서다. 스타트업 에어딥은 IoT 모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로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을 두는 회사다. 여러 제품과 기술 중 최근에는 휴대전화로 멀리 떨어진 에어컨을 제어해주는 제품을 선보였다. 20일 경기 수원시 광교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김유신 에어딥 대표이사(50)는 “생활 밀착형 기술로 에너지 절약은 물론이고 매일 들이마시는 실내 공기 관리를 손쉽게 하도록 돕는 기술과 서비스 제공의 최고 스타트업이 되고 싶다”고 했다.●“24시간 스터디카페 주인들 사이 입소문” 에어딥이 최근에 업그레이드해 내놓은 에어딥큐(Q)는 손바닥만 한 조약돌 모양의 지능형 에어컨 제어기다. 건전지만 넣어 에어컨에 부착하면 된다. 천장형이나 벽면형, 타워형 에어컨을 가리지 않고 적외선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에어컨이면 대부분 다 된다. 에어딥은 LG전자, 삼성전자, 캐리어같이 국내에서 사용되는 대부분 에어컨의 적외선 리모컨 신호를 분석해 에어딥큐 하나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에어딥큐는 와이파이 통신망을 이용하는데 AAA 건전지 3개로 6∼12개월 동안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는 초(超)저전력 모듈 설계 기술로 제작됐다. 에어딥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구형 에어컨을 집 밖에서 켜거나 끌 수 있고 풍향과 풍속을 임의로 작동할 수도 있다. 예약도 된다. 에어딥큐에는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는 센서와 진동 감지 센서 등이 들어 있다. 동작 감지 센서를 추가하면 사람의 움직임이 없을 때 자동으로 에어컨을 끌 수도 있다. 실내 공기 상태를 감지해 여러 인공지능(AI) 모드로 관리할 수 있다. 집에 홀로 있는 반려동물을 위한 모드, 공공기관 에너지 지침에 따른 에너지 소비 최소화 모드, 최적 업무 모드, 습도 관리 모드 등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우리의 IoT 플랫폼 기술 일부를 적용해 개인 소비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 에어딥큐”라며 “24시간 운영하는 스터디카페나 골프연습장 사장님들 사이에서 손님이 없을 때 에어컨을 간편하게 끌 수 있는 기기로 소문이 나면서 좀 알려지는 듯하다”고 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소형 미용실에서는 손님이 도착하기 직전에 에어컨이나 난방기를 켜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한다. 에어딥은 IoT 플랫폼 기술을 적용할 분야를 찾다가 에어컨 제어를 통한 에너지 절약 및 삶의 질 개선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 대표는 “국내에만 현재 구형 에어컨이 2000만 대가량 있고, 매년 새로 나오는 에어컨 약 250만 대 가운데 100만 대 이상은 IoT 기능이 없다”고 했다.●전력 수요 관리 시장까지 내다본다 에어딥은 에어딥큐로 빌딩 관리 시스템 시장 진출도 꾀하고 있다. IoT 모듈을 설계해 제작하고, 센서에서 감지한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역량이 있어서다. 맞춤식으로 IoT 기기 제작이 가능하고, 기존 빌딩 관리 시스템 서버로 에이딥큐가 수집한 정보를 매끄럽게 전달해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여러 브랜드의 구형 에어컨을 갖춘 학교나 기숙사 같은 곳에서는 에어딥큐를 설치하고 우리가 만든 통합관리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에너지 관리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 작동 방식은 흉내 낸다고 하더라도 초저전력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기기가 수집한 데이터를 다루는 소프트웨어 역량도 쉽게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어딥은 더 나아가 전력 수요 관리 시장까지 보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는 전력 수요가 공급을 넘지 않도록 최대 전력(피크)을 관리한다. 그중 ‘에너지 쉼표’ 사업이라는 게 있다. 개별 가정이나 점포, 공장이 전력 수요 관리 사업자를 통해 에너지 쉼표 사업에 가입하고, 최대 전력이 예상될 때 전력 소비를 줄이면 인센티브를 받는 식이다. 에어딥은 전력 소비량이 큰 에어컨을 원격으로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확대되면 전력 수요 관리가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원격지에서 바로 에어컨을 끄거나 전력 감축 요청이 있을 때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것 등이 가능할 것”이라며 “전력 수요 관리 사업자로서 국가 에너지 절감 노력에 동참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에어딥큐에는 에어컨 실제 작동 시간을 감지할 수 있는 진동 센서가 도입됐다. 에너지 사용량을 추산할 수 있어 온도와 날씨, 지역, 점포별 특성에 따른 전력 관련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에어딥은 국내 시장과 함께 일본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는 구형 에어컨이 대부분인 데다가 에너지 감축 욕구도 많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중견기업 사업부에서 분사해 창업 에어딥은 2020년 데이터방송 관련 솔루션 회사의 데이터사업부가 분사하며 생겼다. 김 대표는 당시 이 사업부를 이끌며 IoT 기술을 활용해 환기장치를 원격 감시하고 제어하는 외부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3년간의 연구 덕분에 IoT 모듈을 설계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갖게 됐다. 현재 직원 대부분이 기존 회사 구성원들이다. 김 대표는 “회사가 사업을 정비하면서 분사를 하게 됐는데 IoT 플랫폼 기술을 확보한 상태였고 모회사가 적절한 가치로 인정해줘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완성된 기술을 적용할 시장도 금세 눈에 들어왔다. 창업 이듬해에는 경기도 초중고교 1500개 교실의 청정 환기 장치에 들어갈 IoT 모듈을 공급했다. 완제품으로 차량용 흡연 탐지 솔루션 ‘에어딥카’도 선보였다. 공유차량이나 렌터카 운전자가 차 안에서 흡연하는지 사업자가 실시간 감지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2022년에는 호텔 같은 실내 공간에서 공기질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에어딥룸’도 출시했고, 지난해에는 에어딥큐 첫 버전으로 중소기업 우수 브랜드를 인정하는 ‘서울어워드’ 우수제품상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국민대에서 경영정보시스템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 객원 연구원, 서울시립대 빅데이터분석학 전공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김 대표는 “제품 개발 역사는 시장 수요를 찾아가며 관련 시장을 넓히는 과정이기도 했다”며 “IoT 플랫폼 기술이 알려지면서 화장실 냄새를 관리하는 회사 의뢰를 받아 악취 관리 솔루션도 개발하는 등 IoT 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다”고 했다.수원=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사족 로봇으로는 2020년 시장에 나온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폿(SPOT)’이 유명하다. 사람에게 익숙한 개를 닮은 형상이다. 네 다리로 보행하며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떠오르고, 사람이 밀쳐 내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는 모습 등이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근래에는 중국 기업들의 사족 로봇 사업화도 활발해지고 있다. 로봇 공학자들이 동물의 다리 형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험난한 지형을 뚫고 사람을 구하거나 밟으면 움직이는 물건들이 많은 재난 현장 같은 곳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유리해서다. 또 사족 보행 기술은 우주 탐사 등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잠재력이 큰 기술이다. 대전 소재 KAIST에 있는 ‘라이온로보틱스’는 여느 기업과 달리 인공지능(AI)으로 제어하는 사족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KAIST 기계공학부 황보제민 교수(36)가 작년 10월에 교원 창업으로 회사를 세웠다. 7일 KAIST 연구실에서 만난 황보 교수는 “미국과 중국에서 상업용 사족 로봇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어려운 지형의 보행과 배터리 사용 시간 측면에서는 개선할 여지가 많아 창업으로 도전하게 됐다”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상의 경험을 사족 로봇의 AI에 이식할 수 있는 기술 등을 확보해 어려운 지형을 극복했고, 배터리 사용 시간도 8시간까지 늘림으로써 실용적인 활용이 가능토록 했다”고 밝혔다.●“기존 사족 로봇 배터리 사용 시간 2시간 안 돼” 라이온로보틱스는 작년 말 사족 로봇 ‘라이보2’를 완성했고 올해 말부터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라이보2는 무게 41kg으로 초속 5.8m(시속 21km)까지의 속도를 낸다. 배터리 시간은 8시간이다. 황보 교수는 “35∼50kg급 사족 로봇 시장에서 라이보2만큼 빠르게 걷고, 배터리 사용 시간도 긴 로봇은 아직 없다”고 했다. 넓은 공장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각종 검사와 장비 점검을 할 수 있고, 긴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을 순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이나 중국 대기업이 선보이는 사족 로봇은 대부분 1시간 30분∼2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하고, 보행 속도는 초속 2m 이하다. 황보 교수는 “가격 또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비슷한 규모의 중국 사족 로봇의 가격이 1억 원 정도인데, 라이보2는 이보다 더 경쟁력 있는 가격대에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내후년 말에는 가격을 더 많이 낮출 계획이다. 기본 사족 로봇은 짧은 배터리 사용 시간 때문에 사용에 제한이 많다. 라이온로보틱스에 따르면 대형 야외 사업장을 가진 국내 한 대기업은 외국의 사족 로봇을 도입했지만 사업장의 전체 순찰 길이가 8km에 달해 주요 공정 순찰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 중이다. 치안이나 군용으로 사용할 경우 배터리 사용 시간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배터리를 남긴 상태에서 출발 지점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순찰이나 정찰 반경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높은 산악 지역으로 조난자를 찾으러 나설 때도 1∼2시간의 배터리 사용 시간으로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컴퓨터상 다양한 지형 학습 후 로봇에 ‘이식’ 황보 교수는 AI 강화학습에 기반해 로봇을 제어하는 분야의 전문가다. 컴퓨터상에서 일반 지면은 물론이고 험준한 산악 지형, 모래밭, 자갈밭, 풀밭 등 실제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지형을 만들고, 각 환경에서 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어값을 산출할 함수를 생성한다.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들면 실제로는 10년 걸려 쌓을 경험을 몇 시간 내에도 해결할 수 있다. 황보 교수는 “엔비디아와 딥마인드, 그리고 우리만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생성한 함수는 라이보의 AI 칩에 이식된다. 라이보는 네 다리로 지각한 최소한의 데이터로 최적의 함수를 찾아 적은 계산량으로 관절을 빠르게 제어한다. 기존 사족 로봇은 대부분 모델 기반 방식으로 제어된다. 로봇 몸체의 동역학을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 계산량이 많아 배터리 소모도 많다. 외부 환경을 인식하기 위해 카메라와 라이다(LiDAR) 센서까지 달아야 하는 것도 배터리에는 부담이다. 황보 교수는 “강화학습 기반의 제어는 지형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로봇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며 “라이보2는 여느 로봇과 달리 모래밭이나 자갈밭, 무너지기 쉬운 재난 현장과 같은 가변적인 지면에서도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라이보2는 현재 카메라나 라이다 없이도 안정적 보행이 가능하다. 비전 정보를 활용하는 선택 옵션도 개발 중이다. 라이온로보틱스는 라이보2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을 직접 개발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했다. 예컨대 구동기에는 유성기어가 쓰이는데 기어비를 최적화함으로써 열 손실을 줄여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렸다. 모터제어기와 모터도 직접 개발하며 에너지 소모를 기존에 비해 20∼50%가량 줄였다. 구동기와 다리, 몸체 등 주요 부위를 모듈화해 고장이 났을 때 여느 사족 로봇들과 달리 필요한 부분만 교체하면 되도록 했다.●가족 이민으로 캐나다서 공부하고 귀국해 창업 황보 교수는 중학교 때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고교와 대학을 캐나다에서 다녔다. 캐나다 토론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대학원에서 2013년 석사 학위, 2019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년은 취리히 연방공대 로보틱 시스템 랩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고, 2020년 3월부터 KAIST 교수로 근무 중이다. 스위스에서 있을 때는 산업용 사족 로봇 ‘애니멀(ANYmal)’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2019년 로봇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한 ‘다리 달린 로봇을 위한 민첩하고 역동적인 운동 기술 배우기’ 논문은 네이처가 선정한 그해 논문 10선에 선정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라이온로보틱스의 직원은 대학원생을 포함해 총 6명이다. 4년가량 강화학습 기반 사족 로봇 제어 기술을 같이 연구한 대학원생들이 주축이다. 황보 교수는 “강화학습을 기반으로 한 사족 로봇 제어는 이제 막 시작되는 분야”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창업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학원 다닐 때쯤부터 연구를 위한 연구보다는 실제 사용 가능한 로봇을 만드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며 “연구 결과가 집적돼 자연스럽게 창업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라이온로보틱스가 처음으로 완성한 라이보2는 외국에 팔려 나간 상태다. 올해도 대여섯 대 더 판매할 계약이 맺어져 있다. 향후 사족 로봇은 사람이 장기 거주하기 힘든 곳 등에서 사람을 대신해서 감시와 순찰 업무를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산업 현장에서는 해양 플랜트와 화학공장, 발전소 등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육지와 먼 해양 플랜트에서 사족 로봇이 플랜트 시설을 돌아다니며 설비 이상 유무를 알려줄 수 있다. 군에서는 해변이나 산악에서 정찰을 목적으로 사족 로봇을 활용할 수 있다. 황보 교수는 “지형에 구애받지 않는 라이보2는 산업용 검사 로봇과 군용 로봇, 치안 유지 로봇 등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글·사진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세계 주요국들은 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천문학적인 지원금과 과감한 정책으로 반도체, 인공지능 등과 같은 첨단기술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지난해 산업기술 예산 축소를 경험한 공학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NAEK)은 2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호텔에서 ‘산업·기업 R&D 특별 포럼’을 열고 대기업을 포함한 민·관·학 협업 체제로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대형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공학한림원의 특별 포럼은 ‘선도형 혁신 생태계 육성을 위한 산업·기업 R&D 지원 방향’을 주제로 열렸다. 같은 주제로 기조발표를 한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래 먹거리가 될 기술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 기술이고, 이런 R&D는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감당하기 불가능한 위험이 있다”며 “세계적인 흐름도 산업기술 개발에서 국가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재정 지원을 확대하면서 민간 투자도 크게 끌어내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NAEK 산하 ‘산업·기업 R&D 지원 방향 연구 태스크포스(TF)팀’의 공동위원장을 안현실 NAEK 기술경영정책분과위원장과 함께 맡았다. 19명으로 구성된 TF팀은 이날 국가전략기술 개발 프로젝트 신설 등을 담은 7대 제언을 발표했다.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왜 산업기술 R&D인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기존에는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개발과 사업화 등이 단계적으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게임체인저가 돼 무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R&D와 사업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시대”라며 “핵심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정부의 과감하고 통합적인 R&D 지원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국제사회는 기술 확보 경쟁 격화로 선택적 국제 협력과 핵심기술 확보의 중요성, 기술력 중심의 글로벌 리더십 등을 골자로 하는 신산업정책이 부활한 상황이다”라고 소개했다. 양현모 전략컨설팅 집현 대표이사는 ‘한국 산업·기업 R&D 성과와 과제’ 발표를 통해 “그간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1980년대 조선과 가전, 1990년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000년대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주력 산업으로 키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 등으로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정책의 일관성 등이 부족했고, R&D를 신산업 창출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양 대표는 “역대 정부 대형 R&D를 보면 대기업의 참여가 있을 때 좋은 성과가 나왔지만 2017년 이후로 대기업의 참여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양 대표는 “2023년 정부 R&D 예산 삭감으로 산업 R&D 지원도 축소됐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직접 지원 축소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며 “그간의 성공과 글로벌 흐름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했다. 특별포럼의 패널로 참석한 학계와 첨단산업계 관계자들은 R&D를 하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건설적인 대안들을 제시했다. 이동수 네이버클라우드 이사는 민간 수요 중심의 연구개발을 강조했다. 그는 “엔비디아와도 파트너로 일하는데, 그들이 AI 서비스 기업의 수요를 맞춰 주려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며 “정부가 기업 수요와 어긋나는 중장기 개발 계획을 다 세워 놓으면 민간기업이 정확한 수요를 얘기하기도 힘든 만큼 정부가 AI 반도체를 의미 있는 국가 주력 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민간이 (대형 R&D 과제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제조 산업은 글로벌 톱이 됐다. 산업을 선도하는 입장에서 더 이상 원천기술을 해외에 의존하기 힘들다. 원천기술은 국내의 학교와 연구기관 등에 있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기업 R&D가 기초·원천기술을 견인하고, 기초·원천기술이 산업기술로 이어지는 ‘산업향 원천기술’을 활성화하는 선순환 기술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대한민국이 기술패권 시대에 퍼스트무버(선도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리스크가 있지만 성공하면 임팩트가 큰 선도형 융복합 R&D에 민관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한국공학한림원은 이를 위해 산업·기업의 목소리를 담아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더욱 충실히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한국공학한림원은 이날 R&D 전환을 위한 7대 제언을 발표했다. 김필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본부장과 전호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단장, 박소희 로운인사이트 부대표가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팀은 우선 국가전략기술 및 첨단산업 분야의 ‘국가 미션 프로젝트’ 추진을 제안했다. 민간 주도 초격차 기술 개발로 시장 주도권을 강화하고 핵심 소재 부품 의존도 완화가 가능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생명공학·바이오헬스, AI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이업종 융합형 R&D의 촉진도 촉구했다. 세계 각국과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AI와 바이오 등 첨단기술을 융합해 신산업 창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기초연구와 사업화를 한 번에 진행하는 통합형 R&D 지원 사업 추진도 제안했다. R&D의 초점을 기술 개발에만 맞추지 말고 최종 목적과 그 목적이 구현되는 시장 수요로까지 확대하자는 취지다. R&D 지원 방식의 개선 방향도 제시했다. 과제 발굴 때 단기적인 기술 수요 조사를 벗어나 미래를 예측하고 잠재적인 수요를 목표로 해야 선도적 과제를 발굴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또 연구 수행 관리를 정부 주도에서 민간 수요 기업 주도로 전환해 관련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과 관리를 할 때는 단순히 산출물 중심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파급력과 영향력 위주로 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선도형 산업 R&D 활성화를 위해 예산과 세제 지원을 최적으로 조합해 지원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고, 기업의 성장 단계와 규모에 맞춰 투자형이나 융자형, 후불형 등으로 지원하는 입체적 펀딩 전략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