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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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승련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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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2024-12-04
칼럼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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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기로에 선 ‘힘센 기관’ 특수활동비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예산안 가운데 검찰, 경찰, 감사원,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국회 예결위에서 표결까지 마친 상태다. 특활비는 영수증 증빙 없이 쓰는 현금성 예산으로, 이들 4곳을 합치면 특활비 삭감액은 200억 원에 가깝다. 또 소액이 아니면 영수증이 필요한 특정업무경비(특경비)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이걸 포함하면 잘려나간 예산이 1000억 원에 이른다. ▷경찰 수사로 예를 들어보자. 불법 사채조직 정보원에게 ‘현금 수고비’를 줬다면 특활비에서 충당한다. 지방 출장 때 신용카드로 렌터카를 빌렸다면 특경비에 해당한다. 두 항목 모두 큰 틀에서 수사비의 일부인 것이다. 실제로 현금이 종종 쓰인다고 한다. 예컨대, 함정수사 차원에서 마약대금 500만 원을 비트코인으로 지급하거나, 성 착취물 사이트에 가입할 때가 그렇다. 민주당의 삭감 결정은 실제로도 특활비를 설명한 대로만 쓰느냐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검찰, 감사원 등 ‘힘센 조직’일수록 국민 세금을 쌈짓돈처럼 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 근거로 검찰의 특활비 내역에서 찾아낸 반복적 현상을 거론한다. 매달 같은 액수가 지급되는 경우가 잦아 ‘검사들끼리 나눠 갖기’가 의심되고, 추석이나 설 직전에 사용액이 늘어나니 떡값이 아니냐는 의문인 것이다. 2017년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특활비로 돈봉투를 돌린 일이 드러난 뒤 검찰은 관행을 바꾸겠다고 다짐했지만, 확인된 것은 아직 없다. ▷검찰은 올 9월 국정감사 때 특활비 내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법원 가이드라인을 따랐다지만 내용이 부실했다. 수령인과 금액만 남겼을 뿐 날짜와 용도 등은 지운 채였다. 민주당은 “기관장 금일봉처럼 안 썼다는 걸 입증만 하면 예산을 주겠다”고 했지만, 뾰족한 설명이 없었다. 문제는 국회도 특활비(9억 원)와 특경비(185억 원)를 내년에 책정했는데, 외유성 짙은 의원들의 해외 출장 등에 이 돈을 쓴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수혜자인 국회 예산은 물론이고 형사재판으로 얽힌 대법원의 특활비는 손대지 않았다. ▷민주당은 특활비 삭감을 국민 세금의 투명성 확보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수사받고 감사받은 기관들을 겨냥한 분풀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 성격이 무엇이건, 국민 세금을 200억 원 가까이 현금으로 쓰는 관행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검찰과 경찰은 지난 수년간 특활비와 특경비 총액은 비슷하게 유지하면서도, 현금성 특활비는 줄이고 영수증이 필요한 특경비는 늘려 왔다고 설명한다. 이번 ‘삭감 정국’의 결론과 무관하게, 현금 사용은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이 부패를 방지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길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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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고르바초프가 몰래 품은 꿈

    정치 투쟁용 탄핵, 무책임한 계파 싸움, 기획 방탄, 가족의 국정 개입 뉴스가 나라를 뒤덮고 있다. 하나하나가 충격적인데, 태연하게 반복되는 것이 놀랍다. 누구는 1987년 헌법이 소명을 다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개헌을 주문한다. 다른 누구는 선출직과 고위 공직을 노리는 이들 중 상당수가 평균 한국인에 못 미친다면서 사람을 바꾸는 ‘정치 교체’가 시급하다고 말한다.새로운 질문: 누가 정치를 해야 하나대개의 유권자들은 알 만큼 알게 됐다. 정당의 선출직 공천이 공공선 인재를 찾는 것 말고도 사적 목적이 개입된다는 것을. 공천 결정권자와 그 대리인들은 눈 딱 감고 나를 도울 내 편을 먼저 찾곤 한다는 것을. 김영선 전 의원이 어떻게 공천받았는지도 대충 드러났고, 박용진 의원을 배제하기 위한 3차례 경선도 많은 걸 말해줬다. 임명직이라고 다르지 않다. “(질문이) 무례하다”는 정무수석, “대통령과 친 골프는 로또”라는 국방장관이 등장했다. 월광소나타 피아노 연주를 한 뒤 청와대 대변인에 발탁되는 일도 있었으니 보수-진보 구분과 무관한 일이다.그럼 누가 정무직 공직을 맡아야 하나. 이젠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할 때다. 그동안 보수정당은 스펙 좋은 사람을 인재로 여겼고, 민주당은 운동권 경험에 가산점을 듬뿍 줬다. 이제 정치 개혁은 어느 정치집단이 좋은 인재 모델을 찾는지에 모아져야 한다. 새 기준에 맞춰 뺄 사람 빼고, 좋은 사람은 아무리 고사해도 모셔 오는 노력으로 미리미리 승부 걸어야 한다. 총선 6개월 전부터 찾는다고 찾아질 리가 없다.공공 리더의 기준이 하나일 수는 없다. 하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의 경험은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다. 나라 안에서는 소련 붕괴의 책임자로 욕먹지만, 밖에서는 사회 개혁과 정치적 개방을 ‘시도’하면서 역사를 바꾼 인물이다. 고르바초프는 억압적 체제 내 엘리트였다. 40대 후반에 농업 분야 총책임자(서기)가 됐고, 최연소 공산당 정치국원이 됐다. 브레즈네프라는 어둠의 서기장을 공개된 자리에서 칭찬했고, 아부했다는 기록이 넘친다. 그랬으니 이견 없이 체르넨코의 후임으로 1985년 봄 1인자에 올랐을 것이다. 겉으론 그랬지만, 고르바초프의 마음에선 농업을 책임지면서 갖게 된 소련 변혁의 꿈이 커가고 있었다.그는 1980년대 초반 자신이 훗날 외교장관으로 발탁한 친구 셰바르드나제와 흑해 휴양지에서 겨울 휴가를 보냈다. 그때 둘은 긴 소나무 숲 산책로를 걸으며 “농민의 추가 노력으로 더 생산한 몫은 인센티브로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소련 농업과 체제에 미래는 없다”는 대화를 나눴다. 반역에 가까운 토로였다. 그대로만 가면 미래가 창창한 둘이었지만, 변화를 통해 조국을 올바른 궤도에 올리고 싶어 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자기를 잊었다는 점에서 ‘고르바초프 모먼트’라 불릴 만했다.반대자 비판만으로는 ‘정치 부적격’당신이 정치인이라면 지난 몇 년 사이에 정치적 동지들과 무엇을 주로 대화했는지 되돌아 봄직하다. 다음 공천 가능성, 상대 정파 험담, 상대 정당 흉보기에 머물렀다면 어쩌면 당신의 시대는 저물고 있는지 모른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다.정치와 멀리 있더라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은행원, 중학교 교사, 엔지니어일지라도 관계없다. 사회를 번듯하게 세워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 ‘고르바초프 모먼트’를 경험했다면 최소한의, 그러나 꼭 필요한 공직자 조건을 지녔다는 뜻이다. 정당이 찾아나서야 할 인재들은 이런 경험자들 아닌가. 정당이 게으름 피우면 지금 같은 정치를 계속 견뎌야 한다. 하향 평준화한 정치가 정말 필요한 인재들의 도전을 막는 걸 언제까지 기다려 줘야 하나.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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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원하면 하는 게 정치… 尹, 특검 수용하고 총리 추천은 野에”[월요 초대석]

    《정대철 헌정회장은 영원한 ‘민주당 사람’이다. 민주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을 뿐 아니라 부친 정일형 박사와 아들 정호준 전 의원을 포함해 3대가 도합 14번 국회의원을 지내며 민주당에 깊이 뿌리내렸다. 정 회장은 그럼에도 민주당 울타리를 넘어 여야 정치인들과 두루 격의 없는 소통을 이어 온 ‘광폭 정치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도 20년 넘게 친분을 쌓았다. 23일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정 회장은 윤 대통령을 “정의로운 검사였다”라고 기억했고 동시에 “준비 부족으로 국정이 낙제점”이라고 비판했다. 비주류가 말살된 민주당에도 쓴소리를 했다. 정 회장은 혼란스러운 요즘 정치를 바라보며 정치 개혁을 위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개헌을 여생의 과제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헌정회가 27일 국회에서 개헌 토론회를 여는 것도 이런 이유다.》―윤 대통령과의 친분은…. “오래전 검사라면서 전화를 걸어와 가슴이 철렁했다. 만났더니 ‘제가 검찰의 정대철입니다’라고 하더라. 주변과 소통하는 걸 즐기고, 얼굴도 커서 그렇게 불린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서울대 법대 17, 18년쯤 후배인데….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즈음부터 더 자주 만났다. 그 특검보 윤석열이 몇 년 뒤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둘이 만난 건 100번인지 200번인지 생각도 안 난다. 당선 후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과 식사를 한번 했다.” ―검사 윤석열은 어땠나.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걸 말투에서 느꼈다. ‘그건 옳지 않은 일이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때 만남이 끝날 무렵 차를 갖고 남편을 데리러 오곤 했던 김건희 여사도 알게 됐다.” ―윤 대통령에게 정치 입문을 권했다는 것이 맞나. “내가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에 잠시 가 있었던 때가 있다. 그때 부장검사였던 대통령을 안 의원에게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했다. 처음엔 뜻이 있는 것 같다가 공천 때가 되니까 거절했다. ‘정치를 하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된 일 등) 내가 한 일이 정치하려고 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안 대표가 직접 들어보겠다고 해서 셋이서 만났다. 그때만 해도 윤 검사가 안 대표에게 90도 인사할 정도로 깍듯했다. 안 대표는 10번, 20번 설득하다가 포기했다. 그로부터 6년 뒤 두 사람이 대선 때 단일화해 윤 검사가 대통령이 됐다. 정말 세상일은 모르겠더라.” ―검사 시절의 정의감이 국정에선 덜 느껴진다.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대통령은 국정에 성공하지 못했다. 정치와 친하지 못하고, 준비 부족 탓이겠지만 국정 철학과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다.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검찰 출신으로 민주적 대화, 타협, 조정에 익숙지 않았을 것이다. 또 부인 문제까지 생겼다. 최근 기자회견을 봤는데 변명만 했다. 국민적 요구가 뭔지 알고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대통령이 되면 왜 이렇게 달라지나. “(인사 예산 등) 다른 권한보다 대통령을 가장 자신만만하게 만드는 것은 정보라고 본다. 자신이 세상일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오만해진다.” ―윤 대통령은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었다. 뭘 했어야 했나.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딱 한 번 만났다. 내가 내부 사정을 들어보니까, 대통령은 사법 리스크가 끝난 뒤 만나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무죄 추정이 필요한데, 검사 출신 대통령이 비법률적인 사고를 한다. 야당 대표를 안 만나겠다면 야당 중진이나 상임위원장을 초청해 밥을 먹어야 한다. 취임 2년 반 동안 이런 자리가 한 번도 없었다고 들었다.” ―대통령은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 않나. “정치 현실에 와 보니까 정치인들이 나쁘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다. 국가를 사랑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존재로 야당을 봤다는 뜻이다. 하지만 야당은 반대하는 집단이다. 설득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대통령에게 필요한데, 그거 없어 걱정이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을 불순 세력으로 보고, 야당은 보수 정당을 시대착오적 퇴행 집단으로 본다. 야당은 툭하면 법안 강행 처리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법률안 24건에 썼다. 이렇게 여야가 자기 힘을 과시하는 정치는 없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 책임제에선 대통령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가장 먼저, 또 크게 느껴야 한다. 내가 알던 윤 대통령은 취임하고 보니까 정치 친화적이지 못했다.” ―정치 친화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내가 문재인 대통령 시절 우연히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DJ)을 존경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뒤 자신을 초청한 뒤 국정 경험을 듣겠다고 수첩을 펼쳐놓고 질문하더란다. 그렇게 5번을 초청했다고 했다. 전두환의 조언을 DJ가 따랐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DJ는 정적의 딸이었던 박근혜 의원도 초청했고,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이런 걸 두고 쇼라고 해도 좋다. 또 쇼 한두 번으로 국민들은 감동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지켜보는 국민들은 싫어하지 않는다. 지금 대통령은 자신이 옳고, 이재명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겠지. 설혹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지금의 여야의 만남이 절박하다면 자기 생각을 뛰어넘어야 한다.” ―지금 꽉 막힌 정국을 풀려면…. “지금 정국을 돌파하려면 연립정권 비슷한 방식 아니면 어렵다. 국무총리 추천은 야당에 맡길 각오를 해야 한다. 언론에서 거론되는 김한길 박주선 등 민주당을 떠난 분들이 국회 표결을 통과하겠나. 기자회견 때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전광판을 자세히, 그리고 자주 봐야 한다.” ―김 여사 해법은 뭔가. “대통령이 읍참마속 심정으로 특검을 받아야 한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 구속을 좋아서 했겠나. 국민이 원한다면 해야 하는 게 정치다. 민주당도 특검 선정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걸 양보해야 한다. 특검이 여야 상황 다 참고해서 수사할 텐데. 그 정도 양보는 해야 한다.” ―헌정회장으로서 개헌 토론회를 연다는데 무엇을 고쳐야 하나. “대통령은 제왕적이다.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거 빼곤 다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나. (외치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가 하는)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하든, 재임 중 중간평가 같은 선거를 더 치르게 하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도입하든 대통령 권한 분산이 필요하다. 나는 내각제를 더 선호하지만, 민심이 내각제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국회에 내각 불신임 권한을 주고, 대통령에게는 국회 해산권을 줘 상호 견제하는 걸 생각할 수는 있다.” ―대통령 권한 축소도 중요하지만 국회에 대한 불신도 크다. “국회의원도 통제받아야 한다. 의원 국민소환제를 헌법에 넣을 수 있다. 지방자치에 있는 주민소환제도와 비슷한 것이다. 막 나가는 의원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국회의 윤리심사 기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자문단도 설치해서 윤리심사 때 의원단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그나마 있던 상설 윤리위원회도 없앴다. 자기들끼리 불편한 걸 없애버리며 퇴행했다.” ―개헌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자가 반대한다. “1987년 개헌 이후 37년이 흘렀다. 그사이에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기후변화, 지방소멸, 남북관계 변화 등 개헌 필요성이 많아졌다. 개헌해야 할 절박성이 있다. 가장 시급한 사유는 제왕적 대통령 문제다. 그래서 개헌의 때가 왔다는 공감대가 생겼고, 국회의원 사이에 소명의식이 느껴진다. 가장 큰 정치 개혁은 개헌이구나 하는 소명 말이다.” ―1987년 개헌은 민주화 열기가 응축된 결과였다. 개헌 요소가 많으면 어렵지 않을까. “개헌은 중요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 줄줄이 다 고치려면 백년하세월이다. 권력구조 개편과 지방분권 등 2가지가 핵심인데, 가능한 부분, 합의된 부분만이라도 해야 한다. 절박한 정치 개혁을 위해선 개헌이 돌파구라고 우리 헌정회는 생각한다.” -임기 단축 개헌 주장도 나오는데…. “윤 대통령이 이렇게 임기를 마치면 낙제점이다. 정치 개혁 과제인 개헌을 대통령이 만들어 내면 된다. 다만, 지금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것은 논란이 크다. 여당은 탄핵의 변형이자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개헌을 하더라도 임기 단축은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하면 된다. 여소야대를 막기 위해 대선과 총선을 비슷한 때 치르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여야 싸움은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나. “여야 싸움을 줄이려면 국회법이라도 고치는 건 어떨까. 싫더라도 만나서 대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여야 상설 정책협의체를 만들어 1년에 몇 번 이상은 협의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을 넣자는 학자들도 있다. 영국 독일 미국처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지정석이 아니라 입장하는 순서대로 섞어 앉으면 어떨까.” ―170석 민주당은 제 역할을 하고 있나. “이재명 대표는 달라져야 한다. 사법 리스크와 당을 너무 묶어 놓았다. 이 대표가 내 문제는 따로 해결할 테니 민주당은 해방되라고 선언해야 한다. DJ였다면 벌써 대표직 던졌을 거다. 그러면 당도 더 고마워하고, 본인도 더 빛나게 된다. 1955년 민주당 창당 이래 비주류가 없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내가 민주당 대표 할 때도 비주류를 위해 3, 4할은 남겨놓았다. 지금은 국회의원도 올바른 얘기를 못 하게 됐다. 이재명의 결단, 의원과 당원의 결단이 동시에 필요하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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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美 작은정부십자군 “저항 세력에 망치가 떨어질 것”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만들기로 한 ‘정부 혁신 기구’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 조직의 공동 대표로 지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53)와 공화당 대선 주자였던 인도계 억만장자 비벡 라마스와미(39)는 20일 신문 기고를 통해 “작은 정부 십자군”이 조직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머스크가 구인 공고를 냈던 “무보수로 주당 80시간 일할 매우 높은 IQ 소유자들”이 그들이다. 12세기 전후로 십자가를 품고 이슬람 정벌에 나섰던 기독교 기사단을 뜻하는 십자군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머스크의 결기와 기존의 엘리트 공무원을 적대시하는 트럼프의 생각이 묻어난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재택근무 중단과 규제 개혁을 제시했다. 코로나 때 정착한 재택근무를 폐지해 주 5일 출근을 불편하게 느끼는 공직자에게 퇴직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연방 공무원 230만 명 가운데 110만 명이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23만 명은 100% 재택근무를 해도 된다고 한다. 머스크는 또 행정 규제를 철폐해 부처마다 규제 담당자 숫자를 크게 줄이고, 연방 정부 조직을 수도 워싱턴 밖으로 옮겨 공직자 퇴직을 유도하겠다고도 했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손대지 못한 것이 정부 개혁이다. 하지만 두 억만장자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머스크는 400개가 넘는 정부 기구를 99개로 줄일 수 있고, 국민 세금을 매년 2조 달러(약 2800조 원)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라마스와미 역시 주(州) 경찰 및 교육자치청과 업무가 겹치는 연방수사국(FBI)과 교육부 폐지를 요구해 왔다. 이들의 주장은 “정부는 문제를 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취임사와 맥을 잇는 것이다. ▷미 언론 댓글에선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눈에 띈다. 두 사람이 각각 전기차 혁신과 신약 개발 투자로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뤘지만, 이들의 성공 공식이 정부 개혁에 그대로 적용될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머스크는 업무에 관한 한 자신에게 가혹하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다고 그를 2년간 관찰한 전기작가는 기록했다. 게다가 이들 둘은 남들이 나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천재형 창업가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개혁을 “우리 시대의 맨해튼 프로젝트”로 부른다. 미국이 핵 개발에 성공하면서 전쟁과 국제 관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처럼 자신도 그만한 변혁의 주도자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트럼프나 머스크나 결국 상식을 뛰어넘되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모순적 과제가 주어졌다. 머스크는 “(개혁 저항 세력에) 망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망치를 가진 자에게는 무엇이든 못으로 보인다’는 미국 속담이 있다. 머스크의 성공 여부는 그가 얼마나 망치를 섬세하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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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우크라戰 1000일… 휴전說에 더 치열해진 ‘국경선’ 싸움

    오늘(19일)로 개전 1000일을 맞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불공정 전쟁’의 대명사로 기록될 듯하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에서 공격용 무기를 제공받았지만 국경 너머의 러시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없고, 자국에 들어온 적에게만 쓸 수 있다. 덴마크 네덜란드가 준 전투기 F-16도 그렇고, 미국의 지대지 미사일(에이태큼스)도 그랬다. “러시아 내부를 때리면 무기 공여국을 교전국으로 간주한다”는 러시아의 엄포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엔 제약이 없다. 1945년 미국의 첫 핵실험 이후 핵무장국은 본토를 공격받은 일이 없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000일이 지나서야 사거리 300km인 에이태큼스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1차 목표는 러시아 땅 쿠르스크 내 러시아 및 북한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쿠르스크 지역은 영토 20%를 러시아에 빼앗긴 우크라이나가 유일하게 러시아 내부로 진격한 곳으로, 러시아는 북한 병사 1만2000명을 이곳에 투입했다. 2022년 2월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를 방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화끈하게 돕지도 않았던 바이든이 퇴임 2개월을 앞두고 이렇게 결정한 건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전쟁 중단’을 공언해 왔다. 트럼프 캠프의 휴전 구상은 ‘지금 위치에서 총을 내려놓고 현재의 전선에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고, 우크라이나는 20년간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미국은 방어용 무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국제사회는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도 전쟁 피로감이 커진 건 사실이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장기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컸다. 유엔 추정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11만5000명이 사망하고, 5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절반쯤 되는 5만7000명이 전사했고, 25만 명이 다쳤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트럼프발 휴전 가능성은 전쟁을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쿠르스크가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군이 이미 투입됐고, 미국이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허용한 곳이다. 북한군이 여기로 자주포 50문, 방사포 20문을 갖고 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당국은 미사일 공격을 허가하면서 “참전한 북한군이 위험해졌다. 북한에 추가 파병을 멈추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와 북한군을 공격하면 푸틴은 보복에 나설 것이다. 여타 전쟁처럼 휴전을 앞두고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국경선’ 공방은 뜨거워질 것이다. 이 와중에 북한군에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전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개전 1000일,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최초 구상과는 정반대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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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앤디 김, 영 김, 매릴린 순자 스트리클런드, 데이브 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한 데이브 민 후보(48)가 13일 당선됐다. 이로써 수도 워싱턴의 연방 상·하원에서 일할 한국계 당선인은 4명으로 늘어났다. 한국계 최초 상원의원이 된 앤디 김(42)과 함께 하원의 영 김(62), 매릴린 순자 스트리클런드(62)가 그들이다. 아직 개표 중인 미셸 박 스틸(69)까지 당선되면 한국계는 5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93%가 개표된 가운데 스틸 후보는 50.03%를 얻어 200여 표 차 초박빙 우세를 지키고 있다. ▷5명이 당선된다면 하원의원 4명을 당선시켰던 2년 전 기록을 깨는 것이다. 한국계의 끊임없는 도전은 2년 전 하원 선거에 출마한 5명을 다룬 다큐멘터리 ‘초선(영어 표기는 Chosen)’에 잘 담겨 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의사당 앞에서 “네게 모든 걸 선사한 미국을 사랑하고 가슴에 새기라”는 말씀을 들었던 소년은 3선 하원 의원을 거쳐 상원 의원으로 성장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방화 폭동을 아버지의 가게 한 구석에서 목격한 꼬마도 정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변호사가 된 데이비드 김은 라틴계가 다수인 지역구에서 3번 연속 고배를 마셨다. ▷첫 한국계 연방의원은 김창준 전 하원의원(85)이었다. 그가 6년간 3선을 마치고 물러난 1999년 이후 20년 가까이 한국계는 없었다. 그럼 왜 늘어난 걸까. 한국계 미국인 등록 유권자는 110만 명을 기록하고, 미 의회에서 일하는 한국계 보좌관이 10년 사이에 20여 명에서 7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워싱턴 정치무대에서 존재감이 생겨난다는 해석이 많다. 또 한국의 국력 신장과 함께 이민자의 자녀들이 공직과 정치를 더 선택하는 경향도 생겼다. ▷미 의사당의 백인 중심주의에도 변화가 생겼다. 상원 100명, 하원 435명 의원 가운데 1980년 현재 백인은 95%를 차지했다. 백인 유권자가 80%이던 시절이다. 그랬던 것이 2022년 중간선거 이후 백인 의원이 75%로 줄었다. 백인 유권자는 59%로 축소됐다. 현재 한국계를 포함하는 아시아계 의원은 18명으로, 전체의 4% 수준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서 불법 이민 이슈를 부각시키고, 백인끼리 뭉치자는 ‘정체성 투표’를 강조한 것도 세가 줄어드는 백인 정치가 배경이 됐다. ▷워싱턴 정치무대에서 한국계 중진은 아직 없다. 앤디 김이 6년, 영 김이 4년 의정 활동을 했으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미국 대중은 한국계를 기득권이나 군림보다는 봉사의 존재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앤디 김 의원이 3년 전 폭도들의 미 의회 난입 때 깨진 유리조각과 쓰레기를 홀로 치우는 장면은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낮은 자세로 임하는 정치인이 박수받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없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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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휴대전화 집사람이 보면 죄짓는 거냐”[횡설수설/김승련]

    박성재 법무장관은 8일 국회 법사위에서 “우리 집에선 (집사람이) 제 것도 보고, 집사람 것도 제가 본다”며 “집사람이 제 휴대전화를 보면 죄짓는 거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후보 시절) 아내가 아침 5, 6시인데 안 자고 엎드려서 제 휴대폰을 갖고 답하고 있었다. (잠을) 안 자고 완전히 낮과 밤이 바뀌어 그렇게 했다”고 한 말을 야당이 꼬집자 나온 답변이다. ▷박 장관은 “바쁜 경우에 간단한 답 같은 건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박 장관의 발언은 논란의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입당원서에 적힌 전화번호가 노출된 뒤 문자가 쏟아졌다고 했다. 김 여사가 답변을 한 대상에 윤 대통령과 아는 사람들도 있는지, 번호가 저장돼 있지도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부부간에 휴대폰 문자 등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지도 않지만 설사 상대방 문자를 본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대신 답변까지 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여사가 문자 상대방과 윤 대통령의 관계, 문자에서 언급된 이슈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보냈는지 의문도 남는다. ▷윤 대통령은 새벽에 답장을 하던 김 여사에게 “제가 ‘미쳤냐, 잠을 안 자고 뭐 하는 거냐’ 그랬더니 (아내가) ‘이분들이 다 유권자인데…’”라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김 여사가 밤잠 안 자고 정치권에 뛰어든 자신을 도왔다는 점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답변은 자연스럽게 추가적인 궁금증을 낳았다. 김 여사가 이후 당선인 시절이나 대선에서 당선된 뒤에도 ‘바쁜’ 윤 대통령을 대신해 답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정치인이나 대선 후보 가운데 공개를 전제로 한 SNS 관리를 참모에게 맡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휴대전화 문자 답신은 수신자로 하여금 ‘직접 썼다’고 믿음을 주는 것이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이 알려지자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문자 답변을 받은 이들 중에선 “내가 받았던 문자가 대통령이 보낸 게 맞나” 하는 반응들도 나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발언만으로는 김 여사가 단순 인사만 보냈는지, 다른 내용까지 보냈는지를 알 도리는 없다. 다만 통상의 대통령 부인 역할을 넘어서는 행동을 보여온 것과 맞물리며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정작 윤 대통령은 같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김 여사의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명태균 씨 논란과 관련한 답변을 준비하면서 “아내 휴대전화를 보자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 제가 그냥 물어봤다”고 했다. 김 여사는 대통령 전화를 통해 문자 답신까지 하는데 대통령은 김 여사의 휴대폰을 보지 않는다니 “대체 뭔지” 하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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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미국의 첫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 ‘얼음 아가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택한 첫 백악관 비서실장은 수지 와일스(67)였다. 선거 캠프의 좌장 역할을 했던 와일스는 “가장 덜 알려졌지만, 가장 막강한” 트럼프 사람으로 통한다. 와일스 중용은 대선 불복으로 비판받던 트럼프를 2021년 초 만난 것이 출발점이 됐다. 2016년, 2020년 대선 때 워싱턴이 아닌 플로리다주에서만 선거운동을 했지만, 와일스는 트럼프가 왜 졌는지, 뭐가 달라져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질문을 쏟아내던 트럼프는 “2024년 선거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와일스는 미 역사상 첫 여성 비서실장이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비서실장이 생긴 이래 30명 넘게 거쳐갔지만, 여성은 없었다. 충성심과 냉철함이 그의 경쟁력이라는 게 미 언론의 평가다. 그의 별명은 얼음 아가씨(ice baby) 또는 얼음 여사(ice maiden). 할머니 같은 넉넉함 속에 비수같이 담긴 냉철함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막후 조정을 선호하는 와일스는 언론 인터뷰에 거의 응한 적이 없다. 당선을 확정 지은 순간에 트럼프가 와일스를 행사장 연단으로 이끌면서 “(당신은) 뒤에 있는 걸 좋아하는데, 뒤에 있을 사람은 아니야”라고 할 정도다. ▷비서실장 지명은 당선 이틀 만에 발표됐다. 8년 전 트럼프의 첫 당선 때는 6일 걸렸던 일이다. 정치 신인과 다름없던 2016년과 달리 트럼프가 4년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일처리에 속도를 낼 것이란 신호로 읽힌다. 비서실장 인선 방향도 달라졌다. 트럼프는 첫 임기 4년 동안 국정 경험 부족을 메워줄 중앙정치 명망가, 해병대 4성 장군 출신, 예산 전문가 등을 기용했다. 하지만 와일스 발탁 소식을 보면 트럼프가 실무를 꼼꼼히 챙길 행정과 정무 감각을 더 선호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트럼프 1기 백악관은 한마디로 뒤죽박죽이었다. 트럼프는 회의 때 발언 시간을 독차지했고, 개인 휴대전화로 수없이 바깥 인사들과 통화했다. 또 누구와도 상의 없이 국방장관 해임을 트위터로 공표한 적도 있다. 그 시절 존 켈리 비서실장은 동료였던 안보보좌관에게 “내가 백악관을 얼마나 떠나고 싶어 하는 줄 아느냐”고 털어놓은 기록도 있다. 와일스의 첫 과제는 내년 1월 취임하는 트럼프의 돌출행동을 통제하고, 백악관을 질서정연한 곳으로 만드는 일이 될 듯하다. ▷미 언론은 와일스가 듣기 거북한 사안을 트럼프에게 직설적으로 보고하면서 캠프가 돌아가도록 했던 일처리 솜씨에 주목하고 있다. 45년 정치 경력 동안 고위직을 맡은 적이 없는 와일스가 ‘부통령보다 중요하다’는 비서실장직을 맡은 것도 이 점을 평가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 세계는 트럼프 2기가 가져올 변화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와일스에게는 과거 어떤 백악관 비서실장 못지않게 관심이 모아질 것 같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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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설명 게을리한 尹정부, 무기 공여 축소해야

    북한은 러시아 파병을 통해 달러, 식량, 석유를 챙기고, 군사 정찰위성 기술, 낡은 구소련제를 대체할 전투기 확보까지 노릴 것이다. 그 심각성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북-러의 군사기술 이전 수위를 낮추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어떤 무기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 러시아 같은 군사대국의 엄포에 맞서는 위험천만한 두뇌 싸움이자 기 싸움은 시작됐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만한 군사적 위험을 떠안는 결정은 거의 없었다.러시아와 위험한 두뇌 싸움-기 싸움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대통령이 지난주 갑자기 꺼내 든 ‘살상용 무기’는 고사하고 방어용 무기도 지원 수준을 높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은 무기 제공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주 무기 지원 반대 여론이 80%에 달했다. 한국이 2년 동안 미국을 통해 50만 발쯤 우회 지원했던 155mm 포탄이든, 우크라이나 영공으로 날아든 러시아의 미사일과 전투기만 공격하는 방어용 천궁-1, 2 미사일이든 여론 지지 확대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밑바닥을 드러낸 윤 대통령 리더십으로는 갈라진 정치와 취약한 여론 형성 구조상 상황 반전이 매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를 천명했다. 국가 위상에 걸맞게 북한 핵과 한반도를 넘어서는 외교를 하겠다는 구상인데, 이 멋진 구호에 담긴 어두운 현실은 살상무기의 직접 지원까지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외교의 큰 밑그림을 설명할 법했지만, 각인된 기억이 별로 없다는 점은 의외다. 외교장관도 국방장관도 여론 정지 작업에 게을렀다. 한국인은 제3국 전쟁에 왜 무기 제공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6·25전쟁 때 16개 참전국 도움으로 나라를 구했다”라거나 “훗날 우리 안보가 위협받을 때 어쩌나” 하는 질문이 가능한데, 그건 사석에서나 오갈 뿐 공론장에 제대로 올려진 적이 없다. 어느 나라나 ‘먹고살기 힘든데 왜 지구 반대편 나라를 돕느냐’는 주장에 취약하다. 글로벌 경찰국가 전통이 강한 미국이지만 외려 대외 군사 개입 최소화를 앞세운 트럼프가 돌풍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이탈(브렉시트)도 본질이 똑같다. ‘영국이 유럽의 일부일 때 런던 금융가의 고학력자만 좋을 뿐, 우리 같은 북쪽 공업지대 노동자에게 무슨 도움이냐’는 생각이 득세했다. 전 지구적 존재감에서 100년 앞선 나라들도 소수 엘리트를 제외하면 글로벌 통합과 책무에 둔감하다. 한국이라고 “강대국을 따라 하는 외교나 군사 협력이란 게 왜 필요한가. 대통령, 장관, 외교관, 대기업 임원, 교수 등 소수 엘리트가 해외에서 대접 잘 받는 거 말고 우리 삶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주장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닭 피 맛보고 전쟁 결정하느냐”거나 “고문 기술 수출이냐”는 야당 대표의 발언은 수준 이하였지만, 이런 흐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트럼프 현상-브렉시트… 모두 같은 이야기 정말 러시아에서 북한군의 전투 활동에 맞춰서 단계별로 무기 제공 범위를 정한다는 우리 전략이 북-러 협력을 줄일 수 있을까. 국가 자존심에서라도 무대응-불관여는 선택지가 아니라지만, 군사적 불가측성이 예상돼 이 질문을 안 던질 수가 없다. 러시아와 연관된 납치나 테러라도 생긴다면 대혼란이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적으로 난처한 상황이다. 한기호-신원식 문자도 곡해할 만한 내용이었다. 괜한 오해를 살 강경 드라이브라면 처음부터 정리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지금 구상 중인 시나리오에서 강도를 한두 단계 낮춰야 할 수 있다. 그 대신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가 주는 단맛(외교적 대우받기)과 쓴맛(불량 국가와의 갈등)을 공히 국민에게 설명하는 작업을 지금이라도 시작할 필요가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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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한국은 머니 머신”… 속수무책인 트럼프의 엉터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황당한 주장을 펼 때 뜬금없는 말로 논점을 흐리곤 한다. 며칠 전 미 유력 매체인 블룸버그 편집장과의 1 대 1 대담에서도 그랬다. 트럼프는 “당신의 감세 공약대로라면 국가부채가 10년 동안 최소 7조 달러(약 9000조 원)가 늘어난다는 보고서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그렇게 비판했다”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 신문이 뭘 아나. 모든 게 다 틀리는 신문이다. 하긴, 당신도 평생을 틀려 왔으니…”라고 응수했다. “당신이 틀렸다(wrong)”는 말을 5번 반복하는 장면에선 논리적 설명을 할 뜻이 안 보였다. ▷그 자리에서 트럼프 후보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현금인출기)”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대통령 재임 때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더 대라. 국회에서 연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로 동의를 얻어 오라”고 요구했던 일을 공개했다. “그 다음 해엔 50억 달러를 받아낼 생각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의 분담액이 연 1조1000억 원에 못 미치던 때였다. 자신이 이렇게 애썼지만, 후임 바이든 대통령이 합의를 백지화시켰다는 비난을 빼놓지 않았다. ▷트럼프는 마치 우리 정부로부터 큰 걸 얻어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시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협상은 그가 퇴임할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국방장관과 국무장관 등 참모들은 “한미동맹은 국방비 숫자를 뛰어넘어서는 전략적 가치가 있다”며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압박을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조언에는 별 관심이 없는 트럼프는 블룸버그 대담에서 “내가 지금도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은 매년 100억 달러를 내고 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대선 승리에 한 발 다가섰다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 기질은 중요한 문제다. 불쑥불쑥 이슈를 꺼내들면서 상대국을 압박하지만, 그때뿐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의 책 ‘분노(Fear)’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와 관련된 일화가 담겨 있다. 하루는 트럼프가 “미국이 손해 보는 FTA를 깨겠다”며 효력정지 문서를 만들도록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파장을 걱정한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이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놓은 그 문서를 치워 버렸는데, 트럼프는 문서의 존재를 끝내 잊어 버렸다고 한다. ▷트럼프는 이날 특유의 화법으로 대담을 주도했다. 늘 그래 왔듯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어휘를 짧은 단문으로 쏟아냈다. 단순한 메시지를 열 번이고 백번이고 반복하는데, 그의 말을 확신하는 지지층은 여전히 두텁다. 그의 엉터리 언행에도 우리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미 대선이 다가올수록 선거 결과가 우리 선거 때만큼이나 신경이 쓰인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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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50번 중 49번 尹 1위였던 ‘명태균 여론조사’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설로 시작된 명태균 씨 파문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뤄진 여론조사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명 씨는 미래한국연구소라는 여론조사업체와 시사경남이라는 인터넷 매체를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여론조사를 직접 하거나 외부에 맡겼다. 그런데 재정 기반이 취약한 명 씨가 대선 1년 전부터 몇몇 언론사와 함께 50차례 여론조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고, 57만 명의 국민의힘 당원 명부를 입수해 미공표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한 것이다. ▷50차례의 조사는 모두 PNR(피플네트웍스 리서치)이란 ARS 조사업체가 맡았다. 눈에 띄는 건 50번 중 윤석열 후보가 1위인 것이 49번이었다. 딱 한 차례 2위를 차지했는데, 대선 2개월 전인 2022년 1월 초 조사였다.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 10일 뒤였다. 그러나 대선 1년 동안 규모가 큰 다른 업체의 조사에선 윤석열 이재명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했다. ARS보다 응답률이 높은 전화면접을 하는 갤럽 조사가 대표적인데, 25회 조사 가운데 이 후보가 앞선 것이 15회였다. ▷그런데 명 씨와 함께 일했던 강혜경 씨가 유튜브에 출연해 폭로성 발언을 쏟아냈다. 강 씨는 “(대선이 임박했을 때) 3000∼5000개 샘플로 (여론)조사를 했다. 명 씨가 매일매일 윤 후보 쪽에 보고한다면서 빨리빨리 보고서 작성해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그는 여론조사에 들어간 예산이 3억7520만 원이란 서류를 공개하기도 했다. 김영선 전 의원의 창원의창 보궐선거 대가설도 거론했다. 강 씨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강 씨는 이달 21일 국감 출석을 예고한 상태인데, 그의 발언에 따라 정치권이 한바탕 요동을 칠 수도 있다. ▷국민의힘 당원 57만 명을 상대로 한 2차례의 여론조사도 논란이다. 이는 여심위 등록의무가 없는 미공표 조사였다. 2021년 10월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4인으로 압축된 때였다. 당 선관위가 4인 후보 캠프에 UBS메모리에 담아 준 정보가 명 씨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누가 명 씨에게 전달한 건지, 이 조사 결과를 당시 윤 후보 측이 건네받았는지, 비용 정산은 어떻게 한 것인지 규명돼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여론조사 학자들은 “여론 자체만큼이나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론조사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통상 ARS가 아니라 훈련받은 면접원이 질문할수록, 응답률이 높을수록 품질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조사의뢰자나 조사 수행업체의 기본적 자질도 필수적이다. 명 씨가 실제로 불투명한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정치 브로커 역할을 했다면 수사로 가릴 일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여론조사가 아니라 심각한 여론 조작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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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사망자 4만1870명, 참혹한 ‘가자 전쟁’ 1년

    1년 전 오늘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가 분계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했다. 민간인 약 1200명이 숨졌고, 약 250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해 하마스 소탕에 나섰고, 서울 면적의 60% 정도인 가자지구 대부분을 장악했다. 몇 차례의 이-하마스 휴전협상이 불발되는 동안 국제사회 관심은 헤즈볼라의 배후인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으로 옮겨간 듯하다. 1년 전 받았던 전쟁의 충격이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다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1870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전해졌다. 하마스 보건부와 유엔 기구가 파악한 이 숫자는 민간인과 하마스 대원을 합친 것인데, 사망자의 30% 이상이 어린이로 파악됐다. 정치와 군인이 시작한 전쟁에서 사회적 약자가 제일 먼저 희생된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하마스는 빽빽한 흙벽돌 건물 밑으로 지하 터널을 뚫었고, 그곳에서 무기와 인질을 숨겨놓고 저항해 왔다. 하마스가 자국민을 방패 삼은 곳에 이스라엘의 공격이 집중되면서 희생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인구 215만 명인 가자지구에서 주민의 90%가 피란민이 됐다. 식량, 의료품이 절대 부족하고, 병원과 학교는 제 기능을 잃었다. 구호품 실은 트럭을 차단하는 바람에 외국 공군 수송기가 약품과 밀가루를 낙하산에 매달아 투하하던 장면이 기억에 선명하다. 1년 동안 이 좁은 땅에 평균 3시간에 1번씩 폭격이 감행됐다. 외신 사진 가운데 팔다리에 자신과 가족의 이름을 써넣는 모습이 있다. 폭격으로 신체 일부가 훼손되더라도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마스 보건부가 지난달 649쪽 분량의 전쟁 사망자 명단을 공개했다. 그때까지 사망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3만4000여 명을 나이순으로 정리한 기록이다. 그 명부 1∼14쪽을 채운 710명은 0세로,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한 채 어른들의 전쟁에 스러져 갔다. 군사작전에 직접 희생됐을 수도 있고, 나빠진 영양과 의료 환경 탓에 숨졌을 수도 있다. 기습공격은 하마스가 감행했지만, 그 피해는 하마스가 지키겠다고 약속한 팔레스타인인에게 집중된 것이 이번 전쟁의 아이러니다. ▷지난 1년간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에선 승리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세계에는 분노와 증오가 쌓여 왔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대선 철 미국의 리더십 부재를 틈타 더 공세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가깝게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멀리는 이란과 예멘 반군을 상대로 하니, 네 갈래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선 하마스 1인자 제거와 100명 남짓 남은 이스라엘 인질의 석방을 손에 쥐어야 멈출 듯하다. 하마스로선 응할 수 없는 조건이니,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정치와 거리가 먼 이들의 수난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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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만년 야당’ 두려움 갖고 김 여사 문제 다루라

    디올백 영상과 몇몇 텔레그램 문자 내용이 공개된 이후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을 믿게 됐다. 정무수석, 인사기획관, 의전비서관이 할 일까지 관여하니, 역할이 생각보다 넓고 깊다고 한다. 이럴 바엔 대통령실 안에 직책을 부여하고, 국회에 출석하고 언론 질문에 답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정부나 실수를 범한다. 그걸 바로잡아 본궤도로 돌아가는 건 진심과 실력의 영역이다. 궁지에 몰린 용산으로선 5년 임기 반환점을 눈앞에 둔 지금부터라도 좋은 국정을 체감시켜야 한다. 김 여사 처리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김 여사가 자숙 약속한다면 반드시 지켜야 대통령실은 국회의 특검법 처리, 검찰의 도이치모터스 사건 기소 여부를 봐 가며 시나리오를 짤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2년간 용산의 계산은 번번이 빗나갔다. 정치 테크닉 대신 대통령이 후보와 당선인 때 가졌던 초심으로 판단하기 바란다. 그러자면 “당선되면 아내의 일에만 충실하겠다”는 3년 전 김 여사의 약속은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대통령 부부는 약속을 지키려 했지만 못 지킨 걸까, 지킬 수 없다는 걸 그때도 알았던 걸까. 여기에 대한 답변은 친윤 그룹까지 요구하는 김 여사의 사과와 다짐, 실천과 검증에 꼭 필요하다. 김 여사가 앞으로 할 대국민 약속은 오차 없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야당이나 누구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인플레를 잡겠다는 유의 정책 약속도 아닌데, 대통령 부부의 진심만 있다면 지킬 수 있는 영역이다. 그 점에서 용산 출신 희대의 낙하산 인사가 한 발언은 뼈아프다. 대통령을 두고 “말을 듣나. 혼자만 이야기하고. (주변 참모 중) 누가 이야기하느냐”고 했는데, 내부자의 입을 통해 국정 1인자가 이렇게 희화화된 적은 드물다. 윤 대통령이 꼭 필요한 비판적 보고를 차단한다는 의미일 수 있고, 국정의 누수를 모를 수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사실이라면, 지지층마저 자존심 상할 말이다. 말을 막는 대통령, 그렇다고 간언을 못 하는 정치세력이라면 국정의 기회를 다시 줄 수 없다. 이런 민심 이반은 당분간 보수정치는 대한민국의 미래 만들기에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대통령 선거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총선은 구조적으로 국민의힘에 더 힘들어진 권역별 의석수 변화를 감안하면 한가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는 여소야대에선 대통령이 국정 목표를 추진하는 게 힘들다는 걸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같은 낮은 지지율을 방치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지역구 숫자 조정… ‘중수청’ 마인드 없으면 필패 헌법재판소가 기준을 제시한 총선 지역구별 유권자 편차를 따져보면 보수정치는 항아리 밑으로 물이 새는 걸 잊어선 안 된다. 2000년에는 편차가 4 대 1까지 허용됐다. 서울 경기 부산 등에선 30만 명이 넘어야 갑을로 분구됐지만, 농촌에선 7만5000명이면 쪼개졌다는 뜻이다. 그러다 3 대 1을 거쳐 2014년 2 대 1까지 좁혀놓았다. 상대적으로 젊고 고학력인 수도권 대도시 유권자의 표심을 반영하려는 시도로, 옳은 방향이다. 올 4월 22대 총선 지역구는 수도권이 121곳, 영남이 65곳이었다. 2000년 16대 총선 땐 각각 100곳, 66곳이었다. 편차가 2 대 1로 더 좁혀진 게 2014년인데, 이후에 치러진 3번의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08∼122석을 맴돌았다. 요즘 표현으로 중수청(중도-수도권-청소년) 정치를 지향하지 않을 땐 패배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남정파 색채가 짙어가는 용산과 집권당은 대통령 부부 이슈를 중수청 마인드로 따져보고 있는가 묻게 된다. 선거가 멀었다지만, 유권자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1, 2주 김 여사 처리는 10년 정치지형을 바꿀 수 있다. 자칫하면 만년 야당을 각오해야 한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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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통일운동가 임종석의 통일 지우기

    30년 넘게 통일운동가를 자처해 온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통일, 하지 말자”고 말해 논란이다. 그는 “통일 강박관념을 내려놓자. … 당위와 관성으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다. 그제 광주에서 열린 9·19 남북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다. 문재인 정부의 첫 대통령비서실장인 그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 3명이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합의했던 통일의 당위와 필요성을 부인한 것이다. 그 자리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통일은 겨레의 여망”이라고 손잡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함께 있었다. ▷1980년대 말 전대협 의장 시절 ‘통일의 꽃’ 임수경을 평양에 보냈던 그는 2000년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남북 간 교류 확대를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했고, 대북송금사건 특검 수사에 반대했다. 대통령비서실장직을 떠날 때 “원래 자리로 돌아가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통일이 좋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통일, 하지 말자”고 말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임 전 실장은 연설에서 ‘통일 유보’ 주장을 두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남북 간 화해 협력에 거부감이 생긴다는 것이 하나고, 통일을 유보할 때라야 남북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북한의 불법적 핵무기 개발이 핵심적인 이유라는 사실조차 그는 외면했다.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그의 주장은 김정은의 올 초 발언과 흡사하다는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김정은은 올 초 “남북은 더이상 동족관계가 아니며, 두 개의 적대적 국가”라고 선언한 뒤 초강경 대남 압박을 주도해 왔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문 전 대통령은 “기존의 평화와 통일 담론을 전면 재검토하자”고 화답하듯 말했다. 이 말은 “북한이 연방제 통일론 등을 폐기한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비현실적 통일 논의는 접자”는 임 전 실장 생각과 상통한다. 연설 내용이 알려진 뒤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이 비판에 나섰는데, 문재인 정부 외교부 차관 출신이 나서 방어막을 쳤다. 이날 연설이 돌출행동이 아니라 사전에 조율된 것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임 전 실장은 차제에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도 없애거나 고치자고 했다. 그러나 북한 땅을 우리 영토로 여길 때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다. 이 조항을 폐기하면 탈북자를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어진다. 임 전 실장은 왜 이 시점을 골라 이런 연설로 논란을 일으켰을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라는 북한의 주장에 편승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것이 1차 의도일까. 여전히 남는 의문으로, 앞으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주장을 추가로 내놓을 때 속뜻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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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불과 수 미터 거리, 악수도 안 나눈 尹-韓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요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10일 포착됐다. 인천의 한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두 사람은 5∼10m 떨어져 앉았지만,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해진 동선에 따라 입장했다가 축사 후 퇴장했고, 바로 옆 원탁에 30분 전부터 착석해 있던 한 대표는 다가가 인사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냉기류가 흘렀다고 주변 참석자들은 전했다. ▷악수 불발은 당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 디올백 사과 문자 등 4월 총선 전부터 쌓인 이른바 윤-한 갈등의 한 단면이다. 여기에 이틀 전인 일요일 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만찬이 가져온 파장도 작용했을 수 있다. ‘번개 만찬’으로 알려진 그 자리에는 인요한 김민전 등 친윤 성향 최고위원, 윤상현 의원 등이 함께했다. 한 대표는 초대받지 못했고, 이튿날 언론 보도까지는 만남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당선되면 혼밥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근혜 문재인 등 전임자들과 달리 다양하게 만나겠다는 뜻으로 한 얘기지만, 밥과 술을 통한 끈끈한 관계 맺기를 중시하는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만찬과 악수를 둘러싼 이런저런 뒷얘기들은 양측의 기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 한 대표는 열세 살 위인 윤 대통령을 사석에선 검찰 직함 대신 형이라고 부르는 걸 봤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과 각별했었다. 둘은 2022년 대선을 전후로 정치적 동지로 발전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둘을 갈라놓고 있다. ▷윤-한 갈등은 의리와 공적 업무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 것이냐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 대표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법무부 장관이 될 때 윤 대통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친윤 일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대표를 정치에 입문시켜 당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긴 것도 윤 대통령이다. 그런 점에서 채 상병 특검법, 김경수 사면, 의대 증원을 놓고 한 대표가 대통령 뜻에 반대하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자 친윤에선 ‘배신’이란 표현까지 쓰고 있다. 한 대표 주변의 설명은 다르다. “대표와 대통령은 사적 의리가 아닌 공적 업무로 관계를 맺어온 사이인 만큼,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대통령 뜻을 따를 수만은 없다”고 한다. ▷한 대표는 7월 전당대회 때 63%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그러나 철저히 현역 의원 중심인 당 구조에서 여전히 소수파다. 국회 또한 여소야대 구도로, 한 대표가 주도할 이슈는 제한적이다. 그 바람에 당 대표가 된 뒤 오히려 지지율은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친한 그룹에선 이를 친윤의 고사 작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여야 간에, 또는 여당 내 힘겨루기 성격이 강하다. 지척에서 악수도 안 나누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바라보는 민심은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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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성 상납’ 사법 족쇄 벗은 이준석… 분열과 상처만 남은 여권

    3년 전만 해도 정치인 이준석은 만 36세 나이에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기대주였다. 그러나 1년 4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고, 쫓겨나듯 탈당한 뒤 4월 총선 때 개혁신당 후보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가 대표 시절 “윤핵관”으로 이름 붙인 친윤 그룹과 불화한 것이 진짜 이유지만, 그는 이른바 성 상납 사건을 이유로 밀려났다. 이 사건에서 그는 2013년 이후 벤처사업가에게서 성 상납을 받았고, 선물 등을 받고 박근혜 대통령 일정에 관여했고, 이런 주장이 공개되자 회유를 통한 증거인멸을 시도했고, 성 상납 주장을 한 쪽을 무고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4개의 혐의 가운데 무고가 5일 무혐의로 종결됐다. 4번째 혐의 무죄로 이준석을 옥죄던 형사 리스크는 사라졌다. 이에 앞서 성 상납은 공소시효 만료로, 알선수재는 증거 부족으로 정리됐다. 한때 위기도 있었다. 측근인 대표 정무실장이 문제의 술자리 술값을 냈다는 A 씨를 만나 “성 상납은 없었다”는 확인서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7억 원을 (A 씨 지인인) 피부과에 투자가 성사되도록 하겠다”는 자필 각서를 써 준 것이 빌미가 됐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왜 그런 각서를 써 주겠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의혹 제기한 쪽이 증거라고 말한 폐쇄회로(CC)TV 동영상은 원래 없었다”면서 “없는 증거를 인멸할 만한 사정이 없다”고 봤다. ▷그는 현직 대표 시절 당 윤리위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는데, 자필 각서가 핵심 사유였다. 그런데 그때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친윤의 힘이 서슬 퍼렇던 국면에서 당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5060세대 친윤이 30대 0선 대표를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줬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대표를 내부총질자로 묘사한 대통령의 문자를 받았다가 촬영된 게 그즈음이다. 대표직 하차는 친윤의 승리였지만, 대통령의 포용력에 대한 의구심도 생겨났다. ▷지금은 당내 평가가 달라졌지만, 3년 전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체제의 등장을 체질 개선의 신호탄으로 보는 해석도 있었다.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하던 국민의힘에 이준석 정치는 ‘2030 남성’이라는 새 지지층을 더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신승하면서 그의 기여도를 놓고 논쟁도 생겼지만 분명한 건 그가 밀려난 때를 기점으로 2030의 당 지지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이준석 배제는 뺄셈의 정치였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는 마음에 차지 않던 이 대표와 포옹도 하고, 당선 직후 결별할지언정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했다. “9가지가 달라도 1가지만 같다는 이유로 손잡는 자가 주도한다”는 게 정치다. 하지만 친윤은 정반대였다. 9가지가 같아도 1가지가 다르면, 그걸 이유로 배제했다. 뺄셈의 종착점은 선거 패배였고, 지지층에게 돌아온 상처였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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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죽사니즘’ 결단이 빛바래 간다

    윤석열 대통령이 꼭 봐야 할 동영상이 있다. 야당 의원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일제강점기 때 당신 아버지의 국적은 조선 일본 대한민국 중 어디더냐’를 질의하는 장면이다. 김 장관은 제대로 답을 못 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의정 단상에서 15분이나 얼굴 붉힐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국정의 낭비는 안보전략과는 별개로 몇몇 무리한 인사를 한 용산 탓이 크다. 대통령은 지난해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한미동맹 말고는 제대로 된 안보협력체가 없던 우리로선 껍질을 깬 중대한 결정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막겠다며 중동에서 발을 뺀 결정(Pivot to Asia)이 나온 게 2010년이다. 그 후 오커스, 쿼드, 칩4 협력이 진행됐지만, 중국의 심기 등을 고려한 한국은 어디에도 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국제 질서가 바뀌고 있다.한미일 협력 강화에서 본 미래와 기회 미중 수교의 주역인 닉슨 대통령은 1990년대에 “우리가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창조자의 도움으로 인간 사회 적응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창조자에게 복수를 시도한 소설 속 괴물 말이다. 중국을 국제무역-금융 시스템 안으로 인도했다가 오히려 당했다고 여긴 미국의 처지를 절묘하게 비유한 것인데, 워싱턴의 반중 정서는 그때보다 나빠졌다. 미국은 겉으로는 뭐라 포장하든 중국과 러시아를 사실상 배제하는 글로벌 질서를 짜고 있다. 그 바람에 ‘안보는 미국과 하고, 돈은 중국과 번다’는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은 기회주의로 여겨지게 됐다. 이런 국면에 한국이 일본과 더 밀착함으로써 3국이 한 몸처럼 경제와 안보이익을 지키자는 게 워싱턴의 생각이다. 윤 대통령은 거기서 한국의 미래와 기회를 봤다. 한미일의 군사협력은 우리 야당과 중-러가 의심하듯 훗날 다자 간 안보협력체인 ‘동아시아의 작은 나토(NATO)’가 될 수도 있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 탓에 가능성은 낮지만, 100% 안 된다고도 말 못 한다. 이재명 대표의 먹사니즘에 빗대자면 윤 대통령은 ‘죽사니즘(죽느냐 사느냐를 건 국가안보)’의 첫발을 뗀 것으로 역사는 평가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그 과정에 일본과 대타협을 시도해도 되겠느냐고 국민에게 묻지 않고 결단했는데, 2018년 남북 군사합의처럼 훗날의 평가를 받는 영역에 해당하겠다. 야당은 “한국은 들러리”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 민주당이었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대안은 안 들린다. 야당 대표의 인식이 “그냥 중국에도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는 정도라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문제는 필요한 결단이었다 하더라도 국내 정치에선 찜찜함이 넘친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이 안보전략과 역사적 아픔을 구분 못 해서 자초한 일이다. 일본과 협력한다고 해서 “역사를 잊지 말라”고 촉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독립기념관장 등에 뉴라이트 인사들을 임명한 대목에서 찜찜함은 더 커진다. 학술의 자유야 당연하지만, 굳이 공직을 맡길 필요가 있을까. 모든 정치를 한일전으로 만들겠다는 야당 생각을 알면서도 대통령은 죽사니즘 3국 협력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불필요한 역사논쟁 자초할 이유가 뭔지 김문수 장관 영상처럼 우리 장관들이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냐 48년이냐, 일제강점기 조상들 국적이 일본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봤다면 민망해야 정상이다. 야당을 탓할 때가 아니다. 상황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면 유연한 후퇴의 수를 찾아야 한다. 내년 3·1절에도 정부와 광복회가 행사를 따로 치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퇴임 후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퇴로 찾기는 못 할 일이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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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트럼프는 좌회전, 해리스는 우회전

    미국 정치에서 “플립-플롭(flip-flop)을 했다”는 평가는 정치적 치명상을 뜻한다. 우리말로 이랬다저랬다 혹은 갈지자 행보에 가까운 표현이다.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반대여론이 높은데도 재선에 성공한 것은 상대를 이 프레임에 가두는 데 성공한 영향이 크다. 상대편 후보가 전쟁을 위한 추경예산 110조 원 편성에 찬성표를 던져 놓고도 반전여론이 생겼다고 1년 만에 돌아선 것이 대통령답지 못하다고 외면받았다. ▷이렇게 치명적인 플립-플롭은 일관성을 중시하는 미국 정치의 전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노선 변경이 잦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기 위한 플로리다주 주민투표에서 반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6주 만의 판단은 너무 일러 산모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이유였다. 여성인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등장 이후 여성표 쏠림을 막으려는 시도다. 트럼프는 애초에 낙태 반대론자였다. 여성의 낙태권을 허용한 1972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50년 만에 뒤엎는 일에 그가 재임 중 임명한 강경보수 연방대법관 3명이 앞장섰다. ▷해리스 후보는 프래킹(fracking)이란 셰일가스 채취 공법에 대한 찬반 견해를 바꿨다. 암석에 고압의 물을 분사해 셰일가스를 채취하는데, 이 방식을 도입한 뒤로는 미국은 중동산 석유 의존증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만, 수질오염 등이 심각해 민주당에선 반대가 강하다. 해리스 자신도 2020년 경선 때는 반대했다. 그러다가 부통령 후보가 된 후로는 돌아섰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올해도 핵심 경합주가 된 펜실베이니아주 때문이다. 셰일가스 산업 관련자 30만 명이 그곳 유권자다. ▷이 밖에도 트럼프는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하기 시작했다. 술 한잔 입에 댄 적 없다는 그는 마약반대론자였다. 요새는 “자기가 피우려고 소량을 지녔다고 일일이 적발한다면 행정력 낭비”라는 논리를 댔다. 젊은층 표를 의식한 결과다. 해리스도 과거엔 불법 이민자 형사 처벌을 두고 “미국답지 못하다”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동의한다. 이처럼 공화당 트럼프의 좌클릭, 민주당 해리스의 우클릭은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이건 어디서건 이랬다저랬다 정치는 힘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시대와 기술이 바뀌고, 안보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오래전 생각을 고집하는 일관성이 좋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왜 갈지자 행보냐”는 비판에는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게 정공법이다. 어쩌면 올 대선은 플립-플롭에 돌아앉던 과거와 달리 유연함에 주목하는 보기 드문 선거가 될 수도 있다. 해리스는 지난주 인터뷰 때 첫 내각에 공화당원을 합류시키겠다고 했다. “다른 경험과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유연함을 강조한 말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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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그런 거 안 한다”고 번번이 약속하지만… 또 낙하산 논란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약속했다가 어긴 게 있다면 공공기관 낙하산 근절 다짐을 꼽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21년 “제가 집권하면… 사장 누구 지명하고 이렇게 안 하고요.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을 시킨다? 저 그런 거 안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에 갓 입문해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앞세우던 시점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초에 “낙하산, 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낙하산 인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란 걸 알았을 걸로 짐작된다. ▷집권 국민의힘에서 4월 총선의 낙천·낙선자가 분명해진 지금, ‘낙하산 부대’는 점프 명령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5∼8월 57개 공공기관에서 기관장 선임 공고를 냈으니, 수십 개의 낙하산이 펼쳐질 수 있다. 하태경 전 의원은 보험연수원장에 일찌감치 내정됐다. 곳곳에서 하마평이 무성하다.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동서발전 사장에 권명호 전 의원, 남동발전 사장에 강기윤 전 의원이 유력하다는 식이다.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도 공기업행에 빠지지 않는다. 차순오 전 정무1비서관은 지난달 한국수출입은행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최근 용산을 떠난 강훈 전 정책홍보비서관은 한국관광공사 사장 공모에 지원한다고 한다. 신문기자 출신인 강 전 비서관은 공식 업무 이외에 김건희 여사 일을 종종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서관 출신으로는 드물게 큰 기관의 사장직에 도전하는 셈이다. 경쟁자가 나오겠지만, 그의 취임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낙하산이란 말이 정착된 수십 년 동안 언론은 비판했지만, ‘여권 핵심부와 관계가 좋다’는 것 말고는 어떤 경영 능력이 검증됐는지 알기 힘든 고위직 인사는 반복됐다. 그 이면에는 ‘권력 재생산’을 위한 인력 충원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정치권 인사의 설명은 이렇다. ‘3년 뒤 대선을 앞두고 잠룡들은 캠프를 차리고 사람을 모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급여가 없다. 내가 미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내게 공천 또는 공직을 줄 것이란 믿음 없이 장기간 무급 자원봉사를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실 참모 경험은 기관 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해당 공기관의 내부 승진자만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전력 자회사 같은 기술기업이나 금융공기업처럼 적잖은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도 비전문가를 내리꽂는 일이 잦다. 그러면 공모 절차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국민들은 ‘내가 안 풀리는 건 힘센 사람에게 부탁할 수 없어서구나’라는 허탈감에 젖게 된다. 공정하게 실력 중심으로 선발한 올림픽 종목의 선수들이 줄줄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보며 환호했던 게 불과 1, 2주 전인데….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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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2024년 수미 테리, 2002년 정태인

    수미 테리(김수미·52)가 체포됐다가 풀려났지만, 간첩죄를 저질렀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을 떠난 뒤 우리 국정원에 협력했다. 간첩행위를 했다고 보기엔 명품백을 선물 받은 뒤 매장의 자기 계정에 등록하는 등 어수룩한 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외국 정부 에이전트로 활동해도 좋지만, 법무부에 등록한 뒤 활동 내용을 신고하라”는 법 조항을 안 지킨 쪽에 가까워 보인다.실체 감추면서 ‘객관적 지위’는 누려 그는 지난해 3월 워싱턴포스트에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일본에 양보의 손을 내밀었는지를 다룬 칼럼을 썼다. 윤-기시다 정상회담 직전 시점으로, 국정원이 준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는 게 공소장에 담겼다. 그가 법을 지켰더라면 법무부에 “어디 어디에 한미일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는 정도를 보고하면 됐을 일이다. 다들 그렇게 한다. 20년 전 특파원 시절 미 법무부의 사무실 한쪽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에이전트 보고자료’라는 걸 뒤져 봤는데, 아주 개략적인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수미 테리가 합법적 에이전트로 등록했다고 가정해 보자. 신문은 그 칼럼을 실어줬을까. 미 의회는 그를 청문회에 초청했을까. 그는 한국에서 돈과 선물을 받은 자기 정체성을 감춤으로써 전직 CIA 북한 분석관이라는 객관적 전문가로 행세했다. 그 덕에 유력 매체에 글을 척척 싣고, 미 의회에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정직의 의무를 저버렸기에 가능했는데, 미 검찰의 기소는 이 점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3년 노무현 인수위 때 정태인 씨(2022년 작고)가 경제1분과 인수위원이라는 핵심 자리에 발탁됐다. 유시민 씨와 대학 동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편하게 놓을 정도로 가까운 참모로 통했던 인물이다. 그때 “정태인은 대선 1년 전부터 캠프에서 노무현 후보의 경제 과외교사로 일했다”는 기사가 여럿 등장했다. 문제는 정태인이 2002년 1년 내내 공영방송 KBS에서 퇴근길 라디오 경제 시사 프로를 진행했다는 데 있다. 경제전문가라면서 발탁된 자리였다. 그는 어길 법 규정이 없었던 탓에 수미 테리처럼 법 위반은 안 했지만, 캠프 참여 사실을 감췄다는 점에서 수미 테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진보적 톤으로 방송했는데, 수백만 KBS 청취자를 상대로 간접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당시 분위기에서 누구도 이해충돌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반칙 사례가 정태인뿐일까. 수많은 대선 때마다 ‘비공개로 뛴 대선 캠프 참여자’가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의 직함을 앞세워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 글을 쓰는 일이 적잖게 있었을 거라고 본다. 이들은 미디어의 신뢰를 훼손시킨 대가로 캠프로부터 ‘열심히 뛴다’는 평가를 챙겼을 것이다.“캠프 참여 중” 밝히는 게 어렵나 미국 매체에선 부조리 차단의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2007년 워싱턴포스트의 한 칼럼엔 이런 글이 붙었다. “이 글을 쓴 (네오콘 이론가) 로버트 케이건은 공화당 대선 후보 매케인을 비공식적으로, 무급 형태로 돕고 있다.” 두 달 뒤 오바마 캠프 인사의 글에도 비슷한 ‘편집자의 메모’가 달려 있었다. 좋은 글은 얼마든지 게재하되, 독자들이 그 글의 필자가 특정 후보의 조력자라는 걸 알고는 읽으시라는 뜻이다. 독자 친화적이고, 언론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조치다. 전문가 그룹의 자존감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종종 실수하지만, 바로잡으려 노력할 때 사회는 단단해진다. 우리 수준으로 볼 때 2007년 미국 신문의 노력을 기본으로 만드는 게 대단한 일 같지 않다. 캠프 참여 인사들이 “나는 캠프에서 활동 중”이라고 밝히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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