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수업 시간에 툭하면 딴짓을 하고, 코로 리코더를 부는 김다빛.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골라 하는 반에서 가장 이상한 아이가 짝꿍이다. 마음에 꼭 드는 짝꿍을 만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건만, 뭐 하나 평범한 게 없다. 주인공은 김다빛을 볼 때마다 속으로 투덜투덜 ‘하여튼 이상해’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체육 시간, 현란하게 피구 공을 피하며 요란법석을 떨던 다빛이가 주인공을 대신해 공을 맞고 쓰러진다. 김다빛은 넘어진 채로 주인공을 올려다보면서 묻는다. “괜찮냐?” ‘피구 공에 맞은 건 본인이면서 왜 나한테 괜찮냐고 묻는 거야?’ 그때부터다. 하여튼 이상한 김다빛…. 이상하긴 여전히 이상한데 자꾸 다른 관점에서 보인다. 김다빛을 볼 때마다 일거수일투족이 이상하게 신경 쓰이고, 얼굴이 붉게 물드는 주인공. 김다빛의 초등 남아다운 유치하고 소란스러운 행동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 심지어 더 잘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이유 없이 콩닥대는 따스한 감정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주인공의 심리가 익살맞은 그림과 유쾌하게 어우러진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소설이 도대체 어떤 마력을 지닌 걸까. 지난해에도 큰 인기를 끌었던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이 새해 들어서도 전년보다 두 배가량 판매량이 늘어나며 출판계의 ‘모순 미스터리’를 이어가고 있다. 27년 전 출간됐다가 5년여 전부터 역주행을 시작한 소설은 최근 몇 년 동안 별다른 마케팅도 없이 불티나게 팔린다. 11일 교보문고와 예스24 종합베스트셀러 종합순위에서 ‘모순’은 5위다. 지난해 말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잠시 순위가 밀렸던 시기를 빼면 줄곧 종합순위 상위권이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1월 ‘모순’의 전년 대비 판매증가율은 97%에 이른다. 2020년 갑자기 전년보다 158% 판매량이 뛰면서 베스트셀러에 재진입한 이 책은 2023년 85%, 2024년 131% 등 해마다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최근 170쇄까지 찍었다. ‘모순’은 ‘원미동 사람들’(1986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년) 등으로 1990년대를 휩쓸었던 베스트셀러 작가인 양귀자가 1998년 살림출판사에서 출간했던 장편소설. 결혼을 앞둔 20대 여성이 눈앞에 놓인 모순적 현실과 씨름하는 줄거리로 외환위기 직후인 그해 40만 부가 팔렸다. 이후로도 30대 여성들이 주로 읽는 스테디셀러이긴 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판매량은 줄어들었다. 2013년경 쓰다출판사로 판권을 옮기기 전 잠시 절판된 적도 있다. 개정판 출간 뒤에도 성적은 엇비슷했다. 판매량이 급증한 건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2020년 무렵부터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독서에 대한 관심이 커진 시기이긴 했지만 ‘특별한 계기’를 찾기 어려웠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파워 유튜버들이 ‘인생 책’으로 꼽으며 회자됐지만, 이는 이미 판매가 급상승한 뒤에 나온 콘텐츠들”이라며 “꾸준히 보태진 독자들의 평과 입소문의 힘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020년경 한국 문단에 불어온 ‘페미니즘 리부트’ 영향이란 진단도 나왔지만, 이 역시 불충분하다. 심은우 쓰다출판사 대표는 “모순은 전통적인 페미니즘 메시지와는 결이 다른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출판계에선 모순이 강렬한 문장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문학을 소비하는 2030 트렌드와 잘 맞는 소설이란 진단도 나온다. ‘모순’엔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등 삶을 꿰뚫는 듯한 아포리즘적 문장이 적지 않다. 최근 출판계에서 또 다른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2023년)이나 정대건 작가의 ‘급류’(2022년)도 이처럼 강렬하고 감각적인 문장들로 관심을 모았다. 모순은 2020년만 해도 20대 구매 비중이 14%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24%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여성 독자 비율은 87%다. 김 담당은 “모순을 신간으로 알고 읽는 20대도 상당수다. 광고 카피 같은 문장도 많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20대의 고민이 잘 담겨 동시대성이 여전히 살아 있는 작품”이라며 “당분간 이런 흐름이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양 작가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000년대 이후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작가는 인터뷰도 일절 고사하고 있다. 쓰다출판사 측은 “특별한 반응은 없으셨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는 게 신기한 일이다’ 정도의 말씀은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고(故) 송대관의 영결식에서 추도사에 나선 가수 태진아가 손을 흔들며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가수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막역한 후배로 알려진 가수 태진아는 “치매를 앓는 제 아내가 대관이 형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 대관이 형이 그만큼 우리와 가깝게 지냈으니 기억해주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설운도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며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동료 가수들이 고인의 대표곡 ‘해뜰날’을 조가로 합창하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태진아, 설운도, 고(故) 현철과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던 고인은 1967년 데뷔한 후 ‘해뜰날’ ‘네박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앞서 7일 향년 79세로 별세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아흔아홉 살의 비둘기 구구.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다주는 저승차사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최고의 저승차사’로 뽑힐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구구.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다. 바로 공감 능력 부족. 이별로 슬픔을 겪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까칠함 때문에 저승에 항의들이 쇄도한다. 그 벌로 이승에 내려가 이별로 슬퍼하는 아이들을 위로하라는 특별한 임무를 받게 된다. 난처해한 것도 잠시. 구구는 ‘구구옥’이란 공간을 만들고 고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얼마 뒤, 어린이 손님들이 구구옥의 문을 두드린다. 동생처럼 여기던 반려묘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아이, 위탁가정에서 함께 지내던 아기가 입양 간 뒤 그리워하는 어린이…. 여전히 공감 능력이 곳곳에서 막히지만, 어린이 손님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구구는 때로는 누군가의 말을 정성껏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옅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 나간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방법을 어린이 눈높이에서 알려주는 이야기. 유머러스한 삽화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파로, MCT오일, 방탄커피, 차지키 소스. 이런 이국적 식재료나 음식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요즘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대세가 된 ‘저속 노화’에 단골로 언급되는 식자재들이기 때문이다. 저속 노화란 건강하게 생활하며 천천히 나이 드는 걸 일컫는다. 근래 책, 영상을 불문하고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소재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생활 속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저속 노화 식단법을 찾는 이가 많아졌다. 지중해식, 디톡스 등의 명칭으로 불렸던 건강식의 또 다른 지류인 셈인데, 노화를 가속시키는 혈당 스파이크를 막기 위한 관리법,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항산화 식품 섭취 등을 강조한다. 서점가에서 저속 노화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건 지난해부터였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의 ‘저속노화 식사법’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로 같은 키워드를 담은 책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야근과 과로, 유행병 같은 다양한 스트레스와 배달·가공식품 노출로 ‘가속 노화’ 페달을 밟고 있는 현대인의 몸을 지키자는 취지다. 채널A도 지난달 28일부터 배우 신애라가 힐링이 필요한 게스트를 초청해 저속 노화 테라피를 제공하는 ‘테라피 하우스 애라원’을 새롭게 선보였다. 저속 노화란 테마가 얼마나 인기 있는 화두가 됐는지를 보여 준다. 노화의 징후에 당면한 장년층뿐 아니라 자기관리에 철저한 2030세대가 이 트렌드를 이끄는 또 다른 주축이란 점도 흥미롭다. 저속 노화는 한때 유행했던 ‘안티에이징(Anti-aging)’과는 차이가 있다. 식품·뷰티 등 산업 전방위에서 이 용어를 마케팅에 활용했지만, 이제는 해외에서도 저속 노화의 개념을 담은 ‘슬로 에이징(Slow Aging)’이 일반화되고 있다. 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안티에이징과 달리 슬로 에이징은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먹고 운동하는 방식뿐 아니라 마음챙김, 명상 등을 통해 나이를 떠나 자기 효능감과 내재 역량을 높인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저속 노화 열풍이 뜨겁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행복하게 나이 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연령으로 능력, 태도를 판단하는 연령주의(ageism)로 인해 고령층은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층이다. 노인 비하나 혐오도 만연하다. ‘2024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60세 이상 노인의 행복도(59위)가 30세 이하 청년 행복도(52위)에 비해 떨어지는 나라다. 일본, 미국의 경우 노인의 순위가 청년보다 훨씬 높았다. 노화를 지혜롭게 수용하자는 측면에서 저속 노화 트렌드는 반갑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저속 노화에 대한 열띤 관심이 보여 주듯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는 세대를 떠나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가 됐다. 하지만 행복한 노년을 뒷받침할 장치가 부실한 사회에서의 저속 노화는 젊음에 대한 집착이나 노화 혐오 수준에 머물던 과거 유행의 되풀이일 뿐임을 유념해야 한다.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시리즈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동일한 등장인물과 배경 혹은 유사한 패턴의 사건? 베스트셀러 작가 정세랑의 정의는 훨씬 명쾌했다. “2권이 있느냐, 없느냐죠. 일단 2권이 나와야 ‘진짜’ 시리즈가 되는 거잖아요.”최근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 하나인 그가 지난달 역사 추리소설 ‘설자은’ 시리즈의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문학동네)를 펴냈다. “10권 이상 가는 시리즈로 만들고 싶다”며 2023년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선보인 지 1년여 만이다.3일 만난 정 작가는 공언대로 시리즈 구색을 갖출 새 책을 내놓은 것에 “큰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책은 속편이지만 작가 말처럼 시리즈의 ‘진짜 시작’이 되는 셈이다. 정 작가는 판타지 소설로 등단한 뒤 드라마 시리즈의 원작인 ‘보건교사 안은영’, 모계적 상상력을 드러낸 ‘시선으로부터’ 등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을 오가며 작품마다 화제를 모았다. 미스터리 도전은 설자은 시리즈가 처음이다. 중세 수도원이 배경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같은 역사 추리물을 좋아해 써보고 싶었단다. 통일신라가 배경이 된 건 역사를 전공한 작가의 이력(고려대 역사교육과)과 연관이 깊다. 그는 “반만년의 역사 중 가장 관심 가는 게 통일신라 시대 20∼30년 정도 시기”라며 “(오늘날처럼) 분열과 화합이 화두였던 시기라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어떤 비극에도 안전한 심리적 거리”가 있는 ‘먼 과거’란 점도 매력을 느꼈다. 신라인들의 삶은 소설에서 호쾌하게 되살아난다. 급환으로 죽은 오빠 신분으로 살게 된 남장 여자 설자은. 당나라 유학을 마친 뒤 신문왕에게 집사부 대사로 발탁돼 나라를 뒤흔든 미스터리를 해결해 나간다. 귀국길에 알게 된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과 콤비를 이룬다. 절제된 문장 속에 캐릭터와 결합된 ‘B급 코드’를 터뜨리는 정세랑표 유머는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하다. 작가는 문헌과 취재 등 다방면의 고증을 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등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말갈인이나 백제 잔민의 서러움, 왕권 강화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반발 등이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된다. 그는 “신문왕은 재위 기간(681∼692년)이 짧지만 국학 설립, 천도 시도 등 합리적인 시도와 성취가 많아 다룰 내용이 풍부하다”며 “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의 소장 자료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설자은 시리즈는 특히 어린 독자가 많다고 한다. 정 작가는 “배송 온 책을 중학생 딸이 낚아채 가버렸단 후기를 읽었는데 작가로서 기쁜 장면이었다”며 “낯설 수도 있는 책을 깊이, 친숙히 읽어줘 감사하다”고 했다. 덕분에 책임감도 커졌다. “어린 독자가 많아지다 보니 폭력적이거나 부적절하진 않나 점검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벌써부터 “3권은 더 잘 쓰고 싶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시류에 떠밀린 설자은의 상황이 다음 권에서 이어질 예정. 계획대로면 내년 이맘때쯤 나온다. 정 작가는 “현대물이 아니라 이야기 윤곽만 있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워 넣는 게 어렵다”면서도 “시리즈물의 매력은 써나갈 때마다 캐릭터와 친해지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리즈의 끝, 등장인물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작가는 연도를 역산해 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자은의 미래는 알아요. 모든 일을 겪고 아주 나이 든 모습을 그리고 싶거든요. 자은이 장수한다는 전제하에, 신문왕과 효소왕을 거쳐 성덕왕까진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네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시리즈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동일한 등장인물과 배경, 혹은 유사한 패턴의 사건? 베스트셀러 작가 정세랑의 정의는 훨씬 명쾌했다. “2권이 있느냐 없느냐죠. 일단 2권이 나와야 ‘진짜’ 시리즈가 되는 거잖아요.”최근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 하나인 그가 지난달 역사 추리소설 ‘설자은’ 시리즈의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문학동네)를 펴냈다. “10권 이상 가는 시리즈로 만들고 싶다”며 2023년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선보인지 1년여 만이다.3일 만난 정 작가는 공언대로 시리즈 구색을 갖출 새 책을 내놓은 것에 “큰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책은 속편이지만 작가 말처럼 시리즈의 ‘진짜 시작’이 되는 셈이다. 정 작가는 판타지 소설로 등단한 뒤 드라마 시리즈의 원작인 ‘보건교사 안은영’, 모계적 상상력을 드러낸 ‘시선으로부터’ 등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을 오가며 작품마다 화제를 모았다. 미스터리 도전은 설자은 시리즈가 처음이다. 중세 수도원 배경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같은 역사 추리물을 좋아해 써보고 싶었단다. 통일 신라가 배경이 된 건 역사를 전공한 작가의 이력(고려대 역사교육학과)과 연관 깊다. 그는 “반만년의 역사 중 가장 관심 가는 게 통일신라 시대 20~30년 정도 시기”라며 “(오늘날처럼) 분열과 화합이 화두였던 시기라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어떤 비극에도 안전한 심리적 거리”가 있는 ‘먼 과거’란 점도 매력을 느꼈다. 신라인들의 삶은 소설에서 호쾌하게 되살아난다. 급환으로 죽은 오빠 신분으로 살게 된 남장여자 설자은. 당나라 유학을 마친 뒤 신문왕에게 집사부 대사로 발탁돼 나라를 뒤흔든 미스터리를 해결해 나간다. 귀국길에 알게 된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과 콤비를 이룬다. 절제된 문장 속에 캐릭터와 결합된 ‘B급 코드’를 터뜨리는 정세랑표 유머는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하다. 작가는 문헌과 취재 등 다방면 고증을 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등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말갈인이나 백제 잔민의 서러움, 왕권 강화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반발 등이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된다. 그는 “신문왕은 재위 기간(681~692년)이 짧지만 국학 설립, 천도 시도 등 합리적인 시도와 성취가 많아 다룰 내용이 풍부하다”며 “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의 소장자료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설자은 시리즈는 특히 어린 독자가 많다고 한다. 정 작가는 “배송 온 책을 중학생 딸이 낚아채 가버렸단 후기를 읽었는데 작가로서 기쁜 장면이었다”며 “낯설 수도 있는 책을 깊이, 친숙히 읽어줘 감사하다”고 했다. 덕분에 책임감도 커졌다. “어린 독자들이 많아지다보니 폭력적이거나 부적절하진 않나 점검하게 된다”고 했다.그는 벌써부터 “3권은 더 잘 쓰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시류에 떠밀린 설자은의 상황이 다음 권에서 이어질 예정. 계획대로면 내년 이맘때쯤 나온다. 정 작가는 “현대물이 아니라 이야기 윤곽만 있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워 넣는 게 어렵다”면서도 “시리즈물의 매력은 써나갈 때마다 캐릭터와 친해지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리즈의 끝, 등장인물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작가는 연도를 역산해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자은의 미래는 알아요. 모든 일을 겪고 아주 나이 든 모습을 그리고 싶거든요. 자은이 장수한다는 전제하에, 신문왕과 효소왕을 거쳐 성덕왕까진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네요!”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한강 작가(사진)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We Do Not Part’) 영문판이 올해 해외 각지에서 잇달아 출간되자 현지 주요 외신들도 관련 리뷰 및 특집 인터뷰 등을 속속 내놓고 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이 책은 2021년 출간됐지만, 영미권에선 지난해 10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뒤 선보이는 최신작이다 보니 더 큰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영국에서는 6일(현지 시간) 해미시 해밀턴 출판사에서 ‘작별하지 않는다’ 영국판을 출간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일 한 작가와 화상 인터뷰를 갖고 신작을 소개했다. 한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라며 “학살과 인간의 굴욕, 잔혹함에 대해 쓰면서도 사랑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국판은 영역본으론 처음으로 데버러 스미스가 아닌 다른 번역가들이 번역을 맡았다. 한강은 인터뷰에서 스미스의 ‘오역 논란’에 대해서는 “실수와 번역의 자유가 혼재돼 있었다”며 변호했다. 미국에선 지난달 중순 호가스 출판사에서 번역판이 출간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맞춰 미 소설가 리디아 밀레의 서평을 게재했다. 밀레는 “가장 인상적인 것은 (4·3사건에 대한) 한강의 역사적 보고(historical reportage)”라며 “공간, 시간 속에서 멀어진 사람과 사건이 얼마나 끔찍하게 가리워질 수 있는지 소름 끼치게 일깨워준다”고 평했다. 다만 밀레는 “이 소설은 시적인 클리셰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글쓰기 워크숍에서 피하라고 조언할 법한 영역으로 들어간다”며 “번역에서도 때로 과장된 표현들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비극적인 현실로 가득 찬 이 작품에서 과도한 수사적 표현에 대해 논란을 제기하는 것은 사소해 보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해당 작품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을 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하려는 시도”라고 소개하며 “소설에서 독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알 수 없으며 한강의 글쓰기는 신체와 영혼, 형식과 스타일을 연결하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평했다. 한편 빠르면 연초에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강의 신작은 아직 집필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작가는 지난해 말 노벨 문학상 수상 직후 “신작이 될 짧은 소설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매우 이상한’ 이야기들”이라고 귀띔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We Do Not Part’) 영문판이 올해 해외 각지에서 잇달아 출간되자 현지 주요 외신들도 관련 리뷰 및 특집 인터뷰 등을 속속 내놓고 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이 책은 2021년 출간됐지만, 영미권에선 지난해 10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뒤 선보이는 최신작이다보니 더 큰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영국에서는 6일(현지 시간) 해미시 해밀턴 출판사에서 ‘작별하지 않는다’ 영국판을 출간한다. 영 일간 가디언은 1일 한 작가와 화상 인터뷰를 갖고 신작을 소개했다. 한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라며 “학살과 인간의 굴욕과 잔혹함에 대해 쓰면서도 사랑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국판은 영역본으론 처음으로 데보라 스미스가 아닌 다른 번역가들이 번역을 맡았다. 한강은 인터뷰에서 스미스의 ‘오역 논란’에 대해서는 “실수와 번역의 자유가 혼재돼 있었다”며 변호했다. 미국에선 지난달 중순 호가스 출판사에서 번역판이 출간됐다. 뉴욕타임즈(NYT)는 이에 맞춰 미 소설가 리디아 밀레의 서평을 게재했다. 밀레는 “가장 인상적인 것은 (4·3사건에 대한) 한강의 역사적 보고(historical reportage)”라며 “공간, 시간 속에서 멀어진 사람과 사건이 얼마나 끔찍하게 가리워질 수 있는지 소름 끼치게 일깨워준다”고 평했다.다만 밀레는 “이 소설은 시적인 클리셰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글쓰기 워크숍에서 피하라고 조언할 법한 영역으로 들어간다”며 “번역에서도 때로 과장된 표현들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비극적인 현실로 가득 찬 이 작품에서 과도한 수사적 표현에 대해 논란을 제기하는 것은 사소해 보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해당 작품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을 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하려는 시도”라고 소개하며 “소설에서 독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알 수 없으며 한강의 글쓰기는 신체와 영혼, 형식과 스타일을 연결하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평했다. 한편 빠르면 연초에 만날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강의 신작은 아직 집필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작가는 지난해 연말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신작이 될 짧은 소설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매우 이상한’ 이야기들”이라고 귀띔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3층 연립주택인 독고빌라에는 건물 주인인 철이네부터 미용실 아줌마, 빼빼 할아버지,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늘 시비가 붙는 담배 아저씨 등이 모여 산다. 툭하면 담배 연기 때문에 이웃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이곳이 철이는 싫다. 심지어 성이 ‘독고’, 이름이 ‘철’인 철이를 볼 때마다 빼빼 마른 이웃 할아버지는 ‘고철아’라고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철이는 빼빼 할아버지가 혼자 사시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철이는 가끔씩 마주친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죄송함과 안타까운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고 보니 독고빌라에 사는 이웃들은 모두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사는 이들은 고독사할 확률이 높다는 뉴스를 보자 철이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철이는 빌라 사람들에게 별일 없는지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매일 관찰하기 시작한다. 모여 있으면서도 고립된 채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아이들의 관점에서 그려낸 장편 동화다. 살기 좋은 동네는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과 호의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따뜻하게 풀어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이웃집에 새로 이사온 윌리. 창밖에서 윌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애비는 새로운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단 기대감에 손을 흔든다. 하지만 윌리는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다음 날 엄마와 함께 윌리가 인사를 오지만, 애비는 그런 상황이 마뜩지 않다. 손을 흔드는 것도 무시한 애하고 친구가 돼서 뭣한담? 하지만 사실 윌리는 조금 특별한 아이였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어 앞을 볼 수가 없다. 오해를 풀게 된 애비는 윌리와 가까워진다. 윌리는 애비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접하고 본다. 매일 오가는 등하굣길이나 무심코 들리는 생활의 이런저런 소음처럼 애비에겐 평범한 것들이 윌리에겐 그렇지 않다. 점자로 된 교과서를 꼼꼼히 만지며 공부하고 잔뜩 집중해 귀를 기울이고 손으로 만지면서 세상을 알아간다. 애비는 그것이 마법 같다고 느낀다. 윌리와 친구가 된 애비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과 타인을 읽어 나가는 것이 때로는 더 정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친구가 된 두 소년의 담담한 일상을 통해 차이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게 해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고, 어느 정도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아무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작가에게는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사진)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의 영문판 ‘We Do Not Part’의 이번 주 미국 출간을 맞아 뉴욕타임스(NYT)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21일(현지 시간) NYT에 따르면 한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뒤로 대부분의 시간을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지내 왔으며, 최근의 사건에 대해 여전히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4·3사건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간 한강의 주요 작품을 영미권에 소개해온 미 랜덤하우스 산하 호가스출판에서 출간됐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개별 인터뷰를 고사하며 잠행하고 있는 한 작가는 NYT 인터뷰에서 “조용한 글쓰기 생활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며, 작은 마당을 내려다보는 햇살이 비치는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며 “흩날리는 눈발이 지난해 심었던 야생화를 덮고 있는 게 보인다”고 근황을 전했다. NYT는 “한 작가의 노벨상은 (한국에서) 올림픽 금메달처럼 축하받았다”며 “20대인 아들은 과도한 관심에 시달린 나머지, 인터뷰에서 자신을 언급하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고 부연했다. 한 작가는 노벨 문학상 시상식 직전에 벌어진 12·3 계엄 사태에 저항했던 시민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1979년과 1980년의 기억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은 한밤중에 거리로 나섰다”며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고 했다. 또 “한국의 아픈 순간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쓰며 세계의 참혹한 피해자들, 그들을 결코 잊지 않는 사람들과 깊은 연대감을 느꼈다”며 “죽은 기억과 살아 있는 현재를 연결하면서 아무것도 죽게 두지 않는 것은 단지 한국 역사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 관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NYT는 시인으로 등단한 한 작가가 소설을 집필할 때 문장과 단어 선택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한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영문명 ‘Human Acts’) 편집 과정에서 음절 하나하나까지 편집자와 치열하게 토론했다고 한다. NYT는 “한 작가는 편집자에게 농담 삼아 ‘내게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논쟁했던 음절은 문법이 약간 틀릴지언정 절대 마음대로 바꾸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고, 어느 정도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아무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작가에게는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의 영문판 ‘We Do Not Part’의 이번주 미국 출간을 맞아 뉴욕타임즈(NYT)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21일(현지 시간) NYT에 따르면 한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뒤로 대부분의 시간을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지내왔으며, 최근의 사건에 대해 여전히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간 한강의 주요 작품을 영미권에 소개해온 미 랜덤하우스 산하 호가스출판에서 출간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개별 인터뷰를 고사하며 잠행하고 있는 한 작가는 NYT 인터뷰에서 “조용한 글쓰기 생활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며, 작은 마당을 내려다보는 햇살이 비치는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며 “흩날리는 눈발이 지난해 심었던 야생화를 덮고 있는 게 보인다”고 근황을 전했다. NYT는 “한 작가의 노벨상은 (한국에서) 올림픽 금메달처럼 축하받았다”며 “20대인 아들은 과도한 관심에 시달린 나머지, 인터뷰에서 자신을 언급하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고 부연했다.한 작가는 노벨문학상 시상식 직전에 벌어진 12·3 계엄 사태에 저항했던 시민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1979년과 1980년의 기억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은 한밤중에 거리로 나섰다”며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고 했다. 또 “한국의 아픈 순간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쓰며 세계의 참혹한 피해자들, 그들을 결코 잊지않는 사람들과 깊은 연대감을 느꼈다”며 “죽은 기억과 살아 있는 현재를 연결하면서 아무것도 죽게 두지 않는 것은 단지 한국 역사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 관한 일”이라고 설명했다.NYT는 시인으로 등단한 한 작가가 소설을 집필할 때 문장과 단어 선택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한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영문명 ‘Human Acts’) 편집 과정에서 음절 하나하나까지 편집자와 치열하게 토론했다고 한다. NYT는 “한 작가는 편집자에게 농담삼아 ‘내게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논쟁했던 음절은 문법이 약간 틀릴지언정 절대 마음대로 바꾸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다람쥐와 단짝 친구 폭에게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티티새의 노래를 듣는 것이 소소한 낙이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쏜살같이 하늘을 나는 새들을 구경하다 지루해지면 들판으로 가서 티티새의 노래를 듣는다. 그런데 오늘은 티티새가 없다. 한참을 찾다 돌아오는 오솔길, 둘은 나무 뿌리 근처에 누워 있는 티티새를 만난다. 티티새는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새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둘은 티티새가 일어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다. 살살 소리를 내보지만 그래도 요동도 없다. 마침내 둘은 티티새에게 힘껏 묻는다. “야, 티티새! 자는 거야?”죽음은 늘 곁에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에겐 더 그렇다. 죽어 있는 것과 산 것을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다람쥐와 폭은 다른 친구들의 지혜를 빌려 티티새의 장례를 치러주고 추모해준다. 다음 날, 티티새가 떠난 들판에 새로운 새가 날아와 노래를 지저귄다. 누군가 떠난 자리엔 또 새로운 생명이 찾아오는 법. 자연의 법칙과 삶의 일부로서의 죽음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담담하게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새해에도 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은 한강의 작품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애란, 정유정, 김금희 같은 중진의 작품들이 뒤를 잇는다. 지난해 모두를 ‘충격적으로 기분 좋게’ 뒤흔든 뉴스였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K문학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한국 작가군의 강세 속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하는 외국 작품들이 더러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최근 출간된 기욤 뮈소(사진)의 데뷔 20주년 신작 ‘미로 속 아이’다.‘기욤 뮈소라니, 왠지 모를 추억이 돋는다’고 생각했다면, 대충 당신의 나이가 짐작된다.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구해줘’(2006년)는 프랑스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20대 여성들이 주요 독자였다. 세월이 20년가량 흐른 지금 ‘영포티’쯤 됐으려나. 당시 30대로 서점가를 풍미했던 1974년생 작가도 이제 50대가 됐다. 물론 다작의 이 작가는 출세작 이후로도 거의 매년 신작 소설을 발표해 베스트셀러에 올려 왔다. 마치 ‘소설 기계’처럼 거의 매년 쉼 없이 신작을 발표하는 근성만큼은, 프랑스 작가들을 따라잡기 힘들다. 뮈소 본인이 ‘절친’이라고 자주 소개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또 다른 인기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도 연례행사처럼 신작을 선보인다.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자랑하는 재기 넘치는 동시대 프랑스 작가들을 한국 독자들은 유난히 사랑해 왔다.이런 작가들의 작품은 특이하고 기발한 설정과 반전으로 오락성과 가독성을 두루 갖췄다. 그중 기욤 뮈소의 ‘구해줘’는 넷플릭스도 없던 20여 년 전 로맨스부터 스릴러, 판타지 등 온갖 장르를 한 책 안에 모두 끌어들이는 장르파괴적(혹은 장르종합적?) 흡인력으로 독자들을 장악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에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겼으니, 넷플릭스 몰아 보기에 익숙해진 요즘 떠올리면 참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나왔다는 그의 신작을 펼친 감회가 남달랐던 이유다.초창기 로맨스와 판타지 중심이던 그의 작품은 점차 서스펜스화됐는데, 이 소설도 스릴러의 외양을 띠고 있다. 이탈리아 저명한 기업 상속녀인 오리아나가 요트 갑판에서 피습당해 사망한 사건으로 포문을 연 후 진범을 추적해 간다. 온갖 반전에 단련된 현대독자들이라면, 어차피 진짜 전모는 대놓고 흩뿌려지는 단서들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밝혀질 것이란 것쯤은 예상한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일지가 관건이다. 여전한 속도감, 귀엽게 느껴지는 통속성과 클리셰, 예상을 살짝씩(많이는 아니다) 비켜가는 가벼운 전개를 거쳐 진실이 드러난다. 책 제목이 왜 ‘미로 속 아이’인지도 종국엔 이해된다. 근데 한 가지는 의문이다. 반전이 있을 거라고 잔뜩 기대한 채 만나는 반전도 반전이 될 수 있나?20년 전 ‘페이지터너’란 별명을 과시하는 듯 했던 그의 파괴적 몰입감을 이 책에서 기대했다면, 좀 심심한 듯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강렬한 전성기를 지나온 다작의 작가가 매번 뒤통수에 가하는 충격지수를 갱신하리라 기대하는 건 너무 가혹한지도. 사실 때로 책을 고르는 기준은 그런 아쉬움을 부러 확인하기 위해서가 되기도 한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나이 들어갈 때 말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나여, 찐빵! 오래전 이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제.” 동글동글하고 하얀 왕찐빵이 구수한 인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때 동네 최고 인기였던 왕찐빵을 먹기 위해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모두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다. 고기만두, 김치만두로 대세가 슬슬 기울더니 이제는 아예 샤오룽바오와 딤섬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찐빵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 때가 올까. 왕찐빵은 그럴 거라 확신한다. 찐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수긍이 간다. 왕찐빵의 여정은 정성스레 가꾼 팥밭에서부터 시작된다. 뜨거운 햇볕과 거센 비바람을 견딘 뒤 뜨거운 물에서 세 시간을 견뎌야 톡톡 터지면서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 팥소가 만들어진다. 반죽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정성껏 굴리고 치대며 반죽해 소를 넣고도 찐빵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공기 방울이 퐁퐁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찐빵이라면, 안 먹고 배길 수 없을 것 같다. 먹을 게 흔해진 시대, ‘그 시절’ 겨울철 간식계를 주름잡던 왕찐빵의 이야기가 추억과 웃음을 같이 불러 일으킨다. 찰진 사투리가 이야기의 맛깔을 더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알람이 울리고 눈을 뜬 적당 씨. 시간을 확인하고 놀란다. 회사는 이미 지각. 하지만 당황한 것도 잠시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뭐 어때!” 늦을 때 늦더라도 아침은 잘 먹고 가야 한다. 적당 씨는 천천히 팬케이크를 즐긴 뒤 버스를 탄다. 하지만 풍경에 심취하느라, 그만 정류장을 놓치고 바닷가에 도착한다. 적당 씨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수영을 하고 가자고 생각한다. 우연히 바닷가까지 오게 되다니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일도 적당 씨를 조급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바닷가에 도착한 후에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수영하느라 벗어 놓은 옷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도 적당 씨는 “뭐 어때!”라고 외친다. 그러고는 속옷바람으로 해가 다 진 이후에야 출근을 하러 회사로 돌아간다. 일상의 소소한 일탈도 좋지만, “뭐 어때!” 정신으로 무장해 지각에도 개의치 않는 동료와 함께 일하는 건 곤혹스럽지 않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들 때쯤, 이 책은 작은 반전을 제공한다. 모두 쫓기듯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요즘, 한 템포 늦춰 가게 돕는 명랑한 통찰이 담겼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이후 문화·방송계 인사들의 기부와 온정 전달이 잇따르고 있다. 31일 연예계 등에 따르면 코미디언 박나래는 지난해 12월 29일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연락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피해 지원을 위해 기부금을 전달했다. 액수는 당사자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박나래는 전남 무안군 출신으로 목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와 흰 국화꽃이 담긴 사진을 올려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그룹 ‘러블리즈’ 멤버 진도 제주항공 참사 피해 지원을 위해 기부했다는 글을 3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개그맨 이승윤도 지난해 12월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00만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조리 명장’으로 잘 알려진 안유성 셰프는 지난해 12월 30일 현장을 찾아 유가족에게 김밥 200인분을 전달했다. 광주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안 셰프는 “희생자 대부분이 지역민이라 한 다리 건너면 다 가까운 지인들”이라며 “마음이 먹먹하고 안타까워 일하다가 뛰쳐나왔다”고 전했다. 1일에는 조리사협회, 광주시와 함께 떡국을 준비해 유가족들에게 전할 계획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이후 문화·방송계 인사들의 기부와 온정 전달이 잇따르고 있다. 31일 연예계 등에 따르면 코미디언 박나래는 29일 관할 지방자치단체체에 직접 연락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피해 지원을 위해 기부금을 전달했다. 액수는 당사자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박나래는 전남 무안군 출신으로 목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와 흰 국화꽃이 담긴 사진을 올려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그룹 ‘러블리즈’ 멤버 진도 제주항공 참사 피해 지원을 위해 기부했다는 글을 3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개그맨 이승윤도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조리 명장’으로 잘 알려진 안유성 셰프는 30일 현장을 찾아 유가족에게 김밥 200인분을 전달했다. 광주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안 셰프는 “희생자 대부분이 지역민이라 한 다리 건너면 다 가까운 지인들”이라며 “마음이 먹먹하고 안타까워 일하다가 뛰쳐나왔다”고 전했다. 1일에는 조리사협회, 광주광역시와 함께 떡국을 준비해 유가족들에게 전할 계획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가수 아이유(사진)가 성탄절을 맞아 소외계층을 위해 총 5억 원을 기부했다. 아이유의 소속사인 EDAM 엔터테인먼트는 25일 “아이유가 자신의 활동명과 팬클럽명 ‘유애나’를 합친 ‘아이유애나’의 이름으로 다양한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총 5억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부는 서울아산병원, 서울아동복지협회, 함께웃는세상, 따뜻한 동행 등 국내외 여러 단체를 통해 이뤄졌다. 기부금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고령환자, 취약계층 주거환경 개선과 노숙인 쉼터 운영 등 폭넓은 분야에 쓰일 예정이다. 아이유는 지난 9월에도 데뷔 16주년을 맞아 ‘아이유애나’의 이름으로 2억 2500만 원을 기부한 바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