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구자룡 기자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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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자룡 기자입니다.

bonhong@donga.com

취재분야

2024-10-23~2024-11-22
남북한 관계14%
국방13%
국제일반7%
대통령3%
정치일반3%
기타60%
  • 북한의 해외유학파[횡설수설/구자룡]

    ‘박 은(Park Un)’ ‘조제프 박(Josef Pwag)’.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세 살 때인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공립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을 다니며 유학할 때 썼던 두 개의 위조여권 이름이다. ‘박 은’은 1991년 제네바 북한 유엔대표부 직원으로 등록된 이름이고, ‘조제프’는 위조 브라질 여권의 포르투갈식 이름이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인 10대 중반 4년간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거주하면서 위조여권과 외교관 신분으로 유럽 각지를 무비자로 다니며 자유로운 체제를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이복형 김정남, 사촌 이한영 등도 러시아와 스위스에서 유학했다. 이한영의 수기에 있는 호화 유학생활을 보면 다른 로열패밀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폐쇄된 북한 ‘김씨 왕조’ 자녀들은 모두 유학파다. 부인 이설주 역시 6개월 단기지만 베이징의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김일성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옛 소련과 동유럽에 많은 유학생을 보냈다. 외무성 부상 최선희가 1974년 열두 살에 ‘소년 유학생’으로 선발된 것처럼 고위층 자녀는 조기 유학도 적지 않았다. 핵개발도 소련 유학파 서상국이 주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300여 명을 소련으로 보내 핵이론과 기술을 습득하게 했다. 김정일 시대에는 유학생들이 사상이 흐려진다는 등의 이유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김정은이 최근 5년 만에 열린 전국교원대회에 참석해 “해외에서 유학한 사람을 충원해 교수 진영을 강화하라”며 유학파를 챙겼다. ‘정권 안보의 보검’으로 여기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유학 인재가 필요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옛 소련 붕괴 이후 형제국이 줄어 유학을 보내지 못한 데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유학생 통제에도 미치고 있다. 스위스가 올해 의학 외의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중단했고 독일도 핵과 미사일 개발 관련 분야에는 북한 유학생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북한이 불량한 목적으로 활용하다 보니 유학도 제재를 당하고 있지만 중국만은 예외다. 핵실험이 이어지던 2009년에서 2015년 사이 중국 내 대학원에 온 북한 유학생이 354명에서 1086명으로 3배가량으로 늘었다. 배워가는 기술도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자기펄스(EMP) 등이라고 하니 심각한 제재의 구멍이다. 유학파 김정은이 청소년기에 체험한 개방된 사회가 아니라 더 닫힌 사회로 북한을 몰기 위해 유학파를 찾는 게 아니어야 할 텐데….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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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펀드[횡설수설/구자룡]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헤지펀드 운영사인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 회장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아시아 각국이 통화 가치 폭락으로 난리가 났는데 환란 와중에 엄청난 차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퀀텀 펀드 같은 헤지펀드는 통상 소수의 투자자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사모펀드다. 한국은 2004년에서야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됐다. 외환위기 당시엔 외국 사모펀드가 헐값에 쏟아진 한국 기업이나 부동산을 헤집고 다니는 걸 눈 뜨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모펀드는 막강한 자본 및 정보력으로 부실한 기업의 지분이나 핵심 자산을 사들여 기업 가치를 높인 뒤 되판다. 해당 기업은 건전한 기업으로 회생해서 좋고,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올려 좋은 경우가 많다. 반면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의 지분을 일부 확보해 경영권을 흔드는 악명 높은 사모펀드 행태도 있다. 공모펀드는 투자절차가 까다롭고 투명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대상에 제약이 많다. 사모펀드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신속 과감하게 투자한다. ‘자본 시장의 꽃’이면서 ‘포식자’라는 두 얼굴을 가졌다. ▷지난해 말 순자산 기준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331조 원으로 공모펀드 214조 원을 넘어설 만큼 급성장했다. 증권투자회사법상 50인 미만이 가입해 운영되는 사모펀드는 유명 펀드매니저를 찾아 돈을 맡기거나 알음알음 소개받아 가입한다. 고위 공직자나 연예인, 재벌가 자제 등이 자산을 묻어두는 경우도 있다. 펀드 투자의 본래 취지와는 다른 용도로 활용되기도 한다. ▷사모펀드는 투자자 사이의 약속이 중요하다. 이를 어기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들로만 구성된 펀드라면 부모가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아 위약금을 내면 자녀들에게 돌아간다. 투자자끼리 주고받은 위약금이니 증여세를 낼 필요가 없다.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절묘한 절세방법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가입한 펀드는 친족으로만 구성돼 있고 그의 자녀 두 명도 포함돼 있다. ▷조 후보자는 ‘블라인드 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은 채 모집)에 가입했다고 하지만 업계에서는 ‘블라인드 투자’라도 ‘쿠킹(cooking)’이라고 부르는 수익을 낼 만한 투자 계획을 마련한 뒤 투자자를 모집한다고 한다. 조 후보자가 2017년 5월 민정수석이 된 뒤 가입한 사모펀드 코링크PE는 주로 관급공사나 국가지원 산업에 투자해 매출을 2배 가까이 늘렸다고 한다. 펀드 운용자의 실력이 출중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요소가 위력을 발휘한 것인지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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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란드 파시오”[횡설수설/구자룡]

    제정러시아는 우랄산맥을 넘어 팽창하다 17세기 중반 청나라 강희제에 막혀 남쪽 진출이 여의치 않자 동진을 계속했다. 사할린섬을 차지하고 덴마크 항해사 베링을 보내 북아메리카에서 알래스카도 발견했다. 러시아는 ‘루스키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50년가량 무주공산 알래스카를 지배하다 1867년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았다. 미국은 쓸모없는 땅을 샀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러시아로서는 역사상 가장 손해 본 거래로 꼽을 만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는 희망을 밝히자 ‘미친 짓’이라는 비판까지 나왔지만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인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알래스카를 사들인 그해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그린란드도 사려다 실패했다.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억 달러라는 구체적인 가격까지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 영토 중 미시시피강 서쪽과 로키산맥 동쪽 사이의 방대한 면적의 루이지애나 지역은 1803년 1500만 달러에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한 뼘의 땅을 놓고도 전쟁을 불사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이다. ▷인구 5만6400여 명이지만 멕시코보다 큰 세계 최대 섬 그린란드는 85% 이상이 얼음으로 덮여 있고 경작지는 2% 미만인, 말 그대로 동토의 땅이다. 녹색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붉은 털 에리크’라는 노르웨이인이라고 한다. 980년경 살인죄로 추방돼 끝없이 얼음이 덮인 그린란드 서쪽 해안에 도착한 그는 온화한 느낌을 주는 이름을 지어 널리 알리면 다른 정착민들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는 지구촌의 재앙이지만 그린란드에는 새로운 기회다. 얼음이 녹으면서 석유와 가스 우라늄 등 지하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지고, 북극 해저 자원과 빙하가 녹아 항로가 활성화되는 ‘북극 경제’ 시대에 북극 연안 지역으로서 지분이 있다. 부동산개발업자 출신 트럼프가 “대규모 부동산 딜”이라며 사려고 하는 것도 치솟은 가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 이어 덴마크가 18세기 초 그린란드를 개척했으나 영유권 다툼이 벌어졌다. 덴마크는 개척 200여 년 만인 1933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을 통해 영토로 인정받았다. 그런 땅을 느닷없이 팔라고 하자 덴마크는 “판매용이 아니다”며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다음 달로 예정된 방문 일정까지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돼서도 부동산업자 근성을 못 버리는 트럼프의 안하무인에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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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輕)항공모함[횡설수설/구자룡]

    미국은 진주만 공습을 당한 지 3개월 후인 1942년 3월 도쿄를 포함한 일본 열도를 대대적으로 폭격했다. 항모 ‘호닛’을 일본 1200km 부근까지 접근시켜 B-25 폭격기를 뜨고 내리게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1년 이라크에 대한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지상군이 사실상 무혈 입성한 것도 걸프만에 정박한 항모전단에서 출격한 전폭기가 맹폭을 가한 덕분이었다. 현대 전쟁에서 항모는 전쟁의 양상을 바꿨다. ▷첫 항공모함 ‘아거스’가 1918년 영국 해군에 의해 건조된 뒤 각국은 다투어 항모를 건조했다. 현재 미국 11척, 중국 러시아 스페인 태국 등이 1척씩 9개국이 20여 척을 운영하고 있다. 항모의 역할과 중요성이 강조되며 니미츠급은 11만4000t(만재 배수량 기준)까지 커지고 핵추진 항모도 등장했으며 ‘헬기 탑재 항모’나 경(輕)항모처럼 중소형으로도 분화됐다. ▷우리 군이 최근 국방중기계획에서 보유 계획을 밝힌 경항모는 3만 t급으로 수직 이착륙 전투기 F-35B를 최대 16대까지 탑재할 수 있는 다목적 수송함이다. 군이 보유한 최대 함정 독도함과 마라도함의 1.5배 크기로 헬기와 전차, 장갑차, 각종 장비 등도 실을 수 있다.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한국이 원양 군사 작전을 목적으로 한 항모를 보유하려는 것은 주변국의 항모 전력 강화에 대응하는 차원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중소형이지만 4척의 항모를 운영한 바 있는 일본은 경항모를 보유해 군사대국화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월 일본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요코스카 기지에 정박한 헬기 탑재 호위함 가가호로 초청해 연설하게 한 것도 4척의 헬기 탑재 호위함을 경항모로 개조하려는 계획을 과시한 것이다. 중국은 첫 항모 랴오닝함을 포함해 2030년까지 6척을 건조하고 동력도 핵추진으로 바꿔 지구 곳곳을 활동 무대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항모 쇠퇴론’도 없지 않다. 건조 비용이 많이 들고,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이 있는데 덩치 큰 항모가 기동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의 둥펑(DF)-21 미사일처럼 항모 킬러 미사일이 속속 개발돼 격침되면 손실이 막대하다. 그럼에도 항모는 19세기 포함(砲艦) 외교 시대의 군함처럼 위용을 과시하면서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첨단 항공기를 전개해 ‘핀셋’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효용성은 여전하다. 한국에 경항공모함이 얼마나 비용 대비 효용을 발휘할지 두고 봐야겠지만 국방력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자부심을 높일 수는 있을 것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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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공항점거 시위[횡설수설/구자룡]

    홍콩은 20세기 중반 이후 자타가 공인하는 국제도시로 성장했지만 공항은 격에 맞지 않았다. 주룽반도에 있는 카이탁 국제공항은 주택가와 인접해 여객기가 아파트 건물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뜨고 내려야 했다. 그러다 반환 이듬해인 1998년 7월 란터우섬에 첵랍콕 신공항이 개항했다. 현대식 시설의 이 공항은 하루 1100여 편의 항공기가 세계 220개 도시와 연결되는 허브 공항으로 자리 잡으며 홍콩 비상(飛上)의 원동력이 됐다. 이 공항이 시위대에 점거돼 10시간가량 ‘셧다운’(일시 운항 중단)되자 홍콩의 운명을 흔드는 서막은 아닌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9일부터 사흘간 공항에서 평화적인 연좌시위를 벌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11일 경찰이 침사추이의 시위 현장에서 발사한 고무탄에 오른쪽 눈을 맞은 여성이 실명 위기에 빠지자 12일 오후 시위대 1만여 명이 공항을 점거했고 13일 오후에도 공항 일부를 점거했다. ▷공항은 쿠데타 같은 국가비상사태, 내란, 전쟁 등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점거되는 국가 기간시설이다. 이번처럼 민간인들이 정치적 시위를 벌이며 공항을 점거한 것은 유례가 드물다. 허브 도시 홍콩의 관문을 점거함으로써 국제사회와 외국인 여행객에게 홍콩 사태를 알리려는 목적일 거다. 주요 20개국(G20) 회의 기간에 중국 외 19개국 주요 언론에 지지 요청 광고를 게재한 데 이어 세계 여론에 직접 호소하려는 몸부림이다. ‘골리앗 중국’에 맞선 홍콩 시위는 국제 여론의 지지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송환법 반대에서 시작된 홍콩 시위는 약 10주째 이어지면서 시위와 대응 양상 모두 바뀌고 있다. 중국 당국은 시위를 ‘색깔 혁명’을 넘어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 의지를 밝혔다. 이달 초 개막한 중국 지도부의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톈안먼 사태 이후 30년 만에 무력진압 결정이 내려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 관영 언론이 잇따라 시위대의 폭력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톈안먼 사태 당시 런민일보의 강경한 사설이 유혈 진압의 신호탄이 된 것 같은 불길한 징조로 읽힌다. 시위대도 촛불·우산 대신 화염병과 벽돌을 던지며 저항이 격렬해지고 있다.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보통선거’나 독립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이 무력 진압에 나서면 홍콩은 아시아 금융 허브,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거점으로서의 위상이 무너지는 비극적 사태가 벌어질 우려가 크다. 무력 진압은 경제대국으로 몸집은 커졌지만 전 근대적 권위주의에 머물러 있는 중국 체제의 속성과 한계를 재확인시켜 주며 세계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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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무는 대형마트[횡설수설/구자룡]

    미국 뉴욕 미들맨해튼에서 1948년 문을 연 37m² 면적의 ‘코벳(Korvette)’이 할인매장의 원조다. 참전용사 유진 퍼코프와 친구들이 소형 대잠(對潛) 군함 이름을 따서 시작했는데 가재도구 등 모든 제품을 연중 정가의 3분의 1에 팔았다. 당시에는 ‘반(反)할인 규정’ 위반으로 당국 감시도 받았다. 1976년 샌디에이고 외곽의 버려진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한 프라이스클럽은 첫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이었다. ▷1993년 서울 도봉구 창동에 이마트 1호점, 이듬해 영등포구 양평동에 프라이스클럽이 개점해 국내에도 대형 할인마트 시대가 열렸다. 이어 까르푸 월마트 등 외국계 할인마트들이 속속 들어왔다. 묶음 판매가 많아 대량 구매가 흠이었지만 깔끔하고 넓은 매장에 평소 보기 어려운 외국 제품도 싸게 구입할 수 있어 매장은 고객들로 미어터졌다. 특히 제품 하자가 없어도 두말없이 환불해주는 제도가 소비자들을 매료시켰다. 국내 유통이 글로벌 유통 공룡에 먹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유통 대전(大戰) 결과는 다소 싱거웠다. 2006년 월마트가 국내 진출 8년, 까르푸는 10년 만에 잇따라 철수를 선언했다. 한국을 세계 1, 2위 세계 유통업체의 무덤으로 만든 선봉장은 토종 브랜드 이마트였다. 한국인 신장을 고려한 매장 높이와 진열, 시기별로 차별화된 제품 구비 등 유통의 신토불이를 외국 업체는 읽기 어려웠다. 역설적으로 이마트 등이 중국 시장에서 밀려난 것도 ‘중국판 신토불이’를 꿰뚫지 못한 것이 한 이유다. ▷이마트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창사 이래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1인 가구의 증가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유통 온라인화’라는 기후 변화가 ‘공룡 오프라인 업체’의 생존을 압박하고 있다.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이커머스 업체가 초저가로 치고 들어오고 품목도 신선식품까지 확장하는 데다 빅데이터를 가진 네이버, 구글 같은 포털업체까지 가세하려는 형국이다. 푸드코트 영화관 등과 붙어 있는 가족 단위 복합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하지만 집객(集客)효과는 한계가 있다. ▷세계 최고 부자 상위 10위에 월마트 집안 인물이 2, 3명씩 포함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밀려난 것처럼 오프라인 유통의 퇴조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대형마트들은 온오프라인 접목은 기본이고, ‘체험형 매장’, 창고형을 결합한 ‘스페셜 매장’ 등 갖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극한 가격’ 같은 가격 파괴에도 나서고 있다. 온라인 쓰나미에 맞선 몸부림이 대형마트의 멸종 대신 제2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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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소미아(GSOMIA)[횡설수설/구자룡]

    2017년 11월 29일 오전 3시 17분. 북한은 미국 전역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미사일(최대 사거리 1만3000km)을 시험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의 위업을 달성했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화성-15형 발사 6분 뒤 한국 육해공군은 동시에 미사일 대응 발사 훈련을 할 수 있었다. 한미일 3국이 이미 이틀 전 미사일 발사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위기 시 긴급한 군사 정보 교류나 보호는 국가의 존망을 좌우한다. ▷화성-15형 발사 전 우리 군이 원점 타격도 가능한 상태로 대비할 수 있었던 데는 앞서 약 1년 전 체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한몫을 했다. 지난달 25일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 발사 때도 그랬다. 국방부는 미사일 사거리가 각각 430km와 690km라고 발표했다가 하루 뒤 600km라고 수정했다. 합참은 미사일이 곡면(曲面)인 지구 표면을 날다가 조기경보레이더의 사각지대에 들어가 일본 측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 등의 정보 분석 막후에도 지소미아가 있었다. 북한이 지금도 연일 ‘매국 협정’이라며 폐기하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주로 북한 미사일 정보 공유에 활용되지만 일반적으로 지소미아는 정보 교류보다 보호가 더 큰 목적이다. 교류도 상호적이고 일방적인 정보 제공 의무는 없어 안보 우호국이 아니어도 필요를 느끼는 사이라면 체결된다. 러시아가 1990년 한국과의 수교 직후 지소미아를 체결한 것은 경제 원조를 받는 대가로 제공한 군사 장비나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이 수년째 중국에 지소미아 체결을 제안하고 있는 것도 북한으로 불필요한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크다. 한일 지소미아 1조에서 양국이 1급 정보가 아닌 군사비밀정보 보호를 목적으로 명시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한국은 일본을 포함한 33개국과 지소미아를 맺고 있다. 미국 등 20개국과는 정부 간 협정, 독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13개 국가·기구와는 부처 차원의 약정을 맺고 있다.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8개국과는 체결을 추진 중이다. 반면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인도 한국 등 7개국과만 협정을 맺고 있다. 한국이 많은 국가와 지소미아를 체결하고 있는 것은 정보 획득은 물론이고 한반도 안보 정보에 대한 보안 조치를 보다 촘촘히 하려는 것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많아야 하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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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색국가’[횡설수설/구자룡]

    일본은 2004년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심사 간소화 대상국인 ‘백색국가’에 포함시켰다. 이는 당시 한국이 대량살상무기(WMD)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엄격한 정부 허가를 받게 하는 ‘캐치올(catch-all)’ 제도를 비롯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최고 수준의 전략물자 통제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어져 온 한일 간 우호 분위기도 작용했다. 그런데 사실상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일본은 한국이 백색국가 대상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2004년 당시와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 체제는 자유무역을 추구하면서도 공산권 국가에 대해서는 핵과 미사일, 생화학 무기, 재래식 무기 등의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1970년대 말부터 핵공급국 그룹(원자력), 호주 그룹(생화학 무기), 미사일 기술통제 체제(미사일), 바세나르 체제(재래식 무기) 등 4대 체제가 만들어졌고 모두 29개국이 가입했다. 이들 국가는 제3국과의 교역에서 관련 물자의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서로 간에는 수출 허가를 간소화해 줬다. 각각 명칭은 다르지만 다들 일본의 백색국가와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서로 믿는 ‘안보 회원국’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도 ‘대외교역법’상 ‘가’ 지역 수출 대상국 제도를 운용하는데 현재 1400여 개 품목에 걸쳐 28개국이 ‘가’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일본은 ‘외국환 및 외국거래법’상 27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분류하고 1120여 개 전략물자에 대해서는 수출 허가를 간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려 하고 있다. 세계 4대 체제에 가입한 29개 국가 가운데 지금까지 백색국가에 포함시킨 나라를 나중에 제외시킨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백색국가 제외는 안보상 서로 불신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2001년 일본을 ‘가’ 지역 수출국에 포함시킨 뒤 역사 및 영토 갈등이 있었지만 제외한다는 말은 나온 적이 없다. ▷한국은 전략물자 수출 통제나 ‘캐치올’ 운영에서 품목을 세분화하고 수출업자가 스스로 인지하거나 의심이 가는 비전략물자 수출도 제한하는 등 일본보다 엄격하다. 남북한 대치 및 북핵 위협 아래에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로 지정할 때에 비해 조금도 보안·관리가 약화된 게 없는데도 백색국가 배제를 강행한다면 역사 갈등을 국제 전략물자 관리 체제 흔들기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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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마트홈 해킹[횡설수설/구자룡]

    2016년 10월 12일 오전 7시. 미국 동부 해안 지역에서 트위터 아마존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음원 서비스) 사이트가 동시에 먹통이 됐다. 미 당국은 적대적 국가의 사이버 공격을 의심했지만 진상은 의외였다. 범인은 전 세계 164개국에 흩어져 있는 폐쇄회로(CC)TV 등 평범한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기기들이 해킹 당해 좀비로 변한 ‘미라이 봇넷(botnet)’ 군단이었다. ▷‘봇넷’은 인터넷으로 연결돼 원격 제어가 가능해 로봇처럼 조종될 수 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미 럿거스 뉴저지주립대의 한 학생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이름 ‘미라이’를 따서 동원한 ‘미라이 봇넷’은 해킹으로 악성 코드가 심어진 전 세계의 IoT 기기들이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은 어느 정도 방화벽이나 보안장치가 있다. 반면 CCTV, 비디오 리코더, 대량 생산되는 디지털 프린터 기기, 심지어 다리미나 주전자 등은 IoT화되면 해킹에 취약해 미라이처럼 ‘봇넷 전사’로 둔갑할 수 있다. 스마트홈 사방에 ‘잠재 봇넷’이 널려있는 셈이다. ▷낮 시간 반려견이 잘 있는지 스마트폰으로 보려고 설치하는 홈 CCTV도 ‘IoT 해커’들에게 위협받고 있다. 러시아 해커가 운영하는 ‘인세캠’은 세계 각국 CCTV를 해킹해 생중계하는 사이트를 운영해 오다 2016년 적발됐다. ‘한국의 유치원’ 등으로 키워드 검색도 가능했다. CCTV 해킹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이트들이 한둘이 아니다. 내 집 안의 CCTV를 지구촌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생체 건강 정보를 의료기관에 보내기 위한 기기를 몸에 부착했다가 해킹당하면 건강 정보가 털릴 수 있다. 스마트 시계를 잘못 차고 있다가는 손가락 움직임이 포착돼 신용카드 비밀번호도 노출될 수 있다. 컴퓨터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해커에게 상시적으로 방 안이 노출될 수도 있다. ▷IoT 해킹은 프라이버시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안전도 위협한다. 미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2015년 GM의 준대형 승용차 ‘쉐보레 임팔라’를 갖고 한 해킹 실험에서 가속, 감속, 방향 전환은 물론이고 연료 등 계기판 정보까지 해커 맘대로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자동차 항공기 등이 불량한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조종되는 영화 속 공포가 현실에서 가능해지고 있다. 당장의 확실한 대책은 기기의 인터넷 연결을 끊는 것뿐이란다. IoT가 ‘초연결 사회’를 가져왔지만 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모를 일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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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사태 새 국면[횡설수설/구자룡]

    중국 베이징에서 6·4 톈안먼 사태가 벌어진 이듬해인 1990년 처음으로 홍콩섬 빅토리아공원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톈안먼 시위 주동자와 희생자 가족이 직접 참석해 분위기를 달궜다. ‘핑판류쓰(平反六四·6·4재평가)’ 현수막을 들고 평화적인 거리 행진을 벌이는 시민들 옆에서 경찰은 교통을 통제하며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홍콩 반환 후 양상은 달라졌고 2014년 경찰이 뿌리는 최루액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쳐 든 시민들에 대한 강제 진압이 전환점이 됐다. 이제 시위 진압에 인민해방군이 투입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로 시위나 대응 방식 모두 달라졌다. ▷식민지 시절 영국군 사령부였던 홍콩섬 옛 ‘프린스 웨일스’ 빌딩에 본부를 둔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은 육해공군 합쳐 6000여 명. 본부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은 시내로 나올 때는 물론 내부에서도 가급적 군복을 입지 않을 정도로 로키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중국 당국이 29일 군 개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홍콩 기본법에 관련 조항이 있다”고 답했다. 요청이 있으면 출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권력 공고화에 매진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강경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주눅 들지 않겠다는 태도다. ▷두 달째 이어지는 시위 현장에 과거 식민지 종주국 영국의 유니언잭이 입법원(의회)에 걸리더니 28일엔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등장했다. 영화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든 시민도 있었다. 중국이라는 골리앗에 맞서는 홍콩에 국제사회가 힘을 보태 달라는 몸짓으로 보인다. ▷반환 당시 홍콩 주민 상당수는 50년간 보장받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기간 동안 ‘홍콩의 중국화’보다는 ‘중국의 홍콩화’ 가능성이 크다는 자신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붉게 물들어 가는 속도가 빨라지자 위축되는 자유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중국 대륙에서 철조망을 넘어 홍콩으로 경제 난민이 탈출했던 광둥성의 접경 도시 선전의 경제 규모가 지난해 홍콩을 추월할 만큼 경제도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외부의 자본과 기술, 선진 경영기법 등의 통로였던 홍콩의 역할과 비중이 떨어지면 홀대도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도 높다. ▷최근 화교권인 싱가포르로의 이민이나 유학 등을 물색하는 홍콩인이 급증했다고 한다. 시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은 송환법이나 폭력배들의 대낮 ‘백색 테러’만이 아닌 것 같다. 흐려져 가는 정체성과 불안한 미래 속에 추락하는 위상에 대한 자괴감이 부글부글 끓는데 경직된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태도가 기름을 부은 것은 아닐까.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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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화교와 조교[횡설수설/구자룡]

    6·25전쟁 당시 화교(華僑) 특수부대 ‘SC(Seoul Chinese) 지대’가 구성됐다. 200명 규모로 육군 4863부대에 배속돼 대만에서 파견된 장교의 훈련을 받았다. 조선말과 중국어를 할 줄 알아 정보 수집과 포로 신문 등 방첩부대에서 활동했다. 북한도 화교를 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에 배속시켰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이 최근 펴낸 ‘한반도 화교사전’에 따르면 북한은 화교들을 수송 업무에 총 4400여 회 동원했고, 하역 및 축조 공사에 5만여 회 투입했다. 통역과 안내 서비스도 맡겼다. 구한말 들어온 청나라 병사와 상인의 후손인 화교들이 한반도가 분단되자 역시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것이다. ▷‘북한 화교’ 4명이 서울에 들어와 최근 난민 신청을 했으나 정부는 난민 인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북한 화교는 중국 여권은 있지만 북한 주민처럼 공민증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중국에 장기 거주하려면 별도의 공민증이 필요한데 3년 이상 거주, 일정한 경제적 능력 등 취득 요건이 까다롭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난민 자격 신청자들처럼 ‘중국 여권을 가진 무국적자’다. 북한 국적도 없어 탈북자 인정도 어렵다. 북한 내 화교는 광복 직후 4만여 명에서 이제는 4000∼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중국에는 북한 화교와 대비되는 조교(朝僑)가 있다. 이들은 북한 국적자이지만 중국 내에서 장기간 때로는 대를 이어 체류해 북한 내에 호적이나 연고가 없다. 동북 3성을 중심으로 수천 명에 이르는데 일정 주기로 주중 북한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북한 국적을 갱신한다. 중국 국적을 받는 건 어렵다. 이들은 광복 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 국적의 소수민족이 된 조선족 동포와는 다르다. 한 60대 조교 여성이 지난달 30일 북한 여권을 갖고 인천공항을 통해 버젓이 입국해 탈북자 인정을 요구하며 체류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여성은 북한 여권은 갖고 있지만 ‘북한이탈주민보호법’상의 북한 주민이 아니어서 탈북자로 인정받진 못한다. 북한 화교처럼 국적이 애매한 ‘경계인(境界人)’이다. ▷북한의 화교나 중국의 조교는 비교적 자유롭게 북-중을 오가며 외화벌이를 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북-중 관문 랴오닝성 단둥에서 무역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아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는 주범이 아니냐는 눈총도 받았다. 북-중 사이에서 ‘특수 신분’을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도 있는 화교와 조교까지 북한을 등지고 넘어오는 것은 북한에서 희망도 기회도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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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가 부러워한 한국 건보… ‘문재인 케어’에 골병드나[논설위원 이슈 칼럼/구자룡]

    ‘건강할 때 이웃을 돕고 병이 났을 때 도움 받자.’ 건강보험 가입이 법적으로 의무화되기 전인 1968년 ‘한국의 슈바이처’로도 불린 장기려 박사(1911∼1995)가 설립한 국내 1호 의료보험 ‘부산청십자 조합’의 모토다. 법적인 의무가 없다가 1977년 500인 사업장부터 시작된 뒤 1989년 7월 전 국민 건강보험으로 확대되기 한 해 전까지도 가입률은 35%에 불과했다. 그후 30년, 한국의 건보는 ‘동남아 국가가 수입해 가고,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보험 적용 분야를 획기적으로 늘려 ‘의학적으로 필요한 모든 치료에 보험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히자 의료계가 반발하면서 홍역을 앓고 있다. 의료계는 진료비나 수술 수가 인상 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9, 10월 13만 의사가 총파업을 벌이겠다며 맞서고 있다. 건보가 어떤 복병을 만난 걸까.○ 병원 문턱 낮아졌지만 종합병원 쏠림 심화 건강보험이 없던 시절 진료 및 검사 가격은 의사와 병원이 임의로 결정했다. 병원 문턱이 높아 아파도 못 가거나 안 가던 환자도 많았다. 의약분업 전이라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 주사도 맞고 심지어 상처를 몇 바늘씩 꿰매는 수술도 받았다. 보험이 귀하던 시절 1980년대 초 동아일보에는 의료보험증에 대한 독자 투고가 종종 등장했다. 분실 신고를 했는데 1개월간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며 개선해 달라거나 기차에서 가방을 분실했는데 의료보험증만은 꼭 돌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의료보험증이 있는 직장을 다니거나 공무원을 부러워하던 시절이다. 도시와 농촌, 직장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 국민 개(皆)보험’이 시행되자 환자들의 의료 수요가 크게 늘었다. 특히 대형 종합병원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몰려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가 불편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근 조사에서도 국민 1인당 1년 외래 진료 횟수가 한국 17회로 일본 12회, 독일 10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9회보다 월등히 많다. 병원 문턱을 낮추고 보다 나은 진료에 대한 갈증을 푸는 데 건보는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종합병원으로 쏠리고 동네 병원 환자가 줄어드는 ‘의료 양극화’는 건보 이후 고질적인 문제가 됐다. ○ 수가조정 필요하지만 의료계의 ‘피해의식’은 문제 전 국민 건보 시행 초기 나온 말 중에 ‘대만의 장제스(蔣介石·1887∼1975)도 못 한 일을 해냈다’는 것이 있었다. 전문 직종인 의료계의 반발을 억제하고 건보가 시행된 것을 강조한 것이다. 1987년까지 계엄령을 유지한 대만도 한국보다 6년 늦은 1995년 전면 건보를 시행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앞으로 남은 임기 3년 동안 보험 적용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히자 의료계는 파업까지 꺼내들었다. 이에 비추어 보면 건보 도입 당시 모든 의료기관을 수가로 통제하는 건보 시행에 큰 혼란이 없었던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전 국민 건보’는 어떻게 이뤄졌나. 건보 첫 시행 이후 12년 만에 전 국민 건보가 정착된 데는 박정희 대통령 때 시작돼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 마무리된 시대적 배경도 영향을 미쳤다. 한 전문가는 “당시는 의료계뿐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통제되던 사회였다. 정부가 의료계를 억누르고 건보를 도입해 국민의 의료보장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보험 수가를 경제기획원 등 재정 당국에서 물가 관리 차원에서 통제한 것도 의료계의 수가 인상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게 했다. 건보 적용이 점진적으로 확대돼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과 저항을 분산시켰다. 그렇다고 의료계는 건보 제도의 피해자이기만 한가.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건보 도입으로 의료 시장도 커졌다”며 “의료계가 일방적인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나아가 “의료계에도 원죄는 있다”는 견해도 많다. 의료계가 수가 통제에서 오는 수입 감소를 줄이기 위해 갖은 ‘우회로’를 찾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비급여 항목의 개발과 도입으로 지금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여기에 과잉 검사와 진료 논란, 장례식장 영리 운영, 의사들의 약값 리베이트 의혹 등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국민건강보험공단 설문조사에서 건보의 문제점 1위로 지적한 것이 ‘부정수급 관리 강화’였다. 중국의 ‘위에 정책에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을 연상시킨다. 전문가들은 의사들의 반대로 의대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큰 문제로 지적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인구 1000명당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한국이 2.2명, 선진국 3.4명, 간호사는 한국 5.6명으로 선진국의 9.0명에 비해 적다”며 대표적인 의료계 이기주의로 지목했다. 이에 대해 박종혁 의협 홍보이사는 “인구가 줄어들어 지금 의대 정원을 늘리면 10여 년 후에는 공급 과잉 상태가 될 것”이라며 “수술 수가가 적어 외과 지원자가 없는 등 불합리한 수가 조정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노동집약적인 노동을 하는’ 의사들의 진찰료나 일부 외과 수술 수가가 지나치게 낮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한다. 의사들이 외과를 기피해 ‘수술 절벽’이 올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다만 이때도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 검사료도 함께 조정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불합리한 수가에 의한 ‘피해 의식’에 거품이 없는지 세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의료 포퓰리즘’ 지적 이유 있는 ‘문재인 케어’ 문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선택 진료비 폐지, 2·3인실 상급병원 건보 적용, 뇌 및 뇌혈관 MRI 검사 보험 적용에 이어 앞으로 척추와 관절, 안과 질환 등으로 확대해 ‘비급여 항목 전면 급여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62.7%(종합병원 기준)인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상당수 보건 전문가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져 의료비가 급증하는데 보장성 강화가 과속하면 건보 재정을 거덜 내고 보험료 인상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를 보냈다. 당장 7년간 흑자 행진을 하던 건보가 지난해 8년 만에 적자(적자액 3조8954억 원)가 났고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추세라면 현재 20조 원가량인 건보적립금(누적 흑자)도 크게 줄어 문 정부가 끝나기 전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 건보 재정 악화 폭탄을 뒤로 돌려 생색만 내는 ‘의료 포퓰리즘’이라는 의료계 비판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가 2% 아래였던 보험료 인상률을 3.49%로 대폭 올리겠다고 한 것도 의료 재정 악화를 예견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부나 건보 혜택 확대로 환심을 사는 정책을 폈다. 다만 건보 재정은 세금(법정 한도 건보 수입의 20%) 지원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무턱대고 보험 혜택을 늘릴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합리적인 대책 없이 적립금을 털고 건보료를 올려 보험 혜택을 늘리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고령화와 소득 증가 등으로 국내 의료비는 매년 9% 증가하고 있다. 환자들은 보험 적용 대상이 늘어나 병원 창구에서 내는 진료비가 줄어들면 당장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이나 재정 지원 증가로 메워지면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의료서비스는 ‘사치재’가 아닌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필수재다. 의료서비스를 운영하는 건보는 보험이면서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재이기도 하다. 정부와 의료계, 이용자가 제 이익 찾기에만 골몰하면 유지될 수 없는 사회보장 장치다. ‘보장 확대 과속’ ‘지나친 피해 의식’ ‘대형병원 쏠림으로 인한 의료 양극화’가 30돌을 맞은 건보의 3대 건강 적신호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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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원 20돌[횡설수설/구자룡]

    1996년 12월 북한 회령군의 공장 노동자 김경호 씨 등 일가족 17명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직후 기자회견이 열렸고 각계 성금이 밀려들었다. 이듬해에는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에도 나왔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29일간 중국 대륙을 종단해 홍콩으로 잠입한 탈북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는 남북이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북한을 의식해 탈북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도 줄고 있다는 요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탈북민 수가 늘면서 적응과 정착 교육을 위해 설립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 즉 하나원이 20년을 맞았다. 순서대로 기수가 부여돼 지난달 256기까지 배출됐다. 그런데 12주간 실내 교육, 현장 체험 등으로 구성되는 하나원 운영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최근 동아일보가 하나원을 나온 탈북민들에게 물은 결과 ‘교육 내용과 수준이 맞지 않아 지루했다’ ‘탈북민 대다수가 도시 출신인데 산골에 가둬 놓고 비현실적 교육을 한다’는 부정적 답변도 적지 않았다. 초기에는 모든 수료생의 주민등록번호가 하나원 주소지를 기준으로 부여돼 인근 주민까지 탈북민으로 오인 받아 중국 비자를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정착지 기준으로 주소를 다양화했다. ▷탈북민은 이제 3만3000명을 헤아린다. 여전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경제난민’이 많지만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온 ‘맹모(孟母)형 탈북’도 많아졌다. 2016년 7월 홍콩에서 열린 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다가 탈북한 이정열 군은 수학 교사인 부친이 “한국으로 가라”고 권유해 넘어왔다. 이듬해 1월 탈북한 태영호 주영 북한공사도 아들 교육이 큰 이유였다. 최근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20대 여성 탈북자는 “북한에선 대학생에게도 1년에 몇 개월씩 노동을 시킨다”며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탈북 이유로 들었다. ▷하나원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넘어온 탈북민을 한국 사회가 처음 맞이하는 곳이다. 올해 20주년 기념식은 통일부 장차관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도 참가하지 않은 채 쓸쓸하게 열렸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어딘가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탈북민들이 “우리를 받아주겠나”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따뜻하게 껴안아주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하나원은 탈북민들이 불안을 달래고 진정 ‘하나’됨을 준비하는 안식처가 돼야 한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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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치올 규제[횡설수설/구자룡]

    국제사법재판소(ICJ)로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 헤이그 외곽의 바세나르는 인구 2만여 명의 소도시지만 국제평화 유지에 한몫을 한다. 냉전이 끝나 서방의 공산권 전략물자 수출 통제기구인 코콤(COCOM)이 해체되자 1996년 7월 이곳에 본부를 둔 ‘바세나르체제’가 출범했다. ‘국제 평화와 지역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모든 국가’에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여기에 가입한 한국, 일본 등 42개 국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뜻과 행동을 같이하는 상호 우호국이다. ▷바세나르체제에 근거를 둔 조치 중 대표적인 게 ‘캐치올(catch all) 규제’다. 수출 금지 품목이 아니더라도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출 전체를 전면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다. 지금까지 북한,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등이 유엔이나 서방 국가들의 캐치올 규제 대상국이었다. 일본은 2017년 6월 자국을 경유해 북한에 드나드는 제3국 화물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되면 압수 조사하는 캐치올 규제를 도입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제재 결의안 2270호에서 북한에 캐치올 규제 적용을 요청한 것에 호응한 것이다. ▷일본이 빠르면 다음 달부터 한국에 대해 캐치올 규제를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발동해온 캐치올 규제를 무역 보복에 사용하려는 것이다. 깡패 막자고 같이 밤거리 순찰에 나섰던 동료에게 야경봉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본이 캐치올 규제를 시행하면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규제 대상이 된다. 원자력, 화학무기, 미사일 부품 등 무기 관련은 물론이고 티타늄합금 같은 특수강, 주파수 변환기, 대형 발전기, 방사선 측정기 등 무수히 많다. 규제 대상이 되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이 될 것이다. ▷바세나르체제는 “특정 국가나 특정 국가군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선량한 의도의 민간 거래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용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적용에 최대한 신중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처럼 한국을 콕 집어 휘두르거나 무역전쟁에 써서는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이 캐치올 규제에 손을 대면 바세나르체제 가입국으로서 규정 위반이다. 더욱이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중국이 희토류 수출 금지에 나서자 맹렬히 비난했던 일본이 캐치올 규제를 들먹이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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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역풍 맞은 시진핑 리더십… 덩샤오핑 같은 지혜 아쉽다 [논설위원 이슈 칼럼]

    최근 홍콩 시위에는 홍콩 전체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참가했다. 민주주의가 행해지는 특정 국가와 지역의 인구 기준으로 시위 참가자 비율로만 보면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16일 벌어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에는 200만 명 이상이 참가했는데 이는 전체 인구(745만 명·2018년)의 26.8%에 이른다. 반환 22주년을 맞는 7월 1일에는 300만 명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송환법에 대한 강한 저항은 반체제 인사나 민주활동가뿐 아니라 중국의 눈에 벗어나는 누구라도 정당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중국으로 보내져 조사받거나 재판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가장 크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가 노도(怒濤)처럼 분출되는 이 광경을 이런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송환법 파동은 무엇보다 법안이 가진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 침해 가능성이 가장 큰 요인이다. 홍콩에 일국양제를 구상한 것은 덩샤오핑으로 알려졌지만 그 전에 저우언라이의 ‘홍콩 보석론’도 있다. 국민당의 장제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면 홍콩을 무력으로라도 되찾겠다고 했지만 공산당의 저우언라이는 ‘보석은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영국이 홍콩을 돌려주기 전에 홍콩에 몇 가지 ‘독약’을 남겨둘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인들이 이권을 차지하는 대규모 사업을 벌여 반환 후 홍콩 정부의 재정을 거덜 내는 것도 한 종류로 봤다. 이와 관련해 미국 하버드대 에즈라 보걸 명예교수는 덩샤오핑도 전혀 예견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바로 ‘민주개혁’으로 반환 후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장악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덩샤오핑 평전’) 홍콩에서 민의 대변 기관인 입법국(반환 후 입법회) 의원 중 일부가 시민에 의해 처음 선출된 것은 반환 6년 전인 1991년이었다.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1992년 4월∼1997년 6월 재임)은 투표권 및 민선 의원 확대 등 정치개혁을 추진했다. 보걸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이번 홍콩 피플파워는 영국이 남긴 ‘독약’이 시진핑 주석의 강권과 만나면서 제대로 약발을 발휘하고 있는 형국이다.○ ‘홍콩인에 의한 홍콩통치’ 무력화 가능성 제기 홍콩 당국은 미국 영국 등 20여 개 국가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다. 인도 대상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37건의 심각한 형사범죄 용의자다. 하지만 송환 대상 국가에 중국이 포함되고 입법원의 동의 없이 줄곧 친중파인 행정장관의 결정만으로 범죄인 인도가 가능하게 되면 홍콩 사법 체제의 독립성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시민들의 우려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된 뒤 헌법 격인 ‘홍콩 기본법’은 반환 후 50년 동안 국방과 외교 외에는 ‘고도의 자치’, 즉 항인항치(港人港治·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2015년 중국 지도부에 비판적인 책을 팔아온 홍콩섬의 ‘퉁뤄완(銅(나,라)灣)’ 서점 관계자 5명이 선전과 태국 파타야 등에서 중국으로 납치 및 연행됐다. 이들은 소식도 끊긴 채 최소 6개월 이상 조사를 받았고 한 명은 아직도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홍콩 정부가 송환법을 추진한 경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2월 대만에서 20세 홍콩 남성이 밸런타인데이 여행을 함께 떠났던 동갑 여성을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하자 이 남성을 대만으로 보내 처벌하자는 것이 송환법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론 중국이 오래전부터 홍콩에서 중국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거나 대륙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한 인물을 합법적으로 연행해 조사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다 대만 살해 사건을 좋은 명분으로 삼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 “홍콩 독립” 등 레드라인 넘는 구호 등장 송환법이 뇌관이 되어 폭발한 홍콩 시민들의 불만은 시진핑 정부 들어 통제가 강화되고, 홍콩 정부도 민심에 귀를 닫는 일이 잦아진 결과물이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인 2003년과 2012년 국가안전법과 중국 본토식 국민교육 과목 도입 추진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모두 유보 혹은 보류됐지만 시 주석 집권 이후는 달랐다. 2014년 홍콩 행정수반 완전직선제를 요구한 ‘우산혁명’ 시위는 79일 만에 강경 진압됐다. 이어 반체제 서점 관계자 납치 연행 사건, 중국 국가 모욕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국가법(國歌法) 시행, 독립 성향 야당 후보의 입법원 피선거권 박탈 등도 이뤄졌다. 2016년 2월 중화권 최대 명절인 춘제(설날)에 경찰이 어묵 등을 파는 전통 노점상을 단속하면서 촉발된 시위에서는 ‘홍콩의 독립’ ‘반공(反共)’ 같은 ‘레드라인(허용 한계)’을 넘는 구호까지 등장했고 시위도 과격해졌다. 홍콩의 미래가 흐려질 경우 등장하는 화두가 ‘홍콩 엑소더스’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이민을 떠난 홍콩인은 2만4300명으로 2012년 이후 가장 많았으며 2016년 6100명에 비해 4배나 늘었다고 보도했다. ‘홍콩 엑소더스’는 반환 전 이미 두 차례 나타났다. 중국과 영국의 반환 협상이 난항을 겪던 1983년과 1989년 6·4톈안먼 사태 직후였다. 이어 반환 직후 캐나다 밴쿠버로의 이주 등 ‘미니 엑소더스’가 나타난 데 이어 송환법 파동으로 다시 한 번 엑소더스 우려를 던지고 있다. 홍콩 시민이 차라리 홍콩을 떠나자고 하는 데는 반환 이후 가속화하는 중국화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하고 있다. 이미 홍콩에는 반환 이후 본토에서 넘어온 주민이 100만 명이 넘어 비중이 13%를 웃돈다. 과거에는 저임금 근로자들이 목숨을 걸고 일자리를 찾아왔지만 반환 후 건너온 대륙 사람들은 보다 나은 교육 의료 등을 찾아온 부유층으로 집값을 앙등시키고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게 한다. ○ 시진핑, G20회의서 궁지에 몰릴지 관심 시 주석은 집권 2기를 맞아 국가주석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하는 등 국내적으로는 ‘시황제’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홍콩이라는 큰 돌부리를 만났다. 한 전문가는 “시위 파고가 높아져 시 주석의 지도력이 크게 손상을 입었지만 6·4톈안먼 사태 같은 유혈 진압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 딜레마”라고 말했다. 당장 일본 오사카에서 28, 29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홍콩 시위로 어떤 견제구를 당할지 관심이다. 홍콩 송환법 시위가 반환 이후 최대 규모로 커진 데는 미중이 패권 전쟁기에 들어가고 있다는 시대적 상황을 떼어 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입법회에서 송환법 제정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2월부터다. 그런데 6월 들어 시위가 본격화한 것은 미중 갈등이 무역, 기술, 남중국해 등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는 기류를 타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대만과 함께 시위 지지 등을 명분으로 홍콩 카드도 사용할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홍콩 시위는 단일 지도부가 있어 의도적으로 시위를 주도하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중국화가 가속화하는 홍콩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미중 패권 전쟁 시기를 타 중국에 대한 저항을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섣부르게 송환법을 통해 홍콩을 장악하려 한 시진핑의 선택은 홍콩 시민의 저항이 미중 갈등 구도 속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더욱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반환 후 일국양제하 50년 고도의 자치’를 보장한 홍콩기본법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홍색으로 물들이려는 것에 대한 홍콩인들의 저항이 송환법 반대로 표출됐다. 시 주석이 대륙에서 권력을 강화한 자신감으로 홍콩을 제압하려다 ‘악수(惡手)’를 두었으며 그 역풍을 세게 맞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답지 못한 조급함은 시 주석의 리더십이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의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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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철 박사 “물고문으로 실신한 웜비어 목격… 삭간몰서 생화학무기도 개발”[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2015년 10월 나선특구에서 체포돼 11월 평양으로 압송된 뒤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였습니다. 2016년 초에 건장한 미국인 청년이 조사받는 것을 목격했어요. 내가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올 때 다른 취조실에서 영어로 소리를 지르고 어떨 때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나기도 했지요.”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석방한 한국 출신 미국 시민권자 김동철 박사를 지난주 인터뷰했다. 김 박사는 북한에 억류돼 있을 때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물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김 박사는 북한 경험담을 담은 책 ‘경계인(Border Rider)’을 6일 출간한다.》  “어느 날 복도에서 그 미국인 청년이 머리와 얼굴에 물이 흠뻑 젖어서 수사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취조실에서 질질 끌려가는데 거의 실신 상태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어요. 나도 물고문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청년도 어떤 조사를 받았는지 뻔히 알 수가 있었지요.” 김 박사는 “평양 조사에서 받은 고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물고문이었다. 취조실내 물이 가득 채워진 욕조 앞에 손을 뒤로 묶은 채 무릎을 꿇게 하고 머리를 욕조 안에 밀어 넣으면 1분도 견디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물고문으로 기진맥진해 복도를 걷다가 2차례나 실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웜비어가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선전 구호가 적힌 포스터 한 장을 떼 온 죄(국가재산 절취죄)와 김정일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를 돌돌 말아 권위훼손죄가 추가돼 강제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받은 것을 석방된 뒤에야 알게 됐다. 미국의 명문 주립대인 버지니아대 학생이던 웜비어는 북한 여행 중 억류돼 15년형을 선고받은 뒤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왔으나 6일 만에 사망했다. 北, 치료비 명목 1억여원 뜯어가 김 박사는 웜비어를 석방할 때 북한이 치료비 명목으로 20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말을 듣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북한 당국은 병원비와 치료비 명목으로 내 아내에게서 인민폐 70만 위안(약 1억2000만 원)을 뜯어갔다”고 했다. 김 박사는 나선특구에 두만강 호텔을 지어 운영하는 등 17년가량 대북 사업을 하다 북한 당국에 체포돼 국가전복죄 등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 지난해 5월 9일 풀려났다. 김 박사는 전현직 군인이나 전문가들을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하면서까지 핵과 미사일 관련 민감한 정보를 수집한 동기에 대해 저서 ‘경계인’에서 “인권 사각지대에서 폐쇄된 북한 주민들의 노예에 가까운 비참한 생활의 해방에 일조하기 위해 외부 세계에 진실된 실상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0년가량 되었을 때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협조를 요청했다. ‘비밀 첩보원’이 되는 위험 부담도 있지만 거절하지 않은 것은 그런 소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北실상 알리려 정보기관에 협조 ▽“북한 삭간몰에서 생화학무기 개발”=김 박사는 북한이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한 평안남도 평성 인근에는 핵 개발 관련 지하 연구소가 있으며 미사일 기지로 알려진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에서는 생화학무기 등 비대칭 무기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만난 김책공대 핵물리학 교수직을 퇴직한 한 핵 과학자가 자신이 평성 근처 지하 연구소에서 핵 물질 제조 과정을 기하학적으로 연구하는 일을 10여 년 해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과학자는 핵 제조와 미사일 개발에 필수 물질이라며 옛소련을 지칭하는 ‘CCCP’가 선명히 새겨진 순도 99.999%의 네모난 농축 아연 덩어리도 가지고 나왔는데, 이 아연괴는 김 박사가 구입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평양서 ‘CCCP’ 새긴 아연괴 구입 삭간몰은 2016년 3월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곳이다. 김 박사가 평양에서 만난 삭간몰 소재 한 연구소의 경비부대 군인은 “삭간몰에서 비대칭 무기들이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김 박사는 주장했다. 김 박사는 삭간몰이 미사일 발사 기지에 그치지 않고 비대칭무기들이 준비되고 있으며 북한 전역에 있는 방공호 중에는 비대칭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시설과 설비가 있는 곳도 있다고 주장했다. 평성 부근에도 명칭은 화학공장, 비료공장이지만 VX와 사린가스 같은 맹독성 생화학무기와 탄저균 같은 생물무기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는 것. ▽강제노동교화소 생활=김 박사는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평양 외곽의 산악지대 강제노동교화소에서 복역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땅파기 등 각종 노동을 했으며 하루 세끼 식사는 시큼시큼한 냄새가 나는 갈색의 쌀밥과 짠 된장국, 소금에 절인 무, 말린 짠지 3조각이 전부인 생활이 수용기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고 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야외작업을 할 때 산열매는 물론 생감자도 몰래 씹어 먹다 몇 차례 설사를 했고, 굼벵이도 산 채로 잡아서 먹었다고 했다. 산비탈에서 작업하다 엄지손가락이 부러져 자유롭게 펴지지 않는다며 인터뷰 도중 굽어 있는 부분을 보여줬다. 그는 지옥 같은 삶에서 죽고 싶을 때마다 들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는 “벌레야, 벌레야”였다고 했다. 벌레처럼이라도 살아서 생명을 지탱하라는 말로 들렸다며 비가 많이 오는 날 저녁에 감시원이 듣지 못할 때 목 놓아 울기도 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2017년 여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난 것이 수감 중 처음이자 마지막 면회였다고 말했다. 조셉 윤 대표는 사회보장카드 번호 등을 통해 김 박사가 미국 시민권자임을 확인하고 무슨 범죄로 체포돼 재판을 받았는지, 형량, 어디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 등을 물었다. 석방 당일 김 박사는 갑자기 옷을 챙겨 나온 뒤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반성문 한 장을 쓰고 최고재판소 판사로부터 석방 명령을 받은 뒤에야 풀려나는 것을 알았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탑승한 미국 국무장관 전용기에서 만난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 앤드루 김 센터장은 그동안 미 당국이 얼마나 많은 물밑 접촉을 해왔는지 알려줬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김 박사가 북한 권력의 치부와 각종 군사 정보를 너무 많이 알아 북 당국이 석방을 강경하게 거부했다고 전해주었다. 워싱턴 앤드루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기내에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들어온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미국의 영웅”이라며 “해외에 있는 국민 보호보다 더 우선순위로 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고 한다.트럼프, 기내로 들어와 “당신은 영웅” 김 박사는 당초 예심에서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최고재판소에서 10년으로 감형된 것은 기적과 같았다며 체포되기 전 10여 년간 북한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했고, 특히 나선시 외자투자유치위원장으로 중국 자본 유치 실적이 있었던 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받은 3번의 표창, 그리고 미국 국적자라는 특수 상황 등이 고려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자신이 남북한과 미국 중국을 오가며 살았던 것을 염두에 두고 책 제목을 ‘경계인’으로 했다면서 “어느 쪽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계인은 늘 외롭다. 단발성과 일회용 인생으로 소모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쓸쓸하다”고 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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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흔한’ 희토류

    희토류(稀土類·Rare Earth Elements)는 이름과 달리 전혀 희귀한 자원이 아니다. 어떤 특정 광물이 아니라 원소주기율표의 원소 중 17개를 통칭하는 것으로 200여 가지 광물에 들어 있다. 18세기 중반 세륨을 시작으로 차례로 발견됐는데 당시 기술로 추출이 쉽지 않아 ‘희귀한 불용성 금속 산화물’로 불렸다. 후에 매장량이 매우 많은 것이 확인되고 추출 및 정련 기술도 발전했으나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잘못 알아 원주민을 ‘인디언’으로 부른 뒤 그대로 부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가장 매장량이 적다는 툴륨 루테튬도 인류가 수천 년간 사용해 온 금보다 많다.(‘희토류 자원 전쟁’·김동환) ▷희토류 중 에르븀은 광섬유에 미량만 첨가해도 빛 손실이 1%로 줄어든다. 스마트폰과 광섬유, 전기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 풍력발전, 태양열발전 등 첨단 전자제품과 설비에 희토류는 꼭 필요하다. 이런 ‘첨단산업의 비타민’을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하는 것은 기술력보다 추출 분리 제련 과정에서 방사성물질이 나오는 등 환경 문제가 심각하고 비용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생산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라고 호언한 것이 빈말은 아니다. 지난해 전 세계 희토류 생산 중 중국(12만 t)이 72%를 차지했다. 호주(12%) 미국(9%) 미얀마(3%) 인도(1.1%) 등이 뒤를 잇는다. 2010년 9월 일본과 센카쿠 열도 영유권 갈등을 빚을 때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일본을 압박해 재미를 봤던 중국은 이번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희토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구글 인텔 퀄컴 등이 화웨이에 소프트웨어 공급을 중단키로 하자 시진핑 주석은 20일 오전 장시성의 희토류 생산 공장을 시찰하고 오후에는 대장정 출발 기념비에 헌화했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노르웨이의 류샤오보 노벨 평화상 수여에 대한 연어 수입 금지, 영토 갈등을 빚은 필리핀으로부터 바나나 수입 제한 등 거리낌 없이 보복을 해왔다. 하지만 희토류 카드가 미국에도 먹혀들지 미지수다. 희토류 매장량은 중국이 37.9%로 가장 많지만 미국(15%) 독립국가연합(21%) 등도 상당량을 갖고 있다. 미국 화학기업 블루라인은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와 합작으로 텍사스주에 희토류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희토류가 ‘무역전쟁 보검’이 아니라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의 신뢰를 더 추락시키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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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 현장칼럼/구자룡]45년만에 다시 켜졌지만… ‘눈물의 연평도’ 반쪽짜리 불빛만 깜박

    ‘무슨 잘못을 해 얼굴을 가리려고 고깔을 씌웠나.’ 17일 오후 7시 20분 대연평도 등대공원에서 45년 만에 다시 불을 밝힌 ‘연평도 등대’를 본 첫 느낌은 이랬다. 360도 회전해 칠흑 같은 바다를 비추며 귀항(歸港)하는 선원의 길잡이가 되는, 도도하고 위용을 자랑하는 일반 등대와는 달랐다. 해발 105m 높이에 세워져 37km 먼바다까지 비춘다지만 등대 전등 주위가 반 이상 가림막으로 가려져 남쪽 방향으로만 비추게 되어 있다. 반쪽 ‘연평도 등대’는 가다 멈춘 남북 화해와 접경 서해 5도의 긴장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가다 멈춘 남북화해 상징 ‘반쪽 등대’ 백령도와 대연평도 등 서해 5도는 북위 38도선 이북이지만 6·25전쟁 후 정전협정에서 북방한계선(NLL) 남쪽 경기 옹진군에 편입됐다. 대연평도 북단과 맞은편 북한 옹진군 부포리는 약 10km에 불과하다. 섬 주민 2300여 명 중 태어난 곳이 북한 땅인 주민도 여럿 있다. 45년 만에 연평도 등대가 다시 켜진 것은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 등 화해 분위기에 따른 것이다. 점등식 당일 낮에 청와대는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8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폐쇄 3년여 만에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도 이날 승인됐다. 하지만 북한은 19일 노동신문에서 “원조는 하나를 주고 열을 빼앗으려는 약탈의 수단”이라고 맞받았다.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발로 걷어차는 형국이다. 연평도 등대가 바다에 메아리 없는 불빛을 쏟아내는 듯한 허망함이 느껴진다.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를 포격해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 6·25전쟁 후 남한 영토를 겨냥한 첫 포격 도발이었다. 무차별로 포격당한 연평면 주택가 중 한 곳인 연평리 172번지에는 ‘안보교육장’이 마련돼 있다. 지붕이 뻥 뚫리거나 외벽이 화재로 검게 그을린, 부서진 민가 주택 3채를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북한군 122mm 방사포 추진체도 수거해 비스듬히 세워 놓았다. 부서진 민가를 보면 포격의 상흔이 주민들에게 악몽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을까. 해설사 옹진군청 김명선 씨는 “자신이 당했던 사건 현장에 자주 노출될수록 트라우마로부터 더 빨리 회복된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와서 보라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만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박집 여주인은 “포격 충격으로 출입문이 우그러지고 유리도 다 깨졌다. 또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섬에 남아 있지 못한다”고 했다.포격당한 민가 3채 그대로 보존 연평도 등대 바로 옆에는 평화공원이 있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연평해전과 연평포격 등 세 차례 북한 도발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공원 중앙에는 두 차례 연평해전에서 죽고 다친 25명의 장병을 형상화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 모양이 육지에서 탱크 등 기계화 부대의 진행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용치(龍齒·용의 치아) 구조물을 닮았다. 연평도에서는 용치 구조물이 적 군함이나 선박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해안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무력 충돌 희생자 추모 공원과 남북 화해 분위기로 다시 켜진 등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연평도는 긴장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는 남북 관계의 축소판이다. 등대 재점등을 두고 안보 구멍 논란도 없지 않다. 가림막을 했지만 북한 간첩이 무동력선 등으로 육지로 접근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등대 점등식 현장에서 만난 주민 차모 씨(44)는 “주민을 적의 타깃으로, 볼모로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부대 관계자는 “정식 점등 전에 등대를 켜고 수차례 섬 주위를 돌며 등대 불빛이 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뒤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올렸다”고 말했다. 연평부대는 연평포격 사건 이후 섬에서 K-9 자주포 실사격 훈련을 중단했다. 북한이 포사격 훈련 등을 빌미로 포격을 해왔다면 더욱 훈련 강도를 높여 강력 대응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섬에서 훈련을 중단한 것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한 모양새라는 것이다. 하지만 섬 주민들 중에는 포 사격 굉음이 없어진 것을 반기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연평부대 관계자는 “육지에서 포 실사격 훈련을 하기 때문에 사격 훈련 횟수를 늘렸다”고 말했다. 사실 등대 재점등은 주민들이 야간 조업시간을 늘리기 위해 오랫동안 요구한 민원 사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등대는 켰지만 야간 조업시간 연장은 ‘일몰 후 30분, 일출 전 30분’으로 1시간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서해 5도는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는 조업이 금지된다. 야간 조업 중 어선이 NLL에 접근하거나 넘어가 나포되는 등의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일부 주민들은 육지에서는 철책선 부근에 산책길도 만들면서 NLL 부근 통제는 풀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특히 NLL 부근에서 치고 빠지면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고 한다. 북한 석도가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섬 북쪽의 ‘연평부대 ○○○정탐기지대’ 앞 순환도로에 가봤다. NLL 북쪽 완충 수역에 중국 어선 4척이 조업을 하고 있었다. 남쪽 완충 수역에 연평도 어민은 접근이 금지돼 있다. 바다의 비무장지대(DMZ) 같은 곳이다. 장정민 옹진군수는 “이곳에서 중국 어선이 어로를 하는 것은 DMZ의 비옥한 땅에 중국 농민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는 격”이라고 했다.中불법조업 판치는 ‘바다의 DMZ’ NLL 북쪽 완충 해역에 있던 중국 어선은 밤이면 서슴없이 NLL 남쪽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수년 전에는 100척 이상이 새까맣게 바다를 메우기도 했으나 줄었다. ‘서해 5도 특별경비단’이 2년 전 발족하고 중국이 불법 어로 오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인 자체 단속에 나선 것도 한 요인이다. 남북이 공동 어로 구역을 설정해 중국 어선의 진입을 막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지만 기약 없는 일로 보였다.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해 저문 백사장에 그 모습 그리면/등대불만 깜박이네 눈물의 연평도.’ 인천발 여객선이 당섬 선착장에 도착하면 ‘연평바다역’ 터미널 옆에 세워진 ‘눈물의 연평도’ 가사 돌비석이 손님을 맞는다. 1959년 사라호 태풍 피해를 노래한 것이다. 당시 피해가 컸는데 방송과 통신 부족으로 사전에 경보가 안 된 것도 한 이유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배에서 바라본 연평도. 북한 군과 중국 불법 어선에 안보와 생업이 휘둘리는 이곳이 육지의 무신경 때문에 속울음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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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말리 홀트 여사

    미국 오리건주의 작은 도시 크레스웰에서 목재 회사를 운영하던 해리와 간호사 버사 홀트 부부는 1954년 한 고등학교 강당에서 우연히 ‘아메라시안 한국 고아’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고아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부부는 처음에는 한국의 고아원에 기부금을 보내다 입양을 결심했다. ▷해리는 1956년 딸 말리를 데리고 한국을 찾았다. 6남매 중 셋째로 당시 오리건대 간호학과를 갓 졸업한 21세의 꿈 많은 아가씨였던 말리의 인생은 부모를 따라 나선 그 한국행을 계기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말리는 오리건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떠난 것 말고는 평생을 한국에서 고아와 장애인들을 위해 살았다. 17일 84세를 일기로 제2의 고국 한국 땅에서 눈을 감은 말리 홀트 여사다. ▷1950년대 당시 미 연방법은 2명 이상의 해외 아동 입양은 허용하지 않았다. 해리-버사 부부는 지인들을 찾아 자문을 하고 의회 앞에서 시위도 하는 등 ‘투쟁’을 벌였고 1955년 연방 하원은 ‘특정 전쟁 고아 구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입양 고아의 숫자 제한을 완화했다. 이른바 ‘홀트 법안’이다. ▷해리 부부가 법안 통과 직후 한국에서 갓난아이에서 세 살 반까지 아동 8명을 데리고 포틀랜드 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은 국제 입양에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던 미국 가정들에 가족의 사랑이 인종과 국가의 벽을 넘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에서 해외 입양을 원하는 가정이 늘었고 그해 ‘홀트양자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현재 세계 13개국에서 활동 중인 홀트국제아동봉사회는 이렇게 한국을 계기로 시작됐다. ▷해리가 1964년 한국 체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그가 한국에 세운 아동복지회 활동도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기우였다. 딸 말리는 전쟁고아에서 중증 장애인으로 돌보는 아이들의 범위를 넓혔고, ‘고아의 어머니’와 더불어 ‘장애아의 대모’가 되었다. 평생 독신이었지만 장애인과 고아, 그리고 미혼 부모들의 어머니이자 ‘말리 언니’로 살며 외롭지 않았다. 2012년 골수암 진단을 받았지만 “마지막 남은 생명을 ‘마음껏 사랑하는 일’에 쏟겠다”며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방도 없이 4명의 장애인과 함께 지내며 헌신의 삶을 산 말리는 오늘 영결식 후 부모가 영면한 홀트일산복지타운 부지 내에 함께 묻힌다. 홀트 여사 집안이 2대에 걸쳐 낯선 나라에서 뿌린 희생과 봉사 정신을 실천으로 이어가는 것이 진정한 추모와 감사를 표하는 것이리라.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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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구자룡]동대문 패션 밸리

    K패션의 메카인 동대문 패션시장에서는 밤새도록 현란한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단순한 도소매시장을 넘어 의류디자인, 생산, 유통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의류산업 클러스터로서 한때 일본 총리실 산하 위원회에서 견학을 오고 1995년 외국인전용 구매상담소도 생겼다. 특히 급변하는 시장 수요와 트렌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동대문 모델’을 창조해 국내외에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그 덕분에 해외에서도 서울 관광의 랜드마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신 유행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엿볼 수 있는 패션의 중심지이면서 24시간 잠들지 않는 곳.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열정과 에너지를 체험하는 데 동대문 시장만큼 매력적인 명소도 드물다.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심야 쇼핑을 위해 동대문 시장에 깜짝 등장했다. 예전에도 주목받긴 했으나 이후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한층 각광받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3년 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시장 경기도 타격을 입었다. ▷점포 수가 약 3만 개인 동대문 시장에 빈 점포가 5000개를 헤아리는 등 110여 년 전통의 동대문 시장이 요즘 휘청거리고 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온라인쇼핑몰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지만 그중 하나로 중국 광저우시에 형성된 ‘광저우 의류시장 클러스터’도 지목된다. 광저우 의류시장 클러스터에는 310여 개의 크고 작은 의류 도매시장에 점포만 줄잡아 20만∼30만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수만 많은 것이 아니다. 각 시장이 가격(중고가와 저가) 품목(아동 여성 모피 등) 지역(한국 러시아 아프리카 등) 등으로 특화되어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시장 위치와 품목, 가격, 할인행사 등도 자세히 소개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동대문 시장의 패션을 베끼거나 우수한 디자이너를 유치해 갔던 곳이 지금은 전 세계 중개상이 몰려와 각종 의류를 주문 제작해 간다. ▷동대문 패션밸리는 현재 국내 섬유패션산업의 매출 17%, 수출 21%, 고용 26%를 차지한다. 중국 패션시장이 압도적 규모로 동대문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곤 해도 아직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광저우 시장 안에도 ‘한국 주문 제작 제품’ 전문상가가 있을 만큼 동대문 패션밸리는 세계 패션 추세를 읽는 창의성과 순발력, 감각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7000여 개의 크고 작은 봉제공장이 실핏줄처럼 연계된 동대문 의류시장. 또 한 번 힘차게 날아오를 활력을 되살릴 수 있도록 혁신 방안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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