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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생긴 암은 뇌암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양성과 악성을 가리지 않고 뇌종양이라고 한다. 물론 악성 종양이 훨씬 위험하다. 다만 뇌에서 발생한 악성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사례는 드물다. 뇌혈관 구조가 다른 장기의 혈관 구조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장기에 생긴 양성 종양에 비하면 양성 뇌종양은 훨씬 위험하다. 양성 종양이 뇌 안의 작은 신경이라도 손상시킬 경우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양성 뇌종양이라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옳다. 뇌종양은 병기 구분 방식도 다르다. 다른 암의 경우 크기나 전이 여부를 감안해 1∼4기로 나눈다. 반면 뇌종양은 양성일 때 1, 2등급으로, 악성일 때 3, 4등급으로 분류한다. 양성 종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뇌수막종이 가장 흔하다. 뇌수막종은 뇌와 척수를 보호하는 막에 생긴 종양이다. 일찍 발견하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면 거의 대부분 완치로 이어진다. 다만 어느 부위에 발생했느냐에 따라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규순 씨(53)가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백신 이상 증세, 뇌종양이 원인”장 씨는 강원 원주시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자영업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했다. 저녁에 미용실 문을 닫고 난 후 동네 하천을 따라 1만 보 정도를 걸었다. 국가건강검진 결과도 대체로 좋았다. 혈압과 혈당 수치도 모두 정상이었다. 40대 중반을 넘긴 2018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내과에서는 위염이라고 했다. 두 달 동안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1년 가까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여전히 체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목이 아파왔다. 정형외과에 갔다. 목 디스크일지도 몰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정상이었다. 통증 주사를 맞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 변비 증세까지 생겼다. 대장암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3년 동안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동안 무기력, 피로, 불면증, 통증은 더 심해졌다. 팔이 아파 손님 머리를 만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특히 손발이 저리고 등이 시려왔다. 차마 미용실을 관둘 수는 없어 휴일을 이틀로 늘렸다. 2021년 10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 후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극심한 두통이 나타났다. 장 씨는 “목부터 배꼽까지 감각이 없었다. 뇌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며 당시 상태를 떠올렸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직행했다. 백신 부작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3년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신경과 질환일 것 같다고 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했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심각하다. 얼핏 보기에 종양이 뇌신경 거의 대부분을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8시간의 고난도 수술로 완치서울아산병원 진료를 이틀 앞둔 2022년 1월의 새벽, 장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다 다시 쓰러졌다. 의식은 있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지역 의료원의 응급실을 거쳐 곧바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장 씨는 뇌와 목뼈(경추)가 연결된 부위, 즉 뇌간에서 뇌수막종이 자라고 있었다. 진료를 맡은 홍창기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양성 종양이었지만 뇌간의 80%가 막혀 있었다. 그대로 두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뇌수막종 수술 자체는 아주 어렵지 않다. 다만 장 씨의 경우는 고난도의 수술이 예상됐다.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호흡을 하는 등 생존과 관련된 신경과 여러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수술 도중에 이 신경을 훼손하면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수술은 신중하게 진행됐다. 먼저 귀 뒤쪽으로 10㎝ 정도를 절개했다. 근육 조직을 하나씩 들어내고, 노출된 뼈에 구멍을 냈다. 수술 도구가 들어가고 종양을 꺼낼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작업에만 6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종양을 제거하고 끄집어내는 데는 2시간이 걸렸다. 장 씨는 수술이 끝나고 3일 만에 걸었고, 1주일 만에 퇴원했다. 손발 저림, 통증, 불면증 같은 증세는 약해지다가 퇴원할 무렵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장 씨는 “얼굴에 손을 대봤는데 따뜻하더라. 몇 년 만에 느껴 보는 온기였다. 기적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뇌수막종 수술 후에는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미세 종양을 없애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 씨는 수술하고 3개월 후 시행한 뇌 MRI 검사에서 종양이 완전히 제거됐음이 확인됐다. 그 덕분에 방사선 치료 없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요즘에는 6개월마다 추적 관찰 중이다. 수술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건망증이 생겼고, 행동도 다소 느려졌다. 그래도 1년 정도가 지나자 이런 증세는 상당히 개선됐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긍정 마인드가 강할수록 후유증도 적고, 회복도 빠르다”고 말했다. ●뇌수막종 증세 복합적으로 나타나장 씨는 무려 3년 동안 뇌수막종에 따른 증세로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뇌수막종일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여러 증세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뇌수막종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대체로 두통이 심하면 ‘뇌에 종양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꼭 그렇지는 않다. 두통과 함께 구토나 메스꺼운 증세가 나타난다면 뇌종양보다는 뇌출혈이 원인일 경우가 더 많다. 뇌종양이 생겼다면 마비나 저림과 같은 신경학적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난다. 장 씨도 양쪽 손발이 심하게 저렸다. 다만 실제로는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에서만 이런 증세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홍 교수는 “장 씨는 뇌간의 중앙부에 종양이 생겼는데, 이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대체로는 한쪽으로 치우쳐 종양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증세도 한쪽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비, 저림 외에도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야가 좁아지기도 한다. 갑자기 청력이 떨어진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도 대체로 한쪽 눈과 귀에서만 증세가 나타난다. 이와 함께 예전보다 더 자주 사레가 들린다면 이 또한 뇌종양의 원인일 수 있다. 장 씨는 소화불량, 무기력증 등 온갖 증세를 다 겪었다. 이것도 뇌종양에 따른 증세일까? 홍 교수는 “소화불량은 뇌종양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장 씨의 경우 소화불량 증세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바람에 장 씨 본인이나 의사도 뇌수막종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발견이 늦어졌을 거라고 추정했다. 장 씨는 불면증도 심하게 앓았다. 불면증도 뇌수막종과는 무관한 것 같다고 홍 교수는 판단했다. 악성 종양의 경우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양성 종양일 때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수막종 부위 따라 치료법 달라뇌수막종이 발생하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지만 꼭 나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30대의 젊은층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통계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2배 정도 많이 발생한다. 어느 위치에 발생하느냐에 따라 치료 난이도가 결정된다. 뇌의 표면에 발생할 경우 수술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수술하지 않고 관찰만 할 수도 있다. 종양이 작다면 방사선 치료(감마나이프)로만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장 씨처럼 뇌 안쪽 깊숙한 곳에 종양이 생겼을 경우 대처법은 달라진다. 장 씨의 뇌수막종 크기는 2.1㎝였다. 홍 교수는 “이 정도면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그대로 뒀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목을 뒤로 잘못 젖혔다가 사지마비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장 씨처럼 종양이 계속 자라고 있다면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이런 경우 방치한다면 종양이 껌딱지처럼 뇌간에 착 달라붙어 버린다. 그때는 아주 작은 상처만 나도 신경이 다칠 수 있고, 더 심각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호흡 중추를 다치게 하면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 주변 동맥을 손상시키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일찍 종양을 발견하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2년마다 주기적으로 뇌 검사를 해야 한다. 홍 교수는 “뇌 MRI 검사만으로 대부분 판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뇌에 생긴 암은 뇌암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양성과 악성을 가리지 않고 뇌종양이라고 한다. 물론 악성 종양이 훨씬 위험하다. 다만 뇌에서 발생한 악성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사례는 드물다. 뇌혈관 구조가 다른 장기의 혈관 구조와 다르기 때문이다.다른 장기에 생긴 양성 종양에 비하면 양성 뇌종양은 훨씬 위험하다. 양성 종양이 뇌 안의 작은 신경이라도 손상시킬 경우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양성 뇌종양이라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옳다. 뇌종양은 병기 구분 방식도 다르다. 다른 암의 경우 크기나 전이 여부를 감안해 1~4기로 나눈다. 반면 뇌종양은 양성일 때 1, 2등급으로, 악성일 때 3, 4등급으로 분류한다. 양성 종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뇌수막종이 가장 흔하다. 뇌수막종은 뇌와 척수를 보호하는 막에 생긴 종양이다. 일찍 발견하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면 거의 대부분 완치로 이어진다. 다만 어느 부위에 발생했느냐에 따라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규순 씨(53)가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백신 이상 증세, 뇌종양이 원인”장 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자영업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했다. 저녁에 미용실 문을 닫고 난 후 동네 하천을 따라 1만 보 정도를 걸었다. 국가건강검진 결과도 대체로 좋았다. 혈압과 혈당 수치도 모두 정상이었다. 40대 중반을 넘긴 2018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내과에서는 위염이라고 했다. 두 달 동안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1년 가까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여전히 체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목이 아파왔다. 정형외과에 갔다. 목 디스크일지도 몰라 컴퓨터단층(CT) 검사를 받았다. 정상이었다. 통증 주사를 맞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 변비 증세까지 생겼다. 대장암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3년 동안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동안 무기력, 피로, 불면증, 통증은 더 심해졌다. 팔이 아파서 손님 머리를 만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특히 손발이 저리고 등이 시려왔다. 차마 미용실을 관둘 수는 없어 휴일을 이틀로 늘렸다. 2021년 10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 후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극심한 두통이 나타났다. 장 씨는 “목부터 배꼽까지 감각이 없었다. 뇌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며 당시 상태를 떠올렸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직행했다. 백신 부작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3년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신경과 질환일 것 같다고 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했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심각하다. 얼핏 보기에 종양이 뇌신경 거의 대부분을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8시간의 고난도 수술로 완치서울아산병원 진료를 이틀 앞둔 2022년 1월의 새벽, 장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다 다시 쓰러졌다. 의식은 있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지역 의료원의 응급실을 거쳐 곧바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장 씨는 뇌와 목뼈(경추)가 연결된 부위, 즉 뇌간에서 뇌수막종이 자라고 있었다. 진료를 맡은 홍창기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양성 종양이었지만 뇌간의 80%가 막혀 있었다. 그대로 두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뇌수막종 수술 자체는 아주 어렵지 않다. 다만 장 씨의 경우는 고난도의 수술이 예상됐다.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호흡을 하는 등 생존과 관련된 신경과 여러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수술 도중에 이 신경을 훼손하면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수술은 신중하게 진행됐다. 먼저 귀 뒤쪽으로 10㎝ 정도를 절개했다. 근육 조직을 하나씩 들어내고, 노출된 뼈에 구멍을 냈다. 수술 도구가 들어가고 종양을 꺼낼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작업에만 6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종양을 제거하고 끄집어내는 데는 2시간이 걸렸다. 장 씨는 수술이 끝나고 3일 만에 걸었고, 1주일 만에 퇴원했다. 손발 저림, 통증, 불면증 같은 증세는 약해지다가 퇴원할 무렵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장 씨는 “얼굴에 손을 대봤는데 따뜻하더라.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기적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뇌수막종 수술 후에는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미세 종양을 없애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 씨는 수술하고 3개월 후 시행한 뇌 MRI 검사에서 종양이 완전히 제거됐음이 확인됐다. 덕분에 방사선 치료 없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요즘에는 6개월마다 추적 관찰 중이다. 수술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건망증이 생겼고, 행동도 다소 느려졌다. 그래도 1년 정도가 지난 후 이런 증세는 상당히 개선됐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긍정 마인드가 강할수록 후유증도 적고, 회복도 빠르다”고 말했다. ●뇌수막종 증세 복합적으로 나타나장 씨는 무려 3년 동안 뇌수막종에 따른 증세로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뇌수막종일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여러 증세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뇌수막종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대체로 두통이 심하면 ‘뇌에 종양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꼭 그렇지는 않다. 두통과 함께 구토나 메스꺼운 증세가 나타난다면 뇌종양보다는 뇌출혈이 원인일 경우가 더 많다. 뇌종양이 생겼다면 마비나 저림과 같은 신경학적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난다. 장 씨도 양쪽 손발이 심하게 저렸다. 다만 실제로는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에서만 이런 증세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홍 교수는 “장 씨는 뇌간의 중앙부에 종양이 생겼는데, 이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대체로는 한쪽으로 치우쳐 종양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증세도 한쪽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비, 저림 외에도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야가 좁아지기도 한다. 갑자기 청력이 떨어진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도 대체로 한쪽 눈과 귀에서만 증세가 나타난다. 이와 함께 예전보다 더 사레가 들린다면 이 또한 뇌종양의 원인일 수 있다. 장 씨는 소화불량, 무기력증 등 온갖 증세를 다 겪었다. 이 또한 뇌종양에 따른 증세일까. 홍 교수는 “소화불량은 뇌종양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장 씨의 경우 소화불량 증세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바람에 장 씨 본인이나 의사도 뇌수막종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발견이 늦어졌을 거라고 추정했다. 장 씨는 불면증도 심하게 앓았다. 이 또한 뇌수막종과는 무관한 것 같다고 홍 교수는 판단했다. 악성 종양의 경우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양성 종양일 때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수막종 부위 따라 치료법 달라뇌수막종이 발생하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지만 꼭 나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30대의 젊은 층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통계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2배 정도 많이 발생한다. 어느 위치에 발생하느냐에 따라 치료 난이도가 결정된다. 뇌의 표면에 발생할 경우 수술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수술하지 않고 관찰만 할 수도 있다. 종양이 작다면 방사선 치료(감마나이프)로만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장 씨처럼 뇌 안쪽 깊숙한 곳에 종양이 생겼을 경우 대처법은 달라진다. 장 씨의 뇌수막종 크기는 2.1㎝였다. 홍 교수는 “이 정도면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그대로 뒀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목을 뒤로 잘못 젖혔다가 사지마비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 씨처럼 종양이 계속 자라고 있다면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이런 경우 방치한다면 종양이 껌딱지처럼 뇌간에 착 달라붙어 버린다. 그 때는 아주 작은 상처만 나도 신경이 다칠 수 있고, 더 심각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호흡 중추를 다치게 하면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 주변 동맥을 손상시키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일찍 종양을 발견하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2년마다 주기적으로 뇌 검사를 해야 한다. 홍 교수는 “뇌 MRI 검사만으로 대부분 판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21년 12월 임연숙 씨(65)는 난소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여겼다. 발견 당시 3기였던 데다 난소암이 워낙 치료가 어려운 암이기 때문이다. 임 씨의 수술은 난소암 분야에서 꽤 명성이 높았던 박종섭 전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집도했다. 하지만 박 전 교수는 완치 판정을 내리기 전에 정년퇴직했다. 그는 현재 바이오 기업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제자인 이성종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임 씨의 진료를 맡았다. 완치 판정을 내린 의사가 이 교수다. 임 씨는 두 사람 모두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고 했다. 두 사람을 함께 볼 기회가 없던 차에 마침 연락이 닿아 한자리에 모였다. 임 씨의 난소암 투병기를 들어봤다.● “암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해”2016년 12월 무렵. 임 씨는 모처럼 만에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아랫배가 불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벼운 비뇨기계 질환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난소암으로 인한 증세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이런 증세는 20일 동안 지속됐다. 소변을 보고 난 후에도 찜찜함이 남았다. 결국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의사의 입에서 “어이쿠”라는 소리가 나왔다. 암인 것 같다고 했다. 큰 병원을 가 보라는 소리에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임 씨는 집에 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이후 딸이 침착하게 의료진을 물색했다. 평판과 수술 실적 등 공개된 정보는 다 찾아봤다. 딸은 박 전 교수를 선택했다. 암이 아니길 바라며 진료실에 들어갔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미 복강 전체로 암이 퍼져 있었다. 임 씨는 1년 전 건강 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암으로 의심되는 혹은 발견되지 않았다. 1년 만에 난소암이 3기가 될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박 전 교수는 “난소암은 성장이 빠른 암이다. 1년 만에 암이 퍼질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3개월 만에 훌쩍 자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난소암의 경우 수술 치료가 표준이다. 하지만 환자의 건강 상태가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항암 치료부터 먼저 한다. 다행히 임 씨의 건강 상태는 수술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됐다. 박 전 교수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다.● 11시간 대수술 후 항암 치료수술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임 씨는 외래 진료를 받고 10일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박 전 교수는 “수술을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난소암 환자 수술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병원 원칙에 따라 수술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다른 외래 환자 진료를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임 씨 수술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배를 열어 보니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았다. 주변 장기와 혈관에까지 암이 깊이 침투해 있었다. 난소만 제거한다고 해서 끝나는 수술이 아니었다.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암의 뿌리를 뽑으려면 주변의 장기를 모두 들어내야 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재발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대수술이었다. 난소, 림프절, 방광, 대장을 다 절제했다. 자궁도 절제해야 한다. 하지만 임 씨가 30대 후반에 자궁근종 제거를 위해 자궁을 이미 절제한 상태였기에 추가 조치는 하지 않아도 됐다. 혈관에 침투한 종양도 제거했다. 당시 수술실에는 박 전 교수뿐 아니라 혈관외과, 대장항문외과, 비뇨기과의 교수들이 모두 들어갔다. 한 교수가 수술을 끝내면 다른 교수가 이어 집도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수술 시간만 11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임 씨 남편 안병도 씨는 “수술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며 마음을 졸였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보통 난소암의 경우 6회 항암 치료가 표준 치료법이다. 하지만 임 씨는 항암 치료를 추가로 3회 더 받아야 했다. 6회 치료가 끝난 후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는데 미세하게 종양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도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너무 아플 때는 남편을 붙들고 다리를 잘라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다행히 네 번째 항암 치료 때부터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서 잘 버텨냈다. 2017년 7월 말 항암 치료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 “의사 격려가 환자에겐 큰 힘 돼”암 선고를 받으면 대부분 공포에 휩싸인다. 임 씨와 남편도 그랬다. 두 사람은 서로 붙들고 펑펑 울었다. 그런 부부에게 박 전 교수는 “두 분이 오래오래 살 수 있게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했다. 부부는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술하고 2년이 지났을 때 박 전 교수는 완치를 확신했다고 한다. 난소암 재발은 대부분 2년 이내에 나타나는데 임 씨는 그럴 만한 조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임 씨는 “당시 박 전 교수가 ‘내 환자는 재발이 적다’고 말했다. 비로소 내가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암 재발에 대한 걱정은 완치 후인 지금도 남아있다. 6개월 혹은 1년마다 추적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는데 그때마다 잔뜩 긴장이 된다. 완치 판정을 내린 이 교수는 그런 임 씨에게 “재발 위험이 아주 낮으니 건강 관리에만 신경 쓰시라”고 조언했다. 국내외 통계를 보면 난소암의 경우 7년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재발 확률이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임 씨는 비로소 안심이 된다. 임 씨는 “의사의 자신감만큼 환자에게 힘이 되는 격려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암 완치 이후에도 불편함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손발에 저림 증세가 간혹 나타난다. 항암 치료 부작용이다. 이 교수는 “항암 치료를 하다 보면 말초 신경이 죽을 수가 있다. 이 경우 손과 발이 저리고 살짝 마비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부작용은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임 씨는 “그래도 생명을 구한 것에 비하면 이 정도의 부작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 간의 정은 더 끈끈해졌다. 남편 안 씨는 아내가 투병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늘 조심했다.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있기 위해 좋아하던 골프를 6년 동안 완전히 끊었다. 자식들도 늘 엄마의 안색을 살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커졌다. 안 씨는 요즘도 매일 밤 잠자기 전 30분씩 아내의 저린 발을 주물러 준다. 박 전 교수는 “암을 극복한 후 가족 간에 정이 더 깊어지고 삶의 질도 좋아진 사례가 많다”고 했다.● 정기 검사가 최고 예방법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암에 걸린 국내 여성 환자는 총 11만7334명이다. 유방암(2만4806명)이 21%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난소암 신규 환자는 2947명으로 채 3%가 되지 않는다. 발병률 순위로만 보면 10위권 밖이다. 하지만 치료가 매우 어려운 암으로 꼽힌다. 난소암 사망률은 8위다.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암을 늦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다른 암도 비슷하지만 난소암은 초기 증세가 거의 없다. 보통은 복통이나 복부 팽만감, 소화불량, 질 출혈 등의 증세가 있지만 이마저도 암이 꽤 진행된 후 나타날 때가 많다. 사실 난소암을 1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완치)은 90%에 이른다. 하지만 난소암 환자 10명 중 8명꼴로 3기 혹은 4기에 암을 발견한다. 임 씨 또한 3기에 병을 발견했다. 다행히 완치됐지만 이 경우 완치율은 30∼40%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다른 어떤 암보다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검사를 하는 게 좋다. 골반 초음파 혹은 ‘CA125’라는 종양표지자(암을 의심할 수 있는 지표) 검사를 한다. CA125 수치가 mL당 46U 이내라면 정상 범위이지만 과도하게 높게 나타나면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난소암의 원인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임신과 출산이 난소암 위험도를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출산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는 뜻이다. 비만도 난소암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된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피곤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른하고 무기력하며 낮에 졸음이 쏟아진다. 때로는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른바 춘곤증이다. 춘곤증은 의학적으로는 질병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피로감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행하면서 낮이 길어지고 기온이 올라간다. 겨우내 위축돼 있던 우리 몸도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신진대사는 더 활발해지고 에너지 소비량도 늘어난다. 그 부작용으로 피로가 쌓이는 것이다. 춘곤증에 의한 피로는 일시적이다. 우리 몸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면 2~3주 이내에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피로감이 지속되며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피곤하다면 춘곤증이 아니다. 만성피로일 가능성이 높다. ‘병이 되는 피로’인 것이다. 만성피로는 무기력증 같은 육체적 증세부터 우울감이나 패배감 등 정신적 증세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원인 또한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 ‘족집게 의사’라 해도 정확히 짚어내기가 쉽지 않다. 김선미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에게 만성피로 대처법을 들어봤다. ●만성 피로, 원인 질환부터 찾아야 피로는 지속 기간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1개월 미만이라면 급성 피로로 분류한다. 춘곤증을 굳이 의학적으로 분류하자면 급성 피로에 가깝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이런 피로는 쉽게 극복된다. 피로가 나타나는 기간이 1개월 이상~6개월 미만이라면 지속성 피로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극복은 어렵지 않다. 이와 달리 만성피로는 진단과 치료 모두 어렵다. 보통 6개월 이상 극심한 피로가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경우에 만성피로로 진단한다. 만성피로 환자의 70% 정도에서 질병이나 심리적 문제가 발견된다. 만성피로를 해결하려면 원인 질환부터 치료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질병이 피로를 유발한다. 돌려 말하자면 만성피로는 질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신호다. 하지만 피로의 강도나 양상만 따져서는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피로에 동반하는 증세를 살펴야 한다. 어떤 증세를 동반하느냐에 따라 개괄적이나마 원인 질병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간 기능이 많이 떨어졌을 때는 피로감과 함께 황달 증세가 종종 나타난다. 때로는 오른쪽 배에 통증이 생기면서 가려움증도 동반한다. 콩팥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면 붓는 증세가 동반하거나 소변이 잘 안 나올 수 있다. 갑상샘(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면 피로하면서도 불안과 초조감이 커진다. 체중이 빠질 수도 있다. 반대로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면 푸석한 느낌이 많이 들고 체중이 늘면서 추위를 느끼게 된다. 당뇨병이 원인이 돼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경우 물을 많이 마시며 덩달아 소변 양도 많아지는 특징이 있다. 체중이 빠질 수도 있다. 빈혈이 원인이라면 피곤하면서도 어지럼증이 생기며 두통이 나타날 수도 있다. 불면증이 원인이 된 피로는 그나마 해결책이 명확하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게 되면 피로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피로에 동반하는 증세로 의심할 수 있는 질병동반 증세의심 질환발열, 야간 발한감염질환 잠복성 종양 림프종체중 감소감염질환, 우울증, 악성종양, 갑상선질환, 섭식장애호흡 곤란심부전증, 빈혈, 만성 폐쇄성폐질환, 불안증관절통, 관절경직류마티스성 관절염, 바이러스성 질환흉통관상동맥질환, 역류성 식도질환, 불안증수면 장애불안증, 우울증, 수면무호흡증설사염증성 장질환, 흡수 장애, 과민성 장증후군두근거림부정맥, 갑상선기능항진증, 불안증●‘육체적 피로’ vs ‘정신적 피로’ 만성 피로의 원인 질환 중에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정신 건강 문제가 원인인 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40대 초반 미혼 여성 A씨가 그런 사례다. A씨는 6개월 전부터 피로감이 심해졌다. 최근에는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직장을 다니기 힘들 정도까지 상태가 악화돼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심전도, 갑상샘(갑상선), 간, 콩팥, 폐 검사 등을 진행했지만 질병을 발견할 수 없었다. 김 교수가 A씨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봤다. A씨는 혼자 살고 있었다. 음식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운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외출 횟수도 적었다. 우울과 불안 증세도 보였다. 김 교수는 항우울제를 처방하면서 생활 습관 개선을 권했다. 한 달 후 A씨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속에 가스가 차는 느낌이 들어 약을 거의 먹지 않았고 생활 습관도 개선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결과 피로감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우울과 불안 증세도 그대로였다. 만성피로 치료에 실패한 셈이다. 김 교수는 정신건강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A씨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냈다. 사실 정신건강에서 비롯된 ‘정신적 만성 피로’는 신체적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만성 피로’와 양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일단 육체적 피로의 경우 스트레스와 무관할 때가 많다. 또한 본인이 가장 먼저 피로를 자각한다. 증세가 나타나면 2개월 안에 알아차린다. 피로는 아침보다는 오후나 저녁에 더 심한 경향이 있다. 피로감이 심해지면 주변에서 “병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피곤해 보인다. 정신적 만성 피로의 경우 스트레스와 큰 관련이 있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기기 쉽다는 뜻이다. 또한 피로감은 아침에 가장 심하다. 증세가 나타나고 4개월 이상 지속돼도 자각하지 못할 수 있다. 증세가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한다. 이 경우에도 병이 있는 것처럼 안색이 나빠진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보다는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먼저 알아볼 때가 많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정신적 만성 피로와 육체적 만성 피로의 비교구분정신적 만성피로육체적 만성피로피로 증세를 인식하는 주체가족이나 친구환자 본인주된 결핍 내용‘욕망’과 관련됨‘능력’과 관련됨스트레스와의 관련성관련 있음관련 없음증세가 나타나는 기간4개월 이상 지속 혹은 재발2개월 미만증세가 심해지는 시간아침에 심해짐오후나 저녁에 심해짐증세 경과악화와 호전 반복비슷한 상태로 진행가족들의 상황스트레스를 많이 받음환자를 많이 지지함● 만성 피로 극복, 끈기에 달렸다 일반적으로 만성피로 환자가 병원에 가면 원인 질환부터 찾는다. 원인 질환이 발견되지 않으면 미네랄보충제나 항우울제를 먹으면서 생활 습관을 개선한다. 물론 약물 없이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도 만성피로에서 탈출할 수도 있다. 단, 환자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50대 B씨와 C씨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50대 남성 B씨는 1년째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새벽 1시 이전에 잠들지 못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질병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 교수가 살펴보니 B씨는 체중이 90㎏으로 비만이었다. 또 평소 술을 많이 마셨다. 김 교수는 체중 감량, 절주, 수면 관리를 주문했다. B씨는 첫 달에 2㎏, 두 번째 달에 3㎏을 감량했고 술을 줄였다. 그 결과 따로 약을 먹지 않고도 피로감이 사라졌다. 50대 여성 C씨도 여러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6개월 이상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다. 김 교수는 C씨의 피로 또한 생활 습관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C씨는 1년 전부터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고 있었다. 매일 2시간 이상 운동했고, 체중 증가를 우려해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과도한 운동과 단백질 결핍을 문제로 생각했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운동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단백질을 넉넉히 섭취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이 점만 고쳤을 뿐인데, C씨는 한 달 만에 피로감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건강한 생활 습관이 피로 줄인다 대한가정의학회 ‘가정의학’ 교과서는 피로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스트레스 △우울과 불안 △통증 △염증 △운동 장애 △수면 장애 △대사 장애 △에너지 불균형 △빈혈 △약물 △장기 이상 △감염 △종양 △항암 치료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전체 만성피로 환자의 30% 정도는 이런 원인 질환을 찾지 못한다. 이 경우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하는데, 뾰족한 치료법은 없다. 결국 애초에 피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훌훌 떨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잠은 최대한 잘 자고, 편식하지 않으며, 규칙적으로 유산소 운동도 해야 한다. 무엇이든 과도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 특히 C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나친 다이어트는 극심한 피로를 유발한다. 김 교수는 “운동을 심하게 하면 젖산과 같은 산화물질이 몸에 쌓일 수 있어 되레 더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며 “때로 과도한 운동은 콩팥과 같은 장기를 손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적절한 강도로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피로감이 커지는 이유는 연령대별로도 다르다. 30, 40대의 경우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가 피로의 원인일 때가 많다. 50대 후반부터 60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체력 저하가 피로의 원인일 수 있다. 또한 이 나이 때부터는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따라서 50대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 장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26주 정도 된 때였다. 2017년 1월 초 가슴에서 티끌만 한 알갱이가 만져졌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박길숙 씨(42)는 첫째 아이를 낳고 젖몸살을 심하게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혹시 그 영향 때문에 생긴 증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알갱이는 빠른 속도로 커졌다. 3주 만에 방울토마토만 한 혹이 가슴에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한 젖몸살 후유증은 아닌 것 같았다.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의사가 “놀라지 마시고 큰 병원에 빨리 가 보시라”고 권했다. 암인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앞이 컴컴해졌다. 임신부 박 씨의 유방암 투병은 그렇게 시작됐다. ●태아 위험 시기 넘겨 항암 치료 가능 임신 29주 차 때 박 씨는 서울대병원 유방센터를 찾았다. 검사 결과 오른쪽 유방에서 2∼3㎝ 크기의 암이 발견됐다. 림프절로 전이됐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검사 과정에서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임상 경험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한별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전이가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박 씨는 ‘림프절 전이가 없는 2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을 세부적으로 따지면 여러 유형이 있다. 박 씨의 경우 두 종류의 호르몬수용체와 HER2(사람상피세포증식인자수용체 2형)가 모두 음성이었다. 이런 암을 삼중음성유방암이라고 한다. 암 세포가 빨리 자라며 독한 것이 특징이다. 항암 치료를 먼저 시행해 암 세포 크기를 줄인 후 수술하는 게 표준 치료법이다. 문제는 배 속 태아에게 미칠 영향이었다. 다행히 임신 29주라 항암 치료가 가능했다. 보통 임신 13주까지를 임신 1분기로 본다. 이 기간은 태아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라 항암 치료가 어렵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항암 치료를 할 것이냐 아이를 살릴 것이냐를 놓고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임신 14주 이후에는 항암 약물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아진다. 태아를 살리면서도 항암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 씨는 곧바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3주 걸러 한 번씩, 두 차례 병원을 찾아 반나절 동안 항암 주사를 맞았다. 그 사이에 만삭이 됐다. 3월 박 씨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걱정과 달리 아기는 건강했다. 몸무게도 정상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항암-수술-방사선 치료 모두 이겨내암과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산후 조리를 어느 정도 마친 후 다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추가로 다섯 번의 항암 치료를 이겨냈다. 치료 효과는 무척 좋았다. 3㎝ 크기의 암 덩어리가 1㎝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 후 한 번 더 항암 치료를 받았다. 이 교수는 “그때 이미 완치를 확신했다. 수술에 들어가기도 전에 암 세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암 세포가 없는 상태를 ‘완전 관해’라고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때 이미 박 씨는 완전 관해 상태였다는 것이다. 8월 유방 부분 절제 수술을 시행했다. 유방 위쪽 2.5㎝를 절개한 뒤 암이 있던 부위를 들어냈다. 특히 미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수술이다. 이 교수는 유두 선을 따라 절개해 흉터가 잘 보이지 않도록 했다. 암의 전이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림프절 조직 일부도 떼어냈다. 병리과 조직 검사 결과 예상했던 대로 암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전이도 없었다. 완전 관해가 확인된 것이다. 이어 방사선 치료를 19회 진행했다. 유방암은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게 표준 치료법에 속한다. 이 교수는 “진공청소기로 완전히 쓸어낸 후 스팀청소기로 다시 확인하는 절차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후 완치 판정만 기다리면 됐다. 그러다 2022년 8월 유방초음파 검사에서 다시 혹이 발견됐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직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성 혹이었다. 박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교수는 “삼중음성유방암의 경우 5년 후 완치되면 거의 재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추적 관찰만 하고 있다. ●“가족 생각하며 암 이겨냈다”암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박 씨는 첫째로 가족을 꼽았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암 의심 판정을 받았던 날 박 씨는 첫째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다 넘어지기까지 했다. 박 씨는 “그때 완전히 넋이 나갔다”고 회상했다. 이후로도 한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식욕도 뚝 떨어졌다. 자신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배 속의 아기에게 미안했고, 아기가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박 씨는 이 교수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항암 치료에 들어가기 전 그 짧은 기간에 체중이 5㎏이나 빠졌다. 이 교수는 “실제로 암 환자들의 두려움이 가장 큰 시기가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라고 말했다.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오히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아기를 위해서, 남편과 큰아이,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다시 힘든 항암 치료를 할 때도 버텼다. 입맛이 없어도 한 끼를 굶지 않고 다 먹었다. 덕분에 체력도 다시 좋아졌다. 산후조리원에 있다가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갈 때에도 “이겨낼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둘째, 박 씨는 이 교수와 소통했다. 박 씨는 “의료진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었다. 이 교수의 치료 지침을 믿고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박 씨가 믿고 따라줬기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씨의 적극적인 투병 자세도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 이 교수는 “밝은 성격의 환자일수록 치료 효과가 실제로 좋다. 박 씨도 늘 유쾌하게 투병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암을 이겨낸 후 한동안 유방암 환자 카페에 둘째 아이 사진을 올렸다. 동병상련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박 씨는 “내 스토리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방암 막으려면 자가 진단부터 철저히유방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호르몬 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저출산, 모유 수유 감소, 서구화된 식습관, 빨라진 초경과 늦어진 폐경으로 인해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고, 유방암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유방암은 세계적으로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는 암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7, 8명 중 한 명꼴로 유방암이 발견된다. 국내의 발생 비율은 이보다 덜한 25∼30명 중 한 명꼴이지만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치료 성적이 꽤 좋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유방암 5년 생존율은 90%를 넘어선다. 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암 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92%가 0∼2기였다. 덕분에 치료 결과가 좋다”고 말했다.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교수는 “아쉽게도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여러 연구 결과 유방이 처음 발달하는 사춘기 때의 식습관이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가공식품, 튀긴 음식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결국 검진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2년마다 유방 촬영을 하는 게 좋다.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이 나오면 6개월 혹은 1년마다 유방 촬영과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좋다. 평소에 자가 검진을 자주 해야 한다. 아직 폐경 전이라면 월경이 끝나고 3∼4일이 지나서, 폐경 후라면 매달 하루를 정해 유방 전체와 겨드랑이를 손으로 만져 혹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 교수는 “박 씨 또한 이런 자가 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한 사례”라며 자가 검진을 적극 권장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권순용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63)는 여느 의사보다 바쁜 50대를 보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성바오로병원장과 은평성모병원장을 내리 지냈다. 지난해까지 3개 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여기다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만큼 운동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헬스클럽에 갈 여유도 없었다. 그 대신 연구실과 집에서 짬을 내 운동했다. 잠이 모자라면 쪽잠을 자듯이 ‘쪽운동’을 한 셈이다. 권 교수는 “일부러 시간을 정해서 운동한다면 스포츠다. 일상 생활에서 틈날 때마다 하는 것이 진짜 운동”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잘 먹고, 잘 운동하고, 잘 자야 건강한 노후가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 원칙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수십 년째 지키고 있는 건강법을 들어봤다. ●20년간 콩+우유로 아침 해결그의 고향은 강원도다. 2, 3개월마다 고향에서 생산된 쥐눈이콩을 공수한다. 방앗간에서 콩을 곱게 빻은 뒤 냉동실에 얼려둔다. 이 콩가루가 아침 식사다. 밥 먹는 숟가락으로 콩가루를 두 번 가득 떠 그릇에 담는다. 이어 티스푼으로 현미 쌀눈을 수북하게 떠 그릇에 추가한다. 거기에 흰 우유 300cc를 넣는다. 숟가락으로 10초 정도 저으면 내용물이 모두 녹는다. 단숨에 들이켠다. 20여 년간 유지하고 있는 아침 식사법이다. 40대 중반이 됐을 무렵 머리카락이 희끗해졌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당시에 콩을 먹으면 머리가 검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콩을 갈아서 아들에게 내밀었다. 초보 교수 시절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제대로 아침밥도 못 먹고 있었다. 간편하게 아침 식사를 대신할 수 있어 먹기 시작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다. 머리가 검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탈모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족이 모두 탈모가 조금씩 있는데 나만 머리숱이 많습니다. 콩에 들어있는 성분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콩 안에 있는 이소플라본 성분에 주목한다.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데 뼈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교수는 동물 실험을 통해 이소플라본의 이런 효능을 확인하기도 했다. 포만감도 꽤 있다. ‘콩 우유’ 식사를 한 후 시장기를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단다. 장 건강에도 효과를 봤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변비 증세를 경험한 적도 없다. 이런 이점 덕분일까. 비슷한 또래의 동료 교수들은 나이가 들면서 영양제를 한두 개씩 먹지만 권 교수는 먹지 않는단다. ●단백질 넉넉히 먹고 반신욕 즐겨콩을 좋아하지만 특정 음식만 먹는 원 푸드 다이어트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점심과 저녁에는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는 일반적인 식사를 한다. 단, 고혈압 가족력이 있어서 짠 음식은 피한다. 이를테면 국은 싱겁게 해서 먹고, 짠맛이 강한 찌개는 가급적 먹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배가 너무 부를 정도로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소식(小食)이다. 권 교수에게는 음식 철학이 있다. 어떤 경우든 하루 단백질 권장량은 채운다는 것이다. 만약 점심이나 저녁에 탄수화물 위주로 식사했다면 집에 들어간 후 계란 두 개 정도를 추가로 먹는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매일 아침 콩과 우유를 먹는 것도 이런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콩은 가장 좋은 식물성 단백질로 평가받는다. 단백질을 챙기는 이유가 있다. 근육과 뼈 건강에 단백질은 필수다. 나이가 들면서 뇌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도 단백질이 있어야 한다. 권 교수는 “단백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먹어도 된다”며 “장수(長壽)에 있어 단백질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식사 말고도 즐기는 게 있다. 15년째 반신욕 애호가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반신욕을 15분 정도 한다. 엉덩관절(고관절) 환자에게도 반신욕을 추천한다. 매일 15분 정도 가슴에 땀이 맺힐 정도로 반신욕을 하면 통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반신욕을 할 때 상체의 체온은 낮고 하체 체온은 높다. 그 온도차를 극복하기 위해 심장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 결과 혈류량이 많아지고 순환이 잘되면서 부기와 통증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매일 저녁 집에서 노젓기 운동그는 선천적으로 고관절에 약간 이상이 있다.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근력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코어 근육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집 거실에 노 젓는 동작을 도와주는 로잉머신을 들여놨다. 매일 퇴근한 후 15∼30분 동안 열심히 노를 젓는다. 1분당 30회 정도 노를 젓는데, 이 정도면 상당히 높은 강도에 속한다. 이 운동은 15년째 지속 중이다. 어떤 점이 좋을까. 일단 코어 근육과 하체 근육을 강화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앉아서 하는 운동이라 체중이 무릎에 실리지 않아 관절에도 무리가 없다. 그러면서도 팔을 크게 휘젓다 보면 어깨 근육도 탄탄해진다. 권 교수는 “노 젓기 운동 덕분에 지금까지도 장시간 수술도 거뜬하다”며 웃었다. 소음이 발생하지 않아 이웃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그는 60대 이상 고령자에게 이 운동을 권했다. 권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젊은 사람과 동일한 시간을 운동하더라도 운동 효과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찍 퇴근한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으로 나간다. 일주일에 평균 2회 정도는 이런 식으로 2시간씩 자전거를 탄다. 주말에는 더 먼 곳까지 간다. 경기 가평까지 80㎞ 정도 자전거로 달린 후 전철을 타고 귀가한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것도 소소한 운동이 된다. 주말에 가끔 시간이 날 때는 산을 찾아 트레킹을 한다. 이처럼 운동을 꾸준히 하는 까닭이 있다. 80세가 된 후에도 환자를 치료하고 싶단다. 그러려면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현재의 노력은 미래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그는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0세 이후에 제2의 인생을 계획한다면 건강에 가장 신경을 쓰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케틀벨 하나로 근력 운동 해결”틈날 때마다 근력 운동을 하기에 좋은 것으로 케틀벨을 추천했다. 장비가 큰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으며 운동 동작도 다양하게 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8㎏짜리 케틀벨을 연구실과 집에 각각 두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한다. 몇 가지 동작만 따라해 보자. 각각의 동작은 12회씩 1∼4세트를 하면 된다. 권 교수가 추천하는 ‘케틀벨 운동’ ① 한쪽 발을 앞으로 내민 뒤 양쪽 무릎을 살짝 굽힌다. 상체를 곧게 세운 상태에서 캐틀벨을 팔 힘으로만 들어올린다. 팔꿈치 위쪽부터 어깨까지의 근육을 강화하는 데 좋다.② 어깨 넓이로 발을 벌리고 선다. 케틀벨을 양손으로 잡고 가슴까지 끌어올린다. 이어 가슴에서 바깥쪽으로 팔을 쭉 뻗는다. 가슴 부위의 근육을 키우는 데 좋다. ③ 케틀벨을 양손으로 잡은 상태에서 스쾃 자세를 취한다. 케틀벨을 쥔 팔은 가슴 쪽에 둔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코어 근육 강화에 도움을 준다. ④ 케틀벨을 양손으로 잡은 상태에서 천천히 상체를 구부린다. 이어 상체를 폈다가 다시 구부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엉덩이 부위, 고관절 근육과 등 근육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권순용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63)는 여느 의사보다 바쁜 50대를 보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성바오로병원장과 은평성모병원장을 내리 지냈다. 지난해까지 3개 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여기다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만큼 운동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헬스클럽에 갈 여유도 없었다. 대신 연구실과 집에서 짬을 내 운동했다. 잠이 모자라면 쪽잠을 자듯이 ‘쪽운동’을 한 셈이다. 권 교수는 “일부러 시간을 정해서 운동한다면 스포츠다. 일상 생활에서 틈날 때마다 하는 것이 진짜 운동”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잘 먹고, 잘 운동하고, 잘 자야 건강한 노후가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 원칙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수십 년째 지키고 있는 건강법을 들어봤다. ●20년간 콩+우유로 아침 해결 그의 고향은 강원도다. 2,3개월마다 고향에서 생산된 쥐눈이콩을 공수한다. 방앗간에서 콩을 곱게 빻은 뒤 냉동실에 얼려둔다. 이 콩가루가 아침 식사다. 밥 먹는 숟가락으로 콩가루를 두 번 가득 떠 그릇에 담는다. 이어 티스푼으로 현미 쌀눈을 수북하게 떠 그릇에 추가한다. 거기에 흰 우유 300cc를 넣는다. 숟가락을 10초 정도 저으면 내용물이 모두 녹는다. 단숨에 들이킨다. 20여 년간 유지하고 있는 아침 식사법이다. 40대 중반이 됐을 무렵 머리카락이 희끗해졌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당시에 콩을 먹으면 머리가 검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콩을 갈아서 아들에게 내밀었다. 초보 교수 시절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제대로 아침밥도 못 먹고 있었다. 간편하게 아침 식사를 대신할 수 있어 먹기 시작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다. 머리가 검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탈모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족이 모두 탈모가 조금씩 있는데 나만 머리숱이 많습니다. 콩에 들어있는 성분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콩 안에 있는 이소플라본 성분에 주목한다.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데 뼈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교수는 동물 실험을 통해 이소플라본의 이런 효능을 확인하기도 했다. 포만감도 꽤 있다. ‘콩 우유’ 식사를 한 후 시장기를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단다. 장 건강에도 효과를 봤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변비 증세를 경험한 적이 없다. 이런 이점 덕분일까. 비슷한 또래의 동료 교수들은 나이가 들면서 영양제를 한두 개씩 먹지만 권 교수는 먹지 않는단다. ●단백질 넉넉히 먹고 반신욕 즐겨 콩을 좋아하지만 특정 음식만 먹는 원 푸드 다이어트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점심과 저녁에는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는 일반적인 식사를 한다. 단 고혈압 가족력이 있어서 짠 음식은 피한다. 이를테면 국은 싱겁게 해서 먹고, 짠 맛이 강한 찌개는 가급적 먹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배가 너무 부를 정도로 먹지 않는다. 이른바 소식(小食)이다. 권 교수에게는 음식 철학이 있다. 어떤 경우든 하루 단백질 권장량은 채운다는 것이다. 만약 점심이나 저녁에 탄수화물 위주로 식사했다면 집에 들어간 후 계란 두 개 정도를 추가로 먹는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매일 아침 콩과 우유를 먹는 것도 이런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콩은 가장 좋은 식물성 단백질로 평가받는다. 단백질을 챙기는 이유가 있다. 근육과 뼈 건강에 단백질은 필수다. 나이가 들면서 뇌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도 단백질이 있어야 한다. 권 교수는 “단백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먹어도 된다”며 “장수(長壽)에 있어 단백질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식사 말고도 즐기는 게 있다. 15년째 반신욕 애호가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반신욕을 15분 정도 한다. 엉덩관절(고관절) 환자에게도 반신욕을 추천한다. 매일 15분 정도 가슴에 땀이 맺힐 정도로 반신욕을 하면 통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반신욕을 할 때 상체의 체온은 낮고 하체 체온은 높다. 그 온도차를 극복하기 위해 심장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 결과 혈류량이 많아지고 순환이 잘 되면서 붓기와 통증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매일 저녁 집에서 노젓기 운동 그는 선천적으로 고관절에 약간 이상이 있다.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근력도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코어 근육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집 거실에 노 젓는 동작을 도와주는 로잉머신을 들여놨다. 매일 퇴근한 후 15~30분 동안 열심히 노를 젓는다. 1분당 30회 정도의 노를 젓는데, 이 정도면 상당히 높은 강도에 속한다. 이 운동은 15년째 지속중이다. 어떤 점이 좋을까. 일단 코어 근육과 하체 근육을 강화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앉아서 하는 운동이라 체중이 무릎에 실리지 않아 관절에도 무리가 없다. 그러면서도 팔을 크게 휘젓다보면 어깨 근육도 탄탄해진다. 권 교수는 “노 젓기 운동 덕분에 지금까지도 장시간 수술도 거뜬하다”며 웃었다. 소음이 발생하지 않아 이웃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그는 60대 이상 고령자에게 이 운동을 권했다. 권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젊은 사람과 동일한 시간을 운동하더라도 운동 효과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찍 퇴근한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으로 나간다. 일주일에 평균 2회 정도는 이런 식으로 2시간씩 자전거를 탄다. 주말에는 더 먼 곳까지 간다. 경기 가평까지 80㎞ 정도 자전거로 달린 후 전철을 타고 귀가한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것도 소소한 운동이 된다. 주말에 가끔 시간이 날 때는 산을 찾아 트레킹을 한다. 이처럼 운동을 꾸준히 하는 까닭이 있다. 80세가 된 후에도 환자를 치료하고 싶단다. 그러려면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현재의 노력은 미래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그는 “건강을 잃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60세 이후에 제2의 인생을 계획한다면 건강에 가장 신경을 쓰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캐틀벨 하나로 근력 운동 해결” 틈날 때마다 근력 운동을 하기에 좋은 것으로 캐틀벨을 추천했다. 장비가 큰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으며 운동 동작도 다양하게 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8㎏짜리 캐틀벨을 연구실과 집에 각각 두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한다. 몇 가지 동작만 따라해 보자. 각각의 동작은 12회씩 1~4세트를 하면 된다. ① 한쪽 발을 앞으로 내민 뒤 양쪽 무릎을 살짝 굽힌다. 상체를 곧게 세운 상태에서 캐틀벨을 팔 힘으로만 들어올린다. 팔꿈치 위쪽부터 어깨까지의 근육을 강화하는 데 좋다. ② 어깨 넓이로 발을 벌리고 선다. 캐틀벨을 양손으로 잡고 가슴까지 끌어올린다. 이어 가슴에서 바깥쪽으로 팔을 쭉 뻗는다. 가슴 부위의 근육을 키우는 데 좋다. ③ 캐틀벨을 양손으로 잡은 상태에서 스쾃 자세를 취한다. 캐틀벨을 쥔 팔은 가슴 쪽에 둔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코어 근육 강화에 도움을 준다. ④ 캐틀벨을 양손으로 잡은 상태에서 천천히 상체를 구부린다. 이어 상체를 폈다가 다시 구부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엉덩이 부위, 고관절 근육과 등 근육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30대 초반 직장인 A 씨는 녹내장 환자다. 10년 전에 시력교정 수술을 받으러 안과에 갔다가 우연히 병을 발견했다. A 씨는 녹내장의 진행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은 덕분에 병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같은 나이인 B 씨도 비슷한 시기에 녹내장을 발견했다. 하지만 A 씨와 달리 눈앞이 흐릿한 증세가 이미 나타났고, 진단 결과 꽤 진행된 상태였다. 녹내장 진행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를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안압을 조절하기 위한 수술도 했지만 결국 한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지금은 나머지 한쪽 눈으로 살아가고 있다. 똑같은 녹내장인데 두 사람의 결과는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황영훈 센트럴서울안과 원장은 “녹내장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원장은 “어떤 녹내장인지 파악한 뒤 맞춤형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녹내장 진단과 새로운 수술 방법 등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의사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130여 편의 녹내장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발표했다.●녹내장, 얼마나 알고 있나12일은 세계녹내장협회가 지정한 ‘세계 녹내장의 날’이다. 녹내장은 당뇨병성망막증, 황반변성과 함께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3대 질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녹내장과 백내장을 혼동한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질병이다. 백내장은 수정체 질환이다. 투명해야 할 수정체가 혼탁해지면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백내장이라 부른다. 황 원장은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처럼 수정체가 노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탁해진 수정체를 인공 수정체로 교환하면 치료가 끝난다. 녹내장은 시신경 질환이다. 안압이 높아지면서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발생한다. 황 원장은 “안압이 상승하면 눈동자가 푸르스름하게 보이기 때문에 녹내장이라 부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녹내장의 발생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안압 상승과 노화가 지목된다. 대부분 초기 증세가 없다.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시야가 흐릿해지고, 심한 경우엔 실명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녹내장을 ‘소리 없이 실명을 유발하는 병’이라 부른다. 주로 40대 이후에 많이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20, 30대 젊은 층에서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녹내장은 백내장과 달리 완치가 어렵다. 병의 진행을 막는 치료만 가능하다. 안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을 투입하며, 상태가 개선되지 않거나 악화되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모든 녹내장이 당장 실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황 원장은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몇 달 만에 실명이 될 수도 있지만 수십 년 이후에도 시력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어떤 유형의 녹내장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순한 녹내장 vs 치명적 녹내장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유형은 정상 안압 녹내장이다. 전체 녹내장 환자의 70∼80%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안압이 정상 범위인 10∼20mmHg인데도 발생한다. 선천적인 요인이나 고도 근시, 눈 혈액 순환 장애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A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정상 안압 녹내장은 너무 늦지 않게 발견하고 적절히 치료하면 진행 속도를 현저하게 늦춰 실명을 막을 수 있다. 이른바 ‘순한 녹내장’인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안압 조절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안압이 정상 범위라 해도 높게 나타나면 건강한 사람과 달리 눈의 신경섬유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압을 낮추는 약물을 주입하면서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해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정상 안압 녹내장을 제외한 나머지 20∼30%는 실명 위험이 비교적 높다. 각각의 증세를 면밀히 알아두는 게 좋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살펴보자. 가장 실명 위험이 높은 유형은 신생 혈관 녹내장이다. 망막 질환 등으로 인해 눈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새로운 혈관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녹내장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이 안 보이거나 시력이 뚝 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이 경우 원인 질환인 망막 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포도막염 녹내장은 눈 속 포도막이란 부위에 염증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염증 물질이 눈에서 만들어진 물(방수)이 배출되는 길을 막는다. 그 결과 안압이 상승하면서 생기는 녹내장이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보이고 눈이 충혈되는 특징이 있다. 안압을 조절하면서 포도막염을 치료해야 한다. 폐쇄각 녹내장은 방수가 지나가는 길이 갑자기 막히면서 발생한다. 이 경우 △심한 두통 △시력 저하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방수 배출로를 여는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연소 개방각 녹내장은 40세 이하 나이에 생기는 녹내장이다. 겉으로 봐서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 않지만 높은 안압 때문에 시신경이 점차 손상돼 처음 발견 때 이미 녹내장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B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녹내장 예방하려면 안압 주의녹내장을 예방하거나 증세 악화를 막으려면 안압을 낮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안압을 낮추는 약물을 매일 주기적으로 투입하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일상생활에서 안압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을 피하는 게 현실적이다. 잠을 잘 때는 반듯하게 천장을 보고 자는 게 좋다. 엎드려 자면 양쪽 눈이 눌리면서 안압을 높이기 때문이다. 물을 마시는 속도는 상관없지만 많은 양을 한 번에 마시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보통 5분 이내에 1L의 물을 마시면 몸 안의 수분이 배출되지 않아 안압이 높아질 수 있다. 생맥주 500cc 두 잔을 연거푸 마신다면 녹내장이 악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를 빼면 적은 양의 술은 안압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흡연은 절대 피해야 한다. 황 원장은 “술과 달리 흡연은 그 자체만으로 안압을 높일 뿐 아니라 혈액 순환도 방해하기 때문에 눈 건강에는 최악의 적”이라고 말했다. 물구나무서기와 같이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는 동작은 안압을 올린다. 힘껏 바람을 불어대는 금관악기 연주도 마찬가지다. 변비가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 용변을 보려고 배에 힘을 세게 주면 안압이 오른다. 호흡을 고르게 하면서 용변을 봐야 한다. 이와 별도로 항산화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황 원장은 “항산화 물질이 시신경을 보호해 준다는 동물실험과 세포 수준 단계의 실험 결과가 보고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녹내장 악화 막으려면 유산소 운동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과 같은 유산소 운동은 녹내장의 진행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해서 안압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면서 시신경에 충분한 혈액과 영양을 공급한다. 덕분에 시신경의 손상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수영을 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너무 꽉 끼는 물안경을 착용하면 안압을 높일 수 있다. 오래 잠수하는 건 좋지 않다. 황 원장은 “1분 정도 호흡을 참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 길어지면 안압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근력 운동은 안압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녹내장 환자는 근력 운동을 해서는 안 되는 걸까. 아니다. 황 원장에 따르면 △앉거나 선 상태에서 △강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않고 △숨을 고르면서 근력 운동을 하면 괜찮다. 똑같은 역기를 들더라도 누워서 하면 안압을 높이지만 서서 천천히 하면 안압을 높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 원장은 “녹내장 말기만 아니라면 배와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못에 핏줄이 드러나며 얼굴이 빨갛게 변할 정도로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황 원장은 추가로 안과 정기검진을 권했다. 만약 고도 근시에다 가족력이 있다면 20대 때부터 정기적으로 눈 건강을 체크해야 한다. 40대 이후에는 매년 안압 검사와 안저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이 두 가지 검사만으로 녹내장은 웬만큼 진단이 가능하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30대 초반 직장인 A 씨(가명)는 녹내장 환자다. 10년 전에 시력교정 수술을 받으러 안과에 갔다가 우연히 병을 발견했다. A 씨는 녹내장의 진행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은 덕분에 병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같은 나이인 B 씨(가명)도 비슷한 시기에 녹내장을 발견했다. 하지만 A 씨와 달리 눈앞이 흐릿한 증세가 이미 나타났고, 진단 결과 꽤 진행된 상태였다. 녹내장 진행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를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안압을 조절하기 위한 수술도 했지만 결국 한 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지금은 나머지 한 쪽 눈으로 살아가고 있다. 똑같은 녹내장인데 두 사람의 결과는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황영훈 센트럴서울안과 원장은 “녹내장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원장은 “어떤 녹내장인지 파악한 뒤 맞춤형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녹내장 진단과 새로운 수술 방법 등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의사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130여 편의 녹내장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발표했다. ● 녹내장, 얼마나 알고 있나 12일은 세계녹내장협회가 지정한 ‘세계 녹내장의 날’이다. 녹내장은 당뇨병성망막증, 황반변성과 함께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3대 질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녹내장과 백내장을 혼동한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질병이다. 백내장은 수정체 질환이다. 투명해야 할 수정체가 혼탁해지면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백내장이라 부른다. 황 원장은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처럼 수정체가 노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탁해진 수정체를 인공 수정체로 교환하면 치료가 끝난다. 녹내장은 시신경 질환이다. 안압이 높아지면서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발생한다. 황 원장은 “안압이 상승하면 눈동자가 푸르스름하게 보이기 때문에 녹내장이라 부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녹내장의 발생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안압 상승과 노화가 지목된다. 대부분 초기 증세가 없다. 한창 진행되고 나서야 시야가 흐릿해지고, 심한 경우엔 실명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녹내장을 ‘소리 없이 실명을 유발하는 병’이라 부른다. 주로 40대 이후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20,30대 젊은 층에서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녹내장은 백내장과 달리 완치가 어렵다. 병의 진행을 막는 치료만 가능하다. 안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을 투입하며, 상태가 개선되지 않거나 악화되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모든 녹내장이 당장 실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황 원장은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몇 달 만에 실명이 될 수도 있지만 수십 년 이후에도 시력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어떤 유형의 녹내장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 순한 녹내장 vs 치명적 녹내장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유형은 정상 안압 녹내장이다. 전체 녹내장 환자의 70~80%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안압이 정상 범위인 10~20㎜Hg인데도 발생한다. 선천적인 요인이나 고도 근시, 눈 혈액순환 장애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A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정상 안압 녹내장은 너무 늦지 않게 발견하고 적절히 치료하면 진행 속도를 현저하게 늦춰 실명을 막을 수 있다. 이른바 ‘순한 녹내장’인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안압 조절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안압이 정상 범위라 해도 높게 나타나면 건강한 사람과 달리 눈의 신경섬유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압을 낮추는 약물을 주입하면서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해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정상 안압 녹내장을 제외한 나머지 20~30%는 실명 위험이 비교적 높다. 각각의 증세를 면밀히 알아두는 게 좋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살펴보자. 가장 실명 위험이 높은 유형은 신생 혈관 녹내장이다. 망막질환 등으로 인해 눈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새로운 혈관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녹내장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이 안 보이거나 시력이 뚝 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이 경우 원인 질환인 망막 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포도막염 녹내장은 눈 속 포도막이란 부위에 염증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염증 물질이 눈에서 만들어진 물(방수)이 배출되는 길을 막는다. 그 결과 안압이 상승하면서 생긴 녹내장이다. 갑자기 눈 앞이 뿌옇게 보이고 눈이 충혈되는 특징이 있다. 안압을 조절하면서 포도막염을 치료해야 한다. 폐쇄각 녹내장은 방수가 지나가는 길이 갑자기 막히면서 발생한다. 이 경우 △심한 두통 △시력 저하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방수 배출로를 여는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연소 개방각 녹내장은 40세 이하 나이에 생기는 녹내장이다. 겉으로 봐서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 않지만 높은 안압 때문에 시신경 손상이 점차 진행돼 처음 발견 때 이미 녹내장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B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 녹내장 예방하려면 안압 주의 녹내장을 예방하거나 증세 악화를 막으려면 안압을 낮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안압을 낮추는 약물을 매일 주기적으로 투입하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일상 생활에서 안압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을 피하는 게 현실적이다. 잠을 잘 때는 반듯하게 천장을 보고 자는 게 좋다. 엎드려 자면 양쪽 눈이 눌리면서 안압을 높이기 때문이다. 물을 마시는 속도는 상관없지만 많은 양을 한 번에 마시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보통 5분 이내에 1L의 물을 마시면 몸 안의 수분이 배출되지 않아 안압이 높아질 수 있다. 생맥주 500cc 두 잔을 연거푸 마신다면 녹내장이 악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를 빼면 적은 양의 술은 안압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흡연은 절대 피해야 한다. 황 원장은 “술과 달리 흡연은 그 자체만으로 안압을 높일 뿐 아니라 혈액 순환도 방해하기 때문에 눈 건강에는 최악의 적”이라고 말했다. 물구나무 서기와 같이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는 동작은 안압을 올린다. 힘껏 바람을 불어대는 금관악기 연주도 마찬가지다. 변비가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 용변을 보려고 배에 힘을 세게 주면 안압이 오른다. 호흡을 고르게 하면서 용변을 봐야 한다. 이와 별도로 항산화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황 원장은 “항산화 물질이 시신경을 보호해 준다는 동물실험과 세포 수준 단계의 실험 결과가 보고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녹내장 예방과 진행을 막기 위한 생활 수칙1. 물구나무 서기나 머리를 낮추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2. 바닥에 엎드려 잠을 자지 않는다. 3.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한다. 4. 술은 줄이되 담배는 확실히 끊는다. 5. 근력 운동은 낮은 강도로 앉거나 서서 한다. 6. 배나 가슴, 목에 힘을 주는 동작을 하지 않는다.7. 40대 이후에는 매년 안과 검진을 받는다. 자료 : 황영훈 센트럴서울안과 원장 ● 녹내장 악화 막으려면 유산소 운동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과 같은 유산소 운동은 녹내장의 진행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해서 안압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면서 시신경에 충분히 혈액과 영양을 공급한다. 덕분에 시신경의 손상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수영을 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너무 꽉 끼는 물안경을 착용하면 안압을 높일 수 있다. 오래 잠수하는 건 좋지 않다. 황 원장은 “1분 정도 호흡을 참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 길어지면 안압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근력 운동은 안압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녹내장 환자는 근력 운동을 해서는 안 되는 걸까. 아니다. 황 원장에 따르면 △앉거나 선 상태에서 △강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않고 △숨을 고르면서 근력 운동을 하면 괜찮다. 똑같은 역기를 들더라도 누워서 하면 안압을 높이지만 서서 천천히 하면 안압을 높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 원장은 “녹내장 말기만 아니라면 배와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못에 핏줄이 드러나며 얼굴이 빨갛게 변할 정도로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황 원장은 추가로 안과 정기검진을 권했다. 만약 고도 근시에다 가족력이 있다면 20대 때부터 정기적으로 눈 건강을 체크해야 한다. 40대 이후에는 매년 안압 검사와 안저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이 두 가지 검사만으로 녹내장은 웬만큼 진단이 가능하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피아노 조율사 손재신 씨(67)는 ‘선천성 B형 간염 환자’다. 임산부였던 어머니로부터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전염됐다. 출산할 때 혹은 출산 직후 어머니의 혈액 등에 있던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자식에게 전달되는, 이른바 수직 감염이다. 같은 이유로 손 씨의 형제 모두가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이런 경우 간암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손 씨는 그러지 못했다. 먹고사는 게 더 급하던 시절이었다. 당장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잊고 살 수 있었다. 수십 년이 흘렀다. 언젠가부터 몸이 조금씩 나빠졌다. 피로감이 극심했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다리의 부기와 통증도 심해졌다. 그래도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곧바로 달려갔다. 일을 끝내고 나면 더 힘들어졌다. 몸이 힘드니 짜증도 늘었다. 황달 증세도 나타났다. 하지만 병원에는 차마 가지 못했다. 의사가 큰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내릴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만 끌었다. 2016년 가을, 보다 못한 아내가 그의 팔을 잡고 병원에 데려갔다. 무려 30여 년 만의 병원 방문이었다. ●“간경화에 간암 겹쳐, 간 이식이 최선”우려는 현실이 됐다. 의사는 손 씨의 부은 다리를 살피고는,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눌린 부위는 곧바로 복원되지 않았다. 간경화가 꽤 진행됐을 때 나타나는 증세다. 간 기능이 심하게 떨어지면 알부민이란 단백질 수치가 낮아진다. 그러면 수분의 양이 조절되지 않아 소변이 잘 안 나올 수 있다. 이때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붓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간에서 혹이 발견됐다. 간암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암은 초기 단계였다. 의료진은 일종의 항암 치료인 간암 색전술을 시행했다. 간암 세포와 연결된 동맥에 항암제를 투입해 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진척이 없는 듯했다. 한 달 뒤 손 씨는 최동호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를 찾았다. 최 교수는 치료법을 놓고 고민했다. 간암 색전술을 다시 시행하거나 암이 있는 부위만 절제하는 수술도 고려했지만 간경화가 심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간 이식 수술만이 간암과 간경화 모두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최 교수는 손 씨와 가족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손 씨에게 간을 공여할 가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간 이식은 성공률이 높지만 공여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했다. 설령 가족이라도 자신의 장기를 선뜻 내어주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간 이식 수술이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 공여, 당연한 일”손 씨에게는 장성한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최 교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작은아들 영석 씨(36)가 간 공여를 자청했다. 당시 대학원 때부터 전공해 온 음악과 영상 촬영 분야에서 한창 일을 하던 시점이었다. 수술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의료진이 이식 수술로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자식으로서 간을 떼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남편과 자식, 두 사람을 수술대로 보내야 했던 어머니가 더 걱정이 됐단다. 2016년 12월 손 씨와 아들 영석 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최 교수는 아들의 간 60%를 절제해 아버지에게 이식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회복기를 거친 후 손 씨는 ‘정상인’이 됐다. 무려 60여 년 만에 간 질환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아들의 간을 받은 아버지는 늘 미안하다. 손 씨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 미안하고, 배와 가슴에 L자 형태로 나 있는 수술 자국을 보면 죄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석 씨는 수술 흉터를 ‘훈장’으로 생각한다. 사실 간을 절반 넘게 잘라내도 큰 문제는 없다. 최 교수는 “(간은) 크기는 작아지지만 제 기능을 다한다. 게다가 1주일에서 한 달 사이에 원래 크기의 80% 정도까지는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들 영석 씨는 1주일 만에 원래 크기의 90%까지 간이 자라났다. 투병하는 동안 가족의 결속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손 씨가 수술하기 전까지는 가족이라 해도 각자 사느라 바빴다. 손 씨는 “가장 큰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웬만한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식이 커졌다. 모두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웃었다. ●“간암 완치돼도 4년마다 정기 검사해야”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이식 거부 반응이 심하게 온 것이다. 원래 간 이식 거부 반응은 흔하다. 최 교수에 따르면 수술 후 1년 이내에 한 번 정도는 ‘으레’ 거친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을 뿐이다. 손 씨는 달랐다. 이식 수술이 끝나고 3년이 지날 무렵 이식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황달 증세부터 시작해 예전의 여러 증세가 도졌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손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래도 의료진을 믿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제제를 써서 면역 반응을 무력화시켰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손 씨는 암에 걸린 간을 완전히 들어냈기에 따로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물론 간경화 합병증도 모두 사라졌다. 이식 수술이 성공하면서 동시에 간암 완치 판정을 받은 셈이다. 올해로 완치 7년째를 맞은 손 씨는 전성기 못지않게 활기차게 일한다. 하지만 4개월마다 최 교수를 만나야 한다. 간 기능을 체크하고, B형 간염의 재발 여부를 살핀다. 면역 억제제는 평생 복용해야 한다. 이 또한 주기적으로 투약 분량을 조절해야 한다. 너무 많으면 신장 기능이 떨어지거나 면역 기능이 지나치게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적으면 면역 반응이 일어나 장기가 공격받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간암 환자는 완치 이후에도 평생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손 씨는 ‘모범 환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약 복용을 빠뜨린 적이 없다. 다만 최근 들어 지방간이 나타나면서 운동 부족을 지적받는다. 최 교수는 “완치 후 5년을 넘기면서 몸이 좋아지면 방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경우 재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 씨는 앞으로 운동량을 늘리겠다고 다짐했다. ●“간암, 증세 나타나기 전에 예방해야” 최 교수는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했다. 간암에 걸려도 악화되기 전까지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피로, 무기력, 오른쪽 윗배 불편, 체중 감소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경우 이미 암이 꽤 진행된 후일 수도 있다. 따라서 평소 간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특히 B형 간염, C형 간염, 알코올 간 질환자와 같은 고위험군일수록 관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간암 환자의 70% 이상은 이런 고위험군에서 발생한다. 우선 고위험군이 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B형 간염 예방 백신을 접종받아 항체를 만들어야 한다. C형 간염은 주로 혈액이나 성관계로 감염된다. 아직 예방 백신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혈액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손톱깎이나 면도기, 칫솔을 공유하지 않는 게 좋다. 문신이나 피어싱을 할 때도 1회용 장비인지 확인해야 한다. 알코올 간 질환의 경우 절주나 금주가 필수다. 고위험군이라면 암의 조기 발견을 위해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최 교수는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면 간암 발생 위험을 낮춘다. 의사와 상의해서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간암은 재발률이 비교적 높은 암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간암 수술 환자의 절반 정도는 3년, 70%는 5년 이내에 재발하거나 새로운 암이 발생한다. 하지만 동시에 치료 효과도 높아지고 있다. 최 교수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믿고, 평생 동반자라는 생각으로 치료하면 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피아노 조율사 손재신 씨(67)는 ‘선천성 B형 간염 환자’다. 임산부였던 어머니로부터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전염됐다. 출산할 때 혹은 출산 직후 어머니의 혈액 등에 있던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자식에게 전달되는, 이른바 수직 감염이다. 같은 이유로 손 씨의 형제 모두가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이런 경우 간암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손 씨는 그러지 못했다. 먹고 사는 게 더 급하던 시절이었다. 당장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잊고 살 수 있었다. 수십 년이 흘렀다. 언젠가부터 몸이 조금씩 나빠졌다. 피로감이 극심했다.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다리의 붓기와 통증도 심해졌다. 그래도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곧바로 달려갔다. 일을 끝내고 나면 더 힘들어졌다. 몸이 힘드니 짜증도 늘었다. 황달 증세도 나타났다. 하지만 병원에는 차마 가지 못했다. 의사가 큰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내릴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만 끌었다. 2016년 가을, 보다 못한 아내가 그의 팔을 잡고 병원에 갔다. 무려 30여 년 만의 병원 방문이었다. ● “간경화에 간암 겹쳐, 간 이식이 최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의사는 손 씨의 부은 다리를 살피고는,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눌린 부위는 곧바로 복원되지 않았다. 간경화가 꽤 진행됐을 때 나타나는 증세다. 간 기능이 심하게 떨어지면 알부민이란 단백질 수치가 낮아진다. 그러면 수분의 양이 조절되지 않아 소변이 잘 안 나올 수 있다. 이때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붓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간에서 혹이 발견됐다. 간암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암은 초기 단계였다. 의료진은 일종의 항암 치료인 간암 색전술을 시행했다. 간암 세포와 연결된 동맥에 항암제를 투입해 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진척이 없는 듯 했다. 한 달 뒤 손 씨는 최동호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를 찾았다. 최 교수는 치료법을 놓고 고민했다. 간암 색전술을 다시 시행하거나 암이 있는 부위만 절제하는 수술도 고려했지만 간경화가 심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간 이식 수술만이 간암과 간경화 모두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최 교수는 손 씨와 가족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손 씨에게 간을 공여할 가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간 이식은 성공률이 높지만 공여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했다. 설령 가족이라도 자신의 장기를 선뜻 내어주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간 이식 수술이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아들이 아버지에 간 공여, 당연한 일” 손 씨에게는 장성한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최 교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둘째 아들 영석 씨(36)가 간 공여를 자처했다. 당시 대학원 때부터 전공해 온 음악과 영상 촬영 분야에서 한창 일을 하던 시점이었다. 수술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의료진이 이식 수술로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자식으로서 간을 떼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남편과 자식, 두 사람을 수술대로 보내야 했던 어머니가 더 걱정이 됐단다. 2016년 12월, 손 씨와 아들 영석 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최 교수는 아들의 간 60%를 절제해 아버지에게 이식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회복기를 거친 후 손 씨는 ‘정상인’이 됐다. 무려 60여 년 만에 간 질환에서 완전 해방된 것이다. 아들의 간을 받은 아버지는 늘 미안하다. 손 씨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 미안하고, 배와 가슴에 L자 형태로 나 있는 수술 자국을 보면 죄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석 씨는 수술 흉터를 ‘훈장’으로 생각한다. 사실 간을 절반 넘게 잘라내도 큰 문제는 없다. 최 교수는 “(간은) 크기는 작아지지만 제 기능을 다 한다. 게다가 1주일에서 한 달 사이에 원래 크기의 80% 정도까지는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들 영석 씨는 1주일 만에 원래 크기의 90%까지 간이 자라났다. 투병하는 동안 가족의 결속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손 씨가 수술하기 전까지는 가족이라 해도 각자 사느라 바빴다. 손 씨는 “가장 큰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웬만한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식이 커졌다. 모두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웃었다. ● “간암 완치돼도 4년마다 정기 검사해야”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이식 거부 반응이 심하게 온 것이다. 원래 간 이식 거부 반응은 흔하다. 최 교수에 따르면 수술 후 1년 이내에 한 번 정도는 ‘으레’ 거친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을 뿐이다. 손 씨는 달랐다. 이식 수술이 끝나고 3년이 지날 무렵 이식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황달 증세부터 시작해 예전의 여러 증세가 도졌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손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래도 의료진을 믿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제제를 써서 면역 반응을 무력화시켰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손 씨는 암에 걸린 간을 완전히 들어냈기에 따로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물론 간경화 합병증도 모두 사라졌다. 이식 수술이 성공하면서 동시에 간암 완치 판정을 받은 셈이다. 올해로 완치 7년째를 맞은 손 씨는 전성기 못지않게 활기차게 일한다. 하지만 4개월마다 최 교수를 만나야 한다. 간 기능을 체크하고, B형 간염의 재발 여부를 살핀다. 면역 억제제는 평생 복용해야 한다. 이 또한 주기적으로 투약 분량을 조절해야 한다. 너무 많으면 신장 기능이 떨어지거나 면역 기능이 지나치게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적으면 면역 반응이 일어나 장기가 공격받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간암 환자는 완치 이후에도 평생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손 씨는 ‘모범 환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약 복용을 빠뜨린 적이 없다. 다만 최근 들어 지방간이 나타나면서 운동 부족을 지적받는다. 최 교수는 “완치 후 5년을 넘기면서 몸이 좋아지면 방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경우 재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 씨는 앞으로 운동량을 늘리겠다고 다짐했다. ● “간암, 증세 나타나기 전에 예방해야” 최 교수는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했다. 간암에 걸려도 악화되기 전까지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피로, 무기력, 오른쪽 윗배 불편, 체중 감소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경우 이미 암이 꽤 진행된 후일 수도 있다. 따라서 평소 간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특히 B형 간염, C형 간염, 알코올 간 질환자와 같은 고위험군일수록 관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간암 환자의 70% 이상은 이런 고위험군에서 발생한다. 우선 고위험군이 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B형 간염 예방 백신을 접종해 항체를 만들어야 한다. C형 간염은 주로 혈액이나 성관계로 감염된다. 아직 예방 백신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혈액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손톱깎이나 면도기, 칫솔을 공유하지 않는 게 좋다. 문신이나 피어싱을 할 때도 1회용 장비인지 확인해야 한다. 알코올 간 질환의 경우 절주나 금주가 필수다. 고위험군이라면 암의 조기 발견을 위해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최 교수는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면 간암 발생 위험을 낮춘다. 의사와 상의해서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간암은 재발률이 비교적 높은 암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간암 수술 환자의 절반 정도는 3년, 70%는 5년 이내에 재발하거나 새로운 암이 발생한다. 하지만 동시에 치료 효과도 높아지고 있다. 최 교수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믿고, 평생 동반자라는 생각으로 치료하면 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요즘 건강관리 목적으로 실내 자전거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59)는 30년 전에 그랬다. 실내 자전거는 TV 앞에 뒀다. 평소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다가도 TV를 켜면 반사적으로 자전거로 향했다. 지난해 12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카타르 월드컵 TV 중계를 볼 때였다. 우승 후보였던 포르투갈과의 H조 예선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자 정 교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열심히 페달을 밟다가 전반전이 끝나니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정 교수도 10분 동안 쉬었다. 이어 후반전. 황희찬 선수가 두 번째 골을 터뜨리면서 2-1로 역전승을 거두자 정 교수는 환호성을 질렀다. 자전거 위에서다. 정 교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 전도사’로 통한다. 자신의 전공 영역인 금연과 스트레스 관리를 강조해서만은 아니다. 그의 운동 철학 때문이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일상에서 운동하는 게 건강에 보탬이 되는 진짜 운동이라는 것이다. 실내 자전거 타기도 그런 철학에서 시작했다.●30년째 TV 보며 자전거 타기TV 보며 자전거 타기는 30대 초반에 시작했다. 시쳇말로 철근도 씹어 먹을 팔팔한 나이였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이유는 딱 하나. TV 보는 시간이 너무 아깝더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TV 뉴스는 꼭 챙겨 봤다. 문득 TV를 시청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처음에는 ‘러닝머신(트레드밀)’을 들여놓으려 했다. 하지만 층간 소음이 걱정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뉴스가 끝날 때까지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는 기구를 찾다가 실내 자전거에 꽂혔다. 그때부터 TV 뉴스를 볼 때면 자연스레 자전거에 올라탔다. 스포츠 뉴스가 끝날 때까지 페달을 밟았다. 대략 50분∼1시간 동안 ‘저절로’ 운동하게 된 셈이다. 이후로는 다른 TV 프로그램을 볼 때도 자전거를 탔다. 영화 한 편을 볼 때는 2시간 남짓 자전거를 탔다. 때로는 귀찮았고, 때로는 지쳤다. 소파의 아늑함이 그립기도 했다. 그때마다 유혹을 참아야 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아빠가 소파에서 TV를 보다 들키면 벌금을 낼게”라며 감시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사실 정 교수는 실내 자전거 외에 여러 운동에 도전해 봤다. 헬스클럽에서 몸도 만들어 봤고, 수영장에서 레슨도 받았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정 교수는 “대부분 한 달을 못 넘겼다. 수영은 세 번이나 등록했지만 모두 중도 포기했다”고 말했다. 실내 자전거만큼은 달랐다. 그러니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TV를 켜면 무조건반사처럼 자전거에 앉는다. 정 교수는 자신의 이 방법을 고스톱 게임에 비유하며 ‘일타쌍피’ 건강법이라 불렀다. 운동과 휴식, 혹은 운동과 문화생활을 동시에 한다는 뜻이다.●“연구실에 있을 때 운동량 가장 많아”집에서 실내 자전거 타는 재미가 붙자 연구실을 리모델링했다. 책상 앞에 있던 의자를 치웠다. 그 자리에 실내 자전거를 들여 놓았다. 처음에는 자전거 핸들에 열량 소모량을 알 수 있는 장치를 달았다. 하루에 얼마나 운동을 많이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에는 일회용 옷걸이로 책 받침대를 만들어 핸들에 설치했다. 자전거를 타며 가벼운 소설은 뚝딱 읽었다. 지금은 자전거 핸들에 또 다른 작업대가 설치돼 있다. 컴퓨터 키보드와 모니터가 그 위에 있다. 컴퓨터 작업을 하려면 자전거를 타야 한다. 정 교수는 오전 8시 반에 출근한 후부터 퇴근할 때까지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탄다. 일단 자전거에 오르면 최소한 50분은 페달을 밟는다. 진료가 없는 날에는 4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물론 진료 일정이 빡빡한 날에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평균적으로 매주 4, 5일은 자전거를 타는 셈이다. 정 교수는 “연구실에 오래 있는 날이 운동량이 가장 많은 날”이라며 웃었다. 실내 자전거 타기만 30년. 효과는 어떨까. 그는 “확실하게 건강관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중년 이후의 남성에게 나타날 수 있는 위험 신호가 거의 없다. 혈당과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정상이다. 게다가 신체 사이즈의 변동 폭이 거의 없다. 그는 30여 년째 키 178cm, 몸무게 75kg을 유지하고 있다.●헬스클럽 아닌 일터에서 근력 운동30년 동안 자전거를 탔기에 정 교수의 하체 근육량은 동년배 남성을 크게 앞섰다. 다만 상체 근육량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7년 전부터 상체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먼저 연구실에 턱걸이 장치를 설치했다. 자전거를 타다 엉덩이가 배긴다 싶으면 턱걸이를 했다. 처음에는 단 1개도 성공하지 못했다. 매달리기라도 하자고 마음먹고 계속 도전했다. 1개, 2개 늘어나더니 지난해 초에는 10개를 돌파했다. 현재는 턱걸이 15개는 거뜬해졌다. 정 교수는 연말까지 20개 돌파를 목표로 설정했다. 팔굽혀펴기도 자주 한다. 연구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10개씩 하자고 마음먹었다. 하루에 3회만 출입해도 30회를 하는 셈이다. 팔굽혀펴기 횟수도 점차 늘려 나갔다. 지금은 한 번 시작하면 70개는 거뜬하다. 정 교수는 “팔굽혀펴기와 턱걸이, 두 가지만으로도 헬스클럽에 가지 않고 상체 근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은 빠지면 ‘중독’되는 것일까. 정 교수는 그 밖에도 여러 운동을 한다. 산을 좋아해서 매달 한 번 정도는 꼭 등산을 한다. 2019년에 안나푸르나 트레킹도 다녀왔지만 대체로는 가까운 산을 주로 다닌다. 아파트 탁구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매주 2, 3회 저녁 시간에 1시간 반 정도 탁구를 즐긴다. 정 교수는 “1시간 반 정도만 탁구를 해도 걸음 수가 8000보 정도 된다. 돈도 별로 안 들고 부상 위험도 적은 데다 실내 운동이라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가정과 직장서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최고”정 교수가 현재 하고 있는 운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끔 야외 운동을 하지만 대부분 실내 운동이라는 점이다. 정 교수는 일터나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실내 운동이 야외 운동보다 실패 확률이 낮다고 했다. 언제든지 바로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새벽 달리기를 하겠다며 큰맘 먹고 운동화를 사 놓고도 새벽에 비가 오면 ‘내일부터 해야지’ 하며 자버리는 사람을 여럿 봤다”며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서 운동할 수 있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근무 시간이나 공부 시간, 혹은 집안일을 하면서 틈틈이 할 수 있는 운동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이를테면 주부들은 설거지할 때 스쾃 운동을 하면 된다. 뻣뻣하게 서서 허리를 구부리면 허리 질환 위험성이 높아지지만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스쾃 자세를 하면 하체 근력이 튼튼해진다는 것이다. 직장인들도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출퇴근 시간에도 운동은 가능하다.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기보다는 서서 약한 강도로 스쾃을 할 수 있다. 혹은 뒷발을 살짝 들어올려 몸을 지탱하는 자세를 유지하면 종아리 근육이 튼튼해진다. 손잡이를 안 잡고 두 다리로 버티는 것도 하체 근력 강화에 효과가 있다. 건강에 좋은 식단은 따로 있을까. 정 교수는 “난 식단 관리를 따로 하지 않는다”며 “건강에 가장 좋은 식사법은 골고루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운동을 많이 하면 맛있는 음식이 더 생각난다. 그럴 때면 열심히 땀을 흘린 보상으로 충분히 먹는 방법을 택한다. 다만 소량이지만 몸에 꼭 필요한 미네랄이 결핍될 수도 있어 종합비타민제 한 종류는 먹고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요즘 건강 관리 목적으로 실내 자전거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59)는 30여 년 전에 그랬다. 실내 자전거는 TV 앞에 뒀다. 평소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다가도 TV를 켜면 반사적으로 자전거로 향했다. 지난해 12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카타르 월드컵 TV 중계를 볼 때였다. 우승 후보였던 포르투갈과의 H조 예선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자 정 교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열심히 페달을 밟다가 전반전이 끝나니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정 교수도 10분 동안 쉬었다. 이어 후반전. 황희찬 선수가 두 번째 골을 터뜨리면서 2대 1로 역전승을 거두자 정 교수는 환호성을 질렀다. 자전거 위에서다. 정 교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 전도사’로 통한다. 자신의 전공 영역인 금연과 스트레스 관리를 강조해서만은 아니다. 그의 운동 철학 때문이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일상에서 운동하는 게 건강에 보탬이 되는 진짜 운동이라는 것이다. 실내 자전거 타기도 그런 철학에서 시작했다. ●30여 년째 TV 보며 자전거 타기 TV 보며 자전거 타기는 30대 초반에 시작했다. 시쳇말로 철근도 씹어 먹을 팔팔한 나이였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이유는 딱 하나. TV 보는 시간이 너무 아깝더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TV 뉴스는 꼭 챙겨봤다. 문득 TV를 시청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시행에 옮겼다. 처음에는 이른바 ‘러닝머신(트레드 밀)’을 들여놓으려 했다. 하지만 층간 소음이 걱정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뉴스가 끝날 때까지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는 기기구를 찾다가 실내 자전거에 꽂혔다. 그때부터 TV 뉴스를 볼 때면 자연스레 자전거에 올라탔다. 스포츠 뉴스가 끝날 때까지 페달을 밟았다. 대략 50분~1시간 동안 ‘저절로’ 운동하게 된 셈이다. 이후로는 다른 TV 프로그램을 볼 때도 자전거를 탔다. 영화 한 편을 볼 때는 2시간 남짓 자전거를 탔다. 때로는 귀찮았고, 때로는 지쳤다. 소파의 아늑함이 그립기도 했다. 그때마다 유혹을 참아야 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아빠가 소파에서 TV를 보다 들키면 벌금을 낼게”라며 감시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사실 정 교수는 실내 자전거 외에 여러 운동에 도전해봤다. 헬스클럽에서 몸도 만들어봤고, 수영장에서 레슨도 받았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정 교수는 “대부분 한 달을 못 넘겼다. 수영은 세 번이나 등록했지만 모두 중도 포기했다”고 말했다. 실내 자전거만큼은 달랐다. 그러니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TV를 켜면 무조건반사처럼 자전거에 앉는다. 정 교수는 자신의 이 방법을 고스톱 게임에 비유하며 ‘일타쌍피’ 건강법이라 불렀다. 운동과 휴식, 혹은 운동과 문화 생활을 동시에 한다는 뜻이다. ●“연구실에 있을 때 운동량 가장 많아” 집에서 실내 자전거 타는 재미가 붙자 연구실을 리모델링했다. 책상 앞에 있던 의자를 치웠다. 그 자리에 실내 자전거를 들여 놓았다. 처음에는 자전거 핸들에 열량 소모량을 알 수 있는 장치를 달았다. 하루에 얼마나 운동을 많이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에는 일회용 옷걸이로 책 받침대를 만들어 핸들에 설치했다. 자전거를 타며 가벼운 소설은 뚝딱 읽었다. 지금은 자전거 핸들에 또 다른 작업대가 설치돼 있다. 컴퓨터 키보드와 모니터가 그 위에 있다. 컴퓨터 작업을 하려면 자전거를 타야 한다. 정 교수는 오전 8시 반에 출근한 후부터 퇴근할 때까지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탄다. 일단 자전거에 오르면 최소한 50분은 페달을 밟는다. 진료가 없는 날에는 4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물론 진료 일정이 빡빡한 날에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평균적으로 매주 4,5일 동안 자전거를 타는 셈이다. 정 교수는 “연구실에 오래 있는 날이 가장 운동량이 많은 날”이라며 웃었다. 실내 자전거 타기만 30여 년. 효과는 어떨까. 그는 “확실하게 건강 관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중년 이후의 남성에게 나타날 수 있는 위험 신호가 거의 없다. 혈당과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정상이다. 게다가 신체의 변동 폭이 거의 없다. 그는 30여 년째 키 178㎝, 몸무게 75㎏을 유지하고 있다. ●헬스클럽 아닌 일터에서 근력 운동 30년 동안 자전거를 탔기에 정 교수의 하체 근육량은 동년배 남성을 크게 앞선다. 다만 상체 근육량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7년 전부터 상체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먼저 연구실에 턱걸이 장치를 설치했다. 자전거를 타다 엉덩이가 배긴다 싶으면 턱걸이를 했다. 처음에는 단 1개도 성공하지 못했다. 매달리기라도 하자고 마음먹고 계속 도전했다. 1개, 2개 늘어나더니 지난해 초에는 10개를 돌파했다. 현재는 턱걸이 15개는 거뜬해졌다. 정 교수는 연말까지 20개 돌파를 목표로 설정했다. 팔굽혀펴기도 자주 한다. 연구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10개씩 하자고 마음먹었다. 하루에 3회만 출입해도 30회를 하는 셈이다. 팔굽혀펴기 횟수도 점차 늘려나갔다. 지금은 한 번 시작하면 70개는 거뜬하다. 정 교수는 “팔굽혀펴기와 턱걸이, 두 가지만으로도 헬스클럽에 가지 않고 상체 근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은 빠지면 ‘중독’되는 것일까. 정 교수는 그밖에도 여러 운동을 한다. 산을 좋아해서 매달 한 번 정도는 꼭 등산을 한다. 2019년에 안나푸르나 트래킹도 다녀왔지만 대체로는 가까운 산을 주로 다닌다. 아파트 탁구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매주 2,3회 정도 저녁 시간에 1시간 반 정도 탁구를 즐긴다. 정 교수는 “1시간 반 정도만 탁구를 해도 걸음 수가 8000 보 정도 됐다. 돈도 별로 안 들고 부상 위험도 적은데다 실내 운동이라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가정과 직장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최고” 정 교수가 현재 하고 있는 운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끔 야외 운동을 하지만 대부분 실내 운동이라는 점이다. 정 교수는 일터나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실내 운동이 야외 운동보다 실패 확률이 낮다고 했다. 언제든지 바로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새벽 달리기를 하겠다며 큰 맘 먹고 운동화를 사 놓고도 새벽에 비가 오면 ‘내일부터 해야지’ 하며 자버리는 사람을 여럿 봤다”며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서 운동할 수 있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근무 시간이나 공부 시간, 혹은 집안일을 하면서 틈틈이 할 수 있는 운동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이를테면 주부들은 설거지할 때 스쾃 운동을 하면 된다. 뻣뻣하게 서서 허리를 구부리면 오히려 허리 질환 위험성이 높아지지만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스쾃 자세를 하면 하체 근력이 튼튼해진다는 것이다. 직장인들도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출퇴근 시간에도 운동은 가능하다. 빈 자리를 찾아 앉기보다는 서서 약한 강도로 스쾃을 할 수 있다. 혹은 뒷발을 살짝 들어올려 몸을 지탱하는 자세를 유지하면 종아리 근육이 튼튼해진다. 손잡이를 안 잡고 두 발로 버티는 것도 하체 근력 강화에 효과가 있다. 건강에 좋은 식단은 따로 있을까. 정 교수는 “난 식단 관리를 따로 하지 않는다”며 “건강에 가장 좋은 식사법은 골고루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운동을 많이 하면 맛있는 음식이 더 생각난다. 그럴 때면 열심히 땀을 흘린 보상으로 충분히 먹는 방법을 택한다. 다만 소량이지만 몸에 꼭 필요한 미네랄이 결핍될 수도 있어 종합비타민제 한 종류는 먹고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당뇨병을 ‘조용한 살인자’라고 부른다. 여러 장기에서 합병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지만 뚜렷한 자각 증세가 없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들어 30, 40대의 젊은 환자들도 마찬가지로 크게 늘고 있다. 서구식 식습관이 자리 잡은 데다 운동 부족, 흡연, 스트레스 등 위험 요소는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2010년 국민영양조사’ 결과 국내 당뇨병 환자는 320만 명이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당뇨병 환자가 2050년에 59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 추정은 완전히 빗나갔다. ‘2020년 국민영양조사’ 결과 국내 당뇨병 환자가 이미 추정치를 훌쩍 뛰어넘어 605만 명에 이른 것이다. 당뇨병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과 정상 사이의 구간, 그러니까 당뇨 전 단계일 때 철저히 대비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뇨 전 단계에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일종의 전조 증세로 인식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뇨 전 단계는 다른 말로 경계성 당뇨라고도 한다. ● “당뇨병 진단 기준부터 명확히 알아야”건강 검진을 할 때는 보통 8시간 금식 후 공복혈당을 잰다. 만약 포도당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졌다면 공복혈당은 높게 나온다. 이 수치가 dL당 126mg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dL당 100mg 미만이면 정상이다. dL당 100∼125mg일 때가 당뇨 전 단계로 공복혈당장애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당뇨병을 진단하는 방법은 또 있다. 식후혈당을 측정하는 것이다. 어떤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 식후혈당이 달라질 수 있으니 집에서 측정하기는 어렵다. 보통은 병원에서 75g의 포도당을 먹고 2시간 지난 후 혈당을 측정한다. 그 수치가 dL당 200mg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dL당 140∼199mg이면 당뇨 전 단계다. 다른 말로는 내당능장애라고 한다. 이는 포도당 내성이 생겨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 한다는 뜻이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바로 당화혈색소다. 당화혈색소는 최근 2∼3개월 동안 당과 결합한 혈색소 수치를 말하는데, 보통 6.5% 이상이면 당뇨병, 5.6% 이하이면 정상이다. 5.7∼6.4%가 당뇨 전 단계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로 진단되면 날을 정해 재검사를 한다. 보다 확실하게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다. 만약 공복혈당은 정상인데 식후혈당에서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가 나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한국인들은 공복혈당에서 정상으로 나오더라도 식후혈당에서 당뇨 전 단계로 나오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공복혈당이 정상치라고 해도 수치가 높게 나온다면 마음을 놓지 말라는 뜻이다.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만이라도 당뇨 전 단계가 나오면 본격적인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 “당뇨 전 단계라 괜찮다고? 천만에” 당뇨 전 단계는 엄밀하게 말하면 질병에 걸린 상태는 아니다. 이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뇨 전 단계일 때부터 혈당 문제는 발생한다. 당뇨 전 단계일 때 이따금 혈당이 급속도로 높아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췌장이 무리하게 움직인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발생하면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진다. 게다가 일단 약해진 췌장은 종전의 튼튼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이 때문에 당뇨 전 단계 기간이 길수록 정상을 회복하는 속도와 비율이 낮다. 또한 나중에 심각한 당뇨병으로 악화될 경우 췌장암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당뇨 전 단계일 때 무시했다가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아주 많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당뇨 전 단계일 때 관리하지 않으면 5∼10%는 1년 이내에, 절반은 10년 이내에 당뇨병 환자가 된다. 하지만 이때 건강관리를 잘만 하면 30%는 정상을 되찾는다. 50대 직장인 김민석(가명) 씨는 회식이 잦았다. 더욱이 식사량도 많았다. 하지만 운동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체중은 계속 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피로감도 커지고 머리가 묵직할 때도 많았다. 건강 검진에서 당화혈색소가 7.5%로 나왔다. 피로감을 느꼈을 때 이미 당뇨 전 단계였지만 김 씨가 무시한 바람에 결국 당뇨병 환자가 된 것이다. 또 다른 50대 직장인 이정선(가명) 씨도 비슷하다. 10년 전 건강 검진에서는 혈당과 당화혈색소 수치가 모두 당뇨 전 단계였다. 이 씨는 아직 건강하다며 무시했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후에도 이 씨는 약도 잘 먹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았으며 술을 많이 마셨다. 그 결과 눈과 콩팥에 합병증이 발생했다. 이 씨는 뒤늦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 “금세 허기지면 당뇨 전 단계 의심” 당뇨병 전조 증세를 자각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자세히 관찰한다면 당뇨 전 단계에서부터 미세한 변화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후에 나타나는 공복감이다. 누구나 식사 후에는 혈당이 오른다.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한다면 식후 5∼10분부터 높아진 혈당을 잡는다. 그러면 혈당은 서서히 떨어지고, 음식이 다 소화되는 3∼4시간 후에야 배가 고파진다. 당뇨 전 단계가 되면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 뒤늦게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혈당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천천히 올라갔다가 천천히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급격하게 올라갔다가 뒤늦게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다. 주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했을 때 식후 1∼2시간 무렵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 때로는 갈증이 심해지고 입이 마르기도 한다. 물론 땀을 흘렸거나 식후 3∼4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목마름은 혈당과 관련이 없다. 만약 식후 1∼2시간 후에 허기짐이나 갈증, 입 마름 증세가 나타난다면 당뇨병 검사를 하는 게 좋다. 무기력증과 피로감도 당뇨 전 단계일 때 많이 나타나는 증세다. 평소 없었던 증세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50대 A 씨는 공복감과 피로감 외에 손 감각이 무뎌지는 증세가 나타났다. 검사 결과 공복혈당은 정상이었지만 당화혈색소가 5.9%, 식후혈당이 dL당 190mg이었다. 내당능장애였던 것이다. 3개월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고 식후혈당을 정상 범위까지 떨어뜨린 후에야 손 무딤 증세가 사라졌다. 40대 B 씨는 손이 덜덜 떨리고 식후 졸림 증세가 심해졌다. B 씨는 면이나 떡을 특히 좋아하는데,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증세가 더 심해졌다. 김 교수는 “식은땀, 두통 등의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탄수화물 식사를 하고 난 후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면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를 의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 당뇨 전 단계에 맞는 식사-운동법 양질의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 탄수화물로 된 음식이나 과일을 줄여야 한다. 당뇨와 무관하다면 식사의 70∼80% 정도가 탄수화물인데, 50% 정도까지 줄이는 게 좋다. 식사는 천천히,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끼니를 건너뛴다면 다음 식사 때 많이 빨리 먹게 된다. 혈당이 급격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당뇨 전 단계일 때부터 하루 세 끼를 느긋하게 먹자.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 국물도 혈당을 올리기 때문에 적게 먹는 게 좋다. 주스도 마찬가지다. 그 대신 과일을 씹어 먹는 게 좋다. 당연히 운동도 필수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모두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식후 올라간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가급적 근력 운동을 하는 게 좋다. 근육이 늘어나면 포도당의 저장 공간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대체로 1주일에 150분의 유산소 운동을 나눠서, 이틀 간격으로 해 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근력 운동은 얼마나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횟수나 시간에 대한 의학적 연구 결과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김 교수는 “식후 혈당이 1∼2시간 사이에 최고조로 올라간다”며 “따라서 식후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근력 운동을 해 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 수칙 ● 식사는 가급적 양질로, 하루 세 번, 천천히 한다. ● 채소와 샐러드,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한다.● 탄수화물을 줄이되 극단적으로 끊지는 않는다. ● 일상 생활에서 활동량을 늘리고, 가급적 운동을 한다. ● 운동은 식후 30분∼1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한다. ● 50분 앉아 있다면 10분은 반드시 일어나서 움직인다. ● 40세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혈당을 측정한다. 자료: 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당뇨병을 ‘조용한 살인자’라고 부른다. 여러 장기에서 합병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지만 뚜렷한 자각 증세가 없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들어 30,40대의 젊은 환자들도 마찬가지로 크게 늘고 있다. 서구식 식습관이 자리 잡은 데다 운동 부족, 흡연, 스트레스 등 위험 요소는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2010년 국민영양조사’ 결과 국내 당뇨병 환자는 320만 명이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당뇨병 환자가 2050년에 59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 추정은 완전히 빗나갔다. ‘2020년 국민영양조사’ 결과 국내 당뇨병 환자가 이미 추정치를 훌쩍 뛰어넘어 605만 명에 이른 것이다. 당뇨병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과 정상 사이의 구간, 그러니까 당뇨 전 단계일 때 철저히 대비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뇨 전 단계에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일종의 전조 증세로 인식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뇨 전 단계는 다른 말로 경계성 당뇨라고도 한다. ●“당뇨병 진단 기준부터 명확히 알아야” 건강 검진을 할 때는 보통 8시간 금식 후 공복혈당을 잰다. 만약 포도당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졌다면 공복혈당은 높게 나온다. 이 수치가 126mg/dL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100mg/dL 미만이면 정상이다. 100~125mg/dL일 때가 당뇨 전 단계로 공복혈당장애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당뇨병을 진단하는 방법은 또 있다. 식후혈당을 측정하는 것이다. 어떤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 식후혈당이 달라질 수 있으니 집에서 측정하기는 어렵다. 보통은 병원에서 75g의 포도당을 먹고 2시간 지난 후 혈당을 측정한다. 그 수치가 200mg/dL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140~199mg/dL이면 당뇨 전 단계다. 다른 말로는 내당능장애라고 한다. 이는 포도당 내성이 생겨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뜻이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바로 당화혈색소다. 당화혈색소는 최근 2~3개월 동안 당과 결합한 혈색소 수치를 말하는데, 보통 6.5% 이상이면 당뇨병, 5.6% 이하이면 정상이다. 5.7~6.4%가 당뇨 전 단계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로 진단되면 날을 정해 재검사를 한다. 보다 확실하게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다. 만약 공복혈당은 정상인데 식후혈당에서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가 나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한국인들은 공복혈당에서 정상이 나오더라도 식후혈당에서 당뇨 전 단계로 나오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공복혈당이 정상치라고 해도 수치가 높게 나온다면 마음을 놓지 말라는 뜻이다.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만이라도 당뇨 전 단계가 나오면 본격적인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당뇨 전 단계라 괜찮다고? 천만에” 당뇨 전 단계는 엄밀하게 말하면 질병에 걸린 상태는 아니다. 이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뇨 전 단계일 때부터 혈당 문제는 발생한다. 당뇨 전 단계일 때 이따금 혈당이 급속도로 높아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췌장이 무리하게 움직인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발생하면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진다. 게다가 일단 약해진 췌장은 종전의 튼튼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이 때문에 당뇨 전 단계 기간이 길수록 정상을 회복하는 속도와 비율이 낮다. 또한 나중에 심각한 당뇨병으로 악화될 경우 췌장암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당뇨 전 단계일 때 무시했다가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아주 많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당뇨 전 단계일 때 관리하지 않으면 5~10%는 1년 이내에, 절반은 10년 이내에 당뇨병 환자가 된다. 하지만 이 때 건강관리를 잘만 하면 30%는 정상을 되찾는다. 50대 직장인 김민석 씨(가명)는 회식이 잦았다. 더욱이 식사량도 많았다. 하지만 운동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체중은 계속 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피로감도 커지고 머리가 묵직할 때도 많았다. 건강 검진에서 당화혈색소가 7.5%로 나왔다. 피로감을 느꼈을 때 이미 당뇨 전 단계였지만 김 씨가 무시한 바람에 결국 당뇨병 환자가 된 것이다. 또 다른 50대 직장인 이정선 씨(가명)도 비슷하다. 10년 전 건강 검진에서는 혈당과 당화혈색소 수치가 모두 당뇨 전 단계였다. 이 씨는 아직 건강하다며 무시했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후에도 이 씨는 약도 잘 먹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았으며 술을 많이 마셨다. 그 결과 눈과 콩팥에 합병증이 발생했다. 이 씨는 뒤늦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금세 허기지면 당뇨 전 단계 의심” 당뇨병 전조 증세를 자각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자세히 관찰한다면 당뇨 전 단계에서부터 미세한 변화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후에 나타나는 공복감이다. 누구나 식사 후에는 혈당이 오른다.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한다면 식후 5~10분부터 높아진 혈당을 잡는다. 그러면 혈당은 서서히 떨어지고, 음식이 다 소화되는 3~4시간 후에야 배가 고파진다. 당뇨 전 단계가 되면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 뒤늦게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혈당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천천히 올라갔다가 천천히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급격하게 올라갔다가 뒤늦게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다. 주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했을 때 식후 1~2시간 무렵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 때로는 갈증이 심해지고 입이 마르기도 한다. 물론 땀을 흘렸거나 식후 3~4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목마름은 혈당과 관련이 없다. 만약 식후 1~2시간 후에 허기짐이나 갈증, 입 마름 증세가 나타난다면 당뇨병 검사를 하는 게 좋다. 무기력증과 피로감도 당뇨 전 단계일 때 많이 나타나는 증세다. 평소 없었던 증세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50대 A씨는 공복감과 피로감 외에 손 감각이 무뎌지는 증세가 나타났다. 검사 결과 공복혈당은 정상이었지만 당화혈색소가 5.9%, 식후혈당이 190mg/dL였다. 내당능장애였던 것이다. 3개월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고 식후혈당을 정상 범위까지 떨어뜨린 후에야 손 무딤 증세가 사라졌다. 40대 B씨는 손이 덜덜 떨리고 식후 졸림 증세가 심해졌다. B씨는 면이나 떡을 특히 좋아하는데,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증세가 더 심해졌다. 김 교수는 “식은땀, 두통 등의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탄수화물 식사를 하고 난 후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면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를 의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 수칙식사는 가급적 양질로, 하루 세 번, 천천히 한다. 채소와 샐러드,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한다.탄수화물을 줄이되 극단적으로 끊지는 않는다. 일상 생활에서 활동량을 늘리고, 가급적 운동을 한다. 운동은 식후 30분~1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한다. 50분 앉아 있다면 10분은 반드시 일어나서 움직인다. 40세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혈당을 측정한다. 자료 : 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당뇨 전 단계에 맞는 식사-운동법 양질의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 탄수화물로 된 음식이나 과일을 줄여야 한다. 당뇨와 무관하다면 식사의 70~80% 정도가 탄수화물인데, 50% 정도까지 줄이는 게 좋다. 식사는 천천히,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끼니를 건너뛴다면 다음 식사 때 많이 빨리 먹게 된다. 혈당이 급격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당뇨 전 단계일 때부터 하루 세 끼를 느긋하게 먹자.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 국물도 혈당을 올리기 때문에 적게 먹는 게 좋다. 주스도 마찬가지다. 대신 과일을 씹어 먹는 게 좋다. 당연히 운동도 필수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모두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식후 올라간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가급적 근력 운동을 하는 게 좋다. 근육이 늘어나면 포도당의 저장 공간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대체로 1주일에 150분의 유산소 운동을 나눠서, 이틀 간격으로 해 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근력 운동은 얼마나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횟수나 시간에 대한 의학적 연구 결과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김 교수는 “식후 혈당이 1~2시간 사이에 최고조로 올라간다”며 “따라서 식후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근력 운동을 해 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노승덕 씨(74)는 1990년대까지 전북 군산에서 화공약품 유통업체를 운영했다. 한때 꽤나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 들이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폐업의 후유증은 컸다. 우선 사는 게 힘들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와도 이혼해야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래도 넋 놓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택시 회사에 취직했다. 매일 12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았다. 끼니를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퇴근하면 술로 공허한 마음을 달랬다. 지독한 변비가 생겼다. 그러려니 했다. 그 다음에는 복통이 뒤따랐다. 약을 사 먹으면 참을 만하다가 사흘 정도 지나면 버틸 수 없을 만큼 아팠다. 2014년 초 동네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진료의뢰서를 써 주며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의사는 암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노 씨는 진료의뢰서에 적혀 있는 ‘cancer(암)’라는 단어를 똑똑히 봤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항암 치료 후 극적으로 수술 가능해져 노 씨는 2014년 3월 고려대 구로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대장암이었다. 변비와 복통이 대장암의 증세였던 것이다.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돼 있었다. 게다가 간의 여러 부위에 넓게 퍼져 있었다. 흔히 말기라 부르는 4기 대장암이었다. 민병욱 대장항문외과 교수, 오상철 종양내과 교수, 최새별 간담췌외과 교수 등이 모여 치료법을 논의했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먼저 항암 치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오 교수는 “항암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완치를 기대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민 교수 또한 “솔직히 완치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며 “작은 기적이라도 바라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노 씨가 낙담할까 봐 걱정이 컸다. 하지만 노 씨는 의외로 차분했다. 당시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노 씨는 “의료진의 선택을 믿고 따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2주마다 병원을 찾아 집중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힘든 4개월이 흘렀다. 치료 성적표를 확인할 시간. 컴퓨터단층(CT) 검사를 했다. 놀랍게도 간으로 전이됐던 암 세포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수술이 가능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간의 60%를 절제할 경우 남은 간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그래도 최선의 방법이었다. 의료진은 간의 60%, 대장의 30%를 절제하는 수술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해 8월 노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세 차례의 수술도 거뜬히 극복먼저 최 교수가 간 절제술을 시행했다. 최 교수는 “수술 전부터 출혈을 가장 우려해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항암 치료를 오래하면 지방간염이 심해진다. 이 경우 수술 도중 출혈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우려는 현실이 돼 버렸다. 간을 절제한 부위에서 출혈이 시작됐고, 좀처럼 지혈이 되지 않았다. 지혈을 하느라 2시간이면 끝날 간 절제 수술이 5시간으로 길어졌다. 이어 대장 절제 수술을 할 차례였다. 하지만 수술을 더 진행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결국 대장 수술은 시도하지도 못했다. 민 교수가 노 씨에게 수술 과정을 찬찬히 설명했다. 의료진으로서는 나중에 추가 수술을 해야 하기에 환자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 씨는 “알아서 최적의 판단을 한 것 아니냐”며 의료진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간 절제 수술 결과는 좋았다. 회복 속도도 빨랐다. 덕분에 3개월 만에 대장 절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민 교수가 집도했고, 대장의 30% 정도를 잘라냈다. 이로써 암 세포가 있는 간과 대장 수술이 모두 끝났다. 수술이 잘됐으니 암에서 완전 해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던 중 간에서 작은 암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이때가 2016년 2월이었다. 마지막 수술도 잘 끝났다. 이어 10개월 동안 진행된 마지막 항암 치료도 무사히 끝났다. 이후 더 이상 암 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 수술을 시행하고 5년이 지난 2021년 2월 민 교수는 노 씨에게 완치 판정을 내렸다. 이후 그는 암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년마다 추적 검사를 받고 있다. ●환자의 긍정 마인드가 최고의 특효약민 교수와 오 교수는 “노 씨는 4기 대장암이라도 항암 치료와 수술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사실 암 진단을 받으면 많은 환자들이 절망에 빠진다. 일단 이 점에서 노 씨는 확실히 달랐다. 민 교수는 “노 씨는 암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항상 쾌활했고 에너지가 넘쳤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 씨는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 과정을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별로 힘든 게 없었는데…”라고 답했다. 세 번의 수술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그게 내 팔자라고 생각했다.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그랬던 것”이라며 웃었다. 투병 기간 내내 노 씨는 최대한 음식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냉면을 먹어도 곱빼기로 먹었다. 소화가 잘 안되면 소화제를 먹었다. 민 교수는 “암 환자들이 잘 못 먹는 반면 노 씨는 외부에서 음식을 공수해서라도 먹었다”며 “그런 적극적인 투병 의지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오히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마지막 수술이 끝난 후 병실을 찾아온 어린 손녀의 입맞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이후로 더 살고 싶다는 바람이 한층 강렬해졌단다. 삶의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마지막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컴퓨터를 배웠다. 어느덧 3년째. 이젠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또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강의도 한다. 다만 요즘 들어 만성 질환에 대한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당뇨병과 심장질환의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제자리팔벌려뛰기를 틈틈이 한다. 날이 풀리면 야외 산책도 할 계획이란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육류 먹어야”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는 음식이 종종 제한된다. 가령 익히지 않은 날음식은 절대 금물이다. 게다가 식욕도 떨어진다. 노 씨 또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95㎏이던 체중이 60㎏까지 빠졌다. 당시 노 씨가 가장 생각났던 음식 중 하나가 커피다. 요즘에는 매일 한두 잔을 꼭 마신다. 괜찮은 걸까. 민 교수는 “대장암 재발을 걱정하며 커피를 안 마실 필요는 없다. 여러 잔을 마시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에 두 잔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적색 육류가 대장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민 교수는 “이 또한 잘못 알려진 상식”이라고 했다. 고기가 주식(主食)인 서양인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민 교수에 따르면 밥을 주로 먹는 한국인은 매주 1, 2회 고기를 먹어도 대장암 발병이나 재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걱정 때문에 고기를 기피하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단백질이 부족해지면서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특히 수술 후 회복 단계에는 고기를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날음식도 대장암과는 무관하다. 민 교수는 “회를 먹고 싶은데 참는 환자들이 있다. 그럴 때면 넉넉히 먹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특정 음식을 피하기보다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하는 게 암에 맞서는 식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피해야 할 음식도 있다. 너무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 가공육은 대장암뿐 아니라 다른 암도 유발할 수 있으니 가급적 적게 먹거나 피하는 게 좋다. 특히 술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대장암에서 해방됐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성분이 대장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막걸리 또한 술이다. 노 씨 또한 한때는 매일 술을 먹는다 해서 ‘노상술’이란 별명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 잔도 입에 대지 않는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노승덕 씨(74)는 1990년대까지 전북 군산에서 화공약품 유통업체를 운영했다. 한때 꽤나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 들이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폐업의 후유증은 컸다. 우선 사는 게 힘들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와도 이혼해야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래도 넋 놓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택시 회사에 취직했다. 매일 12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았다. 끼니를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퇴근하면 술로 공허한 마음을 달랬다. 지독한 변비가 생겼다. 그러려니 했다. 그 다음에는 복통이 뒤따랐다. 약을 사 먹으면 참을 만 하다가 사흘 정도 지나면 버틸 수 없을 만큼 아팠다. 2014년 초 동네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진료의뢰서를 써 주며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의사는 암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노 씨는 진료의뢰서에 적혀 있는 ‘cancer(암)’라는 단어를 똑똑히 봤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항암 치료 후 극적으로 수술 가능해져 노 씨는 2014년 3월 고려대 구로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대장암이었다. 변비와 복통이 대장암의 증세였던 것이다.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돼 있었다. 게다가 간의 여러 부위에 넓게 퍼져 있었다. 흔히 말기라 부르는 4기 대장암이었다. 민병욱 대장항문외과 교수, 오상철 종양내과 교수, 최새별 간담췌외과 교수 등이 모여 치료법을 논의했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먼저 항암 치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오 교수는 “항암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완치를 기대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민 교수 또한 “솔직히 완치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며 “작은 기적이라도 바라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노 씨가 낙담할까 봐 걱정이 컸다. 하지만 노 씨는 의외로 차분했다. 당시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노 씨는 “의료진의 선택을 믿고 따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2주마다 병원을 찾아 집중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힘든 4개월이 흘렀다. 치료 성적표를 확인할 시간. 컴퓨터단층(CT) 검사를 했다. 놀랍게도 간으로 전이됐던 암 세포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수술이 가능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간의 60%를 절제할 경우 남은 간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그래도 최선의 방법이었다. 의료진은 간의 60%, 대장의 30%를 절제하는 수술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해 8월 노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세 차례의 수술도 거뜬히 극복 먼저 최 교수가 간 절제술을 시행했다. 최 교수는 “수술 전부터 출혈을 가장 우려해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항암 치료를 오래하면 지방간염이 심해진다. 이 경우 수술 도중 출혈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우려는 현실이 돼 버렸다. 간을 절제한 부위에서 출혈이 시작됐고, 좀처럼 지혈이 되지 않았다. 지혈을 하느라 2시간이면 끝날 간 절제 수술이 5시간으로 길어졌다. 이어 대장 절제 수술을 할 차례였다. 하지만 수술을 더 진행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결국 대장 수술은 시도하지도 못했다. 민 교수가 노 씨에게 수술 과정을 찬찬히 설명했다. 의료진으로서는 나중에 추가 수술을 해야 하기에 환자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 씨는 “알아서 최적의 판단을 한 것 아니냐”며 의료진에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간 절제 수술 결과는 좋았다. 회복 속도도 빨랐다. 덕분에 3개월 만에 대장 절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민 교수가 집도했고, 대장의 30% 정도를 잘라냈다. 이로써 암 세포가 있는 간과 대장 수술이 모두 끝났다. 수술이 잘됐으니 암에서 완전 해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던 중 간에서 작은 암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이때가 2016년 2월이었다. 마지막 수술도 잘 끝났다. 이어 10개월 동안 진행된 마지막 항암 치료도 무사히 끝났다. 이후 더 이상 암 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 수술을 시행하고 5년이 지난 2021년 2월 민 교수는 노 씨에게 완치 판정을 내렸다. 이후 그는 암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년마다 추적 검사를 받고 있다. ●환자의 긍정 마인드가 최고의 특효약 민 교수와 오 교수는 “노 씨는 4기 대장암이라도 항암 치료와 수술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사실 암 진단을 받으면 많은 환자들이 절망에 빠진다. 일단 이 점에서 노 씨는 확실히 달랐다. 민 교수는 “노 씨는 암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항상 쾌활했고 에너지가 넘쳤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 씨는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 과정을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별로 힘든 게 없었는데…”라고 답했다. 세 번의 수술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그게 내 팔자라고 생각했다.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그랬던 것”이라며 웃었다. 투병 기간 내내 노 씨는 최대한 음식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냉면을 먹어도 곱빼기로 먹었다. 소화가 잘 안 되면 소화제를 먹었다. 민 교수는 “암 환자들이 잘 못 먹는 반면 노 씨는 외부에서 음식을 공수해서라도 먹었다”며 “그런 적극적인 투병 의지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오히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마지막 수술이 끝난 후 병실을 찾아온 어린 손녀의 입맞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이후로 더 살고 싶다는 바람이 한층 강렬해졌단다. 삶의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마지막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컴퓨터를 배웠다. 어느덧 3년째. 이젠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또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강의도 한다. 다만 요즘 들어 만성 질환에 대한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당뇨병과 심장질환의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제자리팔벌려뛰기를 틈틈이 한다. 날이 풀리면 야외 산책도 할 계획이란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육류 먹어야”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는 음식이 종종 제한된다. 가령 날로 된 음식은 절대 금물이다. 게다가 식욕도 떨어진다. 노 씨 또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95㎏이던 체중이 60㎏까지 빠졌다. 당시 노 씨가 가장 생각났던 음식 중 하나가 커피다. 요즘에는 매일 한두 잔을 꼭 마신다. 괜찮은 걸까. 민 교수는 “대장암 재발을 걱정하며 커피를 안 마실 필요는 없다. 여러 잔을 마시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에 두 잔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적색 육류가 대장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민 교수는 “이 또한 잘못 알려진 상식”이라고 했다. 고기가 주식(主食)인 서양인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민 교수에 따르면 밥을 주로 먹는 한국인은 매주 1, 2회 고기를 먹어도 대장암 발병이나 재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걱정 때문에 고기를 기피하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단백질이 부족해지면서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특히 수술 후 회복 단계에는 고기를 먹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날로 된 음식도 대장암과는 무관하다. 민 교수는 “회를 먹고 싶은데 참는 환자들이 있다. 그럴 때면 넉넉히 먹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특정 음식을 피하기보다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하는 게 암에 맞서는 식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피해야 할 음식도 있다. 너무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 가공육은 대장암뿐 아니라 다른 암도 유발할 수 있으니 가급적 적게 먹거나 피하는 게 좋다. 특히 술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대장암에서 해방됐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성분이 대장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막걸리 또한 술이다. 노 씨 또한 한때는 매일 술을 먹는다 해서 ‘노상술’이란 별명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 잔도 입에 대지 않는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친한 사람이 갑자기 큰 병에 걸리면 당혹스럽다.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제야 건강 관리를 시작한다. 대체로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한다. 혹은 헬스클럽에 등록하거나 수영장 회원권을 끊는다. 또 다른 운동 종목을 찾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 다음이 문제다. 초기 결심은 금세 잊고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운동을 거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주일을 건너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 달 만에 운동을 포기한다.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61)는“다이어트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 그렇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뇌 과학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에도 자신이 있단다. 그는 자신만의 다이어트 방법을 확립하기 위해 그동안 국내외 다이어트 관련 서적 100여 권을 탐독했다. 그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들어봤다. ●“내게 맞는 다이어트, 직접 설계”2010년경 김 교수의 선배 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치료가 잘돼 그 선배는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그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 이후 두 사람은 늘 함께 출근했다. 여러 해를 그 선배와 출근을 같이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냉정하게 말하면 김 교수 자신도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체중은 이미 80㎏대 중반에 육박했다. 누가 봐도 비만이었다. 혈압도 꽤 높았다. 2015년부터는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수치 모두 정상 기준을 훌쩍 넘었다. 게다가 가족력도 있었다. 김 교수의 모친은 뇌중풍(뇌졸중)으로 60대 중반에 돌아가셨다.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김 교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결심을 하지 못해 시간만 끌었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당부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그런 의사들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2019년 설 연휴 때였다. 김 교수는 비로소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가장 먼저 비만 관련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맞는 다이어트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김 교수는 간헐적 단식과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병행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다만 간헐적 단식이 당뇨병 환자에게는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혈당을 체크해야 했다. ●3개월 만에 16㎏ 뺀 비결은?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게 체질량지수(BMI)다. 일반적으로 국내 성인 남자의 경우 BMI 수치가 23∼24㎏/㎡일 때 정상으로 규정한다. 이를 넘으면 과체중, 혹은 비만으로 규정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할 당시 김 교수의 체중은 83㎏이었다. BMI를 기준으로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16㎏을 빼야 했다. 김 교수는 16㎏ 감량을 목표로 정했다. 16시간 동안 굶는 간헐적 단식을 시도했다. 점심 식사로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고, 저녁에는 종전과 비슷한 양의 식사를 했다. 오후 9시 이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16시간이 지난 다음 날 오후 1시가 돼야 식사를 했다. 탄수화물 섭취량도 줄였기에 다이어트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하지만 체중 감량 속도가 기대한 만큼 빠르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일주일에 이틀을 굶는 방식으로 바꿨다. 김 교수는 “번역본이 아닌 원전을 들여다보니 5일을 먹고 2일을 굶는 방법이 간헐적 단식의 원형이었다”고 말했다. 5일 동안은 탄수화물은 가급적 줄이되 넉넉히 먹었다. 나머지 2일에는 커피와 물만 마셨다. 효과는 훨씬 좋았다. 체중 감량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다만 식사를 하지 않는 날에 주변 사람들과의 저녁 모임이 어려워졌다. 새로운 스트레스였다. 김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사회적 건강’의 중요성은 무척 크다”고 말했다. 다시 다이어트 방법을 바꿨다. 1일 1식 다이어트다. 식사 횟수를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되 식사량을 제한하지 않는 방법이다. 덕분에 모임에서도 맘껏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체중 16㎏ 감량 목표는 다이어트 3개월 만에 달성했다. 김 교수는 1일 1식 다이어트가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이라 확신했다. 물론 현재도 이 방법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땅콩, 아몬드, 고구마 같은 간식을 가끔 곁들이는 ‘여유’도 누린단다. ●“건강 수명은 운동에 달려 있어”김 교수는 “건강 수명은 운동에 달렸다”고 했다. 체중 감량은 식사량 조절로 가능하지만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교수 또한 2019년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동시에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단 오르기를 했다. 일부러 10개 층을 매일 두 번씩 올랐다. 하지만 계단 오르기는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그만뒀다. 김 교수는 “운동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작해서 그런지 계단 오르는 게 재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대신 야외로 나갔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종종 산책했다. 별도로 가급적 매주 2회 정도는 집 근처 산책로에서 걸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매일 적게는 5000보, 많게는 1만5000보 이상 걷는다. 요즘은 여기에 주말 등산도 추가했다. 산에 오른 날에는 2만 보를 훌쩍 넘는다. 지난해부터는 필라테스를 추가했다. 매주 2, 3회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1시간씩 땀을 흘린다. 다른 종목도 많은데 왜 필라테스일까. 김 교수는 “나이가 들면 유연성이나 균형감이 떨어지기 쉽다”며 “이 점을 보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유는 또 있다. 혹시 부족해질 수 있는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만약 주 2회 걷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에는 필라테스의 운동량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간헐적 단식과 운동의 결과는 흡족했다.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혈당도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당뇨병 전 단계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수시로 ‘다이어트 일기’를 쓰는 의사김 교수의 다이어트 성공 비결은 또 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성하고 있는 ‘다이어트 일기’다. 김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체중부터 잰다. 이어 혈압과 혈당을 측정한다. 모든 과정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뒤 저장한다.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을 때에도 음식을 촬영한다. 이 데이터 또한 휴대전화에 저장한다. 운동할 때마다 운동량을 휴대전화에 적는다. 이렇게 수시로 휴대전화를 열어 데이터를 기록한다. 김 교수의 휴대전화에는 2019년 이후 날짜별로 이 모든 데이터들이 정렬돼 있다. 김 교수는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며 “이렇게 해 놓으면 식습관과 운동 상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변동 상황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록 습관은 다이어트 효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를 ‘자각 효과’라 했다. 사실 김 교수 또한 다이어트로 건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독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번 놓치면 옛날 습관으로 한 달 만에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런 기록 습관은 뇌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빛을 보는 게 평균적으로 100일 정도다. 새로운 습관을 수시로 기록하면 뇌가 더 수월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 점을 다이어트에 활용하라고 그는 권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체중부터 재세요. 그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바꾸고 다 기록해 두면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그 성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친한 사람이 갑자기 큰 병에 걸리면 당혹스럽다.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제야 건강 관리를 시작한다. 대체로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한다. 혹은 헬스클럽에 등록하거나 수영장 회원권을 끊는다. 또 다른 운동 종목을 찾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 다음이 문제다. 초기 결심은 금세 잊고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운동을 거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주일을 건너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 달 만에 운동을 포기한다.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61)는“다이어트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 그렇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전문 분야는 뇌 과학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에도 자신이 있단다. 그는 자신만의 다이어트 방법을 확립하기 위해 그동안 국내외 다이어트 관련 서적 100여 권을 탐독했다. 그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들어봤다. ●“내게 맞는 다이어트, 직접 설계” 2010년경 김 교수의 선배 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치료가 잘돼 그 선배는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그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 이후 두 사람은 늘 함께 출근했다. 여러 해를 그 선배와 출근을 같이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냉정하게 말하면 김 교수 자신도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체중은 이미 80㎏대 중반에 육박했다. 누가 봐도 비만이었다. 혈압도 꽤 높았다. 2015년부터는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수치 모두 정상 기준을 훌쩍 넘었다. 게다가 가족력도 있었다. 김 교수의 모친은 뇌중풍(뇌졸중)으로 60대 중반에 돌아가셨다.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김 교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결심을 하지 못해 시간만 끌었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당부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그런 의사들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2019년 설 연휴 때였다. 김 교수는 비로소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가장 먼저 비만 관련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맞는 다이어트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김 교수는 간헐적 단식과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병행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다만 간헐적 단식이 당뇨병 환자에게는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혈당을 체크해야 했다. ●3개월 만에 16㎏ 뺀 비결은?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게 체질량지수(BMI)다. 일반적으로 국내 성인 남자의 경우 BMI 수치가 23~24㎏/㎡일 때 정상으로 규정한다. 이를 넘으면 과체중, 혹은 비만으로 규정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할 당시 김 교수의 체중은 83㎏이었다. BMI를 기준으로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16㎏을 빼야 했다. 김 교수는 16㎏ 감량을 목표로 정했다. 16시간 동안 굶는 간헐적 단식을 시도했다. 점심 식사로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고, 저녁에는 종전과 비슷한 양의 식사를 했다. 오후 9시 이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16시간이 지난 다음 날 오후 1시가 돼야 식사를 했다. 탄수화물 섭취량도 줄였기에 다이어트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하지만 체중 감량 속도가 기대한 만큼 빠르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일주일에 이틀을 굶는 방식으로 바꿨다. 김 교수는 “번역본이 아닌 원전을 들여다보니 5일을 먹고 2일을 굶는 방법이 간헐적 단식의 원형이었다”고 말했다. 5일 동안은 탄수화물은 가급적 줄이되 넉넉히 먹었다. 나머지 2일에는 커피와 물만 마셨다. 효과는 훨씬 좋았다. 체중 감량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다만 식사를 하지 않는 날에 주변 사람들과의 저녁 모임이 어려워졌다. 새로운 스트레스였다. 김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사회적 건강’의 중요성은 무척 크다”고 말했다. 다시 다이어트 방법을 바꿨다. 1일 1식 다이어트다. 식사 횟수를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되 식사량을 제한하지 않는 방법이다. 덕분에 모임에서도 맘껏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체중 16㎏ 감량 목표는 다이어트 3개월 만에 달성했다. 김 교수는 1일 1식 다이어트가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이라 확신했다. 물론 현재도 이 방법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땅콩, 아몬드, 고구마 같은 간식을 가끔 곁들이는 ‘여유’도 누린단다. ●“건강 수명은 운동에 달려 있어” 김 교수는 “건강 수명은 운동에 달렸다”고 했다. 체중 감량은 식사량 조절로 가능하지만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교수 또한 2019년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동시에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단 오르기를 했다. 일부러 10개 층을 매일 두 번씩 올랐다. 하지만 계단 오르기는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그만뒀다. 김 교수는 “운동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작해서 그런지 계단 오르는 게 재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대신 야외로 나갔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종종 산책했다. 별도로 가급적 매주 2회 정도는 집 근처 산책로에서 걸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매일 적게는 5000보, 많게는 1만5000보 이상 걷는다. 요즘은 여기에 주말 등산도 추가했다. 산에 오른 날에는 2만 보를 훌쩍 넘는다. 지난해부터는 필라테스를 추가했다. 매주 2, 3회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1시간씩 땀을 흘린다. 다른 종목도 많은데 왜 필라테스일까. 김 교수는 “나이가 들면 유연성이나 균형감이 떨어지기 쉽다”며 “이 점을 보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유는 또 있다. 혹시 부족해질 수 있는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만약 주 2회 걷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에는 필라테스의 운동량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간헐적 단식과 운동의 결과는 흡족했다.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혈당도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당뇨병 전 단계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수시로 ‘다이어트 일기’를 쓰는 의사 김 교수의 다이어트 성공 비결은 또 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성하고 있는 ‘다이어트 일기’다. 김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체중부터 잰다. 이어 혈압과 혈당을 측정한다. 모든 과정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뒤 저장한다.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을 때에도 음식을 촬영한다. 이 데이터 또한 휴대전화에 저장한다. 운동할 때마다 운동량을 휴대전화에 적는다. 이렇게 수시로 휴대전화를 열어 데이터를 기록한다. 김 교수의 휴대전화에는 2019년 이후 날짜별로 이 모든 데이터들이 정렬돼 있다. 김 교수는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며 “이렇게 해 놓으면 식습관과 운동 상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변동 상황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록 습관은 다이어트 효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를 ‘자각 효과’라 했다. 사실 김 교수 또한 다이어트로 건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독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번 놓치면 옛날 습관으로 한 달 만에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런 기록 습관은 뇌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빛을 보는 게 평균적으로 100일 정도다. 새로운 습관을 수시로 기록하면 뇌가 더 수월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 점을 다이어트에 활용하라고 그는 권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체중부터 재세요. 그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바꾸고 다 기록해 두면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그 성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70대 중반의 농부 강성국(가명) 씨는 10년 전부터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통증이 나타나면 진통제를 먹었고, 그래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으면 동네 의원에 가 주사를 맞았다. 약과 주사로 버티는 동안 어깨 가동 범위는 점점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약물 효과도 거의 볼 수 없었고, 어깨를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예 팔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됐을 때 강 씨는 윤태환 강남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를 찾았다. 정밀검사 결과 어깨 관절염이 상당히 진행돼 있었다. 또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힘줄(회전근개) 여러 개가 파열돼 있었다. 이미 어깨 관절이 많이 손상된 터라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조금 더 일찍 병원을 찾았더라면 결과는 달랐을까. 윤 교수는 “힘줄 봉합으로 끝낼 수술을, 관절을 교체하는 대형 수술로 악화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러다가 곧 낫겠지’ 하는 생각이 병을 키우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어깨 통증이 나타난다면 확실하게 진단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로 어깨 통증은 겨울에 더욱 심해진다. 기온이 떨어지면 목과 어깨를 움츠리게 되고, 이로 인해 어깨 주변 근육이 경직된다. 혈액 순환도 잘 안 된다. 이러니 통증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어깨 통증은 다른 질병이 원인이 돼 나타나기도 한다. 목 디스크가 원인이라면 어깨보다는 팔에서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한 통증이 나타난다. 협심증이 원인이라면 통증이 어깨를 넘어 가슴과 팔 부위에서도 나타난다. 대상포진이 원인이라면 통증과 함께 피부 변화가 동반된다. 반면 어깨 자체의 질병이 원인일 때는 일반적으로 오십견, 회전근개 파열일 때가 많다.●오십견, 50대 이후에 생긴다?오십견은 어깨 관절을 싸고 있는 주머니인 관절낭에 염증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50대에 주로 생긴다고 해서 이렇게 부르지만 실제로는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발생한다. 윤 교수는 “임상적으로 봤을 때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30, 40대를 자세히 보면 90% 정도가 오십견이다”라고 말했다. 정식 병명은 ‘유착성 관절낭염’이다. 오십견에 걸리면 일단 통증이 나타난다. 개인마다 혹은 어느 정도 진행됐느냐에 따라 통증 강도는 다르다. 오십견이라면 대체로 어깨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통증이 줄어들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또 밤에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진행 정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눈다. 초기에는 통증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팔의 가동 범위가 점차 줄어든다. 이 단계에서는 △바지춤을 올리거나 △뒷짐을 지거나 △안전벨트를 매거나 △양치질, 세수, 머리 감기 등을 하기 위해 팔을 들거나 △선반에 있는 물건을 집으려고 팔을 들 때 어깨 통증이 심해진다. 물론 팔을 올릴 수 있는 범위도 줄어든다. 이 단계에서 더 악화되면 팔을 조금만 들어도 아프다. 아예 팔을 들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팔을 잡고 들려고 해도 올라가지 않는다.●회전근개 파열, 60代 이상 여성환자 많아최근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회전근개 파열 환자도 늘었다. 이 때문에 회전근개 파열을 ‘스포츠 질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는 퇴행성 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 60대 이상 여성 환자의 비중이 가장 크다. 윤 교수에 따르면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60대 이상 환자의 10∼15%는 회전근개 파열로 진단된다. 회전근개가 파열됐을 때도 오십견과 마찬가지로 통증이 나타난다. 다만 초기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어깨 통증 외에 다른 증세를 체크해야 한다. 일단 이 경우에도 팔을 들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오십견과 다른 점은 팔에서 근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초기에는 물건도 잘 잡고 팔도 높이 올릴 수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팔을 들지 못한다. 나중에는 회전근개가 파열된 쪽의 팔을 다른 팔로 들어올려도 힘없이 툭 떨어진다. 오십견과 회전근개 파열이 동시에 나타나는 사례도 많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오십견으로 자가 진단하고는 약물로 버틴다. 그러는 동안 찢어진 힘줄이 관절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병은 악화된다. 그 팔의 근력은 점점 떨어진다. 그런데도 치료를 하지 않으면 힘줄을 봉합하는 게 불가능해지고 결국에는 인공관절을 삽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초기 발견 땐 내시경 수술만으로도 회복오십견은 자주 병원에 가지 않아도 치료할 수 있다. 약을 처방받아 먹으면서 꾸준히 어깨 스트레칭과 같은 자가 치료를 하면 된다. 굳이 비싼 치료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윤 교수는 “6개월 이상 이런 식의 자가 치료를 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3, 4개월 만에도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반대로 자가 치료를 게을리하면 1년 혹은 2년 이상 오십견이 지속될 수도 있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면 오십견이 저절로 사라지기도 한다. 다만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완전 회복에 이르기까지 2, 3년 이상 걸릴 수 있어 통증과 불편을 참아야 한다. 그사이에 근육량이 크게 줄어 예전 상태로 완벽히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윤 교수는 “적절한 처방을 받아 꾸준히 자가 치료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회전근개 파열은 수술이 원칙이다. 물론 경미한 상태라면 이 경우에도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서 운동하면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섰다면 수술해야 한다. 윤 교수는 “일단 힘줄이 끊어졌다면 주사나 운동으로는 붙일 수 없다”며 “어깨가 아프다며 찾아온 환자의 10% 정도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기에 병원을 찾으면 작은 수술로 회복이 가능하다. 60대 초반의 여성 이연숙(가명) 씨가 그런 사례다. 이 씨는 어깨 통증이 심해지자 한 달 만에 병원을 찾았다. 정밀검사 결과 회전근개 파열과 오십견이 모두 발견됐다. 일찍 발견한 덕분에 내시경 수술만으로 회복됐다.어깨통증 완화 위한 스트레칭 평소 어깨 뭉침이 심하거나 통증이 미세하게나마 있다면 꾸준히 스트레칭을 해 주는 게 좋다. 윤태환 교수가 어깨통증 환자에게 실제로 처방하고 교육하는 스트레칭을 따라해 보자. 통증을 줄이고 어깨 움직임을 수월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세 가지 동작을 따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10∼15분. 스트레칭 효과를 높이려면 먼저 어깨를 따뜻하게 찜질한 후에 운동하는 게 좋다. ❶책상 혹은 식탁, 세면대에서 하는 스트레칭이다. 책상 위에 손날을 세운 뒤 팔을 쭉 펴고 상체를 구부린다. 이 상태에서 목을 10∼15초 동안 바닥 쪽으로 천천히 내린다. 통증이 심하면 중단한다. 다만 미세한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는 큰 상관이 없다. 3회 정도 이어서 스트레칭을 한 뒤 잠시 쉬었다가 같은 방식으로 하고, 2세트를 더 한다. 만약 허리가 아프다면 같은 동작을 벽을 짚고 해도 된다. ❷한쪽 팔로 벽을 짚는다. 이때 팔은 어깨와 수직을 이루도록 하고 팔꿈치는 벽에 닿아야 한다. 상체는 벽에 닿지 않도록 한다. 이 상태에서 상체를 10∼15초 동안 천천히 앞으로 내민다. 몸 전체가 따라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회씩 3세트. ❸어깨너비로 발을 벌리고 선 후 두 팔을 등 뒤로 보낸다. 이어 등에 댄 양팔을 10∼15초 동안 천천히 올린다. 최대한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올리는 게 좋다. 3회씩 3세트. 두 팔을 올리기가 힘들다면 수건을 잡고 같은 방식으로 운동하면 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