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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에서는 한 달 가까이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원들이다. 요즘도 너덧 명이 ‘해결하라! 이재용 부회장!’ 같은 글귀나 구체적 요구사항을 쓴 플래카드를 든 채 이 부회장 집 앞을 지킨다. 삼성전자 노조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을 포함해 4개가 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공동교섭단을 꾸린 뒤 사측과 임금 교섭에 나섰다. 15차례에 걸친 교섭에서 진전이 없자 올해 2월 쟁의권까지 획득했다. 여차하면 파업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사항은 당연히 더 많이 받고 더 쉬고 싶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연봉 1000만 원 일괄 인상, 영업이익 25%만큼의 성과급 지급, 자사주 지급, 코로나 격려금, 유급휴일 도입 등이다. 회사로서는 당혹스러운 수준이다.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의 지난해 평균 급여는 1억4400만 원이었다. 2020년 1억2700만 원에서 1700만 원(13.4%)이 올랐다. 작년 노사협의회가 7.5% 임금 인상에 합의한 데다 좋은 실적으로 인한 각종 인센티브가 후하게 지급된 덕분이다. 게다가 지난달 말 노사협의회는 9%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작년만큼 성과급이 유지된다면 평균 연봉이 1억6000만 원에 육박할 거라는 예상도 나온다. 가장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건 주주들이다.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는 “노조가 영업이익의 20% 이상을 요구하는데 삼성전자 주식을 사랑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노조에 발목을 잡히지 말라”는 직접적 요구도 나왔다고 한다.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우려도 회사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주총 직후 경계현 반도체(DS)부문장(대표이사 사장)이 직접 노조를 만났지만 소득은 없었다. 노조는 오히려 회사 대표이사가 아닌 그룹 총수와의 면담을 요구했고, 지난달 13일부터 자택 앞 농성에 들어갔다. 시선이 곱지 않은 또 다른 이들은 삼성 내 동료들이다. 삼성전자 노조 주장을 그대로 따르더라도 현재 조합원 수는 6000명 정도다. 전체 11만여 명의 5%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들은 노사협의회의 임금 인상 합의와 관련해 이달 초 회사를 고발했다. 단체교섭권은 노조에만 있는데 삼성전자가 노사협의회를 통해 올해 임금 협상을 마무리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5%의 인원이 전체를 대변하겠다는 뜻이다. 노조는 올해는커녕 지난해 임금 교섭마저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노조 스스로 대표성을 주장하지만 동료들을 대표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는 게 삼성전자 비노조 직원들의 생각이다. 자칫 노조의 고발로 인해 올해 임금 교섭 결과 적용이 늦어지기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노조를 만들어 임금을 올려 달라, 복리후생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건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다. 건강한 노조는 회사를 발전시키는 한 축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명 ‘귀족노조’라 불리는 일부 대기업 노조원의 목소리만 들린다. 함께 일하는 비노조원이나 협력사 직원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조합원들만의 잔치가 반복된다. 이제 막 태동한 삼성전자 노조도 그 길을 따르려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우기 어렵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부산 강서구의 차량용 금형 제조사 건양아이티티는 지난해 9월 일본의 바이어로부터 구매를 희망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바이어 측은 제품 수입 의지가 강했지만 계약을 위해선 절차상 현장 실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한국 방문이 사실상 어렵던 시기. 건양아이티티는 KOTRA의 ‘디지털 현장 실사’ 서비스를 신청했다. 여러 대의 고화질 카메라와 촬영 지원 스태프가 투입돼 금형 부품의 실제 위치, 작동 여부, 제품 생산 및 가조립 테스트 등이 일본으로 생중계됐다. 결국 10월 최종 계약이 이뤄졌고 건양아이티티는 2억 원 상당의 금형 제품을 수출할 수 있었다. 14일 KOTRA에 따르면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는 동안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진출이 대거 무산 또는 지연되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동 제한’의 한계에 부닥친 탓이다. 그런 가운데 디지털전환(DX)을 추진하고 있는 수출입 지원 서비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젤네일 스티커 제조사인 엘라인터내셔널은 2020년 설립과 동시에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네일숍들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이 회사 판로도 막혀버렸다. 실마리를 풀어준 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디지털 콘텐츠 마케팅이었다. 특히 일본 바이어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의 배 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은 소상공인들에게도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2014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갈비골목에 ‘열혈쭈꾸미’란 가게를 낸 윈홀딩스는 이후 중랑구 면목동에 2호점까지 냈다. 이들도 코로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졌다. 윈홀딩스는 지난해 하반기(7∼12월) 주꾸미 요리를 ‘밀키트’로 제작해 해외 수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KOTRA의 기업간거래(B2B) 플랫폼 ‘바이코리아’를 통해 해외 마케팅에 나섰다. 열혈쭈꾸미 밀키트 2만 달러어치가 올해 1월 미국으로 가는 배에 실렸다. 이 회사의 첫 해외 수출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국가 간 이동 제한이 풀린 뒤 디지털을 활용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수출입 사례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KOTRA는 2월 중소기업들의 통합마케팅 채널인 ‘무역투자24’를 만들었다. 이어 지난달에는 해외 진출 정보제공 플랫폼인 ‘해외경제정보드림’(해드림)과 인공지능(AI)으로 유망 시장 및 잠재적 파트너를 발굴하는 ‘TriBIG’을 각각 공식 오픈했다. 대기업들처럼 DX에 천문학적 돈을 투자하기 힘든 중소·중견기업들도 디지털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돕는 목적이다. 김윤태 KOTRA 중소중견기업본부장은 “코로나19가 엔데믹을 향해 감에 따라 글로벌 비즈니스도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며 “디지털을 잘 활용한다면 소상공인과 내수 및 초보기업들도 ‘누구나’ 수출기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전쟁에서 이기려면 기본적인 전력, 전략과 전술, 자본 등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여기서 절대 빠뜨려선 안 되는 게 있다. ‘사기(士氣)’다. 사기가 높으면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 반대로 사기가 저하되면 상대에 밀릴 수밖에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공룡 기업들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에 사기는 매우 중요하다. 사기는 밖에서 사서 직접 넣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절한 외부환경을 만들어주면 기업 스스로 자신감을 채우게 되고, 비로소 사기가 높아지는 거라고 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실적을 거두며 선방한 기업들이 많다.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니 사기가 올랐을 거라 여길 법하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기업들의 사기는 바닥권이라고 한다. 왜일까. 본보는 지난달 보도한 ‘2022년 기업 인식 조사’를 준비하면서 국내 30대 기업을 대상으로도 별도의 설문을 했다. 기업 스스로 판단하기에 국민들이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지에 관해서였다. 일반 국민들 중에는 기업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비중이 비호감의 2배가 넘었다. 그런데 기업 스스로는 국민 시선이 부정적이란 답변이 긍정적의 1.5배나 됐다. 현실보다 스스로를 더 나쁘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만난 30대 기업의 한 임원은 “오랫동안 적폐 대상으로 몰리다 보니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설문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은 다른 대기업의 임원은 “재벌이니, 개혁이니 하는 뉴스를 매번 접하다 보면 꼭 우리 얘기가 아니더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기업들의 사기 저하에는 이런 ‘피해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원유 가격 급등, 환율 불안, 물류 대란,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같은 난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때 찰나의 머뭇거림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어느 때보다 강한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 달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기업들이 활력을 찾게 해주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부터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과 행보가 나오고 있다. 신발 속 돌멩이를 빼주고 모래주머니를 걷어내겠다는 약속에 기업들도 한껏 고무돼 있다. 한 경제단체 수장은 지난달 윤 당선인을 만난 후 “당선인이 (기업 활동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정을 잘 알고 있더라. 해결 방안도 진취적이라고 느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첫 규제 완화 대상도 재계에서는 관심사다. 윤 당선인이 총 대신 전쟁을 치르는 무기라고 언급한 반도체 산업이 첫 대상이 될 수도,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데이터 산업이 혜택을 입을 수도 있다. 문제는 시기다. ‘국가대표’라는 수사를 붙여준 것만으로는 바닥까지 떨어진 기업들의 사기를 되살리긴 어렵다. 너무 늦지 않은 ‘1호 규제완화’를 기대하는 이유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LG디스플레이의 올해 TV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출하량이 처음으로 1000만 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LG전자 TV의 40% 가까이가 OLED 패널을 채용하는 등 TV 시장에서 OLED 장악력이 점차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4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의 연간 TV용 패널 출하량은 2020년 447만2000개에서 지난해 742만6000개로 66.1% 증가했다. 올해는 전년 대비 36.8% 늘어나 1016만 개를 기록할 것으로 옴디아는 전망했다. 2013년 첫 양산에 들어간 OLED TV가 7년 만인 2020년 초 누적 1000만 대를 넘어섰는데, 2년 만에 연간 1000만 대 시대를 열게 된 셈이다. LG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20개 TV 제조사에 OLED 패널을 공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지난해 매출액 29조9000억 원 중 40% 이상이 OLED 사업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2020년 영업적자를 냈던 이 회사가 작년 2조2000억 원 이상의 흑자를 낸 데는 프리미엄 제품군인 OLED 판매 호조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 계열사이자 LG디스플레이의 가장 큰 고객이기도 한 LG전자는 TV 패널의 무게 중심을 빠르게 OLED로 옮기고 있다. 작년 4분기 LG전자의 TV 매출액 중 OLED TV가 차지하는 비중은 38.9%였다. 2019년 4분기 20.4%에서 두 배 가까이로 뛴 것이다. 올해는 이 비중이 4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LG전자의 OLED TV 판매량이 지난해 404만8000대에서 20% 이상 늘어나 500만 대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의 OLED 패널은 사업 초기엔 프리미엄 시장만을 타깃으로 했다. 처음 양산된 55형 OLED TV의 소비자 가격이 1100만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OLED는 ‘고가’ 또는 ‘대형’ TV에만 주로 채용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40형대 패널을 내놓으면서 타깃 시장을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제조 과정에서 70형, 80형의 대형 패널을 만들 때 남는 자투리로 더 작은 패널을 양산해 제품화하는 것이다. 8.5세대(2200mm×2500mm) 원장 하나로 77형 2장과 48형 2장을 동시에 생산하는 식이다. 넷플릭스 등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한 ‘세컨드 TV’ 시장과 MZ세대를 중심으로 ‘게임용 모니터’ 시장이 가파르게 커진 것도 OLED 전략 변화의 배경이다. 박형세 LG전자 HE사업본부장은 “OLED TV 사업을 10년째 하면서 대형 수요는 어느 정도 충족시켰고, 프리미엄 세컨드 TV를 원하는 고객도 충분히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올해는 42형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음으로써 명실 공히 크기 기준으로 OLED TV 풀 라인업을 갖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세계 각국이 동시에 ‘탄소중립’ 목표를 향해 가면서 전략적 ‘에너지 믹스’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석유나 석탄 사용량을 한꺼번에 줄일 수는 없는 상황에서 탄소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액화천연가스(LNG)와 LNG 사용 후의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30일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총 발전량 중 에너지원별 비중은 석탄이 34.3%로 가장 높았고 LNG 29.2%, 원자력 27.4%, 신재생에너지 7.5% 등이 뒤를 이었다. 여전히 화석연료 비중이 60% 이상인 구조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했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높이는 등 2018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줄이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올리기에는 에너지 시장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게 에너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LNG의 탄소배출량은 0.63t/TOE로 석탄(1.10t/TOE)의 57.3% 수준이다. TOE는 석유 1kg당 발생시키는 열을 칼로리(Cal) 기준으로 표준화한 것이다. 환경유해물질 측면에서도 천연가스는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등의 배출량이 석탄에 비해 미미하다. 결국 탈석탄 기조 속에서 LNG 발전을 ‘과도기적’ 에너지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만 목을 매느라 화석연료를 무조건 퇴출시켰다가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더라도 ‘스텝 바이 스텝’으로 나가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탄소배출량이 적은 에너지원으로 한 걸음씩 옮겨 가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산화탄소 포집(CCS) 및 이산화탄소 재활용(CCU) 기술로 인해 LNG가 중심이 된 에너지 믹스 주장은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CCS는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압축, 수송해 육상이나 해상에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 CCU는 이산화탄소를 별도 용도로 재활용하거나 새로운 물질로 전환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 둘을 합쳐 CCUS라고도 한다. 글로벌 CCS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 세계에서 상업운영 중인 CCS 프로젝트는 27개로 연간 3600만 t의 이산화탄소를 처리하고 있다. 여기에 총 1억1000만 t을 처리할 수 있는 106개 프로젝트가 추가 개발 중이다. 국내 기업들도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SK E&S는 2012년부터 개발에 참여해 온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 CCS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2025년부터 20년 동안 연평균 약 100만 t의 저탄소 LNG를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포스코도 ‘그린스틸’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로 수소환원제철과 CCUS 기술을 활용할 방침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과 DL이앤씨가 이 부문에서 기술 개발에 나서는 곳으로 꼽힌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사진)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 들어설 정부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과제는 노동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노동개혁은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으면 안 된다. 영국과 독일에서처럼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근 연임해 3번째 임기를 시작한 손 회장은 24일 오전 서울 중구 CJ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손 회장은 노동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과거 노동관계법을 만들 당시엔 노동자가 약하고 사용자가 강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며 “지금은 힘의 균형이 바뀌어 노동자들이 상당히 세졌기 때문에 노동 법규도 다시 검토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낡은 노동 법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손 회장은 “과거에 (법을 만들 당시) 지금의 게임산업을 생각이나 해봤겠느냐”라며 “새로운 산업이 자꾸 등장하는 만큼 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또 “MZ세대들은 경력이 아니라 자신이 기여한 만큼 보상받길 원하는데 그 말이 맞다”며 “대기업 노조가 유지하길 원하는 연공급 위주 급여제도에 대한 개혁 요구도 상당히 많다”고 덧붙였다. 기업 대상 처벌 규정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손 회장은 “경총에서 일반 행정법규 중 처벌 조항을 찾아보고 있는데 총 400개쯤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그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법인데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기업들이 안전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보다 공포에 질리도록 한다면 과연 좋은 법이라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여러 부분에서 노조 편향적이어서 재계 의견을 반영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무리한 정규직 일괄 전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을 문제로 꼽았다.“정규직 과보호가 되레 일자리 줄여… 중대재해처벌법 주먹구구” 손경식 경총 회장, 3번째 임기 시작일부 노동자 파워 상당히 강해져 보호만 강조하던 제도 고칠 때노동이사제 민간 확대될까 우려…기업에 대한 호감도 늘어 고무적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22일 정기총회에서 회장단 추대 및 회원사들의 만장일치로 두 번째 연임이 확정됐다. 손 회장은 세 번째 임기에서는 경제단체의 목소리를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전달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임 한 달여 만인 24일 서울 중구 CJ 본사에서 진행한 본보 인터뷰에서 손 회장은 새 정부에 노동개혁에 적극 나서 줄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손 회장은 인터뷰에서 노동개혁이 필요한 것은 “법과 제도를 시대 변화에 맞게 고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노동관계법은 1950년대에 만들어진 후 ‘노동자 보호’에만 초점을 맞춰 개정돼 왔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보시다시피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상당히 세졌기 때문에 노동 법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의 변화, 세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자꾸 옛날 방식으로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며 “노동자의 과보호 문제, 특히 정규직의 과보호 문제는 오히려 다른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경총 회장인 동시에 CJ그룹을 이끌고 있는 손 회장은 택배노조(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의 이번 파업도 일부 노동자 과보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했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65일간 파업했고, 지난달에는 CJ대한통운 본사를 18일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택배노동자 전체의 8%만이 파업에 참여하고 나머지 92%는 그대로 일을 했습니다. 결국 파업 때문에 고객이 떨어져 나가면 열심히 일한 92%만 피해를 입는 거죠. 정부에는 사업장 내 농성을 막아 달라, 노조가 파업을 하면 대체근로를 허용해 달라는 딱 두 가지만 요구해 왔는데 결국 안 받아주더군요.” 손 회장은 노동개혁의 키워드로 ‘노동유연성’을 꼽았다. 손 회장은 우선 “일자리 문제는 길게 봐야 한다. 투자가 많아야 사업이 커지고 일자리도 많아진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국내 투자보다 해외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 안타깝지만 결국은 ‘한국에서는 기업하기 괴로우니까’ 나가는 것”이라고 진단한 뒤 “정규직만 너무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전체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손 회장은 “공공기관에서 노동이사제가 시작되면 몇 년 후 민간기업에도 적용하자는 요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짚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손 회장은 “노동이사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몇 나라 안 되는데 그중 독일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며 “그런데 독일은 기업마다 ‘경영 이사회’와 ‘감독 이사회’가 별도로 있고 노동이사는 감독 이사회에만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은 경영 이사회만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이사제 도입은 근로자 대표에게 사실상 경영을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또 산업 현장 대부분에 영향을 주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처법은 사고 피해자가 청원을 한 뒤 여론에 떠밀려 한 달 만에 만들어졌다”며 “영국에서 비슷한 법을 만드는 데 토론에 토론을 거쳐 13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법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회의원들도 노조는 표가 많고 기업은 표가 없는 거라고 착각하는데 우리(재계)도 표가 있다는 걸 보여줄 방법을 연구하겠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손 회장은 기업들에 ‘호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비호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는 동아일보 자체 조사결과와 관련해 “기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팬데믹이라는 위기에서 기업들이 (백신, 일자리 등)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나선 게 국민들의 이해도를 높였다고 본다”고 평가했다.홍석호 기자 will@donga.com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18, 19대 대선 당시 기업과 관련한 양당 후보 기사에서 많이 언급된 ‘경제민주화’가 20대 대선 때는 ‘투자자’ 등 실리적 키워드로 대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는 18∼20대 대선 D―90일부터 90일간 두 명의 대선 후보가 함께 언급된 10대 종합일간지 기사 중 기업과 관련한 특정 키워드가 적어도 하나 이상 들어간 기사를 전수 분석했다. 기업 관련 키워드는 삼성 현대자동차 등 5대 그룹 사명과 총수 이름, ‘기업’, ‘재벌’, ‘총수’ 등을 포함해 모두 25개로 설정했다. 최종 분석 대상은 빅카인즈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1만2477개 기사의 24만여 단어였다. 고유명사나 지역명 등을 제외하고 20대 대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일자리’였다. 일자리는 18대, 19대에서도 각각 2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기업과 밀접한 단어였다. 20대 대선에서의 특징적 키워드는 ‘투자자’(2위), ‘코스피’(15위), ‘주식시장’(21위), ‘거래소’(23위) 등 주식투자와 연관된 단어들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맞붙은 18대 대선 때는 ‘경제민주화’가 가장 자주 거론됐다. 이는 문 대통령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경쟁한 19대 때도 7번째로 많이 나온 단어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키워드 ‘톱30’에서 자취를 감췄다. 앞선 두 대선에서 나란히 3, 5위에 오른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이번에 7위, 17위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다. 20대 대선의 또 다른 특징은 ‘톱30’ 안에 ‘불공정’(12위), ‘공정성’(14위), ‘불평등’(18위) 등 MZ세대가 가장 중요시하는 공정 관련 키워드가 다수 포함됐다는 점이다. 김현지 기자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김현지 기자 nuk@donga.com}
16일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SDS가 정기주주총회를 열었다. 두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황성우 삼성SDS 사장은 이날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한 부회장은 ‘게임최적화서비스’(GOS)로 인한 갤럭시 S22 시리즈의 성능 저하 논란에 사과하면서, 황 사장은 클라우드 사업 전환에 대한 준비 부족을 고백하면서다. 현재 삼성이 주주를 바라보는 시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으로 보인다. 만약 10년 전 삼성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같은 장면이 나왔을까. 그것도 전년에 최대 실적을 거둔 상황에서 말이다. 예전 삼성의 주총은 특정 진영에 속한 시민단체들이 참석해 경영진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 장면이 주로 화제가 됐다. 지금처럼 일반적인 주주들의 목소리가 주목받지는 못했다. 삼성의 변화 시점을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부터로 보는 해석이 있다. 그해 7월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안에 대한 찬성률은 69.53%로 가결 기준인 66.67%를 2.86%포인트 차이로 겨우 넘겼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결집시킨 반대표가 만만치 않아서였다. 삼성 임직원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소액주주들의 위임장을 받아오지 않았다면 자칫 합병이 무산됐을 수도 있었다. 당시 삼성 고위 임원들 사이에서는 “주주의 무서움과 소중함을 동시에 깨달았다”는 얘기가 많았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2015년 10월∼2016년 9월, 2017년 1∼10월 각각 11조3000억 원, 9조3000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여 전량 소각한 것도 그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른바 엘리엇 사태를 겪으면서 주주 환원 정책이 대규모 투자 결정만큼이나 우선순위가 됐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의 모습을 그것만으로 풀이하긴 어렵다. 2018년 삼성전자는 50 대 1의 주식 액면분할을 단행했다. 2017년 말 14만 명에 불과하던 전체 주주 수는 ‘동학개미’ 열풍을 타고 2020년 말 214만 명으로, 지난해 말에는 504만 명까지 불어났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1명이 삼성전자 주주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2017년 10월, 2021년 1월 세 차례에 걸쳐 파격적인 주주 환원 정책들을 내놓은 바 있다. 2016년 3조1000억 원이었던 정기 배당금은 지난해 9조80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4월 10조 원대 특별 배당이 이뤄지기도 했다. ‘주주 500만 시대’의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주주 친화적 기업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본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소액주주들은 조금이라도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비판자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주주인 동시에 고객이기도 한 500만 명은 삼성 경영진에 가장 두려운 존재다. 2014년 상장한 삼성SDS 역시 사정이 다를 리 없다. 한 부회장의 사과와 황 사장의 반성은 훌쩍 커버린 ‘주주 파워’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주주들도 그런 삼성의 변화를 반기고 있을 게 분명하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 주주대표소송의 결정 권한을 일임하기로 하는 방안을 재논의하기로 했다.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에 반할 수 있다는 재계의 강한 반발에 한 발 물러서기로 한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25일 ‘2022년도 제1차 회의’를 열고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수정 의결하면서 일부 안건을 제외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대표소송 등 추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은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별도 소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한 후에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계는 그동안 주주대표소송의 결정 권한을 수탁위에 몰아주면 소송을 남발해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국민연금법상 자문 역할만 할 수 있는 수탁위가 소송 결정권을 가질 수 없다는 비판도 컸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외국인투자기업 10곳 중 9곳은 올해 투자를 하지 않거나 아직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국진출 외국계 기업 채용·투자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투기업 101곳 중 27곳(26.7%)은 ‘올해 투자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아직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응답이 65곳(64.4%)이었다. 이번 조사는 임직원 수 100인 이상의 외투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올해 투자계획을 세운 9곳(8.9%) 중에서도 7곳은 전년 수준을 유지할 예정이고, 늘리겠다는 기업은 2곳에 불과했다. 외투기업들이 투자를 늘리지 못하는 까닭으로는 ‘코로나19 지속으로 인해 국내외 경제 및 업종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서’란 답변이 44.1%로 가장 많았다. ‘주요 투자 프로젝트가 이미 완료되어서’(26.5%), ‘과도한 규제입법으로 기업환경이 악화되어서’(5.9%), ‘높은 법인세율, 투자 인센티브 부족 등으로 투자환경이 좋지 않아서’(2.9%) 순이었다. 외투기업들은 상당수가 채용 계획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조사 대상 기업의 14.9%가 ‘채용 계획이 없다’, 46.5%가 ‘아직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했다. 채용 계획을 세운 기업들 중에는 ‘작년 수준 유지’가 51.3%로 ‘작년보다 늘리겠다’(46.2%)보다 많았다. 소수지만 ‘줄이겠다’(2.5%)는 곳도 있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기업들의 고용과 투자 확대를 위해 신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근로환경 조성에 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포트원은 국내 최초의 상용 버티포트 건축에 필요한 공간 및 업무협력을 위해 ㈜아트하랑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23일 밝혔다. 버티포트는 도심항공교통(UAM) 이착륙장을 말한다. 아트하랑은 부산 기장군의 도심 체류형 관광클러스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건립되는 문화예술타운 ‘쇼플렉스’ 시행사다. 쇼플렉스는 문화예술, 엔터테인먼트, 체험, 쇼핑, 휴식, 관광이 어우러진 대규모 복합문화시설이다.포트원은 쇼플렉스에 들어설 버티포트의 설계, 건설, 운영 및 관리를 책임지고 아트하랑은 버티포트를 설치할 공간을 확보할 예정이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독특한 디자이너가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인공지능(AI) 휴먼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틸다(Tilda)’였다. 틸다가 ‘금성에 핀 꽃’이라는 주제로 만들어 낸 디자인 패턴은 박윤희 디자이너를 거쳐 실제 모델이 입은 의상으로 탄생했다. AI의 등장은 이미 세계 비즈니스 지도를 바꿔 놓고 있다. AI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고 기존 대기업들도 저마다 AI 전담 조직을 만들어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지금 AI의 발전을 바라보는 시각 중 불편한 관점을 가지는 건 과연 ‘AI가 내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느냐’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가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을 압도적으로 꺾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AI의 위력을 실감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바둑 챔피언에 대해 “AI처럼 바둑을 둔다”는 해설을 하기에 이르렀다. AI의 위력을 실감하고 나서도 유일하게 남은 불가침 영역이 있었다. 예술 영역이다. 많은 직업들이 AI로 대체될 거라는 글로벌 컨설팅 펌의 보고서들이 이어졌지만 “내 얘기”라고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조차도 AI 발전에 따라 가장 빨리 사라지는 직업군 중 하나가 ‘기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 예술 영역에서만큼은 AI가 인간의 창조성을 대체하지 못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학습’에 뿌리를 둔 AI와 ‘창조’는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틸다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창조적인 특성을 가진 패션 분야가 오히려 AI가 도전하기 쉬운 영역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AI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얘기하고 있을 때 오히려 그 고정관념을 깨보자고 한 것”이라고도 했다. 세계 경영 트렌드를 선도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지난해 7-8월 합본호에 흥미로운 케이스 스터디를 게재했다. 레너드 슐레진저, 세라 애벗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사례 연구를 기반으로 한 글이다. 문제 제기는 미시간주 지방은행인 바니르 뱅코프의 베스 대니얼스 최고경영자(CEO)가 AI 도입을 추진하는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그것을 반대하는 최고인사책임자(CHRO) 간 다툼을 어떻게 중재하느냐다. “AI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크리스 예 블리츠스케일링 공동설립자와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밥 리버스 이스턴뱅크 CEO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 HBR는 비록 결론을 내지 않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고민은 깊다. 눈에 띄는 건 “지금의 경쟁력을 갖게 해준 인간적인 요소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리버스 CEO의 조언이다. 틸다의 데뷔가 처음 공유됐을 당시 디자인그룹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기술 기반의 AI가 예술의 영역에서 어떤 왜곡을 낳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배 원장은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AI는 인간의 어느 영역까지를 대체할 수 있을까. 제2, 제3의 틸다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기 힘든 건 사실이다.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국내에서 기업주도형벤처캐피털(CVC) 자회사를 설립한 첫 지주사가 GS㈜라는 건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GS그룹 총수가 허태수 회장(65)이라서다. 허 회장은 현재는 GS리테일과 한 몸이 된 GS홈쇼핑에서 17년간 일했다. 최고경영자(CEO) 재임 기간만 13년이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2017년 8월 GS홈쇼핑의 스타트업 관련 글로벌 행사가 열린 싱가포르 센토사섬이었다. ‘벤처’라는 화두에 유난히 반짝이던 허 회장의 눈빛이 선하다. 그는 GS홈쇼핑 신사옥을 짓기 전인 2011년 혁신 기업들의 일터가 궁금해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때 사옥보다는 벤처 투자에 매료됐다. 허 회장은 귀국 후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GS홈쇼핑은 이후 벤처 투자와 CVC 운용을 가장 잘하는 국내 기업 중 한 곳이 됐다. 직접 투자한 스타트업만 40개 안팎에 이르고 25개 투자 펀드에 투입한 돈까지 합하면 투자금은 9500억 원에 이른다. 허 회장은 2019년 12월 그룹 총수로 자리를 옮기자 곧바로 지주사에 벤처 투자 DNA를 이식했다. 이듬해 7월 국내 법 적용을 받지 않는 미국에 해외기업 투자 목적의 ‘GS퓨처스’를 만든 것이다. 그러곤 이달 7일 자본금 100억 원짜리 CVC ‘GS벤처스’를 설립했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도 지주사 CVC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일주일여 만이다. 그룹 총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만큼 GS벤처스는 매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게 분명하다. 2020년 7월 공정거래법 개정 방침이 나왔으니 준비 기간도 충분했다. 첫 투자도 빠른 시간 내에 이뤄질 수 있다. 지주사 CVC로부터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은 그룹 계열사 수십 곳을 단번에 우군으로 확보할 수 있다. 돈도 돈이지만 대기업과의 협업 지점이 확대되는 게 큰 선물이다. 잠재 고객이면서 안정적인 거래처가 될 수 있어서다.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을 기회도 생긴다. 일반 벤처캐피털 자금을 쓸 때보다 단기성과에 대한 압박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CVC를 자회사로 둔 지주사로서도 전 계열사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려하기에 훨씬 다양한 종류의 스타트업들을 검토 대상에 올릴 수 있을 거다. 그만큼 양쪽 모두에 장점이 많다. GS벤처스는 그만큼 GS그룹의, 또 투자금이 절실한 스타트업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책임도 크다. 지주사 CVC로서의 ‘첫 주자’로 나선 만큼 후발주자들이 도전 시기와 투자 규모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수 있어서다. 이미 여러 지주사가 CVC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벤처업계로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사상 유례없이 벤처에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지만, 이른바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가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리기 때문이다. ‘금산 분리’라는 대원칙 때문에 오랫동안 막혀 있었던 지주사 CVC가 어렵사리 첫발을 내디뎠다. GS벤처스가 벤처업계에, 그리고 대기업들의 투자 풍토에 새바람을 일으켜주길 바라는 사람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북클럽 서비스가 있다. 같은 책을 읽은 뒤 그 내용에 대해 토론한다는 간단한 콘셉트다. 책을 읽었다는 증거(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돈을 냈더라도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다.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게 참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걸 해내지 않으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거다. 이런 상품을 살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2015년 9월 세상에 나온 트레바리는 그런 의문을 단번에 불식시켰다. 설립 4년 만인 2019년 4개월짜리 단일 시즌 모임이 350개를 넘었고, 누적 참가자는 2만5000명에 이르렀다. 고객은 주로 2030 직장인들. 수십억 원대 투자도 받으면서 이른바 잘나가는 스타트업으로 소개됐다. 트레바리의 성공 키워드는 ‘책 읽기’가 아닌 ‘사람’이다. 실제 2019년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읽기 클럽을 개설했을 때 참여자들은 아티클 자체보다 누구와 어떤 경험을 공유하느냐가 더 관심사였다. 많은 기업이 그러했듯 트레바리도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초 큰 위기를 맞았다. 단순한 악재 이상이었다. 사람들이 만나야 돈을 버는 비즈니스모델(BM) 근간이 통째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망할 뻔했다”는 다소 과격한 단어로 당시를 기억했다. 트레바리는 지난해 4월 온라인 전용 클럽을 만들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어느 정도 매출을 회복시켰지만 애초부터 오프라인만큼의 파괴력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결국 평생교육시설 인가를 받은 후 올 10월부터 오프라인 모임을 재개했다. 윤 대표는 “참가자 본인이 얻고자 하는 메시지나 지식 콘텐츠가 명료하면 온라인 모임으로도 충분하다”면서 “다만 대다수 고객은 취향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직접 교류하는 데서 큰 가치를 찾는 것 같다”고 했다. MZ세대 사이에서 학연, 지연, 직연(職緣·직장 인연)과 같은 전통적 커뮤니티는 이미 힘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교류하려는 욕망까지 없어진 게 아니라는 걸 트레바리는 보여준다. 한 대기업이 핵심 인재 대상으로 마련한 독서토론 클럽의 콘텐츠 큐레이터로 참여한 적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최고 단계 시기와 맞물린 A클럽은 100% 온라인으로, 다소 완화된 시점에 열린 B클럽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반씩 섞어 진행했다. 오프라인에서 먼저 만난 B클럽 참가자들은 참여도는 물론 대화의 밀도도 높았다. 나중에서야 B클럽 진행 방식을 전해 들은 A클럽 참가자들이 많은 아쉬움을 표한 건 물론이다. 오프라인 모임의 위력을 재차 확인한 경험이었다. 최근 여러 대기업 인사 부서에서는 그룹 계열사 핵심 인재들 간 네트워킹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네트워크가 회사와 회사 간 협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문제는 역시 언택트 시대에 참여자들의 친밀도를 어떻게 높이느냐다. 온라인 화상회의처럼 코로나19 덕에 급격히 성장한 산업이 몇몇 있었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온라인이 일상화된 요즘, 다시 오프라인의 가치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어떤 스타트업이 오프라인의 가치를 ‘안전하게’ 활용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내놓을지 꽤나 기대가 된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의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된 지난해 4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셀(CELL)에 주목할 만한 논문이 실렸다.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에 대한 고해상도 유전자 지도를 그린 것.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이 불과 3, 4개월 만에 거둔 성과였다. 노도영 IBS 원장은 “당시 RNA연구단은 마치 특별작전에 투입된 것처럼 연구를 진행했다”며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IBS가 지난달 개원 10주년을 맞았다. IBS는 서울대, KAIST, 포스텍, 광주과학기술원(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과 협업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현재 30여 개 연구단이 활동하고 있다. 2019년 11월부터 IBS를 이끌고 있는 노 원장을 14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노 원장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유전자 지도 완성과 더불어 20만 년 전 아프리카 칼라하리 지역에서 출현한 현 인류가 13만 년 전 지구 자전축 변동으로 인해 이주를 시작했음을 알아낸 것(기후물리연구단), 우주의 암흑물질 발견 및 중성미자 측정 등 우주의 구조와 기원을 규명하는 난제에 도전하고 있는 것(지하실험 연구단) 등을 IBS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노 원장은 “기초과학에서 위대한 발견을 하려면 한 가지 주제에 오래 천착해야 하고, 다양한 연구자들이 협력해야 하며, 전인미답의 영역을 관찰할 거대 시설도 필요하다”며 “한국은 IBS 설립 후 비로소 대규모 장기적 기초과학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글로벌 시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기초과학은 필수적인 학문”이라며 “IBS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식 창출은 대한민국을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바꾸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기초과학 연구가 곧바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노 원장은 “1970, 80년대의 2차전지 연구가 수십 년 후 전기차 시대를 열었고 RNA와 나노입자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현재의 코로나 백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IBS의 연구 성과도 당장 국가 산업과 연결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난 후 인간생활에 중요한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마지막으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MPG) 및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 IBS 연구단 규모를 2024년 40개, 2030년 50개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는 포부도 밝혔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임상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언 교수가 개발한 ‘눈으로 마음 읽기 테스트(RMET·Reading the Mind in the Eyes Test)’라는 게 있다. 사진 속 인물의 눈만 보고 감정 상태를 맞히는 것으로 인지적 공감 능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도구다. 한 연구팀이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A그룹에는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 사람’을, B그룹에는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떠올리라고 했다. 이후 사회적 계층 사다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묻자 A그룹은 상대적으로 하단을, B그룹은 상단을 선택했다고 한다. 두 그룹의 RMET 결과는 어땠을까. 자신을 강자로 인식한 B그룹의 정확도가 A그룹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즉, 스스로 권력자라 여기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우리는 권력자들이 주변이나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목격한다. 위 실험대로라면 권력자는 타인의 감정을 전략적으로 모른 체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읽지 못하거나 관심 자체가 없을 수 있다. 겨우 몇 분간의 실험 결과가 이럴진대 수년간 조직을 이끈 리더들은 어떻겠는가라는 연구팀의 추정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조직문화 및 리더십 전문 컨설팅업체 나발렌트의 론 카루치 공동 설립자는 지난달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온라인판에 ‘리더의 단점이 회사를 망치지 않게 하려면’이란 글을 썼다. 제목부터가 직설적인데 내용도 꽤 흥미롭다. 카루치는 조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리더의 성격적 결함 유형 네 가지를 제시했다. 지나친 자신감과 만성적 확신에 찬 리더, 충동적인 리더, 엄격하게 통제하는 리더, 불안해하는 리더다. 모든 리더들은 어느 정도의 성격적 결함이 있으니 지금 이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른 누군가에게 특별히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불행한 건 정작 그 리더들은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카루치는 네 부류의 리더 각각에게 실질적 조언도 건넸는데, 굳이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어차피 ‘남 얘기’로 흘릴 게 뻔하니까. 그 대신 많은 리더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카루치의 주문이 있다.“경쟁 환경과 회사 안에서 당신의 열정을 실현하는 데는 많은 장애물이 있죠. 당신 자신이 장애물 중 하나가 되지 않도록 하세요.” 기업들의 연말 인사 시즌이 한창이다. 인사는 곧 리더십 교체를 의미한다. 임원이 돼 대규모 사업을 총괄하게 된 이도 있고, 승진의 기쁨을 누리며 처음 팀장 자리에 오른 이도 있다. 자리를 이동해 구성원들과 새롭게 합을 맞추게 된 리더들도 많다. 시간이 된다면 HBR 11-12월호에 실린 ‘권력이 당신을 망치지 않게 하라’는 아티클을 꼭 일독할 것을 권한다. 줄리 배틸라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티지아나 카시아로 토론토대 로트먼경영대학원 교수가 공동 집필한 이 글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리드할 수는 없다. 권력의 덫에 걸리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오만 대신 겸손이, 자기중심성 대신 공감이 필요하다.”김창덕 DBR교육컨벤션팀장 drake007@donga.com}
“진료 현장에서는 병이 ‘있다’ 또는 ‘없다’라고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진료하는 의사도 힘들지만 환자들도 추가 검사를 받느라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써야 하죠. 그런 측면에서 의료와 인공지능(AI)의 만남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박기성 전남대 핵의학과 임상진료교수(44)는 AI가 앞으로 질병 진단 과정을 단축시켜 비용 및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봤다. 박 교수 연구팀인 ‘MAITEC’은 2일 가천대 산학협력단이 주최한 ‘2021 의료데이터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톤’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총 44팀이 참가한 이번 데이터톤에서는 6팀이 결선에 올라 박 교수팀 등 3팀이 수상했다. 이 대회는 뇌전이암 및 파킨슨병 진단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의료영상(PET, CT, MRI) 데이터 기반의 AI 학습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추진 중인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의 일부다. MAITEC은 뇌의 영상을 바닥과 평행한 평면으로 잘라 얻은 경축면 영상과 함께 최대강도투사 영상을 확보해 AI 학습을 진행했다. 최대강도투사 영상은 3차원(3D) 영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최대 세기 신호만 모아 만든 2차원(2D) 데이터다. MAITEC은 3D 영상 1개로부터 16개씩의 최대강도투사 영상을 획득해 학습에 활용했다. 결과적으로는 경축면 영상만 활용했을 때보다 최대강도투사 영상 데이터를 함께 학습할 경우 진단 정확도가 더 높았다. 박 교수는 “기술력 자체도 중요하지만 AI가 실제 적용될 임상 현장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의료 AI 개발에 절대적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임상헌 가천대 가천융합의과학원 연구원(26)이 주축이 된 ‘Automatica’는 파킨슨병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이 팀은 주최 측이 제공한 파킨슨병 의료영상 데이터들의 특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정규화 및 사전처리 작업에 집중했다. 임 연구원은 “파킨슨병은 세부적인 질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 데이터 구축이 매우 어렵다. 이번 데이터톤을 계기로 많은 질병 데이터가 구축될 수 있다면 보다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뇌전이암 부문 우수상은 연세대 의료인공지능연구실(MAILAB)에 돌아갔다. 암 환자의 80% 가까이에서 암이 뇌로 전이되기 때문에 뇌 영상은 암의 발생 위치나 크기를 판단하기 위한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이양호 MAILAB 연구원(27)은 “뇌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자동으로 종양 위치를 검출했는데 실제와도 일치했다”며 “AI 모델을 활용하면서 매우 작은 종양의 검출 가능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사업을 총괄한 이언 가천대 의대 명예교수도 AI 활용에 대한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 명예교수는 “산재돼 있던 데이터들을 통합 관리할 수 있다면 이를 토대로 수많은 인공지능 아이디어가 나와 신약이나 의료기기 개발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의료데이터로 뇌전이암이나 파킨슨병을 진단하는 시대가 올까. 가천대 산학협력단은 다음 달 11일까지 ‘2021 의료데이터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톤’ 참가 신청을 받는다고 19일 밝혔다. 이 대회는 가천대 산학협력단, 울산대 산학협력단, 인하대병원이 수집한 뇌전이암 및 파킨슨병 관련 의료영상 빅데이터(PET, CT, MRI)를 활용해 인공지능(AI) 학습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추진 중인 의료데이터 구축 사업의 일부다. 현재 암 환자의 80%에서 뇌 전이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뇌 영상 데이터는 암 발생 위치 및 크기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뇌 MRI 영상의 AI 분석은 암 진단 및 치료에 획기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 역시 뇌 영상 데이터의 AI 분석과 임상 증상을 종합할 경우 조기 진단이 가능할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이번 사업 총괄책임자인 이언 가천대 명예교수는 “뇌 영상 의료데이터 세트를 활용한 AI 영상 진단 알고리즘 개발은 뇌전이암이나 파킨슨병의 진단 확실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것”이라며 “예방의학 전체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데이터톤 주제는 ‘딥러닝 기반의 뇌종양 위치 검출 및 분할을 통한 측정’(뇌전이암), ‘뇌 양전자 단층 영상에서의 파킨슨 및 비정형파킨슨 감별’(파킨슨병)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예선을 통과한 6개 팀은 다음 달 17∼25일 본선을 진행하고 최우수상 1팀과 주제별 우수상 1팀 등 3팀에 총 상금 1000만 원이 주어진다. 참가 신청은 다음 달 11일까지 대회 웹사이트에서 하면 된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법무법인 태평양이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함께 27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포럼 2021-지속가능한 혁신의 길’을 연다. 글로벌 최고 전문가의 온라인 라이브 강연은 물론 메타버스 환경에서 법률전문가로부터 ESG 리스크 및 역량 진단도 받을 수 있다. 1부 기조연설은 ESG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앤드류 윈스턴 에코스트래티지스 대표가 맡는다. 윈스턴 대표는 ESG 열풍이 가져온 경제, 경영계의 변화를 진단한다. ‘그린 두 골드’, ‘빅 피벗’의 저자인 그는 지난해 싱커스50 레이더의 ‘주목해야 될 사상가’로 선정됐다. 글로벌 기업인 3M, 듀폰, HP, 존슨앤존슨, 킴벌리클라크, 매리어트, 펩시, 유니레버 등이 이미 그의 철학을 자사 전략에 도입한 바 있다. ‘ESG 파이코노믹스’를 쓴 알렉스 에드먼스 런던비즈니스스쿨(LBS) 교수의 강연도 이어진다. 에드먼스 교수는 폭넓은 글로벌 ESG 경영 사례와 함께 새로운 경영 인사이트를 공유할 예정이다. 문정빈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성공적인 ESG 경영을 위한 통합전략을, 이연우 태평양 ESG랩 전문위원은 ESG를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 방안을 각각 제시한다. 2부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의 ESG 컨설팅 세션으로 구성된다. 포럼 참가자들 중 사전 신청자에 한해 메타버스 공간에서 태평양 소속 변호사들의 ‘ESG 리스크 및 역량 진단’ 강연을 들을 수 있다. 태평양 ESG랩의 박준기 변호사가 컴플라이언스를, 이연우 전문위원이 리스크와 경쟁력을 중심으로 종합 컨설팅을 진행한다. 주제별 룸에서는 구도형 변호사(환경·기후변화), 최진원 변호사(산업안전보건), 김홍기 변호사(공정거래), 장호경 변호사(기업 인수합병)의 동영상 강의를 볼 수 있다. ESG 관련 퀴즈 등 미션을 수행한 참가자에게는 커피쿠폰이 제공된다. 자세한 내용은 DBR 교육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티켓 비용은 40만원(부가세 포함). 22일 오후 6시까지 신청하면 된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글로벌 소비재기업 유니레버는 유니세프와 함께 어린이와 산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손 씻기 캠페인’을 10년 이상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서 외부 감염으로 인한 출산 시 사망률이 너무 높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단, 주고받는 게 확실하다. 유니세프의 보급용 신생아 키트에 비누를 기부하되 자사 브랜드인 ‘라이프부이’ 상표를 반드시 부착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결과는 대성공. 이 캠페인은 수백만 명의 신생아와 산모를 사망 위험에서 구해낸 것으로 평가된다. 유니레버로서도 부진을 면치 못하던 비누 사업을 드라마틱하게 살려냈다. 라이프부이는 현재 유니레버에서 13개뿐인 연매출 10억 유로(약 1조3800억 원) 이상 브랜드다. 글로벌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의 대표 사례로 유니레버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이런 활동들 덕분이다. 2009∼2018년 유니레버를 이끌었던 파울 폴만 전 회장은 글로벌 공익재단 이매진을 창립해 기업들의 사회적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ESG 전문가인 앤드루 윈스턴 에코스트래티지 대표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9-10월호에 ‘넷 포지티브 선언, 당신 회사 덕에 세상이 좀 더 나아졌나요?’란 글을 기고했다. 윈스턴 대표는 폴만 전 회장과 함께 최근 ‘넷 포지티브’란 책을 펴냈는데, HBR 기고문은 그 핵심을 요약한 글이다. 윈스턴 대표는 ‘자신의 영향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모든 범위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개선하는 기업’을 넷 포지티브 기업이라 정의한다.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균형을 이루는 ‘넷 제로’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현실과 한참 멀어 보이더라도 그 정도 목표를 세운 기업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내 기업들도 ESG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의 메시지에는 ‘ESG’라는 단어가 상수로 박혀 있고, 이미 조직도 만들었다. 지금 이슈는 ‘Must do’라는 당위성이 아닌 ‘How to do’, 즉 어떻게 할 거냐다. 전략경영 분야에 자원기반관점이라는 이론이 있다. 비르게르 베르네르펠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주창한 뒤 제이 바니 유타대 교수가 정립했다. 기업은 자본, 인력, 역사 등 모든 영역에서 각기 다른 자원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시각이다. 단순화하면 하고 싶은 것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ESG 경영도 어느 기업이나 따라야 하는 모범답안은 없다. 기업 자신이 어떤 자원을 갖고 있는지 면밀하게 진단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유니레버의 비누 같은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윈스턴 대표는 27일 본보 주최의 ESG 포럼에 기조강연자로 참여한다. 이른바 ESG 경영의 선두주자들, 그의 용어대로라면 넷 포지티브 기업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지금은 어떤 행보를 걷고 있는지 소개할 예정이다. 그들이 과연 자신의 차별점을 어떻게 ESG 경영과 연결시켰는지 흥미롭게 들어볼 생각이다.김창덕 DBR교육컨벤션팀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