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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차 문화가 흥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는 불교탄압으로 발전을 멈췄고, 일제 강점기에는 차나무 시배지가 짐승들의 놀이터가 됐다. 은사 스님의 다맥(茶脈) 복원에 이어 오늘의 대축전을 열게 됐다.” 지난달 25일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만난 고산 스님의 맏상좌이자 주지인 영담 스님의 말이다. 지난해 입적한 전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은 1975년 이 일대가 차나무 시배지(始培地·식물을 처음 심어 가꾼 곳)임을 알고 보존에 힘썼다. 쌍계사는 선교율(禪敎律)과 차(茶), 범패(梵唄)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차는 전통사찰과 세상을 연결하는 쌍계사의 미래다. 이날 영담 스님은 차 시배지를 둘러보며 “이곳을 예비군 훈련장으로 쓰게 하려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며 “은사 스님이 차를 쌍계사의 미래 자산으로 여겨 시배지를 지켜내고 번듯하게 보존했다”고 말했다. 쌍계사 일대에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 공이 왕명으로 차나무를 최초 식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 시배지에는 진감·초의·만허 선사에 이어 고산 스님으로 전해지는 쌍계사 다맥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기념비가 여럿 들어서 있다. 이날도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시배지를 둘러보는 이가 적지 않았다. 고산 스님은 생전 차를 즐기고, 그 기쁨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시배지 근처에는 스님의 글 25수가 조형물에 새겨져 있다. ‘번다한 일과 잡념에 차를 마시면/망령된 생각이 쉬고 마음이 안정되도다/일이 많아 어려움이 많음에 차를 마시면/만사를 모두 쉬고 몸이 안락하리라.’ 지난달 22∼24일 성공적으로 진행된 ‘2022 진감·초의·만허 선사 선차문화대축전’은 쌍계사가 차를 통해 사찰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행사였다. 이 축전은 쌍계사 다맥 전수식을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며 22일 ‘제20회 다맥 전수법회 입재식’으로 문을 열었다. 불교식 의례에 이어 신라다례, 조선다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23일에는 차나무 시배지 일대의 야외에서 즐기는 들차회, 24일에는 경내 팔영루에서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의 주관으로 고려시대 가장 아름다운 차문화 행사로 알려진 명전희(茗戰戱)가 개최됐다. 영담 스님은 “차와 관련한 전통을 잘 살리되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쉽고 다양하게 차를 즐길 수 있도록 차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일과 선(禪), 차를 하나로 여겼던 고산 스님의 가르침이 은은한 차향을 닮았다. ‘홀로 앉아 차 마심에 만사를 쉬게 하고/둘이서 차 마심에 시간 가는 줄 알지 못하고/셋이서 차 마심에 문수보살의 지혜가 생겨나고/여럿이서 차 마심에 태평성대를 논하도다.’하동=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25일 찾은 천년고찰 쌍계사는 젊은 사찰, 친절한 사찰로 변모하고 있었다. 사찰 공간과 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한 배너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주차장이 있는 공간은 지난달 22∼24일 열린 ‘2022 진감·초의·만허 선사 선차문화대축전’ 중 야외무대로 바뀌어 가수 조영남의 공연이 열렸다. 다음은 주지 영담 스님과의 일문일답. ―문화대축전의 향후 방향은…. “젊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선차문화축전으로 꾸려가는 게 목표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차보다 커피가 가깝다. “아직은 첫 발자국을 뗀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 쌍계사 선차문화축전에 오면 나이든 분부터 가족, 젊은 연인 등 모두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이벤트를 마련할 생각이다. 인근 화개장터를 연결해 영호남이 함께할 수 있는 축제도 가능할 것이다.” ―산사에서 열린 음악회 반응은 어땠나. “산사와 음악이 어우러져 반응이 좋았다. 향후 국악과 현대음악 등이 어우러지는 주말 상설공연 무대로 발전시키고 싶다. 뮤지션뿐 아니라 아마추어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차에 관한 연구도 필요한데…. “내년에는 차 시배지와 쌍계사, 차의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학술대회를 열 생각이다.” ―전통사찰과 문화의 결합은 어떤 의미가 있나. “전통사찰이라고 해서 기도와 재 등이 진행되는 종교적 공간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미래가 없다. 차와 음악, 전시 등 사찰과 문화가 강하게 접목되어야 한다. 쌍계사에 가면 차도 음악도 즐길 수 있다, 이런 기대감을 주는 문화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하동=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영축총림 통도사가 현충시설로 지정되기까지 흥미로운 과정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사찰 주변의 미스터리가 스님과 관련자들의 노력에 의해 차례로 풀렸다. 경내 대광명전 벽면에는 “가노라 通度寺(통도사)야 잘 있거라 戰友(전우)들아, 情(정)든 通度(통도)를 두고 떠나랴고 하려마는, 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갈 수밖에 더 있느냐” “停戰(정전)이 웬말?” 등의 문구뿐 아니라 탱크와 트럭, 아이 얼굴 등 사찰과는 어울리지 않는 낙서들이 발견돼 사찰 소임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곳의 낙서가 남아 있는 것은 다른 전각과 달리 개·보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뜻밖에도 실마리는 2019년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대의 고승으로 명성이 높았던 구하 스님(1872∼1965)이 붓글씨로 쓴 연기문(緣起文)이 나온 것. 이 기록에는 불상과 전각 조성 과정뿐 아니라 당시 상황이 언급돼 있는데,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入寺)해 퇴거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연기문이 나오자 육군병원 분원 설치를 확인하는 작업에 속도가 더해졌다. 관련자들의 증언과 자료에 따르면 분원을 운영한 제31육군병원(육군정양병원)은 1950년 12월 대전에서 창설한 부대였다. 정양원(靜養院)은 몸과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부상병을 치료하는 곳이었다. 이 병원은 1951년 1·4후퇴 뒤 부산으로 옮겨 운영됐으며 부상병이 증가하자 지리적으로 가까운 통도사와 부산 범어사에 분원을 설치했다. 한편 통도사는 6·25전쟁 참전 영령 위령재 중 용화전 미륵옥불 점안행사에 대해 “호국영령들을 위로하고 내세에 중생을 구제할 미륵불로 오시기를 발원하는 의미를 담아 미륵옥불을 조성하게 됐다”고 밝혔다.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현충시설로 지정된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6·25전쟁 참전 호국영령을 기리는 위령재가 열린다. 3일 통도사는 “6월 18일 대웅전 및 용화전 일대에서 ‘영축총림 통도사 31육군병원 통도사분원 6·25 참전 호국영령 위령재’(가제)를 연다”고 밝혔다. 불교 전통의식에 따라 괘불이운과 용화전(사진)의 미륵옥불 점안식 등이 이어진다. 행사는 국방부, 국가보훈처, 경상남도, 양산시, 대한민국상이군경회가 후원하며 6·25전쟁 참전 희생자와 유족, 불교 신도 등이 참석한다. 통도사 측은 “이번 위령재는 호국영령을 위로하는 불교식 추모행사이자 그들의 넋을 기리며 조성한 미륵옥불을 점안해 호국불교의 정신을 선양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1월 ‘현충시설 지정서’를 통도사에 전달했다. 현문 스님이 주지로 취임한 후인 2019년 가을부터 이어진 제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의 존재 사실을 규명하는 노력이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현충시설 지정서의 정식 명칭은 ‘제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으로 쓰인 곳―통도사’이며 소재지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로 기록돼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정서에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74조의 2 제1항에 따라 현충시설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 조항은 “국가보훈처장은 국가유공자 또는 이들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 조형물, 사적지 또는 국가유공자의 공헌이나 희생이 있었던 일정한 구역 등으로서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는 데에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현충시설(顯忠施設)로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통도사는 2019년 9월 26일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육군병원의 존재사실이 담긴 ‘용화전 미륵존불 갱(更) 조성연기’(1952년 9월 작성)를 발견했다. 이후 국회, 국방부, 국가보훈처, 울산보훈지청 등 관련 기관에 현충시설 지정을 요청하는 한편 생존자와 유가족 증언을 청취하는 등 육군병원 존재 사실을 규명하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기록과 증언 등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통도사에는 3000명이 넘는 부상병을 치료하는 육군병원이 설치돼 운영됐고 통도사의 전각과 암자는 병원 사무실, 치료실, 수술실, 입원실로 사용됐다. 이 과정에서 통도사의 적지 않은 문화재가 파손되기도 했다. 현문 스님은 “통도사는 6·25전쟁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도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에 나서는 등 호국불교를 실천해 왔다”며 “독립운동에도 기여한 통도사의 역할과 성과를 올바르게 기록하고 우리 시대에 계승하는 일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부처님오신날(8일)을 앞둔 지난달 29일 경남 양산 통도사. 경내 암자인 서운암 옆 한 공간은 대한불교조계종 종정(宗正) 성파 스님(83)의 작업실이다. 차와 옻칠을 배우러 온 이들이 드나들었다. 외부인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했던 이전 종정의 주변과는 확실히 다르다. 3배(三拜)의 예를 청했지만 “한 번만 하라”며 한사코 손을 저어 결국 맞절이 됐다. 성파 스님은 올해 3월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추대법회를 통해 조계종 제15대 종정으로 공식 취임했다. 그는 이 법회에서 “법문은 많이 준비했는데 양산 통도사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싹 잊어버렸다”며 알기 쉬운 생활법문으로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며 박수까지 받았다. 조계종 헌법인 종헌에 따르면 종정은 종단의 신성(神性)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 권위와 지위를 갖는다. 참선 위주로 수행하는 선승(禪僧)들의 종정 계보에서 성파 스님의 존재 자체가 파격이다. 그는 수행에 힘쓰는 한편 옻과 한지 등을 이용한 서화 전시회, 16만 도자대장경의 불사를 이뤄냈으며 토종 먹을거리 보존을 위해 ‘서운암 된장’을 내놓기도 했다.》 ―추대 법회 이후 어떤 변화가 있나. “취임하나 안 하나 일과는 여전하다. 찾아오는 분들이 늘긴 했다. 내게 특별히 30시간을 주는 게 아니니까, 정해진 시간을 쪼개 쓰려고 노력한다. 다른 일 없으면 작업실에서 지낸다.” ―“본래 지닌 여래(如來·부처)의 덕성(德性)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는 부처님오신날 법어를 발표했다. 첫 법어라 특별히 고려한 것이 있나. “첫 법어라고 해서 안 나오는 법문이 나올 리 없다. 평소 늘 생각하는 것이다.” ―종단에서는 최초로 스승(월하 스님)과 제자 모두 종정에 올랐다. 평상심을 강조하던 월하 스님의 영향이 궁금하다. “어떠냐 하면, 안갯속에서 걷는 것과 같다. 소나기를 맞지 않아도 옷이 꿉꿉해지는 것처럼 그 느낌이나 마음이 배어 있다. ‘스승으로부터 어떤 법을 받았느냐’는 질문들을 하지만 특별한 법보다는 그분의 영향이 안개처럼 배어 있을 뿐이다.” ―종단 최고 어른으로 추대됐는데 달라진 게 있나. “종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뒤나 아닐 때나 나는 그냥 같다.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는 종정에 어울리는 언행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 외에는 종정이라는 ‘소고삐’에 얽매이기 싫다. 종정이라고 격식 차리며 살고 싶지 않고 평소 생활을 그대로 꾸려갈 뿐이다.” ―월하 스님 등 많은 이들이 ‘중노릇 하나만 옳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다. 일본 순사 기억도 나고, 6·25전쟁 중 인민군 점령지에서도 살아봤고, 전쟁 중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것을 봤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알까?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80대의 내가 요즘 20대, 30대 사고방식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남들에게 될 수 있는 한, 말 안 한다. 그냥 내가 할 뿐이다. 그들이 따라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지.” ―어린 시절 해인사 인근에서 살았는데 출가는 통도사에서 했다. “해인사까지 걸어서 소풍을 다녔다. 그런데 거기서 출가하면 아는 사람이 많아 피곤할 것 같아 좀 떨어진 곳이 좋겠더라(웃음). 내가 출가하면서 통도사 주지, 조계종 종정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개인이 선택했지만 모든 게 인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새 종정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다. “무엇이 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계절이 여름인데 겨울, 봄인데 가을 타령을 해서야 일이 되겠나. 무엇보다 역사를 많이 공부해야 한다. 역사에서 지금이 어떤 시점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1600년, 1900년, 2000년대 종정은 다르다. 지금은 2022년이다. 진리는 같지만 현상은 변화가 있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이다. 불교도 일반 역사와 같이 간다.” ―향후 불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승려들이 정치, 군사, 사업을 하겠나? 하지만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지키는 것,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다. 손에 잡히지 않으면 공상밖에 되지 않는다. ‘성파 스님은 왜 전통문화에 관심 많냐’고들 묻는다. 내가 전통문화의 방에서 태어나 살고 한 게 전부인데 다른 것을 할 수 있겠나. 승려들이야 전통문화의 보고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 물이 들어야 한다. 그게 ‘중물’이다.” ―단색화로 잘 알려진 박서보 화백은 작업이 수행이라고 했다. “그림뿐 아니라 밭을 매는 것, 나아가 움직이는 것 모두 수행이다. 출가 초기부터 그런 정신으로 살았다. ‘초발심자경문’을 배울 때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더라. 명색이 수행자라고 해도 제대로 못 하면 수행자가 아니다.” ―과거에는 참선 위주의 수행자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그렇다. 참선 위주의 수행이 쉬운 게 아니다. 하루도 앉아 있기 힘든데 평생 참선 공부를 했다면, 그걸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그를 칭송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칭찬받을 만할지는 그 사람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뒤 통도사 인근 이웃사촌으로 온다. 덕담 한마디 주시면…. “원수불구근화 원친불여근린(遠水不救近火 遠親不如近隣),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하고, 먼 데 있는 친척이 이웃에 사는 남보다 못하다고 했다. 큰 정치를 하다 왔으니, 생각이 많을 수 있다. 오뉴월 겻불도 쬐다 안 쬐면 섭섭하다더라. 심심하면 나와 차라도 한잔하면 된다. 정치를 잘했나, 못했나는 내가 관심 없으니까.” ―지난달 22일 윤석열 당선인이 비공개로 통도사를 찾아 차담을 나눴다. “(윤 당선인은) 역사의식이 강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앞으로 정치, 경제, 군사는 대통령께서 하실 일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다. 요즘 한류 얘기를 많이 하는데 노래와 춤 등 현재의 것이 중심이고, 전통 한류는 개발이 안 된 것 같다, 한지와 금속활자 등 우리가 서양을 앞선 것이 많다고 했다. 당선인은 우리나라에 역사 교육이 많이 부족하다며 공감했다. 그래서 우리 불교계가 전통 한류 보존과 소개를 국민문화운동 차원에서 전개하고, 대통령은 바쁘니까 도움을 받을 일 있으면 (옆의) 김기현 전 원내대표에게 말하겠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다. 어떻게 통합해야 하나. “마음은 꿀떡이라고 했다. 마음은 간절한데 쉽지 않다는 게다.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 있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정치권 갈등도 너무 심각하다. 나라 전체로 볼 때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고, 이것 때문에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어떡하면 좋은가. 아무리 큰일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굉장히 어려울 수도 쉬울 수도 있다.” ―곧 부처님오신날이다.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은…. “부처님 시절에도 제자들이 갈등하고 많이 싸웠다. 부처님이야 이를 어렵지 않게 극복하셨겠지만…. (갈등의 문제는) 차원을 달리하면 된다. 숲에서 나무들이 서로 크니 작니 다투지만 공중에서 바라보면 다르다. 우주 차원의 넓고 높은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넓고 튼튼한 배가 많은 짐을 감당하듯, 지도자는 자기 역량을 넓게 가져야 한다.” ―말처럼 쉽게 가기는 어려운 길 아닌가. “갑자기 갈 수 있다. 여래지(如來地)까지 한 번에.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먹으면 순식간에, 그게 안 되면 1년 걸려도 안 된다.” ―평생 수행하며 담아온 화두나 경구 한마디를 들려 달라. “한마디밖에 없는데 말하면 되겠나, 아껴 놔야지, 하하. 부딪히는 것을 피해 왔고, 싸울 일이 많았지만 안 싸웠다. 피하면 비겁하다고 하는데, 충돌하면서 그럴 것까지는 없더라. 손오공이 아무리 뛰고 날아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정치와 언론이야 자기 역할을 한다고 하겠지만 싸우고만 있는 것 아닌가. 어린아이와 학생들에게 그 영향이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자중지란, 그 결과는 역사가 보여준다.”성파 조계종 종정△ 1939년 경남 합천 출생△ 1960년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교무부장, 통도사 주지△ 1991∼2012년 16만 도자대장경 완성 및 장경각 건립△ 1997년 이후 천연염색과 옻칠 이용한 민화, 불화전 개최△ 2014년 최고 법계(法階)인 대종사 품수△ 2018년 통도사 방장 추대△ 2022년 3월 조계종 제15대 종정 추대법회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21일 충북 청주시 마야사에서 만난 현진 스님(56)은 ‘작은 스님’에서 정원지기가 돼 있었다. 그는 ‘삭발하는 날’ ‘잼 있는 스님 이야기’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의 저자로 불교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2012년 이 사찰을 창건한 스님은 초기에는 텃밭, 이후에는 정원을 가꾸며 수행자와 정원지기로서의 삶을 일구고 있다. 최근 출간한 ‘수행자와 정원’(담앤북스·사진)은 사찰 내 정원을 가꾸며 생기는 사시사철 에피소드와 마음공부에 관한 글을 담은 에세이다. 2017년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2019년 ‘꽃을 사랑한다’로 이어지는 정원 시리즈다. ―8년 만에 마야사를 찾았는데 주변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때는 대웅전과 요사채(스님들의 살림집) 정도만 있었는데 지금은 약 1만 m²(약 3025평)의 정원이 있으니 그럴 법하다.” ―올해 5월이면 이곳에 자리 잡은 지 10년이다. “사실 은거하며 지낼 요량이었는데 한 선배 스님이 40대면 한창 일할 나이라고 하더라. 그때 포교와 전법이 업(業)이면 도망가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불사(佛事)도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도량을 만든 뒤 신도를 모으는데 거꾸로 아닌가 싶었다. 신도가 모이면 인연, 단합, 신심이 생겨 도량이 생겨나야 하는 것 아닌가? 외부에 나가 100번 법문하는 것보다 여기 오는 100명에게 친절과 미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면 법문도 의미가 있지만 꽃과 나무의 법문이 중요하다.” ―신간 에세이에는 사찰 앞 문필봉(文筆峯) 덕에 글이 술술 나온다는 ‘거짓말’(?)이 나온다. “(‘정원일기’라는 제목의 노트들을 보여주며) 하루 종일 자신이 한 일을 정리하니까 글이 술술 나오는 게 맞다.” ―책에 언급된 화개장터 초입 ‘십리 벚꽃 길’로 초대한 노스님은 고산 스님인가. “지난해 입적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았는데 벚꽃이 복사꽃과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뤘다. 문득 당신이 미처 다 즐기지 못한 봄날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초대 아닌가 싶었다. 고산 스님은 특히 수국을 사랑했던 분이다. 쌍계사, 혜원정사 등 계셨던 곳마다 수국이 있다. 저도 마지막을 꽃일을 하다가 봄날에 따라가고 싶다.” ―나무 죽인 얘기가 자주 나온다. “조금 덜 관심을 줬거나, 살면 살고 아니면 말고 하는 놈은 죽더라. 인생유전처럼 나무유전, 팔자가 있더라.” ―꽃은 어떤가. “정원나무 팻말에 ‘나는 왜 꽃이 피지 않지라고 할 필요 없다/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모두 다르다’고 썼다. 꽃은 생김새나 키도 다르고 각양각색이다. 꽃이나 사람이나 자신이 기다리는 답들은 다르게 온다.” ―잡초와의 전쟁은 여전한가. “어느 할머니가 ‘왜놈들은 몰아내도 내 밭의 풀은 못 쫓아낸다’고 하더라. 정원 생활의 절반 이상이 풀 뽑기다. 어떤 풀들은 정말 작고 예쁜 꽃을 피워 동정심을 유발한다. 풀은 전멸되지 않으니 정원에 들어오는 놈들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마야사 3절(絶)을 꼽으면…. “5월 모란, 6월 병꽃, 9월 구절초다. 특히 병꽃은 보통 단색인데 여기는 연분홍, 흰색, 진홍의 3색으로 어우러진다.” ―정원지기 10년의 결론은 무엇인가. “자신이 호미 들고 땀 흘려야 돌아오는 즐거움이 크고 오래할 수 있다. 남에게 맡긴 정원은 획일적이다. 내가 직접 만들면 철학이 담긴다.” ―정원이 너무 커진 것 아닌가. “집중하는 삶이면 버릴 수 있지만, 집착하는 삶이면 버릴 수 없다. 노년에는 조금 더 작은 공간으로 옮길 생각이다. 나서지 않고 졸렬함을 지킨다는 의미의 수졸암(守拙庵)을 늘 그리고 있다.” ―힘든 이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면…. “인생이 어떠한 표정을 짓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죽음이란 마지막 과제를 받아들이는 공부, 작게는 이해하고 크게는 받아들이는 게 불교다. 그걸 잘해야 삶의 질이 달라진다.”청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21일 충북 청주시 마야사에서 만난 현진 스님(56)은 ‘작은 스님’에서 정원지기가 돼 있었다. 그는 ‘삭발하는 날’ ‘잼 있는 스님이야기’ ‘산 아래 작은 암자에 사는 작은 스님이 산다’ 등의 저자로 불교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2012년 이 사찰을 창건한 스님은 초기에는 텃밭, 이후에는 정원을 가꾸며 수행자와 정원지기로서의 삶을 일구고 있다. 최근 출간한 ‘수행자와 정원’(담앤북스)은 사찰 내 정원을 가꾸며 생기는 사시사철 에피소드와 마음공부에 관한 글을 담은 에세이다. 2017년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2019년 ‘꽃을 사랑한다’로 이어지는 정원 시리즈다. ―8년만인데 주변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때는 대웅전과 요사채(스님들의 살림집) 정도만 있었는데 지금은 약 1만㎡(3000평)의 정원이 있으니 그럴 법하다.” ―5월이면 이곳에 자리 잡은 지 10년이다. “사실 은거하며 지낼 요량이었는데 한 선배 스님이 40대면 한참 일할 나이라고 하더라. 그때 포교와 전법이 업(嶪)이면 도망가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불사(佛事)도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도량을 만든 뒤 신도를 모으는데 거꾸로 아닌가 싶었다. 신도가 모이면 인연, 단합, 신심이 생겨 도량이 생겨나야 하는 것 아닌가? 외부에 나가 100번 법문하는 것보다 여기 오는 100명에 친절과 미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면 법문도 의미가 있지만 꽃과 나무의 법문이 중요하다.” ―사찰 앞 문필봉(文筆峯) 덕에 글이 술술 나온다는 ‘거짓말’이 나온다. “(‘정원일기’라는 제목의 노트들을 보여주며)하루 종일 자신이 한 일을 정리하니까 글이 술술 나오는 게 맞다.” ―책에 언급된 화개장터 초입 ‘십리 벚꽃 길’로 초대한 노스님은 고산 스님인가? “지난해 입적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았는데 벚꽃이 복사꽃과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뤘다. 문득 당신이 미처 다 즐기지 못한 봄날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초대 아닌가 싶었다. 고산 스님은 특히 수국을 사랑했던 분이다. 쌍계사, 혜원정사 등 계셨던 곳마다 수국이 있다. 저도 마지막을 꽃일을 하다가 봄날에 따라 가고 싶다.” ―나무 죽인 얘기가 자주 나온다. “조금 덜 관심을 줬거나, 살면 살고 아니면 말고 하는 놈은 죽더라. 인생유전처럼 나무유전, 팔자가 있더라.” ―꽃은 어떤가? “정원나무 팻말에 ‘나는 왜 꽃이 피지 않지 라고 할 필요 없다/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모두 다르다’고 썼다. 꽃은 생김새나 키도 다르고 각양각색이다. 꽃이나 사람이나 자신이 기다리는 답들은 다르게 온다.” ―잡초와의 전쟁은 여전한가? “어느 할머니가 ‘왜놈들은 몰아내도 내 밭의 풀은 못 쫓아낸다’고 하더라. 정원 생활의 절반 이상이 풀 뽑기다. 어떤 풀들은 정말 작고 예쁜 꽃을 피워 동정심을 유발한다. 풀은 전멸되지 않으니 정원에 들어오는 놈들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마야사 3절(絶)을 꼽으면? “5월 모란, 6월 병꽃, 9월 구철초다. 특히 병꽃은 보통 단색인데 여기는 연분홍, 흰색, 진홍의 3색으로 어우러진다.” ―정원지기 10년의 결론은 무엇인가? “자신이 호미 들고 땀 흘려야 돌아오는 즐거움이 크고 오래할 수 있다. 남에게 맡긴 정원은 획일적이다. 내가 직접 만들면 철학이 담긴다.” ―정원이 너무 커진 것 아닌가. “집중하는 삶이면 버릴 수 있지만, 집착하는 삶이면 버릴 수 없다. 노년에는 조금 더 작은 공간으로 옮길 생각이다. 나서지 않고 졸렬함을 지킨다는 의미의 수졸암(守拙庵)을 늘 그리고 있다.” ―힘든 이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면? “인생이 어떠한 표정을 짓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죽음이란 마지막 과제를 받아들이는 공부, 작게는 이해하고 크게는 받아들이는 게 불교다. 그걸 잘 해야 삶의 질이 달라진다.”청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선·교·율(禪敎律), 차(茶)와 범패(梵唄·불교 의식 때 사용되는 음악)의 도량으로 알려진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22∼24일 ‘2022 진감·초의·만허 선사 선차문화대축전’이 열린다. 쌍계사 일대에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 공이 왕명으로 차나무를 최초 식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입적한 전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사진)은 1975년 이 일대가 차나무 시배지(始培地)임을 알고 보존에 힘썼다. 선차문화대축전은 진감·초의·만허 선사로 이어지는 쌍계사 다맥(茶脈) 전수식을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 행사는 22일 오전 10시 ‘제20회 다맥전수법회 입재식’으로 문을 연다. 불교식 의례와 신라다례, 조선다례가 이어지며 진감·초의·만허·고산 다맥 전수식이 거행된다. 23일 오전 10시 차나무 시배지 일대에서는 야외에서 즐기는 들차회, 오후 7시 고산대선사 부도전 앞 자연무대에서는 가수 조영남의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23일 오후 2시 팔영루에서는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의 주관으로 고려시대 가장 아름다운 차문화 행사로 알려진 명전희(茗戰戱)가 진행된다. 고산 스님의 맏상좌이자 쌍계사 주지인 영담 스님은 “고려시대에는 차문화가 흥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불교 탄압으로 발전을 멈췄고, 일제강점기에는 차나무 시배지가 짐승들의 놀이터가 됐다”며 “은사의 다맥 복원에 이어 오늘의 대축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는 그림이 새겨진 일명 ‘어부의 반지’는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라는 의미가 있다.” 천주교서울대교구 대변인이자 홍보위원회 부위원장인 허영엽 신부의 신간 ‘성경 속 상징’(가톨릭출판사·사진)의 일부 내용이다. 허 신부는 이 책에서 성경 속 자연, 동물, 사물, 신체, 감정 등 110가지 상징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흥미롭게 풀이했다. 어부의 반지는 교황이 선종(善終)하면 부수게 되는데 이는 가톨릭 세계에서 그의 권위가 끝났음을 상징한다. 부서진 반지는 교황의 관 속에 들어가는데 위조를 막기 위한 것이다. 2008년 1월 당시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아그네스 성녀 축일에 어린양 두 마리를 축복했다. 그 어린양의 털은 교황이 각국 신임 대주교를 로마로 불러 그들에게 입혀주는 팔리움(pallium)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팔리움은 목과 어깨에 둘러 착용하는 좁은 고리 모양의 양털 띠로, 주교 임무의 충실성과 교황 권위에 대한 순종을 뜻한다. 허 신부는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 생활을 했기에 성경에는 양털을 깎는 일이 자주 등장한다”며 “흰 양털은 무구함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책은 ‘우리가 머무는 곳’ ‘하느님이 주신 자연’ ‘우리 주변의 동물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 ‘우리의 신체’ 등 8장으로 구성됐다. 고 김수환 추기경과 ‘피겨 퀸’ 김연아 선수의 묵주반지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통해 성경 속 상징의 의미를 전한다. 염수정 추기경은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며 “이 책이 독자들을 하느님의 말씀에 맛들이게 할 것”이라고 추천사를 썼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정진석 추기경(사진) 1주기 추모 미사가 27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다. 천주교서울대교구는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이날 미사가 거행되며, 같은 시간 교구 내 모든 본당에서도 추모 미사를 봉헌한다고 12일 밝혔다. 30일 오전에는 경기 용인시 성직자묘지에서 손희송 주교 주례로 추모 미사가 열린다. 정 추기경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추모 사진전과 유품 전시회도 개최된다. 교구 문화홍보국은 2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명동대성당 지하 1898광장에서 ‘별빛 같은 사람―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사진전’을 연다. “밤하늘의 작은 별빛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던 정 추기경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과 그가 남긴 60여 종의 저서도 함께 전시한다.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주최하고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이 주관하는 유품 전시회는 27일부터 10월 30일까지 교구 역사관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고인의 저서와 역서를 비롯해 서울대교구장 착좌식 때 쓴 주교관과 신학교 입학 전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 유학 시절 읽은 교회법전 등 유품 130점을 소개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베트남 출신의 영화 스님(67)은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이공계 학사와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뒤 IBM 등 기업에서 일했다. 1995년 중국 선가(禪家) 5종의 하나인 위앙종 법맥을 잇고 있는 선화 상인(1995년 입적)을 은사로 출가했다. 영화 스님은 2005년 보디라이트인터내셔널(Bodhi Light International)을 설립해 제자들을 지도하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노산사와 위산사 등을 창건했다. 지난해 9월 경기 성남시에 개원한 도심선원 보라선원에서 8일 그를 만났다. 서울 보덕선원 봉은사 법련사, 부산 관음사와 홍법사 등에서 법문한 뒤 다음 달 10일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선원이 거리 한복판에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산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고립된 공간에서 명상에 집중하며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충분히 강해지면 하산(下山)해야 한다.” ―하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적인 수행을 해도 사람들에게 그 결과를 전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산을 내려와야 한다.” ―하산 뒤 세속적인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하나. “집세와 음식, 옷…. 평생을 바쳐 수행하려고 했는데 먹고 자고 입는 옷 때문에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다. 재가자뿐 아니라 스님들도 같은 문제를 겪는다. 내 지식을 전하려면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수행 중 세속적 걱정을 하지 않도록 경제적으로 배려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고 있다.” ―여러 나라 제자들이 있는데, 한국에 사찰(청주 보산사)과 선원을 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차담을 도우며 통역 중인 제자 현안 스님을 보며) 현안 때문이다(웃음). 선(禪)을 통해 많은 도전을 극복한 현안이 언젠가 ‘이 감동을 조국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때 심각하지 않게 ‘오케이’했는데 여기에 이르게 됐다.” ―기업을 다니다 어떻게 선에 빠져들었나. “기업에서 일하며 돈도 많이 벌고, 즐겁게 노는 건 많이 해 봤다. 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최고점을 찍으면 상상되는 모습이 있었는데 돈과 권력으로는 행복하지 않겠더라. 선을 접하는 순간 인생의 밸런스가 느껴졌다.” ―출가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됐나. “10년을 투자해 선의 모든 비밀을 배우면 환속할 생각이었다(웃음). 스승은 그걸 알면서도 출가를 허락한 것 같다.” ―위앙종은 한국에서는 낯설다. “우리는 명상을 위주로 하지만 염불과 절, 만트라(진언·眞言), 화두 등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한다. 선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다. 절 수행만 해서 깨달은 제자도 있다. 무엇을 하든,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면 된다. ―종교의 가르침은 경직화하는 경우가 많다. “유연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많다. 선은 하나의 고정된 방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러 방법을 써서 사람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성남=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9·11테러가 발생한 지 4개월 뒤인 2002년 1월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75)는 미국 동부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뉴욕필하모닉 예술감독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작품을 의뢰한 것. 하지만 그의 작업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고, 곧 불가능한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상처도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테러 현장에 남아 있는 희생자들의 흔적과 메모를 기록하고, 어둠이 내리면 도시의 소리를 녹음했다. 새벽에도 교통 소음과 사이렌, 발소리 등 침묵하지 않는 도시의 숨결을 담아냈다. 희생자들의 메모는 대사와 노랫말이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영혼의 환생에 대하여’는 9·11테러 1주년이 조금 지난 2002년 9월 19일 초연됐다. 애덤스는 이 작품으로 2003년 퓰리처상 음악 부문을 수상했다. 저자는 유럽의 절대왕정 시기부터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역사가 되어야 했던 작곡가들의 삶을 다뤘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베르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쇼스타코비치 등 작곡가 13명의 익숙한 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이 이어진다. 슈트라우스는 나치 권력에 순응해 ‘올림픽 찬가’를 만들었고,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을 눈여겨보는 스탈린을 의식하면서도 자기만의 예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권력자, 나아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원불교가 3년에 걸쳐 교단 혁신에 나선다. 나상호 교정원장(사진)은 7일 간담회에서 “원불교는 교단 혁신을 위해 최고 의결기구인 수위단회 산하에 ‘교단혁신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며 “앞으로 3년 동안 모든 의견을 결집해 혁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나 원장은 대표적인 과제로 여성 교무(성직자)의 독신 서약으로 불리는 ‘정녀(貞女) 지원서’ 폐지 여부, 교무들의 처우 개선과 인사제도 개선,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로 알려진 여성교무의 복장 문제를 꼽았다. 그는 기본 경전인 ‘원불교 전서’ 회수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원불교는 지난해 4월 반세기 만에 전서 개정 증보판을 냈으나 심각한 오탈자와 편집 오류로 전량 회수했다. 이어 오도철 당시 교정원장과 후임 오우성 원장이 잇달아 교체됐다. 나 원장은 전서 사태와 관련해 “이 과정에서 교단 혁신에 대한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며 “교단이 100년을 지나오면서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누적돼 있었던 것은 혁신하고 가야겠다는 요구가 많았다”고 했다. 원불교는 ‘덜 개발하고, 덜 만들고, 덜 쓰자’는 의미의 ‘3덜 운동’을 교단 차원에서 펼친다. 2030년까지 원불교 전 교당 전력 사용을 100% 재생에너지로 자립할 계획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찾아오는 불교가 아니라 찾아가는 불교가 되겠다.” 최근 대한불교천태종 신임 총무원장으로 임명된 무원 스님(64·사진)의 말이다. 무원 스님은 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승려와 신도의 고령화와 관련해 ‘찾아가는 불교’와 ‘다문화인 포교’를 그 해법으로 제시했다. 무원 스님은 1979년 출가해 인천 황룡사, 서울 명락사, 부산 삼광사, 대전 광수사 등 전국 20여 사찰의 주지를 역임했다. 총무원장 직무대행과 종단 국회 격인 종의회 의장을 지냈다. 그는 이웃 종교와의 교류에 적극 나서 ‘종교계의 마당발’로 불렸고 개성 영통사 복원을 주도하며 남북 간 종교 교류에도 힘썼다. 무원 스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이후 종단 차원의 적극적인 변신도 다짐했다. “천태종의 복지문화,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발전시켜 중생과 함께하는 활기찬 불교문화를 만들겠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정신적 빈곤을 어떻게 종교로 채울지도 화두로 삼고 있다. 내적으로는 기도와 염불선 수행이 중요하다고 본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올해 개신교 부활절연합예배는 17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다. ‘2022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는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연합예배 계획을 밝혔다. 연합예배에는 74개 교단과 전국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가 함께 참여한다. 부활절예배 주제는 ‘부활의 기쁜 소식, 오늘의 희망’이다. 1만2000명 규모의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방역수칙을 준수해 전체 좌석의 약 70%가량이 입장할 예정이다. 대회장인 이상문 목사는 “부활절연합예배의 전통에 따라 예배의 헌금 전액을 사회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며 “올해는 경북 강원 지역의 산불피해지역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난민들을 지원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연합예배 헌금은 대략 5000만 원 선이었지만 이번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협조 등을 통해 1억 5000만원을 모금할 계획이다. 부활절연합예배 설교자로 나서는 소강석 목사는 “부활절 예배에서 한국교회가 하나 되고, 새 정부에 당부하는 국민통합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다”며 “코로나 기간 환자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 의료진들, 희생을 당한 유가족 등과 함께 하는 메시지를 담아 잘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중심이 되는 부활절 새벽예배는 17일 오전 5시반 서울 성북구 예닮교회에서 열린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달 31일 찾은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Hifamily)’. 30여 년 전부터 행복과 가정, 미래를 하나의 메시지로 전파해온 송길원 목사(65)가 설립한 국내 첫 행복가정 비정부기구(NGO)다. 이곳에는 2012년 부활절 계란을 형상화한 청란교회를 시작으로 하이패밀리 센터, 수목장 ‘소풍 가는 날’, 순례길 등이 조성돼 있다. 소풍 가는 날의 어린이 묘역인 안데르센 공원묘원에는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 양의 묘소가 있다. ―행복과 웃음치유사에서 이제 ‘엔딩 플래너’, 장례감독이 됐는데…. “가족 사역을 30여 년 하다 보니 결국 죽음의 문제에 이르렀다. 결혼으로 시작되는 가정의 탄생, 중년의 위기, 노년과 죽음의 문제는 저를 포함해 생애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이들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게 결론이다.” ―정인 양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아픈 사연 속에서도 많은 분들이 같이 분노하고 울어주며 공감했다. 우리 사회에 아직 따뜻한 가슴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회적 반성과 치유가 이뤄지고 있었다. 새벽 2, 3시에도 사람이 오더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임에도 이곳을 찾는 엄마들의 추모하는 마음이 경이로웠다.” ―사회적 반성과 치유는 어떤 의미인가. “사회적 재난과 죽음을 1인칭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그들이 죽었다’의 3인칭이 아니라 나의 것, 나의 문제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 때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 우체통을 설치해 ‘하늘나라 우체국장’으로 불렸다. “슬픔이 있는 곳이 성지다. 세월호 현장이 그랬다. 묘지는 사회적 치유를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추모객들이 남긴 꽃이 있는 정인 양 묘소 등을 둘러보던 송 목사는 이곳에 생길 변화도 언급했다. 수목장 하는 곳을 만들면서 생긴 옹벽에 ‘100m 성경의 벽’이 들어선다. 옹벽과 연결한 철골 구조물을 세운 뒤 그 위에 성경 구절이 새겨진 약 5400개의 작은 스테인리스 패널을 부착하는 방식이다. ―성경의 벽은 언제 완성되나. “옹벽 상태로 덩그러니 남아있어 좀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디자인과 기본설계는 마친 상태다. 구약과 신약을 모두 그 벽에 담을 수 있다. 양평군과 경기도 목회자 협의회, 전국 각지의 교회들이 힘을 보탰다. 올해 크리스마스 이전에 완공할 계획이다.” ―코로나19 등으로 예기치 않은 죽음을 경험하는 이웃들이 많다. “죽음은 헛기침하고 예고하며 찾아오지 않는다.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면 우리 삶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 개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죽음에 관해 배워야 한다.”양평=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30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내 교구장 접견실에서 환담을 나눴다. 윤 당선인은 정 대주교와의 만남 후 교구 영성센터 운동장에 있는 ‘명동밥집’으로 이동해 1시간 동안 배식하고 손님에게 식판을 가져다 줬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정 대주교는 “당선인 신분으로 다시 만나 뵙게 돼서 반갑다”며 당선을 축하했고, 윤 당선인은 “대주교님의 많은 지혜로 도와주시길 바란다”며 화답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월 후보 시절에도 서울대교구를 찾았다. 정 대주교는 “윤 당선인께서 당선 소감을 말씀하실 때 오직 국민만 믿고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셨다”며 “국민을 편 가르지 않고 통합의 정치를 펴나간다고 하신 말씀에 공감하며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 통합의 정치를 해주시길 희망한다”고 했다. 정 대주교는 이어 “‘명동밥집’은 염수정 추기경께서 제안하셔서 지난해 1월에 출범했다”며 “평일에는 600~700명이 이용하는데 많은 분들이 식사하며 매일같이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라고 소개했다. 윤 당선인은 과거 봉사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공직에 있을 때 노인들의 요양보호사로 일 년에 한 번 정도 봉사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는 비공개 환담에서 윤 당선인이 “식구가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인 것처럼, 밥을 함께 먹는 행동이 소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상징적인 명동성당에서 밥을 함께 나누는 것은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고 전했다.김갑식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법문은 많이 준비했는데 양산 통도사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싹 잊어버렸다.” 30일 서울 조계사에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宗正) 추대법회에서 법어(法語)를 시작한 성파 스님(82)의 말이다. 쉽지 않은 법어를 예상했던 참석자들 사이에서 큰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파 스님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말로 법어를 대신하겠다”며 조계종의 전통문화 수호와 불자의 책임 등을 강조했다. “계절의 봄은 왔는데 인간의 마음은 왜 그리 냉각돼 꽃을 못 피우는지…. 따뜻한 화합의 기운으로 인간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울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게 불자의 임무와 책임이다.” 성파 스님은 이어 “가지 않으려고 해도 가는 게 인생길이고 나이 70, 80이 되면 아는 게 많다고 한다”며 “그걸 싹 다 잊고 시작하는 마음, 초심으로 돌아가면 우리 가정과 사회, 국가가 새 출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정 추대법회에서는 보기 드문 생활법문이자 즉석법문이었다. 알기 쉬운 파격의 법어가 이어지자 고개를 끄덕이는 신도들이 적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불교식 의례에 이어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봉행사, 원로회의 의장인 세민 스님의 추대사, 전국비구니회 회장인 본각 스님의 헌사 등이 이어졌다. 천주교 종교간대화위원장인 김희중 대주교와 이범창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이웃종교계와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종정 추대법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축사에서 “종정 스님은 모두를 차별 없이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을 강조하셨다”며 “그 가르침대로 우리 사회가 갈등과 대립을 넘어 화합과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길 바라마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계종 헌법인 종헌에 따르면 종정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 권위와 지위를 갖는다. 임기는 5년이며 한 차례 중임할 수 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연등회(사진)가 3년 만에 재개된다. 연등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19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연등회보존회는 최근 “방역당국이 4월 초까지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에 도달한 뒤 점차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부처님오신날마다 진행됐던 봉축 연등회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존회에 따르면 연등회는 다음 달 5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봉축점등식을 시작으로 5월 8일 부처님오신날까지 1개월여 동안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봉행된다. 올해 봉축탑은 지난해와 같이 화엄사 사사자탑을 원형으로 높이 7m 규모로 조성된다. 연등회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연등 행렬은 다음 달 30일 오후 7시 반부터 시작한다. 서울 흥인지문(동대문)을 출발해 종로를 거쳐 조계사까지 다양한 문양의 전통등 행렬이 이어진다. 이에 앞서 오후 4시 반 서울 중구 동국대운동장에서는 화려한 연희단의 공연이 펼쳐지는 어울림마당이 열린다. 5월 1일에는 조계사와 우정국로, 인사로 일대에서 연등 만들기,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마당이 진행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한국의 근현대 기독교(개신교)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기념관들이 최근 잇달아 문을 열었다. 21일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에서는 준공 기념예배가 열렸다. 기념관은 전주 완산구 전주예수병원 인근에 들어섰으며 연면적 2758m²(약 835평)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됐다. 2층 전시관에는 미국 남장로교 소속 7인 선교사가 조선에 오게 된 배경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전주 개신교인의 활동을 주제로 한 영상 콘텐츠와 체험 중심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3층 의학박물관에는 2009년 문화재청의 근대문화유산 의료분야 목록에 등재된 5가지 유물과 소장품 150여 점이 전시 중이다. 전주에는 지역의 근대화를 이끈 개신교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호남지역 최초의 교회인 전주서문교회와 서양식 병원인 예수병원, 3·1운동을 주도한 신흥학교, 선교사 묘역이 있다. 전주시는 “종교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종교문화시설 건립을 통해 개신교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인천 강화군에서는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강화 지역에 산재한 개신교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설립됐다. 기념관 건립은 30년 전부터 추진됐지만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중단되기도 했다. 연면적 1877m²(약 568평)에 지상 2층 건물로 기획 전시실과 영상 전시관, 카페를 갖췄다. 전시관에는 감리교 소속으로 강화도 최초의 교회인 교산교회, 개신교의 전파 과정, 초기 선교사와 강화 기독교인의 삶, 개신교를 통한 교육과 문화, 의료 분야의 발전 과정을 담은 공간이 조성됐다. 강화군에는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이 희생된 ‘갑곶순교성지’가 있다. 강화군은 개신교와 가톨릭 성지를 잇는 성지순례 프로그램도 추후 운영할 계획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