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따빠오(tapao, 포장)’는 우리가 싱가포르에 머문 8월 한 달 동안 의외로 가장 많이 썼던 단어 중 하나였다. 거의 날마다 따빠오를 하는 바람에 이 ‘미식(美食)의 나라’에서 외식할 기회가 없었을 정도로.시작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데라의 한마디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시아 14개국의 기자 17명이 참여하는 단기 연수가 갓 시작된 때였다. 오전부터 세미나가 있는 날은 주로 회의실 앞 복도에서 미니 뷔페로 점심 식사가 제공됐다.아무리 맛있는 뷔페라도 으레 그렇듯, 그날도 음식이 적잖이 남았다. 그때 천진난만하고 장난기 많은 데라가 나타났다. 그가 몇 마디 부탁을 건네자, 프로그램 매니저는 어디선가 네모난 플라스틱 일회용기를 순식간에 구해와 남은 음식을 착착 나눠 담은 뒤, 아주 일상적인 어조로 말했다. “따빠오를 원하는 사람은 이따 챙겨가세요!”나를 포함한 절반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천진난만한 얼굴의 데라가 쓱 나와 설명을 보탰다. “내 고향에서는 음식을 낭비하지 않아. 남은 건 저녁에 먹게 따빠오해서 가져가자.”중국어 따바우(打包·포장하다)에서 기원한 표현 ‘따빠오’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널리 쓰인다. 음식점에서 사서 가져갈 때도, 먹고 남은 음식을 싸갈 때도 자주 쓰는 말이다. 특히 싱가포르의 따빠오는 날씨가 덥고 빽빽한 이 나라의 의식주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싱가포르 인구 80%는 공공주택 단지에 산다. 집 부엌은 비교적 좁지만, 저렴한 노점상 수십 개가 모인 호커센터(푸드코트)가 ‘지역사회의 공동 부엌’ 역할을 대신한다. 일 년 내내 창문을 열고 사는 이들은 집에서 고기와 생선을 구우며 연기를 피우는 대신, 아침이든 밤이든 호커센터에 모여 식사하고 음식을 사며 ‘따빠오’하는 것이 일상이다.4주간 낯선 땅, 낯선 숙소에서 낯선 룸메이트와 살게 된 우리 17명도 그날부터 서서히 따빠오에 ‘따며들었다’. 분명 같은 음식이라도 회의실에서 접시에 담아 먹는 점심과 숙소에 돌아와 룸메이트와 나눠 먹는 저녁의 맛은 묘하게 달랐다.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우는 동안 거실에선 따뜻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따빠오 음식들이 집밥 아닌 집밥의 역할을 해준 셈이다.따빠오 중에서도 백미는 14개국 참석자들이 직접 마련한 음식으로 연 포틀럭(potluck) 파티였다. 공지된 준비 사항은 분명 “각자 한 가지씩”이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늘 먹는 사람의 위장을 고려하지 않는 법. 너나 할 것 없이 양손 그득 먹을 것을 들고 오는 바람에 접시 놓을 자리 마련하는 것이 일이었다.거실 한쪽에선 알싸한 칠리와 톡 쏘는 커리 냄새가, 다른 쪽에선 달콤 짭짤한 로작(샐러드)과 고소한 만두 냄새가 겹겹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장 인기가 좋았던 것은 대접에 고봉으로 쌓은 쌀밥. 서로 다른 피부색의 손들이 앞다퉈 주걱을 향하는 걸 보고 누군가 “우리 정말 다들 아시아인이 맞나봐”라고 외치자, 저항 없는 웃음이 퍼져 나갔다.그날 밤의 따빠오는 그야말로 ‘냄비’ 단위였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용기로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음식이 풍성했다. 사람들이 모두들 묵직한 손으로 돌아간 다음 날, 저녁이 다가오자 그룹 채팅방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메시지가 올라왔다.“어제 남은 음식으로 파티할 사람…?”“우리도 냉장고가 꽉 찼어. 같이 먹어 치우자!”마치 추석에 할머니 댁에 다녀온 것처럼, 그 이틀 동안엔 모두 배고플 틈이 없었다. 각자의 손맛을 칭찬하고,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맛보라며 자랑하는 와중에도 무슬림과 채식인과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이 무심코 실수하지 않도록 접시마다 메모지에 재료명을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문자 그대로의 ‘한솥밥’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손맛을 모은 ‘한 식탁’ 밥을 먹고, 남은 것은 서로에게 챙겨주고, 다음 끼니도 함께 하자고 약속한 그날, 우리는 우리만의 작은 명절을 지낸듯했다.싱가포르에서의 4주는 눈물과 웃음을 버무린 작별 인사와 함께 8월 말 끝이 났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지인들은 역시나 “칠리 크랩이랑 카야 토스트 먹어 봤어? 다른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왔어? 뭐가 제일 좋았어?”라며 물 흐르듯 음식이 어땠는지부터 묻는다. 밥심으로 사는 민족인 내 고향 한국답다.정작 그 유명하다는 칠리크랩도, 카야 토스트도 맛보지 않은 나는 아직 ‘무난한’ 답을 찾지 못해 얼버무리고 있다. 조금 이상한 답이라도 괜찮다면 아마도 난 솔직하게 실토해 버리고 말 것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맛은 따로 있다고, 그런데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조금 복잡하다고, 그래도 애써 표현해 보자면 이런 맛이라고.“틈날 때마다 따빠오라는 걸 해서 밥을 나눠 먹었는데, 그 음식들이 내겐 최고였어.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서로를 살뜰히 챙겨주는 맛. 다른 음식들은 싱가포르에 가면 얼마든지 다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따빠오들은 어디서 사 먹을 수도, 내가 재현할 수도 없어서 아주 귀중한 기억이거든.”[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나 어떡하지? 요즘 행복하지가 않아”밤 9시에 동료인 그는 다짜고짜 전화로 행복을 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듣는 것뿐.사연은 이랬다. 정확히는, 사연이랄 것이 없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든 것이 괜찮았다. 쑥쑥 잘 크는 아이, 안정적인 직장, 심신의 건강, 별문제 없는 재정 상태. 하지만 “그래서 난 지금 행복한가?”라고 스스로 물으면 선뜻 “응”하고 끄덕여지지 않는 마음. 조금도 불행하지는 않은데, 행복감 역시도 느껴지지 않는 지독한 딜레마.검고 어두운 한밤의 무더위 속에서 언덕길을 오르는 동안, 수화기 너머에선 꽤 절박한 자문이 이어졌다.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왜 행복하지가 않을까. 행복하고 싶은데, 뭐가 문제일까. 행복은 그에게 언제나 과제였다. 과거엔 노력할 필요조차 없이 수월하게 이뤄냈던 과제가 어느 순간 난제가 되어버린 것뿐이다.집에 도착해 후끈한 등에서 배낭을 내려놨다. 등덜미가 땀으로 눅눅했다. “인생에 시기라는 게 있지 않을까? 지금은 나 자신보다는 다른 것들을 굴려 가는 게 중요한 때라 그럴지도 몰라.” 세상엔 노력만으로는 잘 안되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니까, 라고 우물우물 말을 맺다가 나는 물었다. 아, 혹시 영화 ‘퍼펙트 데이즈’ 봤어?한여름이면 알록달록 익은 옥수수를 굴려 살피면서 흐뭇해지곤 한다. 연노랑과 샛노랑, 창백한 하양의 낱알맹이들이 도로로록 도열한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일관성 안에서의 리듬감 있는 변주, 규칙 속의 불규칙, 예측 가능성 속의 불가능성. 그런 것들을 한 번 인지하고 나면 일상은 쉽게 지루해지지 않는다.‘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로야마 씨의 삶이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순서로 채비하고 같은 캔 커피를 마신 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곳에서 식사한 뒤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그의 생활을 ‘수도승’ 같은 ‘엄격한 루틴’이라고 일컫는 이가 많았다. 글쎄. 그런 히로야마 씨라면 완벽하게 루틴을 지킨 날 가장 행복을 느낄까.다른 한 편에서는 그가 매일 아침 화분에 물을 주고, 매일 출근길 올드팝을 듣고, 매일 밤 좋아하는 소설을 읽으며 ‘작은 것에서 얻는 기쁨’으로 ‘완벽한 날들’을 만들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소확행’을 추구하며 몰래 쾌재를 부르는 사람이었을까.가만하고 과묵한 그는 무능한 동료가 돈 좀 보태달라며 난리를 쳐도, 가출한 조카가 재워달라며 불쑥 찾아와도, 일상에 예측할 수 없는 비일상이 자꾸만 침투해도 그저 바람에 나뭇잎처럼 잠시 살랑였다가 이내 가만한 미소로 돌아온다. 어째서 그럴 수 있을까.언젠가 하루하루가 쳇바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야 뭐 회사의 부품이지. 별일? 그런 게 있겠니. 그냥 하루하루가 똑같아. 어제가 오늘 같고, 거기서 거기지 뭐. 오늘이 며칠이더라? 올해도 벌써 다 갔네.평소였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괜스레 반박하고 싶었다. “쳇바퀴라니. 아니야, 매일은 똑같지 않아.”아주 작은 별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그날 한참 이야기했다. 누군가가 너에게 어떤 마음을 담아 무슨 말이라도 건넸을 거야. 무심코 지나쳤을지라도 단 한 구절의 음악이라도 들었을 거야. 일이 잘 안 풀려서 속이 상했든, 운이 좋아서 무언가를 이뤘든, 너의 오늘에는 오직 24시간이라도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분명히 있었을 거야. 그걸 그냥 흘려보내면 너의 오늘엔 텅 빈 쳇바퀴만 남아버리고 말아. 내일도, 모레도 말이야.히로야마 씨는 점심마다 공원 벤치에 앉아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하늘을 본다. 오래된 나무의 일렁이는 푸른 잎들 사이에서 깜박거리는 햇빛. 구형 카메라를 꺼내든 그는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우연에 의지해 셔터를 누른다. 과연 어떤 찰나를 찾고 싶은 것일까.새벽녘에 현관을 나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 뒤, 그는 차 시동을 걸기 전 카세트테이프들을 바라보며 몇 초쯤 생각에 잠기다가 하나를 고른다. 시부야의 도로를 지나는 동안 흐르는 올드팝 가사는 묘하게 그의 일상과 닮아있다. 그날의 음악엔 어떤 마음이 담겼을까.영화가 이어지는 내내 나는 그의 마음을 생각했다. 그의 일상 구조는 지극히 단순하게 짜인 것 같지만, 마치 알록달록한 옥수수처럼 그 안에는 수많은 변주가 펼쳐지고 있다.객석의 관객은 히로야마의 삶을 간접적으로 되풀이해 체험하면서 어느 순간 마침내 알아챌 수 있게 된다. 그의 일상은 그저 사소한 루틴의 반복이 아니라,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들로 만들어진 세밀한 구성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삶의 주인인 그가 왜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벅찬 얼굴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지를.밤 9시에 다짜고짜 전화해 행복을 논하던 동료에게.행복이란 건 기한 내에 이뤄내고 증명해야 할 과제는 아닐 거야. 하지만 적어도 ‘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하다’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으면 좋겠어.나는 궁금해. 오늘 당신의 하루에는 마음을 담은 시간이 있었는지, 혹은 마음이 가는 순간들이 있었는지. 그 마음의 농도는 얼마나 진했는지, 어떤 중요한 일이기에 당신의 마음이 향했는지 말이야.그날은 묻지 못했지만, 이런 질문과 생각들이 당신의 행복을 찾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 마음은 마치 자원 같은 거라서, 분명히 쓸 수가 있어. 그 자원을 아끼지 말고 쓸 때만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나는 믿어. 귀히 여기는 일들에 기꺼운 마음을 쏟을 줄 아는 히로야마 씨처럼 말이야.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84·사진)이 6일(현지 시간) 출간될 회고록 ‘권력의 기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펠로시 전 의장은 코로나19 당시 대통령이던 트럼프 후보가 종종 탁상을 치며 심하게 짜증을 냈고, 무례하고 거친 언행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트럼프 후보를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1일 이 회고록을 사전 입수한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펠로시 전 의장은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 시절 의장인 자신에게 종종 밤늦게 전화했다고 밝혔다. 특히 2017년 트럼프 후보가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명령한 뒤 자신에게 전화해 “이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잘못 때문”이라고 주장한 일화도 공개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어떤 잘못인지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전임자만 탓하는 모습에 자신이 먼저 트럼프 후보에게 “지금은 자정이니 자러 가겠다”고 말했다고 썼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사진·84)이 6일(현지 시간) 출간될 회고록 ‘권력의 기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팰로시 전 의장은 코로나19 당시 대통령이던 트럼프 후보가 종종 탁상을 치며 심하게 짜증을 냈고, 무례하고 거친 언행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트럼프 후보를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1일 이 회고록을 사전 입수한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펠로시 전 의장은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 시절 의장인 자신에게 종종 밤늦게 전화했다고 밝혔다. 특히 2017년 트럼프 후보가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명령한 뒤 자신에게 전화해 “이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잘못 때문”이라고도 주장한 일화도 공개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어떤 잘못인지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전임자만 탓하는 모습에 자신이 먼저 트럼프 후보에게 “지금은 자정이니 자러 가겠다”고 말했다고 썼다.펠로시 전 의장은 2019년 4월 유명 정신 의학자 데이비드 햄버그 박사의 장례식 일화를 소개하며 트럼프 후보의 정신 건강이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후보를 접했던 많은 의사들이 당시 장례식에서 자신에게 “트럼프의 정신적, 심리적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는 것이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31일 암살되면서, 가자전쟁 휴전 협상에 깊숙이 개입해 온 미국에서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3개월가량 남은 미국 대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지 일주일 만에 발생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했고, 25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가 확실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만났다. 또 26일에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를 만났다. 양 진영의 온도 차는 뚜렷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면담에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가자 전쟁 민간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군사지원을 해 온 것에 반발하는 부동층의 표심을 노렸단 해석이 나온다. 특히 대표적 경합주인 미시간주(州)엔 아랍계 인구가 많아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반면 트럼프 후보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으로 네타냐후 총리를 초청하며 이스라엘을 향한 우호적 태도를 부각했다. 면담 뒤 기자회견에서도 전날 해리스 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무례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노골적으로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인 트럼프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즉시 가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이스라엘을 사랑하거나 유대인이면서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바보(fool)”라고 말했다. 하마스가 하니야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는 가운데 가자 전쟁이 확전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을 둘러싸고 책임 소재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직 백악관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 외교를 위한 공간과 기회는 항상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이 5월 제시한 ‘3단계 휴전안’을 놓고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수개월째 지지부진한 협상을 이어왔다. AP통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마스가 협상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31일 싱가포르 CNA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하니야) 암살에 대해 인지했거나,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31일 암살되면서, 가자전쟁 휴전 협상에 깊숙이 개입해온 미국에서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3개월 가량 남은 미국 대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지 일주일 만에 발생했다. 그는 24일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했고, 25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가 확실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만났다. 또 26일에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를 만났다. 양 진영의 온도 차는 뚜렷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면담에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가자 전쟁 민간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군사지원을 해온 것에 반발하는 부동층의 표심을 노렸단 해석이 나온다. 특히 대표적 경합주인 미시간주(州)엔 아랍계 인구가 많아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반면 트럼프 후보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으로 네타냐후 총리를 초청하며 이스라엘을 향한 우호적 태도를 부각했다. 면담 뒤 기자회견에서도 전날 해리스 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무례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노골적으로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인 트럼프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즉시 가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30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이스라엘을 사랑하거나 유대인이면서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바보(fool)”라고 말했다.하마스가 하니야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는 가운데, 가자 전쟁이 확전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을 둘러싸고 책임 소재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직 백악관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 외교를 위한 공간과 기회는 항상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바이든 대통령이 5월 제시한 ‘3단계 휴전안’을 놓고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수개월째 지지부진한 협상을 이어왔다. AP통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마스가 협상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레임덕으로 중동에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공화당 소속 크리스 스미스 의원은 의회전문매체 더힐에 “네타냐후 총리는 대선 후보에서 사퇴한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는 어떤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친(親)비트코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하며 파격적인 가상화폐 관련 공약들을 쏟아냈다. ‘쩐의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자본의 영향력이 막대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약 100일 앞두고 가상화폐 업계를 향한 노골적 구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가상화폐에 비판적이었던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양 진영이 모두 적극적인 구애에 나서면서 가상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이날 7만 달러 선을 향해 치솟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美를 가상화폐 수도로” 트럼프 후보는 27일(현지 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참석해 “미국이 지구의 가상화폐 수도이자 세계의 비트코인 초강대국(super power)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절대 비트코인을 팔지 말라”며 “미국 정부가 현재 보유하거나 미래에 획득하게 될 비트코인을 100% 전량 보유하는 게 내 행정부의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현재 비트코인을 21만 개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사이버 범죄자들이나 다크넷(폐쇄형 P2P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후보는 이를 바탕으로 “국가 차원의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량(strategic national bitcoin stockpile)”을 만들어 “모든 미국인이 혜택을 입도록 영구적인 국가 자산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을 미국의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지정하는 문제는 가상자산 업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공화당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이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후보는 또 “가상화폐는 100여 년 전의 철강산업”이라며 “미국이 시장을 선점하지 않으면 중국 등 다른 국가들에 뺏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오를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이달 8일 기준 5만5000달러대에 머물렀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이날 장중 6만9000달러대까지 치솟았다고 코인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전했다. 트럼프 후보는 1기 행정부 당시엔 “규제되지 않은 가상화폐는 마약 거래 등 불법 행위를 쉽게 만들 수 있다”라며 가상화폐를 ‘사기’로 규정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가상화폐 제재를 강화하면서 업계가 공화당으로 기울자 태도를 180도로 뒤집었다. 특히 그는 재집권 성공 시 취임 첫날 가상자산 업계의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해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행사장에서는 일부 지지자들이 트럼프 후보의 선거 구호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패러디한 “MBGA(비트코인을 다시 위대하게)”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해리스 측 “가상화폐 업계와 관계 재설정” 해리스 캠프도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등 주요 가상화폐 업체들과 수일 내로 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7일 전했다. 캠프의 외부 고문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 재계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 민주당이 ‘반(反)기업적’이라는 인식을 바꾸기를 원한다”고 했다. 한 가상화폐 업체 간부는 FT에 “바이든 대통령과는 대화 자리를 가질 기회조차 없었는데, 해리스 부통령에게 ‘들을 의지’가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해리스 부통령이 비교적 젊고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출신 정치인이라 기술 친화적인 성향을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편 해리스 캠프는 평일 퇴근 시간 이후 화상회의 플랫폼 ‘줌’에서 개최하는 온라인 모임이 지지자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얻으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25일 한 여성 단체 주최 행사에는 16만4000명이 접속해 200만 달러 가까운 후원금이 모금됐다. 로이터통신은 “줌 역사상 최대 규모 화상회의”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탈북 청년 9명이 27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정전협정 71주년 기념식’에서 참전용사들에게 헌화했다.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재단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참전용사와 그 가족,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사령관,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미국의소리 방송(VOA)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 참석한 탈북민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39)은 “북한의 조선전쟁 기념비는 ‘김일성’ 단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만 이곳에는 참전용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다 새겨져 있어 대조적”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의 아들로 한때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에서 근무했다. 이 연구원은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참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앞서 12일 뉴욕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개회의에서 북한의 처참한 인권 실태를 증언했던 김금혁 씨(33) 또한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누리는 현재의 자유도 없었을 것”이라며 “남북한을 모두 경험한 탈북 청년으로서 자유의 소중함을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미국 풀브라이트재단 장학생으로 브랜다이스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장은숙 씨(27)는 “북한에선 미국이 한국과 함께 북한을 침범했다고 배웠지만 사실 북한이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며 “북한 주민들이 정권에 어떻게 교묘하게 세뇌돼 왔는지를 깨닫는다면 혁명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틸럴리 전 사령관은 VOA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를 전파하는 것”이라며 “그런 맥락에서 탈북 청년들은 좋은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가 “친(親) 비트코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하며 파격적인 가상화폐 관련 공약들을 쏟아냈다. ‘쩐의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자본의 영향력이 막대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약 100일 앞두고 가상화폐 업계를 향한 노골적 구애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가상화폐에 비판적이었던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양측의 공략에 힘입어 가상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이날 7만 달러 선을 향해 치솟는 모습을 보였다.트럼프 “美를 가상화폐 수도로”트럼프 후보는 27일(현지 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참석해 “미국이 지구의 가상화폐 수도이자 세계의 비트코인 초강대국(super power)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우리는 절대 비트코인을 팔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현재 보유하거나 미래에 획득하게 될 비트코인을 100% 전량 보유하는 게 내 행정부의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사실상 미국의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량(strategic national bitcoin stockpile)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그 엄청난 부를 모든 미국인이 혜택을 입도록 영구적인 국가 자산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을 미국의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지정하는 문제는 가상자산 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트럼프 후보의 발언과 관련해서는 공화당의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이 관련 법안의 발의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그는 “가상화폐는 100여년 전의 철강산업”이라며 그러면서 “가상화폐를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채굴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비트코인과 가상자산 시장을 미국이 선점하지 않으면 중국 등 다른 국가들에 뺏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후보는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오를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이달 8일 기준 5만5000달러대에 머물렀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이날 장중 6만9000달러대까지 치솟았다고 코인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전했다. “코인은 사기”라던 입장에서 180도 선회가상화폐에 대한 트럼프 후보의 전폭적인 지지는 가상화폐를 ‘사기’로 규정했던 1기 행정부 때와 정반대 모습이다. 그는 2019년 당시 트위터(현 엑스·X)에 “나는 가상화폐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규제되지 않은 가상화폐는 마약 거래 등 불법 행위를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제재 강화로 비트코인 업계가 공화당에게 기울면서 태도를 180도로 뒤집었다. 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에서 SEC는 가상화폐 산업 관련 인물을 상대로 80건 이상의 소송을 제기했다. 전체 미국인 4명 중 한 명이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만큼, 가상화폐 공약이 유권자 표심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후보는 이날도 “비트코인은 정부의 강제와 통제로부터의 자유·주권·독립을 뜻한다”라며 “가상화폐와 비트코인에 대한 현 행정부의 탄압은 미국에 매우 해롭다”라고 강조했다.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서는 “그녀는 가상자산을 싫어한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재집권 성공시 취임 첫날 가상자산 업계의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바로 해고하겠다고 밝혀 좌중의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행사장에서는 일부 지지자들이 트럼프 후보의 선거 구호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패러디한 “MBGA(비트코인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해리스 측 “암호화폐 업계와 관계 재설정”해리스 부통령도 가상화폐 업계의 트럼프 지지세를 뒤집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해리스 캠프도 가상화폐 업체들과 수일 내로 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27일 전했다. 해당 업체들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 가상화폐 ‘리플’의 발행사 리플랩스 등이 포함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해리스 캠프의 외부 고문들은 FT에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 재계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 민주당이 ‘반(反)기업적’이라는 인식을 바꾸기를 원한다”고 했다. 소식통들은 “업계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현명한 규제의 방향성을 논의하기 위한 건설적인 관계 구축을 목표로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가상화폐 업계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상화폐 업체 간부는 FT에 “해리스 부통령에게 ‘들을 의지’가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라며 “조 바이든 대통령과는 대화 자리를 가질 기회조차 없었다”라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비교적 젊은 데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정치인이라 기술 친화적인 성향을 가질 것이란 기대에서도 전향적인 접근법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한편 해리스 부통령 부부는 최근 평일 저녁에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개최한 유권자들과 온라인 모임을 여는 것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25일 한 여성 단체 주최 행사에는 16만4000명이 접속해 200만 달러 가까운 후원금이 모이면서 “줌 역사상 최대 규모 화상회의”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ABC방송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아직 화상회의에 나타난 적이 없다. 다만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는 25일 흑인 성소수자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등장해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를 발표했을 당시, 나는 동네에서 게이 친구들과 스피닝 수업을 다녀온 뒤 카페에서 수다 떨고 있었다”고 말하는 등 친근한 모습으로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28일이면 11월 5일 미국 대선이 정확히 100일 앞으로 다가온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암살 시도, 현직 대통령 겸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전격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가 잇따라 터져 이번 미 대선은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상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다음 달 19∼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당대회 때 공식 후보로 선출되는 의례적 수순만 남겨 놓고 있다. 동아일보는 공화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의 정책과 선거 전략을 좌우하는 ‘이너서클’을 차례로 심층 분석한다. 먼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된 트럼프 후보와 J D 밴스 부통령 후보의 최측근 인물에 대해 알아봤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 이들의 최측근 인물에 대해서도 분석할 예정이다.● ‘충성파’로 꾸린 대선 캠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후보가 검증된 충성파 인사를 중심으로 과거 대선 때보다 규모가 작은 ‘이너서클’ 위주의 대선 캠프를 꾸렸으며 안정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평했다. 실제 ‘2024 트럼프호(號)’를 이끄는 캠프 핵심 세력은 대부분 2016년부터 함께해 온 인물들이다. 언론 홍보 등을 총괄하는 제이슨 밀러 전 백악관 선임고문(49)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백악관의 첫 공보국장으로 임명됐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2월 일찌감치 캠프에 커뮤니케이션 고문으로 합류했다. 특히 13일 트럼프 후보에 대한 암살 시도 직후 치러진 15∼18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후보가 평소와 다르게 ‘국민 통합’을 강조한 연설을 한 것은 밀러 고문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는 평가다. 대선 캠프의 ‘입’은 스티븐 청 대변인(42)이다. 과거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 UFC의 커뮤니케이션·홍보를 담당했다. ‘격투기 애호가’ 트럼프 후보와 종종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UFC 경기를 함께 볼 만큼 친밀하다. 반대파에게는 ‘미치광이’ ‘정신착란’ ‘쓰레기 자루’ 같은 등 거친 언사를 종종 사용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런 그를 두고 “논란을 몰고 다니는 상사(트럼프)를 보호하는 데 앞장선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투견(鬪犬)’으로 불리는 보리스 엡스타인 법률 고문(42)은 여러 건의 민형사상 기소를 당한 트럼프 후보의 사법 위험을 관리하는 인물이다. 트럼프 후보가 유죄 평결을 받은 ‘성추문 입막음’ 재판정에도 자주 등장했다. 그는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두고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활개치는 데 공모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당시 중국 견제에 주력하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중동에 대한 개입을 줄이면서 IS 같은 테러단체가 난립했다는 비판이다. 워싱턴포스트(WP) 또한 트럼프 후보가 엡스타인의 충성심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진단했다. 전 백악관 부실장인 댄 스캐비노 선임고문(48)은 소셜미디어 사용을 즐기는 트럼프 후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캐디로 일하던 16세 때 라운딩을 한 ‘고객’으로 트럼프 후보를 처음 만났고 이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진 직책인 백악관 소셜미디어 담당자를 지냈다. 당시 트럼프 후보의 ‘X(옛 트위터)’ 계정 ‘@realDonaldTrump(진짜도널드트럼프)’에 매일같이 쏟아내던 수십 건의 ‘폭풍 트윗’ 중 일부를 대신 작성하고 게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캠프에 합류한 인물 중에는 크리스 라시비타(58)와 수지 와일스(67)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이 측근으로 꼽힌다. 해군 출신인 라시비타의 선거운동 경력은 30여 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캠프에도 있었던 와일스는 40여 년에 이른다. 관록으로 무장한 두 사람은 트럼프 후보와 바이든 대통령의 대결 구도를 ‘강자 대 노약자’로 설정해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와일스 위원장은 당초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선거 참모였으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의 사람’으로 변신했다. 시사매체 디애틀랜틱은 그를 트럼프 후보의 플로리다주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의 부통령’ ‘숨은 권력자’로 평했다.● 관세 폭탄-방위비 증액 압박 확실시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하면 지난 행정부에서 ‘트럼프표 정책’을 설계한 인물들도 내각에 재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국무장관으로 유력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58)은 온화한 태도와 충성심으로 트럼프 후보의 신임을 얻었다. 중국에 대한 강경 노선,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등을 강조하고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77)는 트럼프 후보의 대표 정책 ‘미국 우선주의’를 가장 잘 실행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설계했다. 한국 등 동맹국에도 관세 인상을 압박했다. 대표적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인 오하이오주의 변호사 출신으로 1983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부터 USTR 부대표를 지낸 통상 전문가다. 차기 국가안보보좌관으로는 리처드 그리넬 전 독일 주재 미국대사(58)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유럽 주요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등을 외친다. 그는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한 18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보호를 받고 싶으면 돈을 지불하라”고 압박했다. 올 3월 팟캐스트에서도 “미국에는 강인한(tough) 수석 외교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키스 켈로그 전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 사무총장(80)도 요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트럼프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에서 안보센터장을 맡고 있다. 스티븐 밀러 전 백악관 선임고문(39)도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소말리아, 예멘, 수단 등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일시 불허하는 극단적인 반(反)이민 정책을 주도했다. 유대계라는 점 때문에 이슬람권 나라를 대상으로 한 입국 불허 조치는 더욱 논란이 됐다. 극우 성향으로 젊은 나이에도 트럼프 후보의 두터운 신임을 얻으며 당시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 작성에도 관여했다.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권한대행(59)은 차기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미군 병력 감축 등 트럼프 후보의 요구 사항을 충실히 이행했다. 존 랫클리프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 매슈 휘터커 전 법무장관 직무대행 등도 요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의회 인맥도 든든 2016년 대선 때만 해도 트럼프 후보는 정계 아웃사이더였다. 당연히 의회 내 영향력도 거의 없었다. 반면 올해는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을 완전 장악하며 의회 내 탄탄한 우군을 확보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통령, 부통령에 이은 미 권력 서열 3위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52)은 사실상 트럼프 후보가 의장직에 앉혀준 인물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이 예산 정국에서 민주당과 협력하다가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해임된 뒤 당시 여러 신임 의장 후보가 거론됐지만, 트럼프 후보가 지지한 존슨 의장이 최종 낙점을 받았다. 그는 5월 트럼프 후보가 뉴욕 법원에서 ‘성추문 입막음’ 형사 재판을 받을 때도 동행했다. 한때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팀 스콧 상원의원(59·사우스캐롤라이나)은 공화당 상원의원 중 유일한 흑인이다. 트럼프 후보의 지지 기반을 중도층으로 확장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후보의 극단적인 우파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에 오염되지 않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의원(40·뉴욕)은 친(親)트럼프 진영의 ‘여성 샛별’로 꼽힌다. 민주당 텃밭으로 꼽히는 뉴욕주의 공화당 의원으로 지난해 반(反)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인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들을 공격하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BBC방송은 조만간 그가 “공화당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여자 트럼프’로 불리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50·조지아)도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후보를 추종하는 극우 음모론 집단 ‘큐어논(QAnon)’의 신봉자로 유명하다. 수시로 ‘반대파 사형’ 등을 거론하는 극단적 성향이다. 동료 의원들의 사이에서는 별다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트럼프 핵심 지지층에서는 적잖은 영향력을 보유한 논쟁적 인물이다.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에도 참석했다. 가디언은 이런 그를 두고 “전통 공화당이 배척하려던 극우주의자가 처음으로 전당대회의 문턱을 넘었다”고 평했다.● 장·차남-며느리도 활약 트럼프 후보의 가족 중에서는 장남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그룹 수석부사장(47)이 주목받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를 트럼프 후보의 3남 2녀 중 “부친과 가장 닮은 자녀”로 평했다.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여러 부통령 후보군 중 최종 낙점된 것도 트럼프 주니어가 밴스 후보를 선호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주니어의 약혼자인 방송인 겸 법조인 킴벌리 길포일(55)도 주목받고 있다. 과거 민주당의 잠룡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결혼했지만 이혼했다. 이후 폭스뉴스 진행자 등으로 활동하며 보수 논객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2020년 대선 때도 트럼프 대선 캠프의 최고모금책임자 겸 법률 고문을 맡았다. 차남 에릭 트럼프그룹 부사장(40)은 공화당 전당대회가 개막한 15일 플로리다주 대의원 자격으로 ‘호명 투표(롤 콜·Roll Call)’에 참여했다. 에릭이 아버지를 두고 “가장 위대한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언한다”고 공식 선언하는 장면은 큰 화제였다. 뉴욕포스트는 이런 에릭을 ‘트럼프 후보의 비밀 병기’로 평했다. 에릭의 부인 라라(42)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공동 의장 자격으로 이번 대선의 선거자금 모금을 총지휘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는 트럼프 후보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 장녀 이방카에 가려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올 3월 공화당 ‘금고지기’ 격인 RNC 의장을 맡아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후보가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미 전역을 순회하는 ‘버스 투어’도 기획했다. WP 또한 라라는 단순히 트럼프 후보의 며느리를 넘어 트럼프 일가와 정계를 이어주는 통로라고 평했다. 다만 트럼프 후보가 정부의 공식 통로 대신 ‘소셜미디어 깜짝 발표’, 각국 정상과의 ‘톱다운(Top down·하향식) 외교’처럼 본인이 무대 전면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후보는 특히 대외 정책에서는 특정 인물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 본인이 주도권을 쥐려 한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2.0’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트럼프의 측근’을 살피는 일도 필요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라는 인물 자체를 속속들이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저 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우리와는 어떻게 다르지’ 국내외 뉴스 속 궁금증을 콕 짚어 새로운 시각에 적응시켜 드립니다.더위는 사람을 바보로 만듭니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더위는 사람을 지치고 아프게 만들 뿐 아니라, 사납고 예민하고 멍하게 만듭니다. 날씨가 덥다고 해서 다른 이들에게 화내고 실수하는 것이 정당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현상이 단순히 우리의 인내심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학술적 연구로도 점점 더 입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더위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결과들을 모아서 소개합니다. 더위는 하버드생도 멍하게 만든다2016년 7월, 낮 기온이 닷새 연속 33도를 웃돌던 미국 메사추세츠 보스턴에는 몇몇 불쌍한 하버드대생들이 살았습니다. 중앙냉방장치를 갖춘 신관 기숙사에서 사는 운 좋은 학생들도 있었지만, 에어컨이 없는 1930~1950년대식 구관 기숙사에도 사람이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버드대 연구원이었던 호세 기예르모 세데뇨 로랑은 동료들의 불행을 연구대상으로 삼아보기로 했습니다. 세부 주제는 ‘’. △폭염이 오기 닷새 전 △폭염 기간 △폭염이 지나가고 이틀 뒤 총 세 차례에 걸쳐 신관과 구관의 학생 44명에게 수학 문제와 자기 통제와 관련된 문제를 냈습니다. 다들 스무살 전후의 건강한 젊은이인 데다 더위에 익숙해진 만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결과는 좀 의외였습니다. 26도의 열대야를 에어컨 없이 견딘 학생들은 21도 냉방 속에서 숙면한 학생들보다 점수가 형편없었던 것입니다. 반응 시간은 13.4% 느렸고, 덧셈 뺄셈 점수도 13.3% 낮았습니다. 더위에 이성을 잃은 학생들이 마구잡이로 실험한 엉터리 연구라고 생각하시나요? 2018년 7월 학술지에 게재됐을 당시엔 참신한 발상에 꽤 주목을 받았답니다. 매우 학술적으로 잘 통제된 환경에서도 이뤄진 다른 연구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에선 기온이 섭씨 2.2도(화씨 4도)만 올라가도 기억력과 반응 시간, 인지기능 성과가 평균 10%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폭염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다들 익히 알고 있습니다. 특히 노인과 만성 질환자에겐 심장마비와 사망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더위는 우리의 심혈관과 땀구멍뿐 아니라 두뇌에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고로 가혹한(?) 생체실험을 진행한 는 현재 미 뉴저지주 럿거스대 공중보건대의 조교수가 돼서 실내환경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찜통 교실’, 시험성적을 넘어 인생을 바꿀 수도한여름 더위야 한철 참으면 지나가는 것 아니냐고요?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폭염으로 인한 두뇌 기능 저하는 어쩌면 학생들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 환경노동경제학자 는 더위와 성적의 상관관계를 살펴봤습니다. 전국 고등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표준화한 뒤 시험 당일의 기온과 연관성을 분석한 것입니다. 교실온도가 22도 이상일 경우,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점수는 약 0.36%씩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곱하기 10을 한다면 어떨까요? 32도가 넘는 날 에어컨 없는 찜통 교실에서 시험을 치러야 할 학생들에겐 결코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박 교수는 열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천착한 연구자입니다. 그의 다른 연구에서는 그해 날씨가 더울수록 학생들의 평균 성적도 나빴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어쩌다 이런 분야를 파고들기 시작했을까요? 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기온이 올라가면 국내총생산(GDP)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는 계속 나오는데, 그 둘의 정확한 연결고리가 궁금하더라고요. 농업 국가라면 생산량이 떨어지니 그럴 수 있는데, 경제구조랑 상관없이 모든 나라에서 그런 결과가 나오니까요.”그가 세웠던 가설은 경제를 만드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 즉 사람이 타격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설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죠. 더위는 학습능력과 속도에 악영향을 줍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쌓인 영향은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시험 점수, 대학진학률, 미래소득에 순서대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저개발 지역의 취약계층 학생들이었고요. “아마 학교에도 집에도 에어컨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열이 우리를 공격적으로 만드는 이유더위는 공격성과도 이어져 있습니다. 더운 날에는 살인, 폭행, 가정 폭력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증오 표현이 늘어나고, 도로에서는 경적 소리가 더 많이 들립니다. 2019년 이뤄진 한 에서는 더운 방과 시원한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디오 게임기를 쥐여줬습니다. 결론은, 더운 방에 있던 사람들이 더 악의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이를 더 적대적으로 해석해서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는 설명했습니다. 워싱턴주립대 심리학과 킴벌리 메이든바우어 교수는 더위가 ‘자기 통제력’을 끌어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동료들과 2022년 5~9월 시카고 주민 382명을 했습니다. 주민들은 더울수록 화와 욕이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동성도 함께 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충동은 약물 남용이나 자해 같은 위험한 행동이나 공격성을 촉발할 가능성도 높입니다. 충동성은 더위가 가신 뒤에도 꽤 지속됐습니다. 이런 현상들의 이유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럴듯한 한 가지 이론은, 우리 몸의 에너지는 한정돼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지면 우리 몸은 체온을 식히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메이든바우어 교수는 “혈액과 포도당이 전부 뇌의 체온 조절 담당 부분으로 쏠리면 ‘고급 인지 기능’에 할당될 여력이 부족해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더운 날씨에는 생존에 비교적 덜 중요한 ‘분노조절’이 우선순위에서 뒤처진다는 것이죠.에어컨만 틀면 다 해결되냐고요?하버드대 기숙사 실험에서도, 공격적 비디오게임 실험에서도, 많은 연구자가 내놓는 가장 중요하고 급한 대응방안은 어떻게든 몸을 식히는 것입니다. 에어컨을 틀고, 그게 어렵다면 선풍기를 틀고,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라는 뻔한 얘기죠. 각 가구들이 에어컨을 마련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 지역이라면 천막 그늘이나 나무가 우거진 공원, 실내 더위 쉼터 등이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NYT는 “당연한 소리지만, 당신의 기분과 인지력을 결정하는 건 날씨 자체가 아니라 체온”이라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을 결론으로 성급하게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박지성 교수도 사람들에게서 “그러니까 결론은 학교에 에어컨을 설치하라는 얘기냐”라는 반응을 수없이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에어컨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에어컨은 시작이어야 한다고, 거기에서 그쳐버리면 안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박 교수의 제안으로 이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화석연료가 아니라 청정에너지로 전기를 만든다면 저는 에어컨은 사람의 건강과 편리, 생산성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도 굉장히 많을 거예요. 너무 낡아서 비효율적인 건물들의 구조를 손본다든지요. 에너지 수요를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 냉방 수요를 충족시킬 방법을 각 지역의 상황에 맞게 획기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2일(현지 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는 데 필요한 대의원 과반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자 공화당은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집중포화에 나섰다. 11월 5일 치러질 미 대선이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해리스 부통령 간의 대결로 압축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돌처럼 멍청한 해리스’ ‘거짓말쟁이(lying) 해리스’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그는 “바이든이 ‘국경 차르(황제)’로 임명했지만 (해리스는) 한 번도 국경을 가지도 않았고, 무능함으로 우리에게 세계에서 최악의, 가장 위험한 국경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공화당 지지층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불법 이민과 국경 경계 문제 담당자였다는 것을 부각시킨 것이다. 공화당의 J D 밴스 부통령 후보도 고향인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열린 첫 단독 유세에서 “민주당 엘리트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배 밖으로 던지기로 결정했다”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반(反)민주적이라는 비판은 주로 민주당이 트럼프 후보를 공격할 때 쓰던 전략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불법 이민자가 증가한) 국경 위기는 곧 해리스의 위기”라며 “바이든은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지만, 해리스는 그보다 백만 배 더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숨겼다며 책임론도 제기했다. 트럼프 대선 캠프가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TV토론이 열리기 한 달 전부터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에 대비해 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에선 ‘민주당 대체 후보 지명’이란 제목의 11쪽짜리 기밀문서 초안이 회람됐다. 한편 공화당 지지층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자가격리 중인 바이든 대통령을 둘러싼 음모론도 퍼지고 있다.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 사퇴를 발표한 뒤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의 데이나 퍼리노 진행자는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2일(현지 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는 데 필요한 대의원 과반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자 공화당은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집중포화에 나섰다. 11월 5일 치러질 미 대선이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해리스 부통령 간의 대결로 압축됐다고 판단한 것이다.트럼프 후보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돌처럼 멍청한 해리스’ ‘거짓말쟁이(lying) 해리스’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판했다. 그는 “바이든이 ‘국경 차르(황제)’로 임명했지만 (해리스는) 한번도 국경을 가지도 않았고, 무능함으로 우리에게 세계에서 최악의 가장 위험한 국경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공화당 지지층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불법이민과 국경 경계 문제 담당자였다는 것을 부각시킨 것이다.공화당의 J D 밴스 부통령 후보도 고향인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열린 첫 단독 유세에서 “민주당 엘리트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배 밖으로 던지기로 결정했다”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반(反)민주적이라는 비판은 주로 민주당이 트럼프 후보를 공격할 때 쓰던 전략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고 평가했다.그는 이어 “(불법 이민자가 증가한) 국경 위기는 곧 카멀라 해리스의 위기”라며 “바이든은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지만, 해리스는 그보다 백만 배 더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숨겼다며 책임론도 제기했다.트럼프 대선 캠프가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TV토론이 열리기 한 달 전부터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에 대비해 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에선 ‘민주당 대체 후보 지명’이란 제목의 11쪽짜리 기밀문서 초안이 회람됐다.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할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작전도 미리 준비했다. 실제로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를 선언한 21일 당일 해리스 부통령의 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TV 광고를 내보냈다.한편 공화당 지지층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자가격리 중인 바이든 대통령을 둘러싼 음모론도 퍼지고 있다.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 사퇴를 발표한 뒤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의 데이나 퍼리노 진행자는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여여 달라”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21일(현지 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인 내년 1월까지 ‘레임덕(Lame Duck·임기 말 권력 누수)’에 빠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측에선 “대통령직도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데다 바이든 대통령을 대선 후보에서 낙마시킨 인지기능 저하 논란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조기 레임덕에 빠지면 2021년 1월 출범한 뒤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주요 외교안보 정책들이 동력을 잃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이 과정에서 글로벌 정세 불안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도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로 최근 대미 외교에서 공을 들여온 안보 정책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제재 동력 상실할 수 있어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통령직 조기 사퇴도 주장하고 있다. 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 캠프는 “바이든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 대통령으로 남아 있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선 바이든 대통령 건강 문제에 대한 청문회를 추진하는 등 조기 사퇴에 대한 압박을 높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이어가지 못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원활한 국정 운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을 견제하고자 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9∼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도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을 비판하며 중국 은행 등에 대한 제재를 논의했다. 그러나 레임덕이 본격화될 경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정책은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바이든 행정부의 레임덕을 틈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어려워지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휴전 협상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 ● 한국, 확장억제 제도 등 영향 받을까 우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 소식이 알려진 뒤 한국 정부는 “글로벌 포괄 전략동맹으로 격상된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미 측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란 입장을 내놓았다. 또 “타국의 정치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가 양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주요 협의 등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거란 취지로 읽힌다. 다만 정부 고위 소식통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과 재선을 포기한 대통령 사이에 차이가 없을 순 없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지도력이나 (국정 운영에 대한) 의지가 모두 다소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대미 외교에서 심혈을 기울여 온 확장억제(핵우산) 제도화가 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미 정상은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을 발표한 뒤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켰고, NCG 출범 1년 만인 이달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서명했다.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 가이드라인은 일단 어느 정도 완성된 셈이다. 다만 한미는 트럼프 후보가 백악관으로 복귀하면 확장억제 강화 노력이 뒷걸음칠 수 있는 만큼, 11월 5일 미 대선 이전에 실효적인 핵보복 등 확장억제 제도화 관련 협의를 최대한 진전시키고자 했다. 정부 소식통은 “이미 (확장억제 제도화의) 큰 틀은 완성된 만큼 크게 흔들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향후 논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커질 순 있다”고 토로했다. 양국이 현재 진행 중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레임덕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정부 소식통은 방위비 협상과 관련해 “바이든 정부에서 애초에 방위비 협상을 조기에 하자고 했으니 협상에 힘이 빠질진 일단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후보 교체에 따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60)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다면 그는 미 최초의 여성 부통령에 이어 비(非)백인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게 된다. 이미 최초의 여성, 흑인, 아시아계 부통령으로 숱한 ‘최초’ 기록을 썼고 이제 백악관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1964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카리브해 섬나라 자메이카계 경제학자인 부친, 인도 남부 타밀족 출신으로 유방암 연구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흑인 교육을 목표로 수도 워싱턴에 설립된 하워드대와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의 첫 흑인 여성 지방검사장, 2011년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 2017년 미 두 번째 비백인 여성 상원의원에 올랐다. 이 같은 법조계 이력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4차례 형사 기소된 ‘피의자 후보’라는 점과 대비된다. 2014년 동갑내기인 유대계 변호사 더글러스 엠호프와 결혼했다. 엠호프가 첫 결혼에서 얻은 1남 1녀를 키우고 있다. 2020년 대선 당시 고령의 백인 남성인 바이든 대통령의 약점을 메워줄 부통령 후보로 선택됐다. 부통령 재임 초반부터 이민 의제를 담당했고 2022년 6월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폐기하자 이에 반발하는 여성, 진보 성향 유권자를 규합하는 데 주력했다. 재집권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시 정상 외교를 벌일 뜻을 밝힌 트럼프 후보와 달리 2019년 “김정은과 러브레터를 교환하지 않겠다”며 강경한 대북 정책을 천명했다. 부자 증세, 법인세 대폭 인상 등을 주장해 경제 정책 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보다 훨씬 진보 성향이 짙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21일(현지 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인 내년 1월까지 ‘레임덕(Lame Duck·임기 말 권력 누수)’에 빠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측에선 “대통령직도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데다, 바이든 대통령을 대선 후보에서 낙마시킨 인지기능 저하 논란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조기 레임덕에 빠지면 2021년 1월 출범한 뒤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주요 외교안보 정책들이 동력을 잃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이 과정에서 글로벌 정세 불안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도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로 최근 대미 외교에서 공을 들여온 안보 정책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제재 동력 상실할 수 있어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통령직 조기 사퇴도 주장하고 있다. 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 캠프는 “바이든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 대통령에 남아 있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선 바이든 대통령 건강 문제에 대한 청문회를 추진하는 등 조기 사퇴에 대한 압박을 높이고 있다.현실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이어가지 못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원활한 국정 운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을 견제하고자 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9~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도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을 비판하며 중국 은행 등에 대한 제재를 논의했다. 그러나 레임덕이 본격화될 경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정책은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바이든 행정부의 레임덕을 틈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어려워지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휴전 협상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일각에선 적잖은 나라들이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을 피하고 트럼프 후보 진영과의 접촉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나토 정상회의 때도 헝가리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 후보 측과의 접촉을 추진하는 등 확실한 네트워크 구축에 나선 모습을 보였다.● 한국, 확장억제 제도 등 영향 받을까 우려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 소식이 알려진 뒤 한국 정부는 “글로벌 포괄 전략동맹으로 격상된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미 측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란 입장을 내놓았다. 또 “타국의 정치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가 양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주요 협의 등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거란 취지로 읽힌다. 다만 정부 고위 소식통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과 재선을 포기한 대통령 사이에 차이가 없을 순 없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지도력이나 (국정 운영에 대한) 의지가 모두 다소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정부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대미 외교에서 심혈을 기울여 온 확장억제(핵우산) 제도화가 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미 정상은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을 발표한 뒤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켰고, NCG 출범 1년 만인 이달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서명했다.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 가이드라인은 일단 어느 정도 완성된 셈이다.다만 한미는 트럼프 후보가 백악관으로 복귀하면 확장억제 강화 노력이 뒷걸음칠 수 있는 만큼, 11월 5일 미 대선 이전에 실효적인 핵보복 등 확장억제 제도화 관련 협의를 최대한 진전시키고자 했다. 정부 소식통은 “이미 (확장억제 제도화의) 큰 틀은 완성된 만큼 크게 흔들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향후 논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커질 순 있다”고 토로했다.양국이 현재 진행 중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레임덕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정부 소식통은 방위비 협상과 관련해 “바이든 정부에서 애초에 방위비 협상을 조기에 하자고 했으니 협상에 힘이 빠질 진 일단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후보 교체에 따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30년 가까이 미국 내 소수자 권익 향상에 힘썼던 실라 잭슨 리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텍사스·사진)이 19일(현지 시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향년 74세. 잭슨 리 의원은 1994년 연방 하원 진출 이후 흑인·히스패닉·아시아계 등 소수인종과 여성의 권익 향상 문제에 천착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 워싱턴 정가에서는 ‘친한파’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7년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HR121)이 만장일치로 통과하는 과정에서 “위안부는 성 노예를 강요한 만행이었다”라고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여론을 이끌었다. 2021년에는 미 의회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당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재개정을 촉구했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당시엔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한국의 자유와 민주, 인권 수호를 축하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기린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방글라데시에서 독립전쟁 유공자 자녀에게 공무원직의 30%를 주는 ‘공직할당제’ 반대 시위가 격렬해지며 21일까지 최소 151명이 숨졌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이날 최종 판결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할당제에 제동을 걸었다. 16일부터 본격화된 시위는 참가자들이 국영 방송사와 경찰서 등에 불을 지르고, 중앙은행과 총리실 홈페이지를 해킹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경찰과 군 병력까지 동원해 장갑차로 시내를 순찰했고, 일부 지역에선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정부는 수도 다카 시내에 19일 밤부터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22일은 임시공휴일로 선포했다. 18일부터는 인터넷도 제한되며 국영TV 방송 등 주요 언론 매체도 운영을 멈췄다. 이번 시위는 대학생 등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022년 청년 실업률이 16.1%로 전체 실업률의 약 3배라며 “값싼 의류 수출 산업에 의존해 온 방글라데시 경제가 팬데믹 이후 휘청이면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불평등에 분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1971년 벌어졌던 독립전쟁의 유공자 자녀에게 공무원직의 30%를 할당하려다가 2018년 반발 여론에 부딪혀 폐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다카 고등법원이 폐지 무효를 결정하며 시위가 촉발됐다. 일각에선 공직할당제가 친정부 인사 자녀들의 공직 진출을 보장하려는 것이란 의심도 일고 있다. AP통신은 “공직은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아 해마다 3000개의 자리에 약 40만 명이 지원한다”고 전했다. 이번 시위는 2009년 집권 뒤 철권통치를 이어온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직면한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이다. 하시나 총리는 시위대를 파키스탄과 싸웠던 독립전쟁 당시 적에게 협력했던 ‘라자카르’에 비유하며 “자유 투사 자손이 혜택을 봐야 하냐, 라자카르 자손이 혜택을 봐야 하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 시위 참여자는 BBC방글라데시에 “우리도 유공자를 존경한다. 단지 공정성을 지적했을 뿐”이라며 “정부가 왜 우리를 적으로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호소했다.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이날 고등법원의 명령을 기각하고 공무원 신규 채용 인원 중 유공자 가족 할당 비율을 30%에서 5%로 축소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추후 필요시 정부가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긴 만큼, 곧바로 상황이 정리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방글라데시에서 독립전쟁 유공자 자녀에게 공무원직의 30%를 주는 ‘공직할당제’ 반대 시위가 격렬해지며 21일까지 최소 151명이 숨졌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이날 최종판결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할당제에 제동을 걸었다16일부터 본격화된 시위는 참가자들이 국영 방송사와 경찰서 등에 불을 지르고, 중앙은행과 총리실 홈페이지를 해킹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경찰과 군 병력까지 동원해 장갑차로 시내를 순찰했고, 일부 지역에선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정부는 수도 다카 시내에 19일 밤부터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22일은 임시공휴일로 선포했다. 18일부터는 인터넷도 제한되며 국영TV 방송 등 주요 언론 매체도 운영을 멈췄다. 이번 시위는 대학생 등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022년 청년 실업률이 16.1%로 전체 실업률보다 약 3배 높다며 “값싼 의류 수출 산업에 의존해온 방글라데시 경제가 팬데믹 이후 휘청이면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불평등에 분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1971년 벌어졌던 독립전쟁의 유공자 자녀에게 공무원직의 30%를 할당하려다가 2018년 반발 여론에 부딪혀 폐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다카 고등법원이 폐지 무효를 결정하며 시위가 촉발됐다.일각에선 공직할당제가 친정부 인사 자녀들의 공직 진출을 보장하려는 것이란 의심도 일고 있다. AP통신은 “공직은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아 해마다 3000개의 자리에 약 40만 명이 지원한다”고 전했다.이번 시위는 2009년 집권 뒤 철권통치를 이어온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직면한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이다. 하시나 총리는 시위대를 파키스탄과 싸웠던 독립전쟁 당시 적에게 협력했던 ‘라자카르’에 비유하며 “자유 투사 자손이 혜택을 봐야 하냐, 라자카르 자손이 혜택을 봐야 하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 시위 참여자는 BBC방글라데시에 “우리도 유공자를 존경한다. 단지 공정성을 지적했을 뿐”이라며 “정부가 왜 우리를 적으로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호소했다.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이날 고등법원의 명령을 기각하고 공무원 신규채용 인원 중 유공자 가족 할당비율을 30%에서 5%로 축소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추후 필요시 정부가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긴 만큼, 곧바로 상황이 정리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FP는 “현 단계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오직 현 정부 퇴진 뿐”이라는 한 시위 참가자의 말을 전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18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장장 93분에 걸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경쟁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을 단 한 번 직접 언급했다. 13일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 사건 뒤 트럼프 후보는 공격을 자제하고 ‘국민 통합’ 메시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연설문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연설에서 비록 이름은 한 번만 언급했지만 그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트럼프 후보가 “바이든”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연설을 시작한 뒤 45분경이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10명을 모두 합쳐도 바이든 대통령보다 더 큰 피해를 주진 못했을 것”이라며 “‘바이든’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만 말하겠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설의 초반 10여 분을 제외하고는 상당수 발언이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하는 데에 치중됐다. 트럼프 후보는 “현 정부에서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기울어 가고 있다”며 “미래를 얻으려면 먼저 실패하고 무능했던 리더십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엄청났던 성공을 4년 만에 전례 없는 비극과 실패로 바꿔놨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선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인 물가 상승과 관련해 “현 정부에서 가구당 가계지출은 평균 2만8000달러(약 3900만 원)나 늘었다”라며 “공화당은 매우 빠르게 물가를 낮출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부 국경의 대규모 침략으로 미국 전역에 불행과 범죄, 빈곤, 질병, 파괴가 퍼지고 있다”며 “국제적으로도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대만과 한국, 필리핀, 아시아 전역에서 분쟁의 불길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후보는 “이 정부는 문제 해결에 가까이 가지도 못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는 이민 정책에서는 “4년 전 나는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경을 이 행정부에 넘겼는데, 내가 떠난 뒤 침략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불법 입국하면 즉시 체포돼 추방당했는데, 현 행정부는 훌륭한 국경 봉쇄 정책을 모두 폐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원로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에 대해선 “미친(crazy) 낸시 펠로시”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후보가 연설 초반에는 차분하게 단결을 요구했지만, 이는 분열을 일으키는 (후반부의) 연설 내용과 상충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방송은 “연설은 조용히 시작했지만 결국 더 전형적인 트럼프 스타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