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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6시 서울 마포구 라이즈오토그래프컬렉션 호텔 앞. 쌀쌀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100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 활어가 펄떡이는 이른 아침 수산시장 풍경이 아니다. 음반 수집가들이 제10회 서울레코드페어의 입장 대기 번호표를 받으러 일찌감치 나온 것. 개장 시간인 오전 11시에는 대기 인파가 약 1000명에 달했다. 대기 줄은 개장까지 무려 7시간이 남은 오전 4시부터 생겼다. 팬데믹 영향으로 실내에서 즐기는 취미 생활, 수집 열풍이 커지면서 LP레코드 시장이 폭발하고 있다. 22일 서울레코드페어는 이 열기가 팬데믹 이후 처음 오프라인에서 발현한 자리였다. 페어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하루 주 행사장인 라이즈 호텔과 무신사 테라스 라운지에 7000여 명이 다녀갔다. 행사를 함께한 인근 음반 매장 6곳까지 합치면 인원은 1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산된다. 2019년 2만여 명에 비하면 줄어든 숫자지만 올해는 행사일이 하루로 줄고, 한때 현장 대기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겨 번호표만 받고 돌아간 이들도 많았음을 감안하면 행사 열기는 역대 가장 뜨거웠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2011년 시작한 연례행사인 페어는 2020년과 2021년 팬데믹 탓에 열리지 못했다. 김영혁 서울레코드페어 조직위원장은 “예상을 뛰어넘은 인파로 거리 동선이 엉켜 한때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면서 “내년부터는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음반사 사운드트리의 박종명 부사장은 “2020년 600억∼700억 원대였던 국내 LP 시장 매출규모가 지난해 1000억 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신제품 기준으로, 중고 거래액까지 합치면 이를 크게 상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LP가 2020년 매출액 기준으로 CD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판매량에서도 압도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밀레니얼세대보다 Z세대가 LP를 더 많이 산다는 현지 연구 결과도 최근 발표됐다. 국내에서도 LP 시장에서 젊은층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박 부사장은 “예년엔 호기심으로 접근하던 20, 30대 소비층이 이젠 LP 시장 정보를 숙지하고 수집가로 변모한 것이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이봉수 비트볼레코드 대표는 “매년 성장하던 시장이 코로나19를 만나 가속도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음반판매상과 음반사 등이 40여 개 부스를 차렸다. 김사월X김해원, 오마이걸, 이랑의 특별 한정 음반을 포함해 수많은 중고 및 새 음반이 판매됐다. 이랑의 특별공연, 우엉과 다정 등 싱어송라이터의 쇼케이스도 열렸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저자명부터 상식을 깨는 두 권의 음악 책이 나왔다. 첫째는 ‘비틀즈: 겟 백’(항해). ‘BY THE BEATLES(지은이 비틀스)’라는 활자가 표지에 선연하다. 비틀스의 네 멤버가 함께 책을 썼다? 그것도 두 명(존 레넌, 조지 해리슨)이 고인인 지금? “1969년 1월, 음악 작업을 하던 비틀스 멤버들의 대화가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그들이 쓴 거나 다름없죠. 비틀스가 저자인 책은 지구상에 두 권뿐인데 이 책과 22년 전 나온 ‘비틀스 앤솔로지’예요.”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겟 백’의 번역자 서강석 한국비틀스팬클럽 회장의 말이다. ‘겟 백’은 최근 디즈니플러스가 공개한 동명의 다큐멘터리와 연결된다. 일부 내용은 겹치지만 다큐에서 다루지 못한 현장사진과 대사를 책에 담았다. 서 회장은 “비틀스 특유의 영국식 유머를 옮기는 데 애먹었다. 영국 친구들에게 자문했다”고 말했다. 둘째는 ‘딥 퍼플’(그래서음악). ‘Smoke on the Water’, ‘Highway Star’로 유명한 영국의 전설적 하드록 밴드이지만 이들을 다룬 단행본이 국내에서 나온 건 처음이다. 레드 제플린을 다룬 책이 네 권이나 나오는 동안 골수팬이 상대적으로 적은 딥 퍼플은 출판시장에서 외면당했다. 그들의 평전을 번역서도 아닌 한국 평론가가 지은 책으로 만나는 일은 그래서 신선하다. “딥 퍼플의 평전은 해외에도 세 권뿐인데 저마다 사실 서술이 다릅니다. 국내에 떠다니는 정보 중에 틀린 것도 많고요. 정확한 이야기를 제가 직접 확인해 기록하고 싶었죠.” 저자인 이경준 대중음악 평론가가 458쪽에 달하는 역작에 착수한 것은 딥 퍼플의 21집 ‘Whoosh!’(2020년)를 들은 직후다. “반세기 이상 활동했고 다섯 멤버 중 넷이 70대의 나이이지만 여전히 훌륭한 앨범을 내는 것이 놀라웠죠. 한편으론 최후가 온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예감은 틀렸고 역전의 노장들은 지난해 말 22집 ‘Turning to Crime’을 내놨다. 이 평론가는 22장의 정규앨범, 45장의 실황음반은 물론 수많은 실황에 대한 리뷰까지 꼼꼼히 적었다. 불후의 명곡 ‘Smoke on the Water’를 만든 뒷이야기, 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무대 방화사건 등 생생한 에피소드도 더했다. 서 회장과 이 평론가는 멈추지 않는다. 새 비틀스 연대기 번역, 또 다른 해외 헤비메탈 밴드 평전 집필에 각자 착수했다. “수십 년 좋아한 음악가들을 위해 흥미롭고 보람된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서강석, 이경준)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삶은 어차피 죽음의 중력에 종속돼 있다. 누구나 떨어지고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너무 일찍 바닥을 보고 말았다. 스물두 살에 생존율 35%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떨어지는 삶, 줄어가는 시간, 아니 당장 병상 바로 옆에서 삑삑대는 모니터, 쉭쉭대는 인공호흡기 소리와 싸우기 위해 매일매일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투병기는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세상 밖으로 뻗어나갔고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사람에게 공감의 힘을 전한다. 공감의 편지를 보내온 사람 가운데는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사형수도 있었고 오랜 세월 동안 생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불치병 환자도 있었다. 자살한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청소년기부터 암과 싸운 10대 소녀도 있었다. 저자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한다. 이 책은 투병기이자 글로 쓴 로드무비다. 1500일간의 투병 생활, 2만4140km의 자동차 여행을 펼쳐냈다. 암 진단 전, 종군기자를 꿈꿨던 저자는 자신의 병과 싸우는 과정, 그 치열한 전장을 종군기자 이상의 기억력, 취재력, 표현력으로 묘사해낸다. 소설이 아니지만 디테일이 생생해 소설처럼 읽힌다. 책은 지난해 미국 아마존 종합 1위에 올랐고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워싱턴포스트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저자는 암 생존자이자 작가, 강연가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한국어 제목 못지않게 영어 원제인 ‘Between Two Kingdoms(두 왕국 사이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이는 수전 손택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따온 말이다. ‘인간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두 곳의 이중국적을 갖고 태어난다. 우리는 좋은 여권만을 사용하길 바라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잠시나마 다른 쪽 왕국의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3년간 고생하며 책을 쓰고 나니 이제야 한국어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하하하.” 11일 일본 음악가 사토 유키에 씨(58)가 사는 서울 마포구 자택 응접실에는 LP레코드 수천 장이 들어차 있었다. 그가 최근 ‘일본 LP 명반 가이드북’(안나푸르나·사진)을 내놨다. 록, 포크, 시티팝, 일본 가요 등 네 가지 장르에 걸쳐 말 그대로 LP로 들으면 좋은 일본 음반 200장을 모아 사진과 함께 해설한 책이다. 제시 요시카와 & 블루 코멧츠, 스파이더스 등 1960년대 일본 록 태동기의 전설적 그룹사운드부터 안리, 다케우치 마리야 등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시티팝 가수까지 두루 다뤘다. “집필을 시작한 2018년 이후 예상치 못한 두 가지 붐이 일어났습니다. 책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죠.” 하나는 1970, 80년대 일본 버블경제 시대에 나타난 세련된 장르인 시티팝의 복고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쓴 것. 다른 하나는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케이팝 세계의 폭발이다. 특히 ‘가요’ 챕터의 첫 음반이자 기념비적 노래인 사카모토 규의 ‘스키야키’ 해설을 다시 써야 했다고. 1963년 아시아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곡인데 ‘BTS가 1위를 차지할 때까지…’라는 대목을 넣었다. 1960∼80년대 음반을 주로 다룬 책에 사토 씨는 앨범 해설뿐 아니라 간략한 일본 대중음악사도 곁들였다. 중학생 때부터 음반을 모은 그의 방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당대 일본인만 알 수 있는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을 ‘감초’로 보탰다. 한국적 록을 구사하는 밴드 ‘곱창전골’을 결성하고 1999년 데뷔한 뒤 한일을 오간 그는 양국 모두에 애정이 유별나다. 재일한국인 록 가수 하쿠류를 다룬 챕터에 공을 들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 연예계에서는 아직도 재일한국인 후손임을 숨기고 활동하는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1981년에 스스로 재일교포라고 밝히고 ‘아리랑의 노래’로 데뷔해 ‘코슈시티(光州City)’라는 곡에 5·18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담은 하쿠류는 진짜 용기 있는 가수였죠.” 사토 씨는 1995년 한국에 와 신중현의 음악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 뒤 일본에 돌아가 NHK TV 강좌를 보며 한국어를 독학했다. 곱창전골로 활동하다 한국인과 결혼해 서울에 산다. “독학한 한국어 실력이 변변치 못합니다. 미숙한 표현도 있겠지만 너른 아량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20세기 한일 문화 교류사도 엿볼 수 있다. “1970년대엔 일본에서도 가사가 저속하다거나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내리는 일이 수두룩했습니다. 책을 쓰며 양국의 공통점도 많이 보이더군요.” 사토 씨는 냉각된 한일관계가 안타깝다. 하지만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문화에 푹 빠져 있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자신의 책이 양국 화해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했다. “친구가 있는 나라, 좋아하는 음악가가 있는 나라를 미워하기란 매우 힘듭니다. 문화를 통해 서로 더 친한 친구가 됐으면 합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알고리즘은 반드시 추억 속 가수에게 현재를 선사할 것이다.”(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새해를 맞아 음악계 전문가들에게 올해의 노스트라다무스가 돼달라고 부탁했다. 이런저런 예언이 난무했는데 서두의 저 문장이 뇌리에 콕 박혔다. 근래 유튜브와 음원 플랫폼의 자동 추천 알고리즘은 지금껏 여러 번 시간을 거슬러 옛 노래를 소환해줬다. 가까이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부터 멀리는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1977년), 브렌더 리의 ‘Rockin’ Around the Christmas Tree’(1958년)까지…. 이 최첨단 타임머신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올해 우리를 또 어떤 곳으로 여행하게 해줄 것인가. #1. ‘페인트 잇 록’ 책 제목을 보자마자 ‘어이쿠!’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의 아재, 아지매들은 고령으로 안 좋은 무릎을 탁 쳤으리라. ‘올 것이 왔구나!’ Z세대에게는 암호와도 같을 저 세 어절의 타이틀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자신에 또 한 번 놀라면서 ‘본(本)아재’(나)의 혀끝에서도 ‘입틀막(입을 틀어막다)!’이나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 같은 Z세대 줄임말 버전의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저것은 다름 아닌 영국 밴드 롤링스톤스의 록 명곡 ‘Paint It Black’(1966년)을 뒤튼 것이 아닌가. 마지막 단어를 ‘블랙’이 아닌 ‘록’으로 바꾼 것은 신의 한 수.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를 단 한 음절로 요약한…! #2. ‘Paint It Black’이 주제곡으로 쓰인 미국 전쟁 영화 시리즈 ‘머나먼 정글’(1987∼1990년) 이야기까지 풀고 싶은데 참는 것은, 그러는 순간 이 글이 너무 머나먼 여정이 될 것이며 신세대에겐 TMI(투 머치 인포메이션)일 것이리라는 나의 기우 때문이겠지…. 예스러운 표현으로, 각설하고….(말줄임표도 너무 자주 쓰면 예스러운데….) 몇 년 전 나왔던 저 책이 심지어 개정증보판으로 최근 다시 나왔다. 록 팬으로서 아직 이 땅에 희망이 살아있음을, ‘Rock will never die(록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오랜 격언이 무덤을 뚫고 손짓함을 느낀다. #3. 2022년에 나타날 트렌드에 대해 뜻밖에도 전문가 여럿이 록의 귀환을 꼽았다. 징후는 몇 년 전부터 있었다. 랩계의 커트 코베인(밴드 ‘너바나’ 리더)을 자처한 릴 핍(1996∼2017)을 위시한 미국 이모 랩 장르의 출현도 그중 하나다. 래퍼 포스트 멀론과 다베이비는 각각 ‘rockstar’(2018년)와 ‘ROCKSTAR’(2020년)라는 곡으로 인기를 끌었고, 국내 래퍼 창모는 지난해 11월 ‘UNDERGROUND ROCKSTAR’라는 앨범을 냈다. 록 스타란 화려한 삶의 은유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록적 요소가 요즘 랩에 꽤나 자주 사용된다. #4. 언젠가부터 여러 아이돌그룹의 공식 프로필 사진 배경에는 은근슬쩍 전기기타나 LP레코드가 놓여 있다. 록은 돌아온 쿨한 패션도 된다. Z세대 음악 팬들 사이에는 특히 영국 밴드 오아시스를 위시한 1990년대 록에 대한 동경도 크다. 오아시스의 옛 앨범들이 4만∼5만 원짜리 LP로 재발매될 때마다 젊은이들이 레코드점 앞에 줄을 서는 풍경은 놀랍게도 2020년대의 이야기다. R&B·솔에 기반한 팝을 구사하던 백예린이 지난해 록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보컬로 변신해 강렬한 앨범을 낸 배경에는 오아시스의 로큰롤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슈퍼소닉’을 본 경험이 있다. #5. 짜릿한 만화책 ‘페인트 잇 록’을 보며 시계태엽을 조금 더 앞으로 감아 봤다. 1980년대 말이다. 치렁치렁 긴 머리에 화장을 하고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글램 메탈 밴드들에 관한 챕터. 밴 헤일런, 머틀리 크루, 본 조비가 백가쟁명하며 무한경쟁과 디스전을 벌이는 모양새는 머리만 길었지 래퍼들의 세계관을 방불케 한다. 록이 오죽 뜨거웠으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58∼2009)도 에디 밴 헤일런을 기용해 ‘Beat It’에 속주 기타 솔로를 넣었을까. #6. 미국 로커 로니 제임스 디오(1942∼2010)는 록의 상징인 ‘메탈 혼(metal horns)’ 제스처를 대중화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주먹을 쥐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린 유명한 동작 말이다. 땅속에 반쯤 파묻힌 저 메탈 혼은 과연 다시 땅 위로 치솟을 것인가. 2022년이 기대되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여성주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케이팝에도 우먼파워가 떠오르고 있다. 아이돌 그룹 멤버를 넘어 기획과 제작에 여성들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중대형 기획사들이 잇달아 신인 여성그룹을 내는 올해가 가요계에서는 젠더 균열의 원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두주자는 민희진 어도어(ADOR) 대표이사(43)다. 어도어는 방탄소년단을 제작한 하이브가 신설한 산하 레이블로 올해 하이브의 신인 걸그룹 데뷔를 맡는다. 민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 출신으로 소녀시대, f(x),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 앨범디자인을 아우르는 시각적 콘셉트를 기획하며 2010년대 이후 케이팝 걸그룹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간 가요계에서 여성이 음반사나 레이블의 수장을 맡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하이브라는 매머드 회사의 간판에 여성이 자리한 것은 케이팝 업계에 사건이다. 원더걸스, 트와이스, 있지를 배출한 JYP엔터테인먼트도 올해 여성 파워를 내세웠다. 다음 달 내는 신인 걸그룹 제작을 지휘하는 이는 JYP 최초의 여성 사내이사인 이지영 아티스트 4본부장(43). 이 본부장은 트와이스의 정연 사나 지효 쯔위 등을 발탁하고 훈련시킨 인물이다. 그간 여러 영상매체에서 남성인 박진영 프로듀서가 직접 걸그룹 안무를 만들고 지도하는 모습이 대중에게 익숙했던 것에 비춰 보면 이 본부장의 부각은 신선한 물결로 보인다. 이달 5일 데뷔해 7일 만에 뮤직비디오(‘ATHLETIC GIRL’) 조회수 400만 회를 넘기며 파란을 일으킨 여성 4인조 하이키(H1-KEY)도 여성 기획자의 힘이 뒤를 받친다. 황현희 GLG 이사(42)다. SM엔터테인먼트와 CJ ENM을 거친 캐스팅 전문가이자 중국통이다. 케이팝 업계는 1990년대 중반 태동한 뒤 사반세기 동안 강력한 남성 파워를 구심점으로 돌아갔다. SM, YG, JYP 등의 사명(社名)에도 그 이름을 새긴 이수만, 양현석(양군), 박진영 등 자수성가형 설립자 겸 대표 프로듀서의 카리스마가 그룹을 이끌었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는 “그간 케이팝 제작사는 대표와 임원은 중년 남성이고 실무진에는 20, 30대 여성이 다수 포진한 구조로 걸그룹의 콘셉트도 남성 사장의 취향에 맞춘 경우가 많았다”며 “고용이 불안하고 보수가 적으며 업무 부담이 많은 엔터업계 환경을 극복하고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며 성장한 여성들이 늘어난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젊은 여성이 소비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케이팝계에서 가사 논란이나 여성주의 관점을 둘러싼 이슈가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는 것도 높은 성인지 감수성을 지닌 여성 기획자의 부상을 추동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김 평론가는 “실무, 소비, 향유에서 여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을 감안하면 케이팝계의 변화는 늦은 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 파워가 부상할 것이며 이런 경향은 환영할 만하다”고 평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재즈보컬 나윤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된 그 자리에 다크 팝(dark pop) 여전사가 귀환했다. 환각적 기타 잔향, 둔중한 드럼, 주술적 가사로 점철된 11집 ‘Waking World’(28일 발매 예정)는 나 씨 스스로도 “거의 재데뷔작(作)”이라고 보는 신작이다. 팬데믹 탓에 세계적 연주자들과 만날 길이 막히니 그가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았고 새 세계가 열렸다. 6일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작·편곡 소프트웨어) ‘로직(Logic)’을 독학했어요. (미국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의 곡을 오빠(프로듀서 ‘피니어스’)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해부하면서요. 아일리시의 곡에 리버브(잔향 효과)와 이퀄라이저(주파수 조절)를 어떻게 적용했는지 익힌 뒤 제 나름대로 변형해 보기도 하며 편곡과 음향 제작을 연습해나갔죠.” 때로 세상의 종말까지 거침없이 노래하는 이 신곡 11개는 따라서 코로나19 상황이 만든 미적 ‘괴수’라 봐도 좋다. 아일리시, 아그네스 오벨(덴마크), 라나 델 레이(미국) 등 음울한 팝을 부르는 전 세계 가수는 이제 절창까지 겸비한 이 재즈 디바와 일전을 치러야겠다. 모든 곡의 모든 음표를 나 씨가 직접 설계한 음반은 그로서는 처음이다. 그는 “전작들에선 내가 짜둔 화성의 얼개를 개별 연주자들에게 맡겨 즉흥성을 덧댔지만 이번엔 내가 애당초 악보에 그린 음표가 고스란히 연주됐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기타도 독학했다. 미국 밴드 너바나의 뒤틀린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It‘s OK’는 나 씨가 처음 기타로 지은 노래. 편곡과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그가 도맡았지만 스피커 양쪽으로 울창한 침엽수림을 완성해 넣은 프랑스와 벨기에 연주자들의 공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여성 관악주자 에렐 베송과는 나윤선 1집(‘Reflet’·2001년) 이후 오랜만의 재회. 나 씨가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두 차례나 받으며 유럽의 디바가 되는 사이, 베송도 프랑스 음악의 승리상을 받으며 세계적 음악가로 성장했다. “‘Round and Round’ ‘Don’t Get Me Wrong’에서는 베송의 트럼펫과 플뤼겔호른 연주를 분신술처럼 중첩시키고 일부 디지털로 변형해 관악단 같은 효과를 냈습니다.” ‘Heart of a Woman’은 고(故) 에이미 와인하우스(1983∼2011·영국)의 ‘Back to Black’ 뮤직비디오의 상복(喪服)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했다. 나 씨는 이달 27일 프랑스 몽펠리에를 시작으로 6월까지 유럽과 미주 순회공연에 나선다. 그는 “신곡은 모두 3분 정도로 짧지만 무대에서는 긴 즉흥연주로 재즈적 매력도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무대에는 해외 일정이 끝나는 12월에야 선다. 세계적 스타를 우리는 잠시 놔줘야 한다. 그러나 디바는 되레 더 겸손해졌다. “이제야 제 민낯을 보여드리는 듯해 떨립니다. 앞으로 이런 음반 10장 더 만들면 그제야 자신이 생길 것 같아요. ‘두 번째 11집’쯤 되면요.”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원곡을 부른 한국 솔·블루스 음악의 선구자, 가수 박광수 씨가 별세했다. 향년 82세. 9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박 씨는 8일 세상을 떠났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1940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고인은 학창시절부터 밴드부 활동을 했고 당시 주한미군방송(AFKN)을 들으며 솔, 가스펠, R&B 등 미국 흑인음악에 빠졌다. 국민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연극과 영화에서 배우로 활동하기 위해 자퇴했다. 이후 가수로 전향해 서울 종로 등지의 클럽에서 노래했고 오디션을 거쳐 미8군 클럽에서 ‘봄비’로 유명한 박인수와 함께 활동했다. 당시 한인은 소화하기 힘들었던 블루스와 R&B를 잘 불러 명성을 얻었다. 김상희, 최이철의 밴드에서도 활동한 고인은 1972년 신중현이 결성한 밴드 ‘The Men(더 멘)’의 리드보컬로 ‘아름다운 강산’과 ‘잔디’ 등을 녹음했다. 그가 ‘장현 and the Men’ 음반에서 부른 ‘아름다운 강산’ 원곡은 이후 발표된 이선희의 고음 절창 버전과 대척점에 있다. 박 씨의 중저음 보컬이 지닌 중후하고 음울한 분위기 때문이다. 고인은 비운의 가수로 통한다. 김학선 대중음악 평론가는 “당대 위대한 밴드인 ‘더 멘’에서 활동했지만 밴드에서는 보컬에 비해 연주가 더 부각됐고 또 신중현이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보컬리스트로 온전히 평가 받지 못했다”면서 “1973년 자신의 이름을 건 독집을 발표했지만 방송정지와 앨범 수거로 앨범은 철저히 묻히고 활동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독보적 스타일의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다. 김 평론가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솔 음악을 잘 소화했고, ‘빗속의 여인’이나 ‘마른 잎’ 같은 신중현의 노래들을 가장 독창적으로 소화했다. 2000년대에도 쉼 없이 라이브 활동을 하며 34년 만에 신보(‘박광수 2007’)를 발표하기도 했고, 래퍼 피타입의 앨범(2008년 ‘The Vintage’)에도 참여하는 등 꾸준히 음악을 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영역을 넓히는데 일조한 불운한 스타일리스트”라고 평했다. 빈소는 서울 금천구 쉴낙원 서울장례식장. 발인은 10일 오전 10시. 02-2683-4444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록 장르가 주류 미디어에서 재조명되는 한편으로 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젠더 서사는 확장할 것이지만 이로 인한 관점 충돌과 논란도 예상된다. 동아일보가 음악 산업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올해 대중음악계를 이끌 트렌드와 업계 전망을 종합해봤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지속, 메타버스와 대체불가토큰(NFT)의 확장도 올해 음악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해외발 역주행 곡 나올까 지난해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선전으로 정점을 찍은 케이팝은 영역을 확장할 듯하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이 입대 전 마지막 화력을 집중해 역대급 폭발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대화 평론가는 “사상 최초로 옛 케이팝 곡 가운데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아 차트를 역주행하는 현상이 출현할지, 여성 그룹에서도 빌보드 싱글차트 톱10 진입 히트곡이 나올지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여성 파워는 2022년의 가장 큰 키워드다. 연초부터 공연과 음원을 통해 SM엔터테인먼트가 7인조 ‘갓 더 비트’를 내놓은 것이 신호탄. 보아, 소녀시대(태연 효연), 레드벨벳(슬기 웬디), 에스파(카리나 윈터)를 연합한 슈퍼 프로젝트 그룹이다. 방탄소년단을 제작한 하이브, 트와이스와 있지(ITZY)를 키운 JYP가 올해 비장의 신인 걸그룹을 선보인다. 엠넷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 출신인 그룹 케플러가 데뷔 첫날(이달 3일) CD 15만 장을 팔며 위력을 과시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기성세대와 Z세대가 여성주의를 다루는 관점에 차이를 드러내며 가사나 콘텐츠를 둘러싼 논란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아름 문화칼럼니스트는 “미국의 경우처럼 드래그퀸(여장남자) 콘텐츠가 새로 각광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신선한 장르 조명 이어질 듯 신인, 아직은 물밑에 있지만 더 주류로 부상할 인물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여성 캐릭터에 주목했다. 조민경 MBC PD는 “비비, 미스피츠, 릴체리, 소금 등 자기 장르를 개척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돋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마루 엘르 피처 디렉터는 “지난해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노래에 참여한 서리의 경우처럼 유튜브나 각종 플랫폼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주목받는 이들이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얼터너티브 록을 위시한 1990년대풍 록 음악이 주류에서 주목받으리라는 예측도 다수가 했다. 김학선 평론가는 “지난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이모(emo) 장르에 도전했고 파란노을, 포그, 김뜻돌이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이런 흐름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도헌 평론가는 “지난 2년 사이 얼터너티브 록, 팝 펑크, 랩 메탈 등 장르가 기지개를 켰다. 영국에서 유행한 아프로(아프리카) 팝 스타일도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시대를 잘 아우르는 신인 밴드가 등장한다면 시상식을 휩쓸 것”이라고 전망했다.메타버스, NFT 등 신기술도 변수다. 유순호 FNC더블유 이사는 “아이돌 그룹의 시그니처(대표) 포즈에도 저작권이 생기며 NFT 사업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우영 YG엔터테인먼트 실장은 “인공지능(AI) 가수 출현이 이어지고 신기술이 주목받으면서 자본력에 따라 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설문 응답자 명단강일권 김도헌 김학선 이경준 이대화정민재 씨(이상 대중음악 평론가),권은경 W Korea 피처 디렉터,김상호 JYP엔터테인먼트 이사,김아름 오비맥주 브랜드 콘텐츠 매니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홍범 KBS PD,김효섭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이사,오지영 SBS PD, 유순호 FNC더블유 이사,이마루 엘르 피처 디렉터, 조민경 MBC PD,조우영 YG엔터테인먼트 실장, 황정호 TBS PD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1947∼2016·사진)가 생전에 발표한 400여 곡의 출판권이 매각됐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 시간)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워너뮤직이 보위의 유족과 권리 매매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계약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2억5000만 달러(약 298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조건에는 1968년부터 2016년까지 보위가 발표한 정규 음반 26개, 400여 곡의 출판권 등이 포함됐다. 보위의 출판권 거래대금은 사망한 대중음악가 중 최고액이다. 앞서 밥 딜런(81)과 브루스 스프링스틴(73)이 각각 3억 달러(약 3581억 원)와 5억5000만 달러(약 6566억 원)에 자신의 음악과 관련한 권리를 매각했다. 근년에 거물급 스타의 유사한 거래가 잇따르면서 다음 주인공은 누가 될지에 이목이 쏠려왔다. ▶ 본보 지난해 12월 30일자 A22면 참조 영국 출신인 보위는 1967년 데뷔해 사망 직전 발표한 유작 ‘★(Blackstar)’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여러 장르를 오가며 패션과 무대 연출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첨단을 선도한 독보적 스타다. ‘Space Oddity’ ‘Changes’ ‘Let‘s Dance’ 등으로 세계 음악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올해 K스타들은 세계인의 눈과 귀,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윤여정은 4월 영화 ‘미나리’로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94개 국가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1위에 오른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세계 언론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시시각각 전하는 스타 감독이 됐다.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이정재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선정 ‘올해의 일약스타’에 포함됐다. 그는 내년 1월 진행되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TV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함께 출연한 오영수도 남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방탄소년단(BTS)은 지난달 미국 3대 시상식으로 꼽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로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블랙핑크는 9월 세계적 팝가수 저스틴 비버를 제치고 유튜브에서 구독자 수가 가장 많은 가수로 올라섰다.콜드플레이 등 유명 팝스타도 ‘BTS 홀릭’4주새 1억4200만 계정 시청 ‘오겜 신화’세계를 매혹시킨 K스타 방탄소년단은 미국 시장의 ‘원더 보이’를 넘어 올해 세계 음악계의 ‘키 맨’으로 올라섰다. ‘Butter’는 미국 최고 인기곡을 꼽는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무려 10주간 1위를 차지하고 또 다른 노래 ‘Permission to Dance’마저 같은 차트의 정상을 밟았다. 국제적 팝스타들의 러브콜도 쏟아졌다. 방탄소년단은 팬층이 상대적으로 젊고 결속력이 높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급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9월 영국의 대표적 록 밴드 콜드플레이와 합작한 싱글 ‘My Universe’는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콜드플레이가 이 차트 1위를 한 것은 2008년 ‘Viva La Vida’ 이후 처음이다. 블랙핑크는 여성그룹의 자존심을 세웠다. 지난해 넷플릭스에 이어 올해에는 디즈니플러스에 멤버들의 공연과 삶을 다룬 두 번째 다큐멘터리를 배급하며 글로벌 플랫폼을 휘저었다. 2월 연 온라인 콘서트에는 소속사 추산 약 28만 명의 전 세계 팬이 유료 접속했다. 10월에는 구글이 주최한 환경 캠페인 ‘디어 어스’에 특별 연설자로 나왔다. 프란치스코 교황,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출연한 행사다. 미국 아카데미상을 포함해 영국 아카데미, 미국 배우 조합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쓴 윤여정은 “우리 모두 승자”라고 수상소감을 밝혀 팬데믹으로 절망에 빠진 세계인을 위로했다. 연기력의 비결에 대해 “연기자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궁할 때”라고 답하는 등 솔직하고 재치 있는 그의 말에 세계인은 열광했다. 콘텐츠 업계에선 넷플릭스 공개 4주 만에 세계 1억4200만 계정이 시청한 ‘오징어게임’의 기록을 뛰어넘는 드라마가 향후 수년간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종전 넷플릭스의 4주간 최고 시청 기록은 미국 드라마 ‘브리저튼’의 8200만 계정이다. 종전 기록을 무의미한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황동혁 감독에 대해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황 감독은 ‘오징어게임’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정재 박해수 정호연은 올해 10월 미국 유명 토크쇼인 NBC TV의 ‘지미 팰런 쇼’에 출연한 것을 포함해 해외 유수 방송국에서 섭외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 정호연은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드라마 공개 직전 40만 명에서 30일 현재 2380만 명으로 급증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떠올랐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공개 다음 날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오르며 K콘텐츠의 홈런을 이어갔다. ‘지옥’은 ‘제2의 오징어게임’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아인은 선인인지 악인인지 짐작하기 힘든 미스터리한 연기로 큰 호평을 받으며 단숨에 세계인이 주목하는 배우로 발돋움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러닝타임 7시간 48분. 판타지 영화 ‘호빗’ 3부작(2012~2014년)에 맞먹는 길이다. 그러나 여기엔 용도, 마법사도, 골룸도, 드넓은 중간계나 장엄한 ‘외로운 산’마저 없다. 카메라는 저 긴 시간 동안 주로 네 명의 비틀스 멤버와 몇몇 스태프, 영국 런던의 스튜디오 구석구석을 비출 뿐이다. 디즈니플러스가 22일 공개한 비틀스 다큐멘터리 ‘비틀즈: 겟 백(이하 겟 백)’은 1969년 1월 2일부터 30일까지의 기록이다. 마지막 앨범인 ‘Let It Be’를 녹음하고, 역사적인 최후 공연인 런던 애플사(社) 옥상 콘서트를 하기까지 멤버들이 반목하고 화해하며 합주하는 모습을 담았다. ‘반지의 제왕’ ‘호빗’의 피터 잭슨 감독이 210시간 분량의 미공개 영상과 음성을 열람하고 편집해 완성했다. 한국의 대표 ‘비틀마니아’(비틀스 광팬)들과 관람 후기를 나눠봤다. 서강석 한국비틀스팬클럽 회장, 비틀스 헌정 밴드 타틀스(2010년 결성) 리더 ‘전 레넌’(본명 전상규) 씨, 각각 대구와 경남 진주의 소문난 비틀마니아인 김태훈, 손승남 씨다. 2021년에 찍은 듯 선명한 화질이 먼저 마니아들의 동공을 확대시켰다. 서 회장은 “비틀스의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 생생하게 지켜보는 듯 감격스러운 순간”이라고 했다. 김태훈 씨는 “첨단 디지털 기술 덕에 활기차고 창조적인 밴드를 관계자가 돼 옆에서 보는 듯 리얼했다”고 말했다. 통설을 뒤집는 스토리는 특종감이다. 존 레넌(1940~1980)이 당시 연인 오노 요코를 제작 현장에 끌어들인 것이 멤버 간 불화와 해체(1970년)를 촉발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겟 백’이 포착한 녹음실 풍경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요코는 시종 조용한 관찰자다. 심지어 폴 매카트니가 요코, 레넌과 즐겁게 합주하는 장면도 여럿 나온다. 손승남 씨는 “비틀스를 깨고 나오고 싶었던 것은 조지 해리슨이지 레넌은 그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까지 보인다”고 했다. ‘겟 백’의 축약판격인 80분짜리 다큐멘터리 ‘렛 잇 비’(1970년)에 편집된 모습이 오해를 불러 현재의 통설을 만들었으리라는 게 손 씨가 내린 결론이다. ‘겟 백’의 핵심 미덕은 음악이다. 네 마법사가 희대의 명작을 만드는 ‘연금술’ 과정에 집중했다. ‘Get Back’ ‘The Long and Winding Road’ ‘I Me Mine’ 같은 명곡의 초안이 제시되고 네 멤버가 달려들어 다투고 타협하며 편곡하는 과정이 백미. 매카트니가 피아노 앞에 앉아 ‘Let It Be’를 얼기설기 만들어내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심드렁하게 다른 이와 대화하거나, 매카트니와 레넌이 미소를 머금고 마주 보며 부르는 ‘Two of Us’의 이중창 장면은 뭉클한 감정의 소용돌이마저 일으킨다. 전 레넌 씨는 “음악성의 정점에 오른 20대 후반의 멤버들이 ‘우리가 하는 게 곧 길’이라는 듯 폭발하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 민낯을 장시간 그대로 담았다는 게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기존 비틀스 이야기를 속속들이 꿴 마니아들이라면 대사 한 줄 한 줄 손에 땀을 쥐며 감상할 만하다. 여러 가지 새 해석의 가능성을 자극하므로 누군가에게는 스릴러나 SF 이상의 긴장감을 줄 대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니아가 아니라면 기나긴 대화와 러닝타임을 충분히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게 다름 아닌 마니아들의 조언이기도 하다. ‘겟 백’에 실린 음악과 이야기는 음반 ‘Let It Be (슈퍼 딜럭스 버전)’(10월 발매), 책 ‘비틀즈 : 겟 백’(항해·내년 1월 14일 출간 예정)에서도 더 살펴볼 수 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국내외에 음악 저작권과 판권 매매 바람이 심상치 않다. ‘Born to Run’ ‘Born in the U.S.A.’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 로커 브루스 스프링스틴(72)이 최근 소니뮤직에 자신의 모든 곡에 대한 권리를 넘겼다. 매매가는 약 5억5000만 달러(약 6525억 원)로 추정된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밥 딜런, 닐 영, 폴 사이먼(사이먼 앤드 가펑클), 스티비 닉스(플리트우드 맥), 지지 톱 등이 잇따라 거액에 전곡 판권을 팔아넘겼다. 매각 대상은 소니뮤직, 유니버설뮤직 등 거대 음반사들은 물론이고 권리 투자 전문회사까지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음악 저작권의 간접적 개인 간 거래를 표방한 ‘뮤직카우’ 같은 서비스가 주목을 받는다. 드라마, 영화 등을 다루는 ‘K콘텐츠 투자 플랫폼’을 기치로 내건 ‘펀더풀’도 성업 중이다. 감상이나 응원의 대상이던 음악과 문화 콘텐츠가 투자의 대상으로 떠오른 배경은 무엇일까.○ 팬데믹, 미국 세제 개편 영향 해외 음악 권리 매각 러시의 주인공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60대 이상의 노장 스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또는 북미 순회공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콘서트 수익이 급감했다. 단번에 거액을 현금화할 수 있는 판권 매각은 이들에게 매혹적이다. 권리를 사들이는 투자사나 음반사 입장에서도 봉투를 열 동인은 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복고나 향수 같은 트렌드가 빅데이터로 수치화되고 수익화되고 있다. 지난해 틱톡 패러디 열풍으로 빌보드 차트를 역주행한 미국 그룹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1977년 발표), 근래 머라이어 캐리 못잖은 캐럴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브렌다 리의 ‘Rockin‘Around the Christmas Tree’(1958년 발표)가 그 예다. 이대화 대중음악 평론가는 “검색만 하면 바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시대에 신곡과 구곡의 시간차는 갈수록 무색해진다”면서 “좋은 곡이 가진 저작권의 잠재 가치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기류가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붐이 미국의 팝스타에게 집중되는 데도 이유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세제 개혁 의지와도 얽혀 있다. 차우진 평론가는 “미국의 팝스타는 재벌급의 위치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부자 감세 혜택을 누리던 이들이 바이든의 세제 개편을 앞두고 판권 현금화와 자산 운용 방식 변화를 향해 눈을 돌리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 주식처럼 거래, 투자 신중해야 최근 TV 광고도 하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국내 회사 뮤직카우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주식거래와 비슷한 형태로 개인 투자자들을 모았다. 음악에서 나오는 수익을 잘게 쪼개 서로 사고팔며 나눠 가지는 식이다. 뮤직카우에 따르면 이 플랫폼에서는 현재 아이유, 브레이브걸스 등의 노래가 1000개 정도 거래된다. 뮤직카우 관계자는 “서비스 출범(2018년 8월) 초기 특정 가수의 젊은 팬이 주로 유입됐지만 현재는 30, 40대 남성들로 투자자들이 옮겨 가고 있다”며 “기존과 다른 투자방식을 찾던 20, 30대는 일상과 결합된 음악이 매력으로 다가갔고, 최근에는 투자 목적을 앞세운 중년층도 가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익에 대한 장밋빛 환상만 갖고 뛰어드는 것은 무모하다는 의견도 있다. 차우진 평론가는 “대중음악의 생애주기를 보면 곡의 발표 시점이 지나면 인기가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같은 역주행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앨범을 재생하면 ‘삐약삐약’ 아침 새소리가 스테레오로 청자를 반긴다. 이어지는 차분한 목소리…. 에세이의 첫 장처럼 좋아하는 하루 풍경을 조곤조곤 나열한다. 화자는 커피콩을 갈고 공원 벤치에 누워 종이 냄새가 나는 새 책으로 얼굴을 덮는다. 자전거 타고 안경점에 다녀온다. 9분여의 낭독이 끝나면 문득 투명한 통기타 분산화음이 스피커를 울리고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이번엔 음표를 타고 노래한다. 시인 김소연 씨(55)와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씨(38)가 독특한 합작 앨범 ‘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Live)’를 내놨다. 김 씨는 자신의 미발표 산문을 직접 낭독하고 최 씨는 노래로 화답했다. 산문과 노래의 신선한 대구(對句)가 38분여 동안 펼쳐지는 스토리 앨범이다. 산문, 노래, 영상을 음반에 함께 담았다. 자칭 ‘뮤키디오’(Muookideo·음악+책+비디오)를 표방한 앨범. 주제는 ‘friendhood’로 영어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최 씨의 신조어다. 한국어로 옮기면 ‘우정스러움’쯤 된다. “우정에 대한 가사를 쓰면 쓸수록 그게 대체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김)소연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죠.”(최고은) 몇 년 전 예술인 모임에서 만나 친분을 다진 두 사람의 독특한 합작이 시작됐다. 김 씨는 틈틈이 써둔 산문 수십 편을 최 씨에게 전달했다. 최 씨는 “마치 노래에 어울리는 드립 커피 향기를 음미하며 고르듯 내 가사와 연결되는 산문을 골랐다”고 말했다. 음반은 향기롭다. 말 그대로 ‘우정스러움’에 어울리는 향기도 담았다. 최 씨와 일행은 서울 중구 방산시장을 찾아 직접 조향을 했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향수의 이름도 ‘friendhood’. 이 향수를 묻힌 책갈피를 음반마다 꽂아뒀다. 앨범 속 화자는 친구와 첫 캠핑을 가 밤새 이야기를 나누거나, 천변을 함께 걸으며 친구의 고민을 묵묵히 들어준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극적인 사건도, 반전도 없다. 그러나 하이라이트 트랙인 ‘축제’에서는 음반 내내 분리돼 있던 낭독과 노래가 합쳐지며 형언하기 힘든 클라이맥스가 키 높여 다가온다. ‘우리는 자주 이상한 함정에 빠진다. … 그런 순간은 바깥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 의해 아주 조금 확장될 때, 그것이 작은 축제 아닐까요. 제가 찾은 우정스러움의 결론은 ‘우리, 미지근하게 오래 보자’입니다. 소연 언니와도 그러고 싶어요.”(최고은)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한류가 뜬다’, ‘케이팝이 떴다’, ‘빌보드 앨범차트 1위!’…. 지난 10년간 한국 대중음악은 여러 차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간 국내 매체의 헤드라인도 위와 같이 바뀌어왔다. 그러나 2021년과 같은 해는 없었다. 지난해 ‘Dynamite’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달성한 방탄소년단은 올해 ‘Butter’로 같은 차트에서 무려 10주간 정상을 지켰다. 미국 대중문화의 놀라운 슈퍼 루키에서 명실상부한 대세로 자리한 셈이다. 코로나19는 케이팝에 전화위복이 됐다. 공연장에 가는 대신 휴대전화로 즐길 만한 것 중 가장 재미난 음악 장르로서 세계인의 즐겨찾기 ‘비주얼 맛집’이 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유튜브가 대표하는 ‘보는 음악’의 시대에 무지갯빛 시각 연출, 꾸준한 온라인 소통과 팬 서비스에 특화된 아이돌형 케이팝은 물을 제대로 만났다. 국내 콘서트 업계는 눈물을 삼켰다. 클래식, 연극, 뮤지컬에 비해서도 까다롭게 적용된 방역 지침 때문에 인프라 붕괴 위기까지 몰렸다.○ ‘원 히트 원더(반짝 히트)’ 아닌 주류로…케이팝, 정상 찍다 케이팝 신드롬의 최전선은 올해도 방탄소년단이 지켰다.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Permission to Dance’와 ‘Butter’(10주간)로 장기 집권하는 한편, 해외 팝스타의 인기마저 견인했다. 영국의 세계적 밴드 콜드플레이가 대서양을 건너 13년 만에 이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데 ‘My Universe’를 합작함으로써 톡톡한 역할을 한 것이다. 연말 미국 스타디움 콘서트에 연인원 20만 명이 찾았고 ‘Butter’는 영국과 미국의 여러 음악 매체에서 올해 최고의 노래로 꼽혔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트로피를 받는 파란도 일으켰다. 여성 그룹의 약진도 돋보였다.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블랙핑크가 2위, 트와이스가 3위까지 차지하며 ‘코리안 인베이전’을 다각화했다. 블랙핑크는 지난해 넷플릭스에 이어 올해에는 디즈니플러스에도 새 독점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글로벌 플랫폼의 최전선에 섰다. 케이팝 CD 판매량은 6000만 장을 상회하며 지난해보다 30% 증가했다. 100만 장 이상 팔린 CD가 지난해 6종에서 올해 10종으로 늘었다.○ 국내 콘서트 업계는 고사 위기…형평성 논란 여전 한편으론 외화내빈이었다. 소수의 초대형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충성도 높은 팬덤이 스포트라이트 속에 시장을 이끄는 동안, 업계 전반은 주춤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공연계 타격이 막대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대중음악계 전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 하락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1094건의 공연이 취소됐다. 피해액은 1844억 원대로 추산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대중음악 공연 분야 매출은 2019년 대비 90% 이상 급감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소폭 증가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음향, 조명, 악기를 대여하거나 운용하는 공연 산업 기반 설비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휴업, 폐업에 돌입했다. 클래식 공연이나 뮤지컬과 달리 대중음악 콘서트는 감염병예방법상 ‘집합·모임·행사’로 분류돼 개최하는 데 큰 제약을 받았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부회장은 “힘든 한 해였다. 이것이 (고난의) 끝이 아니라는 게 안타깝다”면서 “방역 지침 준수하에 공연 개최와 참석 여부를 기획자와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방역당국이 어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유달리 콘서트가 적은 한 해였다. 올해 관람한 몇 안 되는 온·오프라인 콘서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 있다. 월드 클래스 아이돌의 대규모 공연도, 젊은 래퍼의 신기한 메타버스 콘서트도 아니다. 이달 초 서울 마포구의 소극장에서 열린 유러피안 재즈 페스티벌 피날레 공연. 원격 연주 콘서트였다. 무대 왼쪽에는 대형 스크린, 중앙에는 연주자용 의자조차 앞에 놓이지 않은 빈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였다. 지구 거의 반대편인 파리와 서울의 공간에 각각 놓인 두 대의 피아노는 특수 전기 장치와 초고속 인터넷으로 동기화된 상태. 프랑스에서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누르고 페달을 밟으면 유령의 집처럼 서울의 피아노에서도 똑같이 건반과 페달이 눌렸다. 괴기 심령 공상과학 영화를 연상케 하는 100분간의 콘서트가 끝나자 관객들은 약속한 듯 텅 빈 피아노 앞으로 몰려와 낮은 탄성을 지르며 연거푸 휴대전화 사진기 기능을 켰다. #1. 미국 드라마 시리즈 중에 ‘웨스트월드’란 작품이 있다. 극중 웨스트월드는 미래의 놀이공원. 성인을 위한 잔혹한 테마파크다. 여기서 유료 입장객들은 성폭행하고 살해해도 된다. 인공지능을 말이다. 사람과 똑같지만 실은 완벽히 제어되는 인조인간들을…. 운영업체는 인조인간을 잠으로 리셋하고 꿈에서 정비하며 통제한다. 거의 매회 등장하는 웨스트월드 속 바의 자동연주 피아노는, 따라서 극의 주제를 함축한다. 피아노는 미리 입력한 차트에 따라 저 혼자 건반이 눌리며 ‘Black Hole Sun’(사운드가든) ‘No Surprises’ ‘Fake Plastic Trees’ ‘Exit Music (For a Film)’(이상 라디오헤드) 같은 침울하고 의미심장한 곡을 재생한다. 인간미 없이 뒤뚱대며 울리는 먹먹한 그 음악은 뒤틀린 디스토피아를 청각으로 형상화한다. #2. 그에 비하면 저 유러피안 재즈 페스티벌의 원격 공연은 인간적이며 따뜻했다. 파리에서 연주자로 나선 레미 파노시앙과 조반니 미라바시는 한두 곡이 끝날 때마다 카메라 너머의 한국 관객을 향해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본인들도 이 상황이 마냥 신기한지 ‘거기서 잘 연주가 되고 있냐’고 묻거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기도 했다. 관객들은 한마디로 계를 탔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공연장에서 피아노와 연주자의 옆선만 감상해 왔다. 잘 촬영된 연주회 영상을 봐도 건반이나 페달의 움직임은 연주자의 손과 몸에 가려 세세히 안 보였다. 그래서 애먼 연주자의 표정이나 외모, 의상에 한눈판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콘서트에서 연주는 비로소 그 민낯과 본질 그 자체를 낱낱이 드러냈다. 피아노는 가로가 아닌 세로로 놓였다. 건반이 객석을 향한 것. 연주자의 손도, 등짝도, 다리도 없으니 페달과 건반이 눌리는 순서, 빠르기, 강도만이 적나라하고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피아니스트 지망생이라면 이런 초교육적 콘서트를 웃돈 주고라도 보러 오리라. #3. 파노시앙이 롤링스톤스의 ‘Paint It Black’을 빠른 피아노 독주로 변주할 때는 압권이었다. 원곡이 1980, 90년대 미국 전쟁 드라마 ‘머나먼 정글’에 등장한 기억 때문일까. ‘머나먼 손’은 쏟아지는 포화를 피해 전장을 뛰어다니는 보병대처럼 건반에 유령 같은 족적을 남기며 쾌주했다. #4. 올해 접한 가장 충격적인 뉴스를 소개할 차례다. ‘KGC인삼공사는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정관장의 ‘화애락 이너제틱’ 전속 모델로 로지를 발탁했다고 22일 밝혔다.’ 로지는 실체가 없는 가상인간이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약 10만9000명. 버추얼 인플루언서다. 말 그대로 뭇 인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홍삼은 물론이고 밥도 한술 떠 먹을 필요 없는 로지가 건강미를 과시한다. 홍삼을 좀 먹어보라고 인간들에게 권한다. 인공지능의 시대, 메타버스의 세계가 도래한다. 이제 원격 콘서트의 신기한 복제와 재생을 초월해 선도나 창조의 영역에서 미래의 기술, 내일의 로봇이 손짓함을 문득 느낀다. #5.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1968년 미국 SF 작가 필립 딕이 소설 제목을 통해 던진 질문이 새삼 화살처럼 날아온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안이 된 작품. 개정판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는 ‘6, 10, 21’이라는 특별한 숫자를 마주한다. 2021년 6월 10일을 뜻한다. 바야흐로 현재는 과거의 미래다. 과거에서 온 타임캡슐을 집어 든다. 다시 저 멀리 미래로 던진다. 겉면에는 이렇게 써볼 참이다. ‘스마트 인간은 일렉트릭 바흐의 음악을 듣는가.’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너무 묘해요…. 근데 좋아요.” 집 앞 편의점 직원의 짧은 리뷰에 ‘이거면 됐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일 만난 재즈 보컬 이부영 씨(51)는 “유달리 친절한, 그러나 재즈는 잘 모르는 그분의 감상에 요즘 너무 힘이 난다”며 활짝 웃었다. 이 씨가 최근 사랑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한 6집 ‘Love, Like A Song’을 내놨다. 황덕호 재즈 평론가는 이 씨를 한국 대표 인상주의 재즈 보컬이라 칭한다. 뭉게구름 같은 목소리와 오묘한 화성 전개의 2인무는 스피커 위로 종종 드가의 ‘발레수업’이나 모네의 ‘수련’ 같은 이미지를 피워 올린다. ‘이름도 모르는 여름 나무들이 별을 바라보던 어느 날….’ 신작 수록 곡 ‘Beautiful L’의 첫 대목 역시 그러하다. 그 음악 세계에 변화도 감지된다. 영어 가사가 주를 이루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직접 지은 한국어 가사를 전면에 배치했다. “이제는 영어로 에두르지 않고 거울을 정면으로 응시하려고요. 신작에 제 감성, 감정, 프라이버시를 다 털어 내놨어요.” 첫 곡 ‘연인인가2.6’은 2집의 ‘연인인가?’, 4집의 ‘연인인가 1, 2’의 연장선 같은 곡. 이 씨는 “내 인생에서 안 풀리는 게 연애다. 도대체 사랑이 뭔지, 버전으로 치면 2.5는 넘은 것 같고 여전히 3에는 못 미치는 듯한, 알 수 없는 사랑에 관해 노래했다”고 말했다. “저는 순간에 너무 충실한 사람이에요. 음악이든 삶이든 그 순간들의 흐름에 관심이 많답니다.” 이 씨는 노을이 예쁜 경기 파주의 전원 빌라에 산다. 주위에선 “그 돈으로 일산에 아파트를 샀어야지!”라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의 투자처는 늘 ‘지금 이 순간’이다. 이 씨의 노을 같은 인상주의는 삶의 태도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르겠다.파주=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케이팝 신드롬을 일군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올해 미국 대중문화 잡지 버라이어티가 발표한 ‘버라이어티 500’에 선정됐다. 21일(현지 시간) 발표된 명단에 따르면 이 프로듀서는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5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그룹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방 의장도 2년 연속 명단에 들어갔다. 영화인 중에서는 봉준호 감독과 이미경 CJ 부회장이 각각 3년과 2년 연속 선정됐다. 영화 ‘미나리’의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도 명단에 포함됐다. 버라이어티는 세계 미디어 산업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리더 500명을 매년 선정 발표하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네가 도와주면 남이 못 알아줘도 좋아. 네 기타 소리에 다시 한번 노래해 보고 싶다.” 가수 이광조 씨(69)가 올해 초 기타리스트 함춘호 씨(60)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둘은 서울 강남구 ‘사운드솔루션’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고수와 소리꾼처럼 음(音)의 세계를 나눴다. 메트로놈의 일정한 박자도 없이, 오직 지음(知音)끼리 소통할 수 있는 호흡과 음률의 흐름에 투신한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유명한 이 씨가 함 씨의 통기타 반주만으로 노래한 앨범 ‘OLD&NEW’를 22일 낸다. 사운드솔루션 스튜디오에서 15일 이 씨를 만났다. 그는 “서로의 숨소리를 읽으며 판소리 한바탕처럼 음반을 만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대한민국 대표 세션 연주자인 함 씨의 프로 데뷔작이 1981년 이 씨의 ‘저 하늘의 구름 따라’이다. 이번 신작은 두 사람의 40년 인연에 특별한 쉼표도 된다. 이 씨는 신작에 1976년 데뷔곡 ‘나들이’부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오늘 같은 밤’ 등 대표곡을 새로운 편곡과 노래로 망라했다. 해안절벽을 들이받는 노도처럼 명징한 음색과 절창이 여전하다. 이 씨의 각혈 같은 가창으로 이름난 ‘가까이 하기엔…’은 원곡과 달리 후렴구를 부드러운 가성으로 처리했는데 그 미학이 또 그대로 절묘하다. 신작 제작은 오기(傲氣)로 시작했다고. “지난해 병원에 갔다가 ‘옛날에 제가 참 좋아했는데’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 인간 아직 안 죽었네’, 이거 한번 딱 보여주고 싶었죠.” 이 씨는 스무 살 때까지 음악 듣기만 좋아했지 노래라곤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 친구들의 채근에 캐나다 가수 조니 미첼의 노래를 불렀다가 다음 날 ‘우리 학교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당시 김민기, 현경과 영애, 이정선이 재학 중이던 서울대 미대와 교류 행사를 앞두고 친구들은 이 씨를 홍대 대표 대항마로 추대했고, 그 계기로 등 떠밀리듯 프로의 세계로 나왔다. 이 씨는 “까칠하고 괴팍한 성격, 무대공포증 탓에 활동을 오래 즐기지 못했다”고 했다. 2000년 영영 음악을 접고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혈혈단신 떠나 자유인처럼 살기도 했다. 노모의 병환으로 2012년 귀국한 뒤 음악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춘호의 기타 연주는 춘호의 마음 같아요. 맑고 깨끗하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어요. 가창자로서 화려한 악기 편성 뒤에 숨을 수 없지만, 맨밥에 고추장 하나 비벼도 정말 맛있는 끼니 같은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신작에는 9곡의 ‘셀프 리메이크’ 외에 1개의 신곡(‘우리 떠나 가요’)도 담았다. “무대공포증이 여전해요. 하지만 내년엔 신곡으로 스윙 재즈 장르에 새로 도전할 거예요. 중절모와 지팡이를 돌리면서 재즈 밴드 앞에 서서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저, 아직 여기 살아 있습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콜드플레이, 아델, 블랙핑크…. 최근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홈 화면에 배우 못잖게 음악가들의 얼굴이 자주 등장한다. 국내외 OTT 사업자의 음악 콘텐츠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 상륙한 디즈니플러스는 15일 그룹 블랙핑크에 관한 99분짜리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더 무비’(사진)를 독점 공개한다. 멤버 인터뷰, 공연 실황, 연습 과정 등을 담았다. 슈퍼히어로나 애니메이션을 내세운 글로벌 플랫폼이 케이팝에 디딘 야심 찬 첫발이다. 지난달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를 독점 중계한 왓챠는 이례적으로 프랑스 음악 영화 ‘아네트’를 직접 국내에 수입해 극장에 배급했다. 아네트는 OTT 독점으로 23일 왓챠에도 공개된다. 웨이브는 지난달 MBC와 공개한 ‘원 데이 위드 아델’의 다시보기 서비스를 간판 오리지널 콘텐츠로 배치했다. 이달 초 ‘쿠팡플레이 콘서트: 콜드플레이’를 주최한 쿠팡플레이는 유사한 콘서트 시리즈를 이어가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티빙은 CJ ENM이 확보한 케이팝 콘텐츠를 내세우고 있다.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를 비롯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 콘서트와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독점 제공한다. 박종환 티빙 부장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을 보는 20, 30대 여성층이 케이팝과 ‘보는 음악’의 소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콘서트, 다큐, 예능 등 음악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음악과 OTT의 적극적 만남은 코로나19 이후 음악 소비의 중심이 ‘청취’에서 ‘시청’으로 옮겨간 흐름과도 관련 있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디즈니플러스의 경우 전 세계 블링크(블랙핑크 팬덤)를 유료 구독자로 끌어들일 수 있고 YG(블랙핑크 소속사)에서는 디즈니플러스 구독자 가운데 블랙핑크를 잘 모르는 이들을 팬으로 만들 수 있는 윈윈 구조가 된다”면서 “OTT 입장에서 편당 100억 원대에 이르는 드라마나 영화 제작비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거둘 대표적 ‘가성비’ 콘텐츠가 음악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