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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초 취임 직후 당 부동산특별위원회를 재정비했다. ‘아파트 환상’을 버리라던 진선미 의원 대신 세제 전문가인 김진표 의원을 특위 위원장으로 발탁해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통령을 만나서도 당장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부동산 문제부터 꺼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당이 확정한 부동산 보완책은 1주택자 재산세를 일부 감면하고 무주택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풀어준 정도다. 재산세 감면도 급등한 공시가격을 감안하면 평균 몇만 원 수준에 그친다. 4월 재·보궐선거에서 확인된 성난 부동산 민심을 반영하겠다며 떠들썩하게 정책 개편을 논의하더니 용두사미가 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이 큰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감면은 내부 합의조차 못하고 있다. 친문 의원들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 탓이다. 민주당은 이번 주 공청회와 의원총회 등을 거쳐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매듭지을 방침이지만 친문 강경파의 반발을 넘어설 수 있을지 미지수다. 부동산특위가 추진하는 종부세 완화 방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종부세 감면을 놓고 오락가락하던 특위는 1주택자에 한해 종부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 이상’에서 ‘공시가격 상위 2%’ 주택으로 바꾸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행 9억 원 기준은 2009년 정해진 뒤 13년째 그대로다. 당시 전국 상위 1%의 고가주택만 포함되던 종부세 대상은 올해 전국 아파트의 4.5%, 서울은 무려 24.2%로 급증했다. 현 정부 출범 전만 해도 서울 아파트 100채 중 4채만 내던 ‘부자 세금’이 집값 폭등으로 4채 중 1채가 내야 하는 ‘중산층 세금’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에 특위는 집값과 상관없이 종부세를 내는 납세자를 2% 비율로 못 박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금액이 아닌 비율 과세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다. 해마다 종부세 기준 금액이 달라지니 납세자 본인이 과세 대상에 해당하는지,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어 조세 체계의 안정성이 흔들리게 된다. 또 상위 2%를 가려내는 행정 작업에 매년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지금도 공시가격 산정에 이의신청이 쇄도하는데, 상위 2%를 골라내는 과정에 납세자들의 반발이 뒤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주택시장 침체기엔 집값이 떨어져도 종부세 대상에 포함돼 조세 저항이 더 커질 수 있다. 세금 부담 완화가 목적이라면 현행 9억 원 기준을 12억 원 이상으로 올리면 될 일이다. 이렇게 하면 종부세 대상 주택 수는 상위 2% 방안과 비슷하다. 그런데도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는 2% 방안을 고집하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적 계산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여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1 대 99’가 안 되면 ‘2 대 98’로 확대해서라도 편 가르기 식 과세에 매달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당은 주거 안정과 투기 방지라는 목적과 조세 원칙에 맞게 부동산 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소수 대 다수로 갈라치고 지지층 심기만 살피는 ‘부동산 정치’로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는커녕 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얼마 전 만난 정부 부처 고위공무원은 “부동산시장이 이 모양이 된 게 왜 관료 때문이냐”며 “뭐가 잘못돼 집값이 뛰었는지 제대로 살펴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부처의 간부급 공무원은 “전담 부처가 없어서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나. 새 조직이 생기면 주택 공급이 늘어나느냐”며 혀를 찼다. 이들이 푸념을 쏟아낸 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부동산 발언과 구상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주 “시중에서 여당, 야당이 아닌 관당(官黨)이 나라를 통치한다는 말이 회자돼 왔다.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조한 ‘부동산으로 돈 벌 수 없게 하겠다’ 등의 말씀에 답이 있음에도 관료들이 신속하고 성실하게 미션을 수행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면서도 기존 부동산정책 기조를 유지할 뜻을 분명히 하자 이에 맞춰 책임을 관료사회로 돌린 것이다. 이를 두고 대선 라이벌인 정세균, 이낙연 전 총리를 공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자 이 전 총리 측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 같다”며 발끈했다. 이 전 총리는 주택 문제를 전담할 ‘주택지역개발부 신설’ 카드도 꺼내들었다. 정 전 총리도 “지자체도 반성하는 게 옳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일단 가격이 안정될 때를 보며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준비해야 한다”며 앞뒤가 뒤바뀐 해법을 제시했다. 현 정권은 툭하면 부동산 실정(失政)의 책임을 전 정부 탓, 언론 탓으로 돌렸다. 이제는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관료, 지자체, 정부 조직을 들먹이며 남 탓을 하는 모양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확인된 ‘부동산 심판론’이 차기 대선에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자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6억 원을 소폭 웃돌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KB국민은행 기준)는 지난달 처음으로 11억 원을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100주 연속 쉬지 않고 올랐다. 2005년 도입 때 주택 1% 미만에 ‘부유세’로 물리던 종합부동산세는 올해 서울 아파트 4채 중 1채가 내야 하는 ‘대중세’가 됐다. 주택 공급을 틀어막고 실수요자를 투기꾼 취급하며 징벌적 세금을 물리고 대출을 옥죄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불러온 결과다.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는 유력 주자라면 엉뚱한 데로 책임을 돌리며 공방을 벌이는 대신 실효성 있는 해법과 비전을 앞세워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택 취득부터 보유, 처분 전 단계에서 세 부담을 늘린 세제와 공공 위주의 공급 정책 등 시장 왜곡을 낳은 제도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우선 돼야 한다. 늦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에 규제 완화론자인 김진표 의원을 발탁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보유세 부과 기준일(6월 1일)을 코앞에 두고도 청와대의 강경 기류에 밀려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다. 4년간의 실패를 인정한다면, 집권 여당과 대선주자들은 땜질이 아닌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통해 국민의 부동산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22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이슈가 됐다. 은 위원장이 “가상화폐 투자는 잘못된 길”, “거래소 폐쇄” 등을 언급하면서 전체회의에 일괄 상정된 40여 개 법안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올라간 법안에는 은행의 대출 원금 감면을 강제하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법안이 포함됐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은행법 개정안’과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돕자는 게 입법 취지다. 정부의 방역 조치로 소득이 급감한 사업자가 은행에 대출 원금 감면 등을 요청할 경우, 조건에 맞으면 은행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게 은행법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를 어기는 은행에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는 징벌 조항도 들어 있다. 금소법 개정안은 금융위가 금융사 전체에 대출 원금 감면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2월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해 전체 금융권이 지원한 자금은 320조5000억 원이 넘는다. 정부와 여당의 압박에 금융사들이 신규 대출을 늘리고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등을 해줬다. 이제는 상환 유예, 이자 감면의 수준을 넘어 원금 탕감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까지 나온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19 비상 상황이라지만 부채 탕감이 의무화되면 성실하게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당국이 선제적 자본 확충을 위해 은행의 배당까지 제한한 상황에서 대출 원금 감면은 민간 기업인 금융사의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금융 시스템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은행들이 대출 심사를 더 깐깐히 해 신용도가 낮은 자영업자들이 제도권 시장 밖으로 내몰리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속에 빚으로 버티는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의 어려운 처지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코로나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선의만 앞세운 채 경제 원칙과 금융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법안을 내놓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가 아니다. 여당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금융권 팔 비틀기에 나선 건 한두 번이 아니다. 21일 한 토론회에서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1년에 수십조 원을 버는 은행이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해 대출 금리 1%포인트 정도는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윤후덕 의원은 “은행 창구에서 정부 방침 때문에 대출을 할 수 없다고 한다더라.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심판한 것 같다”며 4·7재·보궐선거 패배의 원인을 은행 탓으로 돌리는 발언도 했다. 연초엔 은행권의 이익공유제 동참을 압박하며 ‘이자 규제 특별법’까지 거론됐다. 이러니 관치금융을 넘어 정치금융의 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금융 포퓰리즘이 남발되면서 시장이 왜곡되고 엉뚱한 정책 효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그 피해는 금융소비자 몫으로 돌아간다. 정치권이 은행돈을 쌈짓돈처럼 여기고 대출 금리를 포퓰리즘 정책의 도구 정도로 여기는 한 한국 금융의 경쟁력 제고는 요원하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페이스북에 “경기 반등의 시간이 다가왔다. 경제 회복이 앞당겨지고 봄이 빨라질 것”이라고 썼다. 앞서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도 “경제가 빠르고 강하게 회복하고 있다. 이 추세를 살려 경기 회복 시간표를 앞당기겠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상황에도 수차례 언급해온 ‘경제 선방론’을 이어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보면 한국 경제를 할퀸 코로나19의 상처는 아물고 있다. 지난달 수출(538억30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16.6% 늘어 3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를 달성했다. 자동차·반도체 등 수출 주력 업종뿐 아니라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중간재까지 모두 수출 반등에 성공했다. 5개월째 증가세인 수출 훈풍에 힘입어 산업활동도 개선되고 있다. 2월 산업생산은 8개월 만에 최대 폭(전월 대비 2.1%)으로 늘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9년 8개월 만에 가장 높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 3월 대부분 지표들이 우상향의 방향을 가리키며 회복해 희망의 깜빡이가 켜져 있는 모습”이라고 자평했다. 대통령과 부총리는 한껏 고무됐지만 경제 전문가들과 산업계에선 낙관할 때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많다. 수출과 달리 내수 회복세는 더디다. 2월 소비는 전달보다 오히려 0.8% 줄었고 기업 설비투자는 2.5%나 뒷걸음쳤다. 고용 한파도 여전하다. 2월 취업자는 47만 명 넘게 줄어 12개월째 감소했다. 업종, 자산, 계층에 따라 회복 속도가 벌어지는 ‘K자형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꿈틀대는 경기를 다시 얼어붙게 할 악재는 도처에 있다. 글로벌 자동차 공장들을 셧다운시킨 ‘반도체 대란’은 한국 기업을 덮쳤다.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한 현대차는 7∼14일 울산1공장의 가동을 중단한다.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원자재 가격 급등도 수출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코로나19 재확산 여부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인구 대비 접종률은 1.8%대로 세계 100위 밖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은 코로나19 초기 방역에 성공했지만 백신 접종 속도가 느려 경제적 위험(economic pitfalls)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곳곳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지뢰밭인데 사령탑이 “희망의 싹”만 보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최근 경기지표 반등은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업들이 분투한 덕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상공의 날(3월 31일) 기념식에 참석해 기업과의 ‘정례 협의’를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튿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기업인들과 소통 협력을 재차 당부했다. 정부가 할 일은 안팎의 위험을 살피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 족쇄를 하나라도 더 풀어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외면해온 기업에 화해 제스처를 보낸 게 선거를 앞둔 정치적 쇼에 그친다면 곤란하다. 이번 소통 협력 약속도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면 그나마 온기를 보이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기 여야 대표들과 만나 공공기관 인사에 낙하산, 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캠프는 금융노조와 낙하산 인사 근절 정책협약까지 맺었다. 하지만 이 약속들은 점점 공염불이 되더니 임기를 1년여 남겨 놓고 도를 넘었단 얘기가 나온다. 캠프, 여당 출신 정치권 인사들이 금융공공기관 요직을 꿰차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1월 신임 보험연수원장에 민병두 전 민주당 의원이 취임했다. 지난해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3선 의원 출신의 민 원장은 다른 기관장 하마평에 오르다 연봉 3억 원대의 숨겨진 알짜인 연수원장에 올랐다. 민 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 ‘공공기관 친박(親朴) 인명사전’을 펴내며 낙하산 인사를 앞장서 질타해 ‘내로남불 낙하산’이란 비판을 듣고 있다. 직전까지 연수원장을 지내던 정희수 전 의원은 곧바로 생명보험협회장으로 옮겼다. 정 협회장은 한나라당, 새누리당 소속으로 3선 의원을 지내다 당적을 바꿔 문 대통령 대선캠프로 들어간 인물이다. 정치인 출신이 생보협회장에 오른 건 39년 만이다. ‘신(神)도 탐낸다’는 감사 자리는 정피아(정치인+마피아) 낙하산이 더 노골적이다. 기관장보다 주목은 덜 받지만 처우는 못지않기 때문이다. 최근 IBK기업은행은 작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된 정재호 전 민주당 의원을 상임감사로 선임했다. 수출입은행 김종철 감사는 문 대통령과 경희대 법대 동문으로 대선캠프에서 법률자문을 했고, 예금보험공사 이한규 감사는 민주당 정책실장을 지냈다. 주택금융공사 이동윤 감사는 과거 ‘문재인 지지’를 선언했던 정치인 출신이다. 예보는 최근 상임이사에도 민주당 예비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던 박상진 전 국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을 앉혔다. 정치권 출신이라도 금융 경험이 있고 실력을 갖췄다면 얼마든지 금융권에서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피아 낙하산 가운데 유관 경력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함량 미달’ 인사가 많다는 게 문제다.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회계장부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는 이들이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정피아의 상당수가 호시탐탐 정계 복귀를 노리며 외부 줄 대기에 연연하느라 업무에 뒷전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금융권 특혜 대출과 인사 청탁이 끊이지 않는 것도 낙하산들이 ‘줄값’을 치르느라 자리를 이용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피아 득세에 세월호 참사 이후 사라지는 듯했던 관피아(관료+마피아)도 부활하고 있다. 6대 금융협회장 중 5명이 정관계 출신이다. 현 정부 출범 직전 6명이 모두 민간 출신이었는데, 금융권 낙하산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 금융산업은 미래 패권을 놓고 금융사와 핀테크,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합종연횡하는 혁신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 리더는 이 변화를 따라잡는 전문성은 물론이고 코로나 위기로 부상한 금융의 새 역할까지 고민하는 식견을 갖춰야 한다. 이 자리를 부적격 낙하산 인사들이 꿰차는 일이 반복될수록 민간의 혁신 에너지는 사라지고 한국 금융은 퇴보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친구 K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 이름으로 주식 계좌를 만들어 삼성전자 주식 3주를 선물했다. 양가 부모님에게서도 입학 선물 대신 용돈을 받아 주식을 더 사줄 계획이다. K만이 아니다. 최근 온라인 카페엔 “아이 입학 기념으로 주식 통장을 만들었다” “아이 세뱃돈 받은 걸로 주식을 사줬다”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국민적 주식 투자 열풍이 만들어낸 새로운 트렌드다. K 같은 ‘엄마개미’ ‘아빠개미’ 덕에 지난해 새로 개설된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 주식 계좌는 47만5000여 개에 이른다. 2015년부터 5년간 만들어진 계좌(32만 건)를 합친 것보다 많다. 올 들어서도 1월에만 키움증권 등 5개 증권사에서 8만 개가 넘는 미성년자 계좌가 새로 만들어졌다. 5곳에서 2019년 한 해 개설된 계좌는 1만 개가 채 안 됐다.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이 자녀 미래를 위해 은행 적금이나 청약저축을 들었다면 요즘 30, 40대 부모들은 주식에 주목한다. 치솟는 집값, 주가 속에 월급만 차곡차곡 모았다가는 ‘벼락거지’ 신세가 되는 세태를 반영한 결과다. 고금리 시대 저축만으로 자산을 불렸던 베이비붐 세대는 자식들이 공부만 열심히 하길 원했지만, 초저금리를 경험한 3040세대는 자녀들이 일찌감치 돈 관리에 눈뜨길 바란다. 자발적으로 주식 투자에 나서는 10대도 많아졌다. 온라인엔 “주식을 하려는 10대인데 책이나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 달라”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투자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데다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거래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영향이 크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듯,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뉴스나 유튜브에서 ‘게임스톱’ 얘기가 증가하자 부(富)에 관심을 갖고 투자에 나서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자녀들의 실전 투자는 생활 속 경제 교육을 뿌리내리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금융 교육은 책보다 체험이 효과적이다. ‘금융 리터러시(literacy·이해력)’가 뒷받침된 주식 투자만큼 경제 현상과 기업 활동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수단도 없다. 아이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분산 투자를 하는 경험을 쌓는다면 한국 증시의 고질병인 단타 매매, 과도한 기대 수익 등의 문제도 줄일 수 있다. 걱정은 한국인의 금융 이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교육열은 높지만 정작 살아가는 데 필수인 금융·경제 교육은 방치한 탓이다. 그래서 ‘꼬마개미’ ‘교복개미’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증시 변동성이 심한 상황에서 투자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주식에만 몰두해 시세창만 들여다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어린 자녀가 단순히 수익률만 높이는 투자를 배운다면 주식으로 돈 버는 것이 다른 일을 성실히 해서 돈 버는 것보다 쉽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주식 투자를 통해 기업의 위상과 경제 메커니즘을 체득하는 자녀 세대가 많아질수록 한국 경제와 증시의 기반은 탄탄해질 것이다. 자녀 개미들이 ‘주린이’(주식+어린이 합성어)에 머물지 않고 혁신 기업과 엉터리 경제 정책 등을 가려낼 ‘스마트 개미’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은 부모 세대의 몫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215만 ‘동학개미’에게 지난주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해 36조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삼성전자가 13조 원이 넘는 돈을 배당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여기엔 1회성 특별배당금 10조7000억 원도 포함됐다. 주당 1578원인 특별배당은 당초 증권가에서 전망한 1000원 안팎을 훌쩍 뛰어넘었다. 삼성전자 개미 주주들은 평균 35만 원을 특별배당 보너스로 받게 됐다. 이와 달리 금융주(株)에 투자한 개미들은 날벼락을 맞은 분위기다. 올 들어 ‘삼천피’(코스피 3,000)를 연 강세장에서도 금융지주 주가는 오히려 떨어지거나 제자리다. 더군다나 주요 금융지주들이 증권 계열사의 실적 약진에 힘입어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게 확실시되지만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이 은행 등 금융지주사에 배당 성향을 20% 밑으로 낮추라고 권고한 탓이다. 순이익의 20% 이내에서 배당을 하라는 뜻이다. 금융위원회 정례회의를 거쳐 구체적 수치까지 담은 배당 자제 권고안이 나온 건 처음이다. 이름만 권고일 뿐 금융사가 막강한 규제 권한을 가진 당국의 뜻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배당액은 2조8600여억 원. 순이익의 25∼27% 수준이다. 금융위 권고대로라면 4대 지주는 배당을 6500억 원 넘게 줄여야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금융사들이 배당을 줄여 선제적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게 금융위 논리다. 스트레스 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 결과가 토대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큰 충격이 닥치고 올해 ―5.8% 성장 이후 0%대 성장을 이어가는 장기침체 시나리오에서 상당수 금융사가 건전성 지표를 넘지 못했다는 거다.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성장률 3% 안팎을 제시하는데 이를 배당 축소 근거로 내세우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와중에 은행 등 금융권을 겨냥해 ‘이익공유제’에 참여하라는 여당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금융회사 이익의 일부를 자영업자 등 코로나19 피해 계층을 위한 이자 감면이나 기금 출연으로 내놓으라는 요구다.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배당을 줄여 이익을 쌓아두라면서 이익공유를 명분으로 이익을 토해내라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주주 몫인 배당을 얼마나 할지는 기업이 실적과 경영 전략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할 일이다. 당국의 지나친 배당 간섭은 주주 재산권을 침해할뿐더러 외국인 투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금융사엔 “배당은 줄이고 이익공유는 하는 근거는 뭔가” “당국에 반대 뜻을 전할 수 있느냐”는 해외 주주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당국의 배당 제한 등을 문제 삼은 “상장 금융회사에 대한 관치금융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은행 등 금융사의 건전성을 높이려는 정책적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권 침해 소지가 다분한 규제와 간섭은 한국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업을 시시콜콜 통제하고 손 벌릴 대상으로 여기는 한 금융 혁신은 요원하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여권이 연초부터 전 국민 대상 4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 등 유력 대권주자가 앞장서고 여당 의원들이 앞다퉈 추임새를 넣는 모양새다. 9조3000억 원대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말이다. 지난해 5월 1차 지원금으로 4인 가족당 100만 원의 현금을 지급한 뒤 문재인 대통령은 한우와 삼겹살 매출이 급증했다며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기부에 참여하는 국민들께도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우선 국민의 99%가 기부하지 않고 지원금을 받아갔다. 더군다나 1차 지원금으로 뿌린 14조 원 중 소비 증가로 이어진 건 30% 정도였다. 이마저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음식업, 대면 서비스업으로 흘러가는 효과는 미미했다. 나머지 70%는 빚을 갚거나 저축하는 데 사용됐다. 이게 지난해 말 발표된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 결과다. KDI는 전 국민에게 일괄 지급하기보다 피해 계층을 선별 지원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해 ‘코로나 봉쇄령’으로 경제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무차별 현금을 지급한 미국에서도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지난주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경제 석학들은 무분별한 현금 퍼붓기가 소비 회복에 도움을 못 주고 재정 부담만 늘린다고 평가했다.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코로나19 충격은 주로 음식·숙박, 도소매, 여행 등 대면 산업과 그 종사자들을 강타하고 있다. 이와 달리 언택트(비대면) 특수에 힘입어 반도체 인터넷 배터리 게임 등 첨단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집콕’의 일상화로 자동차 가전제품 같은 내구재 소비가 늘면서 관련 기업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이는 코로나발(發) ‘K자’형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알파벳 K처럼 계층, 산업, 직종, 고용 상태 등에 따라 코로나19 충격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소득 상위 20% 계층의 월 소득은 2.9% 늘어난 반면 하위 20%는 1.1% 줄었다. 22년 만에 최대로 감소한 작년 취업자를 봐도 상용근로자는 늘었지만 임시·일용직은 41만 명 넘게 줄었다. 추가 재난지원금은 모두 적자국채로 조달해야 할 처지다. 이미 1∼3차 지원금 지급 등으로 예산을 펑펑 쓴 탓에 재정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올해 정부 예산은 사상 최대인 558조 원인데, 세수가 부족해 90조 원 이상의 국채를 찍어 메워야 한다. 현 정부 출범 당시 660조 원이던 나랏빚도 올해 956조 원까지 늘어난다. 4차 지원금으로 추경을 또 하면 1000조 원 돌파는 시간문제다. 현실이 이런데도 여권이 전 국민 지원금을 밀어붙인다면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표만 생각하는 ‘포퓰리즘 정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정치권은 무분별하게 돈 뿌릴 궁리 말고 K자형 양극화가 불러온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4차 지원금 지급에 앞서 취약계층의 피해와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 국무총리 말마따나 더 이상 ‘더 풀자’와 ‘덜 풀자’ 같은 단세포적 논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11·19전세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주까지 75주 연속 올랐다. 상승 폭(한국감정원 기준, 0.15%)도 3주째 꺾이지 않고 있다. 전세난에 지친 수요자들이 중저가 주택 구매에 나서면서 11월 전국 집값은 0.54% 올라 4개월 만에 상승 폭을 키웠다. 이런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싶어서인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매수심리 진정세가 주춤한 양상”이라는 아리송한 말로 비웃음을 샀다. 더 우려스러운 건 전세난이 월세난으로 번져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전국과 서울 주택 월세는 각각 0.18% 올랐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5년 7월 이후 최대 상승세다. 웬만한 회사원 한 달 치 월급을 줘야 하는 고가 월세가 서울 강남뿐 아니라 강북과 지방 광역시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충북 청주, 경북 포항 등 지방 중소도시도 월세 100만 원 시대를 열었다니 세입자들 허리가 휠 지경이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시장으로 몰리면서 월세 가격이 치솟은 결과다. 여기에다 집주인들이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셋값 상승분을 월세로 돌리거나 기존 월세를 급격히 올린 영향도 크다. 지난달 주택분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 든 집주인은 66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28% 늘었다. 납부세액(1조8148억 원)은 43% 급증했다. 집주인들은 갑절로 뛴 세금을 내려면 월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내년 종부세 세율마저 인상되고 정부 계획대로 현재 시세의 70% 수준인 공시가격이 90%까지 오르면 해마다 보유세 부담은 더 늘 수밖에 없다.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앞으로 2∼4년 치 재산세와 종부세를 계산해 그만큼 월세를 받으면 된다”, “전세 세입자에게 반(半)전세로 돌리지 않으면 실거주하겠다고 통보하라”는 집주인들의 글이 공유되고 있다.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집주인이 생기면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에서 반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4.5%로 늘었다. 올 1∼10월 이 비중은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이는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징벌적 수준의 증세정책을 도입할 때부터 예견됐던 ‘시장의 역습’이다. 집 가진 사람을 겨냥한 세금폭탄이 주거 약자인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부작용이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월세를 올려 세금을 충당하는 집주인의 대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부동산 문제를 풀 방법은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임으로 내정된 변창흠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변 후보자가 평소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올랐다고 보기 힘들다”, “재개발·재건축은 사실상 공익사업으로 봐야 한다”는 등 시장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임대차 의무 기간을 6년(3+3년)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변 후보자가 장관이 되고서도 이런 생각을 고집한다면 현 정부의 2기 부동산정책도 시장의 역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한다. 과잉규제와 세금폭탄과 같은 오기의 부동산 정치로 시장을 이기려다가 서민들이 눈물 흘리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최근 증권가에 나돈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강에서 ‘혼술’을 하는데 누군가 다가와 묻더란다. “너도 신풍제약?” 올 들어 27배로 급등했던 신풍제약 주가는 21일 자사주 매도 이후 엿새 동안 34% 넘게 빠졌다. 연간 영업이익이 20억 원에 불과한 기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기대로 주가가 폭등했다가 한순간 곤두박질친 것이다. 하루 장중 고가와 저가가 40% 이상 벌어질 정도로 주가가 요동치면서 투자자들은 공포에 질렸다. 요즘 ‘멘붕’에 빠진 개미가 한둘이 아니다. 이달 들어 미국 증시가 발작 수준의 급락장을 연출한 뒤 국내외 증시의 조정 국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많이 담은 테슬라, 애플, 니콜라 3개 종목의 손실액은 9월에만 1조 원을 웃돈다. 환(換) 손실과 국내 주식보다 비싼 해외 주식 수수료를 감안하면 손실은 더 늘어난다. 국내 주식을 적극 사들이는 ‘동학개미’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동학개미들이 외상으로 사들인 주식 결제대금을 갚지 못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처분한 금액(위탁매매 미수로 인한 반대매매 금액)은 하루 300억 원대를 오르내린다. 10년 새 가장 많다. 역대 최대인 58조 원의 청약증거금을 끌어모았던 카카오게임즈 주가는 최고가 대비 30% 주저앉았다. 코로나 쇼크로 3월 대폭락했던 국내 증시를 반등시킨 건 동학개미들의 힘이 크다. 주식 투자에 처음 뛰어든 20, 30대 주린이(주식+어린이)들은 새벽 테슬라의 ‘배터리데이’ 생중계를 지켜볼 만큼 경제에 눈을 뜨고 있다. 주식 투자 세대교체는 국내 자본시장의 근간을 바꿔놓을 기회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강세장의 달콤한 성과에 취해 투자와 도박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미들이 늘고 있어 우려스럽다. 주식세끼(하루 3번 매매), 오치기(5만 원만 벌면 털고 나옴) 같은 유행어가 이를 반영한다. 특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한 개미들은 시장이 출렁이면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빚투 개미들이 증권사에서 주식 매수 용도로 빌린 돈(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월 중순 이후 11조 원 가까이 늘었다. 5대 은행에서 나간 신용대출 또한 하반기 들어 9조 원 넘게 불었다. 빚투 개미들은 조정 국면에서 주가 하락에, 이자 부담까지 손해가 이중삼중으로 커진다. 모아놓은 자산도 없고 소득도 적은 2030세대의 빚투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데도 정부는 주식 투자 과열에 말을 아끼고 있다. 오히려 공매도 금지 기한 연장, 주식 양도소득세 완화 등 부양책을 내놓으며 주식 투자를 부추기는 듯하다. 집값 상승에는 온갖 규제와 정책을 쏟아내며 주택시장을 틀어막는 것과 딴판이다.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과도한 거품이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다르지 않은데도 말이다. 미국 수소차 회사 니콜라의 사기 논란에서 보듯 유망한 신산업과 신기술도 실적이 받쳐주지 않으면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유동성 과잉에 부동산 투자까지 막혔으니 상승장이 계속될 거라는 생각은 근시안적이다.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한겨울인데 실물경제 거울인 증시만 펄펄 끓는 비정상은 끝없이 이어질 수 없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내년 국가예산이 사상 최대 규모로 늘지만 국세 수입은 줄어 나랏빚이 10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됐다. 부족한 돈은 적자 국채 찍어 충당한다. 이 추세라면 현재 40%대인 국가채무비율이 2024년 60%에 근접할 것으로 정부는 공식 추산했다. 정부는 1일 국무회의에서 내년 예산안을 555조8000억 원 규모로 확정했다. 올해 본예산(512조3000억 원)보다 43조5000억 원(8.5%)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의 초(超)슈퍼급 예산이다. 분야별로 복지예산(보건, 복지, 고용)에 전체 예산의 36%인 199조9000억 원이 책정됐다. 생계급여,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46조9000억 원이 투입되고 일자리 예산으로 8조6000억 원이 잡혔다. 경기 부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인 26조 원으로 증가하는 것을 비롯해 국방, 환경, 산업·에너지 등 대부분 분야에서 예산이 늘었다. 하지만 내년 국세 수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 등으로 9조 원 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국세 등 수입보다 정부 지출이 더 많은 ‘적자 가계부’가 올해 이어 내년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내년 적자 규모는 사상 최대다. 이를 메우기 위해 정부는 역시 사상 최대 규모인 89조 원어치의 적자 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105조 원 많은 945조 원으로 늘어나고, 2022년엔 107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660조 원이었던 국가채무가 5년 만에 400조 원 넘게 증가하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나랏빚인 국가채무비율도 올해 43.5%에서 2022년 50.9%로 치솟는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기초로 산출한 2024년 국가채무는 1327조 원, 채무비율은 58.3%로 유럽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은 경제위기 시 국가경제, 국민경제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만큼 골든타임을 커버하는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세종=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폭풍 칭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한국의 성장률이 1위로 전망될 정도로 경제부총리가 경제사령탑으로서 총체적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부동산 정책 실패로 홍 부총리 등 경제정책 라인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는 와중이었다. 대통령의 공개 칭찬은 이틀 전 OECD가 보고서를 내고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2%에서 ―0.8%로 상향 조정한 것이 근거였다. 홍 부총리는 페이스북에 이 보고서를 분석한 2400자 분량의 긴 글을 올렸다. “회원국 성장률 순위에서 압도적 1위를 유지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역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우리가 가장 선방했다”는 게 요지였다. 문 대통령은 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링크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코로나가 재확산되면 성장률이 ―2.0%로 후퇴할 것이라는 OECD 전망은 쏙 빼놨다. 올해 기저효과에 따른 영향이 있긴 하지만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37개국 중 34위라는 점도 눈감았다. 1, 2분기 역성장 골이 깊어 OECD 전망치(―0.8%)를 달성하려면 3분기부터 ‘V자 반등’을 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희망사항에 그칠 여지도 크다. 현실과 동떨어진 홍 부총리의 낙관론은 한두 번이 아니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는 ‘사상 최악’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지표가 줄줄이 나온다. 실업자 114만 명, 청년층 체감실업률 25.6%, 구직을 단념한 비경제활동인구 1665만 명 등이다. 이런 통계에도 홍 부총리는 정부가 그동안 잘 쓰지 않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5월부터 고용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 부총리는 20일 나온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두고도 “정부의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으로 소득 분배가 개선됐다”고 자평했다. 소득 격차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은 4.23배로 작년 2분기(4.58배)보다 낮아지긴 했다.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이 지표는 수치가 낮을수록 분배가 개선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14조 원이 들어간 긴급재난지원금 요인을 제거하면 이 지표(7.04배→8.42배)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저소득층이 벌어들인 근로·사업소득이 고소득층보다 훨씬 많이 줄어든 탓이다. 취임 1주년 때 홍 부총리가 페이스북에 썼듯 ‘경제는 심리’다. 낙관적 인식이 번지면 소비가 살아나고 경제가 활기를 띨 수 있다. 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애써 유리한 통계만 보면서 현실과 괴리된 낙관론에 매달리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섣부른 낙관론은 빗나간 처방을 부르고,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기재부 출범 이후 수장의 평균 재직 기간은 1년 6개월 남짓이다. 홍 부총리는 최근 취임 1년 8개월을 넘기며 장수 장관의 문턱을 넘어섰다. 윤증현 전 장관의 최장수 기록(2년 4개월)을 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은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홍 부총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직시하는 용기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최근 1년간 회사 연수차 미국에 머물면서도 은행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체이스은행 계좌를 처음 개설할 때와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딱 2번 은행 영업점을 방문했다. 나머지 업무는 스마트폰 앱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해결했다. 3월 중순부터 체이스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미국 내 5000개 지점 중 1000곳을 임시 폐쇄했지만 불편은 없었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춘 은행들의 점포 폐쇄는 오래된 풍경이다. 미국에선 지난 10년 동안 1만2000개 지점이 사라졌다. 최근 코로나가 불러온 ‘언택트(untact·비대면)’ 바람은 그 속도를 앞당기고 있다. 2012년 7681곳이던 국내 은행 점포는 작년 6710개로 줄었다. 올 상반기에만 4대 시중은행에서 영업점 126곳이 문 닫아 지난해 폐점 수(88개)를 뛰어넘었다. 그러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윤 원장은 21일 임원회의에서 “은행 점포 폐쇄 움직임에 우려를 표한다. 코로나19를 이유로 단기간에 급격히 점포를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비공개로 열리는 임원회의의 원장 발언을 보도자료까지 내며 알린 건 은행권에 공개 경고장을 날린 것과 다름없다. 이미 금감원은 지점 폐쇄 현황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은행 점포 폐쇄로 발생할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의 불편을 막겠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모바일·인터넷뱅킹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 등이 금융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문제를 해소하고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금융권 차원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감독당국이 은행들의 점포 축소를 틀어막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지난해 은행 창구를 통한 대면 업무 비중은 7.9%에 그쳤다. 고객 발길이 끊기면서 높은 임차료와 인건비가 들어가는 비(非)수익 점포 문제로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은 지 오래다. 초저금리, 잇단 대출 규제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은행이 군살 빼기를 하려면 점포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코로나로 비대면,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금감원장이 은행 점포 폐쇄까지 간섭하는 것은 시대 흐름을 역행한 과도한 경영 개입이라는 관치 논란을 부를 뿐이다. 지금이라도 디지털 취약계층을 보호할 다른 수단은 없는지, 은행 점포 유지 효과가 얼마나 생산적인지 고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령층 금융소비자 보호가 핵심이라면 점포 축소에 제동을 거는 대신 은행권이 이들을 겨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해외에선 은행 지점 축소에 대비해 ‘은행 대리업’을 허용하고 있다. 유통·통신사 등 비금융사가 은행과 제휴해 예금, 대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소비자들이 가까운 편의점, 통신사 대리점 등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3800여 개 우체국을 활용 중인 일본 유초은행이 대표적이다. 우리도 서둘러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래 금융산업 패권을 놓고 기존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경쟁이 치열하다. 감독당국의 은행 점포 관리도 이 같은 금융빅뱅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 수익 안 나는 비효율 점포를 붙들고 있을수록 은행발(發) 금융 혁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조선시대 한양 양반들이 즐겨 먹던 음식 중 효종갱(曉鍾羹)이라고 있다. 글자 그대로 새벽종이 칠 때 먹던 국이다. 조선 후기 문인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를 보면 남한산성 사람들이 배추 콩나물 송이 소갈비 전복 해삼 등을 밤새 푹 끓여 새벽녘 통금 해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도성 안 양반집에 내다 팔았다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해장국인 셈이니 우리 배달·배송 문화의 시작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택배와 배달대행업이 성행하면서 동네 맛집 음식부터 잔심부름까지 배달되지 않는 게 없다. 인터넷에서 ‘배달의 민족’을 검색하면 우리 겨레를 이르는 말보다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이 먼저 뜬다. 온라인 마켓에서는 당일배송, 정기배송에 이어 새벽배송 경쟁이 치열하다. 오후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 전에 집 앞에 갖다준다. 잠들기 전 고른 메뉴가 아침 식탁에 오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새벽배송은 4년 전 마켓컬리가 ‘신선식품 샛별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택배는 2∼3일, 빠른 배송도 최소 하루가 걸릴 때였다. 공산품(원료를 인력이나 기계력으로 가공하여 만들어 내는 물품)도 아닌 신선식품을 전날 밤 주문받아 몇 시간 만에 배송하는 서비스를 내놓자 업계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 했지만 소비자들은 호응했다. 유통업 배송 전쟁을 촉발시킨 쿠팡은 물론이고 신세계 롯데마트 현대백화점 같은 유통 공룡들까지 새벽배송에 뛰어들어 맞벌이 부부와 1, 2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고 있다. ㉠2015년 100억 원에 불과했던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00억 원을 넘었고 올해 800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갓 만든 반찬, 산지(생산되어 나오는 곳)에서 직송(곧바로 보냄)된 제철 식재료, 아이들 장난감, 학용품 등 새벽배송 쇼핑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의 새벽배송 서비스는 세계 ㉡유일무이한 성공 사례로 혁신적 물류 시스템과 정보기술(IT), 빅데이터 기술들이 결합된 ‘코리안 미러클’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찬사를 받는 만큼 그림자도 있는 법. 택배 기사들은 대개 자기 차량으로 회사와 계약한 개인사업자인데, 과열(지나치게 뜨거워짐)되는 새벽배송 경쟁으로 살인적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에선 자율주행차·로봇·드론 배송 등 배송 수단의 혁신이 화두인데 우리는 속도전에만 치중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저임금 노동을 앞세워 배달천국이 된 중국도 이미 드론 배송을 시작했다. 한국의 아침 풍경을 바꾼 새벽배송이 이런 논란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진화할지 지켜볼 일이다.동아일보 6월 26일자 정임수 논설위원 칼럼 정리칼럼을 읽고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1. 다음은 ‘㉠’을 바꿔 쓴 문장입니다. ㉠을 참조해 빈칸에 들어갈 적절한 숫자를 각각 쓰세요. 2015년 100억 원에 불과했던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지난해 2015년에 비해 ( )배 넘게 증가했고, 올해는 2015년 시장 규모의 ( )배 이상이 될 것이라 한다.2. ‘㉡유일무이’의 뜻으로 적절한 것은 무엇인지 본문을 살펴본 뒤 유추해 고르세요.①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음.② 오직 하나만 있고 둘은 없음.③ 결코 변하지 않음. 김재성 동아이지에듀 기자 kimjs6@donga.com}
국내 언론에 핀테크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14년 무렵이다. 카카오톡에 기반을 둔 간편결제 서비스 ‘카카오페이’,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 등이 출범한 해다. 모바일 결제 대명사인 미국 페이팔의 탄생보다 15년 늦었지만 국내에서도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가 태동한 것이다. 이때부터 금융업 종사자들에겐 핀테크 허브로 부상한 영국 런던 테크시티로 출장 가는 게 유행이 됐다. ▷이제 핀테크를 넘어 ‘테크핀’이 화두가 되고 있다. 금융(Fin)에 기술(Tech)을 더한 핀테크에서 단어 순서만 바꿨을 뿐이지만 그 뜻은 차이가 크다. 기술이 금융산업의 발전을 지원하는 시대, 즉 금융회사가 IT를 활용하는 게 핀테크였다면 테크핀은 기술이 금융 발전을 견인하는 개념이다. 금융혁신의 주도권이 금융회사에서 IT 기업으로 넘어간 것이다.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2016년 “중국은 5년 안에 현금이 필요 없는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며 테크핀 용어를 처음 썼다. ▷테크핀 시대를 증명하듯 간편송금으로 출발한 토스는 5년 새 신용정보 조회, 펀드·대출상품 판매, 해외 주식 투자 등으로 영토를 넓혔다. 카카오페이는 1년 만에 체크카드 100만 장 발급 기록을 세우며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금융시장까지 잠식하고 있다.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등의 경쟁으로 간편결제 하루 이용액은 1200억 원을 넘어섰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과 결합해 테크핀의 진격 속도는 더 빨라질 일만 남았다. ▷IT 기업발(發) 금융 빅뱅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의 구글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금융과 IT 산업 간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페이스북은 24억 명의 가입자가 사용할 수 있는 가상화폐 ‘리브라’ 발행을 앞두고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금융시장을 파고들 수 있으니 다급해진 건 기존 금융사다. 일찌감치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은 “우리는 기술기업”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의 테크핀은 경쟁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기술력을 갖췄지만 새로운 서비스 출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많은 탓이다. 비(非)금융사가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4%(인터넷전문은행은 34%) 이상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은산분리 규제가 대표적이다. IT 기업이 선도하는 금융혁신 실험들이 신산업으로 이어지려면 낡은 규제부터 손봐야 한다. 테크핀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한국 금융의 미래도 없다.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조선시대 한양 양반들이 즐겨 먹던 음식 중 효종갱(曉鍾羹)이라고 있다. 글자 그대로 새벽종이 칠 때 먹던 국이다. 조선 후기 문인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를 보면, 남한산성 사람들이 배추 콩나물 송이 소갈비 전복 해삼 등을 밤새 푹 끓여 새벽녘 통금해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도성 안 양반집에 내다 팔았다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해장국인 셈이니, 우리 배달·배송 문화의 시작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택배와 배달대행업이 성행하면서 동네 맛집 음식부터 잔심부름까지 배달되지 않는 게 없다. 인터넷에서 ‘배달의 민족’을 검색하면 우리 겨레를 이르는 말보다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이 먼저 뜬다. 온라인 마켓에서는 당일배송, 정기배송에 이어 새벽배송 경쟁이 치열하다.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전에 집 앞에 갖다 준다. 잠들기 전 고른 메뉴가 아침 식탁에 오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새벽배송은 4년 전 마켓컬리가 ‘신선식품 샛별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택배는 2∼3일, 빠른 배송도 최소 하루가 걸릴 때였다. 공산품도 아닌 신선식품을 전날 밤 주문받아 몇 시간 만에 배송하는 서비스를 내놓자 업계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 했지만 소비자들은 호응했다. 유통업 배송 전쟁을 촉발시킨 쿠팡은 물론이고 신세계 롯데마트 현대백화점 같은 유통 공룡들까지 새벽배송에 뛰어들어 맞벌이 부부와 1, 2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고 있다. ▷2015년 100억 원에 불과했던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00억 원을 넘었고 올해 800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갓 만든 반찬, 산지에서 직송된 제철 식재료, 아이들 장난감, 학용품 등 새벽배송 쇼핑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의 새벽배송 서비스는 세계 유일무이한 성공 사례로 혁신적 물류 시스템과 정보기술(IT), 빅데이터 기술들이 결합된 ‘코리안 미러클’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찬사를 받는 만큼 그림자도 있는 법. 택배 기사들은 대개 자기 차량으로 회사와 계약한 개인사업자인데, 과열되는 새벽배송 경쟁으로 살인적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신선식품 신선도를 위해 사용되는 스티로폼, 보랭팩 등 일회용 포장재의 과도한 사용도 골칫거리다. 해외에선 자율주행차·로봇·드론 배송 등 배송 수단의 혁신이 화두인데 우리는 속도전에만 치중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저임금 노동을 앞세워 배달천국이 된 중국도 이미 드론 배송을 시작했다. 한국의 아침 풍경을 바꾼 새벽배송이 이런 논란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진화할지 지켜볼 일이다.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자정이 훨씬 넘었네. 도대체 잠은 안 오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닭이 울고 말았네.” 1980년 가수 이장희가 부른 노래에서처럼, 자정(子正)은 흔히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세월이 지나 래퍼 버벌진트도 “분명히 귀가시간은 자정이 훨씬 지난 후였지”라고 읊조렸다. 이런 통념을 반영하듯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정을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밤 열두 시를 이른다”고 풀이한다. ▷한데 끝은 곧 시작이기도 하다. 자정을 ‘밤 12시’가 아니라 하루의 시작점인 ‘0시’라고 표현하는 사전들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시간을 가리키는 말에 오정(午正) 자정(子正)이 있는데 오정은 낮 12시, 자정은 0시 정각이다”라고 한다. 이쯤 되면 헷갈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선생님이 과제를 ‘25일 자정’까지 제출하라고 했다면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밤 12시(또는 0시)까지 내야 하는지, 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기 직전까지만 내면 되는 것인지. ▷일상적 용례로 보면 하루를 끝맺음한 후자가 맞는 것 같지만, 원칙적으로 25일 자정은 24일이 끝나고 25일을 시작하는 ‘25일 0시’가 정답이다. 이는 ‘24일 밤 12시’와도 같은 뜻이다. 이 같은 혼동이 없도록 언론 매체에서는 자정이라는 표현을 극히 삼간다. 어제 자 신문들이 25일부터 음주운전 단속기준과 처벌이 강화된다고 보도했는데, ‘25일 0시부터’라고 쓴 기사나 ‘24일 밤 12시부터’라고 한 곳이나 다들 맞다. 또는 ‘25일 자정부터’라고 해도 맞다. ▷하루를 밤과 낮 12시간씩 24시간으로, 1년을 12개월로 나눈 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황도 12개 별자리 움직임을 따른 데서 유래한다. 동양 문화권에서도 하루를 ‘자축인묘… 술해’로 12등분하고 이를 다시 초(初), 정(正)으로 세분화해 자정(0시) 축초(1시) 축정(2시) 인초(3시)… 해정(22시) 자초(23시)로 24등분했다. 예부터 자정을 저문 날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날의 첫 시간으로 삼은 것이다. ▷해가 뜨는 아침이 아니라 깜깜한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본 것은 음양(陰陽) 사상에 따라 밤이 가장 깊었을 때 아침의 기운이 시작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신관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정화의식을 치를 때 새벽을 시작으로 삼았다. 반면 정통파 유대인들은 해가 진 오후 6시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금요일 이 시간부터 안식일에 들어간다. 하루의 시작 설정은 종교, 문화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결국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조선 태종실록 1431년에는 섬진강 하구에서 굴을, 여수 여자만에서 꼬막을 처음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 수산양식 역사는 거의 60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굴, 꼬막에 이어 오래된 양식 품종은 김이다. 인조 때인 1640년 김여익이 광양만을 떠내려 온 참나무에 김이 붙어 자라는 것을 보고 양식법을 개발했다. 수산 강국인 일본의 김 양식 보다 30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1970년대까지 수산업은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주력 수출산업이자 국민들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효자 식품산업이었다. 하지만 이런 바다의 풍요로움이 퇴색된 지 오래다. 명태가 자취를 감추고 오징어가 금(金)징어가 되면서 10년 전 128만 t이던 연근해 어획량은 최근 100만 t으로 줄었다. 지난해 수산물 수출이 사상 최대(23억8000만 달러)였다지만 세계 경쟁력은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상 수산물 수출 6위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21위로 밀렸다. ▷바다에서 다시 희망이 싹트고 있다. 2015년부터 새끼 명태를 양식해 동해에 방류하는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올봄 잡힌 명태 일부가 이렇게 방류된 것이었다. 새끼 오징어가 뭘 먹는지 몰라 양식이 불가능했던 갑오징어도 최근 양식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참치(참다랑어) 양식에 투자하는 50억 원 펀드도 처음 만들어졌다. 일본이 세계 양식 참치의 절반(연 1만5000t)을 생산하는데, 이를 따라잡을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술력을 활용한 바다의 ‘스마트화’에 거는 기대가 높다. 경남 하동군 중평항 인근의 숭어 양식장에는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한 첨단 스마트양식 플랫폼이 처음 도입됐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무인선(無人船)인 자율운항선박은 내년 개발에 들어간다. 수산업을 비롯해 해운 항만 해양관광 등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잘 접목하면 블루오션이 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오늘까지 사흘 일정으로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해양수산·양식·식품 수출박람회 ‘2019 Sea Farm Show’에도 이런 희망과 기대가 엿보였다. ‘바다가 미래다’를 주제로 동아일보와 채널A, 해양수산부가 마련한 박람회에는 해양수산 분야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비롯해 신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들이 참가했다. 해외 10개국에서 온 바이어 48명은 우리 수산물에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다. 이런 동력들이 결집되면 우리 바다에서 혁신성장도, 새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질 것이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1994년 11월 17일 김영삼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직후 호주 시드니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정목표를 ‘세계화’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세계화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해 “국제화를 세게 하면 세계화가 된다”는 말이 나오던 때였다. 한국뿐 아니라 냉전이 종결된 1990년 이후 세계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세계화) 물결이 거셌다. 미 하버드대 경제학자 시어도어 레빗 교수가 1983년 처음 사용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은 경제를 넘어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화의 동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이는 통계지표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국경을 넘나드는 재화·서비스 교역량은 2008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61%에서 지난해 58%로 줄었다. 국가 간 은행대출도 2006년 60%에서 지난해 36%로 급감했다. 금융위기 무렵부터 지난해까지 무역·투자·인력 교류 등 12개 세계화 연관지표 중 8개에서 세계화 수준이 후퇴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세계화 둔화 현상을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이라고 명명했다. 느린(slow)과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합성어다. ▷미국을 필두로 자국 우선주의와 통상 마찰이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 질서에 균열이 생긴 결과다. 연초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세계화 4.0’을 화두로 던진 것도 같은 이유다.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새로운 글로벌 협력 체제를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슬로벌라이제이션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힘을 잃고 있고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자협력도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미국이 이끄는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에 맞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이 설립되는 등 국제기구 분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슬로벌라이제이션 시대에 대한 전문가 진단은 비관적이다. 달러화를 중심으로 구축된 국제금융 시장이 균열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위기가 생길 수 있고 저숙련 노동자의 실직, 난민 갈등 같은 세계화가 낳은 문제도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대외 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불리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슬로벌라이제이션을 연급하며 “무역 의존도가 높고 내수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신흥국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했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이 본격화되기 전에 ‘중진국 함정’에 빠진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해법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몇 년 전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최고 권력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독일 총리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자 우머노믹스(여성이 주도하는 경제) 시대가 열렸다고 떠들썩했다. 그 무렵 뉴욕 월가의 상징인 황소상 앞에는 ‘두려움 없는 소녀상(Fearless Girl)’이 등장했다. 127cm의 키에 허리춤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치켜든 소녀의 당당한 모습은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월가의 성불평등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2017년 3월 세워진 소녀상은 한 달만 전시되고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도 월가를 지키고 있다. ▷작은 소녀상이 이끌어낸 성과일까. 지난해 5월 뉴욕증권거래소가 226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남성 중심적이던 월가에 변화가 일고 있다. 최근 미 최대 은행 JP모건은 역대 최대 규모로 여성 고위급 간부를 승진시켰다. 소비자대출 담당 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여성이 맡았다. 이 두 여성 리더 중 1명이 2005년부터 JP모건 수장을 맡아 ‘월가 황제’로 군림하는 제이미 다이먼 회장의 뒤를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미 은행권 최초의 여성 수장이 된다. ▷한국 금융계도 우먼파워가 세지고 있다. 작년 말 박정림 KB증권 사장이 증권업계 최초의 여성 CEO가 된 데 이어 은행권에서도 여성 임원이 잇따라 배출됐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신중함이 빛을 발하는 리스크관리와 자산관리 분야에서 여성 리더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외환위기 전만 해도 금융회사 여직원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당연시됐지만 2000년대 들어 팀장 부장을 다는 여성이 많아졌고 2013년엔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이 첫 여성 은행장에 올랐다. 모두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깬 이들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앞서 여성 은행장, 여성 대통령까지 낸 나라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여풍을 말하기엔 여전히 민망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조사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올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남녀 임금격차가 크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2.9%에 그친 데다 여성 관리자(12.5%), 여성 임원 비율(2.3%)이 낮은 탓이다. 육아휴직을 하고 자녀를 돌보는 ‘라테파파’가 넘쳐나는 스웨덴이 1위고 미국은 20위다.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러더스’가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조화와 균형이 좀 더 강조돼 큰 위기로 번지지 않았을 거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성 리더들이 바꿔갈 금융의 미래가 궁금하다.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