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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인파가 끊이지 않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Met)이 6일 앞 계단에 거대한 레드 카펫이 깔리며 화려한 축제(Gala)의 장으로 변신했다.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행사 중 하나인 ‘메트 갈라’가 개최되며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들었다.이날 레드 카펫엔 세계적인 스타들이 한데 모였다. 배우 제니퍼 로페즈와 젠다야, 가수 두아 리파는 물론 K-팝 아이돌인 블랙핑크 제니와 스트레이키즈 등도 등장해 큰 환호를 받았다. 멀리서라도 스타를 보려는 이들과 주변을 통제하는 경찰 등으로 일대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메트 갈라는 1948년부터 해마다 5월에 열리는 메트 미술관의 모금 행사다. 초기엔 단순한 모금 파티였으나 1973년부터 패션지 보그의 편집장이 진행 의장을 맡으며 색깔이 달라졌다. 특히 유명인들이 편집장이 정한 주제에 맞춰 독특한 의상을 입으며 화제를 모았다.톱스타나 재계 거물 등 약 450명만 초대받는 메트 갈라는 내부 상황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는 걸로도 유명하다. 입장 티켓 가격도 엄청나다. 전설적인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의장을 맡았던 1995년엔 1000달러였으나 지금은 7만5000달러가량(약 1억 원)으로 뛰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메트 갈라는 하루 모금액이 약 2200만 달러였다”고 전했다.올해 주제는 영국 작가 J.G. 발라드의 소설 ‘시간의 정원’과 이달 말 공개될 메트의 의상 전시 ‘잠자는 숲속의 미녀: 다시 깨어난 패션.’ 참석자들은 이에 맞춰 정원과 동화의 느낌을 살린 화려한 꽃장식을 패션 아이템으로 갖춘 이들이 많았다.시대적 주류인 인공지능(AI)의 도입도 눈길을 끌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메트 갈라에 1930년대 뉴욕 사교계 유명인사인 나탈리 포터 여사의 ‘인격’을 가진 챗GPT를 선보였다. 미 의회에서 이른바 ‘틱톡 금지법’이 통과되며 논란의 중심에 선 틱톡의 추쇼우즈 최고경영자(CEO)도 명예의장으로 등장해 주목받았다.한편 메트 미술관 인근에선 중동전쟁 반대 시위대가 행사장 쪽으로 오려다가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가자지구에 폭탄이 떨어지는 동안 메트 갈라를 금지하라’ 등의 팻말을 들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시위대 일부는 경찰에 붙잡혀 연행되기도 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2016년 첫 투자 이래 애플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졌나요?” 4일(현지 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CHI 헬스센터. 전 세계에서 3만여 명이 모인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장에서 말레이시아 주주인 셔먼 램 씨(27)의 질의가 첫 질문으로 채택됐다. 버크셔해서웨이가 1분기(1∼3월)에 보유 중인 애플 주식의 13%에 해당하는 약 1억1500만 주를 매각했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였다. 주총장 맨 앞줄에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앉아 있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사진)은 “아니다. 애플은 올해 우리 보유 주식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며 “연방정부는 기업 수익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소유하고 있고, 재정적자가 높아 그 비율을 높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인세 상승을 우려한 지분 축소이지 애플에 대한 전망이 바뀐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이다. 버핏 회장은 “코카콜라와 아멕스, 애플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끝까지 들고 있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3월 말 기준 1354억 달러(약 184조 원)어치의 애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대량 매각에도 여전히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애플의 최대 주주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이날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 말 1676억 달러에서 1분기 말 1890억 달러(약 257조 원)로 늘었다고도 밝혔다.버핏 “AI發 사기 우려, 가짜로 만든 나에게 내가 속을 판” 美오마하 버크셔 주총 “AI는 핵무기를 생각나게 해지니 만들곤 램프 못넣을까 두려워”‘中 투자 의향’ 질문엔 “기본은 美”버크셔해서웨이는 2박 3일 동안 경영진과 주주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허물없이 논의하는 주총 프로그램을 매년 기획하고 있다. 올해 주총에도 미국뿐 아니라 독일, 일본, 중국,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세계 각지에서 주주 3만여 명이 몰렸다. 전날 부대행사에 이어 공식 주총날인 4일에는 6시간 동안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버핏 회장에게 다양한 주제에 대해 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버크셔해서웨이가 밝힌 1분기 말 현금성 자산 규모 1890억 달러는 회사 역사상 최대 현금 보유액이다. 버핏 회장은 “이번 분기(2분기·4∼6월) 말에는 2000억 달러(약 272조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돈을 쌓아놓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는 한 주주의 직설적 질문에는 “우리는 날아오는 공이 마음에 들 때만 (야구 방망이를) 스윙한다”며 고금리로 단기 채권의 수익률이 높은 상황에서 주식시장에는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홍콩에서 온 주주가 ‘중국 전기차 BYD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 외 중국이나 홍콩 기업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는지’를 묻자 버핏 회장은 “우리의 기본 투자처는 미국”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어 “일본 상사 기업에 대해선 거부하기 힘든 매력에 투자했지만 우리가 미국 외에 다른 나라에 집중 투자할 가능성은 낮다”고 답했다. 버핏 회장은 지난해 말∼올 1분기 대만 TSMC 주식을 모두 팔고 미쓰비시상사 등 일본 종합상사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투자에 대한 질문에는 “내가 사기에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이것이 역대 최대 성장산업이 됐을 것”이라며 AI발(發) 허위정보가 우려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최근에 AI로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봤다면서 “내가 어느 나라의 가짜 나에게 속아 돈을 보낼 판”이라고 덧붙였다. 또 “AI는 핵무기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창조한 지니를 다시 램프에 집어넣지 못할까 봐 두렵다”고도 말했다. 인생 조언을 구하는 주주들도 많았다. 버핏 회장은 “직업을 구하는 학생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일을 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하고 싶을 만한 일을 찾도록 하라”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부터 목표를 향해 가라. 어려움이 있겠지만 괜찮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마하=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4일(현지 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CHI 헬스센터. 오전 6시 30분에 도착하니 이미 수천 명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들은 워런 버핏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에 참석하러 온 ‘자본주의 순례객’이다. 대기 줄의 맨 앞쪽 사람들은 주총장의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오전 2시경 왔다고 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핏 회장의 투자 철학을 듣기 위해 올해도 세계 각지에서 주주 3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미 메릴랜드주 뉴마켓에서 온 톰, 에이미 케이디 씨 부부는 열한 살 아들 벤과 함께 서 있었다. 남편 톰 씨는 “버핏이 처음 주식을 손에 쥔 때가 11세였다”며 “20년 버크셔해서웨이 주주로서 아들이 열한 살이 되면 꼭 주총장에 데려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주의와 투자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큰 할아버지’가 전해줄 수 있는 지혜를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왔다”고 덧붙였다. 전날 학교를 빠지고 오마하에 왔다는 벤 군도 “기대된다”며 웃었다. ● 경제교육 위해 자녀와 지구 반 바퀴 버크셔해서웨이 주총에는 케이디 씨 부부처럼 자녀에게 생생한 경제교육을 체험하게 하려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 투자와 돈 관리 등 경제에 눈을 뜨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뉴욕을 거쳐 오마하까지 20시간이 걸렸다는 잉 람 씨(53) 부부는 대학생 자녀를 데리고 왔다. 람 씨는 “우리는 버핏의 오랜 팬”이라며 “지난해 주총 직후부터 여행을 계획했고, 아들의 입시가 끝난 뒤 미국 여행을 겸해 오마하에 왔다”고 말했다. 오마하 토박이인 브래드, 레이철 라슨 씨 부부는 7세 아들 애틀러스 군과 함께 주총을 찾았다. 브래드 씨는 “오마하 사람들은 거의 태어나면서부터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가 된다”며 “행사장에서 재미있는 놀이도 하면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레이철 씨는 “아이에게 부자가 되어도 겸손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미덕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버크셔해서웨이 주총은 세계적 음악 축제에 빗대 ‘자본주의자들의 우드스톡(Woodstock for Capitalists)’으로 불린다. 이 같은 명성답게 딱딱한 질의응답이 지루하면 언제든 나와서 버크셔해서웨이 측이 투자한 기업들의 체험관에서 쇼핑을 하거나 각종 게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행사장을 꾸몄다. 애틀러스 군도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봉제인형 기업 재즈웨어 체험관에서 인형을 구경하며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 “버핏 다시 못 볼라” 더 몰린 주주들 버핏에게 직접 질문할 기회를 얻은 어린이도 있었다. 앤드루 니카스 군은 지난해 11월 작고한 버핏의 ‘단짝’ 찰리 멍거 부회장을 언급하며 “찰리와 하루 더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버핏은 “우리는 행복한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실수했고, 배움을 즐겼다”며 “하루만 더 주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소년에게 “마지막 날을 누구와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그 사람과 당장 내일 만나라”라고 조언했다. 버핏 회장은 올해 94세로, 멍거 부회장이 세상을 뜨며 버핏의 고령도 부각되자 지난해에 비해 더 많은 주주들이 몰렸다. 보스턴에서 제약회사를 다닌다는 클레어 씨(35)는 “멍거 부회장 사후에 혹시나 마지막 기회가 될까 싶어 꼭 버핏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버핏 회장도 주총을 마무리하며 “찰리같이 믿을 수 있고, 거짓말하지 않는 파트너를 만난 것도 인생의 행운”이라며 “내년에 내가 또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날 주총에는 버크셔해서웨이에 오랫동안 투자해 자산을 이룬 루스 고테스만 미 알베르트아인슈타인 의대 명예교수(94)도 참여했다. 투자로 번 돈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를 학교에 기부해 ‘무상교육’을 실현한 인물이다. 버핏이 “큰돈을 기부하고도 학교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달라고 하지 않은 주주”라고 소개하자 3만여 명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오마하=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국 청년들의 반전 시위가 심상치 않다고 처음 느꼈던 때는 3월 말 조 바이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자금 모금 행사차 뉴욕에서 뭉친 날이었다. 모금은 대성공이었지만 행사장 밖 공기는 달랐다. 비를 맞으면서도 수백 명이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을 외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맞대응 이후 대학 캠퍼스뿐 아니라 뉴욕 시내 곳곳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는 일상화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날 시위는 달라 보였다. 시위 규모가 커지고, 언어는 거칠어졌다. 전현직 대통령 3인을 악마로 묘사한 포스터와 과격한 팻말도 눈에 띄었다. 민주당이 강세인 뉴욕에서 대통령 지지 인파가 보이지 않은 점도 적잖이 놀라웠다.반전 시위 기저엔 분노한 청년층 당시 시위에 참여한 2030세대 청년 5명과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바이든 행정부가 세금을 대는 것은 부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랍계인 엘리자 마서 씨(31)는 “우리는 대부분 이민자의 자녀다. 미국과 적국으로 얽혀 있는 지역에서 왔다면 팔레스타인 이슈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미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분노도 보태졌다. 손더스 엘브록 씨(35)는 “1980년대에도 범죄가 기승을 부렸지만 특정 시간과 지역을 피하면 안전했다고 한다”며 “지금 우리는 일상에서 묻지 마 폭력에 시달리는데 경찰은 정작 시민 보호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 정부가 이스라엘과 같은 ‘강자’의 편에서 자국 ‘약자’ 보호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엘브록 씨의 말에 옆에 있던 여성들은 페퍼 스프레이와 같은 호신용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시민단체를 서로 알려주며 비판을 이어나갔다. 뉴욕시립대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니크먼 씨(21)는 “친구들끼리 ‘졸업 후 다른 나라로 갈까’ 할 정도로 매일 미국이 잘못되고 있다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내 인생 첫 번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선택지라는 점도 좌절스럽다”고 말했다. 높은 물가 속에 미래가 어둡게 느껴진다고도 했다.전쟁도, 시위도 생중계 시대 팔레스타인 참상에 대한 분노 기저에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비관론, 경제에 대한 우려가 섞여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 매년 실시하는 18∼29세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청년층의 좌절이 표출되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만이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답했고 58%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4년 전 조사에선 20% 이상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었다. 동영상 위주의 소셜미디어도 시위 격화에 한몫을 했다. 지난달 컬럼비아대의 경찰 연행 장면도 실시간으로 퍼지며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특히 주로 틱톡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미 20대는 가자지구 참상에 대한 동영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미 의회가 중국을 핑계로 틱톡을 금지해 팔레스타인 이슈를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올 정도다. ‘틱톡 금지법’을 자신들을 겨냥한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느낀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물가와 고금리 후유증이 지속되며 청년층의 좌절감은 높아지고, 세대별로 정보가 통하는 창구가 갈리며 이들과 정치권의 괴리감도 커지는 것이다. 그사이 대학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 이에 대한 반발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미 사회의 분열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
4월 미국 신규고용이 예상보다 적고, 실업률이 2022년 1월 이래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고금리에도 뜨거웠던 미국 고용시장이 4월에 냉각 조짐을 보인 것이다. 9월 금리 인하 기대를 높이는 수치에 뉴욕증시를 랠리를 이어가고, 미 국채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3일(현지시간) 미 노동부는 4월 미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전월 대비 17만 5000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24만 명)을 크게 하회한데다 3월의 30만3000 명에서 대폭 줄어든 수치다. 실업률도 3.9%로 전망치(3.8%)를 웃돌았다. 인플레이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시간당 임금상승률도 전월대비 0.2%로 시장전망치(0.3%)를 밑돌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9%로 2021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앞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려면 노동시장이 약세를 보이거나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금리 인상 카드는 배제했지만 연준의 목표인 2%대 물가상승률까지 “추가 진전이 부족하다”며 최근의 인플레이션 추세에 대한 우려를 밝히고 인하시점에 대한 언급은 꺼렸다. 하지만 이날 보고서에서 노동시장 둔화 시그널이 나오자 9월 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정책 금리 선물 투자로 연준의 금리 향방을 점치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발표 직후 투자자들은 9월 금리 인하 전망을 기존 60%에서 70%로 높였다. 연말까지 두 차례 금리 인하가 가능성도 높게 점치고 있다.9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살아남에 따라 3일 오후 2시(동부시간 기준) 현재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1.2%,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3%, 나스닥지수는 2%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미국 10년만기 국채금리도 4.5%대로 뚝 떨어졌고 2년 국채금리도 4.81% 수준을 보이고 있다. 앞서 인플레이션 경계심에 2년만기 국채금리는 5%를 돌파한 바 있다. 일각에선 당장 9월인하 기대감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음 FOMC 회의인 6월 11, 12일 전에 5월 고용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라 3일 고용지표 하나만으로 연준에 즉각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다음 단계가 금리 인상이 될 것 같진 않지만, 금리 인하에 확신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간 5.25∼5.50%로 또다시 동결했다. 지난해 9월부터 6회 연속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다시 공식화했다. 이날 FOMC 정례회의와 이어진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을 종합하면 연준은 현재 미국의 물가 상태를 상당히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은 “다음 행보가 금리 인상은 되진 않을 것”이라면서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지만 “올해 1분기(1∼3월) 인플레이션 (하락) 진전을 보지 못했다”며 금리 인하 시점이 미뤄질 것을 시사했다. 한마디로 당장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 금리를 내릴지도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단 얘기다. 연준은 이날 올해 들어 처음으로 현재의 미국 물가 상태가 우려할 만한 수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연준은 이번 성명서에 “최근 몇 달 동안 위원회의 물가상승률 2% 목표에 대한 추가 진전이 부족했다”는 문구를 새로 넣었다. 올 들어 3회 연속으로 미 물가지표가 시장 전망을 상회하자 연준이 물가 상승세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도 ‘금리가 올해 한 번이라도 내려갈 확률이 있는 것인가’ 등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실시간 물가지표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아울러 “노동시장 약세(실업률 증가)나 지난해와 같은 물가 상승률 하락 중 한 가지는 충족돼야 금리 인하의 길이 열린다”고 덧붙였다. 월가에서는 이날 FOMC가 끝난 이후 연준이 올해 기껏해야 9월이나 12월경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6월 금리 인하 기대는 완전히 물 건너갔고, 기껏해야 한두 차례 인하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끈적거리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2월 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연준이 장기화된 고금리를 계속해서 이어가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도 더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이달 23일 열리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금리 동결이 사실상 확실시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연준의 금리 동결로 한미 금리 차는 역대 최대인 2%포인트를 10개월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한은은 고물가와 고환율로 인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처지다. 특히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6일 장중 약 17개월 만에 1400원을 넘어선 뒤 최근 130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환율이 지속되면 수입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게 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9%로 3개월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편 연준은 이날 “6월부터 월 최대 국채 상환 규모를 기존 600억 달러(약 83조 원)에서 250억 달러로 줄여 보유 증권이 줄어드는 속도를 늦출 것”이라며 양적긴축 감속 방침도 밝혔다. 이는 그만큼 유동성을 덜 흡수해 시중 공급량을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고금리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국채시장의 혼돈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일(현지시간)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끈적이는 미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는 언제 될지 모르고, 고금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적어도 금리 인상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확신이 올 때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여러차례 밝혀 고금리의 장기화 방침을 재확인했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을 선택지에 올리는 ‘매파적 피벗(정책전환)’을 선언할 수 있다는 우려보다 ‘비둘기적’인 파월 의장의 발언에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곧바로 상승세로 전환됐지만 금리 인하가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0.34%, 0.33% 하락으로 장을 마쳤다. ●금리 인상 가능성은 낮춰 연준은 이날 FOMC 정례회의에서 시장 전망대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는 5.25~5.50%로 유지됐다. 연준은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은 지난 한 해 동안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금리를 동결하고 “들어오는 데이터, 진화하는 전망, 리스크의 균형을 신중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인플레이션이 2%를 향해 지속 가능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금리를 내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연준이 이날 공개한 성명서에서는 이전 성명서에 없던 “최근 몇 달 동안 위원회의 2% 인플레이션 목표에 대한 추가 진전이 부족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올해 들어 3회 연속 미국 물가지표가 시장 전망을 상회함에 따라 연준이 물가 상승세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음을 성명서에 새 문구로 표현한 것이다. 연준이 주시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3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2.8% 상승해 시장 전망치(2.7%)를 상회한 바있다. 이에 따라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을 언급할 수 있다는 우려에 달러가치가 치솟고, 미 국채금리가 오르며 증시는 하락하는 등 최근 금융시장이 출렁여왔다. 파월 의장은 현재 물가 둔화 추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높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기준금리는 충분히 높고 수요를 누르고 있다. 시간에 걸쳐 충분히 제약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를 더 제약적, 즉 인상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을 내비친 것이다. 파월 의장은 “우리의 다음 행보가 금리인상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밝히기도 했다.●‘3번 인하 시간 있나’ 질문에 파월은 이날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 배제를 시사하면서도 인하 시점에 대한 힌트는 노련하게 피해갔다. ‘연준의 3월 경제전망요약(SEP)에 나온 대로 올해 3번 금리를 인하할 시간은 있을 같나’, ‘파월 의장 당신의 마음속에 올해 금리를 한 번이라도 내리지 않을 확률이 올라갔나’, ‘대선 일정에 영향을 받지 않겠나’는 등 파월 의장의 마음을 읽기 위한 다양한 질문이 나왔지만 그의 메시지는 한결 같았다. 파월 의장은 “올해 1분기(1~3월) 인플레이션 둔화 진전을 보지 못했다. 금리를 낮추기 위해 필요한 확신을 얻기까지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면서도 “내 마음 속에 따로 확률은 없다”, “전적으로 향후 경제지표를 봐야 한다”는 등 가이던스를 피했다. 다만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에는 변함이 없었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지속적으로 높았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둔화의 틀은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스태그플레이션 걱정은 없다. 미 경제성장률이 둔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견고하다”고 밝혔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9시 30분경. 낮부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암스테르담애비뉴에 집결해 있던 경찰이 맞은편 컬럼비아대로 진입을 시작했다. 이날 새벽에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미 대학 시위의 상징’으로 불리는 해밀턴홀을 기습적으로 점거하자 대학 측이 경찰에 진압을 요청했다. 1968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해밀턴홀 점거 시위를 진압한 사건이 벌어진 지 56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최근 전 세계 대학가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이 시위의 진원지로 불렸던 컬럼비아대에 결국 공권력이 개입했다. 일단 해밀턴홀 점거는 풀렸지만, 반전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할 권리와 학교 및 도시를 안전하게 지킬 권리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시위 학생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 1968년 ‘그날’을 불러오다 이날 경찰이 2층 창문 등을 통해 해밀턴홀 진입을 시도하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건물 안팎에 밀집해 있던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Shame on you)” “학생들을 풀어줘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컬럼비아대 학보 ‘컬럼비아 스펙테이터’에 따르면 경찰은 진입 약 5분 만에 시위대를 연행하기 시작했다. 경찰 측은 “해밀턴홀에서 약 50명의 학생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마침 이날은 1968년 해밀턴홀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체포된 지 딱 56년이 된 날이었다. 당시 시위 학생 700여 명이 대거 경찰에 끌려간 광경은 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시위 학생들이 이날 새벽 해밀턴홀을 점거한 의도도 이를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시선이 컬럼비아대로 쏠린 상황에서 학생운동의 ‘전설적 사건’을 불러일으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전날 밤 몇몇 시위대가 홀에 들어간 뒤 이날 새벽에 문을 열어 학생들이 대거 진입했다고 한다. 1968년 시위에 참여했던 마크 나이슨 포덤대 역사학과 교수는 NBC방송에 “(현재 양상이) 당시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반유대주의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답했던 미노슈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은 해밀턴홀이 점거되자 경찰에 진압을 요청하는 긴급 서한을 보냈다. 또한 대학 졸업식(15일) 이후인 17일까지 캠퍼스에 상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교 측은 또 시위에 불참한 학생들에게 “학교 밖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경고문도 보냈다. ● “정치적 반정부 시위로 커질 수도” 해밀턴홀 시위대는 진압됐지만, 사태의 불길은 더 크게 번질 수도 있다. 당초 시위는 정부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반대가 가장 큰 목적이었으나, 강경 진압이 이어지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컬럼비아대 진압은 시위의 양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며 “2020년 전국에서 들끓었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처럼 정치적 반정부 시위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치권 등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 등은 이날 “학생들의 건물 점거는 불법 행위로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컬럼비아대의 존 맥워터 언어학 교수도 NYT 기고문에서 “지적인 항의로 시작된 시위가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폭력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학대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학생을 비롯한 미 청년층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뉴욕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현장에서 만난 파두모 오스만 씨(28)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우리 세금으로 민간인을 죽이는 전쟁을 지원하면서 정작 미국 내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며 “4년 전에 바이든 대통령을 뽑았지만 올해는 모르겠다”고 말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9시 30분경. 낮부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암스테르담애비뉴에 집결해있던 경찰이 맞은편 컬럼비아대로 진입을 시작했다. 이날 새벽에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미 대학 시위의 상징’으로 불리는 해밀턴홀을 기습적으로 점거하자 대학 측이 경찰에 진압을 요청했다. 1968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해밀턴홀 점거 시위를 진압한 사건이 벌어진 지 56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최근 전 세계 대학가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이 시위의 진원지로 불렸던 컬럼비아대에 결국 공권력이 개입했다. 일단 해밀턴홀 점거는 풀렸지만, 반전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할 권리와 학교 및 도시를 안전하게 지킬 권리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시위 학생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 1968년 ‘그날’을 불러오다 이날 경찰이 2층 창문 등을 통해 해밀턴홀 진입을 시도하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건물 안팎에 밀집해있던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Shame on you)” “학생들을 풀어줘라”고 함성을 질렀다. 컬럼비아대 학보 ‘컬럼비아 스펙테이터’에 따르면 경찰은 진입 약 5분 만에 시위대를 연행하기 시작했다. 경찰 측은 “해밀턴홀에서 약 50명의 학생을 체포했다”고 밝혔다.마침 이날은 1968년 해밀턴홀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체포된 지 딱 56년이 된 날이었다. 당시 시위 학생 700여 명이 대거 경찰에 끌려간 광경은 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시위 학생들이 이날 새벽 해밀턴홀을 점거한 의도도 이를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시선이 컬럼비아대로 쏠린 상황에서 학생운동의 ‘전설적 사건’을 불러일으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전날 밤 몇몇 시위대가 홀에 들어간 뒤 이날 새벽에 문을 열어 학생들이 대거 진입했다고 한다. 1968년 시위에 참여했던 마크 나이슨 포덤대 역사학과 교수는 NBC방송에 “(현재 양상이) 당시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반유대주의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답했던 미노슈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은 해밀턴홀이 점거되자 경찰에 진압을 요청하는 긴급 서한을 보냈다. 또한 대학 졸업식(15일) 이후인 17일까지 캠퍼스에 상주해달라고 요청했다. 학교 측은 또 시위에 불참한 학생들에게 “학교 밖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경고문도 보냈다. ● “정치적 반정부 시위로 커질 수도”해밀턴홀 시위대는 진압됐지만, 사태의 불길은 더 크게 번질 수도 있다. 당초 시위는 정부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반대가 가장 큰 목적이었으나, 강경 진압이 이어지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컬럼비아대 진압은 시위의 양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며 “2020년 전국에서 들끓었던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처럼 정치적 반정부 시위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치권 등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 등은 이날 “학생들의 건물 점거는 불법 행위로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컬럼비아대의 존 맥워터 언어학 교수도 NYT 기고문에서 “지적인 항의로 시작된 시위가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폭력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학대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하지만 대학생을 비롯한 미 청년층은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뉴욕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현장에서 만난 파두모 오스만 씨(28)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우리 세금으로 민간인을 죽이는 전쟁을 지원하면서 정작 미국 내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며 “4년 전에 바이든 대통령을 뽑았지만 올해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한국이 만든 K-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로 미국 브로드웨이를 사로잡겠습니다.”25일(현지 시간) 미 뉴욕 맨해튼에 있는 ‘브로드웨이 씨어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막이 오르자 관객들은 순식간에 1920년대 재즈 시대의 성대한 파티에 빠져들었다. 신나는 스윙재즈를 타고 생생한 영상 스크린과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자 영화보다 더 실감나는 분위기가 고조됐다.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5년 발표한 소설이 원작.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진 작품이 브로드웨이로 귀환하자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 언론의 관심도 크게 쏠렸다. 색다른 건 이 무대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한국 뮤지컬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56)란 점이다.신 대표는 해당 작품의 리드 프로듀서를 맡아 캐스팅과 음악, 무대, 연출, 제작을 총괄했다. 물론 원작과 배우, 작곡 등 현지화에도 공을 기울였지만, 한국식 서사와 디테일을 더해 K- 뮤지컬의 장점을 살렸다. 신 대표는 26일 언론과 만나 “브로드웨이에서 통하면 한국과 영국, 호주 등 세계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국내에서 ‘지킬 앤드 하이드’ ‘드라큘라’ 등을 성공시킨 탄탄한 이력을 지닌 신 대표의 브로드웨이 도전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드림걸즈’로 문을 두드렸지만 트라이아웃(시범공연) 단계에서 포기했다. ‘홀러 이프 야 히어 미’(2014)와 ‘닥터 지바고’(2015)는 진입엔 성공했지만 흥행에서 쓴 맛을 봤다.신 대표는 “브로드웨이는 냉정하다. 흥행이 저조하면 극장주가 바로 조기 중단시킬 수 있다”며 “개츠비는 이미 사전공연에서 흥행 기준인 ‘주당 매출 100만 달러(약 14억 원)’ 클럽에 들어 분위기가 좋다”고 자신했다.현지에서도 호평이 적지 않다. WP는 “재즈시대의 열광적 팬들과 파워스타인 에바 노블자다(데이지), 제레미 조던(개츠비)의 팬들이 벌써부터 줄을 서고 있다”고 전했다. NYT도 “로맨스와 코미디가 잘 어우러졌다”고 평가했다. 연출을 맡은 마크 브루니는 “화려한 볼거리와 파티, 기쁨 등이 음악과 무대 연출로 잘 융합되는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다만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가진 문학적 깊이를 다소 살리지 못했단 의견도 있다. NYT도 “개츠비의 비극적 서사는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현재 11살인 딸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롱런을 하는 것이 꿈”이라며 “조만간 미국 (전국) 투어에 나설 예정이며, 영국 진출에 대한 논의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나 홀로 질주’를 이어가던 미국 경제가 25일(현지 시간) 예상보다 저조한 1분기(1∼3월)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와중에 1분기 성장률 전망치가 큰 폭으로 떨어진 탓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경제가 강한 모습을 지속하고 있다”며 일시적 둔화라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날 미 채권시장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71%까지 올라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성장과 고물가가 겹치면서 11월 미 대선 전까지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장률 쇼크에 유가 102달러 전망 미 상무부는 이날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1.6% 증가(연율)했다고 밝혔다. 월가 전망치(2.4%)를 대폭 밑돌았을 뿐 아니라 지난해 4분기(3.4%)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 분기별 성장률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1, 2분기에 2개 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022년 3분기에 플러스(+)로 반등했고 이후 6개 분기 연속 2, 3%대 성장률을 이어갔지만 이번에 1%대로 떨어졌다. 1분기 소비 지출 또한 2.5% 증가하는 데 그쳐 지난해 4분기(3.3%)보다 낮았다. 미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가 주춤해진 것이다. 이 와중에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1분기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은 3.4%로 최근 1년 동안 가장 높았다. 지난해 4분기(1.8%)의 두 배에 가깝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값을 제외한 1분기 근원 PCE 물가지수 상승률 또한 3.7%로 시장 전망치(3.4%)를 웃돌았다. 26일(현지 시간) 발표된 3월 근원 PCE 물가지수도 전년 동월 대비 2.8% 올라 시장 전망치(2.7%)를 상회하는 등 미 물가에 적신호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중동전쟁의 장기화,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 등으로 유가 상승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같은 날 세계은행 또한 산유국이 몰려 있는 중동에서 추가 분쟁이 발생하면 현재 배럴당 80달러대인 국제 유가가 102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멀어지는 금리 인하 올해 초만 해도 연준이 연내 최소 6번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했던 월가는 많아야 한두 차례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예 “연내 금리 인하가 어렵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또한 “연준이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꿈이 멀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고조로 미 경제가 서서히 둔화할 것이란 ‘연착륙’(소프트랜딩·soft landing) 기대 또한 줄어들고 있다. 그 대신 ‘경착륙’(하드랜딩·hard landing)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11월 대선에서 겨룰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또한 경제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선 캠프 측은 성장률 발표 직후 “스태그플레이션이 확산되면서 열심히 일하는 미 중산층이 타격을 입고 있다”고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후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미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고 있다고 반박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 결정에서 주로 참고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지표가 3월에도 시장 전망치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끈적거리며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를 기미가 보이는 미국 인플레이션에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도 안개 속이 됐다. 미 상무부는 26일(현지시간) 3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2.8% 상승했다고 밝혔다. 근원 물가지수는 변동성이 큰 식품 및 에너지 가격을 제외해 산출한 물가지수를 말한다. 3월 근원 PCE 물가지수 상승률은 시장 전망치(2.7%)보다 높았고, 2월 지표와는 같았다. 식품과 에너지를 포함한 전체 헤드라인 PCE 물가지수도 전년 대비 2.7% 올라 전망치(2.6%)를 상회했다. 전월 대비로는 근원 PCE와 헤드라인 PCE 모두 0.3% 올랐다. 지난해 연준의 목표를 향해 하락하던 미국 인플레이션은 올해들어 3회 연속 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는 분위기다. 전날 1분기 근원 PCE 물가지수 상승률도 3.7%로 시장 전망(3.4%)를 크게 상회했다. 다만 전날 미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에 하락했던 뉴욕증시는 이날 새로운 인플레이션 지표에 크게 동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감 위축이 이미 가격에 평가된데다 전월대비 기준 상승률은 시장 전망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4.6%대로 떨어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정책 금리 선물 투자자들은 9월까지 금리가 떨어질 가능성을 약 60%로 평가하며 올해 두 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11월 5일 대선 전까지 금리 인하가 어려워 질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에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며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어려운 경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SK하이닉스가 1분기(1∼3월) 영업이익에서 시장 기대치보다 1조 원을 웃돈 ‘깜짝 실적’(어닝서프라이즈)을 달성하며 반도체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실적에서 발목을 잡았던 낸드플래시까지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반도체 봄’이 도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최근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세에 대한 보수적 시각이 제기된 데다, 스마트폰과 PC 등 범용제품에 대한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가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엔 시기상조라는 신중론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매출 12조4296억 원, 영업이익 2조8860억 원을 거뒀다고 25일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44% 늘었고 영업이익은 적자(―3조4023억 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전 분기 대비로는 각각 10%, 734% 늘었다. 특히 영업이익은 증권가 예상치(1조8551억 원)보다 1조309억 원(55.6%)이나 높았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7∼9월) D램에 이어 올해 1분기 낸드까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제품 판매량을 늘리고 수익성 중심 경영을 지속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적 호조의 배경은 AI 수요 증가에 따라 고대역폭메모리(HBM)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D램과 낸드 부문에서 고부가가치 메모리가 고르게 선방한 것이다. 특히 낸드 부문에 대해 업계와 증권가는 2분기(4∼6월) 흑자 전환을 예상했으나 시기를 앞당겼다. 회사 측은 “AI 서버에 활용되는 기업용 프리미엄 제품(eSSD·엔터프라이즈SSD)의 판매 비중이 특히 확대됐다”고 했다. 1분기 SK하이닉스 낸드 제품 평균 가격은 전 분기 대비 30% 이상 상승했다. D램 평균 가격이 20%대 오른 것보다 더 큰 상승 폭이다.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SK하이닉스가 보유하고 있던 재고 자산의 가치도 뛰어 9000억 원의 이익이 발생했다. SK하이닉스는 고부가 D램인 HBM 수요 증가에 대응해 5세대인 HBM3E 제품군 확대에 나선다고 밝혔다. 올 3월부터 업계 최초로 HBM3E 8단을 양산한 데 이어 내년 12단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상당수의 기존 고객, 잠재 고객과 함께 2025년 이후까지 장기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SK하이닉스는 늘어나는 D램 수요에 맞춰 충북 청주 ‘M15X’에 20조 원을 투입해 신규 D램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다만 반도체 업계가 메모리에 힘입어 회복세를 탔지만 아직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엔 이르다는 진단도 나온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최근 당초 약 20%로 잡았던 올해 파운드리 성장률을 최근 10% 중후반대로 조정했다. 웨이저자(魏哲家) TSMC 최고경영자(CEO)는 “거시경제 및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소비자 심리와 최종 반도체 수요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기업들의 투자 계획도 지연시키면서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은 1분기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내기도 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AI 중심으로 수요가 커지는 것은 맞지만 본격적인 회복기에 진입했다고 보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다”며 “미국 기준금리가 인하되고 실물경기가 활성화돼야 ‘슈퍼 사이클’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AI 성장세가 기대만큼 가파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4일(현지 시간) 시간외거래에서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 주가는 15% 이상 급락했다. 메타가 AI에 4조∼5조 원을 더 투자하겠다고 밝히자, 시장에서는 ‘돈 먹는 하마’ AI가 회사의 수익성을 희생할 만큼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날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다른 테크주들도 줄줄이 시간외거래에서 하락세를 나타냈다.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우리 미술관이 소장한 약 150만 점의 예술품 가운데 불법 취득된 작품이 없는지 샅샅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세계적인 박물관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도 불법 소장품 반환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막스 홀라인 메트 최고경영자(CEO·사진)는 24일(현지 시간) 외신기자단 간담회에서 “취득 과정에 문제가 있는 작품을 ‘고향’으로 반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방문객 약 600만 명이 찾는 메트는 미 최대 사립 미술관이자 세계 5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홀라인 관장은 “메트는 뉴욕에 있지만 미국만의 미술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인의 미술관”이라며 “세계 각지에서 온 작품이 밀수나 약탈 등과 같은 불법적 취득에 관여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홀라인 관장은 지난해 ‘문화재 이니셔티브’를 출범한 뒤 메트의 소장품 출처 감사팀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최근 기원전 2900∼기원전 2600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고대 수메르 남성 청동상을 이라크에 반환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메트 측은 “1955년부터 약 70년 동안 소장했던 유물”이라며 “출처 조사를 통해 이라크 문화재임을 확인해 주미 이라크대사관에 연락해 반환 절차를 밟았다”고 설명했다. 메트의 이런 노력은 최근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약탈 문화재 반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2010년 한국과 이집트, 그리스 등 약탈 피해를 입었던 20여 개국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공동 대응을 공표한 ‘카이로 선언’ 이후 서구 박물관들은 더 큰 반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1870년 설립된 메트는 유럽과 달리 식민지 유물 약탈 논란에선 다소 벗어나 있지만, 밀매조직 등과 연관된 작품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2022년 맨해튼 검찰은 메트 소장품 가운데 장물로 입증된 45점을 압수해 이집트와 튀르키예(터키) 등으로 반환하기도 했다. 홀라인 관장은 “‘세계의 미술관’으로서 각국 정부와 협력해 투명하게 취득한 ‘세계의 작품’을 관람객에게 선보일 것”이라며 “한국의 유명 작가 이불에게 건물 정면에 놓일 작품을 의뢰해둬 기대가 크다”고도 덧붙였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국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하회했지만 핵심 물가상승률은 예상보다 높아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제는 둔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25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1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6%로 시장 전망치(2.4%)를 크게 밑돌았다. 1분기 소비지출은 2.5% 증가로 전분기인 2023년 4분기(10~12월)의 3.3%에 비해 줄어들었다. 소비지출도 시장전망치(3.0%)보다 낮아 ‘나홀로 성장’, ‘노랜딩’ 별칭이 붙었던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뜨거운 미국 경제의 약세는 인플레이션 하락 기대감으로 연결돼야 하지만 이날 발표에서 물가상승률은 시장 전망을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상승률은 3.4% 올라 1년여 동안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물가지수’는 3.7%로 시장 전망치(3.4%)를 크게 웃돌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 물가상승률인 2%대를 크게 넘어서는 수치다.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약한데 물가상승률은 치솟자 증시와 채권 시장 모두 크게 흔들렸다. 미 상무부 발표 직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선물은 400포인트 이상 하락해 1.1%, 나스닥 지수 선물은 1.7% 가량 하락하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미뤄질 것이란 우려로 연준 금리에 민감한 2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5%를 넘어섰고,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4.7%를 돌파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우리 미술관이 소장한 약 150만 점의 예술품 가운데 불법 취득된 작품이 없는지 샅샅이 찾아보고 있습니다.”전 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세계적인 박물관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도 불법 소장품 반환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맥스 홀라인 메트 최고경영자(CEO)는 24일(현지 시간) 외신기자단 간담회에서 “취득 과정에 문제가 있는 작품을 ‘고향’으로 반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설명했다. ● 뉴욕 메트 “투명하게 취득한 작품만 전시할 것”해마다 방문객 약 600만 명이 찾는 메트는 미 최대 사립 미술관이자 세계 5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홀라인 관장은 “메트는 뉴욕에 있지만 미국만의 미술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인의 미술관”이라며 “세계 각지에서 온 작품이 밀수나 약탈 등과 같은 불법적 취득에 관여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홀라인 관장은 지난해 ‘문화재 이니셔티브’를 출범한 뒤 메트의 소장품 출처 감사팀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최근 기원전 2900~2600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고대 수메르 남성 청동상을 이라크에 반환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메트 측은 “1955년부터 70여 년 동안 소장했던 유물”이라며 “출처 조사를 통해 이라크 문화재임을 확인해 주미 이라크대사관에 연락해 반환 절차를 밟았다”고 설명했다. 밀매조직 등과 연관된 작품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2022년 맨해튼 검찰은 메트 소장품 가운데 장물이 입증된 45점을 압수해 이집트와 터키 등으로 반환하기도 했다.홀라인 관장은 “‘세계의 미술관’으로서 각국 정부와 협력해 투명하게 취득한 ‘세계의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일 것”이라며 “한국의 유명 작가 이불에게 건물 정면에 놓일 작품을 의뢰해둬 기대가 크다”고도 덧붙였다. ● 반환 사례 나오고 있지만 아직 갈 길 멀어메트의 이런 노력은 최근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약탈 문화재 반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비교적 최근인 1870년 민간 미술관으로 설립된 메트보다 역사가 긴 유럽의 저명 박물관들은 식민지 유물 약탈 과거까지 더해져 문제가 더 크다. 19~20세기 제국주의가 한창일 때 서구 열강이 전세계에서 도굴해갔던 문화재 중 상당수가 영국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독일 신(Neues)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 약탈의 최대 피해국으로 꼽히는 이집트의 가장 대표적 약탈품들인 덴데라 신전의 천궁도, 로제타스톤, 네페르티티 흉상도 각각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박물관, 독일 신박물관에 있다. 그러다 2010년 한국과 이집트, 그리스 등 약탈 피해를 입었던 20여 개국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공동 대응을 공표한 ‘카이로 선언’ 이후 서구 박물관들은 본격적인 반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반환 문제가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그리스-영국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19세기 영국이 그리스 신전에서 뜯어가 영국박물관에 전시 중인 ‘파르테논 마블스’의 반환을 촉구하자,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돌연 회담을 취소해버린 것이다.하지만 약탈국들이 자발적으로 반환하지 않는 한 소송으로 반환 받기란 쉽지 않다. 구속력 있는 국제법이 마땅치 않은 데다가 역사적 혼란기에 ‘거래’가 아닌 불법으로 반출됐음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메트처럼 자발적 반환 사례도 늘고 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과거 식민지배 역사를 사죄하며 2022년 베를린 민속박물관에 있던 탄자니아의 고대 유물들을 영구 임대 형식으로 반환했다. 국제정세의 변화도 반환 움직임을 촉발하는 배경으로 제시된다. 옛날에야 피약탈국의 열악한 보존 환경을 내세워 서구 열강들이 반환을 거부했지만, 이들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루브르박물관 등에 있는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을 추진 중인데, 최근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이 커지자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개선해 이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다만 2일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박물관은 현재 4개 국가와 반환을 논의 중이라면서도 대표적 문화재인 로제타스톤은 논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 등, 정작 주목도가 높은 유물의 자발적 반환은 아직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가 시장 전망을 뛰어넘는 1분기(1~3월) ‘어닝 서프라이즈’를 발표했지만 인공지능(AI)에 4~5조 원 더 투자하겠다고 밝혔다가 시간외거래에서 15% 이상 주가가 급락했다. 반도체 하나에 수 천 만원, 데이터 센터 설립에 수 십 조 원이 드는 ‘돈 먹는 하마’ AI가 회사의 수익성을 희생할만큼 지속가능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24일(현지시간) 메타는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27% 증가한 365억 달러로 시장 전망치(362억 달러)를 상회했다고 밝혔다. 순이익도 124억 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117% 급등했다.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강화 이후 위축됐던 메타의 광고 매출이 다시 순항하고 있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문제는 AI 투자비였다. 메타는 “AI 로드맵을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적으로 가속화할 것”이라며 연간 자본 지출 가이던스를 300~370억 달러에서 350~4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상한선 기준 30억 달러(4조 원) 가량을 데이터센터 구축과 같은 AI투자에 더 쓰겠다는 의미다. 수익성에 비해 수십조 원 투자가 과도하다고 느낀 투자자들은 메타 실적발표 이후 메타에서 발을 빼기 시작해 이날 시간왜 거래에서 메타의 주가는 15.13% 떨어졌다. 시가총액 수십조 원이 사라진 것이다. 마크 저커버거 최고경영자(CEO)는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앞으로 몇 년 동안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통해 더욱 발전된 모델과 세계 최대 규모의 AI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며 “새로운 (AI) 상품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전에 의미 있게 이뤄져야할 투자”라고 투자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선도적인 AI를 구축하는 것은 과거 다른 작업에 비해 크고, 수 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돈은 많이 들겠지만 실제 수익까지 오래 걸릴 것이란 의미라 시장의 AI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래 기술 베팅이 결국 투자자들에게 보상으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날 실적을 발표한 테슬라도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 25억 달러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전년 대비 600% 이상 감소한 것이다.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영업을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투자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챗GPT 열풍 이후 메타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수십조 원을 AI 인프라를 위한 데이터센터 구축에 쏟아부었고, 엔비디아나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스타가 되는 계기가 됐다. AI 투자 열풍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속에도 세계 증시 랠리를 이끈 주역이었다. 하지만 메타발 AI 투자 우려에 2분기 매출 가이던스가 365억 달러∼390억 달러로 시장전망치(중간값 383억 달러)를 하회해 테크 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날 구글 모회사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등 테크주들이 줄줄이 시간외 거래에서 하락세를 보였다. 이후 개장한 한국 증시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들도 이 2, 3% 안팎으로 하락 중이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순익 반토막’ 어닝쇼크 테슬라 “내년초 저가 전기차 출시”전기차의 상징인 테슬라의 올 1분기(1∼3월)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55% 급감했다. 1분기 매출 또한 9% 줄었다. 중국산(産) 저가 전기차의 공세로 테슬라의 수익성이 악화된 데 따른 것이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23일 “2025년 초 (저가) 차량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테슬라까지 가세하며 전기차 저가 경쟁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1분기(1∼3월)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5% 줄었다고 23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1분기 매출은 213억100만 달러(약 29조30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생산라인이 타격을 입었던 2020년 2분기 이후 처음이자 2012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잉여현금흐름도 약 25억 달러 마이너스였다. 다만 ‘어닝 쇼크’의 실적에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25년 초에 (저가) 차량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저가 모델로 매출을 끌어올리고,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으로 미래로 달려가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13.3% 급등했다. 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전기차 경쟁이 격화할 것이라는 기대에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2차전지 기업의 주가도 상승했다.● “테슬라의 성패를 가르는 순간” 테슬라의 실적 부진은 앞서 발표된 테슬라 차량 인도 물량 감소로 예견돼 왔다. 머스크 CEO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세계적인 전기차 수요 둔화와 독일 공장의 생산 중단 사태 등을 언급하며 “예상치 못한 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도 미 워싱턴포스트(WP)에 “지금은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 전기차 시장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고전 중인 테슬라의 ‘성패를 가르는 순간’”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머스크 CEO는 제너럴모터스(GM) 등 전통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찬바람’에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에 대해선 “올바른 전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테슬라가 실적 보도자료에서 “더 저렴한 모델을 포함한 신차 라인의 생산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머스크 CEO는 “2025년 초에는 (저가) 차량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앞서 2만5000달러(약 3400만 원)짜리 저가 전기차인 ‘모델2’ 출시 계획이 무산됐다는 보도를 머스크 CEO가 직접 나서 부인한 것이다. 현재 테슬라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3’ 가격은 3만9000달러 수준이다. 머스크 CEO의 저가 모델 생산에 대한 발언 이후 시간외거래에서 테슬라 주가 상승 폭은 커졌다. 시장은 저가 모델이 테슬라 수익 둔화의 돌파구가 되고, 전기차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 “저가 전기차 경쟁 격화될 것”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기차 저가 경쟁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심화되는 와중에 전기차 업체들이 가격 할인을 통해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저가형 차량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는 것도 저가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중국 비야디(BYD)는 지난해 시작가가 1만 달러에 불과한 전기차인 ‘시걸’을 내놨다. 중국의 전기차 회사 샤오펑 역시 저가형 브랜드를 출범해 현재 판매 가격(20만∼30만 위안)의 절반 수준인 보급형 차량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 속에 기아도 상반기(1∼6월) 중 3000만 원대로 예상되는 소형 전기차인 ‘EV3’를 출시하고, 현대자동차는 올 하반기(7∼12월)에 2000만 원대 경형 전기차인 ‘캐스퍼EV’를 내놔 보급형 전기차 경쟁에 뛰어든다. 테슬라의 내년 저가 모델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머스크 CEO는 이날 “테슬라는 인공지능(AI) 로보틱스 기업”이라며 전기차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자율주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은 테슬라의 투자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테슬라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올해 말에 생산 현장에 투입하고 내년에는 외부에 판매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테슬라는 그간 옵티머스가 커피를 끓이고 요가를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공개한 바 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한재희 기자 hee@donga.com}
“밀리지 마세요. 자기 자리를 지키세요!” “뉴욕대 학생 여러분, 해산하길 바랍니다.” 어느 한쪽 물러서지 않는 대치는 결국 충돌로 이어졌다. 22일 오후 9시경 미국 뉴욕 맨해튼 워싱턴스퀘어 인근 뉴욕대(NYU).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을 외치던 학생 수백 명이 경찰과 맞서다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진압에 나선 경찰이 일부 학생들을 연행하자 학생들은 더욱 거세게 저항하며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이날 시위는 NBC 등 미 주요 방송들도 생중계하며 심각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 발발 이후 미 대학가가 반(反)유대주의 논쟁을 촉발시킨 데 이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의 무대가 되고 있다. 18일 컬럼비아대에서 시위대 108명이 경찰에 체포된 뒤 대학 시위는 미 전역으로 거세게 번지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유대주의를 경계한다”는 성명과 함께 차분한 대응을 요청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인 젊은층이 등을 돌리고 있어 집권 민주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찰 강경 진압에 격해지는 시위대 이날 오전 미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경찰은 “예일대에서 시위대 60여 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컬럼비아대 시위대 체포 4일 만이다. 이들은 19일부터 예일대 총장실 인근 바이니키광장에 텐트를 치고 농성 중이었다. 피터 샐러베이 예일대 총장은 성명을 통해 “대학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위대 체포를 허용했다”며 “예일대는 유대인, 무슬림 및 기타 커뮤니티 구성원을 위협하거나 괴롭히는 모든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예일대 캠퍼스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연행한 건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강경 대응은 오히려 시위 확산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시위에 참여한 법대생 말라크 아파네는 뉴욕타임스(NYT)에 “컬럼비아대 학생들의 용기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대학들도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컬럼비아대는 유대인 명절 ‘유월절’ 첫날인 22일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유월절을 맞아 거리로 나온 양측 지지 세력이 자칫 심각한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버드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중앙 광장인 ‘하버드 야드(Yard)’의 출입을 26일까지 통제했다. 해당 구역에서 사전 허가 없이는 텐트 등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도 금지했다. 지난주 서던캘리포니아대(USC)는 다음 달 예정됐던 졸업생 대표의 연설을 취소했다. 친이스라엘 단체들이 “해당 학생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무슬림”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탓이다.● 등돌리는 2030… 美 대선 변수로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대학가에 들불처럼 일어나는 시위는 난감한 문제다. 한쪽을 편들 수도 없거니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무작정 비난하기도 곤란하다. 게다가 젊은 세대들이 이런 정부의 태도를 이스라엘 편향적이라고 보는 건 다가올 대선에 심각한 악재가 될 수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응답자의 바이든 대통령 지지는 29%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26%)보다 불과 3%포인트 앞섰다. 미 뉴욕에 사는 프레드 맥널티 씨(30)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진보 성향인 젊은 세대에게 중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며 “부모 세대와 달리 우린 세계대전이나 나치에 대한 기억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압박이 더 생생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컬럼비아대 대학원생도 “이스라엘에 대한 찬반과 별개로, 경찰이 대학 캠퍼스에 진입해 학생들을 끌고 가는 장면은 너무나 충격적”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이스라엘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주말마다 이래요. 사람이 몰려서 빠져나가기도 힘들어요.” 2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 노스 6번가에서 만난 택시기사 후메이얀 씨(27)는 툴툴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량들이 한꺼번에 몰려 한 블록도 움직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최근 브루클린에서 가장 ‘힙’한 곳 중 하나로 꼽히는 ‘윌리엄스버그’ 지역이다. 윌리엄스버그는 이스트강을 사이에 두고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와 마주 보고 있는 브루클린 동네다. 20세기 초엔 공장지대였고, 1990년대는 할렘과 함께 대표적 우범지역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젠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세련된 상점들이 즐비해 뉴욕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이날 방문한 이스트강에서 노스 6번가로 이어지는 중심가는 평소처럼 젊은이들로 크게 붐볐다. 나이키, 코스 같은 글로벌 의류브랜드부터 르 라보, 바이레도, 샤넬뷰티 등 명품 뷰티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가득했다. 마치 맨해튼의 소호 지역을 옮겨 놓은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특히 현지에선 최근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상륙이 윌리엄스버그 대변신에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6년 플래그십 매장 개장을 목표로 노스 6번가에 부지를 마련한 에르메스는 최근 인근에 임시 매장을 열어 뉴요커들의 관심을 모았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를 두고 “뉴욕에서 낙후 지역 활성화의 대표 사례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규제 푼 윌리엄스버그의 변신 “창의적인 예술가들은 원래 소호에 살았어. 그런데 너무 비싸져서 트라이베카로 옮겼고, 트라이베카가 비싸지니 브루클린으로 이동했지. 아마 다음은 부모님 집일 거야.”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20년)에서 주인공 개츠비(티모테 샬라메)는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재치 있게 꼬집었다. 비싼 임대료 탓에 터전을 잃어가는 청년들의 설움은 뉴욕이나 서울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엄스버그가 주목받은 것도 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었다. 맨해튼에서 밀려난 이들이 유입되며 동네 분위기가 차츰 변해갔다. 과거 번성했던 설탕이나 우산, 섬유 공장이 문을 닫으며 버려진 건물들에, 싼 임대료를 찾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생기를 찾았다. 결정적 변신의 계기는 2005년에 찾아왔다.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이 지역의 용도변경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브루클린에서 퀸스에 이르는 이스트강 강변 지대는 원래 산업용도로 묶여 있었으나, 고질적 주택난 해소 및 새로운 산업 유치를 위해 규제를 풀어버렸다. 블룸버그 시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금싸라기 땅인데도 오랫동안 버려졌던 이곳을 쓰레기장이나 발전소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즐기고 일하는 지역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뉴욕시는 이스트강 강변지대를 주거 및 상업 용도로 전환하고, 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에 세액 공제와 인프라 건설 같은 지원을 제공했다. 특히 아파트의 30% 가구 안팎을 저소득층을 위한 장기 임대로 구성하면 고도 제한까지 풀어 30∼50여 층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심지어 25년 세액공제 혜택도 제공했다. 장기임대 가구의 확보는 기존에 거주하던 저소득층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파격적 지원 덕에 윌리엄스버그부터 북쪽 그린포인트, 퀸스 롱아일랜드시티 등은 2010년 전후로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시는 공원과 공공 예술에 투자해 강변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놨다. 19세기 말 지어졌던 ‘도미노 설탕 공장’은 최신 오피스 빌딩으로 전환됐고, 젊은 중상층 거주자들이 늘어나 소매점들도 덩달아 증가했다. 2017년엔 이스트강을 다니는 수상버스 ‘NYC 페리’도 도입했다. 앤드루 킴벌 뉴욕시 경제개발공사(NYCEDC)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구역 재조정, 세액공제를 통한 대규모 주거개발, 수상 대중교통 도입 등으로 뉴욕 이스트강 강변지대는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탈바꿈했다”고 설명했다.●“도시 개발의 핵심은 대학” 뉴욕 강변 개발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17일 찾은 맨해튼 남쪽 섬 거버너스아일랜드 역시 새로운 변신을 기다리고 있다. 강물과 대서양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면적 약 70만 ㎡의 섬으로 월가에서 남쪽으로 800여 m 떨어져 있다. 여의도의 약 25% 크기인 이곳은 남북전쟁 시절 남부군 감옥이 있었으며, 18세기 이후 미 군부대가 주둔하던 미개발 지역이다. 현장에서 만난 새러 크라우트하임 거버너스아일랜드재단 부대표는 페리 선착장 쪽을 가리키며 “4년 뒤 여기에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대학과 연구센터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방정부로부터 섬의 관리를 위임받았을 때, 주거 용도로는 개발하지 못하는 조건이 있었다”며 “거주민이 없어 실험적 연구가 가능한 점을 이용해 세계적인 기후변화 연구 허브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은 월가에서 가깝긴 해도 사실상 버려진 섬이던 거버너스아일랜드를 두고 뉴욕시와 NYCEDC, 거버너스아일랜드재단 등은 10년 넘게 고민했다. 결국 브루클린이나 퀸스 강변은 주거단지로, 이 섬은 미래 산업 연구의 전초기지로 만들기로 결론 내렸다. 킴벌 CEO는 “도시가 계속해서 살아 있으려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며 “미래의 일자리인 ‘그린 테크’ 분야를 뉴욕에 유치하는 게 가장 전망이 높다는 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뉴욕시는 세계 주요 대학들에 기후변화연구센터 제안서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전했다. 50여 개 대학이 관심을 보였고 지난해 스토니브룩대와 조지아공대, 듀크대, IBM 등이 참여하는 산학연합 스토니브룩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무려 7억 달러(약 9646억 원) 이상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섬에선 이미 기후변화 관련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연안에서 굴을 키워보는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현장에서 만난 헬렌 헤트릭 커뮤니케이션담당 국장이 연안 부두에 걸린 밧줄을 끌어올리자 작은 우리 안에 진흙과 굴이 얽혀 있는 게 보였다. 헤트릭 국장은 “뉴욕 굴요리 레스토랑에서 수백만 개의 껍데기를 가져와 굴이 자라도록 키우고 있다”며 “굴은 바다 오염을 정화하는 필터 역할을 하는 데다 자연재해도 막아주며 해양 생태계의 다양성을 복원시키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뉴욕은 거버너스아일랜드 개발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과거 이스트강의 또 다른 섬 루스벨트아일랜드 개발에 성공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로 미 월가가 초토화되자, 당시 막 부상하고 있던 ‘실리콘밸리’를 뉴욕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스타트업과 신기술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스탠퍼드대처럼, 코넬공대를 루스벨트아일랜드로 유치해 뉴욕 테크 산업의 허브로 키워냈다. 뉴욕시는 ‘기후 익스체인지’로 불릴 거버너스아일랜드의 새 캠퍼스도 22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연간 대학생 600명과 직업 훈련생 6000여 명, 교수진 250여 명이 상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