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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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4-10-23~20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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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회, 장터, 가드닝 클래스…한국의 정원문화 싹을 본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몇 년 전 유럽에 살 때, 아이들과 정원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시싱허스트캐슬가든이나 그레이트딕스터가든 같은 유명 정원들도 다녔다. 그런데 정작 부러운 건 따로 있었다. 생활 속에서 누리는 정원이었다. 마을 곳곳의 가든센터에서 씨앗과 화분, 가드닝 용품을 고르는 그들의 ‘정원문화’에는 편안하게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배어있었다. 아파트가 도시의 주거형태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정원생활을 한다는 건 일부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얘기일까. 경기 용인시 처인구 ‘정원생활바이오랑쥬리’를 가보고 나서 국내에서도 정원문화가 싹트고 있음을 느꼈다. 영국 리틀 칼리지에서 정원 디자인을 공부하고 서튼플레이스가든에서 일했던 전문 정원가 주례민 대표(43)가 이끄는 가든센터다. 800평 규모의 정원과 묘목농장을 갖춘 정원생활바이오랑쥬리는 단순한 식물 매장이 아니다. 그 행보가 문화적이다. ‘음악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유리온실 안에서 클래식 공연을 열고, 전국의 솜씨 좋은 수공예인들을 불러모아 가든마켓’도 연다. 제주의 자연주의 패션, 천연발효 빵, 희귀식물, 수제 그릇, 퀼트 가방 등 정원생활에 어울리는 제품들이 햇살 좋은 야외정원에 펼쳐진다. 왜 그런일들을 할까. “식물을 키우든 키우지 않든 좋은 기억으로 저희 공간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공간과 식물에 대한 좋은 기억이 집 안에 작은 정원이라도 가꾸는 정원생활로 이어졌으면 해요. 아이들이 찾아와 벌과 나비를 볼 수 있는 ‘정원 경험’을 주고 싶어요. 국내 대학에서 원예학과를 나온 저는 영국에 정원 공부를 하러 가서야 ‘삶에 스며드는 정원’을 알게 됐거든요.”‘음악소풍’이라는 이름의 정원 음악회는 학창시절 플룻을 연주했던 주 대표의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정원과 음악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낼까.’ 프랑스 마을들이 와이너리에서 음악회를 열 듯, 영국에서는 가든센터에서 각종 공연이 열린다. 한국에는 아직 ‘가든센터’라는 이름도 낯설지만 30, 40대들이 주로 찾아와 식물과 호흡하며 클래식 공연을 감상한다. 2013년 제1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실내정원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이니스프리’ 플래그십스토어 등 기업체와 주택들의 식재 등을 담당해온 주 대표는 말한다. “바쁜 현대인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명상을 수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생활 속에서 머리를 비우고 집중하는 데 식물이 도움이 돼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요. 그런 식물의 위로는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자연을 위한 것이기도 하죠. 우리 집 정원을 가꾸면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고요. 정원에서 음악회를 열어보니 공연장보다 편안한 느낌이라 그런지 연주자와 관객 간 소통이 훨씬 잘 이뤄지는 것 같았어요.” 이 곳의 정원은 누구든 찾아와 천천히 거닐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계절 식물을 활용한 가드닝 클래스와 워크숍도 마련돼 있다. ‘널서리 위크’(Nursery week)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행사에서는 계절에 맞춰 곁에 둘 식물을 구할 수 있다. 가을을 맞는 정원에는 어떤 식물이 어울릴까. “지금 심어서 올해 가을과 내년 봄을 즐길 수 있는 식물을 추천드려요. 큰잎꿩의비름 ‘스타더스트’와 ‘오텀조이’는 가을 정원을 풍성하게 만들어줘요. 보라색 꽃이 층층 피어나는 층꽃나무는 생장 속도가 빠르고요. 쑥부쟁이와 등골나무, 누린내풀 ‘스노우페어리’는 정원에 존재감 있는 포인트를 줍니다.” 정원 카페를 겸한 이곳에는 단정한 디자인의 호미와 정전 가위, 꽃과 과일이 그려진 티 타월과 머그컵,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들이 있다. 층고가 높은 유리온실에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배경음악과 식물이 어우러져 언젠가는 정원을 가꿔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인스타그램에서는 1만2000명의 팔로워들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정원의 소식과 문화를 접한다. 식물을 대량으로 팔지만 라이프스타일로는 접근하지 않았던 한국의 화훼공판장들이 참고할만한 지점이다. 주 대표가 생각하는 정원 생활이란 뭘까.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차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정원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손바닥만한 정원이든, 바질을 키우는 아파트 베란다든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곧 ‘시크릿가든’이니까요. 정원 일은 고된 노동으로 하지 말고 내가 즐길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기왕이면 예쁜 앞치마와 장화 차림으로 일하다가 꽃 몇 송이 꺾어 병에 담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세요. 정원이 없다고요? 집 근처 정원이나 공원에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걷다가 가만히 앉아보세요. 중요한 건 일상에서 정원을 즐기는 마음이니까요.” 우리가 ‘정원문화’라고 불러주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정원문화가 있었다. 땅만 있으면 메리골드나 채송화를 심은 미학의 민족이 한국인이다. 텃밭에 상추나 고추를 심고 이웃과 나눈 문화는 유럽의 ‘키친 가든’ 문화에 뒤지지 않는다. 흙을 밟지 않고 디지털 기기와 한 몸으로 자란 지금 세대에게야말로 식물의 위로가 필요한 건 아닐까. 주 대표는 말한다. “일에 지치고 마음이 힘들 때 화단의 잡초를 뽑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정원 속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영국에서 일할 때, 중장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부부들이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정원이 제게 준 선물은 ‘자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런 행복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주례민 대표가 전하는 ‘스몰 가드닝’ 팁1. 나무 재질의 와인 박스를 활용하라. 물이 잘 빠지도록 배수판과 난석을 충분히 깐 뒤 채소를 심으면 빈티지한 느낌의 샐러드 채소 가든이 된다.2. 다육식물은 모아 심어라.다육식물은 돌로 만든 화분과 잘 어울린다. 다육식물 몇 개를 둥그런 돌 화기에 심고 자갈과 가는 모래를 더하면 미니 암석원이 만들어진다.3. 식물이 모여 사는 화단을 만들어라.야외정원이 있다면 한곳에 장소를 정해 식물을 모아 심어라. 목재나 벽돌 등으로 화단을 구분하라. 힘들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면적만 정원으로 가꾸면 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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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민병갈 천리포수목원장님에게 보내는 계절 편지[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민병갈 원장님. 선생님이 여든한 살 나이로 하늘나라 가시고 어느덧 21년이 흘렀네요. 달력이 9월을 말하기 시작할 때, 원장님이 생전에 정성껏 가꾸신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연못의 수련이 별처럼 빛나는 입구 정원부터 꿈결이 펼쳐졌어요. 햇빛에 반짝이는 노란색과 오렌지색 상사화, 에메랄드그린 색의 부탄 소나무, 지는 모습이 격조 있는 수국, 손등을 스치는 바람과 새 소리….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의 감각들이 피어나고 있었어요. 두 계절의 식물을 만날 수 있는 간절기의 축복이죠. 원장님 동상 옆에 가만히 앉아보았습니다. 원장님, 정말 고마워요. 한국으로 귀화해 이 땅에 묻힌 첫 서양인으로서 우리 국민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남겨주셔서요. 살아갈 힘이 필요할 때 누구든 찾아올 수 있는 정원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게다가 바다와 숲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정원이라니요. 천리포 해변과 접한 수목원 내 어린이정원에는 지금 팜파스 그라스가 활짝 폈어요. 깃털 모양의 풍성한 이삭이 초가을 바람에 살랑살랑…. 그런데 참, 이상해요. 원장님. 천리포수목원에서는 발걸음도 생각도 속도가 늦춰져요. 안단테(andante), 안단테~. 원장님은 천리포수목원에 두 개의 연못 정원을 만드셨죠. 빅토리아 수련이 가득한 큰 연못 정원과 낙우송이 물속에 심어진 작은 연못 정원. 저는 이곳에서 미국 여류시인 메리 올리버(1935~2019)의 시들을 떠올렸어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소도시 프로빈스타운에서 날마다 숲과 바닷가를 거닐던 그녀가 풀어냈던 풍경들과 닮았기 때문인가 봐요. ‘그레이트 연못에 해 떠오르네/오렌지빛 가슴 무성한 소나무에 긁혀, (중략) 한편 내 주위에선 수련이 다시 피어나네.’ (메리 올리버, ‘그레이트 연못에서’ 중) 그녀가 생전에 원장님과 인연이 닿아 ‘천리포의 그레이트 연못’에 와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곳에서 ‘서쪽 바람’과 ‘천 개의 아침’을 맞았다면 어땠을까요(‘서쪽 바람’과 ‘천 개의 아침’은 메리 올리버의 시 제목이에요).<아침 산책> -메리 올리버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그저 속삭일 수밖에 없는 말들.아니면 노래할 수밖에 없는 말들.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뱀은 뱅글뱅글 돌고비버는 연못 위에서 꼬리를 친다.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황금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 끌어안는다.아니면 예쁜 연필과 노트를 꺼내감동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천리포수목원에서 보낸 한나절이 왜 그토록 꿈결 같았나, 곰곰이 복기해보았습니다. 감사와 감동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24세 장교로 인천에 첫발을 디뎠던 원장님은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였죠. 한국의 매력에 이끌려 1950년대부터 한국은행에서 일하다가 1970년대에 천리포수목원을 일구고 한국인으로 귀화했죠. 수목원 내 민병갈 기념관에 쓰여있는 원장님 말씀에 뭉클해졌습니다. “내가 수목원을 개발하기로 결심한 동기는 한국의 어디에도 수목원이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수목원 개발 및 조성이 나를 키워준 나라 한국에 가치 있는 일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맞아요. 원장님. 한국의 국립 광릉수목원은 1987년에야 문을 연 걸요. 18만 평 천리포수목원(2만 평만 개방 중)에는 1만6862종의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식물 종을 보유한 수목원이죠. 원장님이 1978년부터 세계의 저명한 수목원들과 잉여 종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수종을 확보한 덕이지요. 목련나무, 감탕나무, 동백나무, 무궁화나무, 단풍나무….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자랑스런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들입니다.천리포수목원에는 사람으로 치자면 X세대 나무들이 살고 있더라고요. 원장님이 천리포에서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게 1970년, 천리포수목원 재단법인 등록을 마친 게 1979년입니다. 씨앗부터 키운 나무들이 지금 울창한 숲을 이뤘습니다. ‘나알못’(나무를 알지 못하는) 금융인이었던 원장님이 50세에 나무 심는 일을 시작해 자나 깨나 나무 공부를 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습니다. 50세에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고 50세 X세대에게 희망을 주시는군요.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 가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정원사> -메리 올리버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그런 말을 해, 아니 어쩌면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사실, 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러곤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지,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정원사가 그의 자식들인 장미를 돌보고 있는.수목원 서해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다정한 느낌이었습니다. 하루 두 번 물길이 열리면 닿을 수 있다는 초록빛 낭새섬 때문이었을까요. 닭섬으로 불렸던 이 섬을 원장님은 천리포수목원으로 편입시키고 낭새섬이라고 고쳐 불렀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닭을 잡아 생계를 잇느라 닭이라면 지긋지긋하셨다고요. 우리 자생식물이 심어진 이곳에 과거 살았다는 낭새(바다직박구리)가 다시 날아든다면 원장님이 하늘에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천천히 수목원을 거닐다 보면 원장님은 진정한 자연주의 정원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목원 조성 전부터 있던 논을 정원의 한 요소로 남겨두셨죠. 잔잔한 논 풍경이 다른 식물들을 돋보이게 하는 ‘주연 같은 조연’, ‘조연 같은 주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원장님은 수목원이 ‘식물들의 피난처’라며 관상을 위해 인위적으로 가지를 치지 말라고 하셨죠. 그래서인지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들에서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품격이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국제수목학회, 2000년)이라는 찬사가 그래서 나왔나 봐요. 연못가의 울창한 ‘닛사’ 나무도 기억에 남습니다. 가지들을 풍성하게 아래로 늘어뜨려 안쪽에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마음 넉넉한 친구 같더라고요. 텐트를 친 모양새라 ‘텐트 트리’로도 불린다지요. 작은 묘목이 이렇게 거목으로 자라났습니다. 우리 삶도 이렇게 성장하고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아늑한 그늘을 만들어줄까요. 천리포수목원을 나서면서는 플랜트센터에서 작은 완도호랑가시나무 화분을 샀습니다. 원장님이 전남 완도에서 1979년 발견해 국제식물학회에 발표했던 바로 그 나무요. 크리스마스트리에도, 구세군의 상징인 ‘사랑의 열매’에도 사용되는 이 나무는 원장님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공익재단 형태의 사립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이 어떻게 유지 계승돼야 하는지 문득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원장님이 떠나신 지 21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래의 정원을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원장님과 함께 일했던 두 분의 말씀을 전합니다. “민 원장은 엄청난 수집가이자 기록광이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자료가 후대에 유익하게 쓰일 수 있도록 박물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진국처럼 기업 후원이 뒷받침돼주면 좋겠다.”(임준수 천리포수목원 감사)“미국 롱우드 가든과 영국 웨슬리 가든에서 교육받을 때 민 원장을 처음 만났다. 천리포수목원에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10년을 일하면서 그로부터 식물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민 원장처럼 정원과 식물을 사랑하는 ‘가슴’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그 점에서 아직 미흡하다.” (송기훈 미산식물원 대표) 저는 가을이 무르익을 때 천리포수목원에 다시 찾아가려고 합니다.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후 수목원 내 ‘가든 스테이’를 예약해놓았습니다. 바닷가 수목원 안 한옥이나 초가에서 노을을 감상하고, 손전등을 들고 밤의 정원을 거닌 뒤 다음 날 아침이슬 맺힌 정원을 고요하게 둘러보는 일만큼 최고의 호사가 또 있을까요. 원장님이 제2의 고국인 한국에 남기고 싶었던 선물도 ‘정원과 함께 하는 생활’ 아니었을까요. 내년 봄 목련이 가득 필 무렵에도 가겠습니다. 각별히 아끼셨다는 ‘라스베리 펀’ 목련, 딸기에 크림을 얹은 색 같다며 ‘스트로베리 크림’이라고 이름 붙이신 목련도 보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천리포는 계절마다 가봐야 한다고 말하나 봅니다. 천리포수목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원장님. 민병갈 천리포수목원장(1921~2002)의 인연들1. 장기영 전 한국은행 부총재(1916~1977)한국은행 직장 후배인 민병갈 원장에게 자신의 만리포 별장을 수시로 내주었다. 민 원장은 이 별장을 드나들다가 지금의 천리포수목원 부지를 구입했다. 그동안 알려지기로는 지역 토박이인 한 노인이 딸 시집을 보낼 돈이 필요하다며 민 원장에게 수목원 부지를 사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준수 천리포수목원 감사는 최근 기자를 만나 “땅을 팔았던 노인의 손녀가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그런 딸이 없다고 하더라. 당시 미국인 잡지 기자가 지어낸 얘기 같다”고 했다. 진짜 사연은 하늘의 민 원장이 아실텐데.2. 민병도 전 한국은행 총재(1916~2006)민 원장은 한국은행에서 만난 민 전 총재와 의형제를 맺고 자신의 한국 이름을 ‘민병갈’이라고 지었다. 이름의 마지막 ‘갈’은 영어 이름 ‘칼’을 바꾼 것이다.3. 서성환 태평양그룹(현 아모레퍼시픽그룹) 창업자(1924~2003)1970년대부터 약용 식물로 한방 화장품을 개발하면서 민 원장과 가까워져 1979년 천리포수목원의 초대 재단 이사를 맡았다. 아모레퍼시픽이 제주도 황무지를 오설록 다원으로 일군 데에는 민 원장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친구끼리 선한 영향을 주고받은 모습이 수목원의 나무들을 떠올리게 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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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땅에 쓰는 시’[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그는 대한민국 땅에 시를 쓴다. 고속 성장을 위해 달려온 도시 풍경에 느릿한 휘파람 같은 자연의 풍광과 소리를 담는다. 반세기 넘게 역사적 장소들의 조경을 맡아온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82). 서울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서울식물원,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 크리스찬 디올 성수 콘셉트 스토어,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희원, 남양주시 다산생태공원…. 정영선 조경가의 궤적은 곧 대한민국 조경의 역사다. 국내 조경학계와 업계의 거목이지만 대중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정영선 조경가의 삶을 조망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최근 선보였다. 제20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땅에 쓰는 시’(감독 정다운)다. 내년 봄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영화제 기간인 26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상영됐다. 정영선 조경가는 “조경은 꽃과 나무를 심는 차원이 아니다. 남길 것은 잘 남기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한국적 경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한다. ●80대에도 현역인 ‘할머니’ 조경가대한민국의 조경 역사는 1972년을 출발점으로 잡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경제수석비서실에 조경·건설 담당 비서관직을 신설하고 한양대 건축학과 출신의 재미(在美) 조경가 오휘영 씨를 그 자리에 임명했다.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정책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훼손된 국토를 정비하기 위해서였다. 오 비서관은 조경전문인 육성이 시급하다고 봤다. 그의 건의에 따라 서울대와 영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이 제1회 조경학과 신입생을 모집한 때가 1973년 3월이다. 정영선 조경가는 이렇게 설립된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의 제1호 졸업생(1975년)이자 1980년 한국 1호 국토개발기술사를 획득한 최초의 여성 기술사다. 1984년 아시안게임 기념공원과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예술의전당 현상설계 공모에서 당선되면서 그의 조경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환경조경발전재단, ‘한국조경백서’).한국의 조경이 강력한 정부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정영선 조경가는 한동안 나랏일을 했다. 그가 아시아선수촌 조경을 맡아 도로의 선형을 설계할 때에는 공무원들이 그의 사무실에 앉아 채근했다고 한다. “왜 설계도면을 그리고 있나. 나무는 언제 심나”라고. 조경을 그저 나무 심는 일로 치부하던 때였다. 그는 50여 년 동안 이런 인식에 맞서면서 굵직한 공공·기업 프로젝트를 통해 대한민국의 경관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기업도 조경의 중요성을 잘 아는 시대가 됐다. 정영선 조경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아모레퍼시픽 용산 본사 신사옥과 북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 크리스찬 디올 성수 콘셉트 스토어의 조경도 맡았다. 디올 성수 조경 때에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디올하우스의 장미 정원을 구현하면서 한국의 자생 꽃들을 섞어 심었다. 프랑스 정원 속 한국 정원이었다.노르망디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오르에게 프랑스 장미가 각별했다면, 할아버지 과수원에서 사과꽃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정영선 조경가에게 한국의 꽃은 곧 그의 정체성이리라.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정영선 선생님은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며 “인문학적 성찰로 우리 자연경관을 잘 살리면서도 식물과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상상력이 놀랍다”고 한다.후배 조경가들로부터 ‘할머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정영선 조경가는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호미를 들고 전국을 누빈다. 산과 들을 다니며 자연을 유심히 관찰해 노트에 기록한다. 땅에 핀 작은 풀에도 ‘잘 잤니?’라고 묻는다. 영화 ‘땅에 쓰는 시’를 만든 정다운 감독은 “정영선 선생님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도 소녀처럼 감탄하고 일상적 표현에도 시적 감수성이 드러난다”며 “그런 점이 선생님을 여전한 현역으로 만들고 있는 비결 같다”고 했다. ●‘정영선 표’ 한국의 대표 조경들1. 여의도샛강생태공원여의도샛강생태공원에 들어서면 서울 한복판에 이런 진짜 자연이 있나 놀라게 된다. 그런데 1990년대 이 공원의 조경을 맡았던 정영선 조경가의 말을 들어보면 갖가지 역경이 있었다.“당시 한강관리사업소 자문위원을 맡았는데 공무원들이 처음 만들어놓은 개발안에는 주차장과 운동장이 있었다. 한강이라는 훌륭한 자연 자원을 인위적으로 개발하는 게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공무원들 앞에서 김수영의 시 ‘풀’을 읽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당시 우리나라는 홍수에 떠밀려갈 수 있다는 이유로 한강 변에 나무를 못 심게 했다. 정영선 조경가는 생태학자, 곤충학자, 조류학자들을 불러 모아 샛강을 풀과 물고기가 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는 예쁜 버드나무를 꼭 살려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공원을 만들 때 인근 여의도 아파트 주민들은 빵을 사다 주면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공무원들은 삿대질부터 했다. “공원으로서 갖춰야 할 화장실도, 관리 사무실도, 주차장도 안 갖춰놓고 풀만 심느냐”고. 힘겨운 과정을 극복하고 1997년 태어난 여의도생태공원에는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와 수달이 돌아왔다.2. 선유도공원선유도공원은 정영선 조경가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이다. 한강의 섬 선유도의 옛 정수장 시설을 활용한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으로 2002년 문을 열었다. 폐허의 흔적 위에 더해진 새로운 녹색의 생명력을 접하면 저절로 시간의 의미를 사색하게 된다.“선유도공원은 산업구조물을 미적 오브제로만 소모하는 소극적 태도를 넘어 공원 전체의 공간 구조를 직조하는 데 활용했다. 날것으로 드러낸 정수장 폐허의 부스러진 외피를 야생식물로 뒤덮어 거친 풍경을 연출했다. 정수장을 활용한 서울숲(2005년 개장)과 서서울호수공원(2009년 개장), 철도 폐선을 활용한 경의선숲길(2012년 개장) 등에 큰 영향을 줬다.” (이명준 국립한경대 조경학과 교수)정영선 조경가의 조경 철학 중 하나는 “조경가는 연결사”라는 것이다. 그는 선유도공원에 처음 가 봤을 때 선유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울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겸재 정선이 한강의 풍경을 그리던 곳 아닌가. 팔당부터 마포까지 죽 이어지는 풍경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용도 폐기된 정수시설을 부숴버리면 그 시절의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에 옛것과 새것을 연결했다. 원래 있던 동쪽 기둥에 나무를 심으니 녹색 기둥 정원이 됐다. 공원도 여러 형태가 필요하다. 선유도공원은 마음이 쓸쓸한 사람들이 와서 쉬었으면 했다. 한 여성이 삶을 끝내려고 갔다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감사했다.”3. 서울아산병원 신관정영선 조경가는 남편이 10년간 병상에 누워있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 무렵 현대그룹으로부터 서울아산병원 조경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환자도 보호자도 가슴이 뻥 뚫리게 숨 쉴 수 있는 곳, 비록 병상에 있어도 창 너머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 환자 앞에서 슬픈 내색을 할 수 없는 가족들이 나와서 펑펑 울 수 있는 곳. 병원의 정원은 그런 따뜻한 위로의 정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병원의 지하주차장 상부에 거대한 인공 숲을 조성했다.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들을 밀도 높게 심었다. 봄에 식물이 싹 틔우는 모습을 보면서 환자들이 회복의 의지를 다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4. 호암미술관 희원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은 미술관만큼 부속 정원이 사랑받는다. 한국 전통 정원의 이름은 ‘희원’. 정영선 조경가는 이 정원을 통해 담백하면서도 아름다운 한국의 경관을 전한다. 다양한 석조 미술품들이 곳곳에 있어 ‘오픈 뮤지엄’으로서의 기능도 한다.1년 반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재개관한 호암미술관에서는 현재 김환기 화백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정자 옆 희원의 연못에는 프랑스의 유명 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유리구슬 작품 ‘황금 연꽃’이 설치돼 있다. 한국의 정자와 꽃과 돌인데, 그 어떤 서구의 예술품도 이 한국식 정원과 어우러지는 마법이 실현된다. ●“우리 땅을 존중하고 보살피는 게 정원적 삶의 태도”정영선 조경가 그 자신의 정원은 경기 양평에 있다. 고속도로변이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의 풀과 꽃이 심겨 있다.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작은 과수원을 했다. 아버지는 대구의 기독교 계통학교 교사였는데, 외국 선교사들이 늘 학교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토속적인 시골 정원과 서양식 정원을 어려서부터 두루 접했다. 나의 정원은 소박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으면 한다.”정영선 조경가는 왜 조경을 ‘땅에 쓰는 시’라고 할까. 그는 2021년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와 ‘우리 시대 한국인의 삶과 정원’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가진 적이 있다(한국조경학회,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 그중에는 이런 대목들이 있다.“저는 정원이라는 것을 인간이 인간답게 살면서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합니다. 정원, 아니 우리 삶의 기본적인 ‘터’로서의 대지(흙)는 존중하고 보살펴야 하는 곳이기에 그 보살핌 자체가 곧 정원적 삶의 태도가 아닐까요.” “땅을 잘 읽고 그에 맞게 식물과 다른 정원 요소, 그리고 동선과 공간을 적절히 잘 구성하는 것이 정원 만들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지요. 기후가 변하며 지구는 신음했고, 이상 징후는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달라지는, 달라져야만 하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정원은 그런 자세와 삶을 위한 아름다운 필수 핵심 무대입니다.”“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듯, 우리가 섬세히 손질하고 쓰다듬고 가꾸는 정원들이 모든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대한민국 조경 반세기. 여전히 현장에서 답을 찾는 현역의 80대 ‘할머니 조경가’는 꿈이 있다.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한국적 경관을 물려주는 것이다. 지금껏 그를 키운 팔 할은 ‘우리 땅과 우리 풀이 전하는 자연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기후 위기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요즘, 그 위로를 다음 세대에게 전할 사명감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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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봉사와 재난 현장 누비며 국민을 돕는 특장차량

    지난해 동해안 산불에 이어 올해 7월 극한 호우까지 크고 작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을 누빈 차량들이 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송필호)가 현대자동차그룹, 삼성, 롯데의 후원으로 제작해 운용 중인 13대의 특장차량이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재난 구호모금 전문기관이다. 1961년 전국의 신문사와 방송사, 사회단체가 설립한 순수 민간단체이자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정 구호단체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1조6000억 원의 성금을 누적 지원하고 6000만 점 이상의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 공익법인 평가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가 발표하는 공익법인 투명성, 재무안정성 평가에서 5년 연속 최고 등급을 받았다. 희망브리지는 5t과 7.5t 등 두 종류의 세탁 구호 차량 6대를 운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롯데가 각각 4대, 2대를 후원했다. 이 차량들에는 20kg 용량의 대형 세탁기 3대와 23kg 용량의 건조기 3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하루 8시간 기준 200여 가구의 세탁물을 처리할 수 있다. 수해가 발생하면 흙탕물에 젖은 옷과 이불이 삭기 때문에 희망브리지 측은 재난 직후부터 신속하게 빨랫감을 수거해 세탁, 건조, 포장 과정을 거쳐 전달한다. 지난 3년간 각종 현장에서 세탁한 물량이 2만8095kg. 이 특장차량들은 평상시에는 경기 파주와 경남 함양에 있는 3만3000㎡(약 1만 평) 규모의 물류기지에 배치돼 지역 복지시설을 찾아가 세탁 봉사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 국민이 힘겨워할 때에도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이 각각 지원한 방역구호차량과 이동식 선별진료 차량은 전국을 누볐다. 초미립자살충제 살포기, 휴대용 연막 소독기, 수동식 분무기, 개인 방호물품이 구비된 방역구호차량은 최근 3년간 1주일에 4.8회꼴인 753회 출동했다. 이동식 선별진료 차량은 8.5t 모듈형 특수장비 차에 최고 수준의 방역 기능을 집어넣었다는 설명이다. 음압·양압 시설을 갖추고, 의료진과 피검사자가 접촉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3개의 검사실에서 문진과 진찰부터 검체 채취까지 진행된다. 심신회복차량은 재난을 겪은 이들이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도록 돕는 차량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 롯데가 각 한 대씩 지원했다. 이용자는 리클라이너 기능이 있는 좌석에서 전면부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각종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안마기 두 대도 설치돼 있다. 최근 무더위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 때에는 무시동 에어컨 기능이 빛을 발했다. 포르투갈에서 온 한 잼버리 대원은 “차 안이 시원하다. 잘 쉬었고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희 희망브리지 사무총장은 “특장차량을 비롯해 재난 때마다 흔쾌히 후원해 주신 기업들에 감사하다”면서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차량 이외에도 샤워와 식사 등 이재민의 불편을 덜어드릴 기능의 차량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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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정원지기 엄마와 ‘정원수저’ 딸의 숲새울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엄마가 20여 년 가꾼 정원이 ‘아름다운 정원’ 상을 받았어요. 딸은 직장을 다니다가 늦깎이로 대학에서 정원을 공부하고 있고요.” 지인의 귀띔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원한 팔당호를 끼고 운전하다가 숲길 쪽으로 접어들자 꽃과 나무가 우거진 정원의 벽돌집이 나왔다.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숲새울정원이다. 플록스, 아나벨 수국, 금꿩의다리, 운남국화, 베토니….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한여름의 꽃들이 꿋꿋한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이라기보다는 야생의 위로를 전하는 정원이었다. 린넨 셔츠 차림의 엄마 신재열 씨에게서는 70대 여성의 여유로운 패션 감각이 느껴졌다. 40대 나이가 믿기지 않는 앳된 외모의 딸 최가영 씨는 상냥하고 나긋나긋했다. 숲과 개울을 바라보는 정원의 나무 그늘막에 앉으니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렸다. 이른 아침 집에서 갓 구웠다는 크루아상이 나왔다. 이런 숲속 응접실에서라면 여름 햇빛이 제아무리 따가워도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늘막 곳곳에는 엄마가 오랜 취미로 한다는 서각과 도예 작품, 정원 용품들이 있었다. 딸은 이곳에서 정원 공부를 하고 글을 쓴다고 했다. ●엄마의 노력과 딸의 도움이 어우러진 정원지금부터 엄마는 ‘마마님’, 딸은 ‘수습이’로 칭하려 한다. 딸 가영 씨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하면서 지은 별칭이다. “인스타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엄마’라는 호칭을 적는 게 좀 사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 ‘마마님’이라고 했더니 다른 분들도 엄마를 그렇게 불러주셨어요. 저를 ‘수습이’라고 한 건, 숲새울정원의 수습 정원사이면서 왠지 남은 생에도 정원을 마스터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서였어요. 정원에 있어서는 엄마의 경지에 오르지 못할 것 같아서요.” 마마님이 서울에서 귀촌 후 20여 년간 가꿔온 정원은 2020년 산림청이 주최한 ‘대한민국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1등을 받았다. “엄마의 정원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될 즈음에 주변 분들로부터 콘테스트 참가를 제안받았어요. 출품을 결심하자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게 정원의 이름이었죠. 엄마와 저는 스케치북을 펴고 그림을 그려가며 브레인스토밍을 했어요. 우리 정원의 특징은 무엇일까 하고요. 우리 정원은 산 옆에 있어 숲을 품고 있고, 새가 많고,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어요. 숲, 새, 개울 이렇게 적어보다가 얘기했어요. ‘엄마, 숲새울 어때?’ ‘아주 마음에 든다’. 그렇게 숲새울정원이 되었답니다.”딸은 자신을 ‘수습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지나친 겸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는 현재 대학에서 정원을 공부하고 관련 국제 심포지엄들에 참석하는 ‘찐 학구파’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 갑자기 ‘경단녀’가 됐을 때, 허리가 안 좋던 엄마를 도와 정원 일을 시작한 게 늦깎이 정원 공부의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잔디 잡초제거, 제거된 식물들 가져다 버리기 등 힘쓰는 일들 위주의 소심한 가드닝을 하다가 엄마의 허락을 받아 하나둘씩 모종이나 작은 관목을 심게 됐다고 한다. “정원은 제게 있어 엄마의 취미였고 엄마를 자랑스럽게 하는 무형의 자산이었어요. 그런데 정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니 저는 대단한 ‘정원 수저’(금수저, 은수저라는 말처럼 정원을 물려받았다는 의미)였더라고요. 엄마의 정원이라는 최고의 서당에서 20여 년을 뛰놀던 ‘서당개’라는 걸 깨달았어요. 정원을 지켜온 크고 작은 나무들, 주변에 밀집된 숙근초들, 오랜 시간 스스로 터득해 온 엄마만의 손맛과 미적 감각이 숲새울정원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독일에서 3년 간 산 적이 있는데, 당시 한국에 전화해 엄마에게 드렸던 말씀이 생각나요. ‘엄마, 독일 길가에 꽃이 잘 심어져 있는데 동네에 별다른 정원은 없어. 엄마 정원이 여기 오면 짱 먹어.’ 해외를 다녀볼수록 엄마의 정원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지 알 수 있어요.” 서울에서 꽃꽂이를 즐기던 마마님이 2000년 능내로 이사해 정원 가꾸기에 심취했을 때, 수습이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당시 한국에 흔하지 않던 꽃씨들을 찾아 종종 엄마에게 보내드렸어요. 그중 하나인 매발톱꽃은 해를 거듭하며 교잡돼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숲새울정원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 매발톱은 씨앗으로도 알아서 잘 번지고, 한 번 자리 잡으면 건강한 모습으로 정원의 공간을 채워주거든요. 부지런한 벌들 덕분에 나타나는, 예측조차 안 되는 새로운 얼굴들에 큰 즐거움을 누려오고 있어요.” ●피트 아우돌프의 자연주의 정원에 매료된 딸 수습이는 대한민국 국가정원 2호인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의 정원 조성 작업에도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그가 ‘팬심’ 가득 품는 세계적 정원 식재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79)가 지난해 이곳에 자연주의 정원을 조성할 때 식재 작업을 함께 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태화강국가정원에 갔던 때가 떠오른다. 나 역시 피트의 명성을 확인하러 갔었는데, 당시엔 식물을 막 심은 때라 땅 위의 식물 이름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식물들을 심은 손길 중 하나가 ‘수습이’ 최가영 씨였다니 감격스럽다. 공원과 공공정원에 시민 참여는 많을수록 좋다. 참여를 넘어 시민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도하는 움직임이 더 늘어나야 한다. 수습이는 식재 모니터링을 위해 매달 태화강국가정원에 다녀온다. 그가 최근 찍어온 사진을 보니 어느덧 씨앗과 작은 식물들이 자라나 ‘피트풍 정원’을 연출하고 있었다. 꽃배초향 ‘블랙 에더’, 쇠풀 ‘하하 통카’, 털부처꽃 ‘스월’의 조화가 야생의 위로를 전하는 느낌! “한국인들은 성미가 급해 피트 아우돌프의 자연주의 정원을 그냥 풀밭 같다고 할까 걱정돼요. 하지만 한국인들은 열정만큼은 1등이니까 잘 홍보하면 대중의 큰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봐요.” 마마님과 수습이는 지난해 독일과 네덜란드로 정원 탐방 여행을 다녀왔다. 피트 아우돌프가 조성한 정원들을 둘러보는 여행이었다. “딸이 피트의 자연주의 정원을 워낙 좋아하니 나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식재 디자인이나 정원 배치를 보면서 둘이 감탄을 많이 했죠.” (마마님)“모녀가 단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정원과 식물을 보고 대화하는 매 순간이 소중했어요. 그중 백미는 피트의 초청으로 그의 정원인 훔멜로를 방문한 일이었어요. 모델 출신인 피트의 아내 안야가 해맑은 미소로 반겨주었죠. 훔멜로는 그 어떤 정원보다 독창적이고 놀라웠어요. 숙근초를 빽빽하게 채웠기 때문에 별다른 정원 관리를 하지 않고 그저 식물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관찰한다고 해요.” (수습이) 식재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은 1930년대 이래로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친숙한 주제였다.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1874~1970)는 자연 서식지와 비슷한 경관에서 식물을 재배하면서 최소한의 관리로 자라는 식물을 찾았다. 이 계보를 이은 인물이 네덜란드 출신의 피트 아우돌프다. 강건한 숙근초와 관상용 그라스류들을 재배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버려진 철길을 갈대와 야생화로 채운 미국 뉴욕 하이라인파크,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루리 가든, 독일 바일 암 라인의 비트라 캠퍼스 등 세계의 주요 공공정원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엄마와 딸이 정원에서 서로 돌보는 마음수습이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유럽의 자연주의 정원에 흠뻑 빠져있다. 그래서 엄마의 정원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정원 공부를 하기 시작하니, 수습이도 보는 눈이 생기는지라 마마님의 정원에 태클을 걸기 시작합니다(웃음). ‘제가 감히…’라는 생각도 들지만, 생각이 모이면 뭐든 더 발전하기 마련이니까요. 식물은 엄마의 영역이지만 저는 전체적인 분위기나 디자인에 더 신경을 쓰고 싶거든요.” 가장 큰 의견 차이는 그라스를 정원에 들이는 문제였다. 몇 년 전 그라스가 국내에 도입됐을 때, 딸의 말을 듣고 참억새 품종을 심었던 마마님은 그 큰 덩치에 혀를 내두르고 “그라스는 우리 정원에 안 돼”라고 굳게 마음 문을 닫았다는 게 수습이의 말이다. 마마님의 생각은 다르다. “피트 아우돌프식 정원은 거대한 규모의 공공정원에 어울리는 것이지, 우리처럼 가정 정원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심은 거 다 뽑아내느라 아주 애를 먹었어요.”그럼에도 딸은 포기하지 않는다. “저는 아무래도 칼 푀르스터 같은 독일 숙근초 디자이너에서부터 이어진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 철학에 매료된 상태라 그라스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크게 자라지 않고 이삭이 아름답게 뻗어나서 엄마의 정원에 어울릴만한 그라스를 끊임없이 보여드리면서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엄마는 다시 조금씩 심어보시면서 시커매진 그라스의 씨송이에도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딸이 추구하는 정원은 사람 손길을 덜 필요로 하는 정원이다. 그런데 엄마의 정원은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 관리해야 하는 정원이다. 허리도 안 좋은 70대 엄마가 정원에서 온종일 일하는 모습은 딸이 보기에 속상하다. “엄마의 지나친 노동에 잔소리를 자주 했더니 엄마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어요. 정원 일을 즐기시는 만큼 엄마가 행복하다고 생각을 바꾸니 저의 잔소리도 잦아들게 되었습니다.”마마님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정원 일이라는 게 남들이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너무 힘든 일이에요. 딸이 쭈그리고 앉아 풀 뽑고 있으면 안쓰럽더라고요. 그래서 ‘얼굴 탄다, 하지 마라’고 말리죠. 엄마 입장에서는 저처럼 손 많이 가는 가드닝을 딸이 하는 걸 원치 않아요. 딸은 뭘 했다 하면 뭐든 열심히 해요. 식물에 대한 지식도 나보다 훨씬 많고, 외국어도 잘하니 새로운 식물들도 많이 추천해주죠. 얼마 전에 딸이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은 ‘하하통카’라는 식물을 강력하게 권해서 심어봤어요. 단아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왜 딸이 그토록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정원을 통해 좀 더 서로를 알아가는 것 같아요.” 수습이는 말한다. “저에게 숲새울은 아름다운 선물이고 유산인 동시에, 감히 짊어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원에 들어서면 오감으로 전해오는 식물들의 미려함이 잠시 스쳐가고, 엄마의 노동과 수고가 물밀 듯 떠올라 한숨이 쉬어지곤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숲새울 정원은 엄마의 인생이 담긴 걸작품이라는 겁니다.” 마마님은 “딸이 어차피 이 길로 들어섰으니 열심히 배워서 훌륭한 가드너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담백한 말이어서 오히려 엄마의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숲새울정원이 세월의 나이테와 함께 숲은 더 울창해지고 새는 더 많이 찾아오고 개울은 더 맑고 힘차게 흐르기를 바란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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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 평 천년숲정원을 앞뜰로 누리는 서라벌 여인의 사부곡[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불국토(佛國土)로 불리는 경주 남산 자락, 선덕여왕릉을 마주 보는 곳에 10만 평 숲이 있다. 여왕이 살던 시절, 서라벌엔 18만 호 기와집에 100만 명이 살았다고 하니 그땐 숲도 큰 마을이었을 게다. 신라인의 마을에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왜가리가 날던 논은 대한제국 시절 묘목장이 됐다가 임업시험장으로, 다시 산림환경연구원으로 변신했다. 40년 전 묘목들은 이제 아름드리 숲을 이뤘다.올해 4월 경상북도 첫 지방 정원으로 문을 연 ‘경북천년숲정원’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반에게 개방한 이곳은 2002년 태풍 루사로 쓰러진 나무를 외나무다리로 활용하면서 ‘인생 사진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다. 실개천을 따라 쭉 심어진 메타세쿼이아가 수면에 거울처럼 비친다. 하지만 변변한 이름이 없어 산림환경연구원 수목원으로 불리다가 이번에 비로소 ‘천년숲정원’이란 이름을 얻었다. 신생 정원인데도 천년 고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핫플’로 떠올랐다. 경주 아지매(아주머니의 경상도 방언) 서석태 씨(69)에게 천년숲정원은 앞뜰이다. 이 정원 안에 있는 경북산림환경연구원 쪽문 옆이 그녀의 집이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이 정원을 산책하는 그녀에게 이곳은 그저 집 앞 정원이 아니다. 하늘나라로 간 남편의 땀과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천년숲정원의 오랜 역사를 알고 싶어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문의했을 때 연구원 측은 “오래된 직원분들은 다 퇴직하셔서…”라며 난감해했다. 울창한 숲도 태초엔 누군가 나무를 심었지 않았겠나. 무작정 인근 갯마을의 경로당을 찾아갔더니 한 어르신이 말했다. “2년 전 저세상으로 간 최병문 씨가 쭉 임업시험장(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다녔어요. 쪽문 바로 옆집에 살았지. 지금도 부인은 그 집에 살아요.”백구(白狗)가 마당을 지키는 그 집 앞에서 30분쯤 기다리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혹시 최병문 씨의 부인이신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서석태 씨였다. 서 씨는 “잘 찾아오셨네. 하긴 이 동네에 나만큼 이 정원을 아는 사람도 없어요. 남편(최병문 씨)과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 퇴직하고 없으니까요.” 서 씨가 맞아 준 집 안 곳곳에는 그들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1974년 결혼해 쭉 이 집에 살았어요. 여기 경주 갯마을에 30호쯤 사는데,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 옆 쪽문을 통해 수목원의 풀도 베고 나무도 심으러 다녔어요. 남편도 연구원 기능직으로 일하는 동안 많은 나무를 심었답니다.” 이 집에도 작은 텃밭 정원이 있었다. 족두리꽃, 참나리, 애기범부채, 탐스럽게 열린 가지…. 서 씨는 “이거 냄새 좀 맡아보소”라며 보라색 꽃을 피운 사파이어 세이지 잎을 건넸다. 기분이 우울할 때 이 허브 향을 맡으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함께 천년숲정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남편 살아있을 때 쪽문을 통해 임업시험장 수목원(현재의 천년숲정원)을 매일 산책했어요. 지금도 우리 손주들은 여길 거닐 때마다 ‘이 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라고 말해요. 아이들도 마을 주민들도 저마다 이 숲에 주인의식이 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10만 평 정원을 앞뜰로 갖고 산다고 자랑한답니다(웃음). 평생 나무랑 가까이 살았으니까요.”메타세쿼이아 숲에 이르렀다. 나무들이 우거져 녹색의 색감이 깊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어찌나 우람한지 서 씨가 두 팔을 벌려도 절반밖에 못 껴안았다. “지금이야 숲이지, 40년 전에는 허허벌판에 가느다란 어린 메타세쿼이아만 있었어요. 연구원 앞의 40m 높이 메타세쿼이아 두 그루도 1970년대에 남편이 심은 묘목이 자란 것이거든요.”메타세쿼이아는 생장 속도가 매우 빨라서 전 세계적으로 조경수로 인기다. 한국의 메타세쿼이아는 국내 대표 산림학자인 고 현신규 박사(1911~1986)가 1956년 미국에서 들여왔다(강철기, ‘조경수에 반하다’). 낙우송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낙우송 잎이 어긋나기로 달리는 데 비해 메타세쿼이아는 마주나기로 난다. 서 씨는 함께 걸으며 낙우송에 발달해 있는 기근(숨을 쉬는 뿌리)의 여부로 두 나무를 구별했다.칠엽수(마로니에)가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 터널에 다다랐다. 기념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이 많았다. “이 나무들은 1979~1980년 남편과 마을 사람들이 심은 거예요. 그때는 나무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자라날지 몰랐어요. 좀 더 간격을 두고 나무를 심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니까요. 그러고 보니 40년 넘게 이 길을 걸어왔네요.” 천년숲정원에는 서 씨의 남편이 심었다는 오래된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연구원 안에서 양묘하던 배롱나무 340주로 올해 5월 배롱숲이 새롭게 조성됐다. 배롱나무는 경상북도의 도화(道花)다. 무더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면서 꽃과 수피(樹皮)가 우아한 배롱나무는 강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경북도민의 기품과 닮았다는 설명이다. 이제 막 심은 배롱나무들은 분홍, 보라, 하얀색의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줄기가 연약해 보였지만 그래서 꽃과 어울림이 한 편의 시(詩) 같기도 했다. 이 어린 나무들도 언젠가는 노목이 될 것이다.서 씨가 남편을 애틋하게 떠올리는 장소는 버들못 정원이다. 개나리, 조팝, 좀작살, 쉬땅나무 등 꽃피는 관목들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다. “개나리 필 때 저 연못 옆 버드나무는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깨금발 하는 모습이 참 예뻐요. 한 번 볼래요?” 서 씨가 휴대전화 사진첩에서 봄의 버들못을 보여줬다. “남편이랑 이 연못가에서 두런두런 많은 얘기를 했어요. 남편이 천생 양반이라, 마누라한테 화내는 일도 없고 자상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인격적으로 대접받고 살았어요. 요즘도 커피 끓여 보온병에 담아와 연못가에 앉아요. 남편과의 추억이 저절로 떠올려지거든요.”천년숲정원에는 수목 355종 5만 본, 초목 55종 14만 본 등 410종 19만 본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특히 초본의 대부분은 이번에 정원을 만들면서 새롭게 심은 것이다. 여러 종류의 무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무궁화동산, 신라 이미지를 형상화한 서라벌 정원, 울진 후정리 향나무 등 경북지역 천연기념물의 후계목을 키우는 천연기념물원도 조성했다. 어린 학생들이 견학 와서 숲을 배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서 씨가 말했다. “숲정원만큼 시간을 켜켜이 쌓아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있을까요.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자연에 너무 많이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돈 들여 불필요한 인공물을 만드는 대신 후세를 위해 자연스러운 모습을 남겨줘야 해요. 그래야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숲이라는 선물을 느낄 수 있거든요.”p.s.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서 2002년부터 근무했다는 전원찬 산림환경과장은 고 최병문 씨가 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지금의 천년숲정원 나무를 심는 데 기여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함께 밥도 여러 번 먹었습니다. 참 열심히 하셨죠. 옛날 공무원들은 전부 현장에 나가 삽 들고 나무를 심었으니까요.” 전 과장 개인적으로는 연구원 본관 앞에 심어진 은목서가 뜻깊다고 했다. “경북대 임학과에 다니던 1988년, 연구원으로 실습을 나왔을 때 봤던 은목서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당시 은목서의 북방한계선은 경주 부근이었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서울에서도 심는 나무가 됐어요.” 정원은 지나간 시간을 음미하는 곳인 동시에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일깨워주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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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 보는 남편과 아내의 장미 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대사를 통해 말했다.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요? 우리가 장미를 어떻게 부르든 이름이 무엇이든 그 향기는 달콤할 거예요.” 이 말에 절반만 수긍한다. 장미는 향기가 달콤한 동시에 그 이름도 특별하다.긴 장마가 막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된 7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 충남 아산신도시 배방지구에 있는 황인준(58)-오수정(54) 씨 부부의 3층 단독주택 정원에 들어서자 장미 향기가 물씬했다. 영국 장미인 빨간색 ‘폴스타프’(Falstaff)와 살구색 ‘레이디오브샬롯’(Lady of Shalott), 독일 장미인 연분홍색 보이지(Voyage)…. 화려한 미모의 장미 폴스타프에 셰익스피어 ‘헨리 4세’에 등장하는 주정뱅이 노 기사의 이름을 붙인 장미 업계의 작명 센스란! 오 씨의 정원에는 공주(‘프린세스 알렉산드라 오브 켄트’), 작곡가(‘벤저민 브리튼’), 화가(‘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산다. 세계적 육종회사인 영국 데이비드 오스틴 사(社)와 프랑스 메이앙 사가 이들의 이름을 따서 장미의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오 씨는 32평 마당 정원과 8평 옥상 정원을 가꾼다. 덩치 큰 목백일홍과 목련,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 라일락과 수국, 달리아와 백합 등이 심어진 이 정원에는 무려 100여 종의 장미가 자란다. “이 아이들이 힘든 장마의 고비를 넘겼어요. 모진 빗속에서 잘 버텨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부터 무더위와 병충해에 시달릴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요. 사람도 식물도 힘든 계절이에요. 장마 전에 오셨으면 꽃 대궐을 보실 수 있었을텐데요.” 그는 기다란 전지가위를 들고 장미 꽃송이들을 잘라 순식간에 핸드 타이드 부케를 만들었다. “아침 일찍 자르지 않으면 폭염에 꽃들이 다 말라버리거든요.” 더위뿐일까. 태풍이 오는 것도 대비해야 한다. KTX에 몸을 싣고 서울에서 불과 30여 분 왔을 뿐인데 딴 세상이 펼쳐진다. 아산신도시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단독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담장도 대문도 낮아 이웃들의 정원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동네 사람들도, 지나가던 외부 사람들도 오 씨의 정원에 찬사를 보낸다. 오 씨가 장미를 삽목(가지를 꽂아 뿌리를 내는 작업)해 이웃에게 나누면서 마을 전체가 꽃마을이 됐다. “11년 전 이 집을 짓고 마당에 다양한 장미를 심어보려 할 때, ‘한국종자나눔회’라는 다음 카페에서 어린 줄 장미 묘목 열 주를 5000원씩에 받아 심었어요. 지금은 영국 장미, 일본 장미 등이 다양하게 수입되지만 당시엔 국내에 유통되는 장미가 얼마 없던 때였거든요. 못 보던 장미를 나눔 받았기 때문에 나도 나중에 필요한 분들에게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그는 장미를 키우며 다양한 모습을 대하다 보니 점점 더 장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장미가 있거든요. 색과 향기, 형태가 각기 다른 장미들이 피어나면 작은 마당에서도 큰 행복을 느낍니다. 장미는 화려해서 쉽게 시선을 끌기 때문에 장미를 계기로 오가는 이웃과 금세 이야깃거리가 생겨나요. 이웃 간 소통과 왕래가 잦아져 각 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누구네 집 가자고 하면 알아듣고 향해요. 비 예보가 있으면 지인들에게 장미를 한가득 꺾어드리기도 합니다. 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로즈 가드너(rose gardener)’로서 행복해집니다.”오 씨가 갓 구워낸 허브 쿠키와 여름 과일들을 내왔다. 로얄 코펜하겐 잔에 담긴 커피 향이 좋았다. 거실에도 주방에도 곳곳에 장미들이 있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정원을 ‘정원사가 분양받은 천국의 작은 조각’이라고 하던데, 그 조각이 이루는 일상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마당 정원과 옥상 정원의 꽃들을 돌본 뒤 오전 7시에 남편과 수영을 다녀와요.”오 씨는 자신을 ‘식물들과 알콩달콩, 틈틈이 바느질, 어쩌다 첼로’하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올해로 결혼생활 28년째. 결혼 직후 남편의 유학을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던 그는 2000년대 중반 남편의 고향인 아산에 내려와 주부로 살아왔다.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해 퀼트 모임을 하면서 이웃을 사귀고, 첼로도 배웠다. 꼬맹이들이었던 세 딸은 이제 성인이 됐다.층고가 높고 천창(天窓)도 난 건평 30평의 3층 집은 아내가 수집해 온 인형들, 미술과 요리를 공부한 딸들의 그림 등 가족의 역사가 빼곡한 예쁜 박물관인 셈이다. 이곳에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 또 있다. 남편 황인준 씨가 촬영한 천체 사진들이다. 1980년대 중반 한국 아마추어 천문협회 운영위원장을 지낸 황 씨는 국내 유명 천체 사진가로, 천체 관측 장비들을 제작해 수출하는 호빔천문대 대표를 맡고 있다. 2015년에는 천체사진집 ‘별빛방랑’(사이언스북스)도 펴냈다.“연애할 때 정말 신기했어요. 하늘에 별이 무수히 많은데 어떻게 다 설명하는지 말이에요(웃음). 남편이 논 한가운데 땅 460평을 사서 호빔천문대를 처음 허름하게 지었을 때, 갑자기 땅이 생기니까 마음껏 꽃을 심어보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낮에는 개구리나 도마뱀을 잡고, 저는 3년간 매일 아침 풀 뽑아가면서 미친 듯 꽃을 심었어요. 마침 ‘타샤의 정원’이 유행하던 때였죠. 꽃을 풍성하게 내는 데 집중했는데 아산의 산바람이 만만찮더라고요. 외국 잡지에서 예쁘게 본 꽃들이 여기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었어요. 2012년 이 집을 짓고 제가 좋아하는 꽃들, 손이 덜 가면서 정원 관리가 쉬운 것들 위주로 골라 심었어요.”가느다란 열 주를 처음 심었던 ‘알키미스트’라는 이름의 장미는 자라나면서 오 씨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첫해에 한두 송이 피던 장미가 이듬해부터는 수십 송이씩 피어났다. 이 집 정원의 시작부터 함께 해 온 장미라, 장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졌다. 꽃의 형태와 색감이 독특해 장미가 만개하면 누구나 감탄한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봄에만 피지만 1년 치 꽃을 몰아 피듯 많은 꽃을 보여준다. “올해로 아홉 살이 된 우리 집 스탠다드 푸들 ‘꼬봉이’ 사진을 해마다 이 장미 옆에서 찍었어요. 나중에 꼬봉이가 떠나면 꽃필 때마다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꼬봉이 얘기에 코끝이 찡해진다. 하긴 꽃도 지고 나서 다시 피는 꽃은 예전의 꽃이 아니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삶일 것이다. “예전에는 화려하게 꽃피는 시절을 좋아했는데 이젠 봄에 새잎이 날 때도, 늦게 핀 가을꽃에 눈송이가 소복이 앉을 때도 좋아요. 화려하거나 조용하거나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걸 이제 깨달아요. 우리 인생도 그렇겠구나 싶어요.” 장미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도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어떤 장미는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크는데, 어떤 장미들은 까탈스럽기도 하거든요. 섬머송(Summer song)이라는 오렌지색 장미는 정말 잘 안 컸어요. 비리비리하다가 죽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너무 예뻐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키우는 장소와 장미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에요. 장미는 무엇보다도 가드너와 상호 교감에 민감하니까요. 하나하나 공들이고 애쓴 만큼 장미는 화려하게 다가옵니다. 오랜 기간 준비하고 지켜봤던 가드너에게 특별한 보상이자 선물이에요.”듣다 보니 자녀를 키우는 일과 다르지 않은 듯했다. “장미를 키우면 일단 욕심을 버리게 돼요. 자연의 순리를 따르다 보니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이 각기 다르고, 완성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돼 느긋해지는 것 같아요. 스롭셔 래드(Shropshire Lad)라는 장미는 초반 3, 4년간 성장이 너무 느렸는데 마음을 비우고 몇 년을 지켜보니 이제는 꽃도 풍성하게 내줘요.”부부는 적금을 부어 지난해 호주에 가서 개기일식을 보았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7번의 개기일식을 관측했다. 중국 신장과 상해, 일본 가고시마, 호주 케언스, 미국 아이다호, 칠레 비쿠냐, 그리고 지난해의 호주 엑스마우스 개기일식까지. 남편 황 씨는 말한다. “외계 생명체들도 개기일식 보러 지구로 여행 가자고 할 판에, 지구에 살면서 이토록 황홀한 순간을 안 보면 지구인의 직무 유기죠(웃음).”대기업과 벤처기업을 다닌 황 씨는 고향으로 내려와 자신의 오랜 별 보는 취미를 ‘업’으로 삼았다. 30년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아내는 남편의 인생 굽이굽이 도전을, 남편은 아내의 정원 가꾸기를 응원해왔다. 부부의 웃는 표정이 닮은 것처럼 별 보는 일과 정원을 가꾸는 일도 닮았을까. “아, 질문이 어려워요(웃음). 끊임없이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지켜보면 따뜻한 유대감이 생겨나니까요.” 남편 황 씨는 말한다. “어릴 때 소달구지가 달리는 아산 시골에 밤이 내리면 멍석을 깔고 누워 별을 봤어요. 그때 어머니가 밤하늘의 이름들을 설명해줬어요. 짚신할배, 좀생이별, 삼태성…. 가난했던 시절이지만 행복했어요.” 그는 자신이 쓴 ‘별빛방랑’ 책에 “밤하늘의 수많은 별만큼 수많은 행복이 늘 함께하길 빕니다”라고 썼다. 눈을 감고 내가 다녀온 아산의 아담한 단독주택 정원을 떠올려보았다. 수많은 장미만큼 수많은 행복이 자라는 곳 같았다. p.s. 부부의 세 딸은 자율적으로 진로를 찾아 나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과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막내딸은 최근 아산의 재래시장에 피자집을 냈다. 점심을 먹으러 그곳에 갔더니 ‘시크릿가든’이라는 이름의 피자가 있었다. 엄마의 정원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일까. 동명의 연재물을 쓰는 입장에서 괜히 반가웠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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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삼천평 감귤농장을 이끼 정원으로 바꾼 아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제주의 현무암 돌무더기 사이로 잎이 작은 백리향과 담쟁이 넝쿨의 등수국이 반짝였다. 빗물과 햇빛을 받은 식물들의 초록이 유독 명료했다. 땅 위에서 기껏해야 세 뺨 높이로 심어진 산뚝사초는 지형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바닷가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만들었다는 삐뚤빼뚤한 서체의 ‘베케’ 두 글자가 현무암을 품은 검은색 콘크리트 건물에 붙어 있었다. 5년 전 제주 서귀포시 효돈로에 문을 연 이래 젊은 세대의 초록 성지가 된 베케 정원 이야기다.이 정원을 만든 이는 조경회사 ‘더 가든’의 김봉찬 대표(58)다. 그는 꽃과 인공 장식물 위주였던 기존의 정원 조성 공식을 깨고 풀과 양치식물, 돌과 이끼가 경관의 주인공이 되는 ‘한국식 자연주의 정원’을 선보여왔다. 경기 포천시 평강식물원, 경기 광주시 화담숲 암석원,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비오토피아 생태공원, 충남 태안군 천리포수목원 어린이정원, 서울 성수동 아모레성수와 남산 피크닉의 정원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렇기에 정원과 조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김봉찬’이라는 이름 석 자는 묵직한 무게감을 전한다. 정작 그는 “정원은 인간이 만들긴 하지만 자연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배우는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주눅이 들잖아요. 크고 아름다운 것들이 뽐내는 공간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것들이 편안함을 주는 ‘치밀하지만 엉성한’ 정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베케 정원에 딸린 카페에 들어서면 커다란 통창을 통해 돌무더기와 이끼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밭을 일구다가 나온 돌을 쌓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 베케다. 곳곳에 베케가 있는 3000평 규모의 이 정원은 김 대표의 인생이 오롯이 깃든 감귤농장이었다. 제주에서 귤이 맛있는 동네로 통하는 서귀포 효돈동의 이 농장에서 그는 꼬마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감귤나무를 심고 농사일을 돕고 뛰어놀았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동네에 아스팔트가 깔렸어요. 아스팔트 도로가 신기해 아버지가 사준 고무신을 품에 안고 맨발로 달렸던 기억이 나요. 그 후 동네는 감귤 농사가 번창해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동네가 됐어요. 1980년대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들 감귤로 아이들 대학을 보냈으니까요.” 풍족한 유년을 주었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하늘나라로 너무 일찍 떠났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연에서 함께 한 추억은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제주의 산과 들에서 식물을 채집해 표본을 만들며 놀았던 그는 제주대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한 후 여미지식물원 식물과장과 평강식물원 소장을 지냈다. 알록달록한 놀이공원 스타일의 정원이 아닌 암석과 습지를 활용한 신비로운 느낌의 ‘김봉찬 스타일’ 정원은 그렇게 시간의 베케처럼 쌓아 올려진 것이다.이끼 정원을 바라보며 그와 나란히 앉은 자리로 ‘메리그라스’라는 이름의 차(茶)가 나왔다. 정원의 중심에 있는 그라스(풀)를 생각하며 제주조릿대, 레몬그라스, 메리골드 등을 블렌딩한 차라고 했다. “제가 아침마다 여기에 앉아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석을 봐요.” 아, 이슬이군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끼처럼 작은 식물일수록 보석을 많이 품어요.” 그는 방문객들이 “자연을 겸허한 자세로 볼 수 있도록” 카페 건물의 실내 바닥을 지하로 팠다. 그래서 작은 풀과 이끼를 저절로 눈높이에서 바라보게 된다. 석창포, 솔이끼, 금새우란이 어우러진 서로 다른 초록의 선 위로 눈여뀌바늘이 몽글몽글한 점을 그려냈다. “낮은 자세로 자연을 보면 식물과 곤충의 작은 움직임도 살피게 돼요. 적절한 어둠이 깃든 이끼 정원은 우리 내면도 들여다보게 합니다. 팍팍한 삶에 휩쓸리는 우리는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하잖아요.”식물생태학을 공부한 그는 1990년대 들어 정원식물에 관심을 두면서 아버지가 남기고 떠난 감귤농장에 하나둘씩 씨앗을 뿌렸다. 열매가 안 달리는 정원수의 씨앗이었다. 30여 년 전 땅에 심은 씨앗들은 이제 거대한 수목들이 되었다. 정원수를 심으려고 감귤나무를 조금씩 베어내다가 결국엔 과수원 하나가 통째로 없어졌다. “어머니가 반대하니까 스며드는 듯 씨앗을 심었죠(웃음). 대개의 사람들은 정원을 빨리 가꾸고 싶은 욕망에 처음부터 큰 나무를 심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나무는 어린 강아지를 키우듯 씨앗부터 시작해 세월을 함께 경험하는 게 좋아요. 정원을 갖는 건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힐링하고 자연을 배우기 위해서니까요.”그래도 아들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베케 정원에 남겨 두었다. 폐허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당초 무허가 건물이라 철거해야 했던 감귤 보관창고의 터를 남기고 그곳에 정원을 만든 것이다. “폐허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더라고요.” 그는 부서진 창고의 흔적 위로 야생의 자연을 구현했다. 억새와 수크렁 같은 대형 그라스 앞에는 존재감이 확실한 용설란을 심었다. 범부채와 매발톱꽃속 등을 섞고 제주의 들판에서 볼 수 있는 예덕나무도 심었다. 베케 정원은 입구 정원, 이끼 정원, 빗물 정원, 고사리 정원(퍼너리·fernery), 낙우송 정원, 폐허 정원, 겨울 정원, 나뭇길, 실험정원 등 다양한 감각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은 초록빛인 말채나무는 겨울이 찾아오면 노랑 주황 빨강의 따뜻한 색감으로 변신한다고 했다. “겨울 정원의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졌을 때 드러나는 줄기와 가지가 예술이에요. 시든 것들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요. 그라스는 볏짚 색으로 바뀌고, ‘미드 윈터 파이어’라는 이름의 말채나무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화려한 붉은 빛을 보여주니까요.”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귤밭이던 베케는 지금은 천연보호구역 분위기의 정원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를 도운 주역 중의 하나가 고사리다. 김 대표는 한국의 자생식물인 청나래고사리 옆에 천남성을 심어 고사리의 촉촉한 생명력과 투박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 주변 나무들은 선을 중첩시켜 있어도 없는 듯한 깊은 공간감을 부여했다. 그는 함께 정원을 걷는 동안 “숲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라는 말을 했다. “안정된 음수림이 형성되면 특정 종이 숲의 빛을 독식할 수 없어요. 숲의 나무들은 태풍이나 병충해 같은 외부의 힘에 공동으로 대응하죠. 생태 정원은 식물들이 이루는 궁극의 야생 서식처에요.” 베케 정원을 한참동안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제법 큰 여름꽃인 에키나시아 위로 ‘도둑놈의갈고리’라는 이름의 가녀린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을 보았다. 보라색 붓들리아는 벌과 나비를 한껏 끌어모으고 있었다. 풍지초는 가는 점들이 땅과 풀과의 관계를 몽환적으로 그려냈다. 세상에는 보잘것없는 풀이 하나도 없다는 김 대표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방을 심오하게 만들어주는 풀이 아름답습니다. 이곳에 무지개 색이 즐비하다면 힐링하기 힘드니까요. 내 집에서 매일 잔치를 열면 주인은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러고보니 남을 빛나게 해주는 ‘위대한 조연’이 잘 나가는 세상이 온 것 같다고 나는 맞장구를 쳤다. 이름 모를 나뭇잎들이 빛과 바람에 반짝이고 흔들렸다. 그래서 그 속의 사람들이 한층 더 또렷하게 보였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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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천히 가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화분 속 작은 자연’의 위로[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장맛비가 내린 어느 목요일 오전, 서울 북촌의 아담한 한옥 앞에 다다랐다. 처마 아래에는 ‘oita’라고 쓰인 흰색의 작은 간판이 있었다. 그녀가 투명한 비닐우산을 쓰고 한옥의 나무 대문을 열었다. 비도, 우산도, 그녀의 앳된 인상도 청량한 느낌. 그녀의 공간을 채운 나무들도 그랬다. 만병초, 진백나무, 꽃창포, 표단목, 봄백일홍…. 생김새만큼 이름도 다정한 식물들이 가득한 ‘비밀의 정원’이었다.“대문 앞에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식물을 둬요. 이 둥글둥글한 식물(화백나무)이 요즘 제 마음에 들어와요. 이끼 같기도 한 푸른 덩어리 형태가 시원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런데 이런 분재는 가만히 아래에서 바라보면 잔가지들이 빼곡해서 세월을 느낄 수 있어요.”오이타(oita)는 30대 초반인 최문정 대표가 5년 전 문을 연 식물 스튜디오다. 그녀가 스무 살 되던 해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 이름의 영어 이니셜에서 따왔다고 한다. 식물을 각별하게 좋아했던 아버지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식물을 심고 돌본다.북촌의 한옥으로 이사하기 전, 서울 종로에 있던 여섯 평 규모의 오이타를 기억한다. 꽃집이라기보다는 작은 나무들을 파는 가게였다. 그런데 식물들이 남달랐다. 키 낮은 화분에 심어진 식물들은 옆으로 눕기도 하고, 부드럽게 구부러져 있기도 했다. 그날 이후 서울 용산 스틸북스와 챕터원 등 트렌디한 문화공간들의 팝업 이벤트에서 ‘오이타표’ 식물들과 우연히 마주칠 때가 많았다. 정갈한 화분에 담긴 그 식물들의 선(線)을 보면서 고요함 같은 말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식물을 소개하는 그녀는 오랫동안 중장년층의 취미로 여겨졌던 분재 가꾸기를 MZ세대의 마음챙김 라이프스타일로 탈바꿈시켰다. 정원을 갖는 건 꿈같은 얘기로 느껴지는 평범한 도시 소시민도 작은 화분쯤은 집 안에 들일 수 있으니까. 산세베리아 같은 공기정화식물을 찾던 대중에게 그녀의 ‘화분 속 작은 자연’(분재)은 신선함으로 다가갔다. 코로나19로 인해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만히 식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시대적 흐름도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식물의 세계로 발을 들인 걸까.-내자동에서 계동의 한옥으로 이사했네요.“오이타를 시작하기 전에 서울 강남에서 꽃가게를 했어요. 돈이 없어 강북의 월세 싼 곳을 찾아왔는데 내부에 수도가 없어 밖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어요.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재밌었어요. 조금씩 상황이 나아진 것 같아요.”-대학에서 식물 관련 전공을 했나요.“아니에요. 원하지 않던 컴퓨터 관련 학과에 들어갔기 때문에 일찌감치 ‘나만의 분야’를 애쓰며 찾았어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일이면서 사람들이 특별하게 보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뭔가 손으로 하되 미적 감각이 있는 장인 같은 일을 꿈꿨어요. 그래서 대학을 다니며 처음 배운 게 식물의 잎을 따서 물을 들이는 천연 염색이었어요. 어려서부터 할머니 시골집에서 식물을 가까이했던 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그런데 왜 식물로.“염색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해 보니 물도 빠지고 반응이 별로였어요. 그러면 또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식물을 좀 재밌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식물을 어디에서 배웠나요.“일단 좋아하는 야생화를 인터넷에서 많이 샀어요. 시행착오를 거치며 키우는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어요. 10년 전쯤부터 ‘가드닝’이란 말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서울 청담동의 작은 가드닝 매장에 무작정 찾아가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대학 다니면서 가드닝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서울에서 가장 비싸다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가드닝을 배웠어요. 졸업 후에는 매장 정직원으로 취직해 일하면서 또 배웠어요.”-건실한 청년이었네요.“굉장히 치열하게 살았죠. 식물을 심다가 쓰러져 응급실에도 가봤어요. 남들은 제가 여장부 같다고 하는데 모든 원동력은 저의 20대 때 형성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의 저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괴로웠어요. 가드닝 배우는 코스가 비싸요. 저는 아침부터 일하면서 배우는데 제 또래 ‘부잣집 따님’들은 몇 달 배우고 턱턱 자기 숍을 차리는 거에요. 당시 제 자존감은 바닥이었어요.”한옥의 유리 천장 위로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져 동글동글 퍼졌다. 식물도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듯한 공간. 그녀가 틀어둔 피아노 음악이 빗소리와 섞였다. “이곳 한옥으로 이사 오면서 몇몇 여린 식물은 마당의 강한 빛으로 인해 잎이 말라버렸어요. 한옥은 계절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는 공간이라서 그래요. 몸살을 앓는 식물들 틈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제게 위로를 건넨 식물은 야생화였어요. 한옥에는 한국적인 식물이 어울릴 수밖에 없어요.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각자 빛날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있어요. 적재적소(適材適所)라고 하잖아요.”그녀와 마주 앉은 나무 테이블 곁에는 줄기가 구부러진 작은 진달래 분재가 놓여 있었다. “유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뿌리가 굵고 단단한 식물을 좋아해요. 잎들을 보면서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누워있어도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이 아이를 보면서 ‘나도 차근차근 단단하게 성장해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돼요.”-바닥 친 자존감은 어떻게 회복했나요.“서울 강남에서 꽃가게를 할 때 제가 좋아하는 야생화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원하는 화려한 꽃과 잎이 풍성한 나무를 주문받아 팔았어요. 매출이 올라도 전혀 기쁘지 않았어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편하게 걷는 꼴이었어요. 외관만 번지르르한 삶은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식물을 내 방식대로 하자고 마음먹자 편안해졌어요. 삶의 많은 부분이 마음가짐과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더라고요.”-분재는 나무를 학대하는 행위라는 비난도 있습니다만.“어린 시절 저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줄기를 감싸는 철사 때문에 나무가 얼마나 아플까 하고요. 그런데 나무에 철사를 거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상부의 나뭇잎에 가려져 빛을 제대로 못 받는 가지가 빛과 바람을 잘 받을 수 있게 해야 하거든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부족한 점은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부분을 강화하면 더 나은 내가 되겠죠. 작은 나무와 돌, 이끼와 모래로 풍경을 표현하는 분경(盆景)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도 사람도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니 그저 자주 바라보고 싶은 풍경을 담으면 돼요.”-식물과 교감하며 어떤 걸 느끼나요.“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거요. 어떤 식물을 들일까 조언을 구하는 분들에게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라고 말씀드려요. 마음이 너무 지쳤다면 줄기나 가지가 옆으로 뻗는 식물을 키워보세요. 옆으로 흐른다고 멈춘 게 아니거든요. 성장하지 않는 듯 보여도 자라고 있어요. 때때로 한 템포 쉼이 필요한 삶의 단계에는 자유로운 흐름의 식물을 들여 위로를 받아보세요. ‘나도 너도 노력하고 있다’고. 삶이 천천히 흐르면 작은 변화도 알아챌 수 있어요. 화분에 물을 주면 식물이 물을 먹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매력적인 속삭임이라니까요.”●최문정 오이타 대표가 분재를 하면서 자주 읽는 책1. Music For Inner Peace (박정용)2.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 (에이리가족, 네임리스 건축)3.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4. 앤티크 수집 미학(박영택)5. 평온한 날 (김보희)6.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최순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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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드는 게 신기해요”

    14일 오후 경기 양주시 옥정초등학교 교실. 두 명의 초등학생과 두 명의 성인 전문 연주자가 교실 앞에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의 학생은 청중이 돼서 맞은편에 앉았다. 앞에 나온 한 학생이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나타나 토끼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트럼펫 연주가가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연주했고, 뒤이어 타악기 연주자가 드럼을 두드렸다. 곰이 호랑이를 먹고, 호랑이가 곰을 먹는 등 동물들이 연쇄적으로 먹고 먹히는 소리가 트럼펫과 드럼으로 표현됐다. ‘꼬마작곡가’라는 이날의 수업은 옥정초가 최근 9주 동안 매주 금요일에 두 시간씩 진행한 ‘늘봄학교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우수프로그램 시범운영 발표 수업’이었다. 꼬마작곡가는 1995년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이스 연주자 존 딕이 개발해 영국과 스페인 등에 도입됐고, 한국에서는 2013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통해 시작됐다. 음악을 배운 적이 없는 어린이들이 음악적 도구를 통해 각자의 생각과 이야기를 표현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수업에 참여한 옥정초 6학년 유하윤 양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 수 있는 게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라며 “학교 수업보다 훨씬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꿈다락 문화예술학교는 올해 전국 214개 학교에서 시범 운영되는 늘봄학교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늘봄학교는 학교 안팎의 교육 자원을 활용해 초등학교 정규 수업 전후로 양질의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통합 서비스다.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25년 전국 확대를 목표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다. 꿈다락 문화예술학교의 우수 프로그램으로는 △꼬마작곡가(음악)를 비롯해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시각예술) △일상의 작가(문학) △주말문화여행 등이 있다. 학교 측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일단 좋다. 비언어적 방식의 문화예술 교육으로 학생들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평진 옥정초 교무부장은 “초등학교의 경우 전 교과를 담임 교사가 맡기 때문에 문화예술의 전문성이 다소 부족할 수 있는데, 늘봄학교 내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은 기존 방과 후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창의적 교육으로 학생들이 예술을 깊고 넓게 접하게 한다”고 말했다. 박은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은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의 경력 단절을 막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우수 프로그램을 늘봄학교에 지원하게 됐다”며 “전문 예술교육가와 연계해 학교 교육현장 수요에 맞는 프로그램을 확대 제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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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 입시학원 내려놓고 10년간 가꾼 찍박골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파계한 신부와 수녀가 살던 곳이라고 한다. 한여름 수국 꽃다발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해발 700m 강원 인제군 찍박골. 그들은 얼마나 사랑했으면 화전민들이 살던 외딴곳을 찾아 들어왔을까. 왜 다시 이 땅을 팔고 외진 바닷가로 떠났을까. 깊은 사연이야 골짜기 어딘가에 묻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들의 사랑이 스쳐 간 자리를 김경희 씨(59)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어냈다는 점이다.개인 정원이라 ‘찍박골정원’이라는 푯말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산비탈을 오르는 길에 빨간색 베르가못과 아기 얼굴 크기의 애나벨 수국이 피어있는 걸 보고 정원의 환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소나무숲 트리하우스 옆에 차를 세우자 흰 풍산개가 따라왔다. 탁 트인 시야로 저 멀리 연푸른색의 설악산 중청이 들어왔다.“남편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것만 보고 가는 사람이에요. 산속에서 살겠다고 온갖 산을 찾아 다니더니 11년 전에 여기 땅을 사서는 처박혀 나오지 않는 거예요. 학원이 굴러가든 말든 내버려 두고요.”시골 생활에 통 관심이 없던 이 정원의 안주인 김경희 씨는 이사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따라왔다가 눌러살게 됐다. 그의 남편은 입시학원 ‘글맥학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던 김철호 씨(68). 8개 분원에 1만20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던 이 학원은 2000년대 중반 한 해에 700여 명을 특목고에 진학시키며 명성을 날렸다. 이화여대를 다닌 김경희 씨는 30년 전 이 학원의 영어 강사로 입사해 일하다가 나중에는 이 학원을 함께 경영했다. 그들은 2013년 학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고, 인제군의 찍박골 산속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염소를 키우던 곳이라 처음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풀밭이었어요. 그래도 다 큰 저희 세 아들의 축하를 받으며 야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어느 날, 글맥학원 사옥을 지어줬던 최시영 건축가가 ‘신혼여행 삼아 영국으로 가든 투어나 갑시다’라고 하더군요. 그 여행을 통해 제가 전혀 모르던 정원의 세계를 접하며 문화적 충격을 받은 후 지금까지 정원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정원은 제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습니다.”찍박골이라는 지명은 직박구리가 자주 날아들어 동네 어르신들이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라고 했다. 1만 평 부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 찍박골정원은 지금 여름꽃이 만발해 있다. 벌과 나비가 날아앉는 에키나시아, 몽환적 느낌이 나는 노루오줌(아스틸베), 촛불처럼 뾰족하게 올라온 꼬리풀, 여왕처럼 화려한 빨간 헬레니움 ‘모하임 뷰티’, 영국의 정원 잡지들이 노동력을 많이 투입할 수 없는 어르신들이 가꾸는 정원에 추천하는 꽃 1순위라는 노란색 원추리….“농사를 지으면서 부리는 최고의 여유이자 사치가 꽃이에요. 그런데 실은 이 정원은 온갖 실패를 먹고 자란 정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국 정원 만들기’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했거든요. 정원에서 10년을 보낸 이제야 봄의 환희, 여름의 치열함, 가을의 느린 넉넉함을 느낍니다. 겨울에는 푹 쉬고요. 한국인이 가장 못 하는 게 참는 것이라죠?(웃음) 정원을 만들고 싶다면 1년 정도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세요. 어디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땅은 얼마나 촉촉한지…. 실은 정원에서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하는 대상은 흙이에요. 토양이 건강해야 식물들이 잘 살 수 있어요. 한 해 늦게 가도 됩니다. 안 그러면 저처럼 심고 파내고 또 심고 파내면서 몇 년을 신참내기 정원사로 살아야 해요.”김 씨는 앞마당 정원, 텃밭 정원, 댄싱 가든, 화이트 가든, 암석정원, 자작나무숲, 개울 정원, 사과공원, 숲자락 정원 등 10년에 걸쳐 9개의 정원을 만들었다. 앞마당 정원이 보이는 야외 테이블을 안내받아 앉자 그가 ‘애플카인드’ 사과 주스를 내왔다. 애플카인드는 김 씨 부부와 세 아들이 강원 양구군에서 7년 전부터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이다. 이 법인의 회장이 남편 김철호 씨, 이사가 아내 김경희 씨다. 애플카인드 회사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자연의 순리 속에서 사람도 사회도 사과 농사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젊은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농촌 생활, 풍요와 여유가 있는 농촌 생활,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에게 산소 같은 대안이 될 수 있는 농촌 생활의 모범이 되겠습니다.’정원 일을 하던 남편 김철호 씨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햇빛을 받아 탔지만 윤기 흐르는 얼굴에는 주름살이 보이지 않았다. 칠순 가까운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원 일이 나뭇가지 잘라주는 일처럼 힘쓰는 일이 많아 여자 혼자 다 할 수가 없어요(웃음).” 남편과 아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노래하는 작은 새라면, 남편은 듬직하게 서 있어 주는 나무의 느낌이었다.아내 김경희 씨는 오랫동안 학원을 경영했던 경험을 살려 정원에서의 생활을 꼼꼼하게 기록해 파일로 정리해 두었다. 지난해부터는 가드닝 잡지의 객원기자를 지원해 활동하고,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썼다. 그 모든 것들이 쌓여 지난달 ‘찍박골정원’(목수책방)이라는 책도 펴냈다. 식물과 정원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온몸으로 배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10년 전 나무 한 포기 없던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부부는 4년 전에는 손가락 굵기의 한 살짜리 자작나무 100그루를 심었다. 둘째 아들이 직전 해에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연 장소였다. 6월 초인데도 파라솔로 가려지지 않는 열기 때문에 무더워서 막내아들에게는 작은 숲을 만들어 숲속 결혼식을 해주고 싶었단다. 자작나무 껍질을 의미하는 ‘화촉’(樺燭)이라는 단어도 좋았다고 했다. 그 나무들이 자라 정말로 숲을 이뤘다. “우리가 떠나고 없을 때에도, 이 자작나무 숲에서 우리 아이들은 모임을 하고, 더운 여름날 그늘 아래에서 꾸벅꾸벅 졸음을 즐기고, 우리 손주들은 결혼식을 올리는 스토리를 쌓아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겸손과 지혜를 가진 할머니로 나이들고 싶습니다.”부부는 ‘자연의 순리’라는 말을 자주 했다. 30여 년 학원을 경영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수면제를 늘 달고 살던 부부는 이제 정원에서 즐거운 노동을 마치고 푹 잔다. 낮잠도, 밤잠도 다 잘 잔다. “서울에 살 때는 사람이 일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 찍박골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 사람이 일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하는 거구나.’ 아무리 기를 써서 물과 양분을 준다고 해도 사과는 여름에 절대로 열리지 않잖아요. 모든 게 채워져야 맛있는 열매가 되고, 아름다운 꽃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건 내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김경희 씨의 얘기를 듣다 보면 정원에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생 철학자가 따로 없다.“정원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배워요. 식물에게 문제가 생기면 ‘얘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해결될 때가 많아요. 식물이 말을 안 해주니 제가 알아채는 수밖에 없어요.”“떠날 때를 알고 얌전하게 사라져주는 아이, 추레함의 끝판왕처럼 시들어가는 아이, 욕심껏 씨앗을 뿌리고 사라지는 아이, 시들고 난 이후의 모습이 꽃 필 때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가 정원에는 다 있습니다.”“묵은 꽃송이를 잘라줘야 새로운 꽃송이가 잘 올라옵니다. 어른 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적당한 때에 자리를 비켜주는 지혜를 배웁니다. ”‘찍박골정원’ 책에 사인해 달라고 부탁하자 김경희 씨는 ‘정원이 우리 모두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길요’라는 글귀를 적고 그 옆에 에키나시아 꽃을 그려 넣었다. 그날로부터 정말로 정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찍박골정원 김경희 정원주의 가드닝 팁1. 정원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은퇴 후에 조용히 쉴 정원인지, 손주들이 뛰어놀 공간이 필요한 가족 모임을 위한 정원인지, 사무 공간에 딸린 정원인지 등에 따라 정원의 형태, 식재 공간, 식물의 종류가 달라진다.2. 실행보다 기획을 먼저 해야 한다.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투자할 수 있는지가 고려돼야 정원 일에 치이지 않고 힐링이 되는 가드닝을 즐길 수 있다.3. 모든 식물은 자기 자리가 있다.알맞은 장소에 알맞은 식물을 심어야 한다. 비옥한 땅을 좋아하는 아스트란티아는 건조한 땅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 반대로 우단동자는 바위틈에서도 씩씩하게 자란다.4. 뿌리로 번식하거나 성장이 너무 왕성한 식물은 정원 안에 들이지 않는다. 샤스타데이지, 꽃범의꼬리, 둥글레, 초롱꽃, 리시마키아, 민트, 비비추 등이다.5. 관찰하고 기록해라.정원마다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내 정원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골라야 한다. 식물은 꽃이 없어도 건강하게 자라면 모두 아름답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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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픈이노베이션 나선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은 어디?[스테파니]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현대차그룹이 이달 중순 오픈이노베이션 테크데이를 처음 열고 스타트업 투자 현황 및 개방형 혁신의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현대차는 2017년부터 올해 1분기(1~3월)까지 200여 개의 스타트업에 1조3000억 원을 투자했는데요. 현대차그룹이 직접 투자하고 현재 협업 중이라며 이날 소개한 5곳의 스타트업을 오늘 상세히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어플레이즈, 모빈, 모빌테크, 뷰메진,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입니다.(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현대차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 실적과 투자 현황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산업의 주요 혁신은 과거와 달리 외부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리더가 될 기회를 만들겠다는 목표입니다. 그래서 모빌리티, 전동화, 커넥티비티 등 미래 핵심영역 분야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영역별 투자금액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차는 전 세계에 숨어 있는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미국, 독일, 이스라엘, 중국, 싱가포르 등 5개 국가에 ‘크래들(Cradle)’이라는 혁신 거점을 운영 중입니다. 한국에는 오픈이노베이션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제로원(ZER01NE)’을 2018년 설립했습니다. 매년 ‘제로원 액셀러레이터’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 및 지원하고, 오픈이노베이션의 범주를 예술로까지 확대해 크리에이터들간 협업을 촉진하는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로 소개한 5곳의 스타트업을 살펴볼까요? 현대차가 투자한 스타트업을 보면 현대차가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AI 기반 공간별 맞춤 음악 재생 서비스 스타트업: 어플레이즈만약 여러분이 매장을 운영하는 카페 주인인데 직접 음악을 고른다면 매달 몇 곡이 필요할까요? 평균 영업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가정하고 월평균 한 곡을 7회 정도 반복한다고 했을 때 593곡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공간별로 최적화된 음악을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요. 이 시장을 공략한 국내 스타트업이 어플레이즈입니다.현대차그룹 사내 스타트업에서 분사한 어플레이즈는 AI 기술을 기반으로 공간별 맞춤 음악을 자동으로 선정하고 재생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매장 방문자의 나이와 성별, 날씨, 이용 시간 등을 고려해 공간에 최적화된 음악을 재생하는데요. 현대차그룹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을 비롯해 현대차·기아·제네시스의 주요 전시장 및 영업점에서 이 음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배정진 어플레이즈 대표는 “매장, 건물, 차량 등 특정 공간에 맞는 음원을 틀어주는 게 우리 서비스의 골자”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취향을 갖고 있고 어떤 시간대에 해당 공간을 많이 이용하는지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는데요. 앞으로는 개인의 이동 경로에 따라 해당 공간들의 데이터와 개인의 감정을 매치한 음원을 제공하는 개인용 서비스도 계획하고 있다고 해서 기대가 됩니다.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 전문 스타트업: 모빈모빈은 현대차그룹에서 분사해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입니다. 국내 음식 배달 중 단거리 배달 비율은 48.6%로 배달비 규모가 연간 1조8000억 원입니다. 그래서 높은 인건비 등을 해결하기 위해 각 업체들이 활발하게 배달 로봇을 개발하는 추세인데요. 모빈은 국내 도로 환경이 보행에 불편한 장애물이 많다는 점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봤습니다. 그래서 모빈이 개발한 배송 로봇은 자체 개발한 특수 고무 소재 바퀴로 계단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며 라이다와 카메라를 이용해 낮밤으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현대차그룹과 협업하면서 현대건설 및 현대글로비스와 배송 로봇 시범 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실감형 디지털 트윈 기술 스타트업: 모빌테크모빌테크는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07학번인 김재승 대표가 2017년 창업한 실감형 디지털 트윈 스타트업으로, 자율주행 3차원 지도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과는 자율주행 정밀지도, 가상 모델하우스 등 다양한 부문에서 협업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회사는 2017년부터 자체 개발한 라이다 융복합 센서 처리기술을 통해 차량용 고정밀 스캐너, 실내외 3차원 스캐너 등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최신 데이터로 제공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자랑합니다. 이 기술을 활용해 실감형 내비게이션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입니다.●자율비행 드론과 인공지능(AI) 비전기술 스타트업: 뷰메진2020년 설립된 뷰메진은 자율비행 드론과 AI 비전기술을 결합한 건설 현장 안전 및 품질 검사 솔루션 ‘보다(VODA)’를 제공합니다. 드론에 탑재된 고화질 카메라로 콘크리트 외벽의 미세한 결함을 탐지하면서 결함 데이터를 분석해 시각화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이 회사의 AI 비전기술은 바늘구멍만큼 세밀한 0.3mm 굵기의 균열까지 잡아낸다고 하는데요. 이 기술을 활용하면 나흘 걸리는 공사 기간을 반나절로 단축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현대건설, 일본 건설그룹 오바야시 구미, 네옴시티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습니다.●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는 가상현실 플랫폼 개발과 버추얼 아이돌 매니지먼트 등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를 펼치는 스타트업입니다. 최첨단 센서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버추얼 휴먼을 생성하는 기술을 갖고 있으며, 이런 기술로 만든 버추얼 4인조 3D 아이돌 ‘메이브(MAVE)’를 올해 초 데뷔시켰습니다.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는 메타버스는 얼핏 제조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완성차 업체들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각광 받는 분야입니다. 특히 물리적 세계를 디지털 세상에 똑같이 구현해내는 ‘디지털 트윈’ 개념을 바탕으로 가상공간에 공장을 짓는 움직임이 늘어나면서 사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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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선미]땅끝에서 깨달은 한옥의 글로벌 경쟁력

    전남 해남군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게 된 데는 ‘박하경 여행기’라는 요즘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 여행, 걷고 먹고 멍 때릴 수 있다면!’ 드라마 주인공이 처음 떠난 여행지가 한반도의 땅끝, 해남이었다. 해남에는 아름다운 사찰 두 곳이 있다. 주인공이 ‘마음 버리며 오르는 108계단’을 올라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던 미황사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대흥사다. 미황사 가는 길에 대흥사 입구에 있는 유선관(遊仙館)에 들러보았다. 2년 전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한 100년 넘은 우리나라 최초 여관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유선관은 한옥의 핵심 구조물은 남기되 각 방 안에 현대식 화장실을 두었다. 특히 창을 통해 두륜산국립공원의 숲을 바라보는 여관의 스파 시설은 주위 풍경을 끌어오는 차경(借景)의 백미다. “가만히 있어도 힐링이 된다”, “계절마다 오고 싶다”는 숙박 후기들이 이어진다. 대흥사 소유의 유선관은 사찰 숙소로 사용되다가 1960년대부터 외부 손님을 받았다. 그동안 수차례 운영권자가 바뀌며 원형을 잃어 약 3년간 폐가로 방치된 적도 있다. 이때 나선 이가 해남 출신 사업가인 한동인 현 유선관 대표다. 젊은 문화기획자, 건축가와 손잡고 유선관을 ‘해남의 감성 숙소’로 탈바꿈시켰다.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위스 건축가들, 아내와 함께 닷새를 묵은 원로 학자, 어렸을 적 가족여행을 왔거나 신혼여행을 왔던 지금의 중년들, 그리고 MZ세대들…. 한 대표는 말한다.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1993년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통해 유선관을 널리 알렸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에게 유선관의 요즘 변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기쁩니다. 30여 년 전 유선관은 누추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유럽의 고성에 묵는 경험과 같은 멋진 한옥 스테이가 된 겁니다.” 왜 젊은층이 한옥의 매력에 빠져드는 걸까.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된 거죠. 자랑스러운 삶의 체취,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을요.” 한옥에 대한 젊은 세대와 외국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전북 고창, 경북 청송, 경남 하동에 이어 최근 전남 강진에 한옥 스테이를 열었다. 이 스테이의 초가집을 작업한 임태희 건축가는 말한다. “검소하고 소박함이 있는 집,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집을 생각하며 디자인했습니다. 전통을 재해석하되 한옥 본래의 정신을 잃지 않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 같습니다.” 유선관 툇마루에 앉아 보니 대흥사 계곡의 이끼 낀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 이마를 스치는 바람, 초여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디지털 소음에 지친 세계인이 원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한옥을 통해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한옥의 마당은 소박한 미의식을 담고 있으면서 한국화의 여백처럼 누구나 ‘○○○ 일기’를 쓸 수 있는 해방의 공간이다.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한옥을 세계문화로 발전시킬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김봉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제언은 그런 점에서 깊게 새겨볼 만하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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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 ‘비바 테크 2023’에서 봐야 할 것들[스테파니]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오늘은 다음 주(14~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행사인 ‘비바 테크’(Viva Tech)를 미리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프랑스 일간지 ‘레제코’(Les Echos)와 세계 3대 광고홍보기획사인 퍼블리시스 그룹이 2016년부터 열고 있는 연례 스타트업 행사인데요. “프랑스를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개막 연설을 하고 쟁쟁한 빅테크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이 연사로 나서면서 단기간에 주요 글로벌 행사로 등극했습니다.그런데 올해 ‘비바 테크’가 선정한 ‘올해의 국가’가 대한민국입니다. 비바 테크 측은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20년 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1만5000개의 혁신적 스타트업과 22개의 유니콘을 갖춘 나라가 됐다”고 평가합니다. 비바 테크는 어떤 행사이고, 어떻게 빠르게 성장했을까요. 스테파니가 알려드립니다.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글로벌 영업맨’ 대통령이 나서는 비바 테크‘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라는 이름의 프랑스 스타트업 육성 정책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기존 지역별 특화 산업정책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인 수탉의 이미지를 활용해 국가적 정체성을 부여한 일종의 ‘스타트업 브랜딩’입니다. 세계 최대 가전 정보통신 박람회인 미국 CES에 가면 언젠가부터 붉은 수탉의 깃발들이 휘날립니다. 프랑스가 스타트업 국가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늙은 수탉의 국가’라는 비판은 사그라들었습니다.라 프렌치 테크는 2013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때 나온 정책인데요.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2014~2016년)을 지내며 이 정책을 담당했던 인물이 지금의 마크롱 대통령입니다. 그러니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직후부터 스타트업 혁신 성장을 부르짖은 건 너무나 당연하지요. 그는 현재 27개인 프랑스 유니콘의 수를 2030년까지 100개로 늘리겠다고 합니다. 비바 테크는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 3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로 열렸습니다. 저는 2016~2017년 파리에서 기자 연수를 하면서 비바 테크의 태동을 현지에서 접했고, 2018년에는 파리로 날아가 제3회 비바 테크 현장을 취재했었는데요. 그 때의 개막식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능숙한 연설로 프랑스라는 국가를 세일즈하는 그야말로 ‘글로벌 영업맨’이더군요.당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현재 메타) CEO를 비롯해 사티아 나델라(MS), 지니 로메티(IBM), 다라 코스로샤히(우버), 베르나르 아르노(LVMH) 등 실리콘밸리에서도 한꺼번에 만나기 힘든 글로벌 회사 수장들이 집결해 마크롱 대통령의 세일즈 연설을 들었습니다. “프랑스는 지금 미친 듯 변하고 있습니다. 창업을 위해 직장을 관두면 2년 동안 실업 급여도 드리겠습니다. 프랑스를 혁신의 에코 시스템으로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내년에도 꼭 이 행사에 다시 와주셔야 합니다.” ‘친기업’ 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이 진두지휘하고 재벌과 기업들이 뒷받침한 게 지금의 비바 테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비바 테크는 파리 포트 드 베르사이유 전시장에 여러 기업과 국가별로 전시관이 마련돼 각종 신기술을 선보입니다. 평소 만나기 힘든 연사들이 나서는 다양한 주제의 컨퍼런스도 시간대별로 열립니다 제가 갔던 2018년에는 메타의 수석 과학자인 얀 르쿤 뉴욕대 교수가 ‘AI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대담을 하고, 일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의 인간형 로봇 ‘페퍼’가 전시장 곳곳을 누볐습니다. 올해는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요. ●올해 ‘비바 테크 2023’이 주목하는 분야와 기술올해 비바 테크가 정한 10개의 ‘핫 토픽’-에너지와 기후테크-스케일링업-사이버보안-인공지능(AI)-푸드테크-스포츠의 미래-딥테크-미래 공동체 구축-크리에이터 경제, 메타버스, 게이밍-웹 3비바테크는 에너지와 기후테크를 중시하는 행사인데요. 올해 게임 체인징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로 소개하는 곳들 중에도 관련 기업이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2014년 설립된 ‘놋플라(Notpla)’라는 스타트업은 ‘우리는 포장을 사라지게 한다’는 모토로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해초류로 만든 포장재를 만듭니다. 2020년 설립된 푸드테크 스타트업 ‘아그와(Agwa)’는 집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기구를 만들어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쇼핑할 때 사용하게 되는 플라스틱 백과 패키징, 탄소배출, 음식물 쓰레기 등을 줄이도록 합니다. 한편 5년 전 ‘페퍼’ 대신 올해에는 자율주행 로봇들이 비바 테크 행사장을 누빌 것 같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자율주행 배달로봇 스타트업인 ‘오토노미(Ottonomy.IO)’를 비롯해 한국의 ‘뉴빌리티’도 이번에 선보입니다. 비바 테크는 이런 ‘라스트 마일 배달(Last Mile Delivery·고객과의 마지막 접점)’이 전 세계적인 인력난 등을 해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오라이고’ 스타트업의 졸음 운전 방지 장치가 신박했습니다. 도로 교통사고 중 25%는 운전자의 수면부족에 따른 것이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이 스타트업은 머리에 차는 기기가 뇌의 활동을 인식해 졸릴 때 알람을 주도록 했습니다. ‘스포츠의 미래’라는 토픽 주제도 흥미로웠습니다. 코치와 심판, 판독과 전략, 경기 예측까지 AI가 빠르게 스포츠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비바 테크 측은 “AI를 스포츠에 적용함에 있어 적절한 규제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첨단 기술이 스포츠에 접목되는 가능성과 미래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고 합니다. ●비바 테크에 처음 참석하는 스타트업이라면올해 비바 테크에 처음 참석한다는 한 스타트업 직원으로부터 어제 전화를 받았습니다. “처음 비바 테크에 가는데 들려주실 이야기가 있나요?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비바 테크에는 나흘 동안 450여 명의 연사들이 나옵니다. 행사장 곳곳에서 각종 강연과 전시가 진행되기 때문에 미리 동선과 내용을 파악해 스케줄을 전략적으로 짜는 것을 추천했습니다. 비바 테크 측은 올해 이 행사에 처음 참석하는 스타트업들에게 7가지 조언을 합니다. #1. ‘당신 회사의 스토리’를 20초 이내로 축약해 말해라.#2.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라. #3. 여러 스타트업들과 나흘간 부지런히 관계를 맺어라#4. 같은 회사의 서너 명이 팀으로 참관하면 각자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 #5. 강연이 끝난 연사에게 달려가 어떻게든 네트워킹해라.#6.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하므로 운동화를 신어라.#7. 행사에서 얻은 영감과 교훈을 바로 사업에 활용하라. 비바 테크가 한국을 ‘올해의 국가’로 선정한 이번 행사에는 ‘뉴빌리티’, ‘에이슬립’, ‘펫나우’ 등 그동안 저희 ‘스테파니’가 소개해온 스타트업들을 포함한 45개 회사가 ‘K-스타트업’ 공간에서 전 세계 방문객들을 만나게 됩니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우수한 기술력을 알리고 글로벌 진출의 계기로 삼게 되기를 응원합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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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선미]헤리티지 가치 일깨운 ‘포니’ 자동차의 재탄생

    이탈리아 호반 도시 코모에서 지난달 열린 럭셔리 모터쇼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 저택들이 둘러싼 모터쇼 현장의 레드카펫 위에 ‘포니 쿠페 콘셉트’가 들어섰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그룹을 이끌던 1974년에 이 차를 디자인했던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자로 씨도 백발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는 정 창업주의 손자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요청을 받고 포니 쿠페를 49년 만에 부활시켰다. ‘포니’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자존심이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2년 차이던 1973년, 김재관 초대 상공부 중공업 차관보는 당시 정세영 현대차 사장을 만나 완전한 국산 자동차 생산을 부탁했다. 1967년 설립돼 차를 조립해 팔기만 하던 현대차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 창업주는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國旗)’라서 국산화가 절실하다”는 생각이었다. 동생인 정 사장이 이탈리아로 날아가 만났던 인물이 주자로 씨, 그렇게 탄생한 차가 ‘포니 쿠페 콘셉트’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76년 대한민국 고유 모델 제1호 ‘포니’가 나왔다. 그런데 포니는 현대차 내부에서 껄끄러운 과거이기도 했다. 32년간 현대차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포니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정세영 회장이 1999년 물러나며 리더가 교체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20년 ‘3세 경영’의 막을 올린 정의선 회장이 포니 쿠페 복원식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님, 고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님,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입니다”라며 골고루 공을 돌리는 장면은 보기 좋았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은 ‘현대차가 어떻게 이토록 멋있어졌나(How Did Hyundai Get So Cool)’란 제호의 기사에서 후발주자인 현대차가 세계 3위의 자동차 그룹이 된 비결로 정의선 회장의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 디자인 경영, 해외 인재 영입 등을 꼽았다. 1986년 미국 시장 진출 초기 ‘싸구려 차’로 통했던 현대차는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인 미래 모빌리티에 과감하게 투자해 이제는 한국 경제의 희망이 되고 있다. 정주영 창업주와 정의선 회장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니 복원도 정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MZ세대들은 “대한민국 기업들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헤리티지를 현대차가 만들어 간다”, “현대차에 스토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이들은 140년 역사의 메르세데스벤츠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지은 벤츠 박물관, 일본 나고야의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을 해외 여행하며 둘러본 세대다. 현대차는 이번에 옛 포니를 복원하면서 과거의 자료가 부족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을 챙길 경황이 없었던 것은 국내 기업 중 현대차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헤리티지를 소중히 여겨야 품격을 얻고 그 위에서 혁신을 꾀할 수 있다. 다시 태어난 포니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로 성장해 온 한국 사회에 초심과 뿌리를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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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핀란드, 노키아 몰락뒤 학생-청년사업가 주도로 스타트업 붐”

    핀란드가 스타트업 강국이 된 건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선배 창업가들로 구성된 스타트업 생태계 덕분이다. 핀란드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창업 콘퍼런스인 ‘슬러시’가 있다. 매년 겨울 열리는 이 행사에 각국 스타트업 관계자와 투자자가 2만 명 이상 몰려든다. 그런데 슬러시 말고도 핀란드 스타트업 생태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 또 있다. 핀란드 알토대의 창업 동아리인 ‘알토이에스(Aaltoes)’다. 24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알토이에스 집행부 11명을 25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메리 헤이키넨 알토이에스 부대표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핀란드 대표 기업인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매각하면서 학생들이 국가 경제를 재건할 방법으로 기업가정신에 눈을 돌리게 됐다”며 “핀란드에는 스타트업의 도전정신을 장려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창업 국가 핀란드’ 만든 대학생들 알토대 학생들이 “기업가정신을 갖추고 꿈을 크게 갖자”며 2009년 만든 창업 동아리인 알토이에스는 ‘알토 기업가정신 사회(Aalto Entrepreneurship Society)’의 준말로 유럽에서 가장 활동적인 기업가정신 단체로 성장했다. 2000년대 핀란드 경제 상황에 충격을 받은 청년 엔지니어들이 알토대의 한 창고에 삼삼오오 모여 창업을 논의한 게 알토이에스의 시작이다. 핀란드 국민의 마음에 혁신을 불어넣기 위해 결성된 알토이에스는 ‘스타트업 사우나’라는 이름의 창업 공간에서 10여 개의 프로젝트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스타트업 사우나에서는 ‘정션(Junction)’이라는 이름의 유럽 최대 규모 해커톤(일정 시간과 장소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행사)이 2015년부터 열리고 있다. 디자인싱킹 해커톤인 ‘대시’와 딥테크(첨단기술)를 상용화시키는 24시간 문제 해결 대회 ‘딥다이브’도 이곳에서 열린다. 핀란드 창업가들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석 달간 보내 창업의 비전을 키우게 하는 ‘실타(Silta)’, 과학자들이 학계에 머물지 않고 그들의 딥테크를 사업화하도록 돕는 ‘툴바(Tulva)’, 대학생들에게 스타트업 정신을 심는 10주짜리 인큐베이팅 캠프인 ‘이그나이트(Ignite)’도 진행한다. 이런 노력들이 바탕이 돼 인구 554만 명인 핀란드에서는 4000여 개의 스타트업이 활약하고 있다. 일례로 2016년 중국 기업 텐센트가 10조 원을 투자해 인수한 핀란드 게임회사 슈퍼셀은 2010년 알토대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이었다.● 한국 스타트업 업계와 아이디어 교환 모색 알토이에스 집행부는 이번에 서울과 부산의 스타트업들을 찾아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눈다. 특히 한국이 강점을 가진 기술 분야에 관심이 크다. 25일에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서울대 캠퍼스타운 사업단을 방문했다. 난테 키비넨 알토이에스 재무 담당은 “한국인은 헌신적이고 남을 기꺼이 돕는다는 점에서 핀란드 사람들과 닮았다”며 “핀란드는 대학과 스타트업 등 민간 위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돼 있는 반면 한국 스타트업 업계는 국가와 대기업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구조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알토이에스 출신들이 세운 핀란드 스타트업들은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음식 배달 스타트업 ‘월트(Wolt)’를 비롯해 기후기술로 탄소 제거 솔루션을 개발하는 ‘카보컬처(Carbo culture)’, 인공지능(AI) 기반으로 비즈니스 이메일 작성을 돕는 ‘플로라이트(Flowrite)’ 등이 있다. 헤이키넨 부대표는 “후배들을 키우고 돕는 알토이에스 동문들의 힘이 핀란드 스타트업 생태계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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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판 에꼴42’인 ‘42서울’에 가보니[스테파니]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프랑스 ‘에꼴(École)42’를 들어보셨나요. 교수, 교재, 학비가 없는 파격적인 자기주도형 학습을 내세우며 2013년 파리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입니다. 그런데 에꼴42의 아시아 최초 캠퍼스가 2020년 1월 서울에 문을 연 것 아세요? ‘42 서울’이랍니다. 기업마다 ‘잘 키운 개발자’ 구하는 게 힘든 요즘, 만 3년이 지나는 동안 42서울은 어떤 성과를 내고 있을지 궁금해 다녀왔습니다.(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42서울’을 운영하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서울 강남구 개포디지털혁신파크에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주된 사업 중 하나가 ‘42서울’입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을 위해 정부가 2019년 설립한 혁신교육기관이에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행정과 재정적 지원을 하고 서울시가 공간을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42서울은 국비로 프랑스 에꼴42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그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가져와 적용하고 있습니다. ●교수, 교재, 학비가 없는 프랑스 ‘에꼴42’‘42서울’을 얘기하려면 프랑스 ‘에꼴42’부터 설명해야겠네요. 2013년 프랑스 이동통신회사 ‘프리모바일’의 자비에르 니엘 회장이 당시 1억 유로(약 1300억 원)를 출자해 세운 비영리 정보통신(IT) 교육기관입니다. 파리 17구에 자리잡은 건물에서 교육이 이뤄지는데 교수, 교재, 학비가 없는 ‘3無(무)’ 학교에요.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합니다. 에꼴42는 26개국과 제휴를 맺고 47개 캠퍼스에서 같은 내용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어요. 전 세계에서 1만8000여 명의 학생들이 에꼴42의 소프트웨어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습을 합니다. 파리 에꼴42는 지원자 중에서 논리력과 기억력을 온라인 테스트해 3000명을 추려낸 뒤, ‘라피신(La piscine)’이라는 이름의 강도 높은 4주 과정 프로젝트와 동료 평가를 거쳐 200명을 최종 선발합니다. 이 학생들을 길게는 5년까지 교육시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길러냅니다.‘라피신’은 한국어로 ‘수영장’이란 뜻이에요. 에꼴42를 통해 전 세계에 이 프랑스어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에꼴42는 수영장에 빠뜨려 살아남는 학생을 선발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쓰고 있어요. 코딩을 해 본 적도 없는 문과생 출신이 이 과정에서 숨겨진 적성과 흥미를 느껴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고, 중도 탈락자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42서울도 같은 이름(라피신)으로 학생들을 뽑고 있습니다.처음에는 “가르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교육이 가능하냐”는 주변 시선이 가득했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에꼴42는 이제 선진 교육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글로벌 47개 캠퍼스 중 정부 지원은 한국이 유일합니다. 프랑스는 지방자치단체가 60%, 기업이 40%의 재원을 대고요. 일본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은 주로 기업가와 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42서울, 구석구석 돌아보다자, 그럼 42서울을 함께 가보실까요. 우선 42서울에 들어서면 로비층의 오른쪽은 프랑스 에꼴42 강당과 비슷한 디자인의 소파들로 이뤄진 미팅 공간이 있습니다. 왼쪽은 파트너사들의 문구가 벽면을 채우고 있는데요. 라인, 크래프톤, 그렙, 현대오토에버, 고토,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의 로고들이 보입니다. 앞으로 이 벽면이 더욱 쟁쟁한 회사들의 이름들로 빼곡히 채워지기를 기대합니다. 42서울의 교육은 2년 과정입니다. C언어 중심의 유닉스 개발 환경에 초점을 둔 기본과정과 자바와 스위프트 등 프로젝트에 적합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학습하는 심화과정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교육 공간은 365일 24시간 개방돼 마음껏 이 곳에서 공부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학생들은 학비를 내지 않는 것은 물론 한 명당 월 100여 만원의 교육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습니다. 이 곳에서 만난 20대 중반의 여학생은 “교육 내용도 훌륭하지만 교육지원금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웠다”며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심화과정까지 완주해 원하는 기업의 개발자로 취업하고 싶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이 곳에 42랩(Lab)도 새로 마련됐어요. 기초과정을 마친 학습자들이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등 심화된 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기자재와 컴퓨팅을 지원한다고 합니다.42서울은 올해 한 달 과정의 ‘라피신’에 1200명을 받아 연간 400명을 본과정에서 교육시킨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42서울에는 2153명이 본과정 교육생으로 등록돼 있는데요. 입학할 때 평균 연령은 25.7세로 소프트웨어 전공자와 비전공자 비율은 반반쯤 됩니다. 고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입학생 최고령자는 1958년생, 최연소자는 2007년생이었다고 하네요. 42서울 교육 공간의 첫인상은 게임방 같기도 하고 스타트업 사무실 같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유로운 차림새와 자세로 자신의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었는데요. 교수와 교재가 없는 대신 학생들은 단계별 과제를 부여받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동료와의 협업이 중요하더군요. 삼삼오오 모여 칠판에 과제를 쓰고 풀어나가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일부 공간은 세 명 정도가 마주 보는 형태로 책상이 배열돼 있어 자연스럽게 브레인스토밍과 협업을 유도하는 것 같았어요.그런데 42서울을 둘러다보니 ‘우리 42(사이) 친밀한 평가 42(사이)’라는 문구가 벽에 걸려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프랑스 에꼴42도 그렇지만 42서울에서도 동료들의 평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교육의 핵심이 자기주도학습과 동료학습이기 때문이죠. 학생들은 한 단계씩 수준이 높아질 때마다 서로 다른 두 명의 동료 학생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평가 포인트 제도가 있어서 평가를 요청할 때마다 1포인트를 소진하고 다른 학생의 평가를 해 줄때마다 1포인트를 벌게 됩니다. 즉 동료 평가를 도와줘야만 포인트를 쌓을 수 있어 ‘상부상조’가 절실합니다.‘42서울’ 출신들은 어떻게 진로를 찾아갈까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91명 중 65.4%(125명)가 취업 또는 창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종 레벨의 진로는 프리랜서(12.5%), 창업(9%), 군복무(8.2%) 등의 순이었고요. 특히 응답자 10명 중 8명은 “비전공자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자신감과 실력을 향상하는데 42서울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일례로 소프트웨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요리를 전공했던 한 여학생(1991년생)은 이 곳에서 2년동안 소프트웨어 개발을 익혀 현대오토에버에 취업했다고 하네요.42서울 출신들은 LG 유플러스, 삼성전자, 카카오, 네이버, 롯데정보통신, 크래프톤, 요기요 등에 취업했습니다. 42서울 출신들의 초봉은 월 400만 원 이상이 32.6%로 일반 취업자 대비 급여 수준이 높다는 게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측의 설명입니다.42서울 투어의 마지막 코스를 소개드립니다. 들장미와 금계국이 피어있는 이 곳은 42서울이 위치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건물의 옥상 정원입니다. 뻥 뚫린 하늘을 배경으로 솟은 시그니엘 롯데타워와 타워팰리스를 보면 ‘열공’했던 머리를 식힐 수 있을 것 같았어요.●전영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학장으로부터 듣는 ‘42서울’의 미래42서울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전영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학장을 만났습니다. 올해 2월 3년 임기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2대 학장으로 취임한 전 학장은 KAIST 전산학 박사 출신으로 몇몇 벤처기업들을 공동창업한 뒤 과기정통부 융합소프트웨어 PM으로 활동하다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ICT 분야 개발자들을 양성해온 이력을 지녔습니다. 전 학장은 “에콜42는 본래 학위가 없는 비학위 교육기관이지만, 올해부터 42서울은 심화과정까지 마친 학생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줄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와 한국의 실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학생들이 교육을 마치고 나면 기업들에서 ‘인턴’을 하다가 취업으로 이어지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의 취업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42서울은 설립 3년이 지나면서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났지만 한 두 달 다니고 관둔 학생들조차 “42서울 출신”이라고 말하면서 어느 정도의 ‘수준 증빙’과 ‘검증’이 필요해진 시점이 됐다네요. 앞으로 관련 업계에서 ‘42서울 졸업 증명서’가 어느 정도의 파워를 가지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프랑스 에꼴42를 도입했던 42서울. 정부 예산으로 에꼴42에 로열티를 계속 지급하고 있는 만큼 이 교육의 성과와 효율에 대한 보다 정밀한 진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개발자 인력난을 겪고 있는 지금, 42서울이 국내 산업계의 인력 수급에 단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내 실정에 맞는 민관 협력이 절실합니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처럼 기업에서의 인턴십과 기술 트렌드 제공 기회를 늘리고, 산업계와 실질적 교류 기회를 늘려야겠습니다. 만 세 살이 된 42서울이 국내 디지털 생태계의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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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성 대체식품이 식량 위기 풀 열쇠”

    “기존의 동물성 제품에 비해 지속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2017년 더플랜잇을 창업했습니다. 2020년 엑스프라이즈가 저와 똑같은 문제의식으로 과제를 냈을 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꼭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승전까지 치르게 돼 감격스럽습니다.”(양재식 더플랜잇 대표·사진) 글로벌 경진대회 ‘엑스프라이즈’가 ‘미래의 단백질 개발’ 부문에서 이달 10일 결승팀 6곳을 발표했다. 셀X(중국), 이터널(아르헨티나), 프로필레(캐나다), 레보푸드(호주), TFTAK(에스토니아)와 함께 국내 푸드테크 스타트업 ‘더플랜잇’이 선정됐다.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개발원을 찾기 위한 이 경진대회는 2020년 시작해 2024년에야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장기 레이스다. 전 세계 200여 개 참가팀 중 올해 2월 준결승이 치러졌고 이번에 6팀이 결승에 올랐다. 이들 팀은 기존 닭고기 또는 생선의 특성과 구조, 영양을 복제하는 대체 식품을 개발하게 된다. 엑스프라이즈 재단은 미국의 기업가 피터 디어맨디스가 세운 비영리재단으로,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등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엑스프라이즈 대회를 여는데, 미국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이 대회를 후원하는 ‘큰손’이다. 2021∼2025년 총상금 1억 달러(약 1300억 원)를 내걸고 탄소 제거 기술 개발을 장려하는 엑스프라이즈 대회를 열고 있다. 더플랜잇은 올해 2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엑스프라이즈 준결승에서 캐슈넛과 콩 단백질로 만든 제품으로 실제 닭가슴살의 형태, 맛, 영양을 90% 이상 일치시켜 결승에 올랐다. 지난달에는 오직 국산 콩, 소금, 물만으로 만든 단백 면을 내놓아 와디즈에서 1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양 대표는 “다가올 미래에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엑스프라이즈”라며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으로 식단을 건강하게 변화시켜 지구와 인류에 필요한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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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엑스프라이즈와 佛 까르띠에가 반한 한국 스타트업은 어디?[스테파니]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최근 세계적 명성의 글로벌 창업경진대회들에서 한국 스타트업들의 승전보가 들려와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이달 10일 미국 ‘엑스프라이즈’는 ‘미래의 단백질 개발’ 부문 결승 진출팀 6곳을 발표했는데 국내 푸드테크 스타트업 ‘더플랜잇’이 여기에 포함됐습니다. 같은 날 프랑스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는 동아시아 지역 어워드 1등으로 국내 멘탈 케어 스타트업 ‘포티파이’의 문우리 대표를 선정했습니다. 두 창업경진대회는 어떤 대회이고, 한국의 스타트업들은 어떤 강점을 인정받고 있는 걸까요.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엑스프라이즈의 선택…‘더플랜잇’의 대체 닭가슴살엑스프라이즈는 미국의 기업가 피터 디아만디스가 1994년 만든 비영리재단입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계적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등이 이 재단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어요. 인류가 당면하는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같은 이름의 창업경진대회를 엽니다.혁신의 대명사로 통하는 미국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엑스프라이즈를 후원하는 ‘큰 손’입니다. 2021년 지구의 날(4월 22일) 머스크는 총상금 1억 달러(약 1300억원)를 내걸고 엑스프라이즈에 4년짜리 장기 프로젝트 과제를 냈습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라’였는데요. 연간 1000t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100년 이상 격리하는 기술을 요구하는 과제입니다. 지난해 중간심사 수상자로 뽑힌 15개 팀이 각각 100만 달러(13억 원)를 받았고, 2025년 지구의 날(4월 22일) 발표되는 최종 우승자는 5000만 달러(665억 원)를 받게 됩니다. 엑스프라이즈는 현재 △생명 다양성 △기후와 에너지 △딥테크 △식량·물·폐기물 △건강 △교육 △우주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0일 결승 6개 팀을 발표한 식량 부문의 과제는 ‘XPRIZE Feed the Next Billion(엑스프라이즈는 미래의 10억 명을 먹여 살린다’입니다. 2050년 세계 인구는 90억 명으로 현재보다 약 10억 명 증가하고 고단백 식품에 대한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단백질 대체식품 공급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과제입니다. “육류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현재의 글로벌 먹이 사슬이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기존의 동물성 제품에 비해 더 영양가 있고 환경친화적이며 지속 가능한 대안을 필요로 합니다. 닭고기와 생선을 시작으로 식품의 미래를 형성하기 위한 혁신과 탐구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캐롤라인 콜타 엑스프라이즈 프로그램 책임자) 엑스프라이즈는 2020년 미래의 단백질 식품을 개발하는 이 경진대회를 시작해 올해 2월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서 준결승을 치렀습니다. 전 세계 200여 개의 신청팀 중 심사를 거쳐 14개국 28개 팀이 준결승에 올랐고, 이번에 한국의 ‘더플랜잇’ 등 6개 팀이 결승팀으로 압축됐습니다. 최종 우승자는 내년 초에 가려질 예정입니다.더플랜잇은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과 이롬의 생명과학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박사과정을 밟던 양재식 대표가 2017년 설립했습니다. 양 대표는 엑스프라이즈라는 4년 간의 장기 레이스에 왜 뛰어들었을까요. 그는 “식물성 고단백 식품을 만들어야 미래 세대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엑스프라이즈의 문제의식이 더플랜잇을 창업할 때 가졌던 생각과 일치해 참여했다”며 “결승전까지 치르게 돼 감격스럽다”고 합니다. 올해 2월 아부다비에서 열린 엑스프라이즈 준결승은 뭘 어떻게 심사한 걸까요. 양 대표는 말합니다. “실제 닭가슴살과 크기, 영양, 식감이 90% 이상 같아야 했습니다. 식품과학자와 유명 요리사로 이뤄진 심사위원 8명이 대체육을 심사했어요. 다른 양념은 하지 않고 구워서 소금만 뿌려 내면 심사위원들이 맛을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저희는 캐슈넛 등 견과류와 콩단백질 등으로 실제 닭가슴살의 맛을 구현했어요. 내년에 열릴 결승전은 식품 양산에서 판매까지 기술적 측면과 구현 가능성을 전반적으로 평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700만 달러(약 91억 원), 2등은 200만 달러(26억 원), 3등은 100만 달러(13억 원)를 받게 됩니다. 엑스프라이즈 재단의 피터 디아만디스 대표는 ‘엑스프라이즈가 상금을 내건 경진대회를 여는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인간 정신의 가장 강력한 유인인 ‘중요해지고 싶은 욕구’를 십분 활용하는 전략이다.”●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의 선택…포티파이의 ‘마인들링’10일 프랑스 파리 살 플라옐 극장에서 열린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시상식에는 국제 인권 변호사이자 ‘정의를 위한 클루니 재단’의 공동 창립자인 아말 클루니가 흰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개회사를 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이기도 합니다. “저의 목표는 모두를 위한 평등한 정의입니다. 저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여성의 경제적 평등이 달성되면 세계 경제에 12조 달러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여성의 역량 강화에 사용되는 자선 보조금의 비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게 현실입니다.”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까르띠에’가 후원하는 창업경진대회입니다. 2006년 시작해 올해 16회를 맞았습니다. 까르띠에가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비즈니스 스쿨과 파트너십을 맺고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주도할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가들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시릴 비네론 까르띠에 최고경영자(CEO)는 말합니다. “까르띠에에 있어 여성은 끝없는 영감의 원천으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까르띠에는 더욱 평등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여성들을 지지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는 전 세계 9개 지역 어워드와 두 개의 특정 주제 어워드(과학기술 선구자 부문, 다양성·공정성·포용성 부문)로 신청을 받습니다. 11개의 어워드마다 1~3등 수상자를 발표하는데요. 1등은 10만 달러, 2등은 6만 달러, 3등은 3만 달러를 받습니다. 그런데 상금보다 어쩌면 더 값진 걸 받습니다. 세계적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의 기업가 정신과 리더십 교육, 까르띠에의 맞춤형 멘토링과 네트워킹 기회 등이 주어집니다.이번에 동아시아 지역 어워드 1등을 받은 ‘포티파이’의 문우리 대표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분당서울대병원 전문의를 거쳐 정신건강 진단과 치료를 돕는 스마트폰 앱 ‘마인들링’을 2020년 개발했습니다. 올해 1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박람회인 미국 CES에서 혁신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까지 받았습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맞춤형 심리 치료를 제공하는 ‘마인들링’이 지친 현대인들을 달래준다는 평가입니다. 문 대표에 앞서 이 대회는 한국인 결선 진출자 5명을 배출했습니다. 친환경 웨딩 서비스와 디자인을 제공하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이경재 대표(2010년), 업사이클링 패션제품을 만드는 ‘REBLANK’의 채수경 대표(2010년), 마늘로 만든 친환경 접착제를 생산하는 JR Co.의 이진화 대표(2013년), 효소 발효 초컬릿을 만드는 ‘황후’의 장지은 대표(2014년), 제로 웨이스트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공공공간’의 신윤예 대표(2017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4년에 이 대회를 취재하면서 황후의 장지은 대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방 전문대를 나와 2010년 자본금 1000만 원으로 회사를 차렸던 장 대표는 당시 “와인과 치즈 등 발효의 대가인 프랑스인들이 관심을 보여 자신감을 얻었고 국제적 인맥을 갖게 돼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2024년 에디션은 다음달 30일까지 이 행사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전은 가슴이 뛰는 일이죠 . 가슴이 시키는 그 도전을 응원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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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들섬 흑역사, 이제는 끝내야 한다[광화문에서/김선미]

    노들섬은 요즘 말로 ‘찐 노을 맛집’이다. 서울 용산의 빌딩 숲 앞에 펼쳐진 한강 한복판의 이 인공섬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입지다. 강폭이 영국 템스강의 3배, 프랑스 센강의 6배에 달하는 한강이 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바라볼 수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노들섬은 처음에는 섬이 아니었다. 백사장이 깔린 쉼터였다. 1960년대 한강 개발을 맡은 민간업체가 소유해 시민들의 접근이 어렵게 된 노들섬을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사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하지만 ‘부유층을 위한 전유물’이라는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노들문화회관’이라고 이름 지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서울시는 오페라하우스 설계 공모작을 두 차례 내고도 실현시키지 못해 세계 건축계에서 ‘양치기 소년’이 됐다. 고 박원순 시장은 2012년 노들섬을 주말농장용 텃밭으로 만들고 꿀벌까지 키웠다. “환상의 입지에 왜 텃밭을…”, “노들섬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지금의 노들섬 건물은 복합문화기지를 표방해 500억 원을 들여 2019년 문을 열었다. “보존에 매달렸으면 작은 정자나 세울 것이지, 이도 저도 아닌 노들섬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7월 자신의 네 번째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한 오세훈 시장은 올해 2월 ‘매력 서울을 위한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을 선언하며 첫 대상지로 노들섬을 지목했다. ‘한강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목표로 국내외 건축가 7팀을 초청한 지명공모도 진행해 지난달 결과를 공개했다. 미국 뉴욕의 ‘리틀 아일랜드’와 ‘베슬’, 실리콘밸리의 구글 신사옥을 설계한 영국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은 “현재의 노들섬은 자연의 잠재력이 있지만 콘크리트 옹벽으로 둘러싸여 감동이 없다”며 한국의 산을 형상화한 공중 보행로를 제안했다.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를 설계했던 김찬중 건축가는 “이촌한강공원과 노들섬을 잇는 무빙 캡슐 안에서 시민들이 ‘고요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서울시가 건축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노들섬은 제게 ‘아픈 손가락’ 같은 공간”이라는 오 시장의 ‘진심’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열정이 지나쳐 서울시가 조급한 행보를 보일까 우려된다. 서울시는 이번 공모안을 토대로 내년에 본설계를 진행해 2026년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모안을 본 건축계는 “비정형 건축 위주로 지명한 게 아쉽다. 눈에 확 띈다고 창의와 혁신은 아니다”, “서울시가 공모안의 장점을 취합한다며 어설픈 ‘짬뽕’안을 만들까 걱정이다”라고 한다. 요즘 전 세계인이 한국을 주목한다. 최근 루이비통이 잠수교에서 진행한 패션쇼는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우리의 진가를 정작 우리만 모르는 건 아닐까. 그동안 가치를 몰라봐 준 노들섬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번이 노들섬을 귀하게 만들 절체절명의 기회다. 국가의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랜드마크는 형태보다 그 안에 담을 가치부터 깊게 성찰해야 한다. 이후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방향이 결정되면 정권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노들섬의 흑역사를 끝낼 수 있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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