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쿠르드족은 한 번도 독립 국가를 이뤄본 적이 없는 세계 최대의 소수 민족이다. 많게는 45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터키 남동부,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 이란 북서부에 걸친 서아시아 산악지대에 흩어져 산다. 중세 십자군전쟁 때 사자왕 리처드와 겨룬 이슬람의 명장 살라딘의 후예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고원지대에 부족별로 거주하다 보니 통합을 이룰 수 없었고 주변 국가의 끊임없는 견제와 박해로 비운의 역사를 살 수밖에 없었다. ▷쿠르드족도 딱 100년 전 독립의 꿈에 한껏 부풀었던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과 터키 정부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은 쿠르드족의 독립 자치권을 약속했다. 하지만 3년 뒤 그 약속은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패전한 터키가 힘을 회복하고 승전국까지 태도를 바꾼 때문이었다. 특히 쿠르드 밀집지역인 모술과 키르쿠크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영국은 더 많은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쿠르드족을 저버렸다. ▷이후 쿠르드족은 네댓 나라로 찢긴 채 각국 정부가 내부 불만을 달래려 동원한 외곽 때리기용 탄압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터키화 정책’을 통해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고 ‘산악 터키인’이라 부르며 박해를 가했다. 이라크는 일부 자치를 허용하며 쿠르드족 회유 정책을 폈지만 저항운동이 계속되자 화학무기로 대량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런 탄압 속에 쿠르드족은 게릴라전쟁으로 맞서며 ‘쿠르디스탄’ 건설을 꿈꾸고 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2014년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면서 미국의 든든한 동맹군 역할을 했다. IS 토벌작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소탕전을 벌였고, 미국은 쿠르드족을 “IS와 맞서 싸우는 최상의 파트너”라고 격찬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말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시작하면서 쿠르드족은 토사구팽(토死狗烹)되는 처지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엔 터키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폭격을 준비하자 이 지역 미군의 이동을 지시했다. 터키의 공격을 사실상 묵인해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족에게 엄청난 돈과 장비가 들어갔다. 우리는 우리 이익이 되는 곳에서 싸울 것이다”라고 했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는 트럼프식 셈법에 동맹의 신의는 없다. 영국 총리 파머스턴 경도 1848년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국익만 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은 그대로다. 국익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동맹은 헌신짝처럼 버려질 뿐이다. 쿠르드족의 비애가 그저 남의 일일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홍콩의 반(反)중국 시위에 10대 청소년 2명이 잇달아 총상을 입으면서 다섯 달째로 접어든 홍콩 사태는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4일 밤 14세 소년이 경찰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고, 앞서 1일엔 18세 고교 2학년생이 실탄에 가슴을 맞았다. 중고교생들은 집단 동맹휴업에 나서 격렬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계엄령이나 다름없는 당국의 복면금지법 시행까지 맞물리면서 10대 젊은이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홍콩 시위는 10, 20대 ‘앵그리 영맨’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20대 초중반인 조슈아 웡 등 데모시스토당 지도부도 10대 때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태어난 이들을 좌절케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사라지고 홍콩의 자유가 말살될 것이라는 공포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이들은 당국과 경찰, 기성세대를 모두 불신하면서 이른바 선봉대 역할을 맡아 방독면과 두건으로 무장하고 경찰과 맞서고 있다. ▷홍콩 당국의 강경 대응도 기름을 부었다. 당국이 4일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전면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시행을 발표한 뒤 시위는 급격히 과격성을 띠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10대 소년의 총탄 피격을 갚아야 할 ‘피의 빚’이라고 규정하고 그 배후 책임자로 중국을 지목하며 중국계 은행과 점포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하철인 MTR에 불을 질러 MTR 운행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던 본토 출신 중국인이 폭행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홍콩 시위는 ‘중국인 대 홍콩인’의 대결로 나타나고 있다. ▷홍콩은 이제 평화를 잃었다. 눈앞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특질은 10대 청소년이 잇달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데 대한 분노와 결합해 제어하기 어려운 질풍노도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과격 시위는 당국의 유혈 진압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홍콩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걱정도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쇼핑의 중심지로 불리던 홍콩은 점차 ‘유령도시’가 되고 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은행과 쇼핑몰도 문을 닫았다. 본토에서 대기 중인 무장 군경의 진입도 우려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일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어떤 힘도 중화민족을 막지 못한다”고 했다. 홍콩은 ‘자유주의 대 민족주의’의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 자유주의의 대의가 민족주의 광풍에 굴복했던 역사가 되풀이될까 걱정이다. 과거 한국인에겐 선망하는 여행지였고 그래서 ‘홍콩 간다’는 시쳇말로 남아 있는 그곳의 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영화 ‘국제시장’에서 피란민들이 흥남 부두에 정박한 미국 군함에 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각인된 흥남 철수 작전은 아비규환의 필사적 탈출이다. T R 페렌바크는 책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서 흥남 철수에 대해 “덩케르크(됭케르크) 철수와는 달랐다. 서둘러 배에 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없었다”고 썼다. 군 작전 차원에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기습 공세로 전멸 위기에 처했던 연합군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됭케르크처럼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미 군함에 타지 못하면 공산치하를 탈출할 길이 없었던 피란민들의 절박성은 다른 문제였지만. ▷유엔군과 민간인 20만 명의 흥남 철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 10군단 예하 제1해병사단의 장진호 전투였다. 1950년 말 개마고원에는 어느 때보다 지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옷을 여러 겹 입어도 살을 에는 추위를 막을 수 없던 장병들의 손과 발은 동상으로 하얗게 변했다. 수통의 물도, 캔 속의 전투식량도 얼어버렸다. 수류탄은 불발되기 일쑤였고, 차량은 시동 걸기가 어려웠다. 그런 혹한 속에서 미 해병들은 음산한 나팔 소리와 함께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격렬하게 싸우며 퇴로를 열었다. 남쪽으로 물러서면서도 공격전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 후퇴는 ‘남쪽으로의 공격’이라고 불렸다. ▷장진호 전투는 미국인들에겐 ‘잊혀진 전쟁’이 된 6·25의 기억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공원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기념비와 함께 서 있는 조형물도 장진호의 해병 장병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장진호 전투의 유엔군 측 사상자는 약 1만7000명에 달했다. 장진호 전투는 ‘초신 퓨(Chosin Few)’라고 불린다. 즉 장진(長津·일본어 발음으로 초신)에서 압도적 병력 열세에도 온갖 고난을 이겨내 마침내 ‘선택받은 소수(chosen few)’가 된 영웅들의 전투였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장진호 전투 참전 미군 6명이 어제 가족들과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식’에 참석해 한미 동맹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어제는 미 해군과 해병대가 한국 대신 알래스카에서 합동 상륙 연습 등을 하는 극지원정역량연습(AECE)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작년부터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 훈련이 유예되면서 다른 장소를 찾게 됐다고 한다.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즘, 장진호 전투는 새삼 혈맹(血盟)의 미래를 묻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래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걸고 첫 조치로 태평양사령부의 명칭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꿨다. 미 국방부가 올 6월에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는 미국이 직면한 4대 도전으로 △패권을 추구하는 도전자 중국 △되살아난 악성 방해자 러시아 △불량국가 북한 △테러, 불법무기, 해적 같은 초국가적 과제를 꼽았다. 특히 중국은 경제·군사적 굴기를 통해 패권을 추구하면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렇듯 미국의 새 전략은 중국 러시아 북한을 핵심 위협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동맹인 한국은 이런 미국의 전략에 동의하고 함께 행동할 태세가 돼 있는가. 동맹의 전제는 공동의 위협에 있다. 과연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 나아가 휴전선 너머 북한을 겨냥한 공세적 전략에 ‘같이 갑시다’라고 외칠 수 있는가. 당장 미국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미국에 도전하는 ‘파괴자’ 중국의 굴기 지난주 나흘에 걸쳐 인도태평양사령부와 그 예하 사령부들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하와이 주도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에는 진주만을 중심으로 인도태평양사령부와 태평양함대 및 공군, 육군, 해병대 등 4개 구성군사령부가 들어서 있다. 그 관할구역은 흔히 ‘할리우드부터 발리우드까지, 북극곰부터 남극펭귄까지’라고 표현되듯 전 지구의 51%에 달한다. 태평양함대에선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과 이지스급 구축함, 태평양해병대에선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에도 직접 올라 살펴볼 수 있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슈퍼파워 미국을 지탱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그런 물리적 파워야말로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국제질서를 만드는 지도국가로서 위상을 지키는 바탕일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자유주의 제국을 구가하던 미국이지만 최근 거대한 도전들에 직면했다. 특히 인도태평양에는 보유 병력 상위 10개국 중 7개국, 핵무장 8개국 중 5개국, 미사일 보유 상위 4개국 중 3개국이 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미국은 중국이 단기적으론 지역 패권국, 궁극적으론 글로벌 우위 국가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고 본다. 이번에 방문한 각 사령부 브리핑에서도 ‘중국 견제’가 핵심적 목표임을 감추지 않았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선 중국과 충돌 일보 직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미군 관계자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활동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중국의 반발에 대해선 “우리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특히 공군 관계자는 중국을 ‘강압적으로 기존 질서를 깨는 파괴자’라고 규정했다. 남중국해에 인공 섬을 만들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등 전쟁과 평화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은 경계의 대상이다. 최근 독도 영해 침범사건에서 보듯 중-러의 연합훈련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금가는 한미동맹, 높아가는 미국의 의구심 각 사령부가 매번 브리핑 때마다 사용하는 지도는 한결같이 하와이를 중심으로 두고 태평양 인도양 북극 남극을 포괄하는 지구의 절반이었다. 수없이 등장하는 지도에는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지정학적 시각이 엿보였다. 특히 하와이에서 동북아시아를 바라볼 때 한반도는 일본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 그리고 대만을 거쳐 필리핀을 잇는 미국의 방어 제1선 바깥에 있었다. 한반도는 그 방어선과 중국 대륙 사이에 내해(內海)처럼 보이는 곳에 끼어 있었고, 남과 북이 갈라져 다른 색깔로 칠해진 경계구역 또는 완충지대(버퍼존)로 보였다. 물론 북한의 위협에 맞선 한국 방어는 인도태평양사령부의 핵심 임무다. 북-미 간 협상에 의한 외교적 해결이 모색되고 있지만 미군은 언제든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준비태세를 확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전략, 특히 중국의 팽창에 맞선 봉쇄전략 측면에서 한국의 입장을 두고선 미심쩍어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제복 입은 군인들은 한미동맹의 가치만을 거듭 강조했지만 하와이의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위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장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미 간 엇박자가 노출되고 있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따른, 나아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둘러싼 균열은 한미동맹의 지속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미 의회가 설립한 동서문화센터의 데니 로이 박사는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이 남한과의 대치를 포기하고 번영을 꾀할 것으로 가정하지만 과연 그럴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제임스 미니크 예비역 대령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동맹에 대해선 한국의 입장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면 그 이후 한미는 어떤 동맹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군 대장이 한국군 대장의 지휘를 받는 상황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로이 박사는 “미군이 외국군 지휘 아래 있던 적은 없는 만큼 정서적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이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유엔군사령관의 정전협정 관리 권한을 내세워 지휘권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한일 갈등이 증폭시킨 한미동맹 경고음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역시 뜨거운 감자였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역을 도구로 삼은 것은 문제라면서도 이것이 지소미아 종료라는 안보 문제로 확대된 데 대해 “한미일 3각 공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랄한 비판은 삼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매우 실망스럽다”는 공식 논평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역할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크리스티 고벨라 하와이대 교수는 “보복의 악순환을 깨기 위해 미국이 중립적 시작점을 제공할 수는 있으나 한일 양국의 국내 정치와 얽혀 있어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한국이 한미일 3각 체제에서 벗어나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한국의 대통령특보가 한일 갈등과 관련해 미국 대신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마당에 미국은 한국이 중국 쪽에 기운다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상협 하와이대 교수는 “미국인들은 미중 간 무역전쟁에 대해 한국으로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라고 말하면 무척 싫어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한미 간 인식차가 한국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정책 혼선 탓에 전문가들도 향후 미국의 대외전략에 대한 뚜렷한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 앞으로 미중 전략 경쟁은 격화될 가능성이 높고, 북핵 해결은 그 어떤 전망도 섣부른 예측 불가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 속에서 한미동맹의 성격과 역할은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66년 동맹이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런 초불확실성에 얼마나 대비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데이비슨 美 인도태평양사령관 “한미일, 장기적 위협에 함께 맞서야”▼ 필립 데이비슨 미군 인도태평양사령관(해군 대장·사진)은 북한의 핵 위협을 가장 먼저 꼽으면서도 중국을 ‘가장 큰 장기적 전략적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국제질서를 멋대로 왜곡하고 파괴하며 궁극적으로 대체하려고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 동맹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맹의 깊이는 경제를 초월한다. 앞으로 협상자들이 어떻게 해내는지 보자.”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미국은 유엔군사령관으로서 권한을 행사하려는 듯한데….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이 3개의 모자(주한미군·한미연합사·유엔군사령관)를 쓰고 있지만 미국에선 흔한 일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사는 한국군 사령관 아래 놓일 것이지만 에이브럼스 장군은 유엔군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중요한 권한을 보유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안보와 관련해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 “한미일 3국은 장기 전략적 위협에 맞서 함께해야 한다. 한국 일본과 각각 양자적으로든 한미일 3자적으로든 정보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도울 것이다.” 호놀룰루=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김정남·김한솔 지도자설은 가장 치욕으로 간주된다.” 반북(反北)단체 ‘자유조선’은 채널A와 이메일로 이뤄진 국내 언론 첫 인터뷰에서 “김씨 일가의 혈통을 우리 조직의 일원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끔찍한 상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북한의 정권 세습을 끊겠다는 조직에 김씨 왕조 3, 4대 종손의 수반 옹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조선은 2017년 2월 김정남 피살 직후 김한솔 가족을 긴급 피신시킨 것을 자신들의 활동 업적으로 내세웠다. ▷자유조선은 “우리는 평양을 포함해 세계 도처에 거점을 만든 국제적 조직이다. 이런 규모와 실력을 가졌기에 김한솔의 다급한 구원 요청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고 했다. 김한솔 피신 직후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의 원본도 함께 보내왔다. 당시엔 “***에게 매우 감사하다(We are very grateful to ***)”고 무음으로 처리됐지만, 원본에는 김한솔이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에이드리언과 그의 팀’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그대로 담겼다. ▷에이드리언은 올해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침입사건을 주도해 미국 수사당국에 공개 수배된 에이드리언 홍 창. 멕시코 국적의 한국계 미국 영주권자로 자유조선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다. 자유조선은 이미 체포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이 김한솔 구출에 참여한 사실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치 목적의 임시정부이기에 앞서 인도주의 단체”라며 탈북민 구출에 자신을 희생한 ‘인도적 실천·행동주의자’라고 했다. ▷예일대 출신의 수재로 알려진 홍 창은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를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탈북자 구출에도 뛰어들었고 공안에 체포된 적도 있다고 한다. 김한솔 보호 이후 ‘천리마민방위’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잠잠하던 그의 팀은 올해 들어 본격 행동에 들어갔다. 3·1절에 맞춰 ‘북조선 임시정부’를 자처한 이래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담장에 낙서를 하고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내던지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홍 창의 활동 궤적은 북한인권운동에서 북한민주화운동으로, 이후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직접적 행동, 나아가 망명정부 표방까지 반북 활동의 진화를 보여준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도 중국도 아닌 유럽 국가에서의 모험주의적 행위도 나왔으리라. 물론 그 뒤엔 미국 등 각국 정보기관과의 내밀한 커넥션도 없진 않았겠지만, 어느 나라든 외교적 마찰 사안에 나서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제 쫓기는 신세가 된 홍 창과 그 팀의 다음 행동이 궁금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북한의 기습 도발로 빛이 바랬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언론 기고문은 무척이나 공들여 쓴 글이다. ‘평범함의 위대함’이란 제목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낸 위대한 성취의 궤적을 광주에서 촛불로, 3·1운동에서 남북평화로 우리 근현대사를 넘나들며 버무려냈다. 누락이나 생략, 그로 인한 거친 비약도 매끈한 문장과 감성적 접근, 적절한 경구로 잘 감췄다. 기고문을 관통하는 주제는 난세(亂世)에 태어난 영웅과 고통 받는 범인(凡人)들의 이분법으로 읽힌다. 화려한 영웅담에 감춰진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 달리 얘기하면 ‘지도자 대 대중’ ‘권력자 대 민중’ 프레임이다. 그래서 한반도 분단의 역사도 ‘평범한 이들의 눈물과 피’에 주목한다. “분단은 개인의 삶과 생각을 반목으로 길들였다. 분단은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매장하는 방법으로, 특권과 반칙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이용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에도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전쟁의 위협과 이념의 대결이 만들어온 특권과 부패, 반인권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온전히 국민의 나라로 복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드릴 수 있어 참으로 가슴 벅차다”고까지 했다. 평양에서, 김정은 옆에서 ‘우리 사회’를 겨냥한 발언도 이런 역사관에서 나온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남북 관계는 곧 국내 문제다. 올해 우리 사회의 ‘반(反)평화세력’을 겨냥해 두 차례 발언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아직도 적대와 분쟁의 시대가 계속되길 바라는 듯한 세력도 적지 않다.” “여전히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발목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의 초당적 협력, 국론의 통합을 주문한다. 기고문에서도 “이제 남북의 문제는 이념과 정치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회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도 “보수 진보, 이런 낡은 프레임, 낡은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고 했다. 그 자리가 마련된 것도 기고문을 탈고한 직후였을 테니, 원로들의 ‘협치’ 주문에 “타협은 어렵다”고 밝힌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으리라. 분단과 냉전이 낳은 우리 사회의 비정상에 대한 인식은 문 대통령이 평생 살아오며 굳혀온 인식일 것이다. 쉽게 바뀔 리 없다. 그런 인식은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빠뜨린 채 단순화한 자기 신념이 옳을 수만은 없다. 한쪽에선 뚝심이라며 칭송하고 다른 쪽에선 쌍심지를 켤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특히나 남북 관계는 남과 북이 우선이지, 남과 남이 먼저일 수 없다. 그런데 북쪽에 짚을 건 짚고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변덕스러운 정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소신도 좋지만 북한이 무슨 망발을 해도 따끔하게 지적하지 못한다면, 그러면서 남남 관계를 우선 걱정한다면 우리 내부 갈등만 심화시킬 뿐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인식이 완고함을 넘어 집착이 되면 문제는 심각하다. 당장 주변부터 주눅 들게 만든다. 새삼 소신이랄 것도 없는 원칙적 발언마저 혹시라도 북한을 자극할까 봐 서둘러 주워 담는 게 요즘 이 정부의 장관들이다. 공무원이든 군인이든, 나아가 여당 정치인까지 할 소리도 못하게 만드는 분위기라면 더 할 말이 없다. 문 대통령이 그리는 ‘신(新)한반도 체제’,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만들어갈 새 질서는 놀랍고 멋지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실천의 과정이 보이지 않고 꿈과 의지만 넘치면 공허하다. 새삼 전직 대통령이 남긴 말이 떠오른다. 서생(書生)적 문제의식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상인(商人)적 현실감각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흔히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한다고 하면 음모론이라 치부하곤 하지만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와 스티븐 월트는 공저 ‘이스라엘 로비’를 통해 2003년 이라크전쟁도 이스라엘의 로비가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이스라엘과 친(親)이스라엘 그룹, 특히 신보수주의자(네오콘)가 이라크 침공 결정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많다. 로비의 영향이 없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광범위한 이스라엘 로비망은 한반도라고 예외가 아니다. 북한이 이란·시리아와 맺어온 ‘핵·미사일 커넥션’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 초 북한의 미사일 판매 중단을 조건으로 10억 달러 규모의 대북투자를 제안했고 협상은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미국이 개입하면서 중단됐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이란 핵개발 뒤편의 ‘북한 그림자’를 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스라엘 로비는 한층 거리낌 없고 노골적이다. 한술 더 뜨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는 최근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면서 대놓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총선 선거전을 거들기도 했다.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낼 트럼프의 신(新)중동평화구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주적(主敵) 이란에는 가차 없는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해 제재를 강화해온 트럼프는 최근 이란의 원유 수출 길을 전면 봉쇄했다. 앞서 2주 전엔 이란의 최정예부대 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함으로써 이란 체제의 붕괴 의도까지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전임 행정부의 ‘정책 뒤집기’를 넘어 후임 행정부가 아예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는 ‘대못 박기’ 수준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물론 그 바탕엔 ‘셰일오일 혁명’ 덕분에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위상 변화가 있다. 거기에 판을 세게 흔들고 그 혼란 속에 이득을 챙기는 트럼프의 승부 본능이 더해지면서 화약고 중동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이처럼 중동 문제에 집중하면서 트럼프는 북한에는 “서두를 것 없다”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에겐 중동도, 한반도도 같은 게임판 위에 있다. 한쪽은 조이고 다른 쪽은 늦추며 쥐락펴락하다 보면 대선이 한창일 내년 중반쯤엔 어느 쪽이든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리라. 특히 이란은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만 해도 외교적 승리로 선전할 기세다. 정작 다급해진 것은 김정은이다. 내부적으로 협상라인을 교체하고 미국에도 카운터파트를 바꾸라는 억지소리를 하는가 하면, 지금 시점에 서두를 이유가 없는 러시아 방문 길에도 나섰다. 외곽에서 변죽을 울리며 미국의 변심을 노리겠다는 심산이겠지만 트럼프가 동요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마치 북한에 ‘한 시즌 휴장’ 팻말이라도 내건 듯한 분위기다. 문제는 김정은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그는 최근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결렬에 대한 실망과 자책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슨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듭 다짐하듯 말했다. “방금 말했지만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재 해제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대목을 당장 김정은이 뭔가 방향 전환을 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제재 해제 요구를 접는다면 그 대신 더 무리한 요구를 내세울 게 뻔하다. 하지만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자력갱생’이 주민들을 끝없는 고통으로 내모는 짓임을 그 역시 모를 리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과감한 결단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오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작년 5월 24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일 것이다. 그날 문재인은 워싱턴 방문을 마치고 새벽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체류 24시간, 왕복 비행 30시간이 넘는 1박 4일의 이례적 일정이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도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특히나 트럼프의 원맨쇼에 가까운 기자회견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옆에 앉아 지켜보면서 느꼈을 씁쓸함이란 쉽게 씻기 어려웠을 터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았을 그날, 문재인은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침 일찍 들려온 소식은 북한의 원색적인 미국 비난 담화였다. 북한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며 호기롭게 ‘핵 대결’까지 경고했다. 가뜩이나 6월 12일로 잡힌 싱가포르 북-미 회담을 두고 “열리면 좋지만 안 열려도 괜찮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단 북한을 믿어보자며 설득했을 문재인으로선 불안감을 씻어내기 어려웠으리라. 이어 낮부터 들어온 소식은 잠시 그런 불안을 내려놓게 했다. 북한이 약속한 대로 풍계리 핵실험장 시설을 폭파했고, 저녁엔 북한의 공식 발표도 나왔다. 하지만 밤늦게 트럼프가 북-미 회담을 전격 취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청와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문재인은 참모들을 관저로 긴급 소집하고 자정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열었다. 이 모든 게 귀국한 지 24시간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다행히도 이튿날 김정은이 자세를 한껏 낮춘 담화를 내고, 트럼프가 곧장 “좋은 소식”이라고 화답하면서 한바탕 소통은 일단 진정됐다. 그 다음 날 문재인은 전격적으로 두 번째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김정은이 그간 거부했던 북-미 협상과 남북 회담 재개 확답을 받아냈다. 하지만 북-미 사이에 낀 존재로서 한순간에 속수무책의 처지에 빠질 수 있음을 실감한 그날의 경험은 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을 것이다. 이번 1박 3일 워싱턴행(行)에도 만만찮은 복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노이 결렬 이후 멈춰선 대화의 복원을 위해서지만 자칫 팽팽한 북-미 간 갈등 속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거나 양쪽에서 뒤통수를 맞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이쯤해선 그간의 역할을 다시금 되짚어봐야 한다. 아슬아슬한 위기 때마다 불을 끄는 데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한반도의 당사자로서 진정한 중재자 역할을 했는지 말이다. 양측을 한자리에 앉히는 데만 급급했을 뿐 나머지는 둘 사이에 맡겨놓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당장의 합의만 기대했던 것은 아닌지. 줄곧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선순환을 얘기하면서 정작 한미 관계는 빠뜨리며 트럼프와의 만남을 거북하게 여겼던 것은 아닌지. 그러니 북-미가 뭐라도 안 풀리면 늘 닦달하거나 눈 흘기는 대상이 된 것은 아닌지…. 중재자나 촉진자 그 명칭이 뭐든 중간에 있는 사람은 늘 고달플 수밖에 없다. 아쉬우면 찾는 존재라지만 샌드백이나 쿠션 같은 ‘완충자’ 신세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문재인은 어제도 “역사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겠다”고 했다. 사실 그런 자신감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해결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토로했던 게 재작년 하반기다. 중재자의 힘은 자신감이나 절박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신뢰감에서 나온다. 하노이 결렬의 근본 원인도 북-미가 서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불신 속에 등진 양측을 되돌려 앉히려면 적극적 중재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이번 트럼프와의 만남에서 북한 비핵화의 목표부터 공유하고 중재자 자격을 확인받아야 한다. 김정은은 다음 문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 특히 그가 날리는 트윗에선 그의 기분이나 심사를 읽어야지, 너무 꼼꼼히 따지다간 수렁에 빠지기 일쑤다. 디테일 부족은 물론이고 사실 여부마저 문제가 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트럼프는 지난주 ‘추가 대북제재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는 트윗을 올렸는데, 그 제재가 뭔지를 놓고도 아직껏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가 그런 트윗을 날릴 때마다 죽어나는 것은 아랫사람들이다. 백악관 참모들은 이번 트윗에 대해 전날 발표한 중국 해운사 2곳의 제재를 번복하는 게 아니라 조만간 나올 새로운 제재 계획을 취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다른 제재 계획이라곤 없었고 거짓으로 둘러댄 것이라고 전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마저 의회 청문회에서 자기 소관이 아니라 모른다는 취지로 얼버무려야 했다. 행정부의 정책결정 절차를 뒤집어 혼란에 빠뜨리는 ‘미친 동네(crazy town)’의 수장 트럼프 밑에서 군인, 경영인 출신 참모들이 하나같이 버티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폼페이오의 건재함은 두드러진다. 대통령과 좀처럼 충돌하지 않는 폼페이오의 처신은 군인, 사업가, 하원의원을 거친 야심가인 데다 고통스러운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에피소드 하나. 트럼프는 재작년 대통령 취임 이튿날 중앙정보국(CIA)을 방문해 직원들을 향해 시종 자기 자랑과 허세 가득한 횡설수설을 늘어놓았다. 급기야 새 국장 지명자 폼페이오를 끌어들였다. “나는 올해 주간 타임 표지에 열다섯 번 나왔어요. 난 그게 깨질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이크, 어떻게 생각해요.” 폼페이오는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죠.” 어쨌든 트럼프는 이번 제재 철회 트윗으로 김정은에게 ‘대북정책은 누가 뭐래도 내가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했다. 혹시라도 모자랄까 봐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은 김정은을 좋아한다”는 말까지 하도록 했다. 북한이 트럼프 참모들을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두 정상 간 케미스트리는 신비할 정도”라고 밝힌 대목에 화답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과연 그것은 약효가 있었다. 미국의 제재 직후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전격 철수했던 북한은 인력 절반을 복귀시켰다.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맹비난하던 대남 공세 수위도 낮췄다. 기류를 보겠다는 심산이겠지만 물밑 외교의 공간을 열어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바마 케어 폐지, 국경 장벽 강행 등 묵은 과제들을 밀어붙이며 거침없는 대선 행보에 들어갔다. 대외정책도 예외일 리 없다. 특히 북핵 문제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동물적 본능을 가진 트럼프가 결코 간과할 대상이 아니다. 트럼프는 이미 김정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달 초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 재건 움직임에 “약간 실망했다”면서도 “두고 보자. 1년쯤 뒤에 알게 될 거다”라고 했다. 앞으로 1년 자신의 대선 일정표에 북한도 비핵화 시간표를 맞추라는 주문이다. 하노이 담판에서 김정은에게 “더 통 크게 가자(go bigger). 다걸기(all-in) 하라”고 재촉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트럼프에게 다 걸어도 될까. 그가 재선에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다. 더욱이 눈에 보이는 현물이 아니고선 성에 차지 않을 트럼프인데…. 하지만 트럼프가 아니고선 누가 애송이 불량국가 수괴와 얼굴을 맞댔겠는가. 김정은 하기에 따라선 당장 워싱턴 방문 티켓도 내밀 것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1년 안에 만족할 성과를 보지 못하면 트럼프는 난폭한 파괴자 본색을 드러낼 것이기에.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2002년 3월 탈북자 25명이 중국 베이징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기습적으로 진입한 사건은 북한 인권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킨 계기였다. 이들이 대사관 진입에 성공해 감격의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탈북을 지원한 비정부기구(NGO)가 찍은 영상에 담겨 방송된 이후 상하이, 선양까지 중국 내 외국 공관과 국제학교가 집단 탈북의 루트로 몸살을 앓았고, 유엔 인권이사회의 첫 대북 결의안 통과와 미국 의회의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발했다. ▷그로부터 17년, 이번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벌어진 집단 침입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2일 마드리드 북한대사관에 모형 총과 벌목용 칼, 납 몽둥이를 들고 난입해 컴퓨터와 USB메모리 등을 탈취한 괴한 10명은 한국과 미국, 멕시코 국적자로 파악됐다고 스페인 정부가 26일 밝혔다. 이들은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출국했고 미 연방수사국(FBI)에 정보를 넘기기도 했다. 그 배후를 자처한 ‘자유조선’은 “평양 정권의 전 세계 대사관들은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광고 수단일 뿐”이라며 반북(反北) 활동을 정당화했다. ▷자유조선은 재작년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된 뒤 그 아들 김한솔을 보호하고 있다고 밝힌 조직이다. 당초 ‘천리마민방위’로 활동하다 올해 3·1절을 계기로 이름을 바꿔 ‘북조선 인민을 대표하는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말레이시아의 북한대사관 담장에 ‘김정은 타도’ ‘우리는 일어난다’는 낙서를 하고,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바닥에 내던지는 퍼포먼스도 했다. 암호화폐 거래를 통해 ‘해방 이후 자유조선 방문을 위한 비자’를 팔기도 한다. ▷그동안 자유조선은 구성원 소재지 등 모든 게 미스터리였지만 이번 대사관 침입으로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 그 주동자는 미국에서 ‘북한자유(LiNK)’라는 NGO를 설립했던 대북 활동가라고 한다. 과거 탈북민 사회에선 망명정부를 만들고 그 구심점으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모시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한때의 아이디어에 그쳤다. 김씨 왕조의 4대 종손 김한솔의 보호자임을 내세워 전투적 행위까지 나선 반북 활동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궁금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점진적 비핵화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해법(total solution)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합의될 때까진 아무것도 합의된 게 아니다. 북한은 핵·미사일은 물론이고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약속해야 한다.” 사흘 전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워싱턴 좌담회 발언에 대해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대북정책의 ‘극명한 코스 변경’이라고 평가했다. 초강경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1월 말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동시적 병행 접근’을 제시했던 협상파 비건마저 그간의 유연한 자세에서 벗어나 강경 노선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비건에 그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가세했다. 그는 김정은에게서 적어도 6차례 비핵화 약속을 직접 들었다며 “말이야 쉽다. 행동만이 가치가 있다”고 압박했다. 비건 말대로 ‘미국 정부의 완전한 입장 통일’을 과시하려는 모양새다. 이런 강경 기조를 두고 일부 매체는 “이제 협상은 끝장났다(doomed)”고 했다. 보수 성향의 전문가들도 “최대지향주의(maximalism)는 곧 외교의 사망이다” “김정은에게 던진 완전한 항복(total surrender) 요구다”라고 했다. 이들 말대로 협상이 종말을 고했다고 진단하기는 이르지만 북-미 간 대화의 교착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사실 비건의 두 차례 공개 발언을 꼼꼼히 살펴보면 하노이 회담 전후로 말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강조점이 달랐을 뿐이다. 그가 제시한 ‘동시적 병행 접근’이 북한이 고집하는 ‘단계적 동시 행동’과 같은 말은 아니었다. 그는 제재 완화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실패도 선택일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유연한 접근법이 자취를 감춘 것은 분명했다. 워싱턴 좌담회에서 비건은 표현의 자유마저 잃은 듯했다. 그건 마치 내키지 않는 반성문을 읽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 좌담회 참석자는 “북한식 자아비판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미국의 협상파는 하노이 결렬의 첫 희생양이 됐고, 그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북한의 대미 협상라인이 혹독한 총화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만큼 ‘외교의 공간’이 협소해졌고 갈수록 소멸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강경론 대두는 자폐(自閉) 모드로 들어간 북한의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북한은 허공의 인공위성을 향해 도통 알 수 없는 무언의 메시지만 보내고 있다. 비건조차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동향에 대해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북한의 수상쩍은 움직임은 미국의 경계심을 높였고 강경파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하면서 시작된 북-미 대화 1년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차 싱가포르 회담은 취소 사태까지 겪고서야 어렵게 성사됐고, 이후에도 양측이 한 차례씩 고위급 방문을 취소하는 등 곡절이 많았다. 그렇게 하노이까지 이어졌지만 두 정상이 낯 붉히지 않고 헤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 북-미 간에는 대화 채널이 단절된 채 서로 엇갈리는 신호만 발신하고 있다. 아직 양측의 말은 조심스럽지만 이대로 가다간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외교의 사망을 알리는 부고장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북한엔 숙고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교의 문을 닫아버릴 요량이 아니라면 오해와 불신을 낳을 행동은 금물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사이가 가까워지는 건 시간이 걸리지만 멀어지고 갈라서는 건 순식간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노이 담판 결렬 후에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을 두고 ‘그만큼 독특한 사람도 흔치 않을 거다(quite a guy, quite a character)’라고 했다. 찬사까진 아니지만 꽤나 긍정적인 칭찬에 가깝다. 워싱턴에 돌아가선 ‘매우 영리하고 날카로우며 종잡기 어렵다(mercurial)’고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왜 그를 좋아하지 말아야 하지?’라고 반문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트럼프를 두고 전 세계 독재자들을 치켜세우는 버릇이 또 도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오토 웜비어 사망에 대해 김정은을 변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거센 비난도 자초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독재자 칭찬이 그들을 동경하거나 두둔하려는 것일까. 그건 누구도 못 말리는 승부 근성에서 나온, 대단한 인물들을 상대하는 ‘나는 한 수 위’라는 셀프 칭찬이 아닐까 싶다. 트럼프는 하노이 담판에서도 승부사 본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작은 거래를 큰 거래로 키우면서 판을 흔들었다. 그는 김정은을 향해 “더 통 크게 가자(go bigger). 다걸기(all-in) 하라”고 재촉했다. 당황한 김정은이 끝내 거부하자 다음에 보자며 악수하고 철수해 버렸다. 그래 놓고 다음 게임을 기약하자며 립서비스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어려서부터 ‘킬러’로 길러졌다.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뉴욕의 부동산업자로 자수성가한 인물. 아들에게 루저(실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킬러가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13세 아들을 혹독한 군사학교에 보냈다. 프레드는 브루클린의 험악한 동네에서 아파트 임대료를 받으러 다닐 때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프레드는 아들에게 문 한쪽 옆으로 비켜서 있으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답하길 “저 작자들은 때로 문을 향해 바로 총을 쏘거든”. 그렇게 자란 트럼프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다는 뉴욕 부동산업계의 대표주자가 됐다. 킬러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아예 자신은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자랑해왔다. “최고의 능력자들을 고용하고, 그들을 신뢰하지 말라.” 그는 대통령이 돼서도 사법부든 정보기관이든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노골적인 불신을 표출했다. 김정은과의 담판을 앞두고도 트럼프는 별도의 두 개 라인을 가동시켰다. 일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전적인 협상 권한을 주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는 그동안 배제시켰던 매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거친 요구안을 내밀었다. 오직 자신에 대한 충성심만 강요하는 트럼프에게 참모들 간 협력은 애초부터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플랜B를 준비하지 못했다. 폼페이오-비건 라인과 만든 합의문 초안에 트럼프까지 구슬리면 샴페인을 터뜨릴 만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승부는 피했어야 한다. 그토록 원하던 톱다운식 담판에서 트럼프의 일격에 휘청거리는 처지가 됐다. 어쩌면 결렬이라 하기도 애매한 결말에 아직 어리둥절해 있는지도 모른다. 최선희가 전한 대로 ‘앞으로 조미 거래에 의욕을 잃지 않으시나 하는…’ 딱 그런 심정일 것이다. 옹립된 젊은 독재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트럼프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최강의 권력을 쟁취하고도 낮은 지지도와 숱한 도전 속에 분투하는 트럼프와 인민 100% 지지라는 미명 아래 권력층에 얹혀 있는 김정은이다. 국가 파워의 격차는 제쳐놓더라도 승패는 진작 정해져 있었다.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김정은이 착각했던 현실을 모질지만 은근하게 일깨워줬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의 주요 소재는 대통령의 유고(有故)에 대비해 승계 원칙을 정한 수정헌법 25조다. 대통령 국정연설 도중 발생한 폭탄테러로 백악관과 내각, 의회 참석자 전원이 사망하면서 승계순위 말석의 주택도시개발장관이 졸지에 대통령직을 맡아 위기를 헤쳐 나가는 스토리다. 그런 그마저 아내 사망 이후 받은 심리상담 기록이 유출되면서 직무수행 능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급기야 장관들이 따로 모여 그의 직무 박탈을 논의한다. ▷미 수정헌법 25조 중 제4항은 내각 과반수가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부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리면 의회에 통보하고 대통령이 거부하면 상·하원 3분의 2 찬성으로 직무를 박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실제 발동된 적도, 심각하게 거론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겐 예외인 듯하다. 의회의 무성한 탄핵 논의와는 별도로 지난해 9월 뉴욕타임스엔 “일군의 관료들이 수정헌법 25조를 적용하려는 속삭임이 진작부터 있었다”는 익명의 기고문이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세력의 일원이다’란 제목으로 실렸다. ▷한낱 음모론으로 여겨졌던 트럼프 직무 박탈 논의가 실제 행정부 안에서 벌어졌다는 증언이 최근 나왔다. 트럼프가 2017년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던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경질한 직후 로드 로즌스타인 당시 법무부 부장관이 트럼프의 직무 박탈을 위해 장관들을 설득하려 했다고 FBI 국장대행이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직무수행 부적합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도청기로 대통령과의 대화를 녹음하는 방안도 거론됐다고 한다. ▷폭스뉴스는 이를 두고 “불법적 쿠데타 시도”라고 규정했고, 트럼프도 즉각 맞장구쳤다. 그러자 그런 논의를 과연 무력으로 정권을 전복하는 쿠데타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까지 낳고 있다. 이미 악성 나르시시즘, 공감능력 결핍, 경조증(輕躁症) 같은 수많은 정신의학적 의심을 받아온 트럼프다. 재작년 의회에선 트럼프에게 핵무기 버튼을 맡겨도 될지 논의하는 청문회도 열렸다. 하지만 트럼프는 끄떡없다. 논란으로 논란을 덮는 대통령을 누가 이기랴.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흔히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고 하지만, 그건 잘 준비된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일 따름이다. 정상 간 협상이 실패하면 리스크가 매우 큰 만큼 사전 조율 없는 회담은 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1986년 10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두 번째 회담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만난 두 정상의 회담은 꼬박 이틀간 이어졌지만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한 채 끝났다. 향후 10년간 모든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획기적 합의 직전까지 갔지만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을 실험실 연구로 제한하라는 소련의 요구가 끝내 발목을 잡았다. “그 한마디 때문에 모든 걸 수포로 돌리렵니까.”(레이건) “나도 같은 말을 할 수밖에요. 나로선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고르바초프) 두 정상은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도 잡지 못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그건 나도 모릅니다.” 황망히 회담장을 빠져나오는 두 사람의 풀 죽은 얼굴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다. 특히 레이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한 측근은 이렇게 전했다. “그는 극도로 화가 나고 하도 기가 막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고르바초프만 남아 기자회견을 갖고 “실패가 아니다”라고 강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언론은 일제히 ‘회담 실패’를 타전했다. 사실 실패는 이미 1년 전 첫 회담에서 예고된 일이었다.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만난 미소 정상은 노변정담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연출했다. 하지만 둘의 관심사는 완전히 달랐고, SDI 문제는 전혀 견해차를 좁힐 수 없었다. 사흘간의 ‘교제’ 끝에 나온 공동성명에는 평화 정착과 군축을 위해 노력한다는 원론적 합의만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일단 출발은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정상 간엔 친필 서신이 빈번히 오가고 양국 국민을 향한 신년인사가 TV로 중계됐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실망감에 지쳐갈 즈음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것이 레이캬비크 회동이었다. 의전이나 격식 없이 단둘이 만나 돌파구를 찾자는 데 레이건도 동의했다. 결과는 참담했고 한동안 상호 비난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역사는 레이캬비크 회담을 냉전 종식의 출발점으로 기록한다. 속내를 탈탈 털어내며 막판까지 몰고 간 논쟁 덕분에 두 정상은 어디까지가 가능한 것인지 확인했다. 고르바초프는 핵 군축과 SDI 연계전략을 포기했고, 레이건도 대소 강경정책을 누그러뜨렸다. 그 결과 1년 뒤인 1987년 12월 두 정상은 미 워싱턴에서 중거리핵전력(INF) 폐기 조약에 서명했다.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양측은 이제야 본격 실무협상을 벌인다고 한다. 지난주 평양에 다녀온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갈 길이 멀다”면서도 내주엔 합의문안 조율에 들어간다고 했다. 가능한 수준에서 초안을 만들고 정상 간 담판으로 넘기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싱가포르 1차 회담 때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더 촉박하다. 그래서 적당한 타협, 막판 졸속합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차 회담 전 “성과가 없으면 협상장을 떠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잘될 것”이라며 기대감만 부추기고 있다. 물론 회담 결렬의 리스크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고두고 후환을 남길 불완전한 합의보다는 끝장까지 가보는 ‘눈부신 실패’가 나을 수 있다. 비건 대표도 방북 전 강연에선 “실패는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진부한 말이 있지만, 실패는 결과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한낱 레토릭일 수만은 없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설 연휴 이후 내각 개편이 예고됐다. 이번 개각은 정치인 장관들이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당으로 복귀하고 출마를 준비할 장관들도 물러나는 만큼 꽤 큰 규모로 예상되면서 여의도에선 벌써부터 교체될 장관 자리와 후보들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게 통일부 장관이다. 조명균 장관이 총선에 출마할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신뢰도 여전하다는데, 그의 교체를 전제로 하마평이 난무하고 있다. 총선 변수를 빼고 교체가 거론되는 다른 부처와 달리 통일부는 지난해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아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장관이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지만, 그럼에도 특별한 사유 없이 ‘우수’ 기관의 수장 교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는 의아스럽다. 청와대에선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면 통일부의 역할도 달라질 것인 만큼 새로운 리더십이 긴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까진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관리형 대북 전문가가 필요했지만, 이젠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적극적 활동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조 장관의 고분고분한 샌님 스타일을 답답하게 여겨왔고, 조 장관 스스로도 버겁다며 몇 차례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인지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이 죄다 정치인이다. 송영길 우상호 이인영 홍익표 등 현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름도 여전히 나온다. 이들 중엔 총선 포기는 물론 의원 배지까지 던지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장관 자리 마다할 사람 없을 테고 헛물켤망정 이름 석 자 올려보자는 심산도 없지 않겠지만, 왜 하필 통일부 장관일까. 이들은 모두 86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상당수는 이른바 ‘NL 주사파’로 통하던 전대협의 핵심 세력이었다. 이들에게 남북 관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은 억누르기 힘든 열정, 일종의 로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운동권 전력이 마치 북한 전문가 경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아가 통일부 장관직을 마치 그들이 예약해 놓은 자리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그들에게 낡은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자는 게 아니다. 반공(反共)이 최상의 가치이던 시절, 그들이 던진 도발적 메시지는 이념의 굴레에 갇혀 있던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때 북한과의 내통 또는 북한 추종을 의심받은 그들이지만 지금도 그런 의식의 잔재가 남아 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 실제 장관을 맡으면 관료나 명망가보다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한 축은 남남(南南) 관계다. 남북이 더욱 가까워지면서 남남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북 성과 못지않게 우리 내부적으로 좌우, 여야를 아우르는 균형 감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과연 지금이 86세대의 로망을 실현하겠다고 나설 때인가. 그들의 열망엔 통일부 장관직은 누구든, 아니 아무라도 할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하긴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맡아 반짝 퍼포먼스를 보여준 정치인은 대선주자까지 올랐으니 그들이라고 욕심을 못 낼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전개된 남북 관계는 어땠는지, 나아가 그 정치인의 현재는 어떤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사가 만사다. 이 말을 자주 했다던 전직 대통령의 인사도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결국 판단은 대통령의 몫이다. 통일부 장관 인사는 대통령이 남북 관계와 남남 관계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86세대 정치인들도 혹시나 목을 빼고 기다리기보다는 그간 세상에 보여준 자신들의 모습이 어땠는지부터 자문해야 하지 않을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그는 수업에 전혀 안 들어간다. 강의계획서도, 노트도 있을 리 없다. 시험 전날 밤늦게까지 사교클럽에서 진탕 놀다 들어와선 커피를 잔뜩 마시며 남의 노트를 가능한 만큼 달달 외운다. 그러곤 아침에 나가 C학점을 받아온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는 억만장자가 될 테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트럼프와의 면담을 앞둔 사람들에게 “트럼프를 가르치려 하지 마라. 그는 교수들, 먹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했다는 얘기다.(밥 우드워드 ‘공포’) 지난해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도 트럼프는 그렇게 막판 벼락치기 공부를 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일은 준비가 중요한데, 난 평생을 준비해 왔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백악관 측은 트럼프가 매주 10시간씩 준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준비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는 알맹이 없는 합의문과 장황한 기자회견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이제 다시 6개월 만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트럼프 참모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보고서가 한 페이지만 넘어가도 질색을 한다는 대통령에게 ‘열공’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사전준비보다 임기응변이 훨씬 낫다고 믿는 ‘협상의 달인’ 트럼프다. 트럼프의 롤 모델이라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디테일에 무관심하고 글보다 말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그런 레이건의 평판을 염두에 두고 미소(美蘇) 정상회담을 서둘렀다. 하지만 레이건은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방대한 자료를 꼼꼼히 정독했고 러시아사 전문가의 특별과외를 받기도 했다. 트럼프 참모들은 그간 철저한 사전 실무협상을 통해 대통령의 ‘본능 외교’ 리스크를 줄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북한은 우선 정상회담 일정부터 잡자며 사실상 실무협의 없이 정상 간 담판으로 직행할 것을 고집해 왔다. 김정은이 노리는 것도 과거 고르바초프의 속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6개월간 철저히 준비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자신의 카드를 내비치며 미국의 반응을 떠봤고, 시진핑 중국 주석을 두 차례나 찾아 코치도 받았다. 지난해 북-중 간 ‘전략·전술적 협동’을 강화하기로 했던 약속대로 연초에 다시 베이징을 방문해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북-중 간 ‘공동 연구·조종’이란 결국 북-미 협상의 로드맵, 즉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놓고 주고 받으며 구체화할 이행계획을 중국과 먼저 맞춰 보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엔 중국 측 전략기조가 반영될 수밖에 없고, 주한미군 철수 같은 민감한 한미동맹 이슈에 중국의 입김이 작용할 게 분명하다. 1차 북-미 회담 결과를 놓고 언론과 전문가들은 실속 없다는 호된 평가를 했지만 일단 미국인이 느끼는 위협이 줄었기에 미국 내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번에도 C학점이면 충분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어쩌면 매사 돈으로 따지는 계산 본능을 더욱 노골화할 수도 있다. 이미 “주한미군을 빼내고 싶다” “워게임은 엄청 비싸다”고 했던 트럼프다. 그렇게 되면 발등의 불은 우리에게 떨어진다. 문 대통령도 북-미 회담을 통한 교착상태 탈출을 기대하며 지켜만 봐선 안 된다. 물론 지금 트럼프에게 전화라도 걸라치면 당장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어떡할 거요”라며 채근부터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다간 수습 불가능한 낭패를 볼 수 있다. 모든 뒷감당도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올해 김정은 신년사의 핵심은 ‘나’를 주어로 한 세 문장에 담겨 있다. 약간 줄이면 이렇다. “나는 미국과도 쌍방의 노력에 의해 좋은 결과가 꼭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나는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문제 해결의 빠른 방도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마주 앉아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서 받았다는 ‘멋진 친서’는 더 절절할지 모르지만 그 내용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로 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면서 자신의 ‘진심’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어진 문장이 걸리긴 한다. “미국이 우리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강요하려 들고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난데없이 ‘새로운 길’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경고겠지만, 주어는 ‘우리’로 바뀌었고 표현도 매우 조심스럽다. 북한 매체는 이 대목을 ‘We may be compelled to find a new way’라고 번역했다. ‘다른 길을 찾도록 강요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완곡한 어투다. 지난해 5월 트럼프를 화나게 해 정상회담 취소 소동까지 낳은 ‘조미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We cannot but reconsider)’는 경고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김정은이 2013년부터 매년 내놓은 육성 신년사의 주어는 늘 ‘우리’였다. ‘나’는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하길 축복합니다”처럼 인민이나 군대에 보내는 격려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변화가 나타난 것은 재작년이다. 김정은은 말미에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인민을 어떻게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한 해를 보냈는데…”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나는 인민의 참된 충복,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엄숙히 맹약하는 바입니다.” 비록 악어의 눈물일지언정 ‘수령 무오류’의 독재체제에선 파격이었다. 작년에는 평창 겨울올림픽의 성공을 거론하면서 남북관계에 ‘나’를 내세웠다. “나는 올해에 북과 남에서 모든 일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 김정은은 대미관계에 ‘나’를 앞세웠다. 김정은의 언어는 교묘하다. 이번 트럼프를 향한 ‘나’의 메시지엔 치명적 유혹이 숨겨져 있다. 북-미 협상을 어렵게 하는 참모진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끼리 담판 짓자며 트럼프를 충동질한다.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도 그랬다. 1988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 막바지에 고르바초프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평화공존(peaceful coexistence)’에 관한 문구를 공동성명에 끼워 넣자며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레이건이 “참모들과 협의해 보겠다”고 하는데도, 고르바초프는 “간단한 문구 하나 혼자 결정하지 못하느냐. 참모들은 치우고 우리끼리 얘기하자”고 다그쳤다. 옥신각신 험악한 분위기에서 콜린 파월 국가안보보좌관이 테이블 아래로 레이건에게 쪽지를 건넸고, 레이건은 회의장 한쪽에 참모들을 모아 협의한 뒤 “내 대답은 노(no)다”라고 분명히 했다. 그제야 고르바초프도 단념하고 레이건을 기자회견장으로 안내했다. 파월이 건넨 메모는 이랬다. “그건 앞으론 그들을 비판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는 겁니다.” 트럼프라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까. 참모들의 완강한 반대도 귓등으로 흘린다는 트럼프라서 드는 의문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라는 책에서 김정은이 지금 자리에 오른 것은 타고난 승부욕 때문이라며 이런 일화를 전했다. 10대의 김정은은 농구경기가 끝나면 반드시 자기 팀에서 총화(반성회)를 했다. 잘한 선수에겐 “패스 아주 좋았어”라고 손뼉을 쳐주고, 실수한 선수에겐 잘못을 무섭게 꾸짖었다. 반면 형 김정철은 “수고했다. 해산!”이라며 바로 사라졌다고 한다. 북한 사회를 집단우울증에 빠뜨린다는 연말 사업총화가 한창인 지금, 김정은도 한 해를 결산하며 신년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휘하 간부들은 ‘지도자 동지의 주동적 조치가 세계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한 해를 만들었다’고 입을 모을 테지만, 김정은의 속내는 편치 않을 것이다. 연초부터 기세 좋게 달려왔지만 손에 쥔 것은 없고 전망도 밝지 않은 게 요즘 형국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닦달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탓인지 북한의 대외관계도 사실상 문을 닫아 건 분위기다. 미국과는 진작부터 연락을 끊었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임명 4개월이 되도록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몇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바람맞았다. 만남을 피하기 위해 최선희가 예정에 없던 출장까지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니 비건도 이젠 북한에 대한 답답함을 넘어 짜증까지 표출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제 서울에 도착한 비건은 여전히 최선희와의 판문점 회동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을까 싶다. 북한이 비건을 따돌리는 것은 무엇보다 김정은이 주장해 온 ‘독특한 방식’, 즉 정상 간 담판을 통한 톱다운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단계를 열어야지, 실무급이 만나 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주장이다. 6·12정상회담 때처럼 당장 회담 날짜와 장소부터 확정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리라. 껄끄러운 상대를 길들이려는 의도도 다분해 보인다. 북한은 늘 기피 인물에 대해선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성과도 없지 않았다. 북한이 각각 ‘아둔한 얼뜨기’ ‘사이비 우국지사’라고 비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북-미 협상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들은 최근엔 “북핵 리스트 신고가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성과가 있다면 제재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며 북한을 다독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도 이런 기싸움엔 이골이 났다.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충분히 배웠다. 대북 초강경파가 유연한 태도를 보인 반면 협상을 책임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요즘 ‘선(先)비핵화’ 원칙만 강조하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급기야 북한은 “미 국무성이 조미관계를 불과 불이 오가던 지난해 원점상태로 되돌려 보려 기를 쓴다”며 폼페이오를 직접 겨냥했다. 당혹감의 표출일 것이다. 자존심 빼면 남는 게 없다는 북한이다. 슈퍼파워 미국을 상대하면서도 대등한 대접을 받지 못할 바엔 아예 어깃장을 놓거나 지금처럼 연락두절 자가격리에 들어가 버린다. 우리가 그간 남북 협상에서 익히 보아온 모습이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선수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신감은 떨어졌다.” 이런 자존심 과잉, 자신감 결여는 수령 독재체제의 북한에 더욱 잘 들어맞는 진단일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비롯된 불량한 태도다. 그것이 대외관계에서도 이어진다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사흘 뒤면 사망 7주기를 맞는 북한 김정일은 생전에 스스로를 ‘난쟁이 똥자루’라고 비하하는 농담도 쉽게 했다지만, 그건 권력 중심에 선 승자로서의 여유였을 것이다. 김정일은 평생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그 근저에는 이복동생 김평일(현 체코 대사)에 대한 질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평일은 김정일보다 열세 살이나 어렸지만 고교 시절에 이미 180cm가량의 당당한 체격으로 아버지 김일성이 자신을 꼭 닮았다고 자랑한 ‘장군감’이었다. ▷김정일과 김평일은 각각 생모 김정숙과 김성애를 닮았다.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 시절 결혼한 김정숙은 몸집이 작고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김정일은 주변에서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닮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반면 김일성의 비서 출신으로 둘째 부인이 된 김성애는 늘씬하게 키가 컸고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귀엽고 애교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김정일로선 그런 계모가 자신에게 아무리 살갑게 대해도 태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성애는 1970년대 초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를 굳히기 위해 넘어서야 할 최대 라이벌이었다. 당시 김성애는 여성동맹위원장이란 직함 이상의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가정집에 김일성과 함께 김성애의 초상화가 걸리고 ‘김성애 여사께서는’이란 존칭으로 활동 소식이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일을 견제하려 권력 핵심에 친척들을 앉히는 등 전횡을 부린 데다 빨치산 세대를 적으로 돌리는 실수까지 범하면서 김일성의 신뢰를 잃고 추락하고 만다. ▷김성애는 1994년 북핵 위기 때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를 대접하는 대동강 뱃놀이에 김일성과 함께 나타난 이후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당시 카터는 미군 유해 송환을 요구했는데, 김성애가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고 한다. 순전히 의전상 동석한 김성애가 실권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일종의 연기를 했다는 게 정설이다. 어떻든 북한의 퍼스트레이디였던 김성애가 사망했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권력투쟁의 패자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부고 한 장 없이 지워질 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틈만 나면 친구들과 휴대전화로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욕타임스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사적인 통화를 중국과 러시아가 모두 엿듣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은 무역전쟁과 관련해 트럼프가 누구 말에 귀 기울이는지 파악하려고 도청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트럼프까지 나서 “엉터리 뉴스”라고 일축했지만 뉴욕타임스는 “우리 보도를 확신한다”며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휴대전화 3개를 쓴다. 기능을 트위터와 통화로 각각 제한한 두 개 외에 일반 아이폰 사용을 고집한다고 한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이폰 한 개만 사용했다. 그 아이폰은 통화나 문자, 카메라, 녹음 기능도 없이 극히 제한된 사람의 이메일만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퇴임 전 한 토크쇼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그야말로 최신 전화기인데, 아무것도 안 돼요. 세 살배기의 장난감 전화? 그런 거죠.” 전 세계 정보기관과 해커들의 타깃인 미국 대통령에겐 최첨단 스마트폰도 석기시대 돌도끼 수준일 뿐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메일 계정을 도용한 가짜 이메일이 10월 초 국방 관련 기관에 무더기로 발송된 사실이 드러났다. 올해 초부터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국가안보실 비서관, 정부 산하기관 소장을 사칭한 가짜 이메일이 나돌았지만 수법은 한층 교묘해졌다. 이번엔 국회 국방위원장이 보낸 이메일에 답신을 보내는 형태로 위장돼 첨부파일에 해킹코드가 심어진 것이었다고 한다. 누구라도 무심코 악성파일을 클릭했다면 자기 컴퓨터의 정보를 모두 털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가짜 이메일들은 민감한 대북정책 정보를 빼내려는 피싱(phishing)이면서 한미관계 이간까지 노린 고도의 심리전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북한이지만 그간 알려진 북한 해커부대의 막강한 사이버전쟁 능력에 비춰 보면 일견 유치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이스피싱도 전화 수백, 수천 통에 걸려드는 한 건을 노린다. 정부 핵심기관 관계자들은 전화 한 통, 이메일 하나에도 조심 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