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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총선은 제도권 정치에서 ‘친노(친노무현)의 부활’을 공식화한 선거였다. 당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에게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절대반지였다. 대표 경력에 ‘노무현’이 있고 없고는 민주당 지지층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의 지지율 차이를 보였다. 경선 당락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컸다. 후보들은 앞다퉈 ‘노무현’을 대표 경력에 넣었다. 수많은 관련 경력이 등장했다. 노무현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은 물론이고, 노무현재단 ○○위원 등을 앞세운 후보가 줄을 이었다. 비문(비문재인) 진영은 속이 끓었지만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노무현재단 △△지역위원회 ○○위원 등 임명권자가 애매한 후보들까지 쏟아지자 당은 혼란에 빠졌다. 출마자들끼리 ‘친노 인증’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2016년 총선 전 새누리당의 ‘진박 감별’ 논란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논쟁 끝에 당은 정부와 재단이 공식 임명장을 수여한 직위만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노무현재단 평생회원’을 내세운 후보가 등장했다. 평생회원 자격은 일정액 이상을 노무현재단에 기부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었다. 공식 임명장도 있었다. 당은 이를 경력으로 인정했다. 총선 6개월 전까지 ‘1당은 물론 과반도 가능하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민주당은 2012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예전 소동이 다시 떠오른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다시 ‘인증’ ‘감별’ 논쟁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40명 안팎의 현 청와대 출신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이 내년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인지도가 있는 몇몇을 제외한 신진 정치인들에게 문재인 청와대라는 ‘친문 인증’은 포기하기 힘든 카드다. 당내 경쟁자들은 “김대중 노무현 청와대 출신도 있다. 같은 민주당 정부다. 누구의 청와대라고 분류하는 것은 당내 계파 갈등만 키울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다음 달 1일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내년 총선 룰을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당 총선공천제도기획단은 경력에 특정인 이름을 넣는 것을 허용할지에 대한 결정을 보류했다. 연말 또는 내년 초 꾸려질 당 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지만 갈등은 예고된 상황이다. 보수진영도 마찬가지다. 핵심 친박(친박근혜)인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이 신공화당 창당을 선언했다. 내년 총선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와는 별개로 TK(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박근혜 마케팅’은 이미 시작됐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총선 전 풀려난다면 그의 ‘의중’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설령 박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 불개입’을 선언하더라도 친박 진영은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 자택 문턱을 넘는 후보 대 넘지 못한 후보 등으로 ‘감별’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패권과 계파의 힘에 기대려 하는 정치인과 이를 활용하려는 권력은 늘 있게 마련이다. ‘계파 챙기기’와 ‘줄 세우기’는 현실 정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돼왔다. 하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계파 정치와 세 불리기 정치는 민심의 역풍이라는 치명적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진박 감별’은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이어졌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비공개 만찬을 가진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현직 국정원장이 집권여당 싱크탱크 책임자와 따로 만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야권은 서 원장이 내년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전략 수립을 총괄할 양 원장을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국회 정보위원회 개최 등을 통해 국정원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따지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매체 ‘더팩트’는 “서 원장과 양 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정식집에서 4시간 이상 독대했다”며 두 사람이 식당에서 나와 인사를 나누는 영상을 27일 공개했다. 서 원장은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마친 후 이날 오후 10시 45분경 식당을 나와 양 원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어깨를 토닥였다. 양 원장은 90도로 인사하며 서 원장을 배웅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둘의 만남이) 만약 총선과 관련됐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서 원장은 양 원장을 왜 만났고 어떤 논의를 했는지 밝히고, 민감하고 부적절한 논란을 빚은 것을 사과하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과거 국정원의 총선 개입이 떠오르는 그림이다. 즉시 국회 정보위를 개최해 사실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국정원장은 애초 오해를 사지 않는 신중한 행동을 보였어야 한다. 한 치의 의혹이 남지 않도록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 원장은 이날 2차례에 걸쳐 입장문을 내고 “그날 만찬은 독대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함께한 사적인 모임”이라며 “민감한 얘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식사비 15만 원은 현금으로 내가 냈다. 남들 눈을 피해 (국정원장과) 비밀회동을 하려고 했으면 강남의 식당에서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서 원장은 이날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개최한 학술대회 축사차 방문한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났지만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서 원장과 양 원장은 여권의 핵심 실세들의 모임인 ‘재수회(再修會)’를 통해 교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대선 후 ‘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이란 뜻으로 결성된 재수회는 문 대통령을 막후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조윤제 주미 대사, 민주당 박광온 의원, 신현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이 주요 멤버다.길진균 leon@donga.com·박성진·홍정수 기자}
“지금 바이오산업이 중요한 것을 누가 모르나. 어떻게 규제를 풀지가 핵심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한 지 얼마 뒤 이런 말이 나왔다. 대통령이 나서 정부 연구개발비를 연 4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100만 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업계에 큰 호재인 듯했다. 하지만 관련 회사들의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한 공무원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심지어 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발표된 현실성 떨어지는 공약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라며 말을 흐렸다. 한국의 공공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규모 면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보건·의료 데이터만 해도 6조 건이 넘는다. 하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 이 같은 의료 빅데이터의 활용은 꽉 막혀 있다. 질병 예방을 위한 유전자 검사만 해도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은 전면 또는 폭넓게 허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의료계의 반대에 막혀 시범사업 시행만 수년째 반복하고 있다. 최근 몇 개 정부를 거치면서 ‘규제혁신’ 없는 바이오산업 발전 전략은 희망고문에 가까운 공약(空約)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전 공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상을 왜 지금 내놓는지, 누가 주도한 작품인지 명쾌한 설명이 없다. 하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란도 비슷하다. 정치권 주변에서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미스터리’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것 아닌가 싶다. 예전엔 이런 문제가 그리 도드라지지 않았다. 경제정책은 기획재정부가, 산업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보건정책은 보건복지부가 했다. 해당 부처 장관이 정책의 주체로 명확히 드러났다. 잘했으면 칭찬을 받고, 실패하면 책임을 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장관들은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듯하다. 대통령정책실장이 ‘관료들이 말을 안 들어서 일이 안 된다’고 푸념하고 맞장구치는 것을 보면 청와대 참모들이 정책의 수립과 수행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짐작이 간다. 문 대통령은 2일 “과거 어느 정부보다 야당 대표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참모진의 보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역시 논란만 키웠다. 발언 시점(재임 722일)까지 문 대통령은 30번에 걸쳐 야당 대표들을 만났다. 평균 24일에 한 번꼴이다. 전체 재임 기간 야당 대표들을 36번 만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비해 상당히 잦은 횟수다. 하지만 이는 국가적 행사를 포함해 문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이 ‘한자리’에 있었던 경우를 모두 더한 것이다. 현안 논의를 위해 야당 대표들과 만난 여야 회동만 세어 보면 문 대통령의 ‘소통’은 9번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박 전 대통령 4번, 이명박 전 대통령 9번, 노무현 전 대통령 13번이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라고 자랑할 일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일이 잦아지면 불신의 화살은 대통령을 직접 향하게 된다. 총체적 평가는 대통령이 받겠지만, 이쯤 되면 수석이든 비서관이든 자기 보고나 정책에 ‘이름표’를 달고 책임을 져야 한다.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을 피할 생각이 없다면, 참모들에게도 정책실명제를 적용할 때가 된 듯하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대체로 뭔가를 해결하는, 안정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에 대한 (국민들의) 목마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낙연 국무총리(사진)는 1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자신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총리는 “(강원) 산불 때 (내가 현장에) 가자마자 볍씨를 공급해주겠다, 혈압 약을 오늘 중에 드리겠다 등 매우 세세한 대응을 하는 걸 놀랍게 보신 게 아닐까 싶다”며 “그런 종류의 정부의 자세, 리더십을 과거에 덜 보셨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마음의 준비도 그렇게 단단히 돼 있지 않다”고 했다. ‘총선 역할론’에는 “정부와 여당에 속한 사람이니 (총선 정국에서) 심부름을 시키면 따라야 한다”며 “제 역할을 제가 생각하고 있지 않다. 요구할 생각도, 기획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2년의 평가에 대해 “협치의 부족은 참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이라며 “정치권에서 상대를 ‘청산 대상’으로 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매우 사려 깊지 못한 태도다. 여당도 좀 더 신중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당도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국가적 문제가 있으면 함께 자리해주시는 게 어떨까 하는 제안을 조심스럽게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에 대해서는 “행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제1야당 대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몹시 위험한 것”이라며 “그분에 대해 깊게 알지도 못한다”며 언급을 자제했다.길진균 leon@donga.com·강성휘 기자}
“대체로 뭔가를 해결하는, 안정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에 대한 (국민들의) 목마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자신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총리는 지난달 초 강원 지역 산불 재난 당시 대응을 예로 들었다. 이 총리는 “산불 때 (내가 현장에) 가자마자 볍씨를 공급해주겠다, 혈압 약을 오늘 중에 드리겠다 등 매우 세세한 대응을 하는 걸 놀랍게 보신 게 아닐까 싶다”며 “그런 종류의 정부의 자세, 리더십을 과거에 덜 보셨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마음의 준비도 그렇게 단단히 돼 있지 않다”고 했다. 다만 ‘총선 역할론’에는 “정부와 여당에 속한 사람이니 (총선 정국에서) 심부름을 시키면 따라야 한다”며 “제 역할을 제가 생각하고 있지 않다. 요구할 생각도, 기획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2년의 평가에 대해 “협치의 부족은 참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이라면서도 “정부·여당의 노력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야당도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국가적 문제가 있으면 함께 자리해주시는 게 어떨까 하는 제안을 조심스럽게 드린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에 대해서는 “행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제1야당 대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몹시 위험한 것”이라며 “그분에 대해 깊게 알지도 못한다”며 언급을 자제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오늘을 기점으로 총선 체제에 돌입하겠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일 4선 이상 중진과의 오찬에서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21대 총선 주요 공천 룰을 확정했다. 각 언론은 정치권이 총선 모드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21대 총선은 내년 4월 15일 치러진다. 아직 1년 가까이 남았다. 보통 사람들에게 ‘총선 정국’ ‘총선 모드’ 등은 마치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릴 터다. 하지만 정치권의 시계는 다르다. 각 지역구 밑바닥은 이미 전쟁터다. 20대 총선 때 얘기다. 동갑내기 정치지망생 A와 B가 있었다. A와 B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일할 기회를 잡았다. 대선이 끝난 뒤 A와 B는 행정관으로 나란히 청와대로 들어갔다. A는 총선을 1년 남짓 앞둔 봄철 청와대를 나와 지역구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B는 좀처럼 청와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B는 총선을 6개월가량 남겨둔 가을, 가까스로 지역구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6개월 차이가 낳은 결과는 컸다. A는 이듬해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고 본선까지 내리 통과, 국회에 입성했다. 경선에서 낙마한 B는 여전히 정치지망생으로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당내 경선을 치르는 정치 신인에게 청와대 출신 등 ‘경력’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이해찬 대표는 최근 “전략공천은 없다”고 밝혔다. 모두가 당내 경선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당내 중진들을 향한 ‘인위적 물갈이는 없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하지만 ‘특별 대우’를 내심 기대했던 청와대 출신 출마 대기자들은 속내가 편치 않을 것이다. 신인들은 경선에서 표를 줄 ‘내 당원’을 새로, 많이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상당수 당원을 확보하고 있는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을 상대하려면 더욱 그렇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은 내년 경선에서 투표권을 가지는 권리당원의 기준을 7월 31일까지 가입, 6개월 이상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확정했다. 앞으로 3개월이 경선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골든타임’이 됐다. 각 지역구에선 누가 더 많은 당원을 가입시키느냐를 두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전남도당은 최근 신규 당원이 1만2000명 이상 늘었다고 한다. 전남 순천은 2, 3개월간 당원이 5000명 이상 급증했고, 여수을 2000여 명, 여수갑 1000여 명 등 당원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출마 대기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21대 총선 출마가 거론되는 청와대 전·현직 인사는 40명가량 된다. 상당수가 청와대를 나와 총선 준비에 매진하고 있지만 10명 안팎의 수석비서관, 비서관, 행정관 등은 아직 근무 중이다. 내년 총선에 실패하면 2022년 지방선거, 2024년 총선 때나 돼야 다시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현 정부 임기 이후다. 지역구로 자꾸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골든타임이기도 하다. 집권 2년을 넘어 3년 차에 접어들면 공직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크게 떨어진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참모들로는 한계가 있다. 참모를 교체하든, 참모들이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든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지난달 28일, 매일 열리는 현안점검회의지만 이날 청와대는 평소와 달리 더욱 긴박했다. 이날 오전 각 신문에 보도된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 때문이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각 수석실 비서관, 선임행정관 등 핵심 인사들이 속속 회의실로 입장했다. 김 대변인도 자리를 잡았다. 모두 그의 입을 쳐다봤다. 김 대변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법은 없었습니다.” 35억 원대 주식 투자를 한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나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항변은 “불법은 아니지 않으냐”다. 이해찬 대표는 “법적으로는 문제없는 것”이라고 일축했고,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위법성이 없다”를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공직자가 주식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없다. 몇억 원 이상 하면 안 된다는 기준도 없다. 기준도 없고 법도 없는데 단순히 주식 거래액이 많다고 부적격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야당 시절 민주당의 모토는 늘 보수세력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는 출범부터 “우리는 다르다”를 외쳤다. 지난 정부에서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던 만큼 이들의 목소리는 상당수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치명적인 오류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는 주장으로 같은 편의 지지를 받고 나아가 대중의 피를 끓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럴듯한 ‘말’과 다른 그들의 행동은 이제 보통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쌓고 있다. 김 전 대변인의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든지 “정치, 정책은 ‘결과책임(Erfolgshaftung)’을 져야 한다”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의 글 등이 대표적이다. 유전자까지 내세우며 “우리는 다르다”를 외쳤던 김 전 대변인은 16억여 원을 빌려 25억 원 상당의 건물을 샀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반복되는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일 학술용어를 동원해 ‘Erfolgshaftung’을 강조했던 조 수석은 ‘민정수석 책임론’만 나오면 침묵한다. 보통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킬 감정적 반응엔 애초부터 둔감했던 건지, 아니면 도덕적 정치적으로 비판받을 행동을 해도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예외다”라는 건지 의아할 정도다. 수없이 듣는 여권 관계자들의 이에 대한 항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청와대와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패배 뒤 쓴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 등장하는 한 구절을 먼저 되새겼으면 한다.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정호 조동호 전 장관 후보자의 낙마 이후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미선 후보자 논란이 터졌다. “우리는 다르다”는 인식에 사로잡힌 인사 시스템으론 제2, 제3의 ‘이미선 논란’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스타트업의 규제 이민은 일자리 창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가하고 있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는 “이제까지 스타트업 기업들은 한국에서 일군 성공을 기반으로 한 해외 진출을 지향했지만 최근 들어 규제를 피해 ‘불가피한 선택’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는 현상이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타트업은 해당 국가의 혁신 성장을 도울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규제 합리화 작업을 통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이끌고 이를 고용 창출로 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과거 30년간 기존 기업들의 일자리는 매년 100만 개씩 줄었지만 스타트업이 매년 3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전체 고용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스타트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한국에서도 커지고 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벤처투자액이 역대 최대(약 3조4000억 원)를 기록한 지난해 벤처투자 기업 1072개사가 고용한 인원은 4만1199명이었다. 특히 고용증가율은 20.1%를 기록했다. 이는 중소기업의 고용증가율(1.6%대)을 훨씬 상회한다. 하지만 규제로 인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이 앞으로 더 늘어나면 고용 창출 효과는 뚝 떨어질 수 있다. 4차 산업의 핵심인 정보기술융합 사업은 공장 같은 물리적 장비를 투자할 필요가 적어 해외 진출의 장벽이 낮은 편이다. 특히 자동 통역 기술로 한국 기업의 걸림돌로 꼽히던 언어장벽이 낮아졌다. 곽 특임교수는 “근무환경에 대한 각종 규제가 가세하면서 스타트업계 인력들이 해외로 나가면 산업생태계뿐만 아니라 인력생태계까지 무너지는 것”이라며 “국가적인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유근형(정치부) 배석준(산업1부) 염희진(산업2부) 김준일(경제부) 임보미(국제부) 한우신(사회부) 최예나(정책사회부) 김기윤 기자(문화부)}
“한국 공무원은 도대체 누구 편인가요? 외국에선 자기네들에게 오라고 손짓하는데 정작 한국에선 지원을 요청해도 규제에 막혀 사업을 시작조차 못합니다. 외국이 더 편해요.” ● 해외는 사업하도록 정부가 돕는다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기반 맞춤형 안경테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루프린트랩의 신승식 대표(42)는 지난해 유럽으로 진출했다. 규제를 피해 해외로, 이른바 ‘규제 이민’을 떠난 것이다. 블루프린트랩은 고객이 ‘셀카’ 이미지를 올리면 이를 분석해 어울리는 안경테를 추천하고 다양한 안경 모델을 가상으로 착용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신 대표는 “국내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국내에선 안경 원격 구매가 막혀 있는 데다 얼굴 이미지 사용에 대한 규제 장벽이 높아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블루프린트랩은 현재 영국 맥라렌과 프랑스 라미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구치와도 협업을 진행 중이다. 블루프린트랩이 진출한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에도 비슷한 규제가 있는 건 마찬가지다. 다만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는 네덜란드 프랑스 룩셈부르크의 정부 공무원들은 사업을 저해하는 규제 해결을 돕겠다고 나섰다고 한다.신 대표는 “EU 국가에도 개인정보보호법(GDPR) 같은 엄격한 규제가 있지만 명시된 요건을 충족하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다”며 “국내에서 규제와 싸우며 애를 먹느니 해외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하다. 본사를 자국으로 옮기면 규제 개혁과 세제 혜택까지 주겠다는 제안이 많은데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해외에서 일단 검증부터 받고 오라VR 입체음향 오디오 기술을 개발한 가우디오랩은 국내 사업은 일단 보류하고 해외로 진출해 기술력을 인정받은 기업이다. 2014년 오디오 기술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MPEG(Moving Picture Experts Group) 국제회의에서 ‘동영상 오디오 표준’으로 채택됐다. 2017년엔 영국에서 열린 ‘VR어워드’의 혁신기업으로도 뽑혔다. 그런 가우디오랩은 정작 한국에선 인정받지 못했다. 정부에 지원을 요청해도 기술력을 평가할 만한 전문가가 없었다. 오현오 대표는(46)은 “회사 기술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는 동안 정부에선 이 기술을 심사할 전문 인력이 없었다. 사업 지원 심사에선 ‘해외에서 일단 검증부터 받고 오라’고 하니 정부에 아예 기대를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그는 또 “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의 기술이 산업계의 표준으로 채택되고 상용화되도록 돕고 있는데 한국에선 반대”라며 “공무원들이 국내 표준 기술 채택 심사에서도 브랜드 이름이 더 익숙한 미국의 음향기업 돌비 등 외국 기업의 기술력을 우대한다”고 했다. 가우디오랩은 현재 미국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선 왜 안 되냐’고 해외서 되물어한국NFC의 황승익 대표(46)는 최근 “한국에서 서비스를 출시하려고 몇년 동안 노력했지만 이제 포기했다”고 밝혔다. 한국NFC는 스마트폰 앱만 설치하면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을 이용해 고객으로부터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있는 핀테크 서비스를 개발했다. 신용카드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소상공인층의 수요가 높았다. 전자결제시스템 사업자를 통해 서비스 중인 한국NFC는 정부에 카드 가맹점 자격 요건을 확대하고 단말기 인증 규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건전한 신용카드 거래질서를 해칠 수 있다”며 사업을 막았다. 처음엔 황 대표도 규제 개선에 기대를 걸었다. 지난 2년 동안 5개 정부 부처 공무원들을 만났고 법률 자문료로 수천만 원을 썼다. 하루에 수십 번씩 담당 부처에 전화도 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새 담당자가 오면 “제가 업무를 잘 모른다”며 회피하기 일쑤였다. 최근 마지막 기대를 걸고 신청한 규제샌드박스에서도 탈락했지만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결국 황 대표는 일본과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규제가 꼭 필요하다면 적어도 글로벌 시장과 비슷한 수준으로는 맞춰져야 한다”며 “해당 규제가 없는 미국 일본 정부와 투자자의 도움으로 현재 사업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황 대표는 정부의 신산업 육성 정책에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규제에 막혀 국내 사업을 시작도 못해본 스타트업들을 상대로 해외 진출만 장려하는 정부 정책은 모순 덩어리”라며 “해외 정부와 기업이 ‘이 좋은 기술이 정작 왜 한국에선 안 되느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 아니냐’고 물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스타트업 놓치면 미래 일자리 사라져” ▼전문가들 ‘규제 이민’ 대책 촉구… “산업-인력 생태계 붕괴하고 있어” 스타트업의 규제 이민은 일자리 창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가하고 있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는 “이제까지 스타트업 기업들은 한국에서 일군 성공을 기반으로 한 해외 진출을 지향했지만 최근 들어 규제를 피해 ‘불가피한 선택’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는 현상이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타트업은 해당 국가의 혁신 성장을 도울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규제 합리화 작업을 통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이끌고 이를 고용 창출로 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과거 30년간 기존 기업들의 일자리는 매년 100만 개씩 줄었지만 스타트업이 매년 3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전체 고용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스타트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한국에서도 커지고 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벤처투자액이 역대 최대(약 3조4000억 원)를 기록한 지난해 벤처투자 기업 1072개사가 고용한 인원은 4만1199명이었다. 특히 고용증가율은 20.1%를 기록했다. 이는 중소기업의 고용증가율(1.6%대)을 훨씬 상회한다. 하지만 규제로 인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이 앞으로 더 늘어나면 고용 창출 효과는 뚝 떨어질 수 있다. 4차 산업의 핵심인 정보기술융합 사업은 공장 같은 물리적 장비를 투자할 필요가 적어 해외 진출의 장벽이 낮은 편이다. 특히 자동 통역 기술로 한국 기업의 걸림돌로 꼽히던 언어장벽이 낮아졌다. 곽 특임교수는 “근무환경에 대한 각종 규제가 가세하면서 스타트업계 인력들이 해외로 나가면 산업생태계뿐만 아니라 인력생태계까지 무너지는 것”이라며 “국가적인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유근형(정치부) 배석준(산업1부) 염희진(산업2부)김준일(경제부) 임보미(국제부) 한우신(사회부)최예나(정책사회부) 김기윤 기자(문화부)}
2016년 2월 11일→2016년 6월 9일→2017년 8월 4일→2018년 8월 23일→2019년 2월 26일. 유전체(게놈) 분석 기업인 메디젠휴먼케어 신동직 대표가 정부를 쫓아다니며 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동안 담당인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의 인사이동이 있던 날이다. 불과 3년 만에 6명의 과장을 거쳤다. 가장 짧은 담당 과장은 4개월, 가장 긴 경우는 1년 19일이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복지부는 2016년 7월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DTC·Direct-to-Consumer)를 처음 허용했다. DTC는 비의료기관에서 질병 예방과 관련해 의료기관의 의뢰 없이 유전자 검사를 직접 하는 것. 영국 캐나다 일본은 DTC를 전면 허용하고 있고 미국도 허용 범위가 넓어 한국의 대표적 규제 산업으로 꼽힌다. ○ 잦은 담당 과장 교체 속 논의는 무한 되돌이표 복지부는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해 2016년 7월 12가지 항목만 검사 대상에 포함시켰고 그 대신 DTC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고 소비자의 불만도 생기지 않으면 2018년 6월부터 ‘네거티브 규제에 가깝게’ 그 대상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2년 동안 담당 과장은 3명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논의 내용은 되돌이표를 그렸다. 약속했던 2018년 6월이 다가오자 복지부는 같은 해 4월 DTC 규제 완화 공청회를 열었다. 반대 의견이 거셌다. 규제 완화에 상대적으로 전향적이었던 담당 과장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121가지로 확대가 예상되던 유전자 검사 대상 항목은 ‘시범사업’을 조건으로 57개로 축소됐다. 2년 동안 헛심만 쓰다 다시 시범사업으로 돌아온 셈이다. 생명윤리정책과장을 거친 한 복지부 공무원은 “생명윤리정책과가 예전에는 큰 이슈가 없고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과였는데 규제 개혁의 핵심 부서가 된 이후부터 기피 과가 됐다”고 말했다.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그 자리에 가면 기를 쓰고 나오려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해외연수를 신청해서 빠져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담당 부서의 무책임한 무한 논의에 지친 신 대표는 결국 규제가 없는 캐나다에 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신 대표는 “토론토투자청에서 연구소 2년 무상임대와 설립자금 대출을 약속했다”며 “캐나다의 조건은 우리(캐나다) 스타트업과 함께 일해서 시장을 일궈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만난 규제 담당 공무원은 8년째 같은 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며 “유독 우리나라만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민원 많은 규제 담당 과장 기피 현상도 공무원 임용령에 따르면 중앙부처 과장급(3, 4급)의 필수 보직 기간은 2년으로 규정돼 있다. 잦은 인사이동에 따른 전문성 저하를 막기 위해서다. 책임감을 갖고 긴 안목에서 정책을 추진하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필수 보직 기간 규정은 강제 사항이 아니어서 일선 부처에서는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각 부처에 필수 보직 기간을 가급적 준수하라고 독려하고 있지만 대다수 부처가 민원과 책임질 일이 많은 자리를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맡기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산업 분야의 규제 이슈일수록 담당자의 의지와 책임감이 중요하지만 공직사회의 ‘잦은 이동’에서 신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폐차 견적 비교 서비스 업체인 조인스오토는 지난달 6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샌드박스 본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2년간 현행법의 규제를 받지 않고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규제를 풀기 어렵기 때문에 우회로를 이용하게 해준 것. 그러나 정작 이 ‘기존 규제’를 풀어야 할 담당인 국토교통부 자동차운영보험과(2015년 8월 신설) 과장은 신설 이후 3년 반 만에 세 번이나 바뀌었다. 담당자가 전문성을 쌓기는커녕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규제 완화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새 수장으로 임명된 이후 1월 대대적인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2월 과장급에 대한 대규모 인사가 났고 공유경제 담당 과인 서비스경제과장도 교체됐으며 기존 과장은 불과 1년 만에 자리를 옮기게 됐다. 숙박공유 서비스 업체 대표 A 씨는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논의해 오던 기재부 서비스경제과의 과장과 사무관이 어느 날 갑자기 모두 바뀌어 너무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동안 했던 논의는 ‘스톱’ 상태다. 그는 “새 담당자와 다시 얘기를 시작하려니 막막하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 ▽팀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유근형(정치부) 배석준(산업1부) 염희진(산업2부) 김준일(경제부) 임보미(국제부) 한우신(사회부) 최예나(정책사회부) 김기윤 기자(문화부)}
대통령이 규제 혁신을 외쳐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공무원이 안 바뀌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규제를 없애려면 규제를 만들고 집행하는 공무원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것. 박근혜 정부에서 ‘손톱 밑 가시’ 규제 개혁을 총괄했던 강영철 전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은 “대학 규제를 해결하는 건 간단하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을 없애면 되는데 조직을 축소시키는 거니 공무원이 규제 완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재임 중 규제조정회의를 100차례 이상 진행했다. 그때마다 공무원이 규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강 전 실장은 “부처에서 회의에 참석하는 과장을 보낼 때 ‘양보하고 오면 패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니 합리적인 토론이 안 됐다”고 했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어 빠르게 변하는데 한국 공무원들은 과거와 같은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김태유 전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공무원이 저마다 담당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어떤 것을 규제해야 하고, 풀어줘도 될지를 더 잘 알 수 있다”며 “지금의 보직순환근무 체제를 직무군 제도로 바꾸어 공무원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과감하게 공무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민간 기업 수준이 40, 50년 전보다 빨리 변한 것에 비하면 정부 수준은 너무 느리다”며 “공공기관은 그만 늘리고 웬만한 건 민간으로 넘기면서 민간 인사를 대거 공무원으로 영입해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이 규제를 없애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공무원이 나서서 규제를 완화하면 나중에 인사 문제 등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규제를 혁파한 공무원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유근형(정치부) 배석준(산업1부) 염희진(산업2부) 김준일(경제부) 임보미(국제부) 한우신(사회부) 최예나(정책사회부) 김기윤 기자(문화부)}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국비와 지방재정 등 24조1000억 원이 투입되는 전국 23개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조치를 결정하면서 국가균형발전 이슈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과 함께 지금부터라도 낙후된 지역 활성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송재호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만나 국가균형발전의 의미와 방법, 지방의 각 대학을 지역 발전에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이번에 결정된 문재인 정부 예타 면제 사업의 특징을 어떻게 보나. ▽송 위원장=예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경제성이다. 한국처럼 수도권 집중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수도권에서만 경제적 타당성이 나온다. 수익성이 없다고 지역을 외면할 수는 없다. 발전이 늦은 지역도 엄연히 대한민국이다. 그곳에 사는 분들도 균등한 생활의 향상을 보장받아야 할 국민이다. ‘지역의 합(合)이 국가’라는 개념으로 가야 한다. 지나친 수도권 집중도를 완화한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최 지사=지역 입장에선 왜곡을 바로잡는 측면도 있다. 강원도의 경우 제2경춘국도 건설을 위한 9000억 원 규모 사업을 예타 면제받았다. 지금 서울∼춘천 고속도로는 민자도로다. 폭이 좁아 가변차로도 없고 터널도 작아 많이 막힌다. 통행요금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이를 이용해 서울을 오가는 춘천 시민들은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과거의 정책을 바꾸는 작업을 지자체장으로서 지지한다. ―과거 정부에서도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했지만 쉽지 않았다. 구체적인 현실화 해법이 있나. ▽송=재정분권을 현실화하면 된다. 예를 들면 강원도가 갖고 있는 역량을 펼칠 수 있게 중앙정부가 지역에 예산을 포괄적으로 주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의 30∼40%까지 지자체에 넘겨 발전의 토대를 알아서 쌓으라는 취지다. 지역의 역량이 낮지 않지만 못 미더울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약을 체결하면 된다. 예산을 잘 쓰면 더 주고 못 쓰면 별도의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나눠주는 고민도 해야 한다. 정부 구조개혁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신중하고 어려운 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시대적 요청이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기조다. ▽최=사업이 결정되면 빨리 착공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 공약으로 나온 지자체 사업 가운데 이번 정부 와서야 된 것도 있다. 정부가 바뀌면 또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재정분권 현실화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지자체장이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예산을 따오면 인정받는다. 정작 예산을 어떻게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돈이 허투루 쓰일 수밖에 없다. 예산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모두 지역으로 내려야 한다. 강원도는 시군구에 예산을 주고 각자 책임을 지게 한다. 분권도 절실하다. 일자리 정책을 예로 들어보겠다. 모든 부처가 일자리 정책을 만들어 지방으로 내려보낸다. 중앙정부에서 강원도로 내려온 일자리 정책이 195가지였다. 너무 많고 복잡해 도지사인 나도 전부는 모른다. 덩어리를 내려보내서 지역이 판단해서 적절하게 쓸 수 있게 하고 추후에 중앙정부가 감독하는 식으로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지역 활성화도 좋지만 주요 사업이 사회간접자본(SOC)에만 집중된다는 지적도 있다. ▽최=지방도시의 경제력은 수도권과의 교통 거리에서 나왔다. 도로 철도 등 건설을 통해 수도권과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지역 경제의 원천이고 핵심이었다. 그래서 모든 지방정부가 여기에 목숨을 걸어 왔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결핍이 해소되면 SOC가 아닌 인재 양성 등 다른 소프트웨어 발전 사업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송=한국은 결코 SOC 과잉 공급 국가가 아니다. 경부 축에만 물동량의 75%가 집중돼 있다. 강릉∼목포 등을 잇는 동서 축은 SOC가 매우 부족하다. ―진정한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송=균형발전위는 어느 정부가 와도 제도에 따라 균형발전을 해낼 수 있는 흔들림 없는 정체성 설립이 중요하다. 균형발전을 위해 어떤 컨트롤타워가 될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추가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최=각 지자체도 중앙정부처럼 기득권을 내려놓고 혁신하는 게 필요하다. 도에서 시군으로 일을 내려보내려면 저항이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여권 만드는 일을 시군뿐 아니라 도에서도 한다. 권한을 내려놓자고 설득하고 있다. 더디지만 공무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에 익숙해져야 국민들이 편안하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거점대학을 활용한 지역 인재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최=대학은 지역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이다. 획일적인 대학 평가 기준에 따라 대학 문을 닫게 해서는 안 된다. 교육부가 문제다.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성으로만 대학을 평가해선 안 된다. ―구체적 해법이 있나. ▽최=지역 인재 역량을 키우기 위해 강원도는 ‘열린 군대’ 제도를 도입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강원대 안에 혁신센터를 만들어 학교와 기업, 군인을 연결시켰다. 역량 있는 군인들을 학교에서 교육해 기업의 지원을 받아 창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지금은 80명이 대상이지만 전방과 동해안 전선 등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군인들을 교육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협조만 해준다면 가능하다. 원주 혁신도시의 경우 강릉원주대, 상지대, 연세대 원주캠퍼스, 한라대가 있어 지적 역량이 충분하다. 강원대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온라인 교육시스템을 도입해 혁신도시에 들어와 있는 공기업과 대학의 역량을 강화하려고 한다. ▽송=지역 발전의 3대 축이 행정, 산업, 대학이다. 세 축이 협력해야 지역발전이 될 수 있다. 대학은 지역에 필요한 특허 기술과 연구개발(R&D) 역량 등을 많이 갖고 있다. 지자체가 지역 대학에 직접 R&D 예산을 줘야 하는데 중앙부처가 예산을 주다 보니 지역과 상관관계가 덜한 역량이 쌓이고 있는 것이 문제다. 공급자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균형위는 거점 국립대들과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소통하고 있다. 대학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사업에 뛰어들어 경쟁력을 쌓도록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강원대와 삼척시가 추진 중인 도계 대학도시를 주목한다.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도계를 대학도시로 만든다면 지역 회생에 보탬이 될 것이다. 이동수업 허용 등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대학도시의 성공은 학령인구 감소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지역 대학들과 인구 감소로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지역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지역 거점대를 살리려면 정부, 국회 차원의 지원이나 노력도 필요할 텐데…. ▽송=교육부도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 원주에만 5개의 대학이 있다. 이들 대학 총장이 먼저 모여야 한다. 총장들이 모여서 협의체를 구성하고 강원도 원주를 위해 대학이 기여할 것, 강원도로부터 지원받을 것 등을 구분해 강원도지사에게 협력을 요청해야 한다. 여기에 지역 기반 기업들도 포함시키는 등 ‘마당’이 마련되면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지역의 국회의원들과도 협력체계가 구성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국회다. 교육부의 획일적 잣대로 함부로 지역 대학 문을 닫지 못하게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국회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최=이른바 총장협의체가 구성돼 요청이 오면 바로 응하겠다. 그런데 교육부의 대학 평가 방침이 바뀌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예를 들어 대학의 창업 역량은 평가 요소에 반영돼 있지 않다. 지역 사회와 얼마만큼 협력하는지, 지역 거점 기업과의 협력 체계는 공고한지 등이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지역 인재 역량을 지역 안에서 키울 수 없다. [약력]○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제주(59) △제주제일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경기대 관광경영학과(석·박사)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국정기획자문위 정치행정분과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 최문순 강원도지사△강원 춘천(63) △춘천고 △강원대 영어교육과 △서울대 영문학 석사 △MBC 보도국 기자 △MBC 대표이사 △18대 국회의원 △민선 5·6기 강원도지사 진행=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정리=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19일 합의로 큰 산은 넘었지만 주 52시간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까지는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국회에 주어진 시간은 처벌이 유예되는 다음 달 31일까지 한 달 남짓이다. 하지만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할 국회는 여야의 사생결단식 대치로 개점휴업 상태다. 일단 여야 모두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보완책으로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적용 기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6개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1년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경사노위의 합의 직후 “경사노위에서 합의됐기 때문에 여야 간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합의를 존중해서 빠른 시일 내에 (관련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당 소속 김학용 환경노동위원장은 “경사노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그건 참고사항”이라며 일축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 의원들은 적용 기간을 1년으로 하는 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라며 “경사노위가 합의했다고 해서 국회가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환노위에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길진균 leon@donga.com·최고야 기자}
“국정원은 40명 정도 구속되고, 실형까지 선고받는 조직 내부의 아픔을 겪으면서 (개혁을) 잘 해내셨다. 서훈 원장님, 정해구 위원장님 감사드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국정원이 정치 정보 내려놓고 정치에 관여 안 한다는 것이 정말 혁명적인 일인데 아주 잘 해내셨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주재하며 이례적으로 국정원에 대한 칭찬을 수차례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검찰, 경찰 모두 자체 개혁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며 치하를 이어갔는데 국정원에 대해서는 한층 각별했다.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이 각 부처에 파견된 ‘국내정보 담당관(IO·Intelligence Officer)’들을 철수시키고, 국내정보 부서를 폐지하는 등 관련법 개정 없이 자발적으로 개혁을 이뤄낸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도 “국정원의 경우 정치 관여를 근절하고 해외·대북 정보에 전념하자 국제사회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과 경찰도 개혁하는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정원 칭찬이 법 개정을 이유로 수사권 조정 등 개혁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는 검찰과 경찰에 대한 경고로 들렸다”고 말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법정 구속을 둘러싼 여야의 막가파식 공방이 점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김 지사 구속 이후 이 사안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일 서울 용산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떻게 대선 불복이라는 망동을 하나. 엄중히 경고한다”며 자유한국당을 비판했다. 과거 ‘버럭 총리’로 통했던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당 대표 취임 이후 공식석상에서 감정 표현을 자제하려 했지만 이날은 한국당을 겨냥해 ‘버럭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 대표는 “탄핵당한 사람의 세력들이 감히 촛불 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대선 불복으로 대하느냐”며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대통령을 겨냥한) 어제의 행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언급한 한국당 소속 여상규 법제사법위원장을 향해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을, 감히 법사위원장이란 사람이 말하는 걸 보면서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한국당은 ‘재판 불복’을 넘어선 ‘헌법 불복’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대법원장을 향해 “지금 사법부가 권위와 독립을 정권 발밑에 바치고자 한다면 바로 탄핵해야 할 대상은 대법원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 지사로부터 (드루킹 관련) 보고를 받았는지에 대해 말씀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다만 “대선 불복 프레임이 아니라 우리는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대선 불복’에 따른 역풍을 신경 쓰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사흘 만에 가진 브리핑에서 김 지사 문제에 대해 “답변할 위치가 아니다”고 했다. 내부 기류에 대해서도 “그 내용을 공유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판결에 아쉬움이 있지만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길진균 leon@donga.com·최고야·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공모 혐의로 법정 구속된 후 더불어민주당이 ‘사법적폐 청산 드라이브’를 본격화하면서 설 연휴를 앞둔 정국이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집권 여당은 사법부를 적폐 세력으로 몰고, 제1야당은 문 대통령의 정통성을 문제 삼으면서 서로 뒤엉킨 사생결단식 대치 국면이 형성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김 지사 구속에 대처하기 위해 ‘사법농단 세력·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본격 가동하며 재판부를 재차 비난했다. 대책위원장을 맡은 박주민 최고위원은 31일 당 유튜브 채널 ‘씀’에서 “(사법부) 재판에 대해서도 행정부나 입법부가 문제 제기할 수 있게 돼 있다. 삼권분립은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가 서로 견제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헌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이재정 대변인도 “사법부 판단이 문제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관계없는 국민의 권리”라고 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도 이번 판결에 대해 “사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양승태(전 대법원장) 적폐사단의 조직적 저항이다. 촛불로 이뤄낸 탄핵과 대선 결과를 부정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구속된 김 지사는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옥중 편지에서 “유죄 판결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진실을 향한 긴 싸움을 해야 할 것 같다”며 판결의 부당성을 거듭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의 ‘재판 불복’을 ‘반(反)헌법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삼권분립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집권당이 ‘적폐 판사의 보복 재판’이라는 식으로 공격하고 법관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그 자체가 헌정 질서를 흔드는 반헌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관련 의혹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정조준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청와대 앞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대통령은 김 지사의 댓글조작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답하라”고 말했다. 한국당 소속인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여야 간 전면전 구도가 형성되면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을 논의하려던 2월 임시국회 등 주요 정치 일정도 올스톱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관의 과거 근무 경력을 이유로 특정 법관을 비난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정쟁으로 법치국가의 원칙이 훼손돼선 안 된다. 여야의 냉정한 대응을 바란다”고 촉구했다.길진균 leon@donga.com·최우열 기자}
“국회의원 전원 이해충돌 조사하자.”(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자유한국당 이군현 노철래 의원 ‘재판 청탁’ 의혹도 밝혀야 한다.”(민주당 이해식 대변인) 민주당이 최근 터지는 각종 악재에 대처하는 방법은 ‘너희도 했잖아’ 프레임이다. 의혹이 터지면 일단 부인한다. 여론이 악화되면 “당사자 해명을 들어 보겠다”며 침묵한다. 그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한국당도 했지 않느냐”고 나온다. 서영교 의원의 ‘재판 청탁’ 의혹과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 의혹이 불거진 이후 민주당은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17일 이군현 노철래 의원의 ‘재판 청탁’ 의혹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한국당도 유사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으름장을 놨다. 손 의원 사건도 마찬가지다. 침묵하던 민주당은 한국당 송언석 장제원 의원의 이해충돌 논란이 터지자 수세에서 공세로 급격히 전환하면서 한국당의 과거를 거론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8일 한국당에 ‘엄정한 조사’를 요구했다. 표 의원은 “이익충돌 여부 전수조사를 요청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가족과 함께 경북 김천의 김천역 인근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송 의원은 해당 지역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장 의원은 교육부 지정 ‘역량강화대학’ 사업에 예산 확충을 요구했는데, 가족이 운영하는 동서대가 후보 대학에 포함돼 있다. 민주당은 사안 자체의 시시비비를 따진 뒤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한국당의 비슷한 사례를 찾아 이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프레임 전환에만 몰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을 강행한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문제도 알고 보면 비슷한 방식이다. 민주당은 조 위원이 2017년 대선 때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명선거특보로 활동했다는 의혹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한나라당 출신을 중앙선관위원으로 임명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다”고 물고 늘어졌다. 정당과 선거 주무기관의 건강한 긴장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간 데 없고 “한국당도 이전에 그랬다”며 피장파장이니까 없던 일로 하자는 식이다. 민주당의 이 같은 전략은 지난해 말부터 부쩍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선 한국당 의원들이 태양광사업의 졸속 추진 의혹을 제기해 수세에 몰리자 민주당 의원들은 “농어촌공사가 이전 두 정부 때도 41건의 태양광사업을 했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의 흐름을 좇아보면 “민주당이 집권했으니 좋아질 것이다”에서 “보수정권이 쌓아놓은 적폐가 문제다”를 거쳐 이제는 “한국당도 그랬다”는 식으로 집권여당의 해명이 변하고 있다. 이는 청산의 대상으로 여겼던 보수야당과 어느덧 닮아가고 있는 집권여당의 현주소를 스스로 자인하는 단면이다. 24, 25일 1박 2일 동안 경기 고양시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한 지역위원장이 이해찬 대표 등 당 지도부를 앞에 두고 “우리가 한국당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보나. 지금 국민 눈에는 한국당과 민주당이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제 무슨 일이 터지면 상대 당의 비슷한 논란과 의혹을 찾아내는 것이 거대 양당 모두에 매뉴얼화된 듯하다. 이 같은 ‘피장파장’식 때우기는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를 키울 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야당을 물고 늘어진들, 이런 식의 자해적 싸움에서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은 국정운영의 책임이 있는 여당일 수밖에 없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장관은 사실 큰 의미 없어.” 2017년 가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정치권 출신 A 씨가 ○○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는 장관과도 막역했다. 사석에서 만난 그는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관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인사수석실에서 먼저 OK가 떨어져야 장관이 절차에 따라 추천하고 임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 흔히 청와대 인사수석으로 불리는 자리가 있다. 대다수 국민은 물론이고 여러 정치권 인사도 인사수석을 원래부터 청와대에 있던 자리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자리는 ‘청와대의 뜻’으로 결정되는 현실이 만들어 낸 착시 현상이다. 인사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처음 생겼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을 교체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전까지 민정수석이 독점한 인사에 대한 추천·검증 기능을 분리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인사수석은 주류 사회 교체의 첨병 역할을 수행했다. 장관의 인사권은 위축됐고 각 부처는 물론 공기업, 정부 투자기관 및 출연기관 중간 간부 인사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의 입김은 더욱 거세졌다. 이명박(MB) 정부 초기 실세였던 정두언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직후 MB에게 이 같은 문제점을 설명하며 인사수석실 폐지를 건의했다. MB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MB는 “인사수석을 없애면 이 사회 곳곳에 침투한 좌파세력들은 어떻게 척결하느냐”는 취지로 답했다. MB는 인사수석을 없애는 대신 대통령실장(현 비서실장) 직속으로 인사비서관을 두었다. 그러나 인사비서관의 역할과 영향력은 이전 정부 인사수석과 별 차이가 없었다. 현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대표적 비판 중 하나는 “청와대만 보인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각 부처 인사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을 일일이 챙기면서 장관의 존재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서 일하는 인사수석비서관실의 행정관은 대통령의 철학과 지침에 대해 추천권자인 육군참모총장과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해명은 압권이었다.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사수석실 행정관은 참모총장과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강변한 건 지나쳤다. 청와대가 장관 총장 청장 등 각 부처 인사권자를 희화화시키면 그들의 부처 장악력은 현격히 떨어진다. 이들이 바지사장으로 전락하면 관료들은 청와대 눈치만 살피게 되고, 복지부동이 퍼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책임총리 또는 책임장관은 껍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청와대 정부’는 짧은 임기 안에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대통령으로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청와대 정부’일 수만은 없다. 박근혜 정부 3년 차인 2015년 2월,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를 찾은 이완구 총리에게 “지금은 당 대표인 저도 장관의 이름을 다 못 외울 정도로 (장관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위기에 몰리자 당도, 정부도 함께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 3년 차다. 개각설이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 출신 장관들은 국회로 돌아가고 관료 또는 전문가 출신 장관이 배치될 것이다. 내각의 존재감이 더욱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다. 장관이 정책의 주체로 소신을 갖고 일하려면 최소한의 인사권은 필수다. 차관 등 고위직 인사는 논외로 하더라도 국·과장 또는 산하 단체 인사권 정도는 과감하게 각 부처 장관에게 넘겨야 한다. 장관이 사명감을 갖고 휘하 공무원과 신나게 일하도록 해야 규제혁신도, 개혁도 가능하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지난해 반도체 수출 1267억 달러 달성은 누가 뭐래도 삼성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가 4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 총수를 단독으로 만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년 차를 맞아 경제 활력을 키워드로 제시한 가운데 정부가 새해부터 대기업과의 접촉면을 동시다발적으로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해 “메모리 반도체 1위 삼성의 위용이 다시 한번 발휘됐다”며 “단일 부품으로 1000억 달러 이상을 한 해 수출하는 것은 어떤 선진국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이 기록이 사상 최초의 6000억 달러 수출에 기여했고, 수출액수 세계 6위 국가가 되는 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방문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은 5세대(5G) 네트워크 통신장비 생산라인이 있는 곳으로 3일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이 총리는 “보통 어딜 가면 제가 격려를 해드리러 간다고 보겠지만 사실은 격려를 받고 싶다”면서 “‘반도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5G 통신 장비에 대해선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는 격려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어 “국민들께서 기대만큼 주문도 있고 세계인들 또한 가장 많이 주목하는 삼성이니까 그런 내외의 기대와 주목에 상응하게 잘해 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방명록에 ‘반도체에서 그런 것처럼 5G에서도 三星(삼성)이 先導(선도)하기를 바란다’고 적은 뒤 이 부회장 등 삼성 고위관계자들과 40여 분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은 “일자리나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때로는 부담감도 느끼지만 국내 대표 기업으로서 의무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또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도전하면 5G나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성장산업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과 함께 발전해야만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상생의 선순환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통해 미래 인재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겠다”고도 했다. 이 총리는 ‘삼성에 투자나 일자리 관련 당부를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부러 부탁드린 것은 아니다. 전혀 제 입에선 부담될 만한 말씀은 안 드렸는데 이 부회장께서 먼저 말씀해 주셨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다가 한 기자가 애플의 아이폰을 들고 있자 “(삼성이 만든 휴대전화인) 갤럭시였으면 한마디 했을 텐데”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간담회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윤부근 부회장, 이인용 고문, 노희찬 사장 등 삼성전자 임원진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등이 함께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4대 경제단체장과 만나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각 기업의 협조를 당부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더 잘사는 대한민국을 위한 민주당-경제단체장 신년간담회’를 열고 기업인들을 만났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김준동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등이 참석해 신속한 규제 완화 등을 주문했다. 홍 원내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시행령까지 마련돼 규제 완화, 규제 혁신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국회에 규제 혁신과 관련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조정·조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은 “기업들이 자유롭게 일을 벌이고, 시장에서 자발적인 성장이 나오게끔 유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기업의 기를 살리는 데 여당이 앞장서 달라”며 “최저임금도 업종별 연령별 지역별 구분적 도입 등 종합적인 개편이 추진돼야 한다”고 촉구했다.길진균 leon@donga.com·유근형·박효목 기자}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됐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했다’는 의견이 60.4%로 ‘잘했다’는 의견(30.8%)에 비해 두 배 가까이로 많았다. 이는 동아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6∼2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잘못한 경제정책으로는 최저임금이 32.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일자리 정책(16.9%),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12.8%),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8.7%), 부동산 정책(7.8%) 등의 순이었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는 ‘정책을 시장의 요구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68.5%에 달했다. 22.5%는 ‘원래 계획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탄력근로제 단위시간 확대 등이 이슈인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41.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부가 아닌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29.4%),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23.9%)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정부여당은 야당과 기업의 요구와는 달리 2월까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단위시간 확대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를 열고 약정휴일과 약정수당만 산입에서 제외키로 한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1일부터 적용되는 시행령은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월급을 시급으로 환산할 때 주휴수당과 주휴시간을 모두 포함한다. 사업주는 이달 말 월급부터 174만5150원(올해 최저시급 8350원×209시간) 이상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최저임금 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 정부는 일부 대기업까지 최저임금을 위반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임금체계 개편을 전제로 6월까지 처벌을 면제하기로 했다. 소상공인회는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나 영세·소상공인들의 인건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여당의 현실 인식은 달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그 성과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수출과 소득지표를 들어 “지표상 경제 체질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길진균 leon@donga.com·유성열·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