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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부터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그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합친 MZ세대는 사회의 빠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MZ세대의 욕구와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슬기로운 MZ라이프’에서는 MZ세대가 세상과 만나고 역동적으로 바꿔나가는 현장을 소개한다.》 ‘우리가 시간이 없지, 세상이 안 궁금하냐!’ 밀레니얼 세대는 바쁘다.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거나 취업 준비를 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각종 스펙을 쌓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인스타그램도 한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싶지만 뉴스는 딱딱하고 용어는 낯설며 맥락은 오리무중이다. ‘사법 농단’이 언제 때 일인가. 그걸 알아볼 시간이 없을 뿐 세상에 무관심하지는 않다. 누가 속 시원하게 정리해 줄 수 없을까.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Newneek)’은 2030세대의 이 욕망을 파고들었다. 매주 월, 수, 금요일 아침마다 시사 뉴스레터를 e메일로 보낸다. 그날 점심 자리에서 화제로 떠오를 만한데 한두 마디 끼지 못하면 자존심 상할 법한 사회 경제 정치 등 이슈를 3건 갈무리해 준다. 여기에 각 140자 안팎의 ‘가성비 좋은 1분 뉴스’ 3건을 덧붙인다. 2018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해 2년여 만에 ‘뉴니커’라 칭하는 구독자가 28만 명을 넘었다. 90% 이상이 20대와 30대다. 뉴닉은 밀레니얼 세대가 뉴스를 멀리하게 만든 ‘(기존 기사의) 엄숙하고 건조하며 일방적인 어투와 문법’을 뒤집는다. 이른바 ‘뉴닉투’인 대화체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준다. 어떤 사건을 친구에게 알릴 때 “있잖아 ∼했대” 하듯. 종결어미도 ‘∼습니다’ 대신 ‘∼라고’ ‘∼예요’ ‘∼고요’를 선호해 입말에 가깝게 친숙함을 더한다. 문장 구성은 대화처럼 문답식이 많다. 예컨대 국무총리가 정세균으로 바뀐다고 하면 누구나 알 것 같지만 ‘국무총리가 뭐더라?’부터 풀어준다. 이를 ‘배경을 풀어준다’고 한다. 그 다음은 ‘정세균은 누구지?’이다. 시사뉴스 총괄 최창근(닉네임 근) 에디터(30)는 “다음 내용이 궁금한 독자의 속마음을 알아차리듯 뉴스레터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제일 우선순위는 독자다. 아이템 선정도 ‘독자가 원하는 것일까’라는 원칙 아래 시의성, 관련성, 복잡성, 신선함 등을 확인하는 내부 기준과 매뉴얼에 따른다. 따로 편집장 없이 매일 쓰는 당번과 편집 당번이 돌아가면서도 큰 차이 없이 아이템을 결정할 수 있는 이유다. 독자 중심의 첫 번째 원칙은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이다. ‘국무총리가 뭐야?’라고 해도 될 텐데 ‘∼뭐더라?’ 한 건 ‘(국무총리가 뭔지) 들어봤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한번 들어볼까’ 하는 뉘앙스다. ‘∼뭐야?’는 독자가 아예 모른다고 전제하는 투다. 다음은 ‘독자의 판단을 존중한다’. 서비스 초반 ‘사실은 이래요’ 식의 에디터 코멘트를 넣었지만 나중에 덜어냈다.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한 뒤 판단하고 싶다’는 독자 반응을 수용했다. 그리고 환경, 성(性)소수자, 페미니즘같이 ‘양보할 수 없는 가치는 타협하지 않는다’. 이런 이슈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뉴노멀이다. 이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의 감수성을 깊게 살핀다. 최신 유행어나 신조어도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비하한다고 판단되면 쓰지 않는다. ‘주린이(주식+어린이)’라는 말이 어린이를 서툴고 어리석은 존재로만 한정한다며 ‘주마추어(주식+아마추어)’라고 쓰는 식이다. 독자 피드백은 그래서 중요하다. 뉴스레터당 1000건 정도 피드백이 달린다. 6000개가 넘은 것도 있다. 소통을 통해 진화하는 셈이다. 뉴스레터 작성은 밀레니얼 세대인 뉴닉 구성원 10여 명에게 모두 열려 있다. 누구나 수정하고 팩트체크 할 수 있다. 글 좀 써봤다고 해도 ‘다른 말을 배우는’ 과정을 두세 달 거쳐야 익숙해진다. 뉴닉은 김소연 대표(킴·27)가 미국 워싱턴 로버트F케네디인권센터에서 했던 인턴 경험에서 출발했다. 미국인 직원들의 정치 관련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도무지 맥락을 파악할 수 없던 그에게 한 시니어가 ‘모닝브루’ 같은 뉴스레터를 추천했다. 구독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 해보고 싶다’며 귀국한 킴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지금의 모양새를 갖췄다. 성공 스토리를 써 나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생존이 목표인 스타트업일 뿐이다. 그래도 뉴닉은 밀레니얼 독자들이 세상 이야기 너머의 지식과 복잡한 이면에까지 관심을 갖게 만드는 마중물이 되려 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지난달 기습 폭설과 영하 18도의 강추위로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돼 길에서 멈춰선 경우가 많았다. 함박눈이 쏟아진 지난달 6일부터 8일까지 한 대형 손해보험사 콜센터에 들어온 긴급출동 서비스 요청은 평소의 4배까지 늘었다고 한다. 늦겨울 한파와 꽃샘추위가 남아 있어 자동차 배터리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시동을 걸 때 전동기 및 점화 계통 기기와 차의 램프 오디오 히터 등에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배터리는 낮은 외부 기온, 교환 주기 경과, 블랙박스 상시 녹화로 인한 전력 소모, 장기 주차, 발전기 불량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방전이 된다. 이 중에서도 기온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온도가 내려갈수록 엔진을 돌리는 힘은 더 필요하지만 배터리 출력은 오히려 더 떨어진다.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인 경우 배터리는 급속히 방전된다. 기온이 25도일 때 배터리 출력을 100이라고 하면 0도는 63, 영하 18도는 46, 영하 30도는 30이 된다. 반면 엔진을 돌리는 힘은 25도인 경우 100이 필요하다면 0도는 165, 영하 18도는 250, 영하 30도는 350이나 필요하다. 기온이 지난달처럼 영하 18도를 나타내면 배터리 성능은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엔진을 돌리는 힘은 평소의 2.5배가 필요해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것이다. 추운 날 차가 멈춰서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평소 배터리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차량 보닛을 열고 배터리 케이스를 살펴보면 위쪽에 배터리 충전 상태를 알려주는 동그란 상태창이 있다. 이 색이 녹색이면 정상, 흑색은 충전 요망, 백색은 교체 필요를 뜻한다. 장기 주차 차량은 지하주차장 같은 실내에 세워놓거나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은 시동을 걸어주면 좋다. 차량 블랙박스는 주차 모드로 하고 저전압 보호 값을 12.0∼12.2V에 설정해야 한다. 김승기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영하 10도 이하의 한파가 이어지면 배터리 출력이 절반 이하로 낮아져 시동이 안 걸리기 쉽다”며 “차량의 배터리 충전 상태를 틈틈이 점검해야 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정관장(正官庄) 홍삼의 역사는 1899년(고종 36년) 대한제국 탁지부 삼정과(蔘政課)까지 122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정관장이란 말은 6·25전쟁 이후 홍콩 등 해외에서 인기가 높아진 한국 홍삼을 모방한 북한 및 중국 제품이 나오자 1956년 홍콩 신문 광고에 ‘한국 정부에서 만든 진짜 고려인삼’이라는 뜻으로 처음 등장했다. 국내 홍삼 제품 부동의 1위인 정관장 홍삼은 토양 선정부터 원료 관리, 제조, 제품 완성까지 8년간 KGC인삼공사의 관리와 감독 아래 100% 계약 재배된다. 7차례에 걸쳐 290개 항목의 안전성 검사를 받는다. 연매출 3000억 원이 넘는 홍삼 농축액 ‘홍삼정’ 시리즈는 서울 등 전국 14개 광역시도에서 누적 매출 1위다. 사포닌과 아미노산, 아미노당, 홍삼다당체, 미네랄 등 6년근(根) 홍삼의 유효 성분을 농축해 본연의 맛과 향이 풍부하다. 맛이 풍부하고 진한 ‘홍삼정 프리미엄 라인’은 설 선물로 좋다. ‘홍삼정 천(天)’은 상위 0.5% 6년근 천삼(天蔘)으로 1년에 3000병만 생산한다. 지삼(地蔘)이 원료인 ‘홍삼정 마스터클래스’ ‘홍삼정 리미티드’도 부드럽고 맛이 깊다. 정관장은 2월 14일까지 ‘올 설엔 면역력을 선물하세요’ 판촉 행사를 진행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KT&G 궐련형 전자담배 ‘릴’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며 성공 궤도에 진입했다. 필립모리스 ‘아이코스’, BAT코리아의 ‘글로’보다 한발 늦었지만 연구개발(R&D) 투자를 앞세운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됐다. 2017년 선보인 뒤 국내 기기 판매점유율이 지난해 10월 편의점 판매량 기준 60%를 넘어선 릴은 지난해 8, 9월 전자담배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가 높고 시장 규모도 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각각 진출했고, 10월에는 일본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스피드와 혁신 KT&G는 지난해 1월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PMI의 세계 유통 채널을 통해 릴을 판매하기로 하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해외 독자 진출의 위험을 줄이면서도 PMI의 유통망을 활용하면서 효과를 높인 것이다. PMI로서는 글로벌 판매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루 갖추게 됐다. PMI는 KT&G의 스피드와 혁신에 주목했다. 2015년 10월 취임한 백복인 사장(사진)은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 박차를 가했다.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릴을 시장에 내놓은 후 3년간 기능과 디자인을 개선한 7개 모델을 잇달아 선보였다. 같은 기간 경쟁사에서 평균 4개 모델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다. 휴대성과 편의성, 그리고 연무(煙霧)량 등을 꾸준히 보완하며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릴은 시장에 나온 지 100일 만에 판매량 20만 대를 돌파했고 잇달아 선보인 ‘릴 플러스’ ‘릴 미니’ 등도 반응이 뜨거웠다. ‘릴 하이브리드’는 KT&G의 독자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2018년부터 2년 연속 한국소비자포럼 주관 ‘올해의 브랜드 대상’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부문 대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인체공학적, 실용적 디자인으로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제품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3월 미국 면세박람회에서 공개되자 200여 해외 바이어팀으로부터 ‘아름답고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꾸준한 R&D KT&G는 담배시장에서 중요성이 커져가는 R&D를 꾸준히 강화했다. 냄새 저감을 비롯해 소비자 취향은 세분화하고 담배 형태도 다양화하는 가운데 날로 변화하는 소비자 욕구에 발맞춘 제품을 개발하는 기술력을 키워왔다. 전자담배 마케팅 개발조직을 NGP(Next Generation Product)사업단으로 격상한 백 사장은 R&D 투자와 인력을 확대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술 리더십’을 강조했다. R&D 투자는 2015년 126억 원에서 2019년 230억 원으로 늘어났다. 기술 리더십은 특허 출원 및 제품 개발 조직과 인력 확대로 이어졌다. 2016년 차세대 담배 제품을 개발하는 전담 조직을 신설한 데 이어 전문 인력도 2배 이상 늘렸다. 직무발명보상제도 확대 같은 지원 정책도 늘어났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KT&G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 3일까지 전자담배 관련 961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국내(309건)보다 해외(652건)가 2배 이상이다. 특허 출원 건수는 2016년 43건, 2017년 95건, 2019년 431건 등으로 해마다 갑절 이상 성장했다. 릴의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권의 해외 출원도 증가했다. 2018년부터 지난해 12월 3일까지 국내 포함 13개 국가에서 특허권 1408건, 68개국의 상표권 2147건, 14개국의 디자인권 697건 등 총 4252건이다. 국내(1027건)보다 해외(3178건) 출원이 3배 이상으로 많다. KT&G 관계자는 “전자담배 시장은 누가 더 빨리 기술혁신을 이뤄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느냐의 싸움”이라며 “기술력을 기반으로 편의성을 높인 새로운 전자담배 플랫폼을 계속 내놓으면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매일 삶의 여로를 걸을 때 이런 품위와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1960년대 초 미국 플로리다주 탤러해시에서 할머니와 살며 호텔 접시닦이, 잡화점 점원을 하는 흑인 소년 엘우드. 빈곤하지만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이런 연설 음반을 들으며 대학에 들어가 민권운동에 참여할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어이없게 자동차 도둑 누명을 쓰고 ‘니클(Nickel)’이라는 소년 감화원에 수감된다. 이곳은 감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름(니클은 미국 5센트 동전)처럼 원생들은 ‘5센트짜리만도 못한’ 삶을 산다. 감화원 교장과 직원들은 물품을 빼돌리거나 원생 노동력을 착취해 사리사욕을 챙긴다. 이곳에서 ‘정의는 동전 던지기와 같아’ 원생에 대한 채찍 폭력과 학대가 일상이고 그로 인한 죽음은 은폐된다. ‘우리 자신을 위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던 이상주의자 엘우드는 점점 ‘침묵의 미덕’을 받아들이게 된다. 읽다 보면 ‘쇼생크 탈출’ 같은 이야기 전개를 기대하게 되지만 희망은 희박하다. 흑인 차별문제에 천착해온 저자는 2016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이어 올해 이 작품으로 두 번이나 퓰리처상을 받았다. 니클은 1899년부터 2011년까지 플로리다주에서 운영되던 실제 소년원이 모델이다. 이 소년원 주변에서 발굴된 유골은 80건이 넘는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앨버트 허시먼(1915∼2012)은 보수(혹은 반동)의 수사학을 분석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언뜻 정치학자나 사회학자처럼 보이지만, 분배기능이 경제발전의 동력일 수 있다는 ‘터널이론’이나 1960, 70년대 제3세계(저개발국)의 개발경제론으로 이름난 경제학자다. 그가 수학이론을 사용하지 않아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지 못했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이 책은 프린스턴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가 쓴 허시먼 평전이다. 영어 원제 ‘세속의 철학자: 앨버트 허시먼의 오디세이’에서 드러나듯 허시먼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공부에만 몰두한 학자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독일 베를린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10대 후반에 반(反)나치운동을 벌이다 독일을 탈출했다. 스페인 내전 때는 반파시즘 진영에서 싸웠고 미국으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으로 참전했다. 이후 경제학자로 미국 정부에서 전후 유럽부흥계획인 마셜플랜을 다듬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에 휘말려 콜롬비아 보고타로 떠나 남미 개발계획 작성에 힘을 보탰다. 1970년대 남미 독재에 좌절하기도 했다. 허시먼은 혁명과 반혁명,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같이 시대와 역사를 초월해 적용 가능한 유토피아적 거대담론과 계획을 경계하고, 그 사이에 개혁의 영역이 있다고 확신한 실용적 이상주의자였다. 그에게 개혁은 무성한 논쟁과 갈등 속에서 ‘인류를 조금 더 낫게 만들겠다는 열망’이 추동해 변화해 나가는 것이었다. 진보주의자에 반자본주의자로도 알려져 있지만 허시먼은 ‘경직되고 비타협적인 형태의 주장들이 선택지와 대안의 범위를 좁혀 버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한 급진적 점진주의자였다. 그에게 한 사회의 민주적 수준은 ‘자신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집단들이 열린 대화를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학교 뒷동산에 나타난 바바리맨을 오히려 놀려주고, 반지하방 하수가 역류해 화장실 오물로 이불까지 흠뻑 젖고, 술 취한 뒤끝에 일어나 보니 앞니 4개가 반 토막이 나 있다. 한날 동시에 연애를 시작한 친구가 한 달 되도록 키스를 못했다고 하자 “뭔 개소리야, (난) 섹스를 몇십 번 했는데” 하고 핀잔을 놓는다. 막내 시절은 벗어난 방송작가 강이슬(29·사진)의 에세이집 ‘새드엔딩은 없다’(웨일북)는 웃긴데 짠하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등굣길. 영세민 아파트 13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외로워도 슬퍼도 울긴 왜 울어’(‘캔디’ 주제가)를 불렀다는 강 작가의 글에는 우울도, 슬픔도 아닌데 눈물이 자글자글하다. 9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그는 “의도하지 않고 밝게 쓴 건데, 웃어넘길 수 있고 웃어넘긴 채로 쓴 건데, ‘웃프다(웃긴데 슬프다)’고 하네요. 제가 좀 짠한가 봐요”라며 웃어넘겼다. 넉넉지 않은 집 맏딸로 서울 생활 10년, 방송작가 생활 7년에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를 거쳤고, 첫 봉급 34만8000원을 받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 이름 적으며 욕하는 데 일기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그와 그의 글에는 긍정의 에너지가 물씬하다. “대학 4년간 산 고시원이 작은 줄 몰랐어요. 고교 때 기숙사 한 방에서 10명이 2층 침대 5개 놓고 잤는데, 고시원은 침대도 책상도 혼자였으니 ‘꿀’이었죠. 반지하에서는 옆집 소리 안 들리니 좋고, 옥탑방으로 갔는데 빛이 들어오더라고요.” 2년쯤 전 기획하던 프로그램이 엎어지며 전기 끊기고 월세는커녕 수도요금도 밀렸을 때 ‘나만 빼고 다 잘사는데, 이러려고 대학 나왔나’ 하는 생각에 ‘딱 한 번’ 슬럼프가 왔지만 채 일주일을 안 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가 말도 안 되게 재미있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지만 아직 글쓰기를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취미다’라고 명심해요. 지구력도 끈기도 없는 제가 재미있게 오랫동안 하고 있는 유일한 거거든요. 지칠 때까지 하지 않아도 되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부담감만 갖자고 해요. 이걸로 성공해야 한다, 그런 거 말고요.” 그의 글은 시트콤 같고 콩트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문단 하나하나를 각각의 신(scene)으로 생각하고 글을 써서일지도 모르고, 이제 우리 나이로 갓 서른인 그의 삶에 ‘나만 알고 죽기 아까운 에피소드가 너무 많이 생겨서’일지도 모른다. 멋져 보이려 하지 않는 글을 쓰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다는 강 작가는 ‘아, 친구랑 수다 떠는 기분’이라는 독후감이 가장 듣기 좋단다. “킬링타임용으로 보다가 저절로 집중되는 미드 같은 글, ‘나는 왜 이렇게 못 살지, 내일부터 달라져야지’ 말고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정도의 글,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상을 뒤흔든 올해 독자들은 자기계발 및 경제경영서를 많이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가 7일 발표한 올해 베스트셀러 및 도서판매 동향 분석에 따르면 베스트셀러 톱10 안에 ‘더 해빙’(1위) ‘돈의 속성’(2위)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4위) ‘존 리의 부자 되기 습관’(6위)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7위) 등 5권이 들었다. 지난해는 2권이었다. 지난해 종합 1∼3위였던 에세이는 한 권도 들지 못했다. 교보문고 측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경제적 생존에 대한 열망, 부와 행운에 대한 생생한 욕망의 움직임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10위 안에 소설은 손원평의 청소년 소설 ‘아몬드’가 유일하게 3위에 올랐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소설, 세계문학전집, 청소년소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책 제목에 ‘코로나’ ‘팬데믹’ ‘전염병’ ‘바이러스’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도서는 매년 20종가량 출간돼 1만 권 안팎으로 팔렸지만 올해는 392종이 출간돼 총 20만 권이 나갔다. 교보문고 전체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3% 상승했다. 증감률을 보면 초등학습(31.0%) 과학(29.4%) 경제경영(27.6%) 정치사회(23.1%) 취미·스포츠(20.2%) 분야는 크게 늘었고, 여행(―62.3%) 잡지(―19.1%) 외국어(―9.5%)의 하락세가 컸다. 교보문고는 이 같은 트렌드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잠시 멈춤(PAUSE)’을 내세웠다. 팬데믹(Pandemic), ‘집콕’도 즐겁다는 얼론(Alone), 비대면 채널 성장의 언택트(Untact), 주식 투자 열기의 스톡(Stock), 교육도서 급증의 에듀케이션(Education) 등의 영어 머리글자를 땄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뇌종양 투병 중인 시인 김점용(55·사진)의 시집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하였네’(걷는사람)가 최근 출간됐다. 2017년 별처럼 생긴 성상세포에서 암이 생겼다는 판정을 받은 이후 쓴 시와 이전 미발표 시 등 48편을 동료 시인들이 묶었다. 어쩌면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 될지 모를 이 책의 시들은 신산했던 삶의 마디마디와 죽음에 대한 관조(觀照)를 때로는 차분하고 때로는 불안하게 담았다. ‘모든 별들이 살아 있는 죽음을 나르는 칠성판/영원히 사는 인생이 어딨어/내 머릿속의 별들도 조용히 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혼자서 스스로의 장례를 치르며 두 팔을 활짝 벌리네’(‘스위스행 비행기’ 중) 5년 전 결혼한 아내와의 단꿈이 3년 만에 흐트러지던 순간, 별 모양 종양을 머리에 인 시인은 ‘존엄사가 인정되는’ 스위스행을 꿈꾼다. 경남 통영 출신이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다. 그렇게 7년 만에 서울시립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다 1997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시로 등단하고 문지시선에서 시집을 두 권 냈다. 대학원에 들어가 2003년 ‘서정주 시의 미의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8년 모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조교수가 됐다. 2012년 석연치 않은 ‘연구업적 부족’을 사유로 해임된 뒤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지만 패소한다. 그 심정을 시인은 ‘법원 앞마당은 자꾸 꿈틀거렸다/뱀장어가 발목을 감는다’(‘우나기’ 중)고 털어놓는다. 2013년 경북 청도에서 목수 일을 배워 한옥 목수로 일했다. ‘빈 술잔 속에 집터를 잡고/빗소리를 깎아 집을 세운다/세상에서 가장 크고 외로운 집/찬란히 들어’설 뿐이다.(‘술잔 속에 집을 짓다’ 중)시인은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잘 못 보고, 잘 못 듣고, 잘 걷지 못하는 몸’으로 있다. 지인에게 보낸 시집 50부에는 서명 대신 그의 오른손 네 손가락이 찍혀 있다. 펜을 쥐지 못하는 시인의 손을 부인이 잡고 찍었다. 시인은 “여보, 이 시집은 당신 거야. 고마워”라고 ‘시인의 말’에 썼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어스름해지면 학교 뒤쪽 골목길 ‘종로매점’ 앞 차 밑으로 길고양이 몇 마리 기어들어갔다. 웅숭그리듯 앉아 구멍가게를 주시한다. 가게 창으로 새 나오는 불빛이 이들의 실루엣을 드러낼 때, 고경원 야옹서가 대표(45·사진)는 좋았다. “가게 할머니가 나와서 음식을 챙겨주길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먹을 것을 챙겨줬죠.” 야옹서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양이 책만 전문으로 낸다. 최근 ‘말괄‘냥이’ 삐삐’(글·사진 박단비)를 펴낸 고 대표를 2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났다. 고 대표는 국내 ‘고양이 작가 1세대’로 꼽힌다. 길고양이에 ‘꽂혀’ 2002년 한 웹진 기자로 일하면서 디지털카메라로 길고양이를 찍고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2007년 낸 첫 길고양이 사진 에세이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는 6쇄나 찍었다. “일반인 머릿속의 길고양이는 쓰레기봉투를 찢고 사람을 보면 겁에 질려 도망가는 ‘무법자’ 느낌이죠. 그런데 길고양이들이 사는 공간을 찾아가보면 엄마가 새끼를 돌보고, 먹을 것 놓고도 동료끼리 줄서서 기다려요. 우스우면서도 귀여운 이들이 사람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눈을 맞춰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죠.”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혼자 다 쓰기에는 한계가 있어 책을 내보자고 생각해 잡지사를 퇴직하고 2017년 7월 출판사를 열었다. 첫 책은 제주도로 현실 도피하듯 떠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던 여성이 하얀 길고양이를 만나 서로에게 가족이 돼주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기록 ‘히끄네 집’이었다. 한 달 만에 5쇄를 찍고 1만5000부가 나갔다. 야옹서가는 ‘말괄‘냥이’ 삐삐’처럼 큰 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는 ‘성묘(成猫)’ 이야기, 아이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면서 사는 모습을 다룬 ‘육아·육묘(育猫)’ 이야기, 그리고 고양이 사진집을 낸다. “고양이가 피사체로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대상이라는 사실에 더해 사람과 살아갈 때의 기쁨 슬픔 문제들을 다같이 보자는 뜻에서 책을 만들고 있어요. 고양이의 생로병사 중에서 ‘로병사(老病死)’는 생각을 잘 안 하시죠.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고양이 입양은 보류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고양이가 버려지는 이유 중에는 결혼 임신 출산이 있다고 한다. 고 대표는 “아이 낳을 텐데 무슨…” “털 날리는데…” 같은 배우자나 배우자 가족의 반대를 설득할 근거를 책으로 만들고도 싶었다. 올 10월 펴낸 ‘가장 보통의 가족’(글·사진 김동건)은 수의사가 아이와 고양이를 같이 기르는 이야기다. 이달 말에는 고양이의 말기 간호와 임종, 그리고 사후를 맞는 마음의 준비를 가르쳐주는 만화책을 낸다. “고양이는 종(種)이 다른 가족이에요. 맞아들이는 데 많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죠. 입양이 너무 쉬우면 안 돼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그런 정보를 알려주는 데 책만 한 것은 없어요.”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2014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The 50 Year Argument’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미국의 문화적 담론을 선도하는 서평지(書評誌) ‘뉴욕리뷰오브북스(NRB)’ 창간 50주년 기념작이다. 그는 “나를 키운 것은 상당 부분 NRB였다”고 했다. ‘한국의 NRB’를 표방하는 서평지 ‘서울리뷰오브북스(SRB)’가 이달 하순 태어난다.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철학 건축학 정치학 등을 전공하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경희대 명지대 등의 교수와 전문가 13인이 편집위원이다. 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편집장인 이 대학 홍성욱 생명과학부 교수(59)와 편집위원 박훈 동양사학과 교수(54), 송지우 정치외교학부 교수(40)를 만났다. “지난해 몇몇 출판사와 접촉했는데 모두 ‘한국에서 서평지는 안 된다’고 했어요. 고민하다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책에서 ‘한국에도 NRB 같은 서평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구절을 보고 함께 마음 맞는 사람을 모아 보자고 했지요.”(홍 교수) 그렇게 50대 남성 8명과 30, 40대 여성 5명이 모여 SRB의 성격과 방향을 논의했고 올가을 창간준비호(0호) 제작에 들어갔다. 계간지 형식이며 온라인 버전도 만든다. 신간 대 구간, 학술서 대 대중서, 번역서 대 미(未)번역서 등의 비율을 6 대 4에서 8 대 2로 구성한다. 내년 창간호(1호)에는 국내 번역되지 않은 ‘오바마 회고록’ 서평이 실린다. 박 교수는 “국내 학술 출판과 번역 수준이 높아져 자연스럽게 서평지가 등장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의 ‘보고 말하는’ 시대에 ‘읽고 쓰는’ 서평의 목적은 무엇일까. “책을 낸다는 건 자신의 아이디어로 독자에게 대화를 신청하는 거고, 서평은 ‘그래 대화 하자’고 화답하는 거라고 봐요. 책을 내는 작업이 가치 있다면 서평은 그 가치를 존중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입니다.”(송 교수) 박 교수는 크게 발전한 우리 사회에서 부족한 ‘지적인 대화’의 계기를 SRB로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어떤 사태나 사물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분위기가 너무 부족해요. 그 한계를 돌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SRB가 지적인 대화의 큰 불쏘시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SRB는 기존 학계의 ‘주례사 서평’을 뛰어넘어 책을 읽고, 얘기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책의 진정한 의미와 맥락을 알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따라서 가독성과 글 읽는 재미를 놓치면 존망이 위태롭다고 본다. 홍 교수는 “NRB나 ‘런던리뷰오브북스’도 어려운 과정을 겪다 사회의 지적 공동체와 같이 성장했어요. 우리도 ‘본격’ 서평지를 통해 세상과 사물과 인간을 한 겹 더 깊게 이해하고 즐기는 문화를 같이 만들어 보자는 뜻”이라고 했다. SRB 제작은 서울대 지원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후원자를 모아 이뤄졌다. 개시 2시간 만에 목표 후원금 300만 원이 채워졌고 이날 현재 약 3000만 원이 모였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2014년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차지한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채점 결과에 개최국 효과(host effect)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따라서 이 경기 결과에 대한 의혹 제기는 매우 합리적이었다는 것이다. 개최국 효과는 ‘선수가 개최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얻는 추가 점수’를 뜻한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종희 교수(48)는 최근 편저한 ‘정치학 방법론 핸드북’(사회평론아카데미)의 베이지안 분석을 소개하는 장(章)에서 김 선수에 대한 사례 분석 결과를 밝혔다. 베이지안 분석은 조건부확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베이스 정리(定理)’를 토대로 통계적으로 불확실한 사실을 확률론적으로 기술하는 과학적 접근법을 말한다. 모든 관측 자료와 결과는 정량적이 아니라 확률 분포의 형태로 분석되고 표현된다. 소치 올림픽에서 김 선수는 무명에 가까웠던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김 선수는 쇼트 프로그램 74.92점,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 144.19점, 총점 219.11점을 받았다. 반면 소트니코바는 쇼트 74.64점, 프리 149.95점, 총점 224.59점이었다. 당시 세계 여론은 ‘대체로 공정했다’보다는 ‘홈 어드밴티지(개최국 효과)가 지나쳤다’가 우세했다. 박 교수는 ‘소트니코바의 점수가 부정(不正)이냐 아니냐’를 알아보기 위해 ‘개최국 효과가 지나쳤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베이지안 분석으로 검증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소치 올림픽의 개최국 효과가 통상적인 개최국 효과의 수준을 넘었을 확률이 얼마냐, 즉 얼마나 정확성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분석했다”고 말했다. 분석 대상은 피겨스케이팅 채점의 기술점수와 예술점수 가운데 심판의 주관적 평가에 해당하는 예술점수로 한정했다. 소치 올림픽의 개최국 효과를 이전 26개 대회 개최국 효과의 평균적 크기와 비교해 본 결과 통상적인 수준의 개최국 효과의 범위를 확연히 벗어났다. 통상적인 개최국 효과의 분포로 환산하면 평균적 크기는 2.42였는데 소치 올림픽의 경우 6.73이었던 것. 이어 소치 올림픽의 개최국 효과가 통상적 개최국 효과보다 클 확률, 즉 비정상적 개최국 효과일 가능성을 수치로 표현해 보니 쇼트 0.936, 프리 0.973, 쇼트와 프리 모두 0.911이 나왔다. 0은 개최국 효과가 이전 대회들과 차이가 없는 것이고 1은 이전과의 차이가 최대라는 의미다. “100번 시뮬레이션하면 쇼트는 94번, 프리는 97번 정도 소트니코바가 항상 개최국 효과를 통상적인 수준보다 많이 받았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90%의 확률로 소치 올림픽의 개최국 효과는 통상적 개최국 효과보다 훨씬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통상적 개최국 효과였다면 김연아 선수가 10번 중 9번은 금메달을 따야 하는 거였죠.”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2014년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차지한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채점 결과에 개최국효과(host effect)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따라서 이 경기 결과에 대한 의혹 제기는 매우 합리적이었다는 것이다. 개최국효과는 ‘개최국 선수가 오직 개최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얻는 추가점수’를 뜻한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종희 교수(48)는 최근 편저한 ‘정치학 방법론 핸드북’(사회평론아카데미)의 베이지안 분석을 소개하는 장(章)에서 이 같은 사례 분석 결과를 밝혔다. 베이지안 분석은 조건부확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베이즈 정리(定理)’를 토대로 통계적으로 불확실한 사실을 확률론적으로 기술하는 과학적 접근법을 말한다. 모든 관측 자료와 결과는 정량적이 아니라 확률분포의 형태로 분석되고 표현된다. 소치 올림픽에서 김 선수는 무명에 가까웠던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김 선수는 쇼트 프로그램 74.92점,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 144.19점, 총점 219.11점을 받았다. 반면 소트니코바는 쇼트 74.64점, 프리 149.95점, 총점 224.59점이었다. 당시 세계 여론은 ‘홈 어드밴티지(개최국효과)가 지나쳤다’와 ‘대체로 공정했다’가 엇갈렸다. 박 교수는 ‘소트니코바의 점수가 부정(不正)이냐 아니냐’를 알아보기 위해 ‘개최국효과가 지나쳤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베이지안 분석으로 검증했다.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소치 올림픽의 개최국효과가 통상적인 개최국효과의 수준을 넘었을 확률이 얼마냐, 즉 얼마나 정확성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분석했다”고 말했다. 분석 대상은 피겨스케이팅 채점의 기술점수와 예술점수 가운데 심판의 주관적 평가에 해당하는 예술점수로 한정했다. 소치 올림픽의 개최국효과를 이전 26개 대회 개최국효과의 평균적 크기와 비교해 본 결과 통상적인 수준의 개최국효과의 범위를 확연히 벗어났다. 통상적인 개최국효과의 분포로 환산하면 평균적 크기는 2.42였는데 소치 올림픽의 경우 6.73이었던 것. 이어 소치 올림픽의 개최국효과가 통상적 개최국효과보다 클 확률, 즉 비정상적 개최국효과일 가능성을 봤더니 쇼트 0.936, 프리 0.973, 쇼트와 프리 모두 0.911이 나왔다. “100번 시뮬레이션하면 쇼트는 94번, 프리는 97번 정도 소트니코바가 항상 더 많이 개최국효과를 받았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90%의 확률로 소치 올림픽의 개최국효과는 통상적 개최국효과보다 훨씬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통상적 개최국효과였다면 김연아 선수가 10번 중 9번은 금메달을 따야 하는 거였죠.”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다 자란 기린 수컷은 키가 5m 정도 된다. 평균 목 길이는 약 2m, 무게는 130∼180kg인데 머리만 약 30kg이라고 한다. 수컷끼리는 이 긴 목을 서로 엇갈려 세게 부딪히는 네킹(necking)을 통해 우열을 가린다. 이 책은 ‘(기린의) 몸속은 틀림없이 재미있는 수수께끼로 가득할 거야’라고 믿은 일본 도쿄(東京)대 1학년 여학생이 기린의 ‘여덟 번째 목뼈(경추·頸椎)’를 찾아내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1989년생인 ‘기린 박사’ 저자는 18세 때 ‘평생 즐거운 일, 힘들어도 계속 즐기며 좋아할 수 있는 것’을 기린에게서 찾았다. 동물원에서 그 동물을 몇 시간이고 볼 수 있었던 어렸을 적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기린을 연구하고 싶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그에게 운명같이 길이 열렸다. 기린 연구의 권위자인 스승은 ‘당연히 연구할 수 있다’며 방향을 제시해줬고, 전국의 여러 동물원에서는 기린 사체를 해부할 기회를 잇달아 제공했다. 크리스마스도 설날도 상관없이 죽은 기린이 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학교 종합연구박물관 작업실이나 인근 박물관으로 달려가 해부용 검은 운동복을 입고 메스를 들었다. 첫 해부 때 ‘근막을 보고 당황해 제대로 해부도 못 하고 침울해’하던 저자는 해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기린이 좋아지고 연구 주제도 잡게 된다. 기린이 목을 움직일 때 7개의 경추뿐만 아니라 제1흉추(胸椎·등뼈)도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한 그의 논문은 2016년 2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과학학회인 영국왕립협회 학술지에 발표된다. 연구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 저자가 분명히 겪었을 난관들은 투박하고 무구한 글 속으로 살그머니 녹아든다. ‘그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을 추구하고 싶다는 마음의 하나’로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는 그의 ‘아이 같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다 읽고 나면 담백한 오차즈케를 한 그릇 먹은 느낌이 든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생명공학이 맞춤아기를 탄생시키고, 빈부격차를 유례없는 수준으로 벌릴 때 인간 사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데우스’(2017년)에서 정보공학과 생명공학이 융합해 발생하는 이런 질문들에 세계 어느 종교도 답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자의 ‘논어(論語)’를 슬쩍 포함시켰다. 종교의 경지인 논어도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전망하고 해석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한물갔다’는 것. 그러나 깊어가는 가을, 국내에서는 다양한 독자층을 겨냥한 논어 5종이 잇달아 나왔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한 때도 있었지만 논어는 동양 고전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57)는 20여 년 전 냈던 역주본 논어의 개정판을 최근 현암사에서 출간했다. 논어를 100번 넘게 읽었다는 김 교수는 개정판을 위해 다시 찬찬히 읽으면서 “내 생각인 줄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이 공자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삶에 논어가 익숙하고, 당연하게 흡수돼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중국철학자 기무라 에이이치(1906∼1981)의 ‘공자와 논어’도 에코리브르에서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은 논어 내용뿐만 아니라 춘추시대 말인 기원전 6세기경 태어난 공자가 청·장년기를 거쳐 노(魯)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하다가 만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제자를 양성하기까지 그의 삶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우리말 속뜻 논어’는 논어에 처음 입문하는 독자를 위해 가급적 쉬운 우리말로 옮겼다는 특징이 있다. 논어 원문도 실었지만 우리말 부분만 읽어도 독자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논어 20편 498장을 대화와 진술, 그리고 지시문으로 엮어 한 편의 드라마 대본처럼 읽히도록 구성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논어를 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만화로 즐기는 논어’(스타북스)도 출간됐다. ‘Smart 論語 (中)―영어로 공부하는 논어’(㈜스마트논어)는 영어 번역을 덧붙였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초창기인 1990년대 말 하나로텔레콤 회장을 지낸 신윤식 전 체신부 차관(84)이 펴냈다. 신 전 차관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은 인공지능(AI)이다. AI의 ‘인성’이 제대로 갖춰지려면 미래 세대의 인성 혁명이 필요한데, 가장 좋은 교재는 논어”라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왜 이처럼 논어는 계속 읽히는 것일까. 김 교수는 “공자 사상의 핵심은 사람(人=인)이 둘(二)이라는 ‘인(仁)’인데 이는 ‘배려’라고 할 수 있다”며 “둘 이상이 같이 살아갈 때 어떻게 하면 서로 배려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논어는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간을 이식받지 못하면 목숨이 위험한 어머니에게 아들이 자신의 간 일부를 떼어드린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정말 ‘당연한’ 일인지 생각해 보자는 책이 있다. ‘나는 생존기증자의 아내입니다’(생각생각). 지은이 이경은 씨(33·사진)의 남편은 지난해 이맘때 간경변이 심한 어머니를 위해 자기 간의 70%를 떼어냈다. 그러나 수술 시간 직전까지 이 씨는 남편이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과연 남편은 안전할까.’ ‘수술 후 남편 삶의 질은 전과 같을까.’ “남편은 (기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하지’ 하는 분위기가 주변에 짙게 깔리면 기증 후보자는 아무 말도 못 해요. 정말 수술하고 싶은지 물어봐주는 사람은 병원에도 없고, 가족 안에는 더 없죠.” 그의 남편을 수술한 병원에서는 “안전하다”는 말 말고는 시스템 차원에서 기증자의 안전과 사후 건강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 없었다. 관심은 온통 수혜자에게 쏠려 기증자는 소외되는 듯했다. 정말 안전한지 근거를 보여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이 씨에게 병원 측은 ‘용기와 희생’을 말했다. 책은 이렇게 썼다. ‘현재 장기이식 시스템은 완벽한 이타심을 발휘하거나 철저한 이기심을 드러내는 두 갈래 길만을 제안한다.’ 1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 씨는 “책을 쓰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반화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이 소용없어지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근거 없는 불안도, 그만의 유별남도 아니었다. “기증자 커뮤니티나, 아주 드물지만 기증자 연구에 따르면 절반가량의 기증자가 불안감, 우울감, 알코올의존증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요. 면역력 저하, 피로감, 통증 등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고요.” 많은 기증자는 수술 이후 삶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보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더 크게 느낀다. 그렇게 내린 결정이 기증자의 진정한 자율적 선택이었는지는 병원과 언론이 그려내는 ‘미담’에 묻힌다. “모든 기증자의 자발성을 의심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여전히 ‘정신적 타격이 올 수 있고, 회복이 완전히 안 될 수도 있으며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수술 못 받겠다고 해도 괜찮으니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라’고 독려하는 시스템은 필요합니다.” 수술을 못 받겠다고 해도 비난받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해 기증자의 자율성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병원과는 독립적인 기구가 이식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자율적 선택을 시스템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에서 생체 이식은 모두 2868건 이뤄졌어요. 매년 늘고 있어서 (장기 이식이) 남의 일이라는 보장은 없어요. 제 책을 읽고 ‘별문제 없다는데’ 하는 방관자적 태도가 아닌, 기증자의 자발적 결정을 보장하라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어요.”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세제가 필요 없이 세탁기에 넣기만 하면 빨래가 된다는 ‘세탁볼’은 시중에서 몇만 원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의류는 세제 없이 따듯한 물에 담그기만 해도 어느 정도 세탁되며 기름 성분의 때가 없는 먼지, 흙, 땀 등은 물에 씻겨 나간다. … (세탁볼 대신) 차라리 골프공을 이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한다. 헛소리라는 얘기다.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와 같이 유사과학, 미신, 창조론 등에 과학으로 맞서는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스스로 회의주의자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회의주의는 무조건적인 의심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열린 마음과 너무 쉽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잃을 정도로 열린 마음이 되는 것” 사이의 균형이다. 이 책은 그가 1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미국 대표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2001년부터 6년 3개월간 쓴 75편의 에세이를 과학, 회의주의, 유사과학과 헛소리, 초자연적 현상, 인간의 본성 등 10개 주제로 나눠 엮었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인 새 미디어가 음모론과 유언비어를 퍼 나르는 역설적인 세상에서 떼로 뭉쳐 집단지성을 우롱하며 이성을 조롱하는 일이 ‘힙’한 것인 양 퍼지는 요즘,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봄 직하다. ‘집단이 지혜롭기 위해서는 자율적이고, 분산적이며, 생각이 다양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곱씹을수록 깨달음이 온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9세기 초 일본 주류 씨족의 약 26%가 한국계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국시대를 전후해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른바 도래인(渡來人)의 후예 상당수가 천황제 국가 지배체제의 한 축을 이룰 정도로 융합된 존재였다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최근 펴낸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역주본(譯註本)’(사진)에 따르면 당시 사실상 일본 왕권 및 지배계층을 구성한 씨족 1182씨(氏) 가운데 313씨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전쟁, 권력투쟁, 자연재해 등에 따라 신천지를 찾아 이동했거나, 대(對)일본 외교 및 정치적 목적으로 파견돼 정주하게 된 한국계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신찬성씨록은 헤이안(平安)시대를 연 간무(桓武·재위 781∼806) 천황이 799년 편찬을 명령해 815년 완성된 계보서다. 옮긴 수도인 헤이안쿄(교토·京都)와 기내(畿內·왕궁 중심의 특별구역으로 지금의 수도권)에 거주하는 씨족 1182씨의 계보를 기록했다. 8세기 말 나라(奈良)시대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헤이안 천도를 단행한 간무천황이 주요 씨족의 계보를 장악해 왕권과 지배질서를 강화하고, 사회 안정을 꾀하기 위해 편찬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간무천황은 2001년 당시 일본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말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천황가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씨족(황별·皇別), 일본 신화의 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씨족(신별·神別), 외국계 씨족의 후손인 제번(諸蕃)으로 구성돼 있다. 제번에서 한국계 씨족은 백제 104씨, 고구려 41씨, 신라 9씨, 임나 9씨 등 163씨이고 중국계 씨족은 한(漢) 163씨다. 그동안 한국계 씨족은 이 163씨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연민수 전 동북아역사재단 역사연구실장(63)을 책임자로 하는 연구팀(김은숙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서보경 한성대 인문과학연구원 특임교수, 박재용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이 2014년부터 7년간 신찬씨성록과 ‘일본서기’를 비롯한 이전의 사서 등 옛 자료를 대조, 검증한 결과 중국계 163씨 가운데 150씨가 한국계였음이 밝혀졌다. 한국계 씨족들이 한나라나 진(秦)나라 계통의 후손이라고 참칭한 것이었다. 연 전 연구실장은 “당시 일본 조정은 한국계 등 재능 있는 도래인의 후손을 중용해 이른바 다국적 관료군을 형성했다”며 “이 책은 고대 일본의 한국계 씨족사 연구는 물론 한국 고대사의 외연을 넓히는 데도 유용하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니체(1844∼1900)가 ‘신은 죽었다’며 인간이 곧 세계의 중심이라는 인본주의를 선언했다면, 인간 무의식의 세계를 자연과학의 법칙으로 풀어낸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인본주의를 완성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1996년 프로이트 전집을 한국에서 처음 펴냈을 때 홍지웅 대표는 인본주의를 품을 수 있는 출판계의 문화적 역량과 문화의식을 보여주고 싶었을 터다. 그로부터 24년 뒤 프로이트 전집(전 15권) 개정 신판을 낸 그의 딸 홍유진 열린책들 기획이사(36·사진)는 한발 더 나아가 프로이트가 더 널리 읽혔으면 한다. 10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홍 이사는 “프로이트를 읽는 분은 대부분 50, 60대인데 젊은 층에게 읽게 하고 싶었다. 쉽게 읽을 수 있게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3년 첫 개정판이 나온 뒤 17년이 흘러 번역에 손을 봐야 할 것이 꽤 됐다. 영어판 중역(重譯)이던 6권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와 7권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는 새로 번역했다. 제목이 쉽게 와 닿지 않던 10권 ‘정신병리학의 문제들’은 ‘불안과 억압’으로, 15권 ‘정신분석학 개요’는 ‘과학과 정신분석학’으로 바꿨다. 가독성을 높일 다양한 방법도 생각했다. 특히 고낙범 작가가 모노크롬으로 프로이트 얼굴을 다양하게 그린 표지를 살릴지 고민이 컸다. “프로이트를 잘 모르는 20, 30대를 위해 만화로 그려보기도 하고, 안무가가 책의 내용을 표현한 춤사위를 표지로 해보자고도 했어요. 하지만 무의식을 표현한 듯한 단색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이걸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독자들에게 알릴지도 갖은 아이디어를 짜냈다. 한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서 소개하는 책장에 전집을 진열해보자, 프로이트의 명문장 가운데 현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을 색상별로 새긴 후드티를 팔아보자…. 하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라이브 커머스 방송이나 패션업체에서 하나같이 ‘우리 소비자층이랑 맞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도대체 프로이트는 누구랑 맞는 걸까 하는 생각에 답답하기도 했어요.” 당초 프로이트 80주기인 지난해 내려고 했지만 올가을에야 나온 것도 이 같은 고심의 결과다. 그동안 전집은 각권을 모두 합쳐 32만 부를 발행했다. 그러나 대부분 ‘꿈의 해석’ ‘정신분석 강의’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늑대 인간’ 등만 나갔다. 아직 초판을 해소하지 못한 것도 있을 정도다. 전집을 통째로 사는 독자도 이제는 보기 어렵다. “프로이트는 그를 추종하든, 비판적으로 계승하든, 완고하게 반대하든 지적(知的) 업적의 큰 봉우리잖아요. 지식에 대한 허영심에서라도 갖춰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올 한 해, 코로나19 확산에 관해 ‘교회발’이라는 단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교회는 과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9월 지앤컴리서치의 ‘코로나19의 종교 영향도 및 일반 국민의 기독교(개신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신뢰도가 “더 나빠졌다”는 응답률이 63.3%로 나타났다. 신뢰도 하락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나타난 것을 감안하면 방역 지침을 무시한 일부 교회의 독선과 무례가 이를 형성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통계 결과를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자부하는 교회는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고찰해야 한다.코로나 시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상고하다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두잇서베이에서 실시한 ‘종교에 대한 인식 조사’ 에 따르면 사회가 종교인들에게 원하는 이미지는 ‘성숙한 인격’ ‘높은 도덕성’ ‘높은 사회 봉사율’ 등이었다. 사회는 대표적 종교 단체인 교회가 ‘성숙한 인격과 정직, 청렴한 모습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이타적인 존재’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바람에 과연 교회는 제대로 부응하고 있을까? 많은 개교회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 교회’가 하지 않은 일로 한국 교회 전체가 비난 받는다고, 피해를 준 교회는 극히 일부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장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된 유기적 공동체다. 몸에서 팔과 다리를 따로 떼어내 온전한 하나의 몸으로 규정할 수 없다. 교회는 서로 연결돼 있다. 그러니 일부 교회를 떼어내 문제로 삼기보다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상고하며 현 상황을 개혁과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코로나 시대 속 교회, 조용하고 강하게 책임을 행하다 한 가지 위안은 이미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며 행동해온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2월부터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조용히 찾아가 제 역할을 감당한 모습 또한 교회였다. 필자가 시무하는 만나교회에서도 코로나19가 가져온 과제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고자 노력했다.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라는 표어가 부끄럽지 않도록 지역 사회로 눈을 돌려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찾아갔다. 교회 재정의 대략 60%를 구제와 선교 명목으로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며 지역 사회와 국민을 위해 할 일을 찾아 나가고 있다. 지난 몇 달간 만나교회의 행보를 정리하며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온 교회의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 예배는 ‘올라인(ALL-LINE)’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있어 만나교회는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정부 지침을 충실히 따른다’는 원칙을 세웠다. 모든 교인은 교인인 동시에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정부의 지침에 따라 예배와 기타 행사들을 실시간으로 조율했다. 예배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교회의 핵심이다. 최근 지침을 실시간 반영하여 온라인(ONLINE)과 오프라인(OFFLINE)을 합친 ‘올라인(ALL-LINE)’ 예배를 구축했다. 올라인 예배는 만나교회뿐 아니라 대다수 교회에 나타난 변화다. 둘째, 사회적 책임은 ‘따로 또 같이’. 팬데믹 선포 후,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자 만나교회는 성남 지역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교회를 수소문했다. 지역 내 13개 교회가 모여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결과 각 교회가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모범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연합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장을 만들었다(성남사랑 부활절 연합기도회). 또 뜻을 모아 ‘성남 연대 희망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지역 사회 내 취약 계층과 시장 소상공인, 확진자 방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업소 등에 생계비를 지원하였고 성남시청과 연계하여 성남시 지원 사업을 진행하였다. 교회 산하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휴먼브리지, 한국교회봉사단과 함께 코로나19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를 대상으로 월세, 온라인 예배 시설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셋째, 다가오는 시대, 교회가 다시 소망이 되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를 향한 외부의 시선은 이제까지 놓치고 있던 우리의 책임을 깨우쳐주었다. 교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지금, 이후 교회의 행보에 따라 다가오는 시대가 바라볼 교회의 모습이 정해질 것이다. 교회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 교회,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교회가 다시 이 땅의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본질을 지키는 한편,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 책임이 코로나19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에 다가올 많은 문제와 재난 앞에서 교회는 겸허히 자신의 몫을 통감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를 ‘거리를 두고 싶은’ 공동체라 말하는 사회를 향해 교회가 다시 한번 소망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단순히 건물로서의 교회,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소위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곧 하나의 교회임을 알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흩어진 자리, 모인 자리에서 교회로서의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 교회는 다시 이 땅의 소망이 될 것이다. 김병삼 목사 만나교회▼ 성남지역 교회연합, 8억원 모아 지역주민-모란시장상인 등 지원 ▼ “남편의 허리디스크, 저의 공황장애, 폐쇄공포증 등 많은 질병이 찾아 왔습니다…전 재산 350만 원으로 막막한 가운데 다시 소형 개인제과점을 오픈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교회재정 때문에 고민하던 그때에 만나교회로부터 월세지원 프로젝트라는 감사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만나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은 주부와 목회자의 사연이다. 만나교회를 비롯한 성남 지역 15개 교회는 코로나 19가 발생하자 그 어느 지역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성남지역 교회 연합은 8억 원 이상을 모아 나눔 사역활동에 사용했다. 지역 주민돕기와 모란 5일장 상인 지원, 대구 지역 한부모 가정 돕기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만나교회의 나눔과 지원 활동이 활발한 것은 2009년 설립된 월드휴먼브리지를 통해 얻어진 노하우 덕분이다. 이 단체는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한 국제구호개발 NGO다. 특히 긴급구호사업도 펼쳐 홍수와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나 전쟁과 분쟁 등으로 위급한 환경에 처해 있는 지구촌 이웃들을 지원해 왔다. 평상시 작은 교회를 위한 만나교회의 선교활동은 국내와 해외로 구분된다. 국내는 MMP프로그램(Manna Mission Plan)을 통해 작은 교회와 이주민교회의 성장을 돕고 있다. 2년 동안 매월 100만 원을 지원하며 목회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각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외국인 근로자, 유학생)을 위해 한글학교, 미용봉사, 바리스타 교육과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학교, 볼리비아에 직업훈련학교, 몽골에 병원 등을 건축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이런 사역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졌다. 국가간 이동의 제한 등 비대면 상황이 작은 교회들의 경제적 고통을 더욱 악화시켰다. 만나교회는 코로나 기간 특별 헌금을 통해 147개 교회의 월세 1억1000만 원을 긴급 지원하고, MMP교회가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시설지원에 나섰다. 케냐와 남아공 등 아프리카 지역에 식량지원을 했고, 한국 기업들의 후원 물품을 태국 등에 전달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