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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8일 치러진 이란의 대통령 보궐선거 1차 투표에서 후보 6명 중 유일한 개혁파 후보 마수드 페제슈키안 의원(70)이 ‘깜짝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선은 올 5월 19일 갑작스러운 헬기 추락으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치러졌다. 특히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이며 85세 고령인 알리 하메네이의 사후(死後) 후계 구도를 점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40%가 넘나드는 고물가 등 고질적인 경제난, 억압적인 통치 체제에 실망한 민심이 개혁파 후보로 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페제슈키안 후보 또한 과반 득표에는 실패했다. 그는 5일 하메네이의 외교 책사로 꼽히는 강경파 핵 협상 전문가 사이드 잘릴리 후보(59)와 결선 투표에서 맞붙는다. 예상 밖 1차 투표 결과에 놀란 보수 세력이 결집해 결선 투표에서는 잘릴리 후보가 이길 것이란 전망과 보수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강해 페제슈키안 후보가 최종 승리할 것이란 예상이 맞선다.● “핵 협상 복원” 공약한 외과 의사 관영 이르나통신 등에 따르면 페제슈키안 후보는 1차 투표에서 42.5%를 득표해 잘릴리 후보(38.6%)를 눌렀다. 이란에서는 대선 1차 투표에서 절반을 넘는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득표자가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결선투표 실시는 2005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의 첫 당선 이후 19년 만이다. 특히 당초 강력한 1위 후보로 꼽혔으며 페제슈키안 후보보다 인지도가 높은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후보 겸 국회의장은 13.8%로 3위에 그쳤다. 당국은 투표율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으나 AP통신 등은 약 40.1%로 역대 대선 중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분석했다. 페제슈키안 후보는 대선 출마자 6명 중 유일한 개혁파로 꼽힌다. 선거 기간 내내 “국제사회 내 이란의 고립을 종식시키고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서방과의 핵 협상을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부모 모두 소수인종으로 부친은 아제르바이잔계, 모친은 쿠르드계다. 심장외과 의사 출신으로 역시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보건장관을 지냈다. 당시 다른 장관과 달리 정장을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업무를 수행해 관심을 모았다. 이번 대선에서 하타미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온건파 거두로 꼽히며 재임 중 서방과의 핵 협상을 타결시킨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의 지지도 얻었다.● 하메네이 정치적 타격 상당 그의 결선 상대인 잘릴리 후보는 서방과 타협하지 않는 ‘매파’로 꼽힌다. 북동부의 시아파 성지 마슈하드에서 태어났고 ‘정부 위의 정부’로 꼽히는 혁명수비대에서 근무했다. 결선 투표에서 보수세력이 결집하면 잘릴리 후보가 최종 1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다만 그가 얻은 득표율이 3년 전 보수파 몰표를 받은 라이시 전 대통령(약 62%)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어서 ‘표의 확장성’을 문제 삼는 시선도 있다. 결선 투표의 최종 승자와 관계없이 이번 결과만으로도 하메네이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도 있다. 강경 보수 성향의 라이시 전 대통령은 당초 하메네이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다. 후계자를 갑작스레 잃은 데다 원치 않는 인물이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하메네이 또한 작지 않은 부담을 지게 됐다는 것이다. 하메네이는 선거 3일 전 서방에 유화적인 페제슈키안 후보를 겨냥해 “나라를 잘 운영할 수 없을 것”이라며 노골적인 반감을 표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9일 “이번 결과는 부패한 정권의 정당성에 깊은 의문을 제기한다”며 하메네이 정권을 비판했다. 특히 역대 최저 투표율을 거론하며 “많은 이가 독재로 망가진 나라에서 투표하는 것을 웃음거리로 여긴다. 투표자가 적어 일부 선거 감시원은 할 일이 없어 낮잠을 잤다”고 꼬집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란의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28일 열린다.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뒤 약 1개월 만에 개최되는 보궐선거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이날 이란 전역에서는 26일까지 선거운동을 끝낸 후보 5명을 대상으로 선거를 치른다. 당초 6명이었지만 아미르호세인 가지자데 하셰미 부통령(53)이 “혁명세력의 통합을 바란다”며 26일 후보직을 사퇴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매체인 이란 인터내셔널은 “강경 성향의 외교관 출신인 사이드 잘릴리 전 이란 핵협상 수석대표(59)와 혁명수비대 공군사령관 출신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63), 개혁 성향의 의사 출신 마수드 페제슈키안 의원(70)이 유력 후보”라고 전했다. 3파전 양상을 띠는 이란 선거는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민생과 대외 노선, 여성 인권 등이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란 민심은 서방 제재로 만성화된 경제난을 해결하고, 히잡 미착용 단속으로 불거진 여성 인권을 신장할 후보를 원하고 있다. 후보들도 그간 토론회 등에서 경제 해결책 등 민생과 관련된 공약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 NYT는 “2022년 ‘히잡 의문사’로 불거진 반정부 시위 등을 우려해 후보들은 히잡 미착용 여성 단속에도 대체로 부정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누가 당선되더라도 권력 서열 1위인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건재해 대외 노선이나 국내 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후보들이 과거 이란과 핵 협정을 깨고 경제 제재를 강화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설 최고의 적임자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AP통신은 “최고지도자라는 존재로 인해 큰 노선 변화는 없을 것이며 “결국 미국의 경제·외교 정책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25일 대국민 연설에서 “선거는 적을 물리치는 수단”이라며 투표도 독려했다. 올 3월 이란 총선이 불법 개입 의혹으로 얼룩지며 투표율이 약 41%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한 것이다. 하메네이는 미국에 유화적인 페제슈키안 의원을 겨냥해 “나라를 잘 운영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는 6100만 명가량이다. 수(手)개표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이르면 30일경 최종 결과가 발표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선거 결과 발표 뒤 첫 번째 금요일인 다음 달 5일 상위 후보 2명의 결선 투표가 진행된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아프리카 케냐에서 생필품은 물론이고 전화 및 인터넷 사용료, 은행 송금 수수료까지 일제히 올리는 증세 법안이 통과되면서 25일 성난 군중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의회에 난입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실탄 발포로 최소 22명이 죽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이지만, Z세대가 소셜미디어로 주도한 이번 움직임은 폭발력을 키우며 반정부 시위로 격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AFP 등에 따르면 이날 케냐 의회에서 증세 법안 통과를 앞두고 틱톡, X(옛 트위터) 등에선 ‘증세 반대’ ‘의회 점령’ ‘대통령 퇴진’ 등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확산됐다. 일부 젊은층은 학교 수업을 빠진 채 시위에 참여했고, 시위 진행 과정 등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참여를 독려했다. 이번 시위의 도화선은 5월 정부가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제출한 ‘재정 법안 2024’였다. 세입을 늘리기 위해 총 27억 달러(약 3조7500억 원)의 세금을 더 거두는 법안이 결국 통과되자 분노한 이들은 의회에 난입했고, 건물에서 화재도 발생했다. 케냐 인권단체는 시위대 2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현지 의료기관 관계자는 AFP에 “160명을 치료 중”이라고 말했다. 법안 표결을 마친 의원들은 급히 피신했다. AFP에 따르면 일부 케냐 정부 관계자들은 시위 초반인 약 2주 전 “쿨한 아이들(cool kids)”이 참여하는 “멍청한 시위”라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윌리엄 루토 대통령도 23일 “청년들이 자랑스럽다. 대화할 준비가 됐다”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틀 만인 25일 대국민 연설에서 시위를 ‘반역’으로 규정하며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폭력의 재발을 막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번 사태 발발 하루 전인 24일 케냐를 ‘비(非)나토 동맹국’으로 지정했다. 케냐를 발판 삼아 중국과 러시아의 세 확장을 견제하려는 취지다. NYT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리카 구상에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8개월 넘게 이어지는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민간인 피해가 늘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국내에서 가장 큰 암초에 맞닥뜨렸다. 이스라엘 대법원이 ‘하레디(초정통파 남성 유대교도)’도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극우 연정의 한 축인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들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의 탈퇴로 연정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법원은 25일 “유대인 신학생과 다른 징집 대상을 구별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병역 의무는 하레디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또 그간 군 복무를 하지 않은 하레디에게 지급된 국가보조금이나 장학금 혜택 역시 중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레디는 세속주의 문명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폐쇄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강경 분파다. 일상의 대부분을 기도와 교리 연구로 보내며 “경전 공부가 국가를 지킨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됐을 때부터 예외적으로 병역 면제를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건국 당시 4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하레디는 현재 전체 인구의 13%인 약 128만 명으로 늘었다. 이들 가운데 현 징집 대상만 따져도 6만7000명이 넘는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미 2017년 9월 하레디의 군 면제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샤스와 토래유대주의연합(UTJ) 등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의 반발로 이스라엘 정부는 징집을 보류해 왔다. 하지만 이번 전쟁이 발발한 뒤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이 600명 이상 목숨을 잃자, 민심은 “하레디도 입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그간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 유지를 위해 민심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하레디의 입대를 완전히 면제하는 새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거센 국제사회 비난에도 꿈쩍하지 않던 네타냐후 총리를 깊은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네타냐후 총리의 대처에 실망한 이들이 탈퇴를 마음 먹으면 연정 자체가 종말을 맞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열린 이슬람권의 최대 성지순례 행사 ‘하지’에서 온열질환 등에 따른 사망자가 1300명을 넘어섰다. 낮 최고기온이 50도를 넘나드는 ‘살인 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냉방시설, 쉼터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미등록 외국인 순례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됐다. 불법 브로커와 대행사 등이 판치는 하지의 지하경제도 비판받고 있다. 파흐드 알 잘라젤 사우디 보건부 장관은 24일 국영 TV에 출연해 14∼19일 열린 하지 기간 동안 온열질환 사망자가 총 130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번 하지 사망자에 대한 공식 집계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 국립기상센터에 따르면 이번 하지에 메카 대사원은 한때 최고 51.8도까지 치솟았고, 여전히 온열질환을 호소하는 이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 수 있다. 매년 이슬람력 12월 7∼12일 치러지는 하지는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꼽힌다. 일생에 반드시 한 번은 이슬람 발상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장거리를 걸어온 해외 입국 무허가 순례자도 많다. 당국은 사망자 중 83%가 무허가 순례자로 다수는 이집트 국적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은 순례객의 경우 냉방시설이 갖춰진 승합차, 버스 등으로 이동하고 휴식 때에도 에어컨이 가동되는 텐트 안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사망자 대다수는 적절한 쉼터나 휴식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며 몇 시간 동안 기도하는 등의 행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등록 순례를 택하는 건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하지 공식 여행 패키지는 순례자의 출신 국가에 따라 5000∼1만 달러에 달한다. 경제 상황이 악화된 이집트, 요르단 등의 순례자들에겐 버거운 수준이다. 이에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공식 비자 없이 밀입국시키는 대행사나 브로커 등을 이용하게 된다. 한 이집트 순례객은 NYT에 “부모님 순례를 위해 2000달러를 (무허가) 대행사에 지불했다”고 밝혔다. 사망자가 집중된 이집트의 무스타파 마드불리 총리는 뒤늦게 “미등록 순례자들의 여행을 도운 대행사, 브로커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열린 이슬람권의 최대 성지순례 행사 ‘하지’에서 온열질환 등에 따른 사망자가 1300명을 넘어섰다. 낮 최고기온 50도를 넘나드는 ‘살인 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냉방시설, 쉼터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미등록 외국인 순례자들에 피해가 집중됐다. 불법 브로커와 대행사 등이 판치는 하지의 지하경제도 비판받고 있다. 파하드 알잘라젤 보건부 장관은 24일 국영 TV에 출연해 14~19일 열린 하지 기간 동안 온열질환 사망자가 총 130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번 하지 사망자에 대한 공식 집계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 국립기상센터에 따르면 이번 하지에 메카 대사원은 한때 최고 51.8도까지 치솟았고, 여전히 온열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 사망자는 더 늘 수 있다. 매년 이슬람력 12월 7∼12일 치러지는 하지는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꼽힌다. 일생 반드시 한 번은 이슬람 발상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장거리를 걸어온 해외 입국 무허가 순례자들도 많다. 당국은 사망자 중 83%가 무허가 순례자들로 다수는 이집트 국적이라고 덧붙였다.사우디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은 순례객의 경우 냉방시설이 갖춰진 승합차, 버스 등으로 이동하고 휴식 때에도 에어컨이 가동되는 텐트 안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사망자 대다수는 적절한 쉼터나 휴식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며 몇 시간 동안 기도하는 등의 행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등록 순례를 택하는 건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하지 공식 여행 패키지는 순례자의 출신국가에 따라 5000~1만 달러에 달한다. 경제 상황이 악화된 이집트, 요르단 등의 순례자들에겐 버거운 수준이다. 이에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공식 비자 없이 밀입국시키는 대행사나 브로커 등을 이용하게 된다. 한 이집트 순례객은 NYT에 “부모님 순례를 위해 2000달러를 (무허가) 대행사에 지불했다”고 밝혔다.사망자가 집중된 이집트의 무스타파 마드불리 총리 뒤늦게 “미등록 순례자들의 여행을 도운 대행사, 브로커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지금 우리가 추모하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은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등에서 폭력으로 고통받는 세계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고 상징합니다.” 22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市)의 한 해안가. 일본군 위안부의 희생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리타 발레벨라 스틴티노시장은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세계에서 성폭력이 중단되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지 합창단이 부른 한국 민요 ‘아리랑’이 잔잔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독일 베를린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평화의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스틴티노시는 시에서 가장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바닷가 공공부지에 소녀상을 건립했다. 시청과도 불과 200m 거리다. 여성 인권변호사 출신인 발레벨라 시장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제안을 수락해 건립이 성사됐다. 사르데냐 바닷가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옆에는 ‘기억의 증언’이란 제목의 긴 비문이 별도로 설치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수많은 여성을 강제로 데려가 성노예로 삼았으며,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지 매체 루니오네 사르다에 따르면 스즈키 사토시 주이탈리아 일본대사가 20일 시를 직접 찾아와 제막식 연기를 요청했다. 또 일본은 이미 관련 범죄에 대해 사과했고 피해 보상 절차를 밟고 있다며, 소녀상 비문 문구의 수정도 요청했다고 한다. 발레벨라 시장은 연기 요청을 거부한 뒤 “올바른 역사 전달을 위해 한국대사관 측에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평화의 소녀상은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을 시작으로 세계 14곳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베를린 소녀상이 건립 4년 만에 철거 위기에 처하는 등 일본의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 적지 않다. 베를린 지역의회 의원들이 영구 존치 결의를 추진하고 있지만 최근 관할구청은 비문 문구를 문제 삼아 9월 28일 철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샤르데냐 주민들은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에게 “소녀상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현 위치는 레바논 베이루트 국제공항입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북동쪽으로 200km 떨어진 포트사이드시. 지중해와 맞닿아 수에즈 운하가 시작하는 이곳에선 지난해 10월부터 황당한 일이 잦다. 휴대폰 위치정보가 엉뚱한 곳을 알려주는 오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5일(현지 시간) 자동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이 도시 해변 인근에서 휴대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현 위치’ 버튼을 눌러봤다. 바다 건너 직선거리로 410km 떨어진 레바논 베이루트 국제공항에 있는 것으로 표시됐다. 한두 차례 휴대폰을 껐다 켜면 현 위치가 바로잡히기도 했지만, 또다시 다른 지역을 알려주는 일이 반복됐다.》 이런 현상은 현지 통신기술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지난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뒤 이스라엘군이 펼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 교란 공격이 여기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포트사이드에서 음식 배달을 하는 알리 마후드 씨(32)는 “배달 중 휴대폰 내 지도 위치가 갑자기 레바논으로 바뀌어 애먹은 적이 여러 차례”라며 속상해했다.● 택시·배달 앱 등 총체적 혼란 지난해 10월 중동전쟁 이후로 본격화된 위치 정보 값 혼란 사태는 중동 지역 주민들 일상에 적지 않은 불편을 주고 있다. 포트사이드의 경우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있다. 시민들은 “모든 게 다 이스라엘과의 전쟁 때문”이라며 GPS 교란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우버’ ‘볼트’ ‘인드라이브’ ‘카림’ 등 스마트폰 앱 기반 승차공유서비스를 사용해 일하는 기사들도 힘든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승객을 태울 정확한 위치 표시가 안 되는 데다, 승객이 요청한 도착지를 찾을 때도 애를 먹는다. 알렉산드리아와 포트사이드 등에서 일한다는 택시 기사 압드 씨는 “어쩔 수 없이 새 휴대폰을 하나 더 장만했다. 하나가 위치정보 오류가 생길 때 대비 차원”이라며 “요즘 나 같은 기사들이 많다”고 했다. 20년 넘게 포트사이드에서 택시 기사로 일한 호세인 씨도 “도시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GPS가 제대로 작동 안 하면 불안하다”고 했다. 현재 이런 불편을 겪는 나라는 이집트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둘러싼 주변국 대부분이다. 이스라엘과 교전 중인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은 물론이고 요르단과 시리아, 그리고 지중해 쪽 유럽연합(EU) 소속인 키프로스까지 GPS 혼란으로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충돌 격화 때 혼란 최고조 현지인들은 특히 올 4월부터 GPS 혼란이 더 극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4월 1일 이스라엘군의 시리아 다마스쿠스 소재 이란영사관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등이 숨진 뒤, 이란이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예고하자 GPS 교란 수위가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4월 13일 실제로 이스라엘 영토에 미사일, 무인기(드론) 등 300여 대를 발사했는데, 이때도 이스라엘이 강력한 GPS 교란 작전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드 험프리스 미국 텍사스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미 공영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데이터 분석 결과, 이스라엘군이 운영하는 한 공군기지가 중동 지역 GPS 교란의 출처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도 이를 공식 인정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4월 5일 “군이 때때로 GPS 전파 방해 및 교란 작전을 벌이고 있다”며 “이스라엘 국민은 로켓 공격에 대한 경보를 알리는 휴대폰 앱에서 자신의 위치를 수동으로 설정하길 당부한다”고 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헤즈볼라와 교전 중이던 이스라엘 북부 국경지대를 비롯해 일부 지역은 아예 GPS 신호를 차단하거나 비활성화시키기도 했다. 이스라엘 시민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지도 앱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의 위치가 이집트 카이로 국제공항으로 표시됐다고 한다. 이스라엘 내에서 사용하는 택시, 배달 앱 등도 운전 기사 및 승객의 위치가 레바논 베이루트 국제공항 등으로 표시되는 일이 잦았다. 이집트 포트사이드 내 한 리조트에 근무하는 직원 아티아 씨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이 극심했던 4월엔 위치 표시는 물론 시간도 엉뚱하게 뜨곤 했다”고 전했다. 위성에서 위치를 찾아 그 지역 시간대가 설정되다 보니, 다른 국가로 표시될 경우 각종 전자기기에서 시간대마저 다르게 표시된 것이다. 통상 이집트와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등은 같은 시간대를 사용하지만, 당시 시간대를 한 시간씩 앞당기는 일광절약시간제(서머타임)는 시행 시점이 국가별로 달랐다. 이 때문에 서머타임을 몇 주 앞서 시행한 레바논으로 인식될 경우, 이집트 주민들의 휴대폰 시계가 갑자기 한 시간씩 앞당겨진 것이다.● “유조선 충돌 등 대형 사고 유발 위험” GPS를 활용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성을 추천하는 ‘틴더’나 ‘범블’ 같은 데이팅 앱도 촌극을 빚었다. 수백 km 떨어진 옆 나라 이성이 추천 대상으로 뜨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통상 데이팅 앱 서비스 이용자에겐 주변에 있는 상대방이 표시되는데, 카이로에 있는 남성들에게 최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여성들이 대거 리스트에 떴다. 카이로에서 텔아비브는 400km가 넘는다. 올 5월 이집트인 A 씨는 데이팅 앱에 뜬 이스라엘 여성을 보고 “처음엔 이집트에 놀러 온 관광객인 줄 알았다”며 “연이어 이스라엘 여성들만 나와서 내 휴대폰이 해킹을 당한 줄 알고 놀랐다”고 전했다. 이집트 사용자들 사이에선 이스라엘 여성으로 위장한 스파이가 데이팅 앱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GPS 혼란은 가뜩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높던 주변 중동 국가 국민들이 더욱 이스라엘을 비호감으로 여기는 계기가 됐다. 이집트 일간 알아흐람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틴더 앱을 사용한 모스타파 씨는 “일부러라도 팔레스타인 지지를 드러내려고 데이팅 앱 프로필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GPS 교란은 지금도 여전하다. 16일 현재 기준 항공기 위치추척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가 제공하는 GPS 교란 지도를 보면 이스라엘 주변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흑해 인근에서 여전히 가장 강한 GPS 교란이 발생하고 있다. 적국의 공격을 무력화하기 위한 방어 차원이라지만, 민간에는 단순 혼란이나 해프닝 수준 이상의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GPS에 바탕을 두고 작동하는 항법 장치를 주로 쓰는 항공기나 대형 선박의 사고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잘못된 좌표를 토대로 운항하다가 예기치 않은 사고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3월 그랜트 섑스 영 국방장관이 탑승했던 공군기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인근에서 GPS 교란 방해를 받아 조종사들이 30분 넘게 GPS 도움 없이 비행해야 했다고 한다. 핀란드 항공사인 핀에어 항공기 2대도 최근 에스토니아 타르투 국제공항으로 가던 중에 GPS 교란으로 항법 장치에 문제가 발생해 헬싱키로 회항한 사례가 있다. 해운전문매체 로이드 리스트 소속인 브리젯 디아쿤 데이터전문가는 NPR에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오류를 겪은 선박이 지중해 등에서 갈수록 늘고 있다”며 “만약 해로를 잘못 든 유조선이 암초 등에 충돌하면 대규모 기름 유출 같은 심각한 재해 수준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GPS 전파 교란합법적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를 방해하거나 차단할 목적으로 허위 전파신호를 방출하는 것.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군이 GPS 교란 작전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 연평도 주민도 북한의 GPS 전파 교란 공격을 받아 어선의 조업에 지장을 받았다.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친(親)이란 무장단체인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가 자폭 무인정(USV·수상 드론)으로 그리스 화물선을 공격했다. 후티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발발 뒤 하마스를 지지하며 홍해 인근에서 지속적으로 서양 선박을 공격해 왔지만 수상 드론을 동원한 건 처음이다. 미국 영국 등은 연합군을 구성해 공세를 높여 왔으나, 후티가 이번 공격으로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세계 물류 동맥’인 수에즈 운하와 홍해 항로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3단계 휴전안에 대해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와 영구 휴전에 대한 ‘서면 보증’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수용 불가 입장인 이스라엘은 북부 국경에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연일 교전을 이어가며 중동 전역에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 후티, 수상 드론으로 화물선 공격 AP통신 등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12일 홍해에서 수상 드론 등을 동원해 그리스 화물선 ‘튜터’호를 공격했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는 “이날 예멘 호데이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25km 떨어진 해상에서 튜터호 후미에 작은 흰색 물체들이 충돌 폭발해 선체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이후 추가 미사일 공격으로 배에 물이 차고 엔진실에 손상을 입었다. 후티도 이번 공격을 자신들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후티는 지난해 11월부터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할 때까지 해상을 봉쇄하겠다면서 민간 선박과 군함 등을 공격해 왔다. 올 2월 영국 선박 ‘루비마르’호를 침몰시켰고, 3월엔 그리스 선박 ‘트루 컨피던스’호를 공격해 선원 3명이 숨졌다. 수상 드론은 5∼7m로 크기는 작지만 해상전에서 강력한 위력을 과시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해군력에서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흑해함대에 타격을 입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앞서 2월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자위권 차원에서 후티의 수상 드론 거점 등에 대한 공격에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공격으로 후티는 여전히 수상 드론 공격 능력을 유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번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와 홍해를 잇는 항로가 여전히 위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부각됐다. 세계 상품 무역량의 12%,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를 담당해 온 해당 항로의 지정학적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물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하마스, 완전 종전 ‘서면 보증’ 요구 로이터통신은 12일 이집트 소식통을 인용해 “하마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휴전안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영구 종전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즉각 철수 등을 서면으로 보증받길 원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부 인질 석방 및 6주 휴전 등을 1단계로 제시한 휴전안을 단계별로 확실하게 문서로 보장해 주길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하마스는 더 구체적인 ‘수정 휴전안’도 미국에 역제안했다. 1단계부터 이스라엘군이 철수를 시작해야 하며, 2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더라도 종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영구 종전 등이 휴전안에 담기지 않으면 협상 테이블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도 표명했다. 중동을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2일 카타르 도하 기자회견에서 “하마스의 수정 사항 중 일부는 실행 가능하나 일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종전과 이스라엘군 즉각 철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친이란 무장정파인 레바논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교전은 전면전 수준으로 격화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11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탈레브 사미 압둘라 지휘관 사망 후 12일 미사일 250발을 퍼붓는 대규모 보복 공격을 가했다. 헤즈볼라 고위 당국자는 이날 거행된 압둘라의 장례식에서 “강도와 양적, 질적 측면에서 작전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교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또 다른 전쟁을 치를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1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주야를 폭격했다. 그 과정에서 헤즈볼라 고위 사령관 탈레브 사미 압둘라(55·사진)를 포함한 4명의 대원이 숨졌다. 압둘라는 올 1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위삼 알 타윌 사령관보다 더 고위급이다. 이스라엘군은 같은 날 레바논 북부 바알베크에도 로켓 공습을 가했다. 이곳에서도 헤즈볼라 대원 3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공격을 두고 “10일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 상공에서 이스라엘 무인기(드론)를 격추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고 밝혔다. 바알베크에는 헤즈볼라가 레바논 내 여러 지역에 무기를 공급하는 일종의 무기 배급 기지가 있다. 헤즈볼라와 대치 중인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11일 워싱턴포스트(WP)에 “전쟁의 안개가 짙어지고 있다”며 “양측의 공습은 매주 더 격렬해지고 빈번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접경지대의 주요 산간 마을과 계곡은 이미 전쟁터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양측 지도자는 전면전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5일 레바논 국경지대를 찾아 “매우 강력한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북부의 안보를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국내 여론도 헤즈볼라와의 전쟁을 찬성하는 분위기다. 현지 언론 ‘마리브(Maariv)’의 7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인의 62%는 “헤즈볼라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 또한 지난달 31일 “우리가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다”며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은 물론 중동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투가 될 것이라고 맞섰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하마스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스라엘은 레바논 곳곳을 타격하고 헤즈볼라 간부들을 사살하고 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네타냐후 총리가 국가안보보다 총리직을 우선한다.”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가통합당 대표(65·사진)가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후 긴급 구성됐던 전시(戰時) 내각을 9일 전격 탈퇴했다. 중도 성향인 그는 극우 성향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강경책으로만 일관하는 바람에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들의 귀환이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간츠 대표,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3인으로 이뤄진 전시 내각은 전쟁 중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간츠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진정한 승리를 총리가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네타냐후 정권이 가능성이 낮은 ‘하마스 완전 궤멸’만 주창하는 바람에 인질 귀환이 늦어진다는 의미다. 그는 인질 가족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특히 간츠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을 빌미로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며 “속히 조기 총선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갈란트 장관에게도 “올바른 일을 하라”며 사퇴 동참을 요구했다. 간츠 대표는 국방장관, 육군 참모총장 출신의 군인으로 2018년 정계에 입문했다. 차기 총리 선호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또한 강경책으로만 일관하는 네타냐후 총리보다 중도 성향인 그를 총리감으로 선호한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왔다. 간츠 대표가 이끄는 국가통합당(12석)은 의회 120석 중 64석을 차지한 극우 연정에 속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그의 전시 내각 탈퇴가 네타냐후 총리의 지위에는 당장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사회 각계의 목소리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시 내각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내 극우 인사에게 더 의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극우 연정 일원으로 ‘종교적 시온주의자’ 대표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과 ‘오츠마예후디트(유대인의 힘)’ 대표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입김이 더 세질 수 있다는 얘기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납치됐던 인질 4명을 8일(현지 시간) 구출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발발한 지 245일 만이다. 다만 구출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과 포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최소 274명 숨지고, 700명 이상이 다쳐 작전의 정당성 논란이 거세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여름 씨앗들(Seeds of Summer)’이라고 명명한 정보기관 신베트, 대테러 부대 야맘 등과의 합동 작전을 통해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인근에서 슐로미 지브(41), 안드레이 코즐로브(27), 노아 아르가마니(26·여), 알모그 메이르 얀(22)을 구출했다. 4명 모두 전쟁 발발 당일 가자지구 인근 ‘노바 음악축제’에 참여했다가 납치됐다. 당국은 이들이 납치됐을 때의 사진, 이날 가족과 재회한 사진을 동시에 공개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작전 참가자들을 치하하며 “테러리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 하마스는 “민간인에 대한 끔찍한 학살”이라고 맞섰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도 ‘학살’이라고 규탄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을 촉구했다. 시장-난민촌서 벌어진 인질 구출작전… “이軍, 10분새 로켓 150발”인질 4명 구출, 팔 민간인 274명 사망복층건물 모형서 수주간 작전 연습… 장갑차-헬기 등 동원 한낮 구출작전“거리곳곳에 어린이들 시신, 생지옥”… 국제사회 “온당한가” 비판 거세“‘다이아몬드(인질)’가 우리 손에 있다.” 8일(현지 시간) 오전 11시경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주택가. 이스라엘군 인질 구출 작전팀이 지난해 10월 7일 중동전쟁 발발 당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납치된 자국 민간인 인질 4명을 구출한 직후 지휘본부에 이 같은 무전을 보냈다. 이스라엘군은 이례적으로 한낮에 작전을 실시했다. 야간 매복을 예상한 하마스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다. 대테러 부대 야맘, 정보기관 신베트 정예요원 등으로 구성된 작전팀은 장갑차, 로켓추진 유탄(RPG) 등을 동원해 하마스의 거센 반격 속에서도 구출에 성공했다. 다만 이번 작전은 주택가, 시장, 난민촌 등이 밀집한 지역에서 이뤄져 최소 274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졌다. 주말 오전 시장 등을 찾았던 여성과 어린이가 대거 희생됐다.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민간인 거주지에 인질을 숨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4명을 구출하기 위해 274명을 죽인 것은 온당한가”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가자지구 당국은 전쟁 발발 이후 8일까지 3만6801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건물 모형 만들어 치밀한 연습 이스라엘군은 ‘여름 씨앗들(Seeds of Summer)’로 명명한 이번 작전을 위해 몇 주에 걸쳐 인질이 갇힌 복층 건물 2곳의 모형을 만들어 구출 작전을 연습했다. 미국은 인질 관련 첩보를 이스라엘 측에 제공했다. 이날 작전은 개시 몇 분 전에 최종 승인이 떨어졌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여성 인질인 노아 아르가마니(26)는 건물 두 곳 중 한 팔레스타인 가정에, 알모그 메이르 얀(22)과 안드레이 코즐로브(27), 슐로미 지브(41) 등 다른 인질 3명은 또 다른 건물의 가정에 각각 억류돼 있었다. 하마스는 두 팔레스타인 가정에 돈을 주고 인질 억류를 부탁했고, 이 집에는 인질을 감시할 무장대원이 배치됐다. 인질 구출이 시작되자 하마스는 포격 등을 통해 거세게 반격했다. 작전지역 상공을 비행하는 이스라엘 헬기를 격추하기 위해 대공 미사일도 발사했다. 이스라엘도 이에 맞서 공습을 강화하면서 민간인이 대거 희생됐다. 양측간 교전이 격화되며 야맘 지휘관인 아르논 자모라도 숨졌다. 이스라엘은 현재 그를 기리기 위해 작전명을 ‘아르논 작전’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인질 4명은 모두 전쟁 발발 당일 가자지구 인근에서 열린 ‘노바 음악축제’에 참여했다가 납치됐다. 특히 당시 하마스 대원이 오토바이에 강제로 태워 끌고 가자 아르가마니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되며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245일 만에 풀려난 그는 암 투병 중인 어머니와 재회했다. 반면 얀의 아버지는 아들의 구출 전날인 7일 숨졌다. 아들이 납치된 후 몸무게가 20kg이나 빠질 만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1명, 올 2월 2명의 인질을 각각 구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작전을 ‘전쟁 발발 후 최고의 구출 성과’라며 “앞으로도 (구출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4명 구출하다 274명 희생, “대학살” 반발 하마스뿐 아니라 가자지구 통치권을 두고 하마스와 경쟁 중인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는 한목소리로 “대학살”이라며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작전 당시 누세이라트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있던 주민 니달 압도 씨는 미 CNN방송에 “10분도 안 돼 150발의 로켓이 떨어졌고 도망치는 동안에 더 많은 로켓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거리 곳곳에 어린이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며 ‘생지옥’이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앞서 자국 인질을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차례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를 낳은 작전을 벌이다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올 2월에는 구호 트럭에 몰려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발포해 최소 112명이 숨졌다. 두 달 후에는 구호 물품을 싣고 가던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트럭에 오폭을 가해 7명이 사망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겠다(We will not walk away from Ukraine).”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을 맞은 6일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를 찾아 변함없는 우크라이나 지지를 강조했다. 80년 전 전 세계가 힘을 합쳐 나치 독일을 물리쳤듯 현재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야 한다는 뜻이다. 2차대전 때는 연합국의 일원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는 이런 서방의 움직임에 맞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서방 주요국이 지원한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한 것을 두고 ‘맞보복’에 나서겠다고 5일 경고했다. 그는 벨라루스 등 주변 친(親)러시아 국가에 미국과 유럽 주요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배치하고,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미국의 턱밑인 카리브해에 군함도 보내기로 했다.● 바이든 “독재자에게 맞서야” 바이든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각국 정상은 6일 노르망디에 모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사 직전 2차대전의 생존 참전 용사와 만나 경의를 표했다. 그는 “‘독재’와 ‘자유’의 싸움은 끝이 없다”며 러시아에 맞서는 서방의 단결이 곧 자유 민주주의 수호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겠다”며 “우리가 물러난다면 우크라이나는 정복될 것이고 유럽 전체가 위협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전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침략을 저지하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1월 대선에서 맞붙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맹 경시와 미국 우선주의 또한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립주의는 80년 전에도, 오늘날에도 답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푸틴 대통령 같은 각국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독재자(dictator)’라고 칭하며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푸틴, 미사일-핵 사용 가능성 시사 푸틴 대통령은 5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AP, 로이터, AFP통신 등 세계 16개 뉴스통신사 대표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회견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그가 처음으로 해외 언론사 관계자를 집단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최근 미국산 무기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한 것을 두고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며 미국과 유럽 국가를 타격할 수 있는 지역에 재래식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유럽 주요국 중 지리적으로 가까운 독일을 거론하며 “타우루스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인도하지 말라. 러시아와의 관계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타우루스’는 독일이 개발한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이다. 최대 500km가 넘는 긴 사거리, 높은 정확도, 낮은 운항 고도 등으로 레이더 탐지가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줄곧 지원을 요청했지만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독일이 아직은 내주지 않고 있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서방은 러시아가 (핵무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러시아 군함 또한 카리브해로 이동하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5일 보도했다. 러시아와 우호 관계인 쿠바, 베네수엘라 등에 기항할 가능성이 높다. 쿠바 아바나와 미국 마이애미의 거리는 약 370km에 불과하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대중이 그를 보지 못하지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림자 속 실세다.”신정일치 국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의 차남 모즈타바(55)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내린 평가다. 영국 가디언 또한 그를 하메네이의 ‘문지기(gatekeeper)’라고 평했다. 어떤 공식 직책도 없지만 1989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부친의 후광을 업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유력하게 꼽혔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갑작스레 숨지자 이란의 차기 권력 구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6월 28일 대통령 보궐선거가 실시되지만 누가 대통령에 뽑히더라도 진짜 권력은 하메네이 부자(父子)가 여전히 쥘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라이시 대통령의 사후에 서구 유명 언론이 앞다퉈 모즈타바가 누구인지를 조명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모즈타바는 정규군과 별도의 조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즈’ 민병대, 하메네이의 자금줄로 꼽히는 비밀 국영기업 ‘세타드’ 등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과 ‘돈’을 모두 쥔 셈이다. 다만 이런 그가 공식 직책을 맡아 정계 전면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약 2500년간 유지됐던 페르시아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제를 택했다. 권력 세습은 이 같은 혁명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국민 반감이 상당하다. 이를 감안할 때 모즈타바가 현재와 마찬가지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부친 탄압한 팔레비 왕조에 반감 모즈타바는 하메네이의 4남 2녀 중 차남이다. 1969년 부친의 고향이자 시아파 성지로 유명한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태어났다. 모즈타바가 태어났을 당시 하메네이는 친(親)미국 성향인 팔레비 왕조에 반기를 든 젊은 성직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팔레비 왕조는 이런 하메네이를 눈엣가시로 여겨 강하게 탄압했다. 수차례 구금됐고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비밀 경찰 등에게 구타도 당했다. 특히 가디언에 따르면 하메네이의 장남이자 모즈타바보다 네 살 많은 모스타파(59)는 폭행당하는 부친의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하메네이의 자녀들 또한 팔레비 왕조에 강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979년 혁명으로 군주제는 무너졌다. 혁명을 주도한 루홀라 호메이니가 최고지도자로 등극하면서 그를 도와 혁명에 적극 가담했던 하메네이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하메네이는 국방차관, 대통령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부인과 자녀들도 마슈하드에서 수도 테헤란으로 이주시켰다. 모즈타바는 이때 테헤란의 정치 엘리트 양성기관 ‘알라비’ 등에서 교육받았다. 또 이란-이라크 전쟁 막바지였던 1987∼1988년에는 최전선에서 복무했다. 당시 전우(戰友)가 호세인 타에브 전 혁명수비대 정보수장이다. 2022년 퇴역한 타에브는 퇴역 전까지 바시즈 간부로 활동하며 하메네이 부자를 충실히 보좌했다. ● ‘칼’과 ‘돈’ 모두 쥔 막후 실력자 혁명 10년 만인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했다. 이후 아버지가 최고지도자가 되면서 모즈타바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호메이니 생전 모즈타바는 부친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시아파 성지 쿰에서 성직자 교육을 받고 평범한 성직자로 생활했다. 부친이 권력을 잡자 아버지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며 각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모즈타바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모즈타바는 2005년, 2009년 대선에서 강경파 후보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승리하도록 막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은 미국을 ‘큰 사탄’,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구에 대한 반감이 심한 인물이다. 특히 2009년 대선 때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반정부 시위가 거셌다. 당시 혁명수비대는 유혈 진압을 통해 시위를 종결시켰는데, 여기에 모즈타바와 바시즈 민병대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란은 혁명 후 헌법을 통해 정규군과 혁명수비대의 역할을 각각 국내 질서 유지 및 국경 방어, 이슬람 체제 수호로 구분했다. 신정일치 국가에서 체제 수호 임무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혁명수비대를 정규군보다 우위에 놓은 것이다. 혁명수비대를 ‘정부 위의 정부’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혁명수비대는 육해공군, 특수전 및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정예부대 ‘쿠드스’, ‘바시즈’ 민병대 등 5개 조직으로 나뉜다. 바시즈는 2009년 반정부 시위는 물론이고 2022년 9월 히잡 의문사로 발발한 반정부 시위 등을 탄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영국 기반 매체 ‘이란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3월 유출된 혁명수비대 문건을 토대로 “모즈타바가 사실상 바시즈 지도자”라며 “그가 혁명수비대 산하 정보기관에도 광범위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즈타바는 세타드 운영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세타드는 혁명 당시 각종 부동산, 금융 자산 등의 소유주가 불분명해지자 이를 국가가 관리하기 위해 만든 기업이다. 호메이니는 생전 “세타드의 수익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하메네이 집권 후 하메네이 일가, 혁명수비대 간부 등 소수 권력층의 ‘개인 금고’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많다. 서방의 계속된 제재에도 이란의 핵 개발 의혹이 끊이지 않고, 혁명수비대가 해외 시아파 무장조직을 계속 지원할 수 있는 재정적 바탕 또한 세타드에서 나온다는 평이 많다. 이로 인해 미 재무부는 2013년 세타드를 제재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현재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모하마드 모크베르 전 1부통령은 2007∼2021년 세타드 수장을 지냈다. 그를 수장에 앉힌 사람이 바로 모즈타바라고 WSJ는 보도했다.● 4000여 명의 최고지도자실도 장악 모즈타바는 최고지도자실도 속속 장악하고 있다. 미 워싱턴의 싱크탱크 ‘근동정책연구소’에 따르면 1989년 호메이니의 사망 당시 최고지도자실 직원은 80여 명에 불과했다. 하메네이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면서 2019년에만 직원 수가 50배 많은 4000여 명으로 늘었다. 이 또한 모즈타바가 주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모즈타바는 최고지도자실 내 정보 수집 및 언론 담당 조직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내 각종 정보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관영언론, 정부 주최로 이뤄지는 금요 기도회 ‘이맘’ 등을 관장한다고 근동정책연구소는 분석했다. 미국 언론인 겸 이슬람학자 윌프리드 부흐타는 “모즈타바는 두 조직에 심복을 속속 배치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공식적인 2인자이며 다른 대통령에 비해 영향력이 컸다는 평가를 받는 라이시 대통령조차 모즈타바가 가진 군, 정보, 종교, 경제 조직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보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회 권력과도 밀접하다. 2004년 결혼한 모즈타바의 장인은 골람 알리 하다드 아델 전 국회의장이다. 최고위 성직자에게 주어지는 ‘아야톨라’ 칭호는 뛰어난 학식을 인정 받은 이들만 쓸 수 있다. 그런데도 최고지도자실 내에서 모즈타바를 지지하는 일부 세력은 아야톨라 직위에 이르지 못한 모즈타바를 공공연하게 ‘아야톨라’라고 부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세습에 대한 국민 반감 상당 모즈타바의 실제 영향력과 별개로 세습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반감은 상당하다. 이를 감안할 때 모즈타바가 당장 정계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호메이니와 하메네이는 모두 세습 시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호메이니의 아들 아마드(1946∼1995)는 혁명 당시 부친 못지않게 앞장섰다. ‘아들’이 아닌 ‘정치적 동료’에 가까웠고 부친의 사후 유력 후계자로도 거론됐다. 이로 인해 아마드는 하메네이와도 일정 정도의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이런 아마드가 49세에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 하메네이 일가를 견제할 세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아마드는 혁명에 직접 가담해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공로가 있지만 모즈타바는 전 국민이 인정할 만한 공로가 없다”며 “호메이니도 하지 못한 권력 세습을 하메네이가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진단했다. 중동 전문매체 ‘암와즈’는 최고지도자직의 세습은 “신정일치 체제의 죽음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CNN 역시 모즈타바가 부친의 자리를 이어받는다면 세습 왕정을 타파했던 현 체제가 근간부터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모즈타바의 독주를 경계하는 내부 여론도 커지고 있다. 아랍권 매체 알아라비야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은 “모즈타바가 해외 은행 계좌를 통해 국고를 횡령했다”고 공개 비판했다. 그는 한때 모즈타바와 가까웠지만 이후 권력 투쟁 과정에서 결별했다.● 오랜 경제난도 세습 막는 요인 고질적 경제난 또한 권력 세습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민생고가 극심하다. 서방의 오랜 제재로 수입 물자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생필품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7년 9.6%였던 연간 물가상승률은 매년 치솟아 2023년 41.5%를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4662달러(약 646만 원)에 불과하다. 세계 4위 원유 매장량을 포함한 풍부한 지하자원, 넓은 국토, 약 9000만 명의 인구 등을 보유했지만 이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하마스 지원자’를 자처하는 이란은 사실상 준전시 상태다. 올 4월에는 이스라엘과 직접 공격까지 주고받았다. 이란은 하마스 외에도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의 시아파 무장세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서는 “다른 나라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국민을 먼저 보살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2022년 히잡 의문사가 촉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민심의 반발도 극심하다. 올 3월 총선 투표율은 역대 최저치인 41%를 기록했다. 28일 대통령 보궐선거 또한 라이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짜고 치는 선거’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이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대선 보궐선거를 대거 보이콧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란은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적격성 심사를 통과한 사람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이슬람 교리에 맞지 않는 인물을 사전에 가려낸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상 하메네이 입맛에 맞는 후보들만 출마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번 대선에 출마할 후보군으로 알리레자 자카니 테헤란 시장, 모크베르 대통령 권한대행, 모하마드 바케르 갈리바프 국회의장, 강경파 핵협상 전문가 사이드 잘릴리,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 등이 꼽힌다. 누가 됐든 하메네이 부자의 낙점을 받은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WSJ는 모즈타바가 이번 대선에서 꼭두각시 후보를 내세워 ‘막후 실력자’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권력 누가 쥐든 강경 대외정책 그대로 모즈타바의 세습 여부, 대통령 보궐선거의 승자 등에 관계없이 이란의 대외정책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장지향 센터장은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온건 개혁파의 씨가 마른 상황이라 권력 구도에 변화가 생겨도 대외정책이 달라질 수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라이시 대통령과 같은 헬기에 탑승해 동반 사망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의 후임으로도 강경파 외교관 알리 바게리 카니가 발탁됐다. 이란이 끊임없이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늘려가며 핵 강경 노선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27일 로이터통신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를 인용해 “4월 11일 기준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이 142.1kg”이라며 “올 2월보다 20.6kg 늘었다”고 진단했다. 우라늄 농축 농도 60% 이상을 뜻하는 고농축 우라늄은 추가 농축 과정을 거치면 2주 안에 핵폭탄 제조용으로 쓸 수 있다. IAEA는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던 이란이 실제 핵 개발에 매진했다”고 우려했다. 북한, 러시아 등에 대한 이란의 군사적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무인기(드론) 공급을 주도한 모하마드 레자 가라에시 아시타니 이란 국방장관을 제재하겠다고 밝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가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를 방어하는 목적에 한해 러시아 본토 공격에 미국이 지원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는 그간 미국이 지원한 무기로 ‘러시아 본토 타격 금지’ 원칙을 깬 것으로, 2년 넘게 이어져 온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대대적 정책 전환이 가시화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올 11월 앞둔 미 대선 전 패배할 경우 선거에 악역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이같은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미 언론 등은 평가했다. 러시아는 본토 타격 시 강력한 ‘비례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30일(현지 시간) 폴리티코, 뉴욕타임스(NYT) 등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몇 달 동안 러시아 본토 타격 제한을 해제할 것을 요청한 가운데, 미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가 빼앗긴 하르키우 주변 영토에서 반격 목적으로 미국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다만 러시아 영토에 에이태큼스(ATACMS) 등 장거리 지대지미사일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은 유지되며 반격 목적에 한해 러 영토 내 군사시설 등으로 공격 목표물이 엄격히 제한될 것으로 알려졌다.그간 바이든 대통령은 확전 방지를 위해 우크라이나가 서방 지원 무기를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하는 것을 제한해 왔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대공세에 하르키우까지 함락 위기에 처하자 서방의 주요 동맹국들은 미국의 원칙 수정을 압박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이 15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원칙 수정을 공식 건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입장 변화는 여전히 제한적인 무기 사용 허가이지만, 전쟁 양상을 변화시킬 중대한 진전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 안에서 러시아 공세를 방어하고 자국 영토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는 데 미국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러시아와 직접 대결하는 양상을 피해왔다.이는 오는 11월 대선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상황과도 맞물려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열세를 보이고 있는데, 우크라이나가 패전할 경우 장기간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바이든의 입장에선 대선에 큰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러시아는 서방의 러시아 본토 타격 허용에 대해 ‘비례 대응’을 예고하면서 전쟁이 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은 최근 우크라이나가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이 의미 없는 전쟁을 계속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며 “이 모든 것은 불가피하게 후과를 치를 것이며 궁극적으로 악화의 길을 택한 국가들의 이익에 매우 해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등이 러시아 본토 공격 허용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모두가 라파를 지켜보고 있다.” “10월 7일 당신의 눈은 어디를 보고 있었습니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잇단 공습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급증한 가운데 온라인 여론전이 뜨겁다. 친팔레스타인 측과 친이스라엘 측은 각각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확산시키며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 전쟁을 벌이고 있다. 29일(현지 시간) 알자지라방송 등에 따르면 드넓은 사막과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끝없이 늘어선 텐트 위에 ‘모두가 라파를 지켜보고 있다(All eyes on Rafah)’는 문구가 새겨진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가 각국 소셜미디어 등에서 확산되고 있다. 라파 일대의 피란민 텐트촌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에 ‘반전(反戰)’ 문구를 새겨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것이다. 미국의 팔레스타인계 모델 지지 하디드와 벨라 하디드 자매, 영국 가수 두아 리파, 프랑스 축구 선수 우스만 뎀벨레 등 각국 유명인 등은 잇따라 이 콘텐츠를 공유했다. 소셜미디어에서만 최소 4400만 건이 공유됐다. 특히 26일 이스라엘군이 라파의 텔알술탄 피란민촌을 집중 공격해 최소 50여 명이 숨진 뒤 이스라엘 규탄 목소리가 커지며 이 같은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 문구는 올 2월 세계보건기구(WHO)의 팔레스타인 구호 책임자인 리처드 피퍼콘이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살상을 비판하며 처음 사용했다. 이스라엘도 맞대응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29일 정부 공식 X(옛 트위터)를 통해 총을 든 하마스 대원이 이스라엘 아이 앞에 서 있고 “10월 7일 당신의 눈은 어디를 보고 있었는가”란 문구를 게재한 이미지를 올렸다. 이번 전쟁이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이미지 역시 이스라엘 국민이 AI로 제작했다. 다만 라파 텐트촌 이미지 속 라파의 모습은 실제 라파와 완전히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자지라는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 하늘에는 항상 연기가 치솟고, 텐트가 질서정연하게 설치돼 있지도 않다”고 전했다. 이에 일부는 “진짜 라파는 이런 모습”이라며 시신이 쌓여 있는 실제 라파의 사진을 공유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모두가 라파를 지켜보고 있다.(All eyes on Rafah)”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듭된 공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각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라파 일대 피란민촌의 텐트를 위에 이 문구를 적은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가 대표 ‘반전(反戰)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퍼지고 있다.미국의 팔레스타인계 모델 지지 & 벨라 하디드 자매, 영국 가수 두아 리파, 프랑스 축구 선수 우스만 뎀벨레 등 각국 유명 인사 또한 잇따라 해당 콘텐츠 공유에 앞장서고 있다. 최소 4400만 건이 공유됐다.알자지라방송 등은 29일(현지 시간) 드넓은 사막과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끝없이 줄지어 늘어선 텐트가 담긴 이미지가 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26일 이스라엘군이 라파의 텔알술탄 피란민촌을 집중 공격해 최소 50여 명이 숨지면서 이스라엘을 규탄하며 이 이미지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가속화했다.이 문구는 올 2월 세계보건기구(WHO)의 팔레스타인 구호 책임자인 리처드 피퍼콘이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살상을 비판하며 처음 사용했다.이 이미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군사시설도 아닌 피란민촌을 집중 공격한 것을 문제삼는다. “피란민촌은 안전지대”라며 가자 주민들의 대피를 부추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 곳을 집중 공격했다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지구에 도달해야 할 국제 사회의 구호품 반입 또한 무기한 지연됐다며 인도주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스라엘군은 29일에도 라파와 이집트를 잇는 ‘필라델피 통로’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밝혔다. 이 곳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밀수 통로로 이용됐기에 장악이 불가피하고 주장했다.다만 실제 라파와 해당 이미지 속 라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중동전쟁 발발 후 계속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 하늘에는 항상 연기가 치솟고, 질서정연한 텐트가 설치돼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에 일부 누리꾼은 “진짜 라파는 이런 모습”이라며 시신이 쌓여있는 실제 라파의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스라엘이 28일(현지 시간) 라파에서 군사작전을 확대하며 민간인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미국 백악관은 아직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는 미 정부의 방침에도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26일 공습에서 민간인을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28일에도 수십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AP통신에 따르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지상전에 들어간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서 “현재 언급할 만한 (이스라엘 관련) 정책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탱크 한 대, 장갑차 한 대 정도로는 새로운 지상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미국이 현재 이스라엘군이 ‘제한적 군사작전’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이스라엘 매체 i24뉴스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라파 군사작전 과정에서 중심 시가지에 탱크를 진입시켰으며 현재 6개 여단이 임무를 수행하는 등 군사작전을 확대하고 있다. 대규모 지상전은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무기 수송을 중단할 수 있다고도 언급한 레드라인에 해당하나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며, 미국이 여전히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이스라엘군의 다니엘 하가리 대변인은 최소 50명의 사망자를 낸 난민촌 공습 참사 이후 이날 브리핑에서 “민간인 살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현재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해명했다. 또 라파에서 ‘근접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밝히며,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적과 가까운 거리에서 총기와 중화기 등을 이용해 싸우고 있다고도 했다.그럼에도 28일 라파 인근 난민촌 및 주변 지역을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알자지라방송, AP통신에 따르면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각각 다른 2건의 이스라엘 측의 공습에서 최소 37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중 다수는 공습을 피해 텐트 안에서 숨어있었으며 여성들도 10여 명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격에 대해서도 “인도주의 구역을 공습하지 않았다”고 CNN에 밝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이스라엘군 탱크가 28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최남단 도시 라파 도심에 진입했다. 이틀 전 라파의 탈알술탄 피란민촌 일대에 가해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 50명이 숨지고 250여 명이 부상을 입어 전 세계적인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데도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탱크 진입은 6일 이스라엘이 라파 검문소를 점령한 후 22일 만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8일 상당수 라파 주민들이 도심의 대표 건물 알아우다 모스크 근처에서 이스라엘군 탱크를 목격했다. 최소 6개 예단이 투입됐다.이스라엘군은 탱크 진입에 관한 질문을 받고 “나중에 성명을 발표하겠다”며 즉각 논평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이 발발한 후 강경책만 고수하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7일 의회 연설에서 “비극적 사고(tragic mishap)가 발생했다”며 이례적으로 자국군의 책임을 일부 시인한 지 하루 만에 또 탱크를 진입시켰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스라엘을 거듭 비판하고 있다. 27일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백악관이 26일 공습이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을 넘은 것인지 조사하고 있다”며 넘었다면 미국이 다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보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28일 긴급 회의를 열고 이번 공습에 따른 민간인 피해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앞서 8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공습에 따른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을 거론하며 “레드라인을 넘으면 무기 선적을 중단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같은 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선적을 잠시 중단한 사실을 공개했다. EU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2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국방장관 회의체 ‘외교이사회(FAC)’에 참석한 미할 마틴 아일랜드 외교장관은 “EU 회의에서 사상 처음이자 실질적 방식으로 (이스라엘) 제재 논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라파 국경검문소를 점령한 후 국경을 맞댄 이집트와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27일 검문소 인근 국경지대에서 이집트군과 총격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이집트군 1명이 숨지고 양국 군인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스라엘 군인들을 태운 장갑차가 하마스 대원들을 추적하다가 이집트 측 검문소 분계선을 먼저 넘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이집트군이 총격을 가했고 이스라엘군이 반격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최남단 도시 라파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이 격화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26일 라파 서부의 탈알술탄 피란민촌을 공격한 것을 두고 팔레스타인 측은 “인도주의 구역을 공격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겼다”며 분노했다. 이슬람권을 향해 대(對)이스라엘 봉기 또한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같은 날 먼저 로켓 공격을 했고 하마스 간부 소탕이 필요했다”고 맞섰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날 라파 일대에서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는 물론 헤르츨리야, 크라파샤리야후, 라마트하샤론, 페타티크바 등 중북부 주요 도시로 최소 8발의 로켓을 발사했다. 텔아비브에 대한 하마스의 로켓 발사는 지난해 12월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이 여파로 곳곳에서 미사일 경보가 울렸고 ‘아이언돔’ 방공망 체계가 작동했다. 다만 이스라엘은 “일부 로켓을 요격했고, 인명 피해가 부상자 1명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몇 시간 후 라파를 향해 보복 공격에 나섰고 최소 45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숨졌다. 특히 탈알술탄 피란민촌에 모여 있던 여성, 어린이 등이 대거 희생됐다. 팔레스타인 측은 “피란민촌에 대한 공격은 대량 학살”이라고 분노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또한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아직 수색과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사상자 수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유엔 최고 사법기구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4일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라”고 명령했지만 이스라엘이 무시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테러리스트들이 활동 중이던 라파의 하마스 시설을 타격했다”면서 정당한 군사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공격으로 하마스에서 자금 관리를 맡았던 고위 간부 야신 라비아, 칼레드 나자르를 사살했다고도 발표했다. 다만 “이 공격으로 인한 화재로 해당 지역 민간인 여러 명이 피해를 봤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군이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하마스가 추가 보복에 나설 뜻을 밝히면서 양측 간 교전이 다시 격화되는 분위기다. 하마스는 “범죄자 점령군이 피란민 텐트에 저지른 학살에 분노한다”며 “요르단강 서안지구 및 예루살렘 주민은 물론 해외의 우리 국민도 봉기하라”고 촉구했다. 양측이 2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하려던 휴전협상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억류 중인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을 풀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