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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분립이 국가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독주를 막는 자유민주주의의 조직원리라는 점은 익히 아는 바다. 한국 헌법도 원칙적으로 삼권분립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근자(近者)에 이 권력분립 시스템이 고장 난 것 아닌가 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한국에서 권력분립은 대체로 입법·사법권이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입법권을 가진 국회, 그중에서도 야당이 유력한 차기 주자를 중심으로 대통령을 견제하는 방식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이회창과 박근혜의 한나라당이 그런 기능을 했다. 특이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때는 같은 당의 미래 권력 박근혜가 가장 큰 견제자였다. 박 대통령 때는 스스로 국회선진화법 통과라는 자충수를 두는 바람에 문재인을 중심으로 한 야당에 힘을 실어줬다. 어떤 경우든 대통령 권력 견제는 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제1야당에 그런 구심점이 있는가. 그보다 심각한 자유한국당의 문제는 당의 꼴이 정상적인 정당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가장 큰 원인은 2016년 20대 총선의 비정상적 공천 때문이다. 정치도 뭣도 아닌, 왕조 시대에나 볼 수 있는 사천(私薦)이 보수의 미래 싹을 잘라 버렸다. 이러니 한국당에서 목소리 큰 사람들의 면면에 실망한 보수 유권자 사이에서 “한마디로 창피하다”는 소리가 커진다. 국민의 힘이 안 붙는 야당이 권력 견제를 제대로 할 리 없다. 대여(對與) 전략도 없고, 무엇보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2년이 되도록 지리멸렬 오합지졸을 못 벗어나는 것이 이 당의 실력이자 현주소다. 청와대가 우려를 자아내는 외교안보 정책과 이념에 치우친 경제정책을 마구 밀어붙여도 거칠 것 없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더 걱정스러운 것은 사법권력이다. 흔히 사법권을 최후의 권력이라고 한다. 권력과 이해(利害)의 갈등을 조정하는 마지막 해결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권에는 입법·행정권보다 더한 신중함과 엄정성이 요구된다. 그런 사법부가 대통령 권력을 견제한 대표 사례가 헌법재판소의 2004년 행정수도 이전 위헌과 지난해 박근혜 탄핵 결정이다. 그런데 지금의 사법부에선 진중(鎭重)함은 찾아보기 어렵고, 정치화(政治化)만 두드러졌다. 이는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현저히 기울어질 때부터 예고된 결과다. 김소영 대법관 후임까지 대통령이 임명하면 문 대통령은 취임 1년 8개월도 안 돼 대법원장과 대법관 14명 가운데 9명이나 임명하게 된다. 직전 박 대통령은 4년 2개월여 임기 동안 5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달 초 대법원은 종교적 병역 거부에 무죄를 선고했다. 6월 헌재의 ‘대체복무제 입법 때까지 처벌’ 결정보다도 진보적인 판결을 내린 것은 이런 인적 구성 변화와 관련 깊다. 전임 대통령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권력분립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법의 정치화가 지금처럼 우려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과연 정치바람이 들어 흔들리는 현 사법부가 권력 견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입법·사법부의 대통령 견제가 미흡하다면 행정부 내부에서 하는 방법도 있다. 선진국에선 관료제가 대통령이나 총리 등 행정수반의 견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전통이 없다. 그렇다면 정권 내부에서 쓴소리를 하는 원로 또는 ‘악마의 변호인’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랬다가는 문빠들의 무차별 공격에 견뎌내질 못한다. 그나마 대통령 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쪽은 민노총을 비롯한 진보좌파 집단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들은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아니라 왜 더 빨리 가속페달을 밟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이다. 차량의 브레이크가 운전자를 보호하듯, 권력분립도 권력의 과속을 막아 권력자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권력의 브레이크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하는 터에 가속페달까지 밟는다면 훨씬 위험한 질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지난주 금요일, 그러니까 11월 9일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의미심장한 날이다. 먼저 문 대통령에게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지 정확히 1년 반 되는 날이다. 지난해 5월 9일 오후 11시 50분경 당선이 확정된 문 후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의로운 나라’를 첫 번째 목표로 앞세우며 “정의가 앞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1년 반 뒤인 9일 대통령은 2기 경제팀을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같은 날 열린 공정경제 전략회의에서 “경제성장 과정에서 공정을 잃었고, 함께 이룬 결과물이 대기업집단에 집중됐다”며 반칙과 특권으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역설했다. 새 경제팀에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다. 일관성이야말로 인간 문재인의 장점이지만, 1년 반 전이나 지금이나 참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금요일, 국정의 전면에 큰 걸음을 내디딘 또 한 사람은 이낙연이다. 함께 일했던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로 가면서 경제 분야도 이 총리의 통할(統轄) 아래 들어왔다는 건 익히 아는 분석이다. 그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같은 날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다. 2, 3명의 정상이 정상외교에 나서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들면서 ‘이 총리도 정상외교의 한 축’임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 취임 1년 반을 맞아 이 총리는 명실상부한 책임총리의 반열에 올라섰다. 아니, 문 대통령 말대로 정상외교까지 담당한다면 내치를 총괄하는 책임총리 이상이다. 과거 프랑스 동거(Cohabitation) 정부에선 정상외교 때 다른 나라 정상들이 대통령보다 내치에 실권을 가진 총리를 만나려고 줄을 서는 웃지 못할 풍경도 있었다. 한국에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총리에겐 급격히 늘어난 권한만큼 무거워진 정치적 책임이 족쇄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1년 반을 기점으로 총리에게 경제는 물론 외교 권한 일부까지 넘겨주려는 대통령의 의도는 자명하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지상명제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 정착은 대통령을 하는 목적인 ‘세상 바꾸기’와 직결돼 있다. 평화가 정착되면 ‘분단 구도와 전쟁 위협을 빌미로 세상을 지배해온 사이비 보수세력’의 설 땅이 사라질 것이란 시각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대통령의 이런 시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남의 말을 경청은 하되, 웬만해선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게 대통령 스타일이라는 건 지난 1년 반이 입증한다. 다만 문 대통령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점점 당겨지는 추세로 볼 때 ‘대통령의 시간’은 1년 반 정도라고 본다. 더구나 1년 5개월 뒤인 2020년 4월엔 총선이 있다. 임기 후반 총선 뒤엔 급격히 미래권력으로 파워가 쏠리는 것이 우리 대통령제의 한계다. 앞으로 1년 반을 어떻게 치러내느냐가 문 대통령 시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것이다. 길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의 명운(命運), 어쩌면 국운을 좌우할 이 중차대한 시간에 대통령이 반드시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나라의 지도자는 선의(善意)를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교안보에서 상대의 선의를 믿었던 수많은 지도자들이 무능한 리더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정, 믿고 싶으면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Trust, but verify). 이는 비단 남북관계나 외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통치의 만사(萬事)라고 할 수 있는 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능력은 모자라지만 통치철학에 맞는 사람을 중용하면 잘해 주겠지, 하는 선의의 기대는 대통령에게 독(毒)이다. 일반 기업이나 조직에서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사는 한국 사회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그런 인사를 하면 줄줄이 탈이 나기 십상이고, 그 실패는 결국은 본인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른바 ‘내 편’이라는 사람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향후 1년 반, 다시 말해 정권의 성패가 걸려 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그동안 전쟁의 위협과 이념의 대결이 만들어 온 특권과 부패, 반인권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온전히 국민의 나라로 복원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직후 밝힌 소감이다. 이 짧은 소감에 대통령의 역사관과 세계관이 잘 함축돼 있다. 이 소감에는 과거 보수정권이 한반도 전쟁의 위협과 남북 이념 대결을 고조시켜 특권을 누리고 부패를 자행했으며 인권을 탄압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통령의 역사관은 대선 전부터 일관돼 있다. ‘친일세력→반공·산업화세력→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세력’이 화장만 바꿔가며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 왔으므로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세력을 청산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판문점선언에 이은 평양선언으로 보수세력이 지배의 도구로 사용했던 남북 이념 대결과 한반도 전쟁 위협이 사라졌다는 것. 따라서 사이비 보수세력이 설 땅이 없어졌으므로 ‘온전한 국민의 나라’를 복원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지나치리만치 남북 화해에 집착하는 바닥에는 이런 역사관과 세계관이 흐른다고 나는 본다. 하지만 남북이 화해한다고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올까. 북한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핵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순진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 대북제재 완화를 마중물 삼아 비핵화의 진전을 이루고, 제재 해제를 통한 남북 경협으로 남북 경제공동체를 이뤄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 대통령 구상의 요체다. 그런데 이 구상은 첫 단계인 대북제재 완화부터 미국과 유럽, 유엔의 장벽에 부닥쳤다. 이 장벽은 남북 화해의 첫 단추마저 끼우기 어렵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벽이다. 제재의 그물망이 너무 촘촘해 정부는 물론이고 대북사업을 원하는 기업, 사업을 지원해야 할 금융기관도 옴짝달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외교안보 수뇌부는 현재의 남북 관계가 한미 관계와 4강 및 유엔 외교의 종속변수가 됐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쉽게 말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미국의 문부터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국보다 북한의 문부터 두드린다. 그것도 아주 자주. 남북 화해가 지상명제라는 프레임에 빠져 그 바깥의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못 보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안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공·산업화세력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는 세계관은 기업을 지배계급, 노동을 피지배계급으로 편 가르는 프레임과도 직결된다. 현 정부 친(親)노동정책이 가려는 목표 지점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즉 기업과 노동의 경제 권력이 뒤바뀐 세상이 아닌가 한다. 문제는 이런 기도가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맞지 않아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한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민노총과 한노총으로 대표되는 노조세력이 우리 사회의 노동자를 진정으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고용세습까지 해대며 기득권에 취한 일부 귀족노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분(公憤)을 부르는 민노총의 비리 의혹에는 눈을 감고 노동, 아니 노조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니 ‘촛불 대선 보은’이라는 말이 안 나오면 이상한 일이다. 정부가 빠져 있는 또 하나의 프레임은 강남이다. 강남은 현 정부 핵심들에게 부동산 정책을 떠나 ‘왜곡된 우리 역사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의 둥지’처럼 돼버렸다. 강남을 겨냥한 부동산정책이 안 먹히는 가장 주된 이유는 경제·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사회 논리로 접근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적으로 역대 정권의 청와대에서 부동산정책은 경제수석실 담당이었지만, 지금은 김수현 사회수석실이 맡는다. 강남의 집값을 떨어뜨려 기득권 세력을 교체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집을 팔아 이익을 보게 해줄 수도 없다. 퇴로가 막힌 강남 주택 소유자들은 정권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버티기를 하는 중이다. 이러니 강남 집값도 안 떨어지고, 기득권 세력도 교체되지 않는 소화불량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프레임에 갇힌 그룹은 프레임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이 옳다는 집단사고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런데도 북한·노동·강남의 3대 프레임을 계속 끌고 나가려 하는가. 그렇다면 고개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은 쓰라린 정책 실패일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미국이 2003년 일으킨 이라크전(戰)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 이라크 내에 숨겨진 대량살상무기(WMD)의 위협 제거가 개전(開戰) 이유였으나 WMD 같은 건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 내에서도 ‘과연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 하는 회의론이 일었다. 그러자 2006년 당시 딕 체니 부통령의 반론. “미국이 이라크를 향해 진군하자 리비아가 WMD 관련 대화에 나섰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생포 직후 리비아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라크전 무용론에 대한 반박이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국의 생리는 비슷하다. A를 때려 B를 굴복시키는 것은 제국의 오래된 방책이다. 제국적 특성에서 오늘날의 미국과 가장 비슷한 고대 로마도 그랬다. 로마는 자신의 우산 아래 있던 오리엔트 국가들이 파르티아 같은 강국의 세력권에 편입되려 하면 어김없이 출병했다. 강국을 때려 주변의 질서를 정리해 ‘팍스 로마나’를 유지했다. 작금의 미중(美中) 무역전쟁도 비슷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 양상으로 굳어지는 무역전쟁은 미국 산업 보호라는 목적 달성 외에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구심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효과도 얻고 있다. 당장 한국부터 중국에 쏠리기보다는 미국의 ‘선처’에 목을 매는 신세가 됐다. 문재인 정부도 친중(親中) 노선을 내세우기 어려운 처지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 때리기가 미국식 동아시아 질서와 ‘팍스 아메리카나’ 유지의 방편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이번 일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것. 2050년까지 미국을 앞서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은 말 그대로 꿈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그것이다. 중국의 국력이 미국의 절반만 돼도 한국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어느 편에 붙을지, 국가적 고민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날이 우리 자식 대까지도 올 것 같지 않다. 만에 하나 중국의 국력이 미국과 어깨를 겨룰 만큼 커진다면 우리로선 더 불행한 시나리오의 시작이다. 고래(古來)로 중국은 한국을 복속시키려는 야심을 거둔 적이 없다. 삼국시대 이래 20회 이상 침공했으며 힘이 쇠한 청조(淸朝) 말에도 조선에 대한 영토적 욕심을 드러냈다. 오죽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을까. 제국이 되려면 군사력과 경제력 외에 문화의 힘과 설득력 있는 정치적 가치, 대외정책의 정당성을 아우른 ‘소프트 파워’도 갖춰야 한다. 중국은 그게 부족하다. 이 때문에 큰 나라지만 우방이 거의 없다. 지구 둘레의 반이 넘는 기나긴 국경선을 맞댄 14개국 대부분과 국경분쟁 등을 겪고 있다. 자기중심적 편협한 세계관을 강요하는 중국이 한국의 우산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미국에서 트럼프 같은 ‘황제’가 출현한 것을 제국 몰락의 서곡(序曲)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주먹을 휘두르며 미국 최고의 강점인 소프트 파워를 훼손하고 보이지 않는 보호주의 장벽, 심지어 멕시코 국경에는 보이는 장벽까지 쌓는 황제 말이다. 제국은 관용을 잃고 벽을 쌓을 때 몰락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럼에도 역시 우리 자식 대까지 아메리카 제국의 몰락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은 동맹 따위는 엿 바꿔 먹을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다. 미국이 대통령 한 사람 뜻대로 되는 나라는 아니지만 곳곳에서 70년 혈맹의 연대감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태도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은 그렇지 않아도 ‘한미 동맹은 돈이 안 된다’고 보는 트럼프의 경고까지 불러왔다. 미국 조야(朝野)에선 현 정부가 한미일 삼각 체제를 이탈해 북중러 체제를 기웃거리려 한다는 의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문재인-트럼프 정부가 짜고 치는 듯이 ‘동맹의 자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설사 북한 핵 문제가 해결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된다고 해도 한미동맹의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중국은 미국의 대안이 될 수 없는 나라고, 중일러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홀로 설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트럼프가 아니꼬워도 이 점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것이 우리의 지정학적 운명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정권교대(政權交代). 일본에서 정권교체 대신 쓰이는 표현이다. 자민당 정권이 장기집권을 하는 일본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겠으나, ‘교체(交替)’ 대신 ‘교대’란 용어를 쓰는 것이 눈길을 끈다. 사전적 의미로 교체는 ‘사람·사물을 다른 사람·사물로 바꾼다’이고, 교대는 ‘어떤 일을 차례에 따라 맡는다’는 뜻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 정권이 바뀔 수 있는 의원내각제의 특성을 반영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만일 한국이 의원내각제로 바뀐다면 정권교대란 표현을 쓸까. 아닐 것이다. 정권을 갈아엎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과는 다른, 일본식 절제가 반영된 용어가 아닌가 한다. 이제 한국에선 정권교체가 되면 교체가 아니라 전(前) 정권 해체(解體) 수준이다. 이전 정권의 모든 것은 부정(否定)된다. 적폐청산의 바람이 한바탕 지나갔지만, 아직까지도 관가(官街)에선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의 연관성이 드러날까 봐 숨죽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이런 현상이 문재인 정권 들어 처음은 아니다.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권교체 때도 그랬고, 보수정권 승계였지만 이명박-박근혜 교체 시절에도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도 ‘우리만 옳고, 우리만 선하다’는 식의 선민(選民)의식에 빠진 정도는 이번 정권이 가장 심한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 “그동안 전쟁의 위협과 이념의 대결이 만들어온 특권과 부패, 반인권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온전히 국민의 나라로 복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정은과의 남북 정상회담 직후 감격에 겨워 나온 말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 군사독재 시절을 접어두고라도 보수정권인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도 전쟁 위협과 이념 대결을 고조시켜 특권을 유지하고 부패를 자행했으며 인권을 탄압했다는 것인가. 그런 행위라면 지구상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자행한 3대(代)의 독재자를 옆에 두고 할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경제 사회 정책은 물론이고 외교안보와 대북정책마저 모조리 로마 시대에나 있었던 ‘기록말살형’에 처해진 듯한 요즘이다. 원로원 결의로 전임 황제의 기록을 삭제하고, 공적비에서조차 이름을 파냈던 그 형벌 말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사람을 물갈이하는 건 그렇다 치자. 그래도 정책의 급격한 교체는 신중해야 한다. 특히 외교안보 정책의 핸들을 급격히 꺾다간 자칫 대한민국호(號)가 기우뚱할 수도 있다. 비단 정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선 새로 등장하는 사람에겐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떠나는 사람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 척박한 문화가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영혼이 없다’는 관료사회뿐 아니라 일반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떠나는 사람의 공(功)은 후하게 쳐주고, 과(過)는 헐하게 깎아주는 미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석방됐다. 조 전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으로 구속(지난해 1월)→석방(지난해 7월)→재수감(올해 1월)→석방(9월)의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그런데 5일 열리는 보수단체 지원 관련 화이트리스트 재판에서 실형을 받으면 또 재수감이다. 정책을 시행하면서도 불법행위가 있으면 처벌받아 마땅하고, 박근혜 정부 인사 중에는 조 전 장관보다 더 오래 수감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반년여마다 운명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하는 그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나는 조 전 장관과 개인적 친분이 없다. 어디 조윤선뿐이겠는가. 전 정권 사람들 중에는 개인적인 일탈이나 불법행위 말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간여했다가 구속된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에게 관심 갖는 이는 드물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지낸 MB는 어떤가. 한국 대통령사(史)에 이름을 새겼지만, 열성 지지층이 있는 박근혜와 달리 벌써 잊혀진 대통령이 되는 듯하다. 선(善)을 독점하는 사람도, 정부도 있을 수 없다. 자신들이 그렇다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독선(獨善)이다. 우리의 역대 정권은 대체로 전 정권을 폄훼하고 부정하는 독선에 빠졌다가 차기 정권으로부터 부정당하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문재인 정부마저 그런 역사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럽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전직 외교부 장관의 얘기. “장관이 돼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외국에 나가서 회담을 하거나 정상을 만날 때다. 한국에서야 장관 중 한 명이지만, 외국에선 외교장관에 대한 예우가 특별하다. 붉은 카펫을 밟으며 국빈급 의전을 받은 경험은 오래도록 남는다.” 전직 국무총리로부터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야 방탄 총리니 뭐니 하면서 국회에서 시달리고, 대통령 그늘에 가리지만 외국 가면 다르다. ‘프라임 미니스터(Prime Minister)’가 실질적인 국가수반인 나라가 많아 의장대 사열하고 예포까지 쏘는 등 정상급 의전을 받아보면….” 외교장관과 총리가 이럴진대 대통령은 어떨까. 역대 대통령들이, 특히 임기 후반부 레임덕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시기에 골치 아픈 국내를 떠나 외유나 순방을 선호했던 데는 그런 심리적 이유도 깔려 있다. 이런 한국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의 최고봉은 단연 남북 정상회담이다. 우선 그 기회의 희소성에서 다른 정상회담과는 비교가 안 된다. 더욱이 회담 성과에 따라 일거에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거란 기대(혹은 착각) 때문에 대통령에게는 최고의 유혹이었다. 그중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집념은 남다르다. 나는 지난해 6월 26일자 본란(本欄)에 이렇게 썼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은 일종의 유업(遺業)이다. … 10·4선언이 정권 말 합의여서 무위로 돌아간 만큼 정권 초 정상회담을 열어 이를 부활시키고 임기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예상대로 그는 집권 1년도 안 돼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1년 반도 안 돼 벌써 세 번째 회담이다. 문제는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끌리는 한국 대통령의 심리, 특히 문 대통령의 애착을 너무 잘 안다는 점이다. 정상회담을 남측에서 돈 받을 기회로 여기는 북한에 대북 지원사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10·4선언은 아버지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남겨준 수십조 원짜리 채권증서나 다름없다. 2007년 정상회담의 준비위원장을 지낸 문 대통령은 북한이 내심 뭘 원하는지 잘 안다. 문 대통령이 전부터 ‘남북합의의 법제화’를 주장한 것도 김정은에게는 채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비쳤을 수 있다. 여야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문제 논의를 정상회담 이후로 연기했음에도 청와대가 굳이 11일 비준동의서를 국회로 송부한 것도 비슷한 이유로 보인다. 판문점선언은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고 명기했다. 특히 내년에만 4712억 원을 잡은 비용추계서까지 첨부한 것은 돈 문제를 유념하고 있음을 보여줘 김정은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수십조, 아니 수백조 원을 쓰더라도 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면 아깝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남측이 북에 돈을 쓰려야 쓸 수 없는 구조가 고착됐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대북 지원을 봉쇄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회담에 아무리 통 큰 대북 지원 합의를 한다고 해도 북한 입장에선 까딱 잘못되면 공수표가 될 약속어음인 셈이다. 북한이 노무현의 약속과 문재인의 이행을 현금화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말이나 ‘쇼’가 아닌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다. 김정은은 물론이고 심지어 문 대통령까지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에 합의해줘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누군가. 문 대통령이 아무리 설득해도 중간선거를 앞둔 그가 “얻은 것도 없이 선물을 안겨줬다”는 평가가 불러올 리스크를 감수할 리 없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할 일은 트럼프가 아니라 김정은을 설득하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 끌려도 상응하는 성과를 낸다면 문제 삼을 국민은 없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례에서 보듯, 치명적 유혹은 화려한 말의 잔치로만 남았다. 두 대통령이 남북 화해에 집착한 나머지 등 뒤에서 한반도 체스판을 움직이는 미국의 존재를 간과했거나 애써 무시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회담의 성패도 미국의 판단이 좌지우지할 것이다. 문 대통령으로선 마주 앉은 김정은뿐 아니라 태평양 너머 트럼프도 의식하며 회담을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평양에 가는 문 대통령이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조선 성종 말년에 다리가 셋 달린 닭이 태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신하들은 왕이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괴변이 벌어졌다고 다그쳤다. 심지어 왕이 베갯밑송사에 넘어갔을 때 이런 변고가 벌어진다는 해석까지 내놨다. “내가 여자 말을 들어준 적이 없다”고 변명까지 하던 성종은 급기야 분노를 꾹 참고 “모든 재이(災異·괴이한 재앙)는 내가 불러일으켰다”고 내뱉고 만다. 서양에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즈음에 이따위 논쟁이나 벌인 조선의 조정이 기막히다. 그럼에도 성종이 ‘인내의 화신’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성종은 작은아버지 예종이 서거하자 갑자기 왕이 된 경우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7년간 할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섭정이 끝난 뒤에도 세조 반정의 공신 집단에 휘둘렸다. 인내의 연원(淵源)이 어딘지 짐작하게 하지만, 그 인내심을 바탕으로 정치를 펼쳐 조선 전기의 명군(名君)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일곱 살에 세자로 책봉된 큰아들은 달랐다. 신하들에 대한 아버지의 극도의 인내를 가까이서 지켜본 세자는 18세의 젊은 나이에 즉위하자마자 정반대로 나갔다. 제왕의 권위에 대한 일체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무오·갑자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공신과 관료들을 살해하는 공포정치를 펼쳤다. 바로 연산군이다. 드라마에선 생모의 폐위와 죽음을 접한 젊은 국왕이 광인(狂人)으로 돌변하는 것으로 설정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국왕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집권 경위와 기반에 좌우됐다. 연산의 학정(虐政)에 대한 반정으로 18세에 갑자기 왕이 된 중종도 집권 전반기 반정 공신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디 조선의 국왕들뿐일까. 모든 권력자는 자신이 집권한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세습 왕조가 끝난 뒤에도 권력의 공식은 적용된다. 권력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쟁취한 권력자는 자신이 집권에 성공한 방식을 성공의 제1의 법칙으로 확신하고, 무오류의 신화에 빠진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이걸 휴브리스(Hubris)라고 불렀다. 휴브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영역에까지 침범하는 권력자의 오만을 뜻하지만,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 방식에 집착하다 결국은 패망한다는 함의(含意)가 있다. 오늘날에도 조직의 오너나 CEO(최고경영자), 1위 기업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지금 영어(囹圄)의 몸인 두 권력자도 휴브리스 때문에 실패했다고 나는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신화에다 비운의 공주라는 신비주의 이미지에 크게 힘입어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집권 후에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 시대의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을 고수했고, 대통령이 돼서도 국민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신비주의를 유지했다. 그 신비주의의 커튼을 쳐주는 사람이 최순실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비즈니스 능력 때문에 성공했고, 부자가 됐으며, 대통령까지 됐다. 이념 과잉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질릴 대로 질린 국민에게 MB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실용의 리더십으로 비쳤다.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 돼서도 과도하게 비즈니스에 집착했고 와중에 ‘패밀리 비즈니스’까지 챙겼다는 점이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였고, 훌륭한 가장이었을지 몰라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의 성공 방식을 깼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생을 진보주의자로 살았다. 그의 일관된 삶이 제 몫만 챙기고 민생은 도외시한 보수 정권에 질린 국민에게 신뢰를 주었고, 그것이 집권의 가장 큰 기반이 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돼서도 진보의 틀 안에만 갇혀 일관성을 고집한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아직도 외교안보와 경제 정책에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린 그림을 기필코 완성하려는 그의 집요한 뚝심에서 휴브리스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성공 방식에서 진화하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전임자가 두 명이나 있지 않은가. 벌써 집권 1년 4개월. 개각과 함께 문재인 정부 2기가 시작됐다. 역대 대통령의 레임덕이 점점 빨라지는 추세를 보면 강한 리더십을 갖고 제대로 일할 시간은 1년 반 남짓일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이 ‘문재인 2.0’으로 진화할 시간도 그렇게 많이 남은 건 아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동아일보에 수습기자로 입사했을 때 선배들로부터 받은 교육이다. “부장 차장을 부를 때 ‘님’ 자를 붙이지 마라. 성을 앞세워 ‘김 부장’으로 부르거나 아니면 ‘부장’이라고 해라.” 입이 잘 안 떨어졌다. 당시 부장은 나보다 스무 살쯤 나이가 많았다. ‘부장’ 하고 부른 뒤 소리를 죽여 뒤에 ‘님’ 자를 붙이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처음엔 왜 굳이 반말 같은 호칭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지금부터 30년쯤 전의 일이란 점을 감안하길 바란다. 그러나 취재현장에 나가면서 그런 호칭에도 나름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됐다. ‘님’ 자 하나 뺀 것뿐인데, 격의 없는 내부 소통을 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당시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보다 수평적인 언론사 문화가 나이 많고, 성공한 취재원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다가가는 데 큰 힘이 됐던 게 사실이다. 호칭이나 예절 같은 형식은 때론 인간관계라는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님’ 자는 고사하고 부장 차장이란 직책까지 생략한 호칭이 등장하는, 이른바 탈(脫)권위 시대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 대통령이 청와대 관계자들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산책하며 담소하는 사진으로 탈권위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탈권위 정부에도 권위주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허리가 꺾어지듯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 이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적지 않은 의혹이 쏟아졌음에도 ‘의원 불패’ 신화에 힘입어 통과했다. 그 안도감에 엔도르핀이 분출하는 터에 ‘가문의 영광’이 되는 자리에 발탁해준 대통령에게 임명장까지 받으니 절로 충성심이 솟구쳤을 법하다. 장관의 90도 인사에 청와대 참모들은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불편하고 씁쓸했다. 장관이 대통령에게 충분한 예의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장관은 주군(主君)과 가신(家臣)의 관계가 아니며 장관이 궁극적으로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조폭의 충성맹세를 연상케 하는, 예법에도 없는 90도 인사를 보면서 아직도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진정한 청와대 참모들이면 그런 시대착오적인 인사가 대통령의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하고 충언을 했어야 한다. 지난달 인도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90도 인사를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삼성을 겨냥한 정권의 압박이 조여 가는 터에 젊은 총수가 연장자 대통령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깊이 머리를 숙이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게 당연시되는 문화는 곤란하다. 현 정권을 포함해 우리의 역대 정권은 집권 초 정부와 기업을 수직적 관계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정부와 기업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경제의 동반자인 수평관계다. 비단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당 대표가 됐다고, 혹은 원내대표가 됐다고 신임 인사 자리에서 ‘앞으로 잘 모시겠다’며 90도 인사를 한다. 그리고 잘 모시기는커녕 도리어 무시하고 극한 대립을 자행해온 것이 우리 정치판의 현실이다. 악수란 원래 꼿꼿이 서서 눈을 맞추며 하는 것이 예법에 맞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똑바로 서서 악수해 ‘꼿꼿 장수’ 별명을 얻었지만, 실은 그렇게 안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정, 어른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악수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목례 정도는 무방할 터다. 아무리 탈권위를 외쳐도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권위주의까지 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청와대부터 뿌리 깊은 권위주의를 내치지 않는다면 청와대와 내각,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는 정상화될 수 없다. 국회와 정부, 정부와 민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규제혁파가 이토록 어려운 것도 ‘관(官)이 정하면 민(民)은 따르라’는, 관료들의 뼛속에 새겨진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을 긁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위마저 무시되는 요즘이다. 사회 구성원과 기관 각각의 자리에 맞는 권위는 필요하고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권위가 변질된 권위주의가 숙변처럼 들어차 있는 한 미래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우리 역사에서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왕성하게 꽃피운 시대는 언제일까. 단연코 지금, 문재인 정부 때다. 민주주의가 없던 왕정 시절도, 직접민주주의 맹아(萌芽)도 찾기 힘들었던 권위주의 정권 때도, 보수 정부 때도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광복이나 4·19혁명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절에 직접민주주의란 이름을 갖다 붙일 수도 없다. 작금의 직접민주주의는 현 정부와 가장 성격이 비슷한 노무현 정부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적 성장과 질적 변화를 이뤘다. 먼저 노무현 정부 때에 비해 직접민주주의 장(場)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엄청나게 팽창했고 촘촘해졌다. 무엇보다 노무현과 달리 문재인 집권의 가장 큰 동력은 촛불이란 직접민주주의였다. 그 결과 문 대통령은 대놓고 직접민주주의를 국정 운영의 기조로 표방한다. 정권인수위원회 격인 국민인수위 보고서에서 ‘국민은 간접민주주의를 한 결과 우리 정치가 낙오되고 낙후됐다고 생각한다’며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을 정도다.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직접민주주의의 만개(滿開)다. SNS 여론은 곧바로 정책이 되거나 청와대 청원이 돼 대통령까지 반응을 보인다. 시민단체와 재야, 노동계의 목소리는 정부의 각종 위원회 등을 통해 속도감 있게 정책으로 반영된다. 그것도 모자라 정책 결정을 시민들에게 맡기는 공론화 방식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SNS 여론은 때론 적폐청산이란 미명 아래 인민재판식 칼날이 되기도 한다. 직접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고대 그리스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영웅들이 대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이다. 마라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1차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끈 밀티아데스는 정적들의 고발로 막대한 벌금형을 선고받고 죄인으로 죽었다. 전쟁사에 길이 남은 살라미스해전을 승리로 이끈 테미스토클레스도 도편추방의 희생자가 돼 결국 적국 페르시아에 몸을 의탁해 거기서 숨을 거뒀다. 플라타이아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2차 페르시아전쟁을 끝낸 파우사니아스는 모함에 몰려 굶어 죽었다. 이 외에도 많은 지도자가 도편추방의 희생자가 됐다.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라고는 꿈도 못 꾸던 시절에 직접민주주의를 창안해 인류에게 큰 선물을 줬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것 때문에 망했다. 직접민주주의와 샴쌍둥이처럼 달라붙은 포퓰리즘과 중우(衆愚)정치 때문이다. 오늘날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간접민주주의인 대의정치를 대종(大宗)으로 삼고 직접민주주의는 일부 차용하되, 경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직접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참을성이 없다는 속성을 지닌다. 민의(民意)가 즉각 반영되는 듯해 시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치주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직 대통령 2명이 구속된 데 이어 이번에는 전직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관들에게도 칼날이 겨누어지고 있다. 정부기관의 인적 청산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열려서는 안 될 외교부의 판도라 상자까지 열릴 조짐이다. 외교관이 개인비리가 아닌 외교정책으로 처벌받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바닥인 우리의 외교력을 얼마나 실추시키는지 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기무사령부 계엄 문건의 칼끝마저 전직 국방 수뇌부를 향하고 있다. 군(軍)과 외교, 사법 분야는 함부로 청산의 칼을 들이대다간 자칫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포퓰리즘이 부르는 무분별한 청산의 끝은 비극이다. 기원전 406년 펠로폰네소스전쟁 말미에 아테네는 해전에 참전한 사령관 8명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도망친 2명을 제외한 6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해전에서 패배한 것도 아니고 폭풍우로 침몰한 배의 선원을 구조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런 나라가 패망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 역사학자들은 ‘아테네는 민주적으로 자살했다’고 평가한다. 직접민주주의와 동전의 앞뒷면인 포퓰리즘은 때론 피를 부르고 희생양을 요구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3개월이 됐지만, 적폐청산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고 점점 더 위험한 지점으로 향하고 있다. 그 칼로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는 일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칼이 계속 춤추도록 놔두다간 그 칼끝은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오게 돼 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첫 번째 질문. 어떤 마을에 600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 무서운 질병이 발생해 마을 사람 모두를 죽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응하는 두 가지 치료 프로그램이 있다. 두 프로그램의 예상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프로그램 A: 200명을 살릴 수 있다. ②프로그램 B: 33%의 확률로 600명을 구하고, 67%의 확률로 아무도 살리지 못한다. 자, 당신이 질병관리본부 책임자라면 둘 중에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할 것인가? 두 번째 질문. 그 마을에 주어진 상황은 똑같다. 다만 이번에는 이런 치료 프로그램이다. ①프로그램 A: 400명이 죽는다. ②프로그램 B: 33%의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고, 67%의 확률로 600명이 죽는다. 이번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실시한, 심리학사에 길이 남을 실험 중 하나다. 실험 참가자들은 첫 번째 질문에서는 대다수가 프로그램 A를 택했다. 두 번째 질문에서는 프로그램 B를 훨씬 선호했다. 그런데 따져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물음에서 프로그램 A와 B는 같은 내용이다. 600명의 사람 중 200명이 사는 것과 400명이 죽는 것은 결국 같은 뜻이다. 다만 전자는 ‘살린다’는 관점으로, 후자는 ‘죽는다’는 관점으로 표현한 것. 같은 문제와 상황에서도 관점이 달라지면 인간의 판단과 선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다.(‘지혜의 심리학’, 김경일) 이 실험을 보면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알 수 있다. 보다 적확한 판단을 하려면 문제의 양면성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실험이 주는 교훈이다. 설명이 길어진 것은 문재인 정부를 이끄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문제나 상황, 사물이나 사건의 한 면만 보고 선택과 판단을 하는 경향이 너무 짙다. 대표적인 것이 대기업을 보는 관점이다. 대기업이 하청업체와 중소기업을 착취해 성장한 측면이 있다면 그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한국경제에 기여한 다른 면이 있다. 오너 경영체제도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세습을 유지해온 어두운 면이 있다면 오너의 책임 있는 결단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밝은 면이 있다. 그런데 이 정부의 경제 실권자들은 한쪽 면만 보고, 아니 다른 면은 아예 보지 않으려 하면서 정책을 밀어붙인다. 대기업 정책의 제1 타깃은 물론 재계 1위인 삼성이다. 하지만 2위인 현대차를 비롯해 다른 대기업을 보는 시각도 같다. 현대차 고위 임원이 사석에서 한 장관에게 수소전기차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그러자 장관은 정색을 하고 “그러면 현대차만 좋아지는 것 아니에요”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다른 장관은 현대차 고위직 앞에서 “환경오염의 주범은 현대차”라고 지목했다. 장관이라는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이렇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에 균열이 생기고 물이 새기 시작했다. 역시 한 면만 보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말만 성장정책이지, 기실 분배정책이다. 세계 어디서도 성장이 검증되지 않은 정책이다. 문 대통령이 최근 들어 혁신성장과 그 엔진인 규제개혁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어쩌면 이 정책의 실패를 예감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실패를 자인하고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 진보좌파 시민단체와 지식인 집단, 노동계의 저항도 있겠지만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문 대통령의 성패가 달렸다. 무릇 정권의 위기는 경직성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정책에 대못을 박으려는 이 정부 사람들을 보면 고대 그리스의 리쿠르고스가 생각난다. 기원전 8세기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권력자다. 그는 전사(戰士)들의 병영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각종 제도를 밀어붙였다. 가령 스무 살 성인식에 하층민을 습격해 살해하고 머리를 가져오는 의무를 포함시킬 정도였다. 제도가 정착된 뒤 그는 스파르타를 떠나며 시민들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내가 귀국할 때까지 절대 바꾸지 않겠다고 서약해 달라.” 당연히 모두 서약했다. 그는 외국을 떠돌며 죽을 때까지 일부러 귀국하지 않았다. 대못박기도 이런 대못박기가 없다. 그 결과 스파르타는 많은 그리스 도시국가가 남긴 문명과 민주주의, 문화 예술 어떤 것도 역사에 남기지 못했다. ‘나만 옳다’는 유아독존(唯我獨尊) 정책의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사람들은 정책 결정·집행자가 아닌 국민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다음 달 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 여느 나라 같으면 벌써부터 대축제 준비에 한창이겠지만, 우리는 다르다. 오히려 건국일 논란만 거세질까 봐 마음이 무겁다. 논쟁의 불을 지핀 사람은 축제의 제사장이 돼야 할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3일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우리에게는 민주공화국 10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1919년 임정 수립이 곧 건국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제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설득력 없는 주장이다. 1933년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몬테비데오 협약’ 제1조는 국제법상 국가 형성의 요건으로 다음 네 가지를 들고 있다. ①영구적 주민(permanent population) ②확정된 영토(defined territory) ③정부(government) ④타국과의 (외교)관계 체결 능력(capacity to enter into relations with other states)이다(‘헌법의 이름으로’, 양건). 국제법적으로 보면 상하이 임정 수립이 건국이라는 주장은 아무도 없는 곳에 깃발 하나 꽂고 내 나라라고 주장하는 ‘어린 왕자’ 식 논리일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1948년 제헌 헌법의 전문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규정했다. 1919년 건국을 언명(言明)한 것이다. 현행 헌법 전문도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헌법적으로는 임정 수립을 건국으로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건국이 언제인가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논쟁이다. 미국(7월 4일) 중국(10월 10일) 프랑스(7월 14일)가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은 모두 정부 또는 임시정부 수립일과는 거리가 멀다. 왕정을 거쳐 일제 강점의 질곡 속에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임정 수립은 역사적인 날이고, 70년 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국제법적으로 승인까지 받은 뜻깊은 날이다. 함께 경축하면 될 일이지, 맞다 그르다 치고받고 싸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집권 진보세력은 한사코 정부 수립 70년을 부정하며 임정 수립만을 유일한 건국일로 규정한다. 왜? 문 대통령의 일관된 언행이 그 답을 준다. 대선후보 때부터 문 대통령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라고 했다. 세상을 바꾸려면 오늘의 세상을 만든 과거부터 바꿔야 한다. 문 대통령 집권 이후를 돌아보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권력교체에 매진해온 1년여였다. 입법 사법 행정 3권의 교체는 벌써 진도가 많이 나갔다. 입법권력 교체는 6·13지방선거의 쓰나미가 휩쓸고 가면서 일거에 이루어진 느낌이다. 행정권력 교체야 대선 승리로 당연한 일이지만,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더 철저한 물갈이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법권력 교체도 민변과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요직에 속속 포진하면서 순항 중이다. 11월 퇴임하는 김소영 대법관 후임까지 채워지면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전체 14명 중 9명이나 된다. 문제는 시장(市場)권력이다. 한국사회의 저변을 움직이는 시장권력까지 교체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장권력 교체는 경제 실권자들을 교체한다고, 재벌들의 목줄을 죈다고 쉽사리 이룰 수 없는, 가장 어려운 권력교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에 이어 검경까지 동원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까지 동원해 민간 기업의 지배구조를 손대려는 기도(企圖)까지 등장했다. 시장권력은 거칠게 밀어붙인다고 바뀌지 않는다. 독재자 김정은도 시장은 못 잡았다. 북한이 아니라 시장에 필요한 것이 햇볕정책이다. 시장 주체인 기업과 개인들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 말이다. 집값을 잡는다고 강남 때려잡기를 해도, 취약계층을 돕는다고 최저임금을 올려도 결과는 반대로 튀는 게 시장이다. 정책은 시장원리, 즉 인간 본성에 부합해야 성공할 수 있다. 지금처럼 시장권력 교체에 조급증을 보이다간, 결국 시장의 이반(離叛)에 직면해 높은 지지율에 치명타를 안길 것이다. 세상은 바꾸는 게 아니라 바뀌는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연구했고, 일부 군인들이 군신(軍神)으로 존숭(尊崇)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진해에 주둔해 있던 일본 해군이 충무공을 모시는 사당인 통영 충렬사를 매년 정기적으로 찾아 제사를 올렸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 근현대 한일 관계사를 발굴하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 저술가 이종각의 책 ‘일본인과 이순신’을 통해서다. 그보다 앞서 1905년 일본의 한 해군 장교는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일전을 앞두고 300여 년 전의 적장(敵將) 이순신의 혼령에 자신의 안전과 일본 해군의 승리를 빌기도 했다. 일본 중학교 검정교과서와 참고서 대부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활약으로 자신들이 패퇴한 사실(史實)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무리 이순신이 불세출의 명장이라고 해도 자국에 패배를 안긴 장수를 우리라면 그렇게 외경(畏敬)할 수 있을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일본인 특유의 사생관(死生觀)과 무사도 정신의 편린(片鱗)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봐도 이순신은 한국사의 특이한 존재다. 질투심으로 똘똘 뭉친 겁쟁이 왕과 당파싸움으로 지새우며 썩을 대로 썩은 지도층, 실정(失政)으로 도탄에 빠져 무기력한 백성…. 어느 한구석 예정된 패전을 뒤집을 동력은 없었다. 더구나 지원병으로 온 명군(明軍)은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당나라 군대’였다. 조선군에겐 군림하면서도 왜군과는 겉으로만 싸우는 양전음화(陽戰陰和)를 일삼았고 조선 백성 수탈은 왜군 못지않았다(안영배의 ‘정유재란―잊혀진 전쟁’). 임란(壬亂)은 이순신이 없었다면 강토(疆土)가 적에게 넘어가 이후 역사가 바뀌었을 ‘이순신의 전쟁’이었다. 역사처럼 확실한 건 없다. 임란 때든 구한말이든, 로마 패망기이든 청조(淸朝) 말이든 위기는 대개 비슷한 징후를 동반한다. 무능하고 안일한 지배세력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이 제 배만 채우는 사회 지도층, 무사안일에 빠진 국민의 분열,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외세(外勢). 위기의 ‘4종 세트’다. 지금이 위기냐, 아니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불과 넉 달 전까지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초유의 위기’라고 외쳤다. 하지만 위기의 징후라는 측면에선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먼저 주적(主敵), 즉 북한의 선의(善意)에 기대어 ‘대화를 통한 평화’를 얻겠다는 청와대의 일관된 노선이 가장 불안하다. 평화를 위한 대화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적국의 악의(惡意)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토대 위에서 해야 한다. 우리가 평화를 바란다고 적도 평화를 바랄 것이란 편의적 낙관론에 빠져 ‘내가 먼저 무기를 버릴 테니, 너도 버려라’라는 식의 순진함이 불러온 실패를 우리는 숱한 역사의 페이지에서 본다. 지도층도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를 9년 동안 지배하던 보수 정치세력은 국민의 버림을 받고도 왜 버림을 받았는지조차 모른다. 하다못해 국민을 속인 죄를 반성하며 이제부터 단 한 푼도 세비를 받지 않겠다는 사람조차 없다. 자기희생만이 살 길인 걸 왜 모르나. 그렇다고 새 지도층에 오른 진보세력도 다를 바 없다. 9년의 허기를 채우겠다는 듯, 무서운 속도로 제 배를 불려간다. 어떻게 하면 다시는 밥그릇을 놓치지 않을까 골몰하며 밥상까지 바꾸려 한다. 서민 듣기 좋은 말은 골라서 하면서 자기들은 불로소득 챙기며 좋은 동네 살고, 자식들은 좋은 학교 보낸다. 이런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좌우 할 것 없이 편 가르기를 일삼는 지도층에 점염(點染)된 국민들도 내 편, 네 편으로 갈렸다. 그러면서 어느새 굴종의 평화든 뭐든, 전쟁만 없으면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여기에 북한 김정은의 협박도 모자라 미국 대통령까지 한미 동맹을 엿 바꿔 먹을 수 있다는 태도로 우리 안보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위기의 4종 세트에서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류성룡은 임란이 끝난 후 징비록(懲毖錄)을 쓴 이유에 대해 시경을 인용해 “앞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의 환란을 조심한다”고 밝혔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반드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게 만든다. 작금의 위기 징후들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2006년 9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 벽난로 앞에 마주 앉았다. 두 정상 옆에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수행원들이 나란히 앉았다. 당시는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득표전 막바지. 노 대통령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부시 대통령은 반 장관에게 물었다. “왜 그런 힘든 자리를 하려고 하느냐.” 반 장관은 먼저 노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시에게 직접 영어로 5분가량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본인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겪은 나는 평화와 안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세계의 안전보장을 위한 미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총장이 되면 미국과 함께할 것이란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흡족해진 부시가 참모들에게 말했다. “그가 우리의 (총장) 후보다(He is our candidate).”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미국 대통령이 유엔 사무총장 면접을 본 것이다. 미국이란 그런 나라다.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총장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이집트 출신 부트로스갈리 총장은 “만약 단 한 단어로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을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독립성”이라고 말할 정도로 미국의 입김을 벗어나려 했다. 그럼에도 그의 총장 연임 여부에 대한 안전보장이사국의 투표 결과는 14 대 1의 압도적 찬성이었다. 문제는 반대한 단 한 나라가 미국이었다는 것. 부트로스갈리는 결국 미국의 상임이사국 거부권이란 마지막 허들을 넘지 못했고, 유엔 사무총장 가운데 유일하게 연임에 실패한 사례로 기록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늦게 나타나 회의 도중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싱가포르로 출국했다. 공동성명조차 거부했다. 외교적 무례인 데다 자기 마음대로다. 미국을 제외한 6개국은 한목소리로 비난했지만, 뒤에선 미국과 ‘딜’을 할 것이다.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나라, 그게 미국이다. 그런 미국으로부터 동맹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반미 시위가 벌어지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성조기를 흔들며 친미 시위를 벌이는 유일한 나라 또한 한국일 것이다. 여러모로 미국은 한국에 숙명적 존재다. 더구나 내일이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 사실상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회담에 들어간다. 상대방은 같은 민족인 북한의 지도자이지만, 한국의 안보 이익을 대변할 쪽은 미국이다. 불안하다.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회담에 발을 못 들이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 쪽 스피커인 미국 대통령이 럭비공이다. 분명한 건 하나 있다. 트럼프는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다.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말하는 것도 작금의 미국 국익에 맞아떨어져서다. 한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했기 때문이 아니며,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외교를 잘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과거에도 미국이 작심만 했다면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밀어붙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국가의 존망(存亡)이 걸린 선택마저 미국의 처분에만 맡겨야 하는 운명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에겐 6·25전쟁 때 미군 4만 명이 목숨을 바친 혈맹(血盟)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유산이 있다. 그 소중한 유산을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미국은 아프간 국제안보지원군(ISAF) 병력 부족 때문에 큰 곤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파병 요청을 하지 않았다. 외교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돌아온 대답.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목숨 걸고 싸울 군인들이다.” 한국은 군인들을 전투지역에 안 보내려 하니, 필요 없다는 얘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정부는 이듬해 특전사 병력 300명을 파견키로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미국 조야(朝野)가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동맹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큰 나라라도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 미국이 어려울 때 한국이 달려갈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야말로 혈맹의 유산을 지켜내는 버팀목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방주의(unilateralism)로 치닫는 미국과 장사꾼 대통령은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미국과 트럼프를 움직이는 건 여전히 우리 하기에 달렸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그렇다. 게임이다. 일찍이 ‘거래의 기술’이란 책까지 펴낸 게임의 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대로 “모두가 게임을 한다(Everybody plays games)”. 동북아 미래가 판돈으로 걸린 ‘그레이트 게임’이다. 게임을 주도하는 자는 단연코 트럼프다. 맞상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든 게임을 성사시키려는 매치메이커다. 게임의 제왕 트럼프는 김정은과 포커를 치면서도 김정은보다 그의 뒤편에 서 있는 사람을 자주 쳐다본다. 트럼프 자신이 ‘세계 최고의 포커플레이어’라고 평가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이 게임판에 끼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 멀리서 트럼프에게 훈수도 두지만, 도무지 포커판에 붙여주질 않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김정은은 할아버지부터 3대에 걸쳐 이 게임을 학수고대해 왔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하려니 두렵다. 과연 내가 가진 패를 올인(다걸기)해도 되는 걸까. 핵과 미사일을 다 내놓아도 내 권좌는 안전할까. 미국의 체제 보장 약속을 믿고 다 내놓았다가 목숨까지 잃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부하들도 건의한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불안한 마음에 시진핑이 있는 중국 다롄까지 달려갔다. 시진핑은 “미국을 믿으면 안 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 “올인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하라. 내가 뒤는 봐줄 테니.” 그래서 까던 패를 일단 덮은 김정은. 화장실 다녀온다고 포커판을 비웠다. 트럼프에게는 ‘그렇게 패를 한꺼번에 던지라고 압박하면 판을 깰 수도 있다’고 넌지시 흘리며. 그런데 이게 웬걸. 트럼프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태도 불량이다, 게임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서. “네가 가진 패가 세다고 얘기하는데, 내가 가진 패는 너무 막대하고 강력해서 신께 이 패를 사용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김정은 각하’라면서 점잖게 협박하니 더 무섭다. 당황한 김정은. 어, 이건 아닌데…. 할아버지부터 써온 ‘벼랑 끝 전술’은 항상 통했는데, 나보다 더 ‘미친 놈(mad man)’이 있다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판을 덮고 일어설 순 없다. 부하들도, 아니 이젠 인민들까지도 내가 이 게임에서 승리해 우리도 먹고살 만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판이 깨지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나. 핵실험장도 보란 듯이 폭파했는데…. 별수 없이 김정은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입을 빌려 북한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메시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태도 불량은 오해다. 그런 오해야말로 이번 게임의 성사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김정은은 불안했다. 부랴부랴 매치메이커인 문 대통령에게 연락했다. 저번에 만났던 판문점에서 다시 만나자고. 미국과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분풀이 상대로 삼곤 했던 남측이지만,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문재인을 만난 김정은. “나, 이번엔 정말 다 던질 각오가 돼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보장 약속을 믿을 수 있는 건가.” 문재인은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는다. 선대(先代)들처럼 죽어도 핵을 포기할 수 없다면 이렇게까지 매달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문재인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 트럼프도 “김정은이 먼저 게임을 요청했다고 보고받았다”고 했고, 김정은의 수하인 최선희라는 여자도 “트럼프가 먼저 포커판 벌이자고 했다”고 떠벌리면서 매치메이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오죽 답답했으면 판이 깨지자 “다른 사람 거치지 말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직접 대화하라”고 했을까. 유일하게 웃고 있는 한 사람, 트럼프다. ‘지금까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통한 건 아직 임자를 못 만났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포커 카드를 뜻하는 트럼프인 줄 몰랐나.’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그때그때의 운에 따라 한두 번 포커 게임에서 이길 순 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두둑한 밑천을 가진 사람이다. 그게 결국 게임의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힘이다. 힘도 없는 사람들이 심판을 보겠다느니, 운전대를 잡겠다느니 하는 건 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장난이다. 끊임없이 뒤통수 때리기를 일삼는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힘밖에 없다. 김정은이 다시 게임하자고 내게 매달리는 것도 결국 압박 때문이다. 그런데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 김정은 뒤에 서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저 자가….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변방에선 제법 난다 긴다 하는 타짜 집안 N. 중원(中原) 도박계의 천하제일 A가문과 한판 붙는 게 목표였다. 수십 년 동안 이리저리 찔러봤지만 A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업계의 정설은 A와 붙으려면 먼저 이쪽이 가진 도박 칩을 모두 보여줘야 한다는 것. N집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런 칩, 저런 카드를 들이대며 무던히도 애썼다. 그런데 드디어 손자가 일을 냈다. 3대가 모은 칩을 한꺼번에 들이대자 마침내 A가 오케이 했다. 드디어 운명의 한판. 과연 손자는 수십 년 모은 칩을 한꺼번에 올인(다걸기)하는 최후의 도박을 할 것인가. 북한은 6월 12일 북-미 담판에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할 수 있을까. 3대가 어떻게 만들고 지켜온 핵과 미사일인가. 분명한 점은 김정은은 선대(先代)와는 입지가 다르다는 것. 미국의 관심을 끌 만한 칩을 쌓는 과정이었던 김일성 김정일은 결코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핵과 미사일을 확보한 김정은. 드디어 카드로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의 반대급부가 충분한 보상이 된다면. 김정은이 과연 그런 궁극의 베팅을 할지 아직은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까지 포기하면 미국으로부터 받을 보상의 골자는 대북제재 해제, 6·25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다. 협상이 순항한다는 전제 아래 이런 평화 정착 과정을 거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너무나 ‘뜨거운 감자’, 아니 금기라고 해도 좋을 어떤 것이 있다. 바로 주한미군 철수 문제다. 미군 철수는 당장 미국이 북한에 보상의 카드로 내놓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이 잘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면 필연적으로 주한미군의 효용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문정인 대통령특보가 바로 이 점을 지적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라며 부인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같은 얘기를 한 것이다. 미군 철수 문제는 평화협정이라는 계산서에 사인한 뒤에 지출해야 하는 현찰의 성격을 띤다. 그 경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천착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에 대해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군의 주둔은 미국의 필요 때문 아닌가. 흔히 좌파 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자연히 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란 논리적 귀결로 이어진다. 미국은 전 세계 미군기지에 약 15만 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한국에는 2만8500명으로 일본, 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이 있다. 세계 주둔 병력의 5분의 1가량을 순전히 한국 방어만을 위해 두고 있을까. 미국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미국은 사실상 현대 유일의 제국이다. 주한미군은 제국을 넘보는 중국에 대응하는 전진기지 역할도 한다. 중국을 마주보는 평택에 세계 최대 미군기지가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둘째, 그렇다면 주한미군 철수는 불가능한가. 그건 아니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냉전 시절 서방세계의 최전선 방어기지 역할을 할 때보다는 떨어졌다. 평화협정 체결로 주한미군의 효용성이 낮아지고 한국 내에서까지 철수 여론이 비등하면 미국으로서도 그대로 놔 둘 이유가 없다. 대중(對中) 견제와 동(東)아시아 전략상 역할은 주일미군 보강을 통해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용을 중시하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그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셋째, 우리는 과연 주한미군 없는 나라에 살 준비가 돼 있나. 이 물음은 북쪽에는 핵이 없고, 남쪽에는 주한미군이 없는 한반도를 상정한다. 미군은 광복과 함께 남한에 진주한 이래 6·25전쟁 발발 전 1년을 빼놓고는 없던 적이 없었다. 지금 80세 노인도 일곱 살 때 미군이 들어왔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은 미군의 존재를 상수(常數)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군사안보 측면에서 따진다면 북한에 핵이 없다면 남쪽에 미군이 없어도 못 살 것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미군 철수가 몰고 올 막대한 충격파를 견딜 내구력을 우리가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철수보다는 감축이 차선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 경우도 주한미군이 전략적 의미를 가지려면 1만 명 선 아래로 내려가선 안 될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65)과 북한 지도자 김정은(34)의 나이 차는 31세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에선 아버지와 아들뻘인 두 사람의 나이 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젊어 보여서라기보다는 김정은이 노숙해 보여서다. 목소리나 몸짓, 심지어 몸집까지도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으려는 각고의 노력(?) 때문일 게다. 김정은의 판문점 군사분계선 월경(越境)은 3대를 통틀어 65년 만의 서방세계 데뷔전이었다. 자칫 한 나라의 지도자로선 어리다는 소리를 들을 나이에 그 정도면 자신의 표현대로 ‘잘 연출됐다’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특히 문 대통령이 “나는 언제쯤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하자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하며 즉석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 경계선을 넘어서는 대목에선 뼛속까지 제왕(帝王) 교육을 받고 자란 권력자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사실 그 군사분계선이란 게 너비 50cm의 콘크리트 턱에 불과하지만 막상 그걸 넘으려면 심사가 복잡해진다. 1992년 봄에 내가 그랬다. 당시 판문점에선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에 따른 후속조치로 숱한 회담이 열렸다. 취재기자였던 나는 이번 정상회담이 열린 평화의집에서 풀 기사를 썼다. 다른 남측 기자들은 회의가 열리는 북측 통일각으로 넘어간 뒤였다. 송고를 마친 뒤 혼자 통일각으로 걷다가 문제의 턱을 만난 것이다. 째려보는 북측 경비병의 살벌한 눈매를 의식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그 턱을 넘었다. 아니, 그렇게 보이려고 했지만 그 선을 넘어 발을 북측 땅에 딛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그만큼 내 의식 밑바닥에 쳐진 이념의 레드라인은 깊고 강렬했다. 그날도 판문점엔 정상회담이 열린 27일처럼 눈부신 봄볕이 쏟아졌다. 그 군사분계선을 김정은은 대수롭지 않게 넘나들었다. 민감한 언행도 서슴지 않으며 그걸로 되레 ‘매력 공세’를 펼쳤다. “문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는데… 이제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한국민과 문 대통령에게 사과를 해도 모자란 터에 말 한마디로 넘겼다. 더구나 그가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다”고 말하는 데선 황당함마저 느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반쯤 북한군은 예고도 없이 연평도를 포격해 민간인 2명과 군인 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 대한민국의 영토를 공격해 민간인 사망자가 나온 사건이다. 북한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퉁치고 지나갈 일은 아니다. 정상회담에 배석한 북측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오만한 화법의 연원(淵源)이 어딘지 짐작하게 했다. 김정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모두 그랬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오셔서 (내가)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어두운 면인 은둔을 농담 소재로 삼아 순간적으로 본말(本末)을 전도케 하는 말솜씨였다. 자신감 충만한 오너나 권력자가 아니라면 입 밖에도 내기 어려운 말투를 김정은은 선대(先代)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독재자가 괴물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만으로 친밀감을 느끼고, 심지어 감동하기도 한다. 비단 김정은을 만나 악수한 뒤 “너무너무 영광”이라고 말한 걸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얻은 남측 인사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얘기했다. 그 특별한 기회가 주는 희소성이야말로 매력의 주(主)요소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중계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이제 30대 중반인 김정은의 말솜씨와 노련함에 놀랐다. 하지만 그가 절대권력의 자리에 오른 지 6년 4개월이나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아무리 세습권력이라고 해도 한국의 대통령 임기보다 긴 기간 권좌를 유지하면서 엄청난 내공을 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공을 다져온 데는 이복형과 고모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북한 주민을 굶기고 인권을 탄압한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 과거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 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 짐작했겠지만, 대통령 당선 인사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19일 대선 직후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해 국정운영을 해나가겠다”며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특히 “모든 지역과 성별과 세대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겠다”며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다. 돌아보면 참담하다. 박 전 대통령은 화해와 대탕평책을 펴지도, 야당을 소중한 파트너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특히 대탕평 인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결국은 아스라한 몰락…. 그렇다고 그가 당선 직후에조차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권력의 치명적인 매혹에 홀려 초심(初心)을 잃어버린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9일 당선된 뒤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를 보자. ‘정의로운 나라’ 못지않게 강조한 것이 ‘통합의 나라’다. “내일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당선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과연 문 대통령은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가. 지지율만 믿고 가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누구나 패배한 쪽, 지지 안 한 국민들을 보듬겠다며 통합과 상생을 되뇐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천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게 우리의 대통령사(史)다. 임기 초반 적폐청산이 됐든, 국가혁신이 됐든 개혁의 바람은 유독 전 정권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쪽에 차갑게 불어닥친다. 집권세력의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권력기관의 충성경쟁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는 한창 일해야 할 임기 중반에 소극적 저항과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불러온다. 그러다 임기 후반에는 미래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굴러가지 않는 사태로 이어진다. 이것이 한국의 권력이 맞는 악순환의 함정이다. 이런 악순환의 윤활유가 바로 권력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오만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우리가 언제나 옳다’는 집단적 사고에 빠진 권력은 때론 정치보복을 적폐청산으로 착각한다. 권력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저항’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인사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권이 바뀌면 인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민들도 어느 정도는 용인한다. 하지만 누가 봐도 감이 안 되는 사람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권력 주변에선 상식적인 경질 요구조차 기싸움으로 인식하고 ‘밀리면 안 된다.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고 받아들일 때가 많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심각하게 빚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인사는 한국 사회 전반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자격 없는 인물을 끝까지 밀고 가면 정부와 관변(官邊)에서는 인사 원칙이 무력화되고, 다른 편에서는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공분(公憤)을 응축시킨다. 한두 사람 지키려다 결국 권력의 정당성을 허물어뜨린다. 이제까지 권력의 실패는 대체로 인사의 실패였다. 비단 인사뿐이 아니다. 잘못된 외교안보나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민심을 제때 읽고, 그때그때 고쳐 나간다면 기싸움에서 밀리기는커녕 권력의 기반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권력은 주변에 성을 쌓는 것보다 소통의 강을 뚫어야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역대 권력은 몇몇 인사나 정책 같은 전투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다 결국 큰 게임에서 졌다. 한국의 권력은 5년, 아니 임기 말 레임덕을 제외하면 3년 반 정도의 시한부 권력이라는 태생적 한계까지 안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기 쉬운 게임이다. 이기려면 작은 싸움은 져주고 다른 편까지 포용하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자주 권력자마저 해치는 권력이라는 괴물을 다루는 방법이다. 그걸 못해 비운(悲運)을 맞은 두 분이 지금 감옥에 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관존민비(官尊民卑). 지금은 거의 안 쓰는 말이지만 과거에는 이것이야말로 적폐로 여겨졌다. 오죽하면 군관민(軍官民)이란 단어를 민관군(民官軍)으로 바꿨을까. 그럼에도 관존민비 의식은 아직도 엄존한다. 말로는 거부하고 몸으로는 길들여진 기형적 의식구조라고나 할까. 선진국가에서 아직도 관존민비 전통이 확실히 남아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학(私學) 스캔들이 개인 비리에서 출발했다면 일본 최고 엘리트 관료의 본산(本山)인 재무성까지 나서 14건의 공문을 조작한 것은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일이었다. 한국 같으면 벌써 나라가 뒤집어졌겠지만, 일본은 조용한 편이다. 한국의 촛불시위를 본떠 수백, 수천 명이 촛불을 들었으나 우리의 눈으로 보면 말 그대로 ‘촛불’ 수준이다. 혹자는 원래 일본 국민성이 조용하기 때문이란 해석을 내놓는다. 일리 있지만 뿌리 깊은 관존민비 의식도 한몫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본은 관(官)의 나라다. 메이지 유신 자체를 사무라이 출신들이 주축이 돼 일으키기도 했지만, 충성과 헌신을 중시하는 사무라이 전통은 유신 이후 일본 공직사회에 흡수됐고, 그것이 일본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아베를 비롯해 과거에도 정치인과 관료들의 일탈이 있었으나 일본 공직자들은 적어도 ‘공(公)’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있다고 나는 본다. 한국도 ‘관의 나라’였다. 특히 관 주도의 산업화는 세계에 모범적인 발전 모델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관이 공익보다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관의 사익 추구, 공직의 사유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박근혜 정권이었다. 그 반작용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선 공직의 공공성이 복원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직이 주류 세력을 교체하고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 돼 버린 느낌이다. 현 정부가 내치(內治)에서 가장 잘못하는 것 중 하나가 정책 때문에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 이득을 추구한 것도 아니다. 전임 혹은 전전임 정권의 역점 정책을 추진하는 데 ‘부역’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다. 정권이 교체되거나, 아니 승계돼도 전 정권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놀랄 일도 아니다.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치다. 인사상 불이익은 물론이고 징계를 당하거나 심지어 수사 의뢰, 구속까지 다반사다. 물론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과도한 불법을 저질렀다면 처벌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정책 결정자도 아닌 실무자들을 위안부 합의에 참여했다고 임기 도중 소환하고, 국정 교과서 추진에 복무했다며 수사 의뢰하고, 기무사 댓글 작업에 관여했다고 구속한다. 최근에 만난 한 고위 공무원은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힘이 빠져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공무원들의 대응 방식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알아서 기거나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지난해 9월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시설공사는 6개월째 올스톱이다. 도로에 불법검문소를 설치하고 건설 자재와 장비 반입을 막는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공권력 집행을 안 하는 것이 바로 알아서 기는 것이다. 본보는 경찰이 구속영장이 발부된 민노총 건설노조 위원장의 소재를 뻔히 알고도 영장 집행을 안 한다고 보도했다. 그런 비판에도 경찰은 움직일 생각이 없다. 검찰에선 ‘과거에 함께 일했던 검사가 언제 나를 구속할지 모른다’는 자조까지 들린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공무원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라고 법에 정의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위에서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된 이유가, 그런 정의나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없어졌기 때문”이라며 공직의 공공성 상실을 개탄했다. 그렇다면 공공성을 복원하도록 공직 시스템 개혁에 힘쓸 일이다. 지금처럼 부역자 색출하듯 한다면 필연적으로 ‘영혼 없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불러와 결국 정부 운영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굳이 동서고금의 사례를 들추지 않아도 비관론자가 낙관론자보다 현명하다. 적어도 외교안보에 관한 한. 극적인 4월 남북, 5월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한반도에 해빙(解氷)의 봄이 찾아올 것이란 기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보다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다시 한번 의심하는 게 현명하고 안전하다. 물론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진 말고. 4월 말의 남북 정상회담이 어그러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남이나 북이나 그럴 이유가 없다. 2007년 정상회담의 주역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계승자들은 당시 합의한 10·4선언에 포함된 장밋빛 남북화해의 청사진을 내놓을 공산이 크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 비핵화라는 대전제가 달려 있다. 미국의 기류는 물론 국내 여론에서도 이젠 비핵화를 우회해서는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렵다. 문제는 5월의 북-미 정상회담이다. 이번 북-미 회담은 한국의 중매에서 출발했다. 중매쟁이의 말만 믿고 맞선 보러 나갔다가, 더러는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파투가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 정상이,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건 내가 들은 것과 다르잖아’ 하는 순간 결렬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북-미도 사전 접촉을 벌이겠지만 말보다는 행동, 문서보다는 실증(實證)을 중시하는 미국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결딴나면 한반도는 더 위험한 전쟁 위기로 빠져들 것이란 우려가 있다. 과연 그럴까. ‘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한반도 긴장 고조→극적인 합의’ 과정에서 우리가 거둔 분명한 소득이 있다. 바로 ‘생션(sanction·제재)이 펑션(function·작동)한다’는 것이다. 비핵화의 ‘ㅂ’자도 못 꺼내게 하던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끌어낸 것은 미국 주도의 압박이 먹혔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가 북한을 움직일 확실한 지렛대로 작동하는 한 장사꾼 트럼프의 선택은 자명하다.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 전쟁보다는 가성비 높은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쥐고 흔들려 할 것이다. 5월 회담이 소득 없거나, 혹은 무산되더라도 섣불리 군사 옵션을 꺼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제재의 구멍’으로 불린 중국도 제재에 적극 협조할 것이다. 제재가 오히려 전쟁을 막는다는 효과가 입증된 이상 협조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 당사국 중 하나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또 다른 우려는 한국의 안보이익을 ‘패싱’하는 합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폐기에는 합의하되, 북핵 보유는 사실상 인정하는 경우다. 벌써 미국 조야(朝野)에선 핵탄두를 미국까지 보낼 ICBM만 폐기하면 북한의 핵 보유는 용인해도 된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 경우 북의 핵을 이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과 일본은 말 그대로 ‘멘붕’에 휩싸일 것이다. 한국보다 미국에 말발이 센 일본도 결사반대할 것이다. 김정은도 막상 다 만들어놓은 ICBM을 폐기하려면 사활적 고민에 빠질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 ICBM으로 미국의 발을 묶어 놓겠다는 국가 생존전략의 근본적인 논리구조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 말기에도 북한이 장거리미사일만 포기하면 미북(美北) 수교까지 가려 했던 전력(前歷)이 있다. 동맹이라고 방심하면 안 된다. 협상이 기적적으로 순항해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달성된다고 치자. 평화체제란 현재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체결해 휴전(休戰) 상태를 평화기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장삼이사(張三李四)도 평화체제를 읊을 정도로 한반도 평화의 종착역처럼 여겨지지만, 함정은 있다. 바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NLL은 6·25전쟁 중 그어진 군사작전상의 해상분계선이다. 정전체제가 존속하는 동안만 유효하다.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에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는 한 평화체제 아래선 유엔 해양법에 따라 12해리 영해(領海) 원칙이 적용될 것이다. 그 경우 북한 영해에 인접하게 될 서해 5도의 안보는 치명적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굳이 평화협정 체결까지 안 가도, 6·25전쟁의 종전(終戰) 선언만 해도 NLL의 존립 근거는 뿌리째 흔들린다. 2007년 10·4선언에 ‘종전 선언 추진’과 함께 NLL을 무력화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한 묶음으로 들어간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불편하다고 해야 하나. 국민이 선거를 통해 위임한 권력을 쌈짓돈 나눠 주듯 사유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지난해 예순다섯의 전직 여성 대통령이 헝클어진 머리로 수인번호 ‘503’을 달고 호송차를 오가는 모습을 보는 심정은 편치 않았다. 이제 한 달쯤 있으면 그에게 최순실의 1심 선고형량인 징역 20년 이상의 중형이 떨어질 공산이 크다. 씁쓸하다고 해야 하나.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표적수사 의혹이 짙다. 그럼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MB 주변의 돈 문제를 보면서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前)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데, 전전(前前) 대통령까지 감옥으로 가나. 이렇게도 우리는 지도자 복(福)이 없는가. 지금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두 전직 대통령. 그렇다고 그 둘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둘이 앙숙인 것은 세상이 다 안다. 박 전 대통령 시절에도 ‘사자방(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수사’니, 뭐니 하면서 MB 주변을 탈탈 털었다. 그때는 나오지 않았던 돈 문제가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는 건 측근들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MB의 수족과 같았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필두로 ‘MB 집사’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관, MB 재산관리인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 핵심 측근 또는 그 주변에서 MB에게 불리한 증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왜 한꺼번에 입을 열기 시작했을까. 자신들을 챙겨주지 않은 MB에 대한 배신감과 이미 ‘명박산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는데 나 혼자만 당할 수 없다는, 복합적 심리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노태우 전 대통령을 모신 측근들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재임 기간 깨끗한 척하며 그렇게 짜게 굴더니, 측근인 자신들도 모르게 수천억 원을 챙긴 데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지금 MB 주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나도 의아했었다. 어떻게 재산가인 MB가, 그것도 현직 대통령 시절에 삼성으로 하여금 다스의 소송비용 60억 원을 대납하게 했을까. 수사 내용을 알 만한 검사에게 진위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 “현직 대통령 때 대납 사실을 보고받은 건 확인했다.” 아랫사람들이 등을 돌린 건 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숱한 측근과 가신(家臣)그룹이 있었지만, 지금도 그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한때 박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개중에는 박 전 대통령을 내세워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자들도 있었지만, 박근혜 수하들이 등을 돌린 것은 MB의 경우와는 성격이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부하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은 듯하다. 으레 그들은 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주종(主從) 관계의 시각에서 대한 것 같다. 자연히 수고한 아랫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말 한마디나 조그만 성의 표시 같은 것에도 둔감했다. 아니, 몰랐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공주’로 자라나 권력을 잡아 구중심처(九重深處)에 틀어박힌 뒤 이런 성향은 더욱 굳어졌으리라. 왕조시대도 아닌 이상, ‘주군’을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이런 현상은 MB와 박 전 대통령이 다른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력을 쉽게 잡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MB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념 과잉과 편 가르기에 질릴 대로 질린 민심이 만든 ‘노무현 효과’에 크게 힘입어 당선됐다. ‘박정희 신화’를 업은 박근혜는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잠재적 대통령 후보였다. 민주화 역정(歷程)을 거쳐 집권한 YS(김영삼)나 DJ(김대중),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민심의 회오리를 일으켜 대통령에 오른 노무현 진영에서 보였던 ‘동지적 유대감’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MB는 머잖아 검찰에 소환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참으로 아름답지 못한 광경을 목도할 수도 있다. MB까지 구속된다면 동시에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방에 갇히는, 해외 토픽에나 나올 만한 나라가 될 것이다. MB는 지지지와 반대자가 분명히 갈리는 박근혜처럼 그렇게 논쟁적이지 않고,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가 구속돼도 박 전 대통령 때처럼 큰 반발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자산인 전직 대통령이다. 불구속 재판으로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만큼 국격(國格)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