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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하나씩 잃어간다. 의지대로 움직여 주는 몸, 또렷한 눈, 밝은 귀, 배우자, 자녀, 친구, 기억 같은 소중한 것들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맞아야 할 그런 삶의 변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뉴욕타임스 기자인 저자는 삶의 마지막을 향해 유유히 걸어가는 노인 여섯 명과 1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한다. 저자는 노인들로부터 나이 듦의 고단함에 대해서만 듣게 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며 본인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경험을 한다.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대신 가진 것에 집중하는 단순한 삶이 주는 울림이 깊어서다. 여러모로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떠올리게 하는 신작이다. 노인을 주제로 한 기존의 논의는 빈약한 편이다. 대부분 노년에 겪게 되는 심각한 문제점에 쏠려 있다. 몸과 마음이 급격히 쇠약해진다거나 노인 환자를 간호하는 데 어마어마한 치료비가 든다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로 세월을 거스른 듯 늙지 않는 할머니를 어디선가 찾아내 소개하는 식이다. 90세에 마라톤을 한다는 것 등. 책 속 노인들은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하다. 그들은 잃은 것도 많고 할 수 없는 일도 많았지만 연연하지 않고 오늘도 새 아침을 맞이한다. 그들은 대공황(1929∼1933년)을 버텨냈고 배우자가 서서히 하늘나라로 떠나는 모습까지 지켜봤다. 배우자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런 다음 미래를 보니 환상이 사라졌다. 생은 차분해졌다. 스탠퍼드대 장수연구센터 설립자이자 심리학자인 로라 카스텐슨 교수는 노인들이 삶에 더 크게 만족하는 이유를 ‘사회 정서적 선택성’ 이론으로 설명한다.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는 노인은 당장 즐거울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반면, 젊은이는 현재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중 나중에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을까 초조해한다는 것. 저자는 노인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인생의 여러 선택지 중 어떻게 해야 행복을 고를 수 있을지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미래로부터 현재까지 거슬러오는 ‘복기’가 습관이 됐다고도 말한다. 만약 85세가 되었을 때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서로 기댈 수 있는 끈끈한 사이이길 바란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때부터 현재까지 쭉 시간을 거슬러 살펴보면 된다는 것. 더 오래 일하고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홀히 한다면 바라는 삶을 얻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6명 노인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고 ‘으레 노인은 그렇다는 듯’ 식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 무렵 노인들은 다시 등장한다. ‘프레드의 수업’, ‘헬렌의 수업’ 식으로 각 노인이 각 장의 주인공으로 나선다. 프레드는 정이 많고 괴팍했으며 깜빡깜빡 잊어버리곤 했다. 헬렌은 유쾌하고 현명했으며 같은 말을 자주 반복하기도 했다는 식으로. 어른에게 삶의 지혜를 구한다는 면에서 구성은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한 인간의 평범하지만 진실한 생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이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문득문득 들게 만드는 책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나는 매일 밤 내 무릎을 베고 잠든 엄마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나’는 신호등 초록불이 몇 초 남지 않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트럭에 치여 사망한다. 딸의 장례식이 끝나고 불면증에 걸린 엄마를 위해 나는 엄마의 꿈속으로 들어가 자장가를 불러준다. 자장가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음악임을 작가는 깨닫게 한다. 음악을 소재로 한 5편의 단편소설 모음집 ‘음악소설집’(프란츠)에 실린 윤성희의 ‘자장가’ 중 일부다.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의 이름을 딴 음악 전문 출판사 프란츠가 기획한 이번 작품집에는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등 다섯 명의 소설가가 참여했다. ‘음악’이란 주제를 공유하는 것 외에 각자 자유롭게 써 내려간 다섯 편의 작품에서 작가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각 작품은 삶에서 예상치 못한 이별이나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에 대한 저마다의 답변처럼 읽힌다. 책 말미에는 작가들과 편집자가 진행한 인터뷰도 실렸다. 은희경 작가는 “어떤 질문을 갖고 거기에 대해 좀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 편”이라며 “음악도 한번 들어가서 엿보고 싶은 세계였다”고 말했다. 김애란 작가는 “함께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며 “책장을 펼치면 다섯 개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멜로디 카드’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어떤 곡이 재생되는 몇 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 안의 감정은 어느 때보다 증폭되곤 한다. 다섯 편의 소설과 함께하는 시간은 삶에서 경험하는 강렬한 순간들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달 이상문학상 운영을 다산콘텐츠그룹에 넘긴 문학사상이 신인문학상 선정도 중단하기로 했다. 월간 문예지 또한 휴간에 들어가면서 문학계에서 문학사상의 활동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문학사상은 1일 “월간 ‘문학사상’이 올 5월부터 일시 휴간 중인 상황에서 2024년 신인문학상 역시 시행이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경영난이 누적되면서 주요 사업을 순차적으로 접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사상 관계자는 “적자가 누적돼 원고료도 일부 밀려 있는 상황”이라며 “(문예지의) 재발간 일정을 특정할 순 없지만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1972년 창간한 월간 문학사상은 국내 최고 권위의 문예지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문학사상 주간일 때 시작된 이상문학상은 김승옥, 최인호, 이문열, 한강 등 47회에 걸쳐 수상자를 배출했다.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은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고, 양귀자, 성석제, 최윤 등을 배출했다. 한 번 휴간에 들어간 문예지의 재발행 소식은 듣기 어려운 실정이다. 계간지 ‘실천문학’은 지난해 1월 ‘1년 휴간’을 발표했으나 아직 재발행 소식은 없다. ‘작가세계’도 2017년 봄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갔지만 재발행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배우 겸 작가 차인표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집필한 소설이 영국 옥스퍼드대의 필수 도서로 지정됐다. 차인표는 영국 현지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행사도 가졌다. 옥스퍼드대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제1회 옥스퍼드 한국문학 축제’를 열었다.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개최될 이 행사는 한국 신진 작가를 초청해 직접 작품 세계를 듣는 자리. 현지에선 조지은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 연구팀이 주도한 행사였다. 차인표는 ‘오늘예보’(2011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2021년), ‘인어 사냥’(2022년) 등 장편소설 3편을 쓴 작가다. 2009년 출간된 첫 장편 ‘잘가요 언덕’의 제목을 바꿔 재출간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사진)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 고국을 떠나 70년 만에 필리핀의 한 작은 섬에서 발견된 쑤니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다뤘다. 차인표는 강연에서 ‘언젠가…’를 중심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지만 부정적인 감정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차 아이에게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써 갔다”고 했다. 캄보디아에 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훈 할머니를 보고 내용을 구상했고, 집필에만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차인표의 아내인 배우 신애라도 함께 영국으로 갔다. 신애라는 지난달 3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편의 소설이 옥스퍼드대 필수 도서로 선정됐다”며 “다음 학기부터 (차인표의 소설이) 한국학과의 교재로도 사용되고 옥스퍼드대 모든 도서관에 비치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옥스퍼드 한국문학 축제는 국립중앙도서관 해외 한국자료실 ‘윈도 온 코리아(Window On Korea)’ 문화 행사의 지원 사업으로, 현지에서 주영 한국문화원이 지원했다. K팝, K드라마, K푸드에 이어 K문학을 해외 관객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린다는 취지다. 주요 작품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에도 나설 예정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한국처럼 근로시간이 긴 나라에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것 자체가 양립될 수 없는 이야기죠.” ‘가짜 노동’으로 세계적 관심을 끈 덴마크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는 1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노동 현실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이른바 ‘가짜 노동’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한국 저출생 문제의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폐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과 함께 펴낸 ‘가짜 노동’(자음과모음)은 2022년 8월 출간 이후 국내에서만 10만 부가 팔렸다. 올 4월 출간한 ‘진짜 노동’(자음과모음)은 3만 부가 판매됐다. 그는 ‘가짜 노동’에 대해 “할 필요가 없는 일, 하든 안 하든 상관없는 일, 가치를 별도로 창출하지 않는 일”이라고 정의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미팅이나 긴 보고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일터에 실속 없는 장시간 근로가 만연해 있다는 그의 지적은 현대 노동문화의 정곡을 찔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그의 책이 인기를 끌고 있는 데 대해 “책에 대한 공감이 한국에서도 있었다는 얘기”라며 “그만큼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여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2년 기준 1901시간으로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에 이어 세계 5위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근로시간이 짧은 덴마크(1372시간)에 비해선 529시간 길다. 그는 “단시간 내 경제 발전에 성공한 한국에서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다”면서도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갖고 삶을 향유하는 데 집중할 때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가짜 노동 문제가 한국의 저출생 해결에 관건이라는 시각도 제시했다. 그는 “인생은 한정돼 있는데 일에 시간을 많이 쏟으면 그만큼 다른 걸 할 수 없다. 가짜 노동을 줄이면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2년 덴마크 합계출산율(1.6명)은 한국(0.8명)의 2배 수준이다. 뇌르마르크 역시 4명의 자녀를 둔 아빠다. 주 4일제가 오히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덴마크의 데이터 전문기업 IIH노르딕은 주 4일제 전환 후 직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최저로 떨어졌고, 병가는 50% 줄었으며, 세전 수익은 약 2배로 급증했다. 그는 “할 일이 없으면 집에 가자”며 “시간이 곧 생산성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3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에서도 샌드위치 패널 구조 탓에 소방 구조 작업이 지연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샌드위치 패널은 얇은 철판 속에 스티로폼, 우레탄 등 단열재를 넣은 건축 자재다. 올해 1월 소방관 2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문경 화재처럼 샌드위치 패널 건물에 불이 붙으면 단열재 부분이 급격히 녹아내려 붕괴 위험이 커진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소방당국 내부 문건에 따르면 24일 오전 10시 31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은 오전 11시 18분 현장 폭발과 함께 외부 벽재(샌드위치 패널)가 무너져 내리자 ‘내부 진입 금지’를 지시했다. 불과 2분 전인 11시 16분 ‘내부 고립자 현황 파악’을 시도했지만 샌드위치 패널이 붕괴하자 지시 내용을 수정한 것. 불길을 잡은 오전 11시 51분에도 내부 진입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로 판단됐다. 결국 오후 1시 59분이 다 돼서야 특수대응단이 내부 진입을 시작했다. 인명 구조 작업이 2시간 41분가량 지연되면서 소방당국은 오후 3시 6분에야 내부에 있던 시신을 처음으로 수습했다. 구조 작업이 지연돼 2층에 고립된 실종자를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건물은 화재 시 전소 위험이 높다. 단열재 부분이 강한 열에 빠르게 녹아내리며 더 이상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수축하기 때문이다. 화재가 어느 정도 진압된 후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조차 건물 붕괴로 고립돼 순직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최근 3년간 소방관 7명이 샌드위치 패널 건물 화재를 진압하다 사망했다. 현행 규제로는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2021년 말부터 샌드위치 패널 등 복합 자재는 방화 성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건축법 시행규칙이 시행됐다. 하지만 소급 적용이 안 돼 기존 건물에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개정된 규칙은 방화 성능 기준을 영상 700도 온도에서 10분 동안 버티는 ‘준불연’ 이상 재료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배터리 내부 온도가 순식간에 100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리튬 배터리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아리셀은 최근 5년간 고용노동부로부터 어떠한 산업안전 점검 및 감독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아리셀이 작업장에 출입구 외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등을 위반한 게 아닌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의료계 불법 리베이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이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현재까지 의사 82명을 입건한 데 이어 종합병원을 상대로 한 강제수사에도 착수하는 등 수사를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5일 오후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경기 안양시의 한 종합병원을 4시간에 걸쳐 압수수색하고 의약품 납품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다. 병원장 등 이 병원 관계자들은 특정 제약사의 의약품을 사용하기로 하고 도매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의약품 처방을 유도하거나 거래를 유지하는 목적 등으로 제공되는 금품을 수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병원은 병상 수 100개 이상인 중형 종합병원으로 2차 의료기관에 해당한다. 경찰은 현재 전국적으로 32건의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경찰이 자체 첩보를 통해 진행하는 사건은 13건이고, 보건복지부가 수사를 의뢰한 사건은 19건이다. 수사 대상자는 총 119명이며 이 가운데 의사가 82명, 나머지는 제약사 관계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올해 4월 서울 강남구 고려제약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착수한 리베이트 의혹 사건도 동시에 수사 중이다. 고려제약은 자신들이 만든 약을 사용해 달라며 의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이 의혹과 관련해 경찰은 현재까지 고려제약 관계자 8명과 2000만 원 이상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는 의사 14명 등 22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앞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고려제약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확인을 해봐야 하는 의사가 1000명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조 청장은 “(불법 리베이트가) 굉장히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며 “(리베이트 규모는 1인당) 많게는 수천만 원, 적게는 수백만 원”이라고 설명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화재로 23명이 사망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의 경기 화성시 공장이 연면적 기준 미달로 소방당국의 ‘화재안전 중점관리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일차전지를 만드는 공장 10곳 중 8곳도 연면적 기준에 미달해 중점관리 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리셀 측이 22일에도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이번 사건이 총체적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25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한국산업단지공단의 ‘2024년 5월 전국공장등록현황’에서 리튬 등 일차전지 제조업(28201)으로 분류된 공장 32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27곳(84.3%)은 연면적이 ‘3만 ㎡ 이하’여서 각 소방서에서 관련법에 따라 심의를 거쳐 지정하는 ‘화재안전 중점관리 대상’에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중점관리 대상에 포함되면 매년 관할 소방서의 계획에 따라 화재 안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소방특별조사나 점검도 받는다. 하지만 일차전지 업체 대부분이 중점관리 대상이 아닌 탓에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연면적이 약 2300㎡에 불과한 아리셀 공장도 중점관리 대상 심의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아리셀 측은 자체 점검만 한 뒤 최근 3년 동안 ‘이상 없음’으로 소방당국에 통보했다. 특히 건축 면적이 500㎡ 미만인 공장은 산업집적법상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할 의무조차 없다. 이에 미등록 일차전지 업체는 현황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차전지 제조업체는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만 (이차전지에 비해) 규모가 작은 일차전지는 정책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따로 현황을 집계하지 않았다”며 “고용보험 가입 기준으로 확인된 일차전지 제조업체 500여 곳에 대해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아리셀 공장에 보관 중이던 군용 배터리가 폭발하며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군용 배터리가 일반 배터리보다 용량이 커 폭발·화재 위험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돼 온 만큼 경찰은 아리셀 측이 규정에 맞게 보관했는지를 수사할 방침이다. 한편 경찰은 박순관 아리셀 대표 등 5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박 대표에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화성에만 배터리 공장 18곳… 소방당국-업체 전용 진화장비 ‘0’[화성 리튬전지 공장 참사]리튬전지 공장 ‘소방안전 사각지대’청주 29개-구미 24개-충주 16개… 방화벽 등 국제기준, 국내서는 외면“불나면 전소할 때까지 볼 수밖에”… ‘열폭주’ 법안, 국회서 논의도 안돼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의 경기 화성시 공장에서 불이 나 23명이 사망한 가운데 국내 일차·이차전지 공장 상당수가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화성시뿐만 아니라 충북 청주 등지에도 리튬전지 공장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아 동시다발로 화재가 발생할 경우까지 감안해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화재 공장 옆 건물에도 리튬 2t 보관 25일 찾은 아리셀 공장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특히 불이 난 3동(공장)에서 불과 10m 떨어진 8동엔 배터리 완제품을 30만 개 이상 만들 수 있는 리튬 2t이 있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8동으로 불이 옮겨붙었으면 리튬을 저장하는 탱크가 터졌을 것”이라며 “(소방관들이 뿌리는) 소화용 물이 리튬에 닿았다면 초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리튬 등 일차·이차전지 공장은 현재 화성시에만 18개가 건립됐다. 충북 청주(29개), 경북 구미(24개), 충북 충주(16개) 등 일부 산업도시에도 밀집해 있다. 반면 리튬전지 공장 밀집 지역에서 불이 나도 뾰족한 진압책이 없는 상황이다. 리튬전지는 물과 결합하면 수소가 발생해 더 큰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마른 모래 등 특수한 진압 시스템이나 금속화재 소화약제 등 전용 장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리셀 공장이 있는 전곡산업단지 등 화성 일대에는 소방당국과 업체 측 모두 전용 진화 장비가 없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등록한 일차전지 공장의 84.3%가 연면적 기준 미달로 소방당국의 ‘화재안전 중점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대처 방안이 없다 보니 리튬전지 화재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차전지 업체 비츠로셀의 충남 예산 공장도 2017년 4월 화재로 전소되기도 했다. 당시 공장과 가까운 아파트 유리창 30∼40개가 파손됐고, 주민 2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유해물질인 아황산가스를 마신 주민들은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후 비츠로셀은 공장을 재건하면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적용하며 특수 스프링클러를 설치했고, 배터리를 옮길 때 사용하는 트레이를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소재로 사용하는 등 안전설비를 대폭 강화했다.● “중소기업은 안전시설 갖추기 어려워” 생산 현장의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공장도 많다. 한국화재보험협회에 따르면 △90분의 내화 성능(화재에 견디는 성능)을 가진 방화벽 △20m 안전거리 확보 등을 통해 리튬전지를 분산 보관하는 게 국제 표준이다. 그러나 전곡산업단지 입주 업체 관계자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일차전지 업체는 중소기업이 많아 화재 대응 능력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리셀 공장도 연면적이 2300㎡에 불과해 3만 ㎡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화재안전 중점관리 대상’에서 빠졌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은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꾸며놓지만, 중소기업은 갖출 수가 없다”며 “한번 불이 나면 전소할 때까지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리셀) 근방의 다른 일차전지 업체들도 2010년대 중반 화재로 줄도산했다”고 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이차전지는 각종 규제에 따라 보호장치를 다수 적용하지만, 일차전지는 안전기준 등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거나 수입할 때 안전성 인증을 받게 하고 성능 시험에서 배터리 제조사에 핵심 부품 결함조사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배터리 제조 과정 관련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21대 국회에서 ‘열 폭주’ 현상에 대비해 소방 훈련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 소위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일차전지와 관련한 화재 방지나 안전 강화 법률은 발의되지 않고 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송유근 기자 big@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화성=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경찰 계급 서열 2위인 치안정감 보직 인사가 21일 단행됐다. 경찰청은 경기남부경찰청장에 김봉식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장(57·경찰대 5기)을, 인천경찰청장에 김도형 경기북부경찰청장(58·간부후보 42기)을 임명했다. 경찰대학장에는 이호영 행정안전부 경찰국장(58·간부후보 40기)을 내정했다. 3명 모두 승진 인사다. 치안정감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으로 경찰청 차장, 국가수사본부장, 서울·부산·경기남부·인천경찰청장, 경찰대학장 등을 맡는다. 그동안 경찰대학장 자리는 공석이었으며, 현 김희중 인천경찰청장과 홍기현 경기남부경찰청장은 명예퇴직 수순을 밟는다. 치안정감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감 5명의 전보 인사도 이날 함께 단행했다. 경찰청 대변인에는 김성희 경찰청 범죄예방대응국 치안상황관리관이 임명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장에는 김병찬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 경기북부경찰청장은 김호승 경기북부경찰청 공공안전부장이 임명됐다. 경찰청 대변인이었던 유승렬 치안감은 경찰청 치안정보국장으로, 경찰청 치안정보국장이었던 박현수 치안감은 행안부 경찰국장으로 각각 이동한다. 올 8월 윤희근 경찰청장의 임기가 끝나는 만큼 경찰 안팎에선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으로 거론될 수 있는 치안정감 인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정부는 다음 달 중 차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숲을 통한 산림복지의 종착역은 나무에 고인(故人)을 모시는 수목장이다. 수목장은 품위 있고 존엄한 마무리를 추구하는 웰다잉(Well Dying·좋은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친환경적인 장묘 문화가 확산하며 주목받고 있다.현재 장사업무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수목장림으로 등록된 곳은 전국에 37곳이다. 충남 보령 기억의 숲, 경기 양평 하늘숲추모원 국립 2곳, 인천 의왕 세종 공립 3곳, 공공법인 3곳, 재단법인 6곳, 종교단체 23곳이다. 국립 2곳에 있는 추모목은 기억의 숲 3950그루, 하늘숲추모원 6315그루다. 나무 한 그루에는 최대 10명의 고인을 모실 수 있다. 나무를 기준으로 주변 1∼2㎡ 정도 넓이에 구멍을 파고 골분과 흙을 섞어서 넣거나, 자연분해되는 용기에 골분을 넣어 깊이 30cm 이상으로 묻어야 한다. 추모목에는 명패를 한 개만 달 수 있다. 명패에는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사망일, 추모글을 쓸 수 있다. 안치 기간은 통상 30년 안팎이다. 수목장은 전통 장묘 방법 중 하나인 매장보다 공간을 덜 차지한다.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묘지 면적은 국토 면적의 1%에 해당하는 10만 ha로 추정된다. 장묘 추세도 매장보다 화장이 늘고 있다. 2022년 전체 사망자 37만2939명 가운데 34만2128명이 화장을 해 화장률은 91.7%를 기록했다. 봉안시설이나 묘지 등은 인위적인 방식으로 조성해 운영되고 있는 반면에 수목장림은 자연의 숲에 있는 나무(추모목) 밑에 골분을 안치해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한다. 또 지속 가능한 숲에 있어 시설이나 기타 관리에 대한 부담이 다른 장묘 방법에 비해 덜하다. 이에 국립 수목장림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 2곳에 있는 국립 수목장림은 충남, 경기에서만 운영 중이다.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은 올해 경북권, 2025년에는 호남권에 국립 수목장림 신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정경희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 국립기억의숲 센터장은 “산림 그대로를 활용한 수목장림은 묘지 조성으로 인한 산림 훼손을 막고, 대규모 장묘 수요도 소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모래바람만 불던 민둥산이 50년 만에 초록 숲으로 변했습니다.” 10일 오전 해발 900m 강원 평창군 대관령 특수조림지에서 만난 이주식 동부지방산림청 산림경영과장이 자신의 몸통 두께만큼 자란 전나무에 기댄 채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목재 수탈로 민둥산이 됐다가, 1968년 화전민이 이주해 온 뒤 산을 개간하면서 황폐화됐다. 1970년대부터 조림이 진행됐지만 기온이 영하 30도에서 영상 30도까지 널뛰고, 최대 풍속이 초속 45m에 달하는 대관령 황소바람이 불어닥쳤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뚫고 조림에 성공했다. 국내 조림지 중에서 유일하게 ‘특수조림지’라는 명칭이 붙게 된 배경이다.● 반세기 만에 민둥산을 빽빽한 숲으로 이곳 일대 조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고속도로변 국토 녹화 계획에 따라 1974년부터 1986년에 걸쳐 진행됐다. 311ha 면적에 나무 84만3000그루를 심었다. 1974년도에는 38ha에 잣나무 등 11만4000그루를 심었지만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묘목 98%가 죽었다. 시행착오 끝에 바람을 막을 벽을 세우고 망을 두르며 영양분 가득한 논흙을 산으로 끌어올려 나무를 심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나무를 가꿔 50년이 지난 현재 민둥산은 풍성한 숲으로 변신한 것이다. 조림의 천적은 바람이었다. 어린나무의 뿌리와 몸통이 바람을 견디지 못해 제대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1974년 강풍 때문에 조림에 실패한 이후 당시 전문가와 학계에서는 “대관령은 황소바람이 불어 조림이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1976년 조림 당시 평창 양묘장에서 근무했던 성기주 씨(77)는 “나무를 심고 뒤돌아보면 쓰러져 있었다”며 “대관령 바람이 어찌나 센지 모래바람이 불면 자동차 앞 유리가 파일 정도였다”고 했다. 바람을 견디고 나무를 심기 위해 방풍책과 방풍망, 지주목을 이용했다. 방풍책은 바람을 막는 장벽이다. 50m 간격으로 높이 3m, 길이 20m 장벽을 세웠다. 시멘트나 나무로 만든 기둥에 지름 15cm 안팎의 낙엽송을 철사로 촘촘하게 엮은 장벽을 만들어 1차로 바람을 막았다. 조림지에 세운 장벽 길이는 총 4.8km에 이른다. 또, 모래나 다름없는 토양을 대신해 양질의 논흙을 산으로 옮겨서 뿌리고 묘목을 심었다. 당시 산 위로 옮긴 흙은 90t이 넘는다. 인부들이 지게를 짊어지고 직접 옮겼다. 성 씨는 “대형 움막을 쳐놓고 합숙하듯이 몇 달씩 먹고 자며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현재 특수조림지 임목축적은 190m³다. 2022년 전국 산림 평균 172m³보다 높다. 임목축적은 1ha에 있는 굵기 8cm 이상 나무의 밀집도를 뜻한다. 이 과장은 “이런 환경에서 빽빽한 숲으로 키워낸 게 경쟁력이자 기술”이라고 했다. 황재홍 산림과학원 산림기술경영연구소장은 “국내 목재 자급률은 여전히 20%를 못 넘고 있다. 조림을 통해 숲을 늘려가면 목재 자급률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산림과학원의 수종 표준 탄소흡수량에 따르면 특수조림지에 사는 50년 된 잣나무는 ha당 연간 7.5t, 낙엽송은 7.7t, 신갈나무는 7.8t의 이산화탄소를 각각 흡수한다. 승용차 1대(연료소비효율 L당 14km 기준)가 연간 1만5000km를 주행했을 때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2.4t 정도다. 특수조림지 1ha마다 최소 승용차 3대 넘게 1년 동안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셈이다. 이 과장은 “천덕꾸러기 산이 보물산으로 변신한 것”이라며 “산이 무너져 내리는 사태 같은 2차 재난도 막고,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K숲 기술, 39개국에 수출 대관령 특수조림지 비법은 백두대간 복원에 활용됐다. 2017년 해발 1000m가 넘는 대관령면 횡계리에 있는 목장 용지를 산림으로 바꿀 때 바람을 막는 울타리와 묘목을 보호하는 대나무 통발을 만들어 소나무 등 나무 9000그루 정도를 심었다. 산림청은 39개 국가와 업무협약을 맺고 이 같은 우리 숲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12일 카자흐스탄과 산림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산불 예방과 대응, 피해지 복원법 등을 협력하기로 했다. 또 생물 다양성 증진을 위한 종자 협력과 연구기관 교류를 강화하기로 했다. 카자흐스탄은 2022년부터 다음 해까지 10만 ha의 숲이 불에 타 예방과 복구를 하기 위해 우리 산림청에 협력을 요청했다. 이 밖에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고산지대에 조성된 특수조림지를 직접 보기 위해 최근 3년 동안 베트남과 네팔 등 10여 개국에서 54명이 대관령을 찾았다. 산림청은 경제림, 산불 피해지, 섬 지역 산림, 큰 나무 육성 등 7개 항목에 맞춰 다양한 조림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올해는 산불 피해지 1600ha, 양봉 농가를 위한 밀원수(아까시나무와 같이 꿀을 품은 나무) 150ha를 포함해 기존 숲 수종 교체까지 모두 1만6671ha 규모의 숲을 가꿀 예정이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국토 녹화 50년 만에 숲 가꾸기 기술을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동티모르, 부탄을 포함해 39개국과 업무협약을 맺고 우리 숲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대기업에 다니는 50대 김중섭(가명) 씨는 최근 고수익 투자처를 소개한다는 텔레그램 투자 리딩방에 초대됐다. 비상장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다른 회원들이 인증한 투자 계약서에는 법무법인(로펌)의 이름뿐 아니라 워터마크(불법복제 방지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 검색해 보니 실존하는 로펌이었다. 진짜 계약서라고 철석같이 믿은 김 씨는 기대에 부풀어 노후자금 3200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투자를 권유한 업체는 돌연 잠적했다. 당황한 김 씨가 계약서에 적힌 로펌에 연락해 보니 “해당 투자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씨는 그제야 ‘속았다’ 싶었지만 이미 대화방은 사라진 후였다. 김 씨는 “실제 로펌 이름이 적혀 있는 등 감쪽같아 사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로펌 도용한 ‘간 큰’ 투자 사기 일당 11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로펌의 이름을 도용해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은 뒤 잠적한 투자업체를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법무법인이 김 씨 등 사기 피해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기업체를 지난달 24일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로펌까지 도용하는 투자 리딩방 사기는 흔치 않아서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고수익을 약속한 뒤 돈만 챙겨 달아나는 투자 리딩방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로펌과 변호사가 관여한 것처럼 속이는 업체까지 등장해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전직 고위 공직자 등을 허위로 내세운 투자 사기가 빈발하며 경각심이 커지자 아예 법률 전문가로 속이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로펌이 공증한 것처럼 서류를 정교하게 꾸민 수법도 나왔다. 영등포경찰서는 지난달 한 투자 리딩방 업체에 사문서위조 혐의를 적용해 추적하고 있다. 리당방 업체는 투자자 1명당 입회비 명목으로 250만∼1000만 원을 받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돌려주겠다’면서 이를 법무법인 T사가 공증한 것처럼 지급보증서를 꾸며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법무법인은 실존하지만 해당 투자와는 무관한 곳이었다. 소속 변호사는 “리딩방에 168명이나 가입했다고 한다”며 “피해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법적 대응을 위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팅방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라고 봐야” 도용당한 로펌들은 홈페이지에 팝업 안내창을 띄우거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투자 리딩방 가입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속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게시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의 서모 변호사는 의뢰인의 제보를 받고서야 자신의 사진이 투자 사기 업체에 1년 넘게 도용된 걸 알았다. 법률사무소 홈페이지에 있는 서 변호사 사진을 가져다가 가상의 애널리스트 ‘이가은’을 만들고, 해당 프로필로 1년 넘게 주식 리딩방을 운영한 것이다. 로펌 공식 홈페이지에서 바로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는 변호사의 이름을 도용하는 건 ‘설마 이것도 가짜겠냐’는 피해자의 심리적 허점을 노린 수법이면서, 그만큼 사기범들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투자자 모집에 주로 악용하는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은 본사가 해외에 있고 수사기관의 요청에도 피의자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추적하기 쉽지 않다. 어렵사리 일부 가담자를 특정해도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특성 탓에 피해액을 돌려받기는 더 어렵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경찰에 신고된 투자 리딩방 피해액은 2970억 원에 달한다. 수사당국은 로펌 등을 앞세워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채팅방에서 투자자를 모집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딥페이크(이미지 조작)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만큼 정교해 보이는 공문서도 믿어선 안 되고 꼭 발급처에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오는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라고 생각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1회당 최대 70만 원을 받고 불법 성악 과외를 제공하고, 학부모와 브로커에게 명품백과 금품을 받은 현직 음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넘겨졌다. ‘음대 입시 비리’를 수사해 온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학원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현직 대학교수 14명과 입시 브로커 1명, 학부모 2명 등 17명을 5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10일 밝혔다. 교수들이 입시 브로커와 공모해 불법 성악 과외를 한 건 총 244차례로 교습비만 1억3000만 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학원법상 학교에 소속된 교원은 과외 교습을 할 수 없다. 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교수 중에서 서울대 음대 실기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3명, 숙명여대 심사위원 참여 교수 1명, 경희대 등 2개 대학 심사위원 참여 교수는 1명이었다. 이들 교수 5명은 자신이 불법 레슨한 수험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겐 대학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가 적용됐다. 특히 숙명여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수험생 2명에게 집중 과외 교습을 하고 학부모로부터 현금과 명품 핸드백 등을 받아 청탁금지법도 위반한 것으로 조사돼 유일하게 구속 송치됐다. 입시 브로커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음악 연습실을 대관해 총 679회에 달하는 불법 성악 과외 교습을 했다. 학생들은 1회 교습에 최대 70만 원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구속된 대학교수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입시 브로커가 교수들에게 수험생들이 지원한 대학명과 실기고사 조 배정 순번을 알려주며 노골적으로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교수들은 발성과 목소리, 조 배정 순번 등으로 자신이 가르쳤던 수험생을 찾아내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교육부에 비리를 저지른 대학교수들은 입시 심사위원이나 국내 콩쿠르 대회 위원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행정 조치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1회당 최대 70만 원을 받고 불법 성악 과외를 제공하고, 학부모와 브로커에게 명품백과 금품을 받은 현직 음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넘겨졌다.‘음대 입시 비리’를 수사해 온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학원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현직 대학교수 14명과 입시 브로커 1명, 학부모 2명 등 17명을 5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10일 밝혔다. 교수들이 입시 브로커와 공모해 불법 성악 과외를 한 건 총 244차례로 교습비만 1억3000만 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학원법상 학교에 소속된 교원은 과외 교습을 할 수 없다.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교수 중에서 서울대 음대 실기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3명, 숙명여대 심사위원 참여 교수 1명, 경희대 등 2개 대학 심사위원 참여 교수는 1명이었다. 이들 교수 5명은 자신이 불법 레슨한 수험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겐 대학교 입시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가 적용됐다. 이들은 심사 전 ‘응시자 중 지인 등 특수관계자가 없다’, ‘과외 교습을 한 사실이 없다’ 등의 내용이 적힌 서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숙명여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수험생 2명에게 집중 과외 교습을 하고 학부모로부터 현금과 명품 핸드백 등을 받아 청탁금지법도 위반한 것으로 조사돼 유일하게 구속 송치됐다. 입시 브로커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일대 음악 연습실을 대관해 총 679회에 달하는 불법 성악 과외 교습을 했다. 학생들은 1회 교습에 최대 70만 원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입시 브로커의 자택과 음악 연습실, 구속된 대학교수의 집무실, 입시비리 피해 대학 입학처 등 16곳을 3차례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입시 브로커가 교수들에게 수험생들이 지원한 대학명과 실기고사 조 배정 순번을 알려주며 노골적으로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교수들은 발성과 목소리, 조 배정 순번 등으로 자신이 가르쳤던 수험생을 찾아내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교습으로 학원법 위반 처벌을 받더라도 처벌 수위가 약한 상황”이라며 “교육부에 비리를 저지른 대학교수들은 입시 심사위원이나 국내 콩쿠르 대회 위원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행정 조치를 건의했다”고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남편의 친구에게 4년간 1억5000만 원을 빼앗은 40대 여성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부장판사 인형준)은 사기 혐의로 기소된 최모 씨(42)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7일 밝혔다. 최 씨는 존재하지 않는 재력가를 아는 것처럼 꾸며 남편 친구인 피해자에게 접근해 총 96차례에 걸쳐 1억5378만 원을 송금받았다.2017년 8월 최 씨는 남편을 통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건 뒤 “부산의 한 재력가가 세금 문제로 계좌가 압류돼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으니, 자신을 통해 돈을 빌려주면 한 달 뒤 2배로 돌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하지만 부산의 재력가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재판부는 “최 씨가 별다른 재산이나 수입이 없었고 다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으므로 갚을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었다”고 판단했다. 한편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남편이 재력가가 가상 인물인지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2020년 2월 이후 피해자와의 카카오톡 대화는 모두 최 씨 단독으로 이뤄진 점 등에 비춰 공모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숲이 아니라 꼭 테마파크에 놀러 온 것 같아요.” 강원 춘천시 삼한골 상류에 있는 국립춘천숲체원에서 만난 최예솔 양(10)과 최 양의 아버지는 알록달록 색깔이 칠해져 있는 9m 높이의 실외 암벽장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22일 찾은 이곳엔 단체 탐방객 20여 명이 무리 지어 숲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마치 놀이동산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활기찬 이곳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군사시설로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러다 2015년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면서 즐길 거리를 갖춘 이른바 ‘레저숲’으로 거듭났다. 수풀과 계곡, 바위 등 숲에 있는 자연환경을 원형 그대로 활용해 레저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숲을 뜻한다. 산림청은 2018년부터 이곳에 숲을 활용한 레포츠 시설을 조성해 2021년 문을 열었고, 지난해 5만2000명이 방문하는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첩보부대 훈련장에서 레저숲으로 숲체원 부지는 육군 첩보부대(HID) 요원들이 1970년대부터 2014년까지 실제로 훈련했던 장소다.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진 않지만 민간인 출입을 통제해 숲 일대를 훈련장으로 활용했다. 그러다 2018년부터 도시민의 여가 수요를 반영해 실내외 암벽등반장과 글램핑장 등 다양한 산림레포츠 특화시설을 갖춘 레저숲으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 사격 훈련과 고지 점령 훈련, 유격 훈련이 이뤄진 실제 공간이 지금은 산림레포츠 체험 시설로 바뀌었다. 철거하지 않은 군사훈련용 막타워(모형탑)도 곳곳에 남아 있다. 축구장 300개가 넘는 335ha 규모의 숲체원 곳곳엔 6m 높이의 나무 타기 시설을 비롯해 산악자전거(MTB)를 탈 수 있는 코스, 5m 높이의 로프코스를 즐길 수 있는 모험숲, 놀이터를 갖춘 유아숲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이 같은 숲 체험 시설만 10개가 넘는다. 2시간 안팎에 걸쳐 계곡이나 숲길을 트레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명상과 ‘불멍’, 해먹 체험 등 다양한 산림교육 콘텐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 캠핑할 수 있는 글램핑 시설과 단체 숙박시설도 갖춰 1박 이상 머물며 프로그램을 즐길 수도 있다. 김보영 국립춘천숲체원 주임은 “주로 학교나 기관에서 오는 단체 탐방객이 많다”며 “60대 이상 어르신 단체도 종종 방문하는데 남녀노소 원하는 방식대로 숲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스트레스 해소 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방문객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시범 운영을 시작한 2020년 3800여 명에서 2021년 2만6000명, 2022년 4만3000명, 지난해 5만2000명까지 3년 만에 13배가량 급증했다. 통상 3시간 이상 머무르기 때문에 생활인구로 산정돼 지역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춘천시 국립용화산자연휴양림은 1박에 1만5000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야영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름났다. 이런 숲체원이나 휴양림을 포함한 전국의 산림교육센터는 총 23곳에 이른다. 2017년 17만 명 안팎이었던 방문객 수는 지난해 약 53만 명으로 급증했다.● 치유하며 모험·체험 즐기는 숲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야외 활동이 늘어나면서 체험시설을 갖춘 숲을 찾는 이들뿐만 아니라 산악 마라톤이나 트레킹 등 산에서 모험과 체험을 즐기려는 동호인도 증가했다. 암벽 등반이나 산악 승마, 자전거, 패러글라이딩 등이 대표적인 산림레포츠다. 전국 산림레포츠 동호인은 2014년 23만 명에서 2020년 50만900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 발맞춰 맞춤형 프로그램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 경북 영주시에선 2030세대를 겨냥한 ‘알프스 챌린지’ 트레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백산 비로봉과 연화봉 등을 등반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인증하면 영주시의 ‘소백 3봉 챌린지’를 완성할 수 있다. 등산 인플루언서와 함께 챌린지형 산림 치유 트레킹도 참여할 수 있다. 산악 마라톤을 즐기는 이도 늘고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험난한 비포장 산길을 달려야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풍경을 만끽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게 묘미다. 지리산 화대종주와 설악산 공룡능선, 제주 한라산 능선 코스가 대표적이다. 2021년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레저활동이나 치유 프로그램 등 연간 산림휴양 경험률은 79.2%로, 경험자의 97.1%는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준순 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는 “삶의 질이 핵심 가치인 시대에 숲은 최고의 놀이터”라며 “청소년기부터 다양한 종목의 산림 레포츠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취약 계층도 접할 수 있게 레저숲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도 우울감도 숲에서 모두 잊어요”無장애숲으로 이동약자 등 배려시각장애인 위한 오디오 숲해설우울감 치유 힐링캠프도 운영최근 국내 레저숲에 조성된 산림레포츠 시설은 휠체어를 탄 이동 약자나 시·청각 장애인, 노약자 등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즐길 수 있는 ‘무장애숲’을 표방하고 있다. 강원 춘천시에 있는 국립춘천숲체원은 지난달 14일 SK 행복나눔재단과 함께 청년 장애인 직업훈련생 및 관계자 28명을 초청해 산림레포츠 체험을 지원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9m 높이 실외 암벽장을 도르래와 밧줄을 활용한 ‘어댑티브 클라이밍’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휠체어에 올라탄 채 암벽을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이다. 암벽 아래에서는 “할 수 있어요!”라고 소리치며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처럼 휠체어를 타고 산림레포츠를 체험할 수 있어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배려숲’으로 불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무장애 나눔 숲길도 1km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김경포 국립춘천숲체원 산림레포츠팀장은 “장애인들이 산림레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은데 끝까지 암벽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며 “몸과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자신감까지 얻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춘천숲체원은 2021년 개원 이후 매년 장애인을 위한 ‘나눔숲 캠프’를 열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숲해설 등 장애 유형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장애인과 이들의 부모, 형제자매, 사회복지사, 특수교사, 돌봄 종사자의 스트레스 회복을 돕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림교육 대상자와 프로그램도 다양화하고 있다. 경북 영주시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은 반려동물과 이별 후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겪는 ‘펫로스 증후군’ 가족을 대상으로 ‘내맘 쓰담 힐링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숲속에서 명상하거나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간직하는 나무 액자 만들기 활동 등이 진행된다. 이 밖에도 한국 생활에 고립감을 느끼는 외국인 원어민 교사,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등에게 심신 회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영주 소백산 자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숲 치유 프로그램, 한국 전통 다례를 배우는 다도 체험 등이 주요 활동이다. 산림청은 지난해 10월 엄마 배 속부터 유아,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애 주기별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림 시설을 대폭 확충하기로 했다. 산림복지 소외계층과 보행 약자를 위한 무장애 나눔 길 등 기반 시설을 늘리고 사회적 약자에게 제공하는 산림복지서비스이용권도 지속해서 확충할 계획이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지난해 12월 경복궁 낙서를 사주한 총책 강모 씨(30)가 31일 검찰에 넘겨졌다. 강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불법 사이트 8개의 광고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해 낙서 마케팅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국보 1호 숭례문까지 낙서 표적으로 삼았던 사실이 파악됐다.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31일 경복궁 낙서 사건 브리핑을 열고 강 씨를 포함해 총 8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이날 송치된 강 씨에게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성폭력처벌법 위반,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됐다. 강 씨의 지시를 받고 실제로 낙서한 10대 2명과 중간에서 범행 대금을 전달한 조모(19) 씨도 함께 송치됐다.강 씨는 지난해 12월 16일 텔레그램에서 만난 미성년자들에게 경복궁 영추문, 국립고궁박물관, 서울경찰청 담장에 자신이 운영하는 불법 사이트 주소를 낙서하도록 지시했다. 범행 당일에는 벤츠 승용차를 타고 범행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강 씨는 전과 8범으로 불법 사이트 운영 외 직업은 없었다. 사기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지난해 3월 출소한 뒤에는 10월부터 불법 사이트 8개를 운영했다. 영화 등 저작물 2368개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불법 촬영물이 이곳에서 유통됐다. 1건당 500만 ~1000만 원을 받고 배너 광고를 올려 약 2억5000만 원 수익을 냈는데, 광고 단가를 올리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해당 사이트들은 현재 폐쇄된 상태다.수사기관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만 이용해 불법 사이트를 운영했고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일면식 없는 사람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였다. 올해 2월경에는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 ‘총책이 긴급 체포됐다’는 허위 소문을 퍼뜨려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하기도 했다. 5월부터는 연고가 없는 전남 여수의 한 숙박업소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오다 결국 검거됐다. 태국, 일본 등으로 해외 도피를 계획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경복궁 낙서 이틀 전엔 국보 1호 숭례문에도 낙서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텔레그램을 통해 만난 15세 미성년자에게 숭례문과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낙서하라고 지시했지만 겁을 먹은 해당 남학생이 중도에 포기하면서 미수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한편 강 씨가 28일 경찰 조사를 받던 중 도주한 것과 관련해 경찰은 당시 강 씨가 수갑을 차고 있었지만 키 180㎝에 몸무게 59㎏의 마른 체구를 이용해 수갑에서 강하게 손을 뺐다고 설명했다. 약 2시간 만에 다시 붙잡힌 강 씨는 ‘최소 징역 12년형은 선고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주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내년도 의대 대입전형 시행계획이 발표된 30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전국 6곳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 자리에서 “국가 예산으로 빨갱이 짓을 하고 있다”, “나치시대 게슈타포나 했던 일” 등 원색적 표현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의협은 다음 달 동네병원과 의대 교수 등이 동참하는 집단행동을 할 계획이다. 의협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을 포함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에서 ‘대한민국정부 한국의료 사망선고’를 주제로 촛불집회를 열고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강행을 규탄했다. 임 회장은 이날 오후 9시부터 열린 대한문 앞 집회 개회사에서 “이 사태의 본질은 정부가 일으킨 의료 농단, 돌팔이 만들겠다는 교육 농단, 암 환자 고려장, 어르신들 돈 많이 드는 진료는 못 받게 해 일찍 죽게 하겠다는 의료 고려장”이라며 “이걸 의료개혁이라고 포장해 국민들을 세뇌하는 건 빨갱이들이나 하던 짓인데 정부가 예산을 들여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부가 계속 나라 망하는 길로 가겠다면 의사들은 잘못 인도하는 자들을 끌어내리는 일의 선봉에 서겠다”며 탄핵 운동 동참 가능성도 시사했다. 의협은 전날 내부 회의에서 6월 중 동네병원이 동참하는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구체적인 파업 시기와 방식 등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총파업을 하더라도 참여율이 어느 정도 될지는 미지수란 지적이 나온다. 의협은 2020년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할 때도 총파업에 돌입했지만 동네병원 동참 비율은 10∼20%에 불과했다. 의협은 이날 집회에서 “정부가 한국 의료를 죽였다”며 대한민국 의료 심폐소생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금은 의사들이 의료 사망선고 집회를 할 때가 아니라 의료를 살리기 위해 진료 정상화와 대화에 나서야 할 때”라고 비판했다.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북한이 대규모 ‘오물 테러’를 감행했다. 거름과 쓰레기가 담긴 대형 풍선을 28일 밤부터 이틀 동안 260여 개나 날려 보낸 것. 단기간에 이 정도 규모로 풍선 테러를 감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물이 담긴 풍선들은 서울 도심과 전북, 경북 등 한국 전역을 파고들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과 4.5km 떨어진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청사 옥상에도 풍선이 떨어졌다. 요격이 힘든 대형 풍선에 폭탄, 생화학무기 등이 실려 있었다면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대규모 혼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29일 새벽 서해상에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공격도 감행했다. 동시 공격으로 혼란을 증폭시키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군에 따르면 대형 풍선들은 28일 밤부터 휴전선 이남 경기·강원 접경지역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로 날아들었다. 이후 29일까지 서울 마포구와 구로구, 영등포구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강원과 경남, 전북 등으로도 날아갔다. 풍선은 휴전선에서 250km 넘게 떨어진 경남 거창군 위천면의 한 논에서도 발견됐다. 전북 무주군과 충남 계룡시에 낙하한 풍선 주변에선 화약이 발견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군 관계자는 “하루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대남 풍선이 날아든 것”이라고 밝혔다. 풍선과 오물이 담긴 비닐봉지 연결부엔 ‘자동 폭파 타이머’가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동력 장치는 없었지만 풍향과 비행 시간을 계산해 대통령실과 정부서울청사 등 주요 표적에 오물을 살포하려 한 의도로 보인다. 앞서 2016년엔 북한이 서울로 날린 대형 풍선에서 큰 물체가 떨어져 차량과 주택 지붕이 파손된 바 있다. 군은 화생방대응신속팀(CRRT)과 폭발물처리반(EOD)을 출동시켜 지상에 떨어진 80여 개를 수거했고, 관련 기관에서 정밀 분석을 하고 있다. 우리 군은 “반인륜적이고 저급한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라고 북한에 경고했다.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밤에 담화를 내고 “저 한국것들의 눈깔에는 북으로 날아가는 풍선은 안 보이고 남으로 날아오는 풍선만 보였을까”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인민이 살포하는 오물짝들을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로 정히 여기고 계속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며 추가 살포 가능성도 시사했다.北 풍선에 자동폭파 타이머… 정부청사 등 표적 테러 우려도 [北 ‘오물 풍선 테러’]목표지역 상공서 폭파되게 설정… 대남 심리전 부대가 조직적 살포저비용으로 혼란 극대화 효과… “생화학 공격땐 대규모 인명피해” 북한이 28, 29일 이틀에 걸쳐 한국 전역으로 날려보낸 260여 개의 대형 풍선 아래에는 거름으로 추정되는 시커먼 색의 오물과 각종 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가 달려 있었다. 앞서 2016∼2017년 북한이 서울 도심에 날린 대형 풍선에 들어 있던 대남 전단(삐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군은 전했다. 군 관계자는 “휴전선 인근이 아닌 더 북쪽의 여러 곳에서 북한군 대남 심리전 전담 부대가 조직적으로 날려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풍선과 오물 적재물의 연결부에는 목표 예상 지역 상공에서 터지도록 설정한 ‘자동폭파 타이머’가 설치돼 있었다.● 서울에 10여 개, 2개는 정부 핵심 건물에 2016∼2017년 북한은 연간 1000개가량의 대형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보냈다. 하지만 이번엔 단 이틀(28일 밤∼29일 오후)에 걸쳐 260여 개에 달하는 ‘오물 풍선’을 동시다발로 보냈다. 상부 지시에 따라 철저히 사전에 기획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진행한 도발로 우리 군은 보고 있다. 북한의 대형 풍선은 지름 3∼4m 크기로 자체 동력기관은 없다. 그 대신 풍향과 풍속에 맞춰서 날려 보내면 기류를 따라 목표 지역 상공에 도달한 뒤 자동폭파 타이머가 작동해 오물 등을 투척하도록 제작됐다. 군 소식통은 “바람을 고려해 북한 서부지역에서 날려 보내면 부채꼴 모양으로 쫙 퍼져서 한국 전역으로 날아들 수 있다”고 했다. 대형 풍선이 접경 지역뿐 아니라 경남 지역까지 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물 풍선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1시 반경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옥상에 “이상한 물체가 있다”는 경비원 신고를 받고 출동해 발견한 풍선을 군에 인계했다. 앞서 오전 4시경엔 외교부 청사 인근 거리에서도 풍선이 발견됐다. 260여 개의 풍선 중 서울에는 10여 개가 살포됐는데, 그중 2개가 10시간도 안 되는 간격으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청사에 잇달아 떨어진 것. 두 곳 모두 정부 핵심 기관 건물이다. 휴전선으로부터 250km 넘게 떨어진 경남 거창군 위천면의 논에서도 풍선이 포착됐다. 경찰과 소방이 출동해 풍선 2개에 매달린 비닐 봉투를 수거해 보니 그 안에는 페트병과 종이 쓰레기 등이 담겨 있었다. 전북 무주군과 충남 계룡시에서 떨어진 풍선 주변에서는 화약이 발견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오전 5시 45분경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서 오물 풍선이 전깃줄에 걸린 채 발견돼 경찰과 군이 접근 통제선을 설치한 채 이를 수거했는데, 소량의 화약 성분이 묻어 있었던 것. 경찰과 군 관계자는 이 성분을 분석 중이다. ● “생화학무기 실으면 대형 인명 피해 우려” 드론, 전투기 등 첨단 무기와 비교해 극히 조잡하지만 대형 풍선(기구)은 심리전의 최적화된 수단이다. 지상을 월경해 상대국 영공을 휘젓고 다니면서 비방 공작과 정찰 임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초 중국 정찰풍선이 미국 본토 곳곳에서 발견되자 미 공군 전투기가 미사일을 쏴 격추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사회 혼란 야기 등 대남 충격 효과도 크다. 북한의 ‘오물 풍선’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자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서 등에 신고가 빗발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비행 중이거나 지상에 떨어진 오물 풍선의 사진을 올리면서 충격과 불안을 호소하는 글이 쏟아졌다. 군 관계자는 “핵·미사일 도발 비용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낮은 비용으로 대남 충격 및 도발 효과의 극대화를 노린 것”이라고 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연구센터장(예비역 육군 준장)은 “북한이 군사 도발 목적을 위해 풍선에 폭탄이나 생화학무기를 실을 경우 대규모 인명 손실과 사회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의 심리전 파상 공세에 맞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과거 철거했던 대북 전광판이나 확성기 등을 휴전선 일대에 재설치하는 방안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거창=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사람 손을 타지 않고 550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 낸 우리 숲의 본모습입니다.” 이봉우 광릉숲보전센터장은 9일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경기 포천시 광릉숲 안에 있는 생태연구타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755ha(헥타르) 규모의 천연림 핵심구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축구장 1000개가 넘는 광활한 숲에 바람이 일자 마치 초록색 파도가 일렁이는 듯했다. 광릉숲은 1468년 조선 세조대왕릉의 부속림으로 지정된 이래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소리봉과 죽엽산 일대에 있는 광릉숲 핵심구역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556년 동안 훼손이나 인위적 간섭 없이 자연 그대로의 숲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연구용 시설물과 숲길인 임도(林道)뿐이다. 그러다 보니 동식물과 곤충의 생태계가 촘촘해 생물다양성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숲의 성장 과정이 남아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이 센터장은 “숲 전체가 하나의 연구실”이라며 “현재 생물다양성 목록화, 인공림 자연 회복성, 천연기념물 복원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 이곳은 2010년 6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748곳뿐이다. 국내에는 광릉을 포함해 설악산, 제주, 강원 등 9곳이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광릉숲에서 관찰 기록된 자생 생물은 곤충 3932종, 식물 946종, 고등균류 694종, 조류 187종 등을 포함해 모두 6251종에 이른다. 광릉숲은 ‘K원시림’으로 국내 숲 발전 방향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출입 통제 속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온대 중부 일반 산지 식생’(해발 800m 이하)이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숲의 식생 변화 가운데 안정기에 접어든 온대 활엽수 극상림(極相林)을 이루고 있다. 556년이 응축된 숲의 정보는 훼손된 숲 복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해가 중천에 뜬 9일 정오에도 숲 안은 온통 그늘졌다. 이곳에서 접한 수령 250년 넘은 갈참나무의 몸통은 성인 3명이 팔을 벌리고 안아도 넘칠 만큼 웅장했다. 썩어서 쓰러진 나무에서는 버섯과 곤충, 이끼류 등이 둥지를 틀어 작은 생태계가 꾸려졌다. 김아영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다양한 생물이 어울려 살아서 병충해 약을 뿌리지 않아도 숲 스스로 건강을 유지한다”라고 했다. 국내에서 해발 800m 이하 일반 산지는 대부분 농업이나 땔감용, 인공림 등으로 쓰이며 온전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광릉숲은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등 활엽수림을 중심으로 저해발 산지 식생의 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용찬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광릉숲은 봉우리, 능선, 사면, 하천 범람원 등 모든 환경이 연결돼 상호작용하면서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가 됐다”면서 “숲을 조성할 때 답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저장고”라고 평가했다. 생태계에서 자연적으로 자라 가슴높이의 몸통 둘레가 3m 이상 자란 나무를 ‘큰 나무(산림유존목)’라고 한다. 전국에 837그루가 있는데 광릉숲에만 18그루가 있다. 광릉숲 천연림을 대표하는 식생은 서어나무와 졸참나무다. 서어나무는 풀, 작은 나무, 침엽수, 활엽수 단계로 이어지는 숲 식생의 변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 우위를 점해 ‘숲의 지배자’로 불린다. 이 덕분에 주로 말라서 죽은 서어나무에서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제218호인 장수하늘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광릉숲에서만 살고 있다. 이 밖에 하늘다람쥐, 황조롱이, 까막딱따구리 등 천연기념물 19종(조류 17, 포유류 1, 곤충 1종)이 산다.● 기후변화 대응할 숲의 기준으로 광릉숲의 촘촘한 생태계는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이곳의 연구 결과는 미래 K숲의 기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광릉숲의 각종 생태 정보들을 통해 숲의 자연성 회복 과정과 변화 속도를 파악해 미래 인공림을 만들 때 천연림과 비슷한 생태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광릉숲은 직접적인 탄소저감 효과와 더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건강한 후대 숲을 양성하는 기준이 된다. 국립수목원이 발행한 광릉숲 시험림 보고서에 따르면 1ha 면적에 서어나무, 갈참나무 등 30개 종의 나무가 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연간 이산화탄소 저장량은 1ha당 639.2t(2022년 기준)으로 파악됐다. 연간 1만5000km 주행한 승용차 266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638.4t과 비슷한 수준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후대 광릉숲을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강원, 충남, 경북, 전북, 인천, 대구, 부산 등 24개 지역 56ha에 대해 산림복원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절반은 비무장지대(DMZ) 일대 복원사업이지만, 산림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작업도 있다. 예를 들어 대구 남구 수목원에서는 희귀식물로 지정된 가침박달나무 복원이 한창이다. 2000년 9월 300그루가 자생하던 가침박달나무는 현재 50그루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림은 보전과 이용이 균형을 이뤄야 지속 가능한 자원으로 경쟁력이 있다”며 “생태계가 두터운 광릉숲은 연구 대상이자 멸종 위기종의 마지막 안식처로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곤충 왕국 광릉숲, 장수하늘소 멸종 막을 최후의 보루” 식생 풍부하고 고목 등 환경 조성매년 15마리 자연방생 ‘복원 작업’ 광릉숲의 또 다른 이름은 ‘곤충 왕국’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 보고된 곤충은 총 2만710종이다. 이 가운데 19%인 3932종이 광릉숲에 산다. 전국에 있는 곤충 5종 중에서 1종이 이곳에 사는 셈이다. 식생이 풍부해 나무가 다양하고, 나무가 죽어 고목이 되면 그 안에 곤충이 모일 수 있는 환경 덕분이다. 광릉숲을 대표하는 곤충인 장수하늘소는 최근 5년 동안 야생에서 총 30마리가 발견됐다. 2020년에 만든 산림곤충스마트사육동에서는 장수하늘소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자연에서는 부화하려면 최대 7년이 걸리지만, 사육동에서는 16개월이면 성충이 된다. 연간 500여 마리 개체수를 유지하고 매년 15마리 정도를 자연에 돌려보낸다. 몸에는 소형 위치추적기를 달아 2∼3주 정도 움직임을 파악한다. 지난해에는 방생한 암컷과 야생 수컷이 교미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일권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장수하늘소는 중남미에도 분포해 지구 형성 초기 판게아 대륙이 갈라졌다는 증거가 되는 중요한 곤충”이라며 “광릉숲은 장수하늘소 절멸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광릉숲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에 ‘광릉’이 붙은 곤충도 있다. 2017년 3월 서어나무 고사목에서 광릉왕맵시방아벌레 10여 마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맵시방아벌레류는 서어나무에서 성충 상태로 겨울을 나는데, 그동안 일본 산간 지역에서 발견돼 일본 특산종으로 알려졌다가 국내 서식이 확인됐다. 맵시방아벌레는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유충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릉왕모기는 다른 모기에 비해 몸집 크기가 두 배 이상 크다. 애벌레(장구벌레)는 나무구멍이나 지표면의 고인 물에 서식하며 다른 모기의 유충을 잡아먹고 자라 ‘모기를 먹는 모기’로 유명하다. 초록하늘소는 1986년 광릉 채집 기록 이후 29년 만인 2016년에 다시 발견됐다. 이처럼 광릉숲에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 281종 가운데 21종이 서식한다. 조류 6종, 곤충류 6종, 포유류 4종, 파충류 2종, 양서류, 육상식물, 고등균류(버섯) 각 1종씩이다. 산림 생태계 안정에 필요하고 학술적 가치가 높아 우선 보호해야 하는 특별산림보호대상 53종 가운데 광릉골무꽃, 참작약 등 식물 2종과 노란달걀버섯, 산호침버섯, 연기색만가닥버섯, 잎새버섯, 자흑색불로초, 차가버섯 등 버섯 6종이 광릉숲에서 자란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