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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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칼럼100%
  • [김순덕의 도발] 체제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문재인 전 대통령이 1일 재임 중 벌어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건 ‘안보 정쟁화, 안보 체계 무력화’라고 했다.# 민노총은 총파업을 발표했다. 언제? 2월 10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화물연대 사태를 예견한 듯 9월 말·10월 초 총파업을 의결한 거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1191명이 지난달 28일 중고교 역사책 속의 ‘자유민주주의’ 표기에 반대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세 장면은 일견 서로 관련 없는 별개의 사건 같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 한번 ‘성공의 맛’을 본 이념과 체제 전복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한 몸이다. 2008년 3·1절 기념식에서 “이제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은 연설했다. 착각이었다. MB를 증오한 좌파는 그로부터 두 달도 안 돼 광우병 소고기 괴담을 퍼뜨리며 촛불시위를 벌였다. 윤석열 정부는 같은 수렁에 빠지지 않겠다는 교훈을 얻은 듯하다.● “이념의 시대는 갔다”는 착각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우리 공무원이 피살되기 3시간 전 북한 해역에서 표류 중임을 보고받고도 어떤 지시도 하지 않았다. 그때 TV에선 사전 녹화된 ‘한반도 종전선언’ 유엔 연설이 방송되고 있었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10·4공동선언 주요 내용 중 하나다. 노무현이 못했던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 등 후속 조치, (북핵과 동행하는 불안한) 평화체제를 이뤄내는 것이 문재인으로선 ‘남쪽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했다는 얘기다.화물연대는 2003년에도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구호를 내걸고 파업을 벌였다. 올해와 같은 구호다. 문 전 대통령은 2011년에 쓴 ‘운명’에서 “화물연대가 파업에 이르기까지 정부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남의 일처럼 논평하고는(그때 그는 민정수석이면서 노동문제도 담당했다) “결국 파업은 합의 타결됐다. 사실은 정부가 두 손 든 것”이라며 “노정(勞政)관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측면이 있다”고 고백했다.그런 민노총에 ‘지분’을 주고 집권한 것이 문 정권이었다. 이미 올 2월 민노총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연말 총파업 벌일 것을 의결한 바 있다. 위원장 양경수는 내란선동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과 같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11월 호주 국제노총 세계총회 참석해 “체제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기조연설 했다. 쉽게 말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거다.● 민노총이 꿈꾸는 ‘미국 없는 체제’3일 민노총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과 부산신항에서 화물연대 총파업에 힘을 싣기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가자, 총파업’, ‘단결 투쟁’이 적힌 붉은 머리띠를 메고 “화물안전 운임제 확대하라” “업무개시 명령 철회하라!”를 외쳤지만 기세는 전 같지 않다. 6일로 선포한 총파업이 과연 이뤄질지도 미지수다.연초 민노총이 내다본 2022년 세계정세는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종주국인 미국 패권의 악화’가 출발점이었다. 미국이 저무는 해로 바뀌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패권을 허용치 않는 신냉전 체제가 들어서고 있다고 본다. 중-러, 이란 북한에 남미의 핑크타이드까지 등 반미전선이 다층화되는 상황에 윤석열 정부가 한미 가치동맹을 맺은 것은 중-러 봉쇄령에 돌격대로 앞장서는 것과 같다는 분석이다.그런데 어쩌나. 미국이 저무는 해로 바뀌었다는 건 좌파의 오랜 바람일 뿐이다. 한동안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20년대말 미국을 추월한다는 ‘중국몽’이 유행했지만 제로 코비드 정책에서 보듯 공산당 독재와 억압정치는 중국 발전의 장애물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의 미국 추월은 21세기 중반까지도 어려울 것이라는 ‘깨몽’이 이어진다. 호주 로위연구소, 미국의 경제학자 로런스 서머스에 이어 최근엔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이 경종을 울렸다. 중국의 인구·부채·생산성 등 지표를 종합한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3연임하며 큰소리친 대로 2035년까지 중진국이 될지도 의문이라고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썼다.● 인민민주주의로 통일돼도 괜찮다는 건가미국 패권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판단 아래 자본주의 체제 전환을 외치는 민노총의 전략은…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노총 같은 정세판단을 하는 세력이 민노총뿐이냐는 점이다. 문 전 대통령 때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했던 헌법 개정안이, 그리고 결국 삭제했던 역사교과서가 섬뜩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2018년 2월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기 전,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을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으로 고친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믿고 싶진 않지만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로 통일이 돼도 상관없다는 뜻인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비슷한 일은 역사 교과서에서 고스란히 반복됐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상당수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북한은 미화한 사실이 2004년 국회 국감에서 드러났다. 좌파 학계와 교육계, 지금의 민주당 반발로 그때 못 고친 것을 2011년 MB정부 때 고쳤다. 대한민국 정체성과 관련된 ‘민주주의’ 표기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거다. 2018년 문 전 대통령은 교육과정 집필기준에서 ‘자유’를 빼버렸다. 개헌에서 못 이룬 한을 푼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그걸 되살리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를 하자 똑같은 반발이 일어났다.● 자유민주주의 실천으로 모범 보이길“21세기 냉전의 핵심은 이념과 체제”라고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러시아의 도전이었다. 민노총 같은 좌파는 푸틴의 승리를 점친 모양이지만 인권과 자유, 법치 등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의 연대를 거스를 순 없다.1948년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추구하는 정치사회 세력의 갈등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채택했다. 좌편향 교과서들은 김구 김규식의 좌우 합작운동을 비중 있게 서술하며 마치 ‘가지 않은 길’이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을 현혹한다. 그러나 김규식의 비서였던 송남헌은 평양행에 앞장섰던 김규식의 또 다른 비서 권태양이 북측의 간자(間者)였음을 1995년에야 알았다고 ‘송남헌 회고록-우사 김규식과 함께 한 길’에 썼다. 만에 하나, 지난 좌파 정권에북의 세작 또는 공작이 있었음이 몇십 년 후에 밝혀질지 모를 일이다.이념과 체제를 논하는 것이 철 지난 논쟁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핵을 지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로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당선도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이재명은 이와 거리가 멀다는 다수 국민 열망의 반영이었다.MB정부처럼 중도주의로 끝내면 또 반복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확고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민노총 총파업에, 북한의 도발에, 좌파가 걸어온 체제전쟁에 정부가 말로만 법과 원칙만 외치는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실천으로 모범을 보이는지 지켜볼 일이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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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견제받지 않는 지방권력’ 이재명은 알고 있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제야 ‘지방권력 사유화’라는 본질을 파악한 듯하다.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뇌물 수수,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22일 검찰 관계자는 “지방자치 권력을 매개로 민간사업자와 유착관계를 만들어 거액의 사익을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이 그 막강한 권한을 괜히 가졌을 리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측근이어서 갖게 된 힘이다. 검찰이 비로소 이재명 조사의 필요성을 공식화한 것이다. 참 징글징글하게 늦었다. 이재명은 2005년 성남시민모임 활동을 할 때 쓴 경원대(현 가천대) 행정대학원 석사논문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진작 이를 밝혀냈다. 견제받지 않는 지자체 권력, 사유화한 지방권력.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국가권력의 사유화 아니었던가. 이재명이 작년 말 대선 과정에서 “인용 표시를 다 안 해 석사논문을 반납했다”고 했을 때 웬일인가 싶긴 했다. 대선 뒤 가천대가 핵심 내용엔 문제가 없다며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로 그 ‘핵심’을 감추고 싶어 극구 논문 반납을 강조했다면, 우리는 이재명에 대해 많은 걸 짐작할 수 있다. “지방정치 과정에서 부패는 중앙정치와 달리 극복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이재명은 논문 2쪽에 이렇게 썼다. ‘중앙의 경우에는 탄핵이나 해임 등 제도적 견제장치가 존재한다.’ 대통령은 아무리 제왕적이라 해도 언론과 의회의 매서운 감시와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게 못마땅해 도어스테핑도 중단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너무나 자유롭다. 대장동도 2021년 8월 31일 한 지방지에 ‘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자산관리는 누구 것입니까?’ 칼럼이 나올 때까진 이목을 끌지 못했다. 선출직 공직자는 ‘형사상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견제 수단도 없는 게 현실’이라는 거다. 지방의회는 시녀에 불과하고 중앙정부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막강 지방권력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똑똑한 이재명은 2005년에 벌써 알아버렸다. 석사논문을 쓰며 파악한 숱한 부패 수단을 2010년 성남시장이 돼 활용하기 시작했다면, 슬픈 일이다. ‘지방정치 부패는 주로 당선이나 재선을 목표로 선거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특혜를 주거나 권한을 행사한다’며 이재명은 인허가·용도변경, 인사권·공유재산 처분과 지역개발 수단까지 두루 나열해놨다. 심지어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 씨가 2011년부터 관용차(체어맨)까지 탔는데도 비판받지도 않고 넘어간 것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울고 갈 일이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에선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냄새가 난다. 검찰은 성남시 전략추진팀장 A 씨를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이재명과 정진상이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대장동 사건에서 유동규가 사장 노릇을 한 것처럼 성남시 정책실장일 뿐 성남FC에선 아무런 직함도 없는 정진상이 사실상 사장 노릇을 하며 광고도 유치하고 해외 출장도 다니며 성과급도 챙겼다는 것이다. 김경율 회계사는 최근 서민 단국대 교수와 함께 쓴 책 ‘맞짱: 이재명과의 한판’에서 “이재명의 문제는 이렇듯 공적 조직을 무시하고 측근들이 중심이 된 정치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이런 이가 나라를 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는 거다. 문제는 이재명이 논문에 썼다시피 지자체장의 부패가 대개 합법적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재명이 저리도 당당하게 당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만 지자체장의 경우 뇌물 수수 등 명백한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런 현실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형석 감사원 감사연구원 연구관은 2021년 논문에서 “지방공무원의 잘못을 밝히기엔 어려움이 많고 공무원 스스로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장동 의혹은 이재명이 대선 후보로 나왔기에 불거졌지, 다른 지역에선 문제가 있더라도 묻히고 지나가기 십상이다. 이재명은 논문 말미에서 오늘을 내다본 듯 “힘겹게 적발해 낸 지방정치 비리사범을 양형 및 집행 과정에서 비호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대로 민주당이 제발 정신 차려주길 바란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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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이 제목은 내가 붙인 게 아니다. 수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가 2020년 5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남긴 책의 제목이다. “한국이 당면한 정치•외교적 위기는 근원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이성 결핍’에 있다”고 선생은 암 투병을 하면서 피를 토하듯 글을 남겼다.19일 서울 도심에선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참여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선동했다.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존중한다. 그러나 설령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탄핵 사유가 없는 한,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는 것이 민주주의다. 데모로 정권을 갈아치우겠다는 건 민주주의(democracy) 아닌 ‘데모cracy’라고 선생은 마치 예견하듯 써두었다.민족의 집단무의식이 역사적 사건과 시대 상황을 여과하며 특유의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이 선생의 원형사관(原型史觀)이다. 툭하면 광장에 뛰쳐나와 시위하고, 정치인은 분당(分黨)이나 하는 것도 집단 무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했다.단군신화를 보면 안다…분열의 집단무의식단군신화를 보시라. 주인공 환웅은 부족장 천군의 서손(庶孫)이었다. 백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은 곰은 여자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고, 호랑이는 못 견디고 도망갔다고? 그건 신화 속 아름다운 얘기일 뿐이다.현실로 번역하면, ‘분열’이다. 항복한 곰족과 정복군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났지만 반대파인 호랑이족은 떠남으로써 분열의 집단 무의식이 형성됐다. 심지어 독립운동가들 사이 분열도 극심했다. 일본군을 탈출해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던 청년 장준하(1918~1975)가 “실상을 알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통곡했을 정도다. 호랑이족은 8•15해방 후 돌아와 곰족 ‘친일파’를 색출했다. 말이 되는가.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데 없어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을 친일파로 몬다는 것이(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책에 나오는 소리다)!6•25 전쟁 때도 그랬다. 서울이 수복되자 부역 시비가 벌어져 서로에게 비수를 겨눴다. 조선왕조 500년을 주자학 원리주의로 유지했던 이 땅의 지배계급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기들만 옳다며 적폐청산, 제2의 건국,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걸고 보복질을 해댔다.당나라 끌여들여 삼국통일…사대주의 국가이성우리끼리만 잘난 척하면 또 모른다. ‘국가이성’은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지도자의 대외노선으로 이 역시 집단무의식 즉 원형을 반영한다. 그래서 나라가 망했는데도 외교적 마찰을 빚은 일도 없지 않다.한국사를 관통해온 갈등은 삼국통일을 위해 나당연합군이 벌인 백강전투(663년)에서 기인한다고 선생은 통찰했다. 신라가 당나라를 불러들이자 백제는 왜(倭)와 끌어들인 최초의 국제전이다. 여기서 백제가 패해 삼국통일과 통일신라가 나왔지만 동북아시아에 남긴 집단 무의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한반도는 부국강병 없는 사대주의다. 반면 왜는 백강전투 이후 일본으로 국명을 바꾸고 조선을 혐한(嫌韓)하며 일치단결해 목적만을 향해 매진했다. 진시황 이래 천하통일을 추구하는 중국의 집단 무의식은 지금도 계속되고.역사는 되풀이된다…한국인의 비극적 충동성이런 역사의 되풀이 구조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평양-원산에서 끊어진 통일신라 국토는 중국과 일본이 원하는 한반도 분단선의 마지노선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비밀리에 명나라에 요구했던 분단선이었고, 조선 왕조 말기 러시아가 일본에 제안한 39도 선이기도 했다. 헨리 키신저도 ‘세계질서’에서 “6•25 전쟁 때 미국이 여기서 북진을 멈췄다면 중공군의 참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한일간의 외교 마찰이 집단 무의식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해석도 있다. 한반도 이주만 봐도 우리는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도 바닥까지 내려간 원리주의다. 역사도 항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민족의 집단 무의식은 우리와 다르다. 외교협정을 맺고도 정권 바뀌었다고 충동적으로 뒤집으면 분쟁이 일어나는 거다.한국인 개개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해도 정치•외교가 그렇지 않은 이유는…그것이 집단적 공동체 문화여서다. 이성은 ‘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하는 ‘지적 정직성’을 의미하지만 정치인은 표에 반응한다. 국력의 기본은 민족의 이성에 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인의 충동성은 유명하다. 1979년 미중 국교 정상화 회담 때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이 저우언라이에게 했던 말이 “충동적인 한국인이 유발하는 전쟁을 피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였다.해법은 있다…이성 교육과 언어 정화우리 근현대사의 불행은 역사의 되풀이 구조에 있다. 대통령부터 군중까지…정치부터 외교까지…충동적이고 국가이성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이성을 높이려면 사회가 지적 정직성을 회복해야 하고, 학교에서 수학과 인문학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선생은 눈을 감기 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언어 정화다.언어는 인간의 본질이고 인지능력과 직결되는 이성이며 해당 민족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언어의 오염은 민족정신과 이성의 오염이다. 욕설이 유난히 많은 우리의 언어 습관을 되돌아볼 일이다.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 中)언어 정화로 이성이 밝아지고, 그리하여 나라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해볼 만하지 않은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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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윤석열의 ‘무심한 사람들(careless people)’

    경북 봉화 광산 사고에서 열흘 만에 구조된 박정하 씨의 인터뷰를 들으며 혼자 목이 메인 적이 있다. 혹시 사람들이 나를 포기하면 어떡하나, 구조를 포기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느냐고 7일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가 짐짓 물었을 때다. 목소리도 선한 그가 천천히 말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제가. 왜냐하면 제가 광부들의 습성을 좀 알아요. 동료애라는 건 다른 직종의 동료들보다 굉장히 더해요, 사람들이…진짜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조직 같은 그 형태의 사람들인데, 조금 사람다운 냄새나는 그런 질릴 정도로의 끈기 있는 인간애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절대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끈기 있는 인간애가…그래서 동료들이 절대 구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221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부터 이태원에서 112 신고를 했던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압사 사고 일어나기 전에 경찰이 달려올 것이라고. ● 안전주무장관 이상민이 무슨 고생을 했나 물론 그 안타까운 참사 현장에 늦게나마 달려왔던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광부들보다 훨씬 잘난, 윤석열 정부 꼭대기의 높은 몇몇 분들은 그러지 못했다.오히려 책임회피에 급급한 나머지 질릴 만큼 끈끈한 ‘그들만의 인간애’를 과시해 국민적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심지어 16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은 마중 나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악수하며 “고생 많았다”고 격려까지 했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을 수립·총괄·조정하고 비상대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주무장관이 바로 행안부 장관이다. 윤 대통령은 순방을 떠날 때도 이상민의 어깨를 남들 보란 듯이 툭툭 두드려주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태원 참사를 백날 수사해봐라. ‘내 식구’ 이상민은 못 건드린다…는 신호로 읽히지 않은 분은 손들어보기 바란다.● ‘내 식구주의’에 사회자본이 무너진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같은 날 이상민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피의자 신분에 올려놓긴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표 나게 이뻐하는 충암고 후배 장관을 어떤 간 큰 경찰이 감히 수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대통령의 그런 ‘내 식구주의’ 때문에 윤 정부의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라는 무시무시한 책에서 한국은 한마디로 불신사회라고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진단했다. 그게 벌써 2019년이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이 끔찍해 과반수 국민이 정권을 갈아치운 거다. 그런데 윤 대통령까지 내 식구만 싸고돈다는 건 국민에 대한 ‘배배배신’이다. 그리하여 신뢰라는 사회자본이 추락하면 이 정부만 실패할 공산이 커지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고꾸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우리는 계속 불신·불만·불안·불운·불행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다(노파심에 밝히자면 나는 이상민과 일면식도 없다). ● 위대한 개츠비가 알려준 상류층의 죄이상민의 잘못은 안전과 재난정책, 비상대비의 주무장관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안 보였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사시에 합격해 판사가 됐고 200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퇴직한 뒤에도 그는 거대 로펌 변호사, 대기업 사외이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하면서 사회 지도층으로서 참 폼 나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들은 무심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저것, 동물과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나서는 자신들의 망망한 무심이 자리하고 있는 돈 속으로, 또는 그들을 짝으로 유지시켜주는 그 무엇인가로 되돌아갔고, 자신들이 벌여놓은 난장판은 다른 사람들이 치우도록 했다.’-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말미에서 미국 상류계급(더 정확히는 상류계급의 자격이 없는 톰과 데이지)을 묘사한 대목이다. 여기서 ‘무심한 사람들’(careless people)이라는 표현은 중요하다. 번역자에 따라 careless는 ‘무책임한’ ‘경솔한’으로 나오기도 하고 영한사전에는 부주의한, 조심성 없는, 되는 대로의, 무관심한…으로 등장한다. 이상민이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는 문자인터뷰를 날렸을 때, 상류계층의 이 치명적 무심함이 문득 떠올랐다. ● 이상민 장관, ‘문 정권의 조국’처럼 될 텐가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미국선 세상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 감성이 없으면 상류계층에 못 낀다. 미국서 9년간 미 연방 공무원으로 일한 김명훈이 ‘상류의 탄생’에 쓴 말이다. 지난여름 윤 대통령은 “퇴근하면서 보니 벌써 다른 아래쪽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되더라”고 했던가. 이상민이 눈물을 머금고 물러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 목숨 158명이 사라졌는데 책임지는 공직자가 없다니 X팔려 못 살겠다. 전임 문 정권 때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물러날 때 물러나지 않고 질질 끄는 바람에 정권에 큰 부담을 안겼다. 고교 선배 윤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이상민 사퇴를 계기로 지난 6개월은 없었다 치고, 깨끗하게 새 출발 해주기 바란다. 윤 대통령을 뽑은 국민이 제발 마음 편히 지지할 수 있도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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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윤석열 정부 2기, ‘이상민 경질’로 시작하라

    가슴이 꽉 막히다 못해 터질 것 같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정말이지 뜨거운 울화가 치민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 우리 동네 신경정신과 의원에는 희생자와 아무 관련 없는 보통 시민들이 병원 문 열기 전부터 와서 기다린다고 한다.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건 전 용산경찰서장의 해괴한 행태다. 참사 당일 오후 9시 반쯤 저녁식사 중 용산서에서 상황 보고를 받은 그는 밥 다 먹고, 걸어서 10분 거리를 굳이 관용차를 타고 11시 5분에야 이태원파출소 옥상에 올라가 현장을 지켜봤다. 마스크 없는 첫 축제인 핼러윈데이, 인파가 몰릴 게 뻔한데도 경찰청장부터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까지 조직적 작당을 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일제히 자리를 비웠다. 지난 7월 경찰국 신설에 반발해 전국 총경들이 벌였던 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이 연상될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도 기가 막혔는지 7일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경찰을 질타했다. 이번 참사의 책임을 경찰 책임으로 규정하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앞세워 경찰 ‘개혁’을 제대로 해낼 태세다. 그러나 경찰만 붕괴된 게 아니다. 참사 발생 직전인 오후 10시 12분 ‘숨을 못 쉬겠다’는 119 신고에도 구조대원은 출동하지 않았다.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목소리에 생기가 있어” 출동하지 않았다니, 숨이 막힐 노릇이다. 이런 소방청과 경찰청을 다 거느린 관청이 행정‘안전’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작년에 구축을 완료한 재난안전통신망도 행안부가 관장한다. 그 행안부 수장 이상민은 참사 다음 날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무책임하고 무식하게 말해 국민 염장을 질렀다. 나중에 ‘깊은 유감’을 표했지만 이상민은 이미 주무장관으로서의 신뢰를 잃었다. 대통령과 고교·대학 동문이어서 절대 안 잘린다고 믿기 때문인지 8일 국회에서 그는 “경찰에 대한 지휘 권한이 없다”고 했다. 6월 경찰국 신설 기자회견에선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청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휘 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해놓고는 한 입으로 두말한 거다. 그러고도 사고 수습, 재발 방지책 마련을 하겠다니 윤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이 의심스럽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실에 있음을 8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의 국회 답변 태도를 보고 느꼈다. 그는 이번 참사에 대해 “사의(辭意)를 표한 사람도 없고, 건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이것도 후진적으로 본다”는 오만방자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국가는 분명히 없었던 것”이라고 총리가 인정을 하는 상황에도 스스로 책임지는 주무장관, 대통령 참모 한 사람 없는 나라는 선진국이냐고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긴 트라우마와 끈질긴 정치화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밀리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을 모르지 않는다. 진솔한 사과와 문책에 인색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출범 전부터 ‘윤석열 퇴진’과 ‘체제전환’을 꾀해 온 좌파세력의 준동에 두 번 속을 국민은 많지 않다. ‘2014년 지방선거에 세월호 사건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서강대 이현우 교수의 논문을 보면, 세월호의 영향을 받았다는 유권자의 60%는 지지하던 정당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극은 2016년 총선 때 ‘진박’ 공천과 국정농단 때문이지 세월호 사과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윤석열 정부 출범 반년이 지났다. 전임 문재인 정권의 비정상을 바로잡는 국정운영의 방향은 맞다 해도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나만 옳고, 내가 많이 안다고 믿고, 혼자 말하는 스타일이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런 리더십이 검찰 고위직의 특징이라며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냉혹하게 묻지 않으면 실패한다”고 했다. 2021년 6월 21일 윤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그리고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 눈에 실력주의’인 데다 안팎으로 내 식구만 챙기는 독불장군 리더십에 분노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마침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떠난다. 돌아올 때는 새로 취임하는 것처럼 다시 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 2기’는 이상민 장관 경질, 대통령실 쇄신으로 출발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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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장동 게이트’ 예견한 이재명의 석사논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지금은 수습과 위로에 총력을 다할 때라고 했다. 공당(公黨)의 대표다운, 책임질 줄 아는 자세다. 그처럼 자신의 석사 논문 표절과 학위 반납을 강조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가천대(2005년 당시 경원대) 행정대학원 논문에 대해 작년 말 대선 과정 때는 “인용 표시를 다 안 해서 표절을 인정하고 (2014년) 학교에 반납했는데 안 받아주더라”고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서…일 것 같지는 않다. 대선 뒤 가천대가 그의 논문을 재조사한 결론은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였다. 도입부와 배경 설명에 일부 인용 부실이 확인됐지만, 연구 결과 등 핵심 영역은 베끼지 않았다는 거다. 어쩌면 이재명은 바로 그 ‘핵심’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눈 비비고 다시 본 논문 제목이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심지어 2쪽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지방정치과정에서의 부패는 중앙정치와는 달리 극복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자체장 부패는 견제수단 없다 중앙정부의 부패는 공직자 탄핵이나 해임 등 제도적 견제장치가 있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도 활발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방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견제수단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재명은 논문에서 지적했다.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 솟는 것 같았다. 그때 벌써 이재명은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자체에선 ‘대장동 게이트’ 뺨치는 부정부패가 벌어져도 견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논문 쓸 당시 그는 ‘성남시민모임’ 활동도 하고 있었다(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 나온다. 성남시는 경기 동부지역 운동권이 집결하는 곳이라고도 했다).이 석사 논문은 그래서 신기하다. 2005년 논문인데 어째서 대장동 냄새가 날까(어떤 것은 성남FC 냄새까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본문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독자가 판단하시기 바란다. ● 민선단체장 선거자금 받되 합법적으로 지방정치의 부패문제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중략) 민선단체장과 의원들의 선출과정 및 업무수행과 관련된 것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중략) 주로 당선이나 재선을 목표로 선거자금을 조성하거나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이익이나 혜택 편의를 제공하거나 권한이나 예산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경우일 것이다.(14쪽)부패의 수단을 중심으로 볼 때, 각종 인허가권 및 규제건과 관련된 부패, 조직 및 인사와 관련된 부패, 평가심사•통제•감독 권한을 직접 이용하거나 그 권한을 가진 하위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권 개입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15쪽)실제로 지방정치가가 업무와 관련되어 돈을 받는 경우에도 대개 합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고, 잘못된 정책 결정이나 집행을 하는 경우에도 절차나 형식을 위배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27쪽)-이재명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경원대학교, 2005년) ● 토지개발 용도변경 과정에서 특혜 석사논문을 쓰면서 이재명은 지자체장이 어떻게 필요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지 ‘영업비밀’을 알아낸 듯하다.(지방)단체장이 축재 또는 차기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주로 이용하는 통로도 건설 분야다. 지자체마다 쉴새 없이 대형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공사를 벌여야 ‘떡고물’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1쪽)특히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은 요기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자체별로 특색있는 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재정확충을 위해 개발사업을 많이 시행하게 되는데, 토지개발•용도변경•계획설계 과정에서 정보유출•특혜 등이 발생한다.’(33쪽) 그러면서 이재명은 지적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2005년 논문에서다. ‘우리의 지방자치, 이 중에서도 선출직 공직자는 권한은 크되 통제감시장치는 미흡해 독선과 전횡이 가능한 상태에 있다.’(46쪽) ● 성남시에서 인허가권 사유화됐다고? 성남시는 민선 8기 성남시장의 공약에 따라 6~7월 정상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10~2022년의 시정을 평가했다. 이재명의 논문 핵심과 비슷하다는 건 신기하기 짝이 없다(그래서 그 논문을 제발 취소해달라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게 해달라고 했던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지난 12년 성남시정의 특징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행정을 통해 인•허가권이 출자수단으로 바뀌어 사유화되고, 인사권은 이러한 편법과 불법을 기획 내지 묵인하는 공직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남용되었다는 것임. 이 과정에서 시 내부감사 기능은 전무하였고, 시 의회의 견제 기능도 충분하였다고 보기 어려움’성남시 정상화특별위는 보고서 맨 첫머리에 대장동 사건 특별보고를 올리고 다음의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재명에 대한 수사 의뢰, 위법한 인허가권 행사에 관한 특별감사 권고, 범죄수익 환수방안 마련.’ 보고서 맨 마지막에 이재명의 친형 고 이재선 회계사 사건이 ‘인권 침해 문제’로 거론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인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측근들의 비정상적 행정을 지적했던 ‘내부 고발자’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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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민주당은 왜 이재명에게 더불어 볼모로 잡혔나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남욱 변호사(수감 중)는 작년 10월 18일 수사를 받겠다고 미국서 제 발로 귀국한 사람이다. 그가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국에 며칠만 일찍 들어왔으면 (여당) 후보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네요.”(2월 27일 보도) 남욱 귀국 8일 전, 그러니까 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선출한 상태였다. 누적 최종투표율 50.29%. 8월 말 불거진 대장동 의혹 때문에 이재명의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었다. 이낙연 후보 측에선 이재명 대장동 사업 당시 성남시장의 배임 혐의와 구속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때 남욱이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9일 체포돼 사흘 만에 구속됐다. 남욱은 대장동 민간사업자 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 소유주다. 그는 벌써 감을 잡았던 거다. 자신이 2021년 4∼8월 유동규(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에게 전달한 8억여 원이 여당 대선 후보 경선에 흘러갔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정권이 바뀌면서 검찰도 제자리를 찾았다. 남욱의 폭탄선언을 뭉갰던 ‘문재인 검찰’이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에 따르면 이재명 대선 캠프 조직을 맡았던 김용이 작년 2월 정치자금 20억 원을 유동규→남욱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남욱이 가만 생각해보니 시기적으로 봐서도 자신이 정민용 변호사를 통해 유동규→김용에게 전달한 돈이 대선 경선에 쓰인 게 아닌가 싶었을 터다. 물론 김용은 자금 수수 자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재명이 24일 검찰의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무실 압수수색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서 이 역사의 현장을 잊지 마시고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꼭 지켜주시기 바란다”며 울먹인 것은 황당하다. 검찰은 여당 대선 후보라고 봐주느라 안 했던 수사를 이제야 하는 것뿐이다. 바로 그 검찰 수사가 두려워 이재명은 대선 낙선 석 달 만에 불체포 특권을 노리고 보궐선거에 나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고도 민주당을 ‘이재명당’으로 만들어 보호막을 쌓겠다고 당 대표로 나섰고, 검찰이 기소해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방탄 당헌’으로 고쳤다. 국가로 치면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개헌을 한 꼴이다. 민주당이 이재명에게 볼모로 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유서깊은 제1 야당이 ‘이재명당’으로 탈바꿈했다. 정당의 사유화다. 2024년 총선을 앞둔 민주당 사람들은 당 대표의 공천권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이재명은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꾸려 친문 인사들을 대거 배치하기까지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전 정권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친명으로 전향해 이재명 자신부터 살려내라는 의미일 터다. 이런 이재명에게 “그만하면 됐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달라”고 옳은 소리를 한 김해영 전 의원에게는 ‘개딸’들의 욕설이 쏟아졌다. 정말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2차 세계대전 중 미 전략사무국이 극비보고서로 발간한 ‘히틀러의 정신분석’을 보면, 아돌프 히틀러는 특히 여성에게 보호본능과 안쓰러움을 자극했던 지도자였다. 이재명이 개딸들에게 유독 신경 쓰는 점이 기이한 것도 이 때문이다. 23일엔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5개월 만에 직접 글을 올려 지지자들에게 결백을 호소했다. ‘화천대유 대선자금이라니, 동기 없는 범죄’라며 “이 터무니없는 음해를 널리 알려 달라”는 거다. 이재명이 동정심을 호소하듯 수시로 눈물을 보이는 것도 히틀러를 연상케 한다. 어린 시절 부친의 폭력에 시달렸고, 선전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인간심리를 꽤 파고들었다는 점도 흡사하다. 이재명은 ‘설득의 심리학’ 등 수십 권의 심리학 책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을 연구했다고 2017년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밝힌 바 있다. 불굴의 정신을 지닌 히틀러처럼 극도로 실패한 뒤에도 바로 재도전하는 이재명이 존경스럽긴 하다.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도 비슷하다면, 앞으로도 이재명은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여당을 적처럼 비난하며 극단으로 나라를 몰고 갈지 모른다. 검찰이 누가 봐도 공정한 수사로 민주당을 최면에서 깨워주기 바랄 뿐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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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김정은 비핵화 의지’ 보장했던 文, 어떻게 책임질 건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재임 중 마지막 신년 회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2021년 1월 18일, 그러니까 북한 김정은이 8차 당 대회에서 전술핵무기로 남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처음 공식화한 지 닷새 만이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 수역에서 북한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구조하라는 말 한마디 않던 대통령이다. 그런데 어떻게 공감능력을 발휘해 김정은에게는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자신했는지 궁금하다. 문 전 대통령은 “다만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그 대신에 미국으로부터 확실하게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고 또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는 했다. 2018년 3월 정의용 대북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북측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덧붙인 것과 똑같은 말이다. 마치 비혼(非婚)주의자가 결혼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 강남 아파트 한 채 사주고 또 대통령도 시켜주면 고려해 보겠다고 덧붙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결혼하기 싫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쪽에서 분명 결혼한다고 했으니, 미국이 호화 아파트와 대통령 자리부터 내놓으라고 중매쟁이 노릇을 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문 전 대통령이 잘못 본 대목이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미 국무부 동아태지역 박정현 부차관보가 ‘비커밍 김정은’에서 분석했듯, 김정은은 보기와 달리 샤프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왕조 세습에 성공한 김일성에게 노하우를 배운 김정일의 아들이다. 체제 안보는 물론 정통성 확보에 핵이 필수적임을 안다. 부친 사망 두 달 전 리비아의 원수 알 카다피의 죽음을 보고 절대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되새겼다. 적절할 때 방향을 전환하고 전술을 바꾸는 탁월한 능력까지 갖췄다. 그가 ‘연장자를 제대로 대접(하는 척)하는 데’ 문 전 대통령이 넘어갔을 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 특히 북한의 협상엔 공식이 있다는 것쯤은 문 전 대통령도 알아야 했다. ①큰 원칙에 (때로는 감동적으로) 합의한다 ②합의를 멋대로 해석해 세부 합의를 이끌어 내려 한다 ③제 뜻대로 안 되면 일방적으로 결렬을 선언한다 ④상대에게 결렬 책임을 전가하는 식이다. 문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2018년 북-미 싱가포르 회담과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은 정확히 이 공식에 따라 진행됐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도 감동의 도구였을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몰랐다면 한심하고, 알고도 국민을 속였다면 그 죄를 씻기 어렵다. 국민 앞에 미안했는지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문재인의 5년 대담’에서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긍정적이냐’는 질문에 “지금은 평가하기에 적절한 국면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됐고 이것은 분명히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제 북한이 선제타격을 포함한 핵무력 법제화에 이어 전술핵 운용 부대의 실전훈련까지 하는 상황이 됐다. 여권 일각에선 전술핵 재배치론까지 언급되고 있다. ‘대담’ 당시 문 전 대통령은 “북이 핵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한국도 핵을 가져야 된다라는 주장이 비등해질 수 있는데 정치인들이 삼가야 할 주장,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 기본이 안 된 주장이고, 정말로 나무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문 전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군사경계선 상공에서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9·19남북군사합의를 체결해 우리 안보를 위태롭게 만든 사람이 바로 문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9·19합의를 체결한 뒤 ‘사후 통보’해 동맹국을 격노시켰다고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문재인 한국에 재앙’이라는 책에서 폭로했을 정도다. 남한 내 주사파들은 최근 “조선이 전술핵무기 10종을 보유했다”며 “조선의 핵무력 입법화는 72시간 내 가능한 ‘남조선해방전쟁’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선전선동까지 하고 나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어렵게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번영을 누릴 것이며 안보를 확보해줄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잊혀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서도 뜬금없는 책 소개로 소일하는 듯하다. 여러 세대에 걸쳐 북한 독재자에게 핵 선제공격까지 가능하게 해준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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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진영논리와 조작 방송

    29일 신문칼럼으로 쓴 ‘MBC 광우병 사태와 윤 대통령의 자유’엔 악플이 어마무시하게 달렸다. 나가 죽으란 소린가, 잠깐 고민했지만 내 월급엔 악플값도 포함돼 있다고 본다. 독자의 표현의 자유도 존중한다.다만 “조작선동을 언론자유로 포장하지 마라” “좌파(더 노골적으로는 좌빨)신문으로 가라”는 호통에는 독자와 소통할 필요를 느꼈다(“일기는 일기장에...” 또는 “지면이 아깝다” 하실 독자를 위해 ‘도발’은 인터넷에만 뜬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PD수첩 광우병’은 왜곡방송 맞다 2010년 2월 1일 나는 ‘엄기영 사장의 MBC 해사(害社) 행위’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남들이 아무리 우긴대도 MBC엄기영 사장은 알 것이다. 인간광우병을 다룬 ‘PD수첩’이 오보인지 아닌지를. 왜냐하면 엄 사장은 사실(fact)을 중시하는 기자 출신이기 때문이다. 단 하루라도 언론사 물을 먹었다면 무엇이 오보인지 기자는 안다. 그래서 기자에게 “넌 기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넌 인간도 아니다”보다 치욕적이다...일주일 만에 엄기영은 스스로 사퇴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이사진 개편을 강행했다는 이유지만 칼럼도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이랬던 내가 광우병 PD수첩이나 이번 MBC자막 처리를 무조건 편들 리 없다. ● 자식들은 미국유학 보내는 반미 좌파당시 제작진의 의도는 의심스럽다. 미국산 쇠고기 먹고 죽었다는 사람 못 봤다.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광우병 위험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는 지금도 한미동맹 깨트릴 꼬투리만 보이면 단체 이름만 바꿔가며 죽창 들고 나타나는 좌파진영 집합체다. 이들의 위선은 미국에 대한 이중성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제 자식들은 미국 유학 잘만 보내면서(그것도 우리 국민 혈세나 시민단체 성금으로!) 선동선전과 조작질을 하는 데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민간인 생각엔 정말 분하기 짝이 없지만, 2011년 대법원은 PD수첩이 핵심적 내용을 왜곡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대해선 무죄를 확정했다.이번 ‘바이든’ 자막처리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런말한 적 없다는 말을 믿는다. MBC의 의도적 ‘데이터조작’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한 중재 과정 없이 대통령이 사실상 수사 지시를 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2011년 대법판례에 비춰볼 때,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은 무죄가 나올 공산이 크다고 나는 봤던 거다. ● “제 2의 광우병 보도 거리 없나...”마침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비속어 발언이 한국에 전해지기 하루 전날인 9월 21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주최 미디어 토론회가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김장겸 전 MBC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현재 공영방송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완전히 장악한 노영 언론이라 할 수 있다. 박성제(MBC사장) 김어준(뉴스공장 공장장)의 말에선 오직 진영논리만 우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지금은 제2의 광우병 보도 거리가 없나 냄새 맡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돈다.”다음날 윤 대통령은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는 ‘바이든’을, 하고많은 방송 중에 하필 MBC가 맨 처음 자막에 넣어 방송했다. 심지어 방송이 되기도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막말 외교’를 비난했다. 국힘당으로선 대번에 제2의 광우병 선동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을 거다. ● 좌파언론과 우파언론의 차이내가 꽂힌 건 다른 대목이었다. MBC와 김어준에게는 오직 진영논리가 우선이라는 것! 최근 조갑제닷컴에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가 이런 글을 올렸다. ▶좌파언론은 좌파 인사가 잘못했을 때, 침묵하거나,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감싼다. 잘하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선전한다.▶좌파 언론은 우파 인사가 잘못했을 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몇날 며칠 한목소리로 공격한다. 편향됐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우파언론은 우파 인사가 잘못했을 때, 절대로 침묵하지 않는다. 따끔하게 지적하고 비판한다. 잘하면 침묵하거나 드라이하게 사실만 보도한다.▷우파언론은 좌파 인사가 잘못했을 때, 따끔하게 지적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보통 1회성에 그친다. 잘하면 드라이하게 사실을 보도한다. 편향됐다는 말을 가장 무서워한다. 한마디로 진영논리는 좌파언론의 전유물이란 얘기다. 독자들이 내게 왜 윤 대통령을 비판하느냐, 너도 좌빨이냐 야단치는 것도 이런 언론 분위기에 익숙지 않아서라고 본다. 우파든 좌파든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감시견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 역할이라고 나는 배웠다. ● 자유주의자 아롱 “권력 비판이 기자의 역할”언론뿐 아니다.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프랑스 좌파 지식인 장 폴 사르트르조차 “비앙쿠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소련의 현실에 침묵했다. 르노자동차 공장이 있는 곳이 비앙쿠르다.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의식을 약화 시키지 않으려고 사르트르는 소련의 강제수용소와 전체주의 체제를 태연하게 외면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도 대선 전 ‘7시간 녹취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박근혜를 탄핵시킨 건 진보가 아니라 보수”라고 했던가. 우파 정치인이 잘못할 경우, 좌파처럼 진영논리로 싸고돌지 못하는 측면이 우파에게는 있다.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그리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우파 지식인 레이몽 아롱(1905~1983)은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념적으로 가까운 대통령이든, 자신이 투표한 정권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았다. ‘자유’를 강조해 마지않는 윤 대통령이기에 기록을 위해 적어놓는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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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MBC 광우병 사태와 윤 대통령의 자유

    입찬소리는 무덤 앞에서 하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보수나 진보나, 검찰 출신이나 변호사 출신이나, 정권만 잡으면 다 마찬가지라면 허망하다. 대선주자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이 특정 사건에 대해 시시콜콜 수사 지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작년 10월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으로 국민이 분노로 들끓을 때였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자 그는 “청와대가 정치적 목적으로 하명수사를 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열혈청년처럼 다짐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26일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다. 먼저 진상이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며 자신의 ‘뉴욕 비속어 발언’ 첫 보도를 한 MBC에 대해 사실상 수사를 지시했다. 사실과 다른 보도란 윤 대통령이 ‘바이든’ 아닌 ‘날리믄(면)’이라고 말했는데도 MBC가 확인과정 없이 ‘바이든은 쪽팔려서’라고 화면 자막처리 했음을 뜻한다. 수사당국은 칼날을 갈고 있을 것이다. MBC가 윤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으로 자막을 조작하고 적극 유포해 정보통신망법과 형법(명예훼손)을 위반했다며 국민의힘은 대검찰청에 고발할 작정이다. 그들은 이번 사태가 ‘제2의 광우병 선동’이라고 본다. MBC가 조작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선동하는 것이 이명박(MB) 정부 때 광우병 사태와 똑같은 양상이라는 거다. 2008년 5월 MBC PD수첩이 허위 내용을 일부 보도했던 건 사실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인에게 광우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둥 ‘뇌 송송 구멍 탁’ 식의 공포 방송에 여중생까지 촛불시위에 나섰다. MB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권에서 제작진 상당수가 영화를 누린 것도 희한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2011년 9월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공공성을 근거로 한 보도이므로 왜곡·과장 보도는 인정하지만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 헌법이 보장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다. 그래서 여권에 알려주고 싶은 거다. MBC를 고발해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될 것이니 괜한 고생 하지 말라고 말이다. MB 정부 때 한국 경제 위기론을 인터넷에 퍼뜨린 ‘미네르바 사건’도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래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발한다는 것도 말리고 싶다. 대통령을 포함한 공무원은 공복(公僕·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다. 공복의 명예란 국민이 인정해줄 때만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스스로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든’이라고 한 적 없다는 건 분명하다면서 ‘이 ××’ 발언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통령으로 인해 적잖은 국민의 명예가 훼손됐지만 꾹 참고 있다. 정부는 미국 측에 해당 발언이 미국에 대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고, 미국은 ‘문제가 없다’, 즉 동맹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만일 대통령실 보도자료대로 ‘미 인플레감축법(IRA), 금융안정화협력(유동성 공급장치 포함), 대북 확장억제 관련 정상 차원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MBC에 책임전가를 하려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20일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협력해 국제사회의 복합적 위기를 극복할 것”을 강조했다. 국제사회 위기 극복까지 갈 것도 없다. 대통령 혼자 누리는 자유는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집권당 젊은 대표가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고 말했다고 대통령 불경죄로 찍히는 나라에서, 어떻게 자유를 공유하고 협력하자고 세계인 앞에 외칠 수 있는지 답답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을 계륵(鷄肋)이라고 쓴 모 신문사 논설위원을 겨냥해 “대통령이 닭고기냐”며 출입기자를 징계했던 16년 전 청와대와 징그럽게도 닮았다. 윤 대통령에게 진상규명을 진언했던 측근을 경계하기 바란다. 1997년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위기 상황이다. 대통령을 엉뚱하고 소모적인 일에 집착하게 만들고, 중도층과 ‘멀쩡한 보수’까지 등 돌리게 하는 간신들이 대통령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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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우리 남편 바보”…녹취록은 ‘윤석열 리스크’였나

    난데없는 전 국민 듣기 평가가 벌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방문 중 비속어 논란 때문이다. XX는 미국 아닌 한국 국회를 겨냥했다는 게 대통령실 해명인데 그 말이 맞는대도 문제다.내 귀에 XX가 들리냐 안 들리냐가 충성경쟁으로, 진영논리로, 어지럼증으로, 심지어 보도윤리와 국익의 충돌로 번지는 와중에 불현듯 ‘김건희 녹취록’이 떠올랐다. 1월 중순 MBC ‘스트레이트’ 방송 전,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7개 내용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한 게 유출됐었다. 그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판결문 유출되는 바람에 널리 알려져그 말은 전파를 타지도 않았다. 판결문이 유출되는 바람에 카톡으로 퍼졌을 뿐이다.지지율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던 국민의힘은 반색을 했다. 김 여사의 ‘걸크러쉬’가 작렬하면서 윤석열 동정표까지 몰고 왔던 거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놓쳤던 걸 생각하면, 섬뜩하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챙겨줘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윤석열 리스크’. 김성회 전 종교다문화비서관이 임명되기 전에 썼던 ‘평건 공주와 바보 윤달’ 칼럼은 아부가 아닌 진실이었다는 얘기다.김 여사가 옆에 없어 비속어 튀어나왔나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이 다 돼간다. 그간 정부가 한 일이 대통령실 이전, 대통령이 이XX 저XX 했다는 국힘당 젊은 대표 축출 말고 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윤 대통령 부부가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도 못한 게 알려진 22일,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20%대로 도로 추락했다. ‘잘하고 있다’는 달랑 28%. 전주에 비해 5%포인트 떨어졌다.국내 문제로 죽을 쒔으면, 이번 뉴욕 방문에서 유능한 일류참모들이 바이든과 한미정상회담 자리를 마련하고 윤 대통령이 보란 듯 한국산 전기차 차별대우 문제 해결해 냈다면 지지율도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비속어라니. 바이든과 악수할 때 김 여사가 옆에 없어 비속어가 튀어나왔단 말인가.차라리 김 여사가 스스로 박사학위 반납하시라윤 대통령은 이번 귀국길 비행기 간담회를 갖지 않았다. 7월 스페인 나토 참석 때와는 대조적이다. 난감할 거다. 대통령이 한국 의원들을 XX라고 말한 거라고 해명하긴 했는데, 23일 더불어민주당은 김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연구부정 아니다’라는 국민대 총장 등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단독 채택했다. 국감이 전쟁터가 될 건 뻔하다.국힘당은 당연한 듯 영부인 수호에 나섰지만 국민도 어제의 국민이 아니다. ‘멤버 유지’를 ‘Member Yuji’로 썼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그렇다면, 정공법밖에 없다. 애먼 국민대 총장이 곤욕을 겪기 전에 김 여사는 박사 학위를 반납한다고 밝히기 바란다. 대선 후보 시절인 작년 12월 14일 윤 대통령은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학문적으로 표절이라 학위를 인정하기 곤란하다면 아내의 성격상 스스로 반납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부인 성격을 잘못 안 것이 아니라면, 이게 맞는 길이다. 그러고 나면 김 여사가 무슨 활동을 해도 ‘위조를 한 얼굴’ 같은 생각은 안 들 듯하다. 6200만 원 짜리 목걸이를 빌린 거라고?국민 앞에 떳떳하려면 재산문제도 분명해야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식은 수사 중이니 두고 본다고 치자. 요즘은 명품보석을 내가 갖진 못해도 얼마인 줄 다 안다. 인터넷에 다 나온다. 깜빡 잊고 제대로 못 했다며 이제라도 재산신고 하시라. 이번 해외 순방 때 한 개도 안 걸쳤다고 국민이 잊어먹은 게 절대 아니다.김 여사가 스페인 나토 참석 때 착용했던 반 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는 6200만 원, 비행기 안에서 재클린 케네디처럼 대통령을 내려다보며 흰 원피스 위에 달았던 티파니앤코 아이벡스 클립 브로치는 2610만 원, 6월 지방선거 때 팔목에 겹쳐 했던 까르띠에 팔찌가 1600만 원이었다. 500만 원 이상은 재산신고 대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보석도 재산신고 안 했다고 비교하지 말기 바란다. 김 여사 것은 명품인지 알 수 없어 값을 매기기 힘들지만 건희 여사 것은 다르다. 재산이 70억원이나 되는 김 여사가 이런 명품을 지인에게 빌렸다니, 김 여사 반려견 토리가 배를 잡고 웃을 판이다.‘김건희 리스크’ 단호히 정리하시라앞으로는 김 여사도 대통령을 바보 취급하는 일은 삼갔으면 한다. 윤 대통령도 바보가 아니라면, 그리고 국민을 진정 존중한다면,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을 ‘XX’라고 비하한 것을 사과해야 옳다.정치를 처음 하는 대통령이면, 최고의 인력으로 국가를 운영해도 두려울 판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측근 위주로, 그것도 상명하복하는 검찰과 순응하는 관료위주로 인사를 자행해 집권 6개월 만에 대형 외교 참사를 일으켰다. 큰 상처를 받은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부인과 연결된 측근들로 인해 한결같이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정말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지만, 윤 대통령도 불행한 결말을 맞지 않으려면 특별감찰관이든 뭐든 임명해 ‘김건희 리스크’를 끊어내기 바란다. 윤 대통령에게 두 번은 없다. 치열하게 공부해 대통령다운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 김 여사도 그런 대통령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바보를 진짜 좋아하는 여자는, 단언컨대 없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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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여왕님은 민주적인데…대통령들은 왜 제왕적일까

    헌신(獻身·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8일 서거한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헌신이란 이렇게 하는 것임을 보여줬다. 96세에도,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도, 여왕은 우아하고도 기품 있게 지팡이를 짚고는, 한때 군주제 폐지를 외쳤던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와 새 내각 구성에 관한 회동을 가졌다고 했다.그렇게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다 바치고는, 앓을 새도 없이 여왕은 우리 곁을 떠났다. 21살 때인1947년 남아공연방 케이프타운에서 맞은 생일 자리에서 “제 삶이 길든 짧든 모두 국민 여러분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고 선언했던 그 다짐 그대로였다.●나라 위해 아들까지 희생시켰던 여왕내 나라, 남의 나라 할 것 없이 정치적 양극화가 판치는 세상이다. 어떤 정파나 이데올로기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나라와 국민만 위한다는 게 쉬울 리 없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엘리자베스 공주는 군 수송부대 여자국방군에 입대해 대형 트럭운전을 했다. 남편 필립 공은 해군 장교였고 아들 찰스 왕세자도 해군으로 근무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고위층은 물론 고위층 자제들 병역기피가 수두룩한 우리 현실이 많이 부끄럽다). 내 한 몸 나라와 국민에 바치는 게 보통 일인가. 더구나 자식까지 희생시켜가며 오로지 공공, 의무, 통합, 관용, 화해, 애국, 봉사를 실천하는 건 쉬운 일이던가. 이젠 왕이 된 찰스3세는 젊은 날 ‘온전한 왕세자빈’을 구하기 위해 불행한 결혼을 해야만 했던 아픔이 있다. 이혼녀 심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관을 버렸던, 그래서 군주제를 위태롭게 만들었던 큰아버지 에드워드8세 같은 일을 또 벌여선 안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어떤 이념의 대통령이었나 재임 시절 무슨 이유에선지 딸과 손자를 태국으로 내보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핵무기를 쓰도록 법제화한 북한에 대해 하필 (발음도 해괴한) 18일 “정부가 바뀌었어도 ‘9·19 군사합의’는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발언했다. 북한 김정은은 개성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그놈의 합의를 무수히 파기했는데 말이다. 김정은에게 핵포기 의사가 있다고 국민 앞에 거짓을 말했던 문 전 대통령이었다. 정권이 교체된 데는 북한에 굴종적이어서, 안보가 불안해서라는 이유도 적지 않다. 국민의 생명과 안보가 위협받는 판인데도 윤석열 정부는 거짓약속을 존중해야 한다니, 문재인은 대체 어떤 이념을 지닌 대통령이었단 말인가. 정파와 이념에서 자유롭지 않은 대통령제는 미국만 빼곤 한 세기도 안 돼 죄다 실패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지적한다. 심지어 요즘엔 미국서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1년 1월 6일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해 미국 의사당 난립 사건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는 조사까지 진행되는 판국이다. 대통령제가 나라를 망친다는 것이다. ●민주국가 톱10 중 5개국이 군주국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계기로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국민을 하나로 통합해주면서, 모든 국민에게 위안을 주고 화합의 상징이 돼주는 (입헌)군주제가 민주주의에 잘 맞는다는 패러독스가 영국에서 나오는 모양이다(^^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돌아가신 영국이니까요). 이코노미스트 부설 조사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167개국을 조사한 2021년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실제로 글로벌 톱10국가 중 절반인 5개국이 군주국이었다(1위 노르웨이, 2위 뉴질랜드, 4위 스웨덴, 6위 덴마크, 9위 호주).좀 신기하지 않은가. 입헌군주국이긴 하지만 왕을 모신다는 건 현대 민주주의 사회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글로벌 톱20개국으로 넓히면 딱 절반인 10개국에서 왕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11위 네덜란드, 12위 캐나다, 14위 룩셈부르크 그리고 17위인 일본과 18위인 영국. 궁금하신 분을 위하여 알려드리면 한국은 16위였다). ●그런데 왜 대통령들은 제왕적이 되는가민주주의 지수에선 20위까지가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된다. 당연히 입헌군주제이고 모두 의원내각제다. 눈치들 채셨겠지만 일본을 제외하곤 북유럽과 서유럽, 그리고 영연방과 영국(성공회) 개신교 국가들이다. 15~17세기 계몽군주가 자신의 이익보다 국민을 앞세우는 ‘책임정부’와 법치주의를 확립해선 지금까지 군주제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이 지구상의 80%를 지배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대거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로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등 달랑 3곳이다(미국도 ‘결함 있는 민주주의’란다). 선진 군주들은 민주적이지만 후진 대통령이 제왕적인 법이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2차 대전 패배로 사라졌지만 국민을 내 편 아니면 적으로 갈라치는 파시즘은 언제든 나타나는 꼴이다. ●헌법대로 총리가 내치 이끌게 하라우리도 1948년 제헌 헌법을 내각제로 만들었던 비화가 있다. 그렇다고 당장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하자는 건 아니다. 없는 왕을 이제 와 만들어낼 수도 없다. 하지만 왕도 아닌 대통령이, 심지어 청와대도 국민께 돌려드렸다면서, 자꾸만 정파적 제왕적이 되는 것은 불길하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면,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만 인정해도 내각과 의회가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앗...민주당에 대한 협조요청도 필요하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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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이재명 방탄정당에 왜 내 혈세 바쳐야 하나

    꼭 1년 전이다. 장기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더불어민주당 1위 대선주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제기했던 것이. 2021년 9월 12일 그는 “만약 이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며 화천대유라는 신생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사업을 몰아줬고, 회사가 수천억 원 수익을 얻은 상황에서 이 지사 아들이 계열사에 취직했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이재명이 가만있을 리 없다. 다음 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아들 건은 허위 사실”이라며 “대장동 사업은 내가 설계했고 5503억 원을 시민 이익으로 환수한 모범적 공익사업”이라면서 대대적 방어에 나선 거다. 사람의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때 그렇게 들끓었던 대장동 사건이 지금은 ‘몸통 없는 재판’으로 간간이 신문에 언급될 뿐이다. 마침내 8일 검찰이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이재명이 대통령 후보로서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작년 12월 22일 방송사 인터뷰에서 허위 사실을 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날이었다. 민주당은 “역대 어느 정권도 말꼬투리를 잡아 대선 경쟁자를, 그것도 제1야당 당 대표를 법정에 세운 적은 없었다”며 반발했다. 이재명 역시 “정부도 야당 탄압, 정적 제거에 너무 국가 역량을 소모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동의하기 어렵다. 전임 문재인 정권이 검찰과 사법부까지 권력을 사유화하는 바람에 제대로 못했던 대장동 관련 수사와 재판을 이제야 하는 것뿐이다. 특히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인 2015년 민간업체 초과이익환수 조항을 삭제해 6000억 원이 넘는 이익을 챙긴 데 국민은 경악했다. 작년 12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고 김문기 씨는 ‘초과이익환수 조항’을 넣자고 세 차례나 제안했지만 ‘위에서 거부했다’는 자필 편지를 남겼다. 이재명은 재판 중인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사장 직무대리에 대해서도 측근이 아니라고 했던 사람이다. 고인을 모른다고 했던 걸 믿기 힘든 이유다. “누가 보더라도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은 이재명”이라며 “대장동 개발을 설계하고 승인한 (성남)시장은 아무 죄가 없고 그 바로 밑에서 한 사람이 자기 멋대로 했다는 수사 결론이 말이 되느냐”며 대선 나흘 전까지 국민과 함께 분노했던 사람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바로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전임 문 정권은 좌파진영 이권 네트워크를 위해 권력을 사유화했다. 대장동 특혜를 이재명이 알고 허용했다면 사익을 위한 ‘지방권력 사유화’이고, 모르고 허용했다면 무능해서 더 용서할 수 없는 사유화다. 그가 2018년 지방선거 관련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권순일 당시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으로 1억5000만 원을 받고도 무사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공영개발이라는 명분에 대장동 땅을 헐값에 판 사람들, 또 민관개발이라 분양가상한제를 피해 아파트를 비싸게 산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성남시에서 책임진 공직자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심지어 이재명은 대선 패배 뒤에도 책임지기는커녕 보궐선거에 나와 제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까지 하며 표를 호소했다. ‘개딸’의 지지를 이용해 의원직을, 민주당을 자신의 법적 보호막으로 사유화한 셈이다. 불체포특권으로도 안심이 안 됐는지 당 대표까지 차지했다. 향후 선거법 재판에서 권순일 같은 화천대유 연루 대법관이 없어 유죄가 우려될 경우, 당을 볼모 삼아 국회를 마비시킬 작정인지 걱정스럽다. 추석 전 검찰의 출석 요구에 대장동 아파트를 보유한 이재명 측근은 “전쟁입니다” 문자를 보냈다. 당 대표 보위에 똘똘 뭉친 ‘이재명의 민주당’을 위해 정부는 올해 3분기까지 166억5887만9610원이나 되는 혈세를 국고보조금으로 내줬다. 선거가 있으면 정당은 돈 버는 해다. 올해는 대선을 치르느라 224억 원, 지방선거 비용으로 237억 원의 혈세를 더 퍼주었다. 우리 헌법이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놨지만 내가 지지하지 않는 당 대표가 방탄정당을 운영하는 데 내 혈세를 쓰는 건 참을 수 없다. 이재명은 당당히 수사받기 바란다. 정 방탄조끼를 입어야 한다면 개딸들의 당비로 사 입으란 말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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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압도적 지정학과 밴댕이 정치Ⅱ…압도적 영화 ‘한산’

    “간절히 청컨대 대답해 주시오. 대체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의(義)와 불의의 싸움이지.”“나라와 나라와의 싸움이 아니란 말입니까.”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에서 이순신 장군은 바로 답하지 않는다. 대단원에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아니다. 더 나아가자.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나라와 나라의 싸움은 아니라 해도 일본은, 또 중국은 제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하필 이 나라에서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에 따라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는 뒤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 지정학은 운명처럼 압도적이었고 그에 비해 국내정치는 밴댕이처럼 쪼잔해 보인다.● 지정학에는 ‘의(옳을 義)’가 없다‘한산’을 본 뒤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일본은 가만있는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을까? 불의해서?학교 때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에 성공한 뒤 남아도는 무력을 국외로 돌려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배웠다. 공명심에 대륙침략의 망상에 빠졌다고도 했다.이렇게 보면 나쁜 놈 하나만 제거하면 평화는 이룩된다. 그러나 최근 한일연구는 16세기 동아시아 정세 변화의 흐름 속에 임진왜란을 파악하는 추세다. 특히 일본에선 정유재란의 원인을 일본 군수경제를 위한 조선 남부 경상도 지역의 영토 확보와 동아시아 무역 재개에 있다고 본다고 상명대 김문자 교수는 2020년 논문에서 밝혔다. 결국 교역과 경제안보가 관건이었던 셈이다. ● 16세기나 21세기나 교역과 경제안보는 중요유교적 문약(文弱)에 빠져 빈곤도 자랑스러워하는 조선이나 교역과 담을 쌓고 살았지,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시아 대항해의 시대, 일본은 송나라 원나라와 활발히 교역했는데 명나라는 ‘조공무역’으로 돌아서면서 민간의 해상무역을 금지했다.우리 조상은 일본을 ‘성인의 교화를 받은 적 없다’며 우습게 봤지만 당시 일본은 세계 은 생산액의 3분의 1을 산출하는 부유한 나라였다. 일본을 재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국을 중국과 동등한 나라로, 동아시아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했다. 1차 전쟁 목적인 명 정복이 어려워지자 나중엔 조선을 발판으로 중국-필리핀까지 이어지는 동아시아 지역의 통상권을 주도하려 했다는 거다. 임진왜란은 그냥 과거가 아니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과 6·25전쟁을 거치며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체제에 편입됐지만 중국은 다르다. 10월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3연임이 예상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과거 중화제국의 부흥, 조공질서의 부활을 공언한다. 최근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전략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전기차와 반도체 수출 문제까지 돌아보면, 좁만한 권력다툼에나 골몰하는 정치판은 예나 지금이나 뭐가 다른가 싶어진다.● 당의 한반도 정복이었나, 신라의 통일이었나 ‘한산’에 명나라까진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을 돕기 위해 참전했다지만 실은 ‘하찮은 속국 원조’가 아니라 요동과 북경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광해군 때 명나라는 밝혔다. 6·25 전쟁 때 북한을 위해 참전했다는 중공군을 연상케 하는 발언이다.중국은 과거에도 이 땅에서 일본과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동북아 분야 석학 에즈라 보겔은 “660년 당나라가 동맹인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침입하자 백제는 일본에 원조를 요청했다”고 2019년 저서 ‘중국과 일본’에 썼다. 왜까지 참전한 백강전투에서 승리한 중국은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다 신라에 의해 대동강 이북으로 물러났다.이후 왜는 압도적 당나라군에 패전한 경험에서 말을 길러 기마공격을 벌이게 됐고, 그 힘으로 신생 일본국을 수립해 번영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우리는 학교 때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당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다’고 배웠지만 세계적 시각에선 달랐던 거다. ● 달라지지 않는 중국, 강대국의 실체명나라는 1593년 벽제전투에서 일본에 패하자 조선과 상관없이 일본과 강화교섭에 들어간다. 자강의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이는 조선에 대해선 문약을 극복하고 무비(武備)를 키울 것, 은광(銀鑛)을 개발하고 화폐를 유통시켜 국부(國富)를 키울 것, 세금을 경감하고 형벌을 절제해 백성들을 안정시킬 것, 노비를 해방시키고 인재를 등용할 것 등을 주문했다.틀린 말 하나 없어 가슴이 내려앉는다. 하지만 명나라는 자국의 화기를 빠짐없이 거둬갔고, 조선이 습득을 열망했던 염초 제조법 등을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것이 중국이고, 오늘날도 달라지지 않은 강대국의 실체다. 당나라가 한반도를 정복하려다 신라에 의해 대동강 이북으로 밀려난 것처럼, 일본도 애초 강화조건으로 조선 팔도 중 대동강 아래 남쪽 4도를 요구했다. 6·25 때 중국은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대동강 이북으로 넘어오면 참전한다는 신호를 날리기도 했었다.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했다는 한반도 지정학은 이 나라가 약해질 때마다 넘어져 죽을 만큼 발등을 찧곤 했다. ●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의’다 일본의 식민지로, 6·25로 폐허가 됐던 이 나라가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다는 건 기적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그 안에서 국방 아닌 경제에 전념할 수 있었던 동북아의 실용주의적 리더들이 평화와 번영을 지킬 수 있었다. 미-중 간 그레이트 게임은 글로벌 교역이 전쟁을 막는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을 깨고 보호무역주의로 돌려세우고 있다. 지정학에는 ‘의’가 없을지 모른다. 국제관계에선 이(利)만 있을지 몰라도 인권, 자유,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는 국민에게는 분명 ‘옳을 의’다(권력자에게는 아닐 수 있다). “우리는 대국, 너희는 소국”이라는 패권국가에 더는 머리 조아리지 않는 정치를 보고 싶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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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압도적 영화 ‘한산’…압도적 지정학과 밴댕이 정치Ⅰ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을 뒤늦게 보았다. 2014년 ‘명량’ 이후 8년. 순천 출신인 김 감독은 근 10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끼고 살았다고 했다.마침 올해가 임진왜란이 벌어진지, 그리고 한산대첩이 대승을 거둔지 430년 되는 해다. 물처럼 표정 깊은 배우 박해일을 통해 구현된 이순신 장군은 “이 전쟁은 대체 무엇입니까” 묻는 물음에 “의(義)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답했다. 왜장은 부하를 방패막이로 삼지만 우리의 이순신 장군은 부하를 구하기 위해선 자기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리더다. 이에 감동한 왜병은 항왜(임란 때 조선에 투항한 왜병)가 됐고 충무공은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웅으로, 제발 다시 만나고 싶은 이상적 공직자의 표상으로 추앙받는다. ● 한국인 DNA에 각인된 ‘옳을 의(義)’ 김 감독은 “‘의’의 문제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DNA에 각인돼 있다. 격변의 근현대사를 거쳐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그 중심에는 ‘의’의 코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동의한다. 한중일 문명비교사 ‘풍수화’에서 김용운은 “부당한 일에는 평민도 스스로 들고 일어나 의병이 됐지만 일본엔 그런 의병이 없다”고 썼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표를 주었던 국민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출범 100일도 못 참고 지지를 철회했다. TV사극을 보시라. 수염 허연 신하들도 목숨을 걸고 임금 앞에 엎드려 외치는 게 일이었다. “아니 되옵니다!” 역사가이자 주일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는 1392년부터(임진왜란은 조선 건국 꼭 200년 되던 해 터졌다) 1910년까지 518년 존속한 조선에 대해 “중국의 어느 왕조와 비교해도 두 배나 긴 시간을 유지한 ‘개량적 중국형’의 모범적 유교사회”라고 ‘동양문화사’에서 분석했다. 나라가 작아 더 철저하고도 균일하게, 심지어 교조적 극단적으로 유교 원리원칙에 따른 것이 ‘의’로 나타났다는 생각이다. ● 의견이 다르면 공존 못하는 유교근본주의 “특히 강력한 황제와 중앙행정기관이 기능했던 중국과 달리 감찰기구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3종이나 있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선 볼 수 없는 저돌성으로 왕과 관료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는 ‘동양문화사’의 한 대목은 기자로서 찔리는 바 없지 않다. 유교근본주의에서 정책에 대한 반대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도덕적 사악함이다. 감찰기구를 동원해 죽여 마땅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과의 타협이나 공존을 배신이요, 사꾸라로 여기는 것은 지금도…다르지 않다. 이순신 장군은 의와 불의가 싸우면 반드시 의가 이긴다는 신념을 지닌 지장(智將)이자 덕장(德將)이었다. 그래서 23전 23승을 거두었을 것이다(물론 흠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무수한 덕목이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정유재란은 우리나라가 이겼다고 할 수 없는 전쟁이다. 굳이 의를 찾는다면, 조선은 1599년 난리가 끝난 뒤로도 300년 이상 기신기신 유지됐지만 일본과 중국은 정권이 무너졌다는 것이랄까. ● 망해야 할 때는 망해야 발전할 수도 일본에선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연사한 뒤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1603~1868)로 교체됐다. 중국서도 임란으로 인력과 재정이 고갈된 명나라가 망하면서 조선이 오랑캐로 능멸해마지않던 만주족의 청나라(1644~1911)가 들어섰다. 중국식 엘리트 관료제도의 특징 중 하나가 새 왕조를 통해 주기적으로 원기를 회복한다는 데 있다. 망할 때 망함으로써 새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는 거다. 17세기 초 한국도 새 출발이 필요했다. 그러나 조선은 거꾸로 갔다. 더 경직된 유교에, 지극한 충효사상에 매달리며(중국엔 우리 같은 제사나 차례도 없다) 망해버린 명나라 대신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다. 중국 일본처럼 정권교체 되지 않고 조선왕조가 유지된 것은 지배층인 사림의 권한이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정구복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2016년 논문에 썼다. 무능한 선조는 전쟁이 끝난 뒤 호종공신 90명, 전쟁에서 싸운 장수 선무공신 18명만 달랑 책봉했다가 불만이 들끓자 무려 9060명을 추가 책봉했다. 이들이 왕조 유지에 버팀목이 된 건 물론이다. “심하게 타락한 관료제 국가는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서 오래 유지될 수 있다”는 라이샤워의 분석이 섬뜩한 이유다. 제 백성 뜯어먹어도 나라는 굴러갔다. 그래서 지금도 대통령실에선 검찰과 관료 출신 늘공(늘 공무원)-어공(어쩌다 공무원) 권력다툼이 가열찬 건가. ● 권력자가 의를 반기지 않는다면북역 이조실록은 임진년 7월 병술일(29일) ‘임금이 말하기를 “왜적의 의도를 보면 팔도를 다 차지하려는 것이다”라고 하니 (좌의정) 윤두수가 말하기를 “전라도만은 리순신의 덕으로 보전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적들은 벌써 전라도에도 쳐들어갔다”라고 하였다’라고 적었다.의주까지 피신한 임금이 한산대첩(7월 6~13일)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에 대해 하는 말씀치고는 너무나 냉정하지 않은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요즘 정치인으로 치면 딱 밴댕이다. 못난 권력자에겐 잘난 신하가, 자신은 행하지 않는 ‘의’가 반갑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제왕, 다신 모시고 싶지 않다. 1910년 조선이 망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포함한 ‘건국의 아버지(어머니)들’은 이씨 왕조 부활을 말하지 않았다. 혁명하지 않고도 선거로 정권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는 그래서 좋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권력자가 의를 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 21세기 국제사회에도 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압도적 영화 ‘한산’…압도적 지정학과 밴댕이 정치Ⅱ가 이어집니다. 김순덕기자 yuri@donga.com}

    •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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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

    정말 미안하지만 국민의힘이라는 당명이 아깝다 싶다.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집권당은 ‘보이지 않는 힘’을 업고 젊은 당 대표를 몰아내지 못해 안간힘을 쓴다. 비상이 아닌 상태에서 만든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당 민주주의에 반(反)한다는 재판부 결정이 나왔다. 그러자 115명 의원 중 66명이 당헌·당규를 고쳐 진짜 비상사태를 만들자고, 그것도 박수로 정해버렸다. 이런 편법 탈법 꼼수에 ‘국민’의 ‘힘’이 언급된다는 것이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이보다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당헌 7조 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 조항에서 ‘금지’만 빼면 된다.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 당 총재직을 겸한다’로 바꾸는 거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기법에 따라 Chong Jae직이라 해도 누가 감히 문제 삼지 못한다. 그렇게 당헌을 고치면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여당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앓던 이가 시원하게 빠지고, 2024년 총선 공천은 물론이고 2027년 대선에서 후계자도 세울 수 있다고 본다. 그때까지 민심이 붕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2001년 11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할 때까지는 그랬다. 대통령들이 모두 여당 총재였다. 선거자금과 공천권, 인사권에 특혜성 자원분배권을 틀어쥐고 제왕적 권력을 휘둘렀다. 심지어 5공 때 대통령 전두환은 1985년 2월 노태우 서울올림픽위원장을 당 대표로 임명하고는 “당내 민주화 운운하는데 대표위원이든 누구든 그런 말 하면 사퇴시키겠다”고 경고했다고 당시 실력자 박철언이 회고록에 썼다. 요즘 말로 하면 ‘내부 총질’이다. 신군부 때나 지금이나 권력자는 자기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인을 곱게 봐줄 수 없는 모양이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청 분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내부 갈등이 극심했다”며 초집중화된 청와대정부로 군림했던 통치자가 노무현의 비서 출신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 2021년 “청와대에 여당 의원들이 휘둘리는 것을 바꾸겠다”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지없이 실패했고, 결국 대선 패장이 되고 말았다. 이 모든 걸 모를 리 없는 윤 대통령이 당 총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취임 후 넉 달 가까이 벌어진 일만으로도 대통령은 많은 것을 잃었다. 첫째는 정직성이다. 윤 대통령은 한사코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지만 국민은 안다.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라는 휴대전화 문자까지 노출됐으면 100일 기자회견 때 솔직한 유감 표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의 발언을 챙길 기회가 없었다”며 피해 갔다. 그러고도 여당 연찬회에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참석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도 당무 개입은 무수히 벌어질 것이고, 대통령은 부인할 게 틀림없다. 둘째, 사람 보는 눈을 의심케 한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문자 답변에서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겠다”고 했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뜻을 모으는 사람이지 윗분의 뜻을 받드는 내시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내 사람 밀어 넣기, 지역구 챙기기에 끔찍한 ‘윤핵관’은 위험하다.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박지원은 “재벌은 핏줄이 원수요,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라고 했다. 윤 대통령 곁에 이런 윤핵관이 얼마나 많을지 걱정스럽다. 셋째, 법치도 흔들릴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이던 2020년 12월 2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냈던 징계처분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서울행정법원에 대해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한다”고 했다. 이번 이준석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재판부는 윤석열 정부의 재판부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재판부 존중은커녕 “우리 당 의원들이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앞으로 전임 정권은 물론이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줄을 잇게 된다. 이에 야권이 승복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그때도 윤 대통령은 그쪽 당 의원들이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할 것인가.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대통령다움을, 어렵게 회복하기 시작한 자유민주주의를 잃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특검 시절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고 했다. 민주주의는 복수를 금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오는 것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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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짱깨’의 제국, 중국을 다루는 팁

    ※ ‘짱깨’가 혐오 용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짱개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을 추천함으로써 복권됐다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인 김희교 광운대 교수는 투쟁의 언어는 자국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했다. 2022년 8월 24일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지 서른한 번째 되는 기념일이었다. 우리로 치면 기쁜 광복절인데 그놈의 러시아로부터 전면침략을 당한지도 딱 6개월 됐다. “승산이 있느냐”는 질문에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길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는 대답한 인터뷰 기사는 가슴이 먹먹하다. 그들에게는 승리가 ‘언제’냐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생떼 같은 내 가족이 죽는데, 거의 한국 영토만큼 되는 우크라 땅 5분의 1을 잃었는데, 어떻게 이대로 끝낼 수 있겠나. 지금 푸틴을 멈춰 세우지 않으면 전쟁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란 대사의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번 전쟁은 중국-인도 간 국경 분쟁이나 시리아 내전 같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 권위주의 러시아제국이 과거 지배했던 약소국을 다시 차지하겠다며 패권야욕을 불태운 데서 비롯된, 제국주의 전쟁이어서다. 시진핑, 윤 대통령에 미국 몰아내라 제의 같은 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베이징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축하서신에서 “중한 양국이 좋은 동반자가 돼야 한다”면서도 “양측이 큰 흐름을 잡고 장애를 배제”할 것을 언급했다. 여기서 ‘장애’란 당연히 미국을 뜻한다. 대면만남을 고대한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만남’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유라시아 대륙 또 하나의 권위주의 제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몰아내라고 양국 관계의 조건을 제시한 셈이다. 이는 7월 7일 인도네시아 발리 한중 외교장관 회의에서 박진 외교장관이 밝힌 우리의 외교입장을 거부한 발언이다. 그때 박 장관은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의) 새 정부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중시한다. 자유와 평화, 인권과 법치를 수호하기 위한 국제사회 협력과 공조에 적극 동참할 것이며 한중관계도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입각해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자유와 인권과 법치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이를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중국, 6·25 남침 유감 표명” 밝히긴 했다30년 전 한중수교를 맺은 1992년은 ‘탈냉전’의 시대였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의 상징이었던 낫과 망치가 그러진 붉은 깃발은 1991년 12월 26일 소련 해체선언과 함께 크렘린 상공에서 내려졌다. 중국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는 것이 절실한 시기였다. 한국은 88서울올림픽 성공으로 5000년 한중관계에서 중국보다 당당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기였다. 수교 때 6·25 전쟁 당시 중국이 우리에게 가한 고통에 대한 사과를 ‘문서’로 못 받은 점이 아쉽고 안타까울 정도다. 외무부가 보도 자료를 통해 “중국 측은 6·25 참전은 당시 중국의 국경지대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며 이는 과거에 있었던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세(勢)의 변화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건 중국의 오랜 특징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중간의 세도 변한 탓일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놓고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3각 군사동맹 불가)을 주장하더니 이젠 ‘1한’(배치된 사드 운용 제한)까지 들이대고 나섰다. 거짓도 기정사실화 하는 짱깨중심세상3불이란 2017년 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오매불망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엿 바꿔먹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10월 중국과 그놈의 3불 협의를 했던 남관표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2020년 주일 대사관 국감에서 “합의도, 약속도 한 적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상관이었던 강경화 외교장관 역시 2020년 10월 2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합의가 아니라 협의”임을 확인한 바 있다. 3불에 구애받을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대만의 대(對)중국협상 전문가 린원청이 쓴 ‘중국을 다룬다’에 따르면, 중국은 외교나 협상에서 윈-윈이나 정직을 중시하지 않는다. 국제적 규범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패권적, 자기중심적 중국식 세계관을 갖고 있어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상대국에 지키라고 강요한다. 기만적 전략을 중시하는 고대병법의 전통이 뿌리박힌 데다 ‘협상은 선전수단이고 보복의 도구일 뿐’이라고 보는 공산당 기질까지 감추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이 외치는 사드 3불1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린원청도 “중국이 제기하는 대부분의 원칙들은 일종의 함정”이라고 강조했다. 사드 3불1한 역시 사실이 아닌 것도 기정사실화해버리는 공산당 특유의 전략일 수 있다. 중국이 매우 잘하는 일이 통일전선전술이다. 국익을 외면한 채 그쪽 편에서 섰던 친중 정치인들에게 나라 운명을 맡겼다는 것이 서글플 따름이다. 자유 아닌 기만이 지배하는 중국천하1979년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선 이래 미국은 이 나라가 잘 살게 되면 민주화할 것으로, 우리는 북핵 폐기를 도울 것으로 믿어왔다. 착각이었다. 미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을 개방시켰다고 합리화했지만 실은 중국이 소련 견제를 위해 미국을 이용했다는 분석은 섬뜩하다. 차도살인(借刀殺人)으로 소련을 제거한 다음, 공산정권 수립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이 지배하는 ‘천하의 세계’를 노리고 있다는 게 미국 국방부 고문 마이클 필스버리의 주장이다.이번 러시아전쟁도 중국은 은근히 즐기는 모습이다. 러시아가 길고 고통스러운 전쟁 비용을 치르게 해서 중국이 믿는 ‘서구의 쇠퇴’를 가속화해서는 시진핑은 평소 강조해 마지않는 ‘새로운 변혁기’를 맞을 작정이겠지만, 그렇게 해서 중국은 미국을 능가할 것 같은가. 한때 그런 예측이 숱하게 나온 것도 사실이다. 2028년께 중국의 명목GDP가 미국을 추월해 세계 선두에 오른다고 일본경제연구센터는 ‘2020년’ 예측했었다. 코로나19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했다면서, 애초 2036년 이후를 예상한 중국과 미국 간 GDP 역전이 7년 앞당겨질 것으로 관측했었다. 지금은 중국의 부상(浮上) 아닌 ‘쇠퇴’가 언급된다.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미국 전 재무장관은 19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년이나 1년 전에는 중국 GDP가 미국 경제를 언젠가 확실히 추월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명확하지 않다.” 중국경제가 총체적 난국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많다. 금융 오버행(잠재적 과잉물량), 명확한 미래 성장 동력 부재, 기업에 대한 정부 개입, 생산인구 감소…. 자유 없는 짱깨처럼 살 순 없지 않나한마디로 하면,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라시아 대륙의 침략 제국 러시아처럼, 권위주의 제국 중국에도 개인의 자유는 없다. 개혁개방에 나섰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30년 전 결국 무너진 것도 소련에는 자유로운 금융도시 홍콩이 없기 때문이었다.민주국가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그래서 교정의 매커니즘도 작동한다. 자유와 인권과 법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흔들려도 그래서 다시 지켜진다. “중국은 대국이요, 우리는 소국”이라던 문 정권의 굴종외교를 떨쳐내고 국제사회 보편적 가치의 편에 다시 선 것만으로도 윤석열 정부 출범은 만세 부를 일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자유를 강조한 정부가 집권당 내에선 내부총질마저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다. 그러다 집권당 밖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막으려 한다면…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평화를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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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모른다

    듣고 싶은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17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 그러나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의 사랑 고백처럼 답답하고 공허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사과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은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 치도 국민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국민의 뜻을 잘 받들겠다. 저부터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하기는 했다.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 놓고 국정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민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한번 따져 보겠다”고 답했다. 입때껏 뭘 하다 이제 와 ‘여러 가지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따져 본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통령실부터 인사쇄신을 해야 하는 이유는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밖에 안 돼서다. 대통령의 분신이랄 수 있는 대통령실장이라도 바꿔 대통령이 달라질 것임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장이 미워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연애할 때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해 ‘밥은 먹었느냐, 날씨가 추운데 따뜻하게 입으라’며 늘 전화를 잊지 않았다”던 윤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게 사랑이다. 사랑이 있어야 상대의 뜻을 알고, 공감도 가능한 법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공감했다면 “정치 경험이 많지 않아서, 특히 도어스테핑을 하면서 태도나 말투에서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는 말도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고치겠다”라고 사과했어야 했다. ‘부인 리스크’에 대해서도 “제 처가 당초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과 다른 모습을 보인 점에 대해서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특별감찰관을 속히 임명할 수 있도록 여야가 힘써주기 바란다”고 밝혀야 했다. 그랬다면 국민의 돌아선 마음도 상당 부분 풀렸을 것이다. 그 대신 윤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대통령 소통의 새 모습이라는 도어스테핑에 대해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린다”며 당당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의 ‘집안싸움’에 대한 질문에도 “다른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어떤 논평이나 입장을 표시해본 적이 없다”며 솔직하지 않은 답변을 했다. 차라리 윤 대통령이 통 큰 사과와 수습 의지를 보였더라면 훨씬 대통령다웠을지 모른다. 윤 대통령이 숨차게 소개한 100일간의 국정과제가 간단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17년 8월 17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던 탈원전 정책을 윤 대통령이 폐기함으로써 우리 원전 산업을 다시 살려낸 것만 해도 하늘이 도왔다 싶다. 취임 열흘 만에 한미 정상회담으로 한미 연합 방위태세를 공고히 한 것도 박수 칠 일이다.영국의 더타임스는 최근 중국의 부상(浮上) 아닌 ‘거대한 몰락’을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만에 하나 3·9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했다면 윤 대통령이 어제 강조한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특히 외교 안보 분야에 있어서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이라는 발언은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에게서는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윤 대통령의 어제 기자회견은 현미절편 같다. 영양가는 있을지 몰라도 먹음직스럽지 않다. 5년 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체리 장식에다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처럼 화려했다. 문 대통령은 “서민 괴롭힌 미친 전세·월세를 잡을 더 강한 부동산 대책이 주머니에 많다”고 큰소리쳤고, 탈원전을 해도 전기료는 크게 오르지 않으며, 꼼꼼한 재원 대책으로 재정부담이 크지 않다고 장담했다. 문 정권의 ‘쇼통’에 홀렸던 탓일까. 문 정권 5년간 국가채무는 404조 원이나 늘어났다. 우리 아이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주려면 윤 대통령은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지율을 끌어올려 국민의 협조를 얻어내야만 한다.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분골쇄신이 아니다. 지지율이 중요한 것도 좋은 국정을 위해서다. 무엇보다 인사가 중요하다. 검찰이나 대통령 동문, 코바나컨텐츠 같은 ‘내 식구’만 챙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윤 대통령이 취임 전 내걸었던 ‘공정과 상식’은 한 뼘쯤 올라갈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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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윤 대통령은 ‘실패할 자유’ 없다

    ‘대통령이 5일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대통령비서실 인사를 단행했다. 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비서관 4명을 바꾸는 예상 밖의 큰 규모였다.’ 2013년 8월 6일자 동아일보 1면 톱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은 ‘“성과 없이 신뢰 없다” 청와대 참모 절반 물갈이’. 윤석열 대통령도 휴가 뒤 업무에 복귀하면 대통령실 개편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9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무려 60%다(갤럽). 그런데도 취임 첫해 강하게 국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참모진을 ‘문책성 경질’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윗분의 뜻을 받드는 비서실장을 인선한 것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20%대로 내려앉은 지지율에 위기의식을 느꼈다면,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는 숱한 언론 제언을 일별했다면, 대통령을 바꿀 순 없으니 대신 대통령비서실장을 경질하는 것밖에는 민심을 돌리기 어렵다고 혼자 걱정했다. 이보다 대통령에게는 여당 장악이 더 중했던 모양이다. 이준석이 내부 총질이나 하는 밉상이긴 해도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당 대표다. 그가 한 달 전 당 윤리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자 야권에선 “여당 대표도 피해 갈 수 없는 검찰 캐비닛”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눈엣가시였던 이준석을 팽하고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해줬던) 안철수 의원을 당 대표로 앉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침내 이준석이 사라지자 당정관계가 만족스러워진 때문일까.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고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칭찬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새 비상대책위원회를 차려야 하는 당으로 전락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뜻을 잘 받든’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죄가 있다면 대통령의 이 문자를 들켰다는 거다. 절대 안 한다던 대통령의 당무 개입을 노출시켜 권성동이 대표 직무대행에서 쫓겨난 것까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 89명 중 88명이 대통령 뜻을 받들어 비대위 설치에 동의한 것은 국민의 대표답지 않다. 왜 대통령실 아닌 여당이 ‘비상’이어야 한다는 건가. 여당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게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만에 하나, 윤 대통령이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내세워 국민의힘을 검찰처럼 상명하복 잘하는, 내부 총질 절대 않는 ‘대통령 당’으로 개조하거나 혹은 창당이라도 할 복안이라면 부디 한국 정당사(史)를 들여다봤으면 한다. 이승만 대통령 때 자유당까지는 안 가도 좋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들은 안정적 국정 운영을 명분으로 줄기차게 새 당을 만들곤 했다. 안타깝게도 끝은 좋지 않았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해 만든 민자당은 217석이나 됐으나 1992년 14대 총선에서 득표율 38.5%를 얻었을 뿐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김영삼 대통령도 1995년 신한국당을 만들었지만 15대 총선에서 139석뿐, 불행한 대통령으로 끝났다.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창당한 새천년민주당 역시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133석)에도 못 미치는 115석을 얻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4년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일약 152석을 차지했지만 3년 9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 조화와 협력의 당정관계가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최고의 시민 결사체는 정당이고, 다수 시민의 지지를 얻은 정당이 통치하는 것이 정당 정부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의 대통령 후보였고, 윤석열 행정부는 국민의힘 정부인 거다. 윤핵관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렀다고 해서 젊은 당 대표의 의견마저 내부 총질로 치부하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민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국민이 시퍼렇게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다 다음 선거에서 냉정하게 심판할지 모른다. “외국군에 의존하지 않아도 자주국방이 가능하다”는 민주당 이재명 의원의 국방위 질의는 벌써부터 모골이 송연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다.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했다. 여당 대표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내부 총질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렵게 정권교체에 성공한 윤 대통령에게는 실패할 자유가 없다. 다행히도 대통령답게 달라질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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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尹대통령은 왜 야당과 만나지 않을까

    10일. 한 달 반. 두 달. 15일.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후 며칠 만에 여야 지도부와 만났는지 세어본 날짜다. 문재인·박근혜·이명박·노무현 대통령은 각각 10일, 한 달 반, 두 달, 15일 만에 여야 원내대표, 또는 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회동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 아직 만나지도 못했다. 취임 석 달이 가까워 오는데도. 물론 시도는 있었다. 국회 시정연설을 했던 5월 16일, 3당 대표 및 원내대표와 국회와 대통령실 딱 중간인 마포에서 ‘돼지갈비 만찬 회동’을 하자고 제안했다는데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불참을 밝혔다는 건데 그 뒤 진실공방에 감정싸움까지 불거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8월 중 윤 대통령과 국회 의장단 만찬을 추진하겠다고 25일 기자들에게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만남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보다 야당과의 만남이 더 시급한 것 아닐까. ● 야당과의 회동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그까짓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2017년 5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여야 5당 원내대표와 상견례를 겸해 마련한 오찬 회동은 우리 국민에게 봄꽃 같은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듬해 개헌,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구성, 검찰·국가정보원·방송 개혁 국회 논의 등등 성과도 풍성했다. 지금 같은 여소야대 시절, 대통령은 먼저 감나무 아래까지 나와 참석자들을 기다렸고, 상석 없는 원형 테이블을 설치했으며, 통합을 의미하는 비빔밥을 대접했다. 물론 탁현민 같은 선전 전문가의 화려한 연출이 가미됐을 터다. 하지만 ‘우리 이니’ 지지도와 ‘협치’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는 나름 큰 몫을 했던 게 사실이다.국정상설협의체 구성이나 검찰개혁 국회 논의 같은 회동 성과도 실제로 이뤄지진 못했다. 하지만 그건 그 다음 일이고, 일단 만나는 게 중요하다. 이미 윤 대통령은 역대 최장 기록을 깼다. 취임 후 야당 지도부를 가장 늦게 만나는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 국회 협조 없이 국정개혁 어렵다 윤 대통령도 연금개혁·노동개혁·교육개혁 같은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회 협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22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윤 대통령은 “국회가 대한민국의 두뇌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각 부처 장·차관들에게 국회와 소통을 많이 해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참 이상하다. 대통령이 왜 국회와 직접 소통은 하지 않고 장·차관들에게 지시만 하는 것인지. 11일 한덕수 총리와 오찬을 겸한 주례회동에서도 “각종 현안 및 법안에 대해 국회와 상시 소통하고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라”고 당부 했었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법률안, 예산안 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히 논의하겠다”고 다짐했던 윤 대통령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를 했으면, 대통령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면 안 되나 말이다. 남의 나라 얘기이긴 해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달랐다. 미국 발 글로벌 금융 위기 초반인 2008년 1월 취임한 그는 경제회복법을 하루라도 빨리 의회 통과시키려고 하원 공화당 코커스에 대통령 최초로 참석해 법안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2009년 1월 상원 통과에 필요한 61표 중 공화당 3표 확보를 위해선 온건파 의원 셋을 직접 만나 일주일을 구슬리고, 조르고, 달래야했다고 자서전 ‘약속의 땅’에 소개했다.● 대통령은 입법·사법·행정부 중 행정부의 수반 공교롭게도 여당과 제1야당 당 대표가 ‘유고’ 상황이긴 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양당이 같은 처지라는 사실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20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탄핵까지 언급한 것이 대통령으로선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직접 얼굴을 맞대야 한다. 윤호중 민주당 전 비대위원장도 김건희 여사로부터 “아직도 제가 쥴리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말을 직접 듣고는 활짝 웃었지 않았나. 혹시나 대통령이 여야 그리고 국회 꼭대기에 있는 구름 위의 존재라고 여겨 회동을 꺼리는 건 아니길 바란다. 헌법 66조①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돼 있다. 원수(元首) 즉 ‘한 나라에서 으뜸가는 권력을 지니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인 것은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할 때이고, 나라 안에서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 가운데 행정부의 수반(首班·반열 가운데 으뜸가는 자리)이다. 3월 10일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당시 윤 대통령 당선인은 “‘윤석열의 행정부’인 동시에 국민의힘이라는 여당의 정부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도 ‘윤석열 정부’보다 ‘윤석열 행정부’로 고쳐 쓰면 좋겠다. 그러면 입법·행정·사법의 기능을 나눠 맡는 세 정부 사이의 민주적 균형도 단단해질 수 있을 것 같다. ● 취임 석 달 만에 대통령 휴가 그리 급한가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두달 만에야 미국 일본 순방을 다녀온 결과를 설명한다며 여야 지도부 회담을 마련했었다. 윤 대통령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돌아왔을 때 기회를 만들 수 있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음달 초 휴가부터 간다니 국민은 억장이 무너진다.(민간으로 치면 취업 석 달 만에 휴가 챙기는 수습 같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회동은 미뤄야 한다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어대명’(어차피 대표가 이재명)이 될 경우 또 시간을 끌게 될지 모른다. 그때도 여당 대표는 유고 상황일 터이므로 균형이 맞지도 않는다. 차라리 양당이 비슷한 처지일 때 회동하는 게 낫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생전 김진표 국회의장에 대해 ‘가장 유능한 공무원’이라고 극찬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았던 공직자라는 거다. 국회의장단과의 회동을 할 거면, 여야 원내대표도 함께 초청해 협치의 첫걸음을 딛기 바란다. 그래서 국민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것이 국민을 위한 정치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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