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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무대에 선 다양한 국적의 무용수 네 명이 온몸으로 호흡한다. 들이마신 산소가 폐와 심장을 거쳐 온몸의 세포로 전해지듯 몸을 꿀렁거린다. 어딘가 삐걱대며 불편해 보이는 몸짓은 무언가 꺼내고 싶은 말이 있다는 호소로 들린다. 무용단 ‘12H Dance’가 2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선보이는 ‘360°’는 집 떠난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작품명 360°는 바퀴가 굴러가듯 회전하는 원 혹은 지구를 뜻한다. 작품은 하나의 지구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민자들, 한발 더 나아가 알 수 없는 경계에 선 우리 모두를 다룬다. 작품을 만든 이는 12H Dance의 공동 안무가 최문석(40)과 샤밀라 코드르(37). 이들은 부부 무용수로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국제현대무용제(MODAFE) 측의 초청을 받아 국내 첫 무대를 앞두고 있다.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 안무가는 “팬데믹으로 외국인 혐오가 늘었다. 이주자, 이민자와 관련된 사회 갈등도 늘고 있다”며 “인간은 모두 떠도는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결국 서로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춤을 통해 공존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두 안무가에게 이민자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은 어쩌면 당연했다. 각자 모국인 한국과 아르헨티나를 떠나 독일에서 활동했다. 둘은 독일 자를란트 주립 무용단에서 동료로 만나 결혼했다. 2012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2018년 12H Dance 무용단을 세웠다. 무용단 이름은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시차(12시간)에서 착안했다. 최 안무가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살다 유럽으로 이주한 뒤 새 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6년부터 아내와 이런 고민을 나누다 불안한 감정을 춤으로 창작했다”고 밝혔다. 2019년 독일 무대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인 순간을 그는 잊지 못한다. 공연 후 몇몇 관객이 그를 찾아왔다. 출신 국가는 서로 달라도 느낀 바는 비슷했다. 이들은 “마음 깊은 곳에 혼자만 품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당신이 다 얘기하지 않아도 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최 안무가는 “앞으로도 시리즈 작품을 통해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독일 연방정부로부터 예술인 장학기금과 연구개발 지원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12H Dance는 향후 기후변화를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이번 작품의 무대 구성은 단조롭지만 무용수들은 화려한 원색 의상을 입는다. 최 안무가는 “실제 이민자로 살아온 무용수들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밝고 화사한 색으로 드러냈다. 무거운 주제의 작품에 다른 공기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무대 음악의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No soy de aqui ni soy de alla(스페인어로 ‘나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온 것이 아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미국 5대호 주변 공업지대를 일컫는 러스트벨트(Rust Belt). 그 일대 인디애나주 게리라는 공업도시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한 소년이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는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불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종차별, 심각한 불평등, 노동쟁의가 만연한 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소년이 마주한 가슴 아픈 불평등의 모습들은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를 경제학도의 길로 인도했다. “불평등은 어릴 적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항상 더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 소년은 성장해 학자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박사, 예일대 교수, 세계은행 부총재,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대통령 경제고문, 노벨경제학상 수상까지. 경제학자로서 철저히 주류의 위치에 섰던 그는 “경제 시스템이 왜 그렇게 자주 무너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천착하며 주류 경제 체제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번 저서도 그가 이어온 불평등 연구와 궤를 같이한다. ‘세계화와 그 불만’ ‘불평등의 대가’ ‘거대한 불평등’ ‘끝나지 않은 추락’ 등을 펴냈던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쯤 지난 2019년 초 이 책을 내놨다. 미국 경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서 점차 길을 잃고 있다고 보고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었다. 저자는 ‘금융화(financialization)’가 지나친 상태에 이르렀고, 정부가 세계화에 대처하지 못했으며 시장의 지배력을 통제하지 못한 점들이 불평등을 심화시킨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트럼프 정부를 향해 “레이건 시절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과학이 아닌 자기 충족적 미신에 기반을 둔 경제 정책”을 쓴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주류 경제 체제를 향해 쓴소리를 날리는 저격수 역할도 자처했다. 그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부를 가져오는 ‘부의 추출’이 아니라 ‘부의 창조’가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봤다. 부의 추출은 상위 1%에게도 궁극적으로 피해를 줄 것이라고 봤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사회 제도의 정비가 부를 창조할 토대라고 분석한 저자는 “공공사업을 확대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강화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의제를 21세기 형태로 결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평등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점을 떠올리면 그의 분석과 대안들은 여전히 가슴에 새길 만하다. 저자는 기존 저서처럼 미국 경제의 불평등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의료제도, 노동법의 결함을 비판하며 정부의 개입 강화와 소득의 공정한 분배를 외친다. 그의 비판만 조목조목 열거해도 세계 경제가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든다. 하지만 그는 희망적 미래도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단, 자신이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한다면 말이다. “내가 제시한 의제는 미국이 직면한 재정적 한계 안에서 성취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모든 가구의 삶을 더 좋게 만들고 경제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 불평등과 불확실의 시대,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한 대학자의 말에 한 번 더 눈길이 간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겹쳐지고 포개진 저마다의 궤도를 돌던 행성들. 이 천체들이 마침내 어느 한 시공간에서 충돌하려는 순간, 우린 곧 이어질 거대한 폭발이나 거친 격정을 떠올린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우주에서 이 충돌은 따뜻한 포옹으로 그려진다. 단, 충돌 이후는 알 수 없다. 서로를 소개하고 만나며 살짝 느껴본 맛보기 단계, 딱 거기까지다. 이 과정을 우린 영어로 ‘인트로덕션(introduction)’이라 부른다.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장편이자 제71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각본상) 수상작인 흑백영화 ‘인트로덕션’은 인물들의 소개와 첫 만남의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이 아버지, 여자친구,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며 인물 사이를 감도는 묘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홍 감독의 작품 중 첫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 예고편에서 공개한 서문을 통해 홍 감독은 “(한국어에는) 영어의 인트로덕션에 하나의 단어로 대응하는 말이 없다”며 “소개, 입문, 서문, (새것의) 도입 등의 뜻을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66분 러닝타임은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1부에서 주인공 영호(신석호)는 한의사 아버지(김영호)의 전화를 받고 한의원에 찾아가 아버지 대신 간호사(예지원)를 만난다. 2부서 독일로 유학 간 영호의 여자친구 주원(박미소)은 엄마(서영화)와 엄마 친구(김민희)를 만나고, 자신을 따라 독일을 찾아온 영호와 재회한다. 3부에는 영호가 엄마(조윤희)의 전화를 받고 친구(하성국)와 함께 대배우(기주봉)를 만난다. 느슨하게 얽히고설킨 구성은 전작 ‘도망친 여자’와도 비슷하다. 인물들의 만남에는 형언하기 힘든 어색함이 흐른다. 불편한 정적과 여백은 ‘홍상수 코드’로 점철된 말과 은유가 가득 채운다. 피식거리는 실소도 자주 터져나온다. 그의 영화 문법에서 빠지지 않는 술자리 장면은 3부의 기주봉 조윤희 신석호 하성국이 맡았다. 작위적 줌인, 줌아웃에 뻔하고 밋밋한 전개를 예상하고 봐도 긴장감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다. 세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포옹 장면이 한 번씩 나온다. 수많은 소개, 만남의 순간에서 홍 감독은 조금이나마 인간들 사이 ‘온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음이 보인다. 막 인생의 도입부에 선 청년 영호를 놓고 본다면, 불안한 미래와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그에겐 어딘가 늘 안길 곳이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고 종잡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일부 외신은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대해 많은 내용을 함축한 시나 문학작품 같다고 평했다. 얄밉지만 이번에도 홍 감독의 비유를 짚어내려면 꽤나 힘을 쏟아야 할 듯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춤추며 배운 끈기와 인내는 제 연기 인생에 큰 버팀목이 됐습니다. 우린 누구나 각자의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미나리’의 여주인공인 배우 한예리(37·사진)가 1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40회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 기자간담회에 홍보대사로 참여했다. 지난달 25일 배우 윤여정과 함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뒤 이번이 첫 공식석상이다. 그는 “귀국 후 자가격리 기간을 잘 마쳤다. 국제현대무용제 40주년을 맞아 학생 때부터 동경하던 축제에 홍보대사로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이해준 조직위원장, 김혜정 예술감독을 비롯해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등이 참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한예리는 무용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게 바로 무용”이라며 “무용이 주는 에너지는 다음에 다시 극장을 찾게 할 만큼 정말 크다. 연극이나 뮤지컬 관람처럼 공연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무용을 너무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즐겨 달라”고 당부했다. “스스로 무용수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만큼 무용을 게을리했던 사람”이라고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린 한예리는 “동료, 선후배 무용수들은 매일매일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을 일궈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무대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그는 “많은 무용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작게나마 공연을 올려보려 한다. 꼭 무대에 서지 않더라도 춤과 관련해 도움을 드리거나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축제는 25일부터 6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중구 국립극장,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진행된다. 한예리가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로 꼽은 안성수와 안은미의 안무작도 ‘모다페 초이스’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춤추며 배운 끈기와 인내는 제 연기 인생에 큰 버팀목이 됐습니다. 우린 누구나 각자의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미나리’의 여주인공인 배우 한예리(37·사진)가 1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40회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 기자간담회에 홍보대사로 참여했다. 지난달 25일 배우 윤여정과 함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뒤 그의 공식석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귀국 후 자가 격리 기간을 잘 마쳤다. 국제현대무용제 40주년을 맞아 학생 때부터 동경하던 축제에 홍보대사로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이해준 조직위원장, 김혜정 예술감독을 비롯해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등이 참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한예리는 무용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게 바로 무용”이라며 “무용이 주는 에너지는 다음에 다시 극장을 찾게 할 만큼 정말 크다. 연극·뮤지컬 관람처럼 공연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무용을 너무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즐겨 달라”고 당부했다. “스스로 무용수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만큼 무용을 게을리 했던 사람”이라고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린 한예리는 “동료, 선후배 무용수들은 매일매일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을 일궈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무대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그는 “많은 무용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작게라도 공연을 올려보려 한다. 꼭 무대에 서지 않더라도 춤과 관련해 도움을 드리거나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축제는 25일부터 6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중구 국립극장,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진행된다. 한예리가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로 꼽은 안성수와 안은미의 안무작도 ‘모다페 초이스’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공연이 공연장 밖으로 나서고 있다. 아직 뻗는 힘은 약하지만, 문학 게임 영화 정보기술(IT) 등 여러 갈래로 촘촘하게 외연을 확장 중이다. 한정된 관객 수요를 넘어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모으고, 공연산업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건 업계의 오랜 과제였다.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와중에 팬데믹까지 덮친 상황에서 공연업계의 다양한 시도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읽히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은 개관 40주년을 맞아 4월부터 월간 ‘읽는 극장’ 시리즈를 선보였다. 지금껏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작품 중 하나를 택해 이를 관람한 평론가, 작가 등이 대화를 나누는 콘텐츠다. 흔히 공연이 끝난 뒤 제작진, 배우 등이 출연하던 ‘관객과의 대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4월에는 출범을 맞아 행사가 두 번 진행됐다. 1회에는 연극 ‘물고기로 죽기’의 희곡을 쓴 김비 소설가와 김현 시인이 나섰다. 2회에는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27일 열리는 3회 행사에는 연극 ‘다른 여름’을 관람한 안희연 시인과 양경언 문학평론가가 ‘여름’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시도 낭독할 예정이다.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이 선보인 기획 공연 ‘롤 콘서트(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는 관객층을 넓힌 대표 사례.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테마로 한 콘서트는 게임 마니아들을 공연장으로 대거 불러 모았다. 기존 공연은 여성 관객의 비중이 80%였던 반면 이 공연은 남성 관객이 60%를 넘기며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게임 캐릭터 의상을 입은 관객들이 함께 모여 공연 소회를 나누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공연과 IT·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연계도 늘고 있다. 팬데믹 초기에는 포털, 유튜브 등을 통해 공연을 생중계하기에 급급했으나, 최근에는 그 통로와 방식이 다변화하고 있다. 안방 관객을 공연 관객층으로 흡수하려는 공연업계와 가입자를 늘리려는 플랫폼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콘서트, 발레, 클래식 등 다양한 공연 영상을 제공하는 LG유플러스는 인터넷TV(IPTV) 사업자 중 이 분야 선두주자다. ‘집으로 온 공연’ 시리즈로 선보였던 ‘대학로LIVE’는 시청자 25만 명을 기록하며 시즌2를 준비 중이다. 29, 30일 미국의 인기 팝 밴드 ‘마룬5’의 공연 실황 영상도 제공한다. 김세규 LG유플러스 IPTV서비스기획팀 책임은 “오프라인 관객의 몇 배에 달하는 온라인 관객에게 공연의 매력을 알릴 수 있다”고 효과를 설명했다. 국립극장도 SK텔레콤과 OTT 플랫폼인 웨이브(wavve)를 통해 고품질 공연 실황 영상을 제공할 예정이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공연장과 공연 전문 온라인 플랫폼 ‘메타씨어터(MetaTheater)’에서 동시 개막했다. 모든 회차의 공연을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극장에서 공연을 상영하는 건 이제 익숙한 풍경. 2019, 2020년 인기를 끈 뮤지컬 ‘스웨그에이지’는 13일부터 롯데시네마 상영관에서 실황 영상을 상영 중이다.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는 “아직 관객층이 크게 변했다고 보기는 힘드나, 공연업계가 대형 콘텐츠 기업과 협업해 공연에 대한 대중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박병성 공연평론가는 “공연계의 색다른 시도가 공연장과 거리가 멀던 이들을 새로운 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가수 겸 배우 아이유(사진)가 자신의 생일(5월 16일)을 맞아 희귀질환 아동, 미혼모, 홀몸노인을 위해 5억 원을 기부했다. 아이유의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아이유가 한국소아암재단, 희귀질환 아동 지원단체 여울돌,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푸르메재단, 아동복지협회 등에 총 5억 원을 전달했다고 17일 밝혔다. 소속사는 “아이유가 20대 내내 꾸준히 받아온 큰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한국 나이 기준으로) 20대의 마지막 생일에 ‘아이유애나’ 이름으로 따뜻한 일을 하고 싶어했다”며 “그간 받아온 사랑을 부지런히 갚으며 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유애나는 아이유의 이름과 팬클럽 ‘유애나’를 합친 것이다. 기부금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 및 청소년의 수술비와 치료비에 사용될 예정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부모 가정, 홀몸노인 등의 자립을 위한 지원금으로도 쓰인다. 아이유는 데뷔 후 각종 기념일마다 팬클럽과 함께 나눔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앞서 3월에도 정규 5집 앨범 발표를 기념해 한부모 가정과 청각장애인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누군가의 여행기를 듣는 건 설레는 일이다. 한 발 더 나가 기타 연주, 랩, 탱고를 곁들인 여행기는 어떨까. 무대 위 세 남자는 남미에서 겪은 일들을 실감나게 풀어놓는다. 여행지에서 찍은 날것의 영상들도 펼쳐진다. 진짜 겪은 일인지, 약간의 허풍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전하는 흥겨운 이야기들은 여행의 설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연극도 해야겠고, 여행도 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박선희 연출가(51)는 2008년 처음 ‘여행 연극’이라는 장르에 도전했다. 태국, 인도, 터키, 히말라야 여행 시리즈를 내놓더니 이번엔 남미 이야기를 한 보따리 싸들고 나타났다. 배우 3명이 90분 동안 자신의 여행기를 ‘스탠드업 연극’ 형태로 선보이는 ‘라틴 아메리카 프로젝트Ⅲ’를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작품은 여행 마니아와 관객들을 ‘극장 속 남미’로 이끌고 있다. 10일 연우소극장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박 연출가는 “여행지의 바에서 처음 본 이에게 속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듯 관객들에게도 여행 중 떠올린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고 밝혔다. 박 연출가의 여행 연극을 이해하려면 독특한 작업방식부터 알아야 한다. 박 연출가와 제작진, 배우들은 2016년 6주 동안 남미로 떠났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둘러봤다. 각자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나 나라가 있으면 더 있다가 언제든 일행에 합류했다. 한 배우는 아르헨티나에 오래 머물며 탱고 강습을 받다 ‘탱고 전도사’가 됐다. 일행이 페루 오지의 수녀원 내부 보육원을 방문했을 땐 아이들을 위해 즉석 스페인어 연극도 선보였다. 펍에서 1인극을 한 배우도 있었다. 여유로운 듯 치열하게 남미를 누빈 이들의 여정은 저절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박 연출가는 “극을 써야 하는 과업 때문에 제가 마음 편히 여행을 못할 때도 있었다.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여행하듯 작품을 만든다. 대신 공연 1주 전까지 대본을 쓰고 고친다”며 웃었다. 극 제작 과정은 작품의 메시지를 끄집어내는 토론이 핵심이다. “작업 기간의 대부분은 서로 대화만 한다”고 했다. 귀국 전 마지막 7박 8일은 아르헨티나 한 숙소에서 밤샘 토론했다. 그는 “배우들이 이제는 직접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빼곡하게 써내기도 한다. 제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여행 그 자체다. 어느 때보다 여행에 대한 감상을 많이 나눴기 때문이다. 앞선 시리즈에선 사랑, 우정, 삶과 죽음 등 여러 주제를 논했다. 박 연출가는 “제겐 여행이 일종의 도피였는데 각자 의미가 달랐다”고 전했다.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박 연출가는 다큐멘터리, 영화, 연극에 관심이 생겨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가 연극 연출을 택한 일도 마치 여행 같다. “2002년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려 했다. 그런데 여행 중에도 끝내 가슴 속에 남아있던 게 연극”이라고 했다. “무대 암전 때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걸 보면 선택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작업들은 평단과 관객 호응을 얻었다. 연우무대, 우란문화재단은 작품의 여행 경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여행 연극은 결국 나를 보는 일이다. 다만 팬데믹으로 여행할 수 없어 관객을 약 올리는 작품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다음 목적지는 독일 베를린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인 정재훈 작가(51)의 ‘정재훈 목가구전―새로운 시작’이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렸다. 목수이자 작가로 전통가구를 연구한 그가 처음 여는 개인전시회로 20일까지 열린다. 정 작가는 전통 목가구의 조형성과 제작 기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10년 이상 노력한 흔적을 전시에 담았다. 사방탁자, 탁자장을 비롯해 전통짜임 기법으로 제작한 넓은 탁자 등 25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관람객은 여닫이문, 미닫이문 등 전통가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하고 다양한 문짝 구조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목장 보유자 박명배 선생을 사사한 정 작가는 “전통적인 사랑방 가구를 재해석해 현대적인 주거 공간에 어울릴 방법을 고민한 끝에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레미제라블’ 속 혁명의 노래들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는 광주를 적신다. 프랑스 뮤지컬 공연단 내한 콘서트 ‘레미제라블’은 15일부터 부산을 시작으로 광주, 서울에서 공연을 한다. 17일 광주에서는 ‘5·18민중항쟁 전야제’ 특설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프랑스 출신 배우들이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작품 속 넘버들을 콘서트 형태로 선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정신을 일깨우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각색한 뮤지컬을 토대로 주인공 장 발장이 마주한 프랑스 혁명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낸다. 주역 배우들이 부를 애달픈 솔로곡과 ‘One Day More’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같은 대표곡을 웅장한 합창으로 선보인다. 공연은 모두 프랑스어로 한다. 장 발장 역은 뮤지컬 ‘아마데우스’ ‘노트르담 드 파리’로 유명한 로랑 방이 맡는다. 형사 자베르 역은 뮤지컬 ‘알라딘’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한 롤랑 카를이 맡는다. 팡틴 역에는 노에미 가르시아, 코제트 역에는 안마린 쉬르가 출연한다. 33명으로 구성된 아르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공연은 부산 KBS홀에서 15, 16일 시작한다. 이어 출연진은 광주로 이동해 17일 오후 7시 반부터 열리는 제41주년 5·18민중항쟁 전야제에 참석한다. 광주시청 앞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배우들은 ‘레미제라블’의 주요 넘버들을 선보인다. 전야제 행사 전에는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진행하는 ‘코로나 극복,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인의 평화’라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플래시 몹’ 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로랑 방은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듣고 프랑스 혁명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불의와 부정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수많은 민중의 희생을 기리고 싶어 전야제 공연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팬데믹으로 지친 많은 이들에게 공연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롤랑 카를을 포함한 다른 배우들도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역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는 점은 같다. 이 땅의 평화, 공존, 희망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도 5·18과 함께 노래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분들께 애도와 경의를 표하고 팬데믹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광주에서는 별도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지는 않는다. 서울에서는 19∼23일 강서구 KBS 아레나에서 공연을 펼친다. 6만∼15만 원(예스24, 티켓링크), 7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설계한 미국 건축가 아트 겐슬러(사진)가 10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85세. 미국 뉴욕 태생의 고인은 미국 코넬대를 졸업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 설계회사 ‘겐슬러’를 1965년 세웠다. 세계 최대의 건축설계사로 도약한 겐슬러는 미국 뉴욕 JFK 공항과 싱가포르 창이공항 설계에도 참여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페이스북과 영국 런던 버버리 본사도 그의 작품. 고인은 환경과 조화를 이룬 대학, 호텔 등 대형 건축물 설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과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설계로 인연을 맺었다. 2011년 국제 현상설계 공모에서 겐슬러가 참여한 ‘희림컨소시엄’(희림, 겐슬러, 무영) 설계안이 당선됐다. 공사에만 8년이 걸렸다. 인천국제공항 내 현대카드사 에어라운지도 겐슬러의 손을 거쳤다. 이 라운지는 2012년 미국건축가협회가 시상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상’을 받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 죽어가는 돈키호테를 보며 “내 이름은 둘시네아예요”라고 결연히 고백하는 ‘알돈자’. 뮤지컬 ‘시카고’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올 댓 재즈(All that jazz)”를 섹시하게 부르는 ‘벨마 켈리’. 배우 윤공주(40)는 무대 위 여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두 배역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다. 노래, 안무, 연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만능 캐릭터로 평가받지만, 정작 본인은 “나만의 색깔이 없어서”라며 두 작품을 매끄럽게 오가는 ‘비결’을 겸손하게 표현했다. 하루는 알돈자로, 다음 날은 벨마 켈리로 사는 윤공주를 최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지난해 개막할 예정이었던 ‘맨오브라만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차례 연기되면서 윤공주는 격일로 두 공연을 소화해야 했다. 그는 “오늘 빨갛게 손톱 매니큐어를 칠하면, 내일은 매니큐어를 말끔히 지우고 무대에 오른다. 내 안에는 알돈자의 한(恨)도, 벨마의 화려함도 있다. 변신하느라 힘들 틈이 없다”며 웃었다. 윤공주가 맡은 두 역할은 판이하다. 알돈자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비운의 여주인공. 사람들의 멸시 속에서 버티다 유일하게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대하는 돈키호테를 보고 비로소 희망을 품는다. 반면 쇼 뮤지컬의 정점인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는 남편을 살해해 복역 중인 죄수다. 진한 검정 가발을 쓰고 격하게 춤추며 강렬한 퇴폐미를 뽐내는 게 포인트다. 윤공주는 “보기와 달리 알돈자가 훨씬 힘들다”고 했다. 특히 “알돈자는 주인공인 돈키호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가 된다. 감정을 후반부까지 끌어올리는 과정은 격한 춤보다 현기증이 난다. 공연 전 더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26세인 2007년 처음 알돈자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어린 나이에 대작에 발탁된 파격적 캐스팅이었다. 올해까지 다섯 번째로 알돈자 역할을 맡으며 그의 대표 캐릭터로 키워냈다. “14년 전 첫 공연 때는 장면마다 잘 해내느라 급급했죠. 지금은 아무래도 표현의 여유, 자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맨오브라만차의 상대역은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다. 윤공주는 “대한민국 최고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 자체가 제겐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조승우는 무대가 끝나면 “역시 뮤지컬은 윤공주지”라며 자주 칭찬한다고. 윤공주는 “‘윤공주 스타일’의 알돈자를 조금이나마 좋아해 주신 것 같다. 물론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다”며 웃었다. 시카고에 대해선 “체력 소모는 분명히 심한데 이상하게 점점 더 숨이 안 찬다.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공연 당일에도 매일 혼자 장거리 달리기를 하며 체력 관리를 해온 덕분이다. 동경의 대상이던 최정원 배우와 같은 배역을 맡았다. “언니를 절대 따라갈 순 없겠지만 ‘제2의 최정원’이라는 수식어는 마냥 좋다”고 했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첫 무대에 선 윤공주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음정 하나만 틀려도 혼자 펑펑 우는 건 다반사였다. “남들은 저를 완벽주의에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만큼 치열하게, 독하게 20, 30대를 보냈다”고 떠올렸다. “언젠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덕분에” 한 번도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춘 윤공주는 지금 한국에서 ‘프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최근 대작 뮤지컬에서 윤공주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나만의 색이 없는 게 윤공주의 색깔”이라는 그의 색채는 올해 뮤지컬계를 어느 때보다 짙게 물들이고 있다. 맨오브라만차, 16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6만∼15만 원, 14세 관람가. 시카고, 7월 18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 6만∼14만 원, 14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 죽어가는 돈키호테를 보며 “내 이름은 둘시네아예요”라고 결연히 고백하는 ‘알돈자’. 뮤지컬 ‘시카고’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올 댓 재즈(All that jazz)”를 섹시하게 부르는 ‘벨마 켈리’. 배우 윤공주(40)는 무대 위 여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두 배역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다. 노래, 안무, 연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만능 캐릭터로 평가받지만, 정작 본인은 “나만의 색깔이 없어서”라며 두 작품을 매끄럽게 오가는 ‘비결’을 겸손하게 표현했다. 하루는 알돈자로, 다음날은 벨마 켈리로 사는 윤공주를 최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서 만났다. 지난해 개막할 예정이었던 ‘맨오브라만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차례 연기되면서 윤공주는 격일로 두 공연을 소화해야 했다. 그는 “오늘 빨갛게 손톱 매니큐어를 칠하면, 내일은 매니큐어를 말끔히 지우며 무대에 오른다. 내 안에는 알돈자의 한(恨)도, 벨마의 화려함도 있다. 변신하느라 힘들 틈이 없다”며 웃었다. 윤공주가 맡은 두 역할은 판이하다. 알돈자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비운의 여주인공. 사람들의 멸시 속에서 버티다 유일하게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대하는 돈키호테를 보고 비로소 희망을 품는다. 반면 쇼 뮤지컬의 정점인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는 남편을 살해해 복역 중인 죄수다. 진한 검정 가발을 쓰고 격하게 춤추며 강렬한 퇴폐미를 뽐내는 게 포인트다. 윤공주는 “보기와 달리 알돈자가 훨씬 힘들다”고 했다. 특히 “알돈자는 주인공인 돈키호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가 된다. 감정을 후반부까지 끌어올리는 과정은 격한 춤보다 현기증이 난다. 공연 전 더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26살인 2007년 처음 알돈자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어린 나이에 대작에 발탁된 파격적 캐스팅이었다. 올해까지 다섯 번째로 알돈자 역할을 맡으며 그의 대표 캐릭터로 키워냈다. “14년 전 첫 공연 때는 장면마다 잘 해내느라 급급했죠. 지금은 아무래도 표현의 여유, 자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맨오브라만차의 상대역은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다. 윤공주는 “대한민국 최고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 자체가 제겐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조승우는 무대가 끝나면 “역시 뮤지컬은 윤공주지”라며 자주 칭찬한다고. 윤공주는 “‘윤공주 스타일’의 알돈자를 조금이나마 좋아해주신 것 같다. 물론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다”며 웃었다. 시카고에 대해선 “체력 소모는 분명히 심한데 이상하게 점점 더 숨이 안 찬다.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공연 당일에도 매일 혼자 장거리 달리기를 하며 체력관리를 해온 덕분이다. 동경의 대상이던 최정원 배우와 같은 배역을 맡았다. “언니를 절대 따라갈 순 없겠지만 ‘제2의 최정원’이라는 수식어는 마냥 좋다”고 했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첫 무대에 선 윤공주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음정 하나만 틀려도 혼자 펑펑 우는 건 다반사였다. “남들은 저를 완벽주의에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만큼 치열하게, 독하게 20~30대를 보냈다”고 떠올렸다. “언젠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덕분에” 한 번도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춘 윤공주는 지금 한국에서 ‘프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최근 대작 뮤지컬에서 윤공주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나만의 색이 없는 게 윤공주의 색깔”이라는 그의 색채는 올해 뮤지컬계를 어느 때보다 짙게 물들이고 있다. 맨오브라만차, 16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6만~15만 원, 14세 관람가 시카고, 7월 18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 6만~14만 원, 14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87년 고 이한열 열사 영결식에서 ‘한풀이’ 춤을 춰 유명해진 이애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이 10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경기아트센터는 지난해 10월 암 진단을 받은 후 투병해 온 이 이사장이 이날 오후 5시 20분경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인 이 이사장은 전통무용 거장인 고 한성준과 그의 수제자 고 한영숙의 뒤를 이어 정통 승무의 맥을 지킨 인물로 평가된다. 지금껏 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는 고인을 포함해 총 5명이 지정됐다. 고인은 딸을 예술인으로 키우고자 한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섯 살 때부터 무용가 고 김보남을 사사했다. 1969년 한영숙의 첫 제자가 돼 본격적으로 승무와 태평무, 살풀이를 배웠다. 서울대 체육교육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70∼1980년대 대학가에서 문화운동가들과 함께 춤을 췄다. 고인은 1987년 6월 민주화 대행진 출정식에 이어 같은 해 7월 민주화 시위 중 사망한 이 열사의 영결식에서 넋을 달래는 춤을 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이 때문에 한때 ‘민주화 춤’ 혹은 ‘시국 춤’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고인은 무용계 후학 양성과 전통 춤 복원에 힘썼다. 그는 고분 벽화에 남아있는 우리 춤의 원형을 찾기 위해 중국 동북지역에 흩어진 고구려 무덤을 여러 차례 답사했다. 전통 춤인 영가무도(詠歌舞蹈·주역을 재해석해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 전통예술)를 복원하기도 했다. 주역 대가로 알려진 대산 김석진 선생으로부터 동양사상을 배워 대학로에서 춤과 철학을 연계한 강의를 진행했다. 1996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임용돼 2013년 정년퇴직했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우리 춤의 정신을 잇는 한국의 대표 춤꾼”이라고 평가했다. 최해리 무용역사기록학회장은 “거리에서 맨발로 추는 춤을 인정하지 않던 1970∼1980년대 예술계의 보수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통 춤을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한 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전통춤회 예술감독, 한영숙춤보존회장 등을 역임한 고인은 2019년 9월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에 취임했다. 전통 춤의 명맥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최근까지도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13일 오전이고 조문은 11일부터 가능하다. 02-2072-2010전채은 chan2@donga.com·김기윤 기자}
광기를 묘사할 때 흔히 ‘뿜어낸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홀로 선 소녀 ‘제니’의 광기는 객석에 스며든다. 멍이 들 때까지 거칠게 피아노를 때리고, 신들린 듯 건반을 내리칠수록 더 궁금해진다. 이 광기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입소문을 타고 순항 중인 뮤지컬 ‘포미니츠’에선 제니 역의 두 배우 김환희(30), 김수하(27)의 연기가 빛난다. 최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만난 둘은 “좀체 적응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작품이다. 진짜 많이 울고 몸도 아팠다”면서도 “회를 거듭할수록 제니와 점차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입을 모았다. 작품은 2006년 개봉한 동명의 독일 영화가 원작이다. 이듬해 독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를 눈여겨본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예술감독이자 기획자로 참여해 판을 짰다. 60년간 재소자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독일의 실존인물 거트루드 크뤼거의 삶을 모티브로 삼아 그가 감옥에서 만난 제니와 교감하는 이야기다. 크뤼거 역은 김선경과 김선영이 맡았다. 18세 소녀 제니의 삶은 상처로 얼룩졌다. 한때 피아노 천재로 통했던 그는 양아버지에게 학대받고, 남자친구의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돼 교도소에 들어왔다. 불신으로 가득한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처럼 현실 속에서, 건반 위에서 날뛴다. 김환희는 “제니는 에너지가 매우 큰 인물이다. 공연 없는 날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다음 날 무대를 위해 충전만 하고 있다”고 했다. 김수하는 “‘뭐든 제니답게 하라’는 제작진의 지침이 단순한 듯하면서도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둘은 베테랑인 김선경, 김선영과의 팽팽한 신경전에도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캐릭터 자체도 버겁지만, 준비 과정에서 이들을 울게 만든 1등 공신은 피아노다. 연기하고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이 되어야 했다. 피아노와 거리가 멀었던 둘은 지난해 10월부터 맹성연 음악감독과 ‘특훈’에 돌입했다. 무대 중앙에 떡하니 놓인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오롯이 제 몸처럼 다스려야 했다. 김수하는 “연습 때 바닥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우울해지는 편이다. ‘그래도 해보자’는 언니(김환희)가 없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둘은 이번 작품에 대해 “배우로서 한계치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맹연습의 진가는 마지막 4분에서 두드러진다. 손가락으로 피아노 줄을 할퀴거나 피아노 위, 옆면을 손과 팔로 타악기처럼 두드린다. “마지막 4분만 봐도 티켓 값 다 한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압권이다. 김환희는 “지인들이 공연이 끝나도 쉽게 다가오질 못하더라. ‘작은 거인’ 같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김수하도 “친구들은 보통 ‘수고했다’고 하는데 이번엔 ‘미친 여자 같다’거나 ‘존경스럽다’고 했다”며 웃었다. 둘은 작품을 같이하며 맘을 터놓고 지내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어두운 극 분위기와 달리 연습실은 늘 까르르 웃는 소리로 가득하다. 2015년에 데뷔한 김환희와 김수하는 각각 2019년, 2020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김수하는 이듬해 ‘렌트’로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인터뷰 중 상대의 고충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던 둘은 손과 팔을 보며 가장 크게 탄식했다. “멍이 너무 많아서 손과 팔에 멍 분장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요.”(김수하) “수하야, 멍 크림 꼭꼭 발라야 돼.”(김환희) 23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전석 7만 원, 14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트로트 가수 임영웅(30·사진)의 실내 흡연 모습이 포착돼 비판이 일고 있다. 5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임영웅이 건물 내부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 혼자 마스크를 안 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퍼졌다. 해당 장면은 4일 서울 마포구 DMC디지털큐브에서 진행된 TV조선 예능 ‘뽕숭아학당’ 촬영 대기 현장에서 벌어졌으며, 당시 옆 건물에 있던 누군가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진이 확산하자 임영웅의 과거 실내 흡연 의혹도 재차 불거졌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미스터트롯’ 콘서트 당시 임영웅은 미성년 출연자인 정동원과 함께 있는 대기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듯한 모습이 노출된 바 있다. 실내 흡연 논란이 반복되자 한 누리꾼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서울 마포구와 부산 해운대구에 임영웅에 대한 과태료 부과를 요청했다며 온라인에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실내 흡연은 국민건강증진법 위반으로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실내 마스크 미착용은 1차 계도 후 반복되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비판이 커지자 임영웅 소속사 뉴에라프로젝트는 “깊이 사과드린다”면서도 “니코틴이 함유되지 않은 액상이라서 담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트로트 가수 임영웅(30·사진)의 실내 흡연 모습이 포착돼 비판이 일고 있다. 5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임영웅이 건물 내부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 혼자 마스크를 안 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퍼졌다. 해당 장면은 4일 서울 마포구 DMC디지털큐브에서 진행된 TV조선 예능 ‘뽕숭아학당’ 촬영 대기 현장에서 벌어졌으며, 당시 옆 건물에 있던 누군가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진이 확산하자 임영웅의 과거 실내 흡연 의혹도 재차 불거졌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미스터트롯’ 콘서트 당시 임영웅은 미성년 출연자인 정동원과 함께 있는 대기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듯한 모습이 노출된 바 있다. 정동원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던 원본 영상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실내 흡연 논란이 반복되자 한 네티즌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 마포구와 부산시 해운대구에 임영웅에 대한 과태료 부과를 요청했다며 온라인에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실내 흡연은 국민건강증진법 위반으로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실내 마스크 미착용은 1차 계도 후 반복되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비판이 커지자 임영웅 소속사 뉴에라프로젝트는 “깊이 사과드린다”면서도 “니코틴이 함유되지 않은 액상이라서 담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진다. 무대에서 줄곧 춤을 춰왔고, 안무를 짠다. 여기에 춤출 때 쓰는 음악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까지 한다. 2장의 정규 앨범과 20여 곡의 싱글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하다. 한때는 1년간 꼬박 철학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자신이 ‘표현가’라고 불리길 원하는 그는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말, 노래도 결국 다 춤이자 안무였더라. 그냥 안무가로 불러 달라”고 한다. 한국 현대무용계의 독보적 아이콘 김재덕 안무가(37) 얘기다. 그가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와 솔로 작품 ‘시나위’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7, 8일 이틀간 공연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차례 미뤄진 끝에 재성사된 무대다. 1일 서울 서초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계속된 공연 취소로 이전처럼 작품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며 “갑자기 공연이 취소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매사에 긍정적인 나도 몇 시간 동안 허무주의에 빠져 멍때린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배고픔과 결핍을 몸으로 그린 ‘다크니스 품바’는 무대에 대한 그의 갈증과 허기를 표현하기에 제격일지 모른다. 작품엔 그가 2013년 창단한 ‘모던 테이블’의 남성 무용수 7명이 검은 정장을 입고 등장한다. 이들이 현대판 무당으로 변신해 표현하는 배고픔은 “학대와 멸시를 춤과 노래로 풀어내던 전통적인 품바 타령을 재해석한 몸짓”이다. 김재덕은 공연 중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고, 마치 불경을 외듯 알아들을 수 없는 지버리시(Gibberish·횡설수설 말하는 대사)도 한다. 그는 “가수 고 신해철의 ‘모노크롬’ 앨범에서 ‘품바가 잘도 돈다’라는 구절이 한 번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이걸 듣고 나중에 뭘 하든 이 대목을 살려보겠다고 다짐했다”고 창작 동기를 밝혔다. 그는 이 구절에 무한 변주를 주면서 작곡에 임했다. 그는 “다 잘되라고 기원하는 내용이지만 솔직히 큰 의미는 없다. 모든 비언어적인 춤, 대사는 관객이 받아들이고 느끼기 나름”이라며 웃었다. 당초 25분 길이의 작품은 60분으로 늘면서 풍성한 서사를 갖췄다. 2006년 처음 선보인 ‘다크니스 품바’는 무용계에서 화제가 됐다. 2019년 25일간 총 30회를 공연했다. 대부분 3, 4일 공연이 최대인 무용계에선 이례적이었다. 작품은 일찌감치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무용수가 동경하는 영국 ‘더플레이스’, 미국 ‘케네디센터’에도 올랐다. 22개국 38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안무가로서 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작품을 인정받았다. 남이 만든 춤보다는 저만의 춤이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나위’는 김재덕 그 자체를 이해하기 좋은 작품이다. 즉흥적으로 알 수 없는 대사를 내뱉으며 격정적으로 움직인다. 그는 “큰 틀은 정해져 있지만 작품 중 절반은 즉흥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내뱉느라 ‘불가리 향수’ ‘전설의 용사 다간’이라는 말도 내뱉었다”고 했다. 그에게 예술이란 “레고처럼 뭔가 끼워 맞춰보고 섞어 무대에서 시험해 보고픈 놀이”에 가깝다. 남보다 뒤늦은 16세 때 무용을 시작했지만 “즐거워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노는 것을 그만두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재즈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김 안무가는 “인간 몸에서 나오는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움직임이 춤이기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꿈은 소박하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단원들과 같이 춤추고 싶어요.” 전석 4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쓰기 시작한 19세기 말. 인간은 석유가 주는 뜨거움을 갈망했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지독하게 싸웠다. “신은 하필 미개한 중동에 석유를 남겨줬다”는 극 중 영국 장교의 대사처럼 제국주의 국가들은 석유를 얻기 위해 침략도 정당화했다. 1일 개막해 9일까지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서 국내 초연하는 연극 ‘OIL(오일)’은 19세기 말부터 석유가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2051년까지의 역사를 두 모녀를 통해 그린다. 영국에서 주목받는 극작가 엘라 힉슨의 희곡이 원작으로, 한국 연극계 대모 박정희 연출가가 참여한다. 계급주의, 여성주의, 제국주의, 환경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극단 ‘풍경’의 ‘작가展’ 3부작 중 마지막 극으로, 소리꾼 이자람이 어머니 ‘메이’ 역을 맡아 정극에 도전했다. 딸 에이미 역은 박정원이 맡았다. 국악 팝 밴드 이날치의 프로듀서 겸 베이스를 맡은 장영규가 음악을 담당해 화제가 됐다. 풍부한 서사를 품은 작품에서 전반적인 연기 톤을 잡고 배우들을 이끈 건 베테랑 남기애 배우(60)다. 그는 앞서 프로젝트의 첫 작품인 ‘장 주네’서 어머니 역을 맡았고 이번에는 엄격한 시어머니 ‘마 싱거’를 연기한다. 1부에서 열연한 뒤 마지막 5부에 마치 환영(幻影)처럼 등장한다. 배우 박명신과 번갈아 역을 소화한다. 최근 더줌아트센터서 만난 남기애는 “여성의 모습을 방대한 시공간에 녹여낸 극은 볼수록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마감하는 작품이라 의미가 크다”고 했다. 작품은 영국 콘월과 햄프스테드, 이란 테헤란, 이라크 바그다드 등 4개 도시와 200년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는 “인물의 구체적 나이보다 각자 그 시대에 살고 있을 법한 여성의 모습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극 중 며느리가 “엄마는 아기에게 가장 좋은 걸 줘야 해”라고 말하자 시어머니는 “엄마는 가족 모두에게 가장 좋은 걸 줘야 한다”고 맞받아친다. 시어머니 역은 전통적 어머니상이자 고향을 상징하는 존재다. 남기애는 “기댈 곳 없을 때 찾는 어머니 이미지를 떠올렸다. 인간이 골몰하는 석유도 땅과 자연에서 나오는 산물인데 모든 걸 퍼주는 어머니와 닮았다”고 덧붙였다. 첫 호흡을 맞춘 이자람에 대해 그는 “서 있기만 해도 믿음이 가고 에너지가 정말 큰 배우”라며 “아직 어머니로서 경험이 없는 그에게 자녀를 키워본 현실적 경험을 들려줬더니 이를 영민하게 잡아내 소화했다”고 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남기애는 졸업 후 결혼, 출산으로 꽤 오랜 시간 무대와 담을 쌓고 살았다. 서른여섯이던 1997년에야 뒤늦게 데뷔했다. “잊고 살던 무대에 선다니 얼마나 좋았던지….” 육아와 연극을 병행하던 그는 6∼7년 전부터 방송, 영화에도 도전했다. 송혜교가 “실제 제 어머니보다 더 많이 보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송혜교의 어머니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연극에선 늘 착한 엄마를 맡았는데 방송에선 조금은 독특한 엄마를 맡아 좋았다”고 했다. 공연 초반, 후반에 등장하는 그는 준비 과정에서 후배들의 모습을 객관화해 바라봤다. “작가는 이 순간 왜 이 인물을 등장시켰나”를 떠올리며 제작진, 연출과 상의를 거쳤다. 불필요한 장면을 걷어내기도 했다. 배우라면 조금이라도 오래 무대에 서고픈 건 인지상정. 논의 끝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마치 모든 걸 퍼주는 어머니처럼. “제 분량을 제일 많이 줄이기로 했어요.(웃음) 작품을 위해서라면….”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국내 최장수 현대무용축제에서 40번째 춤의 향연이 펼쳐진다.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가 25일부터 6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열린다. 올해는 ‘All About Contemporary Dance. This is, MODAFE!(현대무용의 모든 것, 이것이 바로 모다페!)’를 주제로 현대무용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조명한다. 1982년 ‘제1회 한국현대무용협회 향연’으로 시작한 축제는 올해 40돌을 맞아 어느 해보다 압도적 무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 현대무용계를 이끌어 온 유명 안무가들을 조명하는 ‘레전드 스테이지’에선 육완순 최청자 이숙재 박명숙 박인숙 양정수 안신희 등 7명의 작품을 조명한다. 미국 현대무용을 국내에 처음 들여와 선보인 1세대 현대무용가 육완순(88)의 ‘수퍼스타예수그리스도’를 비롯해 ‘해변의 남자’(최청자) ‘훈민정음 보물찾기’(이숙재) ‘디아스포라의 노래’(박명숙) 등 7개 작품을 각각 10분 남짓한 분량으로 선보인다. 국공립 무용단체들이 참여하는 공연들도 반갑다.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대구시립무용단 등이 참여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남정호 예술감독의 대표 안무작 ‘빨래’를 통해 노동, 연대감, 공동체 의식을 조명한다. 농악 행진에 쓰이던 ‘칠채’ 장단에서 모티브를 얻어 안무작을 만든 국립무용단 이재화의 ‘가무악칠채’도 무대에 선다. 지난해 말 공연에서 탁월한 리듬감과 테크닉을 활용한 구성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솔리스트 강효형의 ‘요동치다’와 솔리스트 박나리의 ‘메멘토 모리: 길 위에서’를 비롯해 올해 초 발레 마스터로 승급한 이영철의 ‘더 피아노’를 선보인다. 대구시립무용단은 김성용 예술감독의 ‘월훈(月暈)’과 안무가 이준욱의 ‘샷(shot)’을 공연한다. 모다페의 위상을 대표하는 가장 주목하는 안무가 3명의 무대도 준비됐다. 전미숙 안무가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토대로 한 ‘Talk to Igor-결혼, 그에게 말하다’를 선보이며, 안성수 안무가는 ‘Short Dances’를 선보인다. 안은미 안무가는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준비하고 있다. 고블린파티, 아트프로젝트보라 등 젊은 무용단의 무대도 눈여겨볼 만하다. 티켓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립극장에서 구매 가능하다. 3만∼5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