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주식 투자에 실패한 뒤 대낮에 흉기를 들고 은행에 들어가 돈을 강탈하려던 40대 회사원이 구속됐다. 서울북부지법의 박진영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일 특수강도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된 A 씨에 대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 씨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1시경 서울 도봉구에 있는 한 은행에 침입했다. 그는 창구 직원에게 가방을 던지고 흉기를 휘두르며 “돈을 담으라”고 소리쳤다. 당시 은행에 있던 50대 남성이 의자를 들고 맞서자, A 씨는 은행에 들어선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현장에서 달아났다. 은행 측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은행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뒤 이날 오후 A 씨를 자신의 집에서 긴급 체포했다. 은행 외부에 설치된 CCTV에는 A 씨가 범행 전 은행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부 상황을 10분여 동안 살피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당시 은행 내부에는 직원과 고객을 포함해 총 8명이 있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주식 투자에 실패하며 돈이 필요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씨가 선물옵션 등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고 9000만 원가량 빚을 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소재 한 기업에 16년째 다니고 있는 A 씨는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일 오전에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A 씨는 “우리는 매트릭스 속에 산다. 컴퓨터가 (범행을) 시켰다”고 횡설수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지난해 7월 정신병 진단을 받고 관련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한 혐의로 허인회 전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55)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27일 기각됐다. 허 전 이사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북부지법 정상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피의자는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는 등 피해자들과의 합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도망 또는 증거 인멸에 해당하는 구속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허 전 이사장은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며 녹색드림협동조합이 벌여온 태양광 발전 사업에 서울시가 불법 보조금을 줬다는 의혹에 대해 “불법이 아니었다. 언론과 야당은 오해를 풀어 달라”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초등학생이 또래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학생은 형사 미성년자인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27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40분경 구리시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인 A 양이 동급생 B 양을 수차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B 양은 아파트 복도에 쓰러진 채 이웃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송 도중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자택에서 혈흔을 지우던 A 양을 긴급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양은 경찰 조사에서 “B 양이 누군지 모른다”며 발뺌하다 추궁이 이어지자 “(B 양이)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소문을 학교에 퍼뜨려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양이 촉법소년에 해당돼 간단한 조사를 마친 뒤 가족에게 돌려보냈으며 28일 B 양에 대한 부검을 실시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은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 대신 가정법원 소년부로 넘겨져 보호처분을 받는다. 전과 기록도 남지 않는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년부에 송치된 촉법소년은 2만8024명이다. 이 중 4명은 살인을 저질렀다. 만 14세 미만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며 미성년자도 형사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경기 수원의 한 노래방에서 초등학생을 집단 폭행한 중학생 7명을 처벌해 달라는 글이 올라와 27일 현재 25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국회에는 촉법소년의 나이를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 또는 12세 미만으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집 앞에도 나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집에서 100m, 200m 조금씩 멀리 나가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치안센터 2층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김성원 씨(77)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 씨는 10월 31일부터 매주 목요일 이 센터에서 다른 실종자 가족 9명과 함께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그간 “할 말이 없다”며 질문을 피해왔다. 김 씨는 42년 전 당시 여섯 살이었던 아들 만호 군을 잃어버린 뒤 세상과 벽을 쌓았다. 그날은 1977년 5월 28일 토요일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놀러 나간 아들은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만호 군과 놀던 아이들은 “어떤 할아버지가 만호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나고 자라 수십 년을 지낸 곳에서 이웃이 만호 군을 데려갔을지 모른다는 불신이 김 씨의 마음속에서 커졌다. 가족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집에서도 입을 닫았고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 했다. 그런 김 씨가 심리치료 프로그램 마지막 날 먼저 입을 연 것이다. 김 씨는 “이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남도 끝에도, 독도에도 가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김 씨처럼 가족이 실종된 지 30년이 지난 장기 실종자 가족 10명을 대상으로 10월 31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5회에 걸쳐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경찰이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프로그램을 이끈 서울 성동경찰서 청문감사관실 소속 이효정 경장 등과 함께 실종자 가족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기록했다.○ 41년 만에 딸 이름 부르니 응어리 풀려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백명자 씨(68·여)를 이달 17일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났다. 백 씨는 기자에게 전단을 건넸다. 41년 전 잃어버린 딸 김선영 양(실종 당시 3세)의 사진과 신체 특징이 적혀 있었다. 백 씨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 전단 500장을 새로 뽑았다고 한다. 백 씨가 딸의 전단을 뽑은 건 13년 만이다. 백 씨에게 선영 양의 이름은 금기어였다. 집 앞에서 놀던 첫딸 선영 양이 눈 깜짝할 새 사라진 건 1978년 11월 26일 일요일이었다. 백 씨는 만삭의 몸으로 선영 양을 찾아 헤맸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2주 뒤 출산을 하자마자 다시 선영 양을 찾아 집 밖으로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둘째 딸이 젖을 먹지 못해 입이 바짝 말라 있었다. ‘둘째 딸을 살리려면 선영이는 가슴에 묻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백 씨는 그 후로 선영 양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가족에겐 밝은 모습만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고 ‘웃음치료사’ 과정도 수료했다. 첫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해 매일 수면제를 먹는다는 사실은 가족에게 숨겼다. 그랬던 백 씨에게 변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네 번째 심리치료가 진행된 지난달 21일. 잃어버린 가족에게 그림 편지를 쓰는 시간이었다. 백 씨는 A4 용지에 선영 양의 얼굴을 채웠다. “선영아, 오랜만이야. 잘 살고 있지?” 다른 실종자 가족 앞에서 편지를 낭독하는 그 시간은 백 씨가 41년 만에 처음으로 선영 양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이었다. 백 씨는 “그동안 다른 가족의 행복을 위해 선영이를 애써 잊으려 했는데, 오히려 그랬던 내 모습이 선영이에게 미안해서 죄책감에 시달려왔다”고 고백했다. 백 씨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선영이가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속으로만 삼켜온 ‘선영이’라는 이름을 시원하게 뱉고 나니 응어리가 풀렸다”고 했다. ○ 가족에게 처음 전하는 진심, “고마워요” 실종자 가족들이 닫힌 마음을 열기까지는 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공감을 보인 상담 경찰관들의 노력이 있었다. 두 번째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된 지난달 7일이 그랬다. 실종자 가족 10명에겐 찰흙이 주어졌다.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45년 전 당시 세 살이던 아들 이정훈 군을 잃어버린 전길자 씨(72·여)는 찰흙으로 둥근 원반을 만들었다. 원반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막대 10여 개를 꽂았다. 이 경장은 전 씨 옆으로 다가가 “울타리를 만드는 거냐”고 물었다. 전 씨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아무 생각 없이 찰흙을 만지고 있었는데, 그 질문을 들으니 정훈이가 못 나가게 막으려고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경장은 전 씨가 만든 울타리에 검지가 들어갈 정도의 빈틈이 있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이 경장이 전 씨에게 “여기는 왜 열려 있느냐”고 묻자, 전 씨는 “내가 갇혀 있으면 남아 있는 가족을 돌볼 수 없다”며 “문이 조금은 열려 있어야 가족도 만나고 정훈이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장의 질문이 실종자 가족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32년 만에 처음으로 남아 있는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참여자도 있었다. 1987년 당시 생후 7개월이었던 한소희 양을 잃어버린 이자우 씨(60·여)는 지난달 7일 “내일이 남편 생일”이라며 찰흙으로 알록달록한 생일 케이크를 만들었다. 이 씨는 “나는 평생 나를 탓하며 살았는데 남편은 단 한 번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살았다”고 했다. 이 경장은 이 씨에게 “오늘 남편에게 ‘고맙다’는 진심을 전해보자”고 했고, 이 씨는 약속을 지켰다. 이 씨는 이날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며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말을 건넸다. 남편은 말없이 웃으며 이 씨를 바라봤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제1회 실종자 가족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마친 경찰은 이달 12일부터 다른 실종자 가족 10명을 대상으로 제2회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 해외입양 한인 DNA로 실종가족 찾는다 장기 실종자 가족들에게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경찰청은 지난달부터 ‘한인혼혈입양인연합’과 함께 장기 실종자 가족과 해외 입양인의 유전자(DNA)를 분석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이 센터를 통해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면 입양인연합이 이들을 대상으로 입안 세포를 채취해 미국 내 유전자 분석기관에 맡겨 경찰에 결과를 알려주는 식이다. 지난해 12월 구모 씨(62·여)는 39년 전 잃어버렸던 딸을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울먹이며 “하느님이 제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셨다”고 말했다. 2017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양인연합에 자신의 유전자를 등록해뒀는데, 미국에 거주하는 입양인 안드레아 김 씨(39)가 구 씨의 친딸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올 5월 1일 한국을 방문한 김 씨는 구 씨에게 카네이션을 건넸다. 구 씨 모녀처럼 수십 년 만에 기적처럼 상봉하는 실종자 가족과 해외 입양인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내년 1월 1일부터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무연고 아동이 친부모를 찾는 경우 14개국 소재 현지 재외공관 34곳을 통해 유전자를 채취·등록하는 서비스를 실시한다. 해외 입양인이 현지에서 유전자를 채취하면 경찰청이 보관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와 대조해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식이다. 18일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김길순 씨(71·여)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김 씨는 최근 이곳에서 구강 유전자를 채취해 분석을 맡겼다. 김 씨는 “42년 전 100일도 지나지 않은 딸을 잃어버리고 평생을 찾아 헤맸다”며 “이제는 내 딸 시내가 나를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집 앞에도 나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집에서 100m, 200m 조금씩 멀리 나가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치안센터 2층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김성원 씨(77)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 씨는 10월 31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이 센터에서 다른 실종자 가족 9명과 함께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그간 “할 말이 없다”며 질문을 피해왔다. 김 씨는 42년 전 당시 여섯 살이었던 아들 만호 군을 잃어버린 뒤 세상과 벽을 쌓았다. 그날은 1977년 5월 28일 토요일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놀러나간다던 아들은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만호 군과 놀던 아이들은 “어떤 할아버지가 만호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나고 자라 수십 년을 지낸 곳에서 이웃이 만호 군을 데려갔을지 모른다는 불신이 김 씨의 마음속에서 커졌다. 가족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집에서도 입을 닫았고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 했다. 그런 김 씨가 심리치료 프로그램 마지막 날 먼저 입을 연 것이다. 김 씨는 “이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남도 끝에도, 독도에도 가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김 씨처럼 가족이 실종된 지 30년이 지난 장기 실종자 가족 10명을 대상으로 10월 31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5회에 걸쳐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경찰이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프로그램을 이끈 서울 성동경찰서 청문감사관실 소속 이효정 경장 등과 함께 실종자 가족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기록했다.● 41년 만에 딸 이름 부르니 응어리 풀려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백명자 씨(68·여)를 이달 17일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났다. 백 씨는 기자에게 전단지를 건넸다. 41년 전 잃어버린 딸 김선영 양(실종 당시 3세)의 사진과 신체특징이 적혀있었다. 백 씨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 전단지 500장을 새로 뽑았다고 한다. 백 씨가 딸의 전단지를 뽑은 건 13년 만이다. 백 씨에게 선영 양의 이름은 금기어였다. 집 앞에서 놀던 첫째 딸 선영 양이 눈 깜짝할 새 사라진 건 1978년 11월 26일 일요일이었다. 백 씨는 둘째 딸을 가진 만삭의 “으로 선영 양을 찾아 헤맸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2주 뒤 둘째 딸을 낳자마자 다시 선영 양을 찾아 집밖으로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둘째 딸이 젖을 먹지 못해 입이 바짝 말라 있었다. ‘둘째 딸을 살리려면 선영이는 가슴에 묻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백 씨는 그 후로 선영 양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가족에겐 밝은 모습만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고 ‘웃음 치료사’ 과정도 수료했다. 첫째 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해 매일 수면제를 먹는다는 사실은 가족에게 숨겼다. 그랬던 백 씨에게 변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지난달 21일 네 번째 심리치료가 진행되는 날. 잃어버린 가족에게 그림 편지를 쓰는 시간이었다. 백 씨는 A4 용지 위에 딸 선영 양의 얼굴을 채웠다. ”선영아, 오랜만이야. 잘 살고 있지?“ 다른 실종자 가족 앞에서 편지를 낭독하는 그 시간은 백 씨가 41년 만에 처음으로 선영 양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이었다. 백 씨는 ”그동안 다른 가족의 행복을 위해 선영이를 애써 잊으려 했는데, 오히려 그랬던 내 모습이 선영이에게 미안해서 죄책감에 시달려왔다“고 고백했다. 백 씨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선영이가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속으로만 삼켜온 ‘선영이’라는 이름을 시원하게 뱉고 나니 응어리가 풀렸다“고 했다. ● 가족에게 처음 전하는 진심, ”고마워요“ 실종자 가족들이 닫힌 마음을 열기까지는 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공감을 보인 상담 경찰관들의 노력이 있었다. 두 번째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된 지난달 7일이 그랬다. 실종자 가족 10명에겐 찰흙이 주어졌다.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45년 전 당시 3살이었던 아들 이정훈 군을 잃어버린 전길자 씨(72·여)는 찰흙으로 둥근 원반을 만들었다. 원반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막대 10여 개를 꽂았다. 이 경장은 전 씨의 옆으로 다가가 ”울타리를 만드는 거냐“고 물었다. 전 씨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아무 생각 없이 찰흙을 만지고 있었는데, 그 질문을 들으니 정훈이가 못 나가게 막으려고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경장은 전 씨가 만든 울타리에 검지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빈틈이 있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이 경장이 전 씨에게 ”여기는 왜 열려 있냐“고 묻자, 전 씨는 ”내가 갇혀 있으면 남아 있는 가족을 돌볼 수 없다“며 ”문이 조금은 열려 있어야 가족도 만나고 정훈이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장의 질문이 실종자 가족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32년 만에 처음으로 남아 있는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참여자도 있었다. 1987년 당시 생후 7개월이었던 딸 한소희 양을 잃어버린 이자우 씨(60·여)는 지난달 7일 ”내일이 남편 생일“이라며 찰흙으로 알록달록한 생일 케이크를 만들었다. 이 씨는 ”나는 평생 나를 탓하며 살았는데 남편은 단 한 번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살았다“고 했다. 이 경장은 이 씨에게 ”오늘 남편에게 ‘고맙다’는 진심을 전해보자“고 했고, 이 씨는 약속을 지켰다. 이 씨는 이날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며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말을 건넸다. 남편은 말없이 웃으며 이 씨를 바라봤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제1회 실종자가족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마친 경찰은 이달 12일부터 다른 실종자 가족 10명을 대상으로 제2회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 해외 입양 한인 DNA로 실종가족 찾는다 장기 실종자 가족들에게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경찰청은 지난달부터 ‘한인혼혈입양인연합’과 함께 장기 실종자 가족과 해외 입양인의 유전자(DNA)를 분석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이 센터를 통해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면 입양인연합이 이들을 대상으로 입 안 세포를 채취해 미국 내 유전자 분석 기관에 분석을 맡겨 경찰에 결과를 알려주는 식이다. 지난해 12월 구모 씨(62·여)는 39년 전 잃어버렸던 딸을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울먹이며 ”하느님이 제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셨다“고 말했다. 2017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양인연합에 자신의 유전자를 등록해뒀는데, 미국에 거주하는 입양인 안드레아 김 씨(39)가 구 씨의 친딸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올 5월 1일 한국을 방문한 딸 김 씨는 구 씨에게 카네이션을 건넸다. 구 씨 모녀처럼 수십 년 만에 기적처럼 상봉하는 실종자 가족과 해외 입양인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내년 1월 1일부터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무연고 아동이 친부모를 찾는 경우 14개국 소재 현지 재외공관 34곳을 통해 유전자를 채취·등록하는 서비스를 실시한다. 해외 입양인이 현지에서 유전자를 채취하면 경찰청이 보관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와 대조해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식이다. 18일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김길순 씨(71·여)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김 씨는 최근 이곳에서 구강 유전자를 채취해 분석을 맡겼다. 김 씨는 ”42년 전 100일도 지나지 않은 딸을 잃어버리고 평생을 찾아 헤맸다“며 ”이제는 내 딸 시내가 나를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119 허위신고로 발생한 피해액을 신고자가 물어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소방당국이 허위 신고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3일 강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최근 춘천지법은 L 씨(43)를 상대로 강원도가 제기한 97만9000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L 씨는 올 2월 12일 119에 “형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강원 원주시의 한 아파트에 출동해달라고 요청했다. 구조대원이 현관문을 강제로 열어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해당 집은 다른 사람의 소유였다. 강원도는 올 5월 14일 해당 아파트의 주인에게 우선 현관문 수리비를 물어준 뒤 같은 금액을 L 씨에게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L 씨에게는 경범죄처벌법상 거짓신고 혐의로 벌금 20만 원도 선고됐다. 원주소방서는 L 씨에게 거짓신고 과태료 200만 원도 부과할 방침이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울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올해 처음 연간 2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각 나라와 도시의 교통안전 수준을 가늠하는 국제 기준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 수치에서 서울이 연간 2명대로 진입하는 것은 교통사고 사망자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처음이다. 일본 도쿄(1명)와 독일 베를린(1.2명), 영국 런던(1.3명), 프랑스 파리(1.7명), 호주 시드니(2.2명) 등 교통안전이 자리 잡은 세계의 주요 도시들은 대부분 2명대 이하다. 정부는 2020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를 인구 10만 명당 4명 아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올 들어 12월 10일까지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2명으로 집계됐는데, 지금대로면 올 한 해 10만 명당 사망자는 수는 2.4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11일 밝혔다. 서울의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15년(3.8명)에 3명대로 떨어졌고 4년 만에 다시 2명대로 낮아지는 것이다. 서울은 지난해 전국의 광역자치단체 중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3.1명)가 가장 적었다. 이 같은 서울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 감소는 서울지방경찰청이 보행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횡단보도에 투광기를 설치하는 등 최근 수년간 안전 조치에 노력을 쏟은 것이 효과를 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보행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밤에도 횡단보도를 밝게 비추는 투광기를 곳곳에 설치해 왔는데 2018년과 올해 2년 동안에만 827곳에 설치했다. 경찰은 또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막기 위해 간이중앙분리대도 늘려왔다. 2017년 총길이 23.3km이던 서울 시내 간이중앙분리대가 지금은 90km를 넘는다. 2015년 한 해 200명대였던 보행 사망자는 이후 꾸준히 줄어 지난해에는 185명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10일 현재 136명으로 크게 줄었다. 보행 사망자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60% 이상을 차지해 교통안전을 위한 해결 과제로 지적돼 왔다. 도로 위에 쓰러져 있는 취객을 교통사고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순찰차가 경광등을 밝힌 채 시속 30∼40km로 서행하는 ‘3040 서행순찰’도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경찰은 올 10월 1일 새벽 시간대에 서울 은평구의 한 유흥가 도로에 쓰러져 있던 30대 남성 취객을 발견해 안전하게 귀가시켰다. 올해 서울지방경찰청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서행순찰을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 발견한 도로 위 취객만 175명에 이른다. 김창영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앞으로도 안전한 보행 환경을 갖추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교통안전에도 각별히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서형석 기자}
스승 소유의 김환기 화백(1913∼1974) 작품을 맡아뒀다가 스승이 숨지자 이를 유가족 몰래 팔아 40억 원을 챙긴 60대가 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 화백의 또 다른 작품 ‘우주(Universe 5-IV-71 #200)’는 지난달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8800만 홍콩달러(약 133억 원)에 낙찰됐다. 10일 미술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은 국내 한 대학 A 교수가 소장해온 김 화백의 작품 ‘산울림(10-Ⅴ-73 #314)’을 팔아 40억 원을 챙긴 60대 김모 씨를 올 8월 2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A 교수는 숨지기 전 제자인 김 씨에게 “내가 가진 김 화백의 작품을 처분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 교수가 지난해 말 숨지자 김 씨는 미술품 딜러를 통해 ‘산울림’을 팔아 거래대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의 범행은 A 교수의 유족들이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하면서 드러났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A 교수가 40년 넘게 소장해온 김 화백의 작품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림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유족들은 미술 시장에 “김 화백의 작품 ‘10-Ⅴ-73 #314’를 사겠다”는 소문을 냈다. 그러자 그림을 50억여 원에 팔겠다는 B 씨가 나타났다. 유족 측이 B 씨와 직접 만나 작품을 확인해 보니 한눈에 봐도 A 교수가 소장했던 작품과 같았다. 작품 뒷면에 적힌 거래 기록뿐만 아니라 작품명도 일치했다. 이 작품명은 1973년 5월 10일부터 이 그림을 그렸다는 뜻이다. 김 화백은 이 작품과 관련해 1973년 5월 10일 일기에 “가로 147.5cm, 세로 100cm 크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A 교수가 소유했던 그림과 B 씨가 시장에 내놓은 그림이 일치하는 정황을 확인한 유족 측은 올 6월 “그림을 도난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B 씨에게 작품을 알선했다고 하는 미술품 딜러 C 씨를 추적했다. C 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 씨가 나를 통해 김 화백의 산울림을 40억 원에 팔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 거래 계약서에도 김 씨의 이름이 등장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교수가 나에게 그림을 가지라고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A 교수 측 관계자들을 통해 “(김 씨에게) 그림을 준 적이 없고 처분 의뢰만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A 교수는 김 화백으로부터 이 작품을 직접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씨를 구속한 뒤 그의 계좌를 추적해 김 화백의 작품을 판 돈 40억 원 중 30억 원 가까이를 개인 빚을 갚고 고가의 아파트 중도금을 치르는 데 쓴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8월 초 김 씨의 계좌에 남아있던 10억여 원에 대해 몰수보전 조치를 한 뒤 그를 검찰에 넘겼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청와대가 지난해 울산시장을 뽑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찰을 시켜 야당 후보자를 수사하게 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인 가운데 7일 서울 여의도에선 검찰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검찰을 지지하는 맞불 성격 집회도 인근에서 개최됐다. 검찰개혁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는 7일 오후 여의도공원 인근 여의대로에서 ‘제14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7개 차로를 메운 참가자들은 ‘정치검찰 해체하라’ ‘설치하라 공수처’라고 적힌 손팻말을 흔들었다. 집회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김남국 변호사는 “경찰 수사가 울산시장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면 검찰이 1년 6개월이나 묵혀둔 사건을 지금에서야 수사하는 것도 정치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김민석 전 의원은 “검찰은 정권만 겨냥하고 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고 역심”이라고 했다. 5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맞불 집회’를 연 보수성향 단체 자유연대는 “이 사건의 본질은 청와대의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연단에 오른 한 참가자는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20년 지기 친구인 송철호 씨를 울산시장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권한을 찢으려 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만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 기자}
“대전까지 가서 대회에 참가한 보람이 있네요.” 3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1회 ‘대덕에서 과학을 그리다’ 미술대회(동아일보·채널A 공동 주최, 동아사이언스 후원) 시상식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은 김유하 군(17·서울 영일고)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평소 인공지능(AI)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 군은 인간처럼 고민하는 AI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심사위원단 최고상을 받았다. 초등부에서 과기정통부 장관상을 받은 김채은 양(12·대전 와동초)은 “처음으로 그림대회에 참가했는데 큰 상을 받아 기쁘다”며 “내년에도 참가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 양은 우주에서 인간과 외계인이 함께 뛰노는 모습을 그려 심사위원단의 주목을 받았다. 남매가 각각 금상과 은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상을 받은 이예원 양(13·대전 유성중)과 기초과학연구원장상을 받은 이승원 군(7·대전 장대초)이 주인공이다. 어머니 이선숙 씨(41)는 “대전에서 과학과 관련된 미술대회가 처음 열린다고 해서 참가했는데 남매가 함께 상을 받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 군은 우주에서 뛰노는 자신의 모습을, 이 양은 지구에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도화지에 담았다. 시상식에는 과기정통부장관상과 지방자치단체장상 및 주요 연구기관장상을 받은 초중고교생 33명과 가족 3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박제균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시상했다. 전체 수상자 147명 중 87명이 장관상, 단체장상, 연구기관장상 등을 받았다. 장려상을 받은 60명에게는 소속 학교 및 유치원으로 상장이 전달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올해 5월 서울 금천구에서 하루에 2명을 이유 없이 살해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30대 중국 동포 남성에게 1심 법원이 징역 45년을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환승)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31)에 대해 “몇 번 마주쳤을 뿐인 중국 동포와 처음 본 회사원을 별다른 이유 없이 살해했다. 장기간 격리시켜 사회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며 28일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범행 당시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 씨에게 무기징역형과 사형 이외에 선고할 수 있는 최고 형량을 선고했다. 불과 다섯 시간 사이에 2명을 살해한 김 씨가 풀려난다면 재범의 위험성이 크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김 씨는 올해 5월 14일 오후 6시 40분경 자신이 살던 금천구의 한 고시원에서 이웃인 중국 동포 A 씨를 살해하고 같은 날 오후 11시 30분경엔 금천구 가산동의 빌딩 옥상에서 30대 회사원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해외 테러단체에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카자흐스탄 국적의 20대 남성 A 씨가 최근 국내에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A 씨보다 먼저 테러단체 지원 자금을 국내에서 모집해 온 외국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이 외국인들을 알게 되면서 테러단체의 이념과 주장에 동조하게 돼 자금을 지원하게 됐다. 이런 사실은 본보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A 씨에 대한 공소장에 담겨 있다. 경찰은 A 씨를 포섭한 외국인의 소재 파악에 나서는 등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공중 등 협박 목적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위한 자금 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테러자금금지법)이 시행된 2017년 3월 이후 이 법에 따라 테러 자금 제공자가 구속된 것은 A 씨가 처음이다. 올해 10월 체포될 당시 A 씨는 국내 체류 가능 기간이 지난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2016년 관광비자로 국내에 입국한 A 씨는 충남 지역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경남 지역의 한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A 씨는 경남의 한 도시에 있는 이슬람사원에서 중앙아시아계 외국인 4명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 이들은 이미 T테러단체에 보낼 자금 모집 활동을 하고 있었다. 3명은 우즈베키스탄, 나머지 한 명은 A 씨와 같은 카자흐스탄 국적이었다. A 씨는 이들로부터 T단체의 이념과 주장, 활동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단체 홍보 영상도 보게 되면서 동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A 씨는 자금 모집 활동뿐만 아니라 T단체의 이념 등을 주변의 중앙아시아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파한 것으로 드러났다. A 씨 등은 이 단체 조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비밀 메신저 등을 통해 자금 모집 활동과 관련한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 씨가 자금을 제공한 T단체는 2013년 결성됐는데 중앙아시아인 위주로 조직원 700여 명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출신 조직원이 많아 ‘우즈베크 독립부대’로도 불린다. 2015년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발생한 버스 폭탄 테러와 2016년 주키르기스스탄 중국대사관 폭탄 테러, 201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폭탄 테러 등의 배후 세력으로 이 단체가 지목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법원은 각각 2016년과 2017년에 판결을 통해 이 단체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이 단체를 추종하는 국내 외국인들에 대한 수사를 2017년부터 이어온 경찰은 불법 체류자 신분의 조직원들을 강제로 추방하기도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글러먹은 ××야” “야 너 이리로 와, 이 ××”. 실업팀 소속 운동선수 A 씨는 감독과 코치로부터 이런 폭언을 자주 듣는다. A 씨는 “(지도자들이) 선수를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생각한다”며 “선수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말했다. 20대인 운동선수 B 씨는 “대화를 하다가 (감독이) 물건을 집어던졌다”며 “평생 경험하지 못한 모욕감을 이때 처음 느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수감 중)의 심석희 선수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선수들의 인권 실태를 들여다봤다.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올 7∼8월 실업팀 소속 선수 1251명을 대상으로 소속팀 내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선수 3명 중 1명(33.9%)은 언어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체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비율도 26.1%에 달했다. 선수들은 일상의 곳곳에서 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다. 소속팀 내 폭력의 88.7%는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폭력은 선수들의 휴식 공간인 숙소(47.6%)에서도 이어졌다.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 등 지도자뿐 아니라 같은 팀 선배한테서도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선수 중 8.2%는 ‘거의 매일 맞고 있다’고 답할 정도였다. 이 같은 만성적인 폭력에 노출된 선수들은 정신적인 고통까지 호소한다. 신체폭력을 당한 선수 중 51.1%는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졌다’고 했다. 25.8%는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이런 무기력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20대 후반 운동선수 C 씨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기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대개는 ‘내 정신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며 “나도 우울증인 걸 몰랐다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C 씨는 지금도 매일 수면제에 의지하고 있다. 인권위는 21일 ‘실업팀 선수 인권 보호방안 원탁토론회’를 열고 스포츠 선수들의 인권실태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운동선수 인권교육 및 정기적 인권실태조사 실시 △가해자 징계 강화와 징계정보시스템 구축 △직장운동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등이 개선책으로 제시됐다.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높이고 이를 데이터베이스(DB)에 차곡차곡 기록해 나가는 징계정보시스템 구축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올 1월 심석희 선수는 조 전 코치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며 “(조 전 코치와) 마주친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면 선수들이 겪는 폭력 피해는 수면 위로 드러나기 어렵다. 가해자에게 강력한 징계가 내려질 때 더 많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다. 이소연 사회부 기자 always99@donga.com}
생후 3개월 된 딸을 혼자 집에 남겨 두고 외출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부부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의정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강동혁)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남편 A 씨(28)와 아내 B 씨(28)에게 각각 징역 5년과 4년을 선고하고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고 24일 밝혔다. A 씨는 4월 18일 오후 6시경 자택에서 딸에게 분유를 먹인 뒤 엎드린 자세로 잠들게 하고 외출해 아내를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다. A 씨는 오후 8시 반경 귀가했으나 PC게임에 몰두하느라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B 씨는 남편과 헤어진 뒤 지인들을 만나느라 외박했다. 다음 날 A 씨는 딸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119 구급대에 신고했으나 생후 3개월 된 딸은 이미 숨진 뒤였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금 사면 대박이에요. 10억 원까진 무리 없이 가요(올라요).” 18일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사가 전용면적 59m²인 7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공인중개사는 “주변 시세보다 저렴해 없어서 못 살 정도이니 서두르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이어진 설명은 일반적인 아파트 매매 방식과는 달랐다. 이 아파트는 2009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공급된 ‘10년 공공임대주택’으로, 올 9월 분양 전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임차인(세입자)이 목돈을 마련하지 못해 아직 분양을 받지 못했으니 그 값을 대신 치러주면 나중에 소유권을 넘겨주겠다는 게 공인중개사의 설명이었다. 집주인은 LH인데 집값은 임차인에게 먼저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지 묻자 이 공인중개사는 “법적으로 애매해 100% 안전하다고는 못 한다”면서도 “이미 여러 채가 이런 식으로 계약이 이뤄졌다”고 했다. 2009년 5월 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해 처음 공급된 판교신도시의 10년 공공임대주택 5644가구가 최근 집값 폭등으로 ‘위험한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10년 전 임차인이 내야 했던 임대보증금은 1억5000만∼2억1000만 원이었지만 그간 인근 지역 집값이 2배 이상으로 크게 오르며 ‘주변 시세의 90%’로 책정된 분양 전환가가 5억∼6억 원으로 뛰었다. 이 때문에 당장 분양 전환을 할 형편이 못 되는 일부 임차인이 프리미엄(웃돈)이라도 건지기 위해 소유권 이전 등기도 되지 않은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거래가 중간에 어그러져도 매입자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광교 변호사(IBS 법률사무소)는 “민법상 부동산 처분은 소유권자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분양 전환이 안 된 아파트를 두고 개인끼리 맺은 매매 계약은 나중에 아예 무효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만약 임차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입자에게서 받은) 돈을 분양 전환하는 데 쓰지 않고 다른 데 써버렸어도 매입자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판교신도시 말고도 앞으로 분양 전환 시점이 돌아올 10년 공공임대주택은 전국에 10만 가구가 넘는다. 내년엔 경기 오산시에서, 2021년엔 경기 파주시 운정신도시에서 각각 1000가구가 넘는 10년 공공임대주택이 분양 전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당국은 실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10년 공공임대주택의 분양 전환이 이뤄지기 전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거래 유형이라서 적법성을 판단 중”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14일 법제처에 10년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이 소유권 이전 등기 전에 주택을 거래하는 게 적법한지를 검토해 달라고 의뢰했다. LH 관계자는 “규제 방안이 있는지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조건희 기자}
“지난해에 비해 어렵지 않게 출제됐다. 영역마다 고난도 문제를 2, 3개씩 출제해 변별력을 갖췄지만 특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문항은 없었다. 이른바 ‘킬러 문항’도 상대적으로 쉬웠다.” 14일 치러진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입시상담교사단의 총평이다. 특히 지난해 ‘불수능’ 논란의 핵심이던 국어와 영어가 전년보다는 쉽게 나왔다는 평이다.○ 국어: 전년보다 쉽지만 ‘경제 지문’ 난해 국어영역은 ‘역대급’으로 불린 지난해보다는 평이했다. 지금까지 1건당 2200∼2300자 분량으로 출제됐던 ‘독서’ 지문도 1500∼1600자로 줄었다. 하지만 변별력은 있었다는 게 입시정보업체들의 평가다. 대학입시상담교사단 측은 “(홀수형 기준) 6, 13, 32번에서 새로운 유형이 출제됐고 고난도 문제는 22번과 경제 분야 지문이 출제된 37∼42번이었다”고 밝혔다. 고전시가 ‘월선헌십육경가’의 감상을 묻는 22번 문제는 EBS 교재와 시험에서 인용된 부분이 각각 달라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37∼42번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관련 지문에 딸린 문항들이다. 금융 관련 내용이고 EBS 교재에서 연계 출제하지 않아 체감 난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40번은 제시된 용어가 시간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을 간파하고 풀어야 해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혔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독서 지문이 전반적으로 짧아져도 읽어내야 하는 정보량은 적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 수학: 중상위권 학생은 시간 빠듯했을 듯 지난해 수능 및 올 9월 모의평가와 비슷한 난도로 출제됐다. 최상위권 학생들에겐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중상위권 학생들에겐 다소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평이 나온다. 조만기 판곡교 교사는 “‘가’형(이과생이 주로 보는 유형)과 ‘나’형 모두 기본 개념과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빠르고 쉽게 풀 수 있는 문항이 많았다”라면서도 “다만 이를 완벽히 숙지하지 못했다면 풀이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도 고난도 문항은 객관식 마지막(20, 21번)과 주관식 마지막(29, 30번)에서 출제됐다. ‘가’형에선 다항함수의 미분법을 적용한 30번이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나’형 21번은 기존 귀납적 수열 문제와는 달리 식을 재구성해야 하는 신유형이자 고난도 문제로 꼽혔다. 오수석 소명여고 교사는 “최근 출제 경향을 보면 중간 난도 문항이 늘어나고, 고난도 문항은 줄어들고 있다”며 “원리에 대한 정확한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영어: 절대평가 3년 차…1등급 비율 늘어날 듯 영어도 작년보다 쉬웠다. 절대평가로 전환된 지 3년 차인 영어영역에선 원점수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받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문제를 분석한 현직 교사들은 “신유형이 없고 비교적 평이했기에 1등급 비율이 작년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한 지문에 두 문항을 출제하는 ‘장문 독해’의 경우 그동안의 수능과 달리 EBS 교재와 연계 출제된 것이 특징이다. 영어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빈칸 속 문장을 채우는 34번과 문단 순서를 배열하는 37번으로 지목됐다. 채현서 봉담고 교사는 “34번은 독해를 하면서 동시에 추론을 해야 풀 수 있는 문제였고, 37번은 문장이 길고 구조가 난해한 데다 어휘가 어려웠다”면서 “상위권 수험생의 변별력을 확보했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 한국사·탐구: 일부 과목 ‘까다로웠다’ 반응 필수 영역인 한국사는 지난해처럼 수험생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절대평가인 만큼 50점 만점에 40점 이상이면 1등급이다. 기본 개념을 묻는 문제 위주였으나 선택지는 다소 어렵게 구성됐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은 사회탐구에서 세계사와 경제 동아시아사, 과학탐구에선 물리Ⅰ, Ⅱ와 지구과학Ⅰ이 전년보다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덕성여고 한선아 양(18)은 “모든 영역이 엄청 어렵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오히려 사탐이 은근히 어려웠다. 사회문화에서 통계 나오는 문제가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수험생 커뮤니티에선 “과학탐구 중에선 지구과학이 역대급이었다. 꿈에서 출제 교수님에게 항의하고 싶을 정도”라는 푸념도 올라왔다.세종=김수연 sykim@donga.com / 강동웅·이소연 기자 ▼ “작년 국어 31번 같은 초고난도 문항없다” ▼심봉섭 출제위원장“유불리 논란 없도록 지문 선정…EBS 강의와 연계율은 70% 수준”“지난해 국어 31번 같은 초고난도 문항은 당연히 없다.” 14일 오전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작 직후 심봉섭 출제위원장(서울대 불어교육과 교수·사진)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강조했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 문제에서는 동서양 천문학 분야의 개혁 과정을 다룬 지문 한 페이지와 함께 ‘부피 요소’와 ‘밀도’, ‘만유인력’ 등의 개념을 설명한 보기가 제시됐다. 국어 영역인데도 과학적 배경지식 유무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문제의 오류가 없었는데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처음으로 “난도가 수험생의 기대와 달랐던 부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이날 심 위원장은 “지난해 국어 31번 같은 초고난도 문항에 대해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번 출제위원들은 그런 문항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어 교육과정 내용과 교과서 등을 면밀히 검토해 가능한 한 모든 학생이 유불리를 느끼지 않을 만한 소재 중심으로 지문을 찾아내려 노력했다”며 “이번 수능에서는 그런 유불리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주 수능 검토위원장(춘천교대 사회교육과 교수)은 “올해는 검토위원 워크숍을 강화해 정답률 예측력을 제고해서 적정 난도를 유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올해 EBS 수능 교재 및 강의와의 연계율은 70% 수준이다. 심 위원장은 “EBS 연계는 오래전 정해진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개념과 원리, 지문과 자료, 핵심 제재 및 논지를 활용하거나 문항을 변형 또는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연계했다”고 설명했다.세종=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하천에서 물 끌어다가 농사짓는데….” 12일 경기 연천군 중면에서 만난 이응진 씨(75)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한 돼지 사체에서 나온 핏물로 하천이 물들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곳이다. 배추 농사를 짓는 이 씨는 “피로 오염된 물로 농사를 지으라는 것이냐”며 답답해했다. 인근 주민들은 악취 피해를 호소했다. 한 주민은 “어제 돼지가 매몰된 곳 주변에서 대파를 뽑았는데 악취 때문에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며 “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하천을 따라서 퍼졌다”고 했다. 주민들은 연천군과 방역 당국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했다. 김영순 씨(65·여)는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축사도 마음대로 못 짓는데 이런 곳에 돼지 사체를 방치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했다.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사체가 쌓이면서 압력이 생기자 아래쪽에 쌓여 있던 돼지 사체에서 피가 터져 나온 것”이라며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는데도 관리 부실로 하천이 오염됐다”고 지적했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는 뒤늦게 환경부, 지자체와 합동 점검반을 꾸려 이미 조성된 매몰지 101곳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사체 운반 때도 비닐로 덮는 등 핏물이 새지 않게 해야 하는데 소홀함이 있었다”며 “지자체들이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라 매몰 조치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농식품부가 예방적 살처분을 추진하면서 그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벌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남아 있는 돼지 사체 1만여 마리는 13일까지 매몰을 완료할 계획이다. 아울러 경기 파주시는 강에서 끌어온 물을 모아둔 금파취수장에서 물을 끌어 쓰지 못하도록 하는 취수 중단 조치를 12일 오전 10시부터 실시했다. 연천군 마거천 인근에서 발생한 침출수의 일부가 13일 임진강으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와 환경부는 문제가 된 돼지 사체는 ASF에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은 12일 돼지 사체 침출수가 유출된 매몰 처리지 인근 하천부터 임진강까지의 구간에서 4곳의 물을 확보해 검사를 의뢰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핏물이 스며든 하천에서 임진강까지 13km 거리이고, 취수장까지는 2∼3km 더 떨어져 있다”며 “핏물이 흘러간 길이는 200∼300m로 파악하고 있으며 현재 펌프로 핏물을 제거했고 웅덩이에 핏물 등 침출수를 모아 하수처리장에 보내고 있다”고 했다. 돼지를 쌓아둔 장소에도 바닥에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천이 깔려 있어 일시적으로 핏물이 넘친 것 외에는 토양으로 침출수가 유출될 우려도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해당 돼지 전수를 대상으로 ASF 감염 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만큼 바이러스가 하천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정향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샘플 조사를 거친 만큼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ASF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는다고 100% 장담하긴 어렵다”고 했다. 연천=이소연 always99@donga.com / 세종=주애진 / 강은지 기자}
평소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70대 여성과 40대 딸 3명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어머니 김모 씨와 딸 이모 씨 등 4명이 2일 오후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3일 밝혔다. 2일 건물 보수공사를 하려고 김 씨의 집을 찾은 리모델링 업체 관계자는 현관문이 잠겨 있고 문밖으로 악취가 나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모녀는 한방에서 발견됐다. 다른 방에는 ‘하늘나라로 간다’ 등의 내용이 적힌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가 있었다. 시신의 부패 상태로 미뤄 경찰은 숨진 지 최대 한 달가량 지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없는 점 등의 이유로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정확한 사망 이유를 수사하고 있다. 성북구에 따르면 이들 모녀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아니었다. 구 관계자는 “공과금이 3개월 이상 체납되면 구청에 통보되는데 이 가정은 공과금을 체납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모녀는 사기와 사업 실패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 채무로 고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 A 씨는 “과거 김 씨가 사기를 당한 뒤 가세가 기울었다. 8년 전쯤 숨진 김 씨의 남편도 생전 건강이 좋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고 말했다. 딸 2명은 2013년경부터 성북구에서 자영업을 했지만 장사가 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자매의 지인 B 씨는 “수개월씩 월세를 내지 못하다가 결국 보증금까지 잃고 3년여 만에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이들 모녀는 2016년부터 해당 주택에 거주했다. 약 56m²(약 17평) 크기에 방이 2개인 것으로 전해졌다. 3일 오전 주택 현관에는 흰색 꽃 여러 송이가 놓여 있었다. 채무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지원책은 개인회생, 개인파산 등 법원의 공적 채무조정과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 등 사적 채무조정이 있다. 개인회생 제도는 채무액이 무담보 채무는 5억 원, 담보부 채무는 10억 원 이하인 개인채무자가 법원이 정해준 금액을 나눠 갚으면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다. 개인파산 제도는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사람이라면 채무액과 상관없이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채무감면 프로그램이 위기에 빠진 이들에게 제대로 홍보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채무지원 제도의 요건이 엄격하고 서류 작성 문제 등으로 개인이 지원하기 쉽지 않아 결국 법무사 등을 찾아가면 또 다른 비용이 든다”며 “채무조정 상담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주민센터, 경찰 등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소영 ksy@donga.com·이소연·장윤정 기자}
잇따른 BMW 차량 화재 사고를 수사한 경찰이 BMW 법인과 임직원들이 차량 결함을 알고도 축소, 은폐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최근 BMW코리아 김효준 회장(62) 등 임직원 8명과 BMW 독일 본사, BMW코리아 등 법인 두 곳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3일 밝혔다. 김 회장 등은 BMW 차량에 들어가는 ‘엔진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의 결함을 알고도 축소, 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BMW코리아 본사 등을 압수수색해 2017년 7월 BMW코리아 내부보고서에 EGR쿨러 균열 등 장치 내부 문제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하랄트 크뤼거 BMW 독일 본사 회장에 대해선 혐의점을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평소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던 70대 여성과 40대 딸 3명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어머니 김모 씨와 딸 이모 씨 등 4명이 2일 오후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3일 밝혔다. 2일 건물 보수공사를 하려고 김 씨의 집을 찾은 리모델링 업체 관계자는 현관문이 잠겨 있고 문밖으로 악취가 나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모녀는 한 방에서 발견됐다. 다른 방에서는 ‘하늘나라로 간다’ 등의 내용이 적힌 A4 2장 분량의 유서가 있었다. 경찰은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는 점 등의 이유로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정확한 사망 이유를 수사하고 있다. 성북구에 따르면 이들 모녀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아니다. 구 관계자는 “공과금이 3개월 이상 체납되면 구청에 통보되는데 이 가정은 공과금을 체납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모녀는 사기와 사업실패 등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 채무로 고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 A 씨는 “과거 김 씨가 사기를 당한 뒤 가세가 기울었다. 몇 년 전 숨진 김 씨의 남편도 생전 건강이 좋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고 말했다. 딸 2명은 2013년경부터 성북구에서 자영업을 했지만 장사가 잘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자매의 지인 B 씨는 “수개월씩 월세를 내지 못하다가 결국 보증금까지 잃고 3년여 만에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채무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지원책은 개인회생, 개인파산 등 법원의 공적채무조정과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 등 사적채무조정이 있다. 개인회생제도는 채무액이 무담보채무는 5억 원, 담보부채무는 10억 원 이하인 개인채무자가 법원이 정해준 금액을 나눠 갚으면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다. 개인파산제도는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사람이라면 채무액과 상관없이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채무 감면 프로그램이 위기에 빠진 이들에게 제대로 홍보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채무지원제도의 요건이 엄격하고 서류 작성 등으로 개인이 지원하기 쉽지 않아 결국 법무사 등을 찾아가면 또 다른 비용이 든다”라며 “채무조정 상담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동사무소, 경찰 등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소영기자 ksy@donga.com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