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윤

김기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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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취재분야

2024-10-29~2024-11-28
문학/출판34%
인사일반20%
문화 일반17%
언론7%
사회일반7%
미술3%
역사3%
국회3%
음악3%
정치일반3%
  • 무용수 44명 ‘물 위 역동적 群舞’…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무대 위 가로 18m, 세로 12m의 대형 수조. 보일 듯 말 듯 잔잔하게 차있는 물은 무용수들의 격정이 더해질수록 조금씩 차오른다. 만물의 근원인 동시에 역경을 상징하는 물에 몸을 맡기듯 무용수들은 몸을 치켜세웠다가도 금세 앉았다 엎드리며 역동적 동작을 선보인다. 대표적인 댄스 영화 ‘스텝업’에서 물 위에서 현란한 군무를 선보이는 댄서들을 연상케 한다. 서울시무용단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6, 17일 신작 ‘감괘(坎卦)’를 선보인다. 물을 소재로 삼아 진리를 풀어낸 작품으로 거대한 수조와 무용수 44명으로 구성된 대형 창작무용극이다. 감괘는 역학(易學)의 팔괘 중 하나로 하나의 양(陽)이 두 개의 음(陰)에 빠져있는 형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난을 헤쳐 나가려는 노력과 긍정의 메시지를 몸짓으로 표현한다. 정혜진 서울시무용단 단장은 “물에 갇혀 험난한 운명을 상징하는 괘의 모양이 모두가 처한 팬데믹의 고통을 뜻하는 것 같았다”며 “오래전부터 자연물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구상했는데 감괘를 알게 된 순간 바로 작품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어 “비바람 속에서 날갯짓하다 끝내 비상하고야 마는 인간의 모습을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정 단장이 총괄안무를 맡았고 전진희, 한수문 지도단원과 아크람칸 무용단 출신의 김성훈이 안무가로 참여했다. 통상 무대 여건과 부상 위험으로 물 위에서 무용수들이 춤추는 건 진귀한 풍경이다. 하지만 “신선한 공연을 위해 힘들어도 물을 사용해보자”는 정 단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극 초반 발만 살짝 적실 수준으로 잔잔히 차있던 물은 극이 고조되며 4cm까지 찬다. 연습과정도 만만치 않다. 연습실에 물을 채우고 빼는 데만 몇 시간씩 걸린다. 한 번 춤추고 나면 무용수들이 땀과 물로 흠뻑 젖어 실제 공연처럼 하는 리허설인 ‘런스루’는 하루 한 번뿐이다. 맨바닥에서 추는 전통무용도 쉽지 않은데, 물의 무게감과 미끄러움을 감내하느라 동작 연습도 버겁다. 단원들은 차츰 적응 중이다. 고무재질의 특수신발도 고안했다. 8장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은 활기찬 일상을 뜻하는 1장 ‘수풍정(水風井)’에서 시작한다. 2장 ‘수택절(水澤節)’에서 차츰 기미를 보이던 역경은 6장 ‘중수감(重水坎)’에 이르러 몰아친다. 무용수들도 격한 반복동작을 선보이며 숨을 거세게 몰아쉰다. 마지막 8장 ‘수화기제(水火旣濟)’에서 무용수들은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며 필연적 상생을 표현한다. 정 단장은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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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얼굴이 가짜? AI가 만든 가상인간에 화들짝

    “얼굴 사진을 합성한 인공지능(AI) 인플루언서라던데 어느 부분이 가상인가요?” “모든 것이 다 가상입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루이’는 dob스튜디오가 만든 가상 인플루언서다. 루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일상이나 여행과 관련된 영상들을 올리며 구독자와 소통한다. 해외 유명 가수 빌리 아일리시, 저스틴 비버, 브루노 마스 등의 노래를 따라한 영상도 주요 콘텐츠다. 언뜻 보면 보통의 유튜버들이 제작할 법한 영상이지만 이 채널이 주목받는 건 루이가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이 적용된 가상 인간이라는 점 때문이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의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fake)의 합성어. 인공지능의 딥러닝을 통해 정교한 가짜 영상이나 사진을 만드는 걸 뜻한다. 루이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몸동작, 안무, 표정, 노래를 접한 이들은 “많이 본 것 같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인데 가상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위화감이 전혀 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영상을 제작한 dob스튜디오는 “처음엔 가상 얼굴을 사람들이 너무 못 알아채서 AI의 딥러닝 수준을 일부러 낮춰야 했다”고 설명했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가상 인물 콘텐츠가 진화하고 있다. 미국의 ‘릴 미켈라’, 일본의 ‘이마’, 국내의 ‘로지’ 등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웬만한 실제 인물보다 구독자가 많아진 지 오래다. 과거 가상 인플루언서의 경우 일반인도 부자연스러움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딥페이크 기술이 적용된 최근 가상 인물들은 진짜와 구분하기 힘든 수준이다. 로봇이나 동물 등을 볼 때 인간과 빼닮으면 오히려 불쾌감을 주는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마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옛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인공지능 서비스 ‘딥 노스탤지어(Deep Nostalgia)’도 화제다. 온라인 족보 사이트 ‘마이 헤리티지(My Heritage)’는 사진 속 인물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게 만드는 이미지 서비스를 선보였다. 일부 누리꾼은 이를 통해 유관순 열사나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의 사진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옛 사진에서 굳은 표정의 위인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눈을 깜빡이고 미소를 짓는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한 정현영 씨(35)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잠시나마 그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 애플리케이션 ‘Avatarify’도 딥페이크 기술로 사진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딥페이크 콘텐츠 기술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실존 인물의 사진을 도용한 디지털 성폭력이나 사기, 신원 도용 등 범죄 가능성이 있어서다. 가상 인플루언서의 활동을 응원하는 이들 중에도 “부작용을 방지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네덜란드 사이버 보안업체 딥트레이스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확인 가능한 딥페이크 콘텐츠는 지난해에만 1만4678건으로 전년 대비 84%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유명 여배우의 얼굴 이미지를 합성한 딥페이크 포르노는 약 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K팝 아이돌 역시 타깃이 되고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무심코 올린 얼굴 사진을 삭제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도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김재연 씨(31)는 최근 2년간 카카오톡 프로필에 본인이나 가족, 지인이 등장한 사진을 일절 올리지 않고 있다. 다른 개인 SNS에서도 얼굴이 나온 사진은 지운다. 김 씨는 “일상을 찍은 사진마저도 각종 딥페이크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사진이나 영상의 변형 여부를 탐지하는 프로그램도 개발되고 있다. KAIST의 이흥규 교수팀이 개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카이캐치(KaiCatch)’는 사진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얼굴의 미세한 변형이나 기하학적 왜곡 등의 흔적을 분석한다. MS와 페이스북, IBM 등 해외 정보기술(IT) 기업들도 딥페이크 탐지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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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데믹-인공지능 화두로… 동시대의 SOS 조명”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게 연극의 힘이라면 극단 이와삼의 ‘싯팅 인 어 룸’은 꽤 강력한 작품이다. 대학로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장우재(50·사진)가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팬데믹과 인공지능(AI), 인간성 등의 화두를 객석에 던진다. 그는 ‘동시대성’을 목표로 창작극을 만들고 있다.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펼쳐지는 극은 가까운 미래를 다룬 공상과학(SF) 소설과 닮았다. 지난해 제10회 미래연극제에서 서울 마포구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에서 처음 선보인 뒤 제20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품상, 연출상을 받았다. 장 연출가는 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부터 동시대의 문제들을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었다. 팬데믹으로 모든 게 빨려 들어가듯 큰 변화를 겪는 시점에서 작게나마 2인극을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목 싯팅 인 어 룸은 방에 갇혀 관계를 맺는 시대의 단면을 상징한다. 그는 “최근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 안에서 절박한 SOS를 보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줄거리는 다소 복잡하지만 흥미진진하다. 쌍둥이 자매 제니와 지니는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부모를 잃는다. 엄마는 먼저 감염된 아빠를 보살피기 위해 격리를 거부했다가 함께 세상을 떠난다. 이 사연을 접한 대중은 “무책임한 어머니” “죽음을 통한 진정한 사랑”이라며 엇갈린 반응을 쏟아낸다. 10년이 흘러 언니인 제니도 죽고 홀로 살아가던 지니는 어느 날 언니의 전 남자친구 리언으로부터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 죽은 이를 디지털 기술로 살려내는 재현 시스템으로 언니를 복원했다는 것. 그리고 프로그램 속 제니를 업데이트하고 싶으니 언니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과 자료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장 연출가는 “우린 자유롭기 위해 세상에 자신을 점점 더 최적화시켜야 하는 역설에 빠져 산다. 백신도 맞아야 하고 어딘가 항상 접속해 있어야 한다. AI 기술에도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래가 좋든 나쁘든 극을 통해서라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작품에는 국가가 탄소배출을 막기 위해 개인의 데이터 사용량을 통제하는 단말기, 죽은 이를 가상으로 되살리는 민간회사 등의 SF 소재가 많다. 그는 “SF는 극을 담는 도구일 뿐이다. 정재승 교수에게 과학 얘기를 듣고 여러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미래 전망을 보면서 상상하기를 즐긴다”고 말했다. 공상과학이 가득한 무대는 지극히 단순하다. 소품은 의자 두 개, 테이블 1개, 슬리퍼 한 켤레뿐. 좌우로 11m가량 길게 뻗은 무대는 공허해 보인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배우들은 멀리 떨어져 정면을 보고 대사를 뱉는다. 그는 “스펙터클을 완성하는 건 결국 배우다. 필요한 오브제만 신중하게 썼다”며 “환경, 탄소배출 문제도 언급하는 작품이기에 소품을 과하게 쓰지 않아야 한다는 책무도 있었다”고 했다. 넓은 무대는 소리와 영상이 채운다. 쌍둥이 자매를 혼자 소화하는 더블캐스팅의 조연희, 신정연 배우는 1인 2역을 위해 미리 일부 대사를 녹음했다. 장 연출가는 “자매가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위해 극단 오퍼레이터는 녹음한 800여 개의 대사를 재생한다”고 설명했다. 무대를 가득 채운 정면의 스크린은 장면별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확대해 비춘다. 그는 “차기작으로 청년세대의 우울증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줄거리의 희곡을 집필 중이다. 스스로에게 한 번쯤은 질문했어야 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전석 3만 원, 15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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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의 비극 ‘애이불비’ 정서로 표현했죠”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고선웅 연출가(53)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코드는 애이불비(哀而不悲)다. 뮤지컬 ‘광주’에서도 마찬가지. “슬프고 고통스러운 상처지만 공연예술이기에 마냥 슬픔으로만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그의 지론이 작품에 투영됐다. 그가 그린 광주는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오가는 최우정 작곡가(53)의 선율과 닮았다. 지난해 10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선보인 뮤지컬 광주가 다시 돌아온다. 13∼25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라이브㈜와 극공작소 마방진이 공동 제작한 작품은 지난해 서울 초연 후 경기 고양, 부산, 전북 전주, 광주 등에서 무대에 올랐으며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창작부문 프로듀서상을 탔다. 초연 이후 한 차례 더 갈고닦는 과정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친 끝에 극은 담백하게, 카타르시스는 좀 더 농밀하게 거듭났다. 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두 사람은 “지난해 작품이라는 숲 안에 갇혀 몰입했다면 이번에는 숲 밖으로 한 발 빠져나와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9년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1945’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광주가 두 번째 공동 작업이다. 최 작곡가가 고 연출가에 대해 “음악을 듣는 걸 넘어 읽어낼 줄 아는 연출가”라고 하자, 고 연출가는 “최 작곡가는 음악을 넘어 극 전체를 건축하듯 꼼꼼하게 곡을 써낸다.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는 살아 있는 음악이 장점”이라고 답했다. 작품은 국가 공권력의 계략에 굴복하지 않는 시민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편의대원이자 주인공 박한수의 고뇌를 그렸다. 편의대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에 침투한 사복 군인이다. 2019년 이들이 민간인들의 폭력을 부추겼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극에서 제3자 입장인 박한수는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도하며 통렬하게 반성한다. 여전히 상흔이 남아 있는 사건을 다룬 작품의 평가는 초연 당시 엇갈렸다.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가 갖는 상징적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거나, 편의대원을 주인공으로 삼은 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고 연출가는 “관객 의견은 전부 옳다. 첫 공연 후 뼈가 저릴 정도로 통렬한 비판 리뷰만 한 시간 내내 봤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작품을 봐주셨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40년간 광주라는 소재는 일률적으로 소비돼 자칫 비극이라는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 비극을 비극적이지 않게, 슬픔을 꼭 슬픔으로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대본에서 군더더기를 많이 정리했지만 편의대원을 중심에 둔 설정은 바꾸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추구하는 작품을 꿈꾼다”고 했다. 작품 음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규칙성이다. 인물 성격과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불협화음이나 비정형적 리듬을 사용했다. 작품을 다듬으면서 새로운 음악도 추가했다. 최 작곡가는 “뭔가 일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해결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의미”라며 “낯설고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불협화음도 주제의식의 일부”라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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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많던 공연 소식지는 어디로 갔나

    ‘예술의전당 웹진(온라인 잡지)이 3월 발행되는 391호를 끝으로 여러분과 작별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은 지난달 웹진 391호를 내놓은 이후 폐간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이 웹진의 전신은 종이 월간지 ‘Beautiful Life’다. 365호까지 발행된 종이 월간지는 지난해 1월호를 끝으로 격주 발행의 웹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산 축소로 이마저도 중단된 것. 독자들은 “마지막 종이 월간지도 아쉬웠는데 웹진마저 사라져 섭섭하다”, “다른 채널로 만날 모습을 기대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연예술계 소식지가 사라지고 있다. 수익성 악화에 따른 예산 축소가 주된 원인이다. 공연계가 재정 규모를 줄이는 상황에서 소식지가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연예술계 침체가 이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포털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전달이 더 효율적이라는 자체 판단도 한몫했다. 지난해 12월 뮤지컬 전문 잡지 ‘더 뮤지컬(The Musical)’의 무기한 휴간은 팬들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2000년부터 20년 동안 매달 뮤지컬계 소식을 전한 잡지다. 설도권 더 뮤지컬 발행인은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 휴간이라는 단어를 떼는 날이 빨리 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77년 4월 창간한 국립극장의 ‘월간 국립극장’은 2000년부터 ‘미르’라는 새 이름을 달고 명맥을 이어왔다. 공연계 안팎의 뉴스를 밀도 있게 전달했으나, 지난해 12월호를 끝으로 종이잡지 발간을 끝내고 웹진으로 바뀌었다. 2015년부터 월간지 ‘문화공간’의 온·오프라인 발행을 병행하던 세종문화회관도 2018년부터 격주 발행의 웹진으로 전환했다. 뮤지컬 전문 극장으로 명성을 쌓은 충무아트센터는 2019년 3월 44호를 끝으로 웹진 ‘MUST’ 발행을 중단했다. 예술기관이나 단체가 직접 제작하는 잡지는 현장의 예술가들과 내밀하게 접촉할 수 있다는 차별성과 전문성을 지녔다. 더 뮤지컬의 지난해 12월호 표지와 커버스토리는 배우 조승우가 장식했다. 내한한 해외 유명 예술가들의 단독 인터뷰도 종종 소개하곤 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는 곳도 있다. 공연문화 전문 월간지 ‘시어터플러스’를 비롯해 마포문화재단의 웹진 ‘MACZINE’,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예술경영 웹진’이 그렇다. 공연, 전시를 폭넓게 조명해온 서울문화재단의 월간지 ‘문화+서울’ 관계자는 “예산이 줄어든 데다 수요처인 문화예술 공간이 문을 많이 닫아 어려움이 크다”며 “지면과 온라인 독자는 다르기에 여력이 되는 한 온·오프라인 잡지를 동시에 배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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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 판소리꾼들의 참신한 소리판 기대하세요”

    2030 소리꾼이 들려주는 감각적인 창(唱)의 무대가 펼쳐진다. 국립창극단이 17, 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리는 ‘절창(絶唱)’ 무대에 두 소리꾼 김준수(30), 유태평양(29)이 오른다. 절창은 빼어난 소리라는 뜻. 37년간 명맥을 지킨 국립극장 완창판소리가 한바탕 전체를 당대 명창의 소리로 전한다면 절창은 2030 소리꾼들이 빚는 참신한 소리를 기대할 만한 공연이다. 이번 무대에선 판소리 ‘수궁가’를 선정했다. 본래 4시간이 넘는 완창(完唱) 분량을 100분으로 압축했다. ‘고고천변’ ‘범피중류’ 등 주요 대목을 독창과 합창을 섞어 선보이되 리듬에 맞춰 가사를 주고받는 새로운 방식도 시도한다. 어려운 한자어를 쉽게 풀어내기 위해 공연자들이 작창(作唱)한 소리도 새로 추가된다. 남인우 연출가가 연출과 구성을 맡았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창극단의 주요 작품에서 주·조역으로 활동하는 배우들로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를 익혔다. 무대 안팎에서 숱하게 호흡을 맞춘 이들은 빼어난 연기력과 재능으로 팬층이 두껍다.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김준수는 창극 ‘춘향’에서 몽룡, ‘패왕별희’의 우희,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를 맡아 성별을 넘나들며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로 주목받았다. 유태평양은 여섯 살이 되던 해 역대 최연소로 흥보가를 완창하며 신동으로 불려왔다. 2016년 입단 후 ‘심청가’의 심봉사, ‘춘향’의 방자, ‘흥보씨’의 제비로 존재감을 뽐냈다. 두 소리꾼은 “절창의 첫 무대가 주는 부담감은 크지만 참신한 소리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3만∼4만 원, 8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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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어쩌다가, 그 천문학자는 ‘명왕성 킬러’가 됐나

    “명왕성은 죽었습니다(Pluto is dead).”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우주관을 바꾸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1930년 미국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가 명왕성을 처음 발견하고 약 70년이 흐른 어느 날. “태양계를 완벽히 알고 있다”던 천문학계가 그동안 굳건히 믿어온 우주관이 한 천문학자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시 태양계와 우주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태양계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일컫는 9개 행성으로 구성돼 있다. 둘째, 더 이상의 태양계 행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훗날 ‘명왕성 킬러’라는 별명을 얻은 저자는 모두의 머릿속에 굳게 자리 잡은 우주관을 깨뜨려야 하는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 자신은 결코 이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 그는 태양계의 10번째 행성을 찾아낸 줄 알고 들떠 있었다. 그가 2005년에 발견한 천체 ‘제나’(나중에 에리스로 개명)는 지름 약 2326km로 궤도에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명왕성(2306km)보다 조금 큰 크기가 문제였다. 이 천체를 행성으로 받아들인다면, 해왕성보다 바깥 궤도에 있으면서 비슷한 크기의 다른 천체들 200여 개까지 모두 행성으로 분류해야 했다. 결국 2006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연맹(IAU) 회의에서 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은 행성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투표로 답해야 했다. 그 결과 ‘아니요’를 뜻하는 노란색 카드 물결이 회의장을 뒤덮었다. 저자가 촉발한 논쟁은 명왕성은 더 이상 행성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 책 제목에 들어간 ‘어쩌다’는 원제를 잘 의역한 단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 행성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1970년대 닐 암스트롱과 아폴로 프로젝트를 동경하며 자란 ‘아폴로 키즈’다. 그가 2005년 어쩌다 밤하늘에서 찾아낸 제나는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박탈한 단초가 됐다. 학계와 주변 압박에도 그는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강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주를 사랑하는 어린이들은 “명왕성을 내쫓지 말라”는 내용의 간절한 편지를 그에게 보냈다. 이 책은 명왕성과 제나가 왜 행성이 될 수 없는지를 학문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이와 관련한 저자의 고민과 감정, 삶에 집중했다. 누군가는 조용히 밤하늘을 응시할 때, 천문학자들은 새로운 별을 찾아내 이름을 붙이고 논문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다른 사람이 먼저 찾아낸 천체를 나중에 가로채는 ‘별 도둑질’도 벌어진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천문학자들의 세계는 우주만큼이나 흥미롭다. 인간이 우주에서 인식의 범위를 넓혀간 동력은 무언가 더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 덕분이었다. 역설적으로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강등된 것 역시 ‘명왕성 너머에도 무언가 존재하리라’고 상상한 결과였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새로운 행성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것을 도전이라고 받아들인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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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도시 현지 라디오 들으며 드라이브’… 랜선 여행의 진화

    팬데믹으로 막힌 하늘길과 바닷길 대신 온라인으로 새 여행길이 뚫리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억눌린 여행 수요와 업계의 자구책이 맞물리며 ‘랜선 여행’ ‘가상 여행’이 진화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를 끄는 랜선 여행 웹페이지는 ‘Drive & Listen’이다. “현지 라디오를 들으며 차를 타고 도시를 여행하자”는 게 모토다. 웹페이지에 접속해 서울, 뉴욕, 파리 등 세계 50여 개 도시 중 여행하고 싶은 곳을 클릭하면 현지 라디오 방송과 함께 차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듯한 영상이 재생된다. 이용자들은 “덕분에 코로나 우울감을 떨쳐냈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 입소문을 타고 세계에서 이용자들이 몰리고 있다. 미국, 유럽 언론에서도 ‘팬데믹을 이겨낼 수 있는 핫한 서비스’로 소개했다. 놀랍게도 서비스는 무료다. 이는 독일 뮌헨 공대(TU M¨unchen)에 재학 중인 터키 출신 유학생 에르캄 세케르(25)가 지난해 5월 “고향 이스탄불이 너무 그리워서” 만든 사심 가득한 서비스다. 그는 최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모든 게 온라인으로 대체됐지만 출퇴근, 등교, 여행 등 길 위에서 보내던 시간은 되찾지 못했다”며 “고향의 거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웹페이지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도시 소음이 적절히 섞인 유튜브 영상과 드라이브 중 빼놓을 수 없는 실시간 FM 라디오를 연결했을 뿐”이라며 “가상 여행 도시를 늘려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 세계에서 각자 사는 도시를 촬영해 사용해달라는 ‘영상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방문자는 수백만 명을 넘어섰다. 무료인 대신 그는 “커피 한 잔 사 달라”며 4유로 후원 배너를 달았다. 그는 “지금까지 커피를 1000잔 이상 후원받은 것 같다”며 웃었다. 마이리얼트립, 프립 등 여행업계도 랜선 여행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현지 거주 가이드가 화상을 통해 직접 여행지를 소개하는 방식과 박물관, 미술관 등 특정 주제에 맞춰 도슨트 투어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여행상품을 중개하는 마이리얼트립은 지난해 4월 거래액이 10억 원까지 줄었지만 랜선 여행을 선보인 이후 지난해 10월 거래액이 100억 원까지 회복됐다. 라이브 랜선 투어만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스타트업 ‘가이드라이브’도 등장했다. 한 시간 정도 진행하는 투어는 회당 1만∼2만 원 수준. 가이드 신기환 씨(33)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 도슨트 투어는 회당 평균 15명씩 참여한다. 처음엔 누가 가상 여행을 하겠나 싶었지만 수요는 꾸준하다”고 했다. 국내 여행지도 랜선으로 들어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선보인 ‘집콕여행꾸러미’ 시리즈에서 군산, 경주 상품은 큰 호응을 얻었다. 에어비앤비, 클룩 등 해외 기업도 국내외 가상 여행, 랜선 체험 서비스를 선보였다. 미국 소셜 애플리케이션인 틴더도 1일 가상 체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패스포트’ 기능을 한 달간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목적지를 선택한 뒤 현지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거나 가상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구글어스’ ‘갈라360’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한 랜선 여행, 실감미디어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KT도 슈퍼VR 플랫폼에서 160여 편의 가상 여행 콘텐츠를 제공한다. 제주도 여행지 200여 곳을 360도 영상으로 서비스하는 ‘제주투브이알’도 인기다. CGV는 스크린으로 랜선 여행을 끌어왔다. 2월 처음 선보인 ‘Live 랜선 투어’의 여행지는 홍콩이었다. CGV는 “새 여행지도 확충할 계획”이라며 “여행에 목말랐던 이들에게 색다른 여행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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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짧게, 더 빠르게… 요즘 애니메이션 10분도 길다

    ‘날아라 슈퍼보드’ 러닝타임 25분, ‘곰돌이 푸’ 25분, ‘포켓몬스터’ 20분. 요즘 애니메이션은 평균 5분? 애니메이션이 짧아지고 있다. 과거 편당 평균 20분을 넘기던 애니메이션은 웹영화, 웹드라마, 유튜브 등 ‘쇼트폼(Short-form)’ 콘텐츠 바람을 타고 짧게 변신 중이다.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잇따라 쇼트폼 영상 플랫폼을 선보이면서 애니메이션의 주 소비층이 점차 짧은 콘텐츠를 선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CJ ENM 투니버스가 최근 내놓은 애니메이션 ‘마카앤로니’의 편당 길이는 4분 남짓. 각 회마다 독립적 서사를 갖춘 이 작품은 한 편이 유튜브 영상을 보듯 짧고 빠르게 지나간다. 천재 발명가와 그를 따르는 사고뭉치 조수의 발명 도전기를 담은 작품엔 리액션(반응) 외 별다른 대사가 없다. 등장인물이 슬랩스틱 코미디를 펼치는 작품이다. 22일 처음 전파를 탄 콘텐츠는 유튜브에서도 꾸준히 인기몰이 중이다. 청춘 공감 버라이어티 장르를 표방한 애니메이션 ‘된다! 뭐든!’ 역시 평균 4분 분량이다. 웹툰을 보는 듯한 작품은 ‘너튜브(NeoTube)’ 스타를 꿈꾸는 주인공 ‘된다’의 좌충우돌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중고 거래부터 귀농 이야기까지 어린이와 성인이 모두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TV 채널 방영 이전 OTT 플랫폼인 웨이브(wavve)를 통해 먼저 공개하는 전략을 택했다.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라프텔(Laftel) 역시 웹툰을 기반으로 자체 제작한 쇼트폼 애니메이션 ‘슈퍼 시크릿’을 내놓았다. 편당 10분 안팎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구성됐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사 픽사는 단편선 시리즈 ‘Sparkshorts’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끈 두 작품 ‘윈드(Wind)’와 ‘플로트(Float)’는 모두 평균 8분짜리다. 각각 한국계, 필리핀계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은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된 뒤 800만 회, 4600만 회의 조회수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올 초 흥행한 영화 ‘소울’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으로 주목받은 ‘토끼굴(Burrow)’과 한국계 에릭 오 감독의 ‘오페라’는 올해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르며 인기와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2011년부터 평균 3분 분량의 짧고 강렬한 구성으로 인기를 끈 ‘라바’ 시리즈를 제외하고 쇼트폼 애니메이션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분야다. 물론 1990년대 편당 25분을 훌쩍 넘기던 구성에 비해 현재 10∼15분 수준으로 짧아졌다고는 하나, 최근 이마저도 10분 이내로 줄어든 것. 매체 이용 환경 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박석환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는 “TV, 극장 중심에서 스마트폰으로 주된 이용매체가 바뀌면서 제작사들도 스크린을 벗어난 유튜브용 쇼트폼 콘텐츠 제작에 점차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장르적 특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경민 마카앤로니 프로듀서는 “작품을 논버벌 슬랩스틱 포맷으로 제작한 이유도 짧은 시간에 특정 언어와 연령에 얽매이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제작 과정에서도 빠른 타이밍의 편집에서 오는 재미와 신선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박석환 교수는 “향후 긴 서사보다 기술적 효과, 시청자의 놀람, 짧은 통찰을 주는 쇼트폼 애니메이션의 강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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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훈아 하춘화도 검열받고 무대 오르던 그때 그 시절

    “퇴역 장군 역할은 다른 인물로 개작(改作)할 것.” “희곡으로서의 문학성 결여로 심의 결정할 수 없음.” 정성 들여 쓴 공연 대본에는 단어마다 빨간색 줄이 쫙쫙 그어졌다. 대본 한 페이지가 통째로 삭제 지시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 아예 첫 장에 “주제가 부적당하다고 사료되어 반려합니다”라는 한 문장이 적히면 두꺼운 대본은 한낱 종이뭉치가 되어버리곤 했다. ‘반려’ ‘개작’ ‘수정’ ‘조건부 통과’ 등이 찍힌 시퍼런 도장은 민주화 이전 국내 공연예술가들이 숱하게 접한 문구였다. 모든 공연이 국가기관의 심의를 거쳐야 무대에 오를 수 있던 시절. 당시 심의를 받은 대본 5900여 편의 원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이 공연예술 심의 대본 및 서류들을 최근 공개한 것. 심의 주체는 시대에 따라 문교부(1961∼1966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1966∼1976년) 한국공연윤리위원회(1976∼1986년) 공연윤리위원회(1986∼1997년)로 바뀌었다. 1960∼80년대에 군과 정부에 대한 소재는 금기에 가까웠다.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기관이 판단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문구조차 반려되기 일쑤였다. 이강백의 희곡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사람 같소?’(1978년)에선 극 중 ‘퇴역 장군’이란 역할이 등장한다. 당시 심의위원은 군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본 속 캐릭터를 새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윤대성의 희곡 ‘노비문서’(1978년)의 대본 두 번째 장에는 반려 표시가 짙게 남아 있다. 구체적인 사유조차 없다. 유신체제 말기 신분 해방을 둘러싼 갈등과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 부적절했을 것이라는 추정만 나왔을 뿐이다. 오태영의 희곡 ‘난조유사’(1977년)에서는 등장인물이 “초급대학을 나오고 몇 차례 시험을 쳤지만… 아직 합격이 안 돼서” 같은 문장이 사회 비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삭제 조치를 받았다. 유해 표현, 외설적 표현으로 낙인찍는 사례도 많았다.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1975년)에서 “발자취엔 피 냄새가 따랐소. 피 냄새를 풍기며 짙은 피 냄새를 뿜으며 왕좌에 오른 거요” 같은 대사는 표현이 잔혹하다는 이유로 “발자취엔 그런 시련이 뒤따랐거든”으로 수정됐다. ‘일본인’ ‘영어잡지’ 등은 왜색(倭色)이나 외국 문물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정됐다. 최인호의 ‘달리는 바보들’(1975년), 김광림의 ‘아침에는 늘 혼자예요’(1978년), 우디 앨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1972년) 같은 유명 작품도 심의를 거쳐야 했다. 트위스트김 하춘화 나훈아 등 유명 가수들의 공연도 사전에 대본과 악보를 제출했다. 가수의 공연에 앞서 짤막한 ‘반공(反共)극’ 대본이 붙어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가사, 곡, 창법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 조치를 당하면 해당 노래는 공연에서 아예 부를 수 없었다. 공연 심의 제도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심의위원 명단 공개 등의 변화를 거쳐 1997년까지 유지됐다. 그러다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영화 사전 검열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데 이어 2년 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발족한 것을 계기로 이 제도가 폐지됐다. 김현옥 아르코예술기록원 학예연구사는 “심의와 검열에도 불구하고 공연예술인들은 끊임없이 대본을 고치고 작품을 새로 써가며 열정을 불태웠다. 현재 심의가 없어도 공연이 지나치게 외설적이거나 폭력적으로 흐르지 않는 건 예술인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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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자폐증 소년이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

    스웨덴에 그레타 툰베리가 있다면 영국 북아일랜드에는 다라 매커널티가 있다. 환경운동가이자 에세이 작가로 활약하는 저자는 자폐증을 겪는 15세 소년이다. 교실에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괴롭힘을 당하며 상처 속에서 방황하던 소년이 자연을 발견한 뒤로 이를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가 풀냄새, 동물의 몸놀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느낀 감상을 그만의 호흡으로 풀어냈다. 자연을 바라보는 동안 그는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찾았다. 글 자체만 본다면 일상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적은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다만 저자의 나이와 병세까지 고려한다면 그가 발견하고 적어 내려간 자연의 아름다움, 위대함은 꽤 뭉클하게 다가온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던 소년은 세상을 밀어내기보다 그가 푹 빠져든 자연을 닮아 되레 모두를 품는 듯하다. 섬세하게 기록한 자연, 환경의 모습 중에는 우리가 쉽게 떠올리지 못하던 통찰도 많다. “이 참나무가 생태계와 연결된 방식으로 우리도 참나무와 연결되어 있다면 좋을 텐데.” 각박한 세상에 지쳐 누군가 자연 속으로 황홀하게 몰입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을 집어들 만하다. 그가 담담하게 쏟아내던 글 속에 내 번민과 지구의 고통까지 해결할 혜안이 나올지도 모른다. ‘방구석 자연 전문가’이던 다라 매커널티는 환경운동가로 거듭나는 중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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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흑같은 기내, 오직 소리로 관객을 지배한다

    온통 암흑이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분간이 안 될 만큼 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 철저한 암흑이다. 이 상황에서 헤드셋을 썼는데 누군가 갑자기 말을 건다면?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고, 무한한 상상력을 뻗기 딱 좋은 환경이다. 우란문화재단이 4월 12일까지 선보이는 극단 다크필드(Dark Field)의 이머시브 오디오극 ‘Flight(비행)’는 무대를 기내 공간처럼 개조했다. 관객이 가상 출입국신고서를 적고, 비행기 티켓을 받아 자리에 앉으면 “저희 비행기를 이용해주신 승객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기내 방송과 함께 항공기는 이륙한다. 소리로 극을 이끌어가는 오디오극은 국내엔 아직 낯선 장르다. 이번 작품을 제작한 다크필드는 2016년 설립한 뒤 음향 기술을 활용한 오디오극의 최첨단을 달리는 영국 극단. 세계 투어에서 관객 11만 명을 모았다. 암흑 속에서 소리, 진동, 번쩍이는 섬광 등을 활용해 공감각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극을 제작해왔다. 시각이 차단됐을 때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는 동물적 본능을 노련하게 요리한다. 본래 40피트짜리 선박 컨테이너를 개조해 무대를 제작했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공연장을 개조해 완벽한 어둠을 연출했다. 개조한 무대는 보잉기 내부를 빼다 박은 듯하다. 공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발한 오디오극은 다크필드의 제작자 겸 예술감독인 글렌 니스와 데이비드 로젠버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두 사람은 23일 본보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소리만으로 한 시공간에서 얼마든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테마파크에서 즐길 법한 경험을 ‘고급 예술’로 느끼는 게 매력”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부터 소리를 갖고 놀며 극에서 다양한 실험을 즐기던 두 사람은 각각 현직 마취과 의사이자 순수미술 전공자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 감각, 의식, 무의식에 대한 호기심이 잘 맞아” 다크필드를 함께 설립, 오디오극 제작에 나섰다. 2018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내놓은 작품은 매진을 기록했다. “우리 공연은 관객 상상력이 전부다. 완성되지 않은 서사를 상상과 소리로 직접 채우면 된다”고 했다. 극 시작 전 “내리실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스산한 기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어, 어쩌지?’ 우물쭈물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늦었다. 헤드셋을 낀 채 끝까지 비행을 마치거나, 헤드셋을 벗고 잠시 고요와 암흑을 즐기는 방법뿐. “같은 시공간에서 청각에 따라 완벽히 달라지는 두 가지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극 취지와도 맞는다. 관객에 따라 헤드셋 너머 들리는 굉음에 깜짝 놀랄 수 있다. 두 사람은 “꼭 공포심만을 주려고 한 건 아니었다”며 웃었다. 4월 12일까지(화∼목요일은 공연 없음),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리허설룸, 전석 1만8000원, 16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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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나우두 유니폼 100벌 모으다 보니… 스포츠 패션의 세계 보였다”[덕후의 비밀노트]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브라질 출신의 21세 축구선수 호나우두는 한 소년의 마음을 마구 헤집어 놨다. 그의 드리블, 슛, 발놀림 하나하나가 황홀했다. 그때부터였다. 부모님을 졸라 한두 벌씩 사 모으던 그의 유니폼은 100여 벌. 프로 데뷔 시즌부터 그의 은퇴 시즌 유니폼까지 모조리 수집한 이 호나우두 덕후는 축구 유니폼의 매력을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 처음에는 재미 삼아 친구들과 모은 유니폼 사진을 찍어 올리던 최호근 오버더피치 대표(31)는 ‘덕후력’을 발휘해 현재 국내외 유명 구단 및 스포츠업체와 협업하는 성공한 덕후다. 시각디자인 전공자로서 직접 유니폼을 디자인하고 제작도 한다. 숨은 역사, 가치, 문화를 전하는 웹 매거진도 발행한다. 최근 국내에선 처음으로 백화점에 유니폼 매장을 냈다. 마이너 장르인 스포츠 패션을 기성 스트리트 패션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4일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만난 그는 “지금도 호나우두를 한 번이라도 보는 게 인생 소원”이라고 했다.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유니폼을 수집했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다. 해외 중계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스포츠 뉴스로 호나우두 선수를 봤고 무작정 부모님께 유니폼을 사달라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두셨던 어머니 덕분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수집하다 보니 한때 300벌이 넘었다.” ―가장 비싼 수집품은…. “호나우두가 브라질에서 프로에 데뷔한 구단인 크루제이루 유니폼이 100만 원이 넘는다. 2002년 출시한 그의 시그니처 축구화 제품을 몇 년 전 250만 원에 구매했다. 출시할 때는 25만 원이었는데….” ―스포츠 유니폼의 매력은…. “옷마다 담긴 역사, 이야기가 제각각 달라 매력적이다. 1990년대 유니폼은 제 유년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다. 와인 음반 책 우표 옷 등 다른 수집품처럼 전 세계서 매년 수천 벌씩 새로운 게 쏟아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수집품의 가치가 오르는 것도 매력이다. 유니폼별 역사가 궁금하면 저희 웹 매거진을 보면 된다.(웃음)” ―좋은 유니폼 선택 및 관리법은…. “해외 직구의 경우 구매 전 사진을 통해 가품 여부, 상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믿을 만한 판매자나 매장을 통해 사야 한다. 일상복이자 수집품인 특성상 밝은 색 유니폼은 변색의 우려가 있어 착용 후 물로만 살짝 헹구면 좋다. 난방이 잘되는 곳에선 종종 유니폼 부착물이 녹아내리기 때문에 습기가 적고 찬 곳에 보관하길 추천한다. 옷이 낡더라도 와인처럼 빈티지스러운 멋이 있다.” ―수집을 시작하고 문화를 소개하며 가장 뿌듯했던 기억은…. “가끔 홍익대 거리에 여러 사람이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그래도 제가 1%는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한때 TV 경연 프로그램에서 래퍼들이 입는 유니폼을 협찬하고 폭발적 반응을 얻은 것도 기억난다. 우리가 타인의 취향에 인색한 편이라 이 문화를 바꿔보고 싶다. 저는 미대 입시 시험장에도 유니폼을 입고 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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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든 살 박정자,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여든 살까지 이 공연을 하고 싶다.” 박정자(79)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8년 전 그가 처음 무대에 오르며 호기롭게 던진 이 약속을 그는 현실로 만들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이 된 배우 박정자가 5월 1일 개막하는 연극 ‘해롤드와 모드’에서 80세 노인 모드 역할로 관객과 만난다. 그가 ‘해롤드와 모드’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일곱 번째다. 22일 서울 중구의 한 문화공간에서 열린 연극 ‘해롤드와 모드’ 기자간담회에서 박정자는 “오래전부터 ‘80’을 핑계로 공연한다고 상상만 해왔는데 벌써 이 자리에 와버렸다”고 했다. 이어 “지금쯤 꽤 성숙한 배우가 되어 있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저는 미성숙하다. 그래도 배우는 성자처럼 너무 지혜롭고 성숙하면 안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박정자의 상대역인 해롤드를 연기하는 임준혁 오승훈을 비롯해 연출을 맡은 윤석화, 프로듀서인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참석했다. 1987년 김혜자 김주승 주연으로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이후 박정자의 ‘시그니처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2003년 그는 ‘19 그리고 80’(‘해롤드와 모드’의 당시 제목)에 출연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뒤이어 2004, 2006, 2008(뮤지컬), 2012, 2015년까지 무대에 섰다. 2015년 공연부터 원제 ‘해롤드와 모드’로 제목이 변경됐다. 그가 한 역할로 자리를 지키는 동안 상대역으로 이종혁 김영민 윤태웅 강하늘 등 스타들이 거쳐갔다. 원작은 미국에서 1971년 소설과 동명의 영화로 출간 및 제작됐으며, 1973년 연극으로 탄생했다. 박정자가 “그 장면쯤 가면 슬쩍 긴장이 된다”고 털어놓을 만큼 작품 속 키스신은 초연 때부터 화제였다. 틀에 얽매이길 싫어하며 ‘자살 쇼’를 벌이는 19세 소년이 유쾌한 80세 할머니와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는 지금도 파격적이다. 이 유별난 사랑 이야기는 상처받은 영혼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는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박정자는 “해롤드를 매번 무척이나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으면 연기가 안 된다”며 “단순한 포옹과 키스가 아니라 모드와 해롤드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게 만나는 찰나”라고 했다. 윤석화는 “전문 연출가는 아니지만 박정자라는 거목과 묘목 같은 여러 후배들과 함께라면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연극 외 이물질이 없는 작품으로 만들겠다. 소외당한 청춘과 극의 본질에 더 다가서려 노력하겠다”고 했다. 간담회 중 박정자는 이 작품의 ‘마지막’을 넌지시 언급했다. 그는 “주변에서 90까지 하라는 농담도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이 나이 먹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더 이상 욕심은 없다. 아주 사뿐하고 가볍게 내려오고 싶다”는 바람이다. 임준혁 오승훈은 “충실하게 해롤드를 연기하는 게 선배의 마지막에 누가 되지 않는 길”이라고 했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박정자 선생님이 건강을 잘 관리하신 덕분에 연극을 올릴 수 있다”며 “대배우들이 만들어 가는 작품은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모드는 극 중 이런 대사를 외친다. “어쩌면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60여 년간 무대만 바라보고 달려온 박정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지 모른다. 5월 1∼23일 서울 강남구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전석 6만5000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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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과 미술 사이… 분장한 배우 그림, 갤러리서 한바탕 놀다

    이것은 연극인가, 미술인가. 분장(扮裝)을 마치고 한바탕 무대를 놀던 배우들이 전시관에 그림으로 섰다. 공연 중 한 장면을 촬영해 빼다박은 듯, 조명 각도마다 달라지는 배우의 빛깔을 담아냈다. 무대 위 배우들의 숨결을 머금은 그림들이 생명력을 뿜어낸다. 분장을 회화(繪畵)로 변신시킨 주인공은 분장 디자이너 이동민(59). 한국 연극계에서 그를 빼고는 분장을 논하기 어렵다. 1986년부터 지금껏 35년간 오로지 분장 디자이너로 활약한 그가 2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아트센터에서 ‘이동민 분장畵 전시회’를 연다. 분장화를 주제로 한 전시는 국내 처음이다.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화가로서는 이번 전시회가 데뷔 무대나 마찬가지다. 분장화라는 낯선 길을 열어가는, 조심스럽고 긴 여정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연극을 중심으로 영화, 뮤지컬, 오페라까지 평생 300여 작품의 분장을 도맡았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연극 세 편 속 분장화 22점을 추렸다. 우선 제52회 동아연극상 대상을 수상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모든 인물을 그린 16점, 연극 ‘봄날’의 배우를 그린 3점이 전시된다. ‘조씨고아…’는 조씨 가문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마지막 핏줄을 살리려는 노력과 복수를 그렸다. ‘봄날’은 권력, 재물 등 모든 걸 가지려는 아버지와 착취당하는 아들들을 그린 작품으로, 1984년 초연 때부터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오현경(85)의 대표작이다. “작품이 잘 나와야 분장도 잘 산다”는 이 씨의 지론에 따라 분장의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을 골랐다. 아직 공연을 올리지 않은 연극 ‘오셀로’ 속 인물에 그의 독자적 해석을 입힌 3점도 그렸다. 이른바 ‘콘셉트 분장화’다. 그는 “모든 배우에게 초상권 허락을 받긴 했는데…. 분장하고 다르게 제 그림까지 썩 좋아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는 “제 손을 거친 뒤 무대에 오른 배우들을 떠올리거나 공연 사진을 보면서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반면 콘셉트 분장화의 배우들은 얼굴 근육, 감정을 최소한으로 그렸다”고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선 굵은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은 대체로 그의 그림에서 진한 색감과 강한 명암 대비로 표현됐다. 평생 배우의 입체적 얼굴을 도화지 삼아 숨결을 불어넣던 그가 평면적 그림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뭘까. “분장의 해석은 결국 연출자의 큰 구도에 맞춰야 하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오직 분장의 관점에서 그림을 표현해 보고 싶었죠. 연극과 미술이 만나는 제3의 지대에서 새 장르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8년부터 구상한 전시는 큰 진통을 겪었다. 틈틈이 스승들을 찾아다니고 화실에서 공부하며 차곡차곡 그림을 그려뒀는데 지난해 이사 과정에서 19점을 도난당했다. 때문에 전시회에는 새로 그린 그림이 더 많다. “다시 그리면서 표현이 좋아졌다”지만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다. 원로 연출가인 이원경(1916∼2010)의 딸로 어려서부터 극장과 분장실에서 자란 그는 “연출을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는 척하며 평생 분장에만 심취했다. 일본 유학도 다녀왔다. 딱히 왜 빠져들었는지 스스로도 이유를 찾기 힘들다. 그의 고집에 아버지도 나중엔 내버려뒀다고 한다. 분장실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매일 찾던 생활 터전이었던 셈이다. 누가 분장이 뭐냐 물으면 그는 “텍스트 속 인물을 해석하고 배우를 캔버스 삼아 육화(肉化)하는 작업”이라고 답한다. 이번 전시는 인물을 육화하던 그의 손이 빚은 새로운 극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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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이렇게 누워 모든 활동을 거부하다”

    외줄타기 하듯 위태롭게 출퇴근만 반복하던 마흔네 살의 남성 현서. 가장의 무게가 짓누르는 일상, 고단한 직장생활에 지쳐버린 그는 누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극을 관통하는 주제를 첫 대사부터 쏟아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기려면 누군가가 패해야 한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뒤처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매 순간 수많은 사진을 찍고….” 이어 “그래서 나는 여기 이렇게 누워서 모든 사회적 활동을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현서 역의 김명기 배우(41)는 이윽고 진짜 무대 한복판에 대(大)자로 누워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은 무대 아래로 뿌리를 내리듯 꼼짝달싹 않는다. 누워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는 첫 3분을 빼고 공연 시간 100분 내내 누워서 허공을 바라보고 연기한다. 뒤통수가 눌려 납작해질 정도다. 가끔 옆으로 돌아누우려 몸을 꿈틀댈 뿐. 독특한 형식의 연극 ‘X의 비극’은 경쟁 사회에서 쓰러지는 자와 버티는 자의 이야기를 그린 국립극단 신작이다. ‘X’는 인터넷이 생겨나 풍요 속에 20대를 보낸 뒤 외환위기, 닷컴버블 등 풍파를 겪고 어느덧 중년이 된 X세대를 뜻한다. 동시에 미지수 ‘X’를 상징한다. X의 자리에는 현재를 사는 누구든 대입할 수 있다. 작품은 뻗어버린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을 냉소적으로 조망한다. 극의 매력은 비극이 정점에 달하려는 순간 인물들이 역설적으로 희극적 대사를 뱉는 것. “정자와 난자가 만날 빌미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며 현서가 자신을 저주스러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어머니를 질책하면, 어머니는 “지금 눕지 말고 정자일 때부터 드러눕지 그랬냐”고 응수하는 식이다. 회색빛의 건조한 무대는 시종일관 딱딱한 우리 현실을 드러낸다. 이유진 작가의 글에 윤혜진이 연출을 맡았다. 출근하자마자 눕고 싶고, 누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게 우리네 소망. 그런데 몇 달씩 누군가 누워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극은 점차 비극으로 물들어간다. 처음엔 “회사에서 누워 있으라고 시켰냐, 일종의 재택근무냐”며 대수롭지 않아하던 현서의 아내도 이내 생계의 위협에 직면한다. 현서의 친구 우섭과 외도를 시작하더니 그에게 아들 교육비를 부탁한다. 주인공의 고3 아들과 어머니도 마치 식물이 된 듯한 현서의 모습에 고뇌하긴 마찬가지. 한 가정이 금세 무너져 내린다. 이 상황을 누워서 목도한 현서는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영혼이 빠져나간 듯 읊조린다. 2005년 데뷔한 김명기는 배우 인생 16년 만에 현서 역으로 단독 주연을 꿰찼다. 극단 마방진의 1기 단원으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스카팽’ 등을 거쳤다. 최근 국립극단에서 만난 그는 “인간관계, 가정, 직장 스트레스에서 오는 ‘번아웃’은 X세대 끝자락에 걸친 저를 포함해 모두 공감할 이야기”라고 했다. 극의 형식에 대해 “몸이 가려워도 긁지 못하고 무대 바닥의 한기(寒氣)를 견디는 게 힘겹다”면서도 “몸을 고정한 채 대사와 표정만으로 뻗어내는 ‘눕는 연기’의 묘한 희열이 있다”고 했다. 다만 “대사가 없을 때 밀려오는 졸음을 참는 정신력도 필수”라며 웃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해 눕기를 택한 현서에 대해 김명기는 “삶에는 다 비극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과연 현서는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 4월 4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 전석 3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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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전’ 개관 30주년…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산 역사

    배울 ‘학(學)’에 밭 ‘전(田)’. 대학로에서 밭농사를 시작한지 올해로 어언 30년. 시간이 지나면 텃밭도 자리를 잡고 땅도 비옥해지건만, 유독 이 농사는 험하고 거친 길을 걸었다. 매번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도 아니고, 농사에 힘쓴 이들이 부농(富農)이 되지도 않았다. 척박한 한국 공연계를 닮았다. 남들이 “돈 안 되는 일”이라며 외면할 때도 이 텃밭은 꿋꿋하게 한국 문화예술계에 든든한 토양이 되었다. 1991년 3월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터를 잡은 학전(學田) 소극장이 15일로 개관 3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번듯한 30주년 기념행사는 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늘 묵묵하게 제 역할을 해왔듯 학전은 13일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어린이 뮤지컬 ‘진구는 게임 중’을 무대에 올렸다. 독일 그립스 극단의 ‘Flimmer Billy’를 학전 대표인 김민기 연출가가 직접 번안한 작품이다. 과거 서울대 문리대가 대학로에 있던 시절, 학내 식당에서 이름을 따온 학전은 ‘아침이슬’을 작곡한 김민기 대표가 설립했다. 학전이 들어선 1990년대 초는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 음악이 대중음악을 주도하면서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던 이들이 설 곳을 잃고 방황하던 때였다. 학전은 이들을 위한 라이브 무대를 제공해왔다. 학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극장 문화는 이후 홍대로 번져 오늘날 인디밴드 공연문화의 밑거름이 됐다. 학전과의 인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고(故) 김광석이다. 이곳에서 1000회 공연을 열었고, 1991∼1995년엔 매년 라이브 콘서트도 했다. 2008년 그를 추모하는 ‘김광석 노래비’가 학전에 세워졌다. 매년 학전에선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도 열린다. 이 밖에 들국화 안치환 노영심 이소라 장필순 동물원 여행스케치 유리상자 윤도현 성시경 장기하도 학전에서 노래했다. 국내 뮤지컬과 연극 역사에서도 학전을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선보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독일 원작을 김 대표가 번안한 작품이다. 소외계층과 근현대사의 아픔을 그린 작품은 원작자로부터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08년 11월 4000회 공연까지 배우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가 거쳤으며 2018, 2019년 특별공연도 학전에서 열렸다. 뮤지컬 ‘개똥이’ ‘의형제’ ‘모스키토’도 학전의 주요 레퍼토리다. 학전은 어린이극 최후의 보루로도 통한다. 입시교육과 TV, 뉴미디어만으로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김 대표의 철학이 반영됐다. “제가 힘들다고 그것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집념으로 지금껏 어린이 공연을 지켰다. 개관 당시 김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여기는 조그만 곳이기 때문에 논바닥 농사가 아니다.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것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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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보이는 한국이 1등’ 毒이 된 찬사 “한바탕 굿판서 ‘브레이킹’ 해버릴게”

    ‘브레이크 댄스’는 태생부터 무언가를 깨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DJ들이 힙합 음악 간주에서 즐겨 쓰던 ‘브레이크’ 비트에서 이름을 따온 이 춤은 1970년대 미국 뉴욕 슬럼가에서 생겨났다. 당대 주류였던 백인 문화의 프레임을 깨듯 거리에서 역동적 안무로 저항 정신을 표현했다. 국내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양아치의 일탈’ ‘불량 문화’로 괄시받던 브레이크 댄스는 편견을 깨고 어엿한 춤의 한 장르이자 예술로 거듭났다. 2000년대 초 한국 비보이(남성 브레이크 댄서)들은 보란 듯 세계 춤판을 제패했고 국악, 클래식, 발레 등 타 장르와도 한 무대에 섰다. 그 선두에는 2002년 전북 전주서 태동한 비보이 그룹 라스트포원(Last For One)과 수장 조성국 대표(38)가 있다. 라스트포원은 비보이 월드컵으로 불리는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에서 2005년 우승, 2006년 준우승을 했다. 조 대표는 또 한번 벽을 깰 ‘파격’을 준비 중이다. 서울 마포아트센터가 30일 유튜브, 네이버TV를 통해 선보일 국악M페스티벌 ‘꼬레아 리듬터치’의 ‘밤섬 부군당 도당굿 오마주’ 무대서 굿판과 어우러진 공연을 앞두고 있다. 최근 마포구 서울마포음악창작소에서 만난 그는 “브레이크 댄스는 형식적으로 정해진 게 없어 타 장르와 잘 섞인다. 틀에 갇히지 않는 즉흥성이 매력”이라고 꼽았다. 이어 “국악의 핵심 정서가 ‘한(恨)’인데 배고픈 상황에서 간절하게 춤만 춘 비보이도 한이 많다”며 웃었다. 이번 공연은 서울 밤섬 일대에 전해지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5호 ‘밤섬 부군당 도당굿’을 오마주한 작품. 조 대표와 함께 추자혜차지스, 밴드데일, 프로젝트밴드M 등 뮤지션이 현대적으로 굿을 재해석한다. 그는 “국악 리듬이 힙합보다 느려서 춤선을 더 크게 크게 뻗을 수 있다. 여유 있는 동작과 표정 연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1부 막바지에 등장하는 그는 모든 걸 쏟아붓는 ‘강렬한 3분’을 예고했다. ‘한국 비보이가 세계 1등이라며?’ 대중 머릿속에 박힌 통념은 어찌 보면 독이 됐다. 라스트포원, 진조크루, 리버스, 갬블러 등 한국 비보이 그룹이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껏 세계서 선전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국내서는 관심이 사라졌고 기업, 기관의 후원도 끊겼다. 그저 ‘알아서 잘하나 보다’라는 식의 막연한 장밋빛 환상만 부추겼다. 조 대표는 “후세대가 끊기는 게 문제다. 현재 한국 정상급 비보이 평균 연령이 30대 중반인데 일본, 미국, 프랑스의 젊은 비보이가 나날이 치고 올라온다”고 했다. 3년 뒤 파리 올림픽에서 브레이크 댄스가 ‘브레이킹’이라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건 분명 호재다. 춤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영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저희를 세계 1등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메달을 못 따면 국민들이 얼마나 실망할까요. 3년 뒤면 비보이들의 나이도….”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전국의 춤 협회 등이 “철저히 준비하자”며 머리를 맞대고 있다. 1세대 힙합그룹 피플크루와 서태지와아이들을 보며 춤꾼이 된 조 대표는 ‘춤으로 먹고사는 걸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20년 넘게 춤판을 지켰다. “한국 1등이면 세계 1등이라는 게 올림픽서도 증명되길 바란다”는 그는 마을의 태평을 기원하던 ‘도당굿’처럼 한국 비보이의 미래를 위한 굿 한바탕을 벼르고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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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0,틱톡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시니어들 ‘유쾌한 반란’

    희끗희끗한 머리에 화사한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70대 부부. 점잖게 서 있던 이들은 최신 팝송이 흘러나오자 돌연 집 거실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주름진 눈가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두 사람은 쑥스러운 듯 자연스러운, 어설픈 듯 세련된 동작을 선보인다. 영상 길이는 10초 안팎. 별다른 편집도 없다. “4명의 손자 손녀와 소통하기 위해 영상을 만든다”는 소박한 바람과 달리 노부부가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리는 춤사위는 10일 기준 전 세계 120만 명이 즐기는 영상이 됐다. 평범한 1942년생 동갑내기 부부 이찬재 안경자 씨는 이제 ‘grandpachan’ 계정을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플루언서’로 불린다. 중고교생 손자들의 권유로 지난해 1월 가수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에 참여한 게 시작이었다. 첫 영상이 말 그대로 ‘터지면서’ 지코가 이들에게 선물도 보냈다. 두 사람은 “숨겨진 끼를 찾았나 보다. 영상을 찍으며 가족들과 정말 많이 웃는다”고 했다. 평균 60대 이상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의 유쾌한 반란이 시작됐다. 유튜브 등에서 알고리즘이 시니어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추천하고, 이들이 기존 플랫폼에서 맹활약하는 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1020세대의 전유물로 꼽히던 틱톡에서도 최근 시니어 크리에이터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을 일컫는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에 이어 ‘오팔(OPAL)세대‘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OPAL 세대는 ‘58년 개띠’의 ‘58’과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열정적으로 산다는 뜻을 가진 ‘Old People with Active Life’에서 나온 표현이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의 ‘더뉴그레이’ 채널에는 중년 남성 6명이 등장한다. 현실에선 이들이 ‘아재’ ‘할아버지’라 불릴지 몰라도 SNS에서만큼은 핫한 그룹 ‘아저씨즈’의 멤버다. ‘아저씨 패션크루’를 표방하는 이들은 때론 음악에 맞춰 익살스러운 춤을 추고, 패션쇼 런웨이를 걷듯 멋진 옷차림도 선보인다. 두 플랫폼에서 약 24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다. 패션매거진에서 20여 년간 활약한 이광걸 씨가 틱톡에서 운영하는 ‘패션광’이라는 채널 역시 1020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시니어 크리에이터가 만든 콘텐츠의 특징은 전 연령층에서 고루 사랑받는다는 것. 1020세대가 만든 영상이 주로 또래 집단에서 소비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들은 억지스럽거나 자극적인 편집보다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멋과 유쾌함을 추구한다. 영상을 본 이들은 “나이에 비해 멋지다”가 아니라 그냥 “멋있다” “재밌다”며 환호한다. ‘패션광’에는 1020세대 팔로어가 찾아와 “스무살에 181cm, 56kg인데 스타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남긴다. 20대가 중장년 세대에게 최신 트렌드를 묻는 진풍경도 자주 벌어진다. 크리에이터로 뛰어드는 시니어는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틱톡을 비롯해 유튜브, 인스타그램이 각각 ‘쇼츠(shorts)’ ‘릴즈(reels)’ 등 짧은 영상을 쉽게 편집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있다. 팬데믹 장기화로 시니어층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모바일 시장 분석 서비스 ‘앱 에이프’에 따르면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틱톡 이용자를 분석한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1020세대에 비해 4050세대의 증가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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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김기윤]‘암표방지법’ 반갑지만 뿌리 뽑으려면 후속대책 있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공연계의 어려움이 극에 달한 지난해 12월, 한 줄기 따스한 볕이 공연장을 비췄다. 공연계의 오랜 염원이던 공연법 일부 개정안, 이른바 ‘암표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티켓을 대량으로 쓸어 담고 이를 비싸게 되파는 온라인 암표는 고질적 병폐로 지적받아 왔지만 관련 법안은 그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공연업계로서는 불행 중 다행으로 힘이 될 만한 소식이었다. 신설된 공연법 제4조의2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공연 입장·관람·할인·교환권 등의 부정판매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정판매에 대해선 티켓 판매자나 위탁판매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자가 영리 목적으로 자신이 티켓을 구입한 가격보다 비싸게 상습적으로 팔거나 알선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정부가 나서서 오랜 병폐를 바로잡도록 하는 법안 취지는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발을 뗀 수준이라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크다. ‘장관의 노력’이라는 모호하고 선언적인 규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처벌 규정이나 시행령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문제 해결은 전적으로 문체부의 의지에 달린 상황이다. 법안 통과 후 시행까지 6개월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불법 암표상은 교묘하게 진화하며 활개치고 있다. 지난 설 연휴를 앞두고 몇몇 연극, 뮤지컬의 티켓을 정가보다 최대 8배 비싼 가격에 판다는 게시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공연업계 종사자와 공연을 좋아하는 실수요자들은 온라인 암표상들이 건강한 공연 관람 문화를 저해한다며 ‘플미충’(프리미엄 얹는 벌레라는 뜻)이라고 부를 정도다. 좌석 띄어 앉기 정책으로 사실상 가동 좌석이 반 토막난 상황이라 더욱 뼈아프다. 법안 시행을 100일 정도 앞둔 지금까지도 문체부의 ‘노력’은 딱히 안 보인다. 문체부는 2019년부터 경찰과 불법 암표상을 단속하고 ‘온라인 암표 신고’ 플랫폼을 운영해 왔지만 이 역시 현장에서는 효과를 느끼기 어려웠다. 문체부 관계자는 “의심 사례를 신고 받으면 예매처와 논의해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다. 현행 체제 외에 아직 새로운 방안이나 논의는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공연계가 팬데믹을 딛고 일어서려면 문체부의 강한 의지와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수다. 물론 암표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공연 팬들의 노력도 당연한 미덕이다.김기윤 문화부 기자 pep@donga.com}

    •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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