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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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4-10-02~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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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암-탄허 스님 서예 특별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승려 학자로 꼽히는 탄허(呑虛·1913∼1983)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이 문을 열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테마전 ‘한국의 큰스님 글씨-월정사의 한암과 탄허’를 6월 16일까지 상설전시관 서화관 서예실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 17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탄허 탄생을 기리는 뜻에서 스님과 그의 스승인 한암(漢岩·1876∼1951)의 대표적 서예작품 80여 점을 소개한다. 독립운동가 김홍규(金洪奎)의 자제인 탄허는 젊은 시절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어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인물. 그러나 한암과의 문답에 감읍해 불교에 귀의한 뒤 화엄경을 비롯한 불교경전 번역사업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화엄경을 우리말로 완역한 ‘신화엄경합론’은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전통 선풍을 계승한 한암은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고승. 1951년 1·4후퇴 때 오대산 상원사의 소각 위기를 온몸으로 지켜낸 일화가 유명하다. 참선을 중시했지만 계율을 지키고 경전을 연구하는 자세를 함께 갖춰야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요지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한국 불교의 중흥을 이끈 스승과 제자이나 필체는 사뭇 대조적이다. 한암은 단정하고 정갈해 격조 높은 선비의 글씨를 보는 듯하다. 반면 탄허의 필치는 활달하고 호방한 기세가 일품이다. 박물관은 “오대산 월정사 두 큰스님의 글씨를 비교해보고 평생 전하려 했던 가르침을 되새겨볼 기회”라고 말했다. 02-2077-9000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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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색인생 30년… 자연을 물들이는 221점의 우리 색깔

    30여 년간 한국 전통의 천연염색에 전념해온 이병찬 씨(81)의 작품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기획전시실Ⅱ에서 이 씨가 최근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과 자료 221점을 정리한 기증특별전 ‘자연을 물들이다’를 개최하고 있다. 이 씨는 1982년부터 홀로 염색 공부를 시작해 실전(失傳)됐던 전통 천연염색법을 되살려 왔다. 그는 1990년 제15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천연염색실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별전 ‘자연을 되살리다’는 전체 3부로 구성됐다. 1부 ‘색, 스며들다’는 이 씨의 염색 입문 배경을 소개하고 공예대전 수상작들을 전시한다. 2부 ‘색, 담기다’는 그가 고문헌을 뒤져가며 전통 방식을 되찾는 노력을 담은 연구 자료와 다양한 식물 표본, 실험기록을 소개한다. 특히 식물학자인 고 이창복 선생의 도움을 얻어 직접 쪽을 키워 전통기법으로 만든 ‘쪽빛’을 찾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3부 ‘색, 발산하다’는 염색 공방을 재현해 전통 염색 과정을 보여주고, 그와 제자들의 주요 작품을 함께 전시한다. 이 씨는 매주 목요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직접 염색하는 과정을 시연할 계획이다. 전시와 연계한 염색 교육도 함께 진행한다. 이 씨는 올해 초 복막염으로 수술까지 받으며 어려움을 겪었으나 최근 호전돼 다시 염색 연구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는 “단절되고 쇠퇴된 것으로 평가받는 우리 염색이지만 노력만 하면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0일까지. 02-3704-3114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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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떼가 춤을 출 날은…

    11일 정오경 울산 울주군 대곡리. 인근 사연댐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10여 분을 가니 푸른 대곡천 중류 왼편으로 암회색 암벽이 드러났다. 세계 최고(最古)의 고래사냥 그림이 새겨진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자리한 곳이다. 직접 마주한 반구대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뭐가 새겨졌는지 쉽사리 구분이 되지 않았다. 손 그늘을 만들고 쳐다보자 겨우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와 사슴, 고래와 거북이 너울너울 바위 위로 춤을 췄다. 하지만 함께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72)는 한숨부터 쉬었다. 1971년 발견 당시보다 훼손이 급속도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가운데 떼로 몰려있던 고래 떼는 흔적도 없다”며 “이런 속도라면 수십 년 내로 그림 전체를 잃을 판”이라고 말했다. 최근 반구대가 핫이슈가 됐다. ‘반구대 지킴이’로 불리던 변영섭 고려대 교수가 지난달 문화재청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반구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 해결책 마련이 더욱 물살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니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았다. 이날 오후 반구대 전망대에서 벌어진 현장설명회는 그 앙금의 골을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포문을 연 것은 울산시였다. 문화재청이 보존책을 설명하는 도중 박맹우 울산시장(새누리당)이 예고 없이 나타났다. 한껏 격앙된 박 시장은 “울산 시민에겐 맑은 물을 마실 권리가 있다”며 “문화재청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의 얼굴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사실 반구대 암각화 논란은 10년 넘게 이어져왔다. 반구대는 1965년 사연댐이 세워진 이후 매년 여름 물이 차올라 겨울까지 강물에 잠겨 있다가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해왔다. 이로 인한 암각화 훼손을 막기 위한 의견이 분분하다가 2003년 문화재청이 보존대책연구에 착수하며 갈등이 본격화됐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으나 크게 문화재청의 ‘수위 조절론’과 울산시의 ‘생태제방 설치안’이 현재 맞서고 있다. 수위 조절론은 말 그대로 하천 물높이를 낮추자는 주장.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어 수량을 조절해 침식을 막자는 게 골자다. 지난달 구성된 반구대암각화전담 태스크포스(TF)를 이끄는 강경환 문화재청 보존국장은 “2009년 국무총리실 조정회의에서 정한 정부 기본방침도 수위를 낮추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대곡천에서 공급하던 울산시의 식수 부족분은 다른 식수원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울산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부족한 물을 채울 대안도 없이 무조건 수위를 낮출 수는 없다는 항변이다. 이춘실 울산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당시 정부안에 찬성했던 것은 경북 청도군 운문댐에서 식수를 공급받는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타당성 조사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결론 났으므로 백지상태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울산시가 내놓은 대안이 생태제방이다. 지난해 한국수자원학회에 의뢰해 실험한 결과 반구대 주위로 제방을 쌓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 박 시장은 “보존하자는 마음은 울산도 매한가지”라며 “한 방식만 고수하지 말고 다양하게 검토하자”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난색을 표했다. 반구대와 대곡천 일대를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할 계획인데, 제방을 세우면 주위 경관을 망쳐 심사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문 교수도 “반구대를 우물처럼 가두면 이끼가 끼어 더 심하게 훼손될 위험이 크다”며 고개를 저었다.울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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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대 불교사원, 한국 IT기술로 살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세계 최대 불교사원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이 최초로 한국 디지털 기술로 복원된다. 해외 문화재를 국내 기술로 디지털 복원하는 것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과 베트남 후에 황성에 이어 세 번째 쾌거다. 유라시아디지털문화유산연구소(소장 박진호)는 9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의 지원을 받아 보로부두르 발굴 200주년인 2014년까지 3D 디지털 장비와 자료 고증을 통해 훼손되기 이전 사원의 원형을 가상공간에 되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관리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뒤 올해 초 당국의 협조 아래 1차 시뮬레이션 작업을 마무리한 상태다. 본격적인 현지 조사 및 영상화 과정은 6월 시작된다. 8세기 초반 사일렌드라 왕국이 자바 섬 욕야카르타 북쪽에 세운 보로부두르 사원(산스크리트어로 ‘언덕 위의 승방’)은 한 면이 약 123m에 이르는 정방형 9층 사원. 총 100만여 개 돌을 탑처럼 쌓아올려 높이도 34.5m가 넘는다. 층마다 불교세계를 표현한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2440여 개로 한 줄로 세우면 4.4km가량이다. 832년 왕국 멸망과 함께 잊혀졌다가 1814년 이 지역을 점령한 영국의 토머스 래플스 총독에 의해 발굴돼 1991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보로부두르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12세기), 미얀마의 바간(11세기)과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으로 불린다. 앙코르와트는 가로 850m, 세로 1050m 외벽 안에 여러 개의 사원이 몰려 있다. 바간 역시 미얀마를 처음으로 통일한 바간 왕조의 수도로 현재 3000여 개의 탑과 사원이 분산돼 있다. 이와 달리 보로부두르는 단일 건물이라는 점에서 지난해 7월 세계 최대 불교사원으로 기네스북에 공식 등재됐다. 보로부두르 디지털복원 프로젝트는 크게 2가지로 나뉘어 진행된다. 연구소는 먼저 레이저 스캐너로 정밀한 사원의 실측 데이터를 확보한다. 이후 영화 ‘아바타’에서 사용됐던 3D 입체영상 카메라를 이용해 보로부두르의 모습을 담는다. 천재지변으로 사원이 훼손됐을 경우에 대비한 ‘디지털 보험’인 셈이다. 더 중요한 작업은 원형 복원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인근에 있는 므라피 화산의 폭발로 1000년 넘게 화산재에 묻혀 있었다. 이로 인해 스투파(인도식 탑)를 장식했던 금은박이나 부조마다 형형색색 칠해 넣은 안료가 모두 사라졌다. 전체 형태 역시 변형이 심각하다. 박 소장은 “철저하게 옛 사료를 바탕으로 지금의 암회색이 아닌 찬란하고 화려한 사원의 원래 모습을 디지털로 복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8일부터 프랑스 칸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TV프로그램마켓에 1차 작업한 3D필름 트레일러(홍보 영상)를 공개했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디지털 복원하는 작업 자체가 처음인지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3D 그래픽 박람회인 ‘코리아 그래픽스 월드 2013’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박 소장은 KAIST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2006년 앙코르와트 사원과 2008년 후에 황성을 3D영상으로 복원하는 사업을 주도했던 디지털 문화재 복원 전문가. 특히 베트남전쟁을 겪으며 거의 폐허가 됐던 후에 황성을 복원한 디지털 영상은 황성 내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되며 관광객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박 소장은 “국내에선 앙코르와트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보로부두르 역시 해마다 250만 명 이상 방문하는 세계적 명소”라며 “여기에 한국 디지털 기술문화를 접목하면 아시아의 문화재 한류로 화제를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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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정양환]진격의 거인

    지난 주말 국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는 다소 예상외였다. 경기 때마다 당연한 듯 관심이 들끓던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리그, 월요일 새벽 등판할 메이저리그 류현진이 최고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놓는 노래마다 난리 났던 SBS ‘K팝스타2’ 악동뮤지션의 우승도, 누구누구의 연애설이나 사건사고도 수위에 오르진 못했다. 이틀 내내 부동의 1위 검색어는 일본 만화 팬이 아니라면 생경할, ‘진격의 거인’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원래 진격의 거인은 2009년부터 연재한 일본 만화다. 단행본은 현재 9권까지 나왔는데 현지에서만 12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히트를 쳤다. 그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의 첫 회가 7일 일본 방송에서 전파를 탔다. 이에 한국 누리꾼들이 폭발적으로 열광하며 검색어 1위까지 차지한 것. 지금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엄청난 리뷰와 찬사를 마주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진격의 거인 소식은 정말 반갑다. 2011년 잠깐 만화 칼럼을 쓸 때 굉장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SF(공상과학) 장르물인데, 스토리가 탄탄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린 세대가 일본 만화에 몰입한단 우려의 시선은 거두시길. 글로벌 한류 시대에 그런 잣대는 너무 편협하다. 그리고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그리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럼 국내외에서 진격의 거인은 왜 이리 인기일까. 워낙 액션신이 호쾌하지만, 현 시대상을 투영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들에 갇혀 몸부림치는 인류. 그 모습에서 젊은이들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에 절망을 느낀단 얘기다. 상대를 밟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한경쟁에 대한 두려움이 배어 있단 평가도 있다. 그런데 진격의 거인엔 또 다른 음울한 현실도 존재한다. 드높은 벽을 쌓아 오랫동안 거인이 뚫지 못하니 성 안에서 ‘새장 속 평화’에 안주하는 군상들이 늘어난다. 바깥에 존재하는 위험에 눈을 감고, 거인과 싸워야 할 의무는 군인들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막상 100년 만에 초(超)거인이 벽을 무너뜨렸을 때, 그들은 비탄에 잠긴 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요즘 외신을 보면 그들은 현재 남한의 풍경이 참 신기한 모양이다. 북쪽에서 저렇게 엄포를 놓는데 별다른 동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대한민국의 전쟁 억제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일까. 수십 년째 듣던 소리인지라 그러려니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협박에 단련되는 것과 무뎌지는 건 큰 차이가 있다. 탄탄한 대비는 차선이라도 거머쥐지만, 뭉툭한 허술함은 최악을 보장한다. 그들이 거인은 아니다. 하지만 진격조차 못할 거란 예단은 금물이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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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毒이 든 초콜릿처럼… 달콤살벌한 가십의 양면성

    짜릿짜릿하다. 솔직히 그간 맘고생 많았다. 회사에선 두셋만 모여도 상사 ‘뒷담화’에 열광했다. 배우 A양 소문이 돌면 인터넷 뒤지며 눈을 번득거렸다. 하나 찝찝함도 컸다. 고교 시절 화장실에서 숨어 피우던 담배 맛 같다고나 할까. 당기는데 떳떳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책,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어깨를 툭 쳐 준다. 멀리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부터 사람들은 가십에 열광했단다. 인품이 고매한 귀족이나 학자 같은 이들도 예외가 아니란다. 아, 옆 칸에서 꽁초 빨던 반장을 마주쳤을 때 이렇게 기뻤을까. “가자, 가십의 향연으로. 나와 함께 가자. 오랜 슬픔 뒤에 그런 축제가 있어야지.”(셰익스피어 ‘실수 연발’ 중에서) 말 나온 김에 가십 예찬을 펼쳐 보자. 함께 수군거린다는 건 뭔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이런 대화는 대체로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우리끼리니까”로 물꼬를 튼다. 얼마나 아름다운 지란지교인가. 타인을 제물로 정신건강도 윤택해지니 이 또한 널리 이롭다. 사회적으로도 가십은 가치가 크다. 절대 권력으로 느껴지던 지도층이나 명망가들의 진짜 얼굴을 파악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최소한 그들도 고만고만하다는 걸 인식함으로써 자괴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오호라, 그렇다면 가십은 신이 주신 선물이란 말인가.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저자에 따르면 ‘성난 초콜릿(raging waxy chocolate)’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한 타인에게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실체를 알고 싶다. 가십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달짝지근한 꿀을 좇는 벌처럼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서 책은 하나 더 얘기한다. 그걸 집어삼키는 순간, 입안에서 달콤했던 가십은 목구멍에서 돌변할지 모른다. 녹아내린 초콜릿 속엔 식도를 태우는 독이 들었을 수도 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라. 사회가 발전하며 온갖 루머와 소문이 넘쳐흐른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고, 확인도 검증도 쉽지 않다. 하나 그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 입고, 어떤 이는 목숨도 끊는다. 하나만 자문해 보자. 킬킬거리며 벌였던 그 말잔치. 그걸 듣고 옮기는 게 그리 중차대한 일인가. 가십이 사실이라 한들 각자의 인생에 무슨 소용이 있나. 가십이 자본과 결탁해 양산한 저 수많은 파파라치 부대에 꽃다발이라도 안겨야 하나. 왜 이랬다 저랬다 하나 싶지만 해답은 간명하다. ‘선’은 지키자는 소리다. 가십은 일종의 배변과 같다. 당연한 인체 활동이다. 때론 시원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하지만 과하면 탈이 나고, 아무데서나 하면 곤란하다. 벽에 × 쳐 바르면 인간의 존엄성도 무너진다. 뭐든 적당히 하라. 너무 빠져들면 언젠간 뒤통수를 치니까. 하긴 ‘우리끼리 얘긴데’ 당신이 손 털고 일어나도 가십은 여전히 활개를 칠 것이다. 어디 싸는 게 우리뿐이겠는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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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야의 문화재 고수 ‘아사달’… “해외기행 발품 빌려드립니다”

    지난달 16일 영국 런던 교외 레드하우스. 대한항공 선임사무장인 차문성 씨(53)는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다. 책이 출간되면 꼭 이곳에 오리라. 1년여 전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예술의 기계화에 반대한 영국 시인이자 사상가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가 살았던 붉은 벽돌집을 마주하니 1년이 아니라 온갖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그건 뭔가를 이뤘단 만족감도, 털어낸 시원함도 아니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벽돌 냄새가 진득하니 배어나왔다.취미로 시작한 답사가 삶의 기쁨으로 지금이야 꽤 알려졌지만, 차 사무장이 처음부터 ‘문화재 빠꼼이’였던 건 아니다. 학부 전공도 경영학이었다. 술로 청춘을 보내는 게 싫어 우연히 사찰 답사를 쫓아갔다 마음을 뺏겼다. 홀로 공부하며 문화재를 찾아보길 몇 해. 서툴던 취미는 삶의 기쁨이 됐다. “1986년 대한항공 입사는 더 큰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습니다. 해외나 지방에 비행 갈 때마다 현지 박물관 등을 문턱이 닳게 드나들었죠. 그렇게 모은 문화재 자료가 방 하나를 가득 채웠답니다. 그때 모은 도록이나 팸플릿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에요.” 그렇게 키운 공력은 PC통신 시대를 맞아 빛을 발했다. 1990년대 천리안 문화유산답사동호회 ‘우리얼’에서 재야 고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당시 필명이 ‘아사달’이던 차 사무장이 글을 올리면 격찬이 쏟아졌다. 오프라인에서 강의 요청까지 폭주했다. 입소문을 타고 100∼200명씩 모여들곤 했다.오종도 비-대자사 터 처음 찾아내기도 그렇다고 우리얼 활동을 ‘그들만의 리그’로 보는 건 곤란하다. 대외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남겼다.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와 강화도를 지킨 명나라 장수 오종도(吳宗道)의 업적을 기리는 비를 발굴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얼은 강화도 해안에 버려진 비를 찾아내 강화역사관에 보존토록 했다. 경주에 KTX 신역사가 생길 때 반대운동에도 참여했다. 뭣보다 1999년 충남 아산 외암 민속마을을 지키는 과정에서 힘을 보탠 것은 차 사무장에게 커다란 긍지로 남아 있다. “당시 군부대가 민속마을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열심히 싸웠습니다. 500년 넘은 고택들을 지키려 동호인 모두가 나섰죠. 1년 넘게 대치하다 결국 이전이 철회됐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런데 그날 저녁 냉주파티 때 집에서 연락이 왔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죄송했죠. 손자 놈 하던 일 마무리되는 거 보고 떠나셨구나 싶어 더 마음이 아렸습니다.” 할머니 덕분이었을까. 이후 그의 문화재 사랑은 더한 깊이를 얻었다. 2008년엔 세종대왕이 불경을 안치했었다는 대자사(大慈寺) 터를 경기 고양시에서 처음으로 찾아냈다.“우리 것 아끼면 외국 것도 사랑하게 돼” 그가 지난달 출간한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성안당)은 오랜 문화재 사랑의 산물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하나하나를 꼼꼼히 되짚었던 발품을 초심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레드하우스를 다시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리스가 미술공예운동을 하며 미술을 생활 속으로 끌어왔듯이 차 사무장도 누구나 편안하게 문화재를 관람하는 안내서를 만든 것이다. “문화재는 국경이 없습니다. 우리 것을 아끼다 보면 해외 작품도 사랑하게 되죠. 이 책이 그런 길잡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짓궂은 궁금증이 피어났다. 이렇게 문화재에 빠져 살면 가족이 싫어할 텐데. 특히 부인은 섭섭해하지 않았을까. “전혀요. 최대한 같이 다녔거든요. 아이도 처음엔 불평했지만 점차 배우는 즐거움을 깨달아갔습니다. 아내요? 우리얼 필명이 ‘아사녀’였습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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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개석 열리자 신비 감싼 보자기가…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불경을 읊조리는 목청이 더욱 높아졌다. 관광객이 하나둘 모여들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대웅전 앞을 뛰놀던 아이들조차 멈춰선 순간. 드디어 옥개석(屋蓋石·탑 위 지붕처럼 덮는 돌)이 서서히 들어올려졌다. 경북 경주시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모시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경주석조문화재보수정비사업단은 2일 오후 국보 제21호 석가탑 2층 옥개석을 해체해 탑신(塔身)의 사리공(41×19cm) 안에 모셔진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부처의 사리와 이를 봉안하는 용기 및 기구)를 꺼냈다. 1966년 해체수리 후 재봉안됐던 석가탑 사리장엄구가 47년 만에 다시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당시 사리공에는 사리 48과(顆)가 든 사리병과 금동제외합, 은제내합, 고려 초 석가탑을 중수한 기록이 담긴 문서가 들어있었다. 함께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로 밝혀지며 큰 관심을 모았다. 이 보물들은 국보 제126호로 지정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2층 옥개석을 들어올리자 빛바랜 붉은색 보자기가 먼저 눈에 띄었다. 보자기를 걷어내자 사각 철제함이 보였다. 그 속에서 사리장엄구가 나왔다. 사리와 은제항아리, 목제사리병을 제외하곤 복제품이다. 은제내합 속 유리병에 모셔진 사리도 공개됐다. 오랜 세월 탓인지 검은 빛깔이었고 일부는 유리병에 눌어 붙어있었다. 불국사(주지 성타 스님) 측은 수습한 사리를 무설전(無說殿)에 모시고 사리친견법회를 열 예정이다. 석가탑은 2010년 석재 균열 등을 이유로 보수 복원이 결정된 뒤 지난해 9월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경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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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임플란트 대신 그리스 여행… 행복한 황혼 위한 인생 철학

    철학자도 나이가 든다. 하지만 저자는 애써 ‘청춘’에 매달리지 않는다. 올해 74세로 인공치아 시술을 받아야 하지만, 그 돈과 시간을 들여 그리스의 한 섬으로 떠난다. 작은 집을 하나 얻어 실컷 책을 읽고 친구를 사귀며 삶을 음미한다. 젊음을 갈구하지 말고 현재를 인생의 절정기로 여기면 행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가오는 죽음이 두렵긴 해도 마음을 챙기는 일에 기쁨을 느낀다는 깨달음. 부럽긴 한데, 누구나 가능할지는 확신이 안 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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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경영]서양인이 콕 집어낸 ‘36계’속에 숨은 비즈니스 계책

    “삼십육계?” “줄행랑.” 안다. 이런 반응 식상하다. 제목이 ‘36계학’이라고 줄행랑부터 떠올리다니. 근데 고백한다. ‘부터’가 아니라 ‘밖에’ 모르겠다. 다행인 건 포털 사이트에서 쳐봤더니 첫 연관 검색어가 줄행랑이다. 무지해 슬퍼도 외롭진 않아라. 자위하자면, 이런 반응이 영 빗나간 건 아니다. 분명 줄행랑도 서른여섯 계책에 있다. 한자로는 ‘주위상(走爲上)’. 때론 도망치는 게 최선이란 뜻이란다. 36계인 줄은 몰랐지만, 익숙한 것도 꽤 된다. 일부러 성을 비워두는 ‘공성계(空城計)’나 스스로 상처 입히는 ‘고육계(苦肉計)’, 설명이 필요 없는 ‘미인계(美人計)’…. 아, 다시 한번 다행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다. 같은 동양권으로서 36계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이미 오랜 세월 녹아들어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비즈니스 전략가인 서양인 눈엔 다른가 보다. ‘천년 비서’인 삼십육계를 연구하면 기업을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설파한다. 흠, 개똥도 약이 된다더니. 코쟁이 동양고전 해석을 들어봐서 나쁠 건 없다. 먼저 주위상을 살펴보자. 저자는 한때 쫓겨났다 ‘돌아온 천재’ 스티브 잡스를 대표적인 경우로 꼽는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해 연구개발 아이템의 70%를 확 정리해버렸다. 당시 호평 받던 PDA(개인휴대정보기) ‘뉴턴’ 프로젝트도 단칼에 쳐냈다. 저자 해석대로라면 버겁던 싸움을 접고 도망친 셈이다. 그 뒤 새로운 전장을 개척해 아이팟과 아이폰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강한 기업은 항복할 때를 알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전투를 선택한다”고 조언한다. 얼핏 그럴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왜 끼워 맞춘 기분이 들까. 다른 예를 보자. 스포츠브랜드 퓨마는 1990년대 나이키나 리복과의 경쟁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운동화로는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신 패션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사업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이를 ‘격안관화(隔岸觀火)’ 전략이라 부른다. 강 건너 불구경, 즉 행동하지 않은 게 훌륭한 선택이 된 본보기란다. 하지만 이거, 주위상에 더 가깝지 않나? 문제는 그뿐 아니다. 계책마다 설명으로 붙인 중국사도 어정쩡하다. 명나라 영락제를 피해 도망친 건문제가 승려로 숨어산 것(주위상)은 정설로 인정받진 못했다. 제갈량이 사마의의 공격에 성문을 열고 거문고를 탔다는 일화(공성계)는 삼국지연의에 나온다. 소설이지 정사는 아니다. 저자도 께름칙했는지 실명 빼고 촉 재상, 명 황제라 얼버무렸다. 서양에선 넘어갈지 몰라도 이건 좀 아니지 싶다. 물론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기업 경영에 36계는 꽤 짭짤한 격언으로 간직할 만하다. 다만 이렇게도 연구가 주관적인데 함부로 ‘학(學)’이라 부르진 마시길. 차라리 원제 ‘미소 뒤에 비수를 감추라(Hide a Dagger behind a Smile)’는 담백하기나 하지. ‘소리장도(笑裏藏刀)’라. 하지만 영 미소가 머금어지질 않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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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드레 김 의상 126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

    2010년 세상을 떠난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의 의상들이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에 기증됐다. 민속박물관은 25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앙드레김디자인아뜨리에가 지난해 1월부터 2차례에 걸쳐 앙드레 김의 작품 126점을 기증했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앙드레 김이 생전에 자선바자회에 내놓았던 일상복 가운데 판매하고 남은 74점을 민속박물관에 전달했다. 아뜨리에 측은 앙드레 김 패션쇼 의상 52벌과 함께 고인이 직접 입었던 상의와 패션쇼 팸플릿, 동영상도 함께 기증했다. 박물관은 “기증품들은 1990년 이후 고인이 직접 제작한 작품으로 당시 한국 패션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박물관은 이번에 기증받은 작품들을 선별해 다음 달 24일부터 기증전시실에서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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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1000년 수도 경주, 그 이후 1000년 동안엔…

    경주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유적이 대부분일 것이다. 당연하다. 신라 1000년의 수도였으니 이목도 이 시기에 집중된다. 하지만 경주는 이후에도 분명 ‘존재했다’. 주목받지 못했을지언정 역사와 문화가 생동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올 하반기 특별전 ‘조선시대의 경주’를 마련하는 이유도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시기를 짚어 보자는 취지다. 신라 패망 뒤 1000년, 고려와 조선시대 경주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왕조가 기울어갈 때 경주는 꿈틀거렸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 경주는 ‘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찬란한 문화를 뒤로한 채 역사에 묻힌 옛 도읍(都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사료를 살펴보면 경주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사건이 많았다. 일단 1173년 김보당(金甫當)의 난이 눈에 띈다. 당시 고려는 무신정변(1170년)으로 의종이 폐위돼 거제도로 쫓겨나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동북면병마사였던 김보당은 의종 복위를 명분으로 경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군사력을 장악한 무신정권에 곧 진압됐고, 이를 빌미로 의종은 경주에 유폐됐다가 허리가 꺾여 죽는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피 맛을 본 탓일까. 경주는 이후 잦은 항쟁의 거점이 됐다. 1190년 농민 봉기를 시작으로 1199년 김순(金順)이 주도한 농민군의 난, 1202년 경주 별초군의 난, 같은 해 이비(利備)·패좌((발,패)佐)의 난, 1233년 최산(崔山)과 이유(李儒)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선 이를 통틀어 ‘동경(東京·동쪽 서울) 민란’이라 부를 정도다. 조선말 경주는 또다시 격변의 중심에 선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와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이 모두 경주 출신이다. 몰락 양반의 서자로 태어난 최제우는 세도정치와 외세의 혼란 속에서 1861년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내세운 동학을 창도했다. 전국으로 세를 불린 동학은 1894년 반봉건 농민항쟁의 뿌리가 됐다. 최효식 전 동국대 교수는 “경주는 지식인은 물론이고 민초까지 옛 수도의 후손이란 자부심이 강해 사회적 모순에 민감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경주를 ‘반역의 성지’로만 보는 것은 곤란하다. 13세기 고려시대 몽골 침입이나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쟁 때마다 수많은 지역 의병이 분연히 일어나 적과 맞섰다. 1592년부터 2년에 걸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군대와 4차례나 공방을 주고받은 ‘경주성 전투’는 대표적인 사례다. 허형옥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경주 의병의 정신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져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했다”고 말했다.○ 신라부터 이어진 학문의 향취 드높아 경주란 명칭은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처음 붙여졌다. 수도 서라벌을 격하하는 차원이었다. 한때 동경으로 불리며 대접받은 적도 있으나 조선 태종 13년(1413년) 경주부(府)로 이름이 정착됐다. 고려, 조선시대의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고려시대 불경인 ‘불설아미타경’ ‘달마대사관심론’과 충목왕 때 권보(權溥)와 아들 준(準)이 엮은 ‘효행록’이 경주에서 간행됐다. 고려 현종 3년(1012년)에 쌓은 경주읍성(사적 제96호)은 경주가 행정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 유적이다. 조선에 들어서는 서원을 중심으로 학문이 발전했다. 1561년 설립한 서악서원(경북 기념물 제19호)과 1672년 창건한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이 대표적이다. 서악서원은 신라 김유신 설총 최치원을 봉안했고, 옥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와 함께 ‘동방 사현(四賢)’으로 칭한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을 모셨다. 향토사학자인 조철제 경북문화재위 전문위원은 “경주의 유학적 성취는 이후 남인 계열이나 서호학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경주 출신은 아니지만 매월당 김시습과 추사 김정희도 이 지역과 인연이 깊다. 김시습은 1465년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경주 남산 용장사에서 썼다. 경주 김씨인 김정희는 신라 금석문에 관심이 커 여러 차례 경주를 방문해 저술을 남겼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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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불량유전자와 공존했기에 인류는 진화했다

    “허준을 드라마로 또 한다고?” 많이도 우려먹는다. 벌써 몇 번째인가. 물론 시대에 따라 시각이나 전개방식이야 달라지겠지. 하지만 이 정도면 ‘구암 허준’이 아니라 ‘사골 허준’이라 불러야겠다. 방송국 속내와는 별개로, 시청자들은 그래도 허준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아니 허준이란 인물을 참 사랑한다. 왜냐? 고생하는 의사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만큼 현실에선 이런 명의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허준은 단지 병 잘 고쳐서 존경받는 게 아니다. 환자를 정성으로 살피고, 백성을 애정으로 돌보는 그 마음이 선생을 명의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인제대 의학교수인 저자가 명의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면식도 없고, 국내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인문의학교실’도 들은 바 없다. 하지만 ‘몸의 역사’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등 많은 의학 및 과학 대중서적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적어도 책을 통해 일반인들이 의학과 친해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최소한 환자를 짐짝 취급하며 권위만 내세우는 (일부!) 의사들보단 훨씬 나아 보인다. ‘불량 유전자는…’은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몸을 인간의 시각으로 들여다보자는 주제의식이 담긴 책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는 가끔 과학에 매몰돼 인간을 너무 도식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책에서도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자신을 복제하고, 신체는 그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그릇이다”라는 설명은 진화생물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시각이다. 하지만 현상 이해에 치중하다 보니 너무 유전자 중심으로 시각이 고정된 게 안타깝다. 결국 의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인간의 신체를 더 깊이 파악하려면 “늙고 병들고 아파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일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 제목인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도 이 같은 시각의 전환을 통해 던져보는 화두다. 유전자 입장에선 자신들이 불량인지 아닌지를 따질 가치 기준은 없다. 그저 유전자란 개체로서 살아남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선 그토록 오랫동안 진화가 이뤄졌는데 왜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는 유전자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자세한 설명은 책에서 이뤄지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생명이란 본질적으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이다. 불량 유전자와 공존했기에 인류도 이만큼 진화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왠지 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다지 무게를 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나 의학과 관련된 역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유전학이나 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친절하게 일러준다. 문장도 딱딱하지 않고 분위기도 편안하다. 다만 눈높이를 낮춰서 그런지 얘기를 하다가 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줄기세포처럼 논쟁적인 주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사례로 든 이야기들도 다른 의학 역사책 등에서 조금씩 접했던 내용인지라 살짝 신선도가 떨어졌다. 책 끝자락에 보면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앨프리드 토버의 “과학은 사실과 가치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이다”라는 명언이 나온다. 책도 그런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여 업그레이드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로서 조심스레 증보판을 기대해본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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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새재아리랑 원형 네 구절 東亞 에서 찾았다

    아리랑의 원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문경새재아리랑에 대한 기록이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새로 찾은 문경새재아리랑은 이전의 어느 기록보다 자세해 아리랑 연구를 위한 획기적인 사료로 평가된다. 경북 문경시에 있는 옛길박물관의 학예연구사인 안태현 박사는 21일 “학술 문헌조사 과정에서 동아일보 1925년 3월 16일자 기사에 문경새재아리랑 네 구절이 있는 것을 찾았다”고 밝혔다. 안 박사는 안도현 시인의 친동생이다. 동아일보에 실린 아리랑은 “聞慶(문경)새재 덕무푸레 말채쇠채로 다 나간다/聞慶새재 박달나무(檀木) 북바듸집으로 다 나간다/黃柏(황백)나무 북바듸집은 큰아기 손목이 다 녹아난다/할미성(姑母城·고모성) 꼭대기 진을 치고 倭兵丁(왜병정) 오기만 기다린다”의 네 구절. 동아일보는 ‘동아일보 기자 지방순례’라는 연재기사에서 문경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며 문경새재아리랑을 함께 실었다. 기사에는 “檀木(박달나무)도 亦是(역시) 만은(많은) ㅱ닭에 特(특)히 此(차·이)에 대한 民謠(민요)ㅱ지 잇다”고 전했다. 이번에 발견된 아리랑 네 구절은 그간 문경새재아리랑을 전한 어느 기록보다도 분량이 많다. 미국 선교사이자 역사학자로 항일운동에도 기여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가 1896년 영문 잡지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에 아리랑을 처음으로 소개한 기록에는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간다”는 한 구절만 실려 있다. 1910년대 ‘조선속곡집’ ‘고금잡가’나 이후 1929년 ‘조선속곡집’에도 “문경새재 박달남근 다듬이방망이로 다 나간다”라는 1행밖에 남아있지 않다. 안 박사는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해진 민요라 기록으로 남아 있는 자료 자체가 희귀하다”며 “동아일보 자료는 양도 풍부하고 당시 문경새재아리랑의 원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특이한 것은 1925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 아리랑을 ‘박달나무 민요’라고 소개한 점이다. 당시는 아리랑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문경에 박달나무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민초들이 그렇게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안 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1985년 고 송영철 선생으로부터 채록한 문경새재아리랑을 보면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가네/홍두깨방망이는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질로 놀아나네/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아리아리랑 고개로 날 반겨주소”라는 대목이 있어 그 원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옛길박물관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특별공동기획전 ‘길 위의 노래 고개의 소리, 아리랑’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독일 훔볼트대가 소장한 ‘김그레고리의 아리랑’ 유성기 음반도 국내에 처음으로 전시된다. 김그레고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군에 징용됐다가 독일에 포로로 잡혀서 아리랑을 녹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전시는 4월 4일부터 5월 31일까지. 800∼1000원. 054-550-8365∼8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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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정양환]교류의 발견

    요즘 전시회를 보면 놀랄 때가 많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사람들이 엄청 몰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는 겨우 한 달 지났건만 3만여 명이 다녀갔다.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은 누적관객 4만 명을 넘었다. 1월 25일 개막해 두 달도 채 안 됐다. 솔직히 둘 다 국내에 친숙한 작품이 많진 않은데, 안목들이 대단하다. 이런 외국과의 교류전에는 관계자들의 노고가 엄청나다. 그 나라 보물을 가져와 전시하는 일이니 신경 쓸 일이 한둘이겠는가. 19일 시작된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은 담당자가 조금 과장해 5분 걸러 한 번씩 전화와 e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소장처인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은 물론이고 싱가포르관광청과 주한 싱가포르대사관 등 온갖 관련 부처에서 연락이 왔다. 애를 먹긴 했지만 그 적극성엔 감탄했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박물관이나 미술관 인사들을 만나보면 이런 교류는 상대국마다 특색이 있다. 그 나라의 독특한 성향이 배어나온다. 미국과 영국은 일처리가 확실하기로 유명하다. 전시 노하우가 많아서인지 업무 분담도 꼼꼼하다. 진행 속도도 빠르고, 가부 결정도 명쾌해 일하기 편하다. 일본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절차는 다소 복잡하나 논리적으로 업무를 추진한다. 다만 다른 나라와 달리 직접 대면을 중시 여긴다. 관계자가 얼굴을 마주하고 신뢰를 쌓아야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선진국이라고 다 시원시원하진 않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때가 많다. 국민성 자체가 느긋해서 그런지 속도가 영 느리다. e메일을 보내도 한참 뒤에야 답을 한다. 관계자를 만나러 갔는데 늦잠으로 약속을 어기는 경우도 종종 생긴단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대도 있다. 대체로 사회주의를 겪은 나라들이 그런 경향이 짙다. 서류 작업도 많고, 기준이 애매모호해 일이 지체되는 사례가 잦다. 문제가 생겼을 때 뚜렷한 해명을 듣기도 힘들다. 한 박물관 관계자는 “해외교류전은 통상적으로 6개월 전에 협정서가 체결된다”며 “중국 측이 개막 1주일 전에야 사인을 하는 바람에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간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인도도 만만찮다. 정부는 승낙했는데, 소장 박물관이 꿈쩍도 안 해 전시가 난항을 겪는 상황도 벌어진다. 사실 이런 판단은 모두 상대적이다. 외국 입장에선 한국도 장단점이 있다. 모두가 우릴 좋은 파트너로 꼽는 건 아닐 게다. 과거엔 문화후진국으로 낮춰 보기도 했으리라. 그렇기에 교류는 더 소중하다. 서로를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흐뭇한 건, 요즘 이런 전시가 상대국 제안으로 성사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미국미술이나 페라나칸도 먼저 요청해왔다. 부탁해야 전시품 보내주던 시절은 지나갔단 소리다. 교류는 우리를 살찌우는 힘이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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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의 혼혈문화 한눈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Peranakan)’ 특별전의 문을 열었다. 페라나칸이란 ‘아이’를 뜻하는 말레이어로 해외에서 이주한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 후손을 일컫는다.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는 예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해 외국인이 정착하는 사례가 많았다. 중국이나 아랍, 인도 남성들이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면서 독특한 공동체가 형성된 것. 페라나칸 남성은 ‘바바’, 페라나칸 여성은 ‘뇨냐’라고 불렀다. 전시회는 페라나칸이 현지에 적응하며 이룬 독특한 문화를 조명했다. 전체 5부로 구성된 전시회에서 1, 2부는 혼례복과 ‘첫날밤’ 침실 장식품을 소개했다. 중국계 이주민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인지 형태나 색감이 중국풍이 물씬 나는 게 특징. 12일 동안 치러진다는 혼례에 쓰이는 장신구들은 화려하고 섬세해 그들의 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3부 ‘뇨냐의 패션’과 4부 ‘서구화된 엘리트’는 뇨냐의 일상과 그들이 유럽문화를 수용해 변화하는 과정을 되짚는다. 20세기 싱가포르에서 사회지도층에 오른 대표적 페라나칸 가운데 한 명인 송옹시앙(1871∼1941)의 초상화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5부 ‘공예미술’은 페라나칸 특유의 자수와 구슬 세공품, 도자기 등을 전시한다. 특히 신부용으로 따로 주문 제작한다는 도자기 ‘뇨냐자기’는 대부분 핑크빛으로 화사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페라나칸 혼혈문화가 사회적 편견 없이 자연스레 융화되는 과정은 현재 한국사회도 배워야 할 대목”이라고 밝혔다. 5월 19일까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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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 수묵화 국내 첫 발견?

    《 고려시대 수묵(水墨)으로 그린 산수화로 추정되는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중국 당나라 시절 시작된 수묵화는 고려시대에 전해진 뒤 조선에서 꽃을 피웠지만 지금까지 고려시대 작품은 한 점도 발견된 적이 없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한국 회화사 연구에 획기적 발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 감정 전문가인 이동천 전 명지대 교수(중국 랴오닝성박물관 특임연구원·48)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12∼14세기에 그려진 고려 수묵 산수화 ‘독화로사도(獨畵鷺5圖)’를 찾았다”며 실물을 공개했다. 》이 그림은 가로세로 54×75cm 크기로 기암절벽 사이로 곳곳에 나무들이 우거진 가운데 촌락을 이룬 가옥들이 있고, 맨 앞에 쇠백로 한 마리가 외다리로 우두커니 서 있다. 오른쪽 상단엔 화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시구가 있고, 왼쪽 하단엔 소장가로 보이는 ‘유하노인(柳下老人)’ 명의로 “퇴경화사(退耕畵師)에게 그림과 시를 부탁해 보물로 삼았다”는 발문이 있다.○ “이규보 시문집 소개된 그림과 일치” 이 전 교수는 “2010년 3월 개인 소장품인 이 그림을 발견하고 3년 동안 연구한 끝에 고려시대 수묵화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는 우선 고려 문신이자 학자인 이규보(1168∼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시 ‘온상인소축독화로사도’에 등장하는 그림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온상인이란 승려가 소장한 독화로사도를 보고 쓴 이규보의 시에는 “…강호의 기절한 경치를 그렸으면/어째서 어부와 사공이 왕래하며 노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이미 백로의 뜻을 이룬 모습을 그렸으면/어째서 물고기와 게가 출몰하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라고 독화로사도를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 풍경과 형식도 중국 회화와는 차이가 난다. 일단 그림 가운데 위치한 움막집 12채는 중국 그림에 나오는 누각 형식의 가옥들과 생김새가 다르다. 12세기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열두어 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집 크기는 서까래 2개를 넘지 않았다”고 밝힌 고려 촌락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발견 당시의 족자 형태도 상단이 하단보다 길고 장식의 일종인 경연(驚燕)을 사용한 중국식과 달리 상·하단 길이가 일정하고 경연도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은제도금타출신선무늬 향합’에 독화로사도와 같은 족자 형태가 등장한다. 이 전 교수에 따르면 조선 그림보다 시대적으로 앞선다는 증거도 나온다. 조선 전기 대표작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발견되는 태점(苔點)이 독화로사도에는 보이질 않는다. 태점이란 산이나 바위에 난 이끼 등을 표현할 때 쓰는 작은 점. 몽유도원도보다 시대가 앞서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머리 뒤 깃털 2개가 길게 달린 쇠백로 한 마리도 눈여겨봐야 한다. 쇠백로는 12세기 초반 금나라 시절 도자기 베개에 즐겨 그리던 소재로 중국에선 북송 문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한다. 바위나 나무의 묘사는 북송시대 문인이자 화가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와 서화가 미불(米(불,비,패)·1051∼1107)의 표현 방식과 닮아 조선 회화에서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또 그림에 소장가가 글을 써 넣는 것은 12, 13세기 남송에서 유행하던 방식이다. 고려 예술계가 당대 주류로 인정받던 송나라 화풍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전 교수는 주간동아에 연재하는 칼럼 ‘예술과 천기누설’(18일 발행)에도 이런 내용을 실었다.○ “가능성 높지만 명확한 고증 거쳐야” 하지만 독화로사도가 고려시대 산수화로 인정되기까지는 논란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교수가 심혈을 기울였지만 아직 국내외 학계의 명확한 고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탄소연대측정 등 과학적 검증도 필요하다. 그림 공개 뒤 접촉한 전문가들이 “고려 산수화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실명 공개를 꺼린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학자는 “고려 산수화가 발견된 것 자체는 학술적 가치가 크나 실물을 보지 않아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며 “다만 그림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고, 알려진 화가의 작품이 아니어서 예술적 가치는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 전 교수는 “향후 정식으로 요청받으면 학계에서도 당당하게 검증받겠다”고 말했다.정양환·구가인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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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궁중의 일본회화 3점 첫 공개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이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이 소장하던 일본 회화 3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박물관 지하 1층 왕실 회화실에서 ‘일제강점기 궁중의 일본 회화’를 주제로 병풍으로 만들어진 일본 회화 3점을 전시한다”고 밝혔다. 공개되는 작품들은 일본 화가 시미즈 도운(1869∼1929 추정)이 그린 매, 곰 그림 2점과 일본 전통 연극 노(能)의 한 장면을 자수로 놓은 작자 미상 그림 1점이다. 박물관에 따르면 1910년 한일강제병합을 전후한 1905∼1915년 조선을 방문한 일본 화가들은 주로 조선총독부 의뢰를 받아 궁중에서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이나 장식화 등을 그렸다. 시미즈 씨는 당시 한반도에 설립됐던 미술 강습소 교육을 위해 내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은 “특히 세 그림 모두 기존에 왕실 장식 병풍에 쓰던 소재와 전혀 다르고 일본 색채가 매우 강하다”며 “도화서 화원들이 맡았던 업무를 일본 화가 손에 넘긴 것은 조선 식민화를 공고히 하려던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계속된다. 박물관은 궁중장식용 회화와 기록화, 흥선대원군 등 왕실 인물들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회화와 서예 작품 등을 수록한 도록 ‘궁중서화Ⅰ’도 최근 발간했다. 도록에는 보물 제1442호로 지정된 ‘일월반도도(日月蟠桃圖) 병풍’을 비롯해 일월오봉도 모란도 십장생도 등 의례용 그림도 다수 실렸다. 왕실 회화의 전통은 물론이고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궁중 회화의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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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배트맨, 왜 쫄쫄이 입니?” 철학자가 묻는다

    ‘히스 레저(1979∼2008)를 기억하며.’ 아아, 다 필요 없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등장하는 헌사. 이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차고 넘친다. 21세기 제임스 딘 반열에 오른 레저에게 바친다는데, 그럼 됐다. 서평 끝. 안타깝다. 이러쿵저러쿵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니, 이 소개 글은 더 읽을 필요 없다. 배트맨을 좋아한다면 조커가 그립다면, 여기서 멈추고 책을 보시라. 하긴 배트맨은 개뿔, 슈퍼맨도 지겹다 하는 분도 있겠다. 그럼 이 책, 눈길도 주지 마시라. 이미 눈치 챘겠지만, ‘배트맨과 철학’은 전공서적이다. 배트맨대학 덕후(일본어 오타쿠·은둔형 외톨이에서 유래된 말)학과 학부생쯤은 돼야 읽는 맛이 제대로다. 영화 한두 편 봤거나 옛 TV 만화의 아련한 추억 정도론 접근이 상당히 난해하다. 물론 누구라도 책을 씹어 먹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번역을 고교생들이 했다. 우리도 한글은 읽지 않나!). 하지만 영화는 물론이고 국내에 들어온 배트맨 그래픽노블 정도는 다 독파해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례가 가득하다. 삼킬 순 있으나 목구멍에 자주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배트맨과 철학’은 평소 배트맨 애독(청)자들이 가졌던 철학적 혼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 주는 책이다. 배트맨은 왜 그렇게 당하고도 끝끝내 악당들을 살려둘까(영화에선 잘 죽인다). 갑부인 브루스 웨인이 뭐가 아쉬워서 불법 자경단이 되어 밤거리를 배회할까. 허구한 날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면서 결국엔 다시 쫄쫄이를 입는 이유가 뭘까. 친절하게도 미국에서 나름 일가를 이룬 철학 종교학 윤리학(심지어 물리학까지) 교수와 박사들이 이런 궁금증을 학문적으로 접근한다. 잠깐 고급스러운 척하자. 배트맨은 명백히 대중문화 상품이지만, 중층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심도 깊은 텍스트다. 실례, 뱉고 나니 감당이 안 된다. 그냥 얜 좀 다르다. 거미에 물린 적도 없고, 친부모가 하늘을 나는 외계인도 아니다. 엄청난 재산과 뼈를 깎는 육체적 단련을 빼면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다. ‘똘끼’는 충만하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부모가 목숨을 잃은 뒤 눈이 뒤집혔다. 초등학생쯤 되는 애가 복수도 아니고, 평생 악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곤 영웅도 범죄자도 아닌 ‘다크 나이트(Dark Knight·어둠의 기사)’로 산다. 분명 나쁜 놈 같진 않은데, 애들한테 “본받으라”고 권하긴 머뭇거려진다. 만화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이런 모호한 경계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배트맨과 철학’이 명쾌한 해답을 주리라 기대하진 말자. 알잖은가. 철학이 언제 우리 등을 시원하게 긁어준 적이 있던가. 그래도 이 책은 좋은 의미에서 꽤나 편향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비트겐슈타인까지 어질어질한 철학이 수북하지만, 결론은 배트맨이 몇 가지 결점은 있을지언정 옹호 가능한 캐릭터라고 쓰윽 손을 들어준다. 안쓰럽긴 해도 악플 달릴 정도는 아니란 거다. 하긴, 배트맨도 슈퍼맨처럼 ‘우리의 친구’ 아닌가. 다만 이 책은 사공이 너무 많다. 저자가 너무 많다 보니 꼭지마다 문장의 편차가 너무 심하다. 가벼웠다 무거웠다 쉬웠다 어려웠다 하는데 전혀 리드미컬하지 않다. 이는 결코 고등학생 4명이 번역을 나눠 맡았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원문은 보지 않았지만, 웬만한 번역가보다 훨씬 애쓴 티가 난다. 감수자 말대로 ‘미덕적’ 같은 부자연스러운 대목도 있지만, 왜 그걸 살렸는지도 수긍이 간다. 하나 더, 돈 좀 들더라도 영화 스틸 컷이나 관련 만화를 군데군데 넣어 줬더라면. 그리 정색 안 해도 철학책인 줄 다 아는데. 냉소 어린 히스 레저 얼굴이 보고팠건만. 어찌 그리 야박하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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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차관급 외청장 18명 인사]4대 권력기관장 영호남 출신 全無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신임 검찰총장에 채동욱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국세청장에 김덕중 중부지방국세청장, 경찰청장에 이성한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지명하는 등 18개 외청장 인사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주요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민형종 조달청장(현 조달청 차장), 김영민 특허청장(현 특허청 차장) 등 18명 중 9명이 내부 승진이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현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1998년 금감원 설립 이후 내부 승진으로 금감원장에 오른 첫 사례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전문성을 중시했으며 주무부에서 청장이 내려왔던 것을 최소화하고 내부 차장을 적극 승진 발령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주무부에서 청장으로 간 경우는 백운찬 관세청장(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이용걸 방위사업청장(현 국방부 차관), 이양호 농촌진흥청장(현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 등 3명이다. 황철주 전 벤처기업협회장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의 첫 중소기업청장으로 임명됐다. ‘손톱 밑 가시’로 대표되는 중소기업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총장의 경우 다른 외청장들과 별도로 인선을 발표해 권력기관장으로서 대우를 해주던 관례를 깨고 이날 다른 외청장 인사와 함께 발표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개혁의 신호탄 아니냐”며 긴장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 권력기관장 ‘빅4’ 서울 3명-대전 1명… 지역안배 없어 ▼■ 靑 “채 후보, 군산에 선산” 궁색 해명… 경찰청장 임기보장 공약 뒤집어, 임기 남은 감사원장도 교체 가능성출신 지역을 보면 영남이 9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고, 충청 4명, 호남과 서울이 각각 2명, 경기 1명이었다. 특히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에는 이례적으로 영·호남 출신이 한 명도 없고, 서울 3명, 대전 1명(국세청장)이었다. 호남 출신 중용 등의 지역 안배는 없었던 셈이다. 윤 대변인은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검찰총장 인선 배경의 하나는 지역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며 “채 후보자는 서울 출생이지만 아버지가 5대 종손이고 선산이 전북 군산에 있다”고 말했다. 또 “(채 후보자가) 매년 선산을 다니면서 그 지역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고도 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궁색한 설명이란 지적이 나왔다. 채 후보자는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법조인 대관에도 출신지가 서울로 기재돼 있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윤 대변인의 발언은 궤변과 변명에 불과하다. 지역 안배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경찰청장 2년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지난해 5월 임명된 김기용 경찰청장을 이날 교체했다. 윤 대변인은 경찰청장 교체 배경으로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새롭게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오늘 발표하게 됐다”고만 했다. 전날 오후 10시경 갑자기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위원들에게 소집 연락을 한 점이나 ‘약속’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뒤집으면서까지 경찰청장을 갑자기 교체하게 된 배경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임기 2년 보장 약속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4대 악 척결이라는 국정철학 실천이 더 중요하다”며 “경찰청장 교체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기가 남아 유임이 예상돼 온 감사원장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뭐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해 교체 가능성을 열어뒀다. ▼ 백운찬 관세청장 ▼ 기획재정부 관세정책관, 재산소비세정책관, 세제실장 등 조세와 관련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세제 전문가. 세제실장으로 일하면서 재벌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국선도를 10년 이상 수련했다. △경남 하동(57) △진주고 △동아대 법학과, 서울시립대 세무학 박사 △행정고시 24회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장 ▼ 박형수 통계청장 ▼한국은행 출신으로 2001년부터 한국조세연구원에서 재정, 예산 분야를 연구한 재정 전문가. 역대 최연소 통계청장이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맡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전남 화순(46) △광주 동신고 △서울대 경제학과 △한국은행 조사국 △한국조세연구원 예산분석센터장, 연구기획본부장 ▼ 이용걸 방위사업청장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예산·재정 분야 전문가다. 뛰어난 기획력과 꼼꼼한 일처리가 장점. 국방부 차관 재직 시 저렴하고 질 좋은 민간제품을 군수품으로 채택해 예산 절감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56)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23회 △기획예산처 재정운용기획관 △기획재정부 2차관 △국방부 차관 ▼ 변영섭 문화재청장 ▼조선시대 회화를 전공한 미술사학자로 사상 첫 여성 문화재청장이란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평소엔 털털한 성격이나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호에 적극적이다. △경북 봉화(62) △안동여고 △이화여대 사학과 박사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한국미술사학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 신원섭 산림청장 ▼충북대에서 20년간 강단에 섰으며 산림휴양관리 전문가로 산림치유사업단장 등 실무 경험도 많다. 부드러운 성격에 소통이 능하다. ‘숲으로 가는 건강 여행’ ‘치유의 숲’ 등 저서를 냈다. △충북 진천(54) △청주 운호고 △충북대 임학과 △캐나다 뉴브런즈윅대 석사 △토론토대 박사 △세계산림의학회 부회장 △한국산림휴양학회장 ▼ 이일수 기상청장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88년 과학기술처 행정사무관에 특채된 뒤 2007년 기상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머감각이 있고 친화력이 뛰어나 기상청 출신이 아닌데도 인기가 높다. 외국인 기상전문가 영입 등 기상청 혁신 업무를 주도했다. △부산(57) △기장종합고 △공사 29기 △과학기술부 총무과장 △기상청 기획조정관, 차장 ▼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행정고시 출신으로 법제처에서 근무하다 1997년 해경에 경정으로 특채됐다. 해적 퇴치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국내 첫 ‘해적 박사’로 국제해양법의 전문가다. 기획통으로 제주지방해경청과 평택, 창원해경서 신설을 주도했다. △경남 하동(48) △진주 동명고 △한양대 행정학과 △행정고시 37회 △해경 기획과장 △남해지방해경청장, 기획조정관 ▼ 민형종 조달청장 ▼공직 입문 후 32년간 외길을 걸어온 조달정책 전문 관료. 조달청장에 내부 출신이 임명된 건 1997년 이후 16년 만이다. 전자조달 체계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남 영암(55) △광주 제일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24회 △서울지방조달청장 △부산지방조달청장 △조달청 차장, 기획조정관 ▼ 박창명 병무청장 ▼학군장교(ROTC) 출신으로 주로 야전에서 근무한 작전통이다. 후방 지역의 민관군 통합방위작전 경험이 풍부해 병역자원 관리와 예비군 동원 업무에 밝다는 점이 발탁 배경으로 꼽힌다. 작년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국방안보추진단에서 활동했다. △경남 사천(63) △마산고 △경상대 △학군 12기 △36사단장 △9군단장 △육군 1군사령부 부사령관 △국방대 총장 ▼ 남상호 소방방재청장 ▼소방방재청을 떠난 지 8년 만에 청장으로 복귀했다. 1980년 소방간부후보생 2기로 공직에 입문했으며 소방이론과 실무에 모두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온화한 성품으로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충북 괴산(60) △청주상고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충남대 행정대학원 석사 △행정자치부 소방국장 △한국소방검정공사 사장 △대전대 소방방재학과 대우교수 ▼ 이양호 농촌진흥청장 ▼농림부에서 기획 인사 공보 등 주요 업무를 두루 거쳤다. 성격이 온화해 부하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높다. 차관 승진 유력 후보였지만 영남대 선배인 이동필 장관이 취임함에 따라 외청장으로 옮긴 것으로 풀이된다. △경북 구미(54) △영남고 △영남대 행정학과 △행시 26회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 식품산업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 김영민 특허청장 ▼공직에 입문한 뒤 30여 년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와 특허청에서 근무하며 산업정책과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특허청 산업재산정책국장 때는 지식재산기본법 제정의 기초를 닦았다. △경북 상주(55) △함창고 △경북대 행정학과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정책학 석사 △행정고시 25회 △산업자원부 기획예산담당관 △지식경제부 통상협력정책관 △특허청 차장 ▼ 이충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7급 공무원 출신으로 드물게 차관급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 올랐다. 고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한국방송통신대를 다녔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택·도시계획 전문가로 개성공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경기 연천(58) △용문고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행복도시건설청 차장 ▼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재무부, 금융위원회를 거친 금융관료로 2011년에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맡았다. 금감원에서 수석부원장이 곧바로 원장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꼼꼼한 성격과 강한 추진력이 장점으로 꼽힌다. △충남 예산(58) △서울고 △서울대 생물학과 △행시 25회 △재무부 이재국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금융위 기획조정관 △금감원 수석부원장동정민·장원재 기자 ditto@donga.com}

    • 201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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