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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가 프랑스의 대표적 완성차 업체인 르노 본사와 공장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14일 르노의 성명을 인용해 “프랑스 경제부 산하 경쟁·소비·부정방지국(DGCCRF) 직원들이 르노 본사와 공장의 기술센터 등을 수색해 관련서류를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르노 노동조합도 “이번 수색은 엔진제어부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면서 “수사관들이 책임자의 컴퓨터 등을 들고 갔다”고 전했다. 이번 수색을 계기로 독일 폴크스바겐에 이어 르노도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왔다. 이에 따라 르노 주가는 이날 하루 시가총액이 26억 유로(약 3조5000억원)나 증발했다. 파리 증시에서 르노 주가는 장중 한때 20% 넘게 폭락했으나 이후 하락 폭이 줄어 10.3% 떨어진 채 마감했다. 르노 측은 성명에서 “폴크스바겐 사태이후 프랑스 환경부 요청에 따라 당국이 100여종의 차량에 대해 배출가스 검사를 실시했다”며 “그러나 폭스바겐과 달리 르노는 배출가스를 조작하지 않았으므로 압수수색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엠마뉘엘 마크롱 경제부 장관도 이날 압수수색에 대해 ‘정상적인’ 점검이었을 뿐 르노에 추가적인 배출가스 조작의혹은 아니라고 말했다. 세골렌 루아얄 프랑스 환경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테스트 결과 르노의 디젤차량에서는 폴크스바겐처럼 배출가스를 조작한 차량은 나오지 않았다”며 “(르노) 주주들과 직원들은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루아얄 환경장관은 “그러나 르노를 비롯해 일부 수입 차량에서 배출가스 배출 기준량을 초과한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르노는 지난달 5000만 유로(약 660억원)를 투입해 실제 배출가스를 공식 테스트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르노에 대한 압수수색 소식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완성차 업체인 ‘푸조’의 주가 총액도 5% 하락했다. 푸조는 이날 프랑스 에너지 환경 당국의 조사에서 자사는 배출가스 한계도 넘지 않았으며, 배출가스 조작 장치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주가 하락을 막을 수 없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에서 폴크스바겐, 다임러, BMW의 주가도 르노의 압수수색 소식에 일제히 하락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저지른 12일 터키 이스탄불 폭탄 테러의 사망자 10명 전원이 독일인이고, 15명의 부상자 중에서도 독일인이 9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단체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터키 정부는 13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시리아 국적자인 IS 남성 조직원 나빌 파들리(28)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누만 쿠르툴무쉬 부총리는 “테러범이 최근 시리아 국경을 넘어 터키에 입국했다”며 “그러나 정부의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에프칸 알라 내무장관은 이번 테러와 관련한 용의자 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 용의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터키 경찰은 이날 전국에서 동시에 IS 검거 작전을 펼쳐 용의자 68명을 체포했다. 체포된 용의자 중에는 IS 조직원으로 보이는 러시아인 3명도 포함됐다고 터키 도안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수도 앙카라에서는 IS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시리아인 15명과 터키인 1명이 검거됐다. IS가 장악한 시리아 북부와 접경한 샨르우르파에서도 21명이 체포됐고, 킬리스에서는 외국인 6명이 밀입국하다 검거됐다. 한편 쾰른의 난민 집단 성범죄 사건으로 반(反)난민 정서가 고조된 와중에 IS 테러에 독일인이 다수 희생되면서 난민 포용에 앞장서 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메르켈 총리는 “파리든 이스탄불이든 국제테러리즘이 노리는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삶”이라며 테러에 의연히 대처할 방침임을 밝혔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대연정은 12일 범죄를 저지른 난민을 종전보다 쉽게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쾰른 사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13일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터키 이스탄불에 대한 여행경보를 ‘여행유의’(남색)에서 ‘여행자제’(황색)로 한 단계 올렸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독일에서 2015년도 ‘올해의 못된 유행어’로 “바른 사람”(Gutmensch)이 선정됐다. 다름슈타트 지역 언어학자, 언론인, 작가가 주축이 된 ‘올해의 못된 유행어’ 선정위원회가 12일(현지 시간) 이같이 발표했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이 단어는 윤리·정치적 관점에서 ‘올바름이 지나치다’는 가치 판단을 담아 특정인을 ‘공상적 박애주의자’(영어로 Do-gooder)로 폄하할 때 사용된다. 지난해 난민 위기가 몰아친 독일에서 이 말은 ‘난민 포용론자’를 지칭할 때 많이 쓰였다. 이 단어는 2011년부터 유력한 수상 후보로 점쳐져 왔다. 지난해 여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헝가리 국경에 있던 시리아 난민들을 제한 없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자 독일 극우단체들은 총리의 난민 포용정책에 대한 반대토론 때마다 ‘바른 사람’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왔다. 선정위는 성명에서 ‘바른 사람’이라고 하는 데에는 “관용과 도우려는 의지를 순진하고도 어리석고, 남에게 잘 속아 넘어가는 것으로 깎아내리는 함의가 있다”고 선정 취지를 밝혔다. 선정위는 “심지어 도덕적 제국주의 성향까지 보이는 이 표현은 민주적인 의견교환과 실질적인 토론을 막고 있으며, 심지어 주류 언론에까지 등장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선정위는 연말마다 ‘올해의 단어’를 발표하는 독일어협회와 별개로 1991년 초부터 지난해 언론에 대중적으로 쓰인 말 가운데 본뜻을 왜곡하거나 인권 침해 또는 반사회적 요소가 있는 합성어를 선정해왔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터키 이스탄불의 대표적 관광지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0명이 숨졌다. 터키 당국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 12일 터키 정부에 따르면 이번 폭발은 오전 10시 20분경(현지 시간) 술탄아흐메트 광장 ‘독일 분수’ 근처에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광장에 있던 10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했다. 폭발 현장 부근에 있던 한국 단체관광객 중 대학생 1명도 손가락에 부상을 입었다. 현장 근처에 있던 독일인 관광객 카롤린 씨는 AFP통신에 “강력한 폭발음으로 땅과 건물들이 흔들리고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폭발 후 딸과 함께 무작정 뛰어 인근 건물에 1시간 반 동안 숨어 있었는데 너무나 무서웠다”고 말했다. ▼ 터키 관광산업 타격 노린 IS 소행 추정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수도 앙카라에서 가진 터키 외교관들과의 모임에서 “시리아 출신 자폭 테러범 소행”이라고 밝혔다. 아흐메트 다부토을루 터키 총리는 각 부처 장관과 국가정보국(MIT) 국장 등이 참석한 긴급 안보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누만 쿠르툴무쉬 부총리는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용의자의 시신을 조사한 결과 1988년생 시리아 태생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술탄아흐메트 광장은 그 앞의 술탄아흐메트 자미(블루 모스크)와 터키의 상징인 성소피아 박물관, 톱카프 궁전과 함께 술탄아흐메트 지구로 묶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터키를 찾는 연간 3700만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대부분 찾는 곳이다. 현지 일간 휘리예트 뉴스는 유명 관광지에서 관광객과 민간인들을 노렸다는 점이 IS의 과거 테러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또 터키군은 지난해 12월부터 동남부에서 쿠르드족 반군인 PKK를 소탕하는 대규모 작전을 벌이고 있어 분리 독립을 꿈꾸는 쿠르드족 반군의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외교부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관계부처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이기철 외교부 재외동포대사는 “터키 전 지역에 대한 여행 경보를 기존의 ‘여행유의’(남색경보)에서 ‘여행자제’(황색경보)로 상향 조정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조숭호 기자}
‘실업률을 낮추지 못한다면 다음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2012년 5월 취임 당시)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사진)이 ‘실업률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그가 실업률 낮추기에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국민과의 약속 때문이다. 올랑드 대통령의 취임 당시 실업률은 9.8% 수준.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와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실업률이 슬금슬금 올라 10.8%까지 상승했다.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는 한 “다시 나라를 맡겨 달라”고 유권자들을 설득할 명분이 없게 됐다. 올랑드 대통령은 18일로 예정된 ‘실업률 대책’ 발표를 계기로 노동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방침이다. 노동시장이 바뀌지 않는 한 경제 정책이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통령 발표에 앞서 11일 마뉘엘 발스 총리는 총리 관저로 노조연맹 대표와 경영자 대표들을 초청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18일 발표에는 노동법 개혁을 비롯해 세금 감면, 비용 절감, 규제 완화 등 모든 분야가 망라될 것이라고 프랑스 일간 레제코가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우선 50만 명의 실업자에 대해 400∼500시간에 이르는 직업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여기엔 10억 유로의 예산이 들어간다. 종업원 50명 이하의 중소기업이 근로자를 신규 채용할 경우 직원 1인당 1000∼2000유로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 프랑스 언론은 △주당 35시간 노동제 폐지 △장기 실업자 실업수당을 삭감해 노동 의욕 고취 △노동재판 간소화 및 해고소송 보상금 상한제 실시 △노동법 개정으로 해고가 가능한 정규직 도입 등 ‘깜짝 놀랄 만한 조치들’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에서는 노사정 대타협이 지지부진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대선 후보직을 걸고라도 노동 개혁을 이루겠다는 태세다. 올랑드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실업률이 9.8%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10월 실업률 예상치는 10.8%. 이대로 전당대회를 맞았다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올랑드 대통령으로선 18일 발표가 차기 대선 후보 출마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프랑스 경제인연합회(MEDEF) 등 경영자 단체도 10일 일간지 주르날뒤디망슈를 통해 ‘고용 촉진을 위한 5가지 긴급 법안’을 도입하라는 내용의 공개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들은 노동법 규제를 완화해 △매출 감소 △프로젝트 실패 △경영 목표 달성 미흡 등의 이유로도 해고할 수 있는 새로운 정규직 계약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또 향후 2년간 중소기업이 정규직을 채용할 때는 사회적 분담금을 전액 면제해 줄 것도 요청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메르켈 아웃(Merkel out)!” 9일 독일 쾰른 대성당 주변에서 극우 시위대 1700여 명이 정부의 난민 수용 정책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페기다)’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을 위한 시민운동(PRO NRW)’ 등 극우단체 회원들이 맥주병과 폭죽을 던지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지난해 12월 31일 저녁 쾰른 시 도심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행의 범인 상당수가 난민이라는 점에서 ‘강간(rape)’과 ‘난민(refugee)’이라는 단어를 합성해 ‘Rapefugee는 환영하지 않는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행진을 벌였다. 경찰은 최루가스, 물대포 등을 이용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같은 장소에서 극우 시위대를 비난하는 시위도 열렸다. 독일 사회에 잠재된 갈등이 폭발하는 모습이다. 맞불 집회에 나선 시위대 1300여 명은 페기다 시위대를 향해 “나치 아웃(Nazis out)”, “파시즘은 범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영국 BBC는 지난해 난민 110만 명을 받아들인 메르켈 총리가 이제는 독일의 관용에도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압박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년간 그리스 등 유럽의 재정 위기와 우크라이나 위기를 넘기며 ‘유럽의 여제(女帝)’로 군림해 온 그이지만 지금은 난민 위기라는 진짜 위기를 만났다는 분석이다. 여론에 떠밀린 메르켈 총리는 이날 집권 여당인 기독민주당(CDU) 정책회의에 나와 범죄를 저지른 난민에 대해 추방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현행법에 따르면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의 경우 범죄를 저질러 징역 3년형 이상을 선고받고 본국 송환 땐 난민의 안전에 위협이 없다고 판단돼야 모국으로 추방할 수 있다. 사실상 난민을 추방할 수 없게 하는 조항이나 마찬가지다.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도 “왜 외국인 범죄자를 위한 감옥에 독일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야 하느냐”며 범죄를 저지른 난민 추방 방침에 동의했다.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가슴만 뜨거울 뿐 전략이 없다”며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을 비난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1960년대 세계적으로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사진)가 7일 파리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로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아 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쿠레주는 혁명의 창조자이자 한 시대를 이룬 디자이너로 프랑스 패션에 큰 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1923년 프랑스 서남부의 포에서 태어난 쿠레주는 토목·건축을 전공한 후 1940년대 프랑스 패션계에 발을 내디뎠다. 스페인 출신의 프랑스 디자이너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 밑에서 10여 년간 일했던 그는 1961년 독특한 ‘스페이스 룩’을 발표하면서 유명해졌다. 흰색의 각진 미니스커트와 흑백 바지, 우주복에서 착안한 헬멧과 고글을 활용한 패션으로 ‘미래 스타일의 혁명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카트린 드뇌브, 재클린 케네디 등 세계의 많은 유명 여성이 그의 옷을 즐겨 입었다. 프랑스 언론은 그가 “미니스커트의 아버지”였으며 “미니스커트에 고급스러움을 더해 세계적 유행을 불렀다”고 추모했다. 쿠레주의 흰색 미니스커트는 ‘흔들리는 60년대(Swinging Sixties)’를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미니스커트 창시자 타이틀을 둘러싸고는 영국 디자이너 마리 퀸트와의 사이에서 논란이 있기도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에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차를 갖고 국경을 넘는 일이었다. 한국인에게 국경이라고 하면 철조망, 지뢰, 감시병, 검문소 등의 무시무시한 단어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트렁크에 캠핑 장비를 가득 싣고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국경을 무사히 통과하는 기분은 짜릿하기 그지없다. 휴가 때 룩셈부르크에 놀러갔을 때다. 모젤 강가에 위치한 좋은 화이트와인 산지를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솅겐(Schengen) 5km’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강가 언덕에 포도밭이 그림처럼 펼쳐진 솅겐은 한국으로 치면 읍면 소재지 정도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4억 유럽인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이 파리도, 로마도, 베를린도 아닌 이런 작은 시골마을에서 맺어졌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마 룩셈부르크에서 다리를 건너면 독일이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프랑스인, 3국 접경의 상징적인 지점이기 때문일 듯했다. 강가에 세워진 ‘솅겐조약’ 기념관에는 1985년 모젤 강 위 유람선 ‘프린세스 마리아스트리드호’ 선상에서 유럽 5개국 대표가 자유통행 조약에 사인하는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후 솅겐조약은 26개국으로 확대돼 유로화와 더불어 유럽연합(EU)을 지탱하는 두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북극해변의 ‘노스케이프’에서 스페인 지중해변의 타리파까지 5671km를 여권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솅겐조약으로 유럽은 경제적 단일시장으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유럽에 솅겐조약은 정치적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요즘 유럽에서는 30년 만에 솅겐조약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들이 난민 사이에 섞여 들어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유럽은 다시 장벽을 세우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를 비롯해 6개 나라가 국경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2017년 ‘EU 탈퇴 국민투표’를 앞둔 영국에서는 그야말로 ‘떠날 것이냐, 말 것이냐(To leave or not to leave)’가 화두다. 솅겐조약을 이대로 두면 수십 년 안에 유럽 대륙이 ‘유라비아(Eurabia·유럽과 아랍의 합성어)’가 될 것이라는 극우 정당들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난민 유입을 제한한다’는 명목으로 솅겐조약을 폐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유럽 각국이 국경을 닫는다면 ‘단일 시장’이라는 경쟁력 상실로 난민을 수용하는 비용보다 더 큰 경제적, 정치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유럽의 정치인들은 ‘난민 공포’를 내세운 극우 정당의 인기에 놀라 표를 얻기 위해 감정적인 대응에 골몰하고 있다. 솅겐 지역이 아닌 영국에서도 이민자 문제는 심각하다. 아무리 국경을 통제하고 솅겐조약을 폐기한다고 해도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난민의 갑작스러운 증가는 유럽 외부의 문제이며 외교정책 실패의 결과이지 솅겐조약 때문이 아니다. 세계 최대 경제권인 동북아시아 한중일 간에도 국경 검문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한 날이 올까. 두만강 하구에 북한의 나진선봉(나선),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하산으로 연결되는 3국 접경지역이 있다. 통일이 되면 그곳에서 아시아판 ‘솅겐조약’을 맺으면 좋겠다. 새해부터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뒤숭숭하지만 나는 평화의 꿈을 꿔본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덴마크에서 유학 중이던 외국인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너무 많이 했다는 이유로 추방됐다. 8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오르후스대 대학원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 마리우스 요비 씨(30)는 덴마크 취업 규제 당국에 적발돼 7일 고국인 카메룬으로 쫓겨났다.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이민법을 둔 덴마크에서는 외국인 학생이 주당 15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비 씨는 이보다 1시간 30분 많은 주당 16시간 30분씩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국의 불시 조사에서 이런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그는 출국 직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년 반 동안 일하고 배웠던 게 모두 쓸모없어졌다”며 허탈해했다. 유학생 신분으로 등록금과 숙식비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정작 그에게 돌아온 것은 본국으로의 추방이라는 가혹한 처벌이었다. 이 학교의 브리안 베크 닐센 총장은 덴마크 이민청에 편지를 보내 “요비는 최고의 모범 학생이었다. 벌금도 냈는데 추방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요비 씨의 추방을 막기 위한 청원 운동에도 1만810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유럽연합(EU) 회원국 출신이 아닌 요비 씨가 학기당 약 4600유로(약 600만 원)인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덴마크의 관용을 보여주자고 호소했다. 덴마크에서는 극우 덴마크 국민당이 지난해 6월 총선거에서 21%를 득표하는 등 우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덴마크는 이달 초 난민 신청자를 줄이기 위해 스웨덴과 함께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난민 제한을 위해 1951년 체결된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제네바 협약)을 개정하자고 제안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 전체를 분쟁과 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AP통신이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자리프 외무장관은 “이란은 이웃과의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며 “사우디가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하고 종파 간 증오를 부추길 것인지 아니면 선린(善隣)과 지역안정을 촉진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리프 외무장관은 사우디가 이란과 서방이 핵 합의안 협상 타결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좌절시키려 애쓴 점을 지적했다. 그는 “사우디가 2013년 11월 핵협상 잠정 타결 이후부터 모든 역량을 이를 무력화하는 데 집중했다”면서 “중동 전체를 분쟁과 갈등으로 몰고 가려는 징후가 보인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자리프 장관은 그간 있었던 예멘 민간인 폭격, 사우디 공항직원의 이란 청소년 성추행, 메카 성지순례 압사 사고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사우디가 핵 합의를 좌초시켜 중동의 긴장을 증폭하려 한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자리프 장관은 또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선출된 첫날부터 지역 안정을 촉진하고 불안정한 극단주의 폭력과 싸우기 위해 사우디와 대화와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공개적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자리프 장관은 이 서한을 반기문 총장뿐 아니라 유엔 회원국의 각 외무장관,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이슬람 국가기구인 이슬람협력기구 사무총장에게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란에서는 8일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전역에서 사우디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테헤란에서는 약 1000명의 시위대가 사우디 왕가인 ‘알사우드 가족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또한 일부 시위대는 사우디에 처형된 님르 알 님르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였으며,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란 구호도 나왔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도 1500명이 운집한 가운데 이번 처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동안 중동 문제에 좀처럼 개입하지 않았던 세계최대 이슬람 인구대국 인도네시아가 사우디와 이란 간의 종파분쟁 중재에 나섰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마르수디 외무장관을 특사 자격으로 이란과 사우디에 보낼 예정이라고 9일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특사를 보내는 것이 우리가 갈등 해결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잘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비(非) 중동국가이기 때문에 중동권의 첨예한 갈등에서 한발짝 떨어져 중재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풍자주간지 ‘샤를리에브도’ 테러 1주년인 7일 가짜 폭탄 조끼를 두른 채 파리 북부18의 구트 도르 경찰서에서 칼로 경찰관을 위협하다 사살당한 테러 용의자의 신원이 20세 모로코인으로 밝혀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파리 경찰은 지문 조사 결과 2013년 남부 바르 지역에서 경미한 강도혐의로 체포된 전과가 있는 카사블랑카 출신 알리 살라 임을 밝혀냈다. 살라는 2013년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 자신이 프랑스에 불법 입국한 노숙자라고 진술했다. 범행 도중 아랍어로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친 살라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깃발이 인쇄된 종이를 소지하고 있었다. 종이에는 아랍어로 “IS에 충성을 맹세한다. 프랑스가 시리아에서 벌인 죽음을 복수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가 소지한 휴대폰에서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발견됐다고 8일 교도통신이 보도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주간 만화잡지 샤를리에브도 편집장인 로랑 수리소가 테러 발생 1주기인 7일(현지 시간) “우리는 언젠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다시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RISS)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만화가로 현재 샤를리에브도 편집장인 수리소는 이날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샤를리에브도는 자체 검열도 거부한다. 원칙과 신조를 지킨다는 차원에서 언젠가는 무함마드 만평을 다시 그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샤를리에브도는 ‘언론출판의 자유’ 실현을 위해 신념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 등은 샤를리에브도의 다른 종교 적대적 편집 방향에 반대를 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샤를리에브도는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이슬람 만평을 그렸다가 지난해 1월7일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물든 쿠아시 형제가 총기를 들고 사무실에 난입해 편집장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르를 포함한 직원 10명 등 총 12명이 사망하는 테러를 당했다. 테러 발생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수리소는 이후 샤를리에브도의 편집장에 올랐다. 수리소는 지난해 7월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과의 인터뷰에서 테러의 빌미가 된 무함마드 만평을 더는 싣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7개월 만에 입장을 바꿨다. 수리소는 이날 인터뷰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법의 권리를 누리려면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며 “언젠가 또 비극적인 테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작업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일한다”고 강조했다. 샤를리에브도는 전날 테러 1주기 특집호를 발간하고 표지 사진에 ‘총을 멘 신(神)’의 사진을 그려놓고 “1년이 지났으나 암살자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는 문구를 넣었다. 이 표지는 수리소가 직접 그렸다. 수리소는 이와 관련 “표지에 등장한 신은 무함마드가 아닌 모든 종교의 신”이라며 “우리 동료를 죽인 건 신에 대한 그릇된 신념”이라고 지적했다. 수리소는 “종교적 신념은 언제나 평화롭지는 않았다”며 “아마도 테러를 통해 우리는 조금은 신에게 덜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리소는 마지막으로 “지난해 발생한 파리 테러는 테러의 표적이 만평가뿐만 아니라 모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말하면서도 “프랑스와 같은 세속적인 나라에 사는 우리는 원하는 것을 뭐든지 그릴 권리가 있다”며 테러 등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풍자만평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샤를리에브도의 종교와 신(神)에 대한 만평에 대해 종교계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교황청에서 발행하는 일간지인 오세르바토레 로마노는 “샤를리에브도의 선택에는 종교인의 믿음을 인정 또는 존중하지 않고자 하는 슬픈 역설이 있다”고 비판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장관인 모함메드 빈 살만 부왕세자는 7일 “외교적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와 이란이 전쟁에 돌입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우디 국방장관인 살만 부왕세자는 이날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시아파 성직자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것을 옹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양국의 전쟁은 중동 지역 전체에 커다란 재앙의 시작이기 때문에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살만 부왕세자는 또 “법원은 시아파인지 수니파인지에 따라 차별을 두지 않는다. 법원은 다만 범죄에 대해 선고를 내리고 법원 선고에 따라 형이 집행된 것”이라며 시아파 성직자 님르 바크르 알 님르에 대한 처형을 옹호했다. 한편 살만 부왕세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정부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함으로써 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람코는 전 세계 원유량의 15%에 해당하는 2650억 배럴의 원유를 보유한 세계 최대 석유회사이다. 생산량 기준으로는 세계의 12.5%를 차지하고 있다. 2014년 아람코는 35억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25억 배럴을 수출했다. 그러나 국제유가 30달러 선 붕괴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와 사우디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살만 부왕세자는 “아람코의 기업공개는 사우디 재정과 아람코에도 도움을 줄 것이며, 투명성 강화와 부패 대응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은 만약 아람코의 기업공개(IPO)가 이뤄질 경우 최소 1조 달러 이상의 가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7일 “아람코의 전면적 민영화가 이뤄질 경우엔 수조 달러의 가치가 될 수도 있다”면서 “현재 세계 최고 기업 가치를 자랑하는 미국 애플 경우엔 5430억 달러 규모”라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사진)가 설립한 자문회사의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도의 3배로 뛰었다. 그가 총리라는 공직에 있으며 쌓은 고급 인맥으로 국제적인 브로커 사업을 해 막대한 사익을 챙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7일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토니블레어어소시에이츠(TBA)’ 산하 회사 ‘윈드러시 벤처스’의 지난해 총매출이 1940만 파운드(약 339억5523만 원)로 전년보다 30% 증가했다. 순이익은 3배로 뛴 260만 파운드였다. 직원 48명의 평균 월급도 3만5000파운드에서 10만3791파운드(약 1억7500만 원)로 올랐다. 임원 월급은 평균 급여의 약 4배인 40만3000파운드에 이른다. 블레어 전 총리는 2007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날 미국 러시아 유엔 유럽연합(EU)의 중동평화특사로 임명됐다. 그는 동시에 TBA를 세워 중동에서 사업을 하며 거액의 자문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윈드러시 벤처스는 각국 정부의 자문 업무를 맡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장기 집권 독재자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아부다비 왕가가 회사 고객이다. TBA의 또 다른 자회사인 ‘파이어러시 벤처스’는 JP모건과 같은 개인회사와 국부펀드의 공식 자문을 담당한다. TBA의 지난해 회계자료에 따르면 두 회사가 관리하는 펀드 규모는 1000만 파운드가 넘는다. 블레어의 사업은 끝없는 구설에 시달렸다. 2014년에는 그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기업과 중국 정·재계 요인들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비밀 계약을 맺었다고 선데이타임스가 보도했다. 월 4만1000파운드에 계약당 2%의 성공보수를 추가로 받는 조건이었다. 2011년에는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통치 종식을 위해 국제사회가 대대적인 공습에 나섰을 때 블레어는 카다피 구명을 위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의회가 진상 조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평화 중재자가 아니라 ‘중동 브로커’로서 특사직을 개인사업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지난해 6월 8년 만에 특사직을 사임했다. 보수당의 앤드루 브리젠 의원은 “전직 총리가 외국 정부를 위해 비밀스럽게 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세금 전문가인 리처드 머피 시티대 교수(정치경제학)는 “블레어 전 총리는 공직에 있을 때는 책임과 투명성을 강조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수입원에 대해 당황스러울 만큼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윈드러시의 대변인은 “고객의 정보는 비밀 보호를 위해 밝힐 수 없지만 세금 문제는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시사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1주년 기념일인 7일 파리의 한 경찰서에서 가짜 폭탄 조끼를 입은 괴한이 흉기를 휘두르다 경찰에 사살됐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낮 12시경 파리 북부 18구 몽마르트르 언덕 인근의 ‘구트 도르’ 경찰서 입구에서 폭탄 조끼로 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가 “알라 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칼을 휘둘렀다고 밝혔다. 범인은 경찰서에 난입하려다 경찰의 총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형사 범죄가 아닌 ‘일종의 테러 공격’으로 보고 있다고 한 고위 경찰관이 말했다. 사살된 직후 범인의 몸에서 전선줄이 발견되자 경찰은 폭발물 탐지 로봇을 이용해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조사 결과 범인이 입은 옷은 폭발물이 없는 ‘가짜 자폭 조끼’로 밝혀졌다고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가 보도했다. 근처 주민들은 경찰이 쏜 4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주민들에게 모든 문과 창문을 닫고 집 안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인근 유치원과 학교는 문을 닫고 학생들의 출입을 막았고 거리가 전면 통제됐다. 이날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샤를리 에브도’ 편집실과 유대인 식료품점 등을 공격해 이틀 동안 17명이 사망한 테러 1주년이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테러와의 전쟁’을 다짐하는 연설을 하고, 파리 경찰청을 방문해 테러 당시 목숨을 잃은 경찰관 3명을 추모했다. 그는 “2017년까지 경찰과 군인 5000명을 추가로 채용해 테러 예방과 안보를 강화할 것”이라며 “정보 서비스 분야에서도 추가 일자리 2000개가 생길 것”이라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미치겠다.” 7일 오전 10시 42분쯤(중국 현지시간 오전 9시 42분) 국내 자산운용사에서 중국 펀드를 담당하는 A 팀장은 홍콩에 있는 펀드매니저로부터 이렇게 적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깜짝 놀라 주식 전광판을 들여다보니 중국 증시가 개장 12분 만에 멈춰 있었다. 중국 증시의 CSI300지수가 5% 이상 하락해 ‘서킷브레이커’(주가 급등락 때 거래를 일시 정지하는 제도)가 발동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A 팀장을 찾는 은행, 증권사 직원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그는 “거래가 다시 시작되기를 지켜보자”며 그들을 달랬지만 속으론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직감했다. 15분 후 거래가 재개됐고 직감이 현실이 되기까지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10시 59분 CSI300지수가 7% 이상 빠지면서 두 번째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거래는 완전히 중단됐다. 사무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새해 벽두부터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한 중국 증시가 사흘 만에 또다시 추락하면서 ‘2차 차이나 쇼크’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초부터 국내외 경제는 중국 증시 폭락에 중동·북한발(發) 국제정세 불안, 국제유가 급락 등의 ‘삼각 파도’가 휘몰아치며 위기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중국 금융 혼란, 이젠 상시적 위기” 한국 경제는 중국발 악재부터 북한의 4차 핵실험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악재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특히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가운데 지난해 여름 ‘1차 차이나 쇼크’ 때보다도 더 강력한 폭풍이 연초부터 이어지면서 국내 금융시장도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이날 중국 증시가 폭락한 것은 위안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중국 내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지난해 12월 26일부터 8거래일 연속 위안화 가치를 절하했다. 위안화의 가치 하락은 중국 내 투기성 자금의 유출을 유도해 증시 폭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중국팀장은 “수출 부진에 시달리는 중국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위안화 절하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중국 은행권의 자금 부족도 위안화 약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당국이 돈을 풀고 있는데도 유동성 우려가 해소되지 않아 ‘신용경색’ 우려마저 나온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중국 정부가 수출에서 내수로 성장 동력을 전환하면서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고 있는 서비스업 경기마저 악화돼 불안감을 높였다. 지난해 12월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10개월째 기준치를 밑돈 데 이어 서비스업 PMI도 50.2로 17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 팀장은 “중국이 금융시장 개혁, 한계기업 퇴출 등을 추진하면서 증시 급등락과 위안화 환율 변동은 올해 내내 신흥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상시적인 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금융시장 불안의 여파로 이날 말레이시아 링깃화, 태국 밧화 등 아시아 신흥국 통화는 일제히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세계 경제 ‘삼각 파도’ 위협 중국의 경기 둔화는 국제유가의 급락으로 이어지며 국내외 경제의 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 6일(현지 시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5.6% 급락해 7년여 만의 최저치인 배럴당 33.97달러에 마감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11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35달러 선이 붕괴됐다. 중동 정세가 불안하면 국제유가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속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분쟁이 워낙 격해서 원유 감산(減産) 합의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유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세계은행(WB)도 이날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3%에서 2.9%로 낮춰 잡고 “올해 원자재 가격의 안정, 중국 경제의 체질 개선, 선진국의 성장 기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정도의 성장률도 어렵다”고 밝혔다. 세계은행은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6.7%로 낮아진 데 이어 내년에는 6.5%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신흥국 전망치는 4.8%로 기존보다 0.6%포인트나 내렸다. 외신들은 신흥국의 동시다발적 경기침체로 세계 경제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신흥국 경기 둔화에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시장의 금융 혼란까지 더해지면 세계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경제가 가뜩이나 취약해진 상황에서 이렇게 악재가 쏟아지면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실물경제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악재가 어디로 튈지도 몰라 불안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정임수 imsoo@donga.com·주애진 기자 / 파리=전승훈 특파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쾰른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력’ 사건 이후 이민포용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6일 “난민 수를 크게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기독사회당(CSU) 정책협의회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이민 발생의 근본원인 제거와 국가적 조치를 통해 난민 숫자를 현저하게 줄이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망명 신청이 거부된 이들을 효과적으로 돌려보내는 방책을 국가적 조치의 사례로 제시했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바이에른주총리를 맡고 있는 호르스트 제호퍼 CSU 당수가 “매년 받아들이는 난민신청자를 20만 명으로 제한하자”며 ‘난민상한제’를 제안했으나 거부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밤 독일 서부 쾰른에서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로 보이는 남성들에 의해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건이후 난민포용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입장을 달리한 것이다. 이날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은 지난해 난민신청자가 총 109만1894명이었다는 공식 통계를 발표했다. 올레 슈뢰더 내무차관은 올해 들어서도 하루 평균 3200명이 유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성폭력 사건 피해자 가운데는 사복을 입은 여경도 있었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피해 신고를 한 여성은 100명을 넘어섰다. 경찰은 사건 현장이었던 쾰른 중앙역 앞 광장의 CCTV를 분석해 용의자 7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독일 경찰은 쾰른에서 40㎞ 떨어진 뒤셀도르프에 근거를 둔 북아프리카 출신 계열 주도의 범죄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여성들을 상대로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고 소지품을 훔치는 등의 집단적 범죄 행각이 지난 2년여에 걸쳐 뒤셀도르프에서 발생한 사건들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은 “난민 전체를 의심해선 안 되지만, 논의에는 어떤 금기도 있어선 안된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독일 쾰른의 새해맞이 축제에서 이민자들로 보이는 남성들이 저지른 집단 성폭력 사건으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사진)의 ‘난민 포용 정책’이 최대 위기에 몰렸다. 메르켈 총리는 5일 “역겨운 인권 침해와 성폭력 행위들에 격하게 분노한다. 범죄자들의 출신국이나 배경에 관계없이 처벌될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쾰른 시장에게 신속한 처벌을 요구했다. 독일 경찰은 당시 쾰른 중앙역 광장에서 ‘중동과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1000명가량의 남성이 여성들을 상대로 성추행과 협박,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신고가 최소 90건 이상 접수됐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들은 가해자가 “독일어도 영어도 못하는 젊은 외국인들”이라고 증언했다. 메르켈 총리의 강도 높은 발언에도 분노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민자 100만 명을 받아들인 메르켈 총리의 ‘관대한 난민 수용 정책’에 대한 불만이 극우정당은 물론이고 집권 연정과 일반 시민들로부터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중세 고딕 양식으로 유명한 쾰른 대성당 앞에는 이날 300명이 넘는 시민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독일 정부와 언론이 ‘난민 정책’의 역풍을 고려해 이번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메르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서워 죽겠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한 여성은 “그동안 난민보호소에서 벌어진 여성에 대한 성희롱 사건을 정부가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르켈 총리와 ‘보수 동맹’을 맺고 있는 기독사회당(CSU)의 호르스트 제호퍼 당수는 “이민자를 연간 20만 명으로 제한하자”며 연초부터 메르켈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집권 다수당인 기독민주당(CDU) 소속의 슈테펜 빌거 연방의원도 “난민을 줄이고 국경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쾰른에서는 다음 달 10일 대대적인 카니발 축제가 열린다. 헨리테 레커 쾰른 시장은 “시 공무원과 경찰이 참가 여성들을 직접 보호하고 이주민들에게 지켜야 할 규범을 명확히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코 마스 법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제는 범죄자의 ‘출신’이 아니라 범죄의 ‘실체’”라면서 이번 사건과 난민 문제를 연결짓는 데 반대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맞설 줄 알아야 합니다. 독일의 과거사 인정과 사죄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도, 유럽연합(EU)도 맞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동아시아의 강대국인 한중일 간에도 실질적인 협력을 위해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화해가 필요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소장(60)은 4일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최근 한일 간에 이뤄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양국이 화해를 위한 기초를 놓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보니파스 소장은 “일본이 과거 한국에 가했던 끔찍한 범죄와 가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두 나라가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 번 사죄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며 과거를 모두 덮어 버려서도 안 된다”며 “자라나는 후손들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도록 교과서에 기록하는 등 양국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 등으로 유명한 그는 유럽과 중동의 국제 관계와 핵문제, 군축 등을 다룬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현재 파리 8대학 유럽학연구소 교수로 있으며, 글로벌 정치 전략 연구가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전략연감’과 ‘국제전략학술지’의 발행인 겸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와의 인터뷰 장소인 IRIS는 파리 11구의 대로변에 있었다. 지난해 1월 테러가 발생했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 11월에 파리 최악의 인질극 중심지였던 바타클랑 극장에서 각각 8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는 끔찍한 한 해를 보냈다”며 “유럽인은 이제 테러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역사적인 합의가 이뤄졌지만, 아직도 양국 여론은 부정적이다. 합의를 이행하고 발전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민족 간의 화해는 시간이 필요하다. 1950년대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정치권에서 과거 전범(戰犯) 행위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진정한 화해의 첫 단계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의지가 일반 국민에게도 전해진다. 가령 1950년대에는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결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요즘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 되지 않았나. 다만 이를 위해서는 ‘과거사의 교훈’을 끊임없이 후손에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프랑스와 독일에는 양국의 역사가들이 공동 집필한 역사 교과서가 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이 교과서를 함께 발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독일의 전후 사죄와 보상 노력이 전후 유럽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행동은 유럽인들의 마음을 녹였다. 이후로 프랑스와 독일 간에는 더 이상 적개심이 없다. 이것은 역사의 무게를 뛰어넘은 정치적 의지의, 그야말로 역사적인 예시다. 과거 잘못에 대한 인정이 없었다면 독일은 소련이나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개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독일 통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브란트 전 총리는 독일의 전범 행위를 모두 인정함으로써 독일 정부의 외교 영역을 크게 넓혔다. 이러한 시각에서 그는 위대한 애국자다.” ‘핵의 세계’라는 저서에서 미국과 소련, 중동과 북한 등의 핵무기 전략을 분석했던 보니파스 소장은 유엔 군축자문위원회 위원(2001∼2005)을 지내기도 했다. 그에게 북한 김정은 정권이 이란처럼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는 전략을 쓸 것인가에 대해 물었다. 보니파스 소장은 “북한 정권에 핵은 생명보험과도 같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북한은 패배가 확실시되는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기보다는 핵을 보유함으로써 외세의 군사작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이라크가 2003년에 핵을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미국이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새해 벽두부터 시아파 성직자 처형을 계기로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 국가인 양국이 왜 죽기 살기로 싸우나. “사우디와 이란의 라이벌 경쟁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지속돼 왔다. ‘왕국 대 공화국’ ‘수니파 대 시아파’ ‘아랍인 대 페르시아인’ ‘미국의 최우방국 대 주적’….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7월 14일 서방과 이란의 핵 협상 타결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즉 이란의 핵 무장에 대한 우려는 사라졌지만 사우디는 이 합의로 이란이 중동에서 세력을 확산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어 걱정스럽다. 두 나라는 시리아, 이라크, 예멘에서 동맹국을 통해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미 유가 하락으로 국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중재자를 찾아야 한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아랍연맹 등 국제 동맹군의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국제사회의 공습이 IS를 궤멸시킬 수 있다고 보나. “IS와의 전쟁에 참여한 국제 동맹은 규모는 크지만 각자 속셈은 다르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독립을 막는 것이 목적이고, 사우디는 이란의 강대국화를 견제하고 싶어 한다. 이란은 시리아에 중요 전략적 거점을 지키면서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목표이고, 러시아는 시리아에 알 아사드 정권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모든 국가가 IS를 제거하기 위해 공습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서방 국가나 러시아 혹은 시아파의 지상군 직접 개입은 피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지상군 투입은 IS가 원하는, 가장 큰 함정이다. 지상군 투입은 수니파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가장 유용한 조치는 IS의 주 수입원인 원유 수출을 막아 경제적 생명선을 끊는 것이다.” ―지난해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파리 테러 사건으로 프랑스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프랑스가 집중 타깃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수니파 무장 집단 IS는 프랑스가 말리에 파병해 IS가 그곳을 점령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프랑스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 프랑스는 인구의 10%가 무슬림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다. IS는 프랑스에서 ‘이슬람 혐오’ 감정을 부추기고자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프랑스만 테러의 표적이 된 것은 아니다. 터키, 영국, 스페인, 덴마크, 미국…. 현재 유럽을 비롯한 모든 국가는 일상에서 테러의 위협을 겪고 있다.” ―파리 테러 이후 각국에서 이슬람에 대한 증오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급기야 미국에서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까지 했는데…. “이슬람 혐오와 테러리즘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볼 수 있다. IS는 서구권 국가를 공격하면서 해당 국가에 사는 무슬림 인구에 대한 혐오 감정을 유발해 이들이 이슬람 극단주의로 넘어가도록 하는 전술을 쓰고 있다. 이 함정에 빠지는 트럼프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은 테러와 맞서 싸운다면서 테러를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무슬림과 IS가 행하는 테러 행위를 동일시하면 안 된다. ‘11·13 파리 테러’에서 사람들은 인종과 신앙을 불문하고 공격받았다.” ―지난해 말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이 1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유럽 곳곳에서 반(反)이민, 반EU를 내건 정당이 득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높은 실업률이 첫 번째 이유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일부 국민에게는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위기와 실업 공포에 대한 표적이 필요하다. 좋은 뉴스는 자국(自國) 정권의 치적으로 포장하고, 문제점은 EU 탓으로 돌리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 EU는 세계 인구의 6%,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를 차지하지만 복지에는 세계의 50% 정도를 지출한다. 이 때문에 EU 밖의 국민은 유럽 모델이 굉장히 성공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여 가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내부의 유럽인들은 EU의 경쟁력 상실에 실망하고 있다.” ―테러와 난민 위기에 맞서기 위해 유럽 각국에서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통제를 강화한다. 유럽 내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이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지금 상황은 서유럽과 구공산권 바르샤바조약 국가들의 분열이다. 서유럽은 이주민을 받아들인 경험이 많지만 바르샤바조약 국가들은 이런 경험이 전혀 없어 난민 수용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도 매우 크다. 해당 국가에 무슬림 인구가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세계는 새해부터 테러와 분쟁, 실업과 난민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유럽에서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으로 EU가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로서 유럽연합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보니파스 소장은 “지난 2년간 ‘유로화의 죽음’이 거론됐지만 유로화는 결국 살아남았다”며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상호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유럽연합은 결코 해체의 길로 나아가고 있지 않으며, 위기를 겪을수록 더욱 새롭게 발전할 것”이라고 희망을 피력했다.※ 파스칼 보니파스는 ○ 1956년 프랑스 파리 출생○ 1985년 파리 정치대(시앙스포) 국제정치학 박사○ 1991년 프랑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창설 ○ 1999∼2003년 프랑스 국제협력최고자문위원회 위원○ 2001∼2005년 유엔 군축자문위원회 위원○ 2013년 프랑스 국가 공로훈장 기사장과 레종 도뇌르 기사장○ 현재 파리 8대학 유럽학 연구소 교수○ ‘전략연감’과 계간 ‘국제전략학술지’ 발행인 겸 편집주간○ 주요 저서: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 ‘핵의 세계’ ‘4차 세계대전이라고?’ 등 50여 권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중동의 양대 맹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3일(현지 시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두 나라의 극한 대립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아시아 주식시장이 출렁거렸으며 중동 정세도 요동치고 있다. 사우디의 아델 알주바이르 외교장관은 이날 국영TV 연설에서 “사우디에 주재하는 모든 이란 외교관은 48시간 내에 본국으로 떠나라”고 요구했다. 이란 주재 사우디 외교관들은 이란의 사우디 외교공관 공격 이후 전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외교 관계를 끊어버린 것은 사우디가 2일 시아파 유명 성직자를 포함해 47명을 집단 처형한 뒤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의 외교공관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이어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신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하자 사우디는 이란과의 단교를 전격 선언했다. 수니-시아 종파 분쟁이 일촉즉발의 긴장으로 확산되자 4일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2월 인도분은 전자 거래에서 최대 3.5% 오른 38.32달러까지 치솟았다. 사우디가 단교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궁지에 몰린 사우디 정부의 위기 타개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와 이란의 단교는 종파 간 대립 격화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바레인과 수단도 사우디의 뒤를 이어 4일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발표했다. AP통신은 사우디의 초강경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80)을 꼽았다. 살만 국왕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부터 수니파 맹주로서 위상을 다지기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 왔다. 국내적으론 반대파에 대한 사형 집행이 급증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초래했다. 사우디는 지난해에만 150명 이상을 처형했는데 이는 전년의 두 배 수준이다. 그러나 건강이상설이 돌고 있는 살만 국왕은 현재 내우외환(內憂外患) 상태다. 아들인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제2 왕위 계승자 겸 국방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예멘 내전이 10개월째 수렁에 빠져 있다. 여기에 저유가로 오일 머니가 바닥을 드러내며 경제 위기는 악화일로에 놓여 있다. 지난해 사우디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5%인 3670억 리얄(약 114조 원)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해 이란과 서방의 핵협상 타결은 사우디에 발등의 불이다. 이란의 경제 제재가 완전히 풀리면 이란의 석유 수출량이 크게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가 갖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절대적인 원유 증산·감산 능력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사우디는 이란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내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니므르 알니므르의 처형을 강행했다. 이는 니므르가 시아파 거주지이자 걸프 연안 최대 원유 생산지인 동부 아와르 유전 지대의 분리 독립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오일 머니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로선 니므르는 ‘돈줄’을 위협하는 존재인 셈이다. 사우디는 니므르의 처형을 통해 이란의 영향력이 동부 유전지대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민주화의 싹도 자르겠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권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