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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운명 속에서도 살아남은 뮤지컬계 유령이 돌아왔다. 뮤지컬 ‘팬텀’은 국내 초연인 2015년에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직격탄을 맞아 일부 지방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큰 파고를 겪고도 흥행에 힘입어 2016년, 2018년 공연을 이어갔지만 올해는 개막(3월 1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싸우고 있다. 이전보다 더 거센 파고 앞에서도 유령은 ‘내 고향(Home)’을 부르며 자신의 고향, 무대로 돌아갈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배우와 제작진이 담담한 듯 치열하게 연습 중인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연습실 풍경을 들여다봤다. 25일 낮 12시 반이 되자 앙상블 배우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여느 때 같으면 배우들끼리 근황도 묻고 노래도 하며 목을 풀겠지만 이날은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체온 36.1도입니다. 명부에 서명해주세요”라는 방역 담당 무대팀 직원의 소리만 들릴 뿐 묘한 적막이 감도는 공간. 한 배우는 “절차가 많아졌지만 연습이라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무대팀, 제작팀은 일거리가 크게 늘었다. 출연진이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장비 점검은 기본이고 환기와 사전 방역작업도 마쳐야 한다. 오전, 오후, 저녁 때마다 세 차례 출입자들의 체온을 점검한다. 무대팀 조감독은 매일 출입인원 명부, 체온 점검 여부, 연습실 창문 환기 횟수 등 방역일지를 작성한다. 연습 시작 10분을 앞두고 모두 도착했다. 배우들이 역할별, 파트별로 다닥다닥 모여 앉던 풍경도 바뀌었다. “옆으로 나란히 팔 벌린 간격으로 띄어 앉으세요.” 방역 담당 직원이 말하자 앙상블 배우들이 각자 의자를 들고 간격을 벌린다. 전동선 제작팀 PD는 “2015년 초연 때는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몸에 이상이 있는 일부 배우만 마스크를 썼다. 지금은 아예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신경 쓸 일이 늘었다”고 했다. 오후 1시가 되자 김문정 음악감독의 지휘에 맞춰 조심스레 배우들이 입을 뗐다. 감독의 지시, 서로의 노랫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답답하련만 별다른 방법은 없다. 서로의 연주 소리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뿐. 틈날 때마다 무대팀은 창문을 열고 환기 시스템을 가동한다. 끓어오르는 감정과 흥을 조금은 억누르며 ‘차분한 합창’을 끝냈다. 오후 4시가 되자 주역인 ‘에릭(팬텀)’ ‘크리스틴’ 역 배우들이 도착했다. 같은 시간 ‘필립’ 배역의 배우들은 다른 연습실에 있었다. 연습 내용과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 다르기도 하지만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초연 때부터 ‘에릭(팬텀)’을 맡았던 배우 카이는 “공연예술이 대화와 교류가 필요한 협동 작업임에도 방역수칙을 지키느라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생긴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크리스틴’ 역의 임선혜 배우 역시 초연 멤버다. 그는 해외 일정 때문에 코로나19 이후 자가 격리를 세 번 했다. 그는 “초연 때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라며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함께 울었던 기억이 있다”며 “올해는 빈자리가 더 많겠지만 ‘무너진 세상에 너의 음악이 되리라’란 문구처럼 힘을 주고 싶다”고 했다. 오후 6시가 되자 공식연습이 끝났다. 불이 꺼져도 방역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작성한 방역일지를 제작사, 출연진에게 발송하는 게 최종 업무. 몇 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며 연습실 안팎을 드나들던 강은미 무대감독은 “이젠 이런 일들도 다 익숙해졌다”며 웃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닮은 듯 다른 빛깔을 가진 두 발레리노가 더 높게 비상할 날개를 얻었다. 완벽주의자 허서명(31)과 몽상가 박종석(30)이 올해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허서명이 모든 무대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춤으로 열정적인 오렌지색 에너지를 내뿜는다면, 남다른 태를 뽐내는 박종석은 몽환적이고 짙은 연기로 보랏빛을 떠올리게 하는 무용수다. 향후 발레단을 이끌 두 또래 주역을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이들이 수석무용수 타이틀을 단 건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휴가 중 기사로 승급 소식을 접하고 먼저 느낀 감정은 얼떨떨함이었다. 늦잠을 자느라 발레단 관계자나 지인의 축하 전화도 못 받았다. “그날따라 부재중 전화가 많아 이상했다”던 이들은 “누구 한 명이 승급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립발레단은 매년 한 명만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해는 무대에 설 일이 적었던 텅 빈 한 해였던 터라 기대감도 적었다. 발표가 있기 전 두 사람도 ‘누군가는 되겠거니’ 하는 편안한 마음이었다고.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안정적이고 흐트러짐 없는 연기”를 선보이는 허서명과 “테크닉과 연기력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박종석의 가능성을 보고 승급을 결정했다.선화예중 시절부터 함께 놀고 연습하던 이들은 서로 “형” “종석아”라고 부르는 막역한 사이다. “곧 보는데 굳이 축하는…”이라며 발표 후 축하 인사도 생략했다. 진지한 발레 얘기는 꺼리는 ‘상남자’들. 상대의 장점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부끄럽다” “뭐, 다 닮고 싶다”며 얼버무리다가도 곧 속내를 드러냈다. 허서명은 “종석이는 언제나 늘 주인공 같은 느낌이다. 라인, 분위기가 정말 좋다”고 했다. 박종석은 “안정적 연기, 유연성, 점프력, 떨지 않는 정신력까지 정말 많이 닮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이 걸어온 길과 스타일도 사뭇 다르다. 세종대 졸업 후 2013년 입단한 허서명은 탄탄한 기본기로 최근 몇 년간 주역으로 활약해 왔다. 그는 “주변 사람을 전부 피곤하게 할 정도로 분장, 의상 착용, 연습 시간 등 지켜야 할 개인적 징크스와 루틴이 많다. 다 지켜서라도 항상 완벽한 무대를 꿈꾼다. 그 대신 무대에선 절대 떨지 않는다”고 했다. 2016년 입단한 박종석은 미국 워싱턴발레단, 펜실베이니아발레단과 한국 유니버설발레단(UBC)을 거쳐 2016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는 “외국 발레단을 경험하며 한국 발레단도 전혀 작거나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았다”며 “캐릭터의 마음을 늘 고민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받으려 한다”고 했다. 잠시 쉴 때면 홀로 훌쩍 낚시를 떠나 머릿속을 비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처음 선보였던 ‘해적’ 연습에 한창이다. 3월 개막을 앞두고 땀 냄새 나는 작품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이들은 “몇 달간 ‘경력 단절’ 상태로 쉬다가 오랜만에 무대에 서려니 심장이 뛴다. 국립발레단이라는 브랜드를 위해 더 뛰어오르겠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트랜스젠더 작가로서 농담 같은 일들, 농담이 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말할 수 있어 기쁩니다. 힘든 시기 무대를 만든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 감사한 마음입니다.”(이은용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작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올라가지 못한 공연이 많습니다. 이 상은 지금도 애쓰는 연극인들에게 주는 응원이라 생각합니다.”(이준우 ‘왕서개 이야기’ 연출가)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5일 열린 ‘KT와 함께하는 제57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두 작품상 수상작의 작가와 연출가는 이같이 말했다. 작품상을 받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와 ‘왕서개 이야기’는 각각 트랜스젠더와 전쟁 속 피해자를 소재로 삼아 감각적 연출을 선보인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이들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은 연극계가 더 큰 응원과 창작극 지원을 통해 활력을 되찾기를 소망했다. 이경미 동아연극상 심사위원장(연극평론가)은 “2020년은 연극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거듭 질문했던 해다. 대상을 선정하진 못했으나 극장이 문 닫는 상황에서 무대에 오른 작품 하나하나가 전부 소중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로 연출상을 수상한 구자혜 연출가는 제작진과 논의 끝에 작품상 상금 전액을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구 연출가는 “작품을 올리기까지 극단 스태프, 성북문화재단의 큰 도움이 있었다. 창작진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청소년 성소수자를 응원하는 데 상금 전액을 후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기상을 받은 전중용 배우는 “여러 연극인을 한자리에서 만나니 우리 안에 정말 많은 이야기와 각자의 삶이 있음을 느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연기하며 살 것”이라고 했다. 함께 연기상을 받은 이리 배우는 “누군가는 말해야 할 성소수자 이슈를 꼭 기억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신인연출상은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의 김풍년 연출가, 유인촌신인연기상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의 박수진, ‘팜 Farm’의 권정훈 배우가 각각 수상했다. 희곡상은 ‘왕서개 이야기’의 김도영 작가가 받았으며, 무대예술상은 ‘무릎을 긁었는데…’에서 안무를 맡은 금배섭에게 돌아갔다. 새개념연극상은 장애인을 무대 안으로 끌어들인 신재 연출가, 특별상은 그간 공공극장으로서 좋은 작품을 선보인 남산예술센터에 돌아갔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최용훈 청운대 뮤지컬학과 교수, 전인철 연출가, 김옥란 평론가를 비롯해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제균 동아일보 논설주간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최소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팬데믹 속에서 콘텐츠 업계는 “발상부터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장기간 이어질 거라 보고 생존 전략 차원에서 새로운 콘텐츠의 형태와 전달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콘텐츠 업계의 최대 변수는 ‘비대면’과 ‘모바일 이용량 증가’다. 매년 메가 이벤트인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를 진행했던 CJ ENM은 지난해 말 처음으로 시상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박진감 넘치는 방송 영상을 위해 4축 와이어캠을 비롯한 첨단 촬영 장비를 갖춰야만 했다. 모바일 콘텐츠 소비량이 늘면서 콘텐츠의 길이도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는 짧은 콘텐츠도 중요하고, 동시에 OTT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다소 긴 콘텐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회당 5∼15분 내외로 구성한 쇼트폼(short-form)과 25∼35분 길이로 확장한 미드폼(mid-form) 콘텐츠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제작사 ‘플레이리스트’ ‘와이낫미디어’ 등은 방송사와 협업해 쇼트폼, 미드폼 드라마를 제작 중이다. 관객이 급감한 영화업계는 공간 활용법을 고민하고 있다. 서울극장, 메가박스 등은 소수 관객에게 상영관을 통째로 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소 규모 극장은 개봉작 위주 상영에서 벗어나 특정 주제의 테마관을 확충하는 추세다. 글로벌 협업을 많이 하는 영화 제작사들은 더빙, 녹음, 그래픽 작업 등을 동시에 원격으로 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엔터테인먼트·공연업계는 팬들의 눈앞에 얼마나 실감 나게 이벤트와 공연을 펼쳐낼 수 있느냐에 집중해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첨단 기술을 총동원하고 있다. 자체 라이브 공연 플랫폼 ‘위버스’를 갖춘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네이버의 ‘브이라이브’, 엔씨소프트의 ‘유니버스’ 등은 생생한 영상 전달을 목표로 기술력을 집약했다. 화면 분할 스트리밍, 다수 화면을 동시 시청하는 멀티뷰 등은 연극·뮤지컬계에도 도입됐다. 웹뮤지컬을 제작한 김지원 EMK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무대를 영상화하는 것을 넘어 반대로 영상 안에 뮤지컬을 녹이는 방식으로 기획 단계부터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용자를 많이 확보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 콘텐츠 기업이나 OTT 업계는 다른 업계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모바일에 최적화한 ‘세로형’ ‘소통형’ 콘텐츠가 핵심이다. 틱톡과 카카오M이 선두주자로 꼽힌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뭔가 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이상하게 더 하고 싶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 최근까지 동네 카페에 앉아 맘 편히 음악을 감상하며 커피도 마실 수 없었다.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일수록 여행에 대한 그리움은 짙어졌고, 평범하면서도 소중했던 일상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간다. 코로나19와 버킷리스트의 합성어인 ‘코킷리스트’(코로나 이후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리스트) 만들기가 유행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모두가 여행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을 때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해외 유명 관광지의 사진, 영상과 함께 분위기에 어울리는 선곡 리스트를 업로드하는 ‘유튜브 DJ’ 채널이 최근 인기다. 과거엔 가고픈 여행지나 원하는 장소에 방문해 스마트폰 음악을 재생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 시청자들은 유튜브에서 여행지, 카페 등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노래로 위안을 얻고 있다. 여러 채널에선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팬데믹 정상화 때까지 버틸 힘을 준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구독자 19만 명의 유튜브 채널 ‘리플레이LEEPLAY’는 감각적인 노래 선곡에 여행지의 낭만을 한껏 불러일으키는 사진과 글을 덧붙여 인기몰이 중이다. ‘우리 나중에 피렌체 여행 가면 노을 보면서 같이 듣자’ ‘파리 여행 가면 에펠탑 보면서 같이 듣자’는 식의 구체적인 제목과 풍경사진을 곁들이는 식이다. 운영자는 “다시 보고 싶은 순간과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을 기록한다”고 했다. 댓글 창에는 “코로나 끝나고 다시 갈 곳” “여행 중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추억이 소중하다”는 반응들로 가득하다. 유튜브 특성상 영상을 덧붙이는 방식도 효과적이다. 채널 ‘우든체어 wooden chair’에 올라온 ‘여행 가고 싶은 마음 듬뿍 담은 기분전환용 JAZZ MUSIC’ 영상에는 수십 개의 재즈곡과 유럽의 길거리 풍경이 담겨 있다. 영상 길이는 총 4시간 25분이지만 약 7초짜리 영상만 계속해 반복 재생된다. 어찌 보면 동일한 장면만 4시간 이상 반복하는 지루한 영상일 수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음악과 함께 흐르는 영상을 보며 “현실은 코로나로 집콕ㅠㅠ 그래도 기분 전환”이라고 반응한다. 여행지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직접 방문하기 힘든 장소나 누리기 힘든 분위기도 유튜브 DJ들의 주요 콘텐츠가 된다. 최근까지 방문이 힘들었던 카페는 단골 소재. 구독자 45만 명의 ‘essential;’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트렌디한 카페에서 흐르는 팝송’은 조회수 180만 회를 넘겼다. “테이크 아웃 커피만 한 달째” “카페에서 책 보던 때가 그립다”는 반응이 많다. 해외에선 구독자 742만 명의 힙합 채널 ‘ChilledCow’의 실시간 영상에 약 3만 명이 동시 접속해 채팅으로 팬데믹 속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유튜브 DJ 채널이 전문 음원사이트나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의 기능을 대체하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은 아니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영상, 음악이 무궁무진한 데다 유료 서비스에 가입할 경우 광고 없이도 즐길 수 있어서다. 결국 선곡에 맞는 영상과 이미지를 덧붙여 음악 외적인 분위기도 같이 즐기도록 만든 게 팬데믹 와중에 유튜브 DJ 채널의 강점으로 통했다. 앞으로도 이 채널들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관광 전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가장 원하는 여가활동으로 여행(69.6%)이 꼽혀 코킷리스트 1위를 차지했다. 여행지 영상과 함께 ‘치유음악’을 업로드한 팝피아니스트 이권희 씨는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자유롭게 만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잠시나마 음악으로 치유와 위로의 시간을 주고 싶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마지막 회에 구승준(김정현)이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자 많은 시청자가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곧 이런 상상에 빠졌다. ‘만약 구승준이 죽지 않았다면?’ 팬들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드라마 종영 후 유튜브에는 ‘구승준×서단 커플이 해피엔딩이라면?’과 같은 제목으로 팬들이 맘껏 상상한 내용이 영상으로 올라왔다. 구승준과 서단(서지혜)이 드라이브하는 장면을 편집해 둘이 연인이 되는 결말로 재탄생시킨 것. 드라마나 영화 혹은 배우의 팬들이 다양한 영상을 각색하고 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팬비드(Fanvid·Fan+Video)’가 1020세대의 놀이가 되고 있다. 이들은 여러 작품의 캐릭터를 가져다가 새로운 조합(케미)을 창조한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장만월(이지은)과 ‘도깨비’의 김신(공유)이 친구라거나, ‘스카이캐슬’ 한서진(염정아)과 ‘펜트하우스’ 천서진(김소연)이 싸우는 영상이 그 예다. 기존 영상의 순서나 대사를 편집해 아예 다른 줄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상상플레이’나 ‘페이크드라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팬비드 크리에이터들은 원작 드라마나 영화의 전개가 ‘고구마’처럼 답답하거나 줄거리에 아쉬운 점이 있으면 더 흥미로운 버전을 만들어 제시한다. ‘지선우의 딸이 강예서였다면?’이라는 영상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의 아들 캐릭터가 답답하다는 평이 나오자 드라마 ‘SKY캐슬’에서 직설적인 캐릭터인 강예서(김혜윤)를 대입한 것. 해당 영상에는 “진짜 사이다다” “속이 다 시원하다” “대리만족하고 간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약 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 팬비드 전문 채널의 운영자 이모 씨(28)도 줄거리에 변화를 주는 걸 즐긴다. 이 씨는 2006년에 방영한 드라마 ‘궁’을 보고 팬비드에 빠졌다. 이 씨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나 배경을 접하고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로맨스가 나에게도 일어날까?’ 상상하는 게 재밌었다”며 “좋아하는 드라마로 희소성 있는 나만의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팬비드 영상이 팬들의 일방적 판타지로 끝나지 않고 실제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팬비드로 먼저 탄생했던 지창욱, 김지원 배우 커플은 카카오TV의 새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에서 만났다. 팬비드가 작품 제작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팬비드는 콘텐츠 제작사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자사의 작품을 짜깁기 영상에 포함시켜 홍보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10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리지널 시리즈인 ‘스위트홈’과 ‘좋아하면 울리는’을 조합한 영상을 올렸다. tvN의 유튜브 계정인 ‘Diggle’에서는 ‘디글페이크스튜디오’ 채널을 따로 운영하며 tvN 드라마를 홍보한다. 전문가들은 팬비드가 소비자 주권이 발현되는 콘텐츠의 대표작이라고 설명한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편집물로써 작품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느낌을 세상에 표출하는 것이 현 시대의 언어가 됐다”며 “노래 ‘강남스타일’ ‘깡’의 성공도 ‘원본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노느냐’가 관건이라는 걸 파악한 제작사들이 이를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beborn@donga.com·김기윤 기자}
‘한국의 김치, 모두를 위한 것(Korea’s Kimchi, It’s for everyone).’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47·사진)가 1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미주판과 유럽·아시아판(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에 김치 광고를 게재했다. 최근 중국이 김치를 자국 문화로 왜곡하는 이른바 ‘김치 공정’ 사례가 잇따르자 이에 대항해 한국 김치의 전통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서 교수가 게재한 광고는 ‘한국의 김치,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큰 문구 아래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한국의 대표 음식 문화로 이어져 왔다. 현재 세계인이 사랑하는 발효식품이 됐다. 김치는 한국의 것이지만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이 됐다”는 설명을 달았다. 광고에는 접시 위에 정갈하게 놓인 김치와 지구본 사진이 삽입됐다. 서 교수는 1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김치뿐만 아니라 한복, 판소리 등을 자국 문화라고 우기고 편입하려는 중국의 역사·문화 공정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부터 광고 제작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김치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간결한 팩트를 세계인에게 전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광고비는 한 단체의 후원을 받아 마련했다. 서 교수는 지면 광고에 이어 향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김치 관련 챌린지, 다국어 홍보 영상 등을 배포할 계획이다. 그는 “뉴욕타임스에서 글로벌 리더들에게 김치가 한국의 문화유산임을 알렸다면, 봄부터는 SNS에서 세계인들에게 김치를 홍보할 계획”이라며 “팬데믹 상황에서 면역력 증강에 효과가 있는 김치의 과학적 우수성도 함께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유명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 ‘햄지’는 지난해 11월 업로드한 유튜브 영상에서 김치가 한국 음식이라고 발언했다가 중국 누리꾼들에게 공격을 받은 데 이어 중국 광고업체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또 구독자 약 1400만 명을 보유한 중국인 유튜버 ‘리쯔치’가 9일 김장 영상을 올리며 “중국의 요리법” “중국의 음식”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올해 공연계에는 매년 초 쏟아지던 신작과 해외 초청공연 예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대신 지난해 코로나19로 연기된 공연들과 흥행이 보장된 인기작들이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연장으로 일부 공연이 다시 연기되는 등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공연계는 관객들이 마음껏 환호하던 ‘화양연화’를 꿈꾸며 무대를 다지고 있다. 대극장 뮤지컬 중에는 익숙한 작품이 많다. 최근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3관왕을 차지한 창작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이 5일 막을 올려 2월 28일까지 공연한다. 시조 국악 랩 힙합을 버무려 시대상을 그린 이 작품은 2019년 초연 후 작품성,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두 차례 개막을 연기한 ‘맨 오브 라만차’에는 흥행보증수표 조승우 홍광호 류정한이 출연해 2월 초 관객과 만난다. 박은태 최재림 오만석을 앞세운 ‘젠틀맨스 가이드’ 역시 다음 달 2일 재개를 앞두고 있다. 뮤지컬 ‘캣츠’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22일부터 내한 앙코르 공연을 연다. 25주년을 맞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비롯해 ‘위키드’ ‘시카고’ ‘빌리 엘리어트’ ‘베르나르다 알바’도 무대에 오른다. 이 밖에도 이미 흥행을 검증받은 작품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몬테크리스토’ ‘팬텀’ ‘레베카’ ‘광화문연가’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관객들을 찾아간다. 눈길을 끄는 신작도 드문드문 보인다. CJ ENM과 세종문화회관이 공동 주최하는 ‘비틀쥬스’는 6월 국내 초연한다. 팀 버턴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이 작품은 2019년 4월 브로드웨이 공연 후 처음 해외 라이선스 무대를 갖는다. 토니상 8관왕을 차지한 ‘하데스타운’을 비롯해 ‘포미니츠’ ‘검은 사제들’도 기대작이다. 지난해 취소된 ‘그레이트 코멧’도 상반기 공연을 목표로 날짜를 조율 중이다. 연극도 낯익은 작품이 많다. 장진 감독이 연출한 연극 ‘얼음’이 이달 8일 개막해 5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3월 21일까지 공연한다. 국립극단의 ‘파우스트 엔딩’ ‘SWEAT 스웨트’는 지난해 공연을 하려다 연기한 작품. 각각 2월, 5월에 첫 무대에 오른다. 4월에는 제54회 동아연극상 대상을 거머쥔 고선웅 연출가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국립발레단이 선보일 총 7편의 작품 중 신작은 ‘쥬얼스’다.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를 각 음악에 맞춰 춤으로 표현한다. ‘해적’ ‘말괄량이 길들이기’도 무대에 오른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은 ‘돈키호테’ ‘지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을 선보인다. 국립극장 작품 중에는 신작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20일 개막하는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을 시작으로 창극 ‘나무, 물고기, 달’ ‘귀토’, 무용 ‘새날’ ‘산조’가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공연 개막 시기가 예고돼 있지만 상황이 밝지만은 않다. 객석 띄어 앉기를 할 경우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데다 언제 다시 확산할지 모르는 팬데믹 특성상 라인업을 확정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뮤지컬협회는 “현행 좌석 두 칸 띄어 앉기가 실질적 공연이 어려운 ‘희망 고문’임을 알리고 정책 재고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30년 넘게 무대를 누빈 발레리노의 몸은 구석구석 성한 데가 없지만 열정만큼은 결코 식지 않았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무용원 교수(48)는 전성기 때에 비해 키가 3∼4cm 줄었다. 무대에서 격한 동작을 소화하느라 연골과 인대가 심하게 닳아서다. 그는 지난해를 안식년으로 보냈다. 다른 교수들은 여행도 다니고 편히 쉰다지만 그는 고장 난 몸을 돌보느라 한 해를 썼다. 발레리나를 수시로 들어올리던 어깨는 양치질을 하기 힘들 만큼 망가졌다. 지난해에만 세 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후배 무용수와 제자들도 공연을 멈춰야 했다. 김 교수는 “의도치 않게 2020년은 32년 발레 인생을 돌아볼 기회였다”고 했다. 국내 발레리노 가운데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그를 서울 서초구 한예종 캠퍼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1998년 김지영과 파리국제무용콩쿠르 클래식발레 커플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수상 직후 그는 투박한 사투리로 “한국에도 이런 무용수가 있다는 걸 알려 뿌듯하다”며 기뻐했다. 국립발레단 주역으로 활약하던 그는 2000년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프랑스에서 봤던 ‘섹시하고 세련된’ 발레를 잊지 못했다. 오디션 끝에 그는 동양인 남성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합격했다. 김 교수의 연구실 한쪽 벽면은 각종 상패, 사진으로 가득했다. 그는 “부산 촌놈이 출세했다”며 사진마다 얽힌 일화를 풀어냈다. 프랑스 공연 직후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부인으로부터 100년산 와인을 받았고,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선 23년 동안 수석무용수(에투알)를 지낸 마뉘엘 르그리(현 이탈리아 스칼라극장 발레단장)와 한 무대에 섰다. 그는 “늦은 나이에 엄마 손에 이끌려 죽도록 싫어하던 발레학원에 가던 ‘중학생 김용걸’에게는 모든 게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이때처럼 무대를 마음껏 휘젓고 힘껏 점프하던 때가 좋았다”며 미소 지었다. ‘쫄쫄이 타이츠’가 수줍어 발레에 정을 붙이지 못하던 그는 부산예고에 진학한 뒤 달라졌다. “무대에서 넌 때깔이 난다”는 스승의 칭찬에 힘입어 발레에 빠져들었다. 당시엔 귀했던 해외 무용수들의 영상을 수십 번씩 돌려봤다. 1994년 대학 4학년 땐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탔다. “삼수 끝에 얻은 결실이라 부모님과 같이 미친 듯 기뻐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는 정적으로 보냈지만 올해는 벌써부터 지방 공연장을 바쁘게 오가며 예열 중이라고 했다. 다음 달 4일 광주시립발레단의 ‘발레 살롱 콘서트’, 4월 16∼18일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빛, 침묵 그리고…’ 등 여러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어려움이 많았고 지금도 힘들지만 고난 뒤에는 늘 교훈이 남는다”며 “무대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나중에도 이 시기를 잊지 않겠다. 발레만 보며 진심으로 살았던 김용걸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지금 한국 사회는 정말 공정한가요?” 흡사 연극 연출가나 학자의 입에서 나올 법한 질문이다. 그런데 김남진 안무가(53·사진)는 무용수들의 거친 몸짓으로도 이 무거운 주제를 건드리기로 했다. 줄곧 굵직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져온 그가 신작 ‘LINE·줄’을 선보인다. 작품은 학연, 지연, 혈연 등 여러 가지 줄이 뻗어있는 사회가 과연 공정하게 돌아갈 수 있는지 묻는다. 공연은 15, 16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내 전시관에서 열린다. 막바지 연습 중인 그를 11일 일민미술관에서 만났다. 김 안무가는 “고위층 자녀 특혜 논란 등을 계기로 정부가 외친 ‘공정’이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이 작품을 올릴 적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우린 태어나서 줄을 잡지 않거나, 어딘가 속하지 않으면 곧 도태된다. 이 모습을 몸부림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와 함께 지하철을 탄 일상에서 작품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플랫폼에 길게 늘어선 줄 사이로 한 승객이 새치기를 해 빈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그 장면은 정작 노력한 사람은 보상받지 못하고 누군가 연줄을 이용해 반칙을 일삼는 사회를 닮아 있었다”며 “같이 지켜본 초등학생 자녀에게 뭐라고 가르쳐야 할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작품에는 탯줄, 넥타이, 디아볼로 등 ‘줄’을 뜻하는 다양한 소품이 등장한다. 엄마의 탯줄을 부여잡는 동작을 시작으로, 무용수들이 향하는 곳 어디든 줄이 계속 따라다닌다. 연극인 듯 무용인 듯 작품 안에선 이따금씩 무용수들이 대사도 뱉는다. “제 라인을 잡으세요”라거나 “낙하산” “엄마 찬스” 같은 대사는 쓴웃음을 짓게 한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끊임없이 떠도는 무용수 한 명은 어느 라인에도 속하지 못한 약자”라고 설명했다. 배우 송강호의 동기로 경성대에서 연극을 배운 그는 우연히 들었던 무용 수업에서 춤에 푹 빠졌다. 늦은 나이에 경상대에 입학해 무용을 시작한 그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국립현대무용단, 벨기에 ‘세드라베’ 무용단 등을 거치며 10여 년간 무용수, 안무가로 활약했다. 그가 대표를 맡은 ‘댄스시어터 창’은 유려하면서도 직설적인 무용 언어를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무용이 작품 안에만 갇혀선 안 된다. 누구나 공감할 메시지를 던지는 게 제 예술관”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의 처음과 끝에는 대형 훌라후프처럼 보이는 서커스용 기구 시어휠(cyr wheel)이 등장한다. “선의 양 끝을 이으면 원 모양이 됩니다. 우리 사회도 원처럼 굳이 선이 필요 없는 사회가 올까요?”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너를 위해서라면 내 인생 모든 걸 줄게.” 브로드웨이 4대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여자 주인공 ‘킴’은 1막 후반에서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며 애절하게 노래한다. 여기서 너는 극 중 그의 아들. 1995년 한국인 최초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주인공을 꿰차고 이 넘버를 소화한 이소정(48·사진)에게 인생을 관통하는 너는 ‘노래’다. 중학교 시절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나도 노래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열망 하나로 18세 때 홀로 미국 땅에 건너가 유학하며 고군분투했다. 뮤지컬 주연 배우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 작가, MC, 앨범 제작자, 작사가,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면서도 목이 허락하는 한 노래는 놓지 않았다. 올해로 데뷔 27년 차, 다시 그의 마음속 ‘고향’ 뮤지컬 무대를 떠올렸다. 22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서 이소정이 주인공 ‘알바’ 역할로 팬들과 만난다. 국내 뮤지컬 무대는 2014년 이후 7년 만이다. 최근 정동극장서 만난 그는 “BTS, 봉준호 감독이 상을 받는 시대에 나의 ‘한국인 최초’ 타이틀은 더는 중요치 않다. 비련의 여주인공에서 벗어나 표독스럽고 고독한 어머니로 변신해 부르는 노래를 지켜봐 달라”고 했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스페인 출신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을 각색해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2018년 국내 초연 때 전석 매진 돌풍을 일으키며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초연에 참여한 정영주가 프로듀서이자 이소정과 함께 ‘알바’ 역할을 겸한다. 1930년대 스페인의 농가에서 남편의 8년 상을 치르는 동안 다섯 딸들에게 절제된 삶을 강요하는 어머니 ‘알바’와 딸들의 갈등을 그렸다. 이소정은 그의 배역을 “뭣들 하고 있어” “조용히 못 해?”라는 대사로 대신 설명했다. 그가 뱉는 대사 중 절반 이상이 딸들을 다그치는 말이다. 이소정은 “알바는 딸들과 한 공간에 있어도 고립된 왕따나 마찬가지”라며 “그는 남편으로부터 여성의 역할을 강요당한 피해자인 동시에 이를 딸들에게도 강요하는 가해자”라고 했다. 극 후반부 그는 죽은 남편을 떠올리며 “나는 너의 창녀”라며 분노를 토해낸다. 여성 배우들로 가득 찬 무대에서 정열적 플라멩코로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도 극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극 중 춤은 억압에 저항하는 몸부림이다. 이소정은 “춤이 제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연습하니 노래와 고함이 더 어렵다”며 “동료, 제작진이 ‘더 세게 소리쳐 보라’고 하는 게 연습실 일상”이라며 웃었다. 이번 작품은 그에게 ‘이소정=미스 사이공’이라는 공식을 깰 도전이기도 하다. “제 노래 인생을 비유하자면 마치 첫 직장으로 일류 대기업에 취업한 뒤 뛰쳐나와 개인 스타트업을 차린 것과 비슷해요. 그간 제 앨범과 노래가 두드러진 결과를 내진 않았어도 알바를 포함한 모든 역할이 ‘이소정’을 만들었다 생각해요.” 22일부터 3월 14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극장, 전석 7만 원, 14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스슥 책장 넘기는 소리, 뽀드득 눈 밟는 소리는 묘한 안락함을 준다. 이 소리에 상상력을 한 스푼 더하면 어떨까. 해리포터 마법학교 기숙사에서 책장을 넘기고, 겨울왕국의 ‘엘사’와 함께 걷는 눈길을 상상해본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며 소리를 접한 이들은 “콘셉트 때문에 더 깊게 소리에 중독된다”며 열광한다. ASMR(자율 감각 쾌락반응)가 진화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2010년대부터, 국내에서는 5, 6년 전부터 인기를 끈 ASMR는 청각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콘텐츠 장르다. 기존에는 낙엽 밟는 소리나 빗소리처럼 듣기 좋은 소리만 모아서 반복하는 콘텐츠가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이야기와 결합하며 경계를 넓히고 있다. 주로 팬 층이 두꺼운 인기 영화나 소설에서 소재, 장면, 모티브 등을 가져와 일종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시청자들은 이를 하나의 놀이로 여기며 소리의 마력에 빠져들고 있다. 유튜브 채널 ‘Tigger ASMR’에 올라온 한 콘텐츠는 언뜻 들으면 책장 넘기는 소리, 필기소리만 가득한 일반 도서관의 백색 소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해리포터 호그와트의 자습실을 소리로 구현했다는 설정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채널 운영자는 ‘투명 망토를 쓰고 공부하는 소리’ ‘필치 아저씨 발자국 소리’처럼 소설 속 구체적 장면과 소리를 연결지어 설명했다. 특히 24시간 방송하는 영상에는 실시간 채팅방에서 운영자, 시청자의 소소한 놀이가 벌어진다. 채팅을 통해 시청자들은 기숙사를 선택하고 출석체크도 한다. 운영자는 출석을 확인하며, 규칙을 어기는 이를 ‘아즈카반 감옥’에 수감하기도 한다. 채팅방 자습실에는 1만3000번 이상 꾸준히 출석하며 ‘덕질’을 하는 모범생도 보인다. 누워서 듣기만 하던 ASMR가 시청자가 직접 참여하는 놀이로 확장한 셈이다. 유튜브 채널 ‘낮잠 NZ Ambience’의 운영자는 몰입감을 위해 직접 쓴 짧은 소설을 덧붙였다. 시청자들은 소리를 들으며 이어질 소설 줄거리를 상상해 댓글로 적는다. 운영자는 “원본이 없는 순수 창작물이다. 판타지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편안한 소리를 만든다”고 밝혔다. 일부 시청자들은 “중세 시대 연회장에서 나와 분수대 앞에서 달을 바라보는 장면의 소리를 제작해달라”고 구체적인 요청을 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드라마 ‘스위트홈’, 게임 ‘메이플 스토리’ 등 ASMR의 소재와 장르에는 경계가 없다. 실존 인물을 활용한 ASMR도 가능하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을 모티브로 삼은 한 제작자는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 속 춤추는 정국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방에서 가을밤 펑크음악을 들으며 게임하는 그를 상상했다”고 했다. ASMR 트렌드를 포착한 콘텐츠 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디즈니플러스는 지난해 유명 애니메이션 속 대사와 음악을 소음으로 대체한 영상 시리즈 ‘제니메이션’을 내놨다. 음악업계가 생활잡음, 공업소음 등을 음악에 활용하는 ‘앰비언트 뮤직’을 활발히 제작하면서 음악과 ASMR의 경계도 희미해지고 있다. ASMR 콘텐츠의 성패는 상상력과 결합한 소리가 얼마나 공감을 얻느냐에 달렸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듣기 좋은 소리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 깃든 신선한 콘텐츠를 찾으면서 ASMR도 진화한 것”이라며 “오디오북처럼 듣는 콘텐츠의 성장과 맞물려 ASMR는 취향에 맞게 세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그들은 백인이고, 저절로 뒤따르는 많은 특권들을 누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게 특권이란 걸 자신들은 모르지. 특권을 누리지 않은 날이 그들 삶에는 없었거든. … 그 사람들은 자기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건 마치 물고기한테 물에 관해 묻는 것하고 같은 거야. 물고기는 물에 둘러싸여 있어. … 하지만 물고기는 이렇게 말할걸. ‘물이라뇨? 당신이 말하는 물이란 뭔가요?’ 아주 종종 그게 진실이야. 시각장애인 백인 할머니와 10대 흑인 소년의 차이, 우정, 연대를 그린 소설.}
당신은 미신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병원 엘리베이터에 4층이 없는 걸 보고는 ‘그럴 수 있다’며 넘기고, 새해가 시작되자 신년 운세를 확인한다. 이름을 쓸 때 빨간 펜을 꺼리며, 등산로 주변 돌탑에 ‘소원을 들어 달라’며 돌을 쌓아 올린다. 유튜브에선 미신에 빠져 “지구는 평평하다”고 외치는 이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당신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든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미신에 둘러싸여 산다. 저자는 “우리를 속이는 건 점쟁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며 “우린 지금도 기꺼이 속는다”고 말한다. 사주를 믿지 않지만 직접 1년간 스승 밑에서 사주를 공부했던 저자는 앞서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등을 펴내며 매번 눈길을 끄는 이야기로 독자와 만났다. 이번에는 ‘근거 없는 믿음’인 미신에 천착해 초기 인류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미신의 역사,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미신”이라는 농경문화도 별다른 근거 없이 인류가 ‘풍요’를 믿었기에 지속됐다고 주장한다. 점성술에 빠져 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자신의 손금으로 운명을 점쳐 본 알렉산더 대왕, 심령술에 빠졌던 작가 코넌 도일 등 미신에 심취한 유명인 사례도 흥미롭다. 책의 모든 내용을 역사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재단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저자는 결국 좋든 나쁘든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자신과 인류의 숙명을 일깨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앞에서 보던 무용을 위에서 내려보면 어떤 모습일까. 바닥은 무대 세트가 되고, 무용수의 그림자는 또 하나의 무용수가 된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 무대가 멈춰 선 지금, 코로나19는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마저 바꿔 놨다. 드론을 이용해 피사체를 담아내는 호주 출신의 사진작가 브래드 월스(28·사진)를 서면을 통해 만났다. 사진가로서의 걸어온 길을 그는 한마디로 “완벽한 러브 스토리”라고 표현했다. 어려서부터 ‘사진 덕후’였던 그는 친구의 카메라를 빌려 이것저것 찍고 실험하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제품 디자이너이자 사진가로 4년간 활동하다 2017년 우연히 드론 항공사진을 접했다. 강한 이끌림에 그는 바로 드론을 주문했고, 새 여정이 시작됐다. 야외에서 주로 작업하던 그의 시선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는 “무용수에게 촬영 방식을 이해시키는 게 꽤 어려웠지만 노력 끝에 드론과 교감하는 무용수의 모습과 그림자까지 담았다”고 했다. 이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빈 공간과 여백을 강조하고 사진가(드론)와 피사체의 ‘거리 두기’까지 가능한 예술은 이 시대에 적합하다”며 웃었다. 지난해 ‘2020 드론 사진 콘테스트’에서 테니스 선수를 촬영한 사진으로 수상한 그는 “각도, 방향, 관점 등 모든 것에 호기심 가득한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방역당국이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를 17일까지 2주 연장하면서 공연 중단 기간을 연장하거나 아예 조기 폐막을 결정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앞서 약 한 달간 공연을 중단했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고스트’ 등의 제작사 측은 4일 중단 기간을 연장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해 11월부터 공연한 ‘몬테크리스토’의 EMK뮤지컬컴퍼니는 공연 중단 기간을 17일까지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고스트’의 신시컴퍼니 역시 지난해 12월 5일부터 멈춘 공연 중단을 2주 더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시 중단, 재개를 반복하며 관객들께 지속적 혼란과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호프’ ‘젠틀맨스 가이드’ 등의 제작사 측 역시 중단 연장 결정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막 이후 호평받았던 프랑스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 ‘노트르담 드 파리’는 당초 17일까지 계획한 공연을 2주 앞당겨 최종 폐막했다. 그간 이 작품은 2.5단계를 적용한 ‘두 칸 띄어 앉기’ 정책에 따라 객석 좌석의 30%만 판매하면서도 공연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기간 연장 방침이 결정되면서 더 이상 적자를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작품 관계자는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공연을 이어왔으나 2.5단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적자를 감당할 수가 없어 부득이하게 공연을 종결했다”고 설명했다. 거리 두기 2.5단계 방역지침이 공연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객석의 30%가량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공연 수익을 기대하기는커녕 출연료, 대관료, 관리비, 인건비 등을 충당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는 유례없는 위기에 처한 공연계의 ‘두 칸 띄어 앉기’ 지침을 재고해 달라는 호소문을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했다. 신춘수 추진위원장은 “2.5단계 정부 방침 상황 속에서 공연을 강행하는 부담이 크고 정책 변동으로 인한 좌석 운용이 달라짐에 따라 막대한 차질이 발생한다”며 “좌석 두 칸 띄어 앉기 조치는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별생각 없이 유튜브에 접속한다. 평소 안 보던 소재의 콘텐츠가 추천 영상으로 뜬다. ‘어, 이게 뭐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일단 클릭해 본다. 영상을 좀 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해진다. 댓글 창을 연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늘도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이 영상으로 끌고 왔다.” “무엇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나.” 사용자에게 최적화한 ‘취향 저격’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용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1020세대들은 알고리즘을 따라 노출되는 광고나 편향적 콘텐츠에서 벗어날 방법을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피해 가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알고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이다. 포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상의 알고리즘은 이용 기록, 개인 정보를 토대로 맞춤형 콘텐츠와 광고를 노출하는 시스템이자 규칙 모음이다. 유튜브, 넷플릭스를 즐겨 보는 대학생 임정민 씨(27)는 매번 시청 기록, 검색 기록을 삭제한다. 알고리즘이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지우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봤던 콘텐츠나 비슷한 내용만 추천하는 알고리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물 안에 갇히는 듯한 느낌이 싫다”고 했다. 기록 삭제마저 번거롭다는 이정현 씨(21)는 아예 로그아웃 상태에서만 유튜브를 이용한다. 그는 “섬네일 형상만 비슷하거나 제가 본 영상 제목과 몇몇 단어가 겹친다는 이유로 관련 없는 영상이 자주 보인다”며 “뜬금없는 추천 영상을 모은 ‘#유튜브알고리즘’ 게시물은 유머 코드가 될 정도”라고 했다. 넷플릭스의 경우 메인 화면에서 노출하는 인기 콘텐츠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하는 장르를 직접 검색하는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특정 장르가 플랫폼에서 갖는 고유 ‘시크릿 코드’를 PC 주소창 마지막 부분에 직접 타이핑해 입력하는 것. 괴물 영화는 ‘947’, 범죄 다큐는 ‘9875’라는 코드를 갖는다. 임 씨는 “기존 시청 패턴에서 벗어나 새 장르를 보기에 유용하다”고 했다. 알고리즘을 역이용하기도 한다. 계정을 여러 가지로 구분한 뒤 상황에 따라 필요한 계정에 접속하는 방식이다. 유튜브용 계정을 학습, 게임, 음악 듣기용 등으로 나눠 관리한다는 한 고등학생은 “공부할 때 사용하는 부계정은 뜬금없는 광고나 콘텐츠가 적어 유용하다”고 했다. 이마저도 번거로울 땐 추천 영상 목록이나 광고를 아예 노출하지 않도록 작동하는 별도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도 이들이 공유하는 ‘꿀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자가 추천 알고리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구글, 넷플릭스 등 거대 기업들이 영업비밀인 알고리즘의 구체적 원리를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 개발팀에서 근무한 인공지능학자 기욤 샤슬로는 한 인터뷰에서 “알고리즘의 최우선 순위는 시청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과 저널리즘’ 보고서에서는 약 3만 개 영상을 분석해 특정 패턴을 파악했다. 오세욱 선임연구위원은 “유튜브 알고리즘은 전통적 언론사, 제목이 길거나 주요 키워드가 많은 콘텐츠, 생중계 영상에 대한 선호가 있었다”면서도 “어떤 데이터를 중요하게 보는지는 여전히 공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년 가까이 계속된 팬데믹은 일상의 모든 걸 바꿨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우린 이 질긴 싸움이 여전히 낯설다. 더구나 바이러스의 정체를 거의 파악하지 못했던 초창기, 각국 정부 사회 개인은 바이러스와 맞닥뜨린 모든 상황을 알아서 해결하고 생존해야만 했다. 혼돈스러운 당시 실상을 보여준 에세이 두 권이 출간됐다.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미지의 바이러스와 싸우던 우리의 서툰 모습이 담겼다.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에 이 거친 기록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人不傳人 可控可防(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으며,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 전염병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퍼지던 2019년 12월 중국의 우한, 이 여덟 개의 글자가 당국 지침으로 내려졌다. 의문의 폐렴 환자가 속출하던 중에도 당국은 대중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인지, 뭔가 은폐하려는 의도인지 이 입장을 한동안 고수했다. 하지만 당시 우한에 머물며 사태를 지켜본 중국 작가 팡팡(方方·65·사진)은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적셨다”고 털어놓는다.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됐던 중국 우한의 참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록한 팡팡 작가의 일기가 출간됐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저자는 하층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며 중국 신사실주의 대표작가로 불리던 인물. 1월 말 그가 거주하던 우한이 봉쇄되자 SNS에 도시에 펼쳐진 풍경을 신랄하게 적기 시작했다. 국수주의적 중국인 누리꾼의 비난과 정부 검열은 그가 감내할 몫이었다. “이 비극은 인재(人災)”라며 치부를 세계에 알리는 그가 곱게 비칠 리 없었다. ‘매국노’ ‘반역자’라는 오명이 붙었지만 그를 응원하는 이들은 그를 ‘중국의 산소호흡기’라 불렀다. 그를 지지한 중국 지식인은 정부 조사를 받고, 그의 SNS 계정이 차단·삭제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3월 24일까지 봉쇄 62일 차의 기록을 이어갔다.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공포감과 고통에 휩싸인 시민들의 모습이다. 마스크가 없어 사용한 마스크를 빨아 다리미로 다려 쓰고, 혼자 남겨진 아이는 굶어 죽었다. 비닐에 싸인 시신들이 매일 트럭에 실렸고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에는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병상이 부족하자 암 환자인 딸을 우한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한 어머니의 절규도 눈물을 적시게 한다. 한국에서 ‘우한’은 곧 ‘폐렴’ ‘감염병의 온상’이라는 원망스럽고 혐오적 시각이 가득한 곳. 하지만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있었음을 일깨운다. ‘부산 47번’ 확진자로 알려진 박현 부산대 기계공학과 겸임교수(48)는 확진 이후 230일간의 기록을 남겼다. 그가 ‘부산47’이라는 SNS 페이지를 통해 세상에 꺼내 놓은 투병기와 후유증 극복기는 환자, 시민들에게 큰 울림과 용기를 줬다. 저자는 방역에 밀려 놓치고 있는 환자의 후유증 관리에 대해 깊게 논하며 방역 당국을 질타한다. 바이러스를 이겨낸 뒤에도 여전히 호흡곤란, 두통, 불면증으로 신음한 그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외신 보도, 해외 연구 결과를 직접 찾아 적었다. 그는 “체계적인 후유증 치료를 미뤄 만성질환 환자가 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며 “코로나19에 정말 완치가 있는지” 되묻는다. 매일 수십 번씩 오가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질곡에도 그는 끝내 희망을 얘기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머릿속으로 그린 끔찍한 이야기가 더 끔찍한 영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면 어떤 기분일까.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돼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처 장르물(괴물이 등장하는 작품) ‘스위트홈’의 원작 웹툰 스토리작가 김칸비(본명 김민태·38)는 “괴물들이 영상으로 잘 구현될지 걱정됐다. 마침내 탄생한 드라마 속 괴물들은 제 기준에서 황송할 정도로 생생하고 훌륭하다”며 기뻐했다. 김 작가가 구상한 네이버웹툰 ‘스위트홈’의 서사는 빼어난 특수효과에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더해져 국산 크리처 장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원래 오피스텔 내 ‘식인(食人) 파티’를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했지만, 소재의 연령상 제한 때문에 설정을 바꿔야 했다”며 “바이러스와 인류 멸망이라는 클리셰(예술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에 충실하면서도 군데군데 이를 깨는 재미 요소를 배치했다”는 창작 배경을 밝혔다. 이어 “원작과 드라마의 결말이 전혀 다른 점도 또 다른 흥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현재 웹툰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고정 팬 층을 보유한 인기 작가 중 하나다. 최근까지 네이버웹툰 ‘돼지우리’와 ‘스위트홈’을 동시 집필했으며, 이전에 집필한 ‘후레자식’ ‘언노운 코드’ ‘멜로 홀릭’ 등도 영화, 게임, 드라마 등으로 제작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스위트홈’은 최근 ‘2020 오늘의 우리만화’로 꼽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도 수상한 작품. 어딘가 괴기스러운 ‘김칸비표’ 세계관은 독자를 빨아들이는 묘한 마력이 있다. 한국에서 그간 크리처 장르는 철저히 비주류로 인식돼 왔다. 이 장르가 웹툰을 넘어 드라마로 제작된 건 처음이다. 김 작가는 이에 “운 좋게 얻어 걸렸다. 저는 뭔가 트렌디한 작품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드라마 제작자와의 회의에서도 그가 뱉은 첫마디는 “이걸 왜?”였다. “아포칼립스(인류 멸망) 소재 웹툰은 이미 많았거든요. 다만 괴물이 냉철하고 차갑게 파괴하기만 하는 모습들이 아쉬웠어요. 인간 욕망이 투영된 괴물들을 통해 어딘가 뜨거운 괴물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김 작가는 드라마 출연 배우들로 인한 행운도 있다고 했다. “촬영 시작 때는 신인이던 배우들이 지금은 스타가 됐죠. 그동안 ‘삽질’ 많이 했으니 신이 ‘고생했다’며 제게 주는 동정의 선물이랄까요.” 한때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그는 현재 전업 스토리 작가로 활동한다. 3, 4일 안에 큰 얼개를 짜고 그림 작가와 디테일을 채운다. 그는 “황영찬 작가의 친근한 그림체가 ‘스위트홈’ 인기에 한몫했다”고 했다. 그는 ‘스위트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주인공 라이벌인 ‘이은혁’과 괴물에게 유일하게 맞서는 일반인 ‘편상욱’ 등을 꼽았다. “괴물들은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스릴러 작가지만 전 공포물을 싫어하고 겁도 많아요. 특히 동양 귀신은 너무 무서워요.”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아이들의 코로나19 우울을 달랠 ‘2021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가 내년 1월 6일부터 24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펼쳐진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는 ‘내가 너와 함께할게(I‘m still with you)’를 슬로건으로 정하고 대표 공연 9편과 뉴챌린지 공연 4편을 엄선했다고 밝혔다. 대표 공연 9편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한다. ‘수상한 외갓집’(1월 6, 7일)을 시작으로 ‘덤블링의 고수’(1월 6, 7일), ‘벨벳 토끼’(1월 9, 10일), ‘탄생의 신, 삼신’(1월 9, 10일), ‘여우와 돌고래’(1월 13, 14일) 등이 차례로 관객과 만난다. 오프라인 공연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종로 아이들극장에서, 온라인 공연은 네이버TV 후원 라이브에서 볼 수 있다. 뉴챌린지 공연 4편은 1월 13일부터 23일까지 오프라인(종로 아이들극장)으로 진행한다. 그림자 연희극 ‘나는 기와입니다’(1월 13, 14일), 인형극 ‘옛날 어느 섬에서’(1월 15, 16일) 등 4편을 공연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