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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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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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2~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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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수대통 수복강녕… 설맞이, 세화와 함께

    요즘은 거의 잊혀졌지만 선조들은 ‘세화(歲畵) 나누기’를 중요한 설맞이 행사로 치렀다. 세화란 설날 당일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는다는 뜻에서 왕과 신하들이 주고받았던 그림을 일컫는다. 주로 판화로 찍어서 돌렸지만 드물게는 회화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도화서에서 수성(壽星·동양 별자리 28수 중 남극노인성)에 사는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그날의 액운을 물리치는 수호신)을 그린 세화를 임금에게 바치곤 했다. 도교에서 수성은 목숨을 관장하는 별이라 장수를 기원하며, 직일신장은 운세가 길하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후에는 민간으로도 이 풍습이 퍼져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담은 세화가 인기를 끌었다. 강원 원주시 치악산에 있는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은 설을 앞둔 6일부터 이러한 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아시아 세화 판화의 세계’를 선보인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의 18∼20세기 세화와 인쇄목판 100여 점을 전시한다. 한국 전시품 가운데는 조선 중후기로 추정되는 작품 ‘부귀다남(富貴多男) 수복강녕(壽福康寧)’이 눈에 띈다. 모자이크처럼 24개의 작은 그림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꽃과 동물 그림 사이에 장수와 행운을 비는 8자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한선학 관장은 “비싼 돌배나무나 산벚나무를 주로 쓰는 상류층 목판화와 달리 이 작품은 소나무 목판으로 만든 것”이라며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해학이 살아있는 민초들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1923년 비단에 찍은 천도교 판화는 한국에선 보기 드문 ‘가채판화’란 점에서 가치가 크다. 가채판화란 목판으로 밑그림 선을 찍고 붓으로 색을 칠하는 방식을 이른다. 정교한 맛은 떨어지지만 목판화 전통기법이 변화하던 과도기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중국 청(淸)대의 유명화가인 고동헌(高桐軒)과 왕소전(王紹田)의 세화도 만날 수 있다. 중국은 세화를 ‘연화(年畵)’라 부르는데 지금도 새해가 되면 선물용으로 많이 주고받는다. 일본 작품 가운데는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만든 화투 원판을 담은 목판이 흥미롭다. 6월 30일까지. 2000∼3000원. 033-761-7885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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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가진 게 없어도 꿈 잃지 마세요”

    오가와 히토시 일본 도쿠야마(德山) 공업고등전문학교 교수는 참 독특한 인물이다. 종합상사 직원, 시청 공무원으로 살다 어느 날 문득 철학에 빠져들었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의젓한 교수가 됐는데, 뜬금없이 시내 상점가에 카페를 차렸단다. 이름하여 ‘철학 카페’. 점집은 아니다. ‘시민과 함께 철학을 갖고 놀며 소통하는’ 장소란다. 최근 펴낸 ‘인생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더난출판)도 통통 튀는 개성이 빼곡하다. 부부 사이가 나쁠 땐 소크라테스 철학, 이직을 고민한다면 자크 데리다의 철학이 도움이 된단다. 오호, 내용은 몰라도 왠지 구미가 당겼다. e메일로 오가와 교수에게 인생 상담을 받아봤다. ―이력이 신선하다. 종합상사 직원에서 철학교수로의 변신이라…. “그뿐만이 아니다. 20대엔 5년 정도 ‘프리터’로 지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이삿짐센터, 이벤트업체… 아, 설거지 도우미도 했다. 이런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철학이란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니까. 직접적인 계기는 시청 공무원 시절 찾아왔다. 당시 여러 일을 겪으며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먼저 사물의 본질을 되짚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게 아닐까. 그 해답이 철학이었다.” ―그래서인가. 책이 무슨 인생상담서 같더라. 철학 카페도 운영하고…. “그것도 시청 공무원 시절 영향이 컸다. 지역사회활동을 했던 경험을 살려보고 싶었다. 말이 카페지, 일종의 주민쉼터라고나 할까. 거기서 수많은 사람과 얘기를 나눴다. 대화야말로 철학의 요체니까. 뭣보다 힘든 일을 함께 고민하는 게 좋았다. 철학자도 더불어 사는 존재 아닌가.” ―그런 뜻에서 한국 독자에게도 상담을 부탁한다. 요즘 ‘3무(無) 세대’란 말이 유행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와 결혼, 집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위로가 될 만한 철학이 있을까. “에른스트 블로흐라는 독일 철학자가 있다. 그는 ‘희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뒤집어보면, 존재하지 않기에 꿈꿀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도 경기침체로 젊은이들이 힘들어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삶이란 없다. 가진 게 없어도 희망은 품을 수 있는 것, 그게 인생이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안타깝다. 삶이 막다른 곳에 몰렸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자살을 떠올린다.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고 강조했다. 실존이 현실적 존재라면, 본질이란 운명을 뜻한다. 운명보다 존재 자체가 우선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가끔 인생이 자기 것이라는 걸 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인생은 없다. 삶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성범죄가 증가해 많은 여성과 부모가 불안해한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자로 키워질 뿐이다. 이것이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사상의 핵심이다. 여성이란 위치를 만드는 건 바로 사회다. 여성이 불안을 안고 산다면 그건 전적으로 사회의 책임이다. 간단하게 말하겠다. 잘못됐다면 바꿔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한국은 지난해 격렬한 대선을 치렀다. 갈수록 보수-진보의 골도 깊어지는 양상이다.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란 자기 의견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 서로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다. 중요한 건 타인의 얘기를 듣는 자세다. 뭔가 이루고 싶다면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실천해야 한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이를 잘 설명했다. 우리 역시 이런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알아가고 있지 않나.”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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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첨단화될수록 문명붕괴의 위험도 점점 커진다

    공포영화나 호러소설을 좋아하는가.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지만, 진짜 섬뜩한 건 가해자가 ‘사람’일 때다. 귀신이나 괴물도 무섭긴 하다. 하지만 악을 저지르는 인간은 실제로 존재한다. 한국도 연쇄살인마나 사이코패스가 이미 여러 차례 등장하지 않았나.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 주는 공포는 가상세계와는 격이 다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 공포에 대한 담론을 다뤘다. 저자는 21세기 인류가 지금 당장이라도 ‘예상치를 벗어나 문명을 붕괴시킬’, X이벤트에 맞닥뜨릴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등에서 응용수학분야 교수를 지냈던 경력을 바탕으로, 지구를 ‘복잡성 이론’으로 진단했을 때 언제 대참사가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는 주장이다. 수학 공식만 봐도 머리가 아프니 이론적 근거는 내버려두자. 여하튼 책의 요지는 세상이 한계에 이를 정도로 복잡해졌다는 거다. 이 때문에 여기저기 틈새가 벌어져 무너져 내릴 확률이 엄청 높다는 얘기다. 자칫 대비가 허술했다간 인류가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으름장을 놓는다. 도대체 왜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위험은 커지는 걸까. 요즘 가장 민감한 이슈인 ‘난방’을 예로 들어보자. 조선시대엔 문제가 생기면 비교적 손쉽게 ‘자체 해결’이 가능했다. 땔감이 떨어지면 나무를 해오면 된다. 아궁이가 시원찮아도 집안 장정이 대충 손볼 수 있다. 요즘은 어떤가. 세상이 좋아져 벽에 달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방안이 따스해진다. 하지만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전문가의 도움 없이 해결할 이가 몇이나 될까. 기술의 발달이 삶을 편리하게 만든 건 맞다. 그러나 그만큼 의외의 난관이 벌어졌을 때 대응하기가 훨씬 까다로워졌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재난에 점점 취약해지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X이벤트는 여러 갈래에서 터질 수 있다. 인터넷 중단과 식량 위기, 석유 단절이나 전염병, 금융의 몰락까지…. 문제는 파괴력이다. 원인이 자연재해인지 인간의 실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인간이 쌓아올린 현대문명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이 터지면 해결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2013년 현재 가운데 핵폭발로 인한 피해, 어느 쪽이 크겠나. 상상도 하기 싫은 가정이다. 책이 주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얼른 정신 차리고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현재의 과학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할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그런데 영 뒷맛이 씁쓸하다. 책에 따르면 X이벤트란 인류의 예상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사건이다. 예측 불가능한 일에 대한 예방책이란 게 말이 되는 소릴까. 말꼬리 잡지 말라고? 그래도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질문이지 않나. “인간은 훨씬 더 심한 역경을 견뎠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위의 장님 문고리 잡기 식 결론은 이제 좀 그만 듣고 싶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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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王城 풍납토성에 쓰레기 수천 t 불법매립

    국가사적 제11호인 백제의 왕성(王城) 풍납토성 발굴 터에 수천 t의 쓰레기가 불법으로 파묻혀 있는 것으로 밝혀져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자리한 풍납토성은 한성백제(기원전 18년∼서기 475년)의 왕성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대형 판축(板築)토성. 수도 서울의 역사를 500년에서 2000년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중요 유적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돼 국가의 보호를 받아 왔다. 그동안 풍납토성에서 생활쓰레기 더미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대규모 폐기물 불법 매립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풍납토성에서 매립 쓰레기가 발견된 것은 지난해 4월.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토성의 남쪽 지역을 발굴하던 중 약 8400m²(약 2540평) 넓이로 지하 3m 아래에까지 다량의 폐기물이 파묻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이 워낙 광범위해 매립된 쓰레기양이 수천 t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 등은 장기간에 걸쳐 저질러진 중대 사안임을 감안해 지난해 10월경 관할 경찰서인 송파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화재청과 송파구청 등에 따르면 이 쓰레기는 2006년에 매립됐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당시 송파구가 한 폐기물 처리 업체에 인근 주택·산업폐기물 처리를 맡긴 적이 있는데, 이 폐기물을 풍납토성 터에 묻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유적의 훼손이다. 쓰레기가 매립된 장소는 토성의 남쪽 해자(垓子·성 주위에 둘러 판 못)에 해당하는 곳으로 유물은 물론이고 당시의 자연환경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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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개월 제거하다 끝 안보여 중도포기… 훼손된 백제 유적은 어떻게 복구하나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 길 건너 현대아산병원이 보이는 남쪽 토성 터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며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드문드문 지저분한 쓰레기더미가 보이긴 했지만 땅은 평지처럼 다져져 있을 뿐 별 다른 특색이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현장에 동행한 서울 송파구 직원은 한숨을 푹 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끝까지 평평하게 깔려 있는 게 다 쓰레기라는 거 아닙니까. 사람 키 두 배가 넘게 폐기물이 잔뜩 깔려 있어서 손을 대려야 댈 수가 없는 지경이에요.” 관계자들에 따르면 풍납토성의 쓰레기더미가 드러난 것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4월 해자(垓子·성 주위에 둘러 판 못) 지역 발굴에 착수하면서였다. 송파구의 위탁 의뢰를 받은 연구소가 현장을 파면 팔수록 쓰레기가 나왔다. 고철자재는 물론이고 썩어 문드러진 폐기물까지 나와 초기에는 악취로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문화재청과 송파구는 발굴을 중단하고 대책회의 끝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제는 폐기물이 정확히 얼마나 묻혀 있는지 현재까지도 가늠이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구소가 2개월가량 제거작업에 매달렸지만 끝이 보이지 않아 중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쓰레기를 파서 쌓았더니 남산만큼 높게 올라갔다”(김영원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지하 3m까지 모두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이성준 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증언으로 미뤄볼 때 매립된 폐기물은 수천 t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국가사적에 쓰레기를 묻을 수 있었는지도 미스터리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풍납토성은 1997년 백제토기를 발굴한 이래 지속적으로 중요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문화재청 등은 2006년 폐기물처리업체가 저지른 범행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토성은 여러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었다.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일 가능성을 처음 발표한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연구조사를 위해 매일같이 찾아갔는데 낌새도 못 챘다”며 “이미 일반인에게도 중요 유적으로 널리 알려졌던 시기인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더욱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수사를 담당하는 송파경찰서는 말을 아꼈다. 지능범죄수사팀 관계자는 “사안이 엄중한 만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범인 검거도 중요하지만 이후 대처는 더욱 민감한 사안이다. 쓰레기가 매립된 해자 지역은 물속에 잠긴 유물도 상당하고, 인골이나 곡식 흔적 등 다양한 연구자료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신라시대 연못 터였던 경주 안압지 유적 발굴 땐 유물이 대거 쏟아져 신라사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형구 교수는 “풍납토성 해자도 백제 한성시대 초기 역사를 살펴보는 데 핵심적인 장소”라며 “만약 파낸 흙을 어디로 갖다버렸다면 거기도 다시 뒤져야 할 정도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강수지 인턴기자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 201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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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내려오니 해가 올라오네… 한라, 못잊을 그대

    제주특별자치도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제주 국제사진공모전에서 현홍영 씨의 ‘동이 트는 한라산’이 대상을 차지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개관과 세계7대자연경관 인증을 기념해 해마다 국내외 사진작가 및 애호가들이 찍은 작품들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이번 공모전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뿐 아니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칠머리당 영등굿’과 해녀들의 일상을 공모 소재로 삼았다. 지난해 11월 2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9개국에서 787명의 작품 2916점이 접수돼 열띤 경쟁을 벌였다. 대상을 받은 ‘동이 트는 한라산’은 한라산 윗세오름 전망대에서 촬영한 전경으로 눈 덮인 정상 위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인상적이다. 심사위원인 우메즈 데이조 전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일본사진협회 명예회원)는 “겨울밤 한라산을 수놓은 별의 잔상이 제주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주는 듯했다”고 평했다. 올해는 외국 참가자들의 선전이 눈에 띈다. 전체 입상자 37명 중에서 동상을 받은 ‘Stars over tea fields(차밭 위의 별들)’의 존 스튜어트 씨(캐나다)를 필두로 영국 스페인 싱가포르까지 해외 4개국 7명의 사진작가가 포함돼 명실상부한 세계적 사진공모전으로서 위상을 갖추게 됐다.○ 입상고승찬 공정욱 김대성 김미경 김봉규 김영태 남인근 박보람 박해섭 오도연 우태하 이금연 이상헌 이창훈 이치용 장택호 정희준 조동철 조한희 최동혁 최민수 최종석 하용단 현지윤 더글러스 맥도널드(캐나다) 후안 케인(스페인) 멜러니 머리(캐나다) 패트릭 펜턴(캐나다) 사이먼 해서웨이(영국) 입 와이 킷 찰스(싱가포르)○ 심사위원우메즈 데이조(전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이경률(중앙대 사진학과 교수)권기갑(사진작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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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관람객이 가장 많이 찾은 역사문화공간은?

    국내에서 가장 관람객이 많은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궁궐은 ‘경복궁’, 사찰은 설악산에 있는 ‘신흥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경복궁은 한 해 동안 약 452만 명이 찾아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박물관 순위에서는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박물관 현황’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약 324만 명이 방문했다. 2위에 오른 국립민속박물관보다 88만 명가량 많았다. 지난해 4월 영국의 박물관 전문 월간지인 ‘아트 뉴스페이퍼’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에서도 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1위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약 880만 명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으로 유명한 파리 오르세 미술관(약 315만 명·10위)보다 높은 순위였다.8위에 오른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등 하위권의 분전이 눈에 띈다. 전북 김제의 국내 최대 농경문화유적지인 벽골제(碧骨堤·사적 제111호)가 중심이 된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은 ‘김제지평선축제’가 열릴 정도로 탁 트인 전경이 좋고 문화행사가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민속자료관은 민속마을과 자연휴양림이 모여 있고, 경북 포항에 있는 국립등대박물관은 일출 명소인 호미곶 등대와 연계돼 관람객들의 발길이 잦았다.궁궐 가운데는 경복궁이 압도적인 1위였다. 2위 창덕궁과는 300만 명이 넘는 격차를 보였다. 그나마 창덕궁은 100만 명이 넘었지만. 덕수궁(약 98만 명)과 창경궁(약 60만 명)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왕릉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성종과 정현왕후의 묘가 있는 선릉이 1위를 올랐으며, 경기 고양시 서오릉이 그 뒤를 따랐다.사찰은 의외로 강원 속초시에 있는 설악산 신흥사가 불국사를 제치고 가장 많은 방문객이 다녀갔다. 사찰을 감싼 절경이 워낙 빼어난 데다 최근 등산 인구가 크게 증가한 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경주 불국사는 약 5만 명 차이로 1위를 내줬고, 양양 낙산사가 3위를 차지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강수지 인턴기자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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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형문화재 인증대상자… 황수로씨 등 5명 지정

    왕실 연희나 의례를 위해 비단과 모시로 가화(假花)를 만드는 궁중채화(宮中綵華)가 새로운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29일 황수로(본명 황을순) 한국궁중채화연구소장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하고 인증서를 전달했다. 황 소장이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됨에 따라 궁중채화도 새로운 무형문화재 분야(제124호)로 추가됐다. 궁중채화는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선보여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제16호 거문고산조’ 부문에서는 김영재 이보현 보유자가 함께 뽑혔다. 부산 수영동에서 전해지는 민속탈놀이 ‘제43호 수영야류’ 태덕수 명예보유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의식인 ‘제85호 석전대제’에서는 권오흥 명예보유자도 추가 지정됐다.}

    • 201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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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서-화 능한 삼절…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조선의 자유인’ 표암 강세황 탄신 300주년

    《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1713∼1791).올해 문화계에선 강세황 탄신 300주년을 맞아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6월경 ‘예술로 꽃피운 조선 지식인의 삶’이란 부제 아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표암의 묘(충북 문화재자료 83호)가 있는 충북 진천군도 상반기 그의 문화적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다. 대중에게 표암은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로 불렸다거나 단원 김홍도의 정신적 스승이었다는 정도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표암은 당대 문단과 화단에서 ‘예원(藝苑·예술계)의 총수’라 불렸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수많은 지식인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열린 사고의 소유자”(민길홍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였던 표암의 삶을 들여다봤다. 》○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조선의 ‘르네상스인’ 표암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예조참판을 지낸 명문가 자제였지만, 소탈하고 겸손하며 세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중인 출신인 단원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를 이끌어준 것도 이런 성정이 작용한 결과였다. ‘진경산수’로 당대를 호령하던 겸재 정선보다 당시엔 겸재의 문하생이던 현재 심사정을 더 극찬했던 일화에서도 세간의 평가에 초연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정파에 이끌려 재능 있는 인사들과의 교류를 놓치는 법도 없었다. 소북파에 속하면서도 남인 가문인 성호 이익과 친분이 두터웠다. 소론 계열의 월암 이광려와도 수시로 시사를 나눴다. 학문에 뜻을 두고 장서가로 유명했던 처남 유경종과 함께 안산에 머물던 시절에도, 남인 계열이 대다수인 문인들과 ‘안산 15학사’를 이뤄 다양한 문예활동을 벌였다. 사대부 관습에 연연하지 않고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 역시 솔직하고 지극했다. 부인 유씨와 유난히 각별해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쓸쓸한 산사에 벌써 두 달이 갔는데 어찌하여 한 자 소식도 없는가”라며 애달파 했다. 아들이 출사해 임지로 떠나게 되자 “이별을 말하려 하니 눈물 먼저 떨어지고…몇 년 떨어져 있어도 두 곳이 다들 평안하기만 바란다”는 시를 지었다. 평소 문인이나 화가와 만날 때도 언제나 아들들을 대동해 함께 교류하기를 즐겼다. 뭣보다 칠순에 그린 자화상(보물 제590호)은 그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61세에 임금의 뜻을 받들어 관직에 진출한 표암은 스스로를 야인으로 여기며 언제나 초야로 돌아가길 꿈꿨다. 예법에도 맞지 않는 흰 도포에 관모 차림은 바로 이런 표암의 심경을 대변한다. 당시 일반적이던 평면초상화와 달리 얼굴과 옷자락에 입체감을 살린 화풍도 서양화법을 과감하게 받아들인 그의 열린 자세에서 비롯됐다.○ 여덟 살에 시를 지은 천재…글씨는 청 건륭제도 탄복 18세기 예술계의 ‘크로스로드’(교차로)라 할 만한 표암의 인적 스펙트럼은 예원의 총수란 별칭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그의 예술적 향취가 다소 가려진 부분도 적지 않다. 시문집 ‘표암유고’에 따르면 표암은 여덟 살에 이미 시를 지을 만큼 재기가 출중했다. 숙종이 승하했던 1720년, 아버지가 흰 비둘기 상이 조각된 지팡이를 들고 나서자 즉석에서 시를 읊었다. “지팡이에 앉은 한 마리 새가 날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네. 흰 눈 닮은 옷을 입었으니 해동의 국상을 아는 건가.” 그림 쪽에선 한 화풍에 집착하지 않았다. 진경산수화를 비롯해 풍속 인물 사군자 등 다방면에서 기량을 뽐냈다. 특히 45세 때 개성을 유랑하고 그린 ‘송도기행첩’은 독특한 음영과 채색 기법을 뽐내 화제를 모았다. 소담하되 진취적인 글씨는 당대 중국에서도 탐을 냈다. 72세에 청나라를 방문했을 때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표암에게 글자를 청했다고 전해진다. 건륭제조차 글씨를 본 뒤 ‘천골개장(天骨開場·뛰어난 재주가 글씨에 드러나다)’이라며 탄복했다. 본인은 탐탁지 않아 했으나 관재 또한 탁월했다. 왕릉 관리인쯤 되는 말단직 능참봉으로 벼슬길에 나서 10년도 안 돼 한성 판윤(서울시장)에 올랐다. 영조의 총애가 지극하기도 했으나, 인망이 두터웠던 표암의 처신이 올곧았기 때문이었다.정양환·송금한 기자 ray@donga.com}

    • 201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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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박물관 어린이 전시회 ‘조침문 이야기’

    조침문(弔針文)에서 어린이를 위한 상상의 꽃이 피어난다.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 꼭두박물관에서 조선 수필 조침문에서 모티브를 얻은 어린이 전시회 ‘조침문 이야기: 꼭두가 왜 비행접시를 탔을까’를 개최한다. 조침문은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이 지은 수필. 지아비를 여의고 바느질을 낙으로 삼던 부인이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해 애통함을 제문(祭文) 형식으로 전하는 글이다. 전시회 ‘조침문…’은 김옥랑 꼭두박물관장이 이 수필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만든 희곡을 바탕으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우화 형식으로 꾸민 내용을 담고 있다. 김 관장의 희곡 ‘조침문 이야기’는 5월 어린이 청소년 도서로도 만날 수 있다. 바늘과 꼭두를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전시회는 천장에 매달려 있는 2m짜리 모형 바늘과 다양한 삽화를 전시해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배가시켰다. 어린이 체험관답게 퍼즐이나 게임을 곳곳에 배치해 지루함을 방지했다. 조선시대 수필을 비행접시와 연계시켜 현대적으로 해석한 대목도 이채롭다. 전시회 관객들은 박물관이 소장한 꼭두 2만 점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6월 9일까지. 1500∼3000원. 02-766-3315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강수지 인턴기자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 201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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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라야 2400km… 대자연의 묵시록

    히말라야 산맥의 아름다운 풍광과 현지 생활을 담은 이훈구 동아일보 사진기자의 ‘히말라야 유랑’ 전시회가 30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히말라야 유랑’은 이 기자가 X-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원정대와 함께 2011년 8월부터 6개월 동안 네팔 등지에 머물며 찍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파키스탄의 험준한 카라코람 히말라야부터 인도와 네팔을 잇는 히말라야 산맥의 길기트와 훈자 마을 등 직선거리로 2400km에 이르는 긴 여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장엄하면서도 척박한 자연은 물론이고 고산지대에 사는 다양한 종족들의 삶도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이 기자는 “낯선 이방인에게 귀한 성찰과 배움의 시간을 내준 히말라야와 현지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앵글에 담았다”고 말했다. 함께 히말라야에 갔던 산악인 박정헌 씨는 “이 기자의 작품은 단순히 동행취재기가 아니라 수행자의 시선으로 한 인간이 바라본 아름다운 인고의 시간이 깃든 결정체”라고 말했다. 사진전은 2월 8일까지 열리며, 전시 작품을 담은 동명의 사진집 ‘히말라야 유랑’(사진예술사)도 출간된다. 02-725-293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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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복제 쇠고기도 과연 녹색혁명일까

    요즘 먹을거리는 정말 핫한 이슈다. 한쪽에선 지구 황폐화로 식량난을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선 참살이(웰빙)를 부르짖으며 질 높은 재료를 찾아 헤맨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과 복제 쇠고기는 과연 제2의 녹색혁명일까,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일까. 과학기자로 상당한 내공을 쌓은 저자가 현실로 닥친 GMO의 명과 암을 혹독하게 파헤쳤다. 한국인의 식탁이 수입농축산물로 가득한 지금, 세계 식품시장의 흐름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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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경영]젊은 오빠 언니들… 불멸의 시간을 사는 시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솔직히 식상하다. 한 광고가 유행시킨 이 한마디는 언제부턴가 대단한 금언처럼 받아들여진다. 물론 좋은 말이다. 나이나 체면에 얽매이지 않는 어르신들, 멋지다. 하지만 반대로 ‘아해(?)’들이 나이를 무시할 때도 그런 입장을 고수할 자신이 있나. 지난해 대선에서 50대 선거 돌풍의 근원은 ‘젊은 세대를 향한 항변’이 아니었던가. 유리할 때만 “나이는 상관없다”고 떠들 거라면, 그건 정의가 아니라 궤변이다. 연장선 위에서 책 ‘어모털리티’도 일단 조지고 보자. 모털리티(mortality)는 영원히 살 수 없단 뜻이다. 원래 이모털리티(immortality·불멸)란 반대말도 있다. 그걸 굳이 부정의 접두사 ‘a’를 붙였다. ‘나이와 죽음을 의식하지 않는 현상’이란 뜻의 신조어란다. 장난하나…. 괜스레 용어 하나 만들어 장사하는 치들 널렸다. 더 나가 볼까. ‘어모털족(族)’의 등장으로 세상이 바뀌었단 논리도 맘에 안 든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 남성은 젊음에 집착해 어린 여성과 화려한 패션을 추구한다. 죽음의 공포를 지우려 은퇴를 미루고 일에 열중한다. 어릴 적 취향을 지속해 세대 간 소비성향의 간극이 무너진다. 그래, 앞뒤는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게 다 어모털리티 탓인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도 발정 난 노인네는 딸 같은 처자를 탐했다. 여성 선구자들은 어느 시대건 통념을 걷어찼다. 그럼 선덕여왕이나 클레오파트라도 어모털족이라 불러야 하나. 하지만 이 대목에서 어모털리티는 의외의 괴력을 발휘한다. 이 책은 흔해빠진 선언서 나부랭이와는 결이 다르다. 언어의 장벽에 갇혀 현실을 비틀고 곡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는다. 영미 시사주간지 ‘타임’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기자로 경력을 쌓은 저자는 현장 취재라는 특기를 살려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실상을 적확하게 되짚는다. 책은 결코 우리 모두 어모털리티족이 되자고 부르짖는 게 아니다. 이미 21세기의 시대적 가치는 재편되고 있다. 이 조류에 응하건 응하지 않건 우리는 현 상황을 냉철히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책에 등장하는 ‘세네제닉스(Cenegenics)’가 좋은 사례다. 미국에 있는 ‘세계 최대의 노화관리 의료기관’이란 이곳은 영양 관리와 운동을 바탕으로 ‘호르몬 최적화’를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호르몬 최적화란 신체에 맞는 호르몬의 균형점을 찾아 중장년층 고객도 젊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배에 굵은 식스 팩이 드러난 70대 할아버지, 육상선수처럼 군살 없는 60대 여성을 모델로 내세운 세네제닉스는 현재 엄청난 속도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젊음 유지에 사활을 건 어모털족 자체가 아니다. 몸매를 개조하려고 한 달에 몇천 달러씩 쏟아 부을 수 있는 계층이 형성된 소비산업구조, 나이 든 사람이 외양 가꾸기에 열광하는 걸 주책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공감대, 나아가 과학과 종교까지도 이런 취향에 맞춰져 가는 ‘변화의 현재진행형’이 관건이다. 이 책이 어정쩡한 트렌드 보고서에 머무르지 않고 썩 괜찮은 사회 분석서로 다가오는 것도 이런 맥락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모털리티의 매력뿐만 아니라 문제점도 균형감 있게 담아낸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이런 현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전망이 뚜렷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원문을 보진 못했지만 번역 어투가 군데군데 거칠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뒤 진심으로 어모털족이 ‘이기심을 계몽해 개인의 행복과 공동의 선의 상호 의존을 인식하는’ 이들이 되길 응원하게 됐다. 우린 모두 나이가 드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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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50 “어, 우리 얘기네”… 1020 “아, 재밌고 신기해”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재밌어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쌀쌀한 날씨에도 박물관 내부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차분한’ 박물관 풍경은 확실히 아니었다. 두셋씩 짝을 이룬 관람객들은 이러쿵저러쿵 수다스러웠다. 연인으로 보이는 20대 남녀는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다룬 전시품 앞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빨갱이란 말에 비하의 뜻이 담겼나”를 놓고 싸우다 팔짱마저 풀더니 토라진 여자친구를 달래 금세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영화 ‘고래사냥’ 간판 앞에서 고등학교 때 몰래 봤다며 낄낄거리는 중년 양복쟁이들도 보였다. 초등학생 아들 손을 잡은 아주머니는 찰흙인형으로 만든 ‘콩나물시루’ 교실을 설명하다 잠시 말이 끊겼다.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아이가 한마디 툭 던졌다. “엄마, 엄마도 저런 치마 입고 학교 다녔어?” 26일 개관 한 달을 맞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편향성이 심하다’ ‘번듯한 전시품이 없다’는 전문가 지적이 쏟아졌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일일 평균 약 3500명이 다녀가 25일 현재 누적 관람객 수가 9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이번 주말엔 1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총면적 13만7480m²)의 첫 달 방문객이 67만 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규모가 10분의 1도 안 되는 이 박물관(총면적 1만734m²)의 흥행몰이는 고무적이다. 실제로 22, 23일 두 차례 들러본 박물관의 인기는 상당했다. 학생 단체관람이나 외국인 패키지 여행객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어르신들이나 좋아할 곳’이란 예상도 어긋났다. 10, 20대가 적지 않았고 아이와 함께 한 가족단위 시민도 많았다. 딸과 함께 온 40대 여성은 “박물관 유물은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여기 있는 것들은 ‘우리의 얘기’라서 할 말이 많아 좋다”고 말했다. 박물관에서 시민들이 반기는 코너는 경제발전이나 산업화 전시가 아니었다. 석유풍로나 극장 간판, 버스를 부여잡고 엉덩이를 내민 채 버티는 입체적인 차장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렸다. 캐나다 배낭여행객인 제이미 씨는 “유물만 쭉 이어지는 적막한(desolate) 전시관이 아니라 다이내믹한 스토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시덕 박물관 전시운영과장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박물관이 ‘회상의 공간’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자평했다. 아쉬운 대목도 상당했다.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두루뭉수리로 뭉쳐 있고 정보가 빈약했다.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 전시실의 경우 옛 ‘미싱 공장’을 재현한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당시의 처절한 상처는 배어나질 않았다. 한 30대 남성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이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어두웠던 과거까지 미화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박물관 측은 “다양한 시민들의 반응을 청취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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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미술 또하나의 진수 맛볼 기회” 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전 개막

    ‘카프카의 조국, 체코의 보헤미안 예술을 만나다.’ 국내 처음으로 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의 명화들을 전시하는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전’ 개막식이 25일 오후 열렸다. 이날 개막식에는 알레나 하나코바 체코 문화부 장관, 야로슬라프 올샤 주한 체코 대사,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이 300명 가깝게 참석했다. 이 전시를 소개하기 위해 체코에서 온 하나코바 장관은 “이번에 전시되는 회화 107점은 체코 근대미술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국보급 작품들”이라며 “한국인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체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도 “체코 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며 “서유럽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가들의 작품을 한국에서 만나니 반갑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은 시인과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이신자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등 문화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이정재 씨는 “13년 전 광고촬영을 갔다 처음으로 외국 미술작품을 샀던 곳이 프라하”라며 “개인적 추억이 깃든 체코 회화들을 한국에서 만나니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는 주한 외국대사들이 대거 개막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토마시 코즈워프스키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와 제롬 파스키에 프랑스 대사, 콘스탄틴 브누코프 러시아 대사, 요제프 뮐르너 오스트리아 대사, 투비아 이스라엘리 이스라엘 대사, 끼띠퐁 나 라농 태국 대사 등이 전시 작품들을 둘러봤다. 최 부사장은 인사말에서 “도시 전체가 미술관인 프라하에서 온 작품들이 유럽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다”며 “한국과 체코의 문화 교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동아일보사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4월 21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조만간 전시 홈페이지(www.praha2013.co.kr)에 교육 문화행사 일정이 소개된다. 온라인으로 사전 참여 신청도 가능하다. 5000∼1만2000원. 02-6273-4242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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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고구려박물관’ 아차산에 세운다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고구려인의 혼을 보여 주는 국립고구려박물관(가칭) 건립이 추진된다. 국내 첫 국립어린이박물관(가칭)도 대구에 문을 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 같은 내용의 ‘박물관 발전 구상’을 보고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2020년 개관을 목표로 추진되는 고구려박물관 건립 예정지는 서울 광진구와 경기 구리시의 아차산 고구려 유적 인근이다. 문화부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응하고 남북한 통일시대를 대비하려면 고구려 문화재를 전담해 연구하고 전시할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지난해부터 고구려박물관 건립 타당성 조사를 벌여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올해 상반기 구체적인 설립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한 관계자는 “신라(국립경주박물관)와 백제(국립부여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를 대표하는 박물관에 이어 고구려박물관이 세워지면 삼국시대의 세 축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어린이를 위한 역사 문화 교육의 중심이 될 국립어린이박물관도 생긴다. 경기 용인시에 도립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 있지만 국립 단위로 추진되는 것은 처음이다. 문화부는 현재 대구에 있는 경북도청이 올해 말 경북 안동시와 예천군으로 이전하면 기존 청사 건물을 활용할 계획이다. 어린이박물관은 전시를 위한 공간보다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체험학습에 중점을 둔 미래 지향적 종합문화교육관으로 만들 예정이다. 지역 선정 문제로 논란이 컸던 국립자연사박물관도 세종시 건립이 거의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행정수도 워싱턴에 있듯이 ‘한국의 스미스소니언’도 신행정수도인 세종시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관련 부처들의 판단이다. 특히 문화재청 산하에 자연유산연구소를 신설해 자연사박물관과의 연계 작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경기 화성시 등은 자연사박물관 유치를 희망하며 세종시 선정을 반대해 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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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대형불상전시실-반가사유상실-신라 금관실 새단장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관람객 호응이 높은 인기 전시실인 대형 불상 전시실과 반가사유상실, 신라 금관실 등을 새롭게 단장해 22일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했다. 이번 단장의 핵심은 ‘유물에 대한 관람객의 친밀도 향상과 집중력 제고’. 불상 전시실의 경우 예전엔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이었다. 주로 야외에 있었던 석불들이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날씨에 따라 햇빛 편차가 컸고, 유물 자체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암막스크린과 금속패널 등 배경 벽을 설치해 자연광을 최대한 차단했다. 그 대신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입체적으로 배치하고 전시실 바닥과 천장의 색감을 단일한 톤으로 통일해 유물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실제로 전시실에 배치된 경주 감산사 미륵보살과 아미타불(국보 제81, 82호)을 관람하니 석조 불상의 질감까지 세세하게 느껴졌다.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번갈아 전시하는 반가사유상실, 황남대총 금관과 금 허리띠(국보 제191, 192호)를 전시한 신라 금관실도 개선 이후 안정감이 살아났다. 이곳도 전시실 색감을 통일하고 조명을 LED로 교체했다. 유물과 보호유리의 간격을 줄인 점도 관람 편의를 도왔다. 신소연 학예연구사는 “더욱 극적인 감상 기회를 얻음으로써 유물과 관람객의 일체감을 높이는 게 이번 개선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편은 기획 단계부터 김 관장이 적극 나서 세세한 대목까지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지난해 영국 런던 올림픽 당시 대영박물관에서 화제를 모았던 ‘원반 던지는 사람’ 기획전을 꾸몄던 해외 전시디자이너를 초빙해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김 관장은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또 다른 인기 전시실인 청자실도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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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대규모 청동기 원형무덤 진주서 발굴

    경남 진주시 초장지구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인 원형 무덤(사진)이 발굴됐다. 동서문물연구원(원장 김형곤)은 22일 “초장지구 일대에서 기원전 10세기 전후로 추정되는 지름 약 26.8m, 높이 약 1.4m의 원형 고인돌(지석묘)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원형 무덤 가운데 최대 규모로 마산 진동 유적(사적 제472호)에서 발견된 비슷한 형태의 원형 무덤보다 지름이 10m 이상 크다. 연구원 측은 “남해안 일대에서 원형 무덤이 간혹 발견되긴 했으나 이렇게 큰 것은 처음”이라며 “지름만 놓고 보면 중급 신라왕릉과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진주 초장지구 9만9000m² 일대는 지금까지 무덤 22기를 비롯해 주거지 52개, 고상(高床·땅 위로 세운) 건물지 25개 등 유구(遺構) 300여 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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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꺼져가는 성냥공장의 쓸쓸한 노래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인천엔 지금 성냥공장이 없다. 1960, 70년대 전국에 산재했던 성냥공장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현재 유일하게 남은 곳은 경북 의성의 성광성냥공업사. 채널A와 함께 현장을 다녀왔다. 경영난에 하루를 버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내 유일한 기타 제조공장과 기계식 엿 공장마저 문을 닫은 지금, 사라져 가는 ‘6070문화’의 안타까운 뒷모습을 스케치했다.}

    • 201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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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쌓이는 적자에 앞길 캄캄”… 한국성냥 마지막 불꽃 꺼지나

    《 을씨년스러웠다. 17일 경북 의성의 성광성냥공업사.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안내판도 하나 없었다. 의성읍 끝자락에서 잔뜩 깔린 얼음판을 한참 종종걸음 쳐 겨우 발견한 문패는 낡아서 읽기조차 힘들었다. 정갈하게 단장한 의성향교(경북 유형문화재 제150호)와 마주선 탓인지 건물은 더 허름해보였다. 잔잔히 번지는 기계 소리가 없었다면 인기척을 의심할 정도였다. 》“왜 안 그렇겠니껴. 한때 200명이 넘던 공장인데 이젠 직원이 일곱 명이니더. 윤전기도 주문 없으면 몇날 며칠 세워두는 기라. 그랄 땐, 텅 빈 절간이 따로 없어. 사장님이 어햐든둥(어떻게든) 임금 맞춰줄라 애는 쓰는데…. 우리도 영 죄송시러버가꼬.”찐득한 유황냄새 속에 분주히 손을 놀리던 김 씨 아주머니는 말 한마디마다 굵은 한숨을 뱉었다. “이름은 뭐할라꼬, 기냥 공장 잘 되게 마이 도와주이소”라며 성냥 정리하느라 고개도 돌리질 않았다. 옆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30년 가까이 일했는데 이래싸이(이렇게 되니) 속 시끄러바서 안 그러나.”1954년 설립된 성광성냥공업사는 이제 한국에서 단 하나 남은 성냥공장이다. 외설적 가사로 유명한 구전가요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에 등장하던 인천 성냥공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리랑 성냥’ ‘유엔 팔각’도 이미 문을 닫았다.뱃사람들이 습기에 강하다며 좋아했던 ‘향로 목각’. 신라청동향로 위에 불이 활활 타는 모습을 상표에 담은 ‘향로’ 성냥만이 유일한 국내 제품이다. 나머지 시중에 파는 성냥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된다. 창립 당시 평사원으로 출발해 지금껏 회사를 지킨 손진국 대표(78)에겐 예나 지금이나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 하나로 세월을 버텨왔다.“월남한 사장님하고 서넛이 골방에서 창업했을 때도 그게 뿌듯했어. 그 귀한 성냥을 우리가 직접 만들었노라. 1950년대엔 성냥 한 곽이 쌀 한 가마니 값이었거든. 그걸 국산화하면서 대중화시킨 거라. 1960, 70년대 호황으로 전국을 누빌 때도 마찬가지야. 우리 성냥으로 서민들이 ‘곤로(풍로의 일본어투)’에 불 지피는 걸 떠올리며 신이 났지. 지금은…, 책임감이랄까. 우리밖에 없잖아. 여기 접으면 한국 성냥은 사라지니까. 공장 돌릴수록 적자인데, 돈 따졌으면 벌써 접었지.”하지만 그 사명감도 갈수록 바래지고 있다. 정부나 문화단체가 수십 차례 다녀가며 ‘근대 문화재’라고 치켜 올렸지만 별 다른 도움이 없다. 몇 년의 간청 끝에 지난해 ‘사회적 예비기업’으로 선정해 종업원 임금을 일부 보전해준 게 전부다. 손 대표는 “겨우 숨통은 트였지만 허덕이는 건 매한가지”라며 “일부 기계를 방글라데시 등에 팔았는데도 (적자)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이 땅에서 1960, 70년대를 이끌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 홀대를 받는 건 성냥공장만이 아니다. 당시 생활현장을 근대문화로 선정해 보존에 힘쓰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강원 정선에 있던 국내 유일한 1960년대 기계식 엿 제조공장인 ‘사북 엿 제이소’도 지난해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계라도 건져볼까 수소문했지만 찾을 길이 없다.20세기 청춘의 표상이던 기타 공장도 맥이 끊겼다. ‘세고비아’ 같은 대표브랜드는 이미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옮겨갔고, 마지막 남았던 ‘스윙기타’도 지난해 12월 생산을 중단했다.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은 “좋건 싫건 우리의 한 시대를 일으키고 지탱했던 ‘아버지 세대의 문화’가 푸대접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현재 성광성냥은 연로한 손 대표를 도와 아들인 손학익 상무가 전반적인 업무를 보고 있다. 그가 7년 전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고 낙향한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손 상무는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건 아버지가 평생을 성냥에 바친 덕인데 그냥 무너지는 꼴을 볼 순 없었다”며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문화체험관을 운영해보고 싶은데 진척이 잘 안 된다”고 토로했다.오후 4시 무렵, 겨울철 시골은 해가 일찍도 떨어졌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성냥공장을 덮자 흠칫 한기가 몰려들었다. 또다시 이곳을 찾을 때도 기계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깔끔하니 치워진 향교의 처마 위에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구슬피 울었다.의성=정양환 기자 ray@donga.com▼ 日 성냥산업, 상품 다양화-해외수출로 부활… 정부도 근대문화 집중 지원 ▼이웃나라 일본은 근대문화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한 나라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협력기관들이 똘똘 뭉쳐 근대화 시절 산업들을 전통으로 유지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대표적인 경우가 일본의 성냥산업이다. 1920년대 개항과 함께 지금의 고베(神戶) 시와 효고(兵庫) 현에서는 성냥산업이 붐을 맞았다. 당시 성냥은 비누나 석유램프처럼 일본 근대화를 상징하는 품목이었다. 1950년대 이후에도 이곳에 있는 수백 개의 성냥공장이 만들어낸 성냥이 전국으로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일본의 성냥 산업도 1970년대 이후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휴대용 라이터의 등장과 도시가스의 전국적 공급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성냥 산업을 사양길에 접어들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민관이 힘을 모아 ‘일본성냥협회’를 만들어 성냥회사들의 경영을 전력으로 도왔다. 단순히 보존과 유지에 그치지 않고 사업다각화를 꾀해 안정화를 이뤄냈다.1923년 효고 현에 설립된 ‘니토샤(日東社)’는 이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힘입어 현재 종업원 수 300명에 육박하는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활로를 뚫은 덕분이다. 최근엔 ISO9001(품질경영시스템) 인증까지 받았다. 지자체와 협력해 어린이 문화체험공간을 만드는 등 지방 문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정양환·백연상 기자 ray@donga.com}

    • 201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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