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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터뜨린 포워드 랜디 희수 그리핀(30·사진)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리핀은 지난해 3월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듀크대 대학원에서 생물학 박사 과정을 밟던 그는 한국을 위해 뛰어 달라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요청을 받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특별귀화 전이던 2015년부터 초청 선수로 대표팀 경기를 뛰었던 그리핀은 “어머니의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리핀의 미들 네임인 ‘희수’는 어머니 이름이다. 등번호 ‘37’은 외할머니의 출생 연도(1937년)다. 열 살 때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리핀은 스피드와 골 결정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주 공격수로 활약했던 그이지만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뛸 팀이 없어 아이스하키를 그만두기도 했다. 협회의 ‘러브콜’이 없었다면 다시는 아이스하키를 못 할 수도 있었다. 그리핀은 “대표팀 덕분에 아이스하키와 이별했던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핀은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예선 1, 2차전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협회 관계자는 “그리핀이 고관절 부상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날 그리핀은 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과 얼싸안으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렸다. 그리핀은 “일본과 상대했기 때문에 남북 선수들이 더 협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올림픽에서의 첫 골이 자랑스럽지만 팀이 져서 슬프기도 하다”고 말했다.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북한 피겨스케이팅 페어 렴대옥(19)과 김주식(26)이 빙판에 오르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는 그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170여 명의 북한 응원단은 인공기를 흔들면서 “김주식! 렴대옥!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외쳤다. 일부 한국 관중도 박수로 둘을 맞이했다. 안방 같은 응원을 받은 렴-김 조는 14일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페어 쇼트프로그램에서 69.40점을 기록해 자신들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개인 최고점을 경신했다. 이들의 기존 최고점은 65.25점. 비틀스의 ‘어 데이 인 더 라이프(A Day in the Life)’에 맞춰 강렬한 연기를 펼친 렴-김 조는 점프와 리프트 등 모든 요소에서 가산점을 챙기는 ‘클린 연기’를 펼쳤다. 11위로 16개 팀에 주어지는 15일 프리스케이팅 진출권을 확보한 이들은 북한 피겨 최초의 톱10 진입을 노려 볼 수 있게 됐다. 렴-김 조는 자신들의 점수가 발표되자 서로 끌어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북한 응원단은 “장하다. 우리 선수 장하다”라고 외쳤다. 이들은 한국 관중으로부터 인형 선물을 받기도 했다. 렴-김 조는 2일부터 강릉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일찌감치 결전지에서 프로그램을 점검해 온 이들은 경기 전날인 13일에 예정에 없던 훈련도 했다. 당시 김주식은 “연습이 아주 잘돼 있어서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키스앤드크라이존에 렴대옥, 김주식과 동행한 브뤼노 마르코트 코치(캐나다)는 “두 선수는 성실함이 강점인 모범생이다. 항상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코트 코치는 지난해 여름 캐나다에서 렴-김 조를 지도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김주식과 렴대옥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김주식은 “경기장에 들어갔는데 우리 응원단과 남측 응원단이 마음을 합쳐 열광적 응원을 해줬다. 그것에 고무돼 경기를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것을 느꼈고 단합된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렴대옥은 “내가 빛날 수 있는 것은 모두 우리 당에서 나를 이만큼 키워 주고 이끌어 줬기 때문이지 나 혼자 빛난 것이 아니다. 우리 감독 동지와 짝패 동지(김주식)가 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북한 김일국 체육상과 함께 페어 경기를 봤다. 김 체육상은 “렴대옥(149cm)이 크지 말아야 하는데 점점 몸이 커지고 있어 걱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페어는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들어올리는 동작이 많기 때문에 여자 선수가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한편 한국 페어 김규은(19)-감강찬(23) 조는 최하위(22위)로 프리스케이팅 진출에 실패했다. 이들은 42.93점을 기록했다. 착지 실수를 범한 김규은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침에 컨디션도 좋았는데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를 했다”면서 “큰 대회에 나왔다는 데 만족하고 다음에는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평창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상대방에게 손을 대거나 미는 ‘나쁜 손’에 대한 벌칙이 예전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1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 예선과 여자 500m 준결선에서 중국 선수 4명이 반칙으로 무더기 실격됐다. 남자 1000m 예선 6조에서 중국의 한톈위는 한국의 서이라와 함께 출전했다. 다섯 바퀴째 서이라가 1위로 올라설 때 한톈위와 충돌하며 4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한톈위가 서이라를 손으로 밀친 것으로 확인돼 한톈위는 반칙으로 실격됐다. 서이라는 2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앞서 열린 예선 4조에서는 중국의 런쯔웨이가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로베르츠 즈베이니엑스(라트비아)를 손으로 밀쳐 실격됐다. 중국은 1000m에 출전한 3명 중 우다징만 준준결선에 진출했다. 여자 500m에서도 중국 선수 2명이 실격됐다. 한국 선수들과 악연이 있는 판커신은 준결선 1조에서 최민정과 함께 출전했다. 최민정이 1위로 통과한 가운데 판커신은 3위에 올랐다. 어차피 결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반칙을 저질러 파이널B로도 가지 못하고 실격됐다. 준결선 2조 취춘위도 최하위인 4위를 기록했지만 반칙으로 실격 처리됐다. 한국은 중국의 ‘나쁜 손’과 악연이 많았다.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박승희를 결승선 통과 직전 잡아채려는 동작을 취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갔다. 준결선에서는 심석희를 넘어뜨릴 뻔했다. 지난해 삿포로 겨울아시아경기 여자 500m 결선에서도 심석희의 무릎을 잡아 동반 실격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이 상대 선수에게 손을 대 실격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쁜 손’은 그동안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전에는 선수가 넘어지는 등 확실하게 영향을 주는 상황이 아니면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문제가 자주 논란이 되자 좀 더 엄격한 쪽으로 판정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 쇼트트랙 관계자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예전에는 애매한 상황이면 그냥 넘어갔을 것도 이젠 무조건 실격 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한번 비디오 판독으로 결정된 판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경기에서 적용된 벌칙이 다음 경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강릉=김동욱 creating@donga.com·정윤철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은 내게 ‘꿈의 무대’다. 이 무대에서 ‘꿈의 연기’를 펼치겠다.” 일본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스타 하뉴 유즈루(24)는 자신감에 넘쳤다. 13일 그는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훈련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 이어 피겨 남자 싱글 2연패를 노리는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기자회견장에는 일본과 한국 등 취재진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하뉴는 “나처럼 이렇게 많은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본 선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뉴는 지난해 11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NHK트로피에서 연습 도중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쳤다.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기 위해 치료에 집중한 하뉴는 그랑프리 파이널 등에 불참했다. 하뉴는 “팬들의 높은 기대치를 받아들여 내 에너지로 만들겠다. 팬들이 나를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전날 보조 링크에서 빙질 적응을 마친 하뉴는 이날은 메인 링크에서 프리스케이팅 곡에 맞춰 점프 등을 점검했다. 하뉴는 “빙판 연습을 재개한 뒤 3주 전에 3회전 악셀 점프를, 2주 전에 4회전 점프를 뛰기 시작했다”면서 “지금은 올림픽에 나설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세계 1위 하뉴는 남자 싱글에서 ‘미국의 점프 기계’ 네이선 천(19·세계 6위)과 4회전 점프 전쟁을 벌여야 한다. 통상 하뉴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합쳐 5개의 4회전 점프를, 천은 7개를 뛴다. 그는 ‘몇 개의 4회전 점프를 구사할 것이냐’는 질문에 “내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다. 컨디션에 따라 결정하겠다”면서 “내가 클린 연기를 펼친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하뉴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일본 피겨 팬들도 강릉으로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뉴가 출전하는 남자 싱글 경기 관람과 강릉 시내 명소 구경 등이 결합된 관광 패키지(3박 4일·고급 호텔 숙박)가 79만8000엔(약 799만 원)의 고가임에도 모두 판매됐다. 강릉 A모텔 주인은 “일본 팬들은 지난해 테스트이벤트로 강릉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이 끝난 뒤 ‘하뉴를 보러 반드시 올림픽 때 오겠다’며 일찌감치 방을 예약했다. 하뉴에게 줄 인형 꾸러미를 들고 온 일본 팬도 많다”고 말했다. 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골리 신소정(28)이 처음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1학년 때 그의 포지션은 필드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는 골대를 든든히 지키는 골리에 더 관심이 갔다. 신소정은 “골리의 무장이 변신 로봇 같아 멋있었다”고 말했다. 1년 뒤 골리로 전향한 이유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단일팀의 핵심은 신소정이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스피드가 빨라진 현대 아이스하키에서는 골리의 비중이 60% 이상 될 것”이라고 했다.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는 아픔 속에서도 16년째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신소정. 그를 골리의 세계로 이끈 매개체인 장비에 대해 알아봤다. 신소정이 사용하는 장비 중 가장 애착을 가진 것은 마스크다. 신소정은 “포지션 특성상 골리의 온몸으로 퍽이 날아오기 때문에 머리부터 목까지 전체를 보호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골리는 마스크에 자신만의 페인팅을 할 수 있다. 그의 마스크에는 태극기의 건곤감리가 가운데에 그려졌고, 오른쪽에는 한복을 입은 여인, 왼쪽에는 남산서울타워와 한옥이 담겨 있다. 신소정은 “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만큼 한국적인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스크 뒤쪽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키우던 강아지를 새겼다. 그는 “둘이 내 뒤에서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든든하다”며 웃었다. 골리가 퍽을 잡아내는 장갑은 양쪽 모양이 다르다. 오른손에 착용하는 것은 ‘블로커’, 왼손에 착용하는 것은 ‘글러브’다. 블로커는 퍽을 쳐내는 역할을 하며 글러브는 퍽을 잡아낸다. 신소정은 “신체 중심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퍽이 날아오면 글러브로 막고, 오른쪽이면 블로커로 막는다”고 했다. 골리의 아이스하키 스틱은 중간 부위인 패들이 플레이어의 스틱보다 넓다. 패들로 퍽을 막기 때문. 신소정은 “스틱의 용도를 퍽을 전달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스틱의 용도는 발밑으로 날아오는 퍽을 막는 것이다”고 말했다. 퍽이 날아올 때의 속도는 최대 시속 180km에 이른다. 퍽을 잘 포착하기 위해 신소정은 라켓볼 공을 벽에 던지면서 잡는 훈련을 매일 5∼10분 정도 한다. 그는 “특히 경기 전에는 눈 워밍업을 철저히 한다. 그래야 경기에 들어가자마자 슛을 막을 수 있다”면서 “볼펜으로도 트레이닝을 한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볼펜을 보면서 눈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신소정이 모든 장비를 착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0∼15분. 신소정은 “장비를 착용할 때는 나만의 순서가 있다. 왼쪽 장비를 장착한 뒤에 오른쪽 장비를 착용한다. 이 순서대로 해야 마음 편하게 경기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단일팀은 12일 강릉 관동 하키센터에서 열린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스웨덴에 0-8로 졌다.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다섯 살 때 피겨를 시작한 후 항상 얼음판 곁을 지켜주던 어머니였다. 화장이 서툰 딸의 얼굴을 곱게 단장시켜 주었고 늘 격려의 말을 건넸다. 딸의 운전사 역할을 했고 모든 일정을 챙겨주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최고의 멘토는 바로 ‘엄마’였다. “그동안 많이 의지했고 믿었던 우리 엄마….” 김연아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꼽히는 한국의 최다빈(18)이 11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 팀 이벤트(단체전) 여자 싱글(쇼트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우며 처음 출전한 올림픽 무대를 장식했다. 최다빈은 ‘파파 캔 유 히어 미’(영화 옌틀 OST)에 맞춰 연기를 펼쳤다. 이 곡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곡이다. 그는 3회전 점프 등을 실수 없이 해내며 65.73점을 받아 자신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쇼트프로그램 최고점을 달성했다. 그러나 경기 후 최다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완벽한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김정숙 씨는 지난해 6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조용한 성격의 최다빈이지만 이날은 연기를 마친 뒤 오른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다. 최다빈은 “날 믿어주셨던 어머니 덕분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번 대회에 최다빈은 이모와 동행하고 있다. 최다빈은 팀 이벤트 여자 싱글에 나선 선수 10명 중 6위를 기록했다. 최다빈은 “함께 나선 동료들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됐다”면서 “큰 부상이 없고 부츠도 잘 맞는다. 개인전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연아의 뒤를 이을 ‘피겨 퀸’ 경쟁의 서막이 오른 이날,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OAR)’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9)가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세계 1위 메드베데바는 쇼트프로그램 81.06점을 기록하며 지난해 4월 자신이 세웠던 기존 세계 기록(80.85점)을 넘어섰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딸 당시 쇼트프로그램 기록은 78.50이었다. 김연아의 은퇴 이후 여자 싱글에서 독주하던 메드베데바는 지난해 말 오른 발등뼈 미세 골절로 상승세가 꺾였다. 2015년 11월 이후 출전한 모든 대회(13개·개인전 기준)에서 우승했던 메드베데바는 지난달 열린 유럽선수권에서는 같은 러시아의 샛별 알리나 자기토바(16)에게 왕좌를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메드베데바는 개인전 전초전 성격으로 열린 이날 경기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금메달 전망을 밝혔다. 메드베데바는 “그동안 힘들었지만 올림픽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했다. 부상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메드베데바는 한국 아이돌 그룹 엑소의 팬이다. 경기 시작 전 긴장을 풀기 위해 메드베데바가 듣는 음악도 엑소의 노래다. 메드베데바는 “엑소 덕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지고 경기도 잘할 수 있게 됐다. 엑소의 모든 멤버가 건강하길 바라며 꼭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케이틀린 오즈먼드(캐나다·세계 2위)와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세계 6위)도 팀 이벤트를 통해 빙질 적응에 나섰다. 31세의 노장 코스트너는 75.10점으로 메드베데바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김연아를 롤 모델 중 한 명으로 꼽는 오즈먼드는 71.38점을 기록해 3위를 차지했다. 팀 이벤트는 총 10개국이 겨루는 단체전이다. 각국의 남녀 싱글, 페어, 아이스댄스 선수들의 종목별 순위에 따라 1∼10점을 얻는다. 앞서 9일 경기에서 남자 싱글의 차준환이 5점(6위), 페어의 김규은-감강찬 조가 1점(10위)을 확보했다. 이날 아이스댄스 9위를 차지한 민유라-겜린 알렉산더 조(2점)와 피겨 여자 싱글 6위 최다빈(5점)이 7점을 더해 한국은 최종 13점을 거뒀다. 한국은 최종 9위를 차지해 상위 5개국이 출전하는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자신들의 올림픽 마지막 경기를 마친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조) 한국 대표 이기정(23)과 장혜지(21·이상 경북체육회)는 한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강릉컬링센터 곳곳을 돌며 관중에게 인사했고, 경기복을 선물로 관중석에 던졌다. 이들은 “오빠 라인 좋아요!”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라인은 스톤의 주행 코스를 뜻한다. 대회 내내 밝은 모습을 보여준 장혜지와 이기정이었지만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들어선 뒤에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기정은 “다음 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해서 다시는 이런 결과를 얻지 않겠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기정과 장혜지는 10일 스위스와의 예선 6차전에서 4-6으로 패해 8개 팀 중 상위 4개 팀이 나서는 준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11일 열린 캐나다와의 예선 최종전에서도 이들은 3-7로 패했다. 최종 성적은 2승 5패로 6위. 메달 획득이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이기정과 장혜지는 선전했다. 이번 대회에 신설된 믹스더블에 출전한 팀 중 한국은 세계 랭킹(12위)이 가장 낮다. 하지만 8일 예선 1차전에서 핀란드(11위)를 꺾고 한국 선수단에 첫 승을 안겼고, 세계 3위 중국 등 강호를 상대로 연장 승부를 펼치는 끈끈한 투지를 보여줬다. 장반석 믹스더블 대표팀 감독은 “연장전에서 진 것이 아쉽다. 하지만 이기정과 장혜지는 출전 팀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언젠가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기정은 경기 도중 눈을 자주 깜빡였다. 이기정은 “안구건조증 때문에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달성하지 못한 메달의 꿈을 남자 컬링 대표로 출전하는 쌍둥이 형 이기복(23)이 이뤄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기정은 “형은 나보다 침착하다. 충분히 잘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로에게 올림픽을 마감하는 인사를 건넬 때 이들의 눈시울은 또다시 붉어졌다. 대회를 앞두고 “우리는 철저히 비즈니스 파트너다”라고 말했던 둘이지만 대회 내내 서로를 격려하는 애틋한 모습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기정은 장혜지에게 “수고했다.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에 장혜지는 “제가 오빠에게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그가 나타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로 맞이하며 환호했다. 평창 올림픽 개회식장에서 단연 눈길을 끈 선수는 남태평양 섬나라 통가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국가대표 피타 타우파토푸아(35)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태권도 선수이자 통가 기수로 나섰던 그는 1년 6개월 만에 다시 기수로 등장했다. 리우 올림픽에서 그는 상의를 벗고 몸에 기름칠을 한 채 기수로 나섰다. 이번 대회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전향해 출전했다. 그는 평창의 혹한이 무섭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얼어 죽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했지만 개회식 입장 때는 상의를 모두 벗고 입장했다. 심지어 여유 있게 춤을 추는 듯한 발걸음으로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자신이 입고 나온 의상은 ‘마나파우’라는 통가 전통의상이라고 밝힌 그는 “춥지 않다. 나는 통가 사람이다. 나는 태평양을 횡단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며 웃었다. 그는 “물론 여기보다 리우 개회식 때가 좀 더 따뜻하긴 했다. 밖에 나갔을 때 춥긴 했지만 언제든 국가를 대표해 나가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고 말했다. 태권도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로 전향한 그는 “미래에는 또 다른 스포츠에 도전해보고 싶다. 핸드볼도 관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육상선수에서 봅슬레이 선수로, 다시 스켈레톤 선수로 전향한 가나의 아콰시 프림퐁은 혼자서 국기를 흔들며 입장했다. 평창 올림픽 출전을 위해 모금운동까지 벌여야 했던 그는 한국인 기업가의 후원을 받아 출전할 수 있었다. 이색 관중도 눈에 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으로 분장한 외국인 관중도 있었다. 선수단이 입장하기 전에는 첨단 기술을 이용한 개회식 공연이 눈길을 끌었다. “육! 오! 사! 삼! 이! 일! 영!” 행사장 바닥은 순식간에 얼음이 가득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 위에 숫자가 표시됐다. 관객들이 다 함께 함성을 지르며 카운트다운을 했다.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개회식장 밖에서 일제히 폭죽이 터지면서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닥에서 일제히 점들이 날아올라 하늘을 뒤덮으며 하늘의 별자리를 형상화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든 것은 개회식의 백미 중 하나였다. 평화를 상징하는 상원사 동종이 울려 퍼지면서 세상이 순백의 눈과 얼음 공간으로 변하는 장면,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 문양 속에 수백 명이 등장한 장구춤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5명의 소년이 여행을 떠난다는 스토리 라인에서 등장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새 ‘인면조’, ‘웅녀’ 등 전통 신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등장했다. 5명의 아이는 세계의 화합을 상징하는 올림픽 오륜을 뜻한다. 영상 속에 나타났던 백호는 무대 위 백호 탈을 쓴 사람들로 변했다. 고대의 벽화 속에서 살아난 백호를 따라 설원에 도착한 아이들 앞에는 수묵화 형태로 백두대간이 펼쳐졌다. 아이들이 잠시 무대를 비운 뒤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형상화한 공연이 펼쳐졌다. 텅 빈 무대에서 전통 악기인 장구 연주 소리가 들려오고 영상을 통해 어둠 속에서 빛들이 모여 거대한 기운을 형성하는 모습이 재생됐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자 무대 중앙 장구 연주자들의 옷 색깔이 순식간에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바뀌어 ‘태극’을 형상화했다. 강광배(썰매), 박세리(골프), 진선유(쇼트트랙), 이승엽(야구), 황영조(마라톤), 임오경(핸드볼), 서향순(양궁), 하형주(유도) 등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들도 태극기를 들고 개회식장에 등장하며 분위기를 돋웠다. 22개국 다문화가정 어린이들로 이뤄진 ‘레인보우 합창단’이 애국가를 부르며 세대와 인종을 넘는 화합의 메시지를 전했다. 음악도 이날 개회식의 특징 중 하나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 한국 가요가 각국 선수단 입장 내내 울려 퍼졌다. 세계에 퍼진 한류의 자신감을 보여줬다. 일부 관중은 싸이의 ‘말춤’을 추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만끽했다. 공연은 이어 증강현실(AR) 사물인터넷(loT)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로 표현되는 미래 내용도 담았다. ‘평화 올림픽’을 상징하기 위해 ‘촛불’도 등장했다. 무대에 다시 등장한 5명의 소년을 통해 강원도 주민 1000여 명에게 전해진 촛불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모양을 만들었다. 소년들이 비둘기 풍선을 하늘 높이 날리자 관중들은 큰 환호로 화답했다.평창=정윤철 trigger@donga.com·박은서·김성모 기자}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선 ‘초코파이 소년’은 안정적인 연기로 시즌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며 활짝 웃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의 희망 차준환(17·휘문고)은 9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 팀 이벤트(단체전) 경기에서 ‘클린 연기’를 펼치며 77.7점(쇼트프로그램)을 획득해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말 발목 부상으로 고생했던 그는 고득점에 유리한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신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쇼트프로그램 최고점(82.34점)에는 미치지 못했다. 순위는 10명 가운데 6위. 차준환은 “아직 완벽하게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아쉽다. 스피드도 떨어지고 점프도 부족했다”면서 “살짝 긴장은 됐지만 안방 팬들의 응원을 받으니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차준환은 16일 시작되는 남자 싱글을 기약했다. 차준환은 “개인전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다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57·캐나다)는 차준환의 연기를 본 뒤 “만족스럽다. 물론 차준환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적도 있긴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만족스러운 연기를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서 코치는 “차준환은 막 독감에서 회복된 상태고 시니어 데뷔 후 국제 대회를 작은 대회 1번밖에 경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차준환의 올림픽 출전은 극적이었다. 1, 2차 대표 선발전까지 평창 올림픽 출전 후보는 이준형(22·단국대)이었다. 차준환은 부상 부진 속에 2차 선발전까지 대표 선발전 합계 총점에서 이준형에게 무려 27.54점을 뒤지고 있었다. 통상 몇 점 차로 순위가 갈리는 피겨계에서 이 점수는 사실상 뒤집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차준환은 1월 열린 3차 선발전 프리스케이팅에서 차분하게 연기해 우승하며 1∼3차 선발전 합계 총 684.23점으로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준형(682.10점)을 단 2.13점 차로 제칠 정도로 극적이었다. 어릴 적 초코파이 광고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차준환은 뛰어난 감성 표현 능력에 남성적이고 힘 있는 연기가 결합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피겨 여왕’ 김연아(28)와 일본의 피겨 스타 하뉴 유즈루(24)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키워낸 오서 코치가 차준환을 지도하고 있다. 차준환은 나이를 감안하면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때 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팀 이벤트는 국가별로 남녀 싱글과 페어, 아이스댄스 등 4종목에서 한 팀씩 나와 연기를 펼친 뒤 합산 점수로 순위를 가린다. 팀 이벤트에 처음 출전한 한국은 이날 차준환이 5점, 페어스케이팅 김규은(19)-감강찬(23) 조가 1점(10위)을 획득해 팀 포인트 6점으로 10개 팀 가운데 9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11일 최다빈(18·여자 싱글)과 민유라(23)-겜린 알렉산더(25) 조(아이스댄스)가 팀 이벤트에 출전한다. 팀 이벤트는 4종목 쇼트프로그램 성적 합산 상위 5개 팀만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해 메달을 가린다.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캐나다에 있을 때는 한국 겨울스포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이 더욱 놀랍네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맷 달튼(32)의 말처럼 한국은 겨울스포츠 강국이 아니다. 한국이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은 총 53개이며 종목은 3개(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다. 이 중 메달 42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캐나다 출신으로 특별귀화한 달튼은 평창 올림픽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전망했다. 그는 “여러 종목에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가 많다. 내가 올림픽에 출전한 캐나다 선수들을 보고 선수의 꿈을 키웠듯 한국 선수들의 노력은 어린 친구들을 겨울스포츠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9일 시작되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 태극전사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간난신고의 세월을 보냈다. 이들이 불모지 한국에서 평창 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겨울스포츠를 도약시키기 위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은 ‘금메달’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의 골리 신소정(28)은 “이렇게 주목받는 게 처음이라 기쁘기는 한데…. 경기 내용으로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는 이번 올림픽이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국가대표팀이다. 실업팀은 물론이고 초중고교, 대학 팀도 없다. 3년 전만 해도 대표 선수로 뛸 수 있는 16세 이상 선수가 10여 명에 불과해 엔트리(23명)를 채울 수도 없었다. 서울 태릉빙상장에서 훈련할 때는 학생 선수들로 인해 오후 8∼10시에 야간훈련을 해야 했다.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 훈련장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던 선수들의 수입은 하루 훈련수당인 6만 원이 전부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수들은 올림픽을 위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수진(31)은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일본 아이스하키클럽에서 유학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유학 시절 그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만두 가게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는 미국인인 랜디 희수 그리핀(30)은 듀크대 대학원 생물학박사 과정을 휴학하고 올림픽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그리핀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참아냈다”고 말했다.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는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얻어 평창 올림픽에 나선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을 끝으로 자동출전권을 폐지했던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자동출전권을 부활시키면서 ‘한국 남녀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남자 대표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들어올렸던 백지선 감독(51)을 영입했다. 백 감독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에게 열정(passion)과 연습(practice), 인내(perseverance)를 강조하며 정신력과 기량을 모두 끌어올렸다. 대표팀은 지난해 4월 사상 최초로 IIHF 세계선수권 톱디비전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설상 종목에서도 역사를 만들고 있다. 썰매 불모지인 한국에서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이 종목 1세대 이용 총감독과 조인호 감독은 2005년부터 아스팔트 맨바닥에서 모형 썰매를 타며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종목을 개척했다. 2010년 5월 강원도에 국내 최초로 스타팅 훈련장이 마련되면서부터 한국 썰매의 싹이 텄다. 그해 봅슬레이 2인승 원윤종(33)과 서영우(27)가 합류하면서 한국 봅슬레이 간판팀이 탄생했다. 2013년엔 스켈레톤 윤성빈(24)이 가세해 ‘한국 썰매 신화’의 서막이 열렸다. 하지만 원윤종 조와 윤성빈이 훈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훈련 환경이 척박했다. 당시 이들이 받은 선수 지원금은 한 달에 40만 원 안팎. 썰매가 없어 국제 대회를 나갈 때면 낡은 썰매를 빌려 타야만 했다. 윤성빈의 ‘호랑이 연고’는 열악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기 전에 몸에 바르는 웜업 크림 대신 윤성빈은 알싸한 냄새를 풍기는 연고를 발라 해외 선수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오른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윤성빈은 “내 성적이 좋아지니까 그 연고를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고, 그 연고를 바르는 선수가 늘어났다”며 웃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80kg 안팎의 몸무게를 유지했던 원윤종과 서영우는 썰매의 가속도를 높이기 위해 몸무게를 100kg 가까이 늘려야 했다. 하루 세 끼에 더해 간식 야식까지 5번 더 먹었다. 하루에 밥을 열 공기 먹은 적도 있다. 체계적 식단을 만들어 줄 사람이 없어 이용 총감독이 사비 등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으며 살을 찌웠다. 윤성빈도 75kg이던 몸무게를 90kg까지 늘렸다가 최고 속도를 내는 데 알맞은 86kg을 유지하고 있다. 태극전사들이 흘린 땀방울이 이제 결실을 맺을 순간을 맞았다. 평창 올림픽이 드디어 막이 오른다. 강릉=정윤철 trigger@donga.com·평창=김재형·임보미 기자}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민유라(23)-겜린 알렉산더(25) 조가 음악에 포함된 ‘독도’ 가사 때문에 음악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다. 민유라 조는 프리댄스 배경음악으로 가수 소향의 ‘홀로 아리랑’을 사용한다. 논란이 된 부분은 노래 가사 중 ‘독도야 간밤에 너 잘 잤느냐’라는 구절이다. 6일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가사에 독도가 포함된 음악을 올림픽에서 사용해도 되는 것이냐는 팬들의 질의가 많았다”면서 “자칫 독도 가사 때문에 실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해 문제가 없는지를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 문의해 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ISU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독도 가사 사용 가능 여부를 최종 확인할 예정이다. 연맹 관계자는 “IOC는 올림픽에서 스포츠에 정치적 이슈와 색깔이 반영되는 것을 금지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 대표팀 박종우가 ‘독도 세리머니’를 펼쳤다가 메달 박탈 위기에 처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민유라 조는 원곡과 독도 가사를 빼고 새롭게 편집한 곡의 두 가지 버전을 준비해 놓고 있다. 남북이 평창 올림픽 공동입장 시 독도가 빠진 한반도기를 사용하기로 하는 등 한반도기의 영토 표시를 놓고 논란이 생긴 가운데 피겨 종목의 음악 수정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일부 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우리나라 땅에서 경기를 하는데 왜 가사에 독도를 사용할 수 없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관중이 독도 가사를 불러줘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관중은 경기장에서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할 수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관중이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기를 가져오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고 말했다. IOC는 이날 “관중의 한반도기 사용은 (선수들의 한반도기와는) 다른 문제다. 만약 어떤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 상황을 보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차준환(17)은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톱10 진입이 현실적인 목표다.”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차준환의 지도자인 브라이언 오서 코치(캐나다)는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오서 코치는 6일 강원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차준환의 첫 공식 훈련을 지도했다. 오서 코치에 따르면 차준환은 올림픽 남자 싱글 경기에서 4회전 점프를 1번(프리스케이팅)만 시도할 예정이다. 오서 코치는 “차준환은 아직 어린 선수다. 4회전 점프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차준환이 발목 부상으로 고전했기 때문에 신체에 무리가 많이 가는 4회전 점프에 집중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연기를 우선시한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습을 마친 차준환은 “연습 시작 전에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을 환영합니다’라는 장내 안내방송을 듣고 올림픽에 참가하게 됐다는 실감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생애 첫 올림픽인 만큼 실수 없는 클린 연기를 펼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날 오서 코치는 대한체육회가 제공한 ‘팀 코리아’ 패딩과 한국 대표팀 소속 AD카드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오서 코치는 이번 올림픽에서 차준환 외에 하뉴 유즈루(일본)와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스페인) 등 5개국에서 온 5명의 선수를 지도한다. 오서 코치는 “같은 클럽에 소속된 다른 코치들이 스페인과 일본 팀의 AD카드를 받았고 나는 한국을 택했다”면서 “한국팀의 옷과 AD카드를 착용해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서 코치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는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했다. 한편 북한 페어스케이팅 렴대옥(19)-김주식(26) 조는 이날 은사와 재회했다. 지난해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 전지훈련 당시 지도자였던 브뤼노 마르코트 코치(캐나다)와 만난 것이다. 북한 페어 팀 훈련장에 나타난 마르코트 코치는 렴-김 조의 점프 동작 등에 대해 조언을 하는 등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마르코트 코치는 “렴-김 조의 실력이 지난해 여름보다 향상됐다”고 말했다. 그는 “렴-김 조를 도와주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다. 선수들과 정치적인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두 선수는 물론 북한 코칭스태프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단복에 부착된 한반도기 패치(사진)에서 독도가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단일팀 선수들은 5일 흰색 패딩을 입고 강릉 관동하키센터에 도착했다. 흰색 패딩과 훈련복 왼쪽 가슴 부위에는 독도와 울릉도가 그려진 푸른색 한반도기 패치가 부착됐다. 패딩 외투는 선수들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남북 공동입장 때 입을 단복이다. 4일 인천 선학링크에서 열린 단일팀의 평가전 때도 경기장에 독도와 울릉도가 포함된 한반도기가 걸렸다. 이날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게양된 깃발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의 영유권에 관한 일본의 입장에 비춰 수용할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다”라고 반발했다. 앞서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할 때 기수가 들고 나올 한반도기에는 독도가 빠져 있다. 이는 1991년 남북합의의 전례를 따른 결과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조직위 방침과 다른 단일팀 단복의 한반도기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애초에 선수들이 사용할 패치는 두 개 제작됐다. 체육회 관계자는 “옷은 하나이고 패치는 독도와 울릉도가 포함된 것과 빠진 것 두 개로 보면 된다. 4일 평가전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주관 행사여서 독도가 그려진 패치를 사용했지만, 개회식 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행사에서는 독도가 빠진 패치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한반도기의 영토 표시는 과거에도 논란이 많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때 울릉도를 그려 넣었다가 양측 합의에 어긋나 수정액으로 지우기도 했다. 2003년 아오모리 겨울아시아경기 땐 울릉도와 독도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독도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개최국 일본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2006 도하 아시아경기 땐 독도가 없는 한반도기가 사용돼 논란이 일었다.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인기 아이돌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강릉아이스아레나 지하 연습링크 위로 가슴에 인공기가 새겨진 트레이닝복을 입은 북한 피겨스케이팅 페어의 렴대옥(19), 김주식(26)이 스케이트를 신고 들어섰다. 링크 위에는 먼저 도착한 한국의 김규은(19), 감강찬(23)과 일본의 스자키 미우(19), 기하라 류이치(26)가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40여 분간의 공식 훈련 동안 남북 팀은 각자의 훈련에 집중하면서도 눈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전했다. 이들의 훈련을 보기 위해 내외신을 포함해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남북 페어 대표팀이 5일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함께 훈련을 했다. 전날까지 B조에 속했던 북한 선수들이 C조로 그룹을 옮기면서 이날 첫 공식훈련을 한 한국과 같은 시간 같은 링크에 섰다. 남북 페어팀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김규은, 감강찬은 지난해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북한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현지에서 캐나다 브뤼노 마르코트 코치의 지도를 함께 받았다. 전지훈련 당시 한국은 김규은의 어머니가 만든 김밥을, 북한은 김현선 코치가 몬트리올 현지에서 담근 배추김치를 전하며 왕래했다. 김규은은 동갑내기 렴대옥을 대옥이, 감강찬은 김주식을 주식이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피겨 단체전 남북 단일팀 논의가 진행되면서 김-감 조 대신 북한의 렴-김 조가 출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감강찬은 논의가 나오는 것에 대해 “기분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면서도 “함께 올림픽에 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감강찬의 바람대로 함께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두 팀은 강릉에서도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4일 강릉선수촌에 입촌한 김규은은 렴대옥의 생일(2일)을 맞아 핫팩과 화장품을 생일선물로 챙겨왔다. 두 선수는 렴대옥과 김주식에게 하나씩 주려고 수호랑, 반다비 마스코트 인형도 챙겼다. 1일 입촌한 김주식은 지난달 함께 출전한 4대륙 선수권 도중 어깨 부상을 당한 감강찬에 대해 “강찬이 어깨는 좀 낫습니까”라며 안부를 물었다. 이날도 김주식은 빠른 걸음으로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면서도 “분위기 좋았습네다”라는 말을 남겼다. 오후 8시 메인링크에서 예정된 훈련도 두 팀 모두 소화했다. 두 번째 훈련에서는 한국 팀의 훈련에 북한 선수들 및 감독도 박수를 보내는 등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김주식이 렴대옥을 들어올리는 리프트 동작에서 자칫 한국 선수들과 부딪힐 뻔한 상황도 있었지만 충돌로 이어지진 않았다. 두 번째 훈련에서 북한 선수는 비틀스의 ‘어 데이 인 더 라이프(A Day in the Life)’ 음악에 맞춰 쇼트프로그램 훈련을 했다. 한편 선물 전달은 첫 번째 훈련 때는 라커룸에서 서로 엇갈려, 두 번째 훈련 때는 한국 선수들이 깜빡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렴대옥은 선물을 받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웃으며 “그게 무슨 큰 거라고 계속 묻습니까”라고 답했다. 분위기가 좋았던 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훈련한 관동아이스하키센터도 마찬가지였다. 4일 인천 선학경기장에서 스웨덴과의 첫 공식경기를 치렀던 대표팀은 5일 새벽 강릉선수촌에 입촌한 데 이어 낮 12시 45분부터 1시간 15분간 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첫 공식훈련을 실시했다. 전날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을 제외한 선수 15명은 이날 세라 머리 총감독의 지시에 따라 분주히 움직였다. 김도윤 코치는 머리 감독을 대신해 목청껏 한국어로 “이해했지?” 등의 소리를 외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북한 선수들은 작전회의 후 김 코치에게 다가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하기도 했다. 머리 감독도 코치진의 통역을 통해 북한의 박철호 감독에게 회의 내용을 일일이 전달했다. 빙판 위 곳곳에서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퍼졌다. 미니게임 도중 한 팀이 된 한국의 정시윤(18)과 북한의 황설경(21)은 훈련 뒤 서로의 퍽을 빼앗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날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남북 선수들도 링크 장 밖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셀카 등을 찍으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강릉=강홍구 windup@donga.com·정윤철 기자}
강원도와 펑황(鳳凰)위성TV가 제작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 다큐멘터리가 펑황위성TV를 통해 방영된다. 홍콩에 본사를 둔 펑황위성TV는 시사, 다큐멘터리 전문 글로벌 위성 채널로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평창 올림픽의 준비 과정과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다큐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전 세계 180여 개국에 송출하는 펑황위성TV는 다큐 전문 프로그램인 ‘펑황파노라마(鳳凰大視野)’를 통해 5∼9일 매일 오후 8시(한국 시간 9시)부터 30분간 5회 연속 방영한다. 펑황파노라마는 중화권에서 골든타임에 방영하는 인기 프로다. 국내에서는 휴대전화에서 한자로 ‘鳳凰秀(펑황슈)’ 애플리케이션을 검색해 설치하면 시청할 수 있다. ‘2018 평창 응답하라’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2009년 미스 차이나 출신이자 현재 펑황위성TV에서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톈퉁 씨가 평창을 직접 방문해 올림픽 준비 과정과 평창의 명소를 돌아보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1회는 평창 올림픽 유치 과정과 올림픽 주경기장 및 홍보관을 안내하고, 2회는 영화 ‘국가대표’ 실제 인물인 김흥수가 출연해 올림픽 주요 종목을 소개한다. 3회에선 나가노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김동성에게 스케이트를 직접 배워본다. 4회는 축제의 도시 정선의 올림픽맞이 현장을 둘러보고, 5회는 올림픽 성화와 메달의 숨겨진 의미를 알아본다.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은 송승환 씨를 만나 들어본 개·폐회식 준비 과정의 에피소드도 볼 수 있다. 프로그램 제작 총괄을 맡은 해피투게더 강만훈 대표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평창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은 중화권에서 관심이 높다. 평창 올림픽과 한국의 문화관광 콘텐츠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한 선수들이 우리 시스템과 전술에 맞춰 잘 연습했다. 북한 선수들이 잘 따라왔다. 이전에는 이런 강국과의 대결에서 이길 거라곤 생각 못 했지만 이제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 역사상 첫 단일팀의 첫 경기를 지휘한 세라 머리 감독은 스웨덴과의 경기를 마친 뒤 웃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4일 인천 선학경기장에서 세계 5위의 강호 스웨덴과 친선경기를 치렀다. 객석에는 대형 한반도기가 걸렸고 남북 선수들은 빙판에 일렬로 도열해 국가 대신 ‘아리랑’을 불렀다. 선수들은 팀 구호인 ‘팀 코리아’를 외치고 빙판에 들어섰다. 1피리어드 한국 박종아의 추격 골이 터지자 벤치에 있던 단일팀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있던 북한 선수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단일팀은 선전을 펼쳤지만 스웨덴에 1-3으로 패했다. 그러나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짧은 훈련 기간 등 우려했던 것보다는 경기력이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단일팀(총 35명)은 북한 선수들(12명)이 지난달 25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도착하면서부터 합숙훈련을 했다. 그러나 한 팀으로 섞여 빙상훈련을 한 것은 지난달 28일부터로 8일에 불과하다. 당초 머리 감독은 “북한 선수 중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는 2, 3명 정도이며 1∼3라인에 들어올 만큼 좋은 선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그는 북한 선수 4명을 엔트리에 배치했다. 부상으로 빠진 한국 공격수들을 대신해 정수현과 려송희(이상 레프트 윙)를 각각 2, 3라인에, 김은향(센터)과 황충금(수비수)을 4라인에 배치했다. 이 중 황충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선수가 경기에 출전했다. 미국 입양아 출신이었던 박윤정도 한국 국적을 회복해 이날 대회에 출전했다. 머리 감독은 정수현과 려송희를 같은 라인에 동시 투입해 빠른 스피드를 살린 반격을 노리는 등 공격수 실험에 주력했다. 4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에서 2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북한 팀 내 포인트 1위에 오른 정수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머리 감독은 “정수현은 터프하고 빠른 경기를 펼쳤다. 정수현이 앞으로도 열심히 한다면 2라인으로 계속 기용하겠다”고 말했다. 정수현은 “북남 선수들이 힘을 합쳐 달리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 본다”고 답했다. 단일팀은 1피리어드에만 3골을 내줬지만 이후 안정을 되찾으며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단일팀 결성 전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 7월 스웨덴과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0-3, 1-4로 모두 패했다. 박종아는 “지난해 스웨덴과 경기하면서 수비력 부족 문제를 인식했다. 수비에 중점을 두고 연습하다 보니 좀 더 좋은 성과를 거둔 것 같다”고 말했다. 머리 감독은 “지난 몇 년간 훈련했던 선수들과 같이 무대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속상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선수들에게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언어 문제가 힘들어 영어로 훈련을 진행했다. 우리의 목표가 메달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전 좌석이 매진됐다. 민중당 소속 청년들도 800명가량 참석했다. 경기 전에는 보수단체 회원 150여 명이 한반도기를 찢고 밟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인천=정윤철 trigger@donga.com / 김재형 기자}
일주일 뒤면 대한민국은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과 함께 ‘축제의 장’이 된다. 전 세계인이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드는 올림픽이지만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선수들이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피겨스케이팅 ‘은반 위 예술’로 불리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스텝 연기가 펼쳐지면 관중은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며 흥겹게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기 시작 전에 선수들이 음악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릴 때는 소란스럽지 않아야 한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환호성이 너무 크면 선수들이 음악을 듣지 못할 수 있다. 연기 시작 타이밍을 놓치면 프로그램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연기를 펼칠 때는 관중의 경기장 내 이동이 금지된다. 연맹 관계자는 “피겨 채점 요소 중 하나는 선수가 관중에게 얼마나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느냐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항상 관중에게 집중한다”면서 “과도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면 선수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실수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기를 마친 선수에게 선물을 던질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인형과 꽃다발의 부속물이 링크에 떨어지지 않도록 투명 비닐에 포장해야 한다. 빙판과 색깔이 비슷한 흰색 편지나 사진은 삼가는 것이 좋다. 이를 치우는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해 치우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 컬링 ‘빙판 위 체스’로 불리는 컬링은 선수가 발판을 출발해 스톤을 놓는 순간까지는 조용한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장반석 믹스더블 대표팀 감독은 “화살이 활을 떠나면 끝이듯이 스톤을 놓는 순간에 투구의 성패가 85% 정도 결정된다. 집중이 필요한 순간인 만큼 관중도 조용히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의 모든 경기장에서는 맥주가 판매된다. 지나친 과음은 삼가야 한다. 과음으로 흥분된 객석 분위기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치를 수도 있다. 캐나다 여자컬링 대표팀의 레이철 호먼은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환경 적응이 중요하다. 관중 소음 등에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봅슬레이, 스켈레톤 스피드스케이팅과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기록경기는 스타트가 전체 기록을 좌우한다. 스타트 순간 응원 도구의 굉음과 관중의 고성은 부정 출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빙상팀 감독은 “스타트를 기다리고 있으면 관중이 내는 작은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까지 들린다”면서 “긴장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소음이 발생하면 선수가 부정 출발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썰매 종목에선 앞선 주자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면 스타트하우스에서 ‘띵동’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맞춰 다음 주자가 출발선에 선 뒤 힘찬 스타트를 위해 발 구르기를 하는 5∼10초가 정적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총감독은 “선수가 출발선에 서 있을 때만은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관중의 배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수가 출발하고 나서 응원을 해주면 사기도 높아지고 힘이 난다”고 설명했다. ○ 쇼트트랙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한국의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 관람법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함성을 지르면 선수들의 위치와 타이밍을 알려 줄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응원은 선수들이 링크에 들어왔을 때와 이름이 호명될 때, 그리고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할 때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관중의 함성이 전략 노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이경 싱가포르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은 “안방경기를 할 때면 뒤에 있던 한국 선수가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할 때 관중의 환호가 커진다. 이 경우 선두에 있어 뒤쪽 상황을 모르는 외국 선수가 소리만 듣고 한국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와 사격이 결합된 바이애슬론은 사격 시에 관중의 배려가 필요하다. 통상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표적을 맞히면 관중이 환호성을 지르는데 이때 사격 중인 다른 팀 선수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박철성 한국 바이애슬론 대표팀 감독은 “사격은 바이애슬론 종목의 순위를 정하는 중요한 순간인 만큼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김재형 기자}
“잠잘 곳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이 들려서…. 아직 온라인 입장권 예매 시스템 장바구니에 담은 관람권을 결제하지 못하고 있네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을 관람하고 싶은 이경원 씨(32)의 말이다. 올림픽 개최지인 강원 평창, 강릉, 정선 지역의 숙소 부족 문제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둘러싼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 여기에 방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말도 들려왔다. 이 때문에 ‘직관’(경기장을 찾아 직접 관람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의 속을 태웠다. 하지만 이 씨의 걱정은 ‘기우’에 가깝다. 숙박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던 강원 지역은 숙소 부족 문제가 아닌 숙소 공실(空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31일 본보가 강원도를 통해 파악한 평창 올림픽 기간 중 숙박업소 계약 현황(1월 26일 기준)에 따르면 올림픽 개최지 및 인근 강원 지역의 총 업소 계약률은 23%에 불과하다. 업소 계약률은 강원 지역(10개 시군)에 위치한 숙박업소 총 3838개 중 올림픽 기간에 1건 이상 숙박 계약을 체결한 업소(896개)를 뜻한다. 총 객실 수 6만5222실 중 계약이 완료된 객실은 2만6778실로 계약률은 41%에 불과하다. 강원도 관계자는 “올림픽을 현장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직도 얼마든지 방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숙소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손정호 대한숙박업중앙회 강릉시지부장은 “요즘 강릉 지역 모텔 주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방을 구한다’는 전화조차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강릉의 관광호텔과 콘도 등은 계약률 100%를 달성했지만 모텔을 포함한 일반 호텔, 여관 등의 객실 계약률은 57%를 기록 중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관광호텔과 콘도는 올림픽 관계자 등을 위해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측에서 계약을 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일반 관람객이 이용하는 모텔 등은 계약률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KTX 개통 등으로 인해 숙박을 하지 않고 ‘당일치기’ 관람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계약률이 저조한 원인 중 하나다. 입장권 예매자 중 숙박을 계약한 사람의 비율은 60∼70%로 예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강릉에서는 한국의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강릉아이스아레나)과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기(관동하키센터) 등이 열린다. 이 때문에 올림픽이 시작되면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이 강릉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강릉 A모텔의 주인은 “경기장에서 가까운 모텔 등은 각국 선수단 관계자나 응원단이 대량으로 계약해 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멀어질수록 방이 많이 남아 있고 최근에는 올림픽을 겨냥해 새로 지은 펜션도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숙소는 늘어난 상태다”라고 말했다. 평창과 정선의 모텔 계약률 상황도 강릉과 비슷하다. 평창 지역의 전체 객실 계약률은 62%다. 평창 관광호텔과 콘도의 객실 계약률은 95%지만 모텔은 40%에 불과하다. 알파인스키 스피드 종목만 열리는 정선은 모텔 객실 계약률이 16%에 불과하다. 오영환 대한숙박업중앙회 평창군지부장은 “일부 모텔과 펜션은 올림픽 기간에 많은 돈을 받고 방을 내주기 위해 지금은 방이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펜션들은 일찌감치 외국 선수단 관계자들이 방을 계약했기 때문에 방이 없는 것이다”라면서 “공실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면담도 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올림픽 개최지 숙박시설 중 관광호텔과 콘도의 계약률은 높다. 그러나 모텔이나 여관, 펜션 등의 계약률은 낮다. 눈높이를 낮춰 모텔에서 머무는 방식을 택하는 관람객은 얼마든지 방을 구할 수 있는 상태다. 관광호텔을 이용하려고 하는 관람객들에게도 아직은 기회가 있다. 이들은 올림픽 개최지 인근 도시로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강원도에 따르면 동해(관광호텔 및 콘도 객실 계약률 71%), 속초(58%), 삼척(53%) 등 올림픽 개최지 인근 지역의 관광호텔 객실은 아직 여유가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강원도에서 자체적으로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해 속초 등 주변 지역에 머무는 관광객을 올림픽 개최지로 수송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고급 호텔을 이용할 계획이 있는 관광객이라면 평창, 강릉, 정선 외 지역의 호텔을 숙소로 잡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척과 고성 등은 모텔 객실 계약률이 1월 26일 기준으로 0%다. 올림픽 개최 지역의 숙소가 공실 사태를 겪는 원인 중 하나는 ‘바가지요금 논란’ 때문이다. 지난해 7월경 강릉과 평창 지역 모텔과 펜션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1박 요금 문제로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당시 일부 업소는 “1박에 50만∼60만 원을 받고 계약을 할 계획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각 지역 숙박업소들의 적극적인 자정 노력 덕분에 현재는 가격이 많이 낮아진 상태다. 과거 방값을 높게 받았던 때부터 가격이 떨어진 최근까지 모텔 계약 요금 평균은 강릉 지역의 경우 21만4000원, 평창은 14만5000원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현재 평창과 강릉 지역의 방값은 더 저렴해졌다. 최근에는 1박에 5만 원짜리 숙소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손세이셔널’ 손흥민(26)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이 측면 공격수를 보강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와 가디언 등은 30일 “토트넘이 파리생제르맹(PSG)의 측면 공격수 루카스 모우라(26·브라질)를 이적료 2500만 파운드(약 377억원)에 영입했다”면서 “모우라가 메디컬 테스트만 통과하면 토트넘 입단이 확정된다”고 전했다. 2013년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1부) 명문 구단 PSG에 입단해 주축 선수로 활약해 온 모우라는 올 시즌 네이마르, 킬리앙 음바페 등 스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가 줄었다. 그는 2017~2018시즌 리그1 5경기에 출전했는데 모두 교체 투입이었다. 모우라는 “PSG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내 자신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말해왔다. 스피드와 개인기가 뛰어난 모우라가 토트넘에 합류하면 같은 포지션인 손흥민은 주전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모우라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빠른 발과 기술을 살리면 어떤 무대에서도 실력이 통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어느 곳에서도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윤철기자 trigger@donga.com}
“평창은 황태구이, 강릉은 생선회가 최고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올림픽 기간에 그 음식들만 먹을 수는 없고…. 먼 훗날에도 한국을 떠올릴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없을까요?” 최근 본보와 함께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과 강릉을 둘러본 캐나다인 레미 란즈밴(27)은 불쑥 이렇게 물었다.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에 민유라(23)와 한 조를 이뤄 출전하는 귀화 선수 겜린 알렉산더(25)도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외국 선수들이 제게 ‘한국에 가면 뭘 먹어야 좋을까’라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은 음식점이 다양해서 소개하기 좋은데…. 강원도는 잘 모르겠네요.” ‘올림픽도 식후경’이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내국인도 ‘올림픽 관람 전후 무얼 먹을까’를 고민한다. 음식 고민에 빠진 관광객들에게는 강원도가 선보인 ‘평창 올림픽 강원 특선음식 30선’을 추천할 만하다. 강원도는 2016년 먹거리 세계화를 위해 평창과 강릉, 정선에서 각각 10개씩 총 30개의 특선음식을 선정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현재 3개 지역 128개 업소에서 특선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해당 음식점을 찾아 음식의 맛과 특징을 알아봤다. ○100% 메밀 ‘간장소스 파스타’평창, 황태칼국수-더덕롤까스도 눈길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더덕향’ 입구에는 특선음식 간판들이 서 있었다. 이 식당은 평창 특선음식 10개 중 6개(메밀파스타, 한우불고기, 황태칼국수, 더덕롤까스, 비빔밥샐러드, 굴리미)를 판매한다. 소설가 이효석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면에 위치한 음식점의 메뉴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메밀 파스타’였다. 봉평에서 생산되는 100% 순 메밀로 만든 면에 간장 소스와 마늘향으로 맛을 낸 파스타는 담백하면서도 메밀면 특유의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식당 주인 김순희 씨(60)는 “외국인들이 파스타를 먹을 때를 대비해 맵거나 짜지 않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음식도 외국인의 기호에 맞춰 독특한 변신을 시도했다. 한우불고기는 평창 대관령 한우로 만들어진 떡갈비와 함께 특별 소스가 나온다. 김 씨는 “외국인 입맛도 고려해 마요네즈와 쌈장을 8 대 2의 비율로 섞은 소스를 곁들인다. 쌈장의 강한 맛과 마요네즈의 부드럽고 순한 맛을 융화시켰다”고 말했다. 음식의 플레이팅도 한우 옆에 소스를 날개 모양으로 배치해 월계관을 형상화했다. 황태칼국수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지락칼국수와 차이가 있다. 칼국수 위에 놓인 황태포튀김을 주목해야 한다. 감자면과 조개육수로 이뤄진 칼국수만 먹다 보면 다소 심심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짭조름한 맛의 황태포튀김을 곁들이면 김치 없어도 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다. 김 씨는 “우리 식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더덕롤까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향이 강한 더덕은 어린아이들이 기피하는 식재료 중 하나다. 하지만 김 씨는 “더덕을 기름에 튀기면 향이 약해지고 단맛이 난다. 여기에 어린아이들이 잘 먹지 못하는 우엉, 도라지 등을 첨가한 뒤 돈가스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학부모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김 씨 등 특선음식을 판매하는 업주들은 지난해 봄부터 면사무소 등에서 음식 수업을 받았다. 그는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이 한국 음식의 다양한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통 살려 매콤새콤 ‘두부삼합’강릉, 두부밥상-크림감자옹심이도 호평강릉시 초당순두부길에 위치한 ‘토박이할머니순두부’에 도착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전통미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현대식 식당과 달리 이 음식점은 초가집을 리모델링했다. 이곳에서는 강릉 특선음식 10선 중 두부삼합과 두부샐러드, 초당두부밥상을 맛볼 수 있다. 두부삼합은 황토색 전골 그릇에 돼지고기(삼겹살)와 묵은지, 두부, 부추, 깻잎 등이 함께 나온다. 돼지고기와 묵은지가 어우러져 매콤한 맛이 느껴지며 달콤한 정선옥수수막걸리와의 궁합이 좋다. 다만 외국인들이 먹기에는 다소 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식당주인 김규태 씨(47)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지난해 강릉에서 피겨스케이팅 대회(4대륙 선수권)가 열렸을 때 일본 등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음식을 좋아했고 맵다는 반응은 없었다”면서 “한국에 왔으니 관광객들이 한국적인 것을 느끼는 것이 문화올림픽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당두부밥상은 쟁반에 밥과 두부찌개, 콩비지, 밑반찬(김치, 삭힌 고추, 감자채나물)이 나온다. 찌개에 고추기름이 들어가 있지만 두부와 함께 먹으면 크게 맵지 않다. 이 음식점은 한 개의 방에만 식탁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좌식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좌식 문화를 체험하면서 강릉이 자랑하는 두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김 씨는 “온돌방이 뜨끈뜨끈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편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웃었다. 강릉의 대표 향토음식 중 하나는 감자옹심이(감자를 강판에 갈아 반죽을 만든 뒤 밀가루 수제비처럼 해먹는 음식)다. 강릉 특선음식에는 ‘크림감자옹심이’가 포함돼 있다. 크림감자옹심이는 부드러운 옹심이에 크림소스를 얹고, 볶아서 기름을 뺀 베이컨과 토마토를 곁들였다. 크림감자옹심이를 판매하는 강릉 만선식당 대표는 “크림감자옹심이만 먹기 위해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올림픽 시작 전부터 히트를 친 메뉴가 됐다. 크림소스가 들어갔지만 우리 업소만의 비법으로 느끼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고소한 나물맛 ‘곤드레비빔밥’정선, 굵은 메밀면 콧등치기국수도 인기매년 관광객 70만 명 이상이 찾는 정선 5일장은 정선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토속 냄새가 물씬 나는 다양한 특산물과 넉넉한 인심을 만날 수 있는 명품시장이다. 2일과 7일 장날과 토요일에는 관광객을 위한 정선아리랑 공연 및 마당극 등 특별공연이 펼쳐진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정선의 문화를 즐기는 동시에 지역 특산물인 곤드레를 사용한 ‘곤드레비빔밥’과 얼큰한 ‘콧등치기국수’를 맛볼 수 있다. 취재진은 5일장길에 위치한 정선 성원식당에서 두 음식의 맛을 체험해봤다. 곤드레비빔밥은 보통의 산나물에 비해 자극적인 향이 없고 부드러운 곤드레를 들기름에 볶고 갓 지은 밥에 여러 나물과 함께 올린 뒤 간장양념장에 비벼 먹는다. 간장양념의 맛과 곤드레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풍미가 난다. 강원도 관계자는 “취향에 따라 좀 더 강한 맛을 원하면 고추장을 넣어 곤드레 비빔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식당 주인인 홍선옥 씨(56)는 “곤드레가 겉보기에는 볼품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향이 심하지 않고 깔끔한 맛에 매료돼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웃었다. 콧등치기국수는 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만들고 메밀면을 삶은 뒤 김치를 얹는다. 얼큰한 맛이 일품인 콧등치기국수는 구수하고 순한 맛의 곤드레막걸리와 궁합이 좋다. 홍 씨는 “콧등치기국수는 이름이 특이해 사람들이 호기심에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콧등치기라는 이름은 쫄깃하고 굵은 메밀면을 후루룩 빨아들일 때 면의 끄트머리가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고 설명했다. 정선 지역 특선음식의 아쉬운 점은 10가지 선정 메뉴 중 4가지(감자붕생이밥, 느른국, 채만두, 옥수수푸딩)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아직 없다는 것이었다. 강원도 관계자는 “올림픽 기간뿐만 아니라 올림픽 이후에도 업주들에게 많은 메뉴를 판매할 수 있도록 권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평창·강릉·정선=정윤철 trigger@donga.com·김배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