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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시장의 경색이 장기화되면서 ‘돈맥경화’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단기자금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단기자금 시장의 대표적인 지표인 기업어음(CP) 금리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 5%를 돌파했다. 최근에는 대기업들마저 회사채 시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단기자금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상위 신용등급인 ‘A1’ 기준 CP 91일물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연 5.02%를 기록했다. 2009년 1월 15일(5.0%)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CP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1.5% 안팎이었지만 급등세를 거듭하면서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CP는 일반 회사채보다 만기가 짧아 빨리 상환해야 하는 데다 금리도 높은 편이라 평상시에는 기업들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회사채 시장이 크게 위축되며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발행 절차가 간소한 단기자금 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금난이 이어지면서 시중은행의 기업대출도 느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은행의 기업 원화 대출 잔액은 1169조2000억 원으로 한 달 새 13조7000억 원 불어났다. 2020년 5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대기업 대출도 9조3000억 원 늘어 10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폭의 증가를 보였다. 한은은 “기업의 자금 수요가 지속되는 가운데 회사채 시장이 위축돼 기업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은행권은 기업들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채권 매입 등 유동성 공급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20개 주요 은행장들은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간담회를 열고 단기자금 시장 안정을 위해 CP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채권시장의 불안과 기업들의 자금난이 장기화되면서 이런 시장 안정 대책의 효과도 제한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은 “정부에서 발표한 유동성 공급 대책은 당장의 마중물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충분할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SK그룹의 지주사인 SK㈜는 10일 3년물과 5년물 기업어음(CP)을 1000억 원씩 발행할 예정이다. 회사채 시장의 ‘큰손’이었던 SK㈜가 장기 CP를 발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자금 시장 경색으로 현금 확보에 어려움이 커지자 이 회사는 “자금 조달처를 다각화해야 한다”며 이런 결정을 내렸다. 현대차그룹의 금융 계열사인 현대커머셜도 이달 4일 연 6% 금리로 38일물 CP를 발행했다.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풍부한 대기업들마저 단기자금 시장을 기웃거릴 정도로 채권시장이 잔뜩 얼어붙었다. 대기업은 현금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고, 중소기업은 아예 자금 조달이 안 돼 고민이다. 자금시장 경색이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는 것은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시장의 불안감을 더욱 키운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중소기업 모두 현금 확보 비상석유화학 기업 한화솔루션은 지난달 말 1500억 원어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신용등급 ‘AA―’의 우량 대기업으로서 6% 초반대의 높은 금리를 제시했지만 만기가 짧은 2년물에만 매수 주문이 들어오고 3년물에는 주문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올 1월만 해도 회사채 발행 물량의 세 배가 넘는 주문이 몰렸는데 지금은 높은 이자에도 좀처럼 투자자를 구하기가 힘들다. 요즘 자금시장 경색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을 주로 지원하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받아 대기업 계열사들이 채권 발행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당장 자금 부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곳은 드물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금 확보에 나선 대기업이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 불확실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금을 가능한 한 많이 쌓아둬야 한다”며 “현재의 파도를 견디고 미래 투자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CP라도 발행하는 대기업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신용등급이 좋지 못한 대다수 기업들은 최근 은행 대출도, 회사채·CP 발행도 ‘그림의 떡’이 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들은 회사채는 꿈도 못 꾸고, 은행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다”며 “CP도 투자 수요가 없어 아무리 높은 금리를 줘도 발행을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CP 시장에서도 최고 등급인 A1 정도를 제외하면 그 아래 등급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중소기업은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자금난을 더 심하게 겪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315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요 경영애로로 고금리를 꼽은 기업이 27.5%로 전월(19.3%) 대비 대폭 늘었다. 우량 대기업이 CP 시장으로 몰리면서 채권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입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경북 소재 한 중소기업 대표 A 씨는 “재료비와 인건비가 치솟고 대출 금리도 올라 하루에도 몇 번씩 은행에 손을 벌리고 있다”며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으로 자금이 쏠리다 보니 필요할 때 돈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뒷북 대응도 사태 키워”정부가 이번 사태에 ‘뒷북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기업들의 자금난을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채권시장 대혼란을 촉발시킨 ‘레고랜드 사태’는 강원도가 지급 보증 약속을 불이행하겠다는 선언을 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권) 미행사 역시 금융당국은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해외시장에서 한국물에 대한 인기가 폭락하는 등 파장이 커지자 뒤늦게 흥국생명의 콜옵션 행사로 방향을 틀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정부가 대책을 더 빨리 내놨어야 했다”며 “레고랜드 사태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초반에 상황 정리를 빨리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이호 기자 number2@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회사채 시장의 경색이 장기화되면서 ‘돈맥경화’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단기자금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단기자금 시장의 대표적인 지표인 기업어음(CP) 금리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 5%에 도달했다. 최근에는 대기업들마저 회사채 시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단기자금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상위 신용등급인 ‘A1’급 기준 CP 91일물 금리는 연 5.0%를 기록했다. 2009년 1월 15일(5.0%)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CP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1.5% 안팎이었지만 급등세를 거듭하면서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CP는 일반 회사채보다 만기가 짧아 빨리 상환해야 하는 데다 금리도 높은 편이라 평상시에는 기업들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회사채 시장이 크게 위축되며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발행 절차가 간소한 단기자금 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금난이 이어지면서 시중은행의 기업대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은행의 기업 원화 대출 잔액은 1169조2000억 원으로 한 달 새 13조7000억 원 불어났다. 2020년 5월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대기업 대출도 9조3000억 원 늘어 10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폭이 증가했다. 한은은 “기업의 자금 수요가 지속되는 가운데 회사채 시장이 위축돼 기업 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은행권은 기업들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채권 매입 등 유동성 공급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20개 주요 은행장들은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간담회를 열고 단기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CP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시장 안정 대책과 은행 노력이 결합하면 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 지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채권시장의 불안과 기업들의 자금난이 장기화되면서 이런 시장안정 대책의 효과도 제한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은 “정부에서 발표한 유동성 공급 대책은 당장의 마중물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충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며 “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것으로 보이고, 실물경기와 부동산 시장도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어 추가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호기자 number2@donga.com박상준기자 speakup@donga.com}
올해 내내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원-달러 환율이 이틀 연속 급락하며 1380원대로 돌아왔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6.3원 내린(원화 가치는 상승) 1384.9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400원 밑으로 내려간 것은 9월 21일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처음이다. 환율은 전날에도 18.0원 급락했다. 환율 급락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되살아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증시에서 코스피도 전날보다 27.25포인트(1.15%) 오른 2,399.04에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는 9월 15일 이후 약 두 달 만에 장중 2,400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코스닥지수도 12.85포인트(1.83%) 오른 713.33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투자가는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약 2800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증시 상승과 원화 강세를 이끌었다. 이날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1.25% 오르는 등 아시아 증시도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앞으로 금융시장은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와 소비자물가 상승률 발표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흥국생명이 외화채권의 조기상환(콜옵션 행사)에 실패하면서 그 충격이 다른 국내 금융사들로 확산되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 한국물(국내 기업의 외화표시채권)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액면가 100달러인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거래 가격은 4일 72.2달러를 나타냈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공시 직전인 10월 말 가격(99.7달러)에서 27.6%나 급락했다. 2025년 9월 콜옵션 만기인 동양생명의 신종자본증권도 지난달 말 83.4달러에서 이달 4일 52.4달러로, 2024년 10월 만기인 우리은행 신종자본증권은 같은 기간 87.5달러에서 77.8달러로 각각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내년 8월이 만기인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도 96.6달러에서 88달러(3일 기준)로 가격이 하락했다. 금융사들이 통상 자본 확충의 목적으로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매우 길지만 5년 내에 조기상환하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이 최근 이를 돌연 포기하면서 국내외 채권시장에는 국내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재무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태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콜옵션 미행사가 외국인들의 한국 외화채권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최근 국내 채권시장의 유동성 경색 등도 외국인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일부 기업들의 신종자본증권은 실거래가 전혀 없는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내 기업의 외화채권 인기가 계속 떨어질 경우 발행 금리 상승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최근 기업들의 자금난에 대응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주기를 서로 겹치지 않게 조절하기로 했다. 기업들의 채권이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될 수 있도록 회사채 발행 일정을 최대한 분산하겠다는 뜻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이 한꺼번에 이뤄져서 자금이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채권시장에 자금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 등으로 채권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투자자들의 채권 순매수 규모가 급감했다. 그러나 증시 부진으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개인의 채권 순매수액은 4배가량으로 불어났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총 채권 순매수액은 27조201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46조4945억 원)에 비해 41.5% 감소했다. 투자자별로 보면 자산운용사의 채권 순매수액은 3조869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조530억 원)보다 57.3% 급감했다. 은행과 외국인도 전년 동월 대비 각각 41.0%, 19.9% 순매수를 줄였다. 보험사는 같은 기간 5조3934억 원 순매수에서 2조2319억 원 순매도로 전환했다. 반면 이 기간 개인 순매수액은 5686억 원에서 2조3135억 원으로 4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최근 증시가 침체된 상황에서 금리가 계속 높아진 채권이 대안 투자처로 부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연기금 채권운용역은 “최근 급락하고 있는 주식보다 안정적인 수익 추구가 가능한 채권에 개인들의 관심이 몰린 모습”이라며 “다만 기업 자금난이 악화되며 채권시장이 계속 불안해질 경우 채권의 안전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흥국생명이 외화채권의 조기상환(콜옵션 행사)에 실패하면서 그 충격이 다른 국내 금융사들로 확산되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 한국물(국내 기업의 외화표시채권)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액면가 100달러인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거래 가격은 4일 72.2달러를 나타냈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공시 직전인 10월 말 가격(99.7달러)에서 27.6%나 급락했다. 2025년 9월 콜옵션 만기인 동양생명의 신종자본증권도 지난달 말 83.4달러에서 이달 4일 52.4달러로, 2024년 10월 만기인 우리은행 신종자본증권은 같은 기간 87.5달러에서 77.8달러로 각각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내년 8월이 만기인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도 96.6달러에서 88달러(3일 기준)로 가격이 하락했다. 금융사들이 통상 자본 확충 목적으로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매우 길지만 5년 내에 조기상환하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이 최근 이를 돌연 포기하면서 국내외 채권시장에는 국내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재무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태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이번 콜옵션 미행사가 외국인들의 한국 외화채권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최근 국내 채권시장의 유동성 경색 등도 외국인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일부 기업들의 신종자본증권은 실거래가 전혀 없는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내 기업의 외화채권 인기가 계속 떨어질 경우 발행 금리 상승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최근 기업들의 자금난에 대응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주기를 서로 겹치지 않게 조절하기로 했다. 기업들의 채권이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될 수 있도록 회사채 발행 일정을 최대한 분산하겠다는 뜻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이 한꺼번에 이뤄져서 자금이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채권시장에 자금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흥국생명이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채권 조기 상환을 연기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또다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가뜩이나 자금줄이 막힌 상황에서 해외 채권 시장마저 국내 기업들에 등을 돌릴 경우 재무구조가 불안한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제2의 레고랜드’, ‘제2의 흥국생명’이 나올 가능성을 염려하는 분위기다. 3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한국계 외화채권 규모는 약 249억221만 달러(약 35조3487억 원)로 올해(204억3929만 달러)보다 21.8% 많다. 연도별 외화채권 만기 규모는 2018∼2021년은 100억 달러대에 머물렀지만 올해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24년에는 268억7421만 달러에 이를 예정이다. 흥국생명이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를 포기한 신종자본증권의 상환 일정도 줄줄이 다가오고 있다. 한화생명과 KDB생명은 내년 4월과 5월에 각각 10억 달러, 2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일을 맞게 된다. 동양생명과 교보생명도 각각 3억 달러, 5억 달러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상태다. 신종자본증권은 재무제표상 자본으로 인정되는 장기 채권으로 주로 금융회사들이 자본 확충을 위해 발행한다. 발행 기업이 5년 내 조기 상환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지만 흥국생명은 최근 이를 포기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흥국생명은 물론 국내 금융사와 기업들의 재무 상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이들의 신규 채권 발행에 타격이 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를 시작으로 다른 금융사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DB생명도 13일 예정됐던 3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국내 발행) 콜옵션 행사일을 내년 5월로 변경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투자자와 사전 협의를 통해 행사일을 연기한 것일 뿐 미이행이 아니고 채권시장에 영향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회사채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의 충격은 다른 시기에 비해 그 여파가 클 수 있다”며 “우선 다른 보험사들도 달러 표시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거나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내다봤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콜옵션 행사일을 사실상의 만기일로 인식했던 투자자들의 신뢰가 낮아질 수 있다”며 “2009년 이후 국내 금융기관들은 모두 최초 콜옵션 행사일에 해당 증권을 조기 상환해 왔기에 향후 투자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우리은행이 후순위채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한동안 채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에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이 ‘컨트리 리스크’(국가 신용 위험)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5년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말 0.700%포인트로 5년 전인 2017년 11월 이후 가장 높았다. CDS는 국가나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를 대비한 파생상품으로 국가 경제 위험이 커지면 프리미엄도 상승한다. 국내 기업들의 외화채권 신용 스프레드(미 국채 대비 가산금리) 역시 연초 1.45%에서 지난달 말 1.92%까지 오른 상황이다. 신용 스프레드가 오르면 그만큼 높은 금리로 외화 채권을 발행한다는 뜻으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간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으로 가뜩이나 ‘아시아 리스크’가 부상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자금난이 해외 투자자들의 우려를 더욱 키운다는 분석도 나온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흥국생명이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콜옵션)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향후 국내 기업의 외화채권 발행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얼어붙은 채권시장에 추가 충격이 예상된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금융시장 환경 등을 고려해 이달 9일로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2017년 발행)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신종자본증권은 기업이 발행하는 장기 채권으로 재무제표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이 때문에 엄격한 자본 규제를 적용받는 금융회사들이 자본 확충을 목적으로 주로 발행한다. 흥국생명은 신종자본증권을 새로 발행해 2017년에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상환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시장 투자 심리가 위축되자 신규 발행과 콜옵션 행사를 모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흥국생명의 이번 결정이 금융계에서 매우 이례적이어서 앞으로 한국 기업의 외화채권 발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기관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이 실시되지 않은 것은 2009년 우리은행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이다. 당시 우리은행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자 한국 기업에 대한 평판 리스크가 불거지며 다른 국내 기업의 외화채권 가격이 치솟는 등 연쇄 충격이 있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은 금융계의 암묵적 관행으로 만일 해당 기업이 조기상환을 못 한다면 그만큼 재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며 “이 사건으로 해외채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국내 금융사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가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의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은 이날 예정에 없던 참고 자료를 내고 불안감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정부는 흥국생명의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계획 등을 이미 알고 있었고 소통해 왔다”며 “흥국생명은 경영 실적이 양호하며 보험금 지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라고 강조했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 시장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해 수익을 배분하는 리츠는 올 상반기(1∼6월)까지만 해도 증시 침체와 고물가 시대의 투자 대안으로 꼽히며 각광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자금 시장 경색으로 부동산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은행 예·적금과 채권 금리는 높아지면서 그 인기가 시들고 있다.○ 대표 리츠株, 한 달 수익률 ―20% 밑돌아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한달 간 리츠주의 수익률은 대부분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초 5111원이었던 ESR켄달스퀘어리츠 주가는 지난달 말 3565원으로 한 달 새 30.2% 급락했다. 또 NH올원리츠(―29.5%), 롯데리츠(―26.7%), 디앤디플랫폼리츠(―22.7%) 등도 한 달 수익률이 ―20% 밑으로 떨어졌다. 유가증권시장 리츠 종목 중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을 이용해 산출한 KRX리츠TOP10 지수도 연초 1137.0에서 지난달 31일 794.69로 곤두박질쳤다. 리츠의 하락세는 최근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부동산 및 채권 시장의 리스크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레고랜드 사태는 강원도가 지급 보증했던 레고랜드 사업 관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어음(ABCP)이 약속과 달리 부도 처리되면서 이로 인해 회사채 시장과 부동산 개발 사업에 대한 불안감이 폭발한 사건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올 상반기 리츠 투자가 과도한 주목을 받으면서 주가도 상승했지만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시장 열기가 식으며 직격탄을 맞았다”며 “당장에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리츠의 신규 상장과 규모 확대도 지연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상장을 계획했던 한화자산운용과 인마크리츠운용, 대신자산신탁, 신한리츠운용 등은 운용하는 리츠의 상장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미래에셋글로벌리츠는 운용 규모를 키우기 위한 4600억 원 유상증자 계획을 잠정 철회했고 신규 자산 편입 계획도 연기했다. 지난달 초 SK리츠는 회사채 수요 예측을 진행했는데 960억 원 모집에 910억 원어치의 주문만 들어와 50억 원이 미매각됐다.○ 고금리에 투자 매력 떨어져리츠는 여러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한 뒤 임대료 등 투자 수익을 나눠주는 사실상의 펀드 상품이다. 투자 대상이 주식이 아닌 부동산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일반인도 소액으로 부동산에 간접 투자를 할 수 있고 투자한 돈을 언제든지 매각해 현금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부동산 경기가 안정적일 때는 배당 등을 통해 연 5% 안팎의 꾸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어 퇴직자 등 노후 세대들의 투자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동산 시장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리츠의 투자 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장 침체 우려에 부동산 매각 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기준금리의 가파른 인상으로 은행 예·적금 대비 투자 가치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여기에 레고랜드 사태는 가뜩이나 취약한 투자 심리를 더욱 악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신얼 SK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리츠투자는 안정적인 배당 수익이 장점이었는데 금리 상승으로 인기가 시들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채권과 예금의 투자 매력이 올라갔기 때문에 섣불리 신규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만큼 리츠의 실적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자금시장 경색을 불러온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불신은 아직도 여전한 상태다. 앞으로는 지자체가 보증한 사업이라고 해도 경제성이 없으면 투자를 주저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일각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발행하는 지방채도 당분간 거들떠보지 않겠다는 반응마저 나온다. 정부의 잇단 대책으로 채권시장이 곧 안정을 되찾는다 해도 지자체나 지방 공공기관들이 시장의 신용을 완전히 회복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발행된 지방채는 총 3조4730억 원 규모다. 아직 상환되지 않은 채권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지방채는 1조3303억 원, 내년 상반기(1∼6월)에 만기가 오는 지방채는 2조1864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각종 개발 사업들에 지자체가 보증한 금액까지 합치면 지자체들이 당장 상환해야 하는 규모는 수조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권의 불신이 확산되면서 지자체들은 새로운 채권 발행은 물론이고 기존 채무 상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증권사 채권 담당자는 “금융시장에서 지자체의 채무(지방채)는 사실상 국채만큼 안전한 투자처로 여겨져 왔다”면서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투자자들이 안전 채권에서도 완전히 발을 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B증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지자체가 보증을 한다고 하면 사업에 대한 검토도 없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보증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사업의 경제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전부터 연기금과 보험사들은 안전성이 떨어지는 회사채를 처분해 왔는데 이제는 지방채와 공사채도 팔기 시작했다”며 “당분간 지방채에 대한 신규 매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최근 자금시장 경색과 부동산 시장 리스크에 대응해 상호금융권도 대출을 조이고 있다. 신협중앙회와 농협중앙회에 이어 수협중앙회도 다음 달부터 아파트 집단대출과 부동산개발 관련 공동 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대표적 단기물인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4.59%를 나타냈다.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이 시장으로 몰리면서 CP 금리는 최근 한 달 이상 매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시장 후폭풍이 장기화되고 있다. 공공기관들의 AAA급 최우량 공사채들이 잇달아 발행에 실패하는 가운데 신용보증기금이 지급 보증하는 중소기업 회사채 담보 증권도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신보의 도움으로 어렵게나마 자금 조달을 해온 중견·중소기업의 ‘돈맥경화’가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발행된 신보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5432억 원 중 약 1200억 원이 투자자를 찾지 못해 미매각됐다. P-CBO는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신보의 보증을 거쳐 발행하는 자산유동화증권이다. 자체 신용으로는 시장에서 직접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에 공공기관인 신보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번 P-CBO 발행에는 중견기업 18개사, 중소기업 321개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P-CBO는 요즘처럼 시장의 돈줄이 막혀 있을 때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생명줄 역할을 해 왔다. 특히 금리가 오르고 은행 대출이 어려운 지금 같은 시기에 기업들로서는 고정금리로 장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신보 등이 보증하는 P-CBO는 지난해 5조2312억 원에 이어 올해도 4조4000억 원 이상이 발행됐다. 중소기업 회사채이긴 하지만 신보 보증으로 안전성이 AAA급의 최고 수준으로 오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투자 물량을 채우지 못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번에 미매각이 발생하면서 미달된 물량은 이번 P-CBO 발행에 참여한 증권사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전력채권 등 공사채 발행이 무산되면 해당 공공기관들에만 피해가 가지만 P-CBO에 문제가 생기면 여기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에 여파가 번진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적절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P-CBO의 발행 실패가 이어져 전체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신보도 최근 미매각 가능성을 우려해 자금난이 심각한 일부 건설사 등의 P-CBO 참여를 사전에 막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신보 보증도 안 먹힌다 ‘돈맥경화’ 산업계 전체로 확산단기CP 금리 4.55% 올초의 3배캐피털업계, PF 위험률 84% 최고자금 조달 막혀 ‘부실 폭탄’ 우려 기업들의 자금난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신보의 문을 두드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와 롯데, 효성그룹 계열사들은 올 8∼10월 신보가 보증한 P-CBO로 자금을 마련했다. 현금 확보가 수월했던 대기업마저 신보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시장의 자금 경색이 심해지면서 한전과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들은 잇달아 채권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했고, 이들의 발행 금리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6% 안팎까지 올랐다. 장기 채권 발행에 실패한 기업들이 단기자금 시장에 몰리는 현상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1일물 기업어음(CP) 금리는 27일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4.55%에 달했다. CP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1.55%에 그쳤지만 이후 세 배 수준으로 폭등했다. AA― 등급 회사채 3년물 금리도 5.620%로 전날보다 0.067%포인트 올랐다.○ 캐피털사, PF 부실의 가장 약한 고리로 떠올라자금시장 경색으로 수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가장 빠르게 늘려온 캐피털사들도 금융권의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받고 있다. PF 부실 위험도가 금융업계에서 가장 높은 데다 최근 자금 조달까지 막혀 영세 업체가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캐피털업계의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 위험노출액(익스포저) 비율은 84.4%에 이른다. 저축은행(79.2%) 보험사(53.6%) 증권사(38.7%) 은행(12.9%) 등을 크게 웃돈다. 2013년 말 45.4% 수준이던 캐피털사의 위험노출액 비율은 매년 가파르게 뛰었다. 이는 자동차 할부, 리스 등 자동차금융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캐피털사들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수익성이 높은 부동산 PF 대출을 대폭 늘린 탓이다. 2013년 말 2조 원대에 불과하던 캐피털업계 PF 대출 잔액은 올 6월 말 24조8132억 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캐피털사들은 개발사업 인허가 이전 단계의 ‘브리지론’과 상업시설 대출 비중이 높아 리스크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PF에서 들어온 돈으로 브리지론을 상환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개발사업이 잇달아 지연되면서 브리지론 건전성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또 수신 기능이 없는 캐피털사는 주로 채권을 찍어 자금을 조달하는데 최근 자금시장 경색으로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기업어음(CP) 등의 발행마저 막혔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7일까지 카드·캐피털채 순발행액은 ―2조7423억 원이다. 채권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2조 원 이상 많았다는 뜻이다. 여전채 AA+등급 3년물 금리는 26일 5.926%로 연초보다 3.5%포인트 이상 뛰었다. 국내 자금줄이 막히자 해외에서 돈을 조달하는 곳도 생겼다. 업계 1위인 현대캐피탈은 26일 일본에서 0.98∼1.21%의 금리로 200억 엔(약 1930억 원) 규모의 엔화 표시 채권(사무라이 본드)을 발행했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최근 국내 채권시장 조달 금리가 급격히 올라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 주목했다”고 했다. PF발 위기에 캐피털업계가 먼저 쓰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25일 여전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유동성 현황 등을 점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캐피털사는 신용도가 낮은 곳이 많아 모니터링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최근 정부가 내놓은 ‘50조 원+α(알파)’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에도 단기 자금시장 가뭄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고 신용등급의 공공기관 회사채는 물론 인기몰이를 했던 대형 카드사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채권까지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채권시장 경색으로 금융회사들도 부동산 관련 대출을 잇달아 중단하면서 기업뿐 아니라 대출 실수요자들의 타격마저 우려되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난이 커지자 전날 정부가 국고채 발행을 축소하기로 한 데 이어 시중은행들도 은행채 발행 최소화에 합의하는 등 시장 안정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용등급 ‘AA0’인 현대카드는 27일 1000억 원 규모의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발행을 앞두고 25일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모집 물량은 800억 원에 그쳤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로 우수한 영업 기반을 가진 현대카드마저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정성을 자랑하던 공사채들도 최근 줄줄이 채권 모집에서 물량을 채우지 못하는 굴욕을 겪고 있다. 25일 최고 신용등급인 한국전력공사의 AAA급 한전채는 4000억 원 입찰에서 2000억 원이 유찰됐다. 2년물에만 자금이 몰리면서 3년물 자금 모집에 실패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AAA급인 인천국제공항공사 역시 3년물이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했고, 한국가스공사와 인천도시공사도 모집 물량이 미달됐다. IB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단기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장기 채권은 만기를 오래 기다려야 하는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라며 “해당 기업의 미래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한국공항공사의 채권은 26일 AAA급 공사채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6%가 넘는 금리에 낙찰됐다. 장기물 발행에 실패한 회사들은 자금 조달이 급한 나머지 단기자금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표적 단기 채권인 기업어음(CP) 금리가 치솟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6일 기준 91일물 CP 금리는 4.51%로 2009년 1월 19일(4.64%) 이후 최고치다. 공사채 금리 금융위기후 첫 6%대… ‘돈 흡수’ 은행채 발행 줄인다 ‘50조 대책’에도 돈가뭄‘PF 부실’ 중소 증권사들 자금난 비상… 금융당국, 3조 유동성 지원 돌입대형 증권사는 ‘제2 채안펀드’ 논의… 춘천, 보증금리 13%로 급등 시장은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만으론 단기자금 시장이 안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대책은 어디서 새로운 재원을 마련한 게 아니라 기존 금융사의 출자로 이뤄진 것이라 사실상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라며 “채권시장안정펀드도 회사채 차환 물량의 최대 50%까지만 지원하고, 나머지 50%는 기업이 시장에서 구해 와야 해서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추가 대책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발권력을 이용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한국은행은 고물가에 발목을 잡혀 있어 본격적인 자금 지원을 하기 힘들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금융사에 돈을 빌려주는 금융안정특별대출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고수익 부동산 금융, ‘대형 부실’ 부메랑으로급한 쪽은 최근 수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규모로 투자해온 중소형 증권사들이다. 수수료 인하 경쟁을 통한 개인고객 유치에 한계를 느낀 증권사들은 경기 호황기를 틈타 부동산 개발사업에 자금을 대주고 이를 기반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PF 사업에 열중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금리·고물가로 시장이 침체되고 공사비가 늘어나면서 PF 사업은 오히려 대형 부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한국신용평가의 올 3월 말 기준 집계에 따르면 24개 국내 증권사의 부동산금융 위험액(익스포저)은 총 45조 원가량.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개발 사업 위험액은 증권사 평균 39% 수준이지만 소형사는 49%로 절반에 육박한다. 소매 부문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비교적 공격적으로 PF 사업을 벌여온 탓이다. 앞으로 국내 증권사들이 신용보강 또는 매입보장을 해준 PF는 매달 10조 원 안팎씩 만기가 돌아온다. 만일 만기 때 PF 자산유동화증권을 차환 발행하지 못하면 이는 고스란히 증권사들이 떠안아야 하고 여력이 되지 않는 증권사들은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이에 금융당국은 26일 PF 만기 연장에 어려움을 겪는 증권사를 위해 이번 ‘50조 대책’에 포함된 3조 원의 유동성 지원에 돌입했다. 또 당국과 5개 시중은행은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은행권의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은행들은 현금성 자산을 늘려야 하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에 대응하느라 신용등급이 높은 은행채를 대량 발행하면서 시중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아울러 은행들은 기업어음(CP) 매입 등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KDB산업은행은 2조 원을 증권사 CP 매입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날 금융투자협회는 9개 대형 증권사 임원들을 소집해 ‘제2의 채안펀드’ 조성 등 중소형 증권사에 대한 구제 방안도 논의했다. 다만 부동산 호황기에 역대 최대 이익을 낸 증권사들을 지금 와서 지원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형사의 채권을 떠안아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레고랜드 사태, 지방자치단체 신용에도 타격레고랜드발 자금시장 경색은 기초자치단체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최근 자금시장 경색은 춘천 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도가 당초 약속한 PF 유동화증권의 지급 보증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강원 춘천시에 따르면 이날 춘천시는 동춘천산업단지 개발과 관련된 보증 채무 162억 원의 상환기일을 3개월 연장하면서 기존 연 5.6%에서 연 13%로 오른 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3개월 이자가 2억2680만 원이지만 새 금리를 적용하면 5억2650만 원으로 약 3억 원 늘어난다. 채권자 측은 처음에는 자금시장 경색과 지자체의 신뢰도 하락 등을 이유로 상환 기일 연장 불가와 함께 전액 상환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연일 연고점을 돌파하는 원-달러 환율, 즉 ‘킹 달러’(달러 초강세)로 인해 투자 지형도 변하고 있다. 달러화를 제외한 대다수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투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를 이용해 투자를 한다면 미국 주식 등 달러화 자산의 보유를 추천하고, 여력이 된다면 주식 등 국내 자산의 추가 매수도 권하고 있다. 달러화 강세가 올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국내 주식은 어느 정도 저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이달 17일부터 한 주간 글로벌 주식형 펀드에는 92억1000만 달러가 순유입됐지만, 채권형 펀드에서는 121억9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글로벌 주식형 펀드는 신흥시장에서는 4억6000만 달러가 빠져나갔지만, 선진시장에서는 96억7000만 달러의 순유입을 보였다. 특히 미국 등 북미지역에서만 118억5000만 달러가 몰렸다. 달러화 강세와 이에 따른 환차익 효과를 노리는 글로벌 자금이 선진국 주식형 펀드 시장에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원-달러 환율은 25일 장중 연고점을 경신하는 등 지난달 22일 이후 줄곧 14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연말까지 1400∼1590원 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금의 달러 강세가 한동안은 유지될 것이라는 뜻이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4분기(10∼12월) 말로 갈수록 글로벌 경기 악화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글로벌 실물 경제 침체 가능성을 고려할 경우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존재하며 연말에는 최고 1590원까지도 예상한다”고 말했다.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긴축 스탠스와 유로존의 경기 침체 리스크, 중국 경기 부진,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 여부 등이 지목되고 있다. 이들 요인은 올 연말까지 모두 달러화 강세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 연준의 긴축 기조가 꺾이지 않는다면 달러의 방향성은 바뀔 수 없다고 판단된다”며 “다만 연준의 금리 인상이 내년 1분기(1∼3월) 이후 중단될 것으로 보여 환율도 내년 1분기에는 고점에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황 센터장은 이어 “대중(對中) 수출이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중국 수출이 마이너스를 보이는 것은 국내 경제에 부담”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될 수 있어 원화 약세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달러화 표시 자산, 특히 미국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좀 더 공격적인 투자자라면 미국 주식을 담보로 국내 주식에 투자해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도 추천됐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현재 미국 주식은 무조건 보유해야 하며, 좀 더 위험을 안을 수 있다면 달러 자산을 담보로 국내 주식을 사야 한다고 고객들에게 조언하고 있다”며 “미국 주식 담보 이자율보다 높은 배당주를 매수해 추가 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그간 미국 주식을 중심으로 투자했던 투자자라면 국내 주식을 사기에 좋은 기회라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장기적인 측면에서는 환율 수준을 감안하면 원화 자산의 투자 매력은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달러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의 경우 일부 금액을 원화로 환전해 국내 지수 또는 저평가 종목에 투자하는 전략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내년 이후 달러 강세가 꺾인다면 수입 비중이 높은 상장사들의 주가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향후 환율 하락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대표 업종으로는 음식료업이 지목됐다. 황 센터장은 “달러 강세가 꺾인다면 생활에 필수적인 음식료 업종이 투자에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글로벌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등으로 원자재 수급에 영향이 미칠 경우를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젊은 노동인력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학 전공 간 칸막이를 낮춰야 한다.”(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장기요양 인력 수급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김홍수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25일 열린 ‘2022 동아뉴센테니얼포럼’에서는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노동시장 및 장기요양 인력 수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인구경제학자인 이철희 교수는 이날 ‘인구변화의 노동시장 파급효과와 대응’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장래 노동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 및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10년 안에 발생할 가장 심각한 노동시장 불균형 문제가 청년인력의 급격한 감소에서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젊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는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산업경쟁력과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젊은 인력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력적인 인적자본 공급과 부문 간 이동이 용이한 노동시장 구축, 교육제도의 개혁이 요구된다”며 “대학에서 새로운 학문과 과정 개설을 쉽게 하고 이런 지식·기술 습득 능력을 가르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 신규 채용보다는 기존 직원의 재교육이나 다른 분야 출신 인력의 충원으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경력 단절 문제가 있는 여성의 고용 확대가 인구변화 대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활동인구의 고령화와 고학력화가 동시에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지금은 과거에 비해 고령인구가 훌륭한 인적 자원이므로 정년 연장 등을 통한 이들의 고용 확대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홍수 교수는 ‘인구변화와 장기요양 인력 수급’ 주제의 발표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와 수명 연장 등에 따라 노인 장기요양서비스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인구구조 변화와 일자리 문제, 정책 요인 등으로 인해 양질의 요양서비스 제공 인력 확보가 어려워서 심각한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현재 요양보호사 인력 1인당 돌봄 필요 인구는 1.3∼1.7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2029년에는 1.5∼2.2명, 2044년에는 2.8∼4.1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현재 50만 명 안팎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 노인 장기요양 인력이 2050년에는 최대 186만 명 정도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도 장기요양인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필요하고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력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일자리 수요와 공급 전망이 지속되면 관련 인력 부담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초고령사회는 장기 요양 인력 수급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국내 대형 증권사에서 회사채 발행 업무를 하는 A 씨는 최근 한 대기업의 재무팀 담당자를 만난 후 성과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 기업의 회사채 만기가 왔기에 새로 회사채를 발행해 만기 회사채를 갚는 ‘차환’ 발행을 상의하러 갔지만 기업 측에서 이전보다 눈에 띄게 오른 금리 때문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A 씨는 “이전에는 1∼2%의 금리 정도면 회사채 발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이보다 두세 배 높은 금리를 제시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며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도 요즘 자금 조달이 막혀 답답해한다”고 전했다. 강원도 레고랜드 채권 부도 사태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시장 불안감 등의 여파로 기업들이 유례없는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는 찬바람이 분 지 오래고, 기준금리 인상과 증시 침체로 은행 대출이나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조달도 어려워진 상태다. 유동성이 바닥난 지방의 중소 건설사들은 부도설에 휩싸이고 있다.○ 얼어붙은 채권시장… 기업 자금난 증폭회사채 발행 업무를 주관하는 증권사들은 최근 기업들의 자금난이 매우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B증권사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을 검토하다가 중간에 포기한 기업들이 올해 셀 수도 없이 많다”며 “투자자 부족에 실망한 기업들이 시중은행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고금리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1분기(1∼3월) 7조4478억 원에 달했지만 3분기(7∼9월)엔 2727억 원으로 급감했고 10월부터 시작된 4분기(10∼12월)엔 ―2조4943억 원까지 추락했다.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본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10월 1조 원 이상 회사채 발행 대기업은 14개사로 총액은 34조8054억 원에 달했지만 올해 같은 기간 이 회사들의 발행 총액은 28조5883억 원으로 6조 원 이상 쪼그라들었다. SK와 LG, 현대자동차 등 ‘큰손’ 대기업 그룹이 발행 규모를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회사채 인기가 떨어지면서 금리는 치솟고 있다. 회사채 3년물(AA―등급) 금리는 올 초 2.46%였지만 지금은 5.5%가 넘는다. 심지어 최상위 신용등급으로 시장에서 국채와 같은 대접을 받는 한전채의 발행금리가 5% 이상으로 치솟은 상태다. C증권사 관계자는 “유동성 경색으로 요즘 시장에서는 모집 물량을 다 채우지 못하는 미(未)매각도 속출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자금난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 같다”고 푸념했다. 급한 기업들은 채권 시장에서 은행 대출로 발길을 돌리지만 역시 사정이 여의치 않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리가 치솟는 데다 은행들이 위험 관리 차원에서 대출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은행들도 필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올 3분기 은행채 순발행액은 15조5080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5배에 달했다.○ 건설사들은 ‘연쇄 부도’ 우려도기업들의 자금줄이 막히면서 시장에서는 일부 중소 건설사 및 증권사의 부도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충남 지역 건설업체인 우석건설은 지난달 말 납부 기한이 도래한 어음을 결제하지 못한 탓에 1차 부도가 났다. 이달 말까지인 유예기간 내 상환도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최종 부도의 가능성이 큰 상태다. 최근 회사채 대란은 강원 춘천 레고랜드 조성 사업을 위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가 계기가 됐다. 이 채권은 원래 강원도가 채무 보증을 했지만 나중에 그 약속을 어겨 결국 부도 처리되고 시장에 큰 충격을 남겼다. D증권사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담당자는 “지방정부가 갚겠다고 약속한 채권조차 부도 처리되는데 일반 건설사가 발행하는 채권에 누가 관심을 주겠냐”며 “요즘 여의도는 돈을 구하러 다니는 건설사 직원들로 가득하다”고 설명했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당시 중소 건설사로부터 시작돼 1군 건설사로 번진 ‘연쇄 도산’이 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국, 긴급 채권 매입… 허위 루머도 단속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자 금융당국은 1조6000억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즉각 가동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단기자금시장 불안이 전반적인 금융시장 불안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시장 대응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금융당국은 채안펀드 여유 재원으로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을 직접 매입해 기업들의 돈 가뭄을 막을 방침이다. 채안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10조 원 규모로 조성됐고 2020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20조 원으로 증액됐다. 금융위는 당시 조성된 자금 가운데 남아있는 1조6000억 원을 늦어도 다음 주에 투입하고 순차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은행 건전성 규제도 완화해 유동성 공급에 나설 방침이다. 금감원은 ‘합동 루머 단속반’을 가동해 증권사, 건설사 부도 등 근거 없는 루머를 유포하는 행위를 집중 감시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악성 루머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가 적발되면 신속히 수사기관에 넘길 것”이라고 했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대신파이낸셜그룹이 이화여대 약학대학에 5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전달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발전기금 전달식은 대신파이낸셜그룹이 1996년부터 진행 중인 국민보건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대신파이낸셜그룹은 아산병원과 건국대병원, 전남대병원 등에 수술비를 지원해온 것 뿐 아니라 국립암센터 발전기금, 의료봉사 후원금 등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의료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전달된 기금은 이화여대 약학대학 인재양성을 위한 ‘이화 웨스트캠퍼스’ 건립에 사용될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신약개발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 분야의 국가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 우리나라 미래 산업발전에 기여하고자 발전기금을 전달하기로 했다는 것이 대신파이낸셜그룹 측의 설명이다. 이화여대 약학대학는 1945년 행림원 약학과로 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약대다. 이어룡 대신파이낸셜그룹 회장은 “이번 기금이 미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우수한 여성리더를 양성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며 ““대신파이낸셜그룹은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은 ”후원 기금은 앞으로 이화가 연구와 교육으로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며 나눔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이호기자 number2@donga.com}
경기 성남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의 영향으로 17일 카카오와 계열사의 주가가 폭락했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카카오는 전 거래일보다 3050원(5.93%) 내린 4만835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계열사인 카카오뱅크(―5.14%)와 카카오페이(―4.16%), 카카오게임즈(―2.22%), 넵튠(―1.98%)도 동반 급락했다. 이로써 14일 39조5834억 원이었던 카카오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2조643억 원 증발해 37조5191억 원이 됐다. 카카오는 이날 한때 장중 52주 신저가인 ―9.53%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카카오와 계열사들은 개장 직전 이번 화재와 관련한 재무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공시했지만 증권사들은 이번 화재로 하루 매출이 200억 원 안팎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애플리케이션(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국내 만 10세 이상 스마트폰 사용자 중 카카오톡 사용자는 14일 4112만 명에서 16일 3905만 명으로 207만 명(5.0%) 감소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번에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카카오 금융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비상대응이 적절했는지 전방위 점검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비상대응 계획 매뉴얼과 시나리오 등을 제출받아 그대로 이행했는지 따진 뒤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현장 점검이나 검사에 돌입할 것”이라고 했다.이호 기자 number2@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킹 달러’(달러 초강세) 여파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입물가가 석 달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수입물가가 국내 물가를 끌어올려 고물가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수입물가지수는 154.38로 전달 대비 3.3% 올랐다. 7월(―2.6%), 8월(―0.9%) 두 달 연속 하락세를 보이다가 다시 상승한 것이다. 지난해 9월과 비교하면 24.1% 높은 수준이다. 품목별로는 원유를 포함한 광산품(3.3%), 컴퓨터·전자·광학기기(5.4%)의 상승 폭이 컸다. 지난달 국제유가는 하락했지만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는 하락)하면서 수입물가가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환율은 장중 1442.2원까지 치솟으며 수차례 연고점을 경신했다. 평균 환율(1391.59원)은 전달보다 5.5% 뛰었다. 환율 영향을 제거한 계약통화 기준으로 수입물가는 1.4% 하락했다. 9월 수출물가도 3.2% 올랐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했지만 역시 환율 급등 영향이 컸다. 화학제품(3.9%), 컴퓨터·전자·광학기기(3.4%) 등이 많이 올랐다. 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에 반영돼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강달러 현상이 계속되면서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와 국내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고물가 - 수출부진… 정부, 5개월 연속 “경기둔화 우려” 9월 수입물가 3.3% 상승 고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흔들리면서 정부는 5개월 연속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10월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서 “대외 요인 등으로 높은 수준의 물가가 지속되고 경제 심리도 일부 영향을 받는 가운데 수출 회복세 약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6월 그린북에서 경기 둔화 우려를 밝힌 뒤 5개월째 비슷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속에 글로벌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수출 전망은 악화되고 있다. 지난달 수출액은 1년 전보다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수출 증가율은 6월 한 자릿수로 떨어진 뒤 둔화세가 계속되고 있다. 반면 수입액은 18.6% 급증해 9월 무역수지(―38억 달러)는 25년 만에 6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전날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8.2%)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행보가 금융시장 변동성과 세계 경제의 하방 위험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24시간 점검 체계를 토대로 국내외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한편 금융·외환시장에서 과도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 적기 조치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한국은행이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역대 두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이번 빅스텝으로 가계와 기업의 연간 이자 부담은 12조 원 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2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연 2.50%인 기준금리를 3.00%로 0.50%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올해 7월 사상 첫 빅스텝을 결정한 한은은 8월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듯했지만 다시 보폭을 넓혔다. 한은은 지난해 8월 사실상 ‘제로 금리’에 가까운 수준(0.50%)이던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1년 2개월 새 2.50%포인트를 높였다. 올해 4, 5, 7, 8월에 이어 다섯 차례 회의에서 금리를 연속 인상한 것은 한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은이 7월에 이어 다시 빅스텝을 밟은 건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통해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 상승으로 물가의 추가 상승 압력과 외환 부문의 리스크가 증대되고 있는 만큼 정책 대응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추가 빅스텝 결정의 배경이 됐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 상단은 3.25%로 금리 차는 0.25%포인트로 좁혀졌지만 연준이 다음 달 초 다시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예상돼 향후 금리 차는 1%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금리 차가 벌어지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빅스텝으로 가계와 기업의 연간 이자 부담은 12조2000억 원 더 늘고, 경제성장률은 0.1%포인트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금리 인상 기조는 앞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가 3.5% 수준까지 오를 것이란 시장 전망에 대해 “다수 위원이 말한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사실상 인정했다. 빅스텝에 성장률 0.1%P 더 내려갈듯… 이창용 “물가 잡는게 우선”역대 두번째 ‘기준금리 0.5%P 인상’“부동산 가격이 추가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빚을 낸 많은 국민이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죄송한 마음이지만 일단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날 역대 두 번째 빅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결정의 불가피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금리 인상 속도가 유례없이 빨라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준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고물가-고환율 위기를 타개하고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게 시급한 과제라는 뜻이다. 10년 만에 기준금리 3% 시대가 찾아오면서 실물경제와 자산시장, 가계수지 등 경제 각 부문에 상당한 충격이 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민 고통 죄송하지만 물가 잡는 게 우선”이 총재는 이날 “지금 금리 상승 속도가 국제 경제 상황 때문에 이전과 비교해 가장 빠른 시기”라며 “안타깝게도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지금 물가 오름세를 잡지 않으면 나중에 실질소득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5%대 물가가 계속되면 원인과 상관없이 물가 중심으로 경제 정책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일단 물가 잡기가 어느 정도 되면 그 다음에 성장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고금리로 인한 여러 부작용에도 고심 끝에 빅스텝을 결심한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이 총재는 이번 금리 0.5%포인트 상승으로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내릴 것으로 봤다. 다만 작년 8월부터 이어진 금리 인상 행진으로 현재 5%대인 물가상승률은 내년 상반기까지 1%포인트 정도 하락할 수 있다고 봤다. 한은의 빅스텝 결정은 최근 급격히 커진 외환시장 변동성도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 총재는 “9월 들어 원화가 급격히 절하된 게 빅스텝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며 “환율의 급격한 절하(원화 가치 하락)는 수입 물가를 올려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는 속도를 상당기간 지속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고환율이 고물가로 이어지는 현상을 차단하기 위해 긴축의 강도를 높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경기 둔화해도 금리 올려야”한은의 가파른 금리 인상에 향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중금리의 상승은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둔화시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작용한다. 또 증시, 부동산에서 은행 예금 등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자산시장이 충격을 받는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걱정하면서도 고물가 타개가 우선이라는 한은의 인식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의 빅스텝이 경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겠지만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며 “지금으로서는 물가나 외환시장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대폭 올리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금리 상승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핀셋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주택 구매를 위해 저금리 상황에서 무리한 대출을 받았던 청년층에 대한 지원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총재는 “재정이 많은 역할을 해줘야 하며 취약계층을 타깃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이호 기자 number2@donga.com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