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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려가려고 기차역으로 가던 참인데…. 허, 이것도 연(緣)이 이어질라 그러나 봅니다.” 16일 오전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한국화가 이호신 씨(56)는 달변 속에도 말끝마다 ‘인연’을 되뇌었다. 짧은 서울 일정을 마치고 경남 산청의 자택으로 향하던 그를 붙잡아 앉혔으니 행운이야 기자에게 따른 셈. 하지만 덜렁 단출한 가방 하나 멘 이 화백은 자신이 걸친 잿빛 개량한복을 가리키며 “운이 아니라 연”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 옷도 우연히 친분 쌓은 지인이 선물한 거요. 뭔가 이뤄지려면 꼭 인연이 작용한다니까. 이번에 낸 화첩도 연이 끊기면 안 되는 거거든. 창고가 불타 500질 겨우 남긴 것도 안타깝지만 그 탓이에요. 절도 백날 가야 소용없어. 기운과 닿아야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건 사람 맘대로 되는 게 아냐.” 그래서일까. 이 화백이 이달 초 펴낸 ‘가람진경’과 ‘지리산진경’(다빈치)엔 왠지 모를 아련함이 서려 있다. 지리산진경에서 최근 댐 건설 문제로 논란이 큰 용유담을 마주하면 그 짙은 푸름 앞에 인간의 욕심이 덧없다. 가람진경 첫머리에 실린, 2005년 산불에 타 사라져버린 양양 낙산사의 옛 전경은 뭉클함을 넘어 숙연하다. 왠지 이 화백이 짚은 인연이란 놈이 그리 정겹지만은 않다. “그거야 보기 나름입니다. 그래도 낙산사가 세상 뜨기 전, 붓을 들도록 기회를 줬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용유담도 요새 말 많던데, 혹시 압니까. 그림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 아름다운 자연문화재를 지키는 데 일조할지…. 연은 좋고 나쁨이 없거든. 사람이 문제지.” 그런 이 화백에게도 참으로 애달팠던 연이 있었다. 남원 실상사다. 평지에 자리한 사찰이라 구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20년 넘게 드나들었는데 갈수록 생경해졌다. 영 ‘사의(寫意)’가 잡히질 않았다. “사의란 게 뭐냐. 그림을 그리는 뼈대입니다. ‘뜻을 그린다’ 정도로 풀면 되겠네요. 인물이나 풍경을 그냥 화폭에 옮겨놓는 건 화가가 아니죠? 예를 들어 사찰 문화재를 그릴 땐 창건한 이의 마음이나 절을 감싼 자연의 속내를 짚어야 해요. 실상사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근데 2010년인가…, 입구 돌장승이 딱 말을 건네는 거예요. ‘이젠 밥값 해야지’라고. 그러곤 한달음에 풀었지, 거참.” 130여 점에 전국 사찰 83개를 담았으니 이제 ‘절 그림’은 매조지가 된 걸까. 이 화백은 “뭔 소리냐”며 눈을 부라렸다. 고창 선운사, 영천 은혜사, 강화 전등사, 해남 대흥사…. 아직 연이 닿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단다. 평생 길을 벗 삼아 발품을 팔았는데, 그 팔자가 어디 가겠냐며 껄껄거렸다. “경남 산청에 대원사란 절이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됐는데, 6·25전쟁 때 전소했어요. 근데 광복 후 그 터를 폭력배들이 끼고 앉아버린 거라. 그걸 법일이란 스님이 법력으로 내쫓고 다시 소담한 사찰로 세웠어요. 문화재적 가치는 좀 떨어질지언정 절이 품은 스토리가 깊죠? 이름만 퍼진 대사찰은 싫네요. 그런 연이 풍기는 자락으로 다닐랍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국졸로 시집와 평생 부산 부전시장에서 철물점을 꾸린 엄마. 호호백발 60세에 중학교를 들어가더니 지금도 방송통신대를 다니며 향학열을 불태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혼자 컴퓨터까지 배워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면? 이 책은 엄마의 담담한 글이 빼곡한 비밀 일기장과,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한 딸이 그에 화답하듯 쓴 글을 함께 묶었다. 부제처럼 ‘숲 속 오솔길에서 (만난) 열네 살 소녀’의 감성을 지닌 어머니와 딸의 ‘우정’, 그 소박하되 정갈한 마음이 시골 밥상마냥 훈훈한 온기를 전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결혼식 구경은 재밌다. 요즘 뻔한 예식이 많아 지겹긴 해도, 수줍은 신부나 얼어붙은 신랑의 표정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하물며 왕가의 결혼은 세계적 관심거리다. 유럽 왕자나 공주의 화려하고 장중한 혼례엔 찬탄과 시샘이 별처럼 쏟아진다. 한반도 ‘로열패밀리’의 결혼도 이에 못지않았으리라. ‘왕실의 혼례식 풍경’은 조선시대 왕과 세자, 세손의 가례(嘉禮·왕실의 혼례)에 큼지막한 돋보기를 들이댄 책이다. 가례도감의궤나 국조오례의 등을 샅샅이 뒤져 결혼이 진행되는 절차나 과정을 빠짐없이 전달한다. 조선 궁중의 웨딩마치는 그림이나 문서 자료가 상당해 당시 분위기나 전후 사정을 꽤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왕실의…’는 무엇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조선의 가례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중국 주나라 때부터 이어진 동북아시아 혼례 의식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정착 발전하는지, 같은 조선시대라도 시기나 지위에 따라 규모나 절차가 어떻게 다른지를 일러준다. 복식사(史)에 정통한 이은주 안동대 교수가 주 집필한 결혼 당사자와 하객들의 복장이나 머리 모양 얘기도 눈길을 끈다. 특히 이 책은 가례도감의궤에 왕조의 혼례 행렬도가 실린 사례들에 초점을 맞췄다. 현존 사료 가운데 가장 시기가 이른 소현세자와 세자빈의 혼례부터 마지막 왕 순종이 대한제국 황태자 시절 치른 결혼식까지 연대기순으로 꼼꼼하게 분석했다. 평소 검소함이 몸에 배어 지나침을 경계했던 영조의 가례와 세도정치기에 들어서 왕권이 약해지자 오히려 화려한 꾸미기를 지향하는 철종의 혼례를 대비해 가며 살펴볼 기회도 제공한다. 사료에 근거한 학술서이긴 해도 구석구석 숨겨진 뒷얘기도 적지 않다. 사치에 질색했던 영조가 1704년 숙종의 제4왕자로서 정성왕후와 맺어진 혼인은 “법도를 넘어 비용이 만금(萬金)을 헤아릴 정도였다”(숙종실록)고 한다. 아마도 이때의 기억이 영조가 이후 허례허식을 지양하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3년 상을 치른 영조는 1759년 66세에 신하들의 간청을 못 이겨 15세 꽃다운 처녀 정순왕후를 아내로 맞이한다. 영조는 원래 성정도 그러했지만 계면쩍었던지, 연상(宴床·잔칫상)이나 준화(樽花·국가 행사에 쓰던 조화) 등을 죄다 치우라고 명했다. 영조가 승하한 뒤 정순왕후가 끝없이 권력욕을 불태웠던 건 그런 결핍의 나비효과는 아니었을까. 행간(行間)에 잠깐씩 멈춰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는 맛이 있다. 다만 글이 살짝 딱딱하다. 한자 많은 거야 어쩔 수 없더라도, 몇몇 장(章)은 문장이 너무 길고 고풍스럽다. 학술대회에 발표한 논문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교수님들, 배움 짧은 우리네 처지도 좀 헤아려 주세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말 특집호에 황당한 기사 하나를 실었다. 2012년을 결산하며 “올해는 킴(Kim)들이 지배”했노라 단언했다. 여기서 킴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미 여배우 킴 카다시안을 일컫는다. 한 명은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됐고, 다른 이는 미국 미디어를 통치했단다. 타임이 보기에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배우자가 가수 출신이고, 둘 다 ‘섹시 아이콘’으로 뽑혔다. 물론 김 위원장은 한 매체의 조소였다. 중국 언론은 정색 보도했지만. 유명한 부친(로버트 카다시안은 OJ 심슨의 변호사)과 무기 선호 취향, 지난해 미사일 혹은 패션 브랜드 ‘론칭 파티’를 선보였단 면도 닮았다. 게다가 놀라지 마시라. 김 위원장의 트위터가 유일하게 팔로하는 인물이 카다시안이다. 이쯤 되면, ‘여제 킴’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터. 타임의 경쟁지 뉴스위크도 도대체 왜 그리 미국인들이 난리인지 의문이 들었나 보다. 최신호에 “킴이 미국을 접수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다”란 기사를 내놓았다. 1980년생인 이 연예인은 사실 배우라 부르기도 난감하다. 데뷔 10년이 넘었는데, 개봉예정작을 포함해 달랑 영화 4편에 출연했다. 대부분 그해 ‘최악의 연기’로 꼽혔다. 뭇매를 비껴간 작품은 2003년 불법 유출된 섹스비디오뿐이다. 대중은 그녀를 피해자라 안쓰러워했지만, 뒤에 조용히 유통제작사와 합의해 500만 달러(약 53억 원)를 챙겼다. 이렇게 눈도장을 찍은 그의 사교계 정복은 2007년 리얼리티 TV쇼 ‘키핑 업 위드 더 카다시안(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부터 본궤도에 오른다. 카다시안가(家) 들여다보기쯤으로 해석되는 이 방송은 뉴스위크 표현대로 참 “당황스럽다(baffled)”. 요즘 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던 카다시안과 자매들은 상류층 인사마냥 굴며 실제 연애와 결혼, 불륜 등 말초적 내용을 세세히 공개해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심지어 최고급 애완견을 고르는 ‘별것 없는’ 에피소드가 유튜브 조회수 50만 건을 넘었을 정도다. 이후 시리즈는 지난해 7편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의 파급력은 갈수록 커져 얼마 전 출간한 어쭙잖은 소설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역시 미국은 메릴린 먼로, 패리스 힐턴처럼 멍청한 미녀에게 열광한다”는 한 영국 평론가의 비아냥거림은 잠시 접어두자. 미 대중매체가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대서특필하는 현 상황을 그런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긴 어렵다. 오히려 뉴스위크의 ‘웰시 판타지(Wealthy Fantasy)’가 더 설득력 있다. 변변찮은 인물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그런 행운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분석이 있다. 맞건 틀리건,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네들의 리얼리티 방송은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저줏거리가 되진 않는다. 쇼는 쇼고, 오락은 오락이니까.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최근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 가상부부로 출연하는 여배우는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났다고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진정성이 없었단 논리다. 지난주 방송에선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그런 상황을 한 연기자의 책임으로 모는 방송 관계자들, 20대 여성에게 도를 넘어선 악담을 퍼붓는 일부 시청자들. 그들의 진정성은 도대체 뭔지 궁금하다.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중국 지린(吉林) 성의 광개토대왕비 인근에서 세 번째 고구려비가 발견됐다고 중국 정부가 최근 발표했다. 국내 학계에서는 발표가 사실일 경우 광개토대왕비나 충주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보다 이른 시기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은 4일 ‘중국문물보’에 “지린 성 지안(集安) 시의 마셴(麻線) 향 마셴 촌에서 고구려 비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29일 한 주민이 발견한 것을 검토한 결과 고구려 비석이 분명하다는 내용이다. 이는 여호규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16일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에 게재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발견된 비석은 높이 173cm, 너비 60.5∼66.5cm로 위아래 부분이 부서진 상태다. 정면 글자는 한자 예서체로 10행 218자가 새겨졌는데, 현재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140자다. “시조 추모왕(주몽)이 나라를 창건하니라(始祖鄒牟王之創基也)” “하백의 손자(河伯之孫)” “(추모가) 나를 일으켜 후대로 전해졌다” 등의 구절은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내용과 비슷하다. 국내 학계에서는 특히 “연호(煙戶·일반적으로 인가·人家를 의미)를 배치해 사시(四時)로 제사에 대비하게 하고”와 “부유한 자들이 수묘인(守墓人·묘지관리인)들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는 구절에 주목하고 있다. 왕명을 전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광개토대왕비에는 “광개토대왕이 조선왕(선왕)을 위해 묘에 비를 세우고 그 연호를 새겨 섞이지 않도록 했다”는 구절이 있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광개토대왕비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이라고 봤을 때 ‘왕의 지시’가 담긴 이 비석은 광개토대왕 통치 시절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베이징=이헌진 특파원 ray@donga.com}
중국 정부가 4일 공개한 비석은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비석 2기보다 앞선 시기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내 학계의 평가다. 중국 국가문물국은 지난해 7월 발견된 비석을 약 6개월에 걸쳐 연구했으며 고구려 비석이라고 결론을 내린 데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문물보에 따르면 첫 발견자는 지안(集安) 시 마셴(麻線) 촌 주민 마사오빈(馬紹彬) 씨다. 지난해 7월 29일 마 씨는 마을 근처 강 속에서 ‘네모나고 긴 돌’을 자세히 살피다 글씨가 보여 정부에 신고했다. 국가문물국은 즉시 조사팀을 파견해 검토한 결과 고구려 시대 역사를 기록한 비석이라고 결론 내렸다. 비석은 납작하고 직사각형이며, 위쪽은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진다. 두께는 12.5∼21cm에 무게는 464.5kg이다. 앞뒤를 평평하게 만든 뒤 글씨를 새겼는데, 뒤쪽은 누군가 훼손한 듯 마모가 심해 글자를 알아볼 수 없다. 앞쪽은 상대적으로 글자가 뚜렷하나 상단은 마모가 상당해 읽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한자 예서체인 정면 글자는 음각으로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새겨져 있다. 중국 학계는 광개토대왕비처럼 추모왕(주몽)이나 하백(주몽의 외손자)을 언급한 부분을 고구려 비석으로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다. 또 발견 지점이 고구려 왕릉인 천추묘(千秋墓)에서 동남쪽으로 456m 떨어진 곳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지린 성 문물감정위원회 상무위원인 왕즈민(王志敏) 퉁화(通化) 시 문물보호연구소장은 “비석의 재질이 지린 성 장수왕릉(장군총)의 석재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국내 학계는 “연호를 배치해서 사시(四時)로 제사에 대비케 하고”와 “부유한 자들이 수묘인들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를 당대 왕이 선대 왕릉의 관리를 명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즉, 광개토대왕비가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며 세운 비석이라면 이번 비석은 그 선대인 광개토대왕이 이를 지시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분석이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새로 발견된 비석을 직접 보질 않아 단정 짓긴 어려우나 문맥상 광개토대왕비를 앞선 것 같다”며 “4∼6세기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충주고구려비보다도 먼저 제작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석비 감정에 참가했던 퉁화 시 사범학원 고구려연구원 겅톄화(耿鐵華)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석비에는 고구려 왕릉 묘지기들의 매매 문제, 20명 묘지기 우두머리의 이름이 새겨졌다”며 “고구려가 묘지기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광개토대왕이 선왕을 위해 세운 비로 보인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베이징=이헌진 특파원 ray@donga.com}
쪽빛은 푸르다. 그래서 이중적이다. 푸르기에 상큼하고, 푸르기에 아련하다. 옛 시절, 새색시는 첫날밤 쪽빛 이불을 다리며 볼을 붉혔다. 구중궁궐 대왕대비는 홀로 된 한숨을 씹으며 쪽빛 치마를 지었다. 남색(藍色)이란 말론 차마 형언할 길 없는 우리네 마음. 쪽빛은 삶의 꽃망울과 뒤안길을 보듬어 아우른다. 이병찬 선생(81)이 쪽빛에 사로잡혔던 세월도 그 탓이리라. 염색연구 30여 년. 그 첫 연정은 지금도 시리도록 은은하게 맴돈다. 쉰이 가깝던 1978년, 일본인 친구가 자랑스레 꺼내든 기모노의 색감은 영 잊혀지질 않는다. “분했어요. 어쩌면 저리 고울까. 당시 우리 땅에선 식물염색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거든요. 분명 저보다 훨씬 나았을 텐데. 그런데 웬걸. 질시는 금세 각오로 넘어갔어요. 오냐, 좋다. 내가 찾아내마. 조선 색을, 한반도의 빛을. 그때 떠오른 게 푸르디푸른 빛이었어요.” 허나 굳센 다짐을 현실은 받쳐주지 않았다. 배우려 해도 가르치는 데가 없었다. 결국 일본으로 건너가 6개월 염색 기초를 익혔다. 귀국 후 곧장 문헌을 밤낮으로 훑고 전문가들을 구슬렸다. 그렇게 찾아낸 게 청대(靑黛), 마디풀과 쪽이었다. 고생이야 말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천운이 따랐을까. 식물학자인 고(故) 이창복 서울대 교수와 만났다. ‘규합총서’에 나오는 둥근 잎사귀를 가진 쪽을 얻은 행운도 고인 덕분이었다. 평생 은인의 독려에 힘입어 쪽을 기르고 주저앉길 3년여. 쪽 앙금을 석회와 당구레(쪽 염색 때 젓는 나무막대)질한 뒤 가라앉혀 발효시키는 전통기법을 기어이 찾아냈다. “주위 분들이 도와준 덕이죠. 여인네가 홀로 버텨내니 장해보였나 봐요. 아직도 그 첫 쪽빛이 어른거립니다. 만족스러워서? 아니에요. 이제 시작이구나. 우리 것을 복원할 수 있겠다. 쪽빛도 더 개선하고, 감물 진달래 가래나무 연지꽃…. 산천에 흐드러진 색깔을 되찾자. 가슴 저 편에 새싹이 돋았어요.” 너무 염색만 파고든 홑실이었을까. 외로움과 절망이 수시로 밀려왔다. 10년이 넘도록 예술계에선 그의 작품을 홀대했다. 왜색이 짙다, 정통성이 아쉽다. 나무는 서 있을 뿐이건만, 바람이 잦아졌다. 문헌을 뒤져가며 염색도구까지 직접 만들며 분투했는데…. 가산도 거의 탕진한 1980년 후반, 처음으로 포기를 떠올렸다. 이제 그만 접자. 한 시절 여한 없으니 그걸로 됐지 않나. 입술을 깨물던 차,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1990년)이란 낭보가 들려왔다. “상 받아 안 관뒀다 그러면 너무 애기 같지요? 근데 고마웠어요. 알아주는 날이 오는구나. 덜컥 맘이 다잡아졌어요. 상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염색한테 괜스레 미안했어요. 니들 덕에 칭찬받았는데. 어찌 그리 매정하려 했을까. 다독이며 결심했어요. 내 인생은 염색이구나. 삶을 매조지할 터는 여기구나.” 선생은 요즘 몸이 편치 않다. “이런 얘긴 남우세스럽다”고 당부했지만, 맹장에 문제가 생겨 복막염으로 번졌다. 여든 하나. 거동도 조심스러운데 곧 수술까지 앞뒀다. 괜히 인터뷰를 요청했나 죄송스러워하자 “응대가 수월찮아 오히려 미안하다”며 다독였다. 짓궂게 평생 독신으로 지낸 연유를 물어도 “친구도 많고 주위에 좋은 분이 넘쳐 낙낙하게 보냈다”며 걸걸하게 웃어넘겼다. 염색에 묻혀 강산 바뀌는 걸 세 차례나 품은 공력. 그래도 혹 아쉬움이 남진 않았을까. “없어요. 정말 없어요. 한때 마음을 콕콕 찔렀던 가시들도 시간 가니 무뎌졌어요. 다만 지치 색을 좀더 대량 공급할 방도를 구하지 못한 건 영 가슴을 맴도네요. 보라색과는 또 다른, 그 짙은 푸른빛은 지치 뿌리에서만 얻을 수 있거든요. 너무 희귀하고 비싸요.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꼭 찾아야 하는데…. 퇴원하면 또 연구해야죠.” 4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선 이 선생의 특별전이 열린다. 칠보 노리개와 능화문 서첩, 한지 부채와 두루주머니…. 숨을 고르고 향취에 스며보자. 영롱하되 넘치지 않는다. 단아하면서도 화사하다. 그 멋과 맛을 누구라서 낮춰 볼까.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은 “이 땅에서 자란 식물로 빚은, 우리 산천이 선사한 색의 감동은 끝이 없다”며 “두절되고 쇠퇴됐던 전통 염색을 홀로 다시 세운 그 정성을 마주할 기회”라고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 판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조선 초기 간행 목판인쇄본이 15일 공개됐다. 이 판본은 고고학자였던 고(故) 손보기 교수(사진)가 소장하던 것을 유족이 연세대 측에 기증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국보급일 것으로 추정된다. 연세대박물관에 따르면 손 교수가 소장했던 삼국유사는 5권(卷) 2책(冊) 가운데 앞부분(1∼2권)에 해당하는 ‘왕력편(王曆篇)’과 ‘기이편(紀異篇)’ 2권 1책이다. 왕력편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역대 왕족 족보에 해당하며, 기이편은 삼국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삼국유사는 ‘흥법(興法·불교가 전래되고 흥성하는 과정)’ ‘의해(義解·고승들의 뛰어난 행적)’ 등을 다룬 3∼5권 1책의 조선 초기 인쇄본(국보 306호·개인소장)과 1512년 조선 중종 시대에 경주에서 간행돼 5권 2책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중종 임신본(壬申本·국보 306-2호)이다. 김도형 연세대 박물관장은 “이번 기증본은 중종 임신본보다 앞선 국보 306호와 시기가 비슷한 조선 초기 인쇄본”이라며 “국보 306호에는 없는 왕력편과 기이편이 거의 낙장 없이 완벽한 상태여서 국보급”이라고 말했다. 특히 손 교수 소장본 가운데 왕력편은 족보처럼 왕족의 인명을 담고 있어 글자 하나하나가 역사적 연구 자료로 효용가치가 높다. 예를 들어 중종 임신본에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의 시호가 문정(文貞)이라고 돼 있지만, 이번 소장본에는 문진(文眞)으로 쓰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관장은 “하나하나 확인해주기는 어려우나 몇몇 대목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조만간 연구결과를 모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영대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고서는 세월이 흐를수록 오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측면에서 왕력편과 같은 인명은 시기가 빠른 판본일수록 더 정확할 것”이라며 “이번에 공개된 소장본은 학문적으로는 물론이고 금전적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2010년 별세한 손 교수는 1922년 생으로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해 평생 고고학 및 고인쇄학 연구에 매진한 학자다. 특히 1990년 사적 제334호로 지정된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의 발굴을 주도해 명성을 떨쳤다. 석장리 유적은 연대측정 결과 2만5000∼3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집터임이 확인돼 한반도에도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음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손 교수가 삼국유사 2권 1책의 조선 초기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으나 생전에 공개하지 않아 전모를 알기 힘들었다. 손명세 연세대 보건대학원장과 손경세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 등의 유족은 오랜 논의 끝에 손 교수가 관장을 맡았던 연세대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 논란이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사무총장 혜문 스님)는 11일 문화재청을 상대로 라마탑형 사리구 관련 결정처분 취소 및 위자료 청구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은 소장에서 “미술관으로부터 사리구를 제외한 사리는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문화재청이 거부 의사를 표명해 수포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사리와 사리구를 한꺼번에 받는 게 어렵다면 우선 사리라도 받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리 환수를 반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국외문화재팀은 “물론 처음엔 라마탑형 사리구와 사리의 일체 반환을 요구했던 것은 맞지만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이 미술관에서 사리 반환을 확답했다고 알려와 그렇게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사리구는 어려워도 사리는 조만간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문화계에선 보스턴미술관의 ‘이중 플레이’에 문화재청과 시민단체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국외문화재를 돌려받고픈 심정은 정부나 시민단체나 한마음”이라며 “외국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반환을 미루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높이 22.5cm)는 13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돼 양주 회암사나 개성 화장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일본 도굴꾼이 미국으로 밀반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리구에는 부처 진신사리와 고승의 사리가 함께 모셔져 있다. 라마탑은 티베트 양식의 불탑을 일컫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리랑에 이어 유네스코에 등재될 한국의 문화유산은 김치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아리랑이 인류문화유산으로 확정되자 다음 등재 후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대표음식 김치의 등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지자 ‘국가적 자존심’까지 거론되며 많은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이는 반쯤 맞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문화재청이 등재를 신청한 것은 ‘김치’가 아니라 ‘김장문화’다. 김치와 김장문화는 무엇이 다른가. 문화재청이 이달 수정 보완해 제출한 신청서를 중심으로 그 차이점을 짚어봤다.○ 요리가 아닌 문화가 등재 대상 김치의 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엔 ‘요리’가 등재된 전례가 없다. 지난해 프랑스 요리 선정이 화제를 모았지만 정확하게는 ‘프랑스식 식사’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음식예절과 조리법 등 요리를 둘러싼 문화를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이번 신청서 작성의 주 책임을 요리연구가가 아닌 문화인류학자인 박상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에게 의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청서는 자연친화적 재료로 발효건강음식을 만드는 전통방식인 김장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김장의 완성품인 김치가 한국 문화에서 지니는 위상도 강조했다. 한국인은 김치만 있어도 밥을 먹고, 진수성찬을 차려도 김치가 빠지면 서운하다. 세계 음식문화사에서 이런 독특한 위치를 지닌 요리는 드물다. 요리로 국한하면 상업적 이용의 소지가 생긴다는 점도 고려했다. 박영근 문화재청 문화재활용국장은 “유네스코가 가장 질색하는 게 인류문화유산의 정치적 상업적 연계”라며 “김장문화 자체는 김치처럼 상품화될 여지가 적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문화유산의 현대적 정체성이 관건 유네스코는 지난해 아리랑의 선정 이유에 대해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 지속적으로 재창조되고, 공동체 정체성의 징표이자 사회적 단결을 제고한다”고 밝혔다. 즉 문화유산이 현대에 얼마나 잘 녹아들고 긍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요하게 본다는 얘기다. 김장문화는 이런 기준에 딱 들어맞는다. 지금도 기상청이 ‘지역별 김장 날짜’를 따로 발표한다. 가전업체는 해마다 신기술을 적용한 ‘김치냉장고’를 선보인다. 박 교수는 “한국 도시문화에서 김장문화는 여전히 생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며 “조선 궁중요리가 아쉽게 등재되지 못한 것은 이런 면이 다소 약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김장문화엔 가족과 이웃이 모여 품앗이하던 전통이 살아 있다. ‘사내가 부엌만 기웃거려도 흉’이라던 조선시대에도 김장은 남정네마저 팔을 걷고 나서는 ‘성역할 완화제(gender mitigator)’ 역할을 했다. 나눔과 배려의 정신은 21세기에도 겨울이면 불우이웃을 위해 김장을 담그는 문화로 이어졌다.○ 고유하되 배타적이진 않아야 김치가 예부터 우리 민족이 즐긴 고유의 먹거리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역사보다는 김장의 개방적 성향을 강조했다. 해외에서 흘러들어온 배추나 고춧가루 등을 흡수해 더 수준 높은 음식문화로 발전시킨 ‘열린 문화’란 얘기다. 유네스코가 주창하는 ‘경계 없는 인류문화유산’이라는 지향점과도 잘 어울린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김장문화의 문화다원화적 요소는 유네스코 정신에 잘 부합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겠지만, 미국인들은 ‘좀’ 무식하다. 2007년 워싱턴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 50% 이상이 이슬람교나 이슬람 세계는 존경할 만한 거리가 전혀 혹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9·11테러의 악몽이 여전하다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다. 로이터통신 기자로 터키와 이란 등에서 20년 넘게 취재한 경험을 가진 저자는 이런 상황이 더 어이없었나 보다. 이 책은 한마디로 “바보들아, 서양 문명은 이슬람 문명과 과학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르네상스는 꿈도 꾸지 못 했어”라고 꾸짖는 책이다. 기껏 신학이나 파고들던 유럽 사람들이 십자군 전쟁을 치르며 거의 모든 분야에서 어떻게 이슬람의 은혜(?)를 입게 되는지 꼼꼼히 추적한다. 저자는 특히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라 불렸던 아바스 왕조(8∼13세기) 시절, 당시 이슬람 교단의 지배자였던 칼리프들이 애정을 쏟았던 수도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바이트 알히크마)’에 주목했다. 40만 권의 장서를 자랑했던 지혜의 집은 이슬람 문명의 총체였다. 아라비아숫자 ‘0’의 개념을 도입한 천문학과 수학, 그리스철학까지 꼼꼼히 검토하고 분석한 철학, 유럽 의사들의 교과서로 추앙받던 11세기 ‘의학정전’을 탄생시킨 의학까지…. 서구 중심 시각에 사로잡힌 이들로선 자존심에 상처 입을 만큼 이슬람 문명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슬람의 지혜가 너무 광대해서였을까. 솔직히 책은 ‘좀’ 읽기가 버겁다. 아랍 명칭에 어색한 탓도 있겠지만, 읽다가 자꾸 머리가 뱅뱅 돌았다. 초입에 컬러사진들을 몰아넣고 온통 ‘검은 건 글자, 흰 것은 종이’로 만든 출판사도 원망스러웠다. 아, 이슬람 문명을 좇는 일은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공청회 한 지 며칠 됐다고 덜컥 발표했대요? 아직 개념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문화재청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오후 2시)를 앞두고 있던 11일 오전. 국무총리실이 문화유산제도정비방안을 발표하면서 “50년 미만의 근·현대 유물을 예비문화재로 지정해 보존 관리한다”고 밝히자 문화재청 예비문화재(가칭) 인증제도 추진에 자문 역할을 했던 한 전문가가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예비문화재 지정제는 1988 서울올림픽 굴렁쇠처럼 보존할 가치가 있으나 역사가 짧은 문화유산을 미리 문화재로 지정해 훼손의 위험을 막기 위한 제도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등록문화재는 50년 이상 된 근대문화유산이다. 문제는 총리실의 발표 시기와 절차다. 예비문화재 인증제 도입은 지난해 문화재청이 이미 발표한 사안이다. ‘박세리 골프채’ ‘김연아 스케이트’가 문화재가 될 것이란 보도도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예비문화재 법안 마련을 위해 문화재청이 발주한 연구용역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관계자는 “의원입법으로 할지, 정부입법으로 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르면 5월경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문화재청 관계자는 “총리실의 발표 직전 별다른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예비문화재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만들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열린 ‘예비문화재 추진 공청회’에선 예비문화재와 근대문화재의 구분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교수는 “이런 경우엔 공청회를 추가로 열어 의견을 조율하는 게 상례인데 어떤 의도로 총리실이 깜짝 발표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발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위한 ‘맞춤 발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 문화계 인사는 “예비문화재의 경우 ‘새마을운동’ 등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문화유산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보고거리’로 낙점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문화재청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부처 간 협의와 조율을 거친 내용으로 누구를 의식해서 발표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식상한 얘기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다룬 책은 시중에 너무도 많다. 뻔히 있는 나라를 두고 “있다, 없다”를 따지는 책들부터 숱한 담론과 주장을 담은 무림협객들의 책이 허다하다. 한 서점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본이란 키워드를 쳐봤더니 국내외 관련 도서가 10만 권을 훌쩍 넘는다. 물론 어학서적 포함해서.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일본 관련 서적을 들이미는 건 어쩌면 참 ‘감 없는’ 일일 수 있다. 막말로 이 책의 제목인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하등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 꽤 되리라. 하지만 독도를 포함한 동북아 영토분쟁이나 지정학적으로 G2(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상황을 함께 맞닥뜨린 입장이고 보면, 일본의 지성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들어보는 건 결코 해될 게 없다. 특히 이 책은 2010년 중국 국제정치학계 인사들과 나눈 대담집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썼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서승원 고려대 교수와 함께 그 연장선에서 일본을 바라봤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대국굴기(大國굴起) 기세가 넘쳤던 중국과 달리, 경제 불황과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심각한 위기 담론에 빠진 일본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 뭣보다 이 책의 매력은 일본 학자들의 꽤 솔직한 심경을 전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덕분이겠지만 “일본 정치인은 의제 설정이나 국가 전략 같은 발상 자체도 갖고 있지 않다”(소에야 요시히데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장) “한국이 통일된다면 일본에 적대적인 국가가 될 가능성도 있다”(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 등 신랄한 발언이 상당하다. 그중 제3부 ‘일본과 한반도’ 편은 더욱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 지성인들의 속내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만 ‘일본은 지금…’은 사전 공부가 어느 정도 요구되는 책이다. 주석이 풍부하게 달려 있긴 하지만 현재 동북아 정세에 대한 기초가 약하면 용어부터 헷갈리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미들파워 이론’ ‘보통국가론’ ‘요시다 노선’ ‘세계민생대국론’ 등 개념을 미리 정립해야 이해가 빠르다. 불편하다면 그냥 읽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국내에도 흔치 않은 14세기 고려불화와 7세기 반가사유상이 이탈리아에서 발견됐다.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9일 “이탈리아 국립동양예술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려불화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 1점과 삼국시대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1점을 찾았다”고 밝혔다.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불이 와서 맞이하는 그림이란 뜻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손을 내밀어 죽은 이를 서방극락으로 인도하는 내용이다. 반가사유상은 오른발을 왼 무릎에 얹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긴 자세의 불상을 일컫는다.이번에 발견된 아미타내영도는 47×105.6cm 크기로 비단에 그려졌으며 광배(光背·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현한 것) 부분을 일부 손본 흔적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아미타불이 입고 있는 대의(大衣·설법이나 걸식할 때 입는 승려의 겉옷)의 경우 붉은 색감과 금빛 연화당초 무늬가 잘 살아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권강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림 속 대의의 무늬 패턴과 양감이 잘 살아 있는 얼굴 등으로 미뤄볼 때 14세기 전반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함께 발견된 반가사유상은 왼 다리 무릎 아래가 소실돼 8cm 남짓한 크기다.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같은 계열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데다 이목구비가 온화하고 상반신이 당당해 7세기 삼국시대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는 게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설명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요즘엔 박지성 선수가 뛰는 프리미어리그를 꼽는 이도 꽤 많겠다. 하지만 역시, 이 나라를 애기할 때 ‘신사의 나라’ ‘변덕스러운 날씨’는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신사 얘기는 사람마다 찬반이 엇갈려도, 런던 시민조차 “Bloody weather(망할 놈의 날씨)!”를 입에 달고 사는 변화무쌍한 하늘은 누구라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날씨가 현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이 책은 19세기 초 기후가 과학과 미술에 드리운 파장에 주목했다. 영국에서 기상학이 태동하고, 자연을 면밀히 관찰해 화폭에 담는 낭만주의 풍경화가 성행한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 가운데 당대에 활동한 ‘구름에 빠진 과학자’ 루크 하워드와 ‘구름 그림의 대가’ 존 컨스터블의 생애와 성과에 초점을 맞춰 직물 짜듯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실험실의 명화’는 이처럼 ‘멀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끈끈한 친척’인 과학과 미술의 접경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버무려 놓는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정보기술(IT) 전문잡지기자로 활동했던 저자에게 이런 주제는 맞춤옷처럼 편안해 보인다. 예를 들어,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 담긴 여신의 바다거품 탄생설화에서 생물의 진화에 대한 고대인의 혜안을 감지해낸다. 르네 마그리트의 ‘집합적 발명’을 보며 2004년 발굴된 ‘발이 달린 물고기’ 틱타알릭 화석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에세이처럼 사적 취향이 물씬하다가도 묵직한 미술과 과학 영역도 ‘스리슬쩍’ 넘나드는 공력이 만만치 않다. 의외로 이 책은 친절한 교양입문서와는 상당히 질감이 다르다. 솔직히 퇴근 후 소파에 누워 편안하게 책장을 펼쳤다가 여러 차례 당황했다. 실핏줄처럼 복잡 미묘한 내용들이 머릿속에 영 착상이 되질 않았다. 책의 부제가 ‘미술, 과학을 만나다’인데 가벼운 미팅인 줄 알고 나갔더니 준비도 없이 콘퍼런스나 학술대회에 참석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했음이 분명한 정보량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여러 명의 대가가 그린 해부학 강의에 대한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인체 회화론의 역사를 설명하거나 반대로 의학적 발전이 미술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 짚어보는 건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뇌 해부도에 빗대어 설명한 미국 의학자의 주장은 진실 여부를 떠나 한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대목과도 직결된다. 과학과 미술 관련 자료가 풍부하나, 전달하려는 바가 헷갈릴 때가 잦았다. 단적인 사례가 명화의 X선 검사를 다룬 챕터다.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은 원근법 등이 맞지 않아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다. 그런데 X선으로 촬영해 봤더니 마네가 의도한 실수였음을 일러준 건 좋다. 하지만 그게 미술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증이 풀리질 않는다. 반대로 X선이 회화의 비밀을 캐는 과학적 원리도 자세하지 않다. 미술이란 여성이 맞선에 나가 과학이란 남성을 만났다 치자. 소감을 물었더니 “괜찮긴 한데, 뭔가 얘기를 하다 말다 해”라고 삐죽거릴 것만 같다. 하긴, 그렇게 여지를 남겨야 보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또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퇴계 이황(退溪 李滉)은 대중적 위상이 특별한 인물이다. 1000원짜리 지폐에 등재된 영향이겠지만 그만한 존경과 명성을 누리는 철학자도 드물다. 허나 폭넓은 인지도와 달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등 그가 설파한 사상은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그래서 퇴계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그의 사상을 보다 쉽게 전하려는 작업이 학계와 출판계에서 꾸준히 이어졌다. 최근 출간된 ‘퇴계처럼’(글항아리·사진) 역시 이런 노력이 깃든 작품이다.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냈던 한국국학진흥원의 김병일 원장은 특히 퇴계와 ‘여성’의 만남에 주목했다. 어머니와 아내, 며느리 등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폈다. 김 원장은 “퇴계는 위대한 성리학자임에도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낮춤과 섬김’으로 여성들을 대했다”며 “이런 배려의 인간관계야말로 후손들이 배워야 할 조선 선비의 덕목”이라고 말했다. ‘퇴계처럼’은 국학진흥원과 글항아리의 교양총서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 첫 권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지역과 시대, 사물과의 관계를 모두 만남으로 설정한 기획으로 연간 2, 3권씩 성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올 하반기엔 영호남 유학의 교류에 초점을 맞춘 ‘호남 선비들은 왜 경상도 땅을 밟았을까’가 나온다. 글항아리 측은 “2010년 시작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와 지난해 ‘국학자료심층연구총서’에 이은 세 번째 국학진흥원과의 공동 시리즈물”이라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방글라데시는 개인적으로 그리 친숙한 나라가 아니다. 같은 아시아지만 높은 인구밀도나 빈국이란 점 말곤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1971년 파키스탄과 싸워 독립을 쟁취했다거나 미성년자 성매매가 심각하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해외 언론의 주목도도 낮아 3년 넘게 국제부에 있었어도 관련 보도를 본 기억이 흐릿하다. 그런데 최근 이 나라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 외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달 초 방글라데시 국제범죄재판소(ICT) 수장이던 무함마드 니자물 대법관이 스스로 사임했단 기사다. 얼핏 봐선 뉴스거리가 되나 싶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 포린폴리시 등 여러 언론이 주목하며 분석을 쏟아냈다. 이들이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니자물 대법관이 이끌던 ICT 때문이다. ICT는 이름과 달리 자국 내 전쟁범죄 척결을 목적으로 2010년 설립됐다.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의 속주 ‘동 벵골’이던 시절, 이 땅의 민초들은 파키스탄군 비호 아래 알량한 권력을 누리던 세력에게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갖은 탄압 아래 숨진 국민이 30만 명을 넘는다. 그러나 독립 뒤 4번이나 쿠데타가 터지는 혼탁한 정국이 지속된 탓에 관련자 처벌은 요원했다. 정치권 등엔 요직에서 떵떵거리는 전범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야의 산통 끝에 어렵사리 문을 연 ICT의 첫 재판 대상은 델와 후세인 사이디 전 의원이란 정치거물이었다. 1996년부터 12년간 의회에 머물며 현 최대 야당인 ‘자마트’ 당수까지 지냈다. 허나 조사결과 사이디는 1960년대 파키스탄 앞잡이 노릇을 했고, 양민학살에 관여한 증거도 발견됐다. 이달 말쯤 예상됐던 판결에선 극형 선고가 확실시됐다. 그런데 이 민감한 시기에 담당판사가 돌연 물러나버린 것이다. 니자물의 사퇴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폭로가 결정적 촉매가 됐다. 매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재판 도중 한 벨기에 국제변호사와 수시로 전화나 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방글라데시에선 판사가 ‘관련 없는 제3자에게 재판에 대한 의견을 듣는 행위’는 위법이다. 대법관은 “해외 판례 수집을 도왔다”고 해명했으나, 판결 문항이나 처벌 수위를 논의하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했다. 게다가 정부 고위층이 자주 전화해 진행 과정을 물어본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대목까지 공개돼 니자물은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먼 나라 얘기지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아무리 정의를 지키는 ‘올바른’ 일이라도 적절한 과정을 밟지 않으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사이디는 어떻게든 벌을 받겠지만, 현 재판은 절차상 하자로 정당성을 잃었다. 정부 역시 재판관에게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으니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코노미스트도 승자는 아니다. 메일과 통화 녹취가 흘러나왔다는 건 누군가 불법 해킹 및 도청을 저질렀단 뜻. 그런 자료를 내밀고 원칙을 따지는 모양새도 궁색해 보인다. 실타래처럼 꼬였지만, 앞으로 진짜 놓쳐선 안 될 ‘과정’이 남아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와 사법부는 얼른 잘못을 인정하고 초심을 되찾아야 한다. 더 많은 우여곡절이 벌어져도 끈질기게 역사를 바로 세워 나갈 때 지금의 과오도 씻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도 이를 지켜보고 지지할 책임이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그러나 정도로 돌아온다면, 결코 과정을 헛되게 하지도 않는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입사 초기에 몽골로 출장 간 적이 있다. 잠깐 짬이 나 수도(首都) 울란바토르 시내 골동품가게에 들렀는데 말굽 모양 장식품에 눈이 갔다. 주인은 칭기즈칸(1162?∼1227)이 쓰던 것이라며 우리 돈으로 3만 원쯤을 불렀다. 어이가 없었지만, 칭기즈칸이 쓰던 것이라는 걸 어찌 증명할 거냐고 물어봤다. 씩 웃던 사장은 통역을 통해 한마디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싸죠.” 칭기즈칸은 몽골에서 영웅이자 종교다. 우리에겐 아픔을 줬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을 몽골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 인류 역사상 칭기즈칸만큼 넓은 땅을 차지한 패왕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이슬람의 ‘인샬라(신의 뜻대로)’처럼 몽골에선 “칭기즈칸이 지켜본다”라는 말을 수시로 쓴다. 하지만 정색하고 되씹어 보자면, 사실 칭기즈칸이 ‘어디에서’ 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 매장됐는지 문헌조차 남질 않았다. 묘를 만든 뒤 말 1000여 마리가 밟아 평지로 다져 버렸다거나 진시황처럼 수백 명을 함께 순장(殉葬)했다는 풍문만 전해진다. 수많은 세계 고고학자와 보물 사냥꾼들이 찾아 나섰지만 언제나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800년가량 미스터리였던 칭기즈칸의 무덤이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거란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UCSD)과 전미지리학협회(NGS) 몽골과학아카데미 등이 참여한 다국적 탐사단이 최근 그의 무덤이 확실시되는 장소를 찾아냈다. 앨버트 린 NGS 연구원은 “칭기즈칸의 묘로 짐작되는 건축물 토대에서 황제가 소장했음직한 13세기 유물을 다량 발견했다”라며 “위성 사진과 지질탐사자료 분석이 마무리되면 더 명확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탐사 결과가 틀림없다면 몽골 안팎을 그토록 헤맸던 이들로선 허망하게도 무덤은 의외로 코앞에 존재했다. 단서는 전설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100여 km 떨어진 헨티 산맥은 몽골 사람들이 ‘칸(군주)의 산맥’이라 부르는 곳이다. 역사가들은 그곳을 칭기즈칸의 출생지로 추정해 왔는데, 무덤 역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역사적 성취를 앞뒀지만 몽골 정부와 탐사단은 무척 조심스럽다.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면 도굴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몽골은 오랜 경제적 정체를 겪으며 불법 도굴과 밀수출이 성행하고 있다. 울란바토르국립대의 에르데네바트 교수는 “지난해 발견된 바얀홍고르의 황족 묘지는 발표 직후 며칠 새 뼈와 옷가지 빼곤 모두 훔쳐 갔다”라고 한탄했다. 하물며 칭기즈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덤빌 거란 얘기다. 게다가 묘 발굴을 신성모독이라며 내켜 하지 않는 상당수 몽골 국민의 정서도 걸림돌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다. 동북공정의 깃발 아래 칭기즈칸 역시 자기네 조상이라 우기고 있다. 이미 자국에 관련 박물관과 학회를 세웠고, 무덤 공동발굴권도 요구하고 나섰다. 밀수출 유물도 대부분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몽골 정부는 중국에 공식 항의할 수도 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커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국력이 달리니 제 목소리도 못 내는 설움. 남 얘기로만 치부하기엔 왠지 우리도 뒷목이 뜨끔하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봉건시대 영토 전쟁을 방불케 하는 4대 제국의 패권 다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IT)산업은 어떤 영역보다 변화와 부침 속도가 빠른 분야.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제국’이라 부를 만한 4대 기업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이전엔 볼 수 없던 독특한 산업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1일자)가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주목한 인터넷 IT업계의 4대 천황은 애플과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네 회사는 이미 IT라는 본연의 영역을 넘어 세계적으로 사회 문화적 파급력까지 갖춘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국이나 거인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들은 애플을 제외하면 창업된 지 20년도 안 됐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위를 구축했다. 구글은 인터넷 검색 분야, 아마존은 디지털온라인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석권한 페이스북이나 ‘글로벌 브랜드 가치’ 1위에 오른 애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뜨긴 했으나 창업자들이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사업을 이끈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한 기업이 독식하던 ‘퍼스널 컴퓨터(PC) 세대’에 이어 4대 기업이 구축한 ‘모바일 인터넷 세대’는 팽팽한 긴장 속에 전장의 먼지가 자욱하다. 먼저 이들은 제국으로 올라서기 전엔 서로 막역한 공생관계였으나 지금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주적으로 변모했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애플 이사회에 참여했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던 애플과 구글은 현재 휴대전화와 태블릿PC 시장을 놓고 첨예하고 맞붙고 있다. 애플의 소중한 판매망이던 아마존은 전자책 ‘킨들’을 내놓으며 애플의 아이패드와 경쟁 중이다. 애플도 아이튠스를 통해 아마존의 핵심인 전자책과 온라인 상거래를 위협하고 있다. 구글이 끊임없이 SNS 개발에 투자하자 페이스북도 조만간 전자상거래와 검색 분야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존 배틀 IT 애널리스트는 “이들의 싸움은 국지전에 머무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핵심사업을 겨냥해 ‘승자 독식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전면전이지만 백병전보단 참호전 스타일이란 점도 이채롭다. 본거지까지 비워두고 뛰어드는 ‘올인(다걸기)’ 전략은 절묘하게 피하고 있다. 상대의 주력사업을 지속적으로 넘보면서도 자신의 핵심사업 역량 키우기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다른 분야도 압도하는 승리 공식이라는 게 4대 천황의 공통된 판단이다. 전쟁의 주인공은 4개 기업이지만 변수들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지금은 경쟁에 뒤처진 듯한 분위기지만 ‘과거의 지배자’ 마이크로소프트는 가벼이 볼 상대가 아니다. 최근 출시한 윈도 8.0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는다면, 이를 기반으로 권토중래를 꾀할 수 있다. 또 다른 세력은 정부감시단체들이다. 올 하반기 미국과 유럽 행정부는 애플과 구글 등의 독점 및 탈세 혐의에 대해 면밀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가능성은 낮은 편이지만, 이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전황은 일순 역전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대치상황이 결국 ‘슘페터 2.0 시대의 도래’를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미 경제사상가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돌풍”이 가장 적확하면서도 빠르게 적용되는 모양새란 설명이다. 즉 4강 구도는 당분간 유지되겠지만 항구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인터넷 사업은 소비자의 ‘취향’이 승패와 직결되기 때문에 유행이 바뀌면 현 체제 또한 순식간에, 그리고 송두리째 바뀐다. 살아남는 기업 역시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화할 공산이 크다. 이코노미스트는 “네 기업이 거인으로 성장한 건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을 원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며 “덩치가 커졌다고 그 초심을 잃는다면 몰락하는 것도 금방일 것”이라고 조언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난달 22일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새 헌법 선언문 발표로 이집트에서는 대규모 유혈시위가 벌어지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새 헌법 선언문에 반대해 대법원과 지방법원이 파업을 시작한 데 이어 2일에는 헌법재판소마저 파업을 선언했다. 사법부 전면 파업은 1919년 영국의 식민 지배에 항거해 단행된 이후 93년 만이라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이집트 헌재는 이날 예정됐던 제헌의회 해산 여부를 다루는 재판을 무기한 연기하고 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헌재는 “친(親)무르시 대통령 시위대의 방해로 재판관의 재판정 출입마저 불가능하다”면서 “신성한 법정의 독립이 훼손된 이집트 사법 역사 최악의 날”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사법부가 이렇듯 강경한 태도로 나선 데에는 무르시 대통령과의 기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술적 판단’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스민 혁명 이후 무슬림형제단 등이 주도권을 쥔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사법부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세력들이 여전히 주요 직책을 장악하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이 발표한 새 헌법 선언문의 ‘독소조항’이 국민적 항거에 부닥치자 사법부는 군부의 무바라크 잔존세력과 함께 세력을 회복할 수 있는 호기로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재판소 앞을 점령한 시위대의 위협”을 파업 이유로 들었지만 현장에선 경찰 통제 아래 차분하게 가두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뿐이고 재판관의 출입 역시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법부의 구(舊)세력이 꼼수를 부릴 빌미를 제공한 것은 무르시 대통령이다. 그가 발효한 새 헌법 선언문은 사법기관의 의회 해산권을 제한하고 대통령령이 최종 효력을 갖는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국민들은 ‘파라오 헌법’이라며 반발했다. 독립 성향의 알와탄과 알마스리 알윰 등 이집트 일부 신문사는 새 헌법에 항의해 4일자 신문 발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르시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정당과 단체들은 4일 대통령궁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집트 사태는 무르시 대통령이 15일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새 헌법 선언문에 대한 국민투표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집트는 전통적으로 사법부가 선거나 투표를 감독하지만 전국 판사들의 대표조직인 판사회는 헌재 파업과 동시에 선거 감시 업무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새로운 감시기구를 조직해 투표를 일정대로 진행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중동 문제 전문가인 캐나다 오타와대 피터 존스 교수는 “현재 이집트의 통치 방식은 무바라크 시대와 마찬가지로 국민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권위적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다”며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세력은 그 어느 쪽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