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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꿋꿋이 마약 범죄조직들과 맞섰던 멕시코의 전직 여성시장이 끝내 갱단의 보복으로 목숨을 잃었다.미국 CNN방송은 28일 “12일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던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전 티키체오 시장(36·사진)이 22일 시 외곽 고속도로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멕시코 남서부 미초아칸 주에 있는 티키체오 시는 인구 1만 명이 조금 넘는 소도시지만 마약 카르텔과 무장갱단의 주요 활동거점이어서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의사 출신인 고로스티에타 전 시장은 2008년 시장에 취임한 뒤 악명 높은 도시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갱단의 위협에도 “시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옳은 일을 할 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며 신념을 지켰다. 2009년 무장괴한의 테러에 남편을 잃었고, 2010년엔 자신도 옆구리 등에 총상을 3군데나 입었지만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물러날 때도 “신은 내게 시민의 안녕을 위해 헌신할 고마운 기회를 주셨다”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고로스티에타 전 시장은 호심탐탐 그를 노리던 마수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납치된 날 딸을 등교시키려 차를 몰고 가다 무장괴한들에게 끌려갔으며 열흘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총상은 없었으나 두 손이 묶인 채 둔기에 머리를 강타당한 흔적이 있었다. 미초아칸 주 경찰은 “의심할 바 없는 범죄조직의 흉악한 살인”이라며 “관련자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중국 정부가 28일 “류치바오(劉奇보) 공산당 중앙선전부장이 29일부터 이틀간 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북은 중국이 제18차 전국대표대회(18차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가 구축된 이래 첫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다. 류 부장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 시 총서기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북한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대해 자제를 당부하거나 시 총서기가 김 제1비서를 중국에 공식 초청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연이겠지만 최근 나갔던 몇몇 모임에서 똑같은 TV프로그램 하나가 수다 거리로 등장했다. 채널A의 ‘잠금 해제 2020’이란 시사보도물인데, 11일 방영한 “강남 엄마가 제주도로 간 까닭은”을 놓고 쉴 새 없이 품평이 오갔다. 방송이 다룬 제주국제학교에 대해 자식 가진 부모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학비나 교육효과 등을 놓고 가치관과 여건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렸지만, 누군가의 한마디엔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젠 개천에선 용(龍)이 나질 않아. 용도 다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이거든.” 이무기가 꼭 승천해야 좋은지는 의문이지만 요즘 미국도 용이 사라진 개천을 두고 고민이 많다.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보고서를 보면 상위 146개 대학에 다니는 학생 가운데 겨우 3%만이 저소득층(하위 25%) 가정 출신이다. 문틈이 좁아지다 못해 거의 닫히다시피 했다. 어렵사리 대학에 가더라도 비싼 등록금은 또 다른 난관이다. 기숙사비 등을 포함해 연간 학비가 대략 3만4000달러(약 3700만 원)에 이른다. 중산층조차 학자금 융자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형편 따라 다를 테지만 단순히 계산하면 학생 1명당 2만6600달러의 빚을 지고 졸업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자식의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부모도 꽤 많단다. 하지만 돈 없다고 공부에 대한 갈망마저 사라지는 건 아닐 터. 그래서 최근 현지에서 대안으로 각광받는 게 온라인강좌다. 아이비리그 명문대가 만든 웹 사이트 교육과정은 내용이 알차면서도 저렴하거나 무료로 제공돼 호평을 받는다. 특히 스탠퍼드대가 개설한 사이버대학 ‘유다시티(Udacity)’는 높은 미국 대학 문턱에 아쉬웠던 해외 학도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현재 수업을 듣는 가입자의 국적이 200개국을 넘는다. 인터넷과 대학의 ‘마리아주(mariage·결합)’가 빚어 낸 미담도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파키스탄 10대 소녀 니아지는 지난달 유다시티의 물리학 강의를 듣다 봉변을 당했다. 자국 정부가 최근 시끄러웠던 반(反)이슬람 영화 유입을 막는답시고 미국 서버 접속을 차단한 것. 마지막 시험만 남겨 놓고 절망에 빠진 소녀를 구한 건 함께 수업을 듣던 전 세계 동료였다.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독일 40대 직장인은 시험 동영상을 내려받아 보냈다. 한 포르투갈 청년은 소녀의 답안지를 대신 등록해 줬다. 일면식 없는 학우들의 십시일반으로 니아지는 마침내 수료증을 획득했다. 타임은 “배움에 대한 목마름은 그 어떤 장벽도 뛰어넘는다”라고 극찬했다. 현실도 과연 그러할까. 학구열이 진정 모든 걸 넘어서려면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미 인적자원관리협회(SHRM)는 올해 하반기 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약 70%가 온라인 대학이 정규과정으로 인정받더라도 비슷한 조건이면 기존 대학을 ‘제대로’ 다닌 구직자를 뽑겠다고 응답했다”라고 전했다. 물론 캠퍼스 체험의 가치를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취업하려면 등골 빠지게 간판을 따란 소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좋은 교육은 연봉을 올리고, 위대한 교육은 인생의 방향을 튼다”라고 말했다. 뭐가 위대한 건진 잘 모르겠다. 다만 산골짝 실개천이 실해야 용이 나고 아우라지 강도 풍요롭다. 양식도 자연산과 공존해야 품질이 좋아진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12일 “영국 플리머스대 심리학 연구진이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결과 어렸을 때 매를 맞거나 심한 꾸지람을 들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 발병률이 평균 70%가량 높았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천식이나 심장질환 발병률도 각각 약 60%, 30% 높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체벌이 건강에 나쁜 이유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계가 깊다. 체벌의 강도가 아무리 약해도 아이가 받는 감정적 충격은 클 수 있기 때문. 충격이 지속되면 정신적 외상으로 이어져 신체 면역력도 떨어뜨린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하일랜드 박사는 “기존 연구결과에 따르더라도 어린 시절 학대행위를 겪으면 여러 형태의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며 “꾸짖을 땐 아이들이 정서적 혼란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애플의 시대가 저물고 있을지도 모른다.”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마이클 울프가 ‘정보기술(IT) 산업의 거인’인 애플이 최근 잦은 논란 속에서 최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울프는 12일(현지 시간) 미 일간지 유에스에이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에서 “제너럴모터스(GM)나 IBM,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여러 세대를 풍미했던 회사들과 달리 애플의 지배적인 위치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애플의 아성이 흔들린다고 판단한 근거는 단순한 정황이 아니라 실제 벌어지는 현실에 기초한 것이다. 9월 이후 애플 주식 가격은 20%가량 폭락했다. 한때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폰과 그 아류로 구분됐으나 이젠 안드로이드폰이 더 많이 팔린다. 태블릿PC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60%가 넘었으나 지금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시장 판세는 ‘애플 vs 삼성 연합군’으로 재편됐고 삼성은 막강한 시장 장악력과 광고예산으로 애플의 신화를 위협하고 있다.애플이 고전하는 첫 번째 요인은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의 부재다. 울프는 “잡스의 신격화는 독특한 IT업체였던 애플을 시대의 화두로 끌어올리는 ‘애플리즘’을 양산했다”며 “하지만 휴대전화나 태블릿PC가 보편화되면서 브랜드 이미지로 시장을 독식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애플이 가격과 원가절감이 아니라 명성에 안주하거나 잡스가 남긴 영향력으로 시장경쟁력을 기대하는 데 한계가 있단 설명이다.애플 내부의 권력투쟁도 우려를 증폭시켰다. 스콧 포스톨 수석부사장과 존 브로윗 소매사업 부문 책임자의 사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잡스만큼 영향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애플의 권위적인 판매정책도 과거엔 카리스마 넘치는 책임감의 발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로 비난받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투표소에 경찰을 배치하지 않는다고요? 신분증이 없어도 투표를 할 수 있어요? 그게 정말 가능합니까.” 6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견학한 세계 각국의 선거 관리자들이 미 선거 시스템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전했다. 나흘간 선거 진행을 지켜본 그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부정을 저지를 수 있을 만큼 허술해 보였기 때문이다. 예멘과 잠비아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60여 개국에서 온 국제선거제도재단(IFES) 소속 선거 담당자들이 가장 놀란 것은 대다수 주에서 별다른 신분 확인 없이 투표가 가능하단 점이었다. 우편이나 온라인 투표도 마찬가지였다. 리비아에서 온 누리 엘라바르 씨는 “믿을 수가 없다”며 “아랍에선 이런 시스템을 악용해 여러 번 투표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투표소에 경찰이나 선거를 감시하는 인력이 따로 없다는 점도 신기해했다. 그럼 선거가 안전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누가 관리하느냐는 반문이다. 미국인들은 경찰 배치를 불편하게 여기는 데다 제한된 선거 관리 인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정당에서 파견한 참관인들이 투표를 지켜본다는 설명에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거 뒤 남은 투표용지 처리 방식도 화제였다. 미국은 개표요원이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처리하거나 수거해 가는 게 일반적이다. 모로코는 남은 용지를 현장에서 소각하고, 러시아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오용될 위험을 막는다. 주마다 선거 스타일이 제각각인 점도 얘깃거리였다. 메릴랜드 주는 이미 전자투표가 일반화됐는데, 워싱턴 주는 여전히 종이 기입이 주된 투표방식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선 유권자들이 당일 투표소 명단에서 이름을 찾지 못해도, 일단 투표한 뒤 며칠 뒤에 신분을 입증해도 된다는 점도 인상적으로 꼽았다. IFES 담당자들은 이 같은 선거는 미국에서나 가능하다며 이를 미국이 가진 ‘신뢰의 힘’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라 알우타이비 요르단 선거감독관은 “미 선거의 가장 놀라운 점은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이를 별 탈 없이 꾸려 나가는 유권자와 선거기관”이라고 말했다. 레바논에서 온 담당자는 “꾸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제도를 정착시킨 선거 선진국만이 가능한 일”이라며 “중동이나 아프리카는 현실적으로 당장은 불가능하다”라고 평가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번 선거를 통해 여러분은 우리의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싸운다는 것을 일깨워 줬습니다. 중산층의 새 일자리와 새로운 기회, 그리고 안전을 위해 계속해서 싸워 나갈 것입니다.” 이변은 없었다. 선거 며칠 전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조심스레 점쳐졌던 미국 대통령선거는 결국 현직 대통령의 승리로 결론 났다. 투표가 마무리된 직후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우세가 예측되더니 격전지로 꼽히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주 등을 대부분 쓸어 담으며 승기를 굳혔다. 6일 오후 11시(미국 동부시간·한국 시간 7일 오후 1시)경 CNN방송과 뉴욕타임스, MSNBC 등 주요 언론은 출구 예측조사를 바탕으로 일제히 ‘오바마 재선 성공’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오바마 대통령 선거본부 인근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은 큰 함성으로 승리를 자축했다.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2개(재선) 또는 4개(임기 4년 더)를 펴 보이며 기뻐했다. 워싱턴 백악관 인근과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 등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반면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선거본부에 모인 지지자들은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소감 연설은 7일 0시 반경 시카고 컨벤션센터 매코믹플레이스에서 이뤄졌다. 뜨거운 환호 속에 부인 미셸 여사와 두 딸을 대동하고 연단에 올라 “미국의 대통령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롬니 후보를 위로하며 “서로 맹렬히 싸웠지만 양 진영 모두 미국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며 “조만간 그와 마주앉아 미국이 나아갈 길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허리케인 샌디 희생자들과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군인들을 언급하며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운명을 함께하며 서로 책임을 나눌 때 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미 언론들은 6일 오후 8시경 투표가 종료되자 곧장 양 진영의 선거인단 확보 현황을 생중계했다. 오하이오를 잃고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법칙은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CNN방송이 이 지역 판세를 ‘오바마 51% 대 롬니 48%’로 발표하자 오바마 대통령 진영은 일찌감치 과반수(270명) 확보를 자신하며 승리를 예감했다. 뉴욕타임스가 한때 오하이오 주에서 롬니 후보 우세를 전망했으나 곧 전세가 역전됐다. 롬니 후보 측은 초기 2시간가량 텍사스 등 우세한 주들이 먼저 발표돼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 앞서가자 실낱같은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스윙스테이트(경합 주)로 꼽혔던 11개 주에서 대부분 밀리며 분위기가 급속도로 암울해졌다. 오하이오 주는 물론이고 몇 주 전만 해도 다소 우세하리라 관측됐던 ‘남부 최대 격전지’ 플로리다에서까지 뒤처지며 결정타를 맞았다.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콜로라도 아이오와 뉴햄프셔 등 나머지 주요 경합 주도 오바마 대통령이 2∼7%포인트 이긴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인단도 처음엔 오바마 대통령이 겨우 마지노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였다. 뉴욕타임스는 7일 오전 2시경 “오바마가 이미 303명을 확보해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플로리다 선거인단 29명을 롬니(206명) 측이 가져가도 대세는 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플로리다는 현재 오바마 대통령이 약 0.53%포인트 앞선 것으로 1차 개표를 마쳤으나 법적으로 규정된 재검 기준(0.5%)에 근접해 확정을 미뤘다. 이로써 접전 지역의 재검표로 인해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선거 이전의 우려도 사라졌다. ‘선거는 이겨도 득표율은 뒤질 것’이란 전망과 달리 총 득표수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CNN방송은 7일 오전 9시 현재 “오바마가 약 5959만 표(50%)를 얻어 롬니(약 5697만 표)보다 2%포인트(약 262만 표)가량 많이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나이별로는 44세 이하는 오바마 대통령(56%)을, 45세 이상은 롬니 후보(53%)를 더 많이 지지했다. 지역별로는 도시는 오바마 대통령(62%)이 농촌은 롬니 후보(59%)가 우세했다. 여성은 55%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 반면 남성은 52%가 롬니 후보를 지지해 성별 투표 성향도 달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사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2시간 후인 오전 1시경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컨벤션센터 패니얼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연단에 올라 “방금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했다”며 “지금은 미국의 중요한 순간이므로 정치적 대결에 골몰하기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돼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국민은 다른 리더를 선택했다”며 “이제 국민의 한 명이 돼 그의 리더십을 따르겠다”고 연설을 마쳤다. 롬니 패배에 침울해 있던 관중들은 긍정적인 연설에 큰 박수를 보냈으며 일부 지지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초 승리 연설만을 준비했던 롬니는 오바마의 승리가 확정된 후 급히 패배 연설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롬니는 베인캐피털 경영 등 성공적인 기업가 전력을 내세우며 대선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기업가 전력은 그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오바마 진영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해외 일자리 유출과 세금 미납 의혹, ‘부도덕한 기업가’ 이미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잇단 말실수와 모르몬교 신자라는 약점 등으로 지지율 부진에 시달렸던 롬니는 10월 초 대선 1차 TV토론에서 오바마를 압도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선 직전 발생한 허리케인 ‘샌디’ 이후 민심은 다시 오바마에게 기울었다. 롬니는 ‘0.01% 초(超)부유층’ 집안의 2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아메리칸모터스 회장인 아버지 조지 W 롬니는 미시간 주지사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을 지내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까지 나선 거물이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대선 도전에 실패한 셈. 어머니 역시 미시간 주 상원의원에 도전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사업가 DNA를 물려받은 그는 1984년 베인캐피털을 창립해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다가 1999∼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200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당선된 그는 민주당이 장악한 주의회와 초당적 협력을 통해 당시 각종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롬니가 ‘회생 전문가’란 별명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8년 공화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 절치부심해 올해 대선후보로 나섰던 롬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인적인 유세 일정을 소화하며 경합 지역을 누볐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인 앤 롬니는 지난달 ABC방송에 출연해 “남편이 이번 대선에서 패하면 더는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롬니는 경영 일선에 나서거나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계의 거물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다만 보수진영의 결집을 촉구하는 공화당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는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살다 보니 명절은 참 이중적이다. 가족이 모여 맛난 음식을 먹으니 좋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쉼표를 얻는 것도 기쁘다. 하지만 행사치레에 지쳐 드러눕는 주부가 많다. 백수나 주머니 빠듯한 월급쟁이도 부담이 크다. 물가는 또 어찌나 뛰는지. 그런데 말 많고 탈 많은 명절 풍경이 꼭 우리네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10월 31일 서양 명절 핼러윈을 맞은 미국의 씀씀이는 엄청났다. 전미소매업연합회(NRF)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이 ‘뜨거운 밤’을 위해 80억 달러(약 8조7600억 원)를 썼다. 지난해 69억 달러보다 17% 늘어 사상 최고액을 경신했다. 미국답게 애완동물도 축제를 즐겼다. 강아지 분장, 고양이 사탕 등에 3억7000만 달러를 소비해 역시 최고점을 찍었다. 올해 핼러윈 대박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다. 대선을 치르는 해면 투표를 앞두고 이래저래 돈이 좀 풀렸다. USA투데이는 “올림픽과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히트 등 흥행 호재 요인이 많았던 것도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안 그래도 파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하지만 테이블 아래를 들쳐 보면, 실상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이렇게 소비가 커진 건 여러 악재가 겹친 물가 폭등이 주범이다. 올해 미국이 21세기 최악의 가뭄을 겪는 바람에 ‘핼러윈의 상징’ 호박 값이 가파르게 뛰었다. 중국 경기 둔화와 임금 상승은 ‘메이드 인 차이나’ 파티복과 장식 가격을 올려 놓았다. 어린이 비만 논란이 일면서 비싼 유기농 캔디가 많이 팔린 것도 한몫했다. 사정이 이러니 축제가 드리운 그림자도 짙었다. 델라웨어 주립대 학생신문은 최근 ‘바느질에 빠진’ 신(新) 캠퍼스 풍속도를 조명했다. 턱없이 오른 학비도 버거운 마당에, 괜찮다 싶으면 1000달러씩 하는 파티 의상은 그림의 떡이었을 터. 결국 직접 옷을 지어 조촐하게 명절을 맞는 학생이 많았단 얘기다. 서부 지방지 ‘새크라멘토 비’는 이런 이들을 위해 유행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저렴한 핼러윈 의상들을 제안했다. 그중 하나는 ‘싸이’ 차림새다. “장롱에 모셔 뒀던 정장을 꺼내 입고 선글라스만 착용하면 당신도 패션 피플”이란다. 이 정도면 웃고 넘기겠지만, 사뭇 진지한 갈등도 있다. 폭스뉴스는 “핼러윈을 금지하는 초등학교가 늘어 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하다”고 전했다. 빈부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파티로 가난한 학생들의 맘을 생채기내지 말자는 게 학교 측 논리다. 안 그래도 ‘골칫거리’인 핼러윈을 피해 가고 싶은 속내도 크다. 일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해골이나 귀신 분장을 악마 숭배라며 비난해 왔다. 서구적 축제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민자 가족들도 있다. 이런 판국에 학생 평등권 추구란 적당한 명분이 생긴 셈이다. 사연이야 제각각이지만 이런 논의들 속엔 ‘앙꼬’가 빠져 있다. 2000여 년 세월이 깃든 핼러윈의 본질은 어린이들의 축제란 점이다. 꼬마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스스로 잔치를 준비하고, 이웃집에 사탕을 조르며 마을 어른께 인사드리는 따사로운 미풍양속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성인들의 논리로 물든 핼러윈을 이젠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고 개탄했다. 동심을 멍들게 하는 건 경제니 뭐니 그런 게 아니다. 색안경을 쓴 채 그걸 강요하는 어른들 심보가 문제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미국에서 뇌염의 일종인 ‘웨스트나일열’로 인한 사망자가 올해만 200명이 넘으며 관련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고 로이터통신이 24일 보도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로 지난주 36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올해 들어 사망자는 216명, 감염자는 4725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2002년 284명, 2003년 264명이 각각 숨진 이래 가장 많은 인명 피해다. 이 바이러스는 대부분 모기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주로 따뜻한 지역의 피해가 컸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루이지애나 등 8개 주가 미국 전체 발병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에서 4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는 웨스트나일열은 17일 국내 첫 환자가 발생했다. 대인 접촉으로 옮겨지지는 않지만 드물게 수혈이나 장기 이식으로 전염돼 뇌염 수막염으로 번질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은 감염돼도 자연 치유되지만 면역체계가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는 뇌염 수막염으로 번질 수도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994년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한 뒤 승승장구하던 ‘아프리카의 맹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추락하고 있다. 신흥경제대국 브릭스(BRICS)에 가입할 정도로 경제도 성장했으나 역설적이게도 정치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던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부정부패가 발목을 잡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남아공엔 ‘입찰사업가(tenderpreneur)’란 신조어가 유행이다. 정부사업 입찰(tender)에 관여해 기업가(entrepreneur)처럼 부를 축적하는 정치인이나 관료를 일컫는다. 과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ANC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없애고 해외자본을 유입해 나라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1999년 만델라가 물러난 뒤 ‘고인 물은 썩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ANC 1당 집권 체제가 지속되면서 집권당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진 게 독약이 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극심한 빈부격차다. 남아공은 백금과 우라늄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4199억 달러(약 464조 원)에 이를 만큼 성장했다. 인구 4900만 명인 남아공의 1인당 GDP는 지난해 기준으로 8201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소득불평등을 가늠하는 지니계수는 0.63으로 1993년 0.59보다 오히려 악화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아프리카 제1의 경제대국이란 명성이 무색하게 실업률이 40%를 넘는다”며 “상위 10%는 갈수록 부유해지고 하위 50%는 하루 2달러로 생계를 연명한다”고 지적했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올해 전국적 파업이란 악순환을 낳았다. 8월 백금 광산 파업시위 도중 34명이 숨진 ‘마리카나 사태’를 비롯해 분야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분규가 이어졌다. 환경미화원과 경찰까지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NYT는 “연쇄파업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해외투자자본이 빠져나가는 이중고가 밀어닥쳤다”고 분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남아공의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으로 한 단계 내린 데 이어 이달 12일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한 단계 낮췄다. 화폐가치도 올해 3월 달러당 7.44랜드에서 현재 8.72랜드로 급락했다. 남아공 중앙은행은 올해 자국 경제성장률이 2.6%에 머물러 아프리카 평균인 5%에도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사망한 지 1년째 되는 20일, 카다피 친위부대로 악명 높았던 ‘32여단’을 이끌었던 그의 막내아들 카미스(29세 추정·사진)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리비아 의회의 오마르 함단 대변인이 카미스가 바니왈리드에서 전투 중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수도 트리폴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바니왈리드는 카다피 추종세력의 거점. 17일부터 벌어진 정부군과의 교전으로 양측에서 약 13명이 숨지고 120여 명이 다쳤다. 카미스도 이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카미스는 카다피 자녀 가운데 가장 어렸지만 대표적인 ‘강경파’로 손꼽혔다. 독재 시절 러시아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뒤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왔다. 리비아 국민은 32여단을 ‘카미스 여단’이라 부르며 두려움에 떨었다. 가디언은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사망설이 흘러나왔으나 확인되지 않았던 만큼 이번 발표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카다피의 자녀 7남 1녀 가운데 나머지는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있다. 장남 무함마드와 5남 한니발, 딸 아이샤는 카다피 부인 사피아 파르카시와 함께 알제리로 도주했다. 3남 알사디는 니제르로 망명했다. 후계자 1순위로 꼽혔던 2남 사이프 알이슬람은 투옥돼 재판 중이다. 4남 무타심과 6남 사이프 알아랍은 지난해 사망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날 “카다피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리비아는 ‘카다피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친(親)카다피 세력이 상당수 남아 있기 때문. 이날 ‘카다피의 입’으로 불렸던 무사 이브라힘 전 외교장관도 바니왈리드 인근 검문소에서 체포됐다는 발표가 나왔다가 곧 철회됐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국 항소법원이 18일(현지 시간) 삼성전자 태블릿PC ‘갤럭시탭’이 애플 아이패드의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애플의 항소를 기각했다. 영국 BBC뉴스는 이날 “항소법원은 고등법원의 판결이 적절했다며 또다시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고 전했다. 항소법원은 “갤럭시탭은 아이패드의 디자인과 혼동될 만큼 세련되지 않다”며 “애플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고등법원은 앞서 7월 애플이 제기한 소송에서 삼성전자 측 주장을 받아들여 디자인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애플이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이날 기각된 것이다. 한편 애플은 항소마저 기각됨으로써 조만간 “갤럭시탭은 아이패드의 디자인을 도용해 피해를 끼친 적이 없다”는 해명을 담은 광고를 영국 주요 신문과 언론에 게재해야 한다. 또 같은 내용의 공고문도 최소 6개월 동안 영국 본사 홈페이지에 띄워야 한다. 당초 고등법원은 판결과 함께 이 같은 시행을 명령했으나 애플이 항소심 판결 때까지 유예를 요청해 집행이 보류돼 왔다. 삼성전자의 영국 대변인은 “항소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애플 측은 즉각적인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벤처 기업인 ‘크웰리아 닷컴’은 최근 부동산을 가진 미국인들의 입소문을 가장 많이 타는 회사다. 인터넷으로 건물 가치를 평가한 뒤 적절한 돈벌이 방법을 상담해 찾아준다. ‘셰프 서핑’은 온라인 요리사 알선업으로 주부들에게 인기다. 3년 전 창업한 ‘케드조’는 휴대전화나 태블릿PC로 직원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최근 ‘뜨고 있는’ 이 기업들은 소규모 자본으로 출발했지만 남다른 아이디어로 빛을 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했지만 2011년을 전후해 칠레 산티아고로 거점을 옮겼다. 이들은 최근 주목받는 ‘칠리콘밸리(Chilecon Valley·칠레와 실리콘밸리의 합성어)’ 소속 벤처기업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3일 최신호에서 ‘실리콘밸리를 넘보는 칠리콘밸리의 유혹’을 집중 보도했다. 세금 문제 등으로 실리콘밸리에서의 창업 문이 갈수록 좁아지는 틈을 타 칠리콘밸리가 벤처기업 유치에 성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간 실리콘밸리는 미국이란 큰 무대를 바탕으로 풍부한 산학연계와 창업도전으로 명성을 이어왔다. 해외의 많은 고급인력이 ‘제2의 애플’을 꿈꾸며 몰려들었다. 2005년 창업자 가운데 외국인은 52%로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는 세금과 이민자 문제가 정치 이슈로 떠오르며 외국인 창업 규제가 강화됐다. 인도 출신 아난드 차트파르는 2년 전 세운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로 승승장구했지만 최근 사업을 접고 조국으로 돌아갔다. 미 정부가 세금을 대폭 올린 데다 비자 재발급도 보류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벨리의 올해 외국인 창업비율은 44%로 떨어졌다. 칠리콘밸리는 실리콘밸리에서 곤란을 겪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2010년 칠레 정부가 ‘스타트 업(창업) 칠레’라는 프로젝트를 발족한 뒤 온갖 지원으로 신생기업을 유혹했다. 창업제안서만 내도 착수금 4만 달러(약 4500만 원)를 줬다. 상업적 가치가 높은 회사는 칠레 대기업의 돈줄과 연결해 줬다. 비자 문제도 말끔하게 처리했다. 덕분에 칠리콘밸리는 2년 만에 벤처기업 500여 개가 문을 열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 있던 150여 기업이 넘어오며 탄력이 붙었다. 지난해 미국에서 회사를 옮겨온 존 니오쿠 씨는 “요즘 기업 활동은 거의 인터넷 기반이어서 본사가 미국에 있건 칠레에 있건 차이가 없다”며 “미국인에게도 칠레의 세금 제도가 더 나으니 다른 국가 출신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칠리콘밸리의 성공을 아직 확신하긴 이르다. 실리콘밸리와 비교하기엔 규모나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현 우파정부가 물러나고 좌파가 집권할 경우 지금과 같은 지원을 계속할지 의문이다. ‘남미의 맹주’ 브라질이 최근 칠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해 창업지원에 나서며 강력한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파블로 롱게이라 칠레 경제장관은 “칠리콘밸리는 이제 겨우 싹을 틔운 단계”라며 “대학들에 산학연구센터를 세우고 기존 대기업의 벤처육성사업 확대를 독려하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 씨(80)의 그림이 생존 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가인 2100만 파운드(약 375억 원)에 팔렸다. 영국 BBC방송은 13일(현지 시간) “리히터가 1994년 완성한 추상화(사진)를 전날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한 익명의 입찰자가 낙찰받았다”며 “당초 예상가 1200만 파운드를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라고 전했다. 이전까지 생존 작가 작품이 기록한 최고가는 2010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 화가 재스퍼 존스 씨의 ‘깃발’이 기록한 2860만 달러(약 318억 원)였다. 리히터 씨의 대표적 추상화로 꼽히는 이 작품은 “혼돈의 의식을 표현한 걸작”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와 짝을 이루는 또 다른 그림은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과 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가 공동 소유주로 되어 있다. 이번에 팔린 작품은 한때 영국의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에릭 클랩턴이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독 드레스덴 태생인 리히터 씨는 현대 회화의 의미를 재해석해 전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선두주자로 각광받았다. 그의 소품 하나도 수십억 원을 호가해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생존 작가로 손꼽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 대선주자들은 대기업과의 소모적인 전쟁을 멈춰야 한다.” 라파엘 아미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사진)는 11일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의 세 대통령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며 “이런 대중인기에 영합한 움직임은 한국 경제 기반을 흔드는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미트 교수는 “현재 한국은 여야 성향을 막론하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반(反)재벌 정서’가 들끓고 있다”며 “한때 산업역군으로 칭송받았던 대기업은 심각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주범으로 몰렸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아미트 교수가 보기에 이는 위험천만한 공격이다. 한국 경제를 지금까지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중심이 될 대기업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미트 교수는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재벌 이슈는 한국 경제의 특수성이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6·25전쟁 이후 한국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을 추진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며 어느 때보다 ‘경제적 혁신(innovation)’이 중요한 상황에서 한국에서 이런 혁신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 주체는 대기업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국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흥미로운 글 하나를 게재했다. 내용인즉슨, 몇 년 전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우연히 한 비행기에 탔다. 당시 현직으로 재임하던 두 거물은 정치 성향이 워낙 상극인지라 행여 서로 불편해할까 수행원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둘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오랜 친구처럼 친해졌다고 한다. 비행 내내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가장 공감했던 주제는 ‘세계의 빈곤’이었다. 이후 양국이 제3세계 에이즈와 결핵 치료제 보급을 위해 파트너십을 맺은 건 그리 머지않은 미래다. 특히 시라크는 룰라의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곧장 오랜 벗이자 당시 외교장관인 필리프 두스트블라지를 불렀다. “우리가 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가난과 싸울 프로젝트를 구상해 보게.” 2006년 출범한 국제 의약품 보급단체 ‘유니타이드(Unitaid)’는 이렇게 탄생했다. 시라크 가 현직에서 물러난 뒤 열정을 쏟은 이 단체는 지금까지 22억 달러(약 2조4400억 원)어치의 약품을 가난한 나라들에 공급했다. 말라리아 치료제의 국제가를 7달러에서 0.33달러로 낮추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퇴임 후 빈곤 퇴치에 앞장선 룰라도 물심양면 지지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이 훈훈한 미담엔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등장한다. 두스트블라지 전 장관이 정신적 지주로 여기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다. 유니타이드 운영 문제로 고심하던 그에게 ‘마이크로 도네이션(micro-donation)’이란 아이디어를 일러 준 게 클린턴이었다. 마이크로 도네이션은 말 그대로 ‘소액 기부’를 말한다. 자선단체 후원금을 기업이나 부자의 일시적 선행에 기대지 않고 선진국의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세금 일부를 조금씩 모아 충당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유니타이드는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여행객이 프랑스에서 비행기를 탈 때 내는 공항세 가운데 1유로(약 1440원)를 재원으로 확보했다. 클린턴이 창립한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 역시 이런 방식으로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마련한다. 그는 이달 초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활동이 세상에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역설한 바 있다. “정부와 기업, 자선단체는 오랫동안 인류의 질병에 대항해 싸워 왔습니다. 그러나 세 분야를 잇는 혁신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우리는 더 큰 진보를 이뤄 낼 수 있습니다. 이는 각자 별개로 움직여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엄청난 성취입니다. 그 때문에 함께 일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물꼬를 트는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직 대통령들의 활동이 현직 행정수반 업무보다 더 숭고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한 국가를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폄훼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이젠 한국에서도 일선에서 물러난 뒤 아름다운 행보를 걷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잠깐 얘기를 되돌리자면, 쿠퍼의 칼럼 제목은 ‘조용히 지구를 바꾸는 법’이다. 세간의 이목이 시들해져도 묵묵히 인류에 기여하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희망적이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마다 거의 매번 시끄러웠던 이 땅에선 너무 먼 얘기일까. ‘29만 원 쇼’는 이제 사절이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이스터 섬이 아닙니다. 라파누이 섬입니다.”‘세계 7대 불가사의’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남태평양의 이스터 섬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888년 칠레령으로 복속된 뒤 124년이 지났지만 뿌리를 찾고 주권을 회복하려는 원주민들의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6일 “조만간 이 조그만 섬에서 사라졌던 왕조가 다시 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섬 인구(5806명)의 60%를 차지하는 폴리네시안 계열 라파누이 원주민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우리 땅이니 스스로 통치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 칠레의 통치 이후 섬이 발전했지만 과실은 대부분 칠레 몫으로 돌아갔고 고유문화는 잠식당했다. 관광사업이 번창해 하룻밤 1100달러(약 120만 원)짜리 특급호텔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들어섰지만 원주민 대부분은 입에 풀칠하기도 벅차다.라파누이는 무엇보다도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섬의 자연과 문화가 훼손되는 게 마음 아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모아이 석상에 미치는 피해도 적지 않다. 칠레계 주민 비율도 급격히 늘고 있다. 칠레계는 지난 10년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섬 인구의 약 39%에 이르렀다. 이대로 가면 비원주민의 반대로 독립을 거론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라파누이가 최근 섬 공항 활주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인 데는 ‘더 미뤘다간 이런 상황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원주민들은 일단 ‘왕정 복원’을 독립의 1차 단계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섬 의회는 마지막 왕의 손자인 발렌티노 투키 씨(81)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다. 입헌군주제 형식으로 주권을 되찾겠다는 의지다. 투키 씨는 1950년대 칠레 정부가 원주민들의 여행권을 제한할 때 투쟁한 경력이 있어 상징성도 크다. 그는 “뉴질랜드와 자유연합협정을 맺어 외교권은 뉴질랜드에 주고 입법권과 행정권을 획득한 쿡 제도가 우리의 모범 사례”라고 설명했다.칠레 정부 측은 독립은 인정할 수 없지만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카를로스 리앙카케오 이스터 섬 통치 장관은 “어려움에 시달리는 원주민의 불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섬 의회 권한을 확대하고 일자리와 교육을 보장하도록 애쓰겠다”고 약속했다. 라파누이 내부에서도 독립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알베르토 오투스 의회 원로회장은 “당장 칠레와 관계가 끊기면 섬이 원시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국의 조롱인가 칭찬인가.’ 최근 이중국적 추진으로 조세피난을 도모한다고 비난받았던 프랑스의 최고 부자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회장(사진)이 조만간 영국으로부터 명예 기사 작위를 받는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아르노 회장이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의 명예 중급 훈작사(Knight Commander)를 수여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 외교부는 “영국 경제와 시민사회에 폭넓게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수여식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410억 달러(약 45조5400억 원)의 재산을 지닌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1위, 세계 4위 부자에 오른 경제계 거물. 그의 영향력으로 봤을 때 명예 기사 작위를 받는 건 어색한 일이 아니지만 시기가 민감하다. 프랑스에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슈퍼 과세’를 반대해 온 아르노 회장이 지난달 벨기에 국적을 신청한 이유가 막대한 세금 부담을 피해가려는 의도라며 찬반 논란이 들끓었다. 이 때문에 작위 수여에는 영국이 프랑스 기업을 영국에 유치하려는 속내가 깔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영국 정치인들은 프랑스 경제인의 환심을 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올 상반기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유럽 기업이 높은 세금 부담 탓에 영국으로 본사를 옮긴다면 언제든 적극 도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도 8일(현지 시간) 버밍엄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프랑스 정부의 부유층 증세를 두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래 이런 독재는 본 적이 없다”며 “재능 있는 프랑스인의 런던 이주를 환영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환갑 맞은 푸틴, 러시아의 로망인가 환상인가.’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60세 생일을 맞아 러시아에서 다양한 축하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통령 측은 “가족과 조용히 보내겠다”고 밝혔지만 지지층이나 언론이 나서 ‘강한 남자’ 푸틴 찬양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6일 “러시아 남서부 로스토프나도누 시내에는 길이 150야드(약 137m)짜리 생일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고 전했다. 친푸틴 청년당원들이 내건 초대형 걸개엔 세계를 호령하는 그의 공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모스크바에서는 ‘대통령, 가장 다정한 영혼을 가진 남자’란 주제로 미술전시회가 개최된다. 푸틴이 생일을 보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시민 거리행진도 열릴 예정이다. TV와 라디오는 지난주부터 푸틴의 생애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수시로 내보내고 있다. 생일맞이 푸틴 영웅화의 백미는 독일통일 시절의 경력 미화다. 당시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으로 동독에 근무했던 푸틴이 사무실로 쳐들어온 군중 앞에 홀로 나서 일갈로 물리쳤다는 내용이다. LAT에 따르면 이 같은 과도한 열기엔 러시아 국민의 모순적인 이중 잣대가 반영됐다. 푸틴 대통령의 인기는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25∼39세 여성의 25%가 “그라면 당장이라도 결혼하겠다”고 할 정도로 높다. 갈수록 정부에 대한 불만은 커지는데 대통령 개인 지지율은 올라가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분석가인 릴리야 셉초바 씨는 “러시아인은 생활이 피폐해질수록 ‘결국 기댈 곳은 푸틴’이란 믿음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배후 조종설도 나오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런 거창한 이벤트에 정말 시민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을까”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