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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극장, 공연장, 무대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나마 생긴 일자리도 갑자기 없어지기 일쑤다. 지난달 26일 제작사 대표가 잠적해 일찍 막을 내린 한 연극은 황폐화된 예술계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현실은 무명의 예술인들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다. 무력감이 밀려오지만 예술을 위해서라면 버텨야 한다. 코로나19로 본래 일터를 떠나 생계 전선에 뛰어든 배우, 인디밴드, 스태프 등 8명을 만났다. 볼멘소리를 꺼내기도 이들은 조심스러워 했다. “저희만 힘든가요. 예술인의 숙명인가 봅니다.”○연극배우의 ‘코로나 하루’ 지난해 국립극단 시즌제 단원으로 뽑혀 매일 연습실에 가던 배우 김한 씨(42)는 서울 마포구 집에서 경기 화성시 한 빵집으로 출근한다. 지난달 21일 오전 6시, 눈을 비비며 승용차에 오른 그는 동틀 무렵까지 1시간 20분을 달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을 지날 즈음 “여기서 얼마 전까지 공연했는데…. 11월까지 꽉 찼던 스케줄이 줄줄이 끊겼다”고 입을 뗐다. “배우는 몸 쓰는 직업이라 사고 위험이 있는 장거리 운송 알바는 가급적 안 할 생각이었는데….” 오전 7시 40분, 빵집에 도착하자 하얀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그가 빵을 진열하고 포장한다. 첫 손님이 들어오자 힘차게 “어서 오세요!” 외친다. 배우 활동이 아예 끊긴 건 아니다. 오디션이 가뭄에 콩 나듯 열린다. “다행히 강릉에서 촬영하는 영화 단역을 맡아서 다음 주엔 오전 4시쯤 일어나야 할 것 같다”며 엷게 미소 지었다. 최근엔 충남 천안에서 마당극 공연도 했다. 오전 10시, 빵집 건물 6층 빵 공장에서 인천에 배송할 빵을 받아 트럭에 옮겨 싣는다. 매일 경기 화성과 인천을 오가며 다른 매장에 배달한다. 일이 많은 때는 서울, 화성, 인천, 천안을 오가느라 일주일에 2000km를 달린다. “연기할 자리가 생기면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 일정을 조율하는 게 더 힘들죠. 마당극도 사장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오전 11시를 넘겨 인천 남동구의 한 매장에 빵을 내려놓고 2차 배송이 예정된 화성으로 향한다. 끼니를 챙길 시간도 마땅치 않다. 2차 배송이 끝나면 서울에 가서 저녁 알바를 해야 한다. 그는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공연계의 미래 때문에 더 힘들다”고 했다. 랜선 공연이 늘면서 배우로서의 정체성도 고민이다.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오후 5시, 두 번째 직장으로 출근한다. 한 달 전부터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인 공공지원사업에 뽑혀 극장에서 일한다. 하루 8시간 언제 재가동할지 모르는 무대와 극장을 정비한다.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다음 날 오전 1시. ○“돈을 바라면 못 한다는 일이지만, 그래도…” 생활고는 늘 함께였다. “돈을 바라면 예술을 오래 못 한다”는 말에 수긍해 왔지만 올해는 뼈아프다. 인디밴드 트레봉봉의 드러머 김하늘은 “경제적 어려움은 몸에 익었다. 관객을 못 만나는 상황이 더 힘들다”고 했다. “꿈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7년 차 뮤지컬 배우 김주왕 씨(34)도 고됨의 연속이다. 해외 할리우드 연예인 대상의 운동 수업도 병행했지만 일이 끊기자 스크린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스크린골프장 손님이 줄어 해고된 뒤 동창에게 부탁해 지금은 방역업체에서 일한다. 산업용 마스크에 방호복 차림으로 공연장 사무실 헬스장에 소독약을 뿌린다. 퇴근 후엔 뮤지컬 넘버 커버곡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 예술을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무대가 간혹 열리면 무대에 굶주린 이들이 모여든다. 올 9월 온라인 ‘인천 펜타포트 음악축제’에 설 수 있는 ‘펜타 유스스타’ 경연에 299개 밴드가 몰렸다. 1, 2등만 무대에 설 수 있어 경쟁률은 150 대 1이었다. 지난해 경쟁률은 20 대 1 수준이었다. 트레봉봉 리더 성기완(53)은 “3등을 해서 기회는 놓쳤지만 뮤지션들의 절박함을 느꼈다”고 했다. 11년 차 음향감독 김병주 씨(32)는 넓이 90m² 남짓한 창고로 출근해 음향장비를 쓸고 닦고 점검한다. 그는 “장비 상자에 거미줄 쳐진 거 처음 봤다. 너무 신기해서 사진도 찍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 9월부터 연말까지 성수기지만 지금은 대출로 버틴다. 2년 차 조명감독 이정수 씨(30)는 최근 대리운전을 시작해 오전 4시까지 일한다. 그는 “이건 기본”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공연 현장에 일감이 생겨 충북 괴산에 1박 2일 다녀왔다. “집에 가면 씻고 바로 대리 뛰어야 합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UIC 경제학과 졸업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4학년}
“제작사 대표가 일주일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조기 폐막을 결정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예술인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극장, 공연장, 무대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그나마 생긴 일자리도 갑자기 없어지기 일쑤다. 지난달 26일 제작사 대표가 잠적해 일찍 막을 내린 대학로 연극판의 단면은 예술계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현실은 상대적으로 무명의 배우 가수 방송인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다. 무력감이 밀려오지만 예술을 위해서라면 버텨야 한다. 코로나19로 본래 일터를 떠나 손에 잡히는 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배우(연극 뮤지컬), 인디밴드, 스태프 등 8명을 만났다. 볼멘소리를 꺼내기도 이들은 조심스럽다. “저희만 힘든가요. 예술인의 애환이자 숙명인가 봅니다.”● 김한 배우의 ‘코로나 하루’지난해 국립극단 시즌제 단원으로 뽑혀 매일 연습실에 가던 배우 김한(42)은 요즘 서울 마포구 집에서 경기 화성시 한 빵집으로 출근한다. 지난달 21일 오전 6시, 눈을 부비며 승용차에 올라탄 김한은 동 틀 무렵까지 1시간 20분을 달린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을 지날 때쯤 “여기서 얼마 전까지 공연했는데…. 11월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 차있었는데 줄줄이 끊겼다”며 입을 뗐다. “배우는 몸 쓰는 직업이라 교통사고 위험이 있는 장거리 운송 알바는 가급적 안할 생각이었어요.” 낮에는 빵집카페에서 일하고, 밤에는 극장에서 공공근로를 한다. 배우 활동이 아예 끊긴 건 아니다. 오디션이 가뭄에 콩 나듯 열린다. “다행히 강릉에서 촬영하는 영화 단역을 맡아서 다음주엔 오전 4시쯤 일어나야 할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최근엔 충남 천안에서 마당극 공연도 했다. 오전 7시 30분, 빵집에 도착하자 하얀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빵을 진열하고 포장한다. 첫 손님이 들어오자 힘차게 “어서오세요!” 외친다. 오전 10시, 빵집 건물 6층 빵공장에서 인천에 배송할 빵을 트럭에 분주히 옮겨 싣는다. 매일 경기 화성과 인천을 오가며 지점에 빵을 배달한다. 일이 많은 때는 서울, 화성, 인천, 천안을 오가느라 일주일에 2000km를 달린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연기할 자리가 생기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 일정을 조율하는 게 몸보다 더 힘들다”며 “마당극 공연도 사장님이 배려해주신 덕분”이라고 했다. 오전 11시를 넘겨 인천 남동구의 매장에 도착해 빵을 옮겨 놓고는 화성으로 향한다. 낮 12시 화성에서 2차 배송이 예정돼있다. 끼니를 챙길 시간도 마땅치 않다. “2차 배송도 끝나면 서울에 가서 저녁 알바도 해야 한다”는 그는 “제 미래만큼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공연계의 미래 때문에 더 힘들다”고 했다. 랜선 공연이 늘면서 배우로서의 정체성도 고민이다.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요?” 오후 5시, ‘두 번째’ 직장으로 출근한다. 한 달 전부터 서울문화재단의 공공지원사업에 뽑혀 극장에서 일하고 있다. 예술인을 돕는 새 일자리다. 하루 8시간 언제 재가동할지 모르는 무대와 극장을 정비한다.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다음날 오전 1시. 빼곡하게 짜인 그의 일과도 언제 갑자기 바뀔지 모른다.● “돈을 바라면 못한다는 일이지만, 그래도…”생활고는 늘 함께였다. “돈을 바라면 예술을 오래 못 한다”는 말에 수긍해왔지만 올해는 뼈아프다. 인디밴드 트레봉봉의 드러머 김하늘은 “생활고는 몸에 익었다. 관객과 대면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힘들다”고 했다. “꿈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7년차 뮤지컬 배우 김주왕(34)도 고됨의 연속이다. 배우들 대상으로 운동수업도 병행했지만 일이 끊기자 스크린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스크린골프장이 문을 닫은 뒤 지금은 동창에게 부탁해 방역업체에서 일한다. 퇴근 후엔 뮤지컬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 예술을 이어갈 방법은 유튜브가 유일하다. 소중한 무대가 간혹 열리면 무대에 굶주린 이들이 모여든다. 올 9월 열린 ‘펜타 유스스타’ 경연에는 299개 밴드가 몰렸다. 1, 2등에게만 온라인으로 열리는 ‘인천 펜타포트 음악축제’에 설 기회가 주어졌다. 경쟁률 150 대 1인. 지난해 경쟁률은 20 대 1 수준이었다. 트레봉봉 리더 성기완(53)은 “3등으로 기회는 놓쳤지만 뮤지션들의 절박함을 느꼈다”고 했다. 11년차 음향감독 김병주(32)는 요즘 넓이 90㎡ 남짓한 창고로 출근해 음향장비를 쓸고 닦고 점검한다. 그는 “장비상자에 거미줄 쳐진 거 처음 봤어요. 너무 신기해서 사진도 찍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9월부터 연말까지가 성수기지만 지금은 대출로 버틴다. 내년 2~3월이 최대 고비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2년차 조명감독 이정수(30)는 “이건 기본”이라고 했다. 오전 4시까지 일하는 그는 오랜만에 공연 현장에 일감이 생겨 1박 2일로 충북 괴산에 다녀왔다. “집에 가면 씻고 바로 대리 뛰어야죠.” ‘뮤지션 유니온’이 9월 독립음악인 151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음악활동을 통한 월 평균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 53만 원에서 32만 원으로 줄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UIC 경제학과 졸업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학과 4학년}
“통장 잔고 빠지는 것보다 근육 빠지는 게 더 무서워요.”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쌍절곤을 휘두르며 근육을 뽐내던 권상우를 필두로 비, 이효리의 폭발적 인기는 몸짱 열풍을 불러왔다. 몸짱 신드롬은 육체·정신 건강의 조화를 추구한 웰빙, 힐링 바람에 차츰 스러졌다. 수년 전부터는 건강을 해칠 만큼 체중 감량에 몰입하거나 근육 불리기에만 집착하는 이를 일컫는 ‘헬창’이란 단어까지 탄생했다. 하지만 최근 ‘헬창’은 하나의 유머코드이자 ‘밈(meme·출처를 알 수 없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나 콘텐츠)’이 돼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스스로 헬창임을 고백하며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고 ‘자학 개그’ 소재로 활용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한때 비하나 멸시가 강했던 단어의 어감도 긍정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헬창들은 서로 “득근하세요”라는 덕담을 건네며 몸을 만든다. 이들의 철저한 생활수칙과 신념은 대중이 경탄하는 수준이다. ‘헬창’ 밈의 기원은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 유머 게시물이 시초다. ‘근손실’(근육이 빠지는 현상)을 극도로 경계하고 헬스 트레이닝을 최우선하는 ‘헬창 인지감수성’이 주된 유머코드다. “장례식장에 갔는데 근손실이 올까 봐 울음도 참는다”란 글에 “운구할 때 관을 들어 리프팅 훈련을 할 수 있다”는 댓글이 달린다. ‘언더아머 단속반’도 화제였다. 3대 운동(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쾃)의 중량 총합이 500kg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달라붙는 언더아머 티셔츠를 입으면 단속한다는 개그다. 미국 트레이너들 사이에서 유행한 ‘1000파운드 클럽’(약 450kg)에서 비롯됐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운동한 적이 있다” “운동하는 꿈을 꾼다” “클럽보다 헬스클럽이 좋다”는 헬창 체크리스트도 인기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헬스장 운영 중단은 헬창들을 유튜브로 끌어들인 계기가 됐다. 가장 주목받은 이는 스스로 ‘타락 헬창’이라 칭하는 구독자 53만 명의 유튜브 채널 ‘핏블리’다. 전형적인 운동 콘텐츠를 소개하던 그는 9월 초부터 헬스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먹방’ 콘텐츠가 대박을 터뜨렸다. 피자, 치킨, 치즈볼 등 평소에 입에도 안 대던 고열량 음식을 삼키며 “이래서 회원님들이 식단 관리를 못 했구나” “이런 속세의 맛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타락한 그의 모습에 구독자들이 열광했고, 급기야 닭가슴살, 치즈볼 광고 촬영으로까지 이어졌다. 구독자 요청으로 제작한 한 보디빌더의 라면 먹방도 화제다. 수프를 넣지 않은 라면과 삶은 달걀 30개의 흰자를 함께 먹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반인륜적” “식욕이 사라지는 신기한 먹방” “존경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조회수는 112만 회에 달했다. ‘가짜사나이’를 기획한 유튜브 ‘피지컬갤러리’ 김계란의 ‘헬창의 삶’ 시리즈도 유명하다. 평균 조회수 200만 회에 육박하며 웹툰도 제작했다. 실내 헬스장이 문을 닫자 산, 한강, 공원 운동기구를 찾아 나서 야외 헬스장을 만들어낸 것도 이들이다.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헬창은 여성들에게도 퍼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근육질 몸매 인증 사진을 올리며 ‘근육질=남자’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운동하는여자’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900만 건이 넘는다. 이 같은 헬창의 트렌드는 운동의 일상화와 밈 놀이문화가 결합된 산물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일상, 패션에도 운동 열풍이 스며들어 ‘헬창’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표준어처럼 쓰이고 있다”며 “유튜브, SNS의 빠른 전파 속도로 인해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하나의 밈으로 몰려갔다가 또 다른 밈으로 향하는 ‘롤코족’이 대세”라고 분석했다. ‘땅끄부부’ ‘말왕’ ‘흑자헬스’ 등 수십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의 성공에 컬트적 밈이 더해진 독특한 인터넷 놀이문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엔 코로나19로 홈트레이닝이 유행한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 네이버, 카카오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헬창 관련 데이터는 단어가 등장한 2018년에 비해 코로나19 이후 3∼4배 많이 검색됐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통장 잔고 빠지는 것보다 근육 빠지는 게 더 무서워요.” 바야흐로 때는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쌍절곤을 휘두르며 근육을 뽐내던 권상우를 필두로 비, 이효리의 폭발적 인기는 얼짱에 이어 몸짱 열풍을 불러왔다. 너도 나도 몸매 가꾸기에 열을 올리던 몸짱 신드롬은 육체·정신 건강의 조화를 추구한 웰빙, 힐링 바람에 차츰 스러졌다. 수 년 전부터는 건강을 해칠 만큼 체중 감량에 몰입하거나 근육 불리기에만 집착하는 이를 일컬어 ‘헬창(중독 수준으로 헬스에 매달리는 사람)’이란 단어까지 탄생했다. 하지만 최근 ‘헬창’은 하나의 유머코드이자 ‘밈(meme·출처를 알 수 없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나 콘텐츠)’이 되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스스로 헬창임을 고백하며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고 ‘자학 개그’ 소재로 헬창을 활용해 콘텐츠 생산 주체로 나선 것. 한때 비하나 멸시가 강했던 단어의 어감도 긍정적으로 완화돼 일반인들 사이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서로 “득근하세요”라는 덕담을 건네며 몸을 만드는 헬창들의 철저한 생활수칙과 신념은 때때로 대중이 경탄하는 수준이다. ‘헬창’ 밈의 기원은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 유머 게시물이 시초다. ‘근손실(근육이 빠지는 현상)’을 극도로 경계하고 삶에서 헬스 트레이닝을 최우선하는 ‘헬창 인지감수성’이 주된 유머코드다. “장례식장에 갔는데 근손실이 올까봐 울음도 참는다”는 글에 “운구할 때 관을 들어 리프팅 훈련을 할 수 있다”는 댓글이 달린다. 단순덧셈을 할 때는 운동기구에 있는 쇠 바(Bar)의 무게(약 20kg)를 자동적으로 고려해 “20+20=60”이 된다는 식이다. ‘언더아머 단속반’도 화제였다. 3대 운동(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의 중량 총합이 500kg를 넘지 못하는 사람이 언더아머 의류의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으면 이를 단속한다는 개그다. 미국 트레이너들 사이에서 유행한 ‘1000파운드 클럽(약 450kg)’에서 비롯됐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혼자 운동한 적이 있다” “운동하는 꿈을 꾼다” “클럽보다 헬스클럽이 좋다”는 헬창 체크리스트도 인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이 불러온 헬스장 운영 중단은 의도치 않게 헬창들을 유튜브로 끌어들인 계기가 됐다. 가장 주목받은 이는 스스로 ‘타락 헬창’이라는 구독자 53만 명의 유튜브 채널 ‘핏블리’다. 전형적인 운동 콘텐츠를 소개하던 그는 9월 초부터 헬스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이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먹방’ 콘텐츠가 대박이 났다. 피자, 치킨, 치즈볼 등 평소에 입에도 안 대던 고열량 음식을 삼키며 “이래서 회원님들이 식단관리를 못했구나” “이런 속세의 맛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타락해버린 그의 모습에 구독자들이 열광했고, 급기야 닭가슴살 치즈볼 등의 광고 촬영까지 이어졌다. 구독자 요청으로 제작한 한 보디빌더의 라면 먹방도 화제다. 스프를 넣지 않은 라면과 삶은 달걀 30개의 흰자를 먹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반인륜적” “식욕이 사라지는 신기한 먹방”이라거나 “존경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회수는 약 120만 회에 달했다. ‘가짜사나이’를 방송한 유튜브 ‘피지컬갤러리’의 김계란도 유명하다. ‘헬창의 삶’ 시리즈는 평균 조회수 200만 회에 육박하며, 웹툰도 제작했다. 실내 헬스장이 문을 닫자 “근손실이 두렵다”며 산, 한강, 공원 운동기구를 찾아 나서 야외 헬스장을 만들어낸 것도 이들이다. 방송가에서도 이들은 러브콜을 받는다. 최근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김종국, 박준형, 김계란이 시종일관 서로의 운동 얘기에 공감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비싼 옷은 필요 없다. 반발, 반바지만 있으면 된다”거나 “디즈니랜드보다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가 좋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헬창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근육질 몸매 인증 사진을 올리며 ‘근육질=남자’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운동하는여자’ 해쉬태그를 단 게시물은 900만 건이 넘는다. 이 같은 헬창의 트렌드는 운동의 일상화와 밈 놀이문화가 결합된 산물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일상, 패션에도 운동 열풍이 스며들어 ‘헬창’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표준어처럼 쓰이고 있다”고 분석했으며 “유튜브, SNS의 빠른 전파 속도로 인해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하나의 밈으로 몰려갔다가 또 다른 밈으로 향하는 ‘롤코족’이 대세”라고 분석했다. ‘땅끄부부’ ‘말왕’ ‘흑자헬스’ 등 수십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의 성공에 컬트적 밈이 더해진 독특한 인터넷 놀이문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엔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홈트레이닝이 유행이 된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 실제 네이버, 카카오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헬창 관련 데이터는 단어가 대중에게 쓰이기 시작하던 2018년에 비해 코로나19 이후 3~4배 이상 많이 검색됐다. 헬창 열풍에서 비롯된 ‘덤벨 경제’의 성장에 유통업계도 반응 중이다. 프로틴이 함유된 간식 박스, 프로틴 함유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커피, 베이글 등이 연달아 출시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며 “지난해 500억 원 수준이던 단백질 관련 식품 시장 규모는 올해 1000억 원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며 업체 간 신제품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 화려한 리빙스턴 박사가 나타났다. 샛노란 금발에 깊고 진한 눈빛, 주머니에 한 손을 꽂은 채 다른 손에 쥔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까지. 시종일관 칼처럼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그는 보는 이의 감정까지 압도한다. ‘맘마미아’의 ‘도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등 뮤지컬, 드라마를 오가던 박해미(56)가 7일 개막하는 신의 아그네스로 돌아왔다. 작품은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를 숨지게 한 수녀 아그네스(이지혜), 그녀를 보살피려는 원장 수녀(이수미)와 아그네스를 구하려는 의사 닥터 리빙스턴 등 3인이 펼치는 심리극이다. 뉴욕의 한 수녀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으며 신과 인간, 종교와 행복에 대해 질문한다. 박해미의 연극 무대는 1998년 ‘햄릿’ 이후 22년 만이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종교에 대한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제 삶의 종교는 곧 무대였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화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1984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그와 연극의 조합은 다소 낯설다. 그는 “뮤지컬 넘버의 멜로디, 가사에 기대어 연기하는 게 익숙하다. 어마어마한 대사량과 연기만으로 넓은 극장을 채우는 작품이라 꾀를 부릴 수 없었다”면서도 “나와의 마지막 싸움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신의 아그네스는 1982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후 ‘여배우의 에쿠우스’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1983년 초연했다. 박해미는 “‘대학로 우량주’들만 출연하던 명작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실제 고(故) 윤소정을 비롯해 윤석화 박정자 손숙 신애라 김혜수 전미도 등 쟁쟁한 배우들이 이 작품을 거쳤다. 닥터 리빙스턴은 과학과 이성을 상징하는 인물. 그는 “다른 이의 트라우마 극복을 돕는 강한 여자다. 겉은 차가워 보여도 인간적인 면을 가진 게 저랑 닮았다”고 했다. 다만 흡연 연기만큼은 고역이다. 집착, 고뇌를 상징하는 담배는 극 전개에 필수다. “평생 멀리한 담배를 손으로 쥐고 연기를 머금다가 뿜어내는 게 어렵다”며 웃었다. 작품은 여성극으로서 의미도 깊다. 그는 “여성들이 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지 다룬다. 여성 억압은 여전히 해결이 안 된 문제 같다”고 했다. 몇 해 전 가족 문제로 경제적, 정신적으로 곤두박질쳤던 그는 지난해 뮤지컬 ‘쏘 왓’ 총감독으로 복귀했다. ‘해미뮤지컬컴퍼니’ 대표인 그는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트콤 제작도 준비 중이다. 그는 종종 연출가들에게 “우는 연기 좀 하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할 만큼 “모든 작품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지론이 확고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윤우영 연출가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바탕 제대로 놀 수 있는 무대를 부탁해요.” 7∼29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4만∼8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다?’ 어렸을 적부터 귀에 박히듯 들어오며, 인류의 우수성을 공인하는 듯한 이 명제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책에 따르면 이는 반드시 참일 수 없다. 인류는 가장 우수한 개체도 아니며, 가장 진화한 종도 아니라는 것. 일례로 인류의 허파는 조류의 허파 능력을 따라갈 수 없고, 직립보행 진화는 심장병, 난산(難産)과 요통을 불러왔다. 침팬지의 길쭉한 손 모양이 인간의 손 모양으로 진화한 게 아니라, 인간의 손에서 침팬지의 손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소개된다. 분자고생물학, 동물의 골격 진화를 연구한 저자는 결국 책에서 인간 역시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진화는 전진도 하고 후진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자연선택 진화론에 입각해 여러 가지 진화 이야기를 소개한다. 자원이 한정된 지구에 생명체가 사는 것을 입시에 비유했다. 당연히 생존경쟁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필수가 됐다. 책은 생물학이나 진화론의 문외한이 보기에도 어렵지 않다. 복잡한 수식과 설명보다는 간결한 문장, 가설, 예시로 풀어냈다.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다 갈래가 여기저기로 뻗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에게 진화의 기로에 선 한 생명체의 무수한 선택 과정과 알고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밟아온 진화의 길이 최고라는 허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김수연 씨(72)를, 적벽가 보유자로 김일구 씨(80)와 윤진철 씨(55)를 인정 예고했다고 30일 밝혔다. 김수연 씨는 고 박초월 보유자에게 수궁가를 배웠다. 화려한 시김새(꾸밈음)와 깊은 성음이 특징이며, 크고 안정된 소리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일구 씨는 고 박봉술 보유자에게 적벽가를 배웠다. 1992년부터 적벽가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윤진철 씨는 16세 때 전국판소리신인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고 정권진 보유자에게 적벽가와 심청가 등을 배웠다. 문화재청은 예고기간 30일 동안 의견을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 달 동안 해변으로 퇴근합니다.” ‘집-회사’만 반복하던 출퇴근 공식에 ‘해변’을 더해 집-회사-해변-집이 된다면?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직장인들의 국내 ‘한 달 살기’가 큰 인기다. 코로나19 이전 한 달 살기는 태국 방콕, 치앙마이, 베트남 다낭, 프랑스 파리, 싱가포르 등 해외 유명 관광지나 국내에선 제주도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보통 휴직, 퇴직 또는 장기 휴가를 활용해 대학생이나 퇴직자, 은퇴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비대면 근무 확산으로 업무를 하면서도 국내 여러 중소도시를 거점으로 한 달 살기가 가능해졌다. 대도시를 벗어나 즐길 수 있는 ‘슬로 라이프’가 한 달 살기의 장점으로 꼽힌다. 8년 차 출판사 편집자인 안유정 씨(36)는 최근까지 집인 서울을 벗어나 강원 강릉시에서 지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집에서만 처박혀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머리를 스쳤다. 실제로 업무 효율도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일을 이어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다 강릉을 찾았다. 시내에 한 달간 머물 방을 얻었고 매일 공유 오피스로 출근해 원격 근무를 시작했다. 일과는 이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오전 8시 반쯤 일어나 개울을 따라 걷다 다리를 건너 공유오피스까지 이어진 1.5km 길을 걸어서 출근한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는 주변 관광지를 돌아보거나 주로 사무실 근처 해변을 찾았다. 주말에는 동해안 일대를 편리하게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안 씨는 “직장과 집이 있는 서울을 벗어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아무리 바빠도 지인, 업무 관계자가 미팅을 요청할 때마다 만나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을 놓지 않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업무 효율도 늘었다”고 했다. 그는 한 달 살기 후 매일 적어둔 일기를 묶어 책도 발간했다. 서울에 있는 금융회사에서 3년째 근무 중인 김모 씨(27)에게 원격 근무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상이다. 회사에서 노트북을 지급하며 재택근무를 권장했다. 김 씨는 “특정일에는 회사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며칠씩 강원도 공유오피스에서 근무한다. 사무실 개념이기 때문에 회사만큼 업무에 최적화되고 탁 트여 있는 주변 자연환경 덕분에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강릉에서 공유오피스 ‘파도살롱’을 운영하는 최지백 대표는 “올해 고객은 한 달에 30명이 넘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며 “서울 경기 지역에서 찾아오는 30, 40대 직장인이 많다”고 했다. 정보기술(IT) 개발자, 디자이너, 프리랜서에 국한됐던 고객의 업종은 점차 일반 기업 직장인으로 다양화하는 추세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국내 한 달 살기, 일주일 살기 열풍을 탄 ‘디지털 노마드’ 직장인 모시기에 힘쓰고 있다. 전남, 전북, 경남 등에서도 시골 한 달 살기, 폐가 한 달 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놨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참가자를 모집한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에는 약 1000명이 몰렸다. 여행 및 액티비티 플랫폼 ‘와그’의 선우윤 대표는 “장기 숙박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일도 하는 2인 이하 규모의 한 달 살기가 늘었다. 기존 유명 관광지인 부산, 제주, 강원도를 비롯해 여러 지역 도심 인근 소도시까지 한 달 살기 상품 종류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 연극의 산실, 산울림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969년 창단한 극단 산울림의 역사가 70분으로 압축돼 연극 ‘35년의 울림’으로 재탄생했다. 올해는 소극장 산울림이 문을 연 지 35주년이 된다. 당초 3월 막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7개월이 지나서야 관객을 만났다. 사실 70분은 극단 산울림의 역사를 담아내기엔 한참 부족하다. 산울림의 ‘산파’ 임영웅 연출가의 아들인 임수현 연출가(서울여대 불문과 교수)는 극단의 대표작 7편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추려내 엮었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이방인’, 여성극 ‘그 여자’ ‘딸에게 보내는 편지’, 창작극 ‘카페 신파’ ‘챙’이 등장한다. ‘35년의 울림’에는 배우 박윤석(44) 임정은(42) 왕보인(38)이 과거 이 작품들을 빛낸 정동환 박정자 손숙 윤석화 강부자 전무송 이호재 등의 열연을 이어받아 몸을 불사르고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에서 만난 이 세 배우는 “연극인들의 안부인사가 ‘공연 올라갔어?’인 시대, 산울림의 역사를 기억하고 관객과 만날 수 있어 우린 행운아”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 외에 산울림과 연이 깊은 배우 안석환은 ‘소리’로 극에 특별출연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상우도 무대에 올라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며 유려함을 더했다. 산울림의 대표 브랜드가 된 ‘고도를 기다리며’ ‘이방인’에서 열연한 박윤석은 “무대에 서니 바닥, 벽돌 한 장 한 장, 조명장치가 제게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관객, 배우뿐만 아니라 이 공간의 이야기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연기한 왕보인은 “추억을 불러일으키자는 취지도 있지만 마지막 대사 ‘그럼 갈까?’처럼 미래로 도약하는 의미도 있다. 관객과 미래를 함께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산울림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시대를 앞서간 여성극이다. ‘산울림 편지콘서트’에 출연했던 임정은은 “대본을 보며 과거 여성상에 공감하고 연민의 감정도 느꼈다. 작품을 제가 이해하고 탐구한 대로 선배 여배우들 연기에 ‘임정은식’ 연기를 입혔다”고 설명했다. 산울림을 거쳐 간 배우의 이름만 나열해도 한국의 연극사를 읽어낼 수 있다. 이번 공연의 세 배우에게 이들은 오마주(경의) 대상이자 도전 과제이기도 했다. “단순히 과거 작품의 재현일 수도 있고, 재해석이 될 수도 있다. 선배들이 이 대본과 만났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떠올려 봤다. 세 배우가 새롭게 그려본 산울림의 35년을 즐겨주시기 바란다.”(박윤석) 임 연출은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다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으로 호기를 부려봤다. 단순히 장면만 이어붙인 게 아니라 한 작품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해 산울림의 역사를 조명했다”고 말했다. 11월 1일까지, 소극장 산울림. 전석 4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암호의 세계로 빠져들기 전 간단한 퀴즈 하나. “4334 4424421514(사진①). M AERRE KS LSQI(사진②)”의 뜻은? (정답은 본문 말미에.)사진①은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오스, 사진②는 로마의 카이사르가 주로 썼던 암호법이다. 표를 보면 비교적 쉽게 해독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주어진 표가 없다면? 정체불명의 알파벳과 숫자의 나열이 암호인지 아닌지조차 불확실하다면? 읽어내기란 꽤나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다. 암호에 능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적에게 메시지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섬뜩한 방법까지 고안했다. 삭발한 노예의 두피에 암호문을 문신으로 새겼고, 머리가 풍성하게 자란 노예를 직접 암호 수신자에게 보냈다. 수신자는 노예의 머리를 다시 밀어버리고 암호문을 읽었다. 암호는 은밀하게 탄생했고 집요하게 해독돼왔다. 고대 이집트 문서부터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디지털 코드, 사이퍼(Ciphers·암호문)에 이르기까지 암호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짚은 책이다. 암호, 과학기술에 정통한 저널리스트 스티븐 핀콕, 코드 해독에 관심이 많은 작가 마크 프러리는 “스릴러 작가가 꾸며낼 수 있는 그 어떤 상황보다도 기묘”한 암호학에 천착했다. 암호 개발과 해독이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파헤치며, 큼직큼직한 삽화와 함께 암호 이야기를 매혹적으로 풀어냈다. 암호 해석에 대한 최초 기록은 9세기 아랍 과학자 알 킨디의 ‘암호문 해독에 관한 원고’다. 암호는 비밀스럽게 통용됐지만 본격적으로 해독법이 언급된 건 이때가 처음이다. 유럽에서 암호문은 대개 수도원의 전유물로 남아 널리 퍼지진 못했다. 15세기가 돼서야 남유럽을 중심으로 텍스트를 뒤섞는 암호 형태인 ‘노멘클레이터(nomenclator)’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전쟁 중 암호문은 더욱 긴요했다. 적의 암호를 빠르게 해독할수록 치명타를 안길 수 있기 때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에니그마(수수께끼)’ 해독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런던 교외에 세워진 ‘암호학교’에는 전쟁이 임박하자 100여 명이 적군의 에니그마 분석에 돌입했다. 전쟁 막바지, 인원은 9000명까지 불어났으며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메시지가 낱낱이 분석됐다. 유명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암호 천재 앨런 튜링도 이곳에서 일했다. 스파이, 정치 지도자 등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도 암호화는 필수였다. 암호 경쟁에서의 우위는 곧 승리를 의미했다. 암호를 만들고, 파헤치고픈 욕망 때문에 문학작품을 비롯한 스토리텔링에서 암호는 없어서는 안 될 소재다. 저자들은 암호가 본능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힘이 있다고 봤다. 소설 ‘다빈치코드’에서 기독교에 관한 숨은 코드는 전개의 핵심이다. 오늘날 영화광들이 화면 곳곳의 미장센에 감독이 숨겨둔 메타포를 찾아내 해석하는 재미도 일종의 암호 해석의 쾌감이라 할 수 있겠다. 책에 등장하는 몇몇 개념 설명은 꽤나 복잡해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언급된 사례들을 보면 우리가 스파이도 아니고, 암호 해석이 도대체 언제적 얘기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린 이미 인터넷뱅킹, 알고리즘, 비트코인 같은 암호에 둘러싸여 산다. 좀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보자. 누구나 친한 사람에게만 혹은 일기장에만 남기고픈 내밀한 메시지가 하나쯤은 있다. 예를 들어 서두에 적어놓은 암호문처럼 말이다. 정답은 “SO TIRED. I WANNA GO HOME(너무 피곤하다. 집에 가고 싶다).” 회사 상사 앞에서 하기 힘든 말도 암호문으로 전하면, 실수할 일도 적고 더 그럴 듯해 보이지 않을까. 이처럼 암호 발전의 역사는 내면의 목소리를 점점 더 세련되게 전하고픈 인간 욕망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1123, 24 52113344 4434 2234 23343215.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눈물이 없는 저를 술자리에서 혼자 울게 만든 게 ‘베르테르’입니다.” 케이팝 아이돌의 ‘꿀 성대’가 짝사랑의 아픔을 노래한다. 콘서트에서 팬의 흥을 폭발시키던 목소리는 극장에서 객석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아이돌 최상급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 규현(32)은 올가을 베르테르가 됐다. 슈퍼주니어 15년 차, 뮤지컬 배우 10년 차. 뮤지컬 ‘베르테르’ 20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하는 ‘규베르’(규현+베르테르) 규현을 20일 서울 강남구 광림BBCH홀에서 만났다. 규현은 “자체 팬 투표에서도 다시 보고픈 작품 1위로 뽑혔다. 20주년 공연은 무조건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예능, 뮤지컬, MC, 드라마와 웹툰 OST 등 분야를 넘나드는 대표 올라운드 플레이어 규현은 뮤지컬 안착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아이돌이다. 호소력 짙은 가창력을 주무기로 2010년 뮤지컬 ‘삼총사’부터 올 초 ‘웃는 남자’까지 9개 작품을 거쳤다.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그를 두고 일부 팬은 “뮤지컬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될까 우려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며 호평했다. 여인 ‘롯데’만을 그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의 주인공 베르테르의 감성은 발라드 가수 규현과 찰떡이다. “반항하지 않고 말 잘 듣는 착한 배우”라 자처하는 그는 2015년 첫 출연보다 캐릭터 완성도를 높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그의 베르테르 출연을 마뜩지 않아 했단다. “캐릭터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친구들과 술 마시다 베르테르가 슬퍼져서 혼자 울었다. 극중 술에 취한 채 넋두리하는 ‘돌부리 장면’을 갑자기 연기하거나, 새벽에 자다 벌떡 일어나 ‘롯데!’를 외치니 친구들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뮤지컬은 기 세고 개성 강한 슈퍼주니어 멤버 사이에서 돋보이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는 “데뷔 초창기 슈퍼주니어 말고는 스케줄이 없었다.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매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 연습하러 다니던 시절이 지금의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와도 싸웠다. 뮤지컬 ‘삼총사’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무열은 그에게 친절했지만 엄기준은 유독 냉정했다. 하지만 몇 년씩 묵묵히 무대에 오르는 규현을 본 엄기준은 “계속 뮤지컬 할 거지?”라고 묻더니 그때부터 애정을 쏟았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여전히 일반인은 ‘규현이 뮤지컬을?’이라며 의문부호를 붙입니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예능과 공연장을 오가는 중에도 본업은 놓지 않았다. 8일 발매한 싱글 앨범 ‘내 마음을 누르는 일’의 감성과 가사는 베르테르와 묘하게 닮았다. 함께 공연하는 배우 유연석을 섭외해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성과도 얻었다. 규현은 “일부러 기분 좋게 밥 먹을 때를 노렸다. 제가 아끼던 신곡을 들려주면서 뮤비 출연을 요청했더니 ‘좋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지금 새 1인 예능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와 ‘신서유기8’에 나온다. 유튜브 ‘규티비’와 게임방송 플랫폼인 트위치 채널도 개설했다. 골수팬들은 “노출이 잦아 ‘덕질’ 떡밥이 너무 많다”며 행복한 고민을 늘어놓는다. 그는 “어떤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건 아닌지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라디오스타’ MC로 복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저를 성장시킨 방송이지만 캐릭터 설정상 누군가를 희화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고 설명했다. ‘가늘고 길게.’ 소박하면서도 현실적인 그의 목표다. “거대한 한 획을 긋고 싶지는 않아요. 좋아해주시는 팬들 곁에 머물면서 가늘고 길게 살아남고 싶습니다. 앞으로 15년은 더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 어느덧 ‘열성 숭배자’보다 ‘동반자’가 된 팬들에게 그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요즘 시국에 ‘퇴근길’(공연을 마친 뒤 공연장 뒷문이나 주차장 가는 통로에 진을 친 팬들이 배우와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오시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렸어요. 팬들도 저랑 오래 같이 가야죠.” 11월 1일까지, 광림BBCH홀. 6만∼14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전 세계 극장이 멈춘 지금, 한국에서 뮤지컬 ‘캣츠’가 무대를 꿋꿋이 지켜갈 수 있어 정말 고마워요!”(조아나 암필) 1981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캣츠’가 처음 공연한 지 40년. 그간 30개국을 돌며 열리던 ‘젤리클 고양이 축제’는 지금은 한국에서만 명맥을 잇고 있다. 12월 6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리는 ‘캣츠’ 40주년 내한공연은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무대에 오르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작품이다. 20일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난 ‘캣츠’의 주역 3인방 브래드 리틀(올드 듀터러노미 역), 조아나 암필(그리자벨라 역), 댄 파트리지(럼 텀 터거 역)는 “팬데믹으로 인한 중단 없이 40년 동안 지켜온 역사적, 전설적 공연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어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용기를 내 공연장을 찾아주시는 관객들 덕분에 가능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들이 인터뷰 도중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러키(Lucky)’였다. ‘캣츠’ 공연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미국, 영국에 있는 다른 뮤지컬 배우들에게 전해지며 “너는 행운아”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했다. 파트리지는 “우린 원래 하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요즘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까지 올라갔을 때 걱정이 많았는데 결국 한국이 해냈다”며 기뻐했다. ‘캣츠’가 계속 열릴 수 있었던 건 예술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방역수칙을 지킨 다양한 묘수 덕분이다. 특히 배우들이 객석을 누비는 작품 특성상 새롭게 고안한 ‘메이크업 마스크’는 큰 화제가 됐다. 브래드 리틀은 “마스크를 썼을 때 제 표정이 관객에게 안 보이는 점은 아쉽지만 저는 계속 미소를 유지하고 있다. 전염병으로 인한 어려움을 예술로 승화한 점이 정말 놀랍다”고 했다. 배우들에게 ‘캣츠’는 ‘철인 3종 경기’라 불릴 만큼 고양이를 모사한 고난도 안무, 노래, 분장으로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대표 넘버인 ‘메모리’를 소화하는 암필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지만 고양이나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며 끝없이 연구하고 있다”며 “짧은 시간 동안 무대에 올라 깊은 이야기를 전하는 배역이기 때문에 관객을 빠르게 매료시키려 노력한다”고 했다. 파트리지는 “모든 동작과 안무를 고양이의 마인드에 맞게 해보려 노력한다. 저희 도전을 즐기고 지켜봐 달라”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실험정신으로 무장해 한국 연극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 서울연극협회는 20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마포구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에서 ‘제10회 서울미래연극제’를 개최한다. 10회째를 맞는 서울미래연극제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통해 연극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지난해부터 미래 연극의 초석이 될 작품 발굴을 목표로 신진 창작자부터 중견 예술인에게까지 문을 활짝 열었다. 연극제가 열리는 행화탕도 옛 대중목욕탕을 개조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실험적인 장소다. 연극제에는 신선한 작법, 발상의 전환과 재구성, 영상 기법, 이머시브(관객몰입형) 공연같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과감한 실험을 시도한 작품 5편이 무대에 오른다. 창작집단 꼴 ‘으르렁대는 은하수’(20∼21일), 플레이팩토리 우주공장 ‘움직이는 사람들’(23∼24일), 극단 이와삼 ‘싯팅 인 어 룸’(26∼27일), TEAM 돌 ‘민중의 적’(29∼30일), ICONTACT ‘마지막 배우’(11월 1∼2일) 등이다. 문삼화 예술감독은 “동시대 연출가들이 연극의 미래와 미래사회를 탐구해나가는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연극제”라고 말했다. 전석 2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멀티플렉스 극장 CJ CGV가 26일부터 영화 관람료를 평일(월∼목요일) 1만2000원, 주말(금∼일요일) 1만3000원으로 인상한다고 18일 밝혔다. 관람료 인상은 2년 6개월 만으로 주중 오후 1시 이후 일반 영화 관람료는 1만2000원, 주말 관람료는 1만3000원이 된다. 이코노미 스탠더드 프라임 등으로 구별해 가격을 달리한 좌석 차등제도 폐지되면서 기존 관람료보다 1000∼2000원 올랐다. 특별관의 4DX와 아이맥스 관람료 역시 1000원 인상된다. 다만 맨 앞좌석인 A, B열은 1000원 싸며 만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우대 요금은 그대로 유지된다. CGV 측은 “고정비 부담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은 급감하고 방역비 같은 추가 비용 부담이 커져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침대 위에는 유치원 졸업사진이 있고요, 책장에는 장난감이랑 문제집도 있고요….” 유명 연예인의 ‘랜선 집들이’가 아니다. 한 10대 소녀가 휴대전화 동영상 카메라로 자신의 방을 천천히 비추며 가구나 각종 물건을 소개한다. 장난감도 있고 아끼는 로션도 있다. 누가 평범한 중학생의 방을 궁금해할까 싶지만 인기 영상은 조회수 100만에 육박한다. 최근 10대 사이에서 자신의 ‘방 소개’ 콘텐츠가 인기다. 방 소개 유튜버는 대개 초등학생, 중학생이다.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설명하듯 차근차근 자기 방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자랑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서로의 방을 보면서 댓글로 의견을 공유하고, 가구나 소품의 정보를 주고받는 일종의 온라인 우정 쌓기이자 방 꾸미기 놀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이로 인한 원격수업 확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08년생의 흔한 방 소개’ 영상을 업로드한 유튜버 ‘태원’은 “코로나19 때문에 방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예쁜 방을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요즘 제 또래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방 꾸미기와 옷 소개”라고 말했다. 자극적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 방 소개 영상은 담백하고 청정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악플(악성 댓글)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방이 너무 예쁘다” “저런 방을 갖고 싶다”거나 “이번에 이사 가는데 책상 정보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같이 정중하게 정보를 요청하는 댓글이 많다. 유튜브 채널 ‘쏭정아하루’ 운영자는 “일기를 쓰듯 즐겁게 영상을 만들어 공유하면서 또래 친구들과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유튜버 ‘나는요정’은 “영상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구독자 중엔 7, 8세도 있기 때문에 욕설을 넣지 않으며 자극적이지 않게 만들고 있다”고 제작 기준을 설명했다. 다만 어린 학생들이기에 방 소개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가구나 소품을 마련하려면 부모님의 허락은 필수다. 중학교 2학년인 유튜버 ‘겸지’는 “집을 꾸밀 방법은 오로지 몇 달씩 용돈을 모으는 것뿐이다. 결제는 부모님이 대신 해주시는데 너무 고가의 제품이 아니라면 돈을 보태주실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매일 보던 제 방이 조금씩 색다르게 바뀌는 과정이 재밌고 보람차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UIC 경제학과 졸업}
BTS, 블랙핑크, 싸이, 영화 ‘기생충’, 손흥민, 류현진…. 최근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한국인이 늘어나면서 외신 보도나 외국인 유튜브 영상에 기반해 한국을 찬양하는 ‘국뽕’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뽕’은 ‘국가’와 마약 ‘히로뽕(필로폰)’을 합친 단어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다. 일례로 유튜브에서 ‘해외 반응’이란 단어만 검색해 봐도 얼마나 다양한 ‘국뽕’ 콘텐츠들이 제작돼 소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과는 축하하되 지나친 자문화 중심주의와 과도한 애국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국뽕도 과하면 치사량”이라며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보자는 ‘반(反)국뽕’ 콘텐츠들도 점차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영화 ‘기생충’, BTS의 흥행을 비롯해 훈민정음, 김치 등 세계에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를 모아 합성한 ‘두 유 노(Do you know) 유니버스’ 시리즈는 국뽕 현상을 조롱하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최근 불거진 논란은 유튜브 ‘가짜사나이1’에 출연했던 게임방송 스트리머 가브리엘의 저격 발언이다. 크로아티아 출신인 그는 “한국어 할 줄 아는 외국인이 무슨 콘텐츠 하면 제일 잘나가는지 우린 다 알고 있다. 국뽕”이라며 “한국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안 좋아한다. 검열이 심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개설해 현재 구독자 109만 명인 유튜브 채널 ‘소련여자’는 ‘반국뽕’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 여성인 운영자 크리스는 자신을 ‘1타 국뽕 기술자’로 소개하며 국뽕을 비꼰다. “김치를 먹으며 케이팝 리액션”을 한다거나 “BTS 음악을 깔고 불닭볶음면 먹으며 일본 욕하기”를 하면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구독자 29만 명의 채널 ‘리섭TV’는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건 좋으나,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객관성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이라고 비판했다. ‘충격적’ ‘기적적’ ‘깜짝 놀랄’ 같은 수식어가 붙은 영상은 거르고 보라는 팁도 공유되고 있다. 외국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국뽕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돼 온 문제다. MBC에브리원이 방영 중인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비롯해 JTBC ‘비정상회담’, 올리브 채널 ‘국경 없는 포차’, tvN ‘현지에서 먹힐까’와 ‘스페인 하숙’ 등이 비판을 받아왔다. 외국인들의 과한 칭찬이 계속 나오는 구성에 대해 “긍정적 반응만 나오는 점이 자연스럽지 않고 거북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던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는 “방송사들이 특정 어젠다만 고수하기 때문에 외국인 출연자들은 한국 현실과는 거리가 먼, 그저 재롱을 피우는 동물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뽕 콘텐츠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결국 조회수와 시청률이 올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듣기 좋은 소리’만 원하는 시청층이 확고하다는 것. 최근 ‘랭킹 도서관’이라는 유튜브 채널은 국뽕 콘텐츠를 생산하는 상위 20개 채널의 평균 월 수익은 1000만 원 이상이며, 상위 3개 채널의 경우 영상 조회수 월평균 2000만 회, 수익은 5000만 원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국뽕’ 현상에 대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서구인들의 눈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과도한 자학도 문제지만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빠져 ‘우리가 최고다’만 반복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인들은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경향이 짙다. 국뽕 문화는 자격지심과 경제 성장에 따른 우월감이 묘하게 결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경기 연천군과 경기문화재단, 한국뮤지컬협회 경기지회가 공동 제작한 뮤지컬 ‘재인폭포’가 22일 오후 5시 연천 수레울아트홀에서 막을 올린다. 재인폭포는 주인공이 연천 주민과 만나 교감하면서 함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 뮤지컬이다. 예부터 재인폭포에 얽혀 전해지는 애달픈 사랑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했다. 이 작품은 ‘2020~2023 연천 방문의 해’를 맞아 연천군의 관광콘텐츠 활성화 차원에서 기획됐다. 올해 쇼케이스 형태의 시범 공연을 거쳐 2022년 서울 공연을 마친 뒤 재인폭포 앞에서의 상설 공연을 목표로 한다. 이번 공연은 22일 열린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BTS, 블랙핑크, 싸이, 영화 ‘기생충’, 손흥민, 류현진…. 최근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한국인이 늘어나면서 외신 보도나 외국인 유튜브 영상에 기반해 한국을 찬양하는 ‘국뽕’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뽕’은 ‘국가’와 마약 ‘히로뽕(필로폰)’을 합친 단어로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과도하게 표출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다. 일례로 유튜브에서 ‘해외 반응’이란 단어만 검색해 봐도 얼마나 다양한 ‘국뽕’ 콘텐츠들이 제작, 소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명세를 탄 한국인과 관련한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제작해 수익을 내는 ‘국뽕 코인’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하지만 성과는 축하하되, 지나친 자문화 중심주의와 과도한 애국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국뽕도 과하면 치사량”이라며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보자는 ‘반(反) 국뽕’ 콘텐츠들도 점차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영화 ‘기생충’, BTS의 흥행을 비롯해 훈민정음, 김치 등 세계에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를 모아 합성한 ‘두 유 노(Do you know) 유니버스’ 시리즈는 국뽕 현상을 조롱하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최근 불거진 논란은 유튜브 ‘가짜사나이1’에 출연했던 게임방송 스트리머 가브리엘의 저격 발언이다. 크로아티아 출신인 그는 “한국어 할 줄 아는 외국인이 무슨 콘텐츠하면 제일 잘 나가는지 우린 다 알고 있다. 국뽕”이라며 “한국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안 좋아한다. 검열이 심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개설해 현재 구독자 109만 명인 유튜브 채널 ‘소련여자’는 ‘반국뽕’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 여성인 운영자 크리스는 자신을 ‘1타 국뽕 기술자’로 소개하며 국뽕을 비꼰다. “김치를 먹으며 K팝 리액션”을 한다거나 “BTS 음악을 깔고 불닭볶음면 먹으며 일본 욕하기”를 하면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이 일자 “이거 광고 맞다”며 대놓고 ‘앞광고’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국내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구독자 29만 명의 채널 ‘리섭TV’는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건 좋으나,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객관성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이라고 비판했다. 가짜뉴스, 허위, 과장이 뒤섞인 ‘극혐 국뽕 모음’ ‘국뽕 시리즈’ 등을 비판하는 콘텐츠도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다. ‘충격적’ ‘기적적’ ‘깜짝 놀랄’ 같은 수식어가 붙은 영상은 거르고 보라는 팁도 공유되고 있다. 외국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국뽕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돼 온 문제다. MBC 에브리원이 방영 중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비롯해 JTBC ‘비정상회담’, 올리브 채널 ‘국경 없는 포차’, tvN ‘현지에서 먹힐까’과 ‘스페인 하숙’ 등이 비판을 받아왔다. 외국인들의 과한 칭찬이 계속 나오는 구성에 대해 “긍정적 반응만 나오는 점이 자연스럽지 않고 거북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던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는 “방송사들이 특정 어젠다만 고수하기 때문에 외국인 출연자들은 한국 현실과는 거리가 먼, 그저 재롱을 피우는 동물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뽕 콘텐츠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결국 조회수와 시청률이 올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듣기 좋은 소리’만 원하는 시청층이 확고하다는 것. 최근 ‘랭킹도서관’이라는 유튜브 채널은 국뽕 콘텐츠를 생산하는 상위 20개 채널의 경우 평균 월 수익은 1000만 원 이상이며, 상위 3개 채널의 경우 영상 조회수 월 평균 2000만 회, 수익은 5000만 원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한 유튜버는 “케이팝 리액션 영상 몇 개만 편집해 올려도 공들여 만든 웬만한 콘텐츠보다는 조회수가 잘 나온다”고 털어놨다. 대표적 ‘국뽕채널’로 꼽히는 ‘영국남자’ 조쉬(31)는 자가격리 기간에 지인과 생일파티를 했다는 논란에 이어 ‘한국에서 돈을 벌고 영국에 세금을 낸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사과 영상을 내보내고 유튜브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각 국가의 세법에 따라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며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한국인을 이용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국뽕’ 현상의 이유를 열등감으로 봤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서구인들의 눈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과도한 자학도 문제지만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빠져 ‘우리가 최고다’만 반복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하는 경향이 짙다. 국뽕 문화는 자격지심의 발로이자 경제 발전에 따른 우월감이 묘하게 결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실은, 제 꿈은 음악가였습니다.” 음악가들의 연주 모습을 관찰하며 수천 장의 데생을 남긴 세계적 삽화가이자 프랑스 데생의 1인자 장자크 상페의 고백은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소년 시절부터 재즈 악단의 연주자를 꿈꾸면서 음악가들을 한 장씩 그려낸 그의 그림은 여느 선율, 노래 못지않은 울림을 전한다. 삽화가 상페의 그림과 인생, 심경을 담은 에세이집이 나왔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가 그와 음악에 대해 나눈 이야기, 따뜻한 삽화, 미발표 데생 작품까지 한데 묶었다. 담담한 채색, 내면의 고독함을 표현한 그림체, 유머러스한 드로잉이 눈길을 끈다. 상페의 가정환경 때문에 계속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안타까움, 드뷔시와 듀크 엘링턴에 대한 존경심,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를 듣고 푹 빠져버렸던 일화도 읽는 재미가 있다. 상페 삽화의 팬이자 음악 애호가라면 당대 유명 음악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재즈와 클래식 속으로 푹 빠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곁에서 연주자들을 지켜본 세월만큼, 상페의 ‘음악 듣는 귀’는 거장 이상으로 느껴진다. 클래식, 재즈를 넘나드는 그의 인생 플레이리스트를 훑어볼 수 있는 점도 책의 묘미다. “내 삶을 구원해 준 건 음악입니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나는 미쳐 버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말입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솔 충만한 ‘흑인 언니’가 나타났다!” 뮤지컬 ‘킹키부츠’의 강홍석(34·사진)은 ‘무대에서 참 잘 논다’는 말이 어울린다. 걸걸하면서 섹시한 목소리, 꿈틀대는 춤, 넘치는 흥, 압도적 성량…. 관객들은 “무대 천재” “솔(soul)이 미쳤다”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는 찬사를 보내며 그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흡수한다.》 2014년 킹키부츠 초연부터 그는 드래그퀸 ‘롤라’였다. 이 역으로 그해 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롤라는 ‘인생 캐릭터’가 됐다. 2016년 재연, 올해 3연을 거치며 더욱 능구렁이가 된 그를 1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만났다. 강홍석은 “10년 전 모두가 제 ‘뻐터(버터)’ 바른 목소리는 한국 감성과 절대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킹키부츠에서 뻐터가 솔로 재탄생한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은 동명 영화를 각색해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며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한 쇼 뮤지컬이다. 영국 구두공장을 물려받은 찰리와 빨간 힐의 킹키부츠 탄생에 영감을 불어넣은 롤라의 인생 역전을 그렸다. 진부하고 ‘착한’ 줄거리지만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자칫 억지스러울 수 있는 전개를 말끔히 지웠다. 그의 뻐터는 감칠맛을 극대화했다. 어려서부터 흠뻑 취한 흑인음악 감성이 롤라를 만나 터져 나왔다. 그는 “마이클 잭슨, 윌 스미스, 제이미 폭스 등의 팝, 솔, 힙합을 매일 들으며 자랐다. (내가) 한국에 잘못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흥이 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솔 넘치는 추임새, 애드리브가 나온다. “무조건 ‘강(强) 강 강 강’으로 지르던 발성을 ‘강 약 중강 약’으로 바꾸며 완급 조절에도 신경 쓰지요.” 183cm, 90kg의 거구이기에 관객 눈에는 ‘진짜 흑인 언니’로 보일 법도 하다. 롤라를 위해 20번 이상 태닝숍에 다니며 피부를 바싹 구워냈다. 물 만난 듯 뛰놀지만 사실 롤라는 배우에게 꽤 위험한 배역이다. 굽 높이 15cm의 부츠를 신고 춤추며,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뛰놀아야 한다. 그는 “체중과 근육을 불려 무대에 섰는데 힐을 신으니 발목과 무릎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더라. 근육을 많이 줄여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따르는 위험만큼 관객에게는 치명적이다. 뻔뻔하고 억척스럽다가도 처연하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여러 자아를 끄집어내며 객석을 홀린다. 강홍석은 “초연 때 서울 청담동에서 오가는 여성들을 관찰하며 몸짓, 걸음걸이, 행동도 연구했다. 지금은 캐릭터의 리듬, 힘, 카리스마에 집중해 인간의 아름다움 자체를 강조한다”고 했다. 그는 일반 고교를 다니다 “노래 배우는 학교도 있다”는 말에 홀려 무턱대고 계원예고에 편입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해 가수 준비도 했지만 2008년 영화 ‘영화는 영화다’로 데뷔했다. 뮤지컬 ‘하이스쿨 뮤지컬’ ‘데스노트’ ‘시티 오브 엔젤’에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고 드라마 ‘더 킹’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도 활약했다. 최근 후배들에게서 “꽃미남이 아닌데 어떻게 성공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잘하는 걸 찾아 미친 듯 한길만 파면 된다”고 답했다. 매력적인 롤라는 그의 노력이 가득 담긴, 어쩌면 그에게 필연적인 캐릭터다. “요즘 마스크 쓴 관객들이 소리도 못 지르고 손만 흔드는 모습을 보면 울컥한다. 롤라로 진짜 힐링 받는 건 관객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11월 1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