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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림 선생님!” “뭐 어때요.” “괜찮아요.” 단편 영화 ‘유월’에서 주인공 ‘민유월’(심현서)의 대사는 딱 세 마디다. 넌버벌 댄스 영화를 표방한 이 작품에서 유월은 자신을 혼내기만 하던 선생님을 위로하듯 이 말을 건네고 함께 춤을 춘다. 25분 길이의 영화에서는 발랄한 안무, 장난기 가득한 표정 연기, 유쾌한 음악이 대사의 빈자리를 채운다. 초등학교에 ‘댄스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펼쳐지는 기묘한 사건을 그린 ‘유월’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320만 회(12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참신한 발상이 돋보이는 이 작품을 만든 이는 영화감독 겸 안무가 Beff(이병윤·32)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2014년 단편 영화 ‘굿 터치’를 연출했다. 류성룡 염정아 주연으로 12월 개봉하는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안무 감독으로 참여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6일 만난 그는 “15만 뷰만 나와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튜브에서 터져버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넌버벌 댄스 영화는 흔치 않다. 엄밀히 말해 무성 영화나 뮤지컬 영화에도 속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극장이 아닌 유튜브를 타깃으로 삼았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연 심현서 군이 주인공을, 무용수 최민이 선생님 역을 각각 맡았다. Beff는 “안무가, 무용수, 배우들을 찾아다니며 일반 영화와 다른 결의 댄스 영화라는 걸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댄스 영화도 진짜 영화인가’라고 자문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미디어의 형태와 경계가 부서지는 시대인 만큼 도전해 꼭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초반 학생과 교사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처럼 기괴하게 몸부림친다. 이들의 움직임이 차츰 음악과 어우러지고 서로를 이해하며 유려한 춤으로 변한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모티브가 됐다. 그는 “학창 시절 장난기가 심해 주인공처럼 문제아였다. 질서에만 목매는 학교를 배경으로 춤이 세대 화합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안무가로 활동한 경력은 댄스 영화 제작에 큰 자양분이 됐다. “춤, 동작, 표정은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나아요. 댄스 영화가 흔치 않은 한국에서 ‘유월’이 하나의 이정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작품 인기에 힘입어 최근 6∼7분 길이의 ‘유월’ 후속작 촬영을 마쳤다. ‘유월’의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이 성장해 가상의 전염병이 퍼진 대학교에서 춤을 추는 이야기를 담았다. 첫 장편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모두 어려운 시기지만 아픔을 뚫고 나간 경험이 우리를 성숙시킬 것이라는 메시지를 차기작에 담겠다”고 했다.김기윤 pep@donga.com·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UIC 경제학과 졸업}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연합군의 원자폭탄 투하 결정,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일왕의 항복, 2차대전 종전. 널리 알려진 일련의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다소 뻔하다. 어려서부터 익히 듣고 배워온 역사적 사건이라면 지루할 법도 하다. 그런데 ‘카운트다운 1945’에는 구구절절한 프롤로그나 서론이 없다. 독자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116일 전, 1945년 4월 12일로 훅 끌어들인다. 결말을 뻔히 알고 집어든 책임에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점점 조여 오는 긴박함으로 지루함이 사라진다. 책은 폭스뉴스 앵커이자 지난달 미국 대선의 첫 TV 토론을 진행한 크리스 월리스와 퓰리처상을 수상한 AP통신 탐사보도 기자 미치 와이스가 썼다. 원자폭탄 투하 과정과 그 이후에도 피해 사실을 비밀에 부쳐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카운트다운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그려냈다. 책이 시작하는 ‘D-116일’. 전쟁이 끝자락을 슬쩍 보이던 그날에도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디데이(D-Day)로 설정된 1945년 8월 6일 비로소 폭탄 투하실의 문이 열렸고, 조종사는 폭탄 투하 버튼을 누른다. 폭탄이 떨어지기까지 43초간의 긴박함, 그리고 눈부신 섬광, 버섯구름, 불폭풍에 대한 서술도 잠시. 책은 어느덧 디데이를 지나 모두가 종전을 축하하며 미국인들의 평온한 삶이 계속되고 경제는 호황을 맞고 새 집과 도로를 건설하는 일상적 내용이 나온다. 마치 지구 반대편에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상황을 전한 뉴욕타임스 시카고트리뷴 같은 신문의 ‘전체 도시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폭탄 한 개에 의해 몇 분의 1초 만에 사라지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게 되었다’라는 기사만이 전 지구적 비극을 몇 자로 적어둘 뿐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가 몇 단어로 요약해 ‘다 알고 있다’고 여긴 원자폭탄 투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보인다. 미국 테네시의 공장에서 동위원소분리장치의 계기판을 지켜보는 업무를 하면서도 자신이 끔찍한 무기 제조에 참여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10대 소녀, 폭탄 투하 전날 히로시마 집으로 돌아온 열 살 소녀 등 원자폭탄을 둘러싼 사람들의 촘촘한 이야기가 거대 사건 사이사이의 공백을 채운다. 빠른 전쟁 종식과 반인류적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사이에서 고민한 각국 정치인들, 원자폭탄 개발에 동원된 저명한 과학자들, 그리고 폭탄 제조에 동원된 군인과 사업 관계자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하나의 거대 사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이해당사자가 개입한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긴박감은 폭탄을 싣고 머나먼 상공으로 날아간 군인들 이야기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우리에게 75년 전 사건의 뒷이야기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9일(현지 시간)에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2주째 수백수천 발의 폭격을 주고받으며 무고한 사상자를 쏟아내는 중이다.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에서 활약하는 아르메니아 국가대표 헨리크 미키타리안은 “침략은 전쟁범죄이자 인도주의에 반하는 재앙”이라고 전 세계인들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그는 “제발 이 전쟁을 멈춰 달라”며 손수 편지까지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편지는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에게 보내졌다. 75년 전 전쟁을 끝내고자 원자폭탄 투하에 합의한 그 국가들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관객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공연장을 찾고, 입장권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스토어에서 산다?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료 온라인 생중계 공연이 늘어나는 가운데 관객이 직접 ‘공연장’을 찾아가 비대면 프로젝트를 접할 수 있는 ‘저드슨 드라마(취소선)’가 11일 막을 올렸다. 어떻게든 관객과 닿고자 하는 공연계 아티스트와 제작진의 고군분투가 담긴 공연이다.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으로 가는 티켓인 앱(‘저드슨 드라마’)을 내려받아야 한다. 무료다. 앱을 열면 곧장 서울과 경기 일대 지도가 나온다. 지도에 찍힌 20여 곳의 표지를 클릭하면 각 공연장과 공연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나타난다. ‘숨은 공연 찾기’ 같은 이번 작품을 찾아 나섰다. #1.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협업, 도시 속 개인들이 함께 만난 흔적이 담겨 있다’는 공연 설명이 적힌 표지를 따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으로 향했다. 앱 지도에 표시된 식당 앞에는 빨간 공이 가득 담긴 인형 뽑기 기계가 있다. 돈을 넣고 크레인을 조작해 공을 꺼내야만 ‘진짜’ 공연을 볼 수 있다. 도합 3000원을 넣고 3번 시도 끝에 빨간 공 하나를 집었다. 공 안의 QR코드 종이를 스마트폰으로 인식하니 비로소 25분짜리 음원 파일을 들을 수 있다. 이 공연을 준비하며 아티스트들이 나눈 ‘날것’의 대화가 담겨 있다. 길 건너편 공중전화박스 안에는 또 다른 공연이 준비돼 있다. 전화기 옆에 숨겨진 작은 플라스틱 통을 열면 ‘S-say 이 안에 60쪽의 세포가 살아’라는 공연과 연결되는 QR코드가 나온다. 무용수들이 대화하고 몸을 움직이는 약 10분 길이의 공연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공연에 참여한 관객은 “낯선 장소를 찾는 여정 자체가 공연의 일부로 여겨졌다. 설레기도 했고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인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들어 새롭다”고 말했다. #2. 관객이 작품에 관여하면서 보이지 않는 창작자와 교감할 수 있다는 점도 묘미다. 서울 중구 손기정체육공원에는 자신의 탐험가적 기질을 측정할 수 있는 체험형 공연이 마련돼 있다. 손기정 동상 곁에 숨겨 놓은 설명서를 찾아냈다. 설명서의 QR코드를 찍으니 테스트 음원파일이 열리며 ‘도보로 떠나는 여행이라 여분의 신발을 챙기려고 합니다. 몇 켤레를 챙기겠습니까?’ ‘벌써 도착한 한 예술가가 보입니다. 이 예술가는 다음 중 누구일까요?’ 같은 질문 예닐곱 개가 들린다. 각 질문의 보기 3개 중 자신의 생각에 맞는 것을 ‘05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뒤 ‘용의주도한 관찰자 타입으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 C’라는 결과가 문자메시지로 왔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불러일으키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 환영받음과 고마움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제게는 놀이와 퍼즐이 하나의 돌파구로 느껴진다’는 창작자의 설명도 받았다. 한 관람객은 “공연 관련 단서를 찾지 못한 순간도 있었는데 불만보다는 ‘삶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추석 연휴에 남은 ‘공연 보물’을 찾아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앞서 20일까지 일시 진행한 창작자 ‘E(조형준 손민선)’의 공연에서는 관객이 특정 장소에 들어서면 그곳에 설치해둔 카메라로 지켜보던 아티스트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공연, 전시는 어떠신가요”라고 말을 건넸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모든 영혼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새 헌법 제정위원회’라는 주제의 공연이 마련돼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창작 환경의 불확실성이 역설적으로 창작의 동기가 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장혜진 안무가는 “집에서 관람하는 온라인 공연을 넘어 관람객이 집을 나서 공연장을 찾아나서는 체험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재민 프로듀서는 “공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놀이, 미션 등은 ‘생태민주주의’ ‘몸과 언어의 관계성’을 조명한다. 관객이 공연장을 벗어나 창작자들과 교감하는 공연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저드슨 드라마::1960년대 미국 뉴욕 맨해튼 저드슨교회를 기반으로 활동한 실험적 예술가 집단인 ‘저드슨 댄스 시어터’의 활동에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다. 시각예술, 음악, 무용 분야의 저명한 예술가들인 이들은 우연성, 장르의 협업, 일상의 움직임을 예술로 가져오는 방법론을 공연에 도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UIC 경제학과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남들이 “네가 하는 건 마임이 아냐”라고 할 때도 꿋꿋하게 온몸을 꿈틀댔다. 교통사고와 뇌종양으로 “재기가 힘들 것”이라는 우려에도 보란 듯이 돌아왔다. 무대에서 몸을 움직인 지 약 50년. “이 시국에 무슨 마임이냐”는 볼멘소리에 아랑곳없이 공연을 들고 나타났다. 또다시 ‘춤’을 추기로 했다. ‘마임의 대가’ ‘천재 마이미스트’ ‘춘천 마임축제의 주역’…. 1세대 마이미스트 유진규(68·사진)가 21일 강원 춘천시 요선시장에서 관객 참여형 마임 공연 ‘요선시장 코로나땡 동그랑땡’을 열었다. 앞서 그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쪽팔리게 이까짓 것 때문에 마임을 멈출 순 없다”고 말했다. 공연은 독특한 것 투성이다. 공연장은 한때 음식점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적어 반쯤 문을 닫은 시장 건물이다. 관객은 방역수칙에 따라 3분에 한 명씩 입장해 1층(현실) 2층(팬데믹) 옥상(미래)을 걷는다. 곳곳에서 마임, 영상, 미술작품, 시 등을 관람한다. “극장에 모인 다수의 관객이 원하는 공연만 보여주는 건 시국에 맞지 않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공연을 찾아나서야 한다.” 공연자들은 방호복을 입고 시장을 돌아다닌다. 공연 막바지에는 시장 끄트머리의 식당 주인도 방호복을 입고 등장해 동그랑땡을 부치다가 관객에게 막걸리 한 잔 내주기도 한다. 시장에서는 왁자지껄했던 옛 저잣거리 음향이 흘러나온다. 올 초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그는 이 공연을 떠올렸다. 시장 단골집에서 얼근하게 취해 화장실을 찾다 불현듯 ‘어? 이건데!’ 했다. “정겨웠던 시장이 죽음 직전 공간이었어요. 바이러스로 사회가 무너지기 직전인 데다 일흔을 앞둔 제가 맞물리며 이전과 완전히 다른 걸 해야겠다, 생각했죠.” 원로 예술인으로서 소명의식도 공연을 부채질했다. 그는 “원로로 불리는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늘 새로운 길을 뚫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1968년, ‘무언(無言)의 세계’를 선보인 독일 마이미스트 롤프 샤레의 공연을 보고 사춘기 고교생 유진규는 전율했다. “웬 검은 타이츠를 입은 사람이 두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몸으로만 세계를 그려낸 모습”에 넋을 잃었다. 건국대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연극 동아리에 빠져 중퇴하고 전위 극단 ‘에저또’에 들어갔다. 1972년 국내 최초의 무언극 ‘첫 야행’을 선보인 그는 평생 마임에만 천착했다. 몸의 움직임 자체에 집중해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대화하는 것도 마임’이라는 그의 독창성, 혹은 파격에 “그게 무슨 마임이냐”는 지적이 나올수록 그는 “마임이 아닌 마임을 하는 유진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주축이 돼 1989년부터 25년간 이끈 춘천마임축제는 세계 3대 마임축제가 됐다. 이번 공연에도 몸에 대한 철학을 담았다. “극장이라는 인위적 공간에서 몸을 보여주는 건 허위 같다. 내 몸이 실제 생활하는 곳과 마임이 한데 어우러져야 자연스럽다.” 20년 넘은 빡빡머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그는 “밀어보면 알지만 뭔가 기존의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며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분, 코로나19로 앞이 캄캄한 모두가 공연을 즐기길 바란다”고 했다. 24일까지, 무료.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62년 개관 이래 ‘한국 연극의 메카’로 불리며 다양한 창작극과 실험극을 배출한 서울 남산예술센터의 드라마센터가 100일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서울시는 2009년 남산예술센터의 소유주인 학교법인 동랑예술원(서울예대)과 임대차계약을 맺고 시 산하기관인 서울문화재단에 운영을 맡겼다. 드라마센터는 예산 약 10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뒤 재개관했다. 서울시와 동랑예술원은 이후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왔다. 그러나 2018년 1월 동랑예술원은 2021년부터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계약 조건에 대한 이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계는 ‘계약이 끝나는 2020년 12월 31일 드라마센터를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연극인들은 2018년 4월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를 결성하고 “극장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고려해 서울시와 동랑예술원이 협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와 동랑예술원은 실무자 차원에서 몇 차례 만나 계약 조건의 의견 차를 좁히려 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9일 SM엔터테인먼트와 종로학원하늘교육은 동랑예술원과 계약을 맺고 케이팝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기관 ‘SMI(SM Institute)’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옆 심재순관(館)에 만들겠다고 밝혔다. 연극계는 드라마센터 유지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며 침통해하는 분위기다. 서울시와 동랑예술원은 드라마센터 재계약을 위한 협상을 재개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동랑예술원 측은 “연극계가 요구하는 장기 무상임대 수준의 계약은 어려웠다. 서울시가 올 7월 말 ‘계약 미갱신’ 통보를 해왔다”며 “계약 만료 후 드라마센터의 구체적 운영 방안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 측은 “내년 6월 개관할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시설을 정비해 남산예술센터의 명맥을 이어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재 수장이 부재한 서울시는 이 문제를 책임지고 풀어낼 사람이 없다. 동랑예술원 측도 계약 만료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대안을 찾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드라마센터에서는 개관 공연작인 ‘햄릿’을 비롯해 ‘세일즈맨의 죽음’ ‘로미오와 줄리엣’의 국내 초연 무대가 열렸고, 2009년 이후에는 ‘7번국도’,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같은 작품이 각색돼 초연됐다. 연극계의 소중한 자산이 손에서 모래가 새나가듯 우리 곁을 떠나려 하고 있다. 심재찬 연출가는 “서울시와 동랑예술원 측 모두 드라마센터가 ‘공공의 유산’이라는 생각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연극계가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동랑예술원, 연극계가 적극적으로 합의점을 찾는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김기윤 문화부 기자 pep@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유료 공연 중계, 증강현실(AR)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활용한 공연 및 전시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20 기술 활용 공연·전시 관람 서비스 아이디어 공모전’을 연다. 신기술 활용 공연 및 전시 콘텐츠 소비와 관람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공모전은 만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아이디어 4개를 선정해 총 상금 1000만 원을 수여한다. 접수는 다음달 19일까지다. 자세한 내용은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어려서부터 공연 비디오를 보면서 늘 꿈꿔오고, 존경하는 무용수들이 있는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된 건 꿈같은 일입니다.” e메일에서 가시지 않는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11일 한국인 발레리노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가 된 안주원(27)은 15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평생 하던 일로 인정받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며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그의 ABT 수석무용수 승급은 한국 발레계의 또 하나의 쾌거다. 1939년 미국에서 창단한 ABT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볼쇼이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세계 굴지의 발레단이다. 선화예고를 나온 안주원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니던 2013년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딴 후 ABT 입단 제의를 받고 이듬해 코르 드 발레(군무)로 들어갔다. 지난해 9월 솔리스트로 승급한 지 1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우뚝 섰다. 무용수 85명인 ABT는 군무―솔리스트-수석무용수로 이뤄져 있다. 수석무용수는 남녀 각 8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올 4월부터 국내에 머물고 있는 안주원은 주간 화상회의를 하다 승급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19로 발레단 공연이 사실상 멈춘 상태였기 때문에 올해 승급발표는 없을 줄 알았어요. 한동안 멍하다 쏟아지는 축하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자정을 넘긴 시간. 가족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는데 여동생은 “오, 축하해” 한마디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동생 덕분에 다시 겸손한 마음을 갖고,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지금껏 저를 가르치신 고교, 대학 스승들이 많이 떠올랐다”며 웃었다. ABT 안에서 누구보다 그의 승급을 기뻐한 이는 2012년부터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인 발레리나 서희(34)다. 서희는 한국인 처음으로 ABT 수석무용수 자리에 올랐다. 안주원은 “서희 누나는 제가 입단했을 때부터 많이 챙겨줬고 승급 후에도 정말 기뻐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제2회 부산발레페스티벌에 특별 출연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스승인 정성복 부산발레시어터 예술감독과 함께 만드는 작품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연습 도중에 취소된 공연이 많지만, 연습 자체가 몸을 녹슬지 않게 할 기회여서 다행”이라며 “세계무대에서 한국 발레의 위상을 높이면서도 발레라는 장르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난해한 춤 동작, 가장 ‘힙’한 판소리, 국내 관광 명소. 좀체 어울리지 않는 이 세 가지를 한데 모아놓으니 말 그대로 ‘터져버렸다’.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채널이 7월 말 선보인 ‘Feel the Rhythm of Korea(한국의 리듬을 느껴보세요)’ 시리즈는 현재 15일 기준 누적 조회수가 7386만 회를 넘어섰다. 페이스북, 틱톡 등에서 기록한 수치까지 합하면 약 2억6000만 회. 무엇이 이 ‘B급’ 영상을 힙하게 만들었을까. 총 세 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기존 홍보영상 문법에서 크게 벗어난 결과물이다. 잘 가꿔진 명소, 군침 도는 음식 영상, 사물놀이, 예쁘고 멋진 스타들이 등장하는 광고와는 판이하다. 영상에서는 판소리의 짙은 향이 묻어나는 밴드 ‘이날치’의 선율에 맞춰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소속 무용수들이 다짜고짜 유쾌한 군무를 춘다. 서울, 전주, 부산의 명소들을 누비며 묵묵히 춤만 춘다. 주변 관광객이 쳐다보든, 동네 주민이 자전거를 타고 앞질러 지나가든 개의치 않고 반복적 동작을 선보인다. 명소의 이름이 이따금씩 자막으로 나올 뿐 영상에는 별다른 효과도 없다. 무용수들의 정체와 춤추는 장소가 궁금해질 때쯤 1분 40초짜리 영상은 끝난다. 해외의 잠재적 관광객을 타깃으로 이 시리즈를 기획한 건 한국관광공사 브랜딩마케팅팀의 오충섭 팀장과 박민정 차장. 11일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무작정 ‘방문하라’는 직접적 메시지를 줄 수 없어 고민이 컸다”며 “B급 영상에 대한 내부 우려도 있었지만 ‘한국의 역동성’을 잘 전달해 뿌듯하다”고 밝혔다. 영상은 해외 누리꾼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우연히 광고를 봤는데 한국이 궁금해졌다” “팬데믹만 아니면 당장 날아갔을 텐데” “광고를 다 본 건 처음”이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그냥 영상을 계속 보게 된다”며 영상 자체의 미학에 대한 반응도 적지 않다. 아이돌 영상에나 있을 법한 ‘커버댄스’ ‘리액션 영상’까지 등장했다. 이번 영상은 ‘탈(脫)아이돌, 한류 스타’ 전략으로 나갔다. 오 팀장은 “한류 스타가 나오면 조회수는 보장된다. 하지만 색다른 매력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해외서 퍼진 입소문은 국내 누리꾼 귀에도 들어왔다. “이제야 ‘뻘짓’ 안 하고 흐름을 읽었다” “모처럼 세금 잘 썼다”는 칭찬 댓글이 많다. 기획실무를 맡은 박 차장은 “외국인 대상 광고만 제작하느라 늘 해외 반응만 살폈다. 주변 동료들이 영상을 공유하는 걸 보며 인기를 실감했다”고 했다. ‘돈 써서 광고 잘 태운’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많다. 인기 영상 앞에 유료 광고를 넣어 조회수만 높였다는 비판이다. 오 팀장은 “광고라도 30초 이상 시청해야 조회수로 집계된다. 예년 수준의 예산으로 해외 12개국과 국내서 호응을 받은 건 유의미하다. 제작비는 이전보다 덜 들었다”며 웃었다. 한국관광공사는 현재 목포, 안동, 강릉의 시리즈 영상을 촬영 중이다. 영상에서 ‘시선강탈 춤’을 췄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김보람 안무가는 “저희 작품에서 주로 쓰는 안무들을 가져와 현장에 맞춰 생동감 있게 변형했다”며 “카메라 움직임을 저희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안무를 구성해 한국의 역동성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재미있게 봐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위안부 할머니 이용수 씨의 주장에 대해 배후설을 제기했던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대해 14일 법정 제재인 ‘주의’ 처분을 내렸다. 방심위는 “진행자 김어준 씨가 5월 26일 방송에서 정의기억연대를 비판한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과 관련해 ‘기자회견문을 할머니가 쓰신 게 아닌 건 명백해 보인다’ ‘누군가 왜곡된 정보를 할머니께 드렸다고 결론을 내렸다’며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단정적으로 발언했다”고 제재 사유를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제 재능을 이메일로 받아보실래요?”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기본으로 돌아가다)’ 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마케팅, 접촉 등이 줄어든 언택트 시대, 가장 기본적인 ‘메일링 서비스’가 다시 각광받고 있다. 한때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밀려 ‘업무용’으로 국한됐던 이메일은 ‘소량 생산, 취향 최적화’를 무기로 삼아 콘텐츠 창작자와 고객 사이에서 소리 없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메일링 서비스가 활성화된 문학계를 넘어 최근 음악, 패션, 공연, 웹툰, 영상, 그림 등으로 분야를 확장 중이다. 최근 클래식 음악 추천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 중인 ‘어쿠스틱 위클리(Acoustic Weekly)’의 ‘어? 아!(Oh? Ah)’ 시리즈는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 한 곡과 이에 대한 배경 설명을 제공하는 콘텐츠다. 운영자는 곡에 얽힌 짤막한 설명을 1000자 내외의 글로 풀어낸다. 해당 곡을 연주한 오케스트라나 지휘자의 영상 유튜브 링크도 덧붙이면 하나의 ‘메일링 콘텐츠’가 완성된다. 방송,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가수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을 편집해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인 2차 창작물도 인기다. 트위터 계정 ‘Jimicaneatjelly’는 최근 ‘지미집캠 vol.2’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며 구독자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현민의 ‘목요일 어떻습니까’는 ‘영화 에세이 메일링’을 표방하며 최근까지 목요일마다 글을 전송했다. 직장인 이모 씨(34)는 “그동안 메일링 콘텐츠가 수신함에 가득 차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심심해서 그런지 바로바로 읽게 됐다”고 밝혔다. 소량의 삽화나 사진을 전하는 미술, 웹툰, 패션 분야에서도 메일링은 강세다. 인스타그램 ‘초여름상점’은 매주 만화를 전송하고 있으며, 디자인 잡지를 표방한 ‘디독’은 해외 디자인 기사를 번역해 뉴스레터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한 드로잉 작가는 “코로나19로 대면 강의, 수업이 줄어들면서 생계가 빠듯해졌는데 그나마 메일링을 통해 일부 수익을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공연계에서는 창작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으로 메일링이 이용되기도 한다. 서울 신촌극장에서 8월 말 공연을 준비하다 끝내 무산된 연극 ‘로데오’의 전서아 연출 겸 작가는 무대에서 전할 이야기를 6월부터 메일링으로 ‘잠재적 관객’에게 전해왔다. 구독료는 전액 제작비로 사용한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앞서 ‘일간 이슬아’를 시작으로 수많은 작가들이 글을 전하는 문학계에서 메일링은 이미 작가들의 ‘새 유통 판로’로 자리 잡았다. 메일링은 한때 유행했던 구독경제와는 비용, 규모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대기업이나 유통망을 갖춘 대형 콘텐츠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비싼 1만 원 이상의 구독료를 요구하던 것과 달리 메일링은 소규모,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전한다. 적게는 편당 500원부터 6개월 1만 원까지 비교적 저렴하게 형성돼 있다. 구독료를 사실상 무료 또는 고객 자율에 맡기는 곳도 상당히 많다. 편리함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점도 인기에 한몫한다. 온라인 링크에서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메일링 계약’은 완료된다. 창작자와 고객이 서로 전혀 알지 못해도 취향만 맞으면 뭐든 ‘오케이‘다. 현실 속 대면 없이 이메일만을 통해 콘텐츠를 주고받기에 오히려 창작 자유도도 높다는 분석이 있다. 정지은 문화평론가는 “신진 창작자들이 별도 플랫폼 없이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 콘텐츠를 유통하는 점이 매력적”이라면서도 “최근 무료 메일링 서비스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창작자는 차별화, 수익 창출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오늘날 서양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두 핵심 축은 로마제국과 기독교다. 로마제국 초기 핍박받던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공인, 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국교로 선포하며 제국 심장부에 들어섰다. 기독교라는 사상적 토대 위에 제국은 성장했다. 책은 서양 세계관을 관통하는 기독교의 역사를 조명하며, 오늘날 이 종교가 어떻게 지배적 위치에 서게 됐는지 살폈다. 근대 이후 수세기 미국과 유럽이 세계 패러다임을 주도한 것을 생각하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세계를 이해하는 시작이다. ‘루비콘’ ‘페르시아 전쟁’ ‘이슬람제국의 탄생’ 등 굵직한 논픽션, 역사서를 펴낸 저자는 어려서부터 품은 기독교의 비합리성에 대한 의구심에서 펜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를 통시적으로 파헤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이해이자 자신에 대한 이해이기도 했다. ‘서유럽인이라는 사상적 틀’의 한계에 갇혀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기독교의 영향이 컸다. 언뜻 보기에 종교의 대척점에 있는 계몽주의, 합리주의 철학도 기독교의 저변에서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래서 책은 모순 역설 갈등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통해 전개된다. 성서적 가르침과 성인(聖人)의 행적을 따라가는 기존 기독교사 책과 차별화했다. 약 2500년의 기독교 역사는 시간 순으로 고전 고대, 기독교 세계, 모데르니타스(근대 이후)로 구분된다. 21개 장별로 특정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을 따라 전개된다. 11장 ‘육체’에서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불거진 남성과 여성 육체에 대한 모순적 신념, 13장 ‘종교개혁’에서는 1520년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일어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그렸다. 20장 ‘사랑’의 비틀스가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동조하며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라고 외친 일 등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장마다 시공간이 왔다 갔다 하나 한 이야기처럼 유기적으로 읽힌다. 무신론자나, 기독교를 ‘파괴적’이라고 일갈하는 이조차 좋든 싫든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리스도의 홍수 같은 물결”이 휩쓸고 사라지는 와중에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많은 사람의 가슴에 남은 이유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노력하고 또 인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이들은 힐링을 통해 위로라는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괜찮아’라고 긍정해 주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사람은 괜찮다고 되뇔 필요가 없다. 자기 삶의 방식에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선언하는 사람은 사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내 팔이 닿는 거리 1미터. 자신의 고유 영역을 관조하며 살아야 한다는 한 철학자의 덤덤한 조언.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되는 시대, 뮤지컬에서 안전과 미학을 동시에 잡는 ‘고육지책’이 등장했다. 9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캣츠’ 40주년 공연에서 선보인 ‘메이크업 마스크’다. 이 뮤지컬에서 배우들은 대부분 객석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한다. 하지만 극 전개상 불가피하게 일부 배우가 객석을 통과해야 하는 몇몇 장면이 고민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우들이 쓴 항균 마스크 위에 고양이 얼굴 분장을 덧칠한 메이크업 마스크가 탄생했다. 관객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마스크를 했는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이뤄져 몰입감은 평소와 다름없는 수준이다. 배우들이 메이크업 마스크를 착용하는 장면은 크게 세 번 나온다. 객석 뒤편에서 젤리클 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며 빠르게 무대로 질주하는 오프닝 장면, 역시 객석 뒤편에서 등장해 고양이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는 무대로 오르는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 그리고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의 장면이다. 메이크업 마스크는 오리지널 프로덕션 팀이 한국 공연을 위해 리허설을 거듭하면서 나온 많은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홍보를 맡은 클립서비스 노민지 팀장은 “배우들이 노래 없이 몸으로만 춤과 동작을 표현하는 세 장면에서 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 메이크업을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며 “메이크업 마스크는 캐릭터의 개성을 살린 의상 및 분장 디자인과 똑같이 제작한 또 하나의 무대 의상”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연일 호평을 받으며 매진을 이어가던 국립극단의 신작 ‘화전가’가 지난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중단 위기를 맞았다. 2월 공연이 연기된 끝에 열린 무대였다. 지난달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58)은 “오늘 광복절 공연이 마지막”이라며 공연에 앞서 배우들을 모아놓고 격려했다. 그런데 공연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객석 거리 두기’를 한 채로 계속 공연할 수 있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작별인사’ 후 다음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진 것. 안타깝게도 이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격상으로 사흘 뒤 막을 내려야 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에 공연 연기, 중단, 취소는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올해 9월까지 작품 10편 중 3편만 간신히 관객과 만났다. 하지만 이 감독이 지치지 않고 온라인을 통한 ‘네 번째 극장’에서 25일 선보일 신작 ‘불꽃놀이’를 들고 나왔다. 2017년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11월에 3년의 임기가 끝난다. 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그는 “올해 예정된 10편 중 3편만 했으니 3할은 겨우 해냈다. 극단의 ‘네 번째 극장’이 된 온라인 극장을 발판 삼아 연극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국립극단이 온라인 유료 공연으로 신작을 발표하는 건 창단 이래 처음이다. 극단 산하 명동예술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에 이어 온라인 극장도 새 활동무대가 됐음을 뜻한다. 이곳에서 공연하는 작품 역시 동등한 연극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연극계 패러다임 변화라 할 만하다. “공연예술 개론서부터 다시 써야 할 것 같아요. 공연자와 관객이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서 만나는 현장성이 공연의 핵심인데, 물리적 공간이 분리되면서 공간개념도 바뀌어야죠.” 일부 뮤지컬, 연극이 유료 온라인 공연을 도입했으나 연극계에서는 관객과 배우가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건 ‘진짜 연극’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감독은 “극의 현장성을 살리면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감동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연세대 극예술연구회를 시작으로 연극에 뛰어든 그는 연극계에서 ‘성공한 연출가’로 통한다. 30대 초반부터 극단 산울림의 극장장을 맡아 “임영웅 연출가, 박정자 손숙 윤석화 이호재 배우 등 선배들로부터 연출을 배웠다”고 했다. 이후 극단 ‘백수광부’를 창단해 동아연극상, 이해랑연극상, 김상열연극상 등을 거머쥐었다. 그는 국립극단을 이끌며 신진 발굴과 우리 연극 원형의 재발견에 힘썼다. 하지만 안팎으로 고비가 만만찮았다. 블랙리스트 후폭풍, 미투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연극판에는 그야말로 ‘사건이 많았다’. 국가대표 극단의 책임자로 감내할 몫이었다. 이 감독은 “우리 연극계” “우리 극단”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연극이 그 자신의 일부로 체화된 것이다. “그저 연극에 미친 연극쟁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미치면 절대 안 돼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죠. 나와 세상을 잘 들여다볼 때 좋은 연극이 나옵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평생 야구 배트만 휘두르던 굳은살 박인 손이 펜을 쥐니 생생한 자전 소설이 탄생했다. 고려대 체육교육과 졸업반 강인규(23)가 장편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북레시피·사진)을 펴냈다. 현역 야구선수가 소설을 낸 건 한국 야구 역사상 처음이다. 작품은 주인공 강파치가 고교야구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대회를 치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야구 성장소설이다. 올해 강준혁에서 강인규로 개명한 작가는 다소 늦은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많은 어려움과 슬럼프를 딛고 고교선수로서 활짝 피었다. 덕수고 졸업반인 2016년 황금사자기 대회 최다홈런상을 받았고 이어 열린 청룡기 대회에서는 최우수선수(MVP)와 홈런상, 타점상을 휩쓸었다. 작가 자신이 겪은 희로애락이 주인공 강파치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소설은 현장감이 뛰어나다. 강파치가 몸을 풀고 타석에 들어설 때 느끼는 중압감, 타점을 올리는 순간의 짜릿함, 경기를 앞두고 팀원들이 같이 울고 웃는 모습 등등 작가가 직접 선수로 뛰며 필드와 라커룸에서 경험한 생생함이 묻어난다. 작가는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날마다 야구일지를 써왔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훈련이나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틈틈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4년 내내 높은 평점을 받아 성적으로 장학금도 받았다. 제목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은 그가 좋아하는 야구 규칙이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던진 공을 타자가 헛스윙 했지만 포수가 받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기록상 삼진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1루까지 전력 질주해 세이프 판정을 받으면 진루할 수 있다. 선수로서 그의 야구 철학이 담겨 있다. “야구를 사랑하는 동료 그리고 우리를 있게 해준 팬 모두에게 작게나마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싶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전해지길 바랍니다.” 작가는 21일 열리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제2차 신인드래프트에 신청한 상태다. 프로 구단이 그를 지명하면 프로선수로 야구장에 설 기회를 얻게 된다. 그가 곧잘 인용하는 미국 메이저리그 레전드 포수 요기 베라의 말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올해 제가 공무원 시험에 붙을 운인가요? 아니면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 할까요?” 용하다는 점집이나 사주카페에서 들을 법한 이 질문은 사실 ‘온라인 점집’에서 나온 것이다. 고민 있는 이들은 요즘 이곳 댓글창에 사연을 털어놓으며 미래를 점쳐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오프라인 점집을 찾기 불안한 ‘2030’들은 유튜브에서 타로카드나 사주로 운세를 알아봐 준다는 콘텐츠를 즐겨 찾는다. ‘유튜브 점(占)성시대’다.》 특정 개인의 선택이나 생년월일에 따라 달라진다는 운세를 불특정 다수가 보는 온라인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이 선택한 카드를 기반으로 진행하는 타로 콘텐츠의 경우 ‘제너럴 리딩(general reading)’ 방식을 택한다. 타로 마스터인 유튜버가 시청자를 대신해 묶음별로 카드를 선택하거나, 카드를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차례대로 풀이하는 방식이다. 시청자는 마음속으로 선택한 카드를 떠올린 뒤 해당 풀이를 들으면 된다. 이 때문에 종종 “1번 3:01” “2번 5:08” “3번 8:42” 같은 정체불명의 수식이 댓글에 등장한다. 자신이 선택한 카드 풀이를 빠르게 볼 수 있도록 해당 운세 풀이가 시작하는 영상의 시간을 기록한 일종의 바로가기 문구다. 1번 카드 묶음을 선택했다면 영상 시작 3분 1초 지점부터 보면 된다는 얘기다. 운세 풀이는 “9월 첫째 주에는 주로 집에 머물라” “주변 사람의 일신에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것”같이 오프라인 점집과 별 차이가 없다.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주풀이는 ‘태어난 월로 알아보는 내 성격 및 사주 특징’ ‘운이 바뀌는 타이밍’ ‘내 사주 활용법’ ‘부자들 사주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등 주제별 콘텐츠가 인기다. 엄밀히 말해 온라인 점집 콘텐츠는 무료다. 그렇다고 ‘재능 기부’만 하며 점을 봐주는 건 아니다. 복채는 시청자가 클릭하는 ‘구독’과 ‘좋아요’가 대신한다. 인기 타로카드 유튜브 채널 ‘호랑타로’의 경우 구독자 41만 명, ‘타로마스터정회도’ 채널도 구독자 10만 명 이상이어서 이에 해당하는 ‘복채’를 받는다. 일부 시청자는 별도 복채를 후원 형태로 유튜버에게 송금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청년 대상의 콘텐츠 주제도 변화하고 있다. 올 초까지는 연애나 결혼 재회 등 애정 관련 운세 콘텐츠 일변도였다면 최근에는 취업 직장 이직 시험 고시 등에 대한 운세풀이 수요가 늘었다. 한 사주풀이 전문가는 “온라인 운세풀이를 찾는 2030 사이에서 그동안 제1의 화두가 연애, 결혼이었다면 최근 취업, 직종 변화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동안은 장난 반의 심정으로 봤다면 이제는 미래에 대한 실질적인 불안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타로 채널은 ‘코로나 이후 바뀔 운의 흐름’이라는 콘텐츠를 올렸다. 콘텐츠의 댓글창은 일종의 부적이자 메모장이다. 구독자들은 ‘최종 면접 앞두고 있는데 타로 결과대로 꼭 합격하게 해주세요!’ ‘어떻게 제 맘과 똑같은 카드가 나왔을까요. ㅠㅠ 잘 해결되기를!’ 같은 바람을 적는다. 영상을 반복해 보면서 유튜버 설명을 그대로 댓글창에 옮겨 적고는 불안할 때마다 찾아보며 위안을 받기도 한다. 유튜브 점집만의 매력이다. 타로마스터 정회도 씨는 “10년 넘게 활동하며 지금처럼 사업, 취직이 힘들다는 말을 들은 때가 없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설명하며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에게 위안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한국 공연단의 해외 초청 공연이 줄줄이 무산되는 대신 공연 영상이 ‘러브 콜’을 받고 있다. 그동안 해외의 한국문화원을 통해 현지인들이 케이팝 공연이나 영화 등을 만났다면 최근에는 현대무용 국악 발레까지 영상으로 즐기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국립현대무용단의 ‘검은 돌: 모래의 기억’ 공연은 동영상 플랫폼 비메오(Vimeo)를 통해 미국 워싱턴의 한국문화원에서 상영됐다. 2017년 현대무용단의 현지 초청 공연 이후 3년 만에 영상으로 현지 관객과 만난 것이다. 이에 앞서 현대무용단의 지난해 신작 ‘비욘드 블랙’ 영상도 나이지리아, 러시아 등의 한국문화원 요청을 받아 상영돼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헝가리 한국문화원은 코로나19로 취소된 오프라인 공연을 대체하기 위해 올 4월부터 온라인 공연 ‘한국문화배달서비스’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현대무용단 ‘고블린 파티’를 비롯한 다양한 클래식 공연을 비롯해 정가, 씻김굿 등 전통예술작품도 소개했다. ‘한-러 상호교류의 해’를 맞은 러시아 한국문화원은 공연 상영에 덧붙여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노 김기민, 현대무용가 김재덕, 소리꾼 정승준 같은 예술인 인터뷰도 올리며 다양한 한국 문화를 맛보려는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해외 공연장에서는 국내 공연 팬에게는 익숙해진 온라인 공연 실황 중계도 이뤄진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0월 3일 홍콩 한국문화원 주최 ‘Festive Korea’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당초 단원 10명 안팎이 초청받았다가 코로나19로 취소되자 단원 약 50명으로 국내 공연을 올려 이를 생중계하기로 한 것. 앞서 6월에는 서울시무용단의 ‘놋(N. O. T: No One There?)’ 공연이 온라인 실시간 중계로 이탈리아 관객과 만났다. 곽아람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은 “대중예술 콘텐츠를 넘어 무용작품 같은 순수예술 콘텐츠도 관심을 받으며 다양한 작품의 공연 영상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지원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과장은 “현지에서 공연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케이팝이나 영화에서 시작된 관심이 다양한 장르로 퍼지도록 비대면 홍보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올해 제가 공무원 시험에 붙을 운인가요? 아니면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 할까요?” 용하다는 점집이나 사주카페에서 들을 법한 이 질문은 사실 ‘온라인 점집’에서 나온 것이다. 고민 있는 이들은 요즘 이곳 댓글창에 사연을 털어놓으며 미래를 점쳐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오프라인 점집을 찾기 불안한 ‘2030’들은 유튜브에서 타로카드나 사주로 운세를 알아봐 준다는 콘텐츠를 즐겨 찾는다. ‘유튜브 점(占)성시대’다. 특정 개인의 선택이나 생년월일에 따라 달라진다는 운세를 불특정 다수가 보는 온라인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이 선택한 카드를 기반으로 진행하는 타로 콘텐츠의 경우 ‘제너럴 리딩(general reading)’ 방식을 택한다. 타로 마스터인 유튜버가 시청자를 대신해 묶음별로 카드를 선택하거나, 카드를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차례대로 풀이하는 방식이다. 시청자는 마음속으로 선택한 카드를 떠올린 뒤 해당 풀이를 들으면 된다. 이 때문에 종종 “1번 3:01” “2번 5:08” “3번 8:42” 같은 정체불명의 수식이 댓글에 등장한다. 자신이 선택한 카드 풀이를 빠르게 볼 수 있도록 해당 운세 풀이가 시작하는 영상의 시간을 기록한 일종의 바로가기 문구다. 1번 카드 묶음을 선택했다면 영상 시작 3분 1초 지점부터 보면 된다는 얘기다. 운세 풀이는 “9월 첫째 주에는 주로 집에 머물라” “주변 사람의 일신에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것”같이 오프라인 점집과 별 차이가 없다.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주풀이는 ‘태어난 월로 알아보는 내 성격 및 사주 특징’ ‘운이 바뀌는 타이밍’ ‘내 사주 활용법’ ‘부자들 사주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등 주제별 콘텐츠가 인기다. 엄밀히 말해 온라인 점집 콘텐츠는 무료다. 그렇다고 ‘재능 기부’만 하며 점을 봐주는 건 아니다. 복채는 시청자가 클릭하는 ‘구독’과 ‘좋아요’가 대신한다. 인기 타로카드 유튜브 채널 ‘호랑타로’의 경우 구독자 41만 명, ‘타로마스터정회도’ 채널도 구독자 10만 명 이상이어서 이에 해당하는 ‘복채’를 받는다. 일부 시청자는 별도 복채를 후원 형태로 유튜버에게 송금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청년 대상의 콘텐츠 주제도 변화하고 있다. 올 초까지는 연애나 결혼 재회 등 애정 관련 운세 콘텐츠 일변도였다면 최근에는 취업 직장 이직 시험 고시 등에 대한 운세풀이 수요가 늘었다. 한 사주풀이 전문가는 “온라인 운세풀이를 찾는 2030 사이에서 그동안 제1의 화두가 연애, 결혼이었다면 최근 취업, 직종 변화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동안은 장난 반의 심정으로 봤다면 이제는 미래에 대한 실질적인 불안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타로 채널은 ‘코로나 이후 바뀔 운의 흐름’이라는 콘텐츠를 올렸다. 콘텐츠의 댓글창은 일종의 부적이자 메모장이다. 구독자들은 ‘최종 면접 앞두고 있는데 타로 결과대로 꼭 합격하게 해주세요!’ ‘어떻게 제 맘과 똑같은 카드가 나왔을까요. ㅠㅠ 잘 해결되기를!’ 같은 바람을 적는다. 영상을 반복해 보면서 유튜버 설명을 그대로 댓글창에 옮겨 적고는 불안할 때마다 찾아보며 위안을 받기도 한다. 유튜브 점집만의 매력이다. 타로마스터 정회도 씨는 “10년 넘게 활동하며 지금처럼 사업, 취직이 힘들다는 말을 들은 때가 없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설명하며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에게 위안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어, 사람이다!” 잠시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운 순간, 차창 앞으로 누군가 걸어간다. 창문이 꽉 닫혀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마스크부터 찾아 귀에 건다. 언제부턴가 사람이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보인다. 가족이 아프기 시작하며 생긴 무의식적 변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미국 뉴욕에 살던 한국인 부부의 집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격리시설에서 병마와 싸우다 완치한 이야기는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소개됐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해외 상황은 덜 알려졌다. 바이러스 검사조차 받을 수 없던 뉴욕에서 해열제만으로 40일간 생존했던 한 부부의 이야기가 출간됐다. 남편에게 의심증세가 나타나고 끝내 완치한 여정은 생각보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됐다. 하지만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며, 글을 읽는 누군가도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재난 대비 지침서다. 3일 전화로 만난 김어제 씨는 “미국의 비싼 진료비 때문에 건강관리는 부부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지만 코로나19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펜을 들었다”고 저술 사유를 밝혔다. 저자는 귀국 후 스마트폰과 메모장에 남겨둔 기록을 조립해 5개월여의 기억을 되살렸다. 여느 해처럼 겨울을 나던 부부는 올 1월 22일, 중국 우한(武漢)의 봉쇄 소식을 접했다. 김 씨는 “바이러스는 먼 곳의 일이었다. 상황이 소설 ‘세계대전Z’와 비슷하다고 느꼈다”면서도 “그때부터 왠지 모를 불안감에 평소보다 손을 열심히 씻었다”고 했다. 공포는 빠르게 찾아왔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처음 퍼졌다는 보도로 미국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유무형의 폭력이 만연했다. 그는 “폭력은 중국인, 한국인 등을 구별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결코 겪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남편까지 코로나19 의심증세를 호소하며 진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불안할수록 철저히 상황에 대처했다. 바이러스를 공부하면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려 힘썼다. 검사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해열제를 먹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다행히 귀국 전 극심한 고통은 사라졌고 무사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해외에서 잘살다 조급해지니 고국을 찾는다”는 비판도 들었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만 외국인이라고 진료조차 못 받는 상황이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저자 부부는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이다. 남편이 마쳐야 할 학업보다 후유증 관리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김 씨는 “다수 국가가 일상을 되찾지 못한 데 비해 한국은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의 피나는 노력으로 일상 비슷한 것을 영유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책의 마지막 부록 ‘셧다운에 대비하는 자세’에는 미국에서 체득한 위생 수칙, 체크리스트 등을 빼곡히 기록했다. ‘코로나 우울(블루)’과 공포의 사재기까지 이겨낸 김 씨의 경험담은 팬데믹(대유행) 시대를 사는 이들을 위한 위안이자 ‘멘털 백신’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여기가 e태원 클럽인가요?” 8월 29일 토요일 오후 9시. 비트와 음악을 즐길 준비가 된 이들이 하나둘씩 클럽으로 들어선다. 입장료가 없는 이 클럽은 약 네 달 전 개장한 뒤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 중인 엄중한 시국에 클럽이 웬 말인가 싶지만 이곳은 전 세계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집구석 클럽’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인파가 북적이는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날 3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아 몇 달간 묵혀둔 흥을 뿜어내고 돌아갔다. 이 클럽은 이번 주말에도 또 문을 연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클럽, PC방, 식당 등이 운영을 중단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언택트 놀이 생태계’가 각광받고 있다. 대면접촉이 어려워지자 온라인에 터를 잡은 이 생태계는 영업을 중단한 장소들을 온라인으로 옮겨왔다. 생업을 잠시 중단했거나 집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집구석 클럽’은 코로나19로 디제잉을 할 수 없게 된 몇몇 DJ가 열기 시작했다. 힙합, 일렉트로닉, 트로피컬 음악 등 DJ 취향에 따라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최근 가장 인기몰이 중인 클럽은 ‘J.E.B’다. DJ 겸 프로듀서 조선구 씨(31)가 예명 ‘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영문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유튜브 채널이다. 아무래도 진짜 클럽과는 좀 차이가 있다. DJ는 편안한 옷차림에 자신의 방 침대 앞으로 디제잉 기기를 끌어와 침대에 걸터앉은 채 3시간 넘게 공연을 펼친다. 화면에는 ‘#Stayhome(집에 머무세요)’ ‘Quarantine(격리)’ 등의 문구가 등장해 이곳이 ‘집구석 클럽’임을 상기시킨다. 기르는 고양이가 공연 중 화면에 난입(?)해 시선을 사로잡는 진풍경도 이곳에서만 가능한 묘미다. 클럽에 무료입장한 이들은 각자 마실 음료, 간식을 들고 화면 앞에 모여든다. 개장 전부터 채팅에서는 “여기가 e태원이냐”며 자신이 원하는 곳이 맞는지 확인하거나 “음악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러 왔다”며 인사를 나눈다. 공연 중에도 대화는 이어진다. ‘라이브챗’ 기능은 소통이 용이해 관객이 즐기는 요소 중 하나다. 특히 디제잉이 절정에 달할 때마다 채팅창에는 ‘((’ ‘))’ 같은 기호가 끝없이 올라온다. 이는 골반, 엉덩이를 흔들며 춤추는 ‘트워킹’ 동작을 형상화한 일종의 이모티콘이다. 공연이 끝나면 “우리 집을 e태원 클럽으로 만든 공연”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이 공연을 높게 평가한다” “마치 사이버 아편굴에서 스트레스를 다 푼 것 같다”는 후기를 남기고 모두 각자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화면 너머 관객에게 오로지 음악만으로 흥을 선사해야 하는 ‘집구석 클럽’은 DJ들에게 또 하나의 도전 무대가 됐다. 인기 게임 지형도도 변화하고 있다. 출시한 지 2년이 지난 협동 추리게임 ‘어몽어스(Among us)’가 최근 인기몰이 중이다. 코로나19 시대 ‘언택트 마피아 게임’으로 입소문을 타며 지난달 구글플레이 게임 순위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규칙이 간편하고 구성이 좋다는 장점 외에도 친구와 원격 교감하며 즐기는 온라인 ‘파티 게임’이라는 점도 주요 인기 요인이다. 주로 단체여행, MT, 파티 등에서 여럿이 즐기던 ‘마피아 게임’이 코로나19로 힘들어지자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겨 부활한 것이다. 집에서 음성대화로 여럿이 추리를 맞춰 나가야 해 ‘코로나 우정 게임’으로도 통한다. 게임 중 “마스크를 쓰자”는 제안에 캐릭터에 마스크를 씌우는 장면도 연출된다.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을 활용한 ‘랜선 술자리’ ‘온라인 생일파티’도 빠르게 정착 중인 트렌드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 중인 이모 씨(32)는 “최근 미국, 유럽에 흩어진 직원들이 같은 시간에 모여 화상으로 맥주 ‘해피 아워(Happy Hour)’를 즐겼다. 언택트 생태계는 세계적 흐름”이라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