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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정치가 이렇게 무너져도 되겠느냐는 위기의식이 그나마 내가 가진 동력 아니겠나.” 24일 오전 동대구역. 취임 100일을 맞아 1박 2일 일정으로 당의 심장이자 학창시절을 보낸 대구를 방문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100일 소감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웃었지만 피곤해 보였다. 김 위원장은 전임 홍준표 대표의 막말 정치와 차별화하면서 어느 정도 연착륙엔 성공했지만, 외부 영입 인사 특유의 파격적 쇄신은 보여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당 지지율은 여전히 10%대 초중반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 안팎에선 “김병준은 노무현 사람 아니냐”는 말도 계속 나온다. 김 위원장을 1박 2일간 동행하며 인터뷰했다. 그는 자주 한숨을 쉬었다. ―대구 분위기는 어떤가. “아, 이대로는 대구도 위험하다. ‘진박 감별사’가 등장한 2016년 총선 공천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다. 대구가 자존심이 있는 곳인데, 일방적으로 당에서 내려 꽂았다고 화가 잔뜩 났다.” ―인적쇄신을 하면 되지 않나. 당협위원장은 얼마나 교체할 것인가. “253명의 일괄 사퇴를 받았는데, 몇 명 바꿔서 명분이 서겠나. 교체할 곳이 제법 나올 것이다.” ―위원장이 사용할 권한이 별로 없는 건가. “가용할 수 있는 권력적 자원이 많지 않긴 하다. 그래도 253개 당협위원장 심사에서 최종 결정권한은 비대위원장인 나에게 있다. 조직강화특별위원인 전원책 변호사도 ‘무리’가 있는 결정이라면 사전에 나랑 협의해야 한다.” ―한국당 주인은 김무성 전 대표라는 말도 있다. 한국당이 보수세력 중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나는 거 아니냐는 말 혹시 들어봤나. “김무성 의원을 만나 보니 내년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은 좀 갖고 있는 거 같더라. 그 말로 답을 갈음하겠다. 주변에서 걱정하시는 건 알겠는데, 보수 정당이 무너져 진보정당 천지가 되는 일은 결코 발생할 수 없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영입한 전원책 변호사는 연일 바른미래당을 향해 보수 대연합을 제안하고 있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바른미래당에서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비빔밥이라고 우기지 말라’며 한국당을 쓰레기에 비유했다. 이런 당과 통합이 가능한가. “보수 재건을 위해 힘쓰는 와중인데 참 ‘엄청나게 과격한’ 표현이다. 그리고 쓰레기도 재활용할 수 있다.” 차분하던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올라갔다. ―100일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봤나. “도, 무, 지, 앞이 안 보인다.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에 소극적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분배정책이지 성장정책이 아니다. 여당 대표에게 이 문제를 토론하자고 해도 답도 없다. 남북 군사합의 결과를 보면 김정은 유고 시 핵이 누구 손에 들어가게 될지도 이제 한국은 모른다.” 김 위원장의 ‘경제정책’에 대한 관심은 그동안 해온 발언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대위가 정리한 김 위원장의 핵심 발언 약 6000단어를 분석한 결과 많이 나온 단어는 국민(44회) 정부(42회) 정책(36회) 일자리(25회)순이었다. 과거의 ‘막말정당’의 이미지를 정리하고 당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정책담론’에 집중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이 한국당의 정치 언어를 복원시키며 대화 분위기는 만들었는데 여권에선 김 위원장을 여전히 ‘변절자’로 보고 있지 않나. 그래서 토론도 거절하는 것 아닌가. “내가 변절인지 자기들이 변절인지 그것도 한 번 토론할 대상이다. 본질은 노무현이 소속된 정당에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정책을 그렇게 반대하던 인사들이 필요할 때마다 ‘노무현 간판’을 거는 게 변절 아닌가.” 1박 2일간 김 위원장이 가장 편안해 보였던 자리는 23일 대구 수성구의 한 고깃집에서 열린 영남대 동문 모임이었다. 김 위원장이 평소 자제하는 ‘소폭’을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한 동문이 “보수를 위해 병준이 잘할 수 있제?”라고 했더니 김 위원장은 “그래, 하마”라며 웃었다.대구=장관석 jks@donga.com·홍정수 기자}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문제는 2013년 국회 국정감사 때부터 꾸준히 지적돼온 문제다. 하지만 정부의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직자 가족 및 친인척 채용은 공공 분야 전 영역에 만연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전환자 가운데 재직자 친인척이 112명 포함된 것을 비롯해 올해 국감에서 드러난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의혹 사례는 총 23개 기관, 576명에 이른다.○ 마사회 98명, 농어촌公 28명 친인척 근무 각 공공기관이 자체 전수조사를 통해 직원 간 친인척 관계 파악에 나서면서 친인척 채용 사례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24일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실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사회가 최근 3년간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5519명 가운데 98명이 기존 직원의 친인척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농어촌공사는 같은 기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413명 중에 28명이 친인척 관계였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도 무기계약직 전환자 59명 가운데 1명이 사내에 친인척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유한국당 김기선 의원실이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제출받은 직원 친인척 현황 자료에 따르면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 2명이 각각 기존 직원의 처조카와 처남인 것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로써 현재까지 밝혀진 각종 공사의 친인척 채용 의혹 관련자 수는 서울교통공사 112명을 비롯해 한국국토정보공사 19명, 한국가스공사 41명 등 총 23개 기관, 576명에 달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정규직 전환 승진평가 시험에서 사측이 노조와 출제 난도를 쉽게 하기로 ‘짬짜미’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국당이 입수한 서울교통공사 내부 문건에 따르면 5월 30일 노사협의에서 노조 측은 쉬운 시험을 위해 “공사 인재개발원에서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사측은 “시험 난이도를 기존 상 20%, 중 40%, 하 40%에서 각 10%, 40%, 50%로 바꿨다. 내부인이 출제하면 어려운 내용을 쉽게 생각할 수 있어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게 낫다”고 설득했다. ○ 기초자치단체 산하 기관도 고용세습 ‘심각’ 구청 등 기초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의 고용세습도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 용산구 시설관리공단은 지난해 정규직 채용에서는 공단 간부 이모 관장과 이모 팀장의 아들이 각각 전문직 8급과 기술직 8급으로 입사했다. 용산구 채용비리 문제를 추적해온 ‘용산시민연대’ 관계자는 “시설관리공단에 용산구청 직원의 가족들이 취업한 사례도 부지기수”라고 주장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용산구 시설관리공단 내부자로부터 ‘구청에서 아예 합격자 명단이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제보도 있다”고 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고용세습 문제는 매년 지적을 받아온 ‘단골 메뉴’다. 2013년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와 환노위 국감에서는 전국의 100곳 가까운 공공기관이 ‘가족 우선채용’ 등 고용세습 조항을 노사 단체협약이나 인사규정에 명문화한 것이 문제가 됐다. 근로 중 사망 등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단순히 정년퇴임한 직원의 가족을 우대한 곳도 있었다. 같은 해 11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직원의 고용세습 명문화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5년 만에 비슷한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것이다. 정부가 매년 공공기관 채용비리 전수조사를 벌이는데도 이번 사태를 막지 못한 것은 조사 과정에서 개인정보인 친인척 여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고야 best@donga.com·홍정수 기자}
기찬수 병무청장은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예술·체육 특기자 병역특례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등을 계기로 예술·체육인 병역특례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제도 존속 여부 등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날 국감에서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은 “병역특례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우리 성적이 북한에 뒤처지자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며 “지금은 45년의 세월이 지났고 코리아 브랜드 진작이 필요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도 “병역을 면제받은 예술 특기자 가운데 강남 3구 출신이 38명으로 유달리 많고 이 중 34명이 국내 무용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예술요원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발레단 단원의 해외 콩쿠르 수상에 대해 “대회 심사위원 서명, 상금 액수 등 석연치 않은 점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기 청장은 “시대적 상황에 부합되게 국민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듣고 제도의 취지와 운영 목적, 군 병역 이행 등의 형평성을 따져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폐지가 필요하면 폐지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병무청은 이날 병역특례 제도 개선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실무추진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 청장은 “올해 내 대략적인 안을 만들어서 국민공청회를 거쳐 내년 상반기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병역법과 법 시행령에 따르면 올림픽 3위 이상 및 아시아경기대회 1위 입상자,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 국악 등 국제 대회를 하지 않는 분야의 국내 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 등은 예술·체육 요원으로 편입된다. 예술·체육 요원은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544시간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예술·체육 요원은 97명이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들이 보수 진영의 차기 당권 주자들을 불러 보수 대통합에 대해 묻는 간담회를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거론되는 인물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태호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 등이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초선 의원 모임이 다음 달 주요 인사를 한 명씩 초청해 정치 분야 현안에 대해 의견을 묻는 ‘프리토킹’식 간담회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권에 어떻게 대응할지와 보수 통합론에 대한 의견 등을 묻겠다는 것이다. 최근 당내에서 ‘끝장토론’을 열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도 어떤 식으로든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간담회가 이뤄진다면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당내 의원들에게 자연스레 향후 거취 등을 밝히게 될 듯하다. 특히 유 의원이 간담회에 응할 경우 보수 대통합의 동력이 될 수도 있어 주목된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유 의원이 응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가급적 설득해 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볼 예정”이라고 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의 또 다른 쟁점은 사업 비용 조달 문제다. 2012년 국토교통부가 잠정 집계한 남북 통합교통망 구축 비용은 사업 방식에 따라 22조∼33조 원에 달했다. 수년이 흘러 인건비나 각종 건자재 비용 상승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 늘어난다. 일부 도로 및 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철도를 고속철도로 건설하면 비용은 10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비용이 큰 것도 문제지만 사업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방안도 뚜렷하지 않다. 북한의 경제 사정을 감안할 때 북한이 부담할 몫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결국 외부에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북한에 경협 차관을 제공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다만 북한은 현재 9억3294만 달러(약 1조600억 원)에 이르는 기존 차관도 갚지 않아 추가 차관 제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권이나 건설업계에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 유라시아 철도망과 경의선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공동 개발을 조건으로 차관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외 금융권에서는 경의선 고속철도화 사업의 경우 사업성이 좋아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 금융기관이 투자할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이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원만히 진행돼 유엔 제재가 풀리는 등 ‘정치적 리스크’가 해소됐을 때를 전제로 한 시나리오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희토류 채굴권을 주는 조건으로 철도 현대화를 추진하는 ‘포베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 것과 비슷한 유형이다. 송진흡 jinhup@donga.com·홍정수 기자}
남북이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 갖기로 합의하면서 경제협력의 기관차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건설업체와 철도 차량 제작 업체 등 관련 업계는 남북경협 특수(特需)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고 갈 길도 멀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난관은 남북한 철도를 잇는 기술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북한내 철도 부설을 둘러싼 관련 당사국간 이해도 복잡하다. 더욱이 철도 도로 연결은 북한의 비핵화 및 제재 완화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관련 협상 진행의 추이도 중요하다. ● 남북 철도 연결? 도처에 도사린 기술적 걸림돌 북한 철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로 폭이 1435㎜인 표준궤를 쓴다. 일본이 강점기에 표준궤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남북 철도를 연결하는 데 있어 선로를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력공급 시스템은 다르다. 한국이 2만5000V 교류를 쓰는 반면 북한은 3000V 직류를 사용한다. 호환 장치를 달지 않으면 남북 철도 연결은 불가능하다. 물론 디젤 기관차를 활용하면 기존 선로를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철의 효율이 높은 만큼 장기적으로 전력공급시스템은 통일시켜야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북한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발전소와 변전소를 확충해야 하는 것도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호 체계 통일도 필요하다. 아날로그 방식인 북한 신호 체계를 한국과 같은 디지털로 전환해야 장기적으로 고속철도를 부설할 때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박정준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미래혁신전략실장은 “남북 모두 일제 강점기에 채택한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어 (하드웨어) 연결에는 큰 문제점은 없다”며 “하지만 전력공급시스템이나 설계 기준, 신호 체계, 각종 기술 용어 등은 차이가 많아 남북 간 협의를 통해 통일을 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관련국들 ‘동상이몽(同床異夢)’ 남북 철도 연결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철도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까지 이권을 위해 뛰어들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4년 10월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일명 포베다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향후 20년 간 노후화된 북한 철도 3500㎞(북한 전체 철도 노선의 70%)의 레일과 터널, 교량을 현대화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250억 달러(약 27조5000억 원)에 이른다. 러시아는 철도 현대화를 해주는 조건으로 희토류 채굴을 허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는 러시아 건설업체인 모스토빅이 맡고 있다. 계약 체결 당시 관련 업계에서는 러시아가 유럽과 극동을 잇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과의 연결을 염두에 두고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남북 철도가 연결될 때를 대비해 북측 노선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얘기다. TSR이 남북을 잇는 철도망과 연결되면 한국은 물론 일본의 물동량까지 흡수할 수 있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남북 철도 연결 비용만 부담하고 사업 주도권은 러시아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남북이 경의선 고속철도를 건설하면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시키는 조건으로 중국형 고속철도 모델을 고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차관 제공을 빌미로 북한을 움직이면 ‘재주는 한국이 넘고, 실리는 중국 왕서방이 챙기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남북 간에도 철도 현대화에 대한 ‘온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높은 경의선 고속철도 건설에 관심이 높다. 반면 북한은 경의선 뿐 아니라 전국의 철도 노선 및 도로 현대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면 디테일에서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진장원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는 “러시아나 중국은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TSR이나 TCR 수익성이 좋아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향후 수익 배분 구조에서 한국 측에 가중치를 두게 하는 등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남북 철도 연결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물류 동맥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도로는 약간 다르다. 북한 도로 현대화는 한국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아 사업비 확보가 쉽지 않은데다 일부에서는 유사시 북한군이 대규모로 이동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 사업비용 조달은 어떻게? ▼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의 또 다른 쟁점은 사업비용 조달 문제다. 2012년 국토교통부가 잠정 집계한 남북 통합교통망 구축 비용은 사업 방식에 따라 22조~33조 원에 달했다. 수년이 흘러 인건비나 각종 건자재 비용 상승을 고려하면 이 보다 더 늘어난다. 일부 도로 및 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철도를 고속철도로 건설하면 비용은 10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비용이 큰 것 못지 않게 사업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지에 대한 방안들은 뚜렷하지 않다. 북한의 경제 사정을 감안할 때 북한이 부담할 몫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결국 외부에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북한에 경협 차관을 제공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다만 북한은 현재 9억3294만 달러에 이르는 기존 차관도 갚지 않고 있어 추가 차관 제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권이나 건설업계에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 유라시아 철도망과 경의선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중국이나 러시아는 공동 개발을 조건으로 차관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외 금융권에서는 경의선 고속철도화 사업의 경우 사업성이 좋아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 금융기관이 투자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원만히 진행돼 유엔 제재가 풀리는 등 ‘정치적 리스크’가 해소됐을 때를 전제로 한 시나리오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사업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희토류 채굴권을 주는 조건으로 철도 현대화를 추진하는 ‘포베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 것과 비슷한 유형이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대상 사업장에서 사업주가 자금 지원받기를 포기하고 정리해고한 노동자 수가 2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정부가 ‘최저임금 해결사’라며 올 1월 도입한 일자리안정자금 제도가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원 대상 선정되고도 해고 선택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총 1만6734개 사업장에서 노동자 2만1155명을 ‘고용조정(정리해고)’해 일자리안정자금 지급이 중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가 최저임금 등으로 인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해고한 근로자가 2만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고용노동부는 일자리안정자금을 지급받은 사업주가 정리해고로 고용 인원을 줄이면 자금 지급을 중단하고 있다. 고용 안정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므로 고용을 줄인 사업장에 정부 예산을 줄 수는 없다는 취지다. 추 의원은 “사업주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해고한 2만여 명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지원을 받아도 버틸 수 없어서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조차 못 하고 해고한 근로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고용부 관계자는 “전체 지급 인원(9월 말 기준 176만4211명)과 비교하면 정리해고로 지급이 중단된 비율은 1.2%로 극히 낮은 수준”이라며 “이는 거꾸로 일자리안정자금이 고용 유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정리해고를 한 사업주도 불가피한 사유가 인정되면 일자리안정자금을 계속 지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청자도 ‘허수’투성이 공단은 지난달 말까지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한 사업장의 지원 대상 노동자 수가 241만1931명으로 당초 목표인 236만4000명을 초과 달성했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장 홍보를 하고 통계조사원까지 동원해 전방위적으로 신청을 독려한 결과다. 하지만 지원 신청 사업주 중에는 기본적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허수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이 지난달까지 지급 대상자가 아니라고 판정한 14만여 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은 기업인 경우가 2만5992명(18.5%)으로 가장 많았다. 임금이 기준금액인 월 190만 원(최저임금의 120%)을 초과한 경우가 1만8380명(13.1%)으로 그 뒤를 이었다. 신청자 수가 목표를 초과했음에도 자금 집행률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체 배정예산 2조9293억 원의 44.5% 수준에 그쳤다. 인원 기준으로는 전체 신청자 241만여 명 중 73.1%가량이 일자리안정자금의 도움을 받은 것. 하지만 여전히 전체 신청자의 20%가 넘는 50만 명가량은 공단 심사가 끝나지 않아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자금 집행이 늦어지는 것은 영세기업과 지원이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추 의원 측은 비판했다. 한편 예비비 91억4900만 원을 들여 구축한 일자리안정지원시스템이 신청·지급 노동자와 지급액 등 기본적인 현황을 관리하는 수준에 불과한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성과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통계산출 기능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공단은 “일자리안정자금은 한시 사업이어서 접수와 심사, 지급 업무 중심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각종 조건을 추가해 통계를 산출할 때는 기초 데이터를 다운로드해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 의원은 “근로복지공단 신규 인력 채용과 일자리안정자금 시스템 구축 비용 등을 합치면 총 6조 원가량을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지출하는 셈이다. 하루빨리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홍정수 hong@donga.com·유성열 기자}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노조의 요구에 밀려 올해 내 ‘정규직 전환 시험’ 추가 실시를 노조와 합의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올 7월 처음 치러진 정규직 전환 시험은 노조의 100% 합격 보장 요구로 파행을 겪었으며, 다음 시험은 당초 내년 하반기에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1년가량 앞당겨진 것이다. 이 시험은 무기계약직에서 ‘임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이 ‘완전한’ 정규직으로 승진하기 위해 봐야 한다. 공사 내부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농성 중이던 민노총 산하 노조 대표와 면담한 뒤 올해 내 추가 시험 실시가 합의된 점을 들어 공사가 민노총의 요구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평균 연봉이 7000만 원이며 각종 복지와 처우가 좋아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선호하는 직장이다. 올 7월 1일 치러진 첫 시험은 노조가 전원 합격 보장을 요구하며 시험을 사실상 거부해 응시율이 37%에 그쳤다. 대상자 626명 중 393명이 시험을 거부한 것. 당시 공사는 다음 시험을 내년 하반기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7월 시험 합격률이 93.6%에 이르자 노조는 올해 안에 추가 시험 실시를 요구했다. 공사는 이에 부정적이었으나 박 시장이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 중이던 노조 대표와 면담한 이후인 지난달 21일 노조 측과 추가 시험을 연내에 실시하는 내용의 ‘노사특별합의서’를 작성했다. 또 공사는 고용 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자유한국당 유민봉 의원에 따르면, 공사가 올 3월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1285명 중 108명(8.4%)이 공사 임직원의 자녀이거나 형제, 배우자 등 친인척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규직 전환 과정을 총괄한 공사 김모 인사처장의 부인이 무기계약직인 식당 찬모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또 김 사무총장은 2016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분야 무기계약직으로 공사에 입사해 스크린도어 업무직협의체 결성을 주도한 임직원 2명이 옛 통합진보당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공개했다. 한국당은 이 문제를 ‘권력형 채용 비리 게이트’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통해 공공기관 전체의 불법 채용 비리 현황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는 감사원 감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김예윤 yeah@donga.com·홍정수 기자}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한국의 시중은행들을 직접 접촉해 콘퍼런스콜(전화회의)을 하면서 “(대북제재 위반 관련)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지 말라”는 등 강도 높은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이 입수한 KDB산업은행의 내부 보고서엔 “미 재무부의 한국 금융기관 대북 금융 지원에 대한 우려 표명과 대북 금융제재(sanction)의 중요성 강조”가 회의 주제로 적시돼 있다. 미 재무부 대니얼 모저 수석부차관보와 재무부 정책보좌관 2명, 한국의 산은과 NH농협 관계자 등 회의 참석자 명단도 포함돼 있다. 산은 윤리준법부는 지난달 20일 미국 측과 콘퍼런스콜을 마친 뒤 작성한 이 보고서를 이동걸 산은 회장에게 보고했다. A4용지 한 장 분량인 보고서에는 미국의 ‘우려’라는 단어와 ‘대북제재’라는 단어가 각각 세 차례나 사용됐고, ‘오해(misunderstanding)’라는 단어도 등장한다. 보고서는 “콘퍼런스콜의 목적은 유엔 및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유효함을 확인하고 현재 언론을 통해 전달되고 있는 한국계 은행의 대북 금융 진출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전달하는 내용”이라고 적고 있다. 또 “NH농협은행의 금강산 지점 개설에 대한 우려 표명 및 진위 확인”,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의 금융거래는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주의”라는 등 미국 측 전달 사항이 담겨 있다. 오전 9시부터 10분가량 진행된 회의가 미 재무부의 경고, 공지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국회 정무위와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미 재무부와 국내 은행들의 콘퍼런스콜이 “미국 측의 모니터링”(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예방적 아웃리치(지원활동) 차원”(조윤제 주미대사)이라고 밝힌 것과는 결이 다르다.최고야 best@donga.com·홍정수 기자}
“보수가 단합해 문재인 정부가 초래할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을 막아야 한다.”(자유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 “다당제의 틀을 정착시켜야 하며, 오히려 자유한국당이 없어져야 할 당이다.”(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자유한국당이 연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의 영입론을 띄우며 “범여권에 대항하는 ‘보수 빅텐트’를 치자”고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뚜렷하고 영입 대상자들의 정치적 한계도 있어 ‘미풍’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내년에 경제 ‘퍼펙트스톰’이 올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당을 포함해 모두가 모여 이 흐름을 바꿔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김성태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보수궤멸론’을 비판하면서 ‘정치적인 단합’을 강조한 데 이어, 이번엔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단일대오’를 주장한 것이다. 퍼펙트스톰은 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생기는 초대형 경제위기를 뜻한다. ‘국민성장’을 담론으로 내놓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다음 순서로 발표할 ‘문재인 정부의 경제상황 진단’에서도 ‘퍼펙트스톰’ 개념을 띄워 다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 사무총장은 “한국당의 전당대회를 우리만의 행사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발 거대한 위기에 맞서는 새로운 전기(轉機)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당 안팎에선 보수대통합에 기대를 거는 인사들이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당 관계자는 “비대위 출범 3개월이 지났지만 지지율은 20% 남짓으로 정체 상태이고 이슈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의 마지막 카드는 ‘보수 빅텐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당은 우선 차기 당권 후보로 거론되는 황 전 총리와 오 전 서울시장 등은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입당을 추진하되,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과 무소속 원희룡 지사 등은 김 사무총장을 비롯한 바른정당 출신 당 지도부들이 접촉면을 넓혀 나간다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미 한국당 소속인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에겐 당 지도부 차원에서 차기 당 대표 출마를 권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주요 통합 대상인 바른미래당의 반발은 유난히 거세다. 손학규 대표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바른미래당 등 중도개혁 정당은 차기 총선에서 최소 50∼60석 이상을 확보하고, 한국당은 일부 우파 세력으로 쪼그라들 것”이라며 통합론을 일축했다. 보수 지지층 사이엔 현재 한국당이 영입하겠다고 거론되는 주요 인물들의 정치적 한계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다. 오 전 시장에 대해선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서울시장을 내던지며 보수 붕괴에 일조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황 전 총리에 대해선 “또다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12년 야권 통합, 2017년 반기문 빅텐트론 등 대선 때마다 번번이 띄워진 빅텐트론이 거의 성공한 적이 없다는 점도 난관이다. 그렇지만 한국당으로선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 또한 현실. 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전원책 위원은 “각자 흠결을 가진 정치인들이 모여들어 각축하는 과정에서 흠결을 치유하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을 계기로 한미 양국이 대북 문제에 대해 시각차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정부가 비핵화 이슈와 관련해 자유한국당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브리핑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국방부와 통일부 차관이 남북 정상회담 직후 한국당에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내용은 미국과 충분히 협의해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는데 이게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다. 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11일 비대위 회의에서 “지난번 정부 당국자들에게 ‘군사합의 문제가 유엔사령부나 미국과 충분히 합의가 됐느냐’고 두 번 물었다”며 “정부로부터 ‘충분히 협의했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 당국자가 ‘서로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하나하나 전부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정부 당국자는 서주석 국방부 차관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다. 서 차관과 천 차관은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인 지난달 19일 오후 2시경 김 위원장과 한국당 관계자들을 만나 30분가량 회담 결과를 브리핑했다. 당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군사합의서의 공중정찰활동 중단 조항에 우려를 표하자 당국자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설명과 달리 미국이 남북의 군사분야 합의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사실이 드러나자 한국당은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식의 거짓말을 했다”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정말로 협의가 됐다면 왜 지금 곳곳에서 잡음이 나오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해 “세계적인 추세가 공격용 무기를 줄이고, 감시·정찰 체제는 강화하는 것”이라며 “국가안보의 눈을 빼버리는 것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도 되는 것인지 걱정된다”고 비판했다. 강 장관이 전날 국정감사에서 5·24조치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현실을 있는 대로 설명하지 않고 자꾸 분식(粉飾)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전원이 선행학습금지법을 고쳐 올해부터 금지된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논란이 벌어졌을 때 영어수업 허용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여당 의원들이 전향적 태도를 취하면서 내년부터 영어수업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이 시행 1년도 안 돼 오락가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11일 동아일보가 교육위 소속 국회의원 15명을 상대로 초등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13명(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자유한국당 이군현 의원은 입장 확인 안 됨)은 현행 금지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답했다. 교육위 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 허용 방침을 밝힌 마당에 초등 1, 2학년을 금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법을 고쳐 내년 새 학기부터 적용할 수 있도록 여야 간 협의를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당정은 최근 회동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이르면 내년부터 방과 후 영어수업을 재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는 2014년 시행된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올해 3월부터 초등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을 전면 금지했다. 정규교육이 3학년부터인 만큼 그 전에 가르치는 것은 선행학습이라는 것이다. 김상곤 전 부총리는 지난해 말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교육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고 물러선 바 있다. 당시 민주당 교육위 간사였던 유 부총리는 “영어교육은 부모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측면이 더 크다”며 방과 후 영어교육 금지에 찬성했다. 하지만 유 부총리는 4일 대정부질문에서 “놀이 중심의 유치원 영어교육을 허용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또 이튿날 학부모들과 만나 초등 1, 2학년에 대해서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정부가 입장을 바꾸자 여당도 허용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올해 초 논란이 됐을 때부터 사실상 당론으로 허용하자는 입장이었다. 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우리 당은 계속 허용하자고 주장했는데 민주당에서 반대하거나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즉각 시행하는 것과 별개로 유 부총리의 교육 철학과 소신이 왜 변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효목 tree624@donga.com·홍정수 기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걸면서 논란이 확산되자 주무 부처 장관이 진화에 나선 것이다. 여야는 이날 국감에서 강 장관 발언을 언급하며 5·24조치 해제에 대한 정부 입장을 수차례 물었다. 이에 조 장관은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다”며 “다만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하면서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유연한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야당은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미 공조 균열을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주장했다. 5·24조치 해제를 위한 선결 조건을 묻자 조 장관은 “제재 조치의 원인이 된 천안함 폭침 사건 관련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에 천안함 폭침 책임을 추궁할 필요가 있지 않냐는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의 질의엔 “앞으로 남북 간에 정리될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조 장관은 “결코 실현될 수 없고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이어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시기를 대비해 경제 시찰을 북측과 협의하고 있다”면서 “개성공단 현장 점검은 (공단) 재개와 별개로 북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김상운 sukim@donga.com·홍정수 기자}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 산하 ‘좌표와 가치 재정립’ 소위원회는 8일 보수정치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로 도덕성을 제시했다. 소위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큰 국민·작은 국가 △힘찬 성장·공정 분배 △튼튼한 안보·당당한 평화 △따뜻한 공동체·준비된 미래라는 4대 주요 모토를 발표했다. 또 공정과 포용, 자유와 민주를 한국당이 추구할 새로운 가치로 내놓았다. 공정과 포용을 통해 실현할 6대 혁신 가치로는 국가도덕성, 국민성장, 정의로운 보수, 따뜻한 사회, 준비된 미래, 당당한 평화를 제시했다. 이 중 가장 강조한 것은 ‘국가도덕성’이다. 소위 위원장인 국민대 홍성걸 교수는 “보수주의의 본질은 높은 도덕성과 개혁성”이라며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 개인의 권력 남용이나 자의적 행사로 국가도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는 권력구조 개혁에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와 민주를 뒷받침할 6대 핵심가치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국가안보, 공동체·통합, 긍정의 역사관을 꼽았다. 김 위원장은 “오늘 1차 결과는 조금 여지를 남겨 달라”며 “다른 위원회의 의결 결과와 맞춰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홍정수기자hong@donga.com}
박한기 합참의장 후보자(사진)는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현황에 대해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보당국의 판단으로는 북한이 적게는 20개부터 많게는 60개까지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정부 고위 관계자가 북한의 핵 보유 실태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과는 정반대의 언급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핵무기 리스트도 제출하지 않았고 검증이나 사찰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군 서열 1위 합참의장이 북한이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발언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박 후보자는 이어 “우리의 현존하는 적은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분명한 적인 북한”이라고 언급한 뒤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군이 피로 지켜온 선이다. 어떤 경우에도 지킬 것이며 존중돼야 할 실질적인 경계선”이라고 강조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당초 2020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고교 무상교육을 1년 앞당겨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여야 위원들 사이에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동아일보가 교육위 소속 국회의원 15명을 상대로 고교 무상교육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13명 중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을 포함한 7명이 법안 처리에 찬성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의원 6명은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명하며 답변을 유보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사실상 반반씩으로 갈렸다. 고교 무상교육은 국회에서 초중등교육법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을 개정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교육위원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교육위 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공약이고 각 지역 교육감도 이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며 “고교 무상교육이 시행되면 국민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고 가계부담도 경감시킬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시행 시기를 앞당기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했고, 김해영 의원은 “이제는 고교까지는 무상교육을 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며 뜻을 같이했다. 5년간 8조 원가량 재원이 든다는 추계가 나오는 데 대해 민주당 박경미 의원은 “야당을 설득해 지방교부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야권은 유 부총리의 고교 무상교육 조기 시행 방침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분위기다. 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원래 정부가 로드맵(2020년 1학년부터 단계적 시행)을 만든 이유가 있을 텐데, 임기 1년짜리 장관이 갑자기 왜 내년부터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짧게는 야권이 ‘불신임’하는 유 부총리 거취 문제를 돌파하려는 의도와, 길게는 21대 총선용 선제적 프레임 짜기 아니냐는 것이다. 같은 당 전희경 의원은 “당장 사퇴해야 할 상황에서 고교 무상교육을 국면전환용 카드로 쓰고 있다”며 “학령인구 감소 등을 고려해 숙의가 필요한 문제인데 정책 제안의 진정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홍문종 의원도 “2020년 총선을 겨냥한 ‘학부형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같은 당 곽상도 의원은 “인구가 줄면서 학생수도 급감하고 있는 상황인데 교부금 비율 자체를 높여야 하는지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소속 이찬열 교육위원장은 “원칙적으론 찬성한다”면서도 “당장 내년 도입 가능한지는 검토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임재훈 의원은 “단계적 시행이 옳다. 급작스러운 ‘내년 시행’은 적극 반대”라고 했다. 다만 한국당 간사인 김한표 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논의만 충분히 된다면 내년 시행도 무리 없다”며 같은 당 동료 의원들과 다른 의견을 냈다.홍정수 hong@donga.com·박효목 기자}
4일 국회 대정부질문은 ‘2차 유은혜 청문회’였다. 이미 취임한 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자격을 놓고 여야 원내대표가 몸싸움까지 벌이며 격렬하게 충돌했다. 유 부총리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을 재차 해명하면서 혹독한 국회 신고식을 치렀다.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이날 국회 본회의 개의 직후 유 부총리가 인사말을 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퇴해” “어딜 와서 인사를 해” “위장전입자가 어떻게 교육을 책임지냐”는 야유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조용히 해”라고 고함을 지르며 같은 당 의원이기도 한 유 부총리를 엄호했다. 유 부총리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여유를 보이려 했다. 첫 질의자로 나선 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교육계가 유 부총리 임명에 상당히 반대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해 대단히 유감”이라며 청문회 때 나온 유 부총리 자녀의 서울 덕수초등학교 위장전입 문제를 다시 꺼냈다. 유 부총리는 “여러 차례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몸을 낮추면서도 “덕수초는 명문 학교가 아니었고 당시 입학생이 부족한 실정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유 부총리의 목소리도 서서히 올라갔다. 야당이 청문회에서 다뤘던 의혹을 계속 꺼내자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사회를 맡은 이주영 국회 부의장이 앉아 있는 의장단석 앞으로 걸어 나가 “부의장이 제지를 해주셔야 한다. 이미 청문회에서 의혹을 밝혔다”고 항의했다. 야당은 “전문성도 없는 장관이 길어봤자 1년 동안 업무 파악하기도 바쁠 것”이라며 유 부총리에게 2020년 차기 총선에 출마할 것인지 추궁했다. 유 부총리는 “임기는 국민이 결정해주실 것” “지금은 교육 개혁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출마 여부에 대해 끝까지 답을 피했다. 그러자 한국당 의석에서는 “결정 장애냐”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한국당 이철규 의원은 유 부총리가 피감기관 소유 건물에 지역 사무실을 임차했던 문제를 꺼냈다. 지역 사무실 문제는 위장전입과 마찬가지로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됐던 내용. 그러자 홍 원내대표는 또다시 의장석 앞으로 나가 “이렇게 인격 모독을 하면 되겠느냐”고 항의했다. 곧바로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의장석 앞으로 뛰쳐나와 “질의를 방해하지 말라”며 홍 원내대표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두 사람은 단상 앞에서 춤추듯 몇 초간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거칠었던 분위기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답변하면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총리는 “국민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청문회 의혹 관련 과잉보도가 있었다. 일부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되기도 했다”고 했다. ‘유 부총리에 대한 야당의 반대는 국민 여론이 아니다’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논평에 대해서는 “대변인 논평은 좀 더 사려 깊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유감을 표했다. 한편 한국당은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이 고발장 접수 4일 만에 한국당 심재철 의원실을 압수수색한 일에 대해 항의했다. 이에 박 장관은 “기획재정부와 심 의원이 주장하는 바가 달라 신속히 증거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고 답했다.최고야 best@donga.com·홍정수 기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취임식에서 고교 무상교육을 당초 예정보다 1년 앞당겨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교육계와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모든 고교생의 입학금과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및 교과서 대금 등을 무상 지원하는 고교 무상교육은 원래 2020년 고1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해 2022년 완성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년 조기 시행’ 방침이 나오자 곳곳에서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주무부처인 교육부조차 “공식 방침은 취임식에서 처음 들었다”고 말할 정도다. 고교 무상교육에는 1개 학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면 6600억 원, 3개 학년 동시 도입하면 2조 원 이상의 연간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고교 무상교육 실행을 위해 교육부가 발주한 정책연구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도입 시기가 내년으로 앞당겨지면서 교육부는 서둘러 정책 로드맵을 결정하고 시도교육청과 논의하는 한편 국회 및 기획재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큰 과제를 떠안게 됐다. 조기 시행 배경을 두고 포용적 국가 건설 정책 본격화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고교 무상교육을 앞당기는 문제는 이미 사전 조율된 사안”이라며 “집권 2년 차를 맞아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포용적 국가 건설’에 조기 시행 방침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고교 무상교육을 시도교육청이 먼저 치고 나가는 분위기가 생긴 것도 고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 후보들은 고교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제주는 올해부터 이미 시행 중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야당 간사인 자유한국당 김한표 의원은 “전혀 귀띔 받은 바가 없다. 아직 상임위에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미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국회가 고교 무상교육 예산 편성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통과 법정 시한은 12월 2일이다. 두 달 안에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당은 유 장관의 임명 자체를 반대했던 터라 고교 무상교육 조기 시행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임우선 imsun@donga.com·문병기·홍정수 기자}
2일 오전 11시 50분, 국회 본회의장. 국회의원과 취재진의 이목이 두툼한 서류뭉치와 함께 단상에 선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에게 쏠렸다. 행정정보 무단유출 논란에 휩싸인 심 의원은 “국민 세금인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는 것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책무”라며 질의에 앞서 접속을 시연하는 영상을 틀었다. 영상 속에서 심 의원은 국회 컴퓨터에 깔려 있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dBrain)을 통해 한국재정정보원 재정분석시스템(OLAP)으로 들어간 후 백스페이스키를 눌러 ‘재정집행 실적’ 항목으로 들어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호출한 심 의원이 “재정관리가 허술하다는 게 방금 드러났다”고 하자 김 부총리는 말을 끊고 “결과적으로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라며 “감사관실용이라고 나와 있는데 공직자가 그걸 본다면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 부총리가 “불법적으로 얻은 정보”라고 하자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 “이게 어딜 봐서 불법이냐”는 고성이 터졌다. 급기야 심 의원과 김 부총리는 서로 경쟁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봐서는 안 된다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정부의 정보관리 실패다.(심 의원)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백번 양보해 우연히 들어갔다고 해도 다운로드를 100만 건 이상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김 부총리) ―업무추진비 카드는 평일 밤 11시 이후와 주말에는 못 쓰게 돼 있다. 그런데 청와대 직원들은 밤 11시 이후에 231번, 공휴일과 주말에 1611번, 술집에서 236번이나 썼다.(심 의원) “원칙적으로는 금지지만 업무 관련성이 소명되면 문제가 없다. 가게 이름이 술집 같은 밥집도 있는데 국민을 오해하게 하는 건 책임 있는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의원님께서 국회 보직을 하실 때 주말에 쓰신 것과 같은 기준으로 봐 달라.”(김 부총리) ―당시 업무추진비가 아니라 특수활동비로 썼다.(심 의원) “아니다. 업무추진비로 쓰신 것이다. 업무추진비였다. 해외출장 중 (국내에서) 유류비를 쓰신 것과 같은 기준으로 저희가 (자료를) 다 갖고 있다.”(김 부총리) ―잘못됐으면 공개하라.(심 의원) 심 의원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거론하며 “수사 결과가 어떨지 안 봐도 알 것 같다”고 하자 김 부총리는 “사법 당국에 대한 심각한 모욕의 우려가 있는 말씀”이라고 받아쳤다. 두 사람의 설전이 40분 동안 이어지는 내내 여야 의원들은 고성과 욕설을 주고받았다. 김 부총리가 인쇄물을 보이며 시스템 접속 단계를 설명하자 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기밀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한국당 의원들은 김 부총리가 답변할 때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반면 심 의원이 발언할 때는 더불어민주당 의석에서 “불법 자료를 반납하라”는 고성이 나왔다. 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심 의원은) 남의 집에 왜 들락날락하세요!”라며 거들었다. 심 의원이 을지훈련 기간 청와대가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내역을 공개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쪼잔하다” “헛다리 그만 짚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주영 국회부의장이 “조용히 경청해 달라”고 해도 계속 고성이 오가자 일반인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방청객이 “조용히 좀 하라. (질의 내용이) 하나도 안 들린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질의시간이 끝난 뒤에도 신경전은 이어졌다. 심 의원이 재차 “하실 말씀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김 부총리는 “아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시간만 있으면 다 하고 싶다”고 맞받아쳤다. 대정부질문이 끝난 뒤 민주당 의원들은 “잘했다”며 김 부총리를 격려했고 한국당 의원들은 통로에서 심 의원을 격려했다. 충돌은 오후에도 이어졌다. 정회 후 심 의원 다음으로 연단에 오른 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뻔뻔하게 시연한 행태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국당 유재중 의원은 “청와대는 지난해 이전 청와대의 캐비닛 문건을 공개하면서 비밀 표기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한심스러운 일”이라고 공격했다.홍정수 hong@donga.com ·장원재 기자}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자신이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표들을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2일 밝혔다. 한국당은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이해진 네이버 전 이사회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을 과방위 국감 증인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당은 이를 거부하면서 드루킹 특검을 도입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했던 김 원내대표를 증인으로 부르겠다는 자세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까지 ‘막가파식’ 국정 운영이라며 반발했지만 이날 증인 요청을 받아들이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위해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증인으로 채택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네이버의 실질적인 오너 이해진 전 의장”이라며 “민주당은 이를 비호하고 적극 반대하고 있다. 제1야당 원내대표로서 과방위에 증인으로 채택되는 일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공세에 맞서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 기록 등을 무단 유출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한국당 심재철 의원과 보좌진을 증인으로 신청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국감 증인에게는 국감 출석 일주일 전까지 통보가 이뤄져야 한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