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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잠시 누그러들던 6월.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코로나 낙인’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무턱대고 전화를 돌렸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완치한 사람을 찾을 단서는 공교롭게도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한 상호명, 기사, 댓글, 지역 맘카페 게시글 같은 또 다른 낙인의 잔해였다. 우여곡절 끝에 연결이 된 이들은 “직장 동료들이 제 부서를 옮겨 달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누구도 말을 안 걸더라”며 몇 달간 겪은 마음의 상처를 쏟아냈다. 하지만 인터뷰 요청에는 “또 직장에 민폐가 될 것 같다” “몸은 돌아왔어도 마음은 아니다”며 번번이 거절했다. 다시 자신에게 향할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을 게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지역사회에서 ‘코로나 민폐남’으로 ‘찍힌’ 전북 전주시 ‘죽도민물매운탕’ 사장 김호섭 씨(67)에게 전화했다. 마찬가지로 난색을 표하던 김 씨는 한참 침묵하다 “일단 한번 내려와 보라”고 했다. 식당에 도착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허락한 건 ‘전북 10번, 전주 3번’이라는 낙인 탓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그야말로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여서였다. 완치 판정을 받고 식당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유서 깊은 지역 맛집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따금 가게 전화벨이 울리자 김 씨의 심장은 또 쿵쾅댔다. 당장 “당신이 동네를 더럽혔다” “그냥 죽어버려”라는 저주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들릴지 몰랐다. 낙인의 굴레는 김 사장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도 끈질기게 괴롭혔다. 남편 대신 종종 가게 전화를 받던 부인 조미정 씨(64)는 “욕설 가득한 전화를 받을 때면 왜인지 모르게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고 털어놨다. 무시무시한 말을 받아내던 순간을 떠올리는 조 씨의 입술은 마스크 뒤에서 파르르 떨렸다. 그나마 지난달 29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김 씨의 사연을 접한 독자들 덕에 조금은 변화가 생겼다. 3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덕분인지 기사가 나온 날 오전부터 김 씨는 전국에서 위로의 전화를 받았다. 특히 대구에서도 “저희 때문에 괜히 힘드셨겠다. 힘내시라”는 응원 전화가 잇따랐다. 몇몇 ‘맛집 블로거’는 ‘코로나 맛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방문 후기를 올렸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끼리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저희도 기사 보고 왔다”며 인사를 나누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김 씨에 대한 역학조사를 담당했던 강영석 전북도 보건의료과장의 페이스북에는 올 2월부터 이런 게시글이 올라있다. “사랑하는 도민 여러분, 마녀사냥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힘들어도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렵니다. 동선 공개로 아파하실 분들에 대한 따사로운 살핌을 바랍니다.” 8월 31일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만 명에 이른다. 그들에게 낙인을 찍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김기윤 문화부 기자 pep@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순간, ‘코로나 낙인’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늘어난다. 코로나19에 걸리는 것 자체보다 다른 이들의 손가락질이나 동선 공개가 더 두렵다는 이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의심 증상이 있어도 검사를 피하는 일마저 생긴다. 감염병 환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은 방역 측면에서 개인에게도, 공동체에도 독이 된다. 동아일보는 코로나19가 대유행했던 3월 감염됐다가 반년이 지나도록 근거 없는 비난과 오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누구나 ‘확진’이라는 재난과 사고를 당할 수 있다. 확진자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며, 단지 일찍 감염된 사람일 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할 시점이다.※ 동아닷컴 이용자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디지털스토리텔링을 보실 수 있습니다.네이버·다음 이용자들은 URL을 복사하여 검색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네이버 채널의 경우 기자 이름과 이메일 아래에 있는 ▶ 코로나는 이겼지만 주홍글씨에 울다 아웃링크 배너를 클릭하시면 됩니다.김기윤 pep@donga.com·사지원 기자}
《감염병의 그림자는 바이러스보다 크고 어둡다. 바이러스가 떠난 자리에도 질기게 남아 혐오와 차별을 키운다. 단지 감염병에 걸렸었다는 사실만으로 ‘상종 못할 사람’이 되고, 확진자가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 ‘얼씬도 하면 안 되는 곳’이 되어버린다.코로나19 확진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도 낙인이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발표한 ‘코로나19 인식 조사’에 따르면 확진자들의 ‘공포 심리’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과 피해가 두렵다’(3.87점·5점 척도)는 것. ‘다시 감염될 수 있다’(3.46점), ‘완치되지 못할 수 있다’(2.75점)는 점보다 낙인이 더 두렵다는 이야기다. 유 교수는 “감염 책임을 특정인, 집단에 돌리면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의 낙인이 생긴다”며 “위기 극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최근 코로나19는 넓고, 빠르고, 강력하게 번지고 있다. 방역당국이 “이젠 언제 어디서 누가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라고 말할 정도다. 누군가에게 쏜 비난의 화살이 언제라도 나에게 돌아와 꽂힐 수 있다.》 신문을 끊지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 신문이 배달되지 않았다. 치킨을 주문하고 주소를 불러주니 갑자기 “닭이 떨어졌다”며 전화가 뚝 끊겼다. 바스락 인기척에도 창밖을 살피게 된다. 가게 앞으로 차 한 대만 지나가도 손끝, 발끝이 얼어붙는다. 누가 갑자기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건 모두 그날 이후 생긴 증상이다. 꽃샘추위 탓인지 왠지 으슬으슬하던 그날.○ 그날 이후 3월 18일 김호섭 씨(67)는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X선 검사에서 검게 나와야 할 폐의 3분의 2가 하얗게 흐려져 있었다. ‘5년 전 앓았던 폐렴이 다시 생겼나….’ 조금 심란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전북대병원 음압병상으로 가셔야 합니다.” 의사의 말에 김 씨의 가슴은 쿵 내려앉았다. 한순간에 ‘전북 10번, 전주 3번’이 됐다. 김 씨가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보도가 쏟아졌다. ‘하필 음식점에서’라는 제목과 함께 온라인에 가게 이름과 위치, 김 씨의 신상이 노출됐다. “죽어도 싸다” “사형시켜라” 같은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전북 진안에서 17년, 전주시 우아동에서 20년. 매운탕에 인생을 걸고 열심히 살았다. 60대 후반의 김 씨 부부가 젊은 날을 쏟아부은 ‘죽도민물매운탕’.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이 이름이 졸지에 ‘코로나 식당’이 되고 말았다. 식당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 집이 코로나래”라며 손가락질을 하고는 사라졌다. 포털사이트들은 죽도민물매운탕의 연관 검색어로 ‘코로나 식당’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보건당국은 3월 5∼18일 김 씨의 동선을 공개했다. 꾸준히 다니던 헬스장, 생필품을 사러 갔던 슈퍼마켓, 감기 기운 등으로 찾았던 병원들이 모두 공개됐다. 부인과 아들, 처제, 손자, 헬스장 직원 등 김 씨와 접촉한 16명은 자가 격리됐다. ‘코로나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매일 다니던 곳, 늘 만나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폐를 끼치다니….’ 김 씨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그래도 몸이 회복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줄 알았다. ○ 섬이 된 ‘죽도’ 김 씨는 입원 23일 만인 4월 9일 퇴원했다. 접촉자 중 추가 감염자는 없었다.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 김 씨는 신천지 신도도 아니었고, 대구 방문 기록도 없었다. 전주 시내 이동 중에도 도보나 개인 차량만 이용했다. 그러나 김 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사우나에 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난 수위는 더 높아졌다. 김 씨가 코로나에 걸린 줄 알면서 일부러 사우나에 갔다거나, 역학조사에서 동선을 숨겼다는 비난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그러나 김 씨의 동선을 직접 조사한 문대봉 전주 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초기에 (김 씨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통화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보니 늦게 파악된 것뿐”이라며 “일부러 진술을 하지 않거나 고의로 숨긴 게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도민물매운탕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가게에 하루에 100통 넘게 전화가 왔다. “빨리 뒤져라” “망해버려라” “당장 전주에서 떠나라”…. 욕설과 막말이 쏟아졌다. 의심과 비난은 밑도 끝도 없었다. 김 씨 부인은 “너희 남편이 신천지 여자랑 어디서 널브러졌다 온 것 아니냐”는 막말도 받아내야 했다. 부부는 지쳐갔다. 밀려드는 전화를 더 이상 받을 힘이 없을 무렵, 전화가 서서히 줄었다. ‘전주시 추천 맛집’ 간판을 달고 20년 영업한 전통도 전화와 함께 사라졌다. 식사 때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식당에 누구도 찾지 않았다. 전주의 한 택시기사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알 만큼 유명했던 집”이라며 “주인이 감염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근처에 가자는 손님도 없어졌다”고 했다. 손님만 떠난 게 아니었다. 신문 배달원도 감염이 두려워서인지 신문을 넣지 않았다. 다른 식당 음식을 시켜 먹으려 해도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몸이 불편할 때마다 방문했던 병원은 “굳이 올 필요 없다. 증세를 알려주면 처방전을 약국에 보내놓겠다”고 했다. 코로나 낙인이 찍혀버린 ‘죽도’민물매운탕은 섬이 돼버렸다.○ 낫지 않는 병 코로나19는 나았지만 새로운 병이 생겼다. 결벽증, 수면장애, 공황장애, 우울증까지…. 김 씨 부부는 바이러스를 없애야 한다는 강박에 일주일에 한 통씩 소독제를 써댄다. 손이 하얗게 벗겨질 정도로 소독제를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심장이 쿵쿵댄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한숨을 쉬는 버릇도 생겼다. 하루 종일 방 안을 빙빙 돌기만 한 적도 있다. 사회적 낙인은 밝고 활기차던 부부에게 우울감과 공황장애를 안겼다. 코로나19에서 회복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는 김 씨 부부의 바람은 헛된 희망이었다. 제자리로 돌아온 건 몸뚱이뿐. 모든 게 나빠졌다. 죽도민물매운탕은 김 씨가 코로나19에 걸리기 이전과 이후, 완전히 다른 공간이다. 이전엔 40명 규모의 큰방, 10명씩 앉을 수 있는 작은 방 5개, 홀에 있는 16개의 테이블은 오전 11시 무렵부터 손님들이 들어찼다. 월 매출은 2000만 원을 거뜬히 넘겼다. 확진 이후 6월까지 한 달 매출은 200만 원이 되지 않는다. 가족 3명이 매달린 일터에서 근로자 1명의 최저임금(올해 월 179만5310원)이 안 나온다. 손님 없는 식당이란 괴괴하다. 김 씨는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맞이하려 가게 문 앞을 서성인다. 신을 이 없는 실내화를 이리 놓았다 저리 놓았다 줄을 맞춘다. 두를 이 없는 앞치마를 의자에 놓았다 옷걸이에 걸었다 손길을 놀린다. 며칠째 손님이 한 번도 앉지 않은 테이블을 괜스레 한 번 더 닦아본다. 아주 가끔 정적을 깨며 전화벨이 울렸다. 더는 욕설을 퍼붓는 전화는 아니다. 예약을 하려는 ‘귀한 손님’들의 전화다. 그런데도 부부 얼굴의 그늘은 가시지 않았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절박함과 불안감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혹시라도 식당이 한 번 더 코로나19에 얽히면 어떡해요. 한 번은 어떻게 겨우겨우 지나갔더라도 두 번은… 두 번은 정말 끝이에요, 끝.”※ 동아닷컴 이용자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디지털스토리텔링을 보실 수 있습니다.네이버·다음 이용자들은 URL을 복사하여 검색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네이버 채널의 경우 기자 이름과 이메일 아래에 있는 ▶ 코로나는 이겼지만 주홍글씨에 울다 아웃링크 배너를 클릭하시면 됩니다.전주=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배우라는 한 단어로 황은후(37)를 설명하기엔 뭔가 아쉽다. 탁월한 연기로 무대에서 잘 노는 건 기본, 여배우로서 경험한 일들을 주제로 학술 논문도 썼다. 이 논문은 그의 손에서 다시 극으로 탄생해 직접 연출도 맡았다. 때론 작품에 쓰일 텍스트도 뚝딱뚝딱 써낸다. 재능을 총동원해 늘 무언가 만들고 고민하는 그는 ‘창작자’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배우다. 그는 지난해 제56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수상작인 ‘와이프’에서 데이지, 클레어 역을 맡아 사랑스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연기로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변화하는 젠더 지형 안에서 성(性) 소수자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표현했다.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황은후는 “영국 초연 몇 달 만에 ‘와이프’ 대본을 넘겨받아 제작진과 번역 작업을 함께 했을 정도로 따끈따끈한 작품이었다”며 “작품을 통해 받은 동아연극상은 갑자기 떨어진 선물이었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 탓에 “누군가의 강한 에너지를 늘 부러워했다”는 그는 학창시절 우연히 본 연극에서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와 생동감을 느꼈다. 심지어 “현실보다 무대 위 가상세계가 제가 살고픈 진짜 삶 같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연극반에 이어 대학에서도 ‘서강연극회’ 활동을 했고 꾸준히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최근 몇 년간 그의 관심 주제는 몸과 여자다. ‘성별화된 몸이 여자 배우의 연기를 위한 창조적 준비상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자신의 논문을 토대로 만든 ‘좁은 몸’을 비롯해 ‘와이프’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 ‘마른 대지’ 등의 작품에 그의 고민이 녹아 있다. 배우 김정과 함께 만든 창작집단 ‘사막별의 오로라’에서도 젠더 이슈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페미니즘 얘기를 하려고 굳이 마음먹지 않아도 우리들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여성과 몸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면서 “막상 연기인생을 돌아보니 사연 있고 슬픈 여자 역할만 많이 맡은 것 같다”고 아쉬움도 표했다. 그는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의 딸이다. “아버지 전공인 불문학은 대학 학과 선택에서 가장 먼저 배제했다”고는 하지만 예술비평을 하는 아버지에게서 응원을 받으며 연극을 했다. 딸의 작품을 자주 본 아버지에게서 나름의 비평도 들어야 했다. 그는 “예술인에게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아시면서도 예술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신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시인은 30만 원으로도 당당히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글을 좋아해요. 앞으로도 당당히 제 이야기를 펼치는 배우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생각입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분명히 무용인데 무용이 아닌 것 같다. 객석에서는 ‘피식’ 웃음이 터지지만 무용수의 표정과 몸짓은 엄숙하기만 하다. 현대무용과 인간의 몸짓 사이, 애매한 경계 어딘가에 놓인 춤. 그 애매함이 앰비규어스(ambiguous·애매한) 댄스컴퍼니의 정체성이다. 2011년 이 무용단을 창단해 가장 대중적이고 ‘핫한’ 무용단으로 일궈낸 김보람 예술감독(37)은 14일 개막한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에서 대표 레퍼토리 ‘바디콘서트(Remix)’를 23일 선보인다. 12일 서울 서초구 연습실에서 만난 김 감독은 “2010년 ‘바디콘서트’가 탄생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다시 관객과 만나게 돼 고향을 찾은 기분”이라며 기뻐했다. 두어 달 전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든 워크숍과 공연을 취소하느라 목소리가 가라앉았던 그는 “공연 취소만큼 슬픈 게 없더라. 앞으로 웬만하면 제안받는 춤은 뭐든 다 할 생각”이라며 웃었다. 바디콘서트는 ‘관객의 현대무용 입문작’으로 불릴 정도로 직관적이다. 몸이 악기로 변신해 음악에 따라 격렬하게 몸짓하는 콘서트다. 무용의 본질인 움직임과 춤의 한계에 도전하는 작업이라 신입 무용수는 엄청난 연습량을 요한다. 무용수들 사이에서 “× 쌀 뻔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올해는 작품명에 Remix(리믹스)를 더했다. “원작에 무용수 3명을 더해 모두 10명이 나온다. 힘든 장면들만 모아 놨다.” 이 무용단의 트레이드마크는 선글라스다. 바디콘서트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춤춘다. 어두워서 중심 잡기도 힘든 무대에서 선글라스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눈을 가리면 실수하는 티가 덜 나요. 눈에 감정이 다 드러나는데 처음 안무를 짤 때 선글라스를 꼈더니 불안한 ‘동공 지진’을 가릴 수 있었죠. 다만 지금은 눈과 얼굴에서 드러나는 메시지를 완벽히 차단하고 관객이 몸의 언어에만 집중하길 바랍니다.” 선글라스에서 시작한 파격은 모자, 헬멧, 펜싱 마스크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괴상한 마스크 위에 검은 비닐봉지까지 뒤집어쓰고 춤을 췄다. “숨쉬기도 힘들어 죽을 것 같지만 숨은 의미를 알아챈 관객이 있을 때 짜릿하다”고 했다. 최근 한 관객이 “108배(拜)를 보는 것 같은 춤”이라는 후기를 남겼는데 메시지를 정확히 알아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단다. 공연 장소도 파격적이다. 논밭, 지하철역, 공원, 길거리, 잔디밭 등 어디든 무대다.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지론이라 무대가 엄숙하고 조용한 공연장이어야만 할 이유가 없다. 춤춰 보라 하면 울어버릴 만큼 내성적인 아이였던 그는 2000년부터 엄정화 윤종신 등 가수의 백업댄서로 활동하며 사람들 앞에 섰다. 서울예대에서 현대무용을 배웠지만 장르에 얽매이긴 싫었다. 재미있는 표현법으로 관객 앞에서 춤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현대무용의 경계에 걸쳐 있다’는 애매함 때문에 무용계의 비판도 받았다. 그래도 ‘나는 왜 춤을 추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때까지 그는 계속 춤출 것이다. “쉬운 길이 제일 잘못된 길인 건 확실하니까요.” 23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4만, 5만 원. 8세 관람가. 모다페의 모든 공연은 좌석 거리 두기를 통해 공연장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네이버TV와 V LIVE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국내 최대 현대무용 축제인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는 올해만큼은 ‘국제’라는 말이 어색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 아티스트들은 참가할 수 없다. 그 대신 그동안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었던 국내 현대무용 스타들이 총출동해 축제를 빛낸다. 이들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안무가로서 현대무용계를 굳건히 지켜온 안애순(60)이 있다. 안애순 안무가는 이번 모다페에 ‘Times Square(타임스 스퀘어)’를 내놓는다. 20여 년간의 안무 작업을 조합한 아카이빙 작품으로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생각을 표현했다.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근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제 인생에서 더 이상 새로운 건 없지만 안무 작업을 할 때만큼은 매번 새로운 생각, 발상과 만난다. 현실과 완전히 다른 춤의 무대를 내놓는 일은 늘 짜릿하다”고 했다. 안 안무가에게는 이번 작품 연습 과정에서 난생처음 겪은 일이 있었다. 코로나19 탓에 무용수들이 연습실에 모이는 대신 원격으로 연습을 해야 했다. 한국 현대무용계의 대표 주자인 한상률 김보라 김호연 지경민을 비롯해 작품에 출연하는 댄서 16명이 그에게 각자 자신의 춤동작 영상을 보내 점검을 받았다. “어떤 장면을 표현할지 논의한 뒤에 각자 영상에 느낌과 테크닉을 담아 제게 전송해요. 무엇이 좀 부족했는지, 어떤 것은 잘 소화했는지 피드백을 주면 처음엔 낯설어하다가 프로답게 금방 결과물을 내놓더라고요.” 그는 최근 작품들에서 줄곧 시간성을 천착했다. ‘Here There’ ‘이미 아직’ ‘평행교차’ ‘공일차원’ 등 모두 시간이 작품의 중요 키워드이자 매개가 된다. 왜 시간일까. “몸으로 모든 걸 말하는 무용수에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몸의 변화는 아주 예민한 주제죠. 평생 절대적 시간에 갇히지 않고 주관적 시간성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코로나19로 몸이 갇히는 경험을 하면서 앞으로 닥칠 미래를 어떻게 작품에 녹일지도 고민했어요.” 안 안무가는 1985년 안애순무용단을 창단해 세련된 리듬감과 한국적 정서를 살린 안무로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는 그를 소개할 때마다 ‘옥스퍼드무용사전에 등록된 최초의 한국 현대무용가’ ‘세계현대춤사전 속 한국 대표 무용가’라는 표현을 인용한다. 한국공연예술센터와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낸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해외 평론가들이 공연 책자를 보고 소개해 (사전에) 등록된 것 같다. 이젠 저도 좀 다른 수식어가 필요한 때”라며 웃었다. 그는 무용가나 안무가 대신 작가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작가는 할 말이 다 떨어진 순간 끝났다고 봐요. 무용을 창작하고 춤으로 이야기하는 작가로서 아직 해야 할, 하고픈 말이 더 많습니다.” 14일 개막하는 모다페에서는 모든 공연을 네이버TV 및 V LIVE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15, 1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4만, 5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관객 안전을 위한 내한공연 취소, 연기 결정에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국 국립극장,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RSC), 아크람 칸, 매슈 본, 크리스털 파이트, 밀로 라우, 쥘리앵 고슬랭…. 해외 유명 프로덕션과 거장의 라인업이 유독 화려했던 올해. ‘귀한 손님’의 공연을 눈앞에 두고 취소해야 했던 담당 프로듀서들은 허탈하다 못해 속이 쓰리다. 배우, 제작진보다 먼저 바다를 건너온 공연세트, 소품들을 부산항에서 눈물을 머금고 돌려보냈다. 막도 올리지 못하고 극장 문을 닫아야 했던, 그 치열하고 안타까운 막전막후를 들여다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에서 심해지고 올 2월 한국에서도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해외 프로덕션 측은 “공연이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LG아트센터의 이현정 기획팀장은 “어떻게든 공연을 올리려는 마음뿐이었다. 어렵게 섭외한 작품들이라 더 간절했다”고 말했다. 몇 년에 걸친 사전작업과 해외 제작진의 국내 공연장 답사까지 끝낸 경우도 많았다. 장르와 작품별로 다르지만 유럽, 미국에서 보내는 무대 세트와 소품은 보통 20피트 또는 40피트 컨테이너 두세 대에 실려 온다. 배로 두 달, 길게는 석 달 걸린다. “공연일이 한참 남았는데 왜 벌써 취소하느냐”는 물음도 있지만 통상 현지에서 화물을 선적하기 전 취소 결정을 해야 한다. 40피트 컨테이너 1대 기준 왕복 선적비용(약 1400만 원)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 단독 초청 공연이 아니라 해외투어인 경우 셈법은 더 복잡하다. 여러 국가의 선적기간, 비용, 공연장 일정이 묶여 있어 한 나라라도 ‘공연 불가’ 입장을 밝히면 이것들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6월 국립극단 초청작인 RSC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영국 공연 후 미국 한국 일본 투어가, 국립극장 초청 쥘리앵 고슬랭의 작품은 프랑스 대만 한국 투어가 예정된 상황이었다. 정채영 국립극단 PD는 “매일 뉴스를 보며 한 달 넘게 해외 담당자와 상황을 주고받느라 ‘전우애’까지 생겼다”고 했다. 공연 시점을 한 달 반 정도 남기고 취소 결정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날이 임박했다. 국내외에서 화상통화나 e메일로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동안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했다. 국공립 예술기관의 재개관도 논의되며 ‘6, 7월이면 공연을 올려도 되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외가 문제였다. 공연을 강행하더라도 해외 제작진이 도착하면 2주간 의무 격리해야 한다. 확진자라도 나오면 대체인력이 필요하다. 국내 공연을 하려면 받아야 하는 단기취업비자 발급 요건도 강화돼 취득이 쉽지 않았다. 항공편도 하나둘씩 막혔다.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이 매일 수천만 원씩 불어났다. 결국 계약의 ‘불가항력’ 조항에 따라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조화연 국립극장 PD는 “2020년 현재,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시의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지 못해 안타깝지만 출연진과 제작진, 그리고 관객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에서 다음 달 25일로 예정됐다가 취소된 무용 ‘제노스’는 “꼭 한국 팬을 만나고 싶다”는 창작자 아크람 칸의 바람에 따라 공연세트를 국내에 보관 중이다. 사태가 진정되면 언제라도 공연을 올리겠다는 것. 국내 공연업계 측은 “향후 모든 해외 작품 초청이 막히진 않을지 걱정된다”며 “공연 섭외와 성사 못지않게 계약을 맺을 때 ‘일신상의 이유’나 ‘불가항력’ 정도로 논의하던 취소 사유 등을 더 세밀하게 구체화하고 팬데믹 시대에 맞는 매뉴얼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대학로 좀 다닌다는 이들은 그의 이름 석 자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인다. “어우, 그분 연기가…” “그 배우 참 잘하죠” 하는 호평이 끊이질 않는다. 올 상반기 뮤지컬 ‘마리 퀴리’ ‘데미안’에 이어 현재 연극 ‘언체인’에 출연 중인 배우 정인지(36) 얘기다. 정인지는 장르를 넘나들며 대학로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음 달 말부터는 지난해 뮤지컬 출연작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연습, 공연, 연습, 공연의 쉴 틈 없는 4연작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정인지는 “아무리 예술을 한다 해도 극장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면 공연장도 전부 멈췄을 것이다. 성숙한 관람 문화를 보여준 팬과 행운이 있었기에 계속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공연이 취소돼 생계가 끊긴 동료들에게 함부로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러워요. 공연장이 정상화되기까지 바통을 넘겨받아 이어 달리는 마음으로 무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죠.”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찾는다는 건 배우로서 축복임에 틀림없다. “타고난 재질이 다를 뿐 제가 특출한 건 없다”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여러 배역에 덤벼드는 건 장점”이라고 했다. 최근 행보가 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리 퀴리에서는 공연마다 오열하느라 ‘콧물 장인’으로 등극했고, 2인극인 데미안과 언체인에서는 성별을 넘나들며 철학적 고뇌까지 능숙하게 소화했다. 특히 데미안에서는 손과 팔 동작을 곁들인 신체 연기에 도전해 “대사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말을 건네고 싶다”는 지향성을 확고히 했다. 일정상 공연과 연습이 숱하게 겹쳐 시간이 빠듯하다. 정인지는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외우느냐고 걱정하는 분도 많은데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캐릭터를 외우면 된다. 진짜 문제는 체력”이라고 했다. 올 3월엔 어두워진 무대에서 서둘러 퇴장하다 소품 모서리에 무릎을 부닥쳐 크게 다쳤다. 그는 “세 작품의 연습과 공연을 병행할 때였는데 일주일을 누워 있느라 진짜 미쳐 버릴 것 같았다”며 웃었다. 공연할 때 “나는 멈춰 있고 싶다”거나 “선례도 기준도 없다.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대사에 마음을 투영시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1998년 14세 때 성악을 배우다 “표현력을 길러야겠다”는 마음에 청소년 드라마에 뛰어든 것이 연기의 첫발이었다. 연기라면 뭐든 좋아서 집이 있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방송, 영화에 출연했다. 2007년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로 무대에 올랐다. 그가 지금껏 대학로를 지키는 이유는 하나다. “무대는 섣불리 올라선 안 되는 위험한 곳이지만 그만큼 힘과 매력이 넘치는 곳이거든요.”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다.” 경제학의 기초를 마련한 애덤 스미스의 대전제는 수 세기 동안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거센 비판에 직면해 거듭 수정을 하더라도 근간에 깔려 있는 이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에도 이 믿음은 유효할까. 확실한 건 기존의 경제 논리가 세계적 불평등과 부의 쏠림을 해결할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두 책은 숫자와 논리를 앞세운 주류 경제학의 통념에 도전한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부부가 썼다. 이들은 ‘국제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실험적인 접근법’을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사제지간으로 만나 사랑을 키웠다. 2011년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 이은 두 번째 공동 저작이다. 이들은 ‘좋은 경제학’이란 늘 사회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하는 새로운 이론, 접근방식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돈보다 인간 존엄’을 우선하는 과감함도 필요하다. 반대로 ‘나쁜 경제학’은 실증 근거가 없다. 미국 트럼프 정부와 일부 경제학자가 내놓은 반(反)이민정책이 대표 사례다. 이민이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사람들은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이민자 숫자는 정책 입안자의 입맛에 맞게 실제보다 부풀려진다. 책은 아울러 무역 분쟁, 복지, 조세 이슈 등을 통해 새롭게 검증해야 할 경제정책을 짚는다. 그중 저자는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는 ‘ATD 제4세계’라는 프랑스 시민단체에서 조심스레 대안을 드러내 보인다. ‘빈곤 극복을 위해, 함께 존엄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단체는 “빈곤은 열등함이나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체계적인 배제의 결과”라고 믿었다. 지역사회의 실업자, 빈곤층을 구제한 이 단체의 경제적 성과를 목도하며 저자는 다시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떠올린다. ‘경제학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경제학은 어떻게…’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을 하나하나 격파하는 ‘거꾸로 읽는’ 경제학 교과서다. 원제 ‘악함의 합리화: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망쳤는가(Licence to be Bad: How Economics Corrupted Us)’처럼 거침이 없다. 게임이론부터 행동주의 심리학같이 정설로 여겨진 경제이론들의 모순을 파헤친다. 경제학에서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규정하는 것부터 문제라고 시작한다. 현실에서 인간은 수많은 감정에 휘둘리고 때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도 많다. 그런데 인간은 합리적이라 가정함으로써 과학적 허울을 씌운다는 것. 이 때문에 나쁜 행동마저도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각 장에서 경제학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곁들여 흥미롭다. 게임이론을 제시한 폰 노이만이 존 내시의 ‘내시 균형’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시했던 일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모델이었던 토머스 셸링도 등장한다. 감성이 결여된 극단적 추론에 의해 미국이 소련에 수소폭탄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확신했던 폰 노이만의 이야기는 아찔하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의 기본값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극단적 예외를 제외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자유롭게 운용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했다가 뭇매를 맞는다. 그의 극단적 예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기 때문이다. 책은 신자유주의까지 나타난 주류 경제학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김기윤 pep@donga.com·김민 기자}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다.” 경제학의 기초를 마련한 애덤 스미스의 대전제는 수 세기동안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거센 비판에 직면해 거듭 수정을 하더라도 근간에 깔려 있는 이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에도 이 믿음은 유효할까. 확실한 건 기존의 경제 논리가 세계적 불평등과 부의 쏠림을 해결할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두 책은 숫자와 논리를 앞세운 주류경제학의 통념에 도전한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부부가 썼다. 이들은 ‘국제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실험적인 접근법’을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사제지간으로 만나 사랑을 키웠다. 2011년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 이은 두 번째 공동 저작이다. 이들은 ‘좋은 경제학’이란 늘 사회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하는 새로운 이론, 접근방식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돈보다 인간 존엄”을 우선하는 과감함도 필요하다. 반대로 ‘나쁜 경제학’은 실증 근거가 없다. 미국 트럼프 정부와 일부 경제학자가 내놓은 반(反)이민정책이 대표 사례다. 이민이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사람들은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이민자 숫자는 정책 입안자의 입맛에 맞게 실제보다 부풀려진다. 책은 아울러 무역 분쟁, 복지, 조세 이슈 등을 통해 새롭게 검증해야 할 경제정책을 짚는다. 그 중 저자는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는 ‘ATD 제4세계’라는 프랑스 시민단체에서 조심스레 대안을 드러내 보인다. ‘빈곤 극복을 위해, 함께 존엄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단체는 “빈곤은 열등함이나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체계적인 배제의 결과”라고 믿었다. 지역사회의 실업자, 빈곤층을 구제한 이 단체의 경제적 성과를 목도하며 저자는 다시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떠올린다. “경제학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경제학은 어떻게…’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을 하나하나 격파하는 ‘거꾸로 읽는’ 경제학 교과서다. 원제 ‘악함의 합리화: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망쳤는가’(Licence to be Bad: How Enocomics Corrupted Us)처럼 거침이 없다. 게임이론부터 행동주의 심리학 같이 정설로 여겨진 경제이론들의 모순을 파헤친다. 경제학에서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규정하는 것부터 문제라고 시작한다. 현실에서 인간은 수많은 감정에 휘둘리고 때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도 많다. 그런데 인간은 합리적이라 가정함으로써 과학적 허울을 씌운다는 것. 이 때문에 나쁜 행동마저도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각 장에서 경제학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곁들여 흥미롭다. 게임이론을 제시한 폰 노이만이 존 내시의 ‘내시 균형’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시했던 일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모델이었던 토머스 셸링도 등장한다. 감성이 결여된 극단적 추론에 의해 미국이 소련에 수소폭탄을 떨어드려야 한다고 확신했던 폰 노이만의 이야기는 아찔하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의 기본값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극단적 예외를 제외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자유롭게 운용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했다가 뭇매를 맞는다. 그의 극단적 예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기 때문이다. 책은 신자유주의까지 나타난 주류 경제학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민기자 kimmin@donga.com}
학교 폭력 논란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김유진 프리랜서 PD(29·사진)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법적 대응을 예고해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김 PD는 일반병실로 옮겨져 회복 중이다. 이원일 셰프의 예비 신부인 김 PD는 과거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 PD의 언니는 4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동생을 향한 무분별한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행위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김유진 PD를 보호하기 위해 법적 대응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김 PD는 자신의 비공개 SNS 계정에 심경을 담은 글을 올린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PD는 “억울함을 풀어 이원일 셰프,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가족들에게 더 이상의 피해가 가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다.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고 밝혔다. 김 PD는 이 셰프와 결혼을 앞두고 MBC ‘부러우면 지는 거다’에 함께 출연했다. 방송 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김 PD가 과거 학교 집단 폭력 가해를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후 두 사람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폭행 의혹을 제기한 누리꾼은 “‘사실 여부를 떠나’ 사과한다는 말로 2차 가해를 하고 (저를) 3차 가해하는 댓글까지 달리고 있다”고 밝혀 폭행을 둘러싼 진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동아방송 PD를 지낸 안평선 한국방송인회 명예회장(84)의 구술채록집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298 안평선’(사진)이 최근 출간됐다. 중앙고,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동아방송 개국 멤버로 입사해 간판 라디오드라마인 ‘정계야화’ ‘창밖의 여자’ ‘아빠 안녕’을 연출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가 출간한 이 책에는 동아방송 PD 시절, 언론 통폐합 이후 방송 활동과 ‘제작극회’를 이끌어온 연극인 안평선의 모습이 폭넓게 담겼다. 특히 라디오드라마 전성기였던 1960년대에 대해 채록이 집중됐다. 그는 “당시 TV는 촬영기술 때문에 제약이 많았지만 라디오는 음악, 드라마를 원하는 대로 입혀 제작에 한계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문예위는 문화계에서 업적을 남긴 이들의 회고를 기록해 근현대예술사 연구를 위한 구술채록집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사람 목구멍 소리만 한 게 없거든요.” 소리, 소리, 소리….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60)이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소리’다. 깊고 맛있는 소리에 대한 갈증이 밖으로 배어나온 탓일까. 연습실에선 매일같이 단원들에게 “탁탁, 소리 끊는 맛이 없다”며 지적하고, 연출가와 음악감독에게는 “소리의 맛을 절대 잃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창극에서 극(劇)보다 창(唱)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 그런 그가 예술감독 부임 약 1년 만에 신작 ‘춘향’으로 ‘귀 명창’ 관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직접 작창을 맡아 섬세한 소리를 엮어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유 감독은 “아무리 좋은 악기 소리나 연주라도 사람의 목구멍 악기에서 나오는 감흥을 따라갈 수가 없다. 창극의 연극·음악적 요소를 잠시 뒤로 놓고, 소리를 좀 더 보여 드릴 것”이라고 했다. 33년간 국립창극단원으로 숱하게 무대에 오르면서도 소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전임 김성녀 예술감독이 창극의 외연을 넓혔다면 그는 “소리꾼의 숨소리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작품”을 원했다. 그런 그의 눈에 판소리 다섯 바탕의 꽃인 ‘춘향가’가 들어왔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로 다채로운 변용이 가능한 데다 수준 높은 소리를 선보일 수 있기 때문. “왁자지껄하고 경쾌한 서곡으로 시작하는 이전의 ‘춘향’과 달리 이번에는 방에서 춘향이가 단장하는 정적인 장면으로 시작해요. 김명곤 연출가와 협업해 고전에 기초하되 극, 캐릭터, 음악을 변주했어요. 오늘날 젊은이들의 밝고 건강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 드릴 겁니다.” 그가 짠 소리는 기교가 다양한 만정제 ‘춘향가’를 중심으로 했다. 동초제·보성소리에서 장면에 어울리는 선율을 가져왔으며 원작에 없는 장면은 김성국 음악감독이 작곡했다. 만남 사랑 이별 고난 희망으로 구성된 다섯 부분 중 이별에서부터 본격적인 소리의 맛을 살렸다. 당초 스승 안숙선 명창에게 작창을 의뢰했으나 “나한테만 의지하지 말고, 알아서 잘 짜서 해보라”는 조언에 얼떨결에 직접 맡았다. 그는 “작창을 해보니 제가 단원 시절 선생님들이 답답해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며 웃었다. 춘향과 개인적 인연도 깊다. 유 감독은 만정 김소희 명창의 대표 제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다. ‘춘향’으로 당대 최고 여성 소리꾼의 명맥을 이어온 그는 1988년을 잊지 못한다. “당시 신예였던 제가 올림픽 문화예술축전 ‘춘향전’ 무대에 벌벌 떨며 오른 기억이 있어요. 말도 안 되는 파격 캐스팅이었죠. 국립극장 70주년을 맞는 올해도 제가 예술감독으로 춘향과 만난 걸 보면 분명 인연이 있나 봅니다.” 가야금 명인 유대봉 선생의 딸로 자랐지만 “악기는 손도 대지 말라”는 엄포 때문에 국악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래도 피는 속이지 못했다. 영화인 줄 알고 우연히 극장에서 창극 ‘춘향전’을 본 17세 때의 어느 날. 그날 이후로 그는 귓가에 맴돌던 소리를 해야만 했다. 이젠 그를 보고 따르는 단원과 제자가 수두룩하다. 그가 스승들에게 배웠듯 그 역시 “자기가 가진 뿌리가 흔들려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예술감독 이전에 소리꾼인 그가 소리의 뿌리인 완창에 욕심을 내는 건 당연하다. “내년 정도 슬슬 준비해야죠. 제 목이 옛날 같지 않지만 이유 불문하고 ‘무대에 서면 소리 참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14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객석에 들어서자 무대를 가로막은 2m 높이의 검은 막이 보인다. 막에는 프랑스 작가 장 주네의 사진이 줄지어 붙어 있다. 낯선 무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순간 홀연히 나타난 배우들이 “나는 장 주네입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생애를 들려준다. 잠시 암전(暗轉). 불이 켜지면 관객들은 배우가 열어준 좁은 문을 지나 가림막 안으로 향한다. 그 안의 ‘진짜 객석’에 모두 앉으면 배우와 제작진 30여 명이 오직 관객 14명을 위한 극을 펼친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인근에서 만난 ‘작가, 작품이 되다1―장 주네’의 박정희 연출가(62)는 “스마트폰으로 인간적 감각이 둔화된 요즘 연극이 감상에만 그치면 성에 안 찬다”며 관객참여형(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을 통해 관객이 강렬한 예술적 체험을 얻고 삶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연극이란 게 수익을 낼 수 없기에 객석 수는 크게 상관없다”며 웃었다. 1999년부터 극단 ‘풍경’을 이끌며 인간의 본질과 동시대성을 파고든 박 연출가는 이번 공연에서는 ‘버려짐’에 주목했다. 고아, 범죄자, 성소수자로 살다 작품으로 인정받은 장 주네의 삶과 그의 희곡 ‘병풍들(Les paravents)’을 통해 사회에서 버려진 이들을 조명한다. 병풍들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만들어진 영웅’이자 희생자, 소수자였던 한 가족을 다룬다. 박 연출가에게 버려진다는 건 기억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는 지난해 ‘버닝썬’ 사건을 지켜보며 이 주제에 천착했다. “버닝썬은 폭행사건에서 시작해 미성년자 출입과 불법고용 문제가 불거졌다. 그런데 사건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 피해자인 미성년자들은 잊혀졌다. 이처럼 기억 속에서 버려지는 약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는 연극적 약속과 리얼리즘의 경계를 넘나들고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이머시브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극에 변화를 줘야 했다. “본래 별도 공간에 장 주네 관련 소품, 사진 전시를 기획했다. 배우가 전시를 설명하며 대화하다 관객 손을 잡고 무대와 객석으로 이끄는 체험도 구상했다. 밀접 접촉에 제약이 생긴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몸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박 연출가는 몸을 잘 쓰면서 고급 즉흥 연기가 가능한 여배우 5명을 캐스팅했다. 그는 “가까운 곳에서 배우의 몸동작을 유심히 지켜보면 대사에서도 시적 운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은 작가를 키워드로 한 3부작 중 첫 작품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중장기창작지원사업 선정작이다. 내년에는 김우진, 2022년에는 오영진 작가의 삶을 선보인다. “하나의 이미지가 10년 동안 마음에 남아있으면 인생이 바뀐다고 한다. 제 작품의 장면을 오래 기억하는 관객의 인생에 ‘균열’이 났으면 좋겠다.” 1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전석 3만 원. 15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86년 1월 28일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대를 떠난 지 73초 만에 폭발했다. 가스가 새지 않도록 밀봉하는 고무패킹 오링(O-ring)의 탄성을 정밀하게 예측하지 못한 탓이었다. “추운 날씨에 오링이 제구실을 할 수 없어 발사를 연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이를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봤고, 승무원 7명은 목숨을 잃었다. 당시 발사에 참여했던 한 기술자는 “사고 이후 30년 동안 자책했다”고 고백했다. 산업혁명 후 인류의 역사는 정밀성을 정복하는 과정이었다. 숱한 실수와 오류를 반복하면서도 인류는 점점 더 정교한 시공간을 소유했다. 이는 허용오차 0.0001초, 0.0001mm까지 갈망했던 완벽주의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옥스퍼드사전을 편찬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역저 ‘교수와 광인’을 쓴 저자가 현대 과학기술의 정밀한 토대를 만든 이들을 조명했다. 책은 제목을 ‘정밀성의 역사’로 바꿔 달아도 될 만큼 정밀성이 진화해온 여정에 집중한다. 정밀성을 “역사적 필요에 의해 의도적으로 발생된 개념”으로 규정한 저자는 근대 이후에야 복제 가능한 형태로 인류가 정밀성을 구현했다고 본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약 200년간 증기기관, 엔진, 시계부터 오늘날의 반도체, 스마트폰, 우주과학기술을 이끈 공로자들을 발굴해냈다. 발명품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들 이야기는 저자의 꼼꼼한 옛 문헌 취재가 바탕이 됐다. 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는 맨체스터 출신의 조지프 휘트워스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당시 그가 출품한 기계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훗날 ‘표준 정밀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표준화한 나사를 비롯해 ‘완전한 평평함’과 직선을 측량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든 것. 이전까지 임의로 고른 10분의 1인치 너트와 볼트가 완벽하게 맞물릴 확률은 극히 낮았지만 그는 “모든 나사를 표준화하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해냈다. 대다수를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헨리 포드 역시 완벽주의자다. 포드의 초기 자동차 모델은 기술자들이 공장 바닥에 널린 모든 부품을 직접 손질하고 조여서 엉거주춤하게 탄생했다. 하지만 ‘모델T’ 개발 이후 부품을 더 이상 다듬지 않아도 됐다. 정확한 규격의 허용오차에 맞춘 부품들은 더 이상 손질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제작 속도와 작업량은 혁신적으로 치솟았다. 포드의 방식은 모든 공장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줬다. 저자가 정밀성을 절대선(善)으로만 묘사하는 건 아니다. 정확한 작업을 해내는 기계는 숙련공의 자리를 대체해 영국에서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 운동)이 발생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일본을 찾은 저자는 “인류는 매끈하게 마감된 경계선에만 감탄하고 집착하지만 자연의 질서 역시 중시해야 한다”며 “정밀하지 않은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비틀대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배우인가, 연주자인가.’ 지난해 9월 국립극단이 올린 ‘스카팽’ 무대 한구석에 있는 김요찬 음악감독(41)을 본 관객이라면 이런 의문을 가질 법하다. 당시 김 감독은 홀로 악기 14개를 연주했다. 배우의 동작에 따라 같이 몸을 썼고 심벌즈, 드럼을 치며 만화에서처럼 익살스러운 효과음을 냈다. 피아노로 배경음악도 연주했다. 극의 맛을 살린 끼와 재능을 인정받아 그는 제56회 동아연극상에서 무대예술상을 받았다. 같은 해 기술감독을 맡았던 ‘휴먼 푸가’ 역시 호평을 받았다. 2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 감독은 “독일에서 작업하다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사기 치는 줄 알았다. 그만큼 연극에서 상과는 거리가 먼 음악, 음향 분야로 인정받아 정말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음악이 좋았다.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면서 온갖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 어떻든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결심은 변함없었지만 대학 진학 후 생계를 위해 방송국, 영화판 문도 두드렸다. 2006년 월드컵 거리응원 때는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동아일보 전광판에 영상을 송출하는 일도 했다. 그런 그를 연극판으로 이끈 건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연극이었다. 김 감독은 블루오션을 찾은 기분이었다. “후반 작업을 거쳐 예쁘게 꾸며진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연극이 주는 날것의 느낌이 좋았어요. 특히 몸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극단의 작품에 저만의 소리를 입히는 게 신선했죠.” 무대는 그가 생각하는 소리의 매력을 한껏 펼치는 장이 됐다. 2002년 아동극 ‘징검다리’를 시작으로 사다리움직임연구소와 올해로 20년째 함께했다. 소리는 연습실에서부터 만들어진다. 장면에 따라 ‘떠러덩덩떵떵’ ‘촤악’ 같은 소리를 넣어보고 배우들도 “괜찮다”고 하면 세부적 화음이나 여러 악기 소리를 더한다. “자기 음악보다 남의 음악을 더 많이 듣고 해석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론에 따라 그가 맡은 작품에는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다. ‘스카팽’에서도 마이클 잭슨 노래와 오페라, 찬송가가 쓰였다. 그는 “공연 분야에 몸담고 있어도 ‘왜 유명 래퍼인 에미넘 음악이 성공했을까’처럼 스스로에게 늘 음악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아직 오지 않은 한국 연극 전성시대를 꿈꾼다”고 바랐다. 그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전성시대를 열었듯 많은 무대에서 스타 배우, 명연출가, 인기작이 쏟아져 연극이 크게 사랑받을 날을 고대한다”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국립극장이 올해 창설 70주년을 맞았다. 6·25전쟁을 비롯해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겪은 국립극장은 한국 공연예술의 거울 역할을 하며 관객과 울고 웃었다. 지금까지 약 3500편의 공연을 선보이며 공연예술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국립극장은 1950년 4월 29일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 건물)에서 개관했다.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이었다. 신생 정부가 나라의 기틀을 잡기 위해 할 일이 산더미 같던 시기에 국립극장 설립은 기적에 가까웠다. 대한민국 정부가 선 직후부터 극장 창립에 대한 연극예술인들의 갈망은 1949년 1월 대통령령 제47호 ‘국립극장 설치령’으로 이어져 그 1년 뒤 결실을 맺었다. 개관 다음 날인 4월 30일에는 초대 극장장 유치진이 쓰고 허석이 연출한 ‘원술랑’이 무대에 올랐다. 당시 서울 인구 약 160만 명 중 6만여 명이 ‘원술랑’을 관람했을 정도였다. 두 번째 공연 ‘뇌우’ 역시 15일간 7만5000여 명이 볼 정도로 성황이었다. 배우 고 김동원은 “이 연극을 보지 않고는 문화인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할 만큼 지식인층의 호응이 대단했다”고 했다. 개관 58일째인 6월 25일 북한의 남침이 발발하자 국립극장은 대구 문화극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후 4년 만에 다시 서울 명동 시공관 건물에 터를 잡았고 1973년 남산 장충동에서 새 막을 열었다. 국립교향악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에 이어 2010년 국립극단이 독립해 나가면서 현재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등 3개 전속 단체가 남아 있다. 국립극장은 정부 정책에 따라 부침을 많이 겪었다. 무용론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근 작품성 대중성을 고루 갖춘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국내 대표 제작극장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70주년 기념식을 비롯해 대부분 시즌 공연이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다음 달 14일 국립창극단의 ‘춘향’을 시작으로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말에는 해오름극장이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재개관한다. 김철호 국립극장장은 28일 “제작극장으로서 내실을 다지고 국제적인 문화허브 역할을 강화해 다음 30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극장은 이날 창설 70주년을 맞아 개관부터 현 장충동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립극장이 걸어온 역사와 문화예술사적 의의를 엮은 책 ‘국립극장 70년사’를 발간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000년대 초반 국내 공공기관과 공연장을 중심으로 ‘아트 인큐베이팅’이 생겨났다. 신진 예술인층을 두껍게 해 예술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트 인큐베이팅은 업계에 꾸준히 새로운 피를 공급하는 일을 한다. 완성작을 내놓기까지 예술가에게 쇼케이스, 낭독 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경쟁보다는 창작 과정과 잠재력에 무게를 두는 투자의 일종이다. 민간 영역에서는 두산아트센터가 두각을 나타낸다. 이곳을 거친 작품이라면 ‘믿고 본다’는 인식이 공연계에 자리 잡았다. 메세나(기업의 문화 예술 활동 지원) 차원에서 1993년 건립된 연강홀이 2007년 재개관한 두산아트센터는 ‘두산아트랩’ ‘DAC Artist’(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같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과 호흡하고 있다. “예술가들과 끊임없이 좋은 질문을 주고받는 것.” 10년째 두산아트랩을 이끄는 남윤일 PD는 인큐베이팅 철학을 이같이 정의했다. 2010년부터 두산아트랩이 선발한 67개 프로덕션은 작품 72편을 212회 무대에 올렸다. 현재까지 관객 1만7817명이 이들과 만났다. 프로덕션 당 700만 원의 작품개발비를 지원하고 공연장, 부대 장비, 연습실, 홍보마케팅도 제공한다. 남 PD는 “거칠고 실험적이지만 고유한 예술언어를 가진 작품을 소개해 왔다”며 “창작자와 기관이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로에게 동시대적 질문을 던지는 게 인큐베이팅의 성패를 가른다”고 설명했다. 소리꾼 이자람, 연출가 김동연 이경성, 무대디자이너 여신동 등이 두산아트랩을 거쳤다. 올해 6편에 이어 내년 9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DAC Artist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예술가를 지원한다. 두 작품 이상 창작해 본 경험자에게 공연제작비를 1억 원까지 제공한다. 올해부터는 대상자 공모를 거친다. 공연 시점은 2022년으로 여유 있게 잡는다. 두산아트센터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창작자가 실험할 수 있는 토양을 단계별로 구축하는 셈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지원 자격은 만 40세 이하다. 30대가 돼야 자신의 색깔을 갖고 본격적으로 창작물을 내놓는다는 점을 고려했다. 인큐베이팅의 성공 척도는 지원작이 외부에서 정식 레퍼토리 공연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공 말고 보이지 않는 보람도 있다. 남 PD는 “실험하고 실패할 수 있다는 두산아트센터 내부 정서가 창의력을 만든다. 인큐베이팅은 더 큰 실패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박수 치지 마세요.” 14일 팝페라 가수 4명으로 구성된 ‘포르테 디 콰트로’의 ‘Only for You’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곡이 끝나는 순간마다 습관적으로 박수를 치지 말라는 경고가 떨어졌다. 박수 없는 공연이라니. 이곳은 무관중 공연 생중계 현장이기 때문이다. 박수소리 같은 ‘잡음’은 무관중 공연 생중계의 금기 중 하나다. 텅 빈 공연장에는 스태프 30여 명만 조용히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연 중계가 전기를 맞았다. 유튜브, 네이버TV, 카카오TV, 자체 채널을 통해 일부 단체에서만 진행하던 생중계는 안방 관객을 찾아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스크린 너머로 공연장의 울림과 떨림을 전하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무대에 오른 이들이 박수 대신 ‘좋아요’ ‘하트’ 클릭 세례를 받는 건 코로나19가 만든 진풍경이다. 최근 진행 중인 공연 생중계 현장을 돌아봤다. ○ 매끄러운 장면 전환 관건 2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오후 3시 ‘힘내라 콘서트’ 시리즈로 어린이 뮤지컬 ‘허풍선이 과학쇼2’가 생중계됐다. 공연 6시간 전부터 무대 세트, 소품과 카메라 등 촬영 장비가 설치된다. 요즘 공연계에서 가장 바쁘다는 곽기영 한국영상연합 대표가 공연장을 찾았다. 그는 약 15년 동안 600여 편의 공연 중계, 기록영상 촬영을 맡은 베테랑이다. 생중계에서 모든 과정을 총지휘하는 연출가에 가깝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있던 촬영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일 2, 3편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국공립 공연장 산하 촬영팀 외에 국내 공연 촬영업체는 100여 개지만 대·중·소극장과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업체는 손에 꼽는다. 두 시간에 걸쳐 장비 설치가 끝나고 오전 11시부터 리허설을 시작했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 숫자에 따라 카메라 수도 변한다. 이날은 총 8대의 카메라가 무대를 향했다. 곽 대표는 “리허설에서 촬영자들이 공연별 특징, 강조점을 숙지해야 한다”고 했다. 배우와 연출가는 관객 없는 현장이 낯설다. 몇몇 배우는 텅 빈 객석을 향해 연기하다가도 이따금 카메라로 눈을 돌렸다. 이성곤 연출가는 “관객 앞에서 공연할 때와 큰 차이는 없지만 장면 전환 시 포즈(멈춤)가 좀 더 발생한다. 무엇보다 관객의 박수, 함성에 따라 달라지는 애드리브가 싹 사라지니 기존 공연시간보다 20분 정도 짧아졌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관객이 없으니 배우들 간의 호흡에 중점을 두게 된다”고 했다. 생중계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음향, 카메라를 최종 점검한다. 배우들에게 “특정 장면에서는 빨간 불이 들어오는 ○번 카메라를 보라”는 지침도 전달한다. 한 인디밴드는 리허설 중 멘트 없이 노래만 한 적도 있었다. 이럴 땐 “간단한 밴드 소개나 곡 소개도 해 달라”고 당부한다. 어떤 공연인지 잘 모르고 클릭한 관객이 온라인에는 많기 때문이다. 공연 30분 전부터 스폿 영상이나 예고 영상 송출을 시작한다. 먼저 접속한 관객에게 안내 겸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김준원 한국영상연합 기술감독은 “공연 중계의 핵심은 매끄러운 장면 선택과 전환이다. 송출에 기술적 결함이 없는지 계속 확인한다”고 했다. 막이 오르면 가장 바빠지는 이는 곽 대표다. 여러 화면 중 어떤 걸 송출할지 그가 결정한다. 그는 2∼3초마다 “3번 카메라 당겨주세요” “풀샷 띄워주세요” “지미집, 다음은 5번으로 배우 얼굴” 등을 외쳤다. 실제 공연과 송출 화면은 10∼15초의 시차가 발생한다. 일부 공연에서는 스태프가 관객과의 채팅에 참여해 다음 곡을 안내하거나 자막을 띄우기도 한다. 장르별로 중점을 두는 부분도 다르다. 뮤지컬, 연극, 오페라, 창극은 드라마적 표현을 담기 위해 배우의 연기와 조명 변화, 무대 영상에 집중한다. 국악, 클래식은 지휘자나 파트별 연주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무용에서 무용수의 얼굴 클로즈업은 최소화하고 전신이나 군무처럼 몸짓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콘서트의 경우 보컬은 60∼70%, 연주자는 30∼40% 비중으로 촬영한다. 녹화 중계는 공연 순서를 편집하거나 재촬영할 수 있다. 16일 오후 3시에 녹화 중계한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토크콘서트는 14일에 촬영됐다. 마무리 무대 인사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여러 번 촬영했다. 공연이 막을 내려도 채팅창에는 여운이 가득하다. “요즘 같은 때 감사하다” “공연보다 저녁 반찬 다 태웠다”는 글이 줄을 잇는다. ‘좋아요’ 클릭도 초 단위로 늘어난다. 얼마 뒤 공연장에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스태프 간의 인사가 오가면 화면 송출도 끝난다. 온라인 관객들도 발걸음을 돌릴 시간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 국내 공연 중계는 서울 예술의전당이 ‘예술의전당 콘텐츠 영상화사업(SAC on screen)’을 통해 2013년 첫선을 보였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는 CJ ENM과 공연 중계 사업 ‘집콘’을 추진하고 나섰다. 초기에는 “관객, 현장이 핵심인 공연을 누가 온라인으로 보겠느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공연장에 가기 어려운 이들이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네이버TV는 2015년부터 쇼케이스 전막, 공연 실황 등 320여 편을 중계했다. 2016년 11월에 진행한 ‘조성진 피아노와의 대화’는 조회수가 7만 회가량 됐다. 해를 거듭하며 온라인 관객은 증가했다. 2018년 연극 ‘연애플레이리스트’ 공연 실황은 8만9000회, 올해 3월 뮤지컬 ‘마리 퀴리’ 실황 녹화중계 조회수는 21만 회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 대부분이 취소되면서 영상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9년 네이버TV가 한 해 동안 중계한 공연은 총 67회였다. 올해는 1월부터 4월 22일까지만 따져도 54회나 된다. 지난해 총 108만 회였던 누적 조회수는 올해 이미 143만 회로 크게 늘었다. 작품 한 편당 평균 조회수도 작년보다 64% 증가했다. 최근 카카오TV를 통해 진행한 뮤지컬 ‘웃는 남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츠 프로브(배우와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추는 연습), 프레스콜(언론 대상으로 공연 하이라이트를 시연) 중계도 플레이 수 10만 회를 훌쩍 넘었다. 함성민 네이버 공연&그라폴리오 리더는 “한 달에 7, 8회 하던 중계가 4, 5월에만 총 45편으로 늘어난 걸 보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경기아트센터, 남산예술센터 등이 진행한 무관중 스트리밍, 온라인 전막 상영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오정화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은 “온라인 중계를 통해 공연장을 찾지 않던 이들의 관심을 높여 잠재적 관객을 확보하고 코로나19 사태로 피해가 큰 예술인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 콘텐츠 유료화도 조심스레 논의되고 있다. 일단 플랫폼의 기술적 여건은 갖춰진 상태다. 넷플릭스, 인터넷TV(IPTV)도 공연 기관, 제작사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장르, 배우별 출연료, 참여 제작진 규모에 따라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며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가격을 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저작권, 수익분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공립기관을 중심으로 최근 논의가 진행 중이다. 중대형 민간 뮤지컬 제작사도 공연 영상화를 통한 새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데 적극적이다. 다만 관객을 현장에서 배제하는 데 따른 우려도 나온다. 한 극단 대표는 “연극의 3대 요소가 희곡 배우 관객인데 이 중 하나인 관객이 현장에서 없어지기 때문에 스트리밍을 안 했으면 좋겠다. 온라인 공연에 가상 배우가 나와도 진정한 공연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관객층 넓히고 수익도 창출 영국 국립극단의 ‘NT Live(National Theatre Live)’와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메트 라이브(The Met: Live in HD)’는 공연 영상화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09년 시작한 NT Live는 영미권 연극계 화제작을 촬영해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세계 2000여 개 극장에서 55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국내에서도 2014년 국립극장이 처음 도입해 총 20편을 선보였고, 올해 2월까지 누적 관객 수는 6만1856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공연으로 꼽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메트 라이브’를 수출한다. 2006년부터 50여 개국에서 매년 관객 수백만 명과 만난다. 국내 극장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2008년부터 ‘디지털 콘서트홀’을 운영하며 막대한 영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단체로 유명하다. 공연 영상 콘텐츠의 매력은 생생한 화면과 추가 공개 영상이다. 여러 각도에 설치한 카메라는 배우, 연주자의 섬세한 움직임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메트 라이브는 최대 12대, NT Live는 최대 8대의 카메라를 쓴다. 공연 시작 전이나 인터미션에는 배우 인터뷰를 내보내거나 무대 뒷모습도 공개한다. 국내 공연 영상 사업은 서울 예술의전당이 앞서가고 있지만 공연계 전체로 보면 초기 단계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 영상화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관련 예산은 늘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공연 영상화 작업은 보다 많은 관객이 다양한 공연을 수월하게 즐길 수 있어 공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며 “장비와 인력, 기술을 보강해 공연 현장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추가적인 힘을 지닌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직접 연출한 작품이 상을 받았을 때보다 솔직히 더 신납니다.” 김광보 연출가(56)에게는 올해 제56회 동아연극상이 각별하다. 그가 5년째 극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서울시극단이 ‘와이프’로 작품상을 수상한 것. 극단 ‘청우’ 대표 시절 연출한 2012년 ‘그게 아닌데’와 2014년 명동예술극장의 ‘줄리어스 시저’로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등을 거머쥔 그는 이번 ‘와이프’ 연출을 맡지는 않았다. 그가 도입한 ‘창작플랫폼-연출가전(展)’을 통해 선발된 후배 연출가에게 기회를 줬고, 빛을 발했다.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김 연출가는 “극단장 취임 후 시작한 창작플랫폼이 결실을 거뒀다”며 “연출가로서 받은 과분한 혜택과 사랑을 조금이나마 신진들에게 돌려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와이프’를 연출한 신유청 연출가와는 잠시나마 사제지간이었다. “2008년 중앙대에 출강할 때 신유청 ‘학생’이 제 수업을 들었어요. 연극 ‘에쿠우스’를 주제로 한 조별 경연에서 그가 연출한 조가 7개 팀 중 1등을 했죠. 이번 수상에 스승으로서도 행복합니다.” 1994년 데뷔한 김 연출가는 이성열 박근형 최용훈 손정우 등 내로라하는 연극 연출가들과 ‘혜화동 1번지’ 2기 동인이다. 2015년 5월 존재감이 미미하고 “갈 데까지 간 상태”였던 서울시극단을 맡아 5년간 부지런히 심폐소생술을 했다. 유일한 ‘구조법’은 “많은 작품으로 극단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매년 창작극을 두 편씩 개발하고, 꾸준히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체 합동공연 ‘극장 앞 독립군’과 오페라 ‘베르테르’ 등을 연출해 호평 받았다. 서울시극단을 바라보는 관객과 평단의 시선도 변했다. 그는 “제안이 들어오는 건 다 맡았던 덕분”이라며 웃었다. 연극인생 통틀어 신작 77편을 연출했고 재연, 삼연 등 총 106개 공연을 올렸다. “전력투구했기에 후회는 없다”는 그에게 아쉬운 건 딱 한 가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임기 중 마지막 연출작이 될 뻔한 ‘악어시’ 공연이 불발됐다. 그는 “시작한 일을 매듭짓지 못하고 가니 섭섭한 마음”이라고 했다. 6월이면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그는 “예술에서는 (가치를 볼 줄 아는) ‘편견’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확고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서울시극단을 이끌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하던 그도 연극인으로서 목표와 소망을 묻자 몇 초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저 김광보라는 친구가 ‘한국 연극에 일조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