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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 가입국인 덴마크가 스웨덴 등 북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 행렬을 막기 위해 독일을 오가는 열차와 고속도로를 폐쇄하는 무리수를 뒀다가 취소했다. 비난 여론 때문인데, 덴마크 경찰은 폐쇄 조치 하루 뒤인 10일 난민들의 북유럽행을 막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이에 앞서 덴마크 경찰은 9일 수도 코펜하겐에서 남서쪽으로 135km 떨어진 뢰드뷔하운 항구에서 난민 350명이 탄 열차 2대의 운행을 금지했다. 난민들은 경찰의 하차 요구를 거부하며 스웨덴으로 이동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부는 열차에서 버텼고 일부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치기도 했다. 경찰은 이후 덴마크∼독일 철도 운행을 모두 중단시켰다. 옌스 헨리크 호이비에르 덴마크 경찰총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덴마크에) 망명하기를 원치 않는 난민들을 붙들지 않기로 했다”며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의 발표 이후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경찰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6일 이후 최소 3200명의 난민이 덴마크에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덴마크에서는 올 7월 총선에서 중도 우파 자유당이 승리해 이민자 혜택 축소에 나섰다. 덴마크는 난민들이 EU 국가 중 처음 입국한 나라에 망명을 신청해야 하며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더블린 조약’을 근거로 9일 이들의 스웨덴행을 막아 비난 여론을 자초했다. 한편 유럽 난민 사태의 발원지인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서방의 시리아 공습 계획도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는 8일부터 시리아의 수니파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인 락까에 대한 정찰비행에 나섰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주 의회에서 시리아 공습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도 이날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IS 공습 대상 지역을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넓히기로 했다. 영국 정부도 공습 재개를 위해 의회의 비준을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비호해온 러시아도 시리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사태가 꼬이고 있다. 9일 AFP통신은 “최근 러시아 수륙 양용 상륙함 두 척이 시리아 타르투스 항에 도착했으며, 시리아 공항에 러시아 해병대를 태운 병력 수송차와 수송기 10여 대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며 견제에 나섰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9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4년 이상 지속돼 온 시리아 내전에 따른 폭력과 유혈 사태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한국의 내·외국인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노동시장이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고,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OECD가 9일 발표한 ‘2015 고용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내국인 근로자의 임금은 외국인의 1.55배 수준으로 조사 대상 22개국 중 가장 높았다. 한국 다음으로는 이탈리아(1.32배), 스페인(1.31배) 순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처우가 좋지 않았다. 반면 호주(0.93배), 슬로바키아(1.03배), 캐나다(1.04배)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임금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내국인 근로자가 외국인보다 15.1%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는 외국인 임금 격차의 72%는 ‘기술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기술에는 업무 능력, 언어 능력 등이 포함된다. 한국에는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고, 특유의 단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겹쳐 외국인 근로자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통계연구실장은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생산직 근로자들이기 때문에 이들과 내국인의 평균 임금을 비교하면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며 “유럽 등 다른 OECD 국가들은 저임금 생산직부터 고임금 전문직까지 다양한 직종의 인력들이 자국에 들어와서 일한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단순 업무에 종사하는 저학력 외국인들이 국내에 월등히 많은 이유는 국내 노동시장에서 미스매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려면 고소득 전문직을 데려와야 국내 이민정책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이 겪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가 지구촌 안보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시리아 난민 발생에 책임이 있는 수니파 이슬람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적극 검토하고 나섰고, 미국도 시리아 난민 문제를 안보 문제로 보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7일 의회 연설에서 시리아를 공습해 IS에 가담한 영국인 조직원 2명을 살해한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달 21일 시리아 락까에서 이동 중인 카디프 출신의 레야드 칸(21)과 애버딘 출신의 루훌 아민(26)을 겨냥해 영국 공군 드론이 정밀 공습을 했다는 것. 캐머런 총리는 또 다른 영국인 조직원 주나이드 후사인(21)도 지난달 24일 미군이 락까에서 벌인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영국군이 전시(戰時)가 아닌 상황에서 외국에 있는 자국민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번 공습은 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진행했을 정도로 급박하게 이뤄졌다. 야당이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나서자 캐머런 총리는 ‘자위권’에 의한 공습으로 법무장관의 승인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들이 어떤 테러를 모의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칸이 지난달 15일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대일(對日) 전승기념일 행사에서 여왕을 암살하려 했다고 전했다. 당시 기념행사에는 여왕은 물론이고 캐머런 총리와 찰스 왕세자 부부도 참석했다. 일간 가디언은 “5월 8일 유럽 전승기념일과 6월 27일 국군의 날 행사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도 시리아 내 IS 근거지에 대한 본격적인 공습 계획을 밝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8일부터 시리아에서 IS 공습을 위한 정찰 비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리즘과 전쟁이 난민들의 엑소더스를 부른 원인”이라며 “IS에 대한 공습이 필요해졌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의회는 15일 시리아 IS에 대한 공습 허가를 놓고 표결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IS 공습에 가장 먼저 동참을 선언해 최근 1년간 이라크 북부의 IS 근거지에 217차례의 공습을 가했다. 그러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지위를 강화시킬 것을 우려해 시리아 내 IS 근거지에 대한 공습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유럽 난민 위기를 관망해 온 미국 정부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터 부가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7일 e메일 성명에서 “미국은 글로벌 난민 위기에 대응해 난민 재정착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범위의 대책을 활발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난민 사태를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 난민의 대량 유입은 유럽 동맹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정보 당국은 특히 IS 조직원들이 난민들 사이에 섞여 유럽 등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군사 지원을 확대하려 한다고 보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리스는 러시아 군 수송기의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말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를 받아들일지 고심하고 있다고 AFP통신이 7일 보도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8일 2011년 이후 5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는 전쟁 전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피란민 신세가 됐고, 이 중 400만 명은 국경을 넘어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으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IS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이라크에서도 260만 명이 IS를 피해 난민 신세가 됐다. 중동 출신 난민이 최근 급증하면서 중동에서 그리스로 입국한 난민이 올해 현재까지 23만9000명으로, 전년도 4만5000명에 비해 5배 이상으로 늘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터키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유럽 내 난민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마침내 5일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에 있던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시리아 난민 1만5000여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1월 이후 아프리카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은 20여만 명에 달한다. 그들은 왜 목숨 걸고 조국을 떠나는 것일까.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그리스 코스 섬과 함께 유럽행 난민 위기의 3대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프랑스 북부 칼레 항 난민촌에서 자유를 향해 목숨을 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 5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북부 칼레 항. 곧 영국으로 떠날 페리호 출발을 앞두고 항구 입구 도로에는 늘어선 대형 트럭과 승용차 사이로 곤봉을 손에 쥔 프랑스 경찰들이 50m 간격으로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숲 속에서 7, 8명이 몰려 나와 경찰들과 험악한 말싸움을 벌이는 사이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동시다발로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경찰들이 삽시간에 달려 나가 곤봉으로 쫓아냈다. 칼레 항은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 지난달 28일과 29일 난민 2000여 명이 영국으로 가는 해저터널인 유로터널을 지나는 열차를 타기 위해 기습 진입을 시도하면서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곳이다. 여기서 열차를 타면 35분 만에 영국에 닿을 수 있다.○ ‘정글’로 불리는 난민촌 항구 인근 숲 속에 위치한 난민촌으로 들어선 순간 ‘과연 이곳이 유럽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검은색 비닐로 둘러싼 판자촌 오두막, 구멍 난 수도 파이프에서 새어 나오는 물로 빨래하는 여인…. 거리엔 플라스틱 병들이 나뒹굴고, 쓰레기와 오물이 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난민들은 3000∼4000명이 살고 있는 이 캠프를 ‘정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키 작은 관목과 덤불이 숲을 이룬 곳에 텐트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으니 그야말로 정글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민촌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간이 공중화장실, 수도 시설, 음료수를 파는 상점과 식당, 카페, 학교, 모스크, 교회까지 있었다. 난민들 중에는 부상 때문에 악수를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많았다. 열차나 트럭 위에 올라타다가 손이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쳤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처지다. 세 살배기 아일란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여서 우선 시리아 난민들부터 만나 보았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사람들은 150여 명.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탈출했다는 카웨이 씨(21)는 “나도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려고 밀수꾼에게 1200달러를 주고 고무보트를 탔는데 배가 높은 파도에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터져 나오던 여성과 아이들의 비명을 잊을 수가 없다”며 “아일란의 소식을 듣고 내 아이가 죽은 것 같아 펑펑 울었다”고 했다. 다마스쿠스대 2학년이라는 그는 군에 징집되는 것을 피해 탈출했다고 했다. 카웨이 씨는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남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했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여권을 구했다는 그는 레바논,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거쳐서 이곳까지 오는 데 총 1만 유로(약 1330만 원) 가까이 들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청년 사피 씨(25)도 참혹한 조국의 현실을 피해 도망 나온 경우다. 3년간 미군 통역원으로 일했다는 그는 어느 날 탈레반이 마을에 들어와 미군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끌고 갔는데 아버지도 그 과정에서 총살당했다고 한다. 사피 씨는 “지배자가 바뀌면 적과 아군이 바뀌어 서로 죽이고 있다”며 “영국 버밍엄 공장에서 일하는 사촌형이 있는데 나도 영어를 할 수 있으니 꼭 영국에 정착해 새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목숨 걸고 열차로 뛰어드는 사람들 난민촌에는 매일 오후 5시 프랑스 구호단체들이 제공하는 급식을 받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로 긴 줄이 생긴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탈출이 시작된다. 경로는 다양하다. 우선 유로터널을 통과하는 영국행 화물열차에 몸을 실으려는 사람들이다. 난민촌에서 빠져나와 이들이 유로터널 선로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경찰 눈에 띄지 않게 되도록 짙은 색 옷을 입고 약 12km를 걸은 뒤 선로 인근 도로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가슴 높이 덤불 숲 사이를 15분간 헤쳐 가면 선로 앞 5∼6m 높이 철조망을 만날 수 있다. 이 철조망을 넘어야 선로까지 접근할 수 있다. 이들은 새벽까지 화물열차 밑에 숨어 있다가 출발 직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하는 기차 안으로 뛰어든다. 매일 밤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600명가량 된다고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도버 해협을 오가는 페리(차량을 싣고 가는 배)에 실리는 트럭에 올라타는 것이다. 이 방법은 국제 밀수꾼들에게 1인당 1200유로(약 160만 원) 정도는 쥐여 주어야 한다. 트럭들 중에도 냉장 트럭은 경찰의 X선 검사로도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비싸다. 이곳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있다. 1월부터 6월까지 난민 10명이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고 지난해 10월에는 시리아인 두 명이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에리트레아에서 왔다는 마이사 씨(30·여)는 “내 친구는 유로터널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었다. 당시 경찰이 분사한 최루액을 눈에 맞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경찰이 친구를 죽음으로 몰았다”며 울먹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이달 1일 유로터널에서는 150여 명의 난민이 한꺼번에 선로에 뛰어드는 바람에 열차가 멈춰 열차 안 승객들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에어컨도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 후 프랑스 국영철도(SNCF) 측은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열차로 뛰어드는 난민을 더 쉽게 적발하기 위해 선로 주변 37ha에 자라고 있는 무성한 관목 숲을 쳐 냈다. 선로 주변에 높은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 소용은 없다. 밤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커터로 절단해 구멍을 만들기 때문이다. 칼레 항에도 500여 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경찰관 클로드 베리 씨(46)는 “며칠 전 밤에 수백 명이 여기저기서 동시에 몰려드는 바람에 제지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우 열차 선로로 뛰어들어 운행을 방해하면 최대 6개월간 구류를 살거나, 375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하지만 지금은 난민들을 붙잡더라도 수십 km 밖 벌판에 ‘버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올 상반기에만 1만8000명이 체포됐지만 거의 난민촌으로 다시 돌아왔다. 영국 경찰 당국은 칼레의 난민 10명 중 7명이 유로터널을 4개월 안에 통과해 영국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칼레=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터기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유럽 난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마침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5일 헝가리에 있던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시리아 난민 1만5000여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올 1월 이후 아프리카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지중해를 건너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은 20여 만 명에 달한다.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그리스 코스 섬과 함께 유럽행 난민위기의 3대 핵심지역으로 꼽히는 프랑스 북부 칼레 항 난민촌을 현장 취재했다. 5일 오후 프랑스 북부의 칼레 항.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는 페리호 출발시간을 앞두고 도로에는 항구로 들어가려는 대형트럭과 승용차가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곤봉을 손에 진 경찰들이 50미터 간격으로 도로를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다. 도로 주변 숲 속에 숨어서 트럭 위에 올라타려는 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숲 속에서 7~8명의 난민들이 몰려 나와 경찰에게 손짓하며 험악한 말을 주고받던 사이, 갑자기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도로를 달라기 시작했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경찰이 달려 나가 곤봉으로 위협하며 트럭에 접근하는 난민들을 쫓아냈다. 한 경찰관은 “유로터널 단지 안에서 매일 24시간 동안 화물차 뒤 칸에서 1000명의 난민들을 떼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칼레 항은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 유로터널을 지난 열차는 해저터널을 35분 만에 통과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사하라 사막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 수천 km를 이미 목숨을 걸고 건너온 난민들에게 최종 결승점을 앞두고 불과 33.7km의 바다는 별다른 장애물이 될 수 없는 듯했다. 시리아의 세살짜리 난민소년 쿠르디의 죽음으로 국제사회가 외면해온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5일 헝가리에 있던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인데 이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이날 시리아 난민 1만5000여 명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칼레 난민촌도 희망으로 부풀기 시작했다. 쿠르디의 죽음 이후 칼레의 난민촌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들이 옷, 신발, 가구, 텐트, 화장지 등 생필품을 갖고 찾아오는 자원봉사자의 손길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영국은 ‘취약자 재배치’(VPR) 프로그램을 통해 시리아 국경 부근 유엔난민캠프에서 직접 시리아 난민들을 데려오겠다고 했을 뿐 독일처럼 이미 유럽에 건너온 난민들에게 문호를 열 계획은 없다. 영국과 프랑스 당국은 기대에 부푼 난민들이 유로터널 입구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해올 것에 대비해 오히려 항구주변의 철제 담장을 더 높이 쌓고, 경비인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점점 요새화되는 칼레의 경찰과 이를 뚫으려는 난민들의 ‘쫓고 쫓기는’ 싸움도 한층 격렬해지고 있었다. ● 인도주의 위기 속 난민들의 희망가 칼레항으로 향하는 도로 옆 숲 속에 들어선 난민촌에 들어선 순간 “과연 이곳이 유럽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색 비닐로 둘러싼 판자촌 오두막, 구멍 난 수도 파이프에서 새어나오는 물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거리엔 플라스틱 병들이 나뒹굴고, 쓰레기와 오물이 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난민들은 3000~4000명이 살고 있는 이 캠프를 ‘정글’이라고 부른다. 키 작은 관목과 덤불 숲으로 이뤄진 숲이지만 어지러운 텐트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정글 같은 분위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난민촌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 보니 간이 공중화장실, 수도에 이어 음료수를 파는 상점과 식당, 카페, 학교, 모스크, 교회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난민촌에서 만난 난민들 중에는 악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취재를 위해 악수를 청하면 손을 피하고 대신 팔뚝이나 어깨를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열차나 트럭 위에 올라타다가 손이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쳤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처지다. 칼레에는 약 150여 명의 시리아 난민들은 소년 쿠르디의 죽음에 대해 분노와 슬픔, 기대감이 섞인 반응을 보였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탈출해 온 카웨이 씨(21)는 “나도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려고 밀수꾼에게 1200달러를 주고 고무보트를 탔는데 배가 높은 파도에 오르락내리락 할 때 터져 나오던 여성과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며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였다는데, 영국도 칼레에 있는 3000명의 난민들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다마스쿠스 대학 2학년에 재학 도중 군대에 징집되는 것을 피해 시리아를 탈출했다. 그는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남을 죽여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시리아 공무원에게 뇌물을 바치고 여권을 구했던 그는 레바논,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거쳐서 칼레까지 오는 데 총 1만 유로 가까이 들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청년 사피 씨(25) 3년간 미군 통역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탈레반이 마을에 들어와 미군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끌고 갔다. 그의 아버지는 총살을 당한 이후로 그는 고향을 떠났다. 그는 탈레반을 위해 일하든, 정부군을 위해 일하든 지배자가 바뀌면서 서로 죽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버밍험에 내 사촌형이 있는데, 옷 공장에서 한시간에 7파운드를 번다고 들었다”며 “나도 제2외국어가 영어인 만큼 꼭 영국에 정착해 새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난민촌에는 새로운 경제활동도 이뤄지고 있었다.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했던 난민인 아흐메드 씨(42)는 최근 난민촌에서 버려진 자전거 부품들을 주워 모아서 중고자전거를 수리해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영국행을 시도하는 난민들이 밤마다 12km 떨어진 유로터널 입구까지 가려고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일 자전거를 타고 간 난민이 영국행에 성공하면 자전거를 버리고 간다. 이 자전거를 다시 주워와서 되파는 것은 무척 좋은 사업”이라고 자랑했다. 칼레에 몰려든 난민들은 영국에는 영어가 통하고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기대 때문에 영국행에 목숨을 걸고 있다. 또 영국은 난민 신청자에게 1인당 1주일에 약 42파운드(약 7만6000원)의 지원금을 주는 것도 난민들에겐 매력적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게바르 씨(23)은 “올해 초 영국에 가는데 성공했었는데 내게 비자도, 일자리도, 지원금도 주지 않았고 이탈리아로 추방만 당했다”고 말했다. ● 해가 저물면 2000번 씩 열차로 뛰어드는 난민들 정글에는 오후 5시에는 매일 한차례씩 프랑스의 구호단체들이 제공하는 급식을 받기 위해 긴 줄이 생긴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난민들은 정글을 떠나 영국행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유로터널을 지나는 화물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철조망을 넘어야 하는 지점은 난민촌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이다. 이들은 대부분 운동화를 신고, 경찰의 눈에 띄지 않게 짙은 색깔의 재킷을 입는다. 유로터널 입구는 난민촌에서 걸어서 약 2시간이 걸리는 A16 고속도로 근처의 로터리이다. 삼엄한 경찰의 감시를 뚫고 도로 가드레일을 뛰어넘고, 가슴 높이의 덤불 숲 사이를 15분간 뛰어간 뒤, 5~6m 높이의 철조망을 넘어야 유로터널에 선로 도착한다. 이곳에서 난민들은 영국행 열차로 이송되는 화물트럭의 밑바닥에 숨어든다. 난민들은 새벽까지 1인당 3,4번씩 기차위로 점프한다. 유로터널을 통과하는 열차에 난민들이 불법으로 올라타려는 시도는 매일 밤 평균 2000번 이상이다. 또 다른 난민들은 도버해협을 오가는 페리(차량을 싣고 가는 배)에 실리는 트럭 위에 올라타기를 시도한다. 트럭을 통한 밀입국은 대부분 국제 밀수꾼들에게 1인당 1200유로 가량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냉장 트럭은 경찰의 X레이 검사에도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비싼 돈을 주어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시리아 출신 난민 카웨이 씨는 “내겐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1200유로를 낼 여유가 있다”며 “내가 가진 유일한 선택은 성공할 때까지 울타리를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해변에서 쿠르디의 죽음처럼 칼레항에서도 매일 밤 비극적인 사건이 이어진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난민 10명이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0월에는 두 명의 시리아인인 마우아즈 알발키와 샤디 카타프가 잠수복을 입은 채 칼레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조사결과 이들은 칼레에 있는 스포츠용품 판매점에서 잠수복을 구입한 뒤 이들은 헤엄쳐서 도버해협을 건너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에리트레아에서 온 마이사 씨(30·여)는 “내 친구는 유로터널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며 “당시 그녀는 경찰이 분사한 최루액을 눈에 맞고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며 경찰이 친구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칼레의 ‘정글’은 서유럽 최대의 난민캠프 중의 하나이면서도 시설은 최악의 수준이다. 난민촌에서는 폭력과 화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위생상태도 심각하다. 의료 자원봉사자인 앙드레 보쉬 씨(27)는 “칼레의 난민촌은 글로벌 기준으로 볼 때 난민캠프라고 볼 수 없는 최악의 수준”이라며 “아프리카 수단이나 시리아 국경 인근의 난민캠프가 여기보다 훨씬 인간적”이라고 말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1일 내년 초까지 칼레에 1500명의 이민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공식 난민캠프를 세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반(反)이민을 내건 프랑스의 극우정당 FN 측은 칼레에 난민촌이 세워진다면 국제적인 난민을 결집시키는 실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가톨릭 구호’ 단체의 자원봉사자인 뱅상 드 코닉은 “독일은 단 이틀 만에 2000명의 난민을 위한 숙소를 조직해내고 있는데, 프랑스는 1500명 규모의 난민캠프 짓는데 왜 4개월 씩이나 걸리는가?”하고 반문했다. ● 점점 높아지는 담장,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지난 1일 영국과 프랑스의 해협을 오가는 유로스타 열차가 칼레 역 부근의 터널에서 밤새 발이 묶였다. 150명의 난민들이 한꺼번에 선로에 뛰어들어 열차를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이날 6대의 기차가 출발역으로 돌아가거나 선로에 멈춰 섰다. 승객들은 어둠 속에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에어컨도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날 이후 프랑스 국영철도(SNCF) 측은 유로터널 칼레역 선로 주변 37헥타르 지역에 자라고 있는 무성한 관목 숲을 잘라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선로로 뛰어드는 난민들을 경찰이 좀더 쉽게 적발해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유로터널 측은 칼레역 근처 7.5마일의 선로 주변에 높은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현재의 낮은 장벽은 어린이조차도 쉽게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로터널 측은 올해 1월 이후로 약 3만7000여건의 불법으로 도버해협을 건너려는 난민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보안조치 강화에도 난민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아무리 높은 철제 울타리라고 하더라도 밤마다 수백 명의 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커터로 절단해 구멍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현재 칼레항에는 500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있다. 경찰관 클로드 베리 씨(46)는 “며칠 전 밤에 수백 명의 난민이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몰려들었는데 그들을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의 법규에는 열차 선로에 뛰어들어 열차운행을 방해하는 경우에는 최대 6개월간 구류를 살거나, 375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프랑스 경찰은 하룻밤에 수백 명씩 유로터널에 침입하는 난민들을 붙잡더라도 차에 태워 수십km 밖으로 데려가 벌판에 풀어주는 대처 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만8000명이 이렇게 체포됐지만 칼레의 ‘정글’로 다시 걸어서 돌아왔다. 영국의 경찰당국은 칼레의 난민 10명 중 7명이 유로터널을 4개월 안에 통과해 영국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기차역에서 노숙하던 난민 6000명가량이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 도착했으며 밤새 1800명이 더 도착할 예정이다. 헝가리의 수용소를 탈출한 난민 1200명이 걸어서라도 서유럽에 가겠다며 한꺼번에 도로로 쏟아져 나오자 혼잡을 우려한 헝가리 정부가 버스편 100대를 제공한 것이다. 독일 뮌헨역에 내린 난민들은 역에 마중 나온 시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일부 난민들은 “고맙습니다. 독일” “사랑해요. 독일”이라는 메시지를 적은 판지를 들고 벅찬 기쁨에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헝가리 정부가 제공한 버스에 타지 못한 1000명 가량의 난민은 걸어서 175㎞ 떨어진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가겠다며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세르비아와 맞닿은 헝가리 남쪽 국경에도 4일 하루에만 2000명 이상의 난민이 헝가리 진입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유럽 난민 사태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시리아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시리아는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난민을 발생시켰던 아프가니스탄을 제치고 세계 최대 난민 발생국에 올랐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아침마다 저를 깨워 주고, 놀아 달라고 했는데 이젠 모든 꿈이 사라졌고, 살아갈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2일(현지 시간) 터키 휴양지 보드룸의 해변에서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전 세계가 슬픔과 분노에 빠진 가운데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 씨(40)는 3일 터키의 한 병원에서 아이의 시신을 기다리며 울부짖었다. 그의 가족은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리아 북부 소도시 코바니 출신이다. 이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 건너 그리스 코스 섬으로 항해하던 중 거센 파도에 배가 뒤집히면서 변을 당했다.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 했으나 거부당한 후 배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인 그만 유일하게 살아남고 나머지 가족은 모두 숨졌다. 아일란이 발견된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엄마(35)와 형 갈립(5)의 시신도 발견됐다. 쿠르디 씨는 악몽과 같았던 그날을 회상하며 괴로워했다. 그의 가족은 2일 터키 해안에서 다른 난민 12명과 함께 고무보트(5인승)에 올랐다. 배가 출항하고 잠시 후 큰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쿠르디 씨는 배를 알선해 준 밀수업자에게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었지만, 그는 “안심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되자 밀수업자는 혼자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터키 해안으로 돌아갔다. 배에 탄 나머지 난민들은 결국 배가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전복되면서 대부분 익사했다. 쿠르디 씨는 “물에 빠진 뒤 아내와 아이들을 손으로 잡으려 했으나 결국 놓쳤고, 모두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며 악몽의 순간을 떠올렸다. 3일 언론 인터뷰에서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고향에 묻어 주고, 나도 죽을 때까지 무덤 곁에 머물고 싶다”며 귀향 의사를 밝혔던 쿠르디 씨는 4일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AP통신은 쿠르디 씨가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실은 자동차를 타고 4일 터키 국경을 넘어 시리아 코바니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쿠르디 씨는 이날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매장했다.○ 전 세계 애도 물결, 각국 난민 정책 수정 이제 겨우 세 살밖에 안 된 아일란의 참극에 전 세계 누리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애도의 그림과 메시지를 올리며 애도하고 있다. 그중에는 아이의 시신에서 날개를 단 영혼이 하늘에서 손을 내미는 엄마에게 안기는 그림,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물고기와 대조적으로 서류 작성에 바쁜 경찰관의 냉정한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아일란의 이름을 따 개설된 모금 펀드에 하루 만에 수천만 원이 걷히는가 하면, 난민 수용에 가장 완강한 태도를 보인 영국에선 난민 수용을 합당한 수준으로 늘릴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시민 22만5000명이 서명했다. 시민들은 서명을 하면서 ‘난민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손에 들고 사진을 찍어 트위터를 통해 공유했다. 사진 한 장이 몰고 온 유럽인들의 인식 변화는 유럽 각국의 난민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래도 난민을 받지 않으려 하느냐’는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3일 유럽연합(EU)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EU 회원국에 16만 명의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전격 합의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기존 4만 명의 4배에 이르는 난민을 끌어안을 것을 제안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난민을 수용하는 영구적이고 의무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며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이와 관련해 EU 소식통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16만 명 규모의 난민 분산 수용안을 제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4일 성명에서 ‘대규모 이주 프로그램’을 가동해 EU 회원국들이 20만 명 규모의 난민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난민 지원을 위해 200만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난민 수용 확대에 강하게 버티던 영국도 난민 정책을 급선회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3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을 방침을 밝혔다고 전했다. 아일랜드 정부도 4일 1800명의 난민을 받아들일 방침을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한편 외신들은 해변에서 익사한 아이의 사진 한 장이 난민 수용 문제 논의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면서 1972년 6월 베트남전쟁 당시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는 소녀 킴푹 사진의 충격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이 사진은 어떤 기사보다 생생하게 베트남전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 반전(反戰)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아일란의 사진은 초유의 난민 사태로 갈팡질팡하는 유럽과 이를 지켜만 보던 지구촌에 ‘더는 난민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일종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사진)이 집권 초기 ‘부가가치세(TVA)’ 인상 계획을 백지화하고 부유세를 신설했던 자신의 세금 정책에 대한 실수를 인정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곧 발간될 예정인 책 ‘인턴기간은 끝났다(Le Stage est fini)’에서 “집권 초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세제 정책에 대해 너무 멀리 가지 않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그는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균형예산을 위해 도입했던 TVA 인상(19.6%→21.2%)을 취소했던 것은 실수였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 책은 프랑수아즈 프레소 르몽드 기자가 올랑드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쓴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올랑드 대통령은 책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는 사람마다 첫 예산 편성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며 “나는 전임자가 준비했던 부가세 인상 계획을 백지화함으로써 110억 유로의 국고재정 확충 손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연간 100만 유로(약 15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자에게 75%의 부유세를 물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인해 올랑드의 부유세는 도입 2년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그러나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책임협약’ 등의 ‘친(親)기업 구조개혁’에 대해선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내가 시작한 개혁들이 전부 좌파적 개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개혁에 대한 말은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도 개혁을 적게 하는 나라”라고 꼬집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급진 수니파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고대 유적지 팔미라의 유명 신전을 또 폭파했다. 시리아 문화재 보호단체인 팔미라코디네이션은 8월 30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IS가 2000년 전에 지어진 팔미라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적인 벨 신전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한 팔미라 주민은 AP통신에 “IS가 엄청난 폭발물로 신전을 완전히 파괴했다”며 “벽돌과 돌기둥이 무너져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른 목격자는 신전 벽 일부만 남았다고 전했다. 서기 32년경 셈족에 의해 지어진 이 신전은 팔미라의 수호신인 벨(bel)에게 바쳐진 것으로 팔미라 유적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리스-로마 시대 양식과 고대 중동의 건축 기술이 어우러진 석재 구조물로 돌기둥과 안뜰, 욕조, 제단, 연회실 등으로 이뤄진 대규모 건축물이다. IS는 일주일 전인 지난달 23일에도 서기 17년에 세워진 팔미라의 바알샤민 신전 곳곳에 폭발물을 설치해 폭파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유네스코는 “IS의 시리아 유적지 파괴는 용서할 수 없는 전쟁범죄”라고 비난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89·사진)이 곧 역대 영국 군주 가운데 최장수 통치 기록을 깬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일 오후 5시 반이 되면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인 2만3226일 16시간 30분을 넘어서게 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은 1837년 6월부터 1901년 1월 별세할 때까지 63년 넘게 영국을 다스려 현재까지 최장수 통치 군주로 기록돼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2월 6일 아버지인 조지 6세 국왕이 세상을 뜨자 케냐 방문 도중 영국으로 돌아와 25세의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여왕은 필립 공과의 사이에서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까지 모두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여왕은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 비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버킹엄 궁에 조기(弔旗)를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왕은 재임 63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 복구, 영국령 식민지 40여 개국 독립, 북아일랜드 유혈사태를 겪으며 현대사의 산증인이 됐다. 여왕이 최장수 통치 군주가 되는 동안 왕위 계승 1순위인 장남 찰스 왕세자는 영국 은퇴 연령보다 많은 66세가 됐다. 그 사이 증손자녀인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까지 태어났다. 여왕은 총 116개국을 방문하며 왕성한 대외활동도 펼쳤다. 캐나다에 24회, 호주에 16회, 뉴질랜드에 10회 방문했으며 1999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버킹엄 궁 측은 “여왕은 9일 최장수 통치 군주가 되는 순간에도 평소처럼 조용히 보내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당일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3년 말 펴낸 교황의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Evangeli Gaudium)’이 지구적 베스트셀러에 오른 데 이어, 올해 6월 18일 출판된 교황의 환경에 관한 회칙인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사진)’까지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출간 두 달 만에 프랑스 전역에서 10만 부 판매를 가볍게 넘어섰다. 더구나 교황청이 인터넷을 통해 전문을 무료로 공개했는데도 서점가에서 구입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더욱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황의 회칙은 주교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세계 가톨릭교회와 10억 명의 가톨릭 신자에게 전파되는 사목 교서다. 181쪽 분량의 이번 회칙은 환경 문제를 다룬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교황 회칙이라는 점에서 발표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회칙은 모두 6장 246항에 걸쳐 오늘날 지구와 인간이 겪고 있는 환경 문제를 성찰하고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번 환경 회칙은 신이 창조한 자연환경과 인간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종교적 성찰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교회의 사회적 참여,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상업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등 그동안 교황이 강조해 온 사회적 메시지를 집대성한 문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6개의 출판사가 교황의 새 회칙을 동시 출간했다. 교황청 공식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하면 누구나 출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3.9∼4.9유로(약 5322∼6687원)에 팔리고 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이 빵집에서 파는 바게트처럼 팔리고 있다”며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코드’의 성공에 대한 교황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교황의 환경 회칙은 12월 파리에서 개최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1)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큰 조명을 받고 있다. 프랑스 최대 종교전문 서점인 ‘라 프로퀴르’에 따르면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연구모임을 하기 위해 단체 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르피가로가 보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기후변화 특사인 니콜라 윌로는 “유엔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교황의 회칙은 지구적 환경 시스템 위기의 원인을 성찰하게 하고, 각국 정치인의 실천행동에 영감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데 ‘뜻밖의 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파리 에펠탑은 ‘조명 쇼’로 유명하다. 외교적 행사가 있을 때 중국을 상징할 때는 붉은색 조명으로, 유럽연합(EU)을 상징할 때는 푸른색으로 바뀐다. 9월 18일에는 태극기 문양의 흰색 붉은색 파란색 조명으로 수놓아질 예정이다. 이날은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한불 상호교류의 해’ 개막일이다. 이날 밤 에펠탑 맞은편 국립샤요극장에서는 유네스코 등재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 전곡이 연주된다. 파리와 서울은 직선거리 8976km, 비행기로는 11시간이 걸릴 정도로 떨어져 있지만 역사 속 인연이 깊다. 200년 전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가톨릭이 전해지면서 교류가 시작됐고, 독도가 ‘리앙쿠르 바위섬’이라는 프랑스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도 1847년 독도를 처음 본 프랑스 선원들이 서양 지도에 표시하면서부터였다. 1886년(고종 23년) 6월 4일 프랑스 전권대사로 온 중국 주재 프랑스대사 코고르당이 조선 정부와 교섭한 끝에 한-프랑스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프랑스는 한국의 독립운동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한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조약에 의해 한 나라가 영토 일부에 외국인 거주와 영업을 허가한 땅)는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이었고, 임시정부의 첫 외교독립운동이 전개된 곳도 파리 베르사유 궁에서 열린 강화회의였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파리 9구 샤토됭가 38번지. 현재 1층에 편의점이 들어서 있는 이 건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1919∼1921)’라는 현판이 한글과 프랑스어로 또렷이 새겨져 있다. 1919년 3월 임정 외무총장으로 파리에 도착한 김규식 선생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대한민국 주권 승인 등 20개 항목의 공문서를 제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1921년 7월까지 독립운동을 국제 이슈화하는 활동을 했다. 이 활동들은 관련 기사가 유럽의 181개 신문에 517건이나 게재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뒀다. 파리위원부의 독립청원운동 노력은 1945년 3월 4일 드골 임시정부가 중국 충칭(重慶)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공식 승인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처음으로 발굴, 공개했던 고 박병선 박사도 생전에 “일제강점기 때 외국 영사관 중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프랑스 영사관이 파리 본부로 수천 쪽 보고서를 보냈는데 독립운동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광복 후 헌법 제정 때 영국식 의원내각제보다 대통령제 중심인 프랑스식 모델에 커다란 관심을 가져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전과 고속철도(TGV)도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프랑스와 한국은 현재 각각 세계 6위와 12위의 경제 대국이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한국 영화, 케이팝, 한식 열풍에 이어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이 대략 2000명이 넘고,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제3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때부터 유럽은 한국 독립외교의 중심지였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외교와 경제교류를 위한 교육 시스템이 영미권에만 치우치지 않고 좀 더 다양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최근 프랑스가 항공우주,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 온 창조경제 국가로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와의 접점이 많으리라 생각된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글로벌 투자은행원 출신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장관(37·사진)이 프랑스 좌파의 상징적인 정책인 ‘주(週) 35시간 근무제’ 철폐를 들고 나와 프랑스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마크롱 장관은 27일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모임에서 주 35시간 근무제 철폐를 언급하며 “오래전에 좌파는 기업에 반대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으며,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살 수 있다고 믿었다”면서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5년 동안 좌파의 핵심 정책이었던 ‘주 35시간 근무제’는 프랑스 정치인들에게는 일종의 건드려서는 안 될 ‘터부(금기)’이기에 여기에 도전하는 그의 발언에 후폭풍이 크다. ‘주 35시간 근무제’란 2000년 좌우 동거정부 시절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조금 덜 일하면 모두가 일할 수 있다”라는 구호 아래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도입한 법안이다. 법정 주당 근무시간을 기존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며 초과 근무시간에 대해선 시급의 25∼50%를 지급하거나 유급 대체휴가를 주는 것이다. 이 법안이 도입된 후 프랑스 노동자들은 기존 5주의 유급 정기휴가에 더해 평균 3주일을 더 쉬었다. 하지만 프랑스 안에서조차 이 제도가 오히려 일자리 확대를 막고,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경직된 법안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기업들은 임금을 깎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이 줄어들자 각종 변형 근로제를 도입한 편법 운영에서부터 자동화시설을 도입해 인건비 절감을 시도했고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도 늘었다. 노동자를 위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는 정책으로 변질된 것이다. 실업률도 법안이 발효된 직후인 2001년부터 악화됐다. 당시 9%대였던 프랑스 실업률은 현재 10.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현실적으로도 적용되지 않는 사문화된 법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프랑스 노동자들은 실제로 주당 39.5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는 유로존 평균인 주당 40.9시간보다 조금 적을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 주 35시간 근무는 생산직 노동자에게만 해당될 뿐 사무직이나 간부 사원들은 주당 근무시간을 따지지 않고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 노동자들은 실제로 더 많이 일하고, 시간당 생산성이 다른 유로존 평균보다 약 13%나 높다”며 “현실에 맞지 않는 ‘주 35시간 근무제’가 프랑스가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곳이며, 외국인들에게 투자를 기피하게 하는 잘못된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했다. 마크롱 장관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시간을 법으로 정하지 말고 기업 내부에서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새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도 주 35시간 근무제 폐지를 지지하는 찬성 여론이 75%에 달해 지지 여론도 높다. 하지만 집권 사회당 내부에서는 마크롱 장관을 향해 “역대 사회당 정부에서 가장 우파적인 장관”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회당 장 조레스 의원은 “마크롱 장관은 프랑스 좌파의 역사를 모욕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크리스티앙 폴 하원의원도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전 프랑스 대통령)가 (좌파) 내각에 있는 줄은 몰랐다”고 비꼬았다. 한편 마크롱 장관은 예전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지금은 폐지된 ‘부유세’를 도입하려 할 때도 “우리는 백만장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필요하다”며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에는 매일 오후 6시 반이면 정복 차림의 노병(老兵)과 수많은 시민이 모여든다. 개선문 밑에 안치돼 있는 무명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사진)에 새롭게 점화하고,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푸른색, 흰색의 꽃을 헌화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다. 유럽의 각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광장에는 늘 전쟁과 관련한 기념물이 조성돼 있다. 현충탑 같이 큰 것으로부터 시작해 벽이나 바닥에 설치된 작은 기념판까지 다양하다. 영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5만4000개의 전쟁기념물이 영국 내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파리의 개선문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인 개선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상 ‘전쟁기념관’임을 알 수 있다. 개선문 내벽에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정복전쟁 시대에 활약했던 660명의 프랑스 장군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외벽에는 수많은 역사적 전투 장면이 부조로 조각돼 있다. 개선문 바닥에는 2004년 5월 프랑스군의 6·25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도 설치됐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부인인 재클린 여사는 남편이 묻힌 미국 버지니아 알링턴 국립묘지에도 파리 개선문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캐나다 오타와 국회의사당 광장,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광장,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도 무명용사를 기리는 영원한 불꽃이 설치돼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무명 용사 무덤’도 영국을 방문한 각국 수반들이 화환을 바치는 명소다. 영국은 1920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격전지 중 하나였던 벨기에에서 발굴한 영국군 무명용사를 왕실 성당 웨스트민스터 정문 바닥에 안치했다. 한국에서도 충무공 동상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꺼지지 않는 호국보훈의 불꽃’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수없이 제기됐으나 여론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나라를 위해 꽃다운 젊음과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희생을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늘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은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3년 말 펴낸 교황의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Evangeli Gaudium)이 지구적 베스트셀러에 오른데 이어, 올해 6월18일 출판된 교황의 환경에 관한 회칙인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까지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출간 두 달 만에 프랑스 전역에서 10만 부 판매를 가볍게 넘어섰다. 더구나 교황청이 인터넷을 통해 전문을 무료로 공개했는데도 서점가에서 구입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더욱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황의 회칙은 주교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세계 가톨릭교회와 10억 가톨릭 신자에게 전파되는 사목 교서다. 181쪽 분량의 이번 회칙은 환경문제를 다룬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교황 회칙이라는 점에서 발표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회칙은 모두 6장 246항에 걸쳐 오늘날 지구와 인간이 겪고 있는 환경문제를 성찰하고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번 환경회칙은 신이 창조한 자연환경과 인간과의 관계회복에 대한 종교적 성찰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교회의 사회적 참여,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상업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등 그동안 교황이 강조해 온 대 사회적 메시지를 집대성한 문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6개의 출판사가 교황의 새 회칙을 동시 출판했다. 교황청 공식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으면 누구나 출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3.9~4.9유로(5322~6687원)에 팔리고 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이 빵집에서 파는 바게트처럼 팔리고 있다”며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코드’의 성공에 대한 교황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교황의 환경회칙은 12월 파리에서 개최되는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 21)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큰 조명을 받고 있다. 프랑스 최대 종교전문 서점인 ‘라 프로퀴르’에 따르면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연구모임을 하기 위해 단체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르피가로가 보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기후변화 특사인 니콜라 윌로는 “유엔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교황의 회칙은 지구적 환경 시스템 위기의 원인을 성찰하게 하고, 각국 정치인들의 실천행동에 영감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데 ‘뜻밖의 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프랑수아 콜로시모 ‘세르프’ 출판사 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나 회칙이 잇달아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교황의 개인적 인기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교황의 독자는 이미 가톨릭의 범주를 넘어섰고 교황은 영적지도자를 넘어 정치적 지도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의 난민 유입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사태를 겪고 있다. EU 국경관리기관인 프론텍스는 7월 한 달간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불법 입국한 난민이 10만7500명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올 들어 7월까지 유럽으로 입국한 난민들은 총 34만 명으로 지난해의 28만 명을 이미 넘어섰다. 국가별로는 그리스로 들어온 난민이 16만 명으로 가장 많고, 지중해를 통해 이탈리아로도 10만 명 이상이 밀려왔다. 지중해상에서 난민선이 뒤집어져 목숨을 잃은 난민도 올해 2100명을 넘어섰다. EU가 지중해에서의 난민선 단속 강화에 나서자 최근에는 터키에서 에게 해를 건너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독일, 영국, 프랑스와 북유럽 국가로 가려는 ‘에게 해-발칸’ 경로를 택한 난민들이 폭증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마케도니아로 수천 명의 난민이 경찰과의 대치 끝에 들어갔으며, 이들 중 2000명이 세르비아를 거쳐 ‘솅겐 조약 국경’인 헝가리로 몰려가고 있다. 영국도 프랑스와의 국경인 프랑스 북부지방 칼레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려는 난민들 밀입국 시도가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칼레에서는 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아프가니스탄 등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등지에서 온 난민 3000여 명이 ‘정글’이라고 불리는 난민촌에 모여 살고 있다. 난민들은 영불 해저터널인 유로터널이나 칼레 항의 페리에 몰래 숨어서 영국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급기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24일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시간이 얼마 없다. EU 회원국들은 난민 위기의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정부는 이날 시리아 출신 망명 신청자들에게 처음 도착했던 국가와 상관없이 독일에 머물기를 원할 경우 모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EU 지역에 들어온 난민의 경우 처음 발을 들여놓은 국가에 망명 신청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 더블린 규약에 반(反)하는 파격적인 결정이다. 그동안 더블린 규약은 이탈리아, 그리스, 헝가리 등 EU 외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에만 부담을 지우고 독일 영국 등 국경이 맞닿아 있지 않은 다른 국가들에는 난민 입국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돼 왔다. EU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캠프에 있는 난민 4만 명을 EU 회원국이 골고루 나누어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독일은 가장 많은 1만500명 수용을 받아들였으며 프랑스는 6750명을 수용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그러나 영국, 헝가리,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그리고 발트 연안 국가들은 할당된 난민을 수용하는 데 난색을 표명했다.::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 ::1995년 발효된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국경 개방 조약. 회원국 중 영국 등을 제외하고 총 26개국이 가입해 있다. 가입국 국민은 검문검색을 받지 않고 국경을 오갈 수 있으며 여권 없이 자국 신분증만으로도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1일 프랑스와 벨기에가 공동 운영하는 탈리스 고속열차에서 테러 시도가 있은 후 유럽 테러 대응 공조체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 보도했다. 특히 엄격한 보안심사가 이뤄지는 공항과 달리 감시가 느슨한 철도 체계의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간인이 주로 사용하고 보안이 취약한 철도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대표적인 ‘소프트 타깃(쉬운 공격 목표)’으로 꼽힌다. 이번 테러를 시도한 모로코인 아유브 엘 카자니(26)도 프랑스와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잠재적 위험인물로 지목받아 왔다. 하지만 유력 테러 용의자인 그가 커터 칼, 소총, 권총, 탄창 9개 등 무려 200명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지닌 채 아무런 제재 없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프랑스 파리행 고속철에 탑승했다는 점이 충격을 안겼다. 현재 유럽에서 제대로 된 이용자 및 수하물 검사 체계를 갖춘 철도는 스페인의 일부 고속철과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스타뿐이다. 나머지는 감시 카메라, 사복 경찰, 폭탄 탐지견 등 최소안의 보안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유럽 각국이 특히 불안에 떠는 이유는 이번 테러를 포함해 21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대형 테러가 모두 철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 200명과 57명의 사망자를 낸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테러, 2005년 영국 런던 테러 모두 도심 한복판의 지하철역에서 발생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매일 4000만 명의 승객이 10만 대의 각종 기차를 탄다. 3000개의 기차역을 보유한 프랑스에서만 매일 각각 300만 명과 100만 명이 교외철도와 고속철을 이용한다. 장샤를 브리자르 프랑스 테러분석센터장은 “카자니가 기차를 선택한 이유도 보안이 허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안보 전문가 베르트랑 모네 씨도 “매일 수백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유럽 철도 체계는 사실상 테러에 무방비 상태”라며 “모든 사람이 ‘나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은 유럽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하는 국경자유통과협정(솅겐 조약)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5년 발효된 솅겐 조약에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다수,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총 26개국이 가입해 있다. 조약 가입국 국민은 검문검색을 받지 않고 가입국을 오갈 수 있으며 여권 없이 자국 신분증만으로도 항공기 등에 탑승할 수 있다. 솅겐 조약 수정 요구도 커지고 있다.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는 테러 직후 “유럽이 국제열차 내 검문검색 및 수하물 검색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4일 크리스티안 위건드 EU 집행위 대변인은 “조약을 변경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탈리스 고속열차 테러범을 제압한 3명의 미국인 스펜서 스톤(23), 앨릭스 스칼라토스(22), 앤서니 새들러 씨(23)와 영국인 크리스 노먼 씨(62)에게 최고 권위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21일 오후 5시 50분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탈리스 고속열차 9364호. 미국 공군 소속 의료요원 스펜서 스톤 씨(23)와 대학생 앤서니 새들러 씨(22·새크라멘토 주립대 4학년)는 중학교 동창인 미국 오리건 주 방위군 소속 앨릭스 스칼라토스 씨(22)가 최근 9개월간의 아프가니스탄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휴가 여행 중이었다. 열차가 벨기에에서 프랑스 국경을 넘을 즈음 12번째 칸의 열차 통로에 있는 화장실에 가려던 프랑스인 남성 승객이 AK-47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어깨에 메고 화장실을 나오던 무장괴한과 마주쳤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남성은 곧바로 무장괴한에게 몸을 날렸다. 총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몸싸움 과정에서 여러 발의 총소리가 나면서 유리창이 깨치며 객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때 발사된 총 한 발은 불행히도 승객 한 명의 목을 관통했다. 이 순간 스톤 씨와 스칼라토스 씨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그를 붙잡아(Go get him)”라고 외치며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스톤 씨가 10여 m를 뛰어가 무장괴한을 쓰러뜨린 뒤 목을 잡고 헤드록을 걸었다. 범인은 키 190cm, 몸무게 100kg이 넘는 거대한 덩치에 유도 유단자인 스톤 씨에게 깔렸지만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격렬하게 저항했다. 스톤 씨는 머리와 목에 상처를 입었고 엄지손가락이 거의 잘려 나갈 정도로 다치면서도 침착하게 범인을 제압했다. 스칼라토스 씨는 괴한이 떨어뜨린 총을 빼앗아 던지고 머리를 가격했으며, 새들러 씨는 영국인 승객 크리스 노먼 씨(62·컨설턴트)와 함께 넥타이로 괴한의 팔을 묶었다. 진압 과정에서 총 4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총 554명의 승객이 탑승한 고속열차에서 자칫 ‘제2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참사’가 일어날 뻔했던 상황을 맨손으로 막아낸 3명의 미국인 청년, 영국인 승객, 프랑스인 승객이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CNN이 보도했다. 프랑스 검찰 테러전담반의 수사 결과 무장괴한은 모로코 출신의 26세 남성으로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서 테러 훈련을 받은 아유브 엘 카자니(사진)로 밝혀졌다. 카자니는 21일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고속열차 맨 뒤 칸에 올라탄 것으로 밝혀졌다. 탑승 당시 그는 AK-47 자동소총 1정, 독일제 루거 반자동 권총 1정, 탄창 9통을 지니고 있었다. 최소 200명을 살상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카자니는 체포된 뒤 경찰 조사에서 “나는 테러범이 아니라 승객들의 돈을 털려 했던 단순 강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자니는 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두 차례 여행을 떠났다가 불과 석 달 전에 유럽으로 돌아와 범행을 준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카자니는 올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벨기에 동부 베르비에에서 테러 공격을 시도하다가 사살된 이슬람 극단주의자 2명과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는 이미 스페인 당국에 의해 DNA 정보가 등록돼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테러 용의자 리스트에 올려 1년 이상 주시해 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자니는 시리아에서 유럽으로 돌아온 뒤에도 아무런 제재 없이 여행을 다니며 석 달에 걸쳐 범행에 쓸 무기를 모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차역에서 금속탐지기 보안 검색도 받지 않았다. 프랑스 마뉘엘 발스 총리와 벨기에 샤를 미셸 총리는 22일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주요 기차역에 대한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스톤 씨의 어머니는 미국 지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총이 아들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고 범인이 두 번이나 총을 쏘려고 시도했다”며 “(총을 맞지 않은 것은) 신의 도움”이라고 말했다. 범인 체포를 도운 노먼 씨도 “나는 영웅이 아니다”라며 “어차피 죽는다면 코너에 몰려서 총에 맞아 죽느니 저항하다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괴한에게 달려든 이유를 설명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괴한을 진압한 승객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참사를 막아낸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24일 파리 엘리제궁으로 이들을 초청해 사의를 표하겠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몸을 아끼지 않고 괴한을 진압한 미군을 비롯해 승객들의 용기와 빠른 판단에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놓고 벼랑 끝 전술을 펼치며 ‘유럽에서 가장 무서운 사나이’로 불렸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집권 7개월 만에 사퇴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20일 국영방송 ERT를 통해 생중계된 연설에서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이 승인된 만큼 이후 10월부터 진행될 국제채권단과의 채무재조정 협상을 이끌려면 총선에서의 강력한 지지를 통한 권한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가 그리스에 3년 동안 860억 유로(약 112조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3차 구제금융안을 최종승인해 첫 분할금이 지급되자마자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선거를 위한 과도정부를 구성해 다음달 20일 조기총선을 치르게 될 전망이다. 그리스는 이날 첫 분할금을 받아 상환기일에 맞춰 유럽중앙은행(ECB)에 34억유로(약 4조5천억원)를 갚고 파산을 면했다. 당초 그리스에서는 치프라스 총리가 9~10월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행동했다. 그리스 의회는 지난 13일 실시한 3차 구제금융 합의안 관련 표결에서 시리자 의원 149명 가운데 강경파 의원 43명(반대 32명, 기권 11명)이 반란표를 던져 연정 붕괴를 예고했었다. 치프라스 총리의 의회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졌고, 정계개편 없이는 앞으로 긴축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리자 내 급진파인 좌파연대를 이끈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전 에너지부 장관은 반란표를 던진 의원들과 탈당해 총선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의 이번 조기총선 선언은 ‘1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라는 치밀하게 계산된 도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시리자의 지지율이 40%대로 2위인 신민주당보다 20%포인트 정도 앞서 치프라스 총리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리9대학의 코스타스 버고풀로스 정치경제학과 교수는 “그리스 국민들에게는 치프라스와 시리자보다 나은 대안이 없다”면서 “국민들은 여전히 부패한 주류정당보다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치프라스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 유권자들이 새 총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급진좌파를 제외한 새 내각을 꾸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계산된 도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치프라스 총리가 9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당내 반발세력을 잠재우고 ‘중도적 진보’ 지도자로서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을 강력하게 밀어부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시리아의 고대유적도시 팔미라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시리아의 대표적 고고학자인 칼레드 알 아사드(82·사진)가 이슬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돼 세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아사드는 18일 팔미라의 박물관 인근 광장에서 복면을 쓴 IS 대원에게 끌려 나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참수당했다. 그의 시신은 팔미라의 고대 유적지 기둥에 매달려졌다. IS는 그의 참수된 머리를 동영상에 담아 19일 인터넷에 공개했다. 시신에 붙어 있는 팻말에는 ‘팔미라 우상들의 책임자, 해외 이교도들과 교류한 배교자’라는 붉은 아랍어 글씨가 적혀 있었다고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전했다. 1934년 팔미라에서 태어난 아사드는 시리아 고고학을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집트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하워드 카터와 비견된다. 다마스쿠스국립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1963년부터 2003년까지 팔미라 박물관 총책임자로 활동해왔다. 그는 국제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팔미라에 대한 수십 권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해왔다. 특히 그는 2003년 인간과 날개 달린 신화적 동물의 싸움을 묘사한 70m² 크기의 모자이크를 발굴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팔미라 박물관 전문위원으로 활약했다. 올해 5월 IS가 점령하기 직전에는 팔미라 박물관의 고대 입상 수백 개를 옮기는 임무를 총지휘했다. 하지만 그는 IS에 체포됐다. IS 대원들이 유물들을 대피시킨 곳을 알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해도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 양심에 반해서 행동할 수 없다”며 끝까지 저항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IS가 대피시켜 놓은 유물들을 암시장에 내다팔아 돈을 벌려고 그 행방을 찾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동쪽으로 150마일 떨어진 팔미라는 고대 페르시아와 인도, 중국, 로마제국을 잇는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의 허브 도시였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19일 아사드의 비극적인 죽음을 ‘끔찍한 만행’이라 규탄하며 “고인의 위대한 업적은 극단주의자들을 넘어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재정난에 처한 프랑스 베르사유 궁이 유서 깊은 부속 저택을 관광객에게 개방하며 호텔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16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베르사유 궁은 궁전 본관에서 90m가량 떨어진 17세기 저택 3채를 호텔로 조성하기로 하고 이를 운영할 민간업체 사업자 공모에 나섰다. 사업자는 베르사유 궁에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60년간 호텔을 운영할 자격을 얻게 된다. 가칭 ‘호텔 오랑주리’인 이 호텔의 일부 객실에서는 루이 14세 당시 오렌지 나무를 위한 온실이었던 오랑주리 미술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숙박객들은 300년 만에 처음으로 궁전 내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왕실 정원도 거닐 수 있다. 호텔로 개방되는 건물은 혁명 이후 장교들의 미사 장소로 쓰이다가 최근 7년간 사용되지 않고 비어 있는 상태다. 이곳을 호텔로 개조하는 데에는 185억 원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베르사유 궁 대변인은 “세상에 이런 호텔은 없을 것”이라며 “이곳은 프랑스 역사의 상징이자 문화적 랜드마크로, 진정한 왕실 체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르사유 궁은 최근 10년간 관광객이 2배 이상으로 늘었는데도 정부 지원금이 지난해 4740만 유로(약 622억 원)에서 올해 4050만 유로(약 531억 원)로 줄어 재정난을 겪게 됐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