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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도 뭄바이에 가면 건물마다 묘한 풍경이 눈에 띈다. 쓰러질 듯 낡은 아파트인데 창문마다 서너 개씩 커다란 에어컨 실외기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 인도인들 사이에서 에어컨 보유가 재력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면서 너도나도 설치한 결과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일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에어컨이 ‘부의 척도’로 자리 잡으면서 판매량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나라는 인도와 중국으로 해마다 판매량이 20%씩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세계 에어컨 판매의 약 55%가 이 두 나라에서 이뤄졌다. 특히 인도의 에어컨 사랑은 엄청나다. 결혼 지참품 1순위가 에어컨일 정도다. 건물이 낡아 중앙집중식 냉방시설을 갖출 수 없다보니 방마다 에어컨을 한 대씩 설치하는 게 유행이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뭄바이에서만 미국 전체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에어컨이 사용되고 있다. 중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국의 에어컨 냉매 소비량은 미국보다 7배 이상 많다. 문제는 이 두 나라의 에어컨 사용 급증에 따른 환경 피해다.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된 이래 에어컨의 프레온가스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중국이나 인도 역시 이 규정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최신 에어컨 냉매도 프레온가스보다는 훨씬 적지만 오존파괴를 일으키고, 뜨거운 열기를 배출해 지구온난화에 일조한다. 더 심각한 것은 신형 에어컨 구입비용이 부담스러운 두 나라의 서민들이 가격이 싼 구형 중고 에어컨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래된 에어컨일수록 기능이 떨어져 가동 시간이 길어지고, 환경오염 성분 배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오존 보호 분과 수장을 지낸 인도의 라젠드라 셴데 박사는 “에어컨 열기로 도시가 더워지고 이 때문에 에어컨 사용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며 “당장은 적절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0일부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20 정상회의에서 ‘신(新)친환경 에어컨 냉매 공동개발’을 제안할 예정이다. 하지만 중국, 인도는 물론이고 상당수 나라는 막대한 비용 등을 이유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환경문제는 미국 역시 부족한 점이 많아 이런 이슈를 제시하면 자국경제 이기주의로 비쳤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에어컨 문제는 대안을 찾지 못하면 조만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삶의 끈기는 아버지에게서 배운다.’ 누가 뭐래도 확신을 갖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물려준 ‘위대한 유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브리검영대(BYU) 연구진은 15일 “4년 동안 일반 가정 325곳을 분석한 결과, 가정에서 아버지는 청소년기의 자녀가 인내와 자부심을 스스로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이 논문은 ‘사춘기 초반 연구저널’ 최신호에 실렸다. 이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끈기 있게 역경을 헤쳐 나가는 성향은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게 아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가진 훈육’을 통해 자연스레 함양된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는 윽박지르고 강요하거나 체벌을 가하는 ‘전통적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합리적이되 적당한 규율과 자율을 제시하는 것을 일컫는다. 연구를 주도한 랜들 데이 BYU 교수는 “아버지에게서 이런 품성을 이어받은 자녀들은 학교수업도 더 잘 따라가고 실수를 저지르는 확률도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합리적이되 적당한 훈육’은 뭘까. 데이 교수는 “억지로 주입하려 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며 “이 방식은 지속적으로 아이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 습관을 공유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바쁘단 핑계로 미루지 말고 짧게라도 매일매일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때 뭘 가르치거나 해결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냥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어머니라고 해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연구 대상 가운데 상당수 가정은 실제로 어머니가 이런 방식을 통해 아이를 키웠고 효과도 컸다. 공동 연구자인 로라 파딜라워커 교수는 “훈육 주체의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녀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라고 귀띔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곡예사 닉 왈렌다 씨(33·사진)가 세계 최초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외줄을 타고 건너는 데 성공했다. 외줄타기 집안 ‘플라잉 왈렌다스’의 7대 손인 그는 이날 장대 하나만 든 채 나이아가라에서 가장 큰 호스슈(Horseshoe) 폭포의 수면 약 58m 위에 설치한 1800피트(약 549m) 길이의 외줄을 타고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갔다.폭이 약 5cm인 이 줄은 무게가 7t에 이른다. 출발한 지 25분 만에 캐나다에 도착한 왈렌다 씨에게 캐나다 이민국 직원은 장난삼아 입국 목적을 물었고, 왈렌다 씨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려 왔다”고 답했다. 그는 “줄을 탈 때 시속 약 23km의 바람이 분 데다 물안개가 시야를 가렸으나 힘든 훈련을 떠올리며 집중했다”고 말했다. 왈렌다 씨는 130만 달러의 비용을 제공한 미 ABC방송의 요청에 따라 안전장치 밧줄을 달고 도전에 나섰다. 왈렌다 집안은 200년 이상 외줄타기를 가업으로 삼아 왔으며, 그의 증조부는 1978년 줄을 타다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KBS 개그콘서트는 국내에서 이미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다. 1999년 대학로 코미디 무대를 TV로 옮겨온 이 프로그램은 10년 넘게 장수하며 상당한 사회적 파급력을 떨치고 있다. 평균 시청률은 20%를 넘나든지 오래며, 코너 유행어를 모르면 시대에 뒤처졌단 소리도 듣는다. 영향력이 얼마나 크면 국회의원이 고소까지 하겠다고 나섰겠는가.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동 사회에도 ‘개콘’이 있다. 이름도 거창한 ‘스탠드 업 코미디 카타르(SUCQ)’다. 영어로 성적 뉘앙스가 강한 ‘suck’으로 불리길 바라는 그들은 10명 내외 단원이 도하를 근거지로 중동 국가를 돌며 공연을 벌인다. 20대 중동계 미국인과 30대 비(非)이슬람 여성, 팔레스타인 15세 소년 등 다양한 출신들이 모인 이 코미디 극단은 그 지역 기준으론 꽤 비싼 관람료(8달러)를 받는데도 항상 손님들이 줄을 선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따르면 이들의 인기는 절묘하게도 ‘아랍의 봄’ 영향이 컸다. 사실 이들은 유럽 코미디 페스티벌에 자주 초청받아 인지도가 높았지만, 중동에선 텅 빈 관객석 앞에서 공연하기 일쑤였다. 극장식 코미디 자체가 그곳 사람들에겐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아랍의 봄이 이슬람 사회를 뒤흔든 뒤 혁명이 비켜간 중동 국가들 내부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서구문화인 스탠드 업 개그에 관심이 생겨났고, 제도권 TV에선 볼 수 없던 자유분방한 SUCQ의 농담이 입소문을 탔다. ‘하랄 비랄(깔끔한 비랄 씨)’이란 예명을 쓰는 극단 대표는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퍼진 자유를 향한 목마름이 이곳의 경직된 문화에도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역설적이게도 SUCQ의 인기는 현재 그들의 발목을 옥죄는 족쇄가 되고 있다. 관심이 늘다 보니 단원인 오마르 씨의 표현대로 “하루 종일 뉴스만 보는 사람들”도 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정부 관계자나 종교인, 엄숙한 시민단체들이 공연장을 찾아 모니터링을 한다. 올해 초 한 단원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나이트클럽과 모스크(이슬람 사원)의 공통분모를 나열하는 개그를 했다가 종교계의 항의로 1년간 입국금지 명령을 받았다. SUCQ 측은 “더 큰 분란을 피하기 위해” 농담 내용을 밝히길 꺼렸다. 이들에게 서슬 퍼런 ‘금기’ 딱지가 붙은 건 모스크뿐만이 아니다. 왕족이나 정부 고위층, 종교계 지도자는 입에 올려서도 안 된다. 꾸란은 단 한 줄도 코미디 소재로 쓸 수 없다. 성적 농담도 은유적이어야 하지 직설적인 표현은 피해야 한다. 도대체가 애매모호한 기준도 있다. 레이디 가가는 언급할 수 있어도 마돈나는 안 된다. “더 퇴폐적이라서”라는 게 이유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는 조롱해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불허 대상이다. “살아 있어서”란다. 이러자 SUCQ는 최근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중동 코미디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왔지만 유럽으로 떠나겠다는 단원이 나오고 있다. 비랄 씨도 최근 한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코미디를 관둘까 고민 중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족 얘기만 개그 소재로 삼는 자신이 싫어서”란다. 예나 지금이나 메마른 사막 땅에서 꽃을 피우기란 이리도 어렵다. 설령 ‘웃음꽃’이라 해도. 하긴 어디 사막만 그러할까.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페루에는 어떤 특산물이나 공예품 그런 거 있는지? 특이한 거 있음 사와 봐.”(이하 한국시간 6월 4일 오후 11시 55분·H 씨·최영환 서영엔지니어링 전무의 부인)“열심히 돈 벌어와.”(5일 오후 1시 28분·H 씨)“잔다. 내일 쿠스코 간다. 현장 헬기 타러. 과부 되면 우쩌냐(어쩌냐). 큰__ 걱정.”(5일 오후 1시 36분·최 전무)“이러∼∼∼언!!!!”(5일 오후 1시 37분·H 씨)“낼 아침 5시 40분(페루 현지 시간)에 모여. 헬기 타러∼. 고산이라 숨 막혀서 약 먹고. 해발 3500m. 조금만 움직여도 숨차네.”(6일 오전 11시 50분·최 전무)6일 오후 3시경(현지 시간) 한국인 8명 등 승객 14명을 태우고 비행하다 페루 남부 산악 암벽지대에 추락한 헬리콥터에 탑승했던 최영환 서영엔지니어링 전무(49)의 부인 H 씨가 사고 전 휴대전화 메신저인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다.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보도에도 H 씨는 아직도 남편의 사고를 믿지 못하고 있다. 사고를 예견하는 듯한 남편의 메시지가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메신저 마지막 줄에는 사고 소식이 전해진 뒤인 8일 오후 3시 12분 고교생 아들(17)이 보낸 “아빠 --”라는 글이 있었다.10일 오빠와 함께 사고 현장인 페루로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에 나온 H 씨는 통곡했다. H 씨는 “며칠 전 나눈 대화를 보니 너무 안타깝다”면서 “남편이 저녁을 먹었냐는 메시지를 보내 와 바로 아들이 산책하는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그때가 헬리콥터에 탔을 시간이라) 아들 사진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흐느꼈다. 강원도 강릉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에게는 사고 소식도 알리지 못한 채였다. 그는 “남편은 어딜 가든 그곳 상황을 알려줬다”며 “나에게는 모든 이야기를 다 터놓고 하는 솔직한 사람,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아빠였는데…아직 사망 사실이 확정적이지 않은 만큼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페루 남부 푸노 지역의 모요코 수력발전소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쿠스코로 복귀하다 실종됐던 한국인 8명 등을 태운 헬리콥터가 산악 암벽지역에서 추락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현재로서는 한국인 외에 네덜란드인 체코인 스웨덴인 각 1명, 조종사를 포함한 페루인 3명 등 탑승자 14명 중 일부라도 생존해 있을 확률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페루 경찰청은 “남부 마마로사 산의 해발 4950m 높이 눈 덮인 암벽에서 헬기가 충돌한 지점과 기체 잔해를 육안으로 확인했다”며 “현재까지 생존자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 “산속에서 너무 추울텐데… 당신 곁으로 달려갈게요, 제발…” ▼AP통신이 공개한 현장 사진에 따르면 드문드문 눈이 쌓인 암벽 일부가 폭발 화재로 검게 그을려 있으며, 아래로 기체 잔해로 보이는 물체들이 흩어져 있다. 페루 내무부 측도 한국 외교통상부에 “암벽과 충돌한 헬기가 두 동강이 났으며 생존자는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수색작업은 계속할 예정”이라고 통보해왔다.페루 라디오방송 ‘라디오프로그라마스’는 “사고 지점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서 헬기 잔해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추락과 동시에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또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부 시신도 발견됐다”고 보도했으나 현지 경찰 측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시신은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 가족들은 “헬리콥터 출발 전 현지 기상상황이 나쁘다는 말을 들었다. 무리한 운항이 사고를 부른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피해자 가족들은 10일 속속 페루 현지를 향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이날 오후 2시 반경 유동배 삼성물산 차장(46)의 부인과 딸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진 에릭 쿠퍼 삼성물산 과장(38·네덜란드)의 부인이 사고 현장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페루 리마로 들어가는 대한항공 KL866편을 타고 출국했다. 오후 3시 15분에는 서영엔지니어링의 최 전무와 임해욱 전무(56)의 가족이 리마로 가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떠났다.오후 8시에는 삼성물산 김효준 부장(48)과 우상대 과장(39)의 부인과 형 등 가족 4명이 LA행 대한항공 KE011편에 올라 페루로 출발했다. 11일에는 한국수자원공사 김병달 팀장(50)의 가족 등이 출발할 예정이다.출국하는 김 부장의 부인과 사촌형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김 부장의 친구 곽창훈 대신씨앤디 대표(48)는 “효준이의 홀어머님에게는 아들이 칠레에 갔다고 했는데, 오늘 사고 소식을 알게 돼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라며 “부인과 사촌형은 그래도 아직 효준이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페루로 향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1979년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효준이와 알게 된 뒤 같은 날 육군 항공단에 입대해 헬리콥터 정비와 승무원으로 군 복무를 함께 했다”며 “사고 당일 통화를 하면서 아침 잘 먹으라고 한 뒤 한국에 돌아오면 소주 한잔 마시자고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가슴이 먹먹하다”고 전했다.임해욱 서영엔지니어링 전무의 부인 김모 씨(52)는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며 “그 희망 하나만 갖고 이 길을 떠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한병하 삼성물산 개발사업부 전무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아직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과 페루에 들어가서의 일정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인천=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세계 경제위기가 벼랑 끝으로 몰렸는데도 정치 지도자들은 선거에 매몰돼 시급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4일 진단했다. WP는 정치적 해법이 요원해지면서 ‘비선출직’인 중앙은행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는 않다고 지적했다. WP는 최근 미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유로존의 데드라인이 3개월도 남지 않았다”고 지적했지만, 만족스러운 대응책을 내놓은 정치인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미국은 실업률이 만성적 빈혈 상태에 이르렀지만 여야는 ‘일자리 창출’이란 정치적 수사만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주만 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선거캠프는 정부정책 방어논리를 펴느라 정신없고, 밋 롬니 진영 역시 “더 큰 경기후퇴가 올 것”이라며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긴축정책을 고집하는 독일 진영과 대중 인기에 영합해 재정 확대를 주장하는 피그스(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신진 정치인들의 간극은 메워질 기미가 없다. 그리스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합리적 중재안이나 참신한 개혁안은 눈에 띄질 않는다. 이 때문에 세계시장은 정치적 상황에 덜 영향을 받는 ‘비선출직’ 중앙은행들의 결정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특히 7일 미 의회에 출석하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발언에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3차 양적완화를 언급할지가 관심사다. 유로존 역시 유럽중앙은행(ECB)이 중심을 잡아야만 위기 탈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미 연준이 적시에 성장촉진책을 내놓아도 유로존 위기는 여전할 것이란 주장이다. 또 그리스의 유로 단일 통화권 이탈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 연쇄적인 공황을 불러올 수 있지만 ECB는 이를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레츠 두 디스(Let's do this·우리 그렇게 해요).”부모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만 겨우겨우 참아냈다. 겨우 20대 초반인 딸. 한창 꽃필 나이에 팔다리 절단이라니. 그때 가쁜 숨을 내쉬던 딸은 부모를 향해 힘겹게 이 세 마디를 내뱉었다.사고로 세균에 감염돼 결국 팔다리까지 잘리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 한 여대생이 놀랍도록 침착한 용기로 절망을 극복해 미국 사회를 감동시키고 있다. 수술 뒤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갔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회복세를 보이자 현지 언론은 ‘영웅의 생환’이라며 기뻐하고 있다.에이미 코플랜드 씨(24)는 미 애틀랜타 주 웨스트조지아대의 평범한 대학원생이었다. 1일 학교 인근 리틀탤러푸사 강에서 밧줄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레포츠 ‘지프라인’을 즐기던 중 줄이 끊기며 강으로 추락했다. 왼쪽 종아리에 상처를 입었지만, 긴급 이송된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아 별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상처로 침입한 ‘아에로모나스 하이드로필라’라는 세균이 괴사성 근막염을 일으킨 것. 최근 미 남부에서 주민들을 공포에 빠뜨린 희귀 괴질에 걸린 것이다. 감염 부위가 온몸으로 번지고, 심장과 신장까지 제 기능을 못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상처 입은 왼쪽 다리를 절단했지만 상태는 계속 악화됐다.결국 의료진은 회복이 불가능한 오른발과 양손마저 모두 잘라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만은 없어 그의 부모는 의료진의 결정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 에이미 씨가 부모 앞에서 스스로 결정했다. 사지를 절단하더라도 병마와 싸우겠다고.수술 뒤 한동안 의식이 없었다. 여전히 신장 투석 중이었고, 한때 심장이 멈추는 위기도 맞았다. 하지만 절단 약 1주일 만에 에이미 씨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27일, 애타게 기다린 부모에게 이렇게 입을 뗐다.“안녕. 와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아버지 앤디 코플랜드 씨는 미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에이미가 손이 잘린 팔을 들고 ‘아빠, 내 마법의 손가락 좀 봐요’라며 환하게 웃는 걸 보며 우리 가족은 어떤 역경도 함께 이겨낼 수 있단 걸 직감했다”고 말했다.어머니 도나 코플랜드 씨는 채식주의자인 딸에게 줄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미 CBS뉴스가 ‘아직 음식 섭취가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물론 제대로 먹긴 힘들겠죠. 하지만 자식 입에 들어갈 밥을 짓는 게 바로 엄마가 할 일이랍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얼마 전 첫아이의 백일이 지났다. 고생이 컸던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림책 한 권을 선물했다. 초보 엄마 아빠들에게 잘 알려진 ‘재워야 한다. 젠장, 재워야 한다’(원제 Go the fuck to sleep)였다. “아이에겐 읽어주지 마라”는 소개가 달린 이 작품은 애덤 맨스바크란 미국인이 썼다. 출판 뒷얘기가 재미있다. 지난해 세 살배기 딸을 재우려다 뜻대로 안 돼 울컥한 작가는 페이스북에 “차기작 제목은 ‘Go the…’로 하겠다”고 올렸다. 반응은 엄청났다. 환호와 문의가 몰려들더니 나오기도 전에 아마존에서 예약 1위에 올랐다. 많은 이들이 눈물 날 뻔했다는 책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풀잎 사이 산들바람도 숨을 죽이고/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들쥐도 죽은 듯이 잠들었어./벌써 삼십팔 분이나 지났다고./이런 제기랄, 뭐라고?/그만 쫑알거리고 잠이나 자란 말이야.” 아이의 수면은 부모에게 지상과제다. 재우기가 얼마나 힘들면 생후 3개월쯤 된 애가 조금만 곤히 자도 ‘100일의 기적’이라 부를까. 한 후배는 그건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란다. 자녀의 꿈나라가 부모에게만 좋은 건 당연히 아니다. 미국수면재단이란 곳에선 어린이 건강을 위한 ‘적정 취침시간’을 발표한 바 있다. 3∼11개월 된 신생아는 하루 14∼15시간, 1∼3세 유아는 최소 12시간은 자는 게 좋단다. 초등학생이 돼도 10시간가량 수면을 취해야 성장발육에 도움이 된다.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에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 연구진이 약 112년 동안 발표된 관련 논문을 검토했더니 아동 수면의 권고기준이 해마다 0.71분씩 감소했다는 거다.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1세기가 지나는 동안 1시간 20분가량 줄어든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애는 애일진대, 왜 지금은 덜 자도 되는 걸까. 의문을 풀기에 앞서 19세기 말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한 논문을 잠깐 들여다보자. “…최근 아동의 수면 감소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잠이 부족한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특히 ‘가스등과 전차’의 급증이 수면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100년도 더 전의 일인데 낯설지 않다. 가스등과 전차를 TV, 인터넷 혹은 환경오염 지구온난화로 바꾸면 바로 요즘 얘기다. 아이가 안 자는 건 시대를 초월했던 모양이다. 마치 고대 그리스 벽화에 남겨졌다는 ‘요즘 애들 버릇없어’처럼. 충분한 잠은 성장기에 꼭 필요하다. 미 필라델피아대 수면연구소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성장호르몬은 60% 이상이 잠자는 사이에 분비된다. 하지만 의사들이 권장하는 취침시간을 매일 규칙적으로 지키는 아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젠장, 재워야 한다’는 절규는 끝이 없지만, 안 따랐다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100년 전보다 1시간 이상 덜 자도 요즘 애들이 훨씬 덩치가 좋고 수명도 길다. 과학이 제시한 건 평균이지 잣대가 아니다. 조디 민델 수면연구소장은 “산술적 양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겐 저마다의 취침 스타일이 있단 소리다. 잠까지 남의 자식과 비교하진 말자. 세상 모든 아이는 특별하니까. 물론 잘 자는 게 효도지만, 쩝.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미국 의회가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을 도왔던 외과 의사를 중형에 처한 파키스탄 정부의 조치에 반발해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금 3300만 달러(약 390억 원)를 삭감하기로 했다. 25일 AP통신에 따르면 미 상원 세출위원회는 파키스탄 법원의 샤킬 아프리디에 대한 33년형 선고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민주·공화 만장일치로 내년에 파키스탄에 지원할 예정이던 원조금의 약 58%를 깎기로 했다. 3300만 달러는 아프리디의 형량 1년마다 100만 달러씩을 책정한 액수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은 “파키스탄은 정신분열증을 앓는 동맹국”이라며 “양국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미국은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친구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를 곤궁에 빠뜨리려던 중국 공산당 기관지가 역풍을 맞고 있다. 베이징 시 공산당위원회 기관지인 베이징일보는 14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로크 대사가 쿠폰으로 커피를 마시고 비행기 일반석을 타는 것은 청렴을 가장한 쇼”라며 “실제 재산을 공개하라”고 공격했다. 중국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로크 대사의 소탈한 일상이 위선이라 공격하고 나선 것. 최근 중국 관영 언론들은 천광청 사건 등을 전후로 중국계인 로크 대사를 자주 비난해 왔다. 이에 주중 미대사관은 즉시 로크 대사의 재산 명세를 웨이보에 공개했다. 3월 31일 미 국무부에 신고된 로크 대사의 지난해 재산은 523만 달러(약 61억 원). 현재 대사 연봉은 17만9700달러이며, 자녀 2명의 교육보조금으로 연 3만 달러를 받는 것까지 세세하게 밝혔다. 그러자 중국 누리꾼들은 “로크 대사가 요구대로 했으니 중국 정부의 공직자들도 재산을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1996년부터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하도록 돼 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많은 누리꾼들은 “베이징일보는 이제 중국 관리의 재산 공개를 요구하는 기사를 쓰고, 공직자인 베이징일보 사장의 재산도 밝히라”고 압박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최근 화제를 모은 미국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사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중국 초대형 스튜디오 건립에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아들이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며 중국 전현직 고위관리 자제들의 과도한 이권 개입이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 “드림웍스가 3억3000만 달러(약 3871억 원)를 투자한 상하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업에 장 주석의 아들인 장몐헝(江綿恒)이 현지 사업파트너로 참여했다”며 “태자당(太子黨)을 비롯한 ‘중국의 어린 왕자들(Chinese Princelings)’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화려한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이 왕자들이 주로 통신이나 금융, 문화 등 중국에서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분야를 ‘놀이터(playground)’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아들인 원윈쑹(溫雲松)은 아시아 최대 위성통신사로 꼽히는 중국위성통신그룹 회장이며,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아들인 후하이펑(胡海峰)은 중국 공항과 항구 등에 보안검색시스템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한다.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사위는 중국공상은행(ICBC)과 메릴린치의 220억 달러짜리 합작사업에 관여해 막대한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사업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거래의 구체적 내용이 외부로 공개되지 않아 합법인지 편법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하버드대의 로드릭 맥파커 중국연구원은 “실상이 공개되면 ‘쓰나미’와 같은 역풍이 불까 봐 더욱 조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이권 개입을 노리고 있는 후보군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페라리 논란’을 일으켰던 보시라이 전 충칭 시 서기의 아들 보과과처럼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딸 시밍제, 완리(萬里)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손녀 완바오바오 등이 해외 명문대를 다니며 경제계 입문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업 관료는 “솔직히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명문자제의 유입을 반기고 있는 게 중국 경제계의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림픽이 공무원을 놀게 해주는 구실이냐.”(영국 비즈니스 업계)“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영국 정부)1948년 이후 50여 년 만에 런던 올림픽을 치르는 영국에서 때아닌 ‘공무원 재택근무’ 논란이 일고 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픈 정부의 복안이 오히려 경제활동에 독이 될 것이란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15일 “최근 화이트홀(중앙정부)은 올림픽 시즌을 맞이해 공무원들의 ‘신축적 근무 지침’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런던에서 근무하는 수만 명의 관청 공무원은 올림픽 개막 1주일 전인 7월 21일부터 장애인 올림픽이 끝나는 9월 9일까지 정부가 제안하는 3가지 근무체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문제는 이 근무체제의 선택 기준이다. 정부가 제시한 방식은 △재택근무를 하든지 △도보로 사무실에 나오든지 △아니면 집에서 가까운 다른 관청으로 출근하라는 것이다. 화이트홀은 “런던의 심각한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더타임스는 “런던 중심가 관청으로 걸어서 출근할 거리에 사는 공무원은 극히 소수인 데다 다른 관청으로 출근하면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재택근무를 하라는 조치”라고 평했다.정부의 재택근무 추진이 외부로 알려지자 기업계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한 회사 대표는 “기업 활동을 하려면 관청에 협조를 구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7주씩이나 자리를 비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비난했다. 영국 상공인연합회도 “정부의 재고를 요구한다”며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비난이 거세지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결정된 사항은 아니다”라며 “업계와 상의해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겠다”고 수습에 나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북한은 정말 투자할 만한 매력적인 곳이다. 여러 경로로 (투자할) 방법을 찾고 있다.” ‘상품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69·사진)이 10일 미국 경제전문 잡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최근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면서 “현재 투자를 진행할 몇 가지 복안이 있다”고 말했다. 로저스 회장은 북한을 지목한 이유로 “곧 남한과의 통일이 이뤄질 것이며 (통일 한국은) 엄청난 잠재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합치면 인구 7500만 명이 넘는 통일 한국은 △21세기 경제중심지로 성장한 중국과 국경을 접했고 △엄청난 고급 인력을 지녔으며 △막대한 북쪽 지역의 천연자원까지 갖춘 나라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너무 강력한 경쟁자를 옆에 두고 싶지 않은 속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로저스 회장은 “현재로선 제대로 된 시장 자체가 없는 북한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며 “몇 가지 투자 방식을 보여줬지만 (북한 정부 당국은)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저스 회장은 북한과 함께 미얀마와 중국을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꼽았다. 그는 “미얀마는 현재로선 북한처럼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경제적 각성 직전의) 중국을 보는 듯하다”며 “풍부한 자원과 양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어 누가 먼저 투자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현재 정치 체제와 상관없이 중국인은 역사적으로 기업 활동과 자본주의가 뭔지 제대로 알고 있다”며 “현재 내가 싱가포르에 사는 이유는 두 딸이 중국어를 마스터하게 하려는 배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지금은 중국 주식시장에 투자하기보다는 원자재를 확보해 중국 기업과 거래하라”며 “세계 최대의 공장으로 성장해 원자재 확보에 혈안이 된 이 나라에서 대접받으며 수익을 거둘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인도와 일본에 대한 투자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로저스 회장은 “관광이 목적이라면 인도를 제일 먼저 추천하겠지만 사업 파트너라면 말리고 싶다”며 “자본주의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거부감이 몸에 밴 나라”라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인도의 고질적인 관료주의는 세계 최악이라며 비즈니스 상대로 부적합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일본에 대해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당시 주식을 사긴 했지만 그건 위기 때 급락한 주식을 구매하는 원칙에 따랐을 뿐”이라며 “국가 채무 규모가 크고 인구도 빠르게 줄어드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로저스 회장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원자재와 농업 투자가 미래를 보장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다시 한 번 설파했다. 21세기 정보화 사회일수록 손에 쥔 ‘현물’이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로저스 회장은 “특히 농산물 투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포브스도 얼른 ‘농업 잡지’를 창간하는 게 시대를 앞서가는 길”이라고 농담했다. 그는 “이제 곧 주식중개인은 직장을 잃고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고, 혜안을 가진 농업 종사자는 람보르기니를 모는 시대가 온다”며 “곡물가격 상승률이 금값 상승률보다 높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했다. 한편 최근 미국의 경기회복에 대해선 “일시적 반등은 반복하겠지만 대세는 아시아로 넘어갔다고 본다”고 진단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한인 여성 6명이 불법으로 마사지업소를 차리고 성매매를 벌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휴스턴 지역방송사인 KTRK-TV의 뉴스프로그램 ‘abc13’은 “지역 경찰들이 4일 해리스카운티에 있는 불법 마사지업소인 ‘엠파이어’ ‘크리스털’ 등을 급습해 아시아계 여성 7명을 매춘 및 알선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검거된 용의자들은 배모 씨 등 한국계 6명과 쿠이 씨 등 중국계 1명으로, 이들이 한국 국적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성매매와 관련해 한국계 범죄조직이 가담했다는 정황 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져 현지 한인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한편 이날 체포된 여성들이 용의자 신분임에도 얼굴이 노출된 상태에서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채 끌려가는 모습이 방송에 보도돼 인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최근 대만의 행정원 신문국 초청으로 대만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10여 개 해외 언론매체의 기자들과 현지를 둘러보며 다양한 의견을 나눈 값진 시간이었다.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마음속엔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한류(韓流)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대만은 한류 인기지역으로 꼽히기에 더 관심이 갔다. 요즘 국내는 한류라는 말이 인터넷사전에 등재될 정도인데 외국에서도 그렇게나 화제일까. 행여 우리의 과잉 반응은 아닌지 의구심이 작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류는 ‘분명’ 존재했다. 현지에서 한국 문화는 흥행 수준을 넘어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타이베이 최대라는 스린(士林) 야시장엔 한국 화장품과 옷 가게가 넘쳐났다. 곳곳에 한국 연예인 사진이 걸렸고, 한국산을 강조한 ‘계란빵’ 노점상도 인기였다. 채널V라는 방송은 거의 온종일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틀었다. 한 TV 퀴즈쇼에선 가수들 사진을 놓고 “누가 ‘막내(한국어 발음 그대로)’인가”를 맞히는 문제를 풀었다. 시내 공원에서 만난 호유싱 씨는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에, 여동생은 가요에 빠져 매일 채널을 놓고 싸운다”고 집안 얘기를 했다. 함께 방문한 외국 기자들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칠레에서 온 데니스 에스피노사 기자는 배우 윤은혜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가 나온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봤단다. 페루 엘 코메리오의 후안 산체스 씨는 박찬욱 영화감독을 좋아했고, 파트라 홍통 태국 기자는 “‘빅뱅’ 최고”를 연발했다. 미국과 캐나다 친구들은 ‘비빔밥홀릭’이었고, 중남미 언론인 대다수가 귀국 선물로 삼성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그것도 여러 대씩. 당연히 이런 한국 사랑은 고마운 일이다. 과거에 한국 하면 ‘매운 음식, 개고기, 자동차’ 정도나 떠올리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괜히 뿌듯했고, 가벼이 생각했던 걸그룹이 애국자로 보였다. 하지만 되새길 대목도 있었다. 다들 한류란 용어엔 낯설어했다. 현지 방송에서 간간이 쓰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은 한참 설명해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부분 되물었다. “왜 굳이 그런 표현을 쓰죠?” 일본이나 프랑스 문화가 인기라고 ‘일류(日流)’ 혹은 ‘프렌치 웨이브(French wave)’라 부르진 않는다는 지적이다. 물론 한류는 중국 언론이 먼저 쓴 말이다. 미국도 1960년대 비틀스나 롤링스톤스를 두고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고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하지만 국내의 한류 찬양은 좀 과하다. “한국 문화상품은 너무 ‘한국’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짙다”는 한 기자의 조언은 여운이 오래갔다. 그런 의미에서 가오슝 노동자박물관 인근 항구에서 마주친 한 설치미술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금속 소재로 만든 아름드리나무인데, 잎사귀마냥 달린 종들이 새가 지저귀듯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우연히 만난 한국말을 배운 여학생은 “참 예뻐요. 한국 사람이 만들었어요. 대만 사람들 모두 좋아해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알고 보니 성동훈이란 작가의 ‘사운드 트리(소리 나무)’라는 작품이었다. 석양에 금빛으로 물든 나무는 삭막하기 마련인 부둣가 풍경을 멋들어진 문화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종소리는 홀로 울리는 게 아니다. 그곳의 바람과 어우러질 때 마음을 흔든다. 한류도 잔잔히 끓어야 은근한 맛이 깊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천광청의 탈출은 몇 달 동안 공들인 기적의 산물이었다.”(중국 인권운동가 쩡진옌 씨) 22일 중국 정부와 공안의 감시망을 뚫고 성공한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 씨의 탈출은 한편의 첩보영화와 같았다. 목숨을 건 반체제 비밀네트워크와 신원 미상의 공안 측 조력자, 천 씨 부인의 희생이 없었다면 시도 자체도 불가능했다. 29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산둥(山東) 성 둥스구(東師古) 촌에 있는 천 씨의 자택은 미국 샌프란스시코 앞바다에 있는 앨커트래즈 형무소를 방불케 했다. 지방정부가 집 주위에 높다랗게 시멘트벽을 쌓아올렸고, 여러 대의 감시 폐쇄회로(CC)TV와 전파차단장비가 설치됐다. 집 바깥을 지키는 인원만 70명이 넘었다. 천 씨는 지인들에게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가도 최소 3명이 따라붙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천 씨의 탈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집안에 몰래 땅굴을 파다 들키기도 했고, 감시가 느슨한 틈에 슬쩍 나가려다 구타를 당한 적도 있다. 결국 단독 탈출은 어렵다고 판단한 천 씨는 어렵사리 비밀네트워크에 도움을 청했다. 그의 탈출을 도운 후자 씨는 “정확한 방법은 공개할 수 없지만 손으로 만든 암호를 교환하며 계획을 짰다”고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영국 BBC뉴스는 “천 씨는 탈출 결심이 선 뒤 몇 달 동안 병에 걸린 듯 행동했다”고 전했다. 대부분 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고, 걷기조차 힘든 척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동정적이던 한 공안을 천천히 설득했다. 필요한 순간 딱 한 번만 전화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동안 비밀네트워크는 최소 인원 5명만 투입하는 탈출 시나리오를 짰다. 인권운동가 쩡 씨와 후자 씨가 총괄 진행과 연락을 담당하고, 허페이룽 씨가 차량 이동을 맡았다. 천 씨의 베이징 은신처 확보는 반체제 학자 거우위산 씨와 또 다른 인권운동가 1명이 전담했다. 디데이 전날인 21일. 천 씨는 공안에게 부탁해 전파방해장치를 잠시 동안 껐다. 그 사이 휴대전화로 외부와 통화해 정확한 탈출시간과 방법을 조율했다. 다음 날 밤, 천 씨는 집 뒤편 사각지대의 벽을 천천히 기어올랐다. 당시 천 씨 부인은 일부러 대문 앞을 서성이고, 공안들에게 말을 걸며 주위를 분산시켰다. 담을 넘은 천 씨는 미리 약속된 장소로 가서 숨었다. 시각장애인인 그는 이미 머릿속에 지리를 담아뒀기 때문에 밤 이동이 오히려 수월했다. 약속장소에서 천 씨를 차에 태운 허 씨는 곧장 베이징으로 향했다. 이후 천 씨는 거우 씨 등과 합류한 뒤 매일 거처를 옮기며 공안의 추격을 뿌리쳤다. 후자 씨는 “천 씨가 20여 시간에 걸치는 탈출 과정 중에 적어도 200번은 넘어졌다”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가 보도했다. 탈출은 성공했지만 대가는 너무나 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후자 씨와 허 씨, 거우 씨는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휴대전화는 꺼져 있고, 개인 블로그도 폐쇄됐다. 후 씨는 베이징의 한 카페에서 28일 dpa 소속 기자를 만난 후 4시간이 지나 “경찰들이 신문을 위해 나를 데려가려고 불러냈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이 두절됐다. 그의 아내도 28일 트위터를 통해 “경찰들이 전화로 신문이 24시간 연장됐다고 알려줬다”며 “내가 남편은 어디서 자고 있느냐고 묻자 경찰은 의자에서 자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허 씨도 이날 지인과의 통화에서 “난징에서 공안인 듯한 이들이 집에 찾아왔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이미 체포됐을 가능성이 높다. 쩡 씨와 나머지 1명은 급히 피신했으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한편 천 씨의 형제 1명도 공안이 임의동행을 요구해 끌려갔으며,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공안 내부 조력자도 검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 씨의 아내와 자녀들은 외부세계의 이목 때문인지 29일 현재까지는 끌려가지 않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정윤식 기자 jys@donga.com }
“영국 총리에게 어떤 것도 요구해본 적이 없다.”(루퍼트 머독) “총리와 위성방송사 인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아들 제임스 머독) 지난해 해킹 스캔들 뒤 영국 정부와 유착 의혹에까지 휘말린 언론 재벌 머독 부자(父子)가 이중 전략을 구사하며 반격에 나섰다. 영국 BBC뉴스는 25일 “런던고등법원에서 열린 언론윤리조사위원회의 청문회에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81·사진)이 출두해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머독 회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어떤 정치인에게도 개인적 이득을 위해 부탁해본 적이 없다”며 “산하 언론에도 기사나 논조에 대해 어떤 지시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머독 회장은 정경 유착에 대한 청문회 측 질문에도 “사악한 추론은 그만두라”며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전날 청문회에 나왔던 아들 제임스 머독 부회장은 사뭇 다른 태도를 취했다. 머독 부회장은 160페이지가 넘는 증거자료를 제출했는데, 이 가운데는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위성방송 BSkyB 인수건에 대해 상의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제러미 헌트 현 문화장관의 보좌관과 머독 측 로비 담당자가 주고받은 e메일도 공개했는데, “헌트 장관이 인수를 유리하게 이끌도록 애쓰고 있다”는 대목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머독 부자가 이틀 사이에 폭로와 부정을 오고간 건 논란의 핵심을 자신들로부터 영국 정부로 옮겨놓으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캐머런 총리가 23일 “영국 정치계는 보수·노동당 할 것 없이 머독과 너무 가깝다”며 청문회의 강력한 조사를 요청하자 머독 측이 반격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저서 ‘역사’에 기술했던 ‘포세이돈의 분노’가 당시 실제로 일어난 대형 지진해일(쓰나미)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BBC뉴스는 20일 “독일 아헨대의 클라우스 라이허터 교수가 기원전 479년 그리스 서북부 카산드라 반도에서 페르시아군을 휩쓸고 간 지진해일의 흔적을 찾았다”고 전했다. 라이허터 교수팀은 이 지역 퇴적층을 조사한 결과 지진해일 때문에 내륙으로 밀려온 것이 확실한 모래층을 발견했으며 시뮬레이션 결과 근해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면 최소 2∼4m의 대형 파도가 해안을 덮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다룬 ‘역사’에는 당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리스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바닷물을 썰물처럼 빠지게 만들어 페르시아군을 유인한 뒤 대형 파도를 보냈다고 기술돼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50년 뒤에 책을 집필한 헤로도토스는 “침략자에 분노한 포세이돈이 복수의 손짓으로 엄청난 파도를 보내 그들을 휩쓸어버렸다”고 썼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국 더타임스는 최근 자녀가 600명이 넘는 한 ‘정자 왕’을 소개했다. 1972년 타계한 버톨드 와이즈너란 남성은 생전에 마음껏 정자를 기증했던 모양이다. 인공수정 성공률도 높아 세계 곳곳에 자신의 ‘생물학적’ 분신을 남겼다. 50대인 캐나다의 영화감독과 영국의 변호사는 최근 자신들이 그의 씨를 받아 태어난 이복형제 사이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왕좌엔 영국인이 올랐지만 사실 이 분야에서 톱을 달리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 ABC뉴스에 따르면 정자를 제공하는 미국의 4개 업체가 세계 정자 공급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정자를 사가는 수입국은 베네수엘라와 케냐, 태국 등 100여 개국에 이른다. 시장규모도 내년이면 총 43억 달러(약 4조8800억 원)가 넘을 것으로 예상될 만큼 상승세다. ‘미제 정자’가 유독 인기가 높은 이유는 뭘까. 일단 안정성이 탁월하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정자가 들어오면 180일이 넘게 꼼꼼히 검사한다. 기증자의 병력(病歷)도 최소 3대 위까지 확인한다. 대표기업인 ‘캘리포니아 정자은행’ 관계자는 “정자 합격은 하버드대 입학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그만큼 ‘믿고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구입이 손쉬운 점도 매력적이다. 일본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일주일 안에 액화질소로 잘 보존한 정자를 택배로 받는다. 경쟁국들과 달리 익명성을 보장하는 점도 한몫했다. 영국은 2004년 법이 개정돼 정자를 누가 팔고, 샀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캐나다 호주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은 사생활을 지켜주는 쪽이다. 정자를 산 부모는 ‘출생의 비밀’을 덮을 수 있고, 기증자 역시 나중에 “실은 내가 아버지란다”고 인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는 소리다. 이를 통한 미국의 이익 창출을 고깝게만 볼 일은 아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불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가 800만 쌍이 넘는다. 아이를 갖고 싶은 레즈비언 부부나 싱글 여성에게도 정자 산업은 고마움의 대상이다. 미국 내에선 정자 구매자의 60%가 이런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이다. 하지만 불황을 모르던 정자 산업은 최근 윤리적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사고로 부모를 잃은 16세 프랑스 소년의 사연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자신이 정자를 기증받아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필요한 양육비를 생물학적 친부에게 요구했다. 아들의 존재 여부조차 몰랐던 미국 아버지는 당연히 이를 거절했다. 현재 미 법원에 계류 중인 이 소송에선 법원이 소년의 손을 들어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어쨌든 아버지는 아버지니 호부호형(呼父呼兄)도 허해야 한다는 논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제 누가 마음 편히 정자를 내놓겠느냐는 하소연이다. 정자를 제공했던 이들로부터 다시 회수하겠다는 요청이 빗발친다고 한다. 과학계에선 제대로 된 법 정비가 부실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스라엘의 지브 쇼함 생물학 박사는 “기술 발전이 법이나 윤리적 시각과 상충하는 경우가 잦은데도 안전망도 없이 낙관론에 기대서 일을 추진한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양육비를 내놓아야 하는 건 생물학적 친부가 아니라 이런 논란을 예상하지 못한 정부나 기업이 아닐까. ‘사회적 책임’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아이티에 가려 합니다. 같이 가실 분?” 2010년 1월 아이티 대지진 직후, 미국 전직 해병 제이컵 우드(28·사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당시 우드는 이 짧은 글이 이후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미 CNN뉴스는 “글을 올린 지 사흘 뒤 동료 퇴역군인 7명과 함께 무작정 아이티로 떠났던 우드는 2년 만에 미국 제대군인 봉사단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팀 루비콘’을 이끄는 수장이 됐다”고 전했다 그가 자원봉사에 뛰어든 동기는 단순했다. 전장에서의 경험이 재난지역에서도 도움이 될 거란 막연한 자신감이었다. 마침 경영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어서 한두 달 가벼운 자원봉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군 경험은 기대 이상 쓰임새가 컸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우드는 “전쟁은 최악의 조건에서 주어진 자원만 갖고 살길을 헤쳐 나가는 일의 반복”이라며 “특히 추진력과 팀워크는 군인 출신들의 가장 큰 매력”이라 말했다. 단체명을 ‘팀 루비콘’으로 지은 까닭도 같은 맥락이었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던 ‘결연한 의지’를 전직 군인들은 몸으로 보여줬다. 아이티에서 최고의 봉사단체로 평가받은 팀 루비콘은 이후 활동 무대를 세계로 넓혔다. 칠레 지진과 파키스탄 홍수, 내전의 상처가 깊던 수단과 미얀마까지 찾아갔다. 2년 만에 참여봉사자는 16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퇴역군인들이다. 대학원 진학과 안락한 삶은 포기했지만 옛 전우들과 함께하는 ‘나눔의 삶’은 그에게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대군인들의 ‘제2의 삶’도 챙기려 한다. 지난해 그는 함께 활동했던 친구이자 제대군인인 클레이 헌터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았다. 헌터는 최고의 자원봉사자였지만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우드는 “전문 연구관리 팀을 신설해 제대군인의 치료 및 복지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