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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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취재분야

2024-10-29~2024-11-28
사회일반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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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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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3%
  • 경찰 비웃은 불법 사채조직, 그들이 세를 불리는 방법[히어로콘텐츠/트랩]①-下

    불법사채는 가장 절박한 이를 노려 마지막 고혈을 빨아낸다. 정부의 미공개 조사에서 이 덫에 걸린 사람은 2022년 82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해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면서 5년 새 30만 명이 늘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2월부터 5개월간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과 피해자 등 157명을 통해 불법사채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중에는 빚을 탕감받는 조건으로 불법사채 조직에 합류했다가 인생이 뒤바뀐 김민우(가명·37)도 있었다.“대리님, 저 한 번만 더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딱 한 번 만요….”휴대전화 너머로 50대 여성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사채를 사채로 갚는 ‘돌려막기’를 하느라 스무 번 넘게 돈을 빌린 그녀가 애원하는 대상은 불법사채 조직의 말단 조직원 ‘이 대리’였다.“더 빌리면 감당 못 하실 텐데요.”이 대리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며칠 뒤, 이 대리는 찜찜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녀가 넘긴 ‘비상연락망’에 남편 번호가 있었다. 전화를 걸자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의 남성이 받았다.“저희 집사람이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는데…. 누구시죠?”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 여자, 나랑 전화하고 나서 쓰러진 건가. 텔레그램으로 상사에게 보고하자 평소보다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어차피 남편은 그 여자가 얼마나 빌린 줄 모르는 거지? 그럼 남편한테 더 뜯어내면 되겠네. 오케이. 넌 신경 쓰지 마.”전화를 끊자 대포폰 검은 액정화면에 새하얗게 질린 자기 얼굴이 비쳤다. 그가 불법사채 조직에 쫓기던 채무자 김민우였을 때의 얼굴이었다. 사경을 헤매는 사람도 한 푼 더 뜯어낼 먹잇감으로 보는 불법사채의 세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불법사채의 덫에 걸려 고통받던 민우가 밑바닥 조직원 이 대리가 되어 덫을 놓던, 2022년 8월경의 얘기다.● 먹잇감을 넘기면 펼쳐지는 지옥조직에 합류하기로 한 첫날. 민우는 스스로 ‘이 대리’라는 닉네임을 붙였다. 가짜 성에 직함을 붙인 닉네임을 쓰는 다른 조직원들처럼. 그리고 한 달간 조직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매일 아침 8시 서울 종로구의 A 호텔로 향했다. 저녁 6시까지 객실에 틀어박혀 직속 상사 ‘박 팀장’에게 배운 건 불법사채라는 지옥 입구에 먹잇감을 물어다 나르는 법이었다.‘김지영/주식회사XX/서울 강북구/100만 원/010-7733-XXXX’ 이름, 직장명, 거주지, 필요 금액, 연락처가 담긴 메시지. 일명 DB(데이터베이스)가 매일 100개씩 조직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라왔다. ‘상담팀’ 소속이었던 이 대리는 DB 속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 계약을 맺고 ‘비상연락망’이라며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10명의 연락처를 받아냈다. 이를 ‘수금팀’에 넘기면 1건당 2만 원을 받았다.먹잇감이 수금팀으로 넘어가면 본격적인 지옥이 펼쳐졌다.‘니네 회사 부장한테 연락가게 해줘?ㅋㅋ’ 메시지 한 통이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왔다. 사채를 쓴 사람은 주변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채무자들은 가족상을 치르다가도 장례식장 구석에서 꼬박꼬박 답장했다. 주변에 연락가는 게 싫으면 벗은 몸을 찍어서 보내라는 요구도 거절하지 못했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바지만 겨우 내린 채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이 대리가 하루 대출 계약 10건을 채운 날. 박 팀장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이제 졸업해도 되겠다.”그리고 ‘졸업 선물’로 맥북을 건넸다. 하루 전화 10통으로 1주일에 100만 원을 벌 수 있다니. 두툼해지는 지갑이 반가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어온 먹잇감들이 지옥 속에서 어떻게 고통받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6개월 동안 이 대리가 갈망한 건 돈뿐이었으니까.● 출구 없는 미로의 시작민우의 첫 직장은 촉망받는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기울면서 월급 220만 원을 주는 중소기업으로 옮겼다. 고소득 전문직인 아버지는 탐탁잖아 하며 “돈을 더 주는 회사에 다니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더 벌고 싶은 건 민우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일을 찾다가 보험 영업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고객들이 연달아 계약을 해지하면서 2021년 10월경엔 두 달 정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생활비로 쓴 카드값 200만 원을 갚을 돈이 필요했다. 4대 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민우에게 은행 대출의 문턱은 높았다. 저소득·저신용자를 위한 정부 대출 상품 ‘햇살론’도 알아봤지만, 과거 빌린 대출금이 소득보다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가족 앞에선 돈 얘기가 안 나왔다. 민우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걸 숨기고 있었다. 정규직도 아니고 소득이 일정치 않은 보험설계사는 중소기업 사원보다 더 아버지의 눈에 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드값 얘기를 하면 “요새 뭘 하고 다니길래 그 돈이 없냐”고 캐물을 게 뻔했다.친구들에게 얘기해볼까.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위아래로 훑었다. 전화를 해도 돈 얘기는 입 안에서 맴돌았다. 별일 없지. 그래. 말만 빙빙 돌리다 전화를 끊었다.●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포털사이트에 ‘200만 원 소액대출’을 검색하자, 한 대부중개 플랫폼이 나왔다. 수백 개의 정식 대부업체들이 광고하고 있었다. 업체 몇 곳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30분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대출 문의하셨죠?”왜 엉뚱한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거지. 의아했지만 상대가 알려준 업체명은 금융감독원 사이트에서 검색까지 되는 정식 대부업체였다. 대출 심사를 받으려면 ‘비상연락망’이 필요하다는 말에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처를 넘겼다.하지만 심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상대는 “제대로 돈을 갚는 사람이라는 신용이 필요하다”며 일단 10만 원을 빌려줄 테니 1주일 뒤에 20만 원으로 갚으라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카드값을 막고 싶어 3일 만에 돈을 보냈다. 그런데 말이 바뀌었다. 자꾸만 소액부터 갚으면 원하는 금액을 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왜 말을 바꾸냐고 따지면 돌변했다.“그럼 니네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사채 쓴 거 알려줄게.”아버지에게 전화가 가면 집안이 뒤집힐 게 뻔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돈을 빌리고 또 빌렸다. 갚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만 늦어도 연체비가 시간당 5~10만 원씩 붙었다. 상환 기간을 미루려면 수십만 원의 연장비를 내야 했다. 여유가 없어지자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녹음파일을 들려줬다“니 아들 새X가 돈을 안 갚는다고. 이 씨XX아.”평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과호흡으로 쓰러지곤 했던 어머니가 이런 전화를 또 받게 할 수는 없었다. 돌려막기가 계속됐다. 연락처를 넘긴 친구들에게는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걸어 말했다.“내가 어디서 돈을 좀 빌렸는데. 상황이 꼬였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일단 받지 말아봐…. 나중에 얼굴 보고 다 설명할게.”밤낮으로 주차장 발렛 파킹 아르바이트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6개월 동안 쓴 사채 원금은 255만 원. 이미 약 1000만 원을 보냈는데도 갚아야 할 돈 130만 원이 남아 있었다. ● 출구가 보인다는 착각“돈 때문에 힘든 것 같은데 여기서 일해 볼래요? 지금 남은 130만 원, 까줄 수 있는데.”그날 걸려 온 불법 사채업자의 전화는 평소와는 달랐다. 반말하던 그가 갑자기 존댓말을 쓰며 조직에 들어오면 남은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했다.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끔찍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니. 흔들렸다.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에 다음 날 약속 장소였던 A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박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너만 잘하면 한 달에 1500만 원도 벌 수 있어. 못해도 500만 원은 벌 거고.”그리고 퀵서비스로 도착한 대포폰 2대를 건넸다.위험한 제안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자신 때문에 고통받던 가족들의 괴로움까지 끊어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 달에 1500만 원까지 벌 수 있다니.‘그래. 돈만 바짝 벌고 금방 관두면 괜찮을 거야.’평범한 영업사원이었던 민우가 불법사채 조직에 몸담은 첫날이었다.● 고객도 경찰도 속이다교육을 마친 이 대리는 대포폰과 노트북만 들고 모텔을 전전하며 일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배운 그대로 뱉으면 됐다.“고객님. 처음에 10만 원이나 15만 원을 쓰시고 1주일 뒤에 20만 원이나 28만 원으로 상환해 주시면, 이제 신용이 쌓여서 고객님께 100만 원 대출을 진행해드릴 수 있습니다.”‘조금씩 많이’ 빌리게 꼬드긴 뒤, 비상연락망을 인질 삼아 악착같이 돈을 뜯어내는 게 이들의 표준 수법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하루 세 번 계약 실적을 텔레그램으로 보고하기 전에는 고객이 보낸 비상연락망의 진위도 확인했다. 수금팀이 채무자의 가족에게 연락해 협박하려면, 비상연락망이 진짜여야만 하니까. 채무자의 비상연락망이 가짜면 그가 빌려 간 돈의 절반을 담당 상담원의 주급에서 깎았다.“택밴데요. 여기 101동 501호 XXX 씨 집 앞인데 문 앞에 두고 갈까요?”“우리 아들이 시킨 건가 보네. 근데 501호가 아니라 502호예요.”대포폰으로 택배 기사인 척 전화하면 고객이 넘긴 가족의 연락처와 주소가 진짜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일하는 동안 피해자 신고를 받은 경찰이 6차례 연락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리가 “그냥 제가 빌려준 돈 받는 거예요”라며 ‘배 째라’ 식으로 나간 뒤 전화를 끊으면 그만이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 텔레그램을 쓰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쉽지 않다는 걸 조직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조직의 행동강령은 철저했다. 조직원끼리는 서로 이름과 나이, 연락처를 밝히지 않았다. 대포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은 끄고, 수당은 무인택배함을 통해 받았다.교육 장소였던 A 호텔이 종로경찰서와 300m 거리인데도 박 팀장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덴 이유가 있었다. ● 휴대전화 너머의 ‘민우’들이 대리는 고객도 경찰도 속여가며 1주일에 180만 원까지 벌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찜찜했다. 채무자들에게서 자꾸만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업체 이름을 물어보는 고객에겐 금감원 사이트에 올라온 업체 중 아무거나 하나 골라 말했다. 민우가 그랬듯, 이 대리의 고객들도 대부업체 이름을 듣고 나면 안심했다.“정신 차려 보니까 서른네 번이나 빌렸어요. 저 와이프도 있고 아기도 있는데.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어느 날, 돌려막기의 늪에 민우보다 더 깊숙이 빠져 있었던 40대 남성이 추심을 막아달라며 애원했다. 냉정하게 전화를 끊고 나니 민우보다 더 고통스럽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멍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이 대리를 보며 다른 조직원 중 한명은 말했다.“야, 다른 채무자 출신 애들은 잘만 하던데 넌 왜 그러냐?”이 대리를 포함한 상담팀 직원 6명 중 4명은 ‘채무자 출신’이었다. 이 대리보다 10살쯤 어린 20대 남성들이었다.● 이 대리의 마지막 고객점차 돈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특히 쓰러진 50대 여성의 소식을 조직에 알린 그날. 스무 번 넘게 사채를 써 조직에서 ‘VIP’로 통한 그녀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VVIP’가 된 그 순간. 더 이상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만두기로 마음을 굳힌 뒤 떠오른 사람은 26살 박상아(가명)였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느라 늘 돈이 필요했던 상아. 조직원들은 상아를 ‘우리가 데리고 노는 애’라고 부르며 여러 번 돈을 빌리게 유도했다.어린 상아에게 못 할 짓을 했다는 생각에 평생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망설이다 상아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정말 병원에 있는 게 맞냐고 물었다.그리고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으로 향했다. 혹시 누가 볼까 싶어 본인과도 상아와도 관련 없는 동네를 골랐다. 물품보관함에 100만 원을 넣고 다시 상아에게 전화해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말했다.“저는 일 그만둡니다. 제가 돈 줬다는 건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세요. 이 핸드폰으로 고맙다는 문자 같은 것도 보내지 마시고요.”이 대리의 대포폰 마지막 통화였다.● 영원히 따라다닐 그림자상아와 통화를 마친 뒤 팀장에게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자 한 남성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루 15건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전화를 걸어 앳된 목소리로 욕을 퍼붓던, 그래서 조직의 가장 ‘윗선’이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너 정말 후회 안 하겠어? 어디 가서 이런 돈 만질 수 없을 텐데. 지금 나가면 다시는 이 바닥에 못 들어와.”돈 이야기뿐이었던 대화는 욕 한마디 없이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쉽게 이 대리를 놔준 건, 또 다른 대리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대리로 산 4개월이 끝났다.조직에서 빠져나온 뒤엔 경찰에서 연락이 올까 두려웠다. 처음 조직에 합류할 때 신분증이랑 등본 사본을 넘겼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면 ‘꼬리 자르기’를 하기 위해 그 정보만 넘길 수도 있었다. 한 달 동안 민우의 휴대전화는 비행기 모드였다.‘5000% 살인 이자… 불법 사채조직 검거’이 뉴스를 본 건 1년쯤 지난 뒤였다. 익숙한 닉네임과 수법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우에게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돈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깨달은 그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돈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빠져나오지 못하게끔 사지를 단단히 묶어두는 인간의 악랄함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사람도 믿지 못하게 됐다.지금 평범한 회사원인 민우의 주변 사람 중 누구도 한때 이 대리로 불렸던 시간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절은 불법사채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는지 생생히 증언한다. 그 때의 어두운 기억은 앞으로도 한낮의 그림자처럼 민우의 곁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민우는 정식 대부업체에 연락했는데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졌을까. 조직의 ‘먹잇감’이 모인 DB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0% 넘는 피해자가 불법사채를 접한 곳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했다. 그 추적기는 24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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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채업자의 집요한 협박… 딸의 손톱 끝엔 피가 맺혔다[히어로콘텐츠/트랩]①-上

    불법사채는 가장 절박한 이를 노려 마지막 고혈을 빨아낸다. 정부의 미공개 조사에서 피해자는 2022년 82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해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면서 5년 새 30만 명이 늘었다.이들을 착취한 건 소수의 ‘사채왕’이 아니었다. 불법사채 조직은 ‘급전 대출’ 등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 있었다.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피해자 4313명 중 3455명(80.1%)이 플랫폼에서 불법사채를 접했다고 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2월부터 5개월간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과 피해자 등 157명을 통해 불법사채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중에는 아이 학원비를 대려다 불법사채의 늪에 빠진 강선주(가명·48)도 있었다.오후 4시쯤이었다. 하굣길이었을 중학생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선주(가명·48)는 반가운 마음에 “딸!” 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딸은 앞뒤 없이 말을 쏟아냈다.“엄마, 나한테 막 이상한 문자들이 와. 이게 다 뭐야?”선주는 직감했다. 그놈들이 내 딸한테도 연락했구나. 일하다 말고 집으로 뛰어갔다.지병 탓에 학교에서 쓰러져도 자기 입으로 이야기한 적 없는 아이였다. 엄마의 마음을 먼저 걱정하던, 일찍 철든 아이. 그런 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발견한 딸은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뜯어대고 있었다.띵동! 띵동! 띵동! 딸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쏟아졌다. 모두 [국제발신]이라 적힌 알 수 없는 번호였다.“대구 76년생 강선주 딸 하윤(가명)아. 지금 사람 한 명 보냈거든. 그 아저씨한테 X주면 돼. 알겟(겠)지??”“넌 몇 살이야? 우리 하윤이 걸X면 오빠가 좀 그런데.”심장이 쿵쾅거렸다. 물에 빠진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엄마 나 어떡해? 너무 무서워.” 딸의 목소리마저 웅웅거려 잘 들리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향해 뛰었다. 걸쇠를 건 선주는 몸을 떠는 딸을 안으며 말했다. 엄마 휴대전화가 해킹당한 거야. 괜찮아. 괜찮아.하지만 선주는 알고 있었다. 그놈들은 돈을 갚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란 사실을.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해 손댔던 사채가 거꾸로 가족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선주가 문자 한 통에 돈의 덫에 갇혔던 올 4월 25일 얘기다.● 누군가에겐 당연할 쌀값“엄마는 맨날 일하는데 왜 돈이 없어?”외식하자는 아이들에게 군색하게 군 날, 초등학생 아들이 옆에 와 앉았다. 말없이 웃으면 아들은 꼬깃꼬깃한 천 원 몇 장을 꺼내 건넸다. “이거 엄마 써!” 그 작은 손을 보며, 선주는 야속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서른둘 나이에 아기용품 사업 시작, 2년 만에 당한 사기, 빚 8000만 원을 갚느라 8년. 마흔셋에 작은 수선집을 마련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좋아하던 뜨개질을 할 수 있었으니까. 내겐 의젓한 딸과 명랑한 아들이 있었으니까.다짐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22년 11월. 남편이 해고당했다.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다는 이유였다. 며칠 내리 누워만 있는 남편의 등을 보았다. 남편도 얼마나 놀랐을까? 기죽지 말자고요, 내가 더 힘내볼게. 그날 선주는 남몰래 일기를 눌러 적었다.남편은 수선집을 함께 키워보자고 했다. 하지만 많아 봐야 월 100만 원인 수익. 네 식구에겐 턱없이 모자랐다. 꿈에서도 미싱을 돌렸다. 그곳에서라도 바쁘면 깨어나 기분이 좋았다. 오전 8시 수선집으로 출근해 적은 일기는 매일 같았다. ‘오늘은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1년 만에 모아뒀던 돈이 바닥났다. 친척과 지인들에게 5만 원, 10만 원씩 빌려 아이들 밥을 먹이고 학원을 보냈다. 한참 뜸 들이다 돈 이야길 꺼내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빌려주겠다”던 친구 몇몇은 연락을 차단했다. 그때마다 아이들만 생각했다. 올 3월 초에도 돈 나갈 구멍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어머니, 이번 달 학원비가 비어요.”“엄마! 나 마라탕 먹고 싶어!”“엄마, 동생 밥해 먹이려는데 집에 쌀이 없어.”어디 쌀 훔쳐 올 곳 없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던 그때. 지잉, 지잉, 휴대전화가 요란스레 울렸다.집으로 달려가 보니 곳곳이 빨간딱지였다. 은행 빚이 밀렸던 터였다. 일부인 30만 원을 내면 당장 압류는 정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학원비, 쌀값, 월세…. 계산이 꼬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결국 다음 날 휴대전화를 열었다. 더 이상 지인들에게 빌릴 생각은 없었다. 적선하듯 보는 눈초리, “쌀 살 돈도 없으면서 애는 왜 키우냐”는 찬 소리.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편했다. 포털에 ‘대출’을 쳤다.한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수백 개의 대부업체 광고가 떠 있었다. ‘정식 등록업체’ ‘안전하고 빠른 대출’ 쏟아지는 광고 문구 속 ‘당일 대출 가능’을 봤다. 3월 5일 문자를 보냈다.“돈이 필요해요.”● 박 실장의 친절함에 속다문자를 보내자마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는 자신을 박 실장이라 소개했다. 문자 보낸 대부업체의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했다. “경기가 참 어려워요. 아이는 키우시나요? 너무 힘드셨겠어요.” 오랜만에 듣는 따뜻한 말투였다.꽤 긴 시간 서러움을 토했다. 수화기 너머로 안타깝다는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선주는 제 처지를 알아주는 박 실장이 다정하다고 생각했다.전화를 끊은 그는 돈을 빌리는 데에 필요한 서류 목록을 보냈다. 신분증과 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비상연락망. 가족과 친구, 거래처의 연락처를 보내자 답장이 왔다. 그중엔 딸의 전화번호도 있었다. ‘빨리 받으실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당장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숨이 쉬어졌다.박 실장이 빌려준 돈은 40만 원, 일주일 뒤 갚아야 할 돈은 60만 원이었다. 연이율로 따지면 2607.1%. 법정 상한의 130배였다. 5일 뒤 거래처에서 선금을 받으면 갚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발주가 미뤄지며 계획이 틀어졌다. 상환 당일, 박 실장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저…오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내일 드려도 될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에게서 다정함은 볼 수 없었다.‘야, 장난치냐? 개소리 말고 빨리 입금해라.’그는 빌려서라도 갚으라며 다른 사람을 연결했다. 박 실장의 원금은 김 실장에게 빌렸고, 김 실장의 원금은 임 실장에게 빌려 갚았다. 상환일을 며칠만 미루려 해도 수십만 원의 연장비를 요구했다. 갚기로 한 시간보다 1분만 늦어도 연체비가 5만~10만 원 붙었다.그렇게 6주 사이 돈 빌린 사람만 8명. 40만 원은 583만 원이 돼 있었다. 8명의 독촉 전화는 밤낮이 없었고,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대출을 권하는 문자도 수십 통이 날아왔다. 이자 대신 다른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끼리 ‘또라이돈’이라고 불렀다. “원나이트 해주고 싼 이자로 돈 빌려주는 거예요.” 제안을 거절하고 전화를 끊은 선주는 치를 떨었다.욕설이 섞인 폭탄 문자에 “돈 갚으라고 함. 전달”이라는 문구가 딸려 올 때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채무자들이 불법사채 조직한테 협박당해서 보낸 것이었다. 놈들은 이자를 몇 푼 깎아주겠다며 절박한 피해자를 범죄에 동원하고 있었다.휴대전화를 못 쓸 정도로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구에게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도 헷갈렸다. 박 실장의 전화를 피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왔다. “안 되겠네. 너, 내가 칼로 쑤셔줄게.”누구라도 가게 앞을 지나면 몸이 움찔거렸다. 세워둔 차가 보이면 가게 문을 잠갔다. 들어오는 손님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이 박 실장일까?’ 혼자 있는 시간에는 가게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구석으로 가 미싱을 돌렸다. 그들은 날 알지만, 나는 그들을 모른다는 불안감. 지켜보고 있다는 공포에 손이 떨렸다.그러던 4월 23일, 메시지가 도착했다. “평생 니 딸년 괴롭혀 줄게.” 이어 도착한 문자에는 딸아이의 학교와 반, 선생님 이름과 번호, 교무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더는 혼자 안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경찰서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40만 원의 대가“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네가 저질렀으니 네가 해결해야지.”해고당한 후 내내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남편의 첫 마디였다. 차갑다 못해 매서웠다. 원통했던 건 남편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식당 일을 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선집 일을 마치면 밤 12시. 잠시 소파에 눈을 붙이면 금세 해가 밝았다. 그 햇살이 ‘지금 잠을 잘 자격이 있냐’고 묻는 듯했다.점점 남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선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이혼 이야기가 오갔다. 뇌졸중과 고지혈증으로 처방받았던 약을 쓸어모았다. 한 번에 털어 넣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포털에 ‘살기 싫을 때’를 썼다. 자살예방상담전화 번호가 떴다. 전화를 거니 “우울감이 심해 보인다.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돈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 더 그 번호로 전화해 속을 털어놓았다.“돈 빌린 것, 다 제 잘못 맞아요. 그런데 살고 싶어서 선택한 일인데, 왜 이렇게까지 돼야 할까요.”그놈들에겐 “경찰에 신고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조롱만 돌아왔다.“가서 신고해ㅋㅋ 대포폰 써서 니넨 우리 못 잡아.”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경찰에서 들은 말이 그거였다. 놈들은 경찰이 손쓰지 못하는 걸 알기라도 하듯 더 날뛰었다. 초 단위로 문자와 전화가 왔다. 오전 8시 18분부터 시작된 임 실장의 전화는 4시간 32분 동안 이어졌다. 총 764통이었다. 견딜 수 없던 건 내 손으로 번호를 넘긴 사람에게도 연락이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4월 25일,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한테 막 이상한 문자들이 와. 이게 다 뭐야?”● 엄마의 소원그날 이후 딸은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등하굣길은 어쩔 수 없이 친구들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아파트 입구에 낯선 이라도 있는 날엔 한참을 걷다 들어온다고 했다. 초인종 소리도 무서워해 문 앞에 ‘누르지 마세요’ 쪽지를 붙여놓았다.언젠가 일기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딸은 누구보다 날 닮았다고. 살갑진 않지만 정 많은 모습이 비슷했다. 무뚝뚝한 것 같다가도 자는 엄마의 휴대전화를 열어 남몰래 편지를 써놓는 아이였다.‘요즘 내가 말 안 들어서 미안해. 근데 알아? 엄만 완벽해! 나를 매일 웃게 만들어 주잖아. 엄마한테 태어나서 진짜 다행이란 생각을 할 만큼 너무 좋아.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언젠간 읽겠지? 힘내!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해.’이제는 바란다. 딸은 엄마의 삶과 닮지 않기를. 그저 자신이 딸의 엄마인 것이 미안하다던 선주의 소원은 딱 하나.“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요. 가족들, 친구들이 저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사람들이 고통받는 건 다 저와 아는 사이여서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와 인연을 맺기 전으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선주는 정식 대부업체에 연락했는데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졌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0% 넘는 피해자가 불법사채를 접한 곳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했다. 그 추적기는 24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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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빚 갚기 힘들지, 우리랑 일할래?”… 불법사채 조직의 ‘은밀한 제안’[히어로콘텐츠/트랩]①-下

    불법사채는 가장 절박한 이를 노려 마지막 고혈을 빨아낸다. 정부의 미공개 조사에서 이 덫에 걸린 사람은 2022년 82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해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면서 5년 새 30만 명이 늘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2월부터 5개월간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과 피해자 등 157명을 통해 불법사채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중에는 빚을 탕감받는 조건으로 불법사채 조직에 합류했다가 인생이 뒤바뀐 김민우(가명·37)도 있었다. “대리님, 저 한 번만 더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딱 한 번 만요….”휴대전화 너머로 50대 여성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사채를 사채로 갚는 ‘돌려막기’를 하느라 스무 번 넘게 돈을 빌린 그녀가 애원하는 대상은 불법사채 조직의 말단 조직원 ‘이 대리’였다.“더 빌리면 감당 못 하실 텐데요.”이 대리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며칠 뒤, 찜찜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녀가 넘긴 ‘비상연락망’에 남편 번호가 있었다. 전화를 걸자 기운 하나 없는 목소리의 남성이 받았다.“저희 집사람이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는데…. 누구시죠?”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 여자, 나랑 전화하고 나서 쓰러진 건가. 텔레그램으로 상사에게 보고하자 평소보다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어차피 남편은 그 여자가 얼마나 빌린 줄 모르는 거지? 그럼 남편한테 더 뜯어내면 되겠네. 오케이. 넌 신경 쓰지 마.”전화를 끊자 대포폰 검은 액정화면에 새하얗게 질린 자기 얼굴이 비쳤다. 그가 불법사채 조직에 쫓기던 채무자 김민우였을 때의 얼굴이었다. 사경을 헤매는 사람도 한 푼 더 뜯어낼 먹잇감으로 보는 불법사채의 세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불법사채의 덫에 걸려 고통받던 민우가 밑바닥 조직원 이 대리가 되어 덫을 놓던, 2022년 8월경의 얘기다.● 먹잇감을 넘기면 펼쳐지는 지옥조직에 합류하기로 한 첫날. 민우는 스스로 ‘이 대리’라는 닉네임을 붙였다. 가짜 성에 직함을 붙인 닉네임을 쓰는 다른 조직원들처럼. 그리고 한 달간 조직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매일 아침 8시 서울 종로구의 A 호텔로 향했다. 저녁 6시까지 객실에 틀어박혀 직속 상사 ‘박 팀장’에게 배운 건 불법사채라는 지옥 입구에 먹잇감을 물어다 나르는 법이었다.‘김지영/주식회사XX/서울 강북구/100만 원/010-7733-XXXX’ 이름, 직장명, 거주지, 필요 금액, 연락처가 담긴 메시지. 일명 DB(데이터베이스)가 매일 100개씩 조직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라왔다. ‘상담팀’ 소속이었던 이 대리는 DB 속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 계약을 맺고 ‘비상연락망’이라며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10명의 연락처를 받아냈다. 이를 ‘수금팀’에 넘기면 1건당 2만 원을 받았다.먹잇감이 수금팀으로 넘어가면 본격적인 지옥이 펼쳐졌다. ‘니네 회사 부장한테 연락가게 해줘?ㅋㅋ’ 메시지 한 통이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왔다. 사채를 쓴 사람은 주변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채무자들은 가족상을 치르다가도 장례식장 구석에서 꼬박꼬박 답장했다. 주변에 연락가는 게 싫으면 벗은 몸을 찍어서 보내라는 요구도 거절하지 못했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바지만 겨우 내린 채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이 대리가 하루 대출 계약 10건을 채운 날. 박 팀장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이제 졸업해도 되겠다.”그리고 ‘졸업 선물’로 맥북을 건넸다. 하루 전화 10통으로 1주일에 100만 원을 벌 수 있다니. 두툼해지는 지갑이 반가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어온 먹잇감들이 지옥 속에서 어떻게 고통받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6개월 동안 이 대리가 갈망한 건 돈뿐이었으니까.● 출구 없는 미로의 시작민우의 첫 직장은 촉망받는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기울면서 월급 220만 원을 주는 중소기업으로 옮겼다. 고소득 전문직인 아버지는 탐탁잖아 하며 “돈을 더 주는 회사에 다니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더 벌고 싶은 건 민우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일을 찾다가 보험 영업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고객들이 연달아 계약을 해지하면서 2021년 10월경엔 두 달 정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생활비로 쓴 카드값 200만 원을 갚을 돈이 필요했다. 4대 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민우에게 은행 대출의 문턱은 높았다. 저소득·저신용자를 위한 정부 대출 상품 ‘햇살론’도 알아봤지만, 과거 빌린 대출금이 소득보다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가족 앞에선 돈 얘기가 안 나왔다. 민우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걸 숨기고 있었다. 정규직도 아니고 소득이 일정치 않은 보험설계사는 중소기업 사원보다 더 아버지의 눈에 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드값 얘기를 하면 “요새 뭘 하고 다니길래 그 돈이 없냐”고 캐물을 게 뻔했다.친구들에게 얘기해볼까.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위아래로 훑었다. 전화를 해도 돈 얘기는 입 안에서 맴돌았다. 별일 없지. 그래. 말만 빙빙 돌리다 전화를 끊었다.●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포털사이트에 ‘200만 원 소액대출’을 검색하자, 한 대부중개 플랫폼이 나왔다. 수백 개의 정식 대부업체들이 광고하고 있었다. 업체 몇 곳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30분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대출 문의하셨죠?”왜 엉뚱한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거지. 의아했지만 상대가 알려준 업체명은 금융감독원 사이트에서 검색까지 되는 정식 대부업체였다. 대출 심사를 받으려면 ‘비상연락망’이 필요하다는 말에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처를 넘겼다.하지만 심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상대는 “제대로 돈을 갚는 사람이라는 신용이 필요하다”며 일단 10만 원을 빌려줄 테니 1주일 뒤에 20만 원으로 갚으라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카드값을 막고 싶어 3일 만에 돈을 보냈다. 그런데 말이 바뀌었다. 자꾸만 소액부터 갚으면 원하는 금액을 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왜 말을 바꾸냐고 따지면 돌변했다.“그럼 니네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알려줄게.”아버지에게 전화가 가면 집안이 뒤집힐 게 뻔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돈을 빌리고 또 빌렸다. 갚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만 늦어도 연체비가 시간당 5~10만 원씩 붙었다. 상환 기간을 미루려면 수십만 원의 연장비를 내야 했다. 여유가 없어지자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녹음파일을 들려줬다“니 아들XX가 돈을 안 갚는다고. 이 씨XX아.”평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과호흡으로 쓰러지곤 했던 어머니가 이런 전화를 또 받게 할 수는 없었다. 돌려막기가 계속됐다. 연락처를 넘긴 친구들에게는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걸어 말했다.“내가 어디서 돈을 좀 빌렸는데. 상황이 꼬였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일단 받지 말아봐…. 나중에 얼굴 보고 다 설명할게.”밤낮으로 주차장 발렛 파킹 아르바이트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6개월 동안 쓴 사채 원금은 255만 원. 이미 약 1000만 원을 보냈는데도 갚아야 할 돈 130만 원이 남아 있었다. ● 출구가 보인다는 착각“돈 때문에 힘든 것 같은데 여기서 일해 볼래요? 지금 남은 130만 원, 까줄 수 있는데.”그날 걸려 온 불법 사채업자의 전화는 평소와는 달랐다. 반말하던 그가 갑자기 존댓말을 쓰며 조직에 들어오면 남은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했다.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끔찍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니. 흔들렸다.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에 다음 날 약속 장소였던 A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박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너만 잘하면 한 달에 1500만 원도 벌 수 있어. 못해도 500만 원은 벌 거고.”그리고 퀵서비스로 도착한 대포폰 2대를 건넸다.위험한 제안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끔찍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자신 때문에 고통받던 가족들의 괴로움까지 끊어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 달에 1500만 원까지 벌 수 있다니.‘그래. 돈만 바짝 벌고 금방 관두면 괜찮을 거야.’평범한 영업사원이었던 민우가 불법사채 조직에 몸담은 첫날이었다.● 고객도 경찰도 속이다교육을 마친 이 대리는 대포폰과 노트북만 들고 모텔을 전전하며 일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배운 그대로 뱉으면 됐다.“고객님. 처음에 10만 원이나 15만 원을 쓰시고 1주일 뒤에 20만 원이나 28만 원으로 상환해 주시면, 이제 신용이 쌓여서 고객님께 100만 원 대출을 진행해드릴 수 있습니다.”‘조금씩 많이’ 빌리게 꼬드긴 뒤, 비상연락망을 인질 삼아 악착같이 돈을 뜯어내는 게 이들의 표준 수법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하루 세 번 계약 실적을 텔레그램으로 보고하기 전에는 고객이 보낸 비상연락망의 진위도 확인했다. 수금팀이 채무자의 가족에게 연락해 협박하려면, 비상연락망이 진짜여야만 하니까. 채무자의 비상연락망이 가짜면 그가 빌려 간 돈의 절반을 담당 상담원의 주급에서 깎았다.“택밴데요. 여기 101동 501호 XXX 씨 집 앞인데 문 앞에 두고 갈까요?”“우리 아들이 시킨 건가 보네. 근데 501호가 아니라 502호예요.”대포폰으로 택배 기사인 척 전화하면 고객이 넘긴 가족의 연락처와 주소가 진짜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일하는 동안 피해자 신고를 받은 경찰이 6차례 연락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법사채가 아니라 제가 빌려준 돈 받는 거예요”라며 ‘배 째라’ 식으로 나가고 전화를 끊으면 그만이었다. 대포폰과 대포통장, 텔레그램을 쓰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쉽지 않다는 걸 조직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조직의 행동강령은 철저했다. 조직원끼리는 서로 이름과 나이, 연락처를 밝히지 않았다. 대포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은 끄고, 수당은 무인택배함을 통해 받았다.교육 장소였던 A 호텔이 종로경찰서와 300m 거리인데도 박 팀장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덴 이유가 있었다. ● 휴대전화 너머의 ‘민우’들이 대리는 고객도 경찰도 속여가며 1주일에 180만 원까지 벌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찜찜했다. 채무자들에게서 자꾸만 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업체 이름을 물어보는 고객에겐 금감원 사이트에 올라온 업체 중 아무거나 하나 골라 말했다. 민우가 그랬듯, 이 대리의 고객들도 대부업체 이름을 듣고 나면 안심했다.“정신 차려 보니까 서른네 번이나 빌렸어요. 저 와이프도 있고 아기도 있는데.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어느 날, 돌려막기의 늪에 민우보다 더 깊숙이 빠져 있었던 40대 남성이 추심을 막아달라며 애원했다. 냉정하게 전화를 끊고 나니 민우보다 더 고통스럽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멍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이 대리를 보며 다른 조직원 중 한명은 말했다.“야, 다른 채무자 출신 애들은 잘만 하던데 넌 왜 그러냐?”이 대리를 포함한 상담팀 직원 6명 중 4명은 ‘채무자 출신’이었다. 민우보다 10살쯤 어린 20대 남성들이었다.● 이 대리의 마지막 고객점차 돈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특히 쓰러진 50대 여성의 소식을 조직에 알린 그날. 스무 번 넘게 사채를 써 조직에서 ‘VIP’로 통한 그녀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VVIP’가 된 그 순간. 더 이상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만두기로 마음을 굳힌 뒤 떠오른 사람은 26살 박상아(가명)였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느라 늘 돈이 필요했던 상아. 조직원들은 상아를 ‘우리가 데리고 노는 애’라고 부르며 여러 번 돈을 빌리게 유도했다.어린 상아에게 못 할 짓을 했다는 생각에 평생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망설이다 상아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정말 병원에 있는 게 맞냐고 물었다.그리고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으로 향했다. 혹시 누가 볼까 싶어 본인과도 상아와도 관련 없는 동네를 골랐다. 물품보관함에 100만 원을 넣고 다시 상아에게 전화해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말했다.“저는 일 그만둡니다. 제가 돈 줬다는 건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세요. 이 핸드폰으로 고맙다는 문자 같은 것도 보내지 마시고요.”이 대리의 대포폰 마지막 통화였다.● 영원히 따라다닐 그림자상아와 통화를 마친 뒤 팀장에게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자 한 남성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루 15건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전화를 걸어 앳된 목소리로 욕을 퍼붓던, 그래서 조직의 가장 ‘윗선’이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너 정말 후회 안 하겠어? 어디 가서 이런 돈 만질 수 없을 텐데. 지금 나가면 다시는 이 바닥에 못 들어와.”돈 이야기뿐이었던 대화는 욕 한마디 없이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쉽게 이 대리를 놔준 건, 또 다른 대리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대리로 산 4개월이 끝났다.조직에서 빠져나온 뒤엔 경찰에서 연락이 올까 두려웠다. 처음 조직에 합류할 때 신분증이랑 등본 사본을 넘겼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면 ‘꼬리 자르기’를 하기 위해 그 정보만 넘길 수도 있었다. 한 달 동안 민우의 휴대전화는 비행기 모드였다. ‘5000% 살인 이자… 불법 사채조직 검거’ 이 뉴스를 본 건 1년쯤 지난 뒤였다. 익숙한 닉네임과 수법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우에게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돈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깨달은 그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 돈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빠져나오지 못하게끔 사지를 단단히 묶어두는 인간의 악랄함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사람도 믿지 못하게 됐다.지금 평범한 회사원인 민우의 주변 사람 중 누구도 한때 이 대리로 불렸던 시간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절은 불법사채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는지 생생히 증언한다. 그 어두운 기억은 앞으로도 한낮의 그림자처럼 민우의 곁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민우는 정식 대부업체에 연락했는데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졌을까. 조직의 ‘먹잇감’이 모인 DB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0% 넘는 피해자가 불법사채를 접한 곳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했다. 그 추적기는 24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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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순간 ‘딸 판 여자’ 된 엄마… 40만 원이 낳은 비극[히어로콘텐츠/트랩]①-上

    불법사채는 가장 절박한 이를 노려 마지막 고혈을 빨아낸다. 정부의 미공개 조사에서 이 덫에 걸린 사람은 2022년 82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악화해 서민들이 벼랑으로 몰리면서 5년 새 30만 명이 늘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올 2월부터 5개월간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과 피해자 등 157명을 통해 불법사채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중에는 아이 학원비를 대려다 불법사채의 늪에 빠진 강선주(가명·48)도 있었다.4월 25일, 어쩐지 고단하게 느껴지는 오후 4시쯤이었다. 마침 하굣길이었을 중학생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딸!”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앞뒤 없이 말을 쏟는 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 나한테 막 이상한 문자들이 와. 이게 다 뭐야?”선주는 순간 직감했다. 그놈들이 내 딸에게도 연락했구나. 일하다 말고 집으로 뛰어갔다. 딸은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뜯어대고 있었다. 띵동! 띵동! 띵동! 딸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쏟아졌다. 모두 [국제발신]이라 적힌 알 수 없는 번호였다.“대구 76년생 강선주 딸 하윤(가명)아. 지금 사람 한 명 보냈거든. 그 아저씨한테 X주면 돼. 알겟(겠)지??”“넌 몇 살이야? 우리 하윤이 걸X면 오빠가 좀 그런데”심장이 쿵쾅거렸다. 물에 빠진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엄마 나 어떡해? 너무 무서워.” 딸의 목소리마저 웅웅거려 잘 들리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향해 뛰었다. 걸쇠를 건 선주는 몸을 떠는 딸을 안으며 말했다. 엄마 휴대전화가 해킹당한 거야. 괜찮아. 괜찮아.하지만 선주는 알고 있었다. 그놈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놈들은,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딸의 몸을 빌려달라 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할 쌀값“엄마는 맨날 일하는데 왜 돈이 없어?”외식하자는 아이들에게 군색하게 군 날, 초등학생 아들이 옆에 와 앉았다. 말없이 웃으면 아들은 꼬깃꼬깃한 천 원 몇 장을 꺼내 건넸다. “이거 엄마 써!” 그 작은 손을 보며, 선주는 야속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서른둘 나이에 아기용품 사업 시작, 2년 만에 당한 사기, 빚 8000만 원을 갚느라 8년. 마흔셋에 작은 수선집을 마련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좋아하던 뜨개질을 할 수 있었으니까. 내겐 의젓한 딸과 명랑한 아들이 있었으니까.다짐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22년 11월. 남편이 해고당했다.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다는 이유였다. 며칠 내리 누워만 있는 남편의 등을 보았다. 남편도 얼마나 놀랐을까? 기죽지 말자고요, 내가 더 힘내볼게. 그날 선주는 남몰래 일기를 눌러 적었다.남편은 수선집을 함께 키워보자고 했다. 하지만 많아 봐야 월 100만 원인 수익. 네 식구에겐 턱없이 모자랐다. 꿈에서도 미싱을 돌렸다. 그곳에서라도 바쁘면 깨어나 기분이 좋았다. 오전 8시 수선집으로 출근해 적은 일기는 매일 같았다. ‘오늘은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1년 만에 모아뒀던 돈이 바닥났다. 친척과 지인들에게 5만 원, 10만 원씩 빌려 아이들 밥을 먹이고 학원을 보냈다. 한참 뜸 들이다 돈 이야길 꺼내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빌려주겠다”던 친구 몇몇은 연락을 차단했다. 그때마다 아이들만 생각했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을 보내던 올 3월 초, 그 주에도 돈 나갈 구멍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어머니, 이번 달 학원비가 비어요.”“엄마! 나 마라탕 먹고 싶어!”“엄마, 동생 밥해 먹이려는데 집에 쌀이 없어.”어디 쌀 훔쳐 올 곳 없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던 그때. 지잉, 지잉, 휴대전화가 요란스레 울렸다.집으로 달려가 보니 곳곳이 빨간딱지였다. 은행 빚이 밀렸던 터였다. 일부인 30만 원을 내면 당장 압류는 정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학원비, 쌀값, 월세…. 계산이 꼬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결국 다음 날 휴대전화를 열었다. 더 이상 지인들에게 빌릴 생각은 없었다. 적선하듯 보는 눈초리, “쌀 살 돈도 없으면서 애는 왜 키우냐”는 찬 소리.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편했다. 포털에 ‘대출’을 쳤다. 한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수백 개의 대부업체 광고가 떠 있었다. ‘정식 등록업체’ ‘안전하고 빠른 대출’ 쏟아지는 광고 문구 속 ‘당일 대출 가능’을 봤다. 3월 5일 문자를 보냈다.“돈이 필요해요.”● 박 실장의 친절함에 속다문자를 보내자마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는 자신을 박 실장이라 소개했다. 문자 보낸 대부업체의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했다. “경기가 참 어려워요. 아이는 키우시나요? 너무 힘드셨겠어요.” 오랜만에 듣는 따뜻한 말투였다.꽤 긴 시간 서러움을 토했다. 수화기 너머로 안타깝다는 듯한 숨소리가 들렸다. 선주는 제 처지를 알아주는 박 실장이 다정하다고 생각했다.전화를 끊은 그는 돈을 빌리는 데에 필요한 서류 목록을 보냈다. 신분증과 등본, 초본,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비상연락망. 가족과 친구, 거래처의 연락처를 보내자 답장이 왔다. 그중엔 딸의 전화번호도 있었다. ‘빨리 받으실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당장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숨이 쉬어졌다.박 실장이 빌려준 돈은 40만 원, 일주일 뒤 갚아야 할 돈은 60만 원이었다. 5일 뒤 거래처에서 선금을 받으면 갚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발주가 미뤄지며 계획이 틀어졌다. 상환 당일, 박 실장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저…오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내일 드려도 될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에게서 다정함은 볼 수 없었다.‘야, 장난치냐? X소리 말고 빨리 입금해라.’그는 빌려서라도 갚으라며 다른 사람을 연결했다. 박 실장의 원금은 김 실장에게 빌렸고, 김 실장의 원금은 임 실장에게 빌려 갚았다. 상환일을 며칠만 미루려 해도 수십만 원의 연장비를 요구했다. 갚기로 한 시간보다 1분만 늦어도 연체비가 5만~10만 원 붙었다.그렇게 6주 사이 돈 빌린 사람만 8명. 40만 원은 583만 원이 돼 있었다. 8명의 독촉 전화는 밤낮이 없었고,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대출 상담을 권하는 문자도 수십 통이 날아왔다. 이자 대신 다른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끼리 ‘또라이돈’이라고 불렀다. “원나잇 해주고 싼 이자로 돈 빌려주는 거예요.” 제안을 거절하고 전화를 끊은 선주는 치를 떨었다.욕설이 섞인 폭탄 문자에 “돈 갚으라고 함. 전달”이라는 문구가 딸려올 때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채무자들이 불법사채 조직한테 협박당해서 보낸 것이었다. 놈들은 이자를 몇 푼 깎아주겠다며 절박한 피해자를 범죄에 동원하고 있었다.이젠 누구에게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두려운 마음에 박 실장의 전화를 피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왔다.‘안 되겠네.’ ‘이제 시작해보자.’ ‘너, 내가 칼로 쑤셔줄게.’누구라도 가게 앞을 지나면 몸이 움찔거렸다. 세워둔 차가 보이면 가게 문을 잠갔다. 들어오는 손님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이 박 실장일까?’ 혼자 있는 시간에는 가게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구석으로 가 미싱을 돌렸다. 그들은 날 알지만, 나는 그들을 모른다는 불안감. 지켜보고 있다는 공포에 손이 떨렸다.그러던 4월 23일,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평생 니 딸 괴롭혀줄게.’ 이어 도착한 문자에는 딸아이의 학교와 반, 선생님 이름과 번호, 교무실 번호가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더는 혼자 안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경찰서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40만 원의 대가“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네가 저질렀으니 네가 해결해야지.”해고당한 후 내내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남편의 첫 마디였다. 차갑다 못해 매서웠다. 원통했던 건 남편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식당 일을 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선집 일을 마치면 밤 12시. 잠시 소파에 눈을 붙이면 금세 해가 밝았다. 그 햇살이 ‘지금 잠을 잘 자격이 있냐’고 묻는 듯했다.점점 남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선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이혼 이야기가 오갔다. 뇌졸중과 고지혈증으로 처방받았던 약을 쓸어모았다. 한 번에 털어 넣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포털에 ‘살기 싫을 때’를 썼다. 자살예방상담전화 번호가 떴다. 전화를 거니 “우울감이 심해 보인다.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돈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 더 그 번호로 전화해 속을 털어놓았다.“돈 빌린 것, 다 제 잘못 맞아요. 그런데 살고 싶어서 선택한 일인데, 왜 이렇게까지 돼야 할까요.”그놈들에겐 “경찰에 신고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조롱만 돌아왔다. “가서 신고해ㅋㅋ 대포폰 써서 니넨 우리 못 잡아.”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경찰에서 들은 말이 그거였다. 놈들은 경찰이 손쓰지 못하는 걸 알기라도 하듯 더 날뛰었다. 초 단위로 문자와 전화가 왔다. 오전 8시 18분부터 시작된 임 실장의 전화는 4시간 32분 동안 이어졌다. 총 764통이었다. 견딜 수 없던 건 내 손으로 번호를 넘긴 사람에게도 연락이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4월 25일,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한테 막 이상한 문자들이 와. 이게 다 뭐야?”● 엄마의 소원그날 이후 딸은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등하굣길은 어쩔 수 없이 친구들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아파트 입구에 낯선 이라도 있는 날엔 한참을 걷다 들어온다고 했다. 초인종 소리도 무서워해 문 앞에 ‘누르지 마세요’ 쪽지를 붙여놓았다.언젠가 일기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딸은 누구보다 날 닮았다고. 살갑진 않지만 정 많은 모습이 비슷했다. 무뚝뚝한 것 같다가도 자는 엄마의 휴대전화를 열어 남몰래 편지를 써놓는 아이였다. 요즘 내가 말 안 들어서 미안해. 근데 알아? 엄만 완벽해! 나를 매일 웃게 만들어 주잖아. 엄마한테 태어나서 진짜 다행이란 생각을 할 만큼 너무 좋아.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언젠간 읽겠지? 힘내!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해.’이제는 바란다. 딸은 엄마의 삶과 닮지 않기를. 그저 자신이 딸의 엄마인 것이 미안하다던 선주의 소원은 딱 하나.“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요. 가족들, 친구들이 저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사람들이 고통받는 건 다 저와 아는 사이여서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와 인연을 맺기 전으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선주는 정식 대부업체에 연락했는데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졌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0% 넘는 피해자가 불법사채를 접한 곳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든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했다. 그 추적기는 24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2회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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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전드의 귀환… 조용필, 정규앨범 20집 들고 온다

    올해 가요계는 레전드 가왕과 30대 솔로 강자, 유망 신인 그룹이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조용필, 이문세, 아이유, 지드래곤 등 내로라하는 강자들의 컴백이 펼쳐진다. SM엔터테인먼트, 하이브 등 대형 기획사들이 준비 중인 신인 그룹들도 눈길을 끈다.● 레전드 가왕들의 복귀 올해는 거물들의 신곡이 팬들의 귀를 호강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데뷔 55주년을 맞아 대규모 공연을 이어온 조용필은 올해 정규앨범 20집을 내놓는다. 2013년 19집 ‘헬로’ 이후 11년 만의 정규 앨범이라 많은 관심이 쏠린다. 그는 지난해 4월 싱글 ‘라’, ‘필링 오브 유’를 내며 20집 발표에 시동을 걸었다. 소속사 YPC는 “과거와는 다르게 2022년과 2023년 연이어 싱글을 발매하는 등 정규 앨범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시인’ 이문세도 올 상반기(1∼6월) 중 정규 앨범 17집을 발표한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내놓는 정규 앨범이다. 앞서 지난달 21일 신보 수록곡 중 하나인 ‘웜 이즈 베터 댄 핫’을 먼저 선보였다. 재즈클럽에서 듣는 듯한 생생한 악기 연주가 매력적인 곡이다. 이문세는 3월부터 전국 투어 ‘2024 씨어터 이문세’를 시작하며 먼저 무대에서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30대 솔로 강자들의 컴백 레전드 가왕들 못지 않게 30대 솔로 강자들의 컴백 무대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드래곤은 올 상반기 중 새로운 앨범 발표를 예고했다. 그는 최근 인공지능(AI) 메타버스 기업 갤럭시코퍼레이션에 새 둥지를 텄다. 지난달 21일 자필 편지를 통해 “저의 책임을 다하며 컴백해 아티스트로서의 책임도, 사회적 책임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유도 올 상반기 2021년 미니 앨범 ‘조각집’ 발표 이후 3년 만에 돌아온다. 아이유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의 토크 콘텐츠 ‘슈취타’에 최근 출연해 “5∼6곡이 담긴 미니앨범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1월에는 한국에 거의 없다. 새로운 그림을 담고 싶어 해외에서 막바지 작업을 할 것 같다. 컴백 이후에는 투어도 돈다”고 말했다. 아이유의 신곡 뮤직비디오에 BTS 멤버 뷔가 출연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일본 진출 등 주목받는 신인 그룹들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선보이는 신인들도 주목할 만하다. 이 중 그룹 ‘투어스(TWS)’는 하이브 계열의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가 세븐틴 이후 9년 만에 내놓는 보이그룹이다. 플레디스 측은 “탄탄한 퍼포먼스와 비주얼, 탁월한 음악 감각을 지닌 최정예 6명”이라고 소개했다. 22일 데뷔 앨범을 내놓을 예정이다. ‘아이돌 맛집’으로 통하는 에스엠도 상반기 6인조 보이그룹 ‘NCT NEW TEAM’(가칭)을 선보인다. 일본 현지를 중심으로 활동할 예정인 이들은 정식 데뷔에 앞서 지난달 일본 9개 도시에서 24회에 걸쳐 데뷔 투어를 진행했다. 에스엠은 지난해 2월 ‘SM 3.0’ 전략을 발표하며 “이들을 마지막으로 NCT의 무한 확장 콘셉트를 종료하겠다”고 밝혔었다. 에스엠은 올해 중 그룹 에스파에 이어 4년 만에 걸그룹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신예 그룹 베이비 몬스터도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앞서 이들은 지난해 11월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며 데뷔했다. 올해는 2월 신곡 ‘스턱 인 더 미들’을 내놓는 데 이어 4월에 첫 미니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 반경을 넓힐 계획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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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배 빨리 들으니 더 신나네” Z세대 음악 ‘스페드 업’ 바람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최근 몇 년 새 ‘빠른 호흡’의 음악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원곡을 1.5배속, 2배속 등 빠른 속도로 감상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가 된 것. 수년 전 발표된 곡이라도 재생 속도를 빠르게 할 경우 가수의 목소리나 곡의 분위기가 바뀌어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12월 21일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인 멜론 차트 톱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발표 10년 만에 역주행에 성공한 보이그룹 엑소의 곡 ‘첫 눈’이 대표적이다. 원곡은 잔잔한 어쿠스틱 팝이지만 최근 한 틱토커가 빠른 배속 버전의 ‘첫 눈’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며 주목받았다. 일명 ‘댄스 챌린지’로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원곡 ‘첫 눈’의 음원 역시 2013년 발표 이후 10년 만에 재조명됐다. ‘배속 음원 문화’ 트렌드는 틱톡, 쇼츠(유튜브), 릴스(인스타그램) 등 60초 이내의 짧고 간결한 동영상이 대세로 자리 잡은 쇼트폼(short form) 콘텐츠의 홍수 현상과 맞물려 있다. 이들 영상에 빠른 호흡의 곡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새로운 경쟁력을 지니게 된 것. 지난해 데뷔 4개월 만에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한 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곡 ‘큐피드’도 배속 버전이 틱톡에서 유행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가요 기획사와 가수들은 Z세대의 취향을 반영해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을 따로 내놓기도 한다. 스페드 업은 특정 노래의 속도를 원곡에 비해 120∼150%가량 빨리 돌려 듣는 2차 창작물이다. 걸그룹 에스파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곡 ‘드라마’와 ‘징글 벨 록’의 스페드 업 버전을 지난해 12월 15일 내놓았고, 또 다른 걸그룹 ‘르세라핌’ 역시 지난해 10월 첫 영어 디지털 싱글 ‘퍼펙트 나이트’를 발매하며 스페드 업 버전을 내놓았다. 힙합그룹 다이나믹 듀오는 9년 전 발매한 곡 ‘AEAO’를 스페드 업 버전으로 재해석해 지난해 8월 발표했다. 해외에서도 ‘스페드 업’ 곡들이 주목받고 있다.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2011년 발표곡 ‘Bloody Mary’ 역시 한 틱톡커가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의 한 장면에 빠른 버전의 ‘Bloody Mary’를 삽입한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되며 2022년 각종 음원 파트를 역주행했다. 결국 레이디 가가는 11년 만에 해당 곡의 스페드 업 버전을 공식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도 2014년 곡 ‘I’m Not The Only One’의 스페드 업 버전을 내놓았다. ‘스페드 업’ 버전의 곡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개 보컬이나 악기 녹음을 따로 하진 않고, 원곡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원곡 음의 속도나 높이를 조정하는 식이다. SM엔터테인먼트 ONE 프로덕션 장샛별 A&R 리더는 “댄스 챌린지는 이제 하나의 놀이가 됐다. 빠른 속도의 곡에 댄스의 난도가 높아지면 소비자들에겐 더욱 도전적인 오락 활동으로 인식된다”며 “이는 원곡 음원 소비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문화계 전반에 퍼져 있는 배속 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쇼트폼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빠른 템포의 곡이 생겨났다”며 “이러한 경향이 심화될수록 음악과 영상 등 콘텐츠의 원래 속도에 대해 쉽게 지루해진다. 제작자 역시 자극적이고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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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름다운 ‘죄’ 아닌 ‘재’가 될 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홀로 지샌 긴 밤이여” 1985년 발매된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은 녹음 과정에 좌충우돌이 있었다. “아름다운 재…” 조용필이 노래하자 녹음실에서 황급히 정지 버튼을 눌렀다. “아니 아니 재가 아니고 죄!” 자꾸 버튼을 누르자 조용필도 성질이 났는지 노골적으로 “재!” 했단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곡의 작사가인 저자는 “가만 생각하니 조용필 씨가 맞다”며 “사랑은 아름다운 죄가 아니라 아름다운 재, 세월의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는 아름다운 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책은 수많은 명곡의 작사가인 저자가 30곡을 선별해 각 곡의 탄생 비화를 밝힌 에세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년)은 김희갑 작곡가에게 “대중가요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하는 방법은 없나요?”라고 물었던 저자가 위로의 글을 풀어놓은 작품. ‘립스틱 짙게 바르고’(1987년)는 전설적인 스파이 마타하리가 변장을 하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체포되는 순간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했다. 또 다른 볼거리는 사진과 그림이다. 곳곳에는 저자가 간직해온 악보들과 그 시절 음악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신재흥 작가의 자작나무 그림 또한 소소하고 잔잔한 글과 함께 감상하기 적합하다. 글의 말미에는 QR코드가 있어 노래가 탄생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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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태롭고, 우정같고, 재회하고… ‘3색 연애’의 색다른 맛

    “드라마 ‘남과여’는 연애에 관한 현실 공감 포인트가 상당한 작품이에요.” 26일 오후 10시 반 첫선을 보인 채널A 새 드라마 ‘남과여’의 주연 배우들이 드라마 방영에 앞서 이날 열린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작품에 대한 질문에 공통적으로 내놓은 답이다. 2014, 2015년 네이버웹툰 연재 당시 평점 1위에 올랐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사귄 지 7년째 되던 날 모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이성 곁에 있는 서로를 마주하게 된 정현성(이동해)과 한성옥(이설), 친구에서 연인이 된 오민혁(임재혁)과 김혜령(윤예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안시후(최원명)와 윤유주(백수희)까지, 20대 세 커플의 연애 이야기와 성장통을 그렸다. 오민혁 역을 맡은 임재혁은 “군대에서 원작 웹툰을 봤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웹툰을 접했는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보면서 울었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출연하고 싶었다”며 “시청자들도 많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배우들은 드라마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로 배우 간의 ‘케미스트리’를 꼽았다. 7년 차 장기 연애 커플을 연기하는 이동해와 이설은 풋풋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표현해야 했기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동해는 “이설 배우를 처음 만났는데 첫 촬영이 이별하는 장면이었다. 그냥 이별도 아니고 7년 세월의 마지막이라 솔직히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영상통화로 자주 연락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3개월의 촬영 기간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지낸 사람 같다. 촬영 기간이 7년 같았다”고 밝혔다. 임재혁도 상대 역인 윤예주를 칭찬했다. 임재혁은 “민혁이 중학교 동창으로 만나 15년 동안 친구 사이로 지낸 혜령에게 낯선 감정을 느끼고 이를 부정하는 시기가 있는데 이때 연기가 참 어려웠다”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 윤예주 씨가 이해해주고 함께 고민해줘 잘 그려낼 수 있었다”고 했다. ‘남과여’는 방송 전부터 원작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이 화제가 됐다. 이설은 “저는 싱크로율이 85% 이상인 것 같다. 원작 작가인 혀노 씨가 ‘생각했던 캐릭터의 실제 성격, 체격, 눈매,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임재혁 역시 “(싱크로율이) 90% 이상 되는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남과여’에선 남녀 간의 로맨스 외에도 동성 간의 진한 우정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설은 절친 류은정 역의 박정화에 대해 “작품에 몰입하다 보니 진짜 친구가 됐다. 둘이 따로 만나기도 하고 저희 집에 초대해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정화도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설 씨와 사이가 끈끈해져서 촬영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극 중에서 일명 ‘전계동 진상들’로 불리는 남자 배우들의 ‘케미’도 시선을 끈다. 이들은 짠내 나는 청춘들의 고민으로 많은 공감을 살 예정이다. 이동해는 “전부터 하고 싶었던 연기 중 하나가 브로맨스였는데 이들을 만나 성공했다”며 “시청자들도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 저랬는데’라고 느낄 것”이라고 했다. 모태 솔로인 김형섭 역을 맡은 김현목은 “서로 놀리기 바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에게 의지하는 순간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26일 시작한 ‘남과여’는 총 12부작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10시 반에 방영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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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를 시작하거나, 시들하거나, 헤어진 분들은 꼭 보셔야”

    26일 오후 10시 반 첫선을 보이는 채널A 새 드라마 ‘남과여’는 청춘들의 현실 공감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 주요 캐릭터인 20대 청춘 세 커플 가운데 중심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은 권태기를 겪고 있는 장기 연애 커플 정현성과 한성옥이다. 이들은 만난 지 7년째 되던 날, 모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이성 곁에 있는 서로를 마주한 뒤 서서히 결별한다.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에서 패션 디자이너 정현성 역의 배우 이동해(37)와 주얼리 디자이너 한성옥 역의 이설(30)을 14일 만났다. 두 배우는 드라마 ‘남과여’에 대해 “선택이 참 쉬웠던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슈퍼주니어 출신인 이동해는 “대본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때 안 하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4부 대본까지만 봤는데도 뒷이야기가 계속 기대됐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원작인 혀노 작가의 동명 웹툰 팬인 이설은 “제목을 듣자마자 대본도 읽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며 웃었다. 그는 “보통은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부터 그리는데, ‘남과여’는 연인이 헤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별할 때 겪는 많은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원작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은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다. 두 배우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배역과 실제 성격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설은 이동해에 대해 “다정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며 “무신경한 현성이와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이동해 또한 이설에 대해 “생각이 많고 상대를 기다리는 데 익숙한 성옥과는 달리 하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두 배우는 작품 속 커플을 보며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이설은 “캐릭터들에게 ‘대화 좀 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며 “서로에게 맞는 화법이 있었다면 현성이와 성옥이에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동해도 “촬영 내내 ‘익숙함에 속지 말자’라는 뻔한 말을 피부에 와닿게 배운 느낌”이라며 “먼저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좀 더 솔직하게 표현했더라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을 것”이라고 했다. ‘남과여’는 현실 연애를 그린 드큐멘터리(드라마+다큐멘터리)를 표방한다. 두 배우가 중점적으로 고민했던 지점도 “날것 같은 연인 간의 표현법”이었다. 이동해는 “촬영 시간 외에도 이설 씨와 자주 통화하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며 “최고의 파트너”라고 했다. 촬영 현장에서 이설은 ‘대장’으로 불린다.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이설은 이동해에게 “해외 일정이 많아 피곤할 법도 한데, 늘 흔쾌히 응답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두 배우가 꼽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현실성을 잘 살린 것들이다. 이설은 양치를 하며 성적(性的)인 얘기를 덤덤하게 하는 ‘욕실 장면’을 꼽았다. 그는 “오래되고 익숙한 관계에서만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진행된다. 다행히 많이 친해진 막바지 촬영 때 찍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장면’을 선택한 이동해는 “다른 이성과 함께 있는 연인을 모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는 상황 자체가 주는 많은 감정이 있다. 계속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 했다. “연애하고 있다면 ‘어? 나 정신 차려야지’, 연애를 시작한다면 ‘좀 더 설레는 연애를 해봐야지’, 헤어진 분들은 ‘더 늦기 전에 내 사람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이동해) “‘내가 저랬지, 너도 저랬지, 걔도 그랬잖아’ 같은 다양한 만남과 헤어짐을 돌아볼 수 있는 드라마였으면 해요.”(이설) 26일부터 시작하는 드라마 ‘남과여’는 총 12부작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10시 반에 방영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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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2023 출판 키워드… 챗GPT, 전쟁, 위로

    인공지능(AI), 전쟁, 위로…. ‘올해의 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동아일보 올해의 책 선정위원들이 1표 이상씩 추천한 책에는 2023년 한 해를 설명해주는 키워드가 녹아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서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시기라는 점에서 과거를 분석해 교훈과 방향을 모색하는 책이 여럿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챗GPT를 비롯한 AI 개발이 화두인 가운데 과학 서적이 추천을 많이 받았다. 과학자인 저자가 챗GPT와 대화한 내용을 담은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김대식, 챗GPT 지음·동아시아)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반도체’로 여겨지는 닥나무를 분석한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이정 지음·푸른역사)가 꼽혔다. 박상준 민음사 대표는 ‘휘어진 시대’(남영 지음·궁리)를 추천하면서 “놀라운 과학적 발견의 연관을 ‘뭉클한’ 과학 인물 열전으로 담아냈다. ‘한 시대의 평전’으로 고전이 될 책”이라고 했다. 과학교양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김상욱 지음·바다출판사), ‘우리 우주의 첫 순간’(댄 후퍼 지음·해나무)도 추천을 받았다. 장기화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스트롱맨’ 지도자들의 확산, 허위 정보 범람 등 세계적인 각종 위기 현상을 반영한 책도 많았다. ‘일론 머스크’(윌터 아이작슨 지음·21세기북스), 소설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김진명 지음·이타북스)이 꼽혔다. 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정아은 지음·사이드웨이)을 추천하며 “독재자가 어떻게 권력을 얻었고 멀쩡하게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는지에 관한 인문적 조망이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했다. 책을 찾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위로일 것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강용수 지음·유노북스)에 대해 “절망의 바닥에서 행복을 찾는 그의 철학이 와닿을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 소설 작가가 일기의 효능과 가치를 알려주는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이경혜 지음·보리출판사)와 성선설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스테퍼니 프레스턴 지음·알레), 에세이 ‘딸이 무너져 있었다’(김현아 지음·창비)도 꼽혔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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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기 웹툰이 TV 드라마로… “내 망상이 현실이 된 느낌”

    26일 오후 10시 반 첫선을 보이는 채널A 새 드라마 ‘남과여’는 2014, 2015년 네이버웹툰 연재 당시 평점 1위에 오를 만큼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드라마는 만난 지 7년째 되던 날 모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이성 곁에 있는 서로를 마주하게 된 한 커플 정현성(이동해)과 한성옥(이설)을 비롯해 친구에서 연인이 된 오민혁과 김혜령,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안시후와 윤유주 등 20대 청춘 세 커플의 연애 스토리와 성장통을 그렸다. 원작 웹툰의 작가인 혀노(본명 정현호·32)를 1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2012년 시니 작가와 함께 ‘죽음에 관하여’로 데뷔한 그는 ‘네가 없는 세상’(2013∼2015년), ‘남과여’ 등 내놓는 작품마다 높은 평점을 얻으며 인기 작가가 됐다. 그는 올해 9월 채널A 드라마 ‘남과여’ 촬영 현장을 찾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제 망상이 현실이 된 느낌이었다. 뭉클하고 또 신기했다. 내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잘됐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웃었다. 웹툰 ‘남과여’는 연재 당시 20대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 예고편이 공개된 뒤 2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웹툰 캐릭터와 드라마 주인공들이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혀노 작가는 “배우들과 캐릭터의 싱크로율도 좋지만, 제작진이 옷이나 헤어 등에 신경을 많이 써주신 게 감사하다. 특히 민혁 역할을 맡은 임재혁 배우는 제 머릿속에 있던 캐릭터가 그대로 나온 수준이다”고 말했다. 그는 웹툰의 영상화가 뿌듯하면서도 다소 낯부끄럽다고도 했다. 실제 원작은 혀노 작가가 20대 시절 본인과 친구들의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최근 원작을 다시 본 그는 “‘왜 그렇게 폼을 잡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캐릭터들의 나이가 당시 제 나이와 같아서 더 몰입해 그렸다”는 그는 연재 당시를 “청춘병 걸렸던 시절”이라고 했다. “후회된다는 건 아녜요. 20대 때만큼 다른 사람을 원하고, 헤어지면 미칠 것 같은 때가 없잖아요. 지금 와서 보면 그 감정이 ‘너무 과장되지 않았나’ 싶지만, 그 감정의 과함 역시 젊은 시절에 꼭 경험해 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남과여’만의 소중한 느낌인 것 같아요. 지금 다시 그리라고 하면 사랑, 이별 다 별것 아닌 것처럼 그리겠죠.” 웹툰은 18세 이상 관람가지만, 드라마는 15세 이상 관람가다. 드라마에선 일부 외설적인 장면들을 덜어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혀노 작가는 “당시엔 저도 겉멋이 들어서 이건 10대도 30대도 공감할 수 없는 ‘20대만의 이야기’라고 착각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원작에서도 밝은 부분들을 잘 표현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됐다”며 “오히려 드라마에서 그 부분을 살려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올해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연말이다. ‘남과여’의 드라마 방송 시작은 물론이고 1년간 휴재했던 ‘별이삼샵’을 23일부터 재연재하기 때문이다. ‘별이삼샵’은 2000년대를 배경으로 10대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남과여와 별이삼샵은 제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애정이 큰 작품이에요. 남과여는 당시 저 자신 그 자체를 그렸다면, 별이삼샵은 제 옛 추억을 그린 작품이죠. 두 웹툰 모두 제 인생 이야기라 더 애착이 가요. 하하.” 26일부터 방영되는 드라마 ‘남과여’는 총 12부작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10시 반에 방영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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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 독재자에 맞선 혁명군… 칼 휘두르는 갓쓴 전사 ‘배두나’

    영화 ‘300’(2007년), ‘맨 오브 스틸’(2013년), ‘저스티스 리그’(2017년)에서 시원시원한 액션을 연출해 온 잭 스나이더 감독(57)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전사들의 이야기를 내놨다. 그는 22일 넷플릭스에 영화 ‘레벨 문: 파트1 불의 아이’(레벨 문)를 공개한다. 우주를 지배하는 제국 원더랜드가 왕위를 찬탈한 발리사리우스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 발리사리우스는 평화로운 변방 행성 벨트에도 손을 뻗친다. 위기에 빠진 벨트를 구하기 위해 2년 전 이곳에 정착한 이방인 코라(소피아 부텔라)가 나선다. 원더랜드 왕의 근위대 장교였던 코라는 발리사리우스 군대에 대항하기 위한 혁명군을 꾸린다. 파트1은 코라가 우주 곳곳의 전사들을 모으는 과정을 그렸다. 광활하고 황폐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액션이 돋보인다. 코라가 숨겼던 전투력을 드러내는 장면을 시작으로 발동 걸린 액션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혁명군의 면면도 눈길을 끈다. 전설적인 지휘관이었던 타이투스 장군(자이먼 운수), 반란군을 이끄는 다리안 블러드액스(레이 피셔), 신화적 생물체와 교감하는 능력을 가진 타라크(스태즈 네어) 등이다. 그중 눈에 띄는 전사는 네메시스(배두나)다. 네메시스는 갓을 쓰고 쌍칼을 휘두른다. 거대한 거미 괴물과 일대일 격투를 벌이며 등장하는 네메시스는 과묵하고 무표정해 저승사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나이더 감독은 대학 시절 이 이야기를 구상하고 약 20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감독은 작품의 세계관을 형상화한 그림 4000여 장을 직접 그렸고, 이는 대규모 프로덕션과 시각특수효과(VFX)를 통해 그대로 화면으로 옮겨졌다. 제작진은 약 2만 m²(약 6050평) 규모의 땅에 마을을 짓고 언어학자와 협업해 새로운 언어 3가지를 만들어냈다. 스나이더 감독은 “약자의 이야기, 악당이 착한 사람을 과소평가하지만 결국 선한 이가 기대 이상의 뭔가를 해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이런 주제는 내 영화에서 변함없이 이어졌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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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노출 부담 없었다… 연기 집중하며 카타르시스”

    “멋으로 치장하지 않은 역할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5일 만난 배우 이진욱(42)은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시즌2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일 공개된 이 드라마에서 이진욱은 감염으로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세상에서 특수감염인 정의명(김성철)에게 몸을 빼앗긴 편상욱을 연기했다. 드라마는 시즌1의 아파트 ‘그린홈’을 떠나 새 터전에서 사투를 벌이는 차현수(송강)와 그린홈 생존자들을 그렸다.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편상욱과 악랄한 정의명의 성격을 둘 다 연기해야 했기에 사실상 1인 2역이었다. 이진욱은 “김성철 배우가 (편상욱의) 초반부 대본을 녹음해 보내줬고, 그걸 바탕으로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정의명은 편상욱의 몸을 제멋대로 조종하지만, 편상욱이 마음에 품었던 박유리(고윤정)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자 당황스러워한다. 이진욱은 편상욱의 일부분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른쪽 얼굴과 왼쪽 얼굴의 분위기를 달리하는 등 디테일을 살리려 애썼다. “얼굴 좌우가 다르면 묘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투명 테이프로 오른쪽 눈꼬리를 올린 채 촬영했어요. 두통이 와서 힘들었지만 다른 느낌을 주는 데 큰 도움을 받았죠.” 정의명에게 장악당하기 전의 편상욱을 연기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원작을 보면 편상욱은 마동석 배우 이미지에 가까워요. 그런데 감독님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며 저를 선택했습니다. 나라는 배우에게서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해 처음엔 카메라 앞에 서기가 어색했어요.” 다양한 액션과 전라 노출 등 만만찮은 장면이 적지 않았다. “신인이 아니니까 현장에서 몸을 쓰고 연기하는 것이 편안하고 익숙했어요. 노출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데 촬영에 집중하다 보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 특이하거나 잔인한 장면을 연기하는 캐릭터를 만나는 건 배우로서 쉽지 않은 기회죠.” 그는 시즌1에 비해 이번에 분량이 대폭 줄었다. 그는 “솔직히 아쉬웠지만 (내년 여름 공개하는) 시즌3에서는 아쉬움이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2003년 모델로 데뷔한 이진욱은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2012년), ‘보이스’ 시즌2, 3(2018, 2019년), 영화 ‘수상한 그녀’(2014년)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올해로 데뷔 20년. 그는 “잘 살아남았다. 원체 건조한 인간이었기에 연기를 하다 보니 많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점이 좋다”고 했다. 그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에 이두나(수지)의 매니저 실장 P 역으로 특별출연했고, ‘오징어 게임’ 시즌2에 합류했다. 그는 “강렬한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인간적이거나 소소한 사랑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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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억 음반 수출 신기록… ‘빌보드 중소돌’ 몰락-SM분쟁 그늘도

    2023년 가요계는 다사다난했다. 올 1∼10월 음반 수출액(약 3209억 원)이 연간 최고치를 경신한 데 이어 대미 수출액은 전년 대비 67.3% 증가하는 등 눈에 띄게 성장했다. 한편으론 가요계를 뒤흔든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을 비롯해 ‘중소돌의 기적’이라 불린 피프티피프티의 분쟁 등 갈등도 만만찮았다. K팝 지형을 뒤흔든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올해 가요계를 정리했다. ● K팝의 대부, 이수만 퇴장 올해 초 가요계를 달군 최대 이슈는 경영권 분쟁에 빠진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인수전이었다. 하이브와 카카오는 에스엠을 인수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에스엠의 분쟁은 올 2월 에스엠 경영진이 카카오에 지분을 넘기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이에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경쟁사 하이브에 매각하면서 ‘이수만·하이브’ 대 ‘에스엠·카카오’의 지분 확보 경쟁이 벌어졌다. 결국 하이브와 카카오가 합의하며 에스엠은 카카오가 인수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 과정에서 에스엠 설립자이자 1인 프로듀싱의 대표주자였던 이 전 총괄이 퇴장하며 K팝 주요 기획사의 ‘창립자 중심 1인 체제’에 경종을 울렸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에스엠 인수전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온 대형 기획사들에 새 시대에 맞는 경영 태도를 갖지 않으면 언제든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고 말했다.● 사라진 꿈, ‘중소돌의 기적’ 피프티피프티는 올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산 걸그룹이다. 피프티피프티는 지난해 11월 데뷔한 후 5개월 만에 ‘큐피드’로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 17위에 오르는 등 25주간 상위권을 유지해 화제를 모았다. 대형 기획사가 아닌 중소형 기획사인 어트랙트 소속이어서 이들은 ‘중소돌의 기적’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올해 6월 멤버들은 돌연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후 다른 멤버들은 소송을 이어갔지만 키나는 항고를 취하하고 복귀해 현재 홀로 활동 중이다. 이 과정에서 어트랙트는 “외주 업체 더기버스가 멤버들의 전속계약 해지를 종용했다”고 주장하며 가요계에서는 탬퍼링(전속계약 기간 중 사전 접촉) 논란이 일었다.● 군인이 된 BTS… 빈자리 채우는 걸그룹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방탄소년단(BTS)은 지난해 12월 맏형 진에 이어 올 4월 제이홉, 9월 슈가, 이달 RM 뷔 지민 정국까지 멤버 전원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됐다. 9월 BTS 멤버 전원이 현 소속사인 빅히트뮤직과 재계약하면서 이들의 단체 활동은 군 복무가 모두 마무리되는 2025년 6월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BTS의 빈자리는 걸그룹이 채울 것으로 전망된다. K팝을 이끄는 또 다른 주역 블랙핑크는 멤버 전원이 최근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마쳤다. 올해 ‘디토’ ‘슈퍼샤이’ 등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기를 끄는 뉴진스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 K 없는 K팝 시대 글로벌 6인조 걸그룹 ‘캣츠아이’는 하이브가 미국 게펀레코드와 손잡고 진행한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를 통해 올해 탄생했다. 그룹이 결성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캣츠아이는 내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K팝에서 K를 떼야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창해온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비전이 담긴 그룹으로 꼽힌다. JYP엔터테인먼트도 미국 리퍼블릭레코드와 함께 미국에서 걸그룹 ‘A2K’를 제작했다. 에스엠은 내년 영국 기업 M&B와 영국 보이그룹 제작에 나선다. M&B에서 멤버를 캐스팅하면 에스엠은 음악과 뮤직비디오, 안무 등 K팝 노하우를 제공한다. 김작가 음악평론가는 “K팝이 국적이 아닌, 비즈니스 지적재산권(IP)에 기반한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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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팝 가수들 해외 공연도 국내 극장서 라이브 관람

    일본 후쿠오카 페이페이돔에서 16일 K팝 그룹 ‘세븐틴’의 콘서트 ‘세븐틴 투어 팔로 투 저팬’이 열린다. CGV, 롯데시네마 등은 영화관 대형 스크린으로 콘서트를 생중계할 예정이다. 지난달 23일 생중계 콘서트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 세븐틴 팬들 사이에선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가요계가 영화관 활용법을 다각화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아이유, 테일러 스위프트 등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촬영해 상영하는 ‘실황 영화’가 쏟아졌다. 팬데믹 이후에는 콘서트를 영화관에서 생중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3월 CGV, 롯데시네마 등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서울 콘서트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서울’을 생중계해 티켓 약 5만 장을 판매한 바 있다. 이후 BTS 멤버 슈가, NCT127, 샤이니 키 등의 콘서트 역시 영화관에서 생중계됐다. 오프라인 콘서트가 익숙하지 않거나 10만∼20만 원대의 티켓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콘서트 생중계를 통해 5만 원가량에 콘서트를 볼 수 있다. 해외 콘서트를 관람하고 싶어 하는 국내 팬들에겐 대체재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극장가에선 콘서트를 실시간으로 관람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세준 롯데시네마 얼터콘텐츠팀장은 “극장은 공연장과 가장 비슷한 상태의 공간이어서 관객들이 더욱 실감나게 공연을 볼 수 있다”며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아 콘서트 생중계는 더 대중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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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카모토 류이치 103분 작별 인사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의 야윈 등이 보인다. 올해 3월 작고한 일본의 세계적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1952∼2023)가 남긴 103분간의 작별 인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27일 개봉하는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고인의 마지막 연주를 담았다.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영화 음악, 마지막 정규 앨범 ‘12’ 수록곡까지 음악 인생을 아우르는 곡들로 채웠다. 생의 끝을 직감한 그가 ‘한 번 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로 지난해 9월 8일부터 15일까지 총 8일간 촬영했다. 고인이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곳이라 생각했던 NHK 509 스튜디오에서 하루에 3곡 정도를 2, 3번씩 촬영했다. 곡 ‘lack of love’를 시작으로 모두 20곡이 연주된다. 고독한 느낌의 ‘solitude’, 밝은 분위기의 ‘ichimei-small happiness’, 애수에 찬 ‘the last emperor’로 이어진다. 고인이 직접 선곡하고 편곡한 곡들로, 깜깜한 어둠에서 새벽과 낮을 지나 다시 밤으로 가는 하루의 시간을 표현했다고 한다. 영화는 고인의 연주와 표정에 집중한다. 그의 아들인 소라 네오 감독은 흑백으로 화면을 처리해 관객이 연주에 몰입하도록 연출했다. 그 덕에 언뜻언뜻 들리는 고인의 힘겨운 숨소리와 악보 넘기는 소리 모두 음악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생전 사카모토는 완성된 편집본을 본 후 “좋은 작품이 되었다”는 말을 남겼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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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듄: 파트2, 더 강렬하고 남성적… 한국 ‘듄친자’들에 감동”

    “한국에 ‘듄친자’(영화 ‘듄’에 미친 사람)라는 말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굉장히 감동적이다. 한국 관객들에게 빨리 ‘듄’의 세계를 공유하고 싶어 한국에 (개봉 시점보다 약 두 달 빨리) 오게 됐다.” 영화 ‘듄: 파트2’(듄2)의 내년 2월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이 8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말했다. 이날 듄2 영상을 10분가량 공개하는 푸티지 시사회가 열렸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개봉한 ‘듄’은 국내에서 154만여 명이 관람하는 데 그쳤지만, 팬덤을 형성하며 팬들의 요구로 2022년 재개봉된 바 있다. 듄 시리즈는 1965년 발표한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생명 유지 자원인 스파이스를 두고 아라키스 모래 행성 듄에서 우주의 왕좌에 오를 운명으로 태어난 폴 아트레이드(티모테 샬라메)의 여정을 그렸다. 듄2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각성한 폴이 복수를 위해 전사의 운명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빌뇌브 감독은 2년 전 전작 개봉과 동시에 듄2 촬영에 들어갔다. 전작이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소년에게 집중한 사색적인 작품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보다 강렬하다. 빌뇌브 감독은 “전편에 비해 액션이 강조됐고 진행 속도 역시 빠르다. 좀 더 남성적인 면모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전작보다 더 만족스럽다”고 했다. 빌뇌브 감독은 촬영 당시 가장 공을 들인 장면으로 폴이 샤이 훌루드(모래 벌레)를 타는 장면을 꼽았다. 전편에서 모래 벌레를 피하기 바빴던 폴은 듄2에서 성장한 전사가 된다. 빌뇌브 감독은 “거대한 크리처에 올라타는 장면을 구현할 기술을 1년 넘게 고민했다”며 “내 영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장면이었다”고 밝혔다. 또 “40% 분량만 아이맥스 전용 카메라로 촬영했던 전편과 달리 이번에는 대부분 아이맥스용으로 촬영해 거대한 자연 풍광을 만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빌뇌브 감독은 듄 파트3 각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파트3를 만들면 소설의 2부인 ‘듄의 메시아’를 후속작으로 삼아 영화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궁극적인 꿈이 있다면 제가 사랑하는 듄 유니버스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3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저와 한국이 인연을 맺게 해 준 건 영화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봤다. 특히 박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정말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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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겨운 숨소리까지 음악의 일부로…사카모토 류이치의 103분간 작별 인사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의 야윈 등이 보인다. 올해 3월 작고한 일본의 세계적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1952∼2023)가 남긴 103분간의 작별 인사는 이렇게 시작한다.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27일 개봉하는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고인의 마지막 연주를 담았다.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영화 음악, 마지막 정규 앨범 ‘12’ 수록곡까지 음악 인생을 아우르는 곡들로 채웠다. 생의 끝을 직감한 그가 ‘한 번 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로 지난해 9월 8일부터 15일까지 총 8일간 촬영했다. 고인이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곳이라 생각했던 NHK 509 스튜디오에서 하루에 3곡 정도를 2, 3번씩 촬영했다. 곡 ‘lack of love’를 시작으로 모두 20곡이 연주된다. 고독한 느낌의 ‘solitude’, 밝은 분위기의 ‘ichimei-small happiness’, 애수에 찬 ‘the last emperor’로 이어진다. 고인이 직접 선곡하고 편곡한 곡들로, 깜깜한 어둠에서 새벽과 낮을 지나 다시 밤으로 가는 하루의 시간을 표현했다고 한다.영화는 고인의 연주와 표정에 집중한다. 그의 아들인 소라 네오 감독은 흑백으로 화면을 처리해 관객이 연주에 몰입하도록 연출했다. 그 덕에 언뜻언뜻 들리는 고인의 힘겨운 숨소리와 악보 넘기는 소리 모두 음악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그러다 딱 한 번, 고인은 연주를 멈춘다. 곡 ‘aqua’를 연주하던 그는 탐탁치 않은 숨을 내쉬다 “다시 합시다”라며 건반에서 손을 뗐다. 이어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시절 만든 곡 ‘tong poo’까지 연주를 마치곤 한 마디를 더 얹었다.“잠시 쉬고 하죠. 힘드네. 무지 애쓰고 있거든.”내내 굳게 다문 입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던 사카모토였지만, 후반부 곡 ‘happy end’를 연주하면서는 간간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OST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거쳐 그가 마지막으로 준비한 곡은 ‘opus’. 엔딩 크레딧과 함께 자동 연주 재생됐다.고인이 떠난 피아노는 홀로 건반을 움직이며 곡을 완주한다. 마치 사카모토의 삶이 끝나도 연주는 이어진다는 듯. 생전 사카모토는 완성된 편집본을 본 후 “좋은 작품이 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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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폐허 속에서 울던 소녀가 크리스마스의 디바로

    12월을 대표하는 곡, 역사상 가장 성공한 캐럴로 꼽히는 곡은 팝가수 머라이어 케리가 1994년 발매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건 당신뿐”이라는 이 달콤한 노랫말이 더없이 불행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곡을 부른 주인공이자 공동 작곡·작사가로도 참여한 케리는 첫 회고록인 이 책에서 “음악은 삶을 견디게 해줄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서로를 할퀴고 증오하는 가족사와 가난했던 과거사 등 외롭고 불안했던 ‘진짜’ 케리가 담겨 있다. 그가 노래를 시작한 건 아주 어릴 적부터였다. 그의 집은 혼돈으로 가득했다. 오빠와 아빠는 무자비하게 다퉜고, 경찰이 오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오빠와 언니보다 좀 더 밝은 피부색을 가졌단 이유로 심한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속삭이듯 노래하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숨죽인 채 부르는 노래는 나에게 들려주는 비밀스러운 자장가였다”고 말한다. 케리가 세 살 무렵, 부모는 이혼했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언니와 오빠는 연락조차 없었다. 그러나 1년 중 딱 하루, 크리스마스는 달랐다. 네 명이 함께 모이는 드문 날이었지만, 가족들은 묵힌 감정을 쏟아내며 싸우곤 했다. 그 가운데 앉아 엉엉 울던 그는 “다들 고함을 멈추길” 간절히 바랐다. 그가 이 시절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 바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다. 거친 욕설이 오가는 집에서 두 눈을 감고 빌었던 그만의 마법 같은 크리스마스 세상, 아늑한 가족에 대한 환상이 이 곡을 탄생시킨 것이다. 총 15장의 정규 앨범과 5번의 그래미상 수상, 19개의 빌보드 ‘핫100’ 1위 곡. 이 화려한 기록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뎌내며 살아온 그가 이뤄낸 놀라운 성취다. 그는 책 말미에서 “삶을 살며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꿈을 지키라는 것”이라며 “아무리 불리하고 고장 난 상태라 하더라도 누구도 당신의 비전을 통제하거나 빼앗도록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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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생한 영웅들 잊지 않아야… 제복의 무게 알게 돼”

    7일 오후 8시 10분 첫 방송 되는 채널A 시사교양 프로그램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코끼리 사진관’(이하 코끼리 사진관)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제복 근무자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총 8부작으로 매주 목요일에 방영된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배우 한가인(41)을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숨은 영웅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희생을 기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흔치 않기 때문에 ‘코끼리 사진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며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듣자마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가인과 함께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이는 방송인 배성재(45)다. 배성재는 순발력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두 MC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숙연하게 출연진의 속이야기를 끌어낸다. ‘코끼리 사진관’이란 프로그램 이름은 ‘코끼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서양 속담에서 따 왔다. 한가인은 “코끼리는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동물이다. 우리 역시 영웅들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큰 사건사고가 있을 때만 제복 근무자들의 희생이 잠시 주목받는 걸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첫 회 주인공은 특전사로서 수많은 사람을 구조했지만 가장 친한 동료를 잃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박형근, 장인호 원사와 삼풍백화점 등 각종 붕괴 사고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 특수구조대 양영안 소방경, 백승현 소방장이다. 이후에는 연쇄 살인마 정남규를 검거한 윤외출 전 경무관,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 사건으로 동료 6명을 잃은 이성촌 소방관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한가인은 “인터뷰하며 만난 제복 근무자 중 트라우마가 없는 분들이 없었다. 놀라운 점은 모두들 역경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며 다시 일어서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꼽은 가장 인상 깊은 출연진은 지난해 1월 F-5E 전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소속 고 심정민 소령의 유가족이다. 사고 당시 심 소령은 기체의 엔진 이상을 감지했지만 민가 쪽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다가 순직했다. 그는 “어떤 심정으로 조종석에 앉아계셨을까?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며 “심 소령이 항상 가족들에게 ‘탈출은 1∼2초면 할 수 있다’며 안심을 시켰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 친구들과 캠핑을 갔을 때 우연히 ‘비행기가 고장 났을 때 옆에 민가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란 이야기가 나왔대요. 그때 심 소령님이 마치 일주일 뒤 사고를 미리 내다본 것처럼 ‘희생하겠다’고 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릇이 큰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제동 화재 사건으로 동료를 잃은 이성촌 소방관도 기억에 남는 출연자다. “친형제처럼 지내던 동료 6명을 직접 구조했는데, 구조 당시에는 6명 모두 따뜻했대요. 그래서 ‘살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죠….” 한가인과 배성재가 제복 근무자들의 사연을 들은 뒤엔 군 시절 남수단 파병을 자원한 바 있는 사진작가 영배(32)가 출연자들을 사진에 담는다. 한가인은 “매번 출연진이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마다 여러 감정이 몰아친다”고 했다. 출연진 가운데 범죄 현장을 누비느라 약 30년 만에 가족사진을 찍어 본다는 경찰도 있었고, 구조 당시 입었던 피 묻은 군복을 꺼내는 특수부대원도 있었다. 사진 한 장에 각 출연진의 다양한 사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 특별한 순간으로 와 닿는다고 했다. 한가인은 촬영을 하면서 제복의 무게도 달리 느꼈다고 한다. 그는 “제복을 입고 안 입고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분들에겐 제복이 곧 책임감이자 희생할 각오였다”며 “(출연진을 만나며) ‘삶을 더 진지하게 살걸’ 반성하고 의미 있는 일을 더 해보자는 생각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복 근무자들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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