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하는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지금보다 더 내고(보험료율 인상), 지금과 똑같이 받는(소득대체율 유지)’ 방안을 최종보고서에 담기로 했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일명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은 내부 진통 끝에 보고서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연금개혁도 소득대체율은 올리지 않고 보험료율만 올리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위원회는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최종 21차 회의를 열었지만 위원 간 견해차만 확인한 채 파행으로 끝났다. 위원회는 위원장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와 12명의 민간위원, 보건복지부 및 기획재정부 국장 등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간 위원회는 ‘내는 돈’인 보험료율(현행 9%)과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현행 40%)을 어떻게 조정할지 논의해 왔다. 연금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재정건전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재정안정화’파 위원들은 소득대체율은 지금보다 올리지 않고 보험료율만 각각 12%, 15%, 18%로 올리는 방안을 내놨다. 반면 연금 수급자의 노후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노후소득보장’파는 소득대체율도 50%로 올리고, 보험료율도 13%까지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현재 65세보다 늦춰야 한다는 데에는 양측이 공감했다. 갈등을 빚은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해서는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앞서 11일 열린 20차 회의에서는 현재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는 방안을 ‘다수안’, 올리는 방안을 ‘소수안’으로 보고서에 넣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노후소득보장파 위원들이 반발했다. 18일 회의에서도 격론이 오간 끝에 노후소득보장파 위원들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 의견(소득대체율 인상)을 보고서에서 다 빼라”고 요구했다. 결국 최종보고서에는 소득대체율 인상안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현재 ‘만 60세 미만’인 의무 납입 연령(연금을 내는 나이)을 순차적으로 수급 개시 연령과 일치시키자는 데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30일 공청회를 거쳐 9월 중 복지부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연금개혁안을 만들어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온 이웃이 도우미… ‘치매안심마을’ 가보니 치매를 앓아도 병원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집, 마을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식당 사장님부터 동네 의사 약사, 집배원까지 모든 이웃들이 함께 환자를 돌봐주는, 그런 마을이 있다. 》16일 오전 11시경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약국. 80대 노인 남성이 평소 먹던 약에 대해 이것저것 묻자 약사가 큰 소리로 차근차근 대답했다. 흔한 약국 풍경 같지만, 이들의 대화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환자인 윤만석 씨(83)는 치매 판정을 받은 홀몸노인이고, 이 약국은 동네 치매 환자를 특별히 보살피는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지정 ‘치매안심지킴이’ 약국이기 때문이다. ● 환자 배회-실종 막는 ‘우리 동네 안심지킴이’ 윤 씨가 치매 판정을 받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처음엔 믿지 못했다. 평생 옷가게나 복권판매점 등을 운영하면서 계산기 없이도 셈을 척척 할 정도로 머리 쓰는 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댈 곳도 없는 듯했다. 아내는 3년 전 췌장암으로 떠나보냈고, 자녀들은 모두 먼 곳에 살았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탓에 왕래하는 이웃도 없었고 경로당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점점 기억을 잃다가 외롭게 요양시설에 들어갈 모습이 그려졌다. 그로부터 아홉 달이 지난 지금, 윤 씨는 요양시설에 입원하거나 상태가 나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치매에 걸린 80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걸음이 기운찼다. 아내를 간병하느라 47kg까지 줄었던 몸무게도 52kg으로 회복됐다고 한다. 윤 씨는 “매일 ‘출근 도장’ 찍듯이 치매안심센터로 산책하러 나오는 게 비결”이라며 웃었다. 치매 환자인 윤 씨가 매일같이 치매안심센터를 다니고 혼자 집 근처를 산책할 수 있는 건 강서구 일대가 치매 노인의 실종이나 배회를 막을 장치로 가득한 ‘치매안심마을’이어서다. 우선 인근 약국과 상점 367곳이 치매안심지킴이로 참여 중이다. 이들은 단골 치매 환자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치매 전담 관리기관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에 연락하는 방식으로 치매 환자 실종을 조기에 막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약국에선 치매 환자가 약을 건너뛰거나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도록 요일이 적힌 통에 약을 잘게 나눠 주는 식으로 복약 지도에 더 신경을 쓴다. 송인석 약사는 “약을 받아 간 지 얼마 안 된 환자가 또 약국에 찾아오면 미리 적어둔 보호자 연락처로 전화해서 ‘어르신이 오늘 좀 이상하다’고 알린다”고 말했다. 동네 음식점들은 무료 치매 검사 안내문을 가게에 비치했다가 손님에게 나눠 준다. 등촌동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권민아 씨(56)는 “몇 해 전 아버지가 치매로 진단됐을 때 치매안심센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며 “손님이 음식을 주문해 놓고 깜빡하거나 할 때면 안내문을 쥐여주며 ‘꼭 검사해 보시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가 비슷하게 생긴 건물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아스팔트에 커다랗게 현재 위치를 적어두기도 하고,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두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정류장 벽마다 간단한 퀴즈도 붙여 놨다. 강서우체국 집배원 130여 명도 지난해 9월부터 배회하는 치매 노인을 발견하면 경찰이나 치매안심센터에 신고하는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강서구 치매안심센터는 보건복지부 주관 ‘치매관리사업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근 3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다. 강선옥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직원들이 발로 뛰어다니며 여러 기관을 설득한 결과”라고 말했다.● 사진관-영화관서 일하는 환자들… 주민들과 교류 치매안심마을은 치매 환자가 살던 동네에서 안전하게 돌봄을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한 행정구역으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선정한다. 보건복지부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년)’에 따라 2017년 일부 지자체가 시범 도입했고, 2019년부터 전국으로 확산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710곳이 운영 중이다. 치매안심마을은 초로기(初老期) 치매 환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40, 50대에 치매로 진단되는 초로기 치매의 경우 한창 생계를 이어가야 할 나이에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가정 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는다. 초로기 치매는 몸을 활발히 움직이고 사회생활을 지속하면 증상 악화를 상당히 늦출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인천광역치매센터의 ‘가치함께 사진관’이다. 지역 주민에게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서 액자를 만들어 주는 이 사진관에선 특이하게도 손님 응대부터 촬영, 인화를 모두 초로기 치매 환자 10여 명이 담당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역은 사진사 출신 치매 환자 한창규 씨(65). 한 씨는 2018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혈관성 치매로 진단돼 평생 꾸려 온 사진관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치매 상담 중 “카메라를 다시 잡는 게 소원”이라는 그의 말을 귀담아들은 센터 직원들이 ‘아예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사진관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총 188명의 지역 주민이 이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받아 갔다. 한 씨는 “사진 속 이웃들의 즐거운 표정이 눈앞에 생생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다시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경기 시흥시 치매안심센터는 공공일자리 사업을 통해 초로기 치매 환자 3명을 고용해 영화관을 운영한다. 치매 관련 영화만 틀어주는 ‘알츠시네마’다.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이지만 ‘치매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다. 여기서 일하는 치매 환자 A 씨는 “치매로 진단된 후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버니 가족 앞에서 위신이 선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가 지역 주민과 융화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드는 곳도 있다. 대구 남구 치매안심센터는 지난해 9월 인근 대학 모델과와 협력해 ‘한복 패션쇼’를 열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치매 환자의 우울감도 개선해주고, 치매에 대한 참가 학생들의 인식도 올려줘 일석이조라고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한 프로그램도 많다. 인천 서구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와 가족이 함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그림책으로 그려보는 사업으로 호응을 얻었다. 충북 제천시 치매안심센터는 안마사를 채용해 치매 환자의 가족에게 ‘힐링 마사지’를 하고 있다.● 살던 곳에서 돌봄받아야 비용도 절감 정부와 지자체가 치매안심마을 조성에 힘쓰는 이유 중 하나는 ‘비용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길이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는 2021년 88만 명에서 2050년 314만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같은 기간 치매 환자 관리에 드는 연간 의료비와 간병비 등 관리 비용도 18조7000억 원에서 121조7000억 원으로 치솟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처럼 치매 환자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사실상 ‘격리’시키는 방식을 지속하면 국민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재정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국 256개 시군구에 구축된 각 치매안심센터는 해당 지역의 특성에 어울리는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북광역치매센터는 면적이 넓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경북 지역 특성을 감안해 치매로 진단된 이후에도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칩거 환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립 요양병원이 많은 강원 지역 치매안심센터들은 뇌중풍(뇌졸중) 등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환자들에게 지역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안내하고 있다. 증상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치매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막는 것도 주요 임무다. 치매 중증도를 4단계(최경도, 경도, 중등도, 중증)로 나눴을 때 최경도 환자의 한 해 관리 비용은 1542만 원이지만, 중증의 경우 3312만 원으로 2배가 넘는다.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할 때까지 방치하면 당사자에게도 큰 불행이지만, 국가 의료비 측면에서도 부담이 커진다는 얘기다. 서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는 초기 치매 환자 가운데 가족의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이들을 선별해 작업치료사 등이 주 1회 방문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 초부터 방문 서비스를 받고 있는 김옥단 씨(87)는 “매주 (작업치료사) 선생님이 오는 날만 기다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니, 센터 측이 대상을 최대한 늘렸는데도 올해 방문 대상은 36명이 한계였다. 김 씨의 딸 신미애 씨(56)가 작업치료사를 배웅하면서 말했다. “선생님, 저희 내년에도 계속 방문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정말 좋겠는데….”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한의사도 의료기기인 ‘뇌파계’(뇌파 측정 기기)를 사용해 치매와 파킨슨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한의사들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가능해진 데 이어 뇌파 측정 기기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한의사 A 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한의사 면허자격 정지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10년 만에 내려진 결론이다.A 씨는 2010년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했고, 같은 해 11월 한 언론사가 관련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뇌파계는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전압파(뇌파)를 검출해 증폭·기록하는 의료기기로 뇌 관련 질환을 진단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2012년 복지부는 “면허 외의 의료행위를 하고 의료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며 A 씨에게 자격정지 3개월의 처분을 내렸고, A 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에 나섰다.1심 법원은 A 씨의 뇌파계 사용이 허가된 한방의료행위를 벗어난 만큼 복지부의 자격정지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과 대법원은 “뇌파계 사용에 특별한 임상 경력이 요구되지 않고 위험도 크지 않다”며 A 씨의 손을 들어 줬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대한한의사협회는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면서 “뇌파계 등 현대 진단기기를 적극 활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의료인의 당연한 책무”라며 “정부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철폐해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뇌파검사(EEG)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는 파킨슨병과 치매의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게 세계신경학연맹 등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이번 판결은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재정계산위)가 매달 내는 직장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를 최소 9만 원 올리는 개편안에 잠정 합의했다.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는 등의 조치를 통해 연금기금 소진 시점을 2055년에서 2093년 이후로 미룰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1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재정계산위는 18일 제21차 회의를 열고 이런 개편안을 담은 보고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다. 민간위원 13명과 정부위원 2명으로 구성된 재정계산위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 여건과 출산율 등을 따져 개편안을 제시한다. 이번이 5차 재정계산이다. 재정계산위는 지난해 11월 30일 이후 약 8개월간 ‘내는 돈’인 보험료율과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현행 9%와 40%에서 각각 어떻게 조정할지를 논의해 왔다. 그 결과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을 이르면 2025년부터 12∼18%로 인상하는 ‘재정안정화 방안’과,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서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노후소득 보장 방안’을 도출했다. 두 가지 방안 모두 최소 3%포인트의 보험료율 인상을 전제한다. 올 4월 기준 직장 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29만2737원)에 대입하면 직장인은 매달 9만7579원(본인과 회사가 절반인 4만8789원씩 부담)을 더 내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 가입자는 월평균 4만2011원을 더 낸다. 복지부는 재정계산위가 내놓은 개편안에 대해 30일경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10월 말 정부안으로 재정리해 국회에 제출한다.자문위, 국민연금 3%P 더 납부 공감… 받는돈 ‘유지 vs 인상’ 격론 국민연금 보험료 조정 제안연금 보험료율 인상폭 낮추려면받는 나이 늦추거나 국고투입 필요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70년 후에도 국민연금 기금을 남기는 것이다. 이론상으론 5년 후인 2028년에 태어날 아이가 만 65세 노인이 될 때까지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설계한다. 국민들이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대의에 동의해 보험료 인상이라는 ‘쓴 약’을 감내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 아래서 보험료 인상만으로 2093년까지 기금을 유지하려면 당장 2025년부터 보험료율을 17.86%로 올려야 한다. 국민이 수용하기도, 국회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운 방안이다. 보험료율 인상 폭을 줄이려면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거나 국고를 투입하는 등 여러 재정안정화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 재정계산위가 내놓은 ‘연금 개혁 방정식’이 더욱 복잡해진 이유다.● 재정계산위 방안대로면 수십 개 개편안 나와 재정안정화 방안은 보험료율을 △12% △15% △18%로 각각 인상하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연금받는 나이를 현행 65세에서 66∼68세로 늦추거나 연평균 4.5%인 기금 운용 수익률을 5.0∼5.5%로 높이는 등의 조치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후소득 보장 방안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서 보험료율을 13% 수준에 묶어두려면 보험료 외에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건강보험 제도처럼 국민연금 재정에도 국고를 투입하거나, 주식 수익 등 자본소득에도 추가로 보험료를 매기는 보완 조치가 뒤따른다. 재정계산위가 크게 두 가지 방안을 도출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제안한 셈이다. 다만 재정계산위 내에선 재정안정성을 고려해 소득대체율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대체율 인상 필요성을 주장해온 일부 위원은 이런 방향성에 반발해 11일 열린 20차 회의에서 집단 퇴장하기도 했다. 재정계산위는 18일 마지막 회의를 열고 내부 의견 봉합에 나설 방침이다. ● 국민연금 개편안, 다시 복지부로 일각에선 국민연금 개편에 있어서 모두가 만족하는 방안이 도출되기 어려운 만큼, ‘최선’이 아닌 ‘차악’의 방안일지라도 실행에 옮기는 데 더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4차 재정계산 당시엔 복지부가 재정 안정과 노후소득 보장 사이에서 한쪽을 택하지 못한 채 복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원동력을 잃었고, 개편도 결국 무산됐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복지부는 10월까지 국민연금 개편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번에도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받아 든 복지부가 단일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연금 개혁은 다시 공전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국민연금 개편안 도출에 실패하고 복지부로 공을 넘긴 바 있다. 만약 이번에도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포함한 개혁안이 좌절되면, 5년 후에는 더 비싼 청구서를 받게 될 게 확실시된다. 재정계산 시점으로부터 70년 후까지 기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은 2013년 3차 재정계산 당시 12.72%였지만 2018년엔 16.02%로 올랐고, 올해 기준으로는 17.86%가 됐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파행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앞두고 행사 준비를 총괄해 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잼버리 사태를 둘러싼 전 정부와 현 정부 책임론을 주장하는 여야 간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가 출범한 2020년 7월부터 여성가족부는 장관이 조직위원장을, 전북도는 도지사가 집행위원장을 각각 맡아왔다. 14일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문제가 된 음식과 의료, 화장실 (위생), 해충 (방제) 등은 조직위의 업무”라며 “여가부가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며 여가부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에 여가부는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야도 각각 ‘전 정권 책임론’과 ‘현 정권 책임론’을 주장하며 치받았다.● 여가부 ‘유체 이탈’ 브리핑 조민경 여가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김현숙) 장관은 (잼버리) 조직위원장으로서 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여가부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잼버리 관련 우려가 제기되자 “(여가부가 폐지돼도) 제가 꼭 책임지고 (전북도에) 잘 이관되도록 하겠다”고 한 김 장관의 답변이 여가부의 책임 의식 부족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질의에 대한 반박이었다. 여가부는 조직위원회 소관 예산 870억 원 가운데 상당액이 운영비고 시설비는 일부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예산 편성과 사용에 대해선 감사원 감사에서 짚어질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태풍 ‘카눈’ 북상에 따라 대원들이 조기 철수하면서 추가 소요된 예산을 묻는 질문에도 “추후 답하겠다”고 밝혔다.● 전북도지사 “파행 알려진 건 SNS 발달 때문” 김 지사는 이날 오후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 파행에 대해 “개최지 도지사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국민께도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여가부를 지목해 질타를 쏟아냈다. 김 지사는 “이번에 문제가 된 음식과 의료, 화장실 (위생), 해충 (방제) 등은 명확하게 조직위원회의 업무”라며 “(조직위원회의) 사무총장과 기획부장 등을 여가부 직원들이 맡았기 때문에 여가부 장관이 관심을 기울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고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예산도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여가부 출신인 사무총장 지휘 아래 집행됐다”며 “권한이 아닌 부분에 대해 (전북도가) 책임지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잼버리를 지렛대 삼아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따냈다는 비판에 대해선 “허위사실”이라며 “새만금 SOC는 잼버리 유치 이전인 2014년 9월 새만금 기본계획에 이미 반영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존 매립지 대신 공유수면(갯벌)을 잼버리 부지로 선정하고 매립공사에 농업관리기금 1846억 원을 끌어들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 지사는 대회 초반부터 부실 운영 문제가 불거진 원인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대원들이) 부모에게 보낸 사진이 금방 이슈화됐다”거나, 화장실 위생 문제에 대해 “영국 (잼버리) 대표단이 철수를 정당화하려고 부각했을 수 있다”고 안이하게 평가한 것도 논란이 됐다. ● 대통령실, 현 정부 책임론에 “적반하장” 정치권은 잼버리 파행을 둘러싼 ‘남 탓’ 공방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소한 이 정부 들어 있었던 준비 부족에 대해 인정하기 바란다”며 “국정조사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잼버리 부실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백서를 기록하고 교훈을 남기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매립도 되지 않은 새만금에 잼버리를 유치하자고 주장했던 민주당, 잼버리 준비 기간 6년 중 무려 5년을 날려 버린 문재인 정부, 일선에서 예산을 집행하며 조직위 실무를 맡았던 전북도 등 민주당의 책임이 훨씬 더 엄중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문 전 대통령이 잼버리 관련 글을 올려 현 정부를 비판했다’는 질문에 “한 신문이 오늘 사설에서 ‘적반하장이고 후안무치’라고 썼다”며 “그런 평가를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페이스북에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며 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바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파행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앞두고 행사 준비를 총괄해 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잼버리 사태를 둘러싼 전 정부와 현 정부 책임론을 주장하는 여야 간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가 출범한 2020년 7월부터 여성가족부는 장관이 조직위원장을, 전북도는 도지사가 집행위원장을 각각 맡아왔다. 14일 김관영 전북도지사는“문제가 된 음식과 의료, 화장실(위생), 해충(방제) 등은 조직위의 업무”라며 “여가부가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며 여가부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에 여가부는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야도 각각 ‘전 정권 책임론’과 ‘현 정권 책임론’을 주장하며 치받았다.● 여가부 ‘유체 이탈’ 브리핑 조민경 여가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김현숙) 장관은 (잼버리) 조직위원장으로서 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여가부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잼버리 관련 우려가 제기되자 “(여가부가 폐지돼도) 제가 꼭 책임지고 (전북도에) 잘 이관되도록 하겠다”고 한 김 장관의 답변이 여가부의 책임 의식 부족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질의에 대한 반박이었다. 여가부는 조직위원회 소관 예산 870억 원 가운데 상당액이 운영비고 시설비는 일부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예산 편성과 사용에 대해선 감사원 감사에서 짚어질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태풍 ‘카눈’ 북상에 따라 대원들이 조기 철수하면서 추가 소요된 예산을 묻는 질문에도 “추후 답하겠다”고 밝혔다.● 전북도지사 “파행 알려진 건 SNS 발달 때문” 김 지사는 이날 오후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 파행에 대해 “개최지 도지사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국민께도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여가부를 지목해 질타를 쏟아냈다. 김 지사는 “이번에 문제가 된 음식과 의료, 화장실 (위생), 해충 (방제) 등은 명확하게 조직위원회의 업무”라며 “(조직위원회의) 사무총장과 기획부장 등을 여가부 직원들이 맡았기 때문에 여가부 장관이 관심을 기울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고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예산도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여가부 출신인 사무총장 지휘 아래 집행됐다”며 “권한이 아닌 부분에 대해 (전북도가) 책임지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잼버리를 지렛대 삼아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따냈다는 비판에 대해선 “허위사실”이라며 “새만금 SOC는 잼버리 유치 이전인 2014년 9월 새만금 기본계획에 이미 반영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존 매립지 대신 공유수면(갯벌)을 잼버리 부지로 선정하고 매립공사에 농업관리기금 1846억 원을 끌어들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 지사는 대회 초반부터 부실 운영 문제가 불거진 원인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대원들이) 부모에게 보낸 사진이 금방 이슈화됐다”고, 화장실 위생 문제에 대해선 “영국 (잼버리) 대표단이 철수를 정당화하려고 부각했을 수 있다”고 안이하게 평가한 것도 논란이 됐다. ● 대통령실 “현 정부 책임론에 ‘적반하장’” 정치권은 잼버리 파행을 둘러싼 ‘남 탓’ 공방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소한 이 정부 들어 있었던 준비 부족에 대해 인정하기 바란다”며 “국정조사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잼버리 부실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백서를 기록하고 교훈을 남기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매립도 되지 않은 새만금에 잼버리를 유치하자고 주장했던 민주당, 잼버리 준비 기간 6년 중 무려 5년을 날려 버린 문재인 정부, 일선에서 예산을 집행하며 조직위 실무를 맡았던 전북도 등 민주당의 책임이 훨씬 더 엄중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문 전 대통령이 잼버리 관련 글을 올려 현 정부를 비판했다’는 질문에 “한 신문이 오늘 사설에서 ‘적반하장이고 후안무치’라고 썼다”며 “그런 평가를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페이스북에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며 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바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박영민기자 minpress@donga.com김준일기자 jikim@donga.com}
“여성가족부에 대해 과잉 지탄이 가해지고 있어서 말씀드리기 어렵다.”(2020년 7월 잼버리 조직위원회 첫 구성 당시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 “행정안전부가 구체적인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고 본다.”(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던 기간 행안부 차관을 지낸 A 씨) 동아일보는 11일 막을 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의 파행 원인을 묻고 재발을 막기 위한 백서(白書)를 쓰기 위해 10∼13일 잼버리 준비와 운영에 참여한 관계기관의 전현직 책임자 11명을 인터뷰했다. 이 가운데 본인이나 소속 기관에 책임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취재팀이 인터뷰를 시도한 대상은 잼버리 조직위원회 소속 5개 기관(여가부, 행안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스카우트연맹,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을 비롯해 집행위원회를 맡은 전북도, 대통령실, 국무조정실 등 총 8개 기관이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과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는 통화가 성사되지 않았다. 수차례 전화와 문자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문체부와 행안부, 대통령실, 국무조정실은 “답하기 곤란하다”며 자세한 답변을 거부했다.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인 김 의원은 “지금 시점에선 답하기 적절치 않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지만 13일 기자회견에서 “힘이 센 기관이 일선 공무원을 희생양 삼기 위한 감찰 시도로는 본질을 규명할 수 없다”며 국회 국정조사를 제안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잼버리 행사의 컨트롤타워는 (전북도가 아닌) 조직위원회였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이처럼 아무도 책임지거나 반성하지 않는 현실이 잼버리 행사를 ‘3000억 원짜리 관재(官災)’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앙 부처와 전북도가 모두 책임 규명 과정에서도 ‘남 탓’으로 일관한다면 앞으로 잼버리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前여가장관 “과잉지탄” 前행안차관 “책임못져” 前총재 “잘못없다” 반성 없는 ‘파행 잼버리’갯벌 부지 선정 책임자들 침묵조직위 2인→5인 위원장 변경뒤 책임소재 모호… 서로 네 탓만총리 주재 회의도 2차례 그쳐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여가부 장관을 중심으로 5명이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전북도지사는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세계스카우트연맹 역시 의사결정에 관여했다. 예산과 인력 등을 총괄한 여가부와 기반 시설을 담당한 전북도 외에도 여러 기관을 참여시킨 이유는, 폭염 등 재난안전 관리는 행정안전부가 맡는 식으로 전문성과 책임감을 발휘해 행사를 성공시키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일을 떠넘기다가 행사가 파행으로 흐르자 책임을 피하기 급급했다. 행사에 관여한 전·현직 관계자들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갯벌 야영장’ 선정-점검 책임자들 “난 잘못 없다” 잼버리 행사는 2015년 9월 전북 부안군 새만금을 국내 후보지로 정한 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비판이 많다. 기존 매립지 대신 갯벌을 부지로 정하면서 매립 공사에만 3년이 소요됐고, 다른 행사 준비도 줄줄이 지연됐다. 부지 선정 당시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김윤덕 의원이 ‘새만금에 유치하자’는 의견을 처음으로 냈고, 송하진 당시 전북도지사가 이를 적극 추진해 한국스카우트연맹이 확정했다. 이와 관련해 2012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이끈 함종한 전 총재는 “(나는) 사실 새만금을 찬성하지 않았는데 여러 사람이 밀어붙여서 결정됐다”며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생각나는 게 없다”고 말했다. 송 전 지사는 여러 차례 취재팀의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김 의원도 13일 기자회견에서 부지 선정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17년 8월 잼버리 유치가 확정된 이후에라도 정부가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했다면 세계스카우트연맹에 부지 변경을 신청해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여가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장관 일정에 따르면 전임 장관 4명 중 새만금을 방문한 사람은 정영애 장관뿐이었다. 정현백 전 장관은 잼버리 파행에 대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면서도 본인이나 여가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다음에 필요할 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진선미 정영애 전 여가부 장관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에 총리도 ‘총괄’ 역할 손 놔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도 행사 준비가 막바지에 이른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행사 개막을 불과 6개월 앞둔 올 2월까지 야영장 전기·통신 설비 진행률이 5%에 그쳤다. 샤워장과 급수대는 3월에야 설치하기 시작했다. 잼버리 행사 준비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여가부와 한국스카우트연맹, 전북도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당초 2인 체제(여가부 장관, 김 의원)였던 조직위는 2월 행안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가 위원장으로 추가된 5인 체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책임 소재는 오히려 더 불명확해졌다. 대표적인 게 폭염 대책이다. 행사 시작 후 참가자 사이에서 온열질환이 속출하면서 폭염 대책이 부실을 드러냈지만, 안전 대책을 맡은 행안부도 책임을 피하기 바빴다. 전직 행안부 차관 A 씨는 “(행안부) 자치행정과 소속 십수 명이 전국 상황을 챙겨야 한다”며 “(잼버리에 대해) 행안부가 구체적인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태풍 ‘카눈’이 북상하자 K팝 공연 장소를 급하게 바꾸고 아이돌 그룹을 무리하게 섭외했다는 논란에 대해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날짜를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도 다양한 관계 기관의 업무를 조율하는 역할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대회를 원만하게 마무리한 후 그때 논의해도 늦지 않다”며 언급을 피했지만, 내부적으론 전북도의 책임이 크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은 모두 잼버리 행사와 관련해 ‘정부의 적극 지원’을 약속해 왔다. 잼버리 사업예산 1171억 원 중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870억 원(75%), 전북도가 265억 원(22%), 부안군이 36억 원(3%)을 집행했다. 지자체 탓만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국무조정실은 2021년 4월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정부지원위원회’를 꾸렸지만 회의는 같은 해 11월과 올 2월 두 차례만 열렸다. 국무조정실 측은 “(파행 책임 등은) 추후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부안=박영민기자 minpress@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준비 단계부터 행사 진행까지 파행을 거듭하면서 수습에 들인 돈만 최소 31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개최지 선정 당시 491억 원으로 책정했던 총사업비가 증액을 거듭하며 이달 1일 행사 시작 시점에 2배 이상인 1171억 원으로 불어났는데,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혈세를 추가로 날리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잼버리 조직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행사 개최 나흘째인 4일 총사업비 외에 예비비 69억 원을 지출하기로 했다. 부실한 폭염 대책 탓에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참가자가 속출했고 준비해둔 의약품마저 동나자 긴급히 냉방 버스와 의료물자 등을 보급해야 했다. 위생 문제가 불거진 화장실에 추가 청소 인력 100명을 부랴부랴 투입했다. 여기에 태풍 ‘카눈’의 북상에 따라 8일 참가자 약 3만7000명이 전북 부안군 새만금 행사장에서 조기 철수해 8개 시도로 흩어지며 숙식비와 운송비로만 200억 원 가까이 쓰게 됐다. 지자체가 책정한 참가자 1인당 하루 경비는 숙박비 15만 원(2인 1실 기준), 식비 5만 원 등이다. 8일 밤부터 12일까지 숙식비를 1인당 약 50만 원으로 잡으면 총 185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참가자 수송에 긴급히 투입한 수송 버스 1000여 대의 임차료는 별도다. 여기에 폐영식과 K팝 공연 장소를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변경하면서 기존 예산(45억 원)에 최소 10억 원이 추가됐다. 문화 행사·체험을 새로 운영한 비용도 정부가 보전해야 한다. 다만 잼버리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정확한 추가 비용은 행사가 끝난 후에 산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회 시작 전 잘못된 부지 선정 등으로 인해 추가 소요된 예산까지 더하면 ‘수습 비용’의 규모는 더 커진다. 3년간 1846억 원을 들여 매립공사를 벌이고도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올해 5월 폭우에 야영장이 잠기자 그제야 강제 배수시설을 만드는 데 30억 원, 배수로 확장 등에 18억6000만 원을 썼다. 추가된 예비비 외에 숙식·운송비, 공연장 변경 비용, 배수 공사 비용 등을 합하면 약 310억 원이다. 이는 종전에 개최된 해외 잼버리 총예산과 맞먹는다. 일본스카우트연맹에 따르면 2015년 일본 야마구치현 잼버리의 총사업비가 395억 원이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행사가 끝나면 준비 미비로 낭비된 혈세가 얼마인지 철저히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장이 열악했던 이유를 추적해 보면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부지 선정부터 잘못됐다는 결론에 이른다. 새만금 내 기존 매립지 대신 공유수면(갯벌)을 부지로 정한 탓에 매립공사에 3년간 1846억 원을 쏟아붓고도 나무 한 그루 없는 진흙탕에 야영장이 만들어졌다. 9일 취재팀이 분석한 잼버리 관련 회의록에는 정부와 전북도 관계자들이 청소년 참가자들의 안전보다 새만금 개발을 우선시한 정황이 그대로 기록돼 있었다.● 기존 매립지 두고 ‘갯벌 메워 개최’ 강행 전북 부안군 새만금 3권역 관광레저용지가 잼버리 개최 후보지로 정해진 건 2015년 9월이었다. 송하진 당시 전북도지사가 “백지의 땅에 세계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무한대로 그려 넣을 수 있다”며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설득한 끝에 새만금이 다른 후보지였던 강원 고성군을 제치고 국내 후보지로 정해졌고, 2017년 8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이를 확정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당시 새만금 내에는 신시∼야미 관광레저지구(6.3㎢) 등 매립한 지 10년 이상 지나 나무가 자랄 정도로 안정화된 부지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전북도는 매립되지 않아 갯벌과 다름없는 8.84㎢를 개최지로 밀어붙였다. 새만금 개발 비용이 불어나고 예상보다 진척이 느려지자 매립 비용을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관리기금으로 충당하기 위해서다. 기존 관광레저용지였던 이곳을 농업용지로 바꾸면서까지 이를 강행했다. 매립공사에 투입된 예산 1846억 원은 잼버리 사업비 1171억 원의 1.6배에 달한다. ‘최적의 개최지’를 먼저 정한 게 아니라 새만금 일대 개발을 위해 잼버리를 끌어들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매립공사는 2020년 1월 착공해 지난해 12월에야 마무리됐다. 부실시공 논란을 빚은 샤워장 등 영지 시설을 올해 3월에야 짓기 시작한 것도 부지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부지가 농업용지인 탓에 평지로 조성돼 배수가 원활하지 않았다.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나무를 심을 수 없었고, 물을 억지로 퍼낼 간이펌프를 조달하는 데만 2억5000만 원을 더 썼다. 부지 매립을 담당한 한국농어촌공사 측은 “매립 (착수) 당시엔 침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땅을) 콘크리트로 완전히 메우지 않는 이상 물이 빠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부지의 문제점을 시인하면서도 “간이펌프를 설치해 침수 문제는 상당히 해결했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잼버리 목적은 숙원인 공항, SOC 해결” 정부와 전북도가 성공적인 행사 개최보다 개발을 우선시한 정황은 여러 회의록에서 드러난다. 2017년 12월 6일 제19차 새만금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는 잼버리 부지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께서 선거 중에 공공매립을 말씀하셨는데 속도가 나지 않아서 고심했다”며 “농지기금을 써서 부지를 일단 매립하고 그다음에 관광레저지구로 돌린다거나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용지 변경은 농지관리기금을 타내기 위한 ‘위장’이었던 셈이다. 추가적인 예산 확보가 어려운 공공매립보다 농지관리기금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전북도는 개발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 2017년 11월 전북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김대중 도의원은 “잼버리를 하려는 목적은 숙원사업인 공항이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최병관 전북도 기획조정실장(현 행정안전부 지방재정경제실장)은 잼버리 유치의 목적에 대해 “새만금을 좀 더 속도감 있게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단체는 정부와 전북도가 개발 이익을 위해 청소년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김나희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홍보국장은 “새만금 매립 명분을 얻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라며 “특히 농업용지가 아닌 걸 알면서도 1846억 원의 농지관리기금을 내준 건 그 자체로 배임 범죄다”라고 지적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부안=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여야 의원들이 지난해 2023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관련 여성가족부 예산을 줄줄이 증액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치면서 결국 5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이 막판에 증액됐지만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세 차례 나온 여가위 전문위원실의 예산 집행 부진 경고는 외면했다. 그 결과 여가부와 전북도,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의 전반적인 관리 부실 속에 조직위는 아직 정확한 예산 집행률도 집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위 관계자는 “예산 집행 건이 많고 현재 집행 중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여가위는 지난해 11월 예결소위에서 2023년 세계잼버리 지원 명목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이 72억5900만 원 증액을 요구했다. 이는 같은 달 예결위 예산조정소위에서 64억7900만 원 증액 요구로 조정됐다. ‘스카우트 활동 지원비’의 경우에도 당시 예결위원이던 민주당 한병도, 박정, 장경태, 전혜숙, 최혜영 의원과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이 여가위가 요청한 대로 3억8500만 원 증액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2023 세계잼버리 지원 45억 원과 스카우트 활동 지원금 2억7100만 원을 합쳐 최종 47억7100만 원이 증액됐다. 정작 관련 예산은 관리 감독 소홀로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가위 전문위원실은 2021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집행 부진에 따른 우려를 경고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해 11월 작성된 2023회계연도 예산 보고서는 “집행 부진으로 결산 심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아 왔는데, 행사 개최가 1년도 남지 않은 2022년 9월 말 현재까지도 기반시설 설치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작성된 2021회계연도 결산 예비심사 검토보고서에서는 “(잼버리) 조직위의 예산 실집행률이 32%”라고 지적했다. 2021년 9월 작성된 2020회계연도 결산 예비심사 검토보고서에서도 “잼버리 지원 사업의 보조금 이월이 과도하게 발생해 실집행률이 57.4%에 불과하다”며 “지연된 기반시설 구축 사업, 프레잼버리 실시 준비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철저히 해 청소년의 안전과 편리한 참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같은 지적에도 올해 6월 게재된 전북도 2022회계연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전북도는 지난해에도 여가부가 교부한 94억400만 원 중 55억711만 원만 집행하고 나머지는 이월해 실집행률이 58.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현장에서 담당 공무원이 ‘이유를 막론하고 (잼버리 행사가 진행되는) 12일 동안만 버티게 해 달라’라고 하더군요. ‘공무원 수백 명이 날아가게 생겼다’라면서요. 개영식까지 한 달도 채 안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 공사 하청을 맡은 A업체 관계자는 지난달 공사 현장에서 잼버리 담당 공무원에게 황당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당시 기록적인 장마로 야영장이 거대한 ‘진흙밭’으로 변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진 시점이었다. 그는 8일 동아일보에 “현장 관계자들은 난리가 나서 비 오는 날에도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뉴스에선 ‘준비가 잘되고 있다, 문제없다’고만 말하니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새만금 지역이 잼버리 개최지로 최종 선정된 건 2017년 8월이다. 올해 8월 행사가 개최되기까지 꼬박 6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조달청 나라장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잼버리 관련 공사 발주 현황을 분석한 결과 본격적인 공사는 행사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2021년 11월부터 시작됐다. 샤워장과 급수대 설치 공사는 행사를 넉 달 남짓 앞둔 올해 3월에야 시작됐다. 정부가 6년이란 시간이 있었음에도 뒤늦게 준비에 착수해 ‘펄밭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참여자들이 이용할 필수 시설도 당초 계획보다 모자라게 마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새만금개발청이 밝힌 초기 계획에 따르면 영지에는 샤워장 417동, 급수대 278개가 들어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야영지에 실제로 마련된 건 샤워장 281동(67%), 급수대 120개(43%)다. 각각 초기 계획의 절반 안팎 수준만 설치된 것이다. 행사 초기 위생 불량 문제가 지적됐던 화장실도 관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게 배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잼버리 사태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등을 대상으로 한 감찰도 검토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가신인도의 문제가 걸린 만큼 최선의 수습을 다 한 뒤 철저한 리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통령실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12일 잼버리 폐막식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지원에 집중할 것”이라며 “감찰 관련 사항은 언급 않는 게 관례”라고 말을 아꼈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도 전북도 등 지자체의 예산 배정과 집행, 사업 진행 경과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샤워기-급수대, 당초 목표 절반도 안돼… 화장실, 1명이 10곳 관리 샤워기, 5000개 필요한데 1650개…급수대, 278개의 43% 120개 설치화장실 납품업체 “2곳당 1명 필요”…조직위, 불결 논란에 뒤늦게 증원폐기물 처리-해충 구제 대응도 늦어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행사 초기부터 샤워장과 화장실, 급수대 등 필수·위생시설이 열악해 논란이 됐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잼버리 야영장에 마련된 샤워장과 급수대 수는 당초 목표의 절반 안팎 수준이며, 그 안에 설치된 ‘샤워기 수’로 보면 목표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전반적인 준비 과정을 되짚어 보면, 정부와 전북도가 부실한 계획과 늦장 준비로 ‘뻘밭 참사’를 불러온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샤워기 5000개 필요한데… 1650개만 설치 새만금개발청은 2016년 ‘2023 세계잼버리대회 유치 실천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내놓았다. 사실상의 ‘초기 마스터플랜’에 해당하는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야영장에 샤워장을 총 417동 세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8일 잼버리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영지 내에 실제로 마련된 샤워장은 281동(67%)뿐이었다. 샤워장이 아닌 ‘샤워기 수’로 보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초기 계획에선 1동당 샤워기를 12개 설치해 약 5000개의 샤워기를 확보하기로 했지만, 실제 설치된 샤워기는 목표치의 33%인 1650개에 불과하다. 급수대 역시 278개를 설치하겠다는 당초 목표 대비 43%인 120개를 설치하는 데 그쳤다.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야영장 내 샤워장과 급수대 설치공사 업체를 선정한 건 잼버리 개막까지 불과 4개월여를 앞둔 3월 중순이었다. 정부가 늦장을 부리다 뒤늦게 샤워장 조성에 착수하면서 준비가 미흡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조직위 관계자는 “7월 장마가 길어지며 샤워장을 설치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던 건 맞다”면서도 “세부 운영 계획을 세우며 상황에 맞게 수량을 조정한 것으로, 시간이 없어 적게 만든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늦장’ 의혹이 제기되는 건 샤워장뿐만이 아니다. 당초 ‘K팝 콘서트’ 공연 등이 예정됐던 무대 설치 용역은 6월 중순이 돼서야 업체가 확정됐다. 공사 중 발생한 건설 폐기물을 처리할 업체는 개막 5일 전인 지난달 27일에야 정해졌고, 결국 행사장 곳곳에 폐기물이 쌓여 있는 채로 잼버리가 시작됐다.● 1명이 화장실 10개 청소… 임기응변 잼버리 잼버리 행사 초기 위생이 불량했던 화장실은 수량 자체는 충분했지만, 화장실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데 배정한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화장실 354개를 관리하는 데 배정된 인원은 70명이었고, 그나마도 오전, 오후로 나뉘어 투입돼 1명이 화장실 10개를 관리해야 했다. 잼버리 야영장에 이동식 화장실을 납품한 업체 관계자는 “통상 유지보수와 관리(청소) 계약을 함께 맺는데, 조직위는 납품과 유지보수 계약만 체결했다”며 “청결 상태를 유지하려면 화장실 2곳당 1명 정도를 배치해야 한다”고 전했다. 조직위는 불결한 화장실이 큰 논란이 된 후인 3일에야 추가 인력 100명을 부랴부랴 투입했다. 잼버리 참여자들의 온몸을 ‘화상벌레’ 등에 물린 상처로 가득하게 만든 것도 조직위의 준비 부족과 무관치 않다. 습지 특성상 대규모 해충 번식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조직위는 해충 기피제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 상처투성이가 된 참여자들의 다리 사진 등이 논란이 된 후에야 부랴부랴 후원을 받아 해충기피제를 참여자 1명당 1개씩 배부했다. 13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된 야영장 시설 공사도 철저한 계획보다는 그때그때 ‘임기응변’ 위주로 이뤄진 정황이 드러났다. 공사에 참여한 한 업체 대표는 “행사를 20일 남짓 앞두고 야영장 내부 길 곳곳이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진흙탕이 됐고, 예정에 없던 자갈 포장 공사를 추가로 해 줬다”고 말했다. 진흙밭 위에 텐트를 치기 위해 플라스틱 팰릿을 깔기로 한 것도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 하청업체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부안=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출산에 부정적인 20, 30대 미혼자 4명 중 1명은 경제적 부담이나 경력 단절 우려 등 걸림돌이 해결되면 출산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최근 전국 20~39세 미혼 남녀 1408명을 설문했다. 그 결과 결혼 의향이 없다는 응답은 43%, 출산 의향이 없다는 응답은 47%로 각각 나타났다. 절반에 가까운 결혼 적령기 남녀가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인 셈이다.결혼과 출산 의향이 없는 이유에 대해 남성은 주로 경제적 형편을, 여성은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결혼에 부정적인 이유에 대해 남성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42.6%로 가장 높았고, 여성은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다’(46.3%)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출산 의향이 없다는 이유는 남성의 경우 ‘자녀 교육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43.6%)가, 여성은 ‘육아에 드는 개인적 시간과 노력을 감당하기 어렵다’(49.7%)가 가장 우세했다. 다만 결혼에 부정적인 20, 30대 미혼 응답자 가운데 30%는 ‘걸림돌이 해결되면 결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출산에 부정적이었던 응답자 중에선 24.5%가 걸림돌 해소 시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불안과 좌절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비인후과학회의 세부 학회인 비(鼻·코)과학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낸 박인용 전 세브란스병원장이 6일 별세했다. 시신은 후학 양성에 써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해부용으로 기증할 예정이다.유족과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박 전 원장은 1935년 3월 평양에서 태어났다. 부산고,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60년부터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에서 근무했다. 1991~1995년 세브란스병원장, 1992년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을 지냈다.이비인후과의 여러 분야 가운데 고인은 코 연구에 매진했다. 1990년 9월 비과학연구회(현 대한비과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다. 2000년에는 국제비과학회장을 지냈다. 2001년 연세대 교수를 퇴직한 뒤 최근까지 서울 강남구의 한 이비인후과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했다. 2003년 제자들과 함께 이비인후과 교과서인 ‘코 임상해부학’을 펴냈다.고인은 생전인 2007년 시신 기증을 서약했다. 유족은 그의 뜻에 따라 후배들의 연구를 위해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할 예정이다. 유족으로 부인 박의란 씨와 아들 종민 크로스밸류파트너스 대표, 며느리 엄도연 씨, 손주 혜수 넥슨코리아 대리·혜지·혜연·세훈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9일 오전 7시 반. 02-2227-7580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AK플라자에서 무차별 테러를 벌인 최모 씨(22)처럼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않는 환자가 한 해 최소 1만4638명에 이르지만 ‘외래치료 명령’을 받은 사례는 28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래치료 명령은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경우 강제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이미 사건을 저지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만 내릴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래치료 명령의 대상을 넓히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제입원 환자 아니면 명령 불가능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 씨는 2020년 조현병의 전 단계인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 최 씨가 범행 후 경찰 조사에서 ‘특정 집단이 나를 스토킹하려 한다’며 피해망상 진술을 한 것을 보면 치료가 중단된 최근 3년간 증상이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환자가 치료 사각에 방치되지 않도록 2009년 3월 도입된 제도가 ‘외래치료 명령’이다. 정신병원이 청구하면 지방자치단체 산하 정신건강심사위원회가 심사해 환자에게 최장 1년간 외래치료를 명령하고 치료비도 지원해 줄 수 있다. 2019년 4월 ‘외래치료 지원제도’로 이름을 바꾸고 보호자 동의 없이도 치료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이미 자해나 타해 행동으로 ‘강제입원’됐던 환자에게만 이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최 씨처럼 입원한 적이 없으면 아예 명령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환자가 치료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 강제할 법적 수단도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 3만9927명 가운데 퇴원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외래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는 1만4638명(36.7%)이었다. 중증인 만큼 계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 같은 해 외래치료 명령이 내려진 사례는 28건뿐이었다. 그 전해(2020년)에는 8건이었다. 서울과 부산, 경기 등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시도에서는 외래치료 명령이 한 건도 청구되지 않았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증 정신질환은 단기간 내 완치가 사실상 불가능해 꾸준한 상담과 복약이 필수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관리 사각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해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최 씨의 경우 입원 이력이 없는 만큼 강제치료 이력도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 때문에 치료 명령 대상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명령 대상 넓히고 국가책임제 검토해야”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할 우려가 크다면 입원 이력이 없어도 외래치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1983년 이후 47개 주(州)에 외래치료 지원제도(AOT)가 도입됐는데, 입원 경력보다는 ‘재발’이나 ‘악화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다수 선진국이 병식(스스로 아프다는 인식)이 없는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예방적 차원에서 치료를 명령하는 것을 인권침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증 정신질환의 초기 진단부터 치료까지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책임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의심 신고부터 진단, 병상 배정까지 모두 담당했던 것처럼 중증 정신질환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환자가 불만이나 불안감을 해결하지 못해 ‘폭발’하는 일을 막기 위해 맞춤형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와 관련해 열악한 시설 문제에 미숙한 대응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조직위원회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주최 측이 ‘곰팡이 계란’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나 3일 정부가 조사에 나섰다. 잼버리 참가자에 따르면 조직위는 2일 아침식사로 40여 명의 대원에게 구운 계란 80개를 지급했다. 이 계란들 중 6개에서 곰팡이가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3일 “해당 계란을 전량 회수해 제조부터 유통 단계까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열악한 시설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한 참가자는 “야영장에 설치된 샤워시설이 천막으로 돼 있어 바로 옆이나 외부에서 쉽게 들여다보인다”는 불만도 제기했다. 다른 참가자는 “화장실에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심지어 남녀 공용인 곳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또, 새만금 간척지에 야영지를 조성하다 보니 밤마다 모기 등 해충 등이 들끓고 있다고 했다. 의료시설 부족으로 온열질환자가 방치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두통이나 어지럼증 등을 겪은 환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한 채 귀빈용 리셉션 홀 테이블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며 “일부 환자들은 바닥에서 담요를 덮고 있었는데 방치되다시피 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중학생 자녀를 행사장에 보냈다는 한 학부모는 “중3 아들이 참가하고 있는데 폭염에 모기까지 겹쳐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며 “소금이나 생수 같은 물품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고 하는데 답답하다. 국제적인 행사를 너무 미숙하게 운영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녀를 참가자로 대회에 보낸 학부모들은 잼버리 조직위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대회를 당장 중단하라”며 “아이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은 살인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에서 개최된 잼버리의 열악한 환경이 온라인에서 확산되자 시민들은 이전 개최지였던 스웨덴과 일본, 미국 등의 상황과 비교하며 비판하고 있다. 특히 개최지로 6년 전에 선정돼 준비 기간이 충분했고 공사 관련 비용으로만 2000억 원 가까이 쓴 데 대해 “국제적 망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야영지 인근을 지나다가 행사 상황을 지켜봤다는 한 시민은 “이 땡볕 더위에 허허벌판에서 대회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나라 망신 제대로 시키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폭염에 사망자까지 나왔는데 준비가 부족해 보였다”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부안=최미송 기자 cms@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보건복지부가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채 사망한 아동 222명에 대해 학대 여부를 재조사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최근 이들에 대해 “학대 혐의가 없다”며 조사를 종결한 바 있지만, 부모의 학대 전력이나 형제자매의 생사 등도 파악하지 않고 학대 가능성을 배제한 건 성급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복지부는 3일 “사망 아동 222명에 대해 부모의 학대 이력과 형제자매의 안전을 추가로 확인하겠다”며 “(학대 등이) 의심되는 사례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달 18일 출생 미신고 아동 2123명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망 아동 249명 중 222명은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고, 추가 조사 계획도 없다고 했다. 사망진단서 등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를 지닌 의사가 작성하므로, 학대 여부가 그때 가려졌을 거란 논리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의 사망 장소나 원인은 물론이고, 부모의 아동학대 신고 이력이나 형제자매의 생사 등 학대 위험 요인도 파악하지 않은 사실이 동아일보 보도(8월 3일자 1, 10면 참조)로 드러나자 해당 부분을 추가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국내 한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명예교수는 “영아의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는 부모의 진술대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더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사망진단서 등 서류를 파기하도록 지침을 내린 데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전수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개인정보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파기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립대병원 대다수가 환자 진료로 수익을 내지 못해 장례식장 운영 등 가욋벌이로 지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필수의료의 중추인 국립대병원이 본연의 역할인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체계를 손보고 경영 효율화의 길을 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개된 국립대병원 17곳의 재무제표(7월 기준)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립대병원 17곳의 의료수지 적자는 4007억 원이었다. 적자 폭은 2020년 3570억 원, 2021년 3736억 원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국립대병원이 심장 수술이나 소아 내시경처럼 버는 돈은 적은데 비용이 큰 수술과 시술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눈에 유리 조각이 박힌 환자가 오면 수술 의사와 소독 간호사 등 3, 4명이 투입돼 길게는 1시간 가까이 각막 이물 제거술을 해야 한다. 이때 병원이 받는 돈은 1만9340원에서 3만9400원 수준으로 인건비도 안 나온다. 반면 로봇수술이나 통증 주사처럼 투입 비용 대비 수익이 큰 비급여 진료는 장비가 부족해 못 하거나 ‘공공병원’이라는 이유로 민간병원의 90% 수준으로 가격을 매긴다. 이 때문에 대다수 국립대병원이 장례식장이나 식당, 주차장 운영 등 진료와 무관한 데서 수익을 내고 있다. 이마저도 규정상 외부 위탁 운영이나 계약직 고용 등으로 제한돼 있어 이윤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못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와 관련해 열악한 시설 문제에 미숙한 대응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조직위원회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주최 측이 ‘곰팡이 계란’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나 3일 정부가 조사에 나섰다. 잼버리 참가자에 따르면 조직위는 2일 아침식사로 40여 명의 대원들에게 구운 계란 80개를 지급했다. 이중에서 계란 6개에서 곰팡이가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3일 “해당 계란을 전량 회수해 제조부터 유통 단계까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열악한 시설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한 참가자는 “야영장에 설치된 샤워시설이 천막으로 돼 있어 바로 옆이나 외부에서 쉽게 들여다 보인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다른 참가자는 “화장실에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심지어 남녀공용인 곳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또, 새만금 간척지에 야영지를 조성하다보니 밤마다 각종 해충과 모기 등이 들끓고 있다고 했다. 의료시설 부족으로 온열질환자가 방치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두통이나 어지러움 등을 겪은 환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한 채 귀빈용 리셉션 홀 테이블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며 “일부 환자들은 바닥에서 담요를 덮고 있었는데 방치되다시피 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자녀를 행사장에 보냈다는 한 학부모는 “중3 아들이 참가하고 있는데 폭염에 모기까지 겹쳐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며 “소금이나 생수 같은 물품도 제대로 못받고 있다고 하는데 답답하다. 국제적인 행사를 너무 미숙하게 운영하는게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자녀를 참가자로 대회에 보낸 학부모들은 잼버리 조직위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대회를 당장 중단하라”며 “아이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은 살인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국내에서 개최된 잼버리의 열악한 환경이 온라인에서 확산되자 시민들은 이전 개최지였던 스웨덴과 일본, 미국 등의 상황과 비교하며 비판하고 있다. 특히 개최지로 6년 전에 선정돼 준비 기간이 충분했고 공사 관련 비용으로만 2000억 원 가까이 비용을 쓴 데 대해 “국제적 망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야영지 인근을 지나다 행사 상황을 지켜봤다는 한 시민은 “이 땡볕 더위에 허허벌판에서 대회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나라 망신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폭염에 사망자까지 나왔는데 준비가 부족해보였다”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부안=최미송 기자 cms@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보건복지부가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사망한 아동 249명 중 222명에 대해 “학대 혐의가 없다”며 최근 조사에서 결론을 냈지만, 실제로는 이들의 사망 장소나 원인은 물론이고 형제자매의 생사 등 학대 위험 요인을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2일 확인됐다. 복지부는 지난달 18일 출생 미신고 아동 2123명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최소 249명의 사망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망 아동 중 222명에 대해선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다. 추가 조사도 하지 않는다. 사망진단서, 검안서 등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를 지닌 의사가 작성하므로, 만약 학대가 의심되면 그때 신고돼 수사했을 것이란 논리였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222명의 사망 형태와 원인, 장소 등 자료를 요청하자 복지부는 “별도로 파악하거나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관련 서류 사본 제출 요청에는 “각 지자체가 받았던 서류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완전히 파기하도록 안내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처리 목적이 달성된 개인정보는 즉시 파기하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대 가능성을 가늠할 실마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서둘러 파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에선 사망진단서 등이 있다고 학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겉으로 드러나는 학대 흔적이 명백하지 않으면 부모 말을 듣고 서류를 써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13년 3월 대구에서 학대로 숨진 정지향 양(당시 2세) 사건 땐 검안의가 시신을 보지도 않고 허위 서류를 써준 것으로 드러났다.“사망진단서만으론 ‘아동학대 없다’ 판단 일러… 추가 조사 필요” 사망 아동 222명 부실조사사망진단서 근거 ‘병사’ 추정하지만퇴원 48시간전엔 의사가 안봐도 발급“시간 쫓겨 보여주기식 조사” 지적 복지부는 출생 미신고 사망 아동 222명의 학대 피해 가능성을 낮게 보는 근거로 병원 진료 중 사망 시 발급되는 ‘사망진단서’의 존재를 꼽았다. 222명 중 상당수는 사망진단서가 확인됐으므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병사했을 거라는 추정이다. 학대나 유기를 의심할 수 있는 병원 밖 사망 시에는 시체검안서가 발급되는데 이는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고 복지부는 전했다.지자체 담당자들은 “조사 기간이 2주에 불과해 사망 관련 서류를 확보하기에도 촉박했다”고 한다. 출생 미신고 아동 2132명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고, 사망자는 서류만 확인하라는 게 복지부 지침이었기에 추가적인 조사는 없었다. 한 광역자치단체 직원은 “자칫 아이 잃은 부모의 아픔을 헤집을까 봐 사망 원인을 꼬치꼬치 묻지 못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는 통상적인 서류 발급 절차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다. 영아가 응급실에 실려와 숨지면 통상 법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응급실 전공의(레지던트)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한다. 응급실에서 퇴원한 지 48시간이 지나기 전에 숨졌다면 의사가 시신을 직접 보지 않아도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를 발급해줄 수 있다.또 사망 아동 222명 대다수가 학대와 무관하다는 복지부의 판단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출생신고 기한(생후 1개월)을 넘기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다가 병원에 방문했다면 그 자체로 학대를 의심할 수 있다. 2014년 이전에 태어나 이번 복지부 전수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들의 생사와 안위도 확인 대상이다.아동학대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 관계자는 “만약 형제자매가 사망했거나,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의심 신고가 접수된 적이 있는 가정이라면 조사할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 이전까지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조사를 미루며 학대와 유기를 방치해 온 정부가 ‘보여주기식’ 조사로 마무리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다.결국 지금이라도 정부가 사망 아동 222명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여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는지 제대로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 의원은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고 사망했다면 원인이라도 분석해야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데, 복지부가 내실 있게 조사한 게 맞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조산 위험에 처했던 다문화 가정의 임신부가 고려대 안산병원 의료진의 도움으로 무사히 세쌍둥이(사진)를 낳았다. 병원 측은 외부 후원기관 등과 연계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 세쌍둥이 가정에 수천만 원에 이르는 분만비와 진료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1일 고려대 안산병원은 지난달 28일 몽골 국적의 임신 34주차 임신부 A 씨가 제왕절개 수술로 여아 세쌍둥이를 출산했다고 밝혔다. 출생 당시 아이들은 몸무게 2.23∼2.38kg으로 미숙아였지만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세쌍둥이가 미숙아로 태어나면 분만비와 중환자실 입원비 등 수천만 원의 의료비가 든다. 올봄 A 씨가 병원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의료진은 분만비를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인 남편도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진은 조산 기미가 보이자 망설이지 않고 산모와 세쌍둥이의 안전을 위해 출산을 돕기로 결정했다. 수술을 집도한 이 병원 송관흡 산부인과 교수는 “산모와 세쌍둥이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아이들이 세상과 만나는 특별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동이었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