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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서울 광진구 반디앤루니스 롯데스타시티점. 한 20대 커플이 굳게 닫힌 서점 문 앞에서 ‘16일부터 한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고 있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근처에 사는 윤모 씨(24)는 “가까운 대형서점이 이곳밖에 없어 책을 둘러보고 싶을 때 늘 오던 서점이었다”며 “새 책을 한꺼번에 구경하기에는 오프라인 서점이 온라인보다 편리하다”며 아쉬워했다. 교보·영풍문고와 더불어 3대 대형서점이던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한 서울문고가 16일 부도 처리된 데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디앤루니스가 자리 잡은 지역에 이를 대체할 만한 오프라인 서점이 마땅치 않은 데다 중소 출판사의 마케팅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이번에 문을 닫은 반디앤루니스 지점은 롯데스타시티점, 신세계강남점, 목동점 등 3곳이다. 이 중 목동점을 제외한 나머지 2곳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이를 대신할 서점이 없다. 특히 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있는 신세계강남점 폐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접근성이 좋은 이곳은 여행객의 쉼터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직장인 박모 씨(30·여)는 “퇴근길에 들르면 여행객뿐 아니라 노인들도 책을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불편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계 전반에도 악재다. 온라인 도서시장이 급성장했지만,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여전히 출판사들이 신간을 선보이는 주요 통로로 기능해 왔다. 모바일로 책을 읽는 독자가 늘고 있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책을 살펴보기는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수십∼수백 권의 책을 볼 수 있는 경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으면 대형 출판사가 마케팅하는 책이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도서 시장이 양극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본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갖고 있지만 소규모 출판사들은 그렇지 못해서다. 오프라인 서점을 찾지 못하는 독자들은 한 번이라도 들어본 책이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위주로 사기 쉽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오프라인 매장에 신간을 한 권이라도 더 노출시켜야 하는 중소 출판사들이 반디앤루니스와의 거래를 신속히 끊지 못해 손해를 많이 입었다”며 “대형 출판사는 책을 미리 빼거나 거래 조건을 유리하게 바꿔 위험을 줄였다”고 말했다. 중소 출판사들의 마케팅 부담은 출판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면 출판사들이 콘텐츠 생산에 쏟아야 하는 노력을 마케팅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독자 입장에서도 손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1일 오전 서울 광진구 반디앤루니스 롯데스타시티점. 한 20대 커플이 굳게 닫힌 서점 문 앞에서 ‘16일부터 한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고 있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근처에 사는 윤모 씨(24)는 “가까운 대형서점이 이곳밖에 없어 책을 둘러보고 싶을 때 늘 오던 서점이었다”며 “새 책을 한꺼번에 구경하기에는 오프라인 서점이 온라인보다 편리하다”며 아쉬워했다. 교보·영풍문고와 더불어 3대 대형서점이던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한 서울문고가 16일 부도 처리된 데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디앤루니스가 자리 잡은 지역에 이를 대체할 만한 오프라인 서점이 마땅치 않은데다 중소 출판사의 마케팅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이번에 문을 닫은 반디앤루니스 지점은 롯데스타시티점, 신세계강남점, 목동점 3곳이다. 이 중 목동점을 제외한 나머지 2곳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이를 대신할 서점이 없다. 특히 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있는 신세계강남점 폐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접근성이 좋은 이곳은 여행객의 쉼터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직장인 박모 씨(30·여)는 “퇴근길에 들르면 여행객뿐 아니라 노인들도 책을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불편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계 전반에도 악재다. 온라인 도서시장이 급성장했지만,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여전히 출판사들이 신간을 선보이는 주요 통로로 기능해왔다. 모바일로 책을 읽는 독자가 늘고 있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책을 살펴보기는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수십~수백 권의 책을 볼 수 있는 경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으면 대형 출판사가 마케팅하는 책이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도서시장이 양극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본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갖고 있지만 소규모 출판사들은 그렇지 못해서다. 오프라인 서점을 찾지 못하는 독자들은 한 번이라도 들어본 책이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위주로 사기 쉽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오프라인 매장에 신간을 한 권이라도 더 노출시켜야하는 중소 출판사들이 반디앤루니스와의 거래를 신속히 끊지 못해 손해를 많이 입었다”며 “대형 출판사는 책을 미리 빼거나 거래조건을 유리하게 바꿔 위험을 줄였다”고 말했다. 중소 출판사들의 마케팅 부담은 출판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면 출판사들이 콘텐츠 생산에 쏟아야하는 노력을 마케팅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독자 입장에서도 손해”라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해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39)가 이 책의 인세 누락 문제로 출판사와 소송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장강명 작가가 출판사에 인세 누락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출판계에서 인세 관련 논란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출판계의 불투명한 유통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작가는 CJ그룹에서 일하던 2018년 11월 웨일북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두 번째 저서인 ‘90년생이 온다’를 펴냈다. 1990년 이후 태어난 신입사원과 기성세대가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실질적 인사관리 방법을 담았다. 2019년 8월 문 대통령이 이 책을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하면서 여러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까지 종이책이 약 36만 부 팔렸다. 신인 작가와 중소 출판사가 출간한 책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뒀다. 출판계 관행상 판매부수는 출판사가 관리하고,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이 수치를 통보받는다. 임 작가는 올 1월 출판사로부터 통보받은 종이책 판매부수를 검토하다 인쇄부수보다 10만 부가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쇄됐지만 팔리지 않은 재고라기엔 큰 수치였다. 임 작가는 출판사에 판매부수를 다시 확인해 인세를 제대로 지급해 달라고 수차례 항의했고, 2개월 뒤인 3월 출판사로부터 뒤늦게 1억5000만 원을 받았다. 장 작가에 대한 아작 출판사의 인세 누락 사례처럼 출판사가 자료를 안 주면 작가가 판매부수를 파악할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임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출판사가 인세를 무단으로 지급하지 않으려 했고 이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며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판매부수를 속이면 작가는 정확한 인세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출판사는 단순한 계산 착오였다는 입장이다. 권미경 웨일북 대표는 “전산 시스템이 미비한 중소 출판사 여건상 판매부수와 인세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잘못한 부분도 있고 (작가에게) 죄송하지만 미지급된 인세를 드린 뒤에도 반발하니 속상하다”고 말했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임 작가와 출판사는 ‘90년생이 온다’의 전자책 인세를 두고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다. 양측은 2018년 3월 전자책 인세를 ‘수익금의 15%’로 정한 A계약서를 작성했다. 6개월 뒤 문화체육관광부의 출간 지원 사업에 응모하기 위해 문체부 표준계약서에 따라 전자책 인세를 ‘전송 1회당 1400원’으로 정한 B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임 작가는 3월 말 “B계약서에 따라 미지급된 전자책 인세 1억30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라”며 웨일북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계약서를 복수로 작성하는 출판계의 기형적 구조와 관행이 갈등을 부른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책 판매량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현 출판유통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작가는 출판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사업을 지지하지만, 출판계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사업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출판계가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참여를 거부하는 건 정부 주도 시스템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이라며 “민간 주도로 전산망을 만든 해외 사례를 참고해 합리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날지 못하도록 날개가 잘린 채 해외 동물원에서 들어온 흑고니가 있었어요. 이 흑고니가 낳은 새끼들이 자라서 날기 시작했죠. 당연한건데 놀랍기도 하고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2001년부터 충북 청주동물원 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정호 씨(47)는 어느 순간 자신의 직업이 딜레마로 다가왔다. 동물을 사랑해 수의사가 됐지만 일터인 동물원이 과연 동물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20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다음 달 1일 출간하는 에세이 ‘코끼리 없는 동물원’(MID)에 담았다. 그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사람들은 동물권을 위해 동물원을 없애자고 해요. 하지만 해외에서 온 동물들을 당장 방사했다간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죽고 말 겁니다. 전문가 보호가 필요한 멸종 위기종도 많습니다.” 그가 내놓은 결론은 보호소로서의 동물원이다. 기존 동물원이 동물을 선보이는 데 방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자연에서 자생하기 어려운 동물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데 치중해야 한다는 것. 그의 제안에 따라 청주동물원은 차츰 바뀌고 있다. 야생에서 서식할 수 있는 동물을 방사하면 해당 동물이 차지해온 공간을 확장해 우리 안 동물들의 생활공간을 넓혔다. 수직으로 이동하는 걸 좋아하는 동물에게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구조물을, 독자적인 공간이 필요한 동물에게는 숨을 곳을 충분히 만들어줬다. 김 씨는 “본래 습성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이른바 ‘동물 행동풍부화’는 동물을 행복하게 한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동물의 특성을 더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동물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물원을 즐기는 방법을 귀띔했다. 동물원들이 운영하는 여러 프로그램의 이면을 들여다보라는 것. 새 모이주기 체험처럼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은 보통 시작 전 동물을 굶긴다. 묘기를 부린 후 사육사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프로그램도 비슷하다. 반면 동물들의 건강검진을 지켜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동물에 무해하고 특히 이들이 사람과 비슷한 신체기관을 가진 생명임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동물권을 존중하는 동물원을 방문하면 동물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셈이다. 김 씨는 언젠가 모든 동물원이 찾아오는 손님보다 그곳에 사는 동물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되기를 꿈꾼다. “먼 미래에 모든 야생동물들이 사람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면 그땐 동물원이 모두 사라져도 괜찮을 거예요. 그때까지는 ‘동물들이 살기 좋은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생물의 진화를 탐구할 때 우리는 흔히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채택한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시각을 빌려 적자생존의 생태계에서 선택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식이다. 그런데 이 책은 독특하게도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물을 관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무당벌레에게는 왜 바퀴가 아니라 다리가 달렸는가. 왜 생물마다 세포의 크기가 비슷한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미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연구센터에서 미생물을 연구한 우주생물학자다. 타행성의 극단적 생태환경에서 생명의 존재 가능성을 탐구해온 그에게 생명을 물리학 시각으로 접근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지구에서 진화해 온 여러 생물을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 규모까지 추적하며 물리법칙이 작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무당벌레의 모든 다리에는 각기 움직일 수 있는 마디가 3개씩 있다. 이는 무당벌레가 수직 벽을 타거나 안전하게 착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당벌레의 발바닥에 난 가시 털에서는 끈끈한 유체 막이 분비된다. 유체 막으로 다리를 바닥에 밀착시키면 이동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세포가 미세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세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양소를 섭취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이다. 표면적이 넓을수록 영양소의 교환과 노폐물 배출이 용이하다. 그런데 구형인 세포의 크기가 커지면 표면적이 제곱으로 증가할 때 부피는 세제곱으로 늘어난다. 다시 말해 단위 부피당 영양소와 노폐물이 오갈 면적이 줄어드는 것. 따라서 세포의 크기가 작을수록 물질 교환에 유리한 셈이다. 저자는 생물을 물리학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는 데 의미를 둔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진화가 순전히 예측 가능한 물리학의 산물임을 입증하려는 무익한 시도가 아니다. 역사적 변칙과 우연은 실제로 작용하며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이 다양한 진화의 실험 속에는 물리학의 확고한 원리가 숨어 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한복을 입은 여성이 거대한 나무뿌리가 우거진 정글 숲을 거닐고 있다. 흔히 떠올리는 초록색이 아닌 붉은색 정글이다. 화가 천지수(45·여)가 그린 이 그림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의 문집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민음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천지수는 “나혜석이 헤쳐 나가야 했던 척박한 환경을 강렬한 붉은색으로, 그의 담대한 도전 정신을 당당한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6∼2020년 작업한 ‘페인팅 북리뷰’ 53점을 엮어 신간 ‘책 읽는 아틀리에’(천년의상상)를 14일 펴냈다. 이탈리아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천지수는 2003년 ‘조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에서 주목받았다. 페인팅 북리뷰란 작가가 책을 읽으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을 말한다. 그는 “그림으로 표현한 서평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책으로부터 출발한 또 하나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강조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죽음을 인식하고 사는 삶에 대해 쓴 에세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를 읽고선 삶의 회귀성을 떠올렸다. 그는 이를 눈송이가 자신이 태어난 바다 위로 떨어지는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책에는 이 밖에 황선도의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서해문집), 쓰노 가이타로의 ‘100세까지의 독서술’(북바이북) 등 53권의 독서 감상문이 그림과 함께 실렸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 53점은 경기 파주시 지혜의숲 2관 갤러리 지지향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달 17일부터 8월 17일까지. 무료.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A출판사의 신간 담당 편집자는 출간 이후 판매량을 모른다. 새 책의 디자인부터 구성까지 일일이 그의 손을 거치는데도 정작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너무 답답해 사장에게 판매량을 물었지만 “그런 걸 왜 묻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사장은 판매량을 체크하는 사내 부서에 편집자들에게 수치를 알려주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해외 번역서를 국내에 소개하는 B출판사 편집자는 사장으로부터 “출판담당 기자들이 묻거든 해외 현지 에이전시에 통보한 판매량으로 답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실제보다 적은 판매량 숫자를 에이전시에 보고했기 때문. 출판사 관계자는 “에이전시를 통해 저자와 소통하는 번역서의 경우 판매량을 속이기가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최근 작가 장강명과 아작 출판사 사이에 인세 누락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출판계 내부에서도 불투명한 유통구조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와 마케터, 디자이너 등 출판계 종사자 570여 명이 모여 있는 한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서다. 이 채팅방은 20년 이상 출판계의 온라인 커뮤니티 역할을 한 웹사이트 ‘북에디터’를 대체하며 새로운 정보 공유의 장으로 떠올랐다. 이직을 준비하는 편집자들이 다른 출판사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채팅방에서 출판사 직원들은 신간 판매량은 편집자가 시장 반응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수치인데도 일부 출판사들이 이를 쉬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편집자는 “그동안 재직한 출판사 중 절반은 판매부수를 편집자와 공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가 뭘까. 출판계에서는 편집자를 통해 판매량 수치가 저자에게 전달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한 편집자는 “제대로 된 출판사라면 판매량을 편집자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며 “인세 누락 논란에서 보듯 저자와의 출판 계약에 문제가 있는 출판사들은 판매량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매출 정보와 직결된 판매량을 숨기는 건 탈루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강명 등 일부 작가들은 출판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사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계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일부 출판사의 문제를 전체 출판계의 문제로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며 사업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일부 출판사의 ‘내부 갑질’ 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평소 직원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기로 유명한 한 출판사 대표는 판매 부진 책임을 묻겠다며 책 재고를 불태우는 ‘분서갱유’ 퍼포먼스를 촬영해 직원들에게 보여줬다. 다른 출판사에서는 사장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직원들에게 강요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갓 입사한 사장 2, 3세에게 특혜를 줘 입방아에 오른 출판사들도 있다. 인문서 전문 출판사의 김모 대표는 “최근 한 출판사 대표가 자신의 자녀를 입사시키자마자 팀장급 연봉을 지급해 막내 편집자가 퇴사한 일도 있다”고 말했다. 사장 2, 3세와 달리 상당수 출판사 직원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계약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출판계는 다른 업종에 비해 초봉 등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한 편집자는 “연봉의 13분의 1 혹은 14분의 1을 따로 쪼개 퇴직금과 상여금으로 지급하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도처에 널려 있다. 관련 책도 많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조언, 치료에 사용하는 약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정보가 쏟아진다. 그러나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병과 탈 없이 공생하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0년 전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삽화가 이한솔 씨(31)는 ‘정신병자의 세계’를 탐구하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고립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에게 ‘정보만 주고 도망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 만화를 그렸다. 최근엔 에세이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반비)를 펴냈다. 이 씨는 책의 초반부에 “정신질환이 가진 질병으로서의 위험성과 현실적인 파괴력을 강조하고자 ‘정신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정신질환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인 ‘정신병자’도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라는 맥락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책은 ‘리단’이라는 필명으로 썼다. ‘리단’은 양극성 장애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리튬 성분의 약물 ‘리단정’에서 따왔다. 그를 11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만났다. “어느 날 정신질환 때문에 환청을 듣는 친구 앞에서 실없는 농담을 했는데, 자기 환청이 제 농담을 듣고 웃었다는 거예요. 이런 기이한 웃을 거리들이 자주 생기는 경험이 정신질환자들에게 무척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이 씨는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뿐 아니라 신경증, 우울증, 조현병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폭넓게 다뤘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가 여러 정신질환자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교류해왔기 때문이다. 2015년 트위터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과 정보를 나누던 그는 2016년 ‘여성 정병러(정신질환자를 이르는 조어) 자조(自助·스스로 돕는다) 모임’을 만들어 많은 정신질환자와 소통했다. 이 씨는 “제가 모든 정신질환자의 자조 집단이 돼 줄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알려주는 것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이나 친구를 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까. 이 씨는 “문제는 병이 아니라 관계다. 평소 타인과 관계 맺을 때처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말했다. 과거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살하려 했던 사람은 자살 시도를 한 곳에 자기의 일부를 두고 온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일부를 어딘가에 두고 온 사람이 현실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그는 책의 첫 장에 “노화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병은 진절머리가 나지만, 병이 펼쳐주는 지평도 상상만큼 나쁘지 않다”고 썼다. 그가 트위터와 만화, 글 등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통해 동료 ‘정병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신병을 소거가 아닌 적응의 대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정신병이 생기기 전의 삶을 치료의 목적으로 두면 실패하는 경험이 반복되며 회복을 포기하게 됩니다. 한번 생긴 정신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병에 적응하고 병을 관리하는 삶을 상상해야 비로소 정신병에 맞설 수 있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트라우마와 분노가 불면으로, 염증으로, 소화불량으로, 흉통으로 기어코 드러나 그 봄에 우리는 발열 없이 계속 아팠다.”(‘여기 우리 마주’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지 않고도 느끼는 고통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이 책의 두 번째 수록작이자 2021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여기 우리 마주’는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 펜데믹 상황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생생히 그린다. 집에서 비누를 만들어 판매한 지 9년 만에 상가에 공방을 차린 화자는 코로나19로 일과 육아 무엇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학원 차를 운전해 돈을 버는 화자의 친구 수미도 같은 고립감에 시달린다. 두 사람의 심리적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리며 작가는 한순간도 리얼리티를 잃지 않는다. 어떤 소설은 르포 기사보다 진실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최은미의 세 번째 소설집인 이 책에는 2016∼2020년에 쓴 단편 9편이 수록됐다. 주로 여성이 가족이나 친밀한 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겪는 일들에 집중했다. ‘여기 우리 마주’ ‘보내는 이’ ‘운내’가 여성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을 다뤘다면 ‘눈으로 만든 사람’ ‘美山’ ‘11월행’은 가족에 속한 여성의 모습을 그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보내는 이’는 최은미의 서늘한 파괴력이 가장 폭발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온해 보이는 두 기혼 여성을 등장시켜 그들의 썩어 있는 내면으로 화면을 조금씩 좁혀 나간다. 화자는 딸의 친구 엄마인 진아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다가 진아가 남편에게 당해 온 폭력의 실체를 알게 된다. 2017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표제작 ‘눈으로 만든 사람’은 여성이 성인 남성으로부터 겪는 폭력과 이것이 생애 전반에 미치는 영향, 여성 가족에게만 요구되는 의무감을 그렸다. 정제된 문장으로 폭발적 서사를 만들어내는 최은미의 또 다른 도약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우리는 대부분 혼자라는 상실감에 자주 빠집니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부터 ‘브릿마리 여기 있다’의 브릿마리,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엘사까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 온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40)이 신작 소설 ‘불안한 사람들’(다산책방)로 돌아왔다. 전작 ‘일생일대의 거래’(다산책방)가 나온 지 1년 6개월 만이다. 배크만은 신작에서 몸만 커버린 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느끼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내 소설들은 하나의 골목, 하나의 마을을 무대로 펼쳐진다. 공간이 작으면 작을수록 인간의 내면과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신작은 스웨덴의 ‘별로 크지 않은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새해를 이틀 앞두고 은행에 권총을 든 강도가 침입해 6500크로나(약 88만 원)를 요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금 없는 은행에 들어와 돈을 요구한 것부터 영 어설펐던 이 강도는 범행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마침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곤 아파트 매매가 이뤄지는 오픈하우스(신축 아파트에 들어선 본보기집)로 도망친다. 그때 아파트를 둘러보고 있던 방문객 8명을 데리고 인질극을 벌인다. 인간의 내면을 정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꿰뚫어보는 배크만 특유의 통찰은 이번 작품에서 더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데뷔작 오베라는 남자가 세계적 인기를 끈 데에는 겉으로 보기에 괴팍하기만 한 59세 남성 오베를 매력적이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만든 영향이 컸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탐구하는 것만이 내가 작가가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배크만의 문학세계는 개인에서 관계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소설에는 강도와 인질, 범인을 쫓는 경찰관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다층적이고 서로 정교하게 얽혀 있다. 지난해 영어 번역본이 발매되자마자 미국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그는 2012년 데뷔 후 현재까지 중편소설 3편을 포함해 모두 9권의 소설을 펴냈다. 불안한 사람들의 소재를 어디에서 찾았는지 묻자 세 가지 기준으로 답했다. ‘첫째, 고전적인 코미디물을 쓰자. 둘째, 고전적인 밀실 미스터리를 쓰자. 셋째,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불안한 어른들끼리의 감정적 충돌을 다루자’다. 그는 “선택한 3개의 아이디어가 옳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배크만은 “평소 작품을 쓸 때 실제로 떠올리는 아이디어 10개 중 7개는 끔찍하고 3개 정도만 들어줄 만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7세 소녀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과 정체성을 지닌 인물을 폭넓게 다뤄 온 배크만은 앞으로도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제가 지금껏 관심이 없었던 단 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작품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연령대의 다채로운 사람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아볼 생각이에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왼쪽으로 바라보니 큰 바다가 푸른 하늘에 맞닿아 천하에 아무것도 내 눈을 가리는 것이 없었다. (…) 생각해보면 구주(九州) 안의 백공 만물, 고금의 서적, 사마천이 구경했다는 것과 초나라 좌사가 읽고 기록한 것이 탄환처럼 조그마한 것이었다.”(해유록) 조선의 문장가 신유한(1681∼1752)은 1719년 일본 대마도의 항구 서박포에서 출항한 배 위에서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서 겪은 일을 쓴 ‘해유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더불어 조선 기행문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다. 신유한은 어린 시절 서당 선생이 책 읽는 소리를 듣고 글을 깨칠 정도로 타고난 문재(文才)였다. 하지만 그는 큰 뜻을 펼치지 못하고 평생 하급관리로 전전했다. 지방의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이었다. 동시대 문인들은 신유한이 구사한 독특한 문장이 괴이하고 난해하다며 비판하기 일쑤였다. 이 시절 그가 느낀 서글픔은 ‘목멱산기’ ‘청천집’ 등의 저서에 절절한 문장으로 남았다. 당대의 주류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문장을 추구한 조선 문장가들을 조명한 시리즈가 최근 글항아리에서 발간됐다. ‘18세기 개인의 발견’(사진) 시리즈는 저마다의 결핍을 문학으로 승화한 신유한, 조귀명(1693∼1737), 유한준(1732∼1811), 이용휴(1708∼1782)의 삶을 다뤘다. 일곱 살에 스스로 한문을 깨친 조귀명은 병약하게 태어난 탓에 평생 방에서 그림과 문학, 종교를 탐구하며 살았다. 방대한 공부량은 타고난 문장력과 결합돼 독특한 문학세계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내건 조선에서 유불도의 통합을 추구한 그의 철학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집 ‘동계집’과 문학 작품 ‘오원자전’은 그의 독특한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문집 ‘저암집’과 ‘자저’를 남긴 유한준은 스스로 사대부이면서도 부패한 사대부를 앞장서 비판한 인물이다. 문우(文友)였던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비판했지만, 유한준은 거침없는 직설을 글로 담아 지배층의 미움을 샀다. 28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하지 않고 문학에만 전념한 이용휴는 몰락 가문의 후손이었다. 큰아버지가 왕에게 직언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문을 받다 숨진 사건을 계기로 그는 평생 재야의 문인으로 살았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스스로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으로 시대와 맞선 이들의 삶은 매일 각개전투를 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비행기로 스웨덴과 호주 사이를 왕복 여행하는 동안 약 4t의 탄소가 배출된다. 세계자원연구소(WRI)가 규정한 1인당 연간 탄소 허용치 2.5t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동할 때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숙소에서 머물 때에도 여행자는 끊임없이 탄소를 배출한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여행인구도 많아졌다. 2019년 전 세계 국제 항공편 승객은 14억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세계관광기구가 예상한 시기보다 2년가량 빨랐다. 그렇다면 지구를 아끼는 이라면 당장 여행을 그만둬야 할까. 저자는 여행 방법에 따라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2008년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을 시작으로 ‘지속가능한 여행’을 추구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터득한 친환경 여행법을 공유한다. 먼저 교통수단이다. 비행기를 최대한 적게 타고 기차나 버스, 자동차를 이용하는 게 좋다. 저자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마일(약 1.61km)을 이동할 때 버스는 0.08kg, 기차는 0.19kg, 자동차는 0.53kg, 비행기는 0.83kg의 탄소를 각각 배출한다. 어떤 연료로 동력을 얻고 승객을 얼마나 많이 실어 나르느냐에 따라서도 배출량이 달라지기에 에너지원 등도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런던과 파리를 잇는 고속철도 유로스타는 다른 열차보다 탄소를 덜 배출한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절반 이상이 재생 가능 에너지로부터 얻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서 이동한다면 공유 자전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숙소를 선택할지도 중요하다. 플라스틱 칫솔과 일회용 샴푸 대신 대나무 칫솔이나 고체 샴푸를 제공하는 숙소를 고르는 게 시작이다. 신축 건물 대신 기존 건물을 개조한 숙소를 이용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다. 또 직원 100%를 현지인으로 고용한 숙소를 고르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여행지에서 소비하는 음식도 현지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들어진 걸 권한다. 식재료는 생산과정은 물론이고 각지로 운송될 때도 탄소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추구하는 숙소들은 식재료를 직접 기르거나 운반 거리를 제한하는 방침을 따르고 있다. 음료수를 고를 때도 글로벌 기업에서 만든 음료보다 지역주민이 직접 제조한 시럽을 넣은 음료나 지역에서 나는 과일로 만든 주스를 마시자.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해외로 나갈 수 없는 국내 거주자들에게는 비행기 이용을 줄이자는 제안 자체가 넘어서기 어려운 문턱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 외에도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언젠가 코로나 사태가 종식돼 해외여행 길이 다시 열리면 이 책을 가이드북 삼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오로지 출판 편집자를 위한 8권짜리 시리즈가 팔릴지 솔직히 고민됐지요.” 2일 서울 마포구 유유출판사에서 만난 편집자 사공영 씨(34)는 “출판을 돕는 책이라면 만든다는 원칙 아래 밀어붙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문학책 만드는 법’으로 시작한 유유의 ‘책 만드는 법’ 시리즈를 지난달 4일 완간했다. 마지막 책은 8번째 책인 ‘과학책 만드는 법’. 당초 이 시리즈는 출판사 편집자를 타깃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명확한 기획 의도와 군더더기 없는 책 디자인 덕에 출판계뿐 아니라 잡지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자와 일반 독자들에게도 주목을 받았다. 이 시리즈를 디자인한 이기준 디자이너(46)는 “‘책에 대한 책’이라는 설명을 듣고 영어단어 ‘text(글)’의 어원이 라틴어 ‘textum(직물)’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모든 표지를 씨실과 날실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고 전했다.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까지 이 디자이너의 직관적이면서도 일관된 디자인도 한몫했다. 그는 ‘경제경영책 만드는 법’의 표지에는 그래프를 형상화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문학책 만드는 법’에서는 해석의 여지가 열린 분야라는 점에 주목해 자유롭게 떠다니는 점으로 표지를 꾸몄다. 그는 “표지가 책의 모든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궁금증을 충분히 자아내는 데 주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당초 출판사는 이 시리즈가 신입 편집자나 편집 지망생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팔릴 것으로 봤다. 하지만 문학이나 에세이 등 독자층이 두꺼운 분야를 다룬 시리즈는 벌써 2쇄를 찍었다. 계획했던 시리즈는 일단락됐지만 출판사는 편집자들 사이에서 요청이 많았던 분야를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예술책이나 만화책 만드는 법을 책으로 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어요. 학술서, 그림책 만드는 법도 나올 수 있겠지요. 출판을 돕는 책은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도 쭉 만들 생각입니다.”(사공영)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Butter’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Dynamite’와 ‘Life Goes On’에 이어 세 번째 정상이다. 1일(현지 시간) 미국 빌보드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21일(한국 시간) 발표한 두 번째 영어 디지털 싱글 ‘Butter’가 핫 100 순위에서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전주 1위 곡 ‘Good 4 U’를 끌어내리고 1위를 차지했다. 방탄소년단이 제이슨 데룰로의 ‘Savage Love’ 리믹스에 참여한 것까지 합치면 네 번째 1위다. 방탄소년단은 솔로가 아닌 그룹 중에서는 1970년 잭슨파이브(8개월) 이후 가장 단기간(9개월)에 4곡 1위 기록을 이뤄냈다. ‘Butter’는 발매 이후 첫 차트 진입주에 1위를 한 ‘핫샷’ 데뷔곡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핫샷 데뷔곡은 ‘Dynamite’, ‘Life Goes On’을 포함해 3곡이 됐다. 빌보드 역사상 핫샷 데뷔곡이 3곡 이상인 가수는 머라이어 캐리, 테일러 스위프트, 저스틴 비버, 드레이크, 아리아나 그란데, 트래비스 스콧 등 6명에 불과하다. ‘Butter’는 글로벌 차트도 휩쓸었다. 전 세계 200개 이상 국가·지역의 스트리밍과 판매량을 집계해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 글로벌 200’과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 다운로드 순위를 보여주는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Butter의 뮤직비디오는 신곡 발표일에 맞춰 유튜브에 공개한 이후 2억8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제목이 ‘요’로 끝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여튼 순해 보일 것 같아서. 10권 정도 쓰고 싶었다. 요요거리며 자꾸 나올 것 같아서. 계속 이어 쓸 수 있다면 ‘요요 소설’이라고 해야겠다.”(‘작가의 말’ 중)소설가 구효서(63)가 한껏 친근해진 이야기로 돌아왔다. 단편집 ‘아닌 계절’ 이후 4년 만의 장편소설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를 통해서다. 1987년 단편 ‘마디’로 등단한 후 큰 공백 없이 꾸준히 작품을 써 온 그에게 이번 신간은 조금 특별하다. 이 작품이 작가로서의 삶에 변곡점이 될 것 같다는 그를 28일 만났다.》 “오늘 아침 이순원 작가가 전화를 걸어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번 소설 나긋나긋하더라. 그래 잘했어, 그렇게 써야지.’ 혼자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릅니다.” 구효서는 그동안 주류 문학과 실험적 작품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썼다. 특히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거나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난 난해한 서술 방식으로 작품을 쓰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신간은 강원도 평창의 한 마을 사람들이 펜션 ‘애비로드’를 중심으로 먹고 사랑하고 울고 위로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등장인물도 6세 아이부터 89세 노인까지 모두 평범한 이들이다. 부조리나 권력, 횡포 같은 말 대신 배롱나무, 도다리 쑥국, 고추밭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그는 출간 직전까지도 전작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과거에는 소설가라면 인물과 인물의 감정을 분리하고, 감정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작업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매우 중요한 작업이지만 이것에만 천착하다 보니 보편적 정서를 간과하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됐죠.” 그는 최근 몇 년간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이를테면 과거의 그는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도 ‘왜 눈물이 나지? 이 슬픔은 정당한가?’라는 고민에 빠졌단다. 작가 의식에만 충실한 나머지 별것 아닌 이유로도, 클리셰가 클리셰인 줄 알면서도 눈물 흘리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주 놓쳤다. 구 작가는 “겉이 없는 속이 있을 수 없듯 중심부와 주변부, 무거움과 가벼움을 편중되지 않게 다뤄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록의 안목으로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자연스레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신작 소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는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깊이”라며 “요새 인기가 많은 소재만 가져다 쓰고 정작 이야기에는 허점이 있는 작품들이 많이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평창의 누나 집에 놀러 갔다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 그곳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돼 작품 속에서 재탄생했다. 그가 이름 붙인 ‘요요 소설’의 두 번째 작품은 경남 통영 혹은 전남 목포를 배경으로 할 예정이다. 다작하는 소설가답게 그는 한 해에 한 편씩 10년에 걸쳐 작품을 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눈만 뜨면 부동산, 주식, 물가 얘기를 나눠야 하는 대도시 사람들을 보며 ‘이게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해요. 특별시, 광역시가 아닌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면 사람들이 사는 재미에 대해 한 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까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에서 인간의 욕망은 부의 증대를 가져오는 절대 이로운 가치다. 하지만 인간 욕망을 무한 긍정하면 모두가 충분한 부를 누릴 수 있을까. 저자는 지나치게 간단한 이 공식을 고집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되레 경제를 실패로 이끌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주류 경제학은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지 않는다. 욕구가 탐욕으로 변질돼 왜곡된 시장을 신고전주의는 설명하지 못한다.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캐비아가 비싼 값에 거래되는 요인은 재화의 희소성이나 인간의 배고픔(필요)이 아니라 탐욕이다. 욕구를 무한 긍정해도 된다는 주류 경제학의 달콤한 속삭임 탓에 윤리는 상업의 확산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왜곡됐다. 또 전체 부가 늘어도 가난한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경제사학자로 1939년 영국에서 태어나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가 경제학을 공부한 건 197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기 3부작’을 집필하면서부터다. 30년 동안 쓴 이 책으로 유명해진 그는 영국 워릭대 경제학부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책머리에 “정치와 역사, 경제를 아우르는 내 이력이 제3자의 비판적 시각으로 주류 경제학을 재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가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계에 요구하는 개선점은 세 가지다. 첫째, 경제주체인 개인을 합리성으로 무장한 존재로만 설정하지 말 것. 인간은 욕망만큼이나 자신을 둘러싼 윤리나 사회,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느 상황에서나 법칙으로 통용되는 ‘물리학’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릴 것. 결코 정량화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을 다루는 학문이 완전무결한 법칙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완전경쟁 시장을 향한 맹목적 신뢰를 거둘 것. 시장이 자발적으로 구조적 안정과 공정한 분배를 낳는다는 믿음은 시장 시스템을 공정하게 설계해야 할 필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특히 시장은 정치제도와 도덕적 믿음 같은 변수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민음사는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에 뉴스레터 ‘한편’을 구독자 메일로 보낸다. 같은 이름의 인문잡지 ‘한편’의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고 편집자들의 코멘트를 함께 싣는다. 지난해 1월 잡지 발간을 앞두고 시작한 뉴스레터의 구독자는 1년여 만에 1만2000여 명으로 늘었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논픽션팀 과장은 “요즘도 매주 100∼200명이 추가로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다. 이 중 3분의 1은 종이잡지 구독자로도 유입돼 홍보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이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해 출판사와 직접 소통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 뉴스레터는 각종 출판계 소식이나 책 관련 콘텐츠를 담은 메일을 정기적으로 독자들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다. 출판사들은 통상 매주 또는 격주에 한 번꼴로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로 독자들의 호응이 높은 출판사 뉴스레터로는 예닐곱 개가 꼽힌다. 이들 대부분이 지난해나 올해 초 서비스를 시작했다. 출판계 관계자는 “메일로 독자들에게 한 편의 글을 매일 보낸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가 성공하는 걸 보고 출판사들이 힌트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뉴스레터 목적에 따라 구성도 다양하다. 인문서 전문 출판사인 반비는 지난해 9월 뉴스레터 ‘책타래’를 시작하면서 인문서 독자들의 공동체 만들기를 목표로 삼았다. 최예원 반비 편집자는 “인문서 독자층은 일정 규모에 이르면 더 이상 늘지 않는다. 책타래는 기존 독자들끼리 인문서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대화 거리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여성주의나 가난, 죽음 등 인문학 논의가 가능한 주제를 정해 관련된 책들을 추천한다. 자사(自社)가 아닌 다른 출판사 책들도 포함된다. 책타래는 약 3000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창비는 타깃 독자층에 맞춰 두 종류의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고독단(고민해결독서단)’은 2030 독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책 소개와 더불어 함께 감상하면 좋은 영화나 전시를 안내한다. 새로운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친절한 문체로 작성되며,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곁들여지는 게 특징이다. 이와 달리 올 1월 시작된 ‘인문학레터’는 기존 인문서 독자층인 4050세대를 대상으로 밀도 높은 인문학 정보를 제공한다. 이정원 창비 홍보부 팀장은 “현재 운영 중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은 일방통행식 소통의 한계를 느꼈다”며 “반면 뉴스레터는 하단에 마련된 피드백 메뉴를 통해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뉴스레터는 규모가 작은 출판사들이 브랜드를 알리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출판사 책읽는수요일은 사명에 착안해 매주 수요일 구독자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낸다. 뉴스레터의 하위 카테고리를 ‘일하는요일’(편집자와 북디자이너가 책을 만드는 일상에 대해 쓴 글)과 ‘읽는요일’(책 속의 의미 있는 한 줄을 소개)로 구성해 출판사 홍보 효과를 노렸다. 뉴스레터를 보고 해당 출판사를 알게 된 독자가 책을 구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박혜미 책읽는수요일 편집자는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독자뿐 아니라 출판계 내에서도 존재감을 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고단한 사회생활을 한다면 한 번쯤 삶을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선택을 했겠지’ 하는 후회가 쌓여 우울감으로 번지기도 한다. ‘우울한 어른들’의 삶을 다룬 판타지 소설이 2030 여성 독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최근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26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5월 셋째 주 기준 전체 베스트셀러 1위는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 2위는 영국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인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인플루엔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삶에 지쳐 자살을 기도한 주인공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수만 가지에 이르는 자기 삶의 다른 버전을 열람한다. 이를테면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은 삶, 직장에 다니는 대신 남편과 시골에서 작은 펍을 운영하는 삶을 이 도서관에서 살아볼 수 있다. 주인공은 이를 통해 후회로 점철된 자신의 원래 삶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책은 20, 30대 직장인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중에서도 여성 독자층이 두꺼운 소설 분야 특성상 여성 구매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구매자 가운데 30대 여성의 비율은 26.2%, 20대 여성은 20.1%를 차지한다. 이들은 “꼭 잘나가지 않더라도 그냥 사는 것 자체가 삶임을 알려준 소설” “주인공의 삶과 내 삶이 겹치며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우울감을 이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 7월 출간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10주 만에 다시 1위에 오를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0대 여성의 구매 비율이 23.1%로 가장 높았고, 30대 여성도 21.1%다. 꿈을 판매하는 신비한 백화점을 무대로 한 이 책은 소량 입고된 예지몽에 고객이 몰리는 상황을 통해 현재의 삶이 실망스럽고 불안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뤘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자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방송에 소개되거나 다른 소설과 차별화되는 마케팅을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순위에 올랐다”며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소설들이 최근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다이어트를 평생에 걸쳐 식습관을 바꿔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실패라는 개념이 없어요. 못 하나 잘못 박았다고 집이 무너지지는 않는 것처럼요.” 최근 ‘맛있고 배부른 다노 다이어트 레시피’(세미콜론)를 출간한 이지수 씨(31)가 이렇게 말했다. 다이어트 노하우를 알려주며 유튜브에서 구독자 70만 명을 보유한 이 씨의 다이어트 대원칙은 ‘지속가능성’이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 싸고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20kg 가까이 불어난 몸무게를 되돌리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내린 결론이다. 25일 그를 만나 꾸준히 할 수 있는 다이어트 방법을 들어봤다. 그는 남이 성공했다는 다이어트 방법을 좇기보다는 스스로의 식습관을 잘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꼭 맞는 식단을 설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빵을 몹시 좋아해서 끊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일단 현미빵으로 바꿔 보는 식이다. 달콤하고 폭신한 크림에 바삭바삭한 과자류를 찍어 먹는 디저트를 좋아하는 이 씨는 이를 그릭 요거트와 현미 시리얼로 대체했다. 평소 맵고 짠 음식을 자주 먹는다면 혹시 입맛이나 배고픔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음식을 찾는 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만약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패턴을 보인다면 무작정 맵고 짠 음식을 참는 것은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 씨는 “음식 이외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음식 중에서도 시원한 커피 등 상대적으로 건강을 덜 해치는 음식을 찾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책에 한식을 기반으로 한 음식을 많이 담은 것도 다이어트를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다이어트 레시피는 서구권에서 먼저 개발됐기 때문에 이를 참고해 만든 한국의 다이어트 레시피도 샐러드, 샌드위치 등 서양 음식이 여럿 포함돼 있다. 이런 다이어트 식단은 기존 식재료들을 활용하기 어려워 실천하기 훨씬 까다롭다. 이 씨는 “우리가 가장 자주 먹는 집밥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레시피라면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초보 다이어터를 위한 팁△ 사진으로 식사 일기 기록하기: 효과적인 비만 치료법 중 하나△ 좋아하는 음식 칼로리 낮춰 만들기: 카카오가루와 두부로 브라우니 만들기 △ 목적에 맞는 운동 강도 정하기: 단기 효과는 고강도 저강도 병행, 유지하려면 중강도△ 환경 바꾸기: 손이 닿는 거리에 간식 치우기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범죄자는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마우스’나 ‘빈센조’가 그린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보며 못내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유전자가 정해져 있다면 범죄자를 교도소에 가둬 교화시키는 게 의미가 있을까. 범죄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고난 유전자 탓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비슷한 의심을 품은 적이 있다면 이와는 반대의 관점을 제시하는 이 책이 흥미롭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는 전작 ‘나오미와 가나코’ 발표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이번 장편소설에서 평범한 사람이 아동 유괴를 저지르기까지의 궤적을 탐구한다. 유머러스한 인물부터 잔혹한 범죄자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자유자재로 그리는 작가의 필력이 이번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설은 196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발생한 ‘요시노부 유괴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4세였던 무라코시 요시노부는 신체장애를 앓던 고하라 다모쓰(당시 28세)에게 유괴됐다. 단순 실종사고로 본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로 인해 아이는 사건 발생 2년 후에야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다. 당시 고하라는 일반 가정에 갓 보급되기 시작한 전화를 이용해 아이의 부모에게 몸값 50만 엔을 요구한 뒤 돈만 챙겨 도주했다. 범인은 목격자 진술에 의해 경찰에 붙잡혔다. 소설도 1960년대 초반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유괴된 다음 날 범인은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50만 엔의 몸값을 요구한다. 경찰은 범인의 목소리를 공개하고 대대적인 공개수사를 벌이지만, 아이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작가는 수사 상황을 치밀하게 재연하면서 범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좇는다. 유괴가 발생하기 수개월 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설은 1권 내내 범인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을 면밀히 묘사한다. 빈곤에 시달린 범인이 소설 초반 빈집에서 푼돈을 훔치는 대목을 읽을 때만 해도 나중에 그가 아동유괴와 살해를 저지르리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중대 범죄의 실체를 마주한 대중의 반응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언론은 부모에 의해 자해공갈에 이용당한 과거 등 범인의 어린시절을 파헤치며 범죄의 원인을 그의 불행했던 개인사에서 찾으려고 한다. 작가는 “귀축(鬼畜·인륜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의 소행을 접했을 때 뭔가 이유를 붙이지 않으면 사람은 불안해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작가는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연쇄폭발 사건을 다룬 전작 ‘올림픽의 몸값’(2008년)을 집필할 당시 관계자 인터뷰는 물론 당시 경찰 조직도와 수사 방법, 날씨까지 철저히 조사했다. 이번 장편에서도 탁월한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다. 소설은 도입부에서 청어낚시가 벌어지는 홋카이도 바다와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그리는데, 망망대해가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며 긴장감을 일으킨다. 소설은 가해자와 그를 쫓는 경찰, 피해자 중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그가 창조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빠짐없이 기록할 뿐이다. ‘죄와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숙제를 풀어보고 싶은 독자라면 어느 서늘한 밤, 이 책을 펼쳐도 좋을 것 같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