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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시점이 또 미뤄졌다. 올해만 세 번째. 원래 3월 29일이 예정이었지만 4월 12일, 10월 31일, 내년 1월 31일로 주야장천 밀렸다. 벌써부터 내년 1월 말 일정의 연장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러다 10년 후에도 기한 연장만 할 판이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후 영국 정치는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다. 최대 책임은 집권 보수당에 있지만 제1야당 노동당도 비전을 제시하진 못했다. 현재 하원 650석 중 보수당과 노동당의 의석은 각각 288석, 244석이다. 1월에는 63석 차이였지만 보수당의 자중지란 및 잇단 탈당에 44석으로 줄었다. 10여 개의 군소정당을 잘 규합하면 수권(受權)이 가능했겠지만 노동당은 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정국에서 보수당 대표는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으로 바뀌었다. 노동당은 2015년 9월부터 지금껏 제러미 코빈 대표(70)가 이끌고 있는데도 왜 그럴까. 이는 코빈의 ‘같기도’ 리더십에 기인한다. 그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만 취했다. “EU는 모든 문제의 근원도, 번영의 원천도 아니다. 브렉시트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없지만 브렉시트를 한다고 영국이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개그 프로그램에선 웃길지 모르나 정계 2인자의 발언으로는 초라하고 군색하다. 우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코빈파’(극좌파)와 ‘블레어파’(온건좌파)로 쪼개진 당 상황도 이를 부추긴다. 노조가 최대 지지 기반인 코빈파는 EU 체제가 저소득층 일자리를 뺏고 대도시 엘리트의 배만 불렸다고 본다. 국민투표 때 당론이 EU 잔류였는데도 코빈이 지지 연설을 주저했던 이유다. 성장과 분배를 결합한 ‘제3의 길’로 1997년부터 10년간 집권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국민투표 재실시를 통한 EU 잔류’를 외친다. 아직 상당한 세력이 있는 그는 자신의 재단을 통해 잔류파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왔다. 그가 비밀리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EU 수뇌부에 영국의 잔류 방안을 지도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두 파는 반(反)보수당, 반존슨을 제외하면 한배에 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서로 적대시한다. 코빈은 둘 사이에서도 우왕좌왕했다. 9월 코빈파 평당원들이 EU 잔류를 주장한 톰 왓슨 부대표를 내쫓으려 했다. 논란 끝에 축출을 위한 표결은 취소됐지만 이때도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차마 자신이 직접 못했던 반대파 제압의 깃발을 당원들이 들었다면 못 이기는 척 표결을 실시해 부대표를 쫓고 자신의 노선을 강화해도 됐다. 그게 아니라면 당의 수장으로서 반대파를 다독여야 했다. 그 대신 그는 블레어 전 총리가 폐기했던 국유화 관련 당규 부활을 거론해 블레어파와 더 멀어졌다. 기간산업 국유화, 부유세, 평등 및 무상교육을 주장하는 코빈은 노동당에서도 가장 왼쪽에 있다. 2016년 출간된 그의 평전 제목도 ‘코빈 동지(Comrade Corbyn)’. 콤래드는 공산당이나 사회당원들이 서로를 부르는 명칭이다. 1983년부터 36년째 런던 저소득층 지역인 이즐링턴 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남의 집 페인트칠까지 해주며 주민과 동료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하지만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 한다는 이유로 두 번째 아내와 이혼했다. 인간적으로는 선량하고 자상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외골수에 타협을 모른다. 당 안팎으로 집토끼와 산토끼를 다 잡으려다 집토끼마저 잃을 처지에 몰린 그의 성향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코빈이 보인 애매함이 정치공학적 계산에 기반한 고도의 전략이 아닌 일종의 결정장애임을 알아 버렸다. 20, 21일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43%는 ‘총리로 존슨이 최선’이라고 했다. 코빈을 말한 이는 20%에 그쳤다. 존슨 총리가 7월 취임 후 파국이 뻔한 노딜 브렉시트(합의안 없는 EU 탈퇴) 및 조기 총선만 고수하며 혼란을 더 부추겼는데도 코빈을 그 대체재로 안 본다는 얘기다. ‘영국의 트럼프’ 존슨 총리는 각종 막말과 기행, 계속되는 악수에도 지리멸렬한 야당을 둔 덕에 굳건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일반 영국인, 지루한 브렉시트 논란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계 경제는 무슨 죄일까. 집권 가능성이 낮은 불임 정당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만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내년 11월 3일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 위기를 맞았다. 그렇다고 탄핵 정국에서 꼭 민주당이 승리할까. 또 ‘제2의 트럼프’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까. 친(親)민주당 성향의 백인 지식인 저자 두 명의 책을 보고 아니라는 생각을 굳혔다. 페미니스트 법학자인 조앤 윌리엄스 미 헤이스팅스 소재 캘리포니아대 교수(67)는 ‘화이트워킹클래스(WWC·White Working Class)’에서 최고 학력 백인들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나머지 백인들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먹물’ 백인이 보는 ‘기타’는 정부 식량 보조에 의존하는 극빈층, 레드넥이나 힐빌리로 불리는 저학력·저소득층 노동자 정도가 고작이다. WWC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경찰, 간호사, 비서, 영업직 등인 이들은 가방끈이 짧을지언정 저소득층은 결코 아니다. 연 소득은 4만1000달러(약 4920만 원)에서 13만2000달러(약 1억5840만 원) 사이. 미슐랭 식당에서 최고급 와인을 마신 적도, 자신의 주(州) 밖을 벗어난 적도 거의 없다. 라틴어와 프랑스어도 잘 모르고 양성평등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도 적다. 그래도 성실히 살면서 세금을 꼬박꼬박 냈다. 이들의 바람은 현재의 직업을 최대한 오랫동안 영위하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의 고학력 백인들은 위선의 결정체다. 늘 정치적 올바름, 불평등 해소, 난민 보호를 외치는데 정작 본인은 어떤 희생과 헌신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유기농 음식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국어로 치면 직조, 핍진성, 형해화 같은 말만 쓰는 것도 볼썽사납다. 특히 소득이 더 적은 대학강사, 시민단체 직원, 프리랜서 작가 등이 학벌과 문화적 취향을 앞세워 자신들을 깔보는 것에 분노한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리브스 선임연구원(50)은 ‘20 vs 80의 사회’에서 최상위 1% 부자가 아닌 석·박사 학위를 지닌 전문직 종사자들을 양극화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동문 자녀 우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 알음알음으로 이뤄지는 인턴 분배 등을 통해 계층 이동을 막아버렸다. 영국 태생인 그는 발음만으로도 계급이 드러나는 사회가 싫어 미국에 귀화했다. 군주가 있는 옛 조국보다 겉으로는 능력 본위 사회임을 자랑하는 새 나라의 심각한 불평등에 놀랐다. 자신과 주변의 ‘먹물’들부터 달라져야 한다며 이 책을 썼다. 굳이 비유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은 ‘돈 많은 WWC’다. 패스트푸드를 즐기고 ‘그레이트(Great)’ ‘굿 잡(Good job)’ 같은 쉬운 말만 한다. 그래서 WWC들이 좋아한다. 이들에게 부유세 도입, 탄소 배출 제로(0) 등을 외치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은 ‘멀어도 너무 먼 당신’이다. 이들은 늘 유리천장 타파를 외치는데 WWC는 그 이유를 모른다. 천장 근처에 간 적이 없어서. WWC는 경합주 판세를 좌우하는 대선의 핵심 변수이기도 하다. 538명의 선거인단 중 캘리포니아(55명), 텍사스(38명), 뉴욕(29명)은 사실상 승자가 정해져 있다. 트럼프가 성 평등론자로 변한들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선 공화당 승리 확률이 낮다. 워런이 국경장벽을 지어도 텍사스 표심 역시 민주당을 거부할 것이다. 4년 전처럼 플로리다(29명), 펜실베이니아(20명), 오하이오(18명), 미시간(16명), 위스콘신(10명) 5개 주의 선거인단 93명이 또 대통령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 중 플로리다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주, 즉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 벨트)에는 WWC가 넘쳐난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사는 은퇴 기술자 앨런 빙겐하이머 씨(71)는 탄핵 조사가 본격화한 지난달 27일 로이터에 “민주당은 완전히 미쳤다”고 했다. 아직은 내년 대선 승자를 알 수 없다. 다만 민주당이 또 패한다면 WWC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윌리엄스 교수의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때로 여성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별 문제를 벗어나는 거다. 그러니 민주당 대선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에 이은 또 다른 여성을 뽑진 말자. 미국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건 트럼프 연임 저지 아닌가.”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지난달 반중 시위대를 지지하는 듯한 광고로 큰 주목을 받은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 전 청쿵홀딩스 회장. 그는 1928년 광둥성 동부 차오저우(潮州)에서 태어났다. 인근 산터우(汕頭)와 함께 흔히 차오산으로 불린다. 차오산 사람들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화상(華商) 집단 ‘상방(商帮)’ 중에서도 불타는 성공욕, 단결력과 의리 등으로 유명하다. 이는 차오산의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 광둥성에 있지만 중심 도시 광저우와 꽤 멀어 주민들은 광둥어가 아닌 인근 푸젠성의 민난어를 쓴다. 다만 발음은 주류 민난어와 상당히 다른 방언이다. 즉 표준어, 광둥어, 민난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소수 언어를 쓰며 경계인으로 살다보니 절로 잡초 같은 생존력과 개척 정신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3월 포브스 기준 266억 달러(약 32조 원)의 재산으로 세계 28위 부자인 리 전 회장은 물론이고 마화텅 텐센트 창업주, 쑤쉬밍 태국 창맥주그룹 회장 등 세계적 거부들이 차오산 출신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업은 크게 부동산, 항만, 통신 분야로 나뉜다. 부동산과 항만업에는 중국과 홍콩의 근현대사가 짙게 녹아있다. 플라스틱 조화를 만들던 중소기업인이 거부로 도약한 시점은 1960년대 말. 문화대혁명 여파로 홍콩 부동산 값까지 급락하자 그는 알짜배기 부동산을 사들여 떼돈을 벌었다. 이후 1980년대 초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자 본토에서 거의 최초로 사업을 벌였다. 경제 성장에는 물류 인프라가 필수다. 그는 상하이 컨테이너 터미널, 광저우∼주하이 고속도로, 선전 매립지 개발 등 주요 사업에 모두 관여했다.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서구 자본이 덩의 개혁 의지를 의심하자 자신의 화상 인맥을 동원해 대규모 투자도 이끌었다. 덩의 후임자 장쩌민과는 그야말로 ‘아삼륙’이었다. 장은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 최고 권력자 최초로 홍콩을 찾았다. 이후 수차례 홍콩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청쿵의 최고급 호텔 하버플라자에 묵었다. 리카싱 부자와 조찬을 즐겼고 두 살 어린 리 전 회장을 ‘친구’로 불렀다. 2013년 3월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르자 권력자와의 밀월이 끝났다. 둘은 오랜 악연이 있다. 시 주석은 1985∼2002년 푸젠성에서 근무했다. 당시 인프라 건설과 노후 지역 개발을 위해 청쿵 산하 회사와 계약도 맺었다. 하지만 새 국제공항 건설 예산이 과다 책정됐다는 비판에 계약이 틀어졌고 그의 경력에도 오점을 남겼다.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도 시진핑은 중국이 내세운 렁춘잉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했지만 리 전 회장은 기업가 출신인 헨리 탕 후보를 밀었다. 2014년 9월 홍콩 민주화시위 ‘우산혁명’이 발발하자 시위대를 비판해 달라는 당국 요구도 거부하다 몇 달 후 마지못해 살짝 비판했다. 이 와중에 집권 후 내내 장쩌민의 상하이방 세력을 사실상 숙청해온 시 주석의 노선까지 겹쳐 둘의 사이는 알려진 이상으로 나쁘다는 것이 홍콩 및 중국 매체의 중론이다. 리 전 회장은 2010년대 들어 눈에 띄게 중화권 사업을 줄였다. 청쿵 본사를 조세피난처 케이맨제도로 옮겼고 과거 홍콩을 통치했던 영국 투자를 부쩍 늘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청쿵 전체 매출 중 홍콩의 비중은 10%에 그쳤다. 3년 전(16%)보다 꽤 줄었다. 본토도 9%에 불과했다. 그 자리를 유럽(47%), 호주·아시아(14%), 캐나다(12%) 등이 채웠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 현재까지 영국 런던 증시에 상장된 청쿵 주가는 24% 하락했다. 같은 기간 홍콩 항셍지수는 23% 올랐다. 그런데도 지난달 영국 음식점 체인 그린킹을 또 33억 달러에 샀다. 돈보다 안정을 택한 셈이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91세 ‘재신(財神)’은 왜 탈(脫)홍콩에 여념이 없을까. 3년째 브렉시트 논란으로 아사리판인 영국이 사실상 독재 체제인 본토, 중국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양극화까지 심한 홍콩보다 훨씬 낫다고 본 때문이 아닐까. 중국과 홍콩 경제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평생 성공만 이어온 노(老)기업인의 촉이 또 맞을지 궁금해진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1991년 1월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 겸 집권 기독민주당 대표가 37세의 동독 여성 과학자를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앉혔다. 누가 봐도 남성 위주의 보수 가톨릭 정당인 기민당의 색채를 옅게 하려는 구색 맞추기 용도였다. 언론은 냉담했다. 새 장관의 수수한 외양, 동독 발음, “통일 후 신용카드 사용법을 배웠다”는 소박한 경험담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상한 단어를 연상케 하는 ‘콜의 여자(Kohl’s Girl)’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당시 그를 ‘4선(選) 총리’ 재목으로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05년 11월 최고 권좌에 오른 그는 3명의 미국 대통령, 5명의 영국 총리, 4명의 프랑스 대통령을 상대한 서방 세계의 지도자가 됐다. 고실업과 저성장에 시달리던 ‘녹슨 전차’ 독일 경제를 되살렸고 미국의 일방통행, 중국의 급부상, 틈만 나면 몽니를 부리는 러시아, 옛 영광을 외치는 영국, 흥청망청 남유럽, 극우 민족주의가 휩쓰는 동유럽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며 독일과 유럽연합(EU)을 이끌어왔다. ‘무티(Mutti·독일어로 엄마) 리더십’의 결정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영국 저술가 제임스 호스는 3월 출간한 ‘독일의 가장 짧은 역사’에서 2013∼2014년의 독일을 ‘민주주의 이상향’으로 평했다. 당시 메르켈은 우크라이나 휴전 및 그리스 부채 협상 등 국제 현안을 주도했다. 현직 총리 최초로 나치가 독일 땅에 세운 첫 상설 수용소인 다하우도 찾았다. 그는 오바마케어로 정쟁에 빠졌던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을 대신한 명실상부한 자유세계의 최고 권력자였다. 2014년 독일이 24년 만에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영광의 정점에서 위기가 왔다.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 사태가 발발하자 그는 ‘100만 명 수용’을 외쳤다. 좋은 의도였지만 후폭풍이 엄청났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밀어닥친 난민들은 곳곳에서 주민들과 충돌했고 각국은 서로 부담을 떠넘겼다. 2016년 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까지 겹쳤다.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가 기승을 부렸고 민주적 절차로 선출됐지만 독재를 일삼는 각국 스트롱맨도 곳곳에서 출현했다. 난민 문제로 독일 내 지지율은 하락세지만 역설적으로 이때부터 그의 주가는 더 올랐다. 그는 민주주의와 다자주의를 중시하며 예측 가능한 중도·온건 노선을 표방하는 거의 유일한 국제사회의 지도자다. 그가 아니면 누가 첫 만남에서부터 악수를 거부한 트럼프 미 대통령, 정상회담 장소에 집채만 한 대형견을 풀어놓고 협상이 삐걱대면 연필을 부러뜨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할까. 이런 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미 “4번째 총리 임기가 끝나는 2021년 9월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건강 이상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말 기민당 대표직을 물려받은 ‘미니 메르켈’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국방장관은 아직 저조한 당 지지율을 되살리지 못했다. 당에서는 “총리 없는 조기총선은 필패”라며 반드시 잔여 임기를 채우라고 종용한다. 아프지만 퇴진조차 쉽지 않다. 독일 밖에서도 그의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벨기에 싱크탱크 유럽정책연구소의 야니스 에마누일리디스 소장은 블룸버그에 “불확실성의 시대에 안정은 위대한 자산”이라며 그의 퇴장을 우려했다. 즉, EU 최장수 지도자의 은퇴 가시화는 국제 정치가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유럽은 난민, 저성장, 극우·극좌 득세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아시아는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미국과 유럽, 서유럽과 러시아,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던 그가 사라지면 세계 정치 흐름은 지금보다 더 포퓰리즘 일변도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2017년 그가 4연임에 성공하자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동방정책으로 데탕트(긴장 완화)를 이끌었고, 콜 전 총리는 통일을 이뤘다”며 4연임에 걸맞은 유산을 남기라고 독촉했다. ‘메르켈 없는 세상’을 우려하는 이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유산은 차고 넘치는 듯하다. 투박했지만 우직하고 묵묵했던 한 지도자가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최신호(8∼15일자)에서 민주당 1위 대선주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외아들 헌터(49)에 관한 14쪽짜리 기사를 실었다. 유력 매체가 왜 후보 본인도, 공직자도 아닌 아들에게 이 많은 분량을 할애했을까. 기사 제목대로 헌터의 사업 및 사생활 논란이 부친의 대권 가도를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미 대선판이 ‘아들들의 전쟁’ 양상을 띠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은 “헌터가 부친의 부통령 재직 때 이해상충 논란이 있는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며 맹비난한다. 이를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정계 진출설이 끊이지 않는 대통령 장남 트럼프 주니어(42)다. 민주당 측은 트럼프 주니어의 러시아 스캔들(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설) 연루 의혹이 가시지 않았고, 부친 사업을 물려받은 그도 다를 게 없다고 맞선다. 1996년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헌터는 아버지의 선거 자금을 후원하던 금융사 MBNA 아메리카의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부친이 부통령이 된 2009년 사모펀드를 세워 막대한 돈을 주무르고 있다.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2013년 12월 헌터가 부친의 중국 방문에 동행한 지 10일 만에 국영 중국은행은 그의 펀드에 무려 15억 달러(약 1조8000억 원)를 투자했다. 골드만삭스와 블랙스톤 같은 쟁쟁한 금융사도 이 정도의 차이나머니를 쉽게 유치하지 못했다. 지난달 18일 부친의 재선 출정식에 연사로 나선 트럼프 주니어가 “내가 중국에서 1.5달러만 받았어도 사람들이 난리쳤을 것”이라고 비꼰 이유다. 헌터는 2014년 4월 우크라이나 천연가스사 부리스마홀딩스 이사로도 선임됐다. 6일 후 그의 부친은 우크라이나를 찾아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일 수 있도록 미국이 돕겠다”고 했다.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16년 3월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대통령에게 “미국의 대출 보증 10억 달러 철회”를 운운하며 부리스마 비리를 수사하던 빅토르 쇼킨 전 검찰총장의 해임을 종용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바이든 측은 둘 다 음모론이라 주장하지만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맸다’는 의혹까지 불식시킬까. 보수 논객 피터 슈바이처는 “이런 거래는 검증도 어렵고 대부분 합법이다. 정치인 가족과 친구들이 해외에서 쉽게 돈을 버는 ‘대리인 부패(corruption by proxy)’”라고 주장한다. 그의 알코올중독과 약물 복용, 첫 부인과의 지저분한 이혼, 부친의 정치적 후계자로도 평가받았지만 2015년 뇌종양으로 숨진 형 보의 부인 할리와의 공개 연애, 또 다른 재혼 한 달 만에 제기된 20대 여성의 친자확인 소송…. 사인(私人)의 사생활이라지만 ‘대가족 가치를 신봉하는 아일랜드계 가톨릭’임을 강조하는 부친의 백악관행에 도움을 주긴 어려운 요인들이다. 트럼프 주니어도 만만찮다. 그는 “전 세계에 트럼프호텔을 짓겠다”며 아랍에미리트(UAE), 캐나다, 인도, 우루과이, 도미니카공화국, 파나마 등을 누볐다. 개인 사업을 영위하는 대통령의 성인 자녀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경호하느라 상당한 세금이 쓰였고 각국 미대사관도 그의 행사 및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동원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그가 트럼프타워 홍보차 인도를 찾았을 때는 “아파트 구매 예약금 약 4000만 원을 내면 미 대통령 아들과 만찬을 할 수 있다”는 낯 뜨거운 홍보물까지 등장했다. 그의 푼돈 벌이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위신이 망가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는 지난달 말 또 다른 민주당 유력 후보이자 인도계와 자메이카계 혼혈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에 대한 인종차별적 트윗을 공유해 설화에 휩싸였다. 둘을 보며 유력 정치인에게 자녀가 ‘자산(asset)’일지 ‘부채(liability)’일지 생각해본다. 가족만이 가능한 정서적 유대, 지지, 신뢰를 주지만 후보 못지않게 서슬 퍼런 검증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의혹이 결국 후보 본인을 겨눈다는 점에서 독이 될 요소도 충분하다. 분명한 것은 세상이 투명해진 만큼 권력자는 물론 그 주변인도 높아진 기준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2002년 ‘피아니스트’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유대계 폴란드 감독 로만 폴란스키(86). 반미 성향으로 유명한 그는 2010년 미국과 영국의 관계를 신랄하게 풍자한 ‘유령 작가(The ghost writer)’를 만들었다. 이 영화에는 여론을 거스른 이라크전 참전 후폭풍으로 사퇴한 전직 영국 총리 애덤 랭이 등장한다. 그는 재직 중 미국의 요구로 테러 용의자인 무슬림계 영국인을 불법 고문한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될 처지다. 대부호가 소유한 외딴섬에서 사실상 유배 생활을 하지만 군인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한 아버지가 이곳까지 찾아와 그를 죽인다. 놀라운 사실은 랭의 죽음 후 드러난다. 그의 부인은 대학생 때 미 중앙정보국(CIA)에 포섭된 요원이었다. 그는 아내의 조종하에 미국 꼭두각시 노릇만 하다 저세상으로 갔다. 두 아이를 낳으며 수십 년을 함께한 동반자가 미 스파이란 사실도 모른 채. 랭의 실제 모델은 누구나 짐작하듯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의 ‘푸들’로 불린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다. 2004년 그와 부시의 공동 기자회견 때 한 기자가 “진짜 푸들이 맞느냐”는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부시가 입을 열기도 전 “맞다고 답하면 내가 곤란해진다”는 농으로 받아쳤다. 블레어인들 미 대통령의 애완견 노릇이 좋았을까. 하지만 냉엄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그 순간보다 생생히 알려주기도 힘들 것이다. ‘정치적 연인(戀人)’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관계도 비슷했다. 생전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공식 석상에서 다정하게 춤을 췄다. 반(反)공산주의, 작은 정부란 가치도 공유했다. 그런 둘 사이에도 분명한 서열이 존재했다. 1983년 미국은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영연방인 이곳에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은 공산 쿠데타가 일어났다. 침공 후 레이건은 대처에게 “우리 쪽 보안을 믿을 수 없어 미리 알려주지 못했다”고 했다. 대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전화도 도청 위험이 있으니 빨리 끊자. 전화해줘 고맙다.” 미국의 뒤늦은 ‘통보’에 영국은 ‘감동’했다. 3∼5일 영국을 국빈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곳곳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메건 마클 왕손빈과 사디크 칸 런던 시장에 대한 막말, 4명의 자녀와 그 동반자까지 대동한 호화 가족 여행 논란은 새롭지 않다. 내정 간섭은 다르다. 영국에 합의 없는 유럽연합(EU) 탈퇴, 즉 노딜 브렉시트를 종용하고 ‘영국의 트럼프’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을 차기 총리로 미는 건 명백한 주권 침해다. 하는 사람도 당하는 쪽도 다 문제다. 그는 왜 존슨 전 장관을 두둔할까. 금발의 백인 남성, 유복한 가정환경, 난잡한 사생활 등 둘의 공통점에 동질감을 느껴서? 국빈방문 하루 전인 2일 우디 존슨 주영 미국대사가 BBC와 가진 인터뷰에 답이 있다. 존슨 대사는 현재 EU가 수입을 금지한 염소(鹽素)로 소독한 미국산 닭고기, 호르몬제를 먹인 미국산 쇠고기 등을 브렉시트 후 미영 무역협상 의제에 포함시키라고 포문을 열었다. “매년 500만 명의 영국인이 미국에 오지만 치킨에 대한 어떤 불만도 들어본 적 없다. 미국산 식품은 완벽히 안전하다”는 말과 함께. 즉, 하루라도 빨리 EU를 벗어나지 못해 안달인 ‘골수 브렉시트 지지자’ 존슨이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영국 총리관저)의 새 주인이 될수록, 미국은 영국을 미국산 농식품의 새로운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 영국 식료품의 EU 의존도가 30%에 달하기 때문. 특히 미중 무역 갈등으로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난리치는 상황에서 핵심 지지층인 농가의 불만을 잠재우면 트럼프 본인도 4년 더 백악관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라면 EU에 500억 달러(약 60조 원)의 이혼 분담금을 내느니 하루라도 빨리 노딜 브렉시트를 선택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영국의 정치 혼란마저 자신의 재선 도구로 삼겠다는 노골적 바람이다. 존슨은 트럼프의 기대에 부응할까. 4월 한 설문조사에서 영국인의 54%는 “법을 어기더라도 강력함을 보여주는 지도자를 원한다”고 했다. 영국인이 브렉시트 혼란에 진저리를 칠수록 ‘영미 트럼프’가 ‘꿀 케미’를 보여줄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1996년 1월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에서 교도관 한 명이 납치됐다. 바스크 독립을 외치는 무장단체 ‘바스크조국과자유(ETA)’가 호세 안토니오 오르테가 라라(당시 38세)를 그의 집 차고에서 낚아챘다. ETA는 석방을 대가로 로그로뇨 감옥의 ETA 수감자들을 바스크 교도소로 이송하라고 요구했다. 다음 해 7월 경찰이 구조할 때까지 라라는 532일간 창문도 없는 좁은 지하 감옥에서 지냈다. 1평(약 3.3m²)이 채 안 되는 길이 3.0m, 너비 2.5m의 공간. 세 걸음만 걸으면 방 끝에 닿았고 몇 미터 밖에 강이 있어 습기도 엄청났다. 체중만 23kg이 줄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불안, 우울증도 얻었다. 몸이 회복되자 그는 정치인으로 나섰다. ETA는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전 총통의 바스크 탄압에 반발한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주축이 되어 1959년 탄생했다. 당연히 라라는 우파를 택했다. 2003년 국민당 후보로 부르고스 시장에 나서려다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했지만 ‘납치 피해자’의 정계 진출 시도는 주목을 끌었다. 그는 2006년 중도좌파 사회당을 이끌던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당시 총리가 ETA와의 휴전을 발표하자 격렬히 반대했다. 언론 노출을 삼가던 그가 첫 TV 인터뷰에 나서 “ETA 타도”를 외쳤다. 이 주장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18개월을 ‘생지옥’에서 보낸 사내의 외침은 상당한 반향을 불렀다. 라라는 2008년 5월 국민당의 온건 노선에 불만을 품고 탈당했다. 오랫동안 야인으로 지내며 잊혀지는 듯했지만 11년이 흐른 2019년 지금 중앙 정계의 주역이 됐다. 그는 2013년 말 비슷한 이유로 국민당을 뛰쳐나온 전 동료 산티아고 아바스칼(43) 등과 반(反)분리독립·이민·이슬람의 극우정당 ‘복스’를 창당했다. 복스는 지난달 말 총선에서 1975년 프랑코의 죽음으로 찾아온 민주화 후 44년 만에 극우정당의 첫 원내 진입을 이뤘다. 설립 5년이 갓 넘은 초짜 정당이 350석 중 24석(6.8%)을 얻었을 뿐 아니라 독재의 상흔으로 사실상 ‘극우 무풍지대’였던 스페인 정치 지형도 바꿨다. 일각에서는 대표 아바스칼을 복스의 ‘얼굴’, 라라를 ‘정신’으로 표현할 정도로 그의 비중은 상당하다. 별다른 당내 직함도 없지만 정강, 노선, 지지층 공략 정책 등에 모두 그의 입김이 반영됐다. 아바스칼은 바스크 거점도시 빌바오, 라라는 바스크와 가까운 부르고스 출신이다. 하지만 이들은 익숙한 근거지 대신 최남단 안달루시아를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모로코,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와 가까워 이민자 유입이 많고 농업 등이 기반이라 유달리 가난한 곳이다. 지난해 안달루시아 1인당 소득은 1만8360유로(약 2386만 원)로 스페인 17개 자치주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 마드리드(3만1000유로), 바스크(3만 유로), 카탈루냐(2만7000유로) 등에 비하면 격차가 더 두드러진다. 안달루시아는 과거 사회당 텃밭이었다. 하지만 잘사는 북부와의 빈부 격차, 나아지지 않는 경제, 사회당의 난민포용 정책에 불만을 가진 민심은 복스로 쏠렸다. 복스는 지난해 12월 안달루시아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전체 109석 중 12석(11%)을 차지했다. 극우 정당의 지방의회 진입도 민주화 후 최초다. 총선에서의 약진을 지난해 말 이미 예고했던 셈이다.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에서 보듯 프랑코 정권의 바스크 민간인 학살은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범죄다. 당시 ETA가 ‘자위’ 차원의 무장투쟁을 벌인 점도 일정 부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왜 프랑코 사후 21년이 흘러 지방 하급관리에 불과한 젊은 교도관을 납치했을까. 그때 ETA가 라라를 납치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생활인이 ‘스페인 민족주의’를 운운하는 극우 선동가로 변신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ETA의 맹목적이고 의미 없는 테러는 23년 후 의도치 않게 무덤 속 프랑코의 망령을 되살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라라의 주 공격대상이 프랑코 압제로 피해를 본 바스크와 카탈루냐라는 점이 씁쓸함을 더한다. 피는 언제나 더 큰 피를 부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조로아스터교 발상지로 유명한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카스피해에 면한 수도 바쿠 중심가에 거대한 백색 건물이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고(故) 자하 하디드의 헤이다르알리예프센터다. 2012년 완공된 이 건물은 형태를 정의하기도 힘든 기상천외한 외관,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곡선 등으로 천재 예술가 하디드의 작품 중 정수(精髓)로 꼽힌다. 3년 전 우연한 계기로 바쿠를 방문했다. 박물관으로 쓰이는 이곳에서 세 번 놀랐다. 너무 아름다워서, 빛나는 겉모양과 달리 내부 전시품의 수준과 질이 떨어져서, 그 대부분이 특정인을 추모하기 위한 용도라서. 박물관은 1993년부터 10년간 집권한 헤이다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1923∼2003)의 이름을 땄다. 현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58)의 부친. 일함은 2003년 10월 대선에서 단독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두 달 뒤 아버지가 숨졌고 아들이 16년째 통치 중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헤이다르 전 대통령이 타던 고급차 3대부터 눈에 띄었다. 그의 일대기를 위인화한 여러 전시물과 동영상, 생전에 쓰던 각종 소품도 있었다. 회화, 조각, 사진들이 일부 전시됐지만 세계적 수준이라 보긴 어려웠다. 박물관이란 외피만 둘렀을 뿐 최고 권력자의 부친을 기리는 ‘사당(祠堂)’에 가깝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부자(父子)의 집권 기간만 26년이지만 알리예프 일가의 통치가 더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일함의 부인 메리반(55)은 2017년 부통령이 됐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나 볼 수 있던 대통령·부통령 부부가 현실에도 등장했다. 이 나라에서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을 대신한다. 그 한 해 전에는 헌법 개정으로 기존 35세 이상이었던 대선 출마 연령 제한도 없앴다. 현지 언론은 이 모든 시도가 아직 20대 대학생으로 알려진 부부의 외아들 헤이다르 주니어에게 3대 세습을 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한다. 옆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속속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79)이 30년 통치를 마감하고 전격 사퇴했다. 겉으론 “새 시대에 맞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런데 조만간 치러질 대선에서 집권당이 내세울 것이 확실시되는 후보는 상원의원인 그의 장녀 다리가(56)다. 부총리를 지냈고 고령의 부친을 오래 보좌하며 사실상 대통령 노릇을 해 왔다. 선거는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67)도 2016년 국민투표로 대선 출마 연령을 35세에서 30세로 낮췄다. 수도 두샨베 시장인 장남 루스탐(32)에게 권력을 물려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62)도 같은 해 대선 출마 연령 제한을 폐지했다. 역시 외아들을 위한 승계 준비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과 그 일가족은 모두 각종 사업체를 운영하며 국가 이권에 깊숙이 개입해 막대한 부도 쌓았다. 1991년 옛 소련 붕괴 후 독립한 이 나라들의 짧은 역사, 석유 등 원자재에 기반한 각종 대중영합주의 정책, 반대파를 철저히 탄압하는 권위주의 통치방식 등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다양하다. 다만 속된 말로 ‘민도(民度)’가 떨어지는 일부 저개발국의 일이라고 무조건 폄훼하면 곤란하다. 이 모든 과정은 국민투표와 일반선거 등 민주주의 절차와 방식을 거쳤다. 총칼을 앞세우거나 노골적인 선거 조작의 부산물은 아니란 뜻이다. 족벌정치의 폐해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이를 시도한 정치인과 그 후손의 말로도 그리 좋지 않다.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은 1989년부터 27년간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1938∼2016)가 통치했다. 그의 장녀 굴나라(47)는 한때 후계자로 거론됐지만 탈세, 범죄조직 연루 등 각종 비리와 안하무인격 태도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부친 사망 후 기소돼 현재 가택연금된 처지다. 중앙아시아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영국이 이달 29일로 예정됐던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연기를 정식 요청하기로 했다고 BBC 등 영국 언론이 19일 보도했다. 영국 총리실 관계자는 이날 “테리사 메이 총리가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편지는 이날 혹은 20일 보낼 예정이며 브렉시트를 얼마나 연기할 지 등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BBC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메이 총리가 EU에 6월 30일까지 3개월 간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할 것”으로 점쳤다. 이 관계자는 20일까지로 예정됐던 정부의 3차 브렉시트 합의안 투표 실시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뜻도 내비쳤다. 1월 15일 1차 합의안 투표와 12일 2차 합의안 투표는 모두 큰 표 차로 부결돼 메이 총리의 리더십에 치명상을 안겼다. 그는 “3차 합의안 승인투표를 20일에 하려면 오늘 안건을 상정해야 하는데 아직 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3차 투표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당초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 데드라인을 20일로 정하고, 의회에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 여부를 묻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존 버커우 영국 하원의장은 18일 “3차 합의안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으면 투표 개최를 불허하겠다”고 제동을 건 바 있다. EU 정상들은 일단 21~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를 통해 브렉시트 연기 요청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설사 EU가 영국 정부의 연기 요청을 받아들인다 해도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내 여론 분열과 사회 갈등이 워낙 극심해 ‘3개월’이란 짧은 기간 안에 모두를 만족시킬 묘수를 찾긴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다가 브렉시트 자체를 번복하는 ‘노(No) 브렉시트’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자신이 이끄는 기업만큼 유명한 스타 경영자들이 있다. 세 부류로 나누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그룹 명예회장, 고(故)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자처럼 극기, 투혼, 불요불굴의 정신을 강조하는 구도자(求道者)형 경영자가 있다.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나 데라오 겐 발뮤다 창업주처럼 디자인, 영감, 직관 등을 중시하는 천재형도 있다.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애틀랜틱그룹 창업자와 고 허브 켈러허 사우스웨스트항공 창업주는 재미(fun)와 직원 중시 경영을 우선해 거장 반열에 올랐다. 세계 경영학계의 찬사를 받아 온 이들의 성공 비결과 시사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5일 미 포브스가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로 꼽은 카일리 제너(22)의 성공 비결을 보며 스타 경영자 역사책도 이젠 새로운 세대가 수놓을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경영학 수업 한 번 제대로 들은 적 없지만 자신의 고객인 밀레니얼 세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고, e커머스와 소셜미디어가 바꿔놓은 유통 플랫폼의 급격한 변화를 사업 현장에 가장 잘 적용하고 있다. 제너는 ‘유명한 걸로 유명한’ 카다시안 자매의 이부동생이다. 2015년 18세 어린 나이에 화장품 회사 카일리 코스메틱스를 차려 3년 반 만에 1조2000억 원의 재산을 모았다. 사업 초기 가족의 유명세와 재정적 지원을 고려해 보면 그의 출발선이 남보다 앞서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스물둘 워킹 맘이 조(兆) 단위 재산을 모을 만큼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이 회사는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 회사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이 유일한 판매 통로. 생산·판매·배송도 직접 하지 않고 대행업체를 쓴다. 직원도 불과 열둘인데 다섯은 파트타임이다. 광고도 제너 본인(1억3000만 명)과 회사(2000만 명)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대신한다. 제품 교환, 환불, 반품도 해주지 않는다. 립스틱과 립라이너가 같이 있는 대표 상품 ‘립키트’ 가격은 약 3만 원. 이 돈 받고 땅덩이 넓은 미국에서 일일이 교환하고 환불해주면 배송비로만 회사 거덜 날 판이라는 점에 착안한 영리한 시도다. 고객들은 오히려 이를 반긴다. “힙(hip)해서 좋다” “고객들에게 불친절하니 오히려 더 멋져 보인다”…. 무엇보다 제너는 ‘재입고(restock)’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거의 최초의 경영자다. 그는 자사 제품이 품절될 때마다 동종 상품이 다시 들어오기 전 반드시 인스타그램에 이 소식을 올린다. “그거 알아? 내일 오후 3시 새 립키트가 들어온대. 어떤 색깔이냐고? 내일 직접 확인해.” 사실 재입고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며칠. 그래도 고객들은 이 소녀 감성이 물씬 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열광한다. ‘밀당 기술’은 연애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물두 살 경영자로부터 배운다.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직접 하라는 권유도 많지만 이를 덜컥 받아들이지 않는 신중한 면모도 있다. 제너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 오프라인에 진출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렸을 때 유달리 얇은 입술을 콤플렉스로 지녔던 소녀는 자매들 중 가장 큰 부자가 됐다. 미 뷰티전문매체 WWD는 지난해 3억6000만 달러였던 이 회사 매출이 2022년 1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점쳤다. 로레알은 80년, 바비 브라운은 25년이 걸린 일이다. 이제 그를 피플, US위클리 등 연예매체가 아니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등 고급 경영전문지의 표지 모델로 만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과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 대한 이행을 중단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러시아 대통령궁이 4일(현지 시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외교부에 이 이행중단 조치를 조약 상대방인 미국 측에 알리라고 지시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초 미국이 INF 조약 탈퇴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이를 둘러싼 공방을 벌여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일 “러시아가 INF 협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이 조약은 종결될 것”이라며 미국의 INF 이행 중단 및 6개월 후 조약 탈퇴를 선언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도 INF 조약의 이행을 중단하겠다”고 받아쳤고 이날 서명을 마쳤다. 사거리 500~5500㎞의 지상 발사형 미사일의 생산·시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INF 조약은 1987년 12월 미 워싱턴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했다. 1985년 스위스 제네바,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만난 바 있던 두 정상은 세 번째 만남 끝에 INF를 이끌어내며 냉전 종식의 단초를 마련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을 두고 미국 내에서 1986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레이캬비크 회담’ 교훈을 떠올리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냉전 시기이던 1985∼1987년 2년간 미소 정상이 ‘첫 만남→입장차 확인→합의’라는 3단계 과정으로 역사적인 핵군축 합의인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체결했듯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비슷한 길을 밟으라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회담 결렬 직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션 해니티 폭스뉴스 앵커는 “우리에겐 역사가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협상장을) 걸어 나갔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잘 끝났다”며 레이캬비크 회담을 거론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어젯밤 나에게 ‘로켓 발사 및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과 그의 말을 믿는다”고 답했다. 같은 날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도 “레이건은 당시 소련이 주장한 군비통제 협정을 ‘결점(flaw)’으로 여겼다”며 “1년 후 소련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고 거래가 성사됐다.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1985년 11월 중립국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만났다. 냉전 후 미소 정상의 첫 회동이란 상징성이 컸지만 공통점은 거의 없었다. 74세의 노회한 정치인 레이건은 두 번째 임기의 첫해여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20세나 어린 고르바초프는 취임 8개월의 ‘초짜’ 서기장으로 권력 기반이 빈약했다. 이 자리에서 협상의 기틀을 마련한 둘은 1년 후 북대서양의 외딴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다시 만났다. 둘은 이틀 내내 만났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소련은 ‘군축’, 미국은 스타워즈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에 집착했다. 특히 SDI를 실험실 연구로만 제한하라는 소련의 요구가 결정적 걸림돌이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막판까지 논쟁을 거듭한 두 정상은 서로 속내와 한계를 확인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핵 군축과 SDI 연계 전략을 포기하고, 레이건도 대소 강경 정책을 완화할 뜻을 굳혔다. 이에 1987년 12월 세 번째 만난 두 정상은 INF를 체결했다. 두 차례 회담의 실패가 ‘냉전 종식’이란 거대한 산을 등정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였던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노이의 실패도 ‘전화위복’의 불씨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 직후 해니티 앵커와 가진 별도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변덕스럽고 간단치 않지만 매우 똑똑하고 날카롭다. 언젠가 무엇이 일어날 것이란 느낌을 갖고 있다”며 3차 회담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북한 노동신문도 1일 “피치 못할 난관과 곡절에도 지혜와 인내를 발휘하여 함께 헤쳐 나가면 조미(북-미)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나타냈다. 하정민 dew@donga.com·전채은 기자}
미국과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날선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 정도. 북한은 “민생 관련 일부 제재만 풀어달라고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사실상 모든 제재에 해당한다”며 날카롭게 맞선다. 영변 핵 시설 폐기에 관해서도 미국은 북한이 ‘일부 시설 폐쇄’를, 북한은 ‘완전한 영구적 폐기’를 언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공방이 반박에 재반박을 거듭하면서 향후 대화 재개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北 “민생 관련 제재 해제만 요구” Vs 美 “제재 핵심 다 포함됐으니 말장난 불과” 1일(현지 시간) 미국 국무부는 미 고위관계자가 지난달 28일 필리핀 마닐라 페닌술라 호텔에서 가진 특별 브리핑 전문을 공개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익명을 전제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의 폐기에 대한 상응 조치로 요구한 것은 무기에 대한 제재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제재에 대한 해제였다”며 “북한의 ‘일부 해제 요구’ 주장을 ‘말장난(parsing words)’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양국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리용호 외무상은 같은 날 심야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 중에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요구한 이 5개 항목에는 경제 제재의 핵심인 석유 수입제한 및 석탄·철광석 금수조치 등이 담겨있다. 즉 건수로는 5개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경제 제재 전부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미국 측이 ”전면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말장난 하느냐“고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언제 했느냐“는 질문에 ”정상회담에 앞서 이뤄진 실무협상 기간“이었다고 답했다. 이어 ”당시에도 이를 면밀히 검토했고 북한 측에 그렇게 되긴 힘들 것이라고 설명해줬다“고 덧붙였다.○美 ”北, 영변 핵 일부만 폐기“ vs 北 ”영구적 폐기“ 제의 이 고위관계자는 ”북한은 미국에 영변 핵시설 일부분(a portion of the complex)만 닫겠다고 제안했다. 북한이 현 시점에서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전체를 완전히 동결할 의향이 없다는 난관에 봉착했다“고 털어놨다. 이 역시 지난달 28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밝힌 ”북한이 영변 핵시설 전체에 대한 ‘완전한 영구적 폐기’를 제안했다“는 발언과 정면 배치된다. 그는 ”영변 핵시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라며 ”영변은 1990년 대 초부터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핵심이었고 많은 기관, 건물, 부속 건물 등을 아우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미국 측은 북측에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요구했으나 북한 측은 이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요구대로 제재를 해제하면 대북 압박 정책이 무력화됐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가 제재를 완화하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갈 수십억 달러의 돈으로 북한의 WMD 개발을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김정은에 ”더 통 크게 올인 하라“ 주문 이 고위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더 통 크게 하라(go bigger)’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올인’하라. 우리도 마찬가지로 올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독려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좋은 소식은 (이번 회담이) 매우 건설적인 논의였다는 점“이라며 ”그건 명백히 사실이다. 우리는 양측간에 매우 좋은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마쳤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단지 이 시점에서 합의에 달하지 못한 것이며 논의 과정에서 영변 핵 시설에 대한 정의를 포함,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이후 상당 기간 해소하지 못했던 세부사항에 대한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우리는 괜찮은 지점에 있다“며 ”합의는 결렬됐지만 대화를 계속해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북한과의 다음 회의가 언제 열리느냐“는 질문에 ”‘먼지가 가라앉도록 잠시 둬야 한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대화를 계속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맞선 자리에 엄마를 보내다니….” 1991년 7월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맞선을 보러 나온 여자는 기가 막혔다. 난데없이 양장 차림의 장년 여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남자의 엄마. 아들이 아파 대신 나왔다지만 ‘매의 눈’으로 자신을 뜯어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 이런 인간이 있어.” 같은 시간 남자는 몸살로 끙끙 앓았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인 데다 주선자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보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주선자가 여자에게 “괜찮은 신랑감이니 꼭 만나라”고 했다. 두 번째 자리에 남자는 또 늦었지만 여자는 남자가 밉지 않았다. 남자도 여자에게 끌렸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데이트를 즐긴 둘은 1992년 4월 결혼했다. 첫 여성 검사장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57·사법시험 29회·법무법인 담박 변호사)과 송수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58·행시 31회·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이다. 지난해 9월 각각 변호사와 교수로 변신한 부부를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서울클럽에서 만났다. ― 첫 만남이 드라마네요. “주선자가 당시 상사였던 이태창 전 법무연수원장의 사모님이었어요. 그분 잘못도 아닌데 계속 미안하다고 하셔서 다시 나갔죠. 억울해서 비싼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요.”(조) “진짜 첫 만남 때 고깃집에 갔어요. 얇은 지갑에 1인분만 주문하려다 주인 타박에 2인분을 시켰죠. 투덜댔더니 아내가 ‘2차로 술을 사겠다’고 해요. 며칠 후 제가 ‘술을 얻어먹었으니 다시 밥을 사겠다’고 해서 인연이 이어졌죠.”(송) 조 전 지검장은 온갖 ‘최초’ 타이틀을 독식했다. 1990년 서울중앙지검의 유일한 여검사로 공직에 입문해 첫 여성 법무부 과장·부장검사·검찰 교수·지청장·검사장 등 법조계의 ‘여성 1호’를 꿰찼고 지난해 6월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28년간의 검찰 생활을 마쳤다. 남편의 외조는 이런 경력에 큰 힘이 됐다. 송 전 차관은 신혼집을 부인의 직장 근처에 마련했고 출산 후 많이 아팠던 아내를 위해 발 벗고 육아에 나섰다. 자신의 미국 인디애나대 유학(1998∼2000년), 뉴욕문화원장 재직(2007∼2010년) 때도 사실상 홀로 외아들을 키웠다. ― 외조에 눈뜬 계기는…. “출산 후 아내 몸무게가 30kg대였어요. 보기만 해도 안쓰러웠죠. 2009년 작고한 부친께서도 아내를 아끼셨어요. 제가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는데 며느리가 대신 꿈을 이뤄 드린 거죠. 아내에게 늘 잘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송) “남편은 요리와 집안일을 다 잘해요. 냉장고 속 재료를 모아 만드는 ‘냉장고 파먹기’에 능하죠. 견과류 넣은 멸치볶음은 기가 막혀요. 이웃이 버린 화분을 가져와 꽃을 피운 적도 있고요.”(조) ― ‘잘난 배우자’와 살며 힘든 점도 있을 텐데…. “신혼 때 아내 동료들을 만났는데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검찰이 월급도 많고 벼슬로도 더 높다. 조 검사가 ‘급’을 낮춰 시집갔으니 잘 모시라’고 해요. 아내한테 피해가 갈까 봐 화도 못 냈어요. 술로 다 제압했죠.”(송) “남편은 두주불사(斗酒不辭)예요.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 많이 싸웠죠.”(조) “문체부 동료들도 ‘센 마누라와 사는데 집에 놀러가도 되냐. 잡혀 살지 않냐’고 했어요. 일부러 2차 때 다 집에 데려갔죠. 아내가 자주 라면을 끓였는데 당시 동료들이 자랑해요. 검사가 끓여준 라면을 먹어봤냐며….”(송) 둘은 슬하에 1남(25)을 뒀다. 미국 스탠퍼드대 기계공학 석사를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 귀국했다. ― 자녀교육 비결은 어떤 겁니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직접 시범을 보이는 편입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 피아노를 곧잘 쳤는데 좀 커서 멀리하기에 같이하자고 했죠. 그러다 제가 피아노에 더 빠졌어요. 2014년 ‘매력을 부르는 피아노’란 반주법 책도 냈죠.”(송) “퇴근 후 산책을 즐기는데 어느 날 초등학생 2명이 아파트 주민의 자전거를 훔치더라고요. 끝까지 따라가서 아이들을 잡고 그 부모도 만났죠. 검사란 말은 안 했지만 ‘아이들을 이렇게 두면 안 된다’고 거듭 타일렀습니다. 결국 자전거를 주인에게 돌려줬죠. 학교폭력과 비행청소년 문제에 적극 나섰는데 그걸 아들이 좋게 봐주더군요.”(조) 부부는 최근 시련도 겪었다. 송 전 차관은 2017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조 전 지검장은 지난해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단장을 맡았다가 일부 후배의 비판을 받았다. 둘은 입을 모아 “시련이 부부 사이를 더 단단하게 했다”고 했다. ― 왜 그런가요. “남편이 마음고생을 하던 시절 하루는 밤늦게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기에 봤더니 갈비 핏물을 빼더군요. 다음 날 아침 저에게 먹여야 한다며…. 짠했어요.”(조) “제 일로 아내 마음까지 불편하게 할 수 있나요.”(송) “둘 다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합니다. 책이든 뭐든 나중에 밝힐 기회가 있을 거예요.”(조) ― 젊은 세대에게 결혼에 관해 조언한다면…. “후배들에게 설사 이혼하더라도 결혼은 꼭 해 보라고 해요. 어떤 인생도 완벽하지 않아요. 가장 좋은 친구를 만날 기회를 포기하지 마세요.”(조) “육아가 쉽지는 않죠.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커 나가는 겁니다. 아들 때문에 오십 넘어 시작한 피아노가 제 인생의 큰 기쁨이 됐어요. 아이를 통해 두 번째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덜할 겁니다.”(송)하정민 dew@donga.com·최지선 기자}
“맞선 자리에 엄마를 보내다니…” 1991년 7월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맞선을 보러 나온 여자는 기가 막혔다. 난데없이 양장 차림의 장년 여성이 등장했다. 바로 남자의 엄마. 아들이 아파 대신 나왔다지만 ‘매의 눈’으로 자신을 뜯어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 이런 인간이 있어.”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시간 남자는 몸살로 끙끙 앓았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인데다 주선자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보냈는데 “선 자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왔다”며 어머니 반응도 시큰둥했다. ‘틀렸다’ 싶어 더 아팠다. ●시어머니와 맞선 본 며느리 뒤늦게 소식을 들은 주선자가 여자에게 “괜찮은 신랑감이니 꼭 만나라”고 부탁했다. 두 번째 자리에 남자는 또 늦었다. 그런데도 여자는 남자가 밉지 않았다. 남자도 여자에게 끌렸다.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데이트를 즐긴 둘은 1992년 4월 결혼했다. 첫 여성 검사장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57·사시 29회·법무법인 담박 변호사)과 송수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58·행시 31회·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다. 지난해 9월 각각 변호사와 교수로 변신한 부부를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서울클럽에서 만났다.―첫 만남이 드라마네요. “주선자가 당시 상사셨던 이태창 전 법무연수원장 사모님이었어요. 그 분 잘못도 아닌데 계속 미안하다고 하셔서 다시 나갔죠. 억울해서 비싼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요.”(조) “진짜 첫 만남 때 고기 집에 갔어요. 얇은 지갑에 1인분만 주문하려다 주인 타박에 2인분을 시켰죠. 투덜댔더니 아내가 ‘2차로 술을 사겠다’고 해요. 며칠 후 제가 ‘술을 얻어먹었으니 다시 밥을 사겠다’고 했죠. 요즘 말로 진상인가요?”(송)―왜 끌렸나요. “그 때 남편이 수원 소재 경기도청 송무계장이었요. ‘폼 나는 자리’가 아닌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열심히 일하더라고요. 다른 남자도 두어 번 만났는데 남편이 순수하고 덜 계산적이었어요.”(조)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데 밝게 웃으며 잘 들어주더군요.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성격도 좋았죠.”(송) 애주가 송 전 차관은 연애기간 술을 끊고 한 여자에게 ‘올인’했다. 당시 조 전 지검장의 근무지 서울과 본인의 근무지 수원을 매일 총알택시로 오갔다.●외조의 왕 조 전 지검장은 온갖 ‘최초’ 타이틀을 독식했다. 1990년 서울지검의 유일한 여검사로 공직에 입문해 첫 여성 법무부 과장·부장검사·검찰 교수·지청장·검사장 등 ‘여성 1호’를 꿰찼다. 지난해 6월 서울 동부지검장을 끝으로 28년의 검찰 생활을 마쳤다. 남편의 외조는 큰 힘이 됐다. 송 전 차관은 신혼집을 일부러 부인 근무지 근처에 마련했다. 출산 후 많이 아팠던 아내를 위해 육아에도 발 벗고 나섰다. 자신의 미 인디애나대 유학(1998~2000년), 미 뉴욕문화원장 재직(2007~2010년) 때도 사실상 홀로 외아들을 키웠다. ―외조에 눈 뜬 계기는요. “출산 후 아내 몸무게가 30㎏대였어요. 보기만 해도 안쓰러웠죠.”(송) “아들을 낳았을 때 남편이 장관 비서관이었어요. 매우 바쁠 때인데 저나 아이에게 짜증 한 번 안 냈죠. 휴일에 애를 안고 출근한 적도 있고요. 남편은 요리와 집안일을 다 잘해요. 냉장고 속 재료를 모아 만드는 ‘냉장고 파먹기’에 능하죠. 견과류 넣은 멸치볶음은 기가 막혀요. 이웃이 버린 화분을 가져와 꽃을 피운 적도 있고요.”(조) “2009년 작고한 선친께서 아내를 아끼셨어요. 제가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는데 며느리가 대신 꿈을 이뤄드렸죠. 아내에게 늘 잘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송) ―결혼이 서로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검찰 조직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 동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남편 조언을 구했는데 제가 보는 관점과 많이 달랐어요. ‘이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저 사람은 저래서 나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구나’를 알았죠. 법무부에 근무할 때는 술과 사람을 다 좋아하는 남편 덕에 제 인맥도 넓어졌고 업무 협조도 수월했어요. 처음 검사장 승진이 좌절됐을 때가 커리어 최대 고비였는데 남편 격려로 다시 일어났고요.”(조) “둘 다 공직자지만 분야가 달라 서로 오래할 수 있었어요. 시시콜콜 다 아는 사이면 말도 많고 주변 눈치도 봐야하는데 그게 아니니 편했죠.”(송) ―‘잘난 배우자’와 살며 힘든 점은 없던가요. “신혼 때 아내 동료들을 만났는데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면전에서 ”검찰이 월급도 많고 벼슬로도 더 높다. 조 검사가 ‘급’을 낮춰 시집갔으니 잘 모시라“고 하더군요. 기분이 나쁜데 화도 못 냈어요. 아내한테 피해가 갈 까봐. 술로 다 제압했죠.”(송) “남편은 두주불사(斗酒不辭)에요.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서 많이 싸웠죠.”(조) “문화부 동료들도 ‘센 마누라와 사는데 집에 놀러가도 되냐. 꽉 잡혀 살지 않냐’고 했어 요. 일부러 2차 때 다 집에 데려갔죠. 아내가 자주 라면을 끓였는데 당시 동료들이 아직 자랑해요. 검사가 끓여준 라면을 언제 먹어보겠냐며….”(송)●최고의 교육은 ‘본보기’ 둘은 슬하에 1남(25)을 뒀다. 미 스탠퍼드대 기계공학석사를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 귀국했다. ―자녀교육 비결은요. “두 차례의 미국 생활 동안 아들과 24시간 붙어 있었어요. 야구, 농구, 배구, 권투 등 운동을 같이 하고 기타도 직접 가르쳤죠. 당시 피아노를 곧잘 쳤는데 귀국 후 멀리하기에 ”악기 하나는 다뤄야 인생이 풍요롭다. 혼자 하기 싫으면 같이 하자“며 아들을 꼬드겼죠. 그러다 제가 피아노에 더 빠졌어요. 2014년 ‘매력을 부르는 피아노’란 반주법 책도 냈죠. 요리도 마찬가지예요.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 않고 시범을 보였죠. 아들이 ‘어릴 적 아버지 어깨 너머로 본 것이 지금의 자취 밑천’이라고 해요. 아들도 요리를 곧잘 합니다.”(송) “혼자 살 때 퇴근 후 산책을 즐겼는데 어느 날 초등학생 2명이 아파트 주민 자전거를 훔치더라고요. 끝까지 따라가서 아이들을 잡고 그 부모도 만났죠. 제가 검사란 말은 안 했지만 ‘아이들을 이렇게 두면 안 된다’고 거듭 타일렀습니다. 결국 자전거를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었고요. 학교폭력과 비행청소년 문제에 적극 나섰는데 아들이 좋게 봐주더군요.”(조) ―다툰 적은 없나요. “미 인디애나대 유학 시절 아내가 1년 늦게 미국으로 건너왔어요. 첫 마디가 ”애가 왜 이리 살쪘어. 그간 뭐한 거야“라는데 어찌나 서운하던지…. 전업주부가 남편한테 ‘집에서 놀면서 이것도 못 하냐’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서럽다던데 그 마음을 알겠더군요.”(송) “당시 1년 간 같이 지내며 진짜 많이 싸웠어요. 그 전에는 각자 일로 바빠 사실상 ‘주말 부부’였는데 처음 24시간을 같이 보냈으니까요. 당시 남편은 제 말투를 문제 삼았는데 ‘매사 피의자 취조하듯 따진다’고 했어요.”(조) “다툼이 있을 땐 둘 다 일단 말을 삼가요. 극단적 말이 큰 상처를 주잖아요. 말을 아끼니 앙금이 크지 않고 화해도 쉽더군요. 부부생활뿐 아니라 모든 일에 적용하려고 합니다.”(송)●시련으로 돈독해진 부부애 부부는 최근 시련도 겪었다. 송 전 차관은 2017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조 전 지검장은 지난해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단장을 맡았다 일부 후배의 비판을 받았다. 검찰 일각에서는 ‘더 높은 곳도 가능했던 조 전 지검장이 조사단장 자리에 발목 잡혔다’고 보기도 한다.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사건의 성격 상 ‘독이 든 성배’였다는 뜻. 조 전 지검장은 담담했다. 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시련이 부부 사이를 더 단단하게 했다. 배우자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했다. ―왜 그렇죠. “남편이 어려울 때 저는 별 문제가 없었어요. 제가 남편을 돌봐야하는데 정 반대였죠. 하루는 밤늦게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더라고요. 뭐하나 봤더니 갈비 핏물을 빼요. 다음날 아침 꼭 저에게 먹여야 한다며…. 속이 말이 아닐 텐데 저를 위한 음식을 만들다니 마음이 짠했어요.”(조) “아내와 상관없는 제 일로 아내 마음까지 불편하게 할 수 있나요. 저도 먹고 싶었고요(웃음).”(송) “둘 다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 합니다. 책이든 뭐든 나중에 밝힐 기회가 있을 거예요.”(조) ●지금이 신혼 ―새 일은 어떤가요. “검찰 시절에는 시간 제약이 많아 빨리 일을 마치는 게 중요했어요. 지금은 한 사건에 오래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고 일부러 저를 찾아오는 여성도 많고요.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죠. 지인들이 ”떼 돈 버느냐“는데 큰 회사가 아니고 소액 사건도 많아요. 지난해 6월 퇴직 후 오래 쉬려 했는데 남편이 ‘얼른 일 하라’고 재촉했어요. 왜 그랬어? 빨리 돈 벌어오라고?”(조) “제가 갑자기 강의를 맡았는데 저도 없는 집에 혼자 있으면 뭐해요. 교수처럼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변호사는 평생 할 수 있잖아요. 아내의 경험과 연륜을 썩히는 건 낭비죠.”(송) ―여가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산책, 탁구, 와인 마시기 등 모든 일상을 같이 해요. 진짜 신혼 때는 서로 바빠 주말 아니면 얘기 나누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이게 신혼이구나 싶죠.”(송) “남편 친구들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는데 깜짝 놀랐어요. 둘이 있을 때 제가 이야기를 주도하는데 밖에서는 남편이 좌중을 휘어잡더라고요. 아들도 모르는 최신 유머도 구사하고…. 매일매일 남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 흥미진진합니다.”(조) ―결혼을 두려워하는 젊은 세대에 조언한다면. “후배들에게 설사 이혼하더라도 결혼은 꼭 해 보라고 해요. 어떤 인생도 완벽하지 않아요. 가장 좋은 친구를 만날 기회를 포기하지 마세요. 일단 해 보고 아니면 다른 길을 찾으세요. 사회 일각에 결혼과 양육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어 안타깝습니다.”(조) “육아가 쉽지는 않죠.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커 나가는 겁니다. 제가 오십 넘어 피아노에 빠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들 때문에 시작한 피아노가 제 인생의 큰 기쁨이 됐어요. 아이를 통해 두 번째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덜할 겁니다.”(송)하정민 기자 dew@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991년 데뷔 직후부터 방송가를 휩쓸었지만 드센 뚱녀 캐릭터만 맡았다. 캐릭터를 위해 세련된 본명 ‘유미’ 대신 촌스러운 가명 ‘영자’를 썼다. 최고 유행어는 ‘살아, 살아, 내 살들아!’였지만 그 살에 관한 사건으로 인생의 밑바닥도 경험했다. 먹방으로 제2 전성기를 맞았고 KBS의 첫 여성 연예대상 수상자가 됐다. 방송인 이영자에 대한 시선 변화는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첫 번째 전성기였던 1990년대 초중반 사람들은 그의 몸과 식탐을 폄훼하고 비웃었다. 개그 소재였다지만 경멸과 모멸의 시선이 담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자신에게 손조차 내밀지 않는 남성 연예인을 보며 “내 손이 돼지발처럼 보이나”라고 자조해야 했다. 사반세기가 지난 2018년 말 지금 그는 가장 핫한 스타일 아이콘이다. 수영복 차림을 당당히 공개해 찬사를 받았고 유명 패션잡지의 표지 모델로도 데뷔했다. 단순히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꾼 정도가 아니다. 그는 비혼 중년 여성의 새로운 상을 제시했다. 예나 지금이나 중년 여자를 통칭하는 단어는 ‘아줌마’. 억척스럽고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는 비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거쳤다. 가부장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큰 성공은 못했어도 최소 실패하지는 않은 인생이다. 문제는 이 아줌마에 속하지 않고 속할 일도 없는 사람이 늘어나는데도 사회는 늘 중년 여자를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 정의한다는 거다. 이영자는 남편과 자식이 없고 세속적 기준에서 젊고 아름답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잘 일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절친 송은이와 김숙도 마찬가지. 이들은 “남편, 아이, 시부모 얘기를 할 수 없으니 방송가에서 우리를 찾지 않는다”며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자신의 노화나 폐경을 소재로 삼지만 신세한탄은 없다. 젊지는 않지만 노년에 대한 각오를 다지기에도 너무 이른 시기. 이들은 그 어중간한 나이에서 소수자로서 겪는 당혹감과 비애를 솔직담백하고 재치 있게 풀어놓는다. 비혼 중년 여성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일본에선 이들을 ‘마케이누(負け犬)’로 부른다. ‘싸움에 진 개’란 뜻으로 경주에 이긴 승자를 의미하는 ‘가치우마(勝ち馬)’의 반대말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남편과 자식이 없는 여자는 실패자로 취급받는다는 뜻이다.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나고 이성에게 인기도 없지만 마음 편히 나이 드는 사람이고 싶다.” 비혼 중년 여성의 일상과 고뇌를 그린 글로 화제를 모은 일본 작가 사카이 준코의 베스트셀러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에 나오는 글이다.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을 보며 이 ‘홀로 나이 들어감의 정수’를 배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재미있는 얘기를 하며 웃고 즐기는 삶. 결혼할 확률이 원자폭탄을 맞을 확률보다 낮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역시 독해. 저걸 누가 데리고 살아’란 말을 들어도 괜찮은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
서구 유명인의 회고록 출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비즈니스다. 엄청난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고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며 세계 곳곳에서의 강연과 인터뷰 일정은 팝스타의 월드투어를 뺨친다. 왜? 돈이 되니까. 미셸 오바마가 쓴 ‘비커밍(Becoming)’이 화제다. 지난달 13일 출간 후 2주 만에 미국에서만 200만 부가 팔렸다. 호기심에 샀다 글솜씨에 놀랐다. 판권이 무려 3000만 달러(약 330억 원)란 보도도 있었으니 상당한 수준의 조직적 도움은 있었을 거다. 그렇다고 원래 못 쓴 글을 살려낼 순 없다. 본판이 좋아야 화장도 잘 먹는다. 이 책은 ‘금성에서 온 미셸’이 ‘화성에서 온 버락’에게 바치는 절절한 연서(戀書)다. 성공을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하던 질서의 화신 미셸은 혼돈과 무질서의 남자 버락을 만난다. 청혼을 질질 끌고 가사와 육아에 소극적이며 의정활동으로 툭하면 집을 비운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 미셸의 자아와 인생 경로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미셸을 책과 글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도 남편이다. 둘이 다툴 때 남편은 늘 책이란 동굴로 피신했다. “버락은 글쓰기가 마음을 치유하고 생각을 명료하게 만든다고 여겼다. 내게는 생각을 글로 기록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버락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저자의 솔직함도 돋보인다. 가난, 풋사랑, 백인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프린스턴대 시절, 결혼 생활의 굴곡, 현미경 속에 놓인 백악관 생활을 숨김없이 서술한다. ‘나와 딸들이 중요한 존재인 건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해야 버락이 행복하고 그래야 그가 맑은 정신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란 현실 인식도 인상 깊다. 책을 휘감은 달달함은 분명 다른 유명인과 대조적이다. “남편의 공직생활로 내가 희생했다. 상원 선거일 투표소에서 남편 이름 대신 내 이름을 발견해 기뻤다”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의 ‘살아있는 전설’, “성공한 여성은 원래 미움 받는다. 완벽한 기회를 노리지 말고 기회부터 잡으라”는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의 ‘린 인’은 책 전체가 야심과 투지로 활활 타오른다. 읽기만 해도 전사(戰士)가 된 기분이다. ‘비커밍’은 다른 길을 간다.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되 방점은 ‘내’가 아닌 ‘남편’에게 찍혀 있다. 미국은 미셸 부부가 믿는 가치와 정반대의 인물을 후임자로 택했다. 재선을 준비 중인 그 후임자는 남편의 유산을 모조리 지워버릴 기세다. 이를 어떻게든 막겠다는 투쟁심이 느껴진다. 공직 출마를 부정하는 미셸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책에서 유일하게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한국 권력자들의 회고록과 적잖이 갔던 출판기념회를 떠올렸다. 낯 뜨거운 자화자찬과 학예회 수준의 습작만 기억난다. 작은 시장, 얇은 독자층, 한국 엘리트의 빈약한 글쓰기 실력 중 뭐가 제일 문제일까. 유권자로서 ‘비커밍’ 같은 저작물을 생산할 이에게 표를 던지고 싶다.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이 ‘서민 코스프레’의 동의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소위 지도층의 소탈하고 검소한 면모를 부각한 천편일률적 보도가 그렇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 대형 관용차 대신 소형차를 타는 ◇◇◇, 칸막이 없는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똑같은 책상을 쓰는 △△△…. 정치인, 기업가, 고위 관료 누구의 이름을 써도 무방한 기사들이다. 당사자야 좋은 의도에서 그랬겠지만 밥값과 교통비를 조금 아끼는 일이 해당 인사의 핵심 업무와 얼마나 큰 관련이 있으며 그 휘하에 있는 이들과 사회 전체에 어떤 이익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외려 계급 격차를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보도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소구하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식상해도 팔리는 이야기란 뜻이다. 최근 동아일보가 보도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짝퉁 명품시계 논란을 보자. 얼마냐, 진짜냐 가짜냐, 지식재산권을 왜 가볍게 여기느냐는 말은 부수적 사안에 불과하다. 핵심은 최 위원장이 왜 자신의 수입과 자산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사지 않았느냐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의 금융 수장인 그는 36년간 공직에 몸담았고 공시지가 기준 14억7459만 원의 재산도 있다. 공무원 월급이 적다지만 일국의 장관에 오를 만큼 성공한 60대 남성이 몇천만 원짜리 시계를 ‘못’ 살까. 그런데 ‘안’ 샀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하다. 대선 후보 시절 일각에서 문제 삼았던 미국 허먼밀러의 임스 라운지 체어(의자)와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르마니 양말, 지난해까지 썼던 덴마크 모르텐 안경테를 보자. 전자는 대통령 부인이 각각 50만 원짜리 중고, 짝퉁이라 밝히고 안경테는 취임 후 국산으로 바꾸자 뒷말이 사라졌다. 수십 년간 변호사로 활동하고 18억8018만 원의 재산을 지닌 최고 권력자가 800만 원 의자와 60만 원 안경테를 쓰면 안 되는 걸까. 몸 사리기를 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좀 짠하기까지 하다. 헌법 위에 있다는 국민정서법의 요체는 ‘배 아픔’을 ‘부당함’으로 착각하는 심리다. 베스트셀러 ‘정의와 질투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일본 경제학자 고(故) 다케우치 야스오(竹內靖雄)는 “질투는 때로 정의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고 했다. 진짜 배고픈 사람들은 배 아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데도 배 아픔을 불공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때문에 공직자로서의 처신, 위화감 논란을 의식하는 상황이 비상식적이다. 지도층은 고가품을 사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샀다면 위화감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흉년에 쌀밥과 고깃국 대신 꽁보리밥을 먹는 임금은 선량한 개인이지만 무능한 군주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잠시 반기겠지만 진짜 원하는 건 흉년을 극복할 방법이지 하향평준화가 아니다. 정당한 돈으로 샀다면 숫자에 0을 하나 더 붙인 6억 원짜리 시계도 8000만 원짜리 의자도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한때 세계경제포럼(WEF) 금융경쟁력 순위에서 우간다에 뒤졌던 한국 금융을 발전시키고 성장 둔화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려낼 대책이다.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
“이 나이에 이런 걸 좋아하게 될 줄 몰랐어.” 사탕을 쪽쪽 빤 후 깨물어 먹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동영상에 빠졌다는 지인 A 씨(44). ASMR의 인기야 익히 알았지만 2030세대도 아니고 주변의 40대가 사탕 소리를 즐긴다니 깜짝 놀랐다. 주책이라고 핀잔을 주자 나름 진지한 답이 돌아왔다. “동영상을 틀어놓고 멍 때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게임 방송처럼 집중해서 볼 필요도 없고. 일종의 디지털 명상이랄까….” ASMR는 쉽게 말해 심리적 쾌감과 안정감을 주는 소리에 대한 반응이다. 특정 소리가 일종의 방아쇠로 작용해 기분 좋은 자극(팅글·tingle)을 느끼게 한다. ASMR에 낯선 이는 바람, 비, 파도 같은 자연음을 먼저 떠올리나 실제 인기를 끄는 콘텐츠는 모두 인위적 소리로 팅글을 유도한다. 음식 먹기, 글씨 쓰기, 액체괴물 슬라임 만지기, 귀지 파기, 면도, 애완동물 관찰, 애인처럼 달콤한 말 속삭이기 등이다. ‘애들 장난 같다’ ‘선정적이다’는 혹평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ASMR는 대세. 디지털 광고업체 인크로스는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국내 동영상의 종류별 조회수를 분석했다. ASMR는 유튜브에서 총 3210만 조회로 ‘노래나 춤 따라하기’(커버·8198만 회)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흔히 떠올리는 먹방, 뷰티, 게임을 다 제쳤다. 왜 그럴까. 우선 특유의 무(無)의미, 무목적성을 들 수 있다. A 씨는 말한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광고 있지? 그걸 동영상으로 옮긴 게 ASMR야.” 더 예뻐지고, 더 유명해지고, 더 많은 돈을 벌라고 은연중 압박하는 다른 콘텐츠와 달리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 만드는 사람이 보는 사람보다 더 위안을 느낀다는 점도 있다. ASMR 유튜버의 원조 격인 러시아계 미국인 마리아 빅토로프나(32). 2011년부터 150만 구독자를 보유한 ‘젠틀 위스퍼링’ 채널을 운영하는 그는 19세에 이민을 왔다. 미국에 오자마자 부모는 이혼했고 말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어느 날 유튜브에서 한 여성이 러시아어와 영어로 속삭이는 모습에 큰 위안을 얻었다. 의료용품 매장 직원이란 생업을 때려치우고 유튜버로 나섰다. 국내 인기 유튜버 미니유(본명 유민정·29)도 마찬가지. 고단한 취업준비생으로 지내다 ASMR의 위로에 빠져 이제 47만 명에게 이를 돌려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ASMR 애청자를 ‘무민세대의 표본’으로 부른다. ‘없을 무(無)’에 ‘의미하다(mean)’는 영어를 결합한 신조어로 극심한 경쟁과 피로에 지친 이들이 무자극, 무맥락 콘텐츠에 빠진다는 뜻이다. 혹자는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사탕 빨고 귀지 파는 소리나 듣냐”지만 오죽하면 그런 소리에서라도 위안을 찾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ASMR는 모두가 각자의 무간지옥에서 신음하는 이 시대가 낳은 돌연변이인지도 모른다.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
어텐션 호어(attention whore). 지나칠 정도로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소위 ‘관심종자(관종)’의 영어 표현이다. 그 행동이 일종의 ‘매춘(whore)’이란 비하 의미가 담겼다. ‘주목하다(pay attention)’는 말에도 ‘돈(pay)’이 포함된다. 남의 시선을 끄는 일이 기본적으로 자극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왜 그럴까. 정보가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정보처리 속도는 이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관심의 경제학’의 저자 토머스 대븐포트 미 뱁슨칼리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일요판에 담긴 정보가 15세기에 작성된 모든 문서보다 많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가장 쉽게 주목받는 방법은 말초적 호기심 자극. 성(性) 상품화, 특정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비난, 과장과 왜곡, 지나친 정보 공개(TMI·too much information) 등이다. 후폭풍도 따른다. 동종업계 사업가 저격 논란에 휩싸인 음식평론가, 본인의 교통사고와 아이의 엘리베이터 사고를 실시간으로 중계한 여성 탤런트에게 쏟아진 싸늘한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종의 하수(下手)랄까. 중수(中手)는 ‘겸손한 척 자랑(humblebrag)’하거나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행동하는 사람(vaguebooker)’이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샤넬 가방을 사 왔는데 원하는 디자인이 아냐. 속상해”라거나 구체적 상황 설명 없이 “힘들다…” “이제 다시는!!!”이란 말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뭔 일 있어?’ 반응을 유도하는 식이다. 전자보다 더 많은 짜증을 유발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렇다면 고수(高手)는? 대중을 상대하면서 일부러 ‘익명(匿名)’을 자처하는 예술가, 연예인, 정치인 등이 아닐까. 이달 초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 내놓은 그림에 원격조종 파쇄기를 숨겨놓은 후 산산조각 낸 영국의 익명 예술가 뱅크시를 보자. 예술계의 부조리와 황금만능주의를 고발하기 위해서라는 의도는 이해하나 이 익명 소동극이 그의 명성을 높여줬음도 부인할 수 없다. 원래도 유명한 그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추가로 받았을 뿐 아니라 낙찰자는 엉망이 된 그 그림을 104만 파운드(약 16억 원)란 고가에 그대로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어디까지가 풍자고 어디까지가 마케팅인지 아리송하다. ‘나폴리 4부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얼굴 없는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1000만 부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아무도 정체를 모른다. 작가를 추적하기 위한 언론의 잇따른 보도, 지목된 인물들의 반응, ‘불필요한 신상 털기’와 ‘독자의 알 권리’ 논란이 대립하면서 작가에 대한 주목도와 판매 부수는 더 올라간다.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한 NYT 익명 칼럼, 과거 문학잡지 악스트(Axt)가 익명 영화평론가 듀나와 가진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기고자나 인터뷰이의 정체가 밝혀졌다면 이만한 주목을 받았을까. 누구나 더 많은 관심을 원하고 더 유명해지려다 보니 역설적으로 익명이 더 주목받는 시대. 익명 다음엔 무슨 수단으로 관심을 유발해야 할까. 하나는 분명하다. 어떤 형태든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꼭 필요하다.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