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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가 대선 주자들에게 ‘기업 위시 리스트’를 전달하는 대신 ‘국가 청사진’을 제시하고 나섰다. 국내외 악재로 인한 기업 경영활동 위축이 차기 정부에까지 이어질 경우 1년도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 해법들을 내놓자 재계가 작심 제언을 내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상의 회장단 72명은 22일 ‘제19대 대선 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을 발표했다. 제언문은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상황을 진단하면서 그 해법으로 공정사회, 시장경제, 미래번영이라는 3대 틀과 9대 과제를 명시했다. 박 회장은 23일 이 제언문을 들고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5개 정당 대표를 직접 찾아갈 계획이다. 상의 회장단은 “이 상태로는 단 한 해도 더 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경제계를 엄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때 변하지 못하면 0%대 성장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떨치기 어렵다”고 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외환위기 당시와 비견될 정도로 추락했다. 대한상의가 1월 발표한 1분기(1∼3월) 경기전망지수(BSI)는 68이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분기(4∼6월), 3분기(7∼9월), 4분기(10∼12월)의 BSI가 각각 65, 61, 66이었다. 회장단은 “(대선 주자들은) 이번 제언을 늘 하는 얘기로 치부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국가경제 핵심 현안에 대해서는 인식을 공유하고 대선 주자와 경제계가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더라도 재계의 정책 제언까지 멈추게 해선 안 된다는 선언이다. 박 회장은 “장기적으로는 선진국 진입을 위한 변화, 누구나 지적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정책, 시장경제 원칙의 틀을 흔드는 투망(投網)식 해법 등을 신중히 고민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한상의는 이번 제언문을 보수 및 진보 진영 학자 40명에게 자문한 뒤 작성했다. 지나치게 편향적인 내용을 담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문단들과 몇 차례 회의를 여는 한편 일부 전문가는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대한상의는 자문단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았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KCC가 경북 김천공장 내에 무기섬유 보온 단열재인 ‘그라스울’ 생산라인 1호기를 완공했다. KCC는 16일 김천공장에서 그라스울 1호기의 안전 기원제(祭)와 가열장치에 불씨를 심는 화입식을 진행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생산라인은 연간 3만 t 규모로 다음 달 상업생산을 시작한다. 이날 행사엔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몽진 KCC 회장, 정몽익 KCC 사장, 정몽열 KCC건설 사장을 포함한 임직원과 국내외 협력업체 대표 등이 참석했다. KCC 김천공장은 2012년부터 세라믹화이버, 미네랄울, 미네랄울 천장재 등 무기 단열재를 생산해왔다. 이 제품들은 모두 불에 타지 않아 화재가 발생해도 대형 화재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건축자재다. 그라스울 생산설비 신설로 KCC 김천공장은 무기섬유 보온 단열재의 종합 생산메카로 입지를 굳히게 됐다. KCC에 따르면 해외 업체 중에서도 이 같은 무기섬유 종합생산기지를 보유한 곳은 없다. KCC 관계자는 “김천공장 그라스울 라인 구축으로 무기단열재 전 제품의 생산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특히 공장이 국내 물류의 중심지역에 위치해 원활한 제품 공급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맨손으로 중견기업을 일군 자수성가 기업인을 만나 인생 스토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각종 어려움을 딛고 기업을 키워낸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또 “경쟁력 없는 기업들은 도태되게 놔둬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정부가 망하는 기업을 도와주면 부실한 기업들은 자생력을 못 키우고, 잘하는 기업들은 의욕을 잃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책의 저자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시장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개인이나 기업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확실히 동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부가 시장의 실패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실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간에,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비유는 이렇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웃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 집에서 불이 났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소방서에 연락하지 않을 거야. 그냥 타도록 내버려 둬야지.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 하지만 당신 집이 목조 건물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당신 집이 그 집 바로 옆에 있다면, 마을 전체가 목조 건물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저자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고 말한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금융시장을 붕괴시켜 주주와 경영인, 채권자뿐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연준의 당시 구제금융에 대해 일각에서는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는 불부터 먼저 꺼야만 했다. 일단 불을 끄고, 그 다음에 담배 피운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말한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사업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춰 도전적인 연구개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반드시 성과로 연결시켜야 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72)은 8일 서울 서초구 LG전자 서초 R&D캠퍼스에서 열린 ‘연구개발 성과보고회’에서 연구원들에게 강조한 내용이다. 이날 LG는 지난해 주력사업 및 성장사업 분야에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9개 연구팀에 ‘연구개발상’을 수여했다. 수상자 중 부장급 연구책임자 7명이 연구위원으로 승진하는 등 연구원 10명이 승진했다. 구 회장은 1995년 취임 이래 매년 연구개발 성과 보고회에 참석해 연구개발(R&D) 현황을 살피고 인재들을 격려할 정도로 R&D에 남다른 의지를 갖고 있다. 그는 수상 결과물을 꼼꼼히 살펴본 뒤 “핵심·원천 기술 개발로 R&D가 미래 준비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LG 계열사들은 연구개발상 수상자들을 포함해 R&D 및 전문 분야 인재 52명이 연구위원·전문위원(임원급)으로 승진했다고 9일 밝혔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LG전자 △연구위원 고우석 김강현 김경근 김경호 김진동 김철환 김태근 박현정 배순철 백승민 오학준 윤승용 이건일 이장우 이재욱 이형일 임대철 장우상 전성배 △전문위원 김재영 송영한 유익조 이상엽 ◇LG디스플레이 △연구위원 김우찬 김창곤 △전문위원 하찬기 ◇LG이노텍 △연구위원 오정탁 전자경 △전문위원 기해용 최동락 ◇LG화학 △연구위원 김연환 김준형 신진규 양재훈 이승학 이철행 조지훈 주은정 홍무호 ◇LG하우시스 △연구위원 김종태 △전문위원 우종봉 ◇LG유플러스 △연구위원 박명환 박일수 엄준열 △전문위원 윤정호 이인식 임종익 ◇LG CNS △전문위원 권문수 백승은 송혜린 윤형제 정순업}
SK㈜ 홀딩스가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지 10년 만에 처음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8일 SK㈜에 따르면 올해 1월 신입사원 3명이 SK㈜ 홀딩스에 입사해 업무를 시작했다. SK㈜는 2015년 8월 SK㈜와 SK C&C가 합병한 그룹 지주회사다. SK㈜는 지난해까지 조대식 사장(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박정호 사장(현 SK텔레콤 사장)이 홀딩스와 C&C 부문 대표이사를 맡아 ‘1사 2체제’로 운영됐다. 지난해 12월 장동현 사장이 통합 최고경영자(CEO)에 올랐지만 두 부문의 역할은 뚜렷이 구분된다. SK㈜ 홀딩스는 관계사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신규 사업에 투자하는 역할을, SK㈜ C&C는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SK㈜ 홀딩스는 업무 특성상 임직원 160여 명 대부분이 관계사에서 업무 경험을 쌓고 전입한 차·부장급이다. 간혹 경력 직원을 채용한 적이 있어도 지주회사가 된 후 20대 대졸 신입사원을 뽑은 적은 없다. 홀딩스가 신입사원 채용을 결정한 것은 지주회사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미래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부터다. SK㈜는 합병 전까지 관계사로부터 받는 배당금과 브랜드 사용료 수입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합병을 계기로 자체 신사업을 개척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사업형 지주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SK㈜가 지난해 2월 인수한 반도체 소재업체 SK머티리얼즈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올 1월에는 반도체용 웨이퍼 제조·판매기업 LG실트론을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바이오·제약 분야에서는 의약품 생산 자회사인 SK바이오텍의 매출액이 지난해(1012억 원)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SK㈜ 홀딩스가 채용한 신입사원들의 전공은 모두 반도체 소재, 바이오 등 신사업과 관련이 있다. KAIST 전산학부 석사 출신인 이정준 씨(27)는 “SK의 4번째, 5번째 ‘퀀텀 점프’(대도약)를 이끌 주역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유황광 씨(24), 홍재우 씨(29)는 각각 생명과학과 수의학을 전공했다. SK㈜ 홀딩스의 신입사원 채용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업·조직·문화 등 기존 SK의 틀을 깨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며 강조한 ‘딥 체인지’(근본적인 변화)와 맞닿아 있다. SK㈜ 관계자는 “딥 체인지를 선도할 미래 사업과 투자처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신입사원들의 젊은 감각과 패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장서서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임원의 역할임을 명심해야 한다. 경영진이 더욱 주도적으로 사업에 임해 도약의 계기를 만들어 달라.” 구본무 LG그룹 회장(72·사진)은 7일 서울 영등포구 트윈타워에서 열린 올해 첫 임원 세미나에서 경영진의 솔선수범을 강하게 주문했다. LG는 분기별로 한 번씩 임원 세미나를 열고 있다. 구 회장은 이날 “연초에 사업 구조 고도화의 속도를 높이고 제조와 연구개발(R&D)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며 운을 뗐다. 이어 “명확하게 세운 지향(해야 할) 목표에 따라 반드시 해내야 할 것과 중장기적으로 해야 할 과제들을 시기별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에는 구 회장을 비롯해 구본준 ㈜LG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과 임원 400여 명이 참석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LG 경영진은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부터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패러다임 변화’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었다. LG 경영진은 지난해 같은 세미나에서 ‘인공지능 기술 현황과 향후 산업 변화 전망’ ‘4차 산업혁명의 실체와 의미, 그리고 대응 방안’ 등의 강연을 경청했다. 경영진이 학구열을 불태우는 분야는 LG그룹이 찾고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과도 맞닿아 있다. LG는 최근 사물인터넷(IoT)과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관련 사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전자는 홈 IoT와 로봇을 중심으로 미래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올해에는 가정용 허브(Hub) 로봇, 공항 안내 로봇, 청소 로봇 등 상업용 로봇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 LG유플러스는 홈 IoT 사업 분야에서 다양한 Io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LG CNS는 빅데이터 분석 역량과 IoT 기술을 활용해 최적화된 통합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을 개발할 계획이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한화그룹 계열사 과장급 이상 승진자들이 올해부터 처음으로 한 달간의 ‘안식월’에 돌입한다. 6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 주력 계열사들은 1일자로 직원 인사를 내고 과장급 이상 승진자들로부터 안식월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한화는 10대 그룹 최초로 모든 계열사에 1개월간 유급휴가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주력 계열사만 따져도 올해 대상자는 600∼700명에 달한다. 계열사별로는 ㈜한화 180명, 한화케미칼 80명, 한화토탈 50명, 한화건설 100명가량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도 대상자가 10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은 약 170명이 안식월 자격을 갖췄지만 현장 영업직 비중이 높아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LG전자가 이달 2∼5일 전략 스마트폰 ‘G6’(사진) 예약 판매 대수가 4만 대를 넘어섰다고 6일 밝혔다. LG전자는 지난해 전략 스마트폰인 ‘G5’와 ‘V20’를 대상으로는 예약 판매를 실시하지 않았다. 2015년 ‘G4’ 예약 판매 때는 열흘 동안 3만여 대가 팔렸다. G6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전작들보다 높다고 판단하는 배경이다. LG전자는 사전 체험단, 체험 부스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사용 편의성과 디자인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도록 한 것을 인기 요인으로 보고 있다. LG G6 체험존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동통신 3사 대리점, 대형 전자제품 판매점 등 300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15∼24일 진행된 LG G6 사전 체험단 응모 행사에는 총 20만 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리며 100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총 45만 원 상당의 프로모션 혜택도 인기 요인이다. LG전자는 모든 LG G6 예약 구매 고객에게 ‘액정 파손 무상보증 프로그램’과 ‘정품 케이스’ 등 25만 원 상당의 혜택을 제공한다. 또 G6를 구매하면 추가로 최대 20만 원 상당의 사은품을 5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올해 첫 프리미엄 스마트폰이라는 점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LG G6는 예약 판매 종료 직후인 이달 10일 국내에 출시된다. 출고가는 89만9800원이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국내 연구개발(R&D) 투자 상위 50대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6일 ‘우리나라 R&D 활동과 조세지원제도의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국내 R&D 투자 상위 50대 기업의 ‘R&D 투자 집약도’(전체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 비율)는 3.0%에 불과했다. 미국(8.5%) 일본(5.0%) 독일(4.3%) 영국(3.6%)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조사한 나라 중 프랑스(3.0%)와 함께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같은 해 한국의 R&D 투자 상위 50대 기업의 평균 투자 금액은 5억1910만 달러(약 6020억 원)로 미국(39억3520만 달러)의 8분의 1이었다. 일본(16억1760만 달러), 독일(11억6380만 달러)과 비교해도 각각 3분의 1, 2분의 1 수준이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일본 도시바가 반도체 부문을 매각하기 위한 입찰 절차를 시작했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반도체로,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도시바는 반도체 부문 지분 50∼100%를 매각하기 위한 입찰 절차에 돌입해 희망 출자 비율이나 금액 등을 담은 ‘출자 제안서’를 29일까지 접수한다. 도시바는 입찰 후보 업체들에 반도체 부문의 기업 가치를 2조 엔(약 20조 원) 이상으로 평가해 금액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초 도시바는 1월 이사회를 열고 반도체 부문을 분사한 뒤 지분의 20% 미만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추진된 1차 입찰엔 SK하이닉스,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 마이크론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도시바는 최근 매각하는 지분을 과반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한 뒤 재입찰 절차를 밟고 있다. 도시바는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에서 발생한 사업 손실 7125억 엔(약 7조1250억 원)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반도체 사업의 경영권까지 넘길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번 인수전에 참여할 기업으로는 SK하이닉스와 웨스턴디지털, 마이크론, 대만 훙하이(鴻海), TSMC, 중국 칭화유니 등이 거론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시장점유율 48%)에 이은 2위(시장점유율 25.2%) 기업이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도시바 샌디스크 마이크론에 이어 5위에 머물고 있다. 도시바 반도체 부문을 인수하면 낸드플래시 기술력 경쟁력을 강화하고 단숨에 2위 업체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막대한 인수 자금이 관건이다. SK하이닉스 측은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샤프를 인수한 훙하이는 이번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궈타이밍(郭臺銘) 훙하이 회장은 1일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디스플레이 공장 착공식 후 기자들과 만나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에) 매우 자신 있으며 진지하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일각에서는 인수 자금 규모가 단일 회사가 감당하기엔 워낙 거대한 만큼, SK가 훙하이와 연합군을 이뤄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훙하이는 SK주식회사 지분 3.48%를 보유한 4대 주주다. 도시바는 이달 30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메모리 반도체 부문 분사를 결의하고, 다음 달 1일 정식으로 분사할 계획이다. 지분 매각에 대한 우선 협상 대상자는 6월경 선정하고, 내년 3월 말까지는 매각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시장은 2015년 8200만 GB(기가바이트)에서 2020년 5억800만 GB로 연평균 4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한국 기업들을 겨냥한 미국과 중국 정부의 강성 발언들이 쏟아지면서 국내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올해 경영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 악재까지 겹쳐 ‘이중고’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미중 움직임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자동차업계다. 중국 런민일보 자매지인 환추시보는 현대자동차를 사드 배치로 인한 제재 가능성이 있는 대상으로 지목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에서 114만2000여 대를 판매했다. 현대차 전체 판매량의 23.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시장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발언도 자동차업계에는 ‘발등의 불’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 규모는 한미 FTA 발효 직전인 2011년 58만8000여 대에서 지난해 96만4400여 대로 64%나 늘었다.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미 정부는 무역 적자가 큰 자동차 부문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게 뻔해 수출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관세 인상으로 가격 인상 요인이 생기면 일본, 유럽 자동차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 가전 및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아직까지는 큰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은 환추시보가 현대와 함께 사드 보복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는 한미 FTA와 상관없이 무관세 무역이 이뤄지고 있어 한미 FTA 재협상으로 인한 피해도 거의 없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반한국 기업 정서가 커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반한 감정은 소비재 판매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3년 19.7%(1위)에서 지난해 5.0%(7위)로 추락했다. 아직 중국에 스마트폰 판매를 위한 오프라인 유통망도 확보하지 못한 LG전자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현지 진출을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다. 중국의 전방위 압박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더해져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도 기업들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 올해 10월 만기되는 한중 통화 스와프 연장이 무산될 경우 환율 불확실성이 커질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금융 제재로 사드 보복 수위를 높이는데 미국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까지 더해지면 한국 기업은 경영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샘물 evey@donga.com·정민지·김현수 기자}
“에너지 산업에서 발전 분야가 점점 디지털화되고 있다.” 2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7 동아 신에너지 이노베이션 콘퍼런스’ 특별 강연자로 나선 사미 카멜 GE파워 제너럴 매니저가 던진 화두는 ‘디지털’이었다. GE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기술을 사업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에너지를 탐사하고 생산하는 과정부터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까지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카멜은 이날 세계 에너지 분야 변화를 주도할 파괴적인 요소 5가지를 제시했다. △데이터·분석 △에너지 효율 △에너지 저장 △지붕 태양광 △소내(所內·on-site) 전원이다. 소내 전원은 거대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게 아니라 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처럼 일정 장소 내에서 전력을 공급받는다는 의미다. 카멜이 제시한 5요소는 예컨대 소프트웨어로 데이터를 분석해 전력 사용을 최적화하면 전력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 에너지 신산업 성장세 두드러져 카멜은 향후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경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증가하면 에너지 신산업 투자가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기존의 전통적인 전력산업 모델을 벗어나 보다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한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가 현재 원자력과 화력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경제적인가, 안전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질 때”라고 말했다. 에너지 신산업은 기술 발달과 함께 전 세계에서 대폭 성장하며 격변기를 맞고 있다. GE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태양광 모듈 가격은 W당 5달러에서 0.5달러로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태양광 모듈 효율은 12%에서 16%로 상승했다. 또 전기차 보급 대수는 지난해 100만 대에서 2020년 600만 대, 2025년 3000만 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5∼2030년 신재생에너지에 4조 달러, 수송·산업·빌딩 에너지 효율화에 8조3000억 달러가 투자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신산업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는 2015년 5767대에서 지난해 1만 대 이상으로 2배 수준이 됐다. 같은 기간 ESS 설치 용량은 177MWh에서 264MWh로 50% 늘었다.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는 이유다. ○ 신산업 분야 성공사례 창출에 정책 역량 집중 김인택 한국에너지공단 이사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올해 에너지 신산업 정책 방향에 대해 “신산업 분야에서 성공사례를 창출하기 위해 △규제 완화 △집중 지원 △융합 촉진 △수출 산업화에 정책 역량을 결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투자애로전담반’을 구축해 신산업 추진에 대한 애로사항을 발굴해 신속하게 해소할 예정이다. 전력 피크시간대 ESS를 사용할 때 적용하는 전기요금 할인을 확대하고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인센티브도 강화한다. 정부는 에너지 신산업이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 모델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신재생에너지와 ESS, 유지 관리를 아우르는 패키지형 해외진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한편으로 공기업과 제조업체, 금융기관이 컨소시엄 형태로 신규 사업도 발굴한다. 또 정부 간 협력사업을 발굴하고, 국제기금 등을 활용해 친환경에너지타운과 같은 시범사업도 추진한다. 이날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에너지 신산업이 점점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조연설에 나선 전휘수 한국수력원자력 발전부사장은 “환경과 안전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는 만큼, 단순히 값싼 에너지뿐 아니라 안전하고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갈구하는 바람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대성그룹 회장)은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우리의 강점인 첨단기술을 융합해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심화시키고 세계시장에 보급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도 에너지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샘물 evey@donga.com·박은서 기자}
에너지 신산업의 민간 투자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올해 공공 투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신산업의 국내 총투자도 지난해보다 25% 늘어난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28일 동아일보와 채널A가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2017 동아 신(新)에너지 이노베이션 콘퍼런스’에서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자동차 등 에너지 신산업의 올해 국내 총투자 규모가 약 13조8000억 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11조 원)에 비해 약 25% 증가한 수치다. 총투자 가운데 정부 및 공공기관의 투자는 약 6조5000억 원, 민간기업의 투자는 7조3000억 원이다. 공공 투자는 지난해(6조6000억 원)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지만 민간 투자는 지난해 4조4000억 원보다 66% 늘었다. 에너지 신산업 분야에서 민간 투자가 공공 투자보다 많은 것은 처음이다. 기업들이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콘퍼런스에서 GE파워, 현대자동차, GS칼텍스 등 국내외 기업들은 신산업 추진 현황과 전망을 발표했다. 김영훈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대성그룹 회장)은 축사에서 “에너지 산업이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집약산업에서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집약산업으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이샘물 evey@donga.com·이은택 기자}
태양광 모듈의 효율이 높아질수록 동일한 태양광 설치 면적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이 늘어난다. 현재 대부분의 태양광 기업들은 범용 기술(모듈 효율 약 16%)로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16%대 모듈 효율의 범용 시장은 시장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G전자는 이런 태양광 시장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이다. 2014년 60셀 모듈 기준 국내 최고 효율 18.3%를 구현한 ‘네온1(모노 엑스 네온)’을 선보였고, 2015년엔 60셀 기준 세계 최고 모듈 효율인 19.5%를 달성한 ‘네온2’를 출시했다. LG전자는 태양광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2008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2010년 양산에 들어간 이후 LG전자 관계자들이 제품을 들고 해외 바이어들을 만날 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LG전자가 태양광 사업을 지속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국내만 해도 초기에 태양광 사업에 의욕적으로 진출했던 많은 대기업이 사업 포기를 선언할 만큼 시장은 불안정했다. 태양광 모듈은 20년 넘게 장기적으로 쓰는 제품인 만큼 제품 품질 외에도 AS 등 신뢰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고객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사업의 연속성 여부가 바이어들이 태양광 모듈을 구매할지 결정하는 요인이 된 셈이다. LG전자는 2013년 국제 무대인 ‘인터솔라어워드 2013’에서 태양광 부문 본상을 수상하면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본격적으로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2010년에 처음 태양광 시장에 진입한 LG전자가 3년 만에 고효율 제품으로 시장을 놀라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LG전자는 경북도, 구미시와 경북도청에서 ‘태양광 신규 생산라인 투자에 관한 투자양해각서(MOU) 체결식’을 열었다. LG전자는 현재 고효율 태양광 생산라인 8개를 보유한 구미 사업장에 2018년 상반기(1∼6월)까지 5272억 원을 투자해 생산라인 6개를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생산라인 증설로 현재 연간 1GW(기가와트)급의 생산능력을 2018년엔 약 1.8GW로 끌어올린다. 2020년엔 연간 생산능력을 3GW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3GW는 100만 가구가 사용하는 연간 전력량과 맞먹는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최근 중국 사업을 펼쳐나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중국에서) 잊혀질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0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임원 모임에서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SK그룹의 중국 사업도 직간접적 차질을 빚고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중국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뚜렷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 사람을 보내고 있고, 비즈니스뿐 아니라 문화 교류, 학문 교류 등을 계속하고 있다”며 끈기 있는 접근을 당부했다. 당장 사업 추진에 문제가 생겼다 해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중국과 꾸준히 교류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최 회장이 현재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학술 및 문화 교류다. 27일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17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이 마련한 ‘한미중 3자 대화 포럼’에 직접 참석했다. 최 회장은 “3개국의 정치 경제 불확실성이 증폭될수록 교류를 단절할 게 아니라 관계를 지속하는 채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랙 투(민간외교) 방식을 통하면 이해 충돌과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민간 교류를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등교육재단은 거의 매달 중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차이나 렉처(중국 강연)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엔 한다위안(韓大元) 중국 런민대 법학원장이 중국 법치에 대해, 이달에는 거자오광(葛兆光) 푸단대 역사학과 석좌교수가 한중일 3국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강연했다. 고등교육재단은 2012년부터 매년 한중 대학(원)생 리더십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같은 해부터 중국 유학 장학생도 선발해 왔다. SK는 과거부터 중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SK는 한국이 중국과 정식 수교(1992년)를 맺기 전인 1991년 한국기업 최초로 베이징(北京)사무소를 개설했다. 최 회장은 1998년 그룹 수장에 오른 뒤 세계 경제의 축이자 성장의 대안으로 중국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최 회장은 2007~2013년 중국 보아오 포럼 이사를 지냈다. 지난해에는 3월 하이난(海南) 성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에 참석하는 등 9월까지 7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쑨정차이(孫政才) 충칭(重慶) 시 당서기 등 중국 고위급 인사를 만나며 인맥 형성에 공을 들였다. 최 회장은 지난해 1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출국이 금지되면서 더 이상 해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달 열리는 올해 보아오 포럼 참석도 불투명하다. SK그룹 각 계열사의 중국사업도 삐걱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월 “연내 중국 내 배터리 제조 공장 설립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영국 BP가 보유한 중국 상하이세코 지분(50%) 인수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SK플래닛이 중국으로부터 1조3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려던 계획도 사드 발표 이후 무산됐다. SK그룹은 중국에서 ‘잊혀지지 않기’ 위한 방안을 꾸준히 늘려나갈 방침이다. SK 관계자는 “고등교육재단의 학술 교류가 당장의 계량화된 성과를 낼 수는 없지만 꾸준히 지한(知韓)파를 양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a.com}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종료 즉시 미래전략실 해체, 투명한 후원금 및 기부금 집행 등 삼성그룹 경영 쇄신안이 잇달아 베일을 벗고 있다. 미전실이 해체되면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은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최악의 상황이지만 조직을 추스르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게 그룹 측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24일 이사회를 열고 건당 1000만 원 이상의 모든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을 대상으로 사전 심사를 하는 ‘심의회의’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법무 재무 인사 커뮤니케이션팀장이 참여하는 심의회의는 매주 한 번씩 진행된다. 심의회의에서 지원을 결정하더라도 건당 10억 원 이상의 후원금이나 사회공헌기금은 이사회 의결을 다시 거쳐야 한다. 이사회 의결 사항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모두 공시한다.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의 운영 현황과 집행 결과는 심의회의와 경영진,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가 분기에 한 번씩 점검하기로 했다. 감사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후원금은 기부금, 협찬금 등 외부 요청으로 집행한 기금을 뜻한다. 사회공헌기금은 산학지원, 봉사활동, 그룹 재단을 통한 기부 등 회사가 자발적으로 집행한 기금이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건당 500억 원 이상의 기부금에 한해 이사회 내 경영위원회 의결을 거쳤다. 경영위원회는 사내이사로만 구성됐다. 외부에 기부하는 금액이 자기 자본의 0.5%(약 6800억 원) 이상이거나 삼성생명공익재단 등 특수관계인에게 50억 원 이상을 증여할 때는 이사회가 직접 결정했다. 삼성전자 이사회에는 사외이사가 5명, 사내이사가 4명 있다. 후원금, 협찬금, 사회공헌기금 등은 액수에 관계없이 의결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결정으로 삼성의 전체 후원금 및 사회공헌기금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이 보다 깐깐한 잣대를 적용할 예정인 데다 기부를 요청하는 쪽에서도 내용이 공개돼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2008년 삼성특검 수사가 종료된 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과 전략기획실 폐지 등을 포함한 경영 쇄신안을 발표한 바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당시와 같은 패키지식 쇄신안 발표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쇄신)해야 될 게 있으면 하나하나 실행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전실 해체 후 최 실장과 장 차장은 상임고문으로서 이 부회장 재판 등에 대한 조력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상임고문은 특정한 보직이 없지만 회사로 상시 출근한다. 김종중 전략팀장(사장), 정현호 인사팀장(사장)을 포함한 미전실 소속 200여 명은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각 계열사로 흩어진다. 한편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도 각각 22, 23일 이사회에서 10억 원 이상의 기부금을 집행할 때 이사회 의결을 의무화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SK그룹 계열사들은 기존에 이와 관련해 명확한 규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삼성과 SK가 기부금 등을 집행하는 절차를 대폭 강화하면서 다른 기업들로도 이런 규정이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삼성전자가 앞으로 1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집행할 때는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을 바꾼다. 현재는 기부금 액수 기준이 500억 원이 넘을 경우에만 이사회 내 경영위원회 의결을 거치게 돼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처럼 외부로 나간 기부금들이 ‘정경유착’ 논란에 휩싸이면서 소액 기부라도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계열사들도 같은 방향의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삼성은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해 ‘그룹 쇄신’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4일 열리는 이사회에 기부금 기준 강화와 관련한 안건을 상정해 논의한다. 현행 규정상 삼성전자는 500억 원이 넘는 기부금에 대해서만 이사회 내 경영위원회 의결을 거치고 있다. 경영위원회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4명의 사내이사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는 한 번에 500억 원 이상을 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을 포함한 그룹 내 재단 4곳과 성균관대 등 특수관계인이 대상일 때는 50억 원 이상 기부금에 대해 경영위원회 의결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이 기준을 10억 원 이상으로 대폭 강화할 예정이다. 동시에 사외이사를 기부금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이어 다른 그룹 계열사들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기부금 결정 기준을 바꾼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같은 논란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적은 기부금에 대해서도 목적과 사용처를 꼼꼼하게 따져 문제의 소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강화된 기준은 무리한 금전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다. 각 재단이나 시민단체 등 기부를 청탁하는 쪽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연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금 500억 원을 포함해 그룹 전체적으로 매년 수천억 원을 사회공헌 활동에 쓰고 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각 계열사들이 보다 깐깐하게 자금을 지출할 경우 전체적인 사회공헌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삼성그룹은 이와 함께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전실을 다음 주 해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전실은 주요 계열사의 인수합병(M&A) 등 사업전략과 인사, 감사, 대관 업무를 총괄해 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의혹과 부정적 시각이 많은 만큼 없애겠다”며 미전실 해체를 약속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17일 전격 구속되면서 미전실 해체를 포함한 삼성의 그룹 쇄신안이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조직 쇄신을 더 늦추다가는 그룹 전체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삼성이 미전실 해체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가 28일 종료되는 시점에 맞춰 미전실 해체를 추진하는 것이다. 삼성은 미전실 해체 후 이 부회장에 대한 추가 수사와 재판 일정을 챙길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전실 임직원들은 모두 삼성전자 등 원래 소속사로 복귀시키고 TF에 소수 인력만 남긴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가까이 미뤄져 온 사장단 인사 폭도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미전실에는 최지성 실장(부회장) 등 사장급 이상만 5명이 있다. 이들의 거취에 따라 계열사 사장들의 연쇄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SK그룹은 중추신경계 혁신 신약 개발에 주력하는 SK바이오팜을 통해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오랜 기간 연구개발(R&D)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SK는 1993년부터 신약 개발을 시작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중추 신경계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 혁신적인 신약 개발에 힘 써왔다. 1996년에는 우울증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해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시험 진행 승인(IND)을 획득했고, 현재까지 총 15건의 미국 FDA의 IND 승인을 획득하는 등 세계적인 수준의 신약 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많은 제약사들이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복제약을 중심으로 성장한 반면, SK는 사업 초기부터 특허를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에 집중해 온 것이다. SK는 신약 개발 사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2011년 사업 조직을 분할해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2014년엔 1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신약 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해왔다. 200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후 신약 개발 조직을 지주회사 직속으로 둔 것도 그룹 차원에서 투자와 연구를 진행하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SK바이오팜의 연구소는 신약 개발을 위한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신약개발연구소와 글로벌 임상시험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 뉴저지의 임상개발센터로 이원화돼 운영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중추 신경계 질환을 중심으로 다수의 혁신적인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중추 신경계 질환 분야는 연 매출 80조 원 이상의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이며, 다른 질환과 비교해 신약 개발 과정에 고도의 전문성과 역량이 요구돼 진입 장벽이 높다. SK는 의약품 생산사업 확장을 위해 지난해 SK바이오텍의 지분 100%를 인수하고 400억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이 외에도 글로벌 의약품 생산 전문 업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를 통해 SK는 대형 제약사뿐만 아니라 중소형 제약사까지 고객군을 다변화하는 한편 완제 의약품 분야 특화 기술 조기 확보 및 생산설비 다원화 등으로 사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갈 계획이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장기적 투자와 연구개발을 통해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뇌전증(간질) 신약(YKP3089)은 지난해 초 미국 FDA로부터 탁월한 약효를 인정받았고, 뇌전증 신약 중 세계 최초로 임상 3상 약효시험 없이 신약 승인 추진이 가능하게 됐다. YKP3089가 시판되면 미국에서만 연 매출 1조 원 이상을 거두게 된다. 향후 뇌전증 치료 분야에도 새 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약산업 전문 시장조사 기관인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2014년 49억 달러 규모에서 2018년 61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6%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SK그룹은 올해 초 ‘SK플래닛 투자 협상 무산’ 내용을 담은 보고서로 신경이 곤두섰다. 그 보고서에는 ‘이유’가 빠져 있었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중국민성(民生)투자유한공사(중민투)의 속내를 파악할 수 없어서였다. 중민투는 SK플래닛의 사업 성장성을 높이 평가해 1년 가까이 투자 협상을 진행해 왔다. SK플래닛으로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외에는 중민투의 변심을 해석할 길이 없었다. 중민투는 민영기업 60개사가 주주로 참여한 중국 최대 민영 투자회사다. 자본금은 500억 위안(약 8조9000억 원)에 달한다. 전후 설명 없는 일방적 협상 종료는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SK그룹은 ‘사드’를 입에 담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대중국 관련 사업에서 사드는 사실상 금기어로 통한다”고 말했다. 중국 측에서도 협상 테이블에서 ‘사드’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사드 보복은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SK플래닛의 중국 자본 유치 실패로 인해 SK의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은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SK그룹은 2006년부터 중국에 직접 진출하거나 합작을 통해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드는 방안을 촉진해 왔다. 실제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가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 등 SK그룹은 중국 사업을 적극 확대해 왔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플래닛도 이번 투자 유치를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주력 사업인 11번가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꾀하고 모바일 영역의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했다. 중민투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경우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11번가는 터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SK플래닛 역시 이번 투자에 관해 “SK플래닛은 이미 상당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투자 협상의 목적은 단순히 재무적 투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해 왔다. 글로벌 사업 인프라 및 고객 확보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중민투의 지원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중민투의 일방적 협상 종료로 SK플래닛의 1년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SK그룹의 또 다른 중국 프로젝트였던 SK이노베이션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생산공장도 사드 사태 이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월 “연내 중국 내 배터리 제조 공장 설립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다른 국내 기업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품질 관리를 엄격히 한다는 취지로 2015년 ‘전기차 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후 중국 정부가 인증을 통과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검토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전기차 배터리업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LG화학과 삼성SDI는 지난해 6월 해당 인증을 통과하지 못해 추가 인증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돌연 ‘전기차 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 수정안 초안’을 공고하고 한 달간 의견을 수렴했다. 문제는 수정안 기준을 충족하는 곳이 중국 현지 업체인 BYD와 옵티멈나노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중국의 견제가 큰 상황이었는데 사드 이후 더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서동일 dong@donga.com·이샘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이후 미국과 영국, 일본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이 연일 이번 사태를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외국 기자들의 눈에 비친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국 땅에 토대를 둔 글로벌 기업 삼성의 딜레마’였다. 이 부회장 본인은 해외에서 영어 이름 ‘Jay’로 불리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한 ‘서양화된(westernized)’ 인물이지만, 결국 ‘삼성’이란 한국식 재벌 체제에 적응해야 했다는 분석이다. 20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부회장 주변 인물 인터뷰를 통해 “그는 (부친보다) 더 국제적인 시각을 갖고 서양식 경영을 선호했으며, 토론과 창의성을 중시했다”고 분석했다. “2014년 아버지 부재 속에 삼성 총수 자리를 물려받은 이 부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회사 재편에 나서며 불투명한 기업 문화와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나라에서 투명성과 신뢰성의 시대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재벌 체제는 끝났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신문은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부회장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와 오랜 비즈니스 관행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지인으로 기사에 소개된 박윤식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은 굉장히 서양화된 사업가지만, 한국적인 경제·정치·사업 환경 속에서 경영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전날 사설을 통해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FT는 “영어 이름 ‘Jay’를 쓰는 이 부회장은 주주 배당 확대와 해외 기업 인수 등 다소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기업 개혁 방향을 설정해 놨다”고 분석했다. FT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 부회장 구속 수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무조건 관용을 베풀기보다는 법정에서 공정하고 엄격한 절차를 밟는 게 중요하다”며 “이 부회장이 유죄로 판명난다면 죗값을 치러야겠지만, 무죄라면 더 이상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어선 안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식 재벌 체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재벌이 한국 경제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으며, 10대 재벌의 연매출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80%를 넘어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한국 특유의 재벌 체제로 인해 이 부회장의 구속이 가져다줄 타격의 심각성도 지적했다. NYT는 “재벌 문화는 한국에서 종종 제정 군주제에 비유되는데, 회장이 기업에 대한 결정을 하거나 승인을 해야 한다. 따라서 실질적인 리더인 이 부회장의 부재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최고 중역의 부재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일본 언론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이번 이슈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삼성의 최고 경영진이 구속된 것은 처음이며 재계를 중심으로 이번 특검 수사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 일본 전자업체들에 좋은 기회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18일자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갤럭시 노트7’ 배터리 발화 사고에 이어 기업 이미지를 크게 저하시키는 문제”라며 “소비자들의 ‘삼성 기피’가 가속화되면 일본 전자업체들엔 사업 기회가 늘어 스마트폰 및 TV의 세계 점유율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이샘물 evey@donga.com·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