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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사진)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을 거두며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정상에 올랐다. 공연기획사 오디컴퍼니는 이달 2일 발매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앨범이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1위에 올랐다고 19일 밝혔다. ‘위대한 개츠비’는 뮤지컬 ‘데스노트’ ‘지킬앤하이드’ 등을 만든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원작 소설을 재창작했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인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공연의 주요 넘버인 ‘뉴 머니(New Money)’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댄스 챌린지 영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추는 절도 있는 안무가 특징이다. 브로드웨이의 경쟁 뮤지컬인 ‘백 투더 퓨처’ 배우들까지 챌린지에 동참했는데 유튜브에서 100만 회 이상 조회됐다. ‘위대한 개츠비’는 프리뷰 공연이 시작된 4월 15일 이후 17주째 매주 매출액 100만 달러 이상을 내며 ‘원 밀리언 클럽’을 유지하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주간 매출액이 100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작품성과 별개로 작품을 무대에서 내린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비극적 죽음을 맞은 뒤 이승에 남지도, 저승에 가지도 못하는 ‘도’와 ‘신’.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은 이들은 생전 신던 신발을 하염없이 찾는다. 신발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성북구 놀터예술공방에서 공연되는 극단 ‘놀터’의 연극 ‘나를 찾아 나를 떠나고 나를 지우고 나를 기다린다’의 줄거리다. 배우 겸 연출가 이미숙(47)이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신발을 갖고 노는 데서 영감을 얻어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2021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재연된다. 16일 첫 공연이 끝난 뒤 극장에서 만난 이미숙은 얼마 전 선물 받은 새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매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와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노원구 상계동 집까지 걸어 다니며 작품을 고민하는 그의 신발 밑창에 어김없이 큰 구멍이 나서다. 쉬지 않고 걸어도 왕복 7시간에 달하는 거리. “물집이 나고 터지며 굳은살이 박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인생 아닐까요. 나 자신과 싸우고 패배하면서도 살아내야 하는 삶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어요.” 연극계에서 ‘몸 잘 쓰는 유쾌한 배우’로 정평이 난 이미숙답게 작품에는 배우들의 다채로운 움직임과 입소리, 언어유희로 가득하다. 그는 “뼈대에 살이 붙어야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되듯, 배우의 움직임은 대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필수 요소”라며 “대사 이외 입소리와 말놀이로 웃음과 운율감을 더했다”고 말했다. 굿판을 접목해 한(恨) 서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과정도 특색 있게 담았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스무 살이 되던 1997년 극단 ‘미추’에 입단하며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26년이 흐른 지난해 제60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연극쟁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기에 수상 소식을 듣고 한참 넋을 잃었다”며 “형편이 어려워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는데 고집스럽게 무대를 지킨 끝에 보상을 받는 듯해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어느덧 중견 배우가 됐지만 연극을 향한 고집과 애정은 변함없다. 그에게 연기상을 안겨준 ‘싸움의 기술, 졸’에서 장기 두는 것이 낙인 ‘뒷방 늙은이’ 기봉 역을 연구할 땐 동네 공원을 찾았다. 장기 두는 어르신들의 표정과 몸짓, 말투를 온종일 꼼꼼히 관찰했다.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냐’며 걱정 섞인 핀잔을 들어도 소주를 나눠 마시며 거리를 좁혔다. “연극은 모방이라지만 가짜를 연기하면 안 돼요. 연출가로서 배우들도 ‘진짜’ 그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죠. 관객과 단원들에게 극장이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게끔 앞으로도 묵묵히 무대를 지키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나이가 들면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자꾸만 늘어놓기 쉽다. 자식은 “했던 얘기 또 한다”며 성가신 기색을 내비치고, 부모는 그런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도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평온과 활기를 지킬 비결이다. 기억 속 보물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냄으로써 걱정과 불행에 압도당하지 않는 것. 심리치료사 겸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가 72세에 학문적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썼다. 분석심리학의 토대를 만든 스위스 정신의학자 카를 융(1875∼1961)의 이론에 기초했다. 노화에 따른 변화와 다가올 죽음에 익숙해질 것을 7개 장에 걸쳐 꾸준히 강조한다. 자율성과 통제력이 약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단호히 다그치며 수용을 넘어선 긍정의 길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노년기에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다른 사람들의 비판적인 시선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자신을 새롭게 알아 갈 기회가 생긴다”고 말한다. 불친절한 이론서에 그치지 않고 현명하게 나이 들기 위한 각종 실천법도 담아냈다. 책은 노년층이 작은 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감정적으로 접촉할 것을 권한다. 우리가 과거에 느꼈던 기쁨을 다시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에게 더 다정해지며, 후회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그 자체로 남겨둘 수 있기 때문이다. 주름이 늘고 깜박 잊는 것이 많아진 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보다 안정되고 평온한 일상을 꿈꾸는 청년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크고 작은 난관에 쉴 새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나이가 많든 적든 매한가지다. “나이가 들면 여러 측면에서 바닥이 흔들린다. 바닥이 흔들릴 때는 유연해져야 한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받을 수 있으며, 누군가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는 말들은 적지 않은 울림을 남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달 24∼3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선 뮤지컬 ‘킹키부츠’의 ‘생일 카페’(카페를 대관해 연예인 등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이벤트)가 열렸다. 복수의 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공연 10주년을 맞아 열린 이 행사에 팬들이 몰렸고, 입장 등록을 마치고도 1, 2시간씩 기다려야 실제 입장이 가능했다. 팬들은 작품을 대표하는 색깔인 빨간 옷에 붉은색 음료를 즐기며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일주일 행사 기간에 이곳을 찾은 이는 3900여 명. 엽서, 홀더 등 일부 굿즈는 사흘 만에 조기 소진돼 급히 추가 제작하기도 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아이돌과 스타 배우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주류 팬덤 문화’에 뮤지컬계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에스파, 변우석 등 톱스타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에는 지난달 31일 ‘1호 뮤지컬 배우’가 탄생했다. 다음 달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시카고’의 주인공 역을 맡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인기몰이 중인 정선아가 뮤지컬 배우 최초로 입점한 것. 내부 심사를 거쳐야 입점이 확정되는 만큼, 뮤지컬계 영향력이 커진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정선아, 김준수 등 뮤지컬 배우들이 소속된 팜트리아일랜드 관계자는 “기존 오프라인 중심이던 소통에서 외연을 넓혀 해외 팬 등과도 적극 교류하기 위해 위버스 입점을 결정했다”고 했다. 특정 작품의 팬들이 배우, 창작진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팬 커뮤니티 플랫폼 ‘비스테이지’에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팬 페이지가 올해 6월 개막 직전 개설돼 14일 기준 가입자 6400명을 모았다. 비스테이지에 뮤지컬 작품이 입점한 것은 처음이다. 윤은오, 박진주를 비롯한 주인공 역 배우들이 프로필 촬영 비하인드컷 등을 공유했다. 좋아하는 연예인과 가상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최근 팬덤 문화의 필수코스로 꼽히는 포토부스로도 뮤지컬 배우들이 영역을 확장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포토부스에서는 이달 18일까지 뮤지컬 배우 박강현과 가상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장당 7000원으로 일반 사진의 2배 가까운 가격이지만 인기 뮤지컬 ‘하데스타운’에 주인공 역으로 출연 중인 박강현과 함께 다정한 포즈로 가상 인증샷을 찍을 수 있어서 호응도가 높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팬덤 문화와 결합돼 2000년대 이후 급속 성장을 이뤘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59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냈다. 여기에 공연과 팬덤 산업이 선순환되며 점차 파이가 커지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이 많고 주요 소비층이 20, 30대로 해외에 비해 젊기 때문에 팬덤 문화가 확산하기 좋은 토양”이라며 “아이돌 출신 배우가 늘면서 아이돌 팬 문화가 흡수된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립국악원이 여름 야외공연 ‘우면산별밤축제’를 24일부터 9월 21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연희마당 무대에서 연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국악 단체들이 출연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무을농악, 사자놀음 등 생동감 넘치는 무대부터 거꾸로프로젝트, 최재구, 예결 등의 창작 국악 공연, 연희집단THE광대의 관객 참여형 연희극 ‘당골포차’ 등 다양한 무대가 준비됐다. 본공연 전에는 ‘청배연희단’의 풍물 연희공연도 펼쳐진다. 전석 무료이며 공연 일주일 전 수요일 오후 2시부터 국립국악원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무용, 국악 등 다채로운 공연 축제가 잇달아 열려 늦여름에 열기를 더한다. 올해는 젊은 안무가와 소리꾼 등 통통 튀는 신진 예술가를 앞세운 행사가 많아 눈길을 끈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는 ‘제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다음 달 1∼14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개최된다. 세계적인 공연예술가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자녀들로 이뤄진 ‘듀이 델’이 처음 내한공연을 펼친다. 30대 젊은 무용수 겸 안무가인 3남매는 5, 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봄의 제전’을 공연한다. 다음 달 11일 같은 장소에서 공연되는 고블린파티와 갬블러크루의 ‘동네북’ 등 총 9개국 작품 16편이 공연된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창무국제공연예술제는 세종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되는 ‘지금 뛰다’를 주요 프로그램으로 앞세웠다. 국내외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 8편을 한자리에 모았다. 실패와 극복에 대해 다룬 메타댄스 프로젝트의 ‘지금은 미끄러지지만’, 군함도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유아 안무작 ‘군함의 자태’ 등이 각각 20, 21일 공연된다. 그 밖에 국내 초청작 19편과 일본, 미국 등 해외 초청작 5편이 이달 21∼31일 서울 중구 서울남산국악당,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등에서 펼쳐진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이달 14∼18일 전북 전주 시내에서 개최되는 등 국악계도 젊은 소리꾼과 함께 흥겨운 축제를 꾸린다. 총 14개국 800여 명의 예술가가 106회의 공연을 펼친다.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는 ‘올해의 국창’ ‘라이징 스타’ 등의 키워드를 주제로 한 5편이 무대에 오른다. 김영자 ‘심청가’, 왕기석 ‘수궁가’ 등 명창의 판소리뿐만 아니라 이자람 ‘적벽가’, 박가빈 ‘춘향가’ 등 젊은 소리꾼들의 공연도 만나볼 수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힘껏 바로잡지 않으면 과오는 반복된다. 머잖아 과거가 되고 역사로 기록될 오늘을 향해 연극 ‘장도’는 말한다. “피하지 마. 두려운 마음 그대로 봐.”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8일 마지막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연극 ‘장도’는 ‘잘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친구와 가족을 떠나보낸 고등학생 ‘장도’가 할아버지 ‘장춘’의 유품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작품은 과거 전쟁터 속 할아버지와 현재 장도의 상황을 속도감 있게 교차시킨다. 출연진은 1인 2역 이상을 연기하며 1950년대와 오늘날을 매끄럽게 오간다. 공허한 눈빛과 굽은 어깨의 장도, 공포와 결단이 공존하는 얼굴의 장춘은 배우 지민제가 연기했다. 간소한 무대임에도 조명과 영상을 활용해 전쟁터와 교실을 오간다. 스크린에는 수업 판서와 자욱한 연기가 번갈아 투사되고, 무대 바닥에 놓인 조명은 관객 방향으로 번쩍이면서 포탄과 화재를 표현했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념 갈등이나 분단의 아픔 같은 상투적인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상실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는 개인과 집단의 역사가 어떻게 건설되고 재평가돼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다 잊는 게 잘 산다는 거냐?” 등의 대사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생각거리도 남긴다. 장도와 같은 반 친구인 예지, 경훈 등 감초 캐릭터로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이야기를 조절한다. 다만 6·25전쟁에 참전했던 뉴질랜드 마오리족을 캐릭터로 차용한 것은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사기를 북돋는 마오리족의 전통 의식 ‘하카’를 활용하는 등 이야기와 시청각 요소에 입체감을 더하긴 하지만 산만한 전개로 전달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최근엔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흐를 만큼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왔어요. 그때 뮤지컬 ‘킹키부츠’ 4번째 출연 기회가 주어졌고, 그건 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비상구였죠.” 이석훈(40)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그룹 SG워너비로 데뷔한 17년 차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진행자로서 바쁜 일상. 그에게 ‘킹키부츠’는 비상벨이 울린 마음을 피할 탈출구였다. 5일 서울 종로구의 연습실에서 만난 이석훈은 “후회 없이 사랑하면 미련이 없듯 2022년 공연을 끝내며 ‘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출연을 반년 넘게 고사하다가 마음을 돌린 건 내게 ‘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에 놓인 아버지의 수제화 공장을 이어받게 된 찰리가 가업을 다시 일으키려 노력하는 성장기다. 유쾌한 드래그퀸(여성의 성 역할을 연기하는 남성) ‘롤라’를 만나 80cm 길이의 남성용 부츠를 만들면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다. 2014년 국내 초연 이후 누적 관객 약 50만 명을 모은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다음 달 8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1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린다. 작품은 찰리의 성장기인 동시에 이석훈의 성장기다. 2018년 찰리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해에 아들을 얻었고, 이후 2년마다 열린 ‘킹키부츠’에 빠짐없이 출연했다. “저를 꼭 닮은 아이는 마음에 사랑이 참 많아요. 그걸 보며 ‘나도 원래 저랬는데 어쩌다 몇 년 새 예민하고 방어적으로 변했지’ 생각했죠. 대본을 다시 보니 찰리도 여태 가보지 못한 길을 가면서 예민해진 거더라고요. 찰리가 결국 원래의 모습을 되찾듯 저도 돌아가려 애쓰는 중입니다.” ‘킹키부츠’를 통해 배우로서의 성장도 일궜다. 그동안 주역을 맡은 뮤지컬 가운데 그는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배역으로 찰리를 꼽았다. 우리 주변에 한 명쯤 있는 평범한 캐릭터라서 롤라만큼 튀어선 안 되기에 까다롭다는 것. “가수로 공연할 때보다 2배는 더 떨립니다.” 그의 우려와 달리 관객들 사이에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넘버 ‘Soul of a Man’도 “이석훈이 부르면 설득된다”는 평이 오간다. 찰리가 롤라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며 비수를 꽂은 뒤 이어지는 노래다. “저는 그 대목에서 너무 억울해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아요.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시즌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했다. 찰리 역을 빼어나게 소화할 후배들이 줄을 섰다는 이유에서다. “건강 외에 엄청난 목표를 세우고 있지는 않아요. 지금은 최고의 찰리를 보여주고자 ‘킹키부츠’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어서 정말 기뻐요. 항상 저를 믿고 격려해준 가족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큰 국악인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서울 서초구 정효아트홀에서 3일 열린 제3회 동아주니어국악콩쿠르 본선에서 서용석류 대금산조를 연주해 금상을 수상한 임주하 양(15·국립전통예중 3학년)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동아일보사와 정효문화재단(대표 주재근)이 주최하고 국악방송(사장 원만식)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중등부 현악, 관악, 성악, 무용 등 4개 부문에서 지난달 29, 30일 예선을 거쳐 40명이 본선에 올랐다. 이날 본선에선 금상 8명 등 24명이 수상했다. 이번 대회의 최연소 참가자이자 수상자인 박서아 양(9·부산동백초 3학년)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너무나 기쁘고 다음에도 참가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국악기 공방 소리숲’의 후원으로 각 부문 금상 입상자에게 단소 또는 소금이 1개씩 수여됐다. 주요 입상자에게는 독주회와 국악방송 출연, 심사위원 멘토링 등 특전이 주어진다. 이달 중 콩쿠르 홈페이지에서 심사 결과와 심사평, 본선 연주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장려상 명단은 홈페이지 참조). ◇현악 ▽중등부 △금상 강유진(15·국립국악중 3학년) △은상 김유림(14·국립국악중 2학년) △동상 이예랑(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초등부 △금상 김우혁(11·서울대도초 5학년) △은상 황민경(12·서울가락초 6학년) △동상 이다은(11·삼미초 6학년) ◇관악 ▽중등부 △금상 임주하(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은상 양동재(15·국립전통예중 3학년) △동상 서효우(15·국립국악중 3학년) ▽초등부 △금상 윤하원(12·서울두산초 6학년) △은상 박초은(12·탄벌초 6학년) △동상 이주학(12·서울보라매초 6학년) ◇성악 ▽중등부 △금상 김은채(15·국립전통예중 3학년) △은상 양준모(15·국립국악중 3학년) △동상 김민정(15·국립국악중 3학년) 남하율(14·국립국악중 3학년) ▽초등부 △금상 구민정(12·사천사남초 6학년) △은상 손연재(12·건원초 6학년) ◇무용 ▽중등부 △금상 길도연(14·예원학교 3학년) △은상 김아름(13·온양용화중 2학년) △동상 이단비(14·일신여중 2학년) ▽초등부 △금상 박서아(9·부산동백초 3학년) △은상 이하윤(10·배방초 4학년) △동상 백도이(11·인천한길초 5학년)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관계자 외 출입금지.’ 빨간 경고문이 붙은 문을 열고 제한구역에 발을 내디뎠다. 으스스한 푸른 조명이 깜깜한 복도를 비추고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이 은은하게 깔렸다. 긴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에 들어서자 유령 조사단 관계자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공연이 끝난 배우들이 식사하는 곳이자 ‘버나돌이 유령’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관객들이 증강현실(AR) 모바일 앱으로 내부를 비추자 하늘색 외눈박이 유령이 눈앞에 튀어나왔다. 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극장 투어 프로그램 ‘극장에 유령이 산다’의 한 장면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이 몰리며 투어는 온라인 접수 1분 만에 160명 정원이 모두 찼다. 다이닝룸에 이어 둘러본 라커룸에서는 크로마키(특수효과용 푸른 배경)를 활용해 ‘투명 망토’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엄마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장세원 양(10)은 “공연을 한 달에 한 편씩 볼 만큼 좋아하지만 극장 투어는 처음”이라며 “평소에 갈 수 없는 극장 내부 공간을 유령 조사단과 함께 가볼 수 있어 재밌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공연계가 이색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잠재 관객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극장의 역사나 공간별 기능을 설명하는 기존 방식 대신 몰입도 높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해 극장 자체를 고유 ‘브랜드’로 만들려는 것. 송수찬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매니저는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화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창작연희단체와 협업했다”며 “어린이와 부모들이 극장에 친숙하게 드나듦으로써 향후 공연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강현주가 구성하고 연출한 스토리텔링형 투어 프로그램 ‘고스트 가이드’를 최근 진행했다. 배우 오정택의 연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50분간 참가자들이 지하 연습실과 소극장 등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이 경험하기 힘든 ‘고스트 라이트’(극장이 문을 닫은 뒤 공연 재개 전까지 켜두는 희미한 조명)를 보여주고, 그에 얽힌 서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 감성을 자극한다. ‘1993년부터 이곳에 공연을 보러 온 고모부’ 같은 배역을 참가자들에게 즉석에서 맡겨 체험 몰입도를 높인다. 정다운 두산아트센터 교육기획 매니저는 “정보 전달만으로는 극장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극장 규모 등에서 다른 곳에 비해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고 봤다”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극장과 공연에 대한 따뜻한 정서를 이끌어냄으로써 신뢰감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은 공연예술박물관에서 가상현실(VR) 백스테이지 투어를 진행 중이다. 비치된 VR 기기를 통해 음향조정실 등 평소 관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백스테이지 공간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가상의 소품제작실에서는 초록색 커팅매트와 알록달록한 공구가 즐비한 모습을, 장치제작실에선 경사로 등 무대장치에 쓰이는 합판과 기자재가 놓인 장면을 각각 살펴볼 수 있다. 김연희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종 무대장치들이 쌓여 있어 안전상 우려가 있는 장치제작실 등을 VR 투어로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다”며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는 일반 투어와 달리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관계자 외 출입금지’빨간 경고문이 붙은 문을 열고 제한구역에 발을 내디뎠다. 으스스한 푸른 조명이 깜깜한 복도를 비추고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이 은은하게 깔렸다. 긴 식탁이 놓인 다이닝룸에 들어서자 유령 조사단 관계자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공연이 끝난 배우들이 식사하는 곳이자 ‘버나돌이 유령’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관객들이 AR(증강현실) 모바일앱으로 내부를 비추자 하늘색 외눈박이 유령이 눈 앞에 튀어나왔다.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극장 투어 프로그램 ‘극장에 유령이 산다’의 한 장면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이 몰리며 투어는 온라인 접수 1분 만에 160명 정원이 모두 찼다. 다이닝룸에 이어 둘러본 락커룸에서는 크로마키(특수효과용 푸른 배경)를 활용해 ‘투명 망토’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엄마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장세원 양(10)은 “공연을 한 달에 한 편씩 볼 만큼 좋아하지만 극장 투어는 처음”이라며 “평소에 갈 수 없는 극장 내부 공간을 유령 조사단과 함께 가볼 수 있어 재밌고 신기했다”고 말했다.공연계가 이색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잠재 관객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극장의 역사나 공간별 기능을 설명하는 기존 방식 대신 몰입도 높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해 극장 자체를 고유 ‘브랜드’로 만들려는 것. 송수찬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 매니저는 “극장 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화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창작연희단체와 협업했다”며 “어린이와 부모들이 극장에 친숙하게 드나듦으로써 향후 공연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강현주가 구성하고 연출한 스토리텔링형 투어 프로그램 ‘고스트 가이드’를 최근 진행했다. 배우 오정택의 연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50분간 참가자들이 지하 연습실과 소극장 등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이 경험하기 힘든 ‘고스트 라이트’(극장이 문을 닫은 뒤 공연 재개 전까지 켜두는 희미한 조명)를 보여주고, 그에 얽힌 서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 감성을 자극한다. ‘1993년부터 이곳에 공연을 보러 온 고모부’ 같은 배역을 참가자들에게 즉석에서 맡겨 체험 몰입도를 높인다. 정다운 두산아트센터 교육기획매니저는 “정보 전달만으로는 극장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뿐더러 극장 규모 등에서 다른 곳에 비해 변별력을 갖기 어렵다고 봤다”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극장과 공연에 대한 따뜻한 정서를 이끌어냄으로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서울 중구 국립극장은 공연예술박물관에서 VR(가상현실) 백스테이지 투어를 진행 중이다. 비치된 VR 기기를 통해 음향조정실 등 평소 관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백스테이지 공간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가상의 소품제작실에서는 초록색 커팅매트와 알록달록한 공구가 즐비한 모습을, 장치제작실에선 경사로 등 무대장치에 쓰이는 합판과 기자재가 놓인 장면을 각각 살펴볼 수 있다. 김연희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종 무대장치들이 쌓여 있어 안전상 우려가 있는 장치제작실 등을 VR 투어로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다”며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는 일반 투어와 달리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진화론에 따르면 우월한 유전자는 ‘자기 씨’를 널리 퍼뜨리려는 본능이 강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출생률이 감소한 것은 인류 역사의 퇴보를 의미할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환경과학과 인류학을 연구하는 저자들은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답을 ‘유전자-문화 공(共)진화 이론’에서 찾는다. 인류가 유전적 본성이나 문화적 학습이라는 두 경로 중 하나만을 선택해 진화해온 게 아니라, 두 속성이 상호작용하며 진화를 이뤘다는 것이다. 총 7개 장에 걸쳐 인류 진화에 대한 폭넓은 가설을 펼친 뒤 심도 있는 논증으로 뒷받침했다. 2009년 출간된 ‘유전자만이 아니다’에서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고 주석을 보강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21세기 이전에 발생했던 모든 문화 진화적 사건들은 모두 지금과 연관돼 있다. 우리가 어떤 문화적 변형을 채택하거나, 무시할 것인지를 선택함으로써 진화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떨어지는 추세에 대해선 ‘이기적인 문화 변형’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내놓는다. 근대화로 인해 인류는 교육기관 등을 통해 부모가 아닌 사람들로부터의 문화 전달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교육을 받는 이들이 점차 결혼과 양육을 미루는 현상이 발생했다. 문화 전달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이들이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확산시키면서 저출생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인류의 과거 선택도 치밀하게 분석한다. 과거 나치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 친구를 보호하려고 애쓴 독일인이 별로 없었던 사실에 대해 ‘사회적 본능’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서로 구분된 집단에서 살아가는 ‘부족 본능’이 극단화되면서 내집단(개인이 규범, 가치 등에서 동지의식을 갖는 집단)에 속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의심과 살해의 대상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무대 위 무용수가 커다란 알 속으로 쏙 들어가자 객석에서 앳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우와, 신기하다”라며 감탄하고, 엄마의 귀에 대고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야?” 소곤소곤 묻곤 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어린이 무용극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의 객석 풍경이다. 3월 15일 폐관된 ‘학전’이 이름을 바꿔 아이들 관객을 다시 맞고 있는 것이다. 이제 김민기도 떠났고, 학전도 이름을 바꿨지만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연이 필요하다”는 고인의 뜻은 새 공간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기존 극단 사무실을 임시로 재단장한 2층 ‘예술놀이터’는 공연 시작 전, 관객 20여 명으로 붐볐다. 아이들은 색칠 놀이를 하거나 비치된 동화책을 읽었다. 다섯 살 아들과 극장을 찾은 최모 씨(36)는 “5분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기다릴 라운지가 있어 좋다”고 했다. 개·보수를 마친 지하 소극장에 들어가니 기존처럼 쿰쿰한 곰팡내가 나지 않고 산뜻했다. 어린 관객을 위한 키 높이 방석도 객석 뒤편에 새로 구비됐다. 이날 공연된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은 알을 깨고 나오는 애벌레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춤으로 풀어낸 작품. 무용수가 공중으로 흩뿌린 물이 조명 빛에 반사될 땐 아이와 어른 모두의 감탄사가 터졌다. 여섯 살 딸과 찾은 안모 씨(38)는 “지난주 김민기 씨에 대해 검색하다가 공연 소식을 접했다. 어른이 봐도 재밌는 공연을 아이와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제3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의 일환이었다. 해당 축제는 서울 공연을 마쳤고, 다음 달에 광주 등에서 지역 연계 공연을 이어 간다. 고 김민기의 유족들은 발인 후 닷새 만인 29일 장례 이후 입장을 전했다. 학전을 통해 낸 보도자료를 통해 “조의금과 조화를 사양한다고 밝혔음에도 장례 첫날 경황없는 와중에 일부 조의금이 들어왔다”며 “조의금은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은 돌려 드렸고, 또 돌려 드리려고 한다. 돌려 드릴 방법을 찾지 못하는 조의금은 적절한 기부처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고인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았으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공연이나 추모사업을 원하지 않는다”며 “유가족은 유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왜곡되지 않도록 받들겠다. 모든 일은 학전을 통해 진행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무대 위 무용수가 커다란 알 속으로 쏙 들어가자 객석에서 앳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유리구슬 같은 목소리로 “우와, 신기하다” 감탄하고, 엄마의 귀에 대고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야?” 소곤소곤 질문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어린이 무용극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에서다. 옛 ‘학전’ 소극장이었던 이곳은 올해 2월 가족뮤지컬 ‘고추장 떡볶이’ 공연 이후 약 5개월 만에 아이들의 웃음꽃으로 가득 찼다. 가수 고 김민기가 운영하다 폐관한 옛 ‘학전’의 자리에서 ‘제3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가 개최됐다.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 코리아)가 주최하는 국내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축제다. 28일까지 아르코꿈밭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 대학로 일대 극장에서 8개국 공연 11편을 선보였고 다음 달엔 광주광역시, 경기 광주 등지에서 지역 연계 공연을 이어간다. 고인은 세상을 떴지만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연이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새 공간에서 이어졌다. 기존 극단 사무실을 임시로 재단장한 2층 ‘예술놀이터’는 공연 시작 전, 관객 20여 명으로 붐볐다. 아이들은 색연필을 들고 색칠 놀이에 푹 빠져들었고, 부모는 “이게 무슨 동물이야?” 묻거나 책장에 꽂힌 동화책을 꺼내 읽어줬다. 5살 아들과 극장을 찾은 최모 씨(36)는 “5분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기다릴 라운지가 있어 좋다”며 “20대부터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즐겨 봤다. ‘학전’이 어린이 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어 기쁘다”고 했다. 공연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멘트가 나오자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지하 소극장으로 향했다. 개·보수를 마친 소극장엔 더 이상 쿰쿰한 곰팡내가 나지 않았다. 기존 누수로 인해 조명 사이사이 받쳐뒀던 수많은 양동이도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 관객을 위한 키 높이 방석도 객석 뒤편에 새로 구비됐다. 암전 직전,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에 걸맞은 공지가 흘러나왔다. “어른 관객 여러분, 주위를 둘러봐주세요.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아이는 없나요? 어린이들이 공연을 잘 볼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려요.” 이날 공연된 ‘시포나드, 애벌레의 꿈’은 알을 깨고 나오는 애벌레처럼,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춤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무용수가 공중으로 흩뿌린 물이 조명 빛에 반사될 땐 아이와 어른 모두의 감탄사가 터졌다. 공연 후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선 한 어린이 관객이 손을 번쩍 들고 출연진에게 “무대 위에 있을 때 기분이 어때요?” 묻기도 했다. 6살 딸과 공연을 관람한 안모 씨(38)는 “지난주 김민기 씨에 대해 검색하다가 축제 소식을 접했다. 어른이 봐도 재밌는 공연을 아이와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한편 21일 향년 73세로 별세한 고인은 학전의 뒤를 이은 아르코꿈밭극장이 청소년과 신진 뮤지션을 위한 장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 뜻을 이어받아 이달 17일부터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으로 운영 중이다. 29일 유가족은 “삼일장 내내 ‘우리 아빠 참 잘 살았네’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과 웃음이 함께 나오는 시간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이어 “고인은 자신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길 바랐다. 그렇기에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공연, 추모사업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샤이니 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티켓 1장 30만 원에 팝니다.’ 28일 한 티켓 양도 플랫폼에서 이런 매도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룹 샤이니 출신 가수 겸 배우 최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표를 팔겠다는 것인데, 원래 티켓값이 6만6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4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 것. 실제 거래 가격은 보통 2배 정도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이런 ‘웃돈’까지 형성된 것은 최민호가 이 연극을 통해 무대 연기에 처음 도전하기 때문.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운 거리에서 ‘직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고 팬들이 몰리는 것이다. 연극 ‘빵야’도 마찬가지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극장 주변이 북적인다. 드라마 ‘더 글로리’ ‘눈물의 여왕’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박성훈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이 몰린 것. ‘빵야’는 그가 7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배우 유승호와 손호준, 고준희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각각 19∼24년 전 데뷔한 세 사람의 첫 연극 출연으로 기대가 큰 작품이다. TV와 스크린 등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기존 팬덤을 등에 업고 무대에 데뷔하거나 복귀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배우는 연기력을 직접 팬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되고, 팬들은 스타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제작자들은 흥행 확률을 높일 수 있어 3박자가 맞는다. 스타의 파워는 가난한 연극계에 돈이 돌게 하고 있다. 전도연이 27년 만에 복귀하는 연극으로 화제가 됐던 ‘벚꽃동산’은 이달 7일까지 한 달간 열린 총 30회 공연에 약 4만 명의 관객이 몰려 연극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된 국내 연극 중 티켓 판매액 1위에 오른 작품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였다. 배우 김유정, 정소민의 연극 데뷔작이자 김성철, 이상이 등 호화 캐스팅으로 이목을 모았던 연극이었다. 2위는 ‘오징어게임’의 박해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무대로 돌아온 연극 ‘파우스트’였다. 공연제작사들은 제작비가 오르면서 장기 공연 또는 전석 매진으로 수지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자 스타 캐스팅이 불가피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타 장르 팬들이 유입되지 않는 이상 극장을 가득 메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대 데뷔작일 경우 팬덤 효과는 더 커지는 한편 배우의 출연료는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서 “배우는 연기자로서의 전문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초심을 되찾는 긍정적 인상을 줄 수 있어 윈윈”이라고 했다. 한 공연계 홍보담당자는 “주최 측이 10번 홍보하는 것보다 스타가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고 했다. 영상 콘텐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배우들이 공연계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한 연극 배우는 “신규 제작되는 영화, 드라마 수가 급격히 줄면서 콘텐츠 진출을 타진하던 연극 배우들은 판로가 막히고, 배우들이 설 자리마저 줄어들었다”며 “연기 공백을 채우려고 무대에 서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관객들로서는 스타를 직접 볼 기회가 많아져 좋지만 문제는 오르는 티켓값이다. 지난해 공연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VIP석이 11만 원으로 당시 연극 티켓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다음 달 개막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VIP석은 12만 원이다. 연극 티켓 최고가가 1년 만에 9%포인트 인상된 셈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샤이니 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티켓 1장 30만 원에 팝니다.’ 28일 한 티켓 양도 플랫폼에서 이런 매도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룹 샤이니 출신 가수 겸 배우 최민호가 출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표를 팔겠다는 것인데, 원래 티켓값이 6만6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4배 이상의 가격을 부른 것. 실제 거래 가격은 보통 2배 정도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이런 ‘웃돈’까지 형성되는 것은 최민호가 이 연극을 통해 무대 연기에 첫 도전하기 때문.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운 거리에서 ‘직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팬들이 몰리는 것이다. 연극 ‘빵야’도 마찬가지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극장 주변이 북적인다. 드라마 ‘더 글로리’ ‘눈물의 여왕’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박성훈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이 몰린 것. ‘빵야’는 그가 7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배우 유승호와 손호준, 고준희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각각 19~24년 전 데뷔한 세 사람의 첫 연극 출연으로 기대가 큰 작품이다. TV와 스크린 등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기존 팬덤을 등에 업고 무대에 데뷔하거나 복귀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배우는 연기력을 직접 팬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되고, 팬들은 스타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고, 제작자들은 흥행 확률을 높일 수 있어 3박자가 맞는다. 스타의 파워는 가난한 연극계에 돈이 돌게 하고 있다. 전도연이 27년 만에 복귀하는 연극으로 화제가 됐던 ‘벚꽃동산’은 이달 7일까지 한 달간 열린 총 30회 공연에 관객 약 4만 명이 몰려 연극으로서 이례적 성과를 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된 국내 연극 중 티켓판매액 1위에 오른 작품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였다. 배우 김유정, 정소민의 연극 데뷔작이자 김성철, 이상이 등 호화 캐스팅으로 이목을 모았던 연극이었다. 2위는 ‘오징어게임’의 박해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 무대로 돌아온 연극 ‘파우스트’였다. 공연제작사들은 제작비가 오르면서 장기 공연 또는 전석 매진으로 수지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자 스타 캐스팅이 불가피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타 장르 팬들이 유입되지 않는 이상 극장을 가득 메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대 데뷔작일 경우 팬덤 효과는 더 커지는 한편 배우의 출연료는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서 “배우는 연기자로서의 전문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초심을 되찾는 긍정적 인상을 줄 수 있어 윈윈”이라고 했다. 한 공연계 홍보담당자는 “주최 측이 10번 홍보하는 것보다 스타가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고 했다. 영상 콘텐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배우들이 공연계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한 연극 배우는 “신규 제작되는 영화, 드라마 수가 급격히 줄면서 콘텐츠 진출을 타진하던 연극 배우들은 판로가 막히고, 배우들이 설 자리마저 줄어들었다”며 “연기 공백을 채우려고 무대에 서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관객들로서는 스타를 직접 볼 기회가 많아져 좋지만 문제는 오르는 티켓값이다. 지난해 공연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VIP석이 11만 원으로 당시 연극 티켓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다음 달 개막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VIP석은 12만 원이다. 연극 티켓 최고가가 1년 만에 9%p 인상된 셈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761년부터 260년 넘게 문을 열고 있는 한 서점이 있다. 영국 런던의 퇴락한 골목에 을씨년스럽게 버티고 있는 ‘헨리 소서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중 하나다. 저자는 이곳의 삐걱대는 책장 빼곡한 고서적을 관리하는 직원이다. “빅토리아 시대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정체불명의 괴짜 방문객들에게 맞서면서도 이 골동품 서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책으로 풀어냈다. 에세이지만 모험담과 오컬트를 버무린 소설을 읽는 듯하다. 저자는 흡인력 있는 전개와 문체를 갖춘 스토리텔러다. 소서런이 거액을 들여 매입했으나 지구 반 바퀴를 돌고서도 팔리지 않았던 책에 얽힌 저주를 풀어낸 대목이 그렇다. 책은 겨우 주인을 찾을 뻔했으나 타이타닉에 실려 영원히 바다로 침몰했고 제본업자는 몇 주 뒤 익사했으며, 다시 제작된 책은 독일의 공습으로 산산이 조각나는 결말을 맞는다. ‘덕후’들의 구미를 당길 깨알 같은 주석도 소소한 재미다. 저자가 희귀 서적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허물어져 가는 철교를 가로질렀던 경험에 대해선 “영국에서 희귀 도서에 관한 경력을 쌓으려면 책 수집가와 딜러들이 사랑하는, 녹슨 철교를 헤매고 다녀야 한다”고 덧붙인다. 서점 직원으로서 겪는 좌충우돌 현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서점에 대한 독자의 환상을 부수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에 흔들리는 법이 없는 곳’이란 인식을 향해 “서점은 원래 재정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로 정평 나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서점은 역사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일상다반사”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벨리코어(vellichor·중고 서점 특유의 애틋한 분위기) 내음이 물씬한 공간에 안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달리 둘 데를 찾지 못한 물건”이라 느꼈던 저자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서점에서 “남들보다 덜 사회적이고 내면의 햇볕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장한다. 왠지 모를 위안까지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옛 ‘학전’ 소극장 앞. 고 김민기를 태운 운구차에 유가족이 탑승해 이제 장지로 떠나려 하자 누군가 ‘아침이슬’을 선창했다. 두 겹 세 겹으로 줄지어 늘어선 추모객 수십 명은 흐느끼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잠잠했던 빗방울이 갑작스럽게 굵어졌다. 비가, 눈물이, 아니 슬픔들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외쳤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김민기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극장 앞 고 김광석의 노래비 앞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소주, 막걸리와 국화 꽃다발이 줄지어 있었다. 유족은 영정을 안고 옛 학전 내부를 잠시 둘러봤다. 학전 출신인 배우 설경구와 장현성은 참아보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으나 터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배우 오지혜, 방은진은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운구차가 떠난 뒤에도 추모객들은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색소포니시트 이인권 씨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고인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다. 울음은 다시 파도처럼 번졌다. “가족장을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장현성은 힘겹게 입을 뗐고,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이슬’ 등 노래로 1970년대 군부 시절 ‘청년 정신’을 심어줬고, 학전에서 올린 창작 뮤지컬로 대학로의 상징이 됐던 김민기는 이렇게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앞서 위암 4기로 투병하다 73세를 일기로 21일 별세했다. 1971년 김민기가 작곡해 건네준 ‘아침이슬’을 부르며 열아홉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에서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이라고 불렀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오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앞서 김민기의 서울대 후배인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전날 빈소를 찾아 조문객의 식사비 명목으로 유족에게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조의금을 받지 않았던 유족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이도 돌려줬다고 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슬픔이 알알이 맺힐 때….”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옛 ‘학전’ 소극장 앞. 고 김민기를 태운 운구차에 유가족이 탑승해 이제 장지로 떠나려 하자 누군가 ‘아침이슬’을 선창했다. 두 겹 세 겹으로 줄지어 늘어선 추모객 수십 명은 흐느끼며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잠잠했던 빗방울이 갑작스럽게 굵어졌다. 비가, 눈물이, 아니 슬픔들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외쳤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김민기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극장 앞 고 김광석의 노래비 앞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소주, 막걸리와 국화꽃다발이 줄지어 있었다. 유족은 영정을 안고 옛 학전 내부를 잠시 둘러봤다. 학전 출신인 배우 설경구와 장현성은 참아보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으나 터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배우 오지혜, 방은진은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운구차가 떠난 뒤에도 추모객들은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색소포니시트 이인권 씨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고인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다. 울음은 다시 파도처럼 번졌다. “가족장을 하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선생님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장현성은 힘겹게 입을 뗐고,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이슬’ 등 노래로 1970년대 군부 시절 ‘청년 정신’을 심어줬고, 학전에서 올린 창작 뮤지컬로 대학로의 상징이 됐던 김민기는 이렇게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앞서 위암 4기로 투병하다 73세의 일기로 21일 별세했다. 1971년 김민기가 작곡해 건네준 ‘아침이슬’을 부르며 열아홉에 데뷔했던 가수 양희은은 24일 라디오에서 김민기를 “어린 날의 우상”이라고 불렀다. “제가 부른 그분의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도 함께 떠릅니다. 많은 청취자분이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앞서 김민기의 서울대 후배인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전날 빈소를 찾아 조문객의 식사비 명목으로 유족에게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조의금을 받지 않았던 유족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이도 돌려줬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그린 국내 창작 뮤지컬 ‘프리다’(사진)가 미국 무대에 오른다.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프리다’가 9월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던캘리포니아대(USC)가 주최하는 ‘USC 비전스 앤드 보이스(Visons & Voices)’ 프로그램에 초청받았다고 23일 밝혔다. 2006년부터 열린 이 행사는 USC 교수진과 유명 예술가들이 참여해 연극, 음악, 무용 등의 공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뮤지컬 ‘프리다’는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를 극복한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생애를 그린 작품. 2022년 초연 당시 매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재연에서도 흥행을 이어 갔다. 이번 미국 공연에서는 지난해 공연에 출연한 배우 김소향, 전수미, 박시인 등이 나선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